신앙의 균형

 

독일 라이프치히의 양대 명물이 있다. 촛불기도회로 독일 통일의 초석을 이룬 니콜라이 교회와 성 토마스 교회다.

 

전자가 교회의 역사 참여를 보여준 대표적인 증거라면, 후자는 교회 영성의 본거지라 할 수 있다. 유명한 음악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가 생애 마지막까지 26년 동안 이 교회의 오르가니스트 겸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140여 편의 칸타타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을 내놓은 곳이다. 바하의 무덤도 교회 본당에 있을 정도다. 교회음악의 산실이다.

 

라이프치히에는 균형이 있다. 두 교회는 기독교 복음 선교의 양축을 대변한다. 봉사와 예배, 참여와 영성, 일과 기도,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 '세상 속으로''하늘을 향하여', '사이''넘어서' . 라이프치히를 찾는 이들에게 두 교회는 최고의 신앙 학습 장소다. 한국 땅에서도 이런 교회의 모습을 보고 싶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염려는 잘못된 믿음

 

강도가 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몇 년째 잠을 편히 못 자는 여성이 있었다. 조그마한 소리만 들려도 한밤중에 곤히 자는 남편을 깨우는 통에 남편도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드디어 어느 날 밤, 자다가 집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무슨 일인가 해서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니 정말로 강도가 들어와 있었다. 그 남편은 강도를 향해 말했다. "안녕하시오. 만나서 반갑소. 위층에 올라가 내 아내를 좀 만나주시오. 10년째 당신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다오."

 

염려는 말썽이 생기기도 전에 말썽이 생길 거라고 믿는 잘못된 믿음이다. 사람들의 염려는 한도 끝도 없다. 예수께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그날에 필요한 만큼의 힘을 주신다. 궂은 날이 올까, 맑은 오늘부터 미리 염려하지 말라. 만일 궂은 날이 오더라도 비는 피하면 되는 것이다.

강대일 목사(안양성결교회)

 

희망광장

 

지난 4년 동안 출근한 광화문 사거리의 감리회관은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한눈에 보는 전광판과 같은 곳이다. 아침에 출근하면 사무실에서 바라다보이는 청와대를 향해 한번쯤 두 손을 높이 든다. 그곳이 안정되어야 나라가 평안하리라는 마음에서 축복을 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태평로라는 길 이름에 그 의미가 담겨 있다.

 

광화문 광장은 2002년 월드컵 경기 때 승리의 함성이 울리던 곳이고, 우리 사회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촛불을 들고 탄원하던 곳이며, 국가의 경사가 있을때 온 국민이 모여들던 곳이다. 나는 우리 감리교회의 본부가 있는 너른 마당을 '희망광장'으로 선포한 일이 있다. 우리의 앞마당이 희망의 산실이 되어 시민의 광장, 평화의 광장, 세계의 광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제 내일부터 이곳에 출근할 일이 없다. 그러나 여기 희망광장으로부터 상생의 함성, 희망의 함성이 울려퍼지길 늘 기도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맘 놓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축복의 사명'은 죽는 날까지 감당할 것이다.

신경하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종교개혁은 진행형

 

역사는 기억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희망의 샘이다. 사건들을 기록한 역사도 있지만, 사건의 흐름 속에 담긴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의 역사가 있다. 전자는 기억하고 파악하는 것으로 족할지 모르지만, 후자는 오늘의 삶 속으로 가져와 소화하고 생수처럼 마시고 힘을 얻어 결단하고 행동하는 밑거름이 되게 한다.

 

종교개혁 사건은 역사적 유물도, 박물관의 전시물도 아니다. 종교개혁은 이어져 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중세 기독교의 기독교답지 못한 타락과 허물이 종교개혁의 현장이었다. 개혁을 외치며 개혁의 분신으로 자처하며 태어난 '개신교'가 어느새 개혁의 대상이 된 듯하다. 이럴 때일수록 외부의 개혁 요구에 자기방어로 맞서기보다는 하나님이 준엄하게 명하시는 '항상 개혁하는'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개혁하는 교회를 먼저 선택하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은총이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분열 50참회의 기도

 

지난 24일 저녁 7시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단지 내 컨벤션홀. 장로교 4개 교단 목사, 장로 4000여명과 현지 성도 1000여명이 연합 예배를 드렸다. 교단 간 연합뿐만 아니라 장로교단 분열 50년을 참회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은혜롭게 예배가 진행되던 가운데 사회자가 즉흥적인 제안을 했다. 4개 교단 교단장과 임원을 비롯한 연합기관 지도자, 교계 지도자 100여명을 단상에 올라오게 한 것이다. 단상에 올라온 사람들의 죄가 누구보다 크다며 무릎을 꿇을 것도 요청했다.

 

이렇게 해서 무릎을 꿇은 100여명의 교계 지도자들과 성도들은 연합 예배 장소를 뜨거운 참회의 장소로 바꾸었다. 이들은 신사참배와 교단 분열의 죄를 회개하기도 했다. 장로교 4개 교단의 참회가 갈라진 한국교회를 하나로 묶는 부흥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1907년 평양대부흥 운동은 바로 이 같은 마음을 찢는 참회에서 시작됐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마음의 원칙

 

지혜로운 할아버지가 손자를 무릎에 앉혀놓고 말합니다. "얘야, 사람 안에는 늑대 두 마리가 살고 있단다. 한 마리는 악한 놈이야. 그놈은 화를 잘 내고 늘 싸우기를 좋아하고 용서할 줄 모른단다. 다른 한 늑대는 착한 놈이지. 이 착한 늑대는 매우 친절하고 사랑스럽단다. 이 두 마리의 늑대가 네 안에도 있단다."

 

깜짝 놀란 손자가 한참을 생각하더니 할아버지께 묻습니다. "할아버지, 그럼 내 안에 있는 늑대 두 마리가 싸우면 어떤 늑대가 이기죠?"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말합니다. "그야 네가 먹이를 주는 놈이지."

 

사람의 마음에 어떠한 생각과 언어를 입력하는가가 마음의 습관을 결정하고 그 마음의 습관이 인생을 만들어 갑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4:23)

정승룡 목사(대전 늘사랑침례교회)

 

은혜받는 비결

 

옛날 집에서는 마당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부엌 물통에 채워넣곤 했다. 한 양동이가 불평을 늘어놨다. "아무리 물을 퍼 담으면 뭐 해. 열 걸음도 못 가 물통에 부어버리면 남는 게 하나도 없는데." 그러자 다른 양동이가 입을 열었다. "참 이상하다. 나는 열 걸음만 옮기면 다시 가득 채워지는데." 삶을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짧은 예화다.

 

똑같은 인생을 사는데 한쪽은 탄식과 불평만 늘어놓고 산다. 손에 가득 쥔 것 같으면서도 어느새 안개처럼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하늘에 쌓은 것이 아니면 모두 헛되고 헛되다. 반면 감사와 기쁨으로 삶을 채우는 사람들도 있다. 주님은 그들에게 더욱 풍성한 은혜를 베푸신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신의 것을 모두 다 주셨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붓고 살자. 열 걸음도 안 되어 채워주신다(4:24).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하나님의 음성 듣기

 

빗길에 미끄러지던 트럭이 한 주택을 들이받았다. 구조대와 앰뷸런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건현장에 도착했다.

 

이때 놀라운 일이 목격됐다. 야단법석인 와중에도 방에서 한 여성이 잠을 자고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다른 방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자, 그 여성이 벌떡 깨어 일어나더라는 것이다.

 

우리의 청각은 두 가지 기능을 갖고 있다. 들려오는 소리를 감지하는 일반적인 기능 외에, 듣고 싶은 소리만을 선별해서 듣는 기능도 함께 가지고 있다.

 

듣기로 결심했다면 아무리 세미한 음성일지라도 듣고 반응할 수 있다. 하지만 듣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면, 제아무리 청천벽력과 같은 큰 소리일지라도 결코 들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음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에 굳게 건 빗장 때문이다.

강대일 목사(안양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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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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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타락

 

요즘 교회에 대한 시비가 많다. 엄격해진 잣대는 교회에 대한 기대와 책임 때문이다. 교회가 가난할 때는 우호적이지만 힘이 있어 보이는 지금 더 이상 양해받을 여지가 없어 보인다. 많은 교회는 여전히 가난하지만 교회는 마치 부자처럼 인식되고 있다.

 

일찍이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런 말을 했다. "초대교회에는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 교회는 금으로 기둥을 만들고 대리석으로 바닥을 깔아 하나님의 집을 지었다. 은과 금은 이제 우리에게 너무 많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잃었다."

 

교회의 타락은 거룩함보다 물질이 평가의 기준이 되면서 시작되었다. 연약함보다 힘을 숭상하고, 가난보다 부유함을 선택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홀히 여기게 된 까닭이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2:5)

 

신경하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광풍을 잠재우는 리더

 

바울이 로마로 압송될 때 탔던 배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났다. 모두가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을 때 바울은 일어나 "아무도 죽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라"고 외쳤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로마까지 안전하게 인도될 거라는 확신을 얻었던 것이다. 바울은 도망가려는 사공들을 제지했고, 사람들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며 거듭 구원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었다. 배에 탔던 사람들 또한 바울을 믿고 따르며 안심하고 음식을 받아 먹었다. 결국 바울의 확신처럼 모두가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전세계적 경제 위기라는 광풍을 만났다. 이러한 때일수록 바울처럼 위기를 돌파해나갈 지도자와 지도자를 향한 국민들의 신뢰가 필요하다. 위기 속에서도 살 길을 찾아 희망을 제시하는 지도자와 그를 믿어주는 구성원들이 있는 공동체는 망하지 않음을 광풍을 만난 바울과 배에 탄 사람들을 보며 배워야 하겠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마음의 재벌

얼마 전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가수 션과 탤런트 정혜영 부부의 아름다운 기부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은 결혼 후 매일 1만원씩 모아 결혼 일주년이 되던 날에 365만원을 노숙인들에게 기부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며 섬겼다. 첫 동반 광고 수입도 전액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내놓았다고 한다. 현재 100명의 해외 빈곤 아동들에게 꿈을 주기 위해 매달 한 어린이당 35000원씩 보내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많은 기부를 하다 보니 주변 사람들은 '재벌이라 돈이 많아서 그러겠지'하고 생각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들 부부는 아직 자기 집도 없고 미래를 위해 적금도 든 게 없다고 한다.

 

방송 진행자의 말처럼 "재벌은 재벌이되 마음의 재벌"인 셈이다. 우리 사회에 흉흉한 소식들로 마음이 점점 얼어붙어가는 요즈음, 따뜻한 남풍같이 느껴지는 '마음의 재벌' 이야기가 더 많이 들렸으면 좋겠다.

정승룡 목사(대전 늘사랑침례교회)

 

불안이 쌓아올린 유산

 

인류 역사상 유명한 건축물들은 불안 해소를 위해 세워진 경우가 많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죽음에 대한 불안해소를 위해 세워졌다. 만리장성은 황제의 정치적 불안해소를 위해 세워진 건축물이다. 창세기 11장의 바벨탑도 흩어짐에 대한 불안해소를 위해 쌓기 시작한 탑이다. 내 주변에 누군가가 모여 있어야 하고, 무언가를 모아 놔야 안심할 수 있는 인간의 뿌리 깊은 불안 때문이다.

 

흩어짐은 두렵다. 외롭고, 불안하며,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불안감이 강해질수록 모아 놓은 것을 지키기 위한 성벽도 비례해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불안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하지 못해서 생겨나는 마음의 현상이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하지만, 제대로 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못하다. 무언가 쌓아 놓을 생각 대신 하나님과 화평 하는 게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강대일 목사(안양성결교회)

 

삼 세번의 미덕

 

 

한국인들은 수많은 숫자 가운데 특히 ''자를 좋아한다. 작심삼일, 삼천리, 삼척동자, 3부작, 삼총사, 삼종지도, 3등칸, 일일이 여삼추 등. 삼은 통합과 균형을 나타내는 뜻으로 사용한다. 석 삼, , 세 번째란 수가 주는 안정감은 마치 세 개의 다리를 지닌 솥발의 균형을 연상시킨다. 압축된 요점을 손쉽게, 간단히 전달할 때도 세 가지로 요약하길 즐겨한다. 3대 과제, 3대 지표, 3대 정신, 3D 산업, 3S의 삶의 방식, 21세기 3F 특징들이 좋은 보기이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형제가 잘못했을 경우에 일곱 번을 용서하면 되겠느냐"고 했다. 당시 랍비들은 세 번까지 용서하라고 했고, 외경 집회서에도 두 번까지 관용을 베풀도록 한 점으로 미루어 베드로의 물음은 파격적이다. 그런데 언감생심,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고 하셨다. 우리 속담에 "참을 인() 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에도 세 번쯤 참아주는 '삼 세 번의 미덕'이 필요한 시절이다.

신경하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이름값

 

최근 교황청에서 하나님의 이름인 '야훼(여호와)'를 공식 예전이나 공공예배에서 함부로 쓰지 말도록 지침을 내렸다. 대신 '주님'이라는 표현을 쓸 방침이라고 한다. 본래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되는 이름이 없다.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나는 나다"라고 하신 뜻을 히브리어로 모음 없이 자음으로만 쓴 게 'YHWH'인데 이것을 각국어로 조금씩 달리 발음하다 보니 우리말로 '여호와'로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그런 발음조차 삼가며 "아도나이(주님)"라고 부르고, 헬라어로 쓰인 신약에서는 "키리오스(주님)"라고 일컫는다.

 

인간의 욕심을 채우려고, 자기 정당화를 위해 신의 이름을 도용하거나 예배의 주인을 도구로 삼는 것은 큰 죄악이다. 차라리 자신의 이름을 실명으로 대고 하나님과 이웃들 앞에 값을 매기게 하자. 차명과 가명을 버리고 진실하고 투명하게 '나는 나'임을 밝히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화이부동

 

가정이든 나라든 구성원간에 갈등이 팽배한 사회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 반면 서로를 존중하고 화합하는 모습은 성숙한 가정, 선진국의 조건이 된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란 말이 있다. 남과 화합은 하지만 흔들리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진리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취할 태도 중 하나가 바로 이 화이부동적 삶의 자세이다. 진리를 만난 사람은 결코 유아독존적인 자세에 머물러 있지 않다. 포용과 관용으로 상대방을 품는 여유와 깊이가 풍겨난다.

 

이번주 서울 성북동에서는 필자가 섬기는 교회와 길상사, 성북동성당이 연합으로 이웃돕기 바자회를 개최한다. 서로 다르지만 사랑으로 함께할 수 있는 봉사에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의 마음을 품고 온 교우들이 참여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더 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할 것으로 기대하며 지역사회에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를 기도하고 있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탐욕의 무덤

 

광야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공급을 경험하며 기적과 더불어 살았다. 하늘양식 만나를 매일 아침 공급받았고 반석에서 터져나온 생수를 마셨다. 하지만 그들은 만족하며 감사하기보다 고기를 요구했다. 더 나아가 과거의 애굽 종살이를 미화하며 하나님을 원망했다.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대로 광야의 메추라기를 몰아주었지만 결국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도 전에" 그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셨다. 욕심을 내었던 자들이 그 광야에서 장사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장소를 '기브롯 핫다아와', 즉 탐욕의 무덤이라 칭하게 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 넉넉한 자들이 작은 것을 탐하다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1:15)는 말씀의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정승룡 목사(대전 늘사랑침례교회)

 

빈곤 퇴치는 사명

 

세계경제가 향후 몇 년 동안 지금보다 악화될 것이라는 보도가 연일 이어진다. 미국 집값의 거품 피해가 당사자들을 넘어서서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이 의식주 문제(25:3738)로 더 고통을 받게될 것이 분명하다.

 

오늘은 세계빈곤퇴치의 날이다.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서는 가난한 이웃을 돕는 천사의 손을 의미하는 '화이트 밴드 감기' 모임이 열린다. 국민 소득의 0.7%를 가난한 나라에 원조하자는 세계적인 합의가 있지만, 우리나라 원조수준은 0.06%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사람에게 양 손을 만드신 이유는 한 손으로는 열심히 벌고, 다른 손으로는 열심히 베풀고 살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넘치는 은혜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모든 착한 일도 넘치도록 해야 할 때이다(고후 9:8).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하나님이 쓰시는 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이 매스컴에 소개된 적이 있다. 정말 흉측하게 생겼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겨진 이유를 듣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의 하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하루 10시간 이상씩 연습으로 발레신발 150여 켤레를 닳아 떨어뜨린 연습벌레의 발이었다. 연습과 공연 때면 그녀의 발가락은 갈라지고, 물집 잡히고, 곪는단다. 그렇게 흘러내린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2짜리 생수병을 들고 다닌다고 했다. 뭐가 이토록 그녀를 발레에 미치게 만들었을까.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발 모양이 따로 있다. 먹거나 희생 제물로 쓸 수 있는 정결한 짐승을 구분하는 기준이 바로 발의 모양에 있었다(11). 굽이 갈라진 발이었다. 그것은 자기중심의 삶과 구분된 헌신의 발을 뜻한다. 여호와 앞에 갈라진 발. 갈라지고 물집 잡히도록 전적으로 헌신하며 뛰어다니는 열정이 만든 발. 그런 발을 필요로 하신다.

강대일 목사(안양성결교회)

 

인생의 진화

 

인간은 갓난아기 때 단맛을 먼저 알고, 짠맛, 신맛을 배운 후에야 비로소 쓴맛을 배운다고 한다. 독성이 있는 물질에 들어있는 쓴맛을 가장 늦게 배우는 이치는 자연스러워 보인다. 가장 늦게 인생의 쓴맛을 알게 되는 셈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운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잇값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자기의 책임의식보다 남의 탓을 하는 사람에게 잘 드러난다. 그들은 자기 마음에 불평이 쌓일 때 그것을 남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내 마음에 기쁨과 평화, 희망이 사라졌다고 해서 남을 탓하는 것은 유치한 태도이다.

 

옛 말에 화복동문(禍福同門)이라고 했다. 화와 복은 모두 자신이 불러들인다는 말이다. 사실 내게 쌓이는 불평과 불만은 바로 내 속에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기 안에 뿌린 사랑의 결실 때문에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사랑 때문에 인생은 나이가 들수록 진화한다. "믿음은 살아 있고 배우는 공동체 속에서 영속된다."(알브레히트 쉔헤르)

신경하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위기와 신앙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는 세계 금융시장의 산실이다. 철옹성 같고, 무소불위의 금권을 자랑하던 현대판 레비아탄(악마, 또는 괴물)이 휘청거린다. 거대 강국인 미국이 7000억달러의 금융구제안을 내놔도 정상을 찾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야단법석이다.

 

뉴욕의 금융위기 강풍이 전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한국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하지만 강풍을 가라앉힐 만한 묘약이 안 보인다. 구제금융 금액이 적어서도 아니고, 돈이 없거나 물건이 없어서도 아니다. 심리적 불확실성 때문이다. 신뢰의 부족 또는 불신 탓이다. 다시 말해 신뢰의 상실이 가장 큰 문제다.

 

삶의 진정한 행복은 몸과 영혼을 맡길 수 있는 신뢰의 힘에서 나온다. 인간세계 가운데 역사하시면서 동시에 역사를 초월해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믿는 확고한 신앙만이 살길이다. 하나님을 진실로 찾고, 구하고, 그 문을 두드리면 된다. 지체할 필요가 없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하나님의 경제

 

성경은 물질을 배척하지 않는다. 대신 그 물질을 다루는 사람의 자세를 중요시 여긴다. 하나님 대신 물질을 의지하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 물질을 추구하는 사람에 대해 성경은 '어리석은 부자'라고 정의한다(12:20). 모든 재화(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사람은 청지기일 뿐이다. 제 아무리 그럴 듯해 보이고, 잘나가는 듯해도 주인을 속일 수 있는 청지기는 아무도 없는 법이다.

 

월가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며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그들의 철옹성은 주저앉았다. 그들을 향한 세계인들의 '믿음' 역시 무너졌다. 분수를 넘어선 부()의 독점과 대다수 사람들의 가난과 굶주림을 외면한 월가와 자유방임주의 경제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이다. 이제는 모래 위에 집을 쌓는 허사를 버리고 진실과 신용의 반석 위에 새 집을 지어야 할 때다. 3의 길을 모색할 때인 것이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작고 사소한 죄

 

빈 건물의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연이어 옆 유리창도 깨진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면 그 건물은 범죄의 온상이 되고 인근에 범죄가 속출하면서 일대가 무법천지로 변하게 된다. 이것을 소위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이라 한다. 미국의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1982년 발표한 이론이다.

 

이 이론은 작은 무질서를 가볍게 여기다 보면 더 심각한 범죄가 생겨난다는 것, 사소한 실수를 제때 고치지 않으면 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내면의 사소한 죄를 가볍게 여기다보면 큰 죄를 불러오게 된다. 이 원리는 미시적으로 대인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며, 거시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통용된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5:9)는 성경의 경고에 귀기울여야 할 것 같다.

정승룡 목사(대전 늘사랑침례교회)

 

천하보다 귀한 생명

 

인간의 생명이 언제 시작되느냐를 두고 수정란, 배아줄기 세포 생성, 인간 형체 형성, 출산 이후라는 등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다. 하나님의 것인 생명을 나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제 마음대로 취급해서는 안된다. 예수님께서는 한 인간의 생명을 세상 천하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소중하게 여기셨다(8:36). 내 생명이든, 남의 생명이든 죽여선 안된다. 생명은 일단 훼손되면 인간 능력으로는 회복시키거나 대체하거나 돌이킬 수 없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주권을 침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기 연예인의 자살로 지난 주간 내내 마음이 무거웠는데 아직도 세상은 테러와의 전쟁, 범죄에 의한 죽음이 여전하다. 빛도 못보고 죽는 낙태아 때문에 안타깝고, 세계 사형폐지의 날(1010)인 오늘도 사형수들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생명이 공학의 대상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평화의 세상이 오기를 기원한다(10:10).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회협의회 총무)

 

감사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감사다. 감사는 한 마디로 '과분한 마음'이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을 자신의 투자나 능력이 아닌, 다른 이유로 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것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고백에서 감사의 정신은 출발한다. 그러기에 갑작스러운 횡재나 행운은 감사의 요건이 못된다. 오히려 감사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러 나간 이들에게 적절한 덕목이다.

 

성숙한 영적 열매는 저절로 자라나는 것이 아니다. 운동선수는 연습량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고 기능공은 훈련의 반복에 따라 성취 여부가 결정되듯, 그리스도인의 감사 역시 훈련이 필요하다. 특히 행복에 겨울 때보다 시험과 어려움 속에서 더 잘 연단된다. 그러기에 감사는 자기 자신의 고마움으로 그칠 수 없다. 내 가정은 물론 이웃과 세상을 향해 그 기쁨을 나누는 것이 감사다.

신경하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만족할 수 있는 길

 

6·25 직후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70달러에 불과했다. 그런데 현재는 거의 2만달러로 300배 가까이 잘 살게 됐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300배의 만족을 느끼며, 마음이 풍요로울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300배의 풍요는 있어도, 오히려 마음은 더 빈곤해진 것 같다.

 

자살로 죽는 인구가 교통사고로 죽는 인구보다 더 많다는 통계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내가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했다. 자기가 필요한 정도를 적당 선에서 정해놓지 않으면 우리의 소유욕은 끝이 없이 자란다고 한다. 많이 벌어 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다. 비천과 풍부는 절대적으로 내가 정한 기준에 달려 있다. 고무줄같이 늘어나는 가변적인 기준이 문제다. 채워서 만족하려 들지 말라. 나만의 기준을 빨리 정하는 게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강대일 목사 (안양성결교회)

 

죽음의 죽음

 

마르틴 루터는 십자가의 죽음을 이기고 부활을 만들어내신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켜 '죽음을 죽이고' 이긴 것이라고 했다. 십자가와 부활은 '죽음을 죽인' 사건이다. 따라서 '죽음의 죽음'은 강력한 부활의 메시지임에 틀림없다.

 

생명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죽은 뒤 약속받은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교두보일 뿐이다. 다시 말해 죽음은 이 땅의 생명과 하늘의 생명을 연결하는 다리다. 그 다리는 안전해야 한다. 이 땅에서 복되게 사는 웰빙(well-being)과 함께 하늘 생명을 향한 복된 죽음(well-dying)이 값진 삶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은 불안이다. 요즘에는 우울증으로 통한다. 불안이나 우울증은 홀로 살면서 걸리는 질병이 아니다. 함께 살지만 잘못 살기에 생긴다. 우울증을 죽일 수 있는 약은 기쁨의 상생이다. 신앙은 상생의 복음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우리도 함께하는 복음이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생명사랑 밤길 걷기 운동

 

2006년 한국은 OECD 국가들 중 헝가리에 이어 세계 2위 자살국이 됐다. 한해 1688명이 자살을 한다니 하루 28, 51분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셈이다. 이 같은 높은 자살률은 이제 자살이 개인의 문제를 넘어섰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마디로 자살은 우리 사회 전체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풀어야 하는 공동체적 과제가 된 것이다. 심각한 자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없다면 한국 사회에서 희망이라는 단어는 영원히 잊혀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1010일 저녁 7시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리는 생명사랑 밤길 걷기 운동은 좋은 캠페인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밤길을 걸으며 동이 트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인생의 밤길을 헤치고 희망의 새아침을 맞는 생생한 경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다양한 캠페인과 운동이 사회 곳곳에서 펼쳐져 자살 예방과 함께 생명존중의 문화가 확산되었으면 좋겠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거룩한 투쟁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톱스타가 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감당했어야 할 삶이 얼마나 무거웠으면 사랑하는 아이들과 가족들을 뒤로 한 채 세상을 떠나야 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펴져가고 있는 자살 문화에 분개를 느낀다. 심리사회적으로나 경제사회적 요인으로 자살의 증가를 분석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려는, 생명 경시의 배후에 역사하는 악한 영의 세력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생명의 근원이요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공동체는 자살 문화에 정면으로 맞서는 거룩한 투쟁을 해야 한다. 지치고 힘든 영혼들이 마실 수 있는 생명의 맑은 샘물을 보다 적극적으로 흘려보내는 신성한 노력을 해야 한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36:9)

정승룡 목사(대전 늘사랑침례교회)

 

구세군 선교 100

 

120여년 전, '영혼을 찾아 세상으로 가라. 그것도 가장 악한 사람에게 가라'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다. 구원에 대한 열정이 그들을 사로잡았다.

 

이 뜨거운 마음은 영국 전역에 부흥회와 전도집회를 불러 일으켰고, 빈민가의 고통받는 자들을 섬기는 데로 향했다. '우리는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군대'라는 고백을 하고 있는 구세군(Salvation Army)이 탄생하게 된 계기다.

 

구세군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자선냄비'부터 떠올린다. 그래서 구세군을 복지기관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교회 수보다 구세군 산하 사회봉사기관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구세군은 교회다. 진정으로 건강한 교회다.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라고 고백하며 부흥과 봉사라는 두 바퀴로 고통받는 자들을 향한다(딤후 2:3). 우리의 신앙을 풍성하게 만들어 온 구세군대한본영의 100주년을 축하한다.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회협의회 총무)

 

안전이라는 미신

 

인생에서 위험은 어디에든지 있다. 만일 살면서 어떠한 위험도 당하고 싶지 않다면 다음의 것을 꼭 지켜라.

자동차를 타지 마라-사망 사고 원인의 20%나 된다. 비행기나 기차나 배로 여행하지 마라-모든 사고의 16%를 차지한다. 거리를 걸어다니지 마라-모든 사고의 15%가 거리에서 일어난다. 집에 있지 마라-모든 사고의 17%가 집에 있는 중에 발생한다. 인생에서 안전한 장소는 아무데도 없고 위험 부담이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헬렌 켈러는 이렇게 말했다. "안전이라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미신이다. 위험을 피하는 것이 감수하는 것보다 안전하지 않다. 인생은 대담하게 모험을 하든지, 아무것도 아니든지 둘 중 하나다." 당신의 지금 목표가 위험을 무릅쓸 가치가 있는 것인가? 만약 있다면, 그 다음은 걱정하지 마라. 그냥 움직여라. 나머지는 주님께서 책임지신다.

강대일 목사(안양성결교회)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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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의미

 

리처드 하버슨은 이런 말을 했다. "맨 처음 교회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 안에서 친밀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관계를 가졌다. 이 관계는 그들과 그들 주변의 세계를 변화시켰다. 그 다음 교회는 그리스로 건너가 하나의 철학이 되었다. 나중에 교회는 로마로 넘어가 하나의 제도가 되었다. 그 다음 교회는 유럽으로 퍼져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미국으로 건너가 하나의 기업이 되었다. 오늘 우리는 너무나 많은 교회를, 그러나 너무나 적은 친교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 한국 땅에 온 교회의 의미는 무엇일까. 철학, 제도, 문화, 기업. 이 모든 것도, 그 중의 하나도 아니다. 세상은 바뀌고, 환경도 변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는 대원칙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실한 청지기, 타자를 위한 존재, 희망의 공동체, 구원의 방주 등 다양한 이름을 지니고 있다.

신경하 전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본회퍼의 회개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본회퍼는 전쟁에 미친 히틀러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친 운전사가 차를 마구 몰며 사람들을 치어 죽이고 있습니다. 자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까? 아니면 차에 올라타 그 미친 운전사를 끌어내려야 합니까?" 그는 이 유명한 비유를 암살 기도의 명분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는 체포되어 39세의 젊은 나이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가 죽기 전 히틀러가 하늘의 심판대에서 절규하는 꿈을 꾸었다. "세상에 있는 동안 이런 심판에 대하여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어요. 너무 가혹합니다." 꿈에서 깬 본회퍼는 가슴을 치며 회개했다고 한다. 히틀러를 제거하려고 한 것보다 복음을 전했어야 한다고 말이다.

 

어둠을 이기는 수단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불을 밝히는 것이다. 자아실현, 가정 행복, 그리고 사회정의까지도 복음으로만 가능하다. 예수 복음을 나누는 것이 우리 인류의 마지막 남은 소망이다.

정승룡 목사(대전 늘사랑침례교회)

 

담대한 믿음으로

 

 

환란과 고통은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병에 걸리거나 돈 때문에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가족이 아프거나 사고로 생명의 위협을 당하기도 하며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기도 한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유명한 설교가이자 신학자인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 목사는 히틀러에 저항하다가 나치가 패망하기 1주일 전에 사형장으로 끌려 갔다. 그때 그는 교도관에게 "이것이 내 인생의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시작이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누구나 겪는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인 죽음의 순간을 또 다른 삶의 시작으로 바라보는 담대한 믿음이 아닌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이 세상 어떤 위기보다 주님의 능력이 더 많고, 어떤 고통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다. 글로벌 경제 위기가 우리 삶을 위협할지라도 죽음조차 이기신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믿음이 절실한 때다.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고쳐 쓰시는 하나님 

 

물론 하나님은 사람의 장점을 이용하실 것이다. 키 큰 사람을 키 작은 사람보다 운동선수에 더 많이 사용하실 것이다. 건강한 사람을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귀하게 쓰실 것이다. IQ가 높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성공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장점이 불행거리와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다윗에게 반란을 일으킨 압살롬의 죽음도 결국 그의 수려한 용모와 자랑스러운 긴 머리카락 때문이었다. 삼손의 실패도 결국 그 힘 때문이었다. 겸손하게 여기지 않으면 장점만큼 큰 단점도 없다. 장점은 겸손할 때에만 장점이지, 때로는 엄청난 단점일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고쳐 쓰는 즐거움을 아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히려 우리의 약점에 있다. 겸손한 병든 사람을 고쳐서 쓰신다. 겸손한 지혜 없는 사람에게 지혜를 주셔서 사용하신다. 겸손한 실패자를 재기시켜서 사용하신다.

강대일 목사(안양성결교회) 

 

진달래 화음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의 일부다. 우리의 땅 영변은 진달래 대신 '핵시설' 뉴스가 오르내리는 진원지가 돼버렸다. 죽음의 핵무기 대신 온 겨레가 소망하는 생명의 꽃이 다시 심겨질 날을 기대해본다.

 

'영변에 약산 빈달배기 참꽃 한 보뎅이 따더 내재는 질라루 훌훌 뿌레 줄기래요(강원도)'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가득 토당 가고정헌 질에 지져밟고 정이 살페 가시우야(제주도)'

 

'거시기 약산에 참꽃 허벌라게 따다가 마리시롱 가는 질 가상에 뿌려줄라니께(전라도)'

 

'영변에 약산 참꽃 한거덕 따다 니 가는 길에 뿌려주꾸마(경상도).'

 

정겨운 사투리 버전 속에 진달래의 희망이 아름다운 화음으로 남북 강산에 피어나는 날은 언제쯤일까. 하늘은 스스로 꿈꾸는 자를 돕는다. 그 꿈은 우리 모두를 위한 평화의 꿈이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오바마와 창조원칙

 

흑인 소녀 브라운은 1마일이나 떨어진 초등학교에서 가까운 학교로 옮기려다가 피부색 때문에 거절당했다. 1954517일은 그로 인한 소송에서 공립학교에서의 인종분리가 위헌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날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색깔들 중에 흰색이 검은색보다 우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64년에는 흑인의 참정권을 보장한 민권법이 제정됐다. 이후에도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인종에 대한 편견은 사라져 갔고, 마침내 2008114,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예수 안에서 하나다(3:28). 인종과 신분, 성별에 관계없이 하나님 안에서 똑같이 존중받는 것이 창조원칙이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창조원칙을 회복하는 쪽으로 끊임없이 역사를 바꾸어 가신다. 역사의 무대에서 쓰임받는 사람들은 이러한 창조원칙 회복에 가담하는 자들이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선교사의 다짐

 

최근 중앙아시아 K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의 집을 방문했다. 그 집 화장실 벽에 붙여놓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에게 가라/그들 가운데 살라/그들로부터 배워라/그들을 사랑하라/그들이 알고 있는 것에서 시작하라/그들이 갖고 있는 것들 위에 세우라/그러나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그들의 일이 성취되었을 때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힘으로 이 일을 해냈다'고 말하게 한다."(중국의 시)

 

이 글은 그 선교사의 다짐이었고 결단이었다. 그는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땅으로 갔다.

 

그는 살벌한 위협과 방해 가운데서도 전도했고 그들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믿음 공동체를 세웠다. 그리고 그들이 이 모든 것을 이룬 것처럼 아낌없이 넘겼다. 오늘도 땅끝에서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선교사들을 축복한다 

정승룡 목사(대전 늘사랑침례교회)

 

남북 기독인의 기도

 

 

반세기 전만 해도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생각했을까. 남북 그리스도인 400명이 평양에서 함께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날을. 지난 4일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 평양에서 있었다. 평양 봉수교회 담임목사가 사회를 보고 남한교단 총회장이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자'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북한 측이 준비한 포도주와 남한에서 가져온 빵으로 우리가 믿음 안에서 한 형제 자매임을 확인하는 성찬식도 갖는 감격을 누렸다. 북한의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성가대가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며 한마음이 됐다.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남북 관계가 많이 경색돼 있다. 하지만 남북 그리스도인들의 간절한 기도가 헛되지 않으리라 믿는다. 끊임없는 기도는 평화와 통일을 가져오리라 확신한다. 낙심하지 않고 항상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18:18).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수치를 굴려 버려라

 

 

습관이 한 사람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의 90%가 습관이란다. 10%의 시간만 내 의지로 통제 가능하고, 나머지는 무의식적 습관에 따라 산다는 것이다. 습관이라는 무서운 리모컨에 의해서 우리 모두는 조종당하고 있는 셈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도 습관적인 노예근성을 제거하는 데만 40년이란 긴 시간을 소비했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조종하던 이 근성을 해결하지 못하면 새 땅에서의 성공적인 삶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나안 땅에서의 첫 정복전쟁을 치르기 전에 이스라엘이 했던 집단행동은 바로 할례였다(5). 전술을 논하고 무기를 가다듬는 식의 전쟁 준비가 아닌, '애굽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는 성결의식이었다. 인생을 바꾸려면, 의도적으로 일상습관을 바꾸기 시작해야 한다. '성결'이 우리의 가장 큰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강대일 목사(안양 성결교회)

 

유대인과 돈 

 

유대인은 재물을 모으는 일에 천부적이다. 유대인 사이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유대인 아이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돈이 뭐예요?"

 

아버지는 "잘 봐라"하면서 유리 조각을 집어 창문 앞에 놓았다. 아이는 유리를 통해서 길이며 행인이며 마차를 볼 수 있었다. 이어서 아버지는 "이제 돈을 잘 봐라"하더니 "유리 조각 대신 돈을 여기에 놓겠다. 은화 때문에 거리 풍경은 하나도 안 보이고 돈만 보이지"라고 말했다.

 

돈 앞에서 다른 것은 하나도 볼 수 없다. 오직 돈만 보인다. 돈을 모으려는 사람들은 돈에 눈이 머는 경우가 많다. 돈에 눈이 멀게 되면 세상의 장님이 된다. 돈 빼고는 잃는 것이 너무 많다. 그 치명적인 흠으로 부터 벗어 나려면 돈 버는 것과 나눠갖는 것에 두루 눈을 돌려야 한다.

신경하 전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금강 알프스

 

알프스는 세계의 명산이다. 그 위용과 수려한 자태가 세계인의 심신을 빨아들인다. 우리 땅에도 알프스 못지않은 산이 있다. 바로 금강산이다. 남북의 인적 교류가 가장 먼저 이뤄진 곳이기도 하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은 알프스 못지않게 아름답다.

 

한때 금강산 자락에는 믿음의 조상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하늘나라의 축복을 염원하며 기도하던 '금강산기독교수양관'이 있었다. 주기철 목사님의 인도로 200여명이 모여 밤새워 기도의 불꽃을 모았던 장소였다. 근방에는 현재 남북이산가족이 한자리에 만나 손을 맞잡고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만남의 집이 세워지고 있다.

 

남북의 신앙인들도 한 가지 간절한 소망을 품기 바란다. 평화와 자유를 위해, 나아가 남북통일과 한반도의 복음화를 위해 함께 두 손을 모으는 기도의 집이 들어서는 날을. 그러기 위해서는 중단된 금강산 관광이 하루빨리 재개되어야겠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회복되는 경제원리

 

몇몇 경제 대국들이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서 신자유주의경제를 제창했다.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든 것이다. 그 결과, 시장은 인류의 도구가 아니라 인류를 좌우하는 중심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무한 자유를 한손에 거머쥔 거대한 시장이 중병에 걸리게 되자 세계인들도 모두 죽게 되었다. 이 세계시장이라는 병든 우상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마가복음 2장에 나오는 치유받은 중풍 병자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중풍에 걸려 스스로 이동조차 할 수 없었던 환자가 지붕을 뚫고 침상을 내려준 친구들의 도움으로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았다.

 

중풍병처럼 위기에 빠진 세계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지붕을 뚫고 침상을 내려준 친구들처럼 세계의 모든 나라가 협력해서 새로운 경제 네트워크를 만들어야만 한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경제원리로 돌아가야 할 때다. 그 길만이 인류가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위기 속 희망

   

평생 심혈을 기울여 가꿔온 교회를 멋지게 제자에게 물려주고 은퇴하신 목사님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함께했던 소수의 젊은 목사들에 대해 "안쓰럽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당신이 목회할 때는 사회가 전반적으로 성장 무드에 있었고, 성도들이 순수하고 마음이 부드러워 목회자를 믿고 잘 따랐다는 것이다.

 

그분의 말씀에 따르면 지금은 성장이 멈췄고 오히려 고속 성장 이후 여러 문제들이 드러난 상태라 성도들이 더 이상 순수하게 목회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목회해야 하니 젊은 목회자들이 "안쓰럽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분은 이 위기가 기회라 하셨다. 진실한 목회자들을 통해 교회가 정화되고 새롭게 일하실 하나님의 희망을 본다는 것이다.

 

당면한 위기 가운데서도 주님의 주 되심을 철저히 인정하고 말씀으로 생기를 얻어 마른 뼈가 살아나는 기적(37:110)을 맛봐야 할 것이다 

정승룡 목사(대전 늘사랑침례교회)

 

평화 지키기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거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일본헌법 9조 중)

 

일본 헌법은 9조에 전쟁 포기와 군사력 보유 금지를 규정해 '평화헌법'으로 불린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승전국인 미국이 일본에 대해 전쟁과 평화 파괴의 책임을 물어 이 조항을 헌법에 포함시키고 군정을 마쳤다. 일본의 대외 침략 기도를 억제하고 동북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군대보유, 국가교전권까지 포기하도록 만든 것이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일본 내부에서는 군국주의 경향이 짙어지면서 이 조항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일본의 교회들은 개정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고, 도쿄를 중심으로 평화헌법 개정 반대 기도회와 모임을 갖고 있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다(5:9).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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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성탄의 참된 의미

 

'성탄'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탄의 장소는 거룩한 곳이 아니었다. 이미 도둑의 소굴로 전락하고, 장사치들의 시장으로 변해버린 예루살렘의 성전은 만원이었다. 여관방도 인파로 가득찼고, 가정집의 사랑채도 빈 곳이 없었다.

 

요즘 말로 하면 3D 직종에 종사하는, 들판의 양떼를 돌보고 겨우 입에 풀칠하는 목자들이 성탄을 알아보고 마음으로 맞이할 뿐이었다. 유대땅도 아닌 외지의 점성가들, 그러니까 빈곤을 이기려 모여든 외로운 외국인 노동자들이 희망을 품고 맞이했을 뿐이다.

 

세상의 그늘진 곳, 굶주림에 허덕이고 질병에 시달리는 곳,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 심한 곳. 그런 낮고 낮은 곳의 상징인 말구유에서 예수가 태어났다.

 

우리는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성탄 캐럴을 불러야 할까.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되는 가장 높으신 분의 '만민 구원'에 동참할 자를 찾는다. 메리 크리스마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겨자씨] 시계와 나침반

 

지금 인류는 잘못된 방향으로 질주해가다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형국이다. 경제적 고도성장을 추구하며 선두 주자로 달리던 미국이 궁지에 몰리면서 뒤쫓아가던 모든 나라가 함께 덫에 걸렸다.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돌아갈 수도 없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절망의 늪에 빠져 있다.

 

각 나라가 이런저런 긴급 처방을 내놓고 있지만 암환자에게 주사 몇 대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과연 인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방향을 잃었을 때는 나침반을 찾아야 한다. 꽉 막혀 있는 앞뒤가 아니라 열려져 있는 위를 바라보며 출구를 찾아야 살길이 열린다.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도 고도성장이라는 신기루를 잡으려고 시계만 보면서 질주하다가 한계선에 봉착했다. 지금은 시계를 보면서 시간을 단축하려는 노력은 잠깐 접을 때다. 창고 어딘가에 깊숙이 넣어두었던 나침반을 다시 꺼내는 것이 해법을 찾는 지름길이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겨자씨] 위대한 용서

 

얼마 전 미국 샌디에이고 인근 주택가에 미 공군기가 추락했다. 평온하던 한 가정을 덮쳐 어린 두 자녀와 그 엄마 그리고 딸의 집을 방문했던 할머니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이 뉴스가 우리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불의의 사고를 당한 가족이 바로 한국인 가정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그 가정의 가장은 직장에 있어서 사고를 면했지만 갑자기 닥친 슬픔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사건이 미국 사회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했던 것은 홀로 남겨진 가장의 '위대한 용서' 때문이다. 그는 견디기 힘든 눈물을 삼켜가며 "전투기 조종사를 원망하지 않으며 그를 용서한다" "그가 고통당하지 않도록 기도해달라"고 말했다.

 

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대강절 기간에 위대한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담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묵상케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정승룡 목사(대전 늘사랑침례교회)

 

[겨자씨] 정말 부끄러운 일은

 

한 목사가 미국 유학 중 현지 교회에서 영어로 설교를 했다. 설교가 끝난 뒤 한 미국 할머니 성도가 다가와 "오늘 설교에 은혜받았다"고 인사를 건넸다.

 

목사는 기분이 우쭐했다. 그런데 할머니의 질문이 이어졌다. "목사님이 한국말로 설교를 하셔서 내용을 잘 알아듣지는 못했는데, 한국말도 영어와 비슷합니까?"

 

은혜를 받았다는 말은 그저 인사치레였을 뿐, 목사의 영어 발음이 형편없어 한국말 설교로 착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돈이 없고, 배운 것이 없고 영어를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가족이나 함께 사는 사람들, 또는 어려운 이웃들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살다가 죽는 게 가장 부끄러운 일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요일 4:8).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외아들까지 주시지 않았는가(3:16).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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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교회의 힘

 

세상에서의 힘은 가짐에서 온다. 지식을 가짐으로 학력을 과시할 수 있고, 물질을 가짐으로 재력을 누리고, 권세를 가짐으로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따라서 사람들은 더 많은 힘을 얻기 위해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많은 물질을 모으고, 높은 권세를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교회의 힘은 세상과는 다르다. 교회의 힘은 신자의 수에 비례하거나 화려한 예배당을 가지고 있다거나 세속적·정치적 영향력을 가짐에서 오지 않는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건의 능력으로부터 나온다.

 

경건의 능력은 약할 때 나타난다. 형통할 때보다는 고난당할 때, 높아질 때보다는 낮아질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고 하였다. 2009년에는 교회가 새롭게 부흥하길 기도한다. 이는 교회가 경건의 능력을 회복하고, 비우고 낮아짐으로 스스로의 연약함을 자랑할 때 가능할 것이다.

 

오덕교 목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겨자씨] 호시우행

 

새해를 어떻게 살까? 호시우행(虎視牛行), 범처럼 예리한 눈으로 현실을 뚫어보고 소처럼 끈질기고 여유 있게 걷자. 현실 판단은 매섭게 하자. 행동은 서두르지 말고 꾸준히 하자. 사냥감을 포착한 호랑이의 시선은 빈틈이 없다. 들판에서 일하는 소는 돌밭이든 진창이든 포기하는 법이 없다. 때로 정면 돌파가 어려우면 에둘러 돌아간다. 조금 더뎌 보이지만 반드시 목표물에 이르고야 만다. 올해도 경제 불황으로 살림살이는 더욱 힘들 전망이다. 이럴 때에 조급하지 말고 호랑이의 큰 눈으로 정면을 직시해야 한다. 때로 큰 사냥을 위해 발자국 소리를 죽여야 할 때도 있지만 결코 멈추지는 말자. 소걸음으로 뚜벅뚜벅 나아가자.

 

"눈으로는 앞만 똑바로 보고, 시선은 앞으로만 곧게 두어라. 발로 디딜 곳을 잘 살펴라. 네 모든 길이 안전할 것이다."(4:2526).

 

김흥규 목사(내리교회)

 

[겨자씨] 과욕

 

얼마 전, 어떤 식사 자리에서 교계 원로 목사님 한 분이 식사 도중 수저를 놓으시더니 그 이후 제공되는 음식을 일절 안 드셨다. 함께 식사하던 분들이 '왜 그만 드십니까?'하고 물으니 "더 이상 먹는 것은 백해무익한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그분의 지론인 즉 몸에 아주 해로운 것이 과식이라는 것이다. 조금 모자란 듯 먹어야지, 배부르게 잘 먹으면 필요 이상의 것이 체내에 들어가 모두 뱃살, 즉 배에 기름만 끼게 된다는 지론이었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 원로의 단호한 결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분은 팔순을 바라보는데 매우 건강하시다. 식욕을 비롯해서 모든 생활에 절제하고 욕심을 버려야 건강해지고 영적으로도 건강해질 수 있다는 말씀이셨다. 사람은 필요한 음식의 120%를 섭취하고 우리가 욕하는 돼지는 80%만 섭취한다고 한다. 올해는 어떤 욕심이든지 좀 절제하며 살면 좋겠다. 그것이 식욕이든, 물질욕이든, 명예욕이든. 성경이 이 원리를 말하고 있고 옛글에도 과유불급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겨자씨] 바로 걷는 인생

 

오래 전 알프스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13일간 방황하다가 구출된 일이 있었는데, 그는 매일 12시간씩 열심히 걸었으나 같은 장소를 6반경에서 계속 돌았을 뿐이었다.

 

사람은 눈을 가리면 똑바로 걷지 못한다. 100m쯤 가면 결국 원을 그리면서 돌게 된다. 이 현상을 윤형방황(輸形彷徨)이라고 한다. 눈을 가리고 가급적 똑바로 걸으려면 약 30보 걸어간 후 멈추었다가 가야 할 방향을 다시 마음에 그려보고 다시 30보를 걷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낮과 밤, 춘하추동을 반복하여 주시는 이유는 인생도 낮이 지나면 반드시 밤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반드시 겨울이 온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교훈하기 위함이다. 새해를 맞으면서 다시 한번 인생 방향을 새롭게 점검해야 할 것이다.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겨자씨] 행복 바이러스

'행복 바이러스'가 있어서 이웃이나 친구가 행복하면 나 자신도 행복해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행복은 일반적인 통념보다 훨씬 전염성이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근거가 없는 병적인 행복감을 의미하는 '다행증'(euphoria)이란 말이 있다. 행복 바이러스는 다행증을 일으킨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행복의 조건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하지만 행복은 나의 것이 아니라 남의 것으로도 얻을 수 있는 전염성이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세계 각국은 '행복전쟁'이 한참이고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행복 바이러스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축복의 바이러스다.

 

올 한 해는 우리 모두가 행복 바이러스를 더 진하고 더 넓게 전염시키는 행복 대장장이가 되자. 행복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국민총행복지수'를 높이는 해가 되게 하자.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겨자씨] 새로운 출발선

 

새해가 되풀이되는 까닭은 새로워지라는 것이요, 생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잊고 산 은혜를 생각하라는 의미로 해석해 본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찾아오는 것은 잃었던 기쁨을 회복하라는 뜻일 듯하다.

 

시간의 신비는 나 자신을 새롭게 하는 데 있다. 돌아보면 새로움은 우리가 늘 모색해온 것이기에 낯설지 않다. 미래의 도화지에 꿈과 소망을 그려온 사람은 새로움이 오히려 친밀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무엇을 기념할 때마다 꿈을 꾸고 결심을 한다. 시간의 마디와 매듭에서 새로운 삶을 다짐하는 것은 다시 출발선을 그리는 일이다. 이제 내일이면 2009년이 시작된다. 새해에는 새로운 각오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길 기원한다. "인생은 '생일부터 오늘까지'. 내가 부르심을 받는 그날. 그날 역시 '오늘'일 것이다."

 

신경하 전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겨자씨] ‘사이넘어

 

서로 오순도순 더불어 살아가는 일은 축복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또 민족의 일원으로 당연히 지녀야 할 애국이요 애족의 길이다. 이것을 '사이(between)'의 삶이라고 하자. 사이의 간격이 멀어지고 사이 사이에 골이 파이면 갈등이 생긴다. 갈등은 상생의 원리와 화해의 정신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한국인의 삶의 터전은 더이상 한국 땅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경을 넘어 세계로 향한다. 뉴욕발 금융위기는 미국을 넘어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을 뒤흔들고 있다. 그런가 하면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인권 보호는 세계화 물결을 타고 북한의 심장부를 두드리고 있다.

 

한국인은 이제 한국을 '넘어(beyond)' 세계인으로 살고 있다. '사이''넘어'의 합창을 아름답게 노래할 때다. 세상에 몸담고 있으나 동시에 세상을 넘어 사는 것이 복음의 진수다. 땅에 살면서 하늘을 품고 살아야 하는 삶이 신앙인의 삶이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겨자씨]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옛날에는 밤길에 맹인이 손에 등불을 들고 다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밤과 낮이 따로 없는 맹인들이 등불을 들고 다니는 이유는 바로 눈 뜬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맹인이 들고 다니던 등불이 꺼지고, 이를 보지 못한 눈 뜬 사람이 맹인과 충돌해 맹인으로부터 꾸중을 듣게 된다. "당신은 등불도 못 보는 맹인인가? 눈도 없느냐?" 맹인의 등불이 꺼졌음을 눈 뜬 사람들이 알려주지 못할 때 꾸중을 듣는 것은 눈 뜬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눈 뜬 사람은 누구인가? 각계각층의 지도자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제 역할을 감당하여 사회를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하면 맹인이 맹인을 인도한다는 엄중한 문책을 듣게 될 것이다.

 

2008년은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여 세계를 구덩이에 빠뜨렸다. 새해에는 눈 뜬 사람이 길을 인도하는 복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겨자씨] 하나님의 나라

 

제자들의 관심은 세상 나라였다. 그들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예수님께 물었다. 하지만 주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통치가 구현되는 '하나님의 나라'였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선포하신 첫 말씀이 하나님 나라였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1:15). 위대한 결단으로 예수를 따랐지만 여전히 마음의 근심과 걱정을 떨치지 못한 제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라고 가르치셨다(6:33).

 

누가는 부활 후의 예수님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십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1:3). 제자들을 떠나시며 당부하신 마지막 말씀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었다(16:15). 고난의 시대, 불확실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구할 것인가다.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지혜를 오늘도 간구해야 할 것이다.

 

정승룡 목사(대전 늘사랑침례교회)

 

[겨자씨] 흑자인생

 

기업에서는 연말을 기점으로 그 해 사업이 흑자인지 적자인지 결산을 한다. 올해는 경제 위기로 많은 기업들이 큰 손실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가계 경제도 어려움이 많지만 쪼들리지 않고 잘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런데 구원받은 백성들의 1년 대차대조표는 재정 결산으로 끝나선 안 된다. 하나님께서 손익을 따지는 장부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이 땅의 은행통장이 아니다. 하늘나라의 통장 잔고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신다(6:1920).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은사를 하나님 역사에 얼마나 많이 사용하고, 하나님께 이득을 남겨 드렸는가(25:20). 올해를 마무리하며 하나님께 보고 드릴 올해의 손익 계산서를 만들어보자.

 

2009년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선물들을 이웃과 더 풍성하게 나누면서 내년 이맘때에는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이 터져나오는 흑자 인생을 만들어보자.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회협의회 총무)

 

[겨자씨] 끊기 위해 오신 주님

 

아기 예수는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 그러나 그 평화는 단순히 조용하고 잠잠하기만 한 그런 평화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화평 대신 검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셨다(10:34). 검의 용도는 끊고 자르는 데 있다. 역사의 연속선을 검으로 끊으셨다. 그로 인해 역사는 BCAD로 나뉘었다. 그는 또 막힌 담을 허물어뜨리셨고, 가려진 휘장을 찢으셨다. 아담 이후 흐르는 죄의 연속선을 검으로 완전히 끊으셨다. 저주도 완전히 끊으셨다. 마치 구약의 여호수아가 흐르는 요단강을 반으로 가르고 약속의 땅에 들어갔듯이, 신약의 여호수아인 예수(여호수아의 희랍어 표기)는 죄의 흐름을 끊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셨다.

 

예수가 오신 곳에는 마땅히 충격이 있다(2:3). 뒤집힘이 있다. 끊김이 있다. 기존 질서의 수동적 유지가 그가 원하던 평화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익숙했던 구습의 단절이 마땅히 따라와야 할 것이다. 이번 성탄에는 진정한 심령의 뒤집힘이 있어야 하리라.

 

강대일 목사 (안양성결교회)

 

[겨자씨] 담대심소

 

담대함은 두려움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담대심소(膽大心小)'란 말도 있는데, 배짱은 크게 가지되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라는 뜻이다. 세상에 걱정과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단 건강한 두려움이냐 병적인 두려움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실패, 소외, 질병, 노쇠, 죽음 같은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통이다. 이런 고통에 어떤 태도를 갖느냐가 우리의 삶을 좌우한다. 병적인 두려움은 더 큰 두려움을 낳지만 건강한 두려움은 고통을 극복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담대하라고 하신다. 두려워 말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굳세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다(41:10). '염려의 시작은 신앙의 끝이다. 그러나 신앙의 시작은 염려의 끝이다.' 조지 뮬러의 말이다. 조지 뮬러는 기독교 역사상 기도 응답을 가장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염려하지 않고 모든 것을 주께 맡기는 기도 그 자체가 응답이다.

 

신경하 전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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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눈물의 기적

 

도저히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우리 교회가 기적적으로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눈물의 기도 덕분이었다. 기도는 기적을 만든다. 20년 동안 침체돼 있던 교회에 부임하던 날부터 1주일 동안 금식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렸다. 주룩주룩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주님도 함께 울고 계셨다.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신'(5:7) 주님은 그때 "네 제단에 눈물이 배일 때 일어나리라"고 응답해 주셨다. 주님은 눈물의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그 후 계속해서 회개와 강청기도의 눈물로 제단을 적시던 중 성령께서는 교회를 일으켜 세우셨다. 330되는 곳에 세워졌던 낡은 흙벽돌 교회당을 9917나 되는 큰 성전과 함께 넓은 주차장으로 바꿔주셨다. 주님은 '눈물의 병'(56:8)에 눈물이 가득 차기를 원하시며 그 눈물을 보고 일하신다(38:5).

 

서재일 목사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겨자씨] 경건의 실천

 

한국 교회는 온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선교 100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갖게 됐고,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보내는 나라가 됐다. 도처에서 한국의 도움을 기다리며, 한국 교회를 배우려고 세계 각지의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있다.

 

한국 교회의 성장 동력은 경건의 실천에 있었다. 새벽기도와 가정예배, 말씀 중심의 사경회, 그리고 말씀을 지키려고 애쓰던 순교적 신앙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경건의 모습들은 안타깝게도 변질되고 있다. 기복적 신앙을 추구하고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세속적 방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교회와 세상의 구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세속화되면 맛을 잃게 된다. 맛을 잃은 소금은 버림을 받고 짓밟히기 마련이다. 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 교회가 경건의 능력을 회복할 때, 우리는 맛을 찾고 온 세상을 비추는 거룩한 빛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덕교 목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겨자씨] 꿀맛

 

아내가 친정에 간 날 점심을 건너뛴 후 저녁을 먹었는데 꿀맛이었다. 식은 밥에 김치 한 조각이 전부였지만 맛났다. 무슨 까닭일까? 첫째, 허기 때문이다. 끼니를 걸렀으므로 배가 고팠다. 배가 부르면 그 어떤 진수성찬도 꿀맛이 나지 않는다. 둘째, 건강 때문이다. 몸이 아프면 입맛부터 떨어진다. 아무리 맛난 음식도 소태같이 쓰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꿀맛인가? 최고의 뷔페 음식 같은 명설교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홍수 속에 마실 물이 없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뚫고 들어오는 말씀은 몇 안 된다. 왜일까? 말씀에 갈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 재미에 배부르니 생명과 진리의 말씀에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또한 영혼이 건강치 못해 말씀의 맛이 쓰다.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기 원하는가? 허기져라. 건강하라.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27:7)

 

김흥규 목사(내리교회)

 

[겨자씨] 무지개

 

우리는 보통 무지개의 색깔을 일곱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영어권에서는 여섯으로, 마야족의 경우는 다섯 가지로 인식한다. 사실 무지개의 색깔은 무수히 많다고 한다. 무지개는 비가 그친 뒤 물방울이 많은 대기에 햇빛이 비칠 때 나타나는 반원 모양의 호이다. 그것은 빛의 굴절에 따라 다양한 색깔로 나타난다. 성경에 나오는 무지개는 노아 홍수 후 더 이상 물의 심판이 없다는 언약의 증표다.

 

흔히 우리에게 무지개는 아름다운 것으로, 더 나아가 희망의 한 상징처럼 인식되어 왔다. 영화 '오스트레일리아'에 나오는 음악에서도 "무지개 너머 어딘가엔그곳은 당신이 꾸는 꿈들이 실현되는 곳이에요"라고 했고, 우리 동요에도 무지개는 희망을 뜻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무지개, 곧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탄식한다. 우리의 삶에 무지개가 뜨면 좋겠다. 밖에 있는 무지개를 찾아 헤맬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 마음속에 스스로 무지개를 띄워 작은 희망을 만들어 가야겠다.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겨자씨] 예수를 바라보자

 

몇년 전 교회를 섬기던 목회자들과 함께 수련회를 갔을 때의 일이다. 저녁 기도회 시간에 부목사 한 사람이 "우리 목회자들이 먼저 거룩하기를 위하여 기도하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는 게 더 거룩해지는 것일까? 기도를 더 많이 해야 하나? 성경을 더 읽어야 하나? 담임목사인 나는 어떻게 하는 게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일까?" 그때 주님께서 마음에 말씀을 주셨다. "혼자 있을 때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 순간 애통한 마음이 들어 울며 기도했다. 나는 그날 비로소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목회자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 혼자 있을 때다. 사람들 앞에서는 거룩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쉽게 타락한다. 우리는 혼자 있을 때 더욱 예수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 은밀한 시간은 죄짓는 시간이 아니라 가장 은혜로운 시간이 될 것이다.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겨자씨] 발을 품는 사랑

 

순교자 손양원 목사님은 세 번 놀라다는 뜻의 '삼경'(三驚)이란 별명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 보는 사람은 목사님의 키가 너무 작아 놀라고, 목소리가 너무 커서 놀라고, 설교를 들으면 너무 힘이 있고 감동이 있어 놀랐다고 한다. 한센병 환자들의 공동체인 애양원을 섬기면서 환자의 고름 나는 발을 빨아줄 만큼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극진했다.

 

손 목사님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식사 때가 되면 항상 밥을 다른 죄수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한다. "나는 몸이 작아 하나님이 적게 먹도록 만들었으니 드세요"라고 하며 밥을 주었던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추운 겨울밤 죄수들은 모포 하나에 의지해서 잠을 청해야 했다. 목사님은 키가 큰 죄수가 모포가 작아서 추워할 때 그 죄수의 발을 자신의 가슴에 품고 잤다고 한다. 추운 겨울, 우리의 마음을 낮출 때 우리가 섬길 일들은 얼마든지 널려 있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겨자씨] 불의 공동체

 

엄동설한이 되면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이는 자리가 있다. 따뜻한 온돌방이다. 냉랭한 인간관계 속에서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 주변에는 늘 사람이 모인다. 교회도 뜨거워야 성도가 모인다. 기도가 뜨겁고, 말씀이 뜨겁고, 찬송이 뜨겁고, 성도 간의 사랑이 뜨거운 불의 공동체가 될 때 사람이 모인다.

 

우리 하나님은 불의 하나님이시며(12:2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불을 붙이러 오셨으며(12:49), 성령님은 불길 같은 모습으로(2:3) 임하셨다. 삼위일체 불의 하나님을 믿는 자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만난 엠마오 길의 제자들처럼 그 가슴이 뜨거워야 한다(24:32). 절대로 성령의 불을 끄지 말아야 하며(살전 5:19), 기도로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왕상 18:24)을 만나야 한다. 불세례(3:11) 없이 교회성장은 없다.

 

서재일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겨자씨] 가정예배

 

17431231, 위대한 부흥사 조지 휫필드가 영국의 소도시 키더민스터를 방문했다. 이 도시는 청교도였던 리처드 백스터가 목회했던 곳으로, 부임 당시 신자가 한 동네에 한 가정 있을까 말까했지만 떠날 땐 믿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로 크게 부흥됐다. 백스터의 부흥운동 비결은 가정예배 활성화에 있었다. 그는 심방을 통해 가장들에게 가정예배를 권함으로써 가정의 경건을 회복하고자 했다. 그 결과 아침 저녁으로 가가호호에서 찬송과 기도, 그리고 성경 읽는 소리가 온 마을에 메아리쳤다.

 

백스터가 떠나고 80년이 지난 뒤 휫필드가 키더민스터를 방문했을 때 여전히 가정예배가 힘 있게 드려지고 있었다. 이에 큰 은혜를 받은 휫필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백스터의 가르침과 사역, 권징의 달콤한 향기들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크게 원기를 회복하게 됐다." 진정한 교회 부흥이 가정예배를 통한 경건 회복에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오덕교 목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겨자씨] 부자유친

 

박기영은 나의 군목 동기. 임관하자마자 우리는 강원도 양구 백두산 부대에 배속됐었다. 헤어진 지 20년도 더 지난 뒤 그와 재회했다. 그의 간증에 눈시울을 적셨다. 누구보다 선하고 성실했기에 중령까지 진급했으나 몇 해 전 간경변증 말기 판정을 받았다. 큰아들 제민이가 자신의 간 3분의 2를 제공해서 간이식을 받았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제민이는 돌이 갓 지난 아기였는데 그토록 대견하게 자랐다니. 어떤 아들은 아버지에게 간을 주겠다고 약속했다가 수술 당일 겁이 나 내빼기도 했다는데, 자랑스러운 제민이.

 

박 목사가 아들 이야기를 할 때 불현듯 예수님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뜻을 위해 십자가 위에 한 목숨을 내놓으신 효자. 박 목사가 제 아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미안하며 사랑스러울까. 박 목사의 아들과 하나님의 아들과 내 아들을 생각하며 그날 밤 나는 많이 울었다. 몇 번이고 부자유친을 되뇌며. "아빠 아버지여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14:36)

 

김흥규 목사(내리교회)

 

[겨자씨] 양보와 타협

 

요즘 세태를 보면서 이솝 우화 중 외나무다리 위의 두 염소 이야기가 생각난다. 우리가 잘 아는 이 우화는 두 마리의 염소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두 염소는 서로 한 발의 양보도 없이 자기가 먼저 다리를 건너겠다고 고집부리며 상대방의 양보를 요구하다가 뿔을 서로 치받으며 싸운다. 결국 두 마리 모두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다리 아래로 떨어진다는 이야기이다.

 

지금 정치권을 보면서 한 치 양보도 없이 그냥 파국을 향해 돌진하는 여야의 모습을 비롯하여 사회 전반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게 된다. 문제는 부끄럽게도 교계 안에도 같은 현상이 있음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좁게는 개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나 한 교단 안에서 교권 쟁탈을 위한 양보와 타협이 없는 투쟁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죄송한 마음이 든다. 성경의 교훈이 생각난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겨자씨] 스스로 속이지 말라

 

내가 어렸을 때, 교회 어른들을 보고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주일 예배 때마다 "말할 수 없는 이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은혜 감사합니다"라고 하시던 장로님이 너무 자주 화를 내는 모습이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그것은 예수님이 자기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믿는다면서 자기 주위에 나쁜 사람들이 참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말 자신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임을 아는 사람은 결코 남을 판단하고 정죄할 수 없다. 세상에 자신보다 더 악질인 죄인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가장 큰 죄는 자기 의(). 도둑질이나 간음 같은 죄는 너무 부끄러운 죄지만 적어도 양심의 가책은 느낀다. 그러나 자기 의에 사로잡힌 사람은 양심의 가책도 없다. 십자가의 도는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새해는 십자가로 더 가까이 나아가 스스로 속이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겨자씨] 부메랑 효과  

 

'부메랑 효과(boomerang effect)'라는 말이 있다. 부메랑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수렵기구로서 던지면 다시 던진 자에게 돌아온다. 부메랑 효과란 바로 자신이 한 어떤 행위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경우를 일컫는다. 이솝이야기에 늙은 사자와 생쥐의 이야기가 있다. 생쥐가 사자에게 잡혀 죽게 되었을 때 생쥐는 살려주면 은혜를 갚겠다고 하여 사자는 생쥐를 살려준다. 어느날 사자가 덫에 걸렸을 때 생쥐가 그물을 갉아서 풀어줬다.

 

성경은 온통 부메랑 이야기로 가득하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주리라"고도 했다. 빈 평안이 그 사람에게 합당하지 않으면 나에게로 되돌아올 것이라고도 했다. 섬김과 베풂은 절대 공짜가 없다. 하나님은 베푸는 자에게 베푸신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겨자씨] 덮는 사랑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늘 통이 넓은 치마가 떠오른다. 어머니는 이 넓은 치마로 12남매의 코를 다 닦아주셨고 숨바꼭질을 하다가도 숨을 곳이 없으면 치마 속에 숨겨주시곤 했다. 어머니는 치마만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 게 아니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의 죄와 허물도, 아버지의 술주정까지도 통이 넓은 치마처럼 넓은 마음으로 덮어주셨다. 바람 잘 날 없는 가정은 어머니의 통이 넓은 치마와 한없이 덮어주는 사랑 덕분에 유지될 수 있었다. 험악한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속죄'라는 말이 '죄를 덮어주시는 주님의 피 사랑'임을 깨달았다. 그 사랑이 영원한 어머니인 하나님 품인 것을 알고 너무나 고마워서 울고 또 울었던 적이 있다.

 

나의 허물에 대해 덮음을 받았으니(32:1)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를 남은 생애에 보답하고(116:12), 이제 남을 덮어줄 일(17:9)만 남았다.

 

서재일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출처: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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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복음없는 교회

 

어떤 유명한 목사님의 장례식장에서 겪은 일이다.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추모사에도 설교 내용에도 '주님'이 없었다. 고인의 생전 업적만 줄줄이 나열될 뿐이었다. 주님이 그를 선택해 믿음과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했다는 얘기는 들을 수 없었다.

 

'고인이 질그릇이라면 그 안에 주님의 보화가 담겨진 덕분에 그의 삶이 그렇게 빛난 것이었을텐데.' 씁쓸한 마음이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목회자들의 설교 가운데서도 종종 예수의 십자가를 비켜갈 때가 적지 않다. 구약의 율법이나 신약 서신의 교훈을 인용해 윤리나 도덕을 강조할 뿐 정작 우리의 영혼을 적시고 살리는 예수의 복음은 없는 것이다. 이것이 곧 타락이며 영적 재앙이다. 또한 마귀가 들어올 틈을 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늘날 기독교 침체의 원인은 외부에 있지 않다. 바로 본질에 충실하지 못한 교회 안에 있다.

 

서재일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겨자씨] 기도

 

아마도 한국교회사에서 정암 박윤선 박사만큼 경건하고 기도에 열정적이었던 분도 드물 것이다. 교수 시절 산에 올라가 기도하다가 수업 시간이 임박해 기도 방석을 끼고 달려오기 일쑤였으며, 때로는 기도하며 걷다가 전봇대에 부딪히기도 했고, 버스에서 내려야 할 곳에서 내리지 못하고 종점까지 갔던 일화들이 많다. 임종에 이르러서도 기도하는 일에 전념했고, 병원에 찾아온 내방객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곤 했다.

 

한번은 필자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볼티모어까지 그분을 모시고 간 적이 있었다. 차로 2시간30분을 달리는 동안 그는 사적인 말씀 없이 오직 기도하는 데만 집중했다. 가끔 중얼거리고, 또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차에서 내린 후 박 목사님은 놀라워하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씀했다. "오 목사! 늙어서 육신이 쇠하면 기도하는 것도 힘들어. 젊었을 때 많이 기도해야 해." 경건은 기도에서 나오며, 기도의 능력은 젊을 때부터 실천함으로써 얻게 된다.

 

오덕교 목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겨자씨] 늙지 않는 신앙

 

우리 교회 정 장로님은 90세 할머니다. 51녀를 잘 기르셔서 아들 넷은 장로, 딸은 사모가 되었다. 내가 예배 인도를 마치고 내려올 때면 꼭 신발을 바로 놓아주신다. 꽤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 1년에 몇 차례씩 자식들로부터 받은 용돈을 모아 꼬깃꼬깃한 봉투에 넣어 내 주머니에 찔러주신다. 작년부터는 약간의 치매 기를 보이더니 1000원을 1만원으로 혼동하시는 것 같다. 웃는 모습이 천생 소녀다. 조금만 포옹을 하고 손을 잡아드려도 수줍어 어쩔 줄을 모른다. 신앙인은 늙어도 아름답다.

 

짐승과 달리 인간은 늙어가도 영적 성숙을 계속한다. 85세의 갈렙이 가장 험준한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했다. 120세의 모세는 눈이 흐리지 않았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 몸은 늙어도 신앙은 늙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 16).

 

김흥규 목사(내리교회)

 

[겨자씨] 삶은 계란

 

유대인은 음식 규례가 까다롭다. 성경에 나오는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의 구별이 있고, 절기마다 먹는 음식의 의미가 있다. 무교절 같은 경우 이스라엘을 여행하면 일주일 내내 누룩 없는 떡을 먹어야 한다. 아무 맛도 없다. 관광객에게는 고역이다.

 

그래도 먹을 만한 것은 삶은 계란이다. 무교절기 중에는 꼭 삶은 계란을 먹는데 그 이유가 있다. 생계란 속은 흐물흐물하나 열을 가해 삶으면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이 삶은 계란의 교훈은 고난(열을 가함)을 받으면 더 단단해(강해짐)진다는 데 있다. 요즘 우리는 여러 가지로 힘들다. 그러나 이런 시련과 고난을 통해 좌절할 것이 아니라 더 의지가 굳어지고, 연단을 통해 더 믿음이 강해지는 삶이 되어야겠다.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겨자씨] 가장 무서운 죄

 

 

성령의 강한 역사로 공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던 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숨기고 살았던 거짓말과 도둑질, 음란과 간음의 죄를 고백하였다. 모두들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배신감을 느낀다"는 비난도 적지 않았다.

 

기독교에서는 전통적으로 7가지 죄를 꼽는데, 첫째가 교만이고 둘째가 질투다. 그리고 분노, 탐심, 탐식, 게으름, 정욕이 이에 포함된다. 이 리스트를 보면 정욕은 맨 마지막이고 가장 먼저 나오는 죄가 교만이다. 교만이 더 무서운 죄라는 것이다.

 

우리는 도둑질, 간음죄는 큰 죄라고 여기지만 교만, 곧 자기 의는 죄로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 의가 무서운 것이다. 가정이 무너지고 교회가 분열되는 이유가 남을 판단하는 자기 의 때문이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그토록 싫어하셨던 바리새인의 죄였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우리 모두 성령께서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보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겨자씨] 신은 없을 것이다

 

옥스퍼드대학교의 대표적 진화생물학자이며 베스트셀러 '만들어진 신'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 교수가 거액을 기부하여 영국 전역을 운행하는 버스 800대에 광고를 부착하였다. '아마도 신은 없을 것이다. 걱정 말고 인생을 즐겨라'(Thhere's probably no God. Now stop worrying and enjoy your life). '아마도'라는 말은 무신론에 대한 불확실성의 증거이다.

 

인본주의자들에게 신이 없다는 사실은 인생을 즐기는 조건이다. 신이 없기 때문에 인생을 즐긴다는 것은 자신들의 죄와 그 죄의 결과가 벌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는 증거다. 단지 신이 없으므로 죄에 대한 인간의 본능을 억지로 감추어보려고 하는 것이다. 지식의 발달과 계몽주의는 인간사에 큰 공헌을 했지만 인본주의와 무신론이라는 서자를 낳았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며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겨자씨] 대를 잇는 복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1:1)로 시작하는 예수님의 족보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요즘은 믿음의 가정에서 자식을 낳아 그 영적 세대를 2, 3대로 이어가는 것도 무척 힘든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려 4000년에 걸쳐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정말 기적처럼 여겨진다.

 

따라서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28:19)는 주님의 말씀 가운데 나타나는 '족속' 중에는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식도 포함돼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아들과 딸, 손자와 손녀의 믿음에도 정성을 들여야 함은 마땅한 일이다. 설 명절에 먹는 떡국이나 가족과 친지간에 오가는 세뱃돈보다 더욱 신경써야 할 일은 자식에게 영생의 떡을 선물하는 일일 것이다. 선교 강대국이었던 미국과 유럽의 교회가 텅텅 비어가는 현실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서재일 목사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겨자씨] 위기극복 리더십

 

리더십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다. 1913년 빌흐잘무르 스테팬슨이 이끄는 캐나다 탐험대가 북극지역 탐험을 떠났고, 1년 뒤 어니스트 섀클턴경이 이끄는 영국의 남극대륙횡단 탐험대가 떠났다. 두 탐험대가 모두 빙벽에 둘러싸여 위기를 만났다. 불행하게도 북극 탐험대는 갈팡질팡하다 결국 많은 승무원들이 죽음을 맞게 되어 실패했다. 그러나 섀클턴이 이끄는 남극 탐험대 인듀어런스호는 동일한 절망적 상황을 만났지만 리더의 탁월한 리더십으로 인해 그 위기를 극복했다.

 

요즘 이 섀클턴의 리더십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교회의 위기나 국가적 위기 극복에 가장 필요한 것은 리더십이다. 지도자 한 사람이 수많은 사람을 구할 수도 있고,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다. 탁월한 지도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다. 지도자의 리더십 중 이런 원리가 있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 항상 또 한번의 기회가 있다".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겨자씨] 앙망하는 기도

 

교회 청년들이 무전여행인 '거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얼굴과 행색은 정말 반거지였다. 그런데 눈빛이 달랐다. 말이 달랐다. 힘이 있었다. 자신들은 몰랐을 것이다.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 같았다. 거지순례 중 겪은 일을 나누는데 이구동성으로 돈 떨어지는 순간부터 기도가 절로 나오더라는 것이다.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비로소 깨달았다고 했다.

 

청년예배 때 그들은 간증하면서 울었고 찬양하면서 울었다. 그동안 예배드리면서 늘 그렇게 능력 있고 충만하지 않았다. 거지순례를 갔다 오더니 이렇게 되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은 정말 새 힘을 얻는 것을 보았다. 거지순례를 다녀온 청년들을 통해 철저히 무소유, 무능력의 정신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진정 능력의 길임을 깨달았다.

 

많이 가진 것이 잘못일 리는 없다.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의지하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을 앙망하는 기도가 안 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겨자씨] 곳간을 열어라

 

우리의 소유는 섬김의 도구일 수도 있고, 욕심의 도구일 수도 있다. 아브라함과 롯의 종들은 소유가 많으므로 함께 할 수 없었고 삼촌과 조카가 헤어졌다. 예수님을 찾아왔던 젊은 관원은 소유가 많으므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떠났다. 소유가 많다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자는 있는 것으로 베푼다.

 

요셉이 총리가 되었을 때 애굽에 7년 동안 풍년이 들었다. 요셉은 7년 동안 곡식을 잘 비축하였고 흉년이 든 7년 동안 그 곳간을 열었다. 그리고 기근에 빠진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눠주었다. 애굽 사람이 아닌 야곱의 가족에게도 곳간을 열었다. 곳간을 여는 지혜와 용기가 모든 사람을 살렸다. 지금은 우리의 곳간을 열 때다. 경제가 어렵고 금융이 위기에 빠져 있을 때 우리의 지갑을 열고 곳간을 열어야 한다. 있는 것으로 베풀면 모든 사람이 함께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국민일보 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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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

가정이 행복하면 많은 문제들이 해소됩니다.

행복한 가정을 위해선 긍정적인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긍정적인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해 행복해하고, 부정적인 사람은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사람과 함께 사는 사람은 더불어 행복을 느끼지만

부정적인 사람과 함께 사는 사람은 덩달아 불행하고 피곤합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늘 안 좋은 것만 봅니다. 그래서 비판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와 성도의 좋은 점은 못 보고 약점을 보고 불평을 합니다.

이런 사람은 불행합니다.

행복한 가정생활,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것을 보는 눈이 있고 좋은 것을 말하는 입술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자신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긍정의 사람입니다.

그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고 했습니다.

바울에게는 육신의 질병이라는 결정적 약점이 있었지만

그런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약함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베푸신 은혜를 바라볼 때

그를 통해 하나님은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모든 일에 대해 긍정적인 눈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행복한 인생, 행복한 가정의 결론은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김성태 목사(삼척 큰빛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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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않을 때 기회는 아직 있다


톨스토이는 사람들이 실패에 대해 크게 네 가지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첫 번째는 실패에 대한 충격으로 술에 취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실의에 빠져 삶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자신의 실패를 원망하고 아예 냉담해지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그 실패를 받아들이고 마음을 더욱 다져가며 시련을 참아내는 것입니다.

 

누가 들어도 실패에 대한 이상적인 대응은 네 번째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스스로가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나

시련의 과정 속에 있을 때 참아내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실제로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에디슨을 비롯해 카네기, 처칠, 링컨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위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공통된 비결은

과거의 실패나 불행에 미련을 갖지 않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것입니다.

그들은 실패에서 성공으로 이끈 아이디어를 찾아내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대학 진학에 실패한 학생이 있습니까.

취업전선에서 여러 번 고배를 마신 분이 있습니까.

아마 사업에 실패한 분도 있을 테고 결혼에 실패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인생 전반이 실패의 연속이라 생각하며 희망을 버린 분도 혹시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오늘 실패 앞에서 포기하지 않을 때 기회는 아직 있습니다.

고경환 목사(순복음원당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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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마음의 창

링컨은 “사람 나이 40이면 자신의 얼굴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얼굴은 자신의 삶의 내용에 따라 만들어진다는 말입니다.

대통령이 된 링컨에게 하루는 한 친구가 어떤 사람을 추천했습니다.

링컨은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는 거절했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에 진실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그러면서 한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부모가 준 얼굴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지만

그 후 40년동안 자신이 살아간 삶의 내용에 따라 얼굴이 새로 만들어진다는 말입니다.

셰익스피어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한 얼굴을 주셨는데 사람들이 악의 얼굴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선하고 천사같고 천진합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그 얼굴이 추해지고 일그러지고 욕심이 가득한 얼굴이 됩니다.

 얼굴은 마음의 창입니다.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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