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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믿음이냐 행함이냐

 

찬송 : ‘구주 예수 의지함이’ 542(340)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갈라디아서 216, 야고보서 217

 

말씀 : 아득한 옛 추억입니다. 교회학교 고등부 시절, ‘믿음이냐’ ‘행함이냐’ ‘바울이냐’ ‘야고보냐하는 주제를 놓고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 섞어가며 밤늦도록 토론하던 일 말입니다. 그때, 우리는 믿음행함을 상호 대립 관계로 보고 양자택일을 강요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바울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으로 평가절하했습니다. 그의 독일어 성경 번역에서 야고보서는 유다서 히브리서 요한계시록과 함께 정경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알고 보면 루터가 종교개혁의 근간으로 삼았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말씀도 4복음서와 히브리서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러한 루터의 입장은 중세 가톨릭의 공로신학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그의 신학적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온전한 믿음을 갖기 위해 우리는 믿음행함’, 그리고 바울야고보가 대립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충적 관계임을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믿음과 행함이 상호 보충적 관계라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우선 바울은 선교사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선교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원 얻는 믿음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이었습니다. 그의 목회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에게 사랑의 행함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바울이 생각하고 있는 믿음과 행함이 야고보가 주장하고 있는 믿음과 행함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믿음은 예수를 믿어 구원 얻는 믿음입니다(2;16). 반면 야고보가 주장하는 믿음은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유일신관을 말합니다(2:19). 또한 바울이 부정하고 있는 행함은 구원을 위한 율법의 행위입니다(2:16).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신자의 삶이 아닙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은 구원을 얻기 위한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의 결과인 사랑의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바울과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 문제에서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랑의 행위는 무의미합니다. 또한 사랑의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은 공허합니다. 믿음과 행함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믿음과 행함은 대립 관계가 아니라 온전한 믿음을 위해 상호 보충적 관계여야 합니다.

 

기도 : 거룩하신 주님, 믿음과 행함이 조화를 이루는 온전한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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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글 / 기도는 힘든 것인가 ?    


누가복음 11장 1∼4절

여러분들은 기도가 어렵고 힘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기도 순서라도 맡으면 부담을 느끼고 예배에 불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성도께선 “목사님 저는 아무개 장로님처럼 은혜롭게 기도를 하지 못합니다.

저 기도시키지 말아주세요”라고 신신당부합니다.

기도가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본문 말씀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주기도문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눅 11:1)라며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눅 11:2)면서 가르침을 주십니다.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데서 시작하는 것임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어린이가 아빠 엄마를 부르는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기도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큰 복입니다.

아빠를 부르듯 ‘아버지여’라고 하나님을 부르라고 가르쳐주십니다.

이것이 기도의 시작이며 핵심입니다.

 

유창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 은혜롭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라고 말씀하십니다.

힘들고 지치고 괴롭고 절망스러우며 어느 누구도 의지할 수 없을 때

‘아버지’라며 간절히 고백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우리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달려오실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기도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은 허례의식이 강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부를 때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일거수일투족을 다 아시며 온 만물을 창조하시고

능치 못함이 없는 하나님이시여…”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세 살짜리가 아버지에게 “능력 많으시고 인격자이시며

훌륭하신 아버지여 과자 하나만 주시옵소서”라고 말한다면 어색하고 부자연스럽습니다.

기도는 어린이가 아버지를 부르듯 자연스럽고 솔직하고 꾸밈없이 나의 마음을 담아 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마르틴 루터의 명상의 시간’이라는 책에서

기도할 때 “무릎을 꿇거나 서서 두 손을 모으고 눈은 하늘을 향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기도의 내용에 대해서는 “당신 개인의 필요와 관심이어야 하는가? 아니다!”라며

하나님의 계명에서부터 시작하라고 합니다.

한때 가톨릭 사제였던 그는 ‘중언부언하는 것’(마 6:7),

다시 말해 뜻 없이 말만 늘어놓거나 쓸데없이 중얼거리며

시간을 채우려는 잘못된 기도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 9절부터 더욱 적극적인 기도 생활을 강조하십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하십니다.

이것은 믿음이 있을 때만 가능한 행동이며 기도의 행동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찾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찾게 하실 것입니다.

두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열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기도하고

늘 응답받아 승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경회 제자들루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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