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4:16~18)

 

고난을 극복하는 세 가지 길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곡의 울음소리를 내고 어머니 배총(배꼽)에게서 떨어져 나올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고난 없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고난은 있습니다. 좋은 일이 있는가 생각하고 보면 그 배후에는 고난이 있고 고난밖에 없는 줄 생각하고 보니 좋은 일도 있고 항상 밤낮이 바뀌는 것처럼 좋은 일과 고난은 바뀌면서 수레바퀴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고난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문제지 고난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다 당하는 것이니까. 고난을 당할 때 우리가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되겠습니까? 고난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걸림돌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난에 걸려서 넘어지는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혹은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고난의 돌인데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면 걸림돌이 되고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면 디딤돌이 되어서 더 나은 길로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오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고난을 다 겪어보았습니다. 고난이 삶을 파멸시킨 일도 있고 고난을 잘 이겨내서 고난 동등 이상 혹은 큰 축복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고난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대개 세 가지 길이 있습니다.



1. 고난에 대한 인본주의적 태도
 첫째로, 고난에 대한 인본주의적인 태도인데 이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고난을 당할 때 가지는 태도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동등 되기 위해서 선악과를 따먹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나 저나 똑같다고 하나님이 홀로 선악과를 구별한 것처럼 저도 홀로 선과 악을 구분하고 살아가겠습니다.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려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와 같이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 되어서 사는 사람입니다. 아무 사람 말도 듣지 않습니다. 자기가 좋고 나쁜 것을 결정한다. 인간의 능력으로 고난과 대결하여 이겨도 상처투성이고 지면 패가망신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신론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 자기가 자기 주인이 된 사람, 이러한 사람은 자기의 능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하다가 패가망신 당하는 사람입니다. 고난을 자기 이외 타인의 탓으로 돌리고 항상 원망, 불평, 분노, 정죄가 따릅니다. 내가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믿지 않고 자기가 주인이 된 사람은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는 것입니다. 왜, 선악과를 따 먹었느냐. 하나님이 지어주신 하와가 먹으라고 하니 내가 따먹었습니다. 그러므로 책임은 내게 있지 않고 하나님이 하와를 만들어서 내게 주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있고 하와가 나를 꾀어서 먹였기 때문에 하와에게 있고 나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하와야! 왜 선악과를 먹었느냐?’ ‘뱀이 나를 꾐으로 먹었습니다.’ 자기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습니다. 마음이 깨어진 사람은 자기를 뒤돌아 보고 자기의 책임을 느끼고 회개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다 돌리는 것입니다. 너 때문에 그렇지 나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너 때문’이 굉장히 힘든 말입니다. 우리는 고난이 다가올 때 그 고난이 나 때문에 다가오지 않았나 깊이 살펴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라고 자기가 아무 일을 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이 나빠서 그렇다고 교만을 부리면 결국 교만으로 말미암아 자기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2. 고난에 대처하는 낮은 신앙의 단계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이 고난을 당할 때 낮은 단계의 신앙이 있고 높은 단계의 신앙이 있는 것입니다. 고난에 대하여 낮은 단계의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고난을 해결하려고 하되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이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일은 내가 해결하겠습니다.’ D. L. 무디 선생이 늘 이야기할 때 그 말 했습니다. 키가 굉장히 크고 몸이 거대한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런데 딸내미를 데리고 얼음을 지치러 가면 딸내미 손을 꽉 잡으면 자꾸 손을 틀어버려요. “내가 걸을 수 있는데 아버지가 왜 자꾸 손을 잡느냐. 내가 걷는다.” “아버지가 붙잡아 주면 좋지 않으냐.” “필요 없다.” 그래서 얼음 위를 걸어가다가 미끄러져서 꽝 엉덩방아를 찧으면 그다음에는 엉엉 웁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손을 잡고서 “봐라! 아버지가 곁에 있어서 잡아 주겠다고 하는데 왜 고집을 부리고 가다가 넘어지느냐. 손 내놔!” 그러면 손가락 하나 딱 내놔요. “이것만 잡으면 돼!” 그래서 손가락 하나를 잡아서 미끄러지니까 또 엉덩방아를 찧습니다. 그래서 상처투성이가 되어야 비로소 그때는 울면서 손을 내놓는데 그러면 아버지가 손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몸통을 안아서 얼음 위를 걸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이 아니고 자기 힘을 의지해서 나가는 사람은 기도는 합니다. “하나님 이 고난에 나를 붙들어 주시고 지켜 주십시오.” 기도는 하면서 맡기는 법은 없습니다. 하나님께 맡기지 않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도움은 받았지 하나님께 맡기지는 않는 것입니다. 전심으로 고난에 대하여 인간적인 힘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주체가 되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니까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도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도우려고 해도 내 뜻대로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하나님 뜻대로 나를 끌어가지 마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을 자기 보조로 삼았지 하나님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고난에 대처하는 낮은 신앙의 단계는 자기 인본주의가 꽉 서서 하나님을 보좌관으로 삼지 하나님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보좌관이 되지 않습니다. 모세가 40년 동안 광야에서 신앙적인 시련을 겪고 깨어졌습니다. 낡은 사막의 잡초 가시넝쿨 안에 불이 활활 붙었을 때 모세가 그 앞에 가니까 그 불길 가운데서 소리가 나서 말하기를 “모세야, 모세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 신발을 벗어라.” 그 말은 뭐냐면 신발은 자기가 신고서서 걸어가는 자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의 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네 중심을 벗어서 하나님께 던지고 의지하라. 자기 신발을 신고서 하나님과 동등하게 같이 서서 대화하려면 하나님이 상대해 주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들은 신발을 신어도 종은 신발을 벗습니다.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자기의 주권을 넘긴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신발을 벗어서 던지니까 그때부터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서 모세를 이끌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내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여리고 평지에 여호수아가 났을 때 한 군대장군이 칼을 뽑고 여호수아 앞에 섰습니다. 여호수아가 “당신은 우리 원수 편입니까? 우리 편입니까?” 장군이 말하기를 “나는 편들러 온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파견되어 나온 하나님의 군대 장관이다. 네 발의 신을 벗어라.” 하나님의 군대 장군이 왔어도 여호수아가 신발을 벗고 자기 주권을 내어 놓았었을 때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모든 정치적인, 군사적인 방법을 말씀해 준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이 전체 다 맡기든지 아니면 전체 여러분이 다 책임지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반쯤 맡기고 반쯤 안 맡기고 하는 엉거주춤한 그러한 생활은 원치 않습니다. 오늘 주님은 여러분에게 와서 말씀할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면 네 신발을 벗어라. 네 주체성, 네 중심의 생각을 벗어서 내게 맡겨라.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내게 맡겨라. 그러면 여러분 스스로 맡기면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 하나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하나님, 내가 할 테니까 와서 도와만 주십시오. 나는 보좌관 하러 오지 않았다. 네 마음대로 하라. 네가 충분히 깨어졌을 때 다시 오마.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깨어지면 신발을 벗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반드시 나쁜 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3. 고난을 극복하는 높은 신앙의 단계
 고난을 극복하는 높은 신앙의 단계를 우리는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섬기고 모든 고난이 올 때 내 인생을 하나님께 내어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물에 뛰어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맡기면 물이 그 사람을 띄워주는 것처럼 자기는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쇠하든지 하나님께 내어 맡겨버립니다. 맡겨버리면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섬기고 모든 고난도 하나님께 맡겨버리자. 편안할 때는 참 아멘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진짜 고난이 다가와서 불길이 타오르는데 내어 맡긴다는 것은 참 힘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택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3백만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홍해가에 왔는데 군인도 없고 배도 없고 빈손 들고 있으면서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맡길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돌아서서 애굽 군대에게 항복할 것이냐. 기로에 서 있습니다. 백성들은 다 모세야, 이곳에서 우리는 전멸 당한다. 돌아서서 애굽에게 항복하고 나가자. 그러나 모세는 서서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자. 오늘 네가 본 애굽 군대를 다시는 안 볼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운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내어 맡긴 것입니다. 엄청난 담력을 가지고 하나님께 내어 맡긴 것입니다. 모세는 정말 자기 자존심을 다 벗어버리고 자기를 의지하는 모든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지식과 재능을 벗어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홍해수를 갈라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 절대 쉽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엄청난 결단을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죽을 각오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각오를 하고 하나님 앞에 인생을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8절에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예수님께서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얼마나 십자가 걸머지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주님은 하나님께 그 잔을 옮겨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거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잔을 받아 마셨습니다. 먼저 죽음을 내놓은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고난당할 때 주님의 도움을 구하면 주님이 우리 자신을 내놓을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9절에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자기가 선한 일을 선택하고 도모하면서 생명을 하나님께 맡겨라. 하나님께서 영혼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맡기는 것은 전적으로 내어 맡기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하나님은 맡은 것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맡은 것을 책임 못 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일단 맡기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한번 여러분 해 보시라고요. 여러분이 어려운 고비에 당했었을 때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세요.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책임을 져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을 극복하는 높은 단계의 신앙에는 항상 고난이 다가오면 마귀가 그 앞에 서서 춤을 추고 야단법석을 하더라도 우리 믿는 사람은 그 고난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조차도 우리에게 유익 되게 하시지 손해되게 안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머리에 발라 잔이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다가오면 우리에게는 고난과 마귀가 보이지만 한 단계 더 멀리 바라보면 하나님이 고난을 이용해서 우리에게 유익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모든 것이 합력하여 좋은 일, 어려운 일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그러므로 고난은 동등 혹은 그 이상의 축복을 반드시 가져오도록 하나님이 섭리하신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크면 큰 만큼 영광도 다가오고 고난이 적으면 적은 만큼 하나님의 은총도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무의미하게 왔다가 지나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고난은 동등 혹은 그 이상의 축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고난이 겉으로 볼 때는 굉장히 손해를 가져오는 것 같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멀리서 바라보면 굉장한 유익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 선생은 고린도후서 12장 7절로 9절에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바울선생이 얼마나 계시를 하나님께로부터 많이 받고 사람으로서 셋째 하늘까지 올라가서 하나님과 대화한 사람입니다. 사람이니까 교만해지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내가 그래도 셋째 하늘까지 올라갔다 온 사람인데 무슨 잔소리냐? 교만해질 수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사탄의 사자를 보내서 가시 채처럼 몸을 찌르게 했습니다. 바울 선생은 몸에 지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굉장히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그 병이 떠나기 위해서 세 번 기도했으니 바울 같은 위대한 신앙인이 세 번 기도 드렸으니 얼마나 깊은 기도를 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무나 내게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네가 교만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가시 채를 보내어서 사탄이 너를 괴롭히므로 네가 교만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이 고난을 보내어서 나를 약하게 만들므로 더욱 하나님께 의지하고 더욱 하나님께 바라보게 해서 하나님이 사용하는 귀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그랬다고 하나님 대답하시므로 고난이 오히려 고맙게 느꼈다고 했습니다. 고난 때문에 내가 더 은혜를 받고 더 큰 능력과 계시가 오는 것이니까 오히려 하나님 더 많은 고난을 주셔도 좋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받는 고난이라면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겸비하게 낮아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려운 고난이 다가오면 반드시 고난이 여러분에게 괴로움만 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길을 가르쳐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무슨 길이냐. 금식기도 해라. 고난이 내게 다가와서 괴로우면 고난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고난 없을 때는 아무 말 해도 소용이 없는데 고난이 다가오면 금식기도 해라. 금식기도를 하다니요? 오산리기도원으로 가라. 그래서 금식기도를 하게 되고 고함을 쳐 하나님께 부르짖기도 하고 헌신적인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편안하면 금식기도하고 기도원에 가서 철야기도하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 좀처럼 없습니다. 고난에 고통을 당하면 고난을 이기기 위해서 그렇게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신령한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이 다가올 때 하나님이 이 고난을 통해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가 그것에 귀를 기울여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 의미 없는 고난은 없습니다. 반드시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고난은 의미가 있습니다. 의미 없는 고난이 여러분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이 다가오면 제일 먼저 생각해 볼 것은 내가 하나님께 불순종해서 징계를 받은 것이 아닌가 그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잘못하면 부모가 꾸짖지 않습니까? 옛날에 우리 어릴 때는 우리 어머니 부지깽이가 징계의 채찍입니다. 들어오라고 해서 부엌 앞에서 부지깽이로 장딴지를 얻어맞은 기억이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할 때 이것은 네가 받아야 될 징계라고 하면 회개하고 우리가 변화돌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8절로 11절에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아버지가 너희들 잘되라고 징계하는데 영의 아버지가 영원히 잘되라고 징계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하나님께서는 훗날에 의롭게 되고 더 평강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인격적으로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채찍을 들어 때리고 몽둥이로 종아리를 때린다는 것입니다. 징계는 우리가 그를 통해서 회개하고 변화받기 위해서 주는 징계라는 것입니다. 징계를 안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학교에 가서 공부할 때도 선생님에게 징계를 받아야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요사이는 학교에서 선생이 징계를 못 한데요. 학생이 선생님에게 막 달려들기 때문에 징계를 못 하는데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이 당연히 징계하면 벌벌 떨고 꿇어앉습니다. 제가 중학교 공부할 때는 중학교에 우리 영어 담당하는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선생님의 이름이 콩코드입니다. 콩코드라는 것은 문장의 시차가 같도록 만드는 것을 콩코드라고 하는데 이만한 대나무 장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교실에 들어와서 숙제 내놓고 콩코드가 맞지 않으면 나오라고 해서 때리는데 대나무 막대기로 때리니 얼마나 아픕니까? 그러니 그 선생님 시간에는 죽도록 외워요. 죽도록... 당장 잊어버릴 지라도 죽도록 외워요. 그래서 그 선생님 앞에서는 통과가 되었어요. 요사이 돌아보면 그 선생님이 대나무로 때렸는데 그때 외운 것 지금도 알아요. 안 잊어버렸어요. 징계는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발전을 할 수 있고 향상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징계로써 어려움을 주실 때는 회개하고 도와달라고 하면 평강의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욥기 5장 17절에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우리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와서 고통당할 때 업신여기지 말고 그 징계를 받아들여서 변화 받기를 구하면 내게 큰 유익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매를 맞을 때 하나님은 회개하라고 때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온전히 다 의롭게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 의만 행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야훼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야훼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 34:18-19) 많은 고난이 있으나 하나님은 그 고난에서 건지기도 하시고 고난을 당하는 이유가 잘못해서 당하면 징계를 내리시고 회개하도록 꾸짖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를 맞을 때 회개를 합니다. 평안할 때 좀처럼 회개하기가 곤란합니다. 고난은 아플 때 회개하고 변화를 받으려고 애를 많이 쓰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 신앙이 자랄 때 더 고난을 주셔서 회개케 하시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으면 자라는 것이 그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고난이 있으면 하나님이 아직까지도 인격적으로 변화 받으라고 회개를 시키는 것이므로 오히려 장성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엘서 2장 13절에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야훼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재앙을 안 내리기 위해서 재앙 오기 전에 변화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비가 와서 언덕이 무너지기 전에 복구하고 수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격적으로 무너지게 된 것을 회개하고 수리해 놓으면 어려움이 다가와도 극복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기 위해서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인내의 훈련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참지 못하면 이기지 못합니다. 어떠한 고난도 참고 어려움도 참고 견디면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공부하는 것이 굉장히 괴로워도 이를 참고 계속해서 노력을 하면 거기에 통달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내의 훈련을 통해서 우리가 고난을 통해서 인내를 가진 인격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3절로 4절에 보면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삶에 참는 마음 이것이 신앙을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참지 못하면 신앙이 온전하지 못하게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당해도 참고 좋을 때도 참고 넘치지 않게 된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것입니다. 인내를 가르쳐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정 참지 못하고 아이고 나 못 견디겠습니다. 나 내려가야 되겠습니다. 그랬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와 버렸으면 우리는 구원을 못 받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다 청산할 때까지 참으셨습니다. 마지막 우리의 빚을 다 갚으셨을 때 내가 다 갚았다. 그리고 주님이 세상을 뜨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갚아진 거예요. 예수님이 인내가 없었으면 중도에 포기하고 나 내려가야 되겠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셨으면 우리는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죄가 다 갚아졌어요. 허물도 다 청산되었어요. 여러분의 질병과 고통도 다 청산되었어요. 저주도 갚았어요. 낭패와 실망도 갚고 죽음과 지옥도 갚았어요. 주께서 다 갚아놓고 난 다음에 내 영혼을 주께 맡기나이다. 청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청산할 수 있는 인내를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서 시련을 겪게 하는 것입니다. 시련을 통해서 여러분 인내가 되면 여러분이 비로소 지역장도 구역장도 장로도 집사도 목사도 책임을 지고 일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책임자는 온전히 구비하여 모자람이 없게 위해서 인내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내 없이 성격이 급한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내하는 자가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신앙이 강하게 되기 위해서는 시련을 겪어야 되는 것입니다. 요사이 소련 소치 땅에서 올림픽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올림픽 때문에 잠을 못 자는 우리 성도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 올림픽 하면 단거리 선수들이 뛰는 것 그렇지 않으면 올림픽 거기에서 춤을 춘다고 말합니까? 뭐라고 말합니까? 그것을 볼 때 얼마나 다리 힘줄이 강한지 몰라요. 그 다리의 힘이 그렇게 붙어야 단거리도 뛰고 장거리도 뛰는 데 그 힘이 하루 만에 붙습니까? 하루 만에 힘이 생기지 않아요. 꾸준하게 열심히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병원에 신체검사 하러 가면 제 담당 의사선생님이 항상 나를 보고 다리에 힘을 실으십시오. 다리에 힘을 기르십시오. 그래서 다리에 힘을 어떻게 기릅니까? 매일 만 보를 걷든지 안 그러면 아령을 들고 세수하고 난 다음 이것을 매일같이 하십시오. 왜 그렇게 합니까? 사람은 다리에서 힘이 생기고 다리에서 힘이 빠집니다. 다리의 근육이 힘이 빠지면 저항력이 없어서 다른 병도 다 걸립니다. 그리고 난 다음 나하고 같이 서서 나를 밀어서 자기가 뒷걸음질 치는지 내가 뒷걸음질 치는지 보자고. 그런데 지금은 자기가 뒷걸음질 치지요. 왜냐하면 아직은 내가 젊은 사람이니까. 그런데 내가 뒷걸음을 치게 되면 곤란하지요. 그러므로 세수할 때 항상 앉았다 일어났다를 항상 30번 하라고 합니다. 30번 하면 다리가 굉장히 힘줄이 서고 힘이 듭니다. 그러나 그 대신 근육이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다리가 튼튼해지면 감기도 안 걸린대요. 모든 저항력이 생겨서 튼튼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신앙도 한가지입니다. 연단을 받아야 돼요. 어려운 일을 당해서 기도와 믿음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연단을 받아야 나중에 어려운 문제도 척척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3절로 4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시련을 통해서 우리가 믿음이 연단을 받게 되면 환난 같은 것 다가와도 능히 이겨낼 수 있고 소망을 가지고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이기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2절로 14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즐거워할 수가 없지요. 시험과 고난이 다가오면 즐거워 안 합니다. 그러나 즐거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고난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우리가 고난을 당해도 예수 이름으로 꾹 참고 이겨나가면 그 영광이 주님 앞에 설 때 상급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마음에 우리가 고난을 참는다는 것은 신앙이 그만큼 자란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조그만 일만 해도 성을 내고 화를 내고 발버둥을 치면 그것은 신앙이 자라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에 연단을 받으면 많은 은구슬, 금구슬 많은 영적인 구술을 마음속에 보배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장에 가서 보면 진주가 있지 않습니까? 진주가 아름다운데 그 파란 색깔이 흰색에 섞여서 있는 것을 보면 굉장히 아름답게 보이는데 진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느냐. 자연적으로 진주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진주는 광물성 보석과는 달리 생명체가 만들어내는 보석인데 진주조개 혀 밑에 모래알을 넣어주면 혀를 갉아 먹으니까 아프잖아요. 그러니까 혀에서 물질이 나와서 그 모래알을 감싸요. 자꾸 감싸고 감싸고 감싸고 감싸니 나중에는 동글동글하고 아름답고 영롱한 진주가 되어서 진주조개 혀 밑에 저렇게 되어서 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보석이에요. 그런데 여러분의 신앙이 진주조개같이 되는 것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볼 때 야! 빛난 진주가 반짝거리는구나. 저것 내가 가지고 사용해야 되겠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여러분이 참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오는 것을 전부 다 참지 않고 변명을 하고 싸우고 원수를 갚고 하면 진주가 될 시간이 없어요. 그러나 고난을 내가 받아들여서 참고 견디면 내 속에서 진주가 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고난을 참는 것보다 더 위대한 신앙은 없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존귀롭고 아름다운 것은 무슨 일이 생기든지 ‘내 탓이요.’라고 하고 내가 깨어지고 내가 참는 것 이것이 보배입니다. 가정생활도 한가지입니다. 남편이 조금만 참으면 아내를 수용해주고 가정에 불화가 없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아내는 남편을 조금만 참고 이해해 주면 변화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고 견딘다는 것, 이것이 가정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절대적인 요건이 되는 것입니다. 깨어지지 않는 사람은 참지 못합니다. 대항합니다. 싸웁니다. 깨어져야 마음속에 진주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진주는 광물성 보석이 아니라 생명체가 만들어내는 보석이므로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오래 깨어지고 참으면 아름다운 진주가 되는 것입니다. 고난으로 인해 고통과 아픔을 겪지만, 그 고난에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인정하고 잘 극복하면 오히려 신앙의 성숙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이 다가오면 고난에 대해서 긍정적인 태도를 취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긍정적인 태도를 취합니까? 고난이 다가오는데 긍정적인 태도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고난이 내게 좋게 해준다고 생각하는 것이 긍정적인 태도인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올 때 일부러 좋은 일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고서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태도라는 것은 많은 고난이 다가오는데 사람들은 고난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울고 가슴을 쳐야 될 곳에 여러분 기도할 때 이 고난조차 하나님이 내게 유익되게 할 줄 믿습니다. 고난을 하나님 통해서 내가 더 나은 내일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고난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인 것입니다. 고난을 당한 것이 유익이 된다는 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 기름을 부어 잔이 넘치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인내하고 참으면 반드시 우리에게 좋은 일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한 이태(두 해) 동안에 저는 50년의 목회생활을 해오는 중에 가장 어려운 고난을 겪었습니다. 시련을 겪고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만 제가 여태까지 신앙해 온 중에 가장 하나님이 제게 유익된 날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에 많은 고통이 다가오고 내가 변명을 하고 싶고 사람이니까 대항하고 싶고 복수를 하고 싶고 여러 가지 착잡한 잘못된 생각들이 마음에 많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회개할 수 있고 성령의 변화를 받을 수 있고 그리고 진주조개가 되는 것을 바라볼 수도 있고 좋은 일이 많았었습니다. 제가 고난을 당할 동안에 우리 성도 여러분들께서 저를 위해서 많이 기도해 주신 것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저를 사람으로 만들고 주의 종으로 만들어 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 배운 것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오늘이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주의 나라에 갈 것인데 지위도 명예도 권세도 돈도 건강 이외에는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길에서 조그마한 일도 하나님께서 다 좋게 만들어 주실 것이니 이 시험과 환난도 제게 크게 좋게 만들어 줄 줄 믿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혼자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당회장으로 들어온 이영훈 목사 좋은 사람입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보고 길러 온 사람인데 성격이 착하고 좋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자기 혼자 힘으로 안 돼요. 여러분이 기도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많이 해주시고 또 선배 된 제가 끌어줘야 되는 것입니다. 독불장군은 없습니다. 여러분께서 우리 당회장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제가 선배로서 잘 끌어줘서 훌륭한 주의 종이 되고 한국을 세계에 나타내는 일꾼이 되게 만들어 주십시다. 시편 119편 71절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고난은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면 유익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로마서 8장 18절에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고난은 반드시 그 배후에 영광을 주는 것입니다. 영광은 고난보다 견줄 수 없이 큰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국무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비관론자는 매번 기회가 찾아와도 고난을 본다. 그러나 낙관론자는 매번 고난이 찾아와도 기회를 본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고난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면 고난이 오히려 유익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일이 다가오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춤추고 즐거워하고 고난이 다가오면 하나님께 엎드려서 주님이시여 이 고난이 좋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나쁘게 될 것을 믿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고난이 좋게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는 기쁨이 될 줄 믿습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이를 받아서 좋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통해서 점점 육신의 세계가 멀어지고 천국이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오면 육신의 모든 것이 허무하기 짝이 없거든요. 하루아침에 재산 다 날아갈 수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벌어 놓은 것 다 놓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가지고 있는 것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영원한 세계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이므로 고난은 육신의 세계를 이기고 천국을 마음속에 깊이 모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로 18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겉사람이 고통으로 찌그러지고 낡아지면 속사람이 더 새로워지고 생기발랄하게 되는 것은 그만큼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을 사모하기 때문에 변화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이 지극이 크고 중한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게 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보이는 세상 것은 잠시 있으면 다 지나가고 안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영원히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 5:10)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직접 우리를 온전하게 만드시고 굳건하게 만드시고 강하게 만드시고 견고하게 만드셔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좋은 일은 좋아서 좋고 나쁜 일은 좋게 만들어 줄 것이니 좋습니다. 이것이 긍정적인 태도인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좋은 것은 좋아서 좋고 나쁜 것은 좋게 만들어 줄 것이니 좋다. 그러므로 감사와 찬양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크게 기뻐하시고 여러분에게 상을 주실 것입니다.



고난은 피할 수 없으나 고난을 대하는 태도는 여러 가지 단계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보았습니다. 옳은 태도를 가지면 고난은 크게 유익된 훈련이 되지만 잘못된 태도를 가지면 심신의 깊은 상처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감사로 약으로 변화시키든지 불평으로 독으로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난이 좋은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긍정적인 태도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고난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크고 작은 고난은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디딤돌이 되기도 하기 위해서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 고난을 통해서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면 하나님이 같이 일해 주셔서 그 고난을 통해서 영혼이 더 잘되고 더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원망, 불평, 탄식을 하면 더 나빠지고 더 고약해지고 더 고난이 거세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태도가 우리의 내일을 변화시키는 것인데 여러분은 하나님이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지 옆에서 보고 계시고 도와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고난은 좋습니다. 좋은 것을 가져오기 위해서 인격적으로 연단해 주시고 징계해 주시고 강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고난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을 통해서 좋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은 좋은 것입니다. 좋은 것은 더 좋은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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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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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고린도후서 5:16~17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나는 나의 자화상을 본다” 그것을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죄와 허물을 벗어버리고 질병과 고통의 고침을 받고 축복 받고 형통하고 부활 천국의 백성이 된 나의 자화상을 생각하고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간구 한다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그런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우리 마음속에 죄와 허물을 벗어버리고 질병과 고통과 괴로움을 정복하고 축복받고 형통하고 부활 천국의 백성이 된 나의 자화상을 끊임없이 생각해야 됩니다.


오늘날 불행한 자화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특히 부모님에게 사랑 받지 못하고 자란 청소년들은 삐뚤어진 자화상을 가지고 평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아이의 성장 발달과 자화상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이를 뒷받침해 주는 흥미로운 연구가 있습니다.


미국 UCLA 연구팀이 엄마의 사랑을 꾸준히 받은 3세 아이와 부모에게 버림을 받고 사랑받지 못한 3세 아이의 뇌를 CT로 촬영하여 두 사진을 비교 분석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엄마에게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의 뇌는 크고 잘 발달된 반면,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의 뇌는 작고 검은 색깔을 띠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연구팀의 주장에 의하면, 뇌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 아이는 마약 중독이나 폭력 등 각종 범죄와 연관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또 정신적 질병이나 각종 다른 질병에도 더 쉽게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합니다. 요즘 깨어진 가정이 급격히 늘어가고 그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병든 자화상을 가지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1. 옛 사람과 그의 자화상


우리는 옛사람과 그의 자화상을 벗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믿기 전에 사람과 믿기 전에 가지고 있던 자화상을 마음속에 가지고 그것을 늘 바라보고 있습니다. 죄와 허물의 노예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고 죄책과 정죄의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병약하고 고통스런 자화상이 또 있습니다. 나는 항상 병들고 연약하다. 나는 못한다. 안돼! 부정적인 자화상인 것입니다. 가난하고 저주받은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을 해도 안돼. 풍성하질 못해. 나는 항상 돈이 부족해. 항상 삶에 여유가 없어. 자화상을 부정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8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마음속에 부정적인 자화상으로 돋아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자화상이 아름다운 향기로운 꽃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시넝쿨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종국에 가서는 죽어서 천당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지만 천당 갈 자화상이 없다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의 값은 사망으로 사망의 음부에 시달리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2. 잘못된 바라봄의 법칙


자화상이 잘못되면 그 자화상을 바라보는 그 사람의 생애가 잘못되게 되는 것입니다. 잘못된 바라봄의 법칙을 가지게 되면 정말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부정적인 자화상을 항상 바라보고 불안과 낙심과 좌절하고 탄식과 슬픈 말을 하면 그 모습이 생활에 실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큰 낭패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명의 부정적인 보고를 한 정탐꾼의 그 자화상을 보십시오.


민수기 13장 31절로 33절에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오라고 모세가 보냈는데 그들이 40일 40야를 가나안땅을 다니면서 본 것을 보고하는 것은 완전히 절망적인 보고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본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 메뚜기 자화상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보고를 받은 백성들이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야훼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민 14:2~3) 면서 공개적으로 하나님께 저항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인데 불신앙도 들음에서 나며 적그리스도의 말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28절로 29절에 보면 하나님 말씀하시기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사람들만 우리말을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사람들이 말하는 말을 듣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네가 말하기 좋아하는 그대로 만들어 주겠다. 항상 우리가 나는 못살겠다. 나는 안 된다. 나는 병들었다. 나는 패배한다. 그렇게 말하면 하나님이 내가 네 말을 다 듣고 있으니까 네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주마. 왜 우리 집안은 이 모양이냐. 왜 나의 일생은 늘 슬픈 일만 생기느냐. 그것을 여러분 우리말을 통해서 걸러내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말은 굉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을 입 밖으로 내놓으면 그 말이 에너지를 생산해서 말하는 그대로 되게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너에게 행하겠다고 했으니 우리 정말로 조심해야 돼요. 여호수아와 갈렙은 열두 정탐꾼과 같이 갔으나 보고하는 보고가 완전히 긍정적이었습니다.


민수기 14장 6절로 9절에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야훼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야훼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굉장히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과연 가보니까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더라. 여러분 땅이 젖과 꿀이 흐르도록 비옥하면 얼마나 좋은 땅입니까? 아주 용기와 힘을 주는 보고를 했는데 백성들이 그 보고를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사람들이 돌을 들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쳐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긍정적인 보고 보다도 부정적인 보고를 좋아합니다. 잘된다는 것보다도 잘 안 된다는 것을 더 말하기 좋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려면 힘을 쓰고 애를 써서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꿈꾸고 긍정적으로 믿고 긍정적으로 말하고 말하고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부부 관계를 연구한 워싱턴 대학의 존 가트맨(John Gottman) 박사는 안정된 결혼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대화가 부정적인 대화의 다섯 배가 되어야 된다는 연구발표를 했습니다. 부부간에 한 지붕 밑에 살면서 남편이 부정적인 말을 하든 아내가 부정적인 말을 하든 한마디 하면 아내가 한마디 부정적인 말을 하면 남편은 다섯 마디 긍정적인 말을 해야 그것이 상쇄가 된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부정적인 말을 하면 아내가 거기에 반대되는 긍정적인 말을 다섯 배나 해야 부정적인 힘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부정적인 말을 한 번 했다면 최소한 긍정적인 말을 다섯 번 이상해야 가정에 평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긍정을 1로 하면 부정을 5로 가트맨이 비유로 따지는데 긍정적인 것은 한번밖에 없고 부정적인 것은 다섯이나 있는데 1대 5의 비율을 고치지 아니하면 그 가정은 올바르게 서지 못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긍정적인 말을 한마디 하는데 부정적인 말은 25번 하면 그 가정은 무너지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뭐 특별한 조사 없이 부부가 이혼할 확률은 긍정적인 말 한마디에 부정적인 말 25번 하면 그대로 이혼에 돌입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도 긍정적인 말을 사용할 때 화목하지 긍정적인 말을 사용하지 아니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바버라 프레드릭슨 교수는 번창하고 있는 사업체 20개와 현상유지를 하고 있는 기업 20개,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 20개를 대상으로, 그곳 회사원들의 ‘말의 긍정성과 부정성’을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매우 놀라웠습니다. 각 기업의 회사원들이 긍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말을 사용하는 비율이 3대 1보다 높은 기업들은 번창하고, 3대 1보다 낮은 기업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회사의 직원들이 잘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3명이고 안된다고 하는 사람이 1명이면 그러나 그것이 거꾸로 되어서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3명이고 그 회사는 망하는 길로 걸어 들어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가정이든 기업이든 긍정적인 말을 사용할 때 잘되고 부정적인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의 수가 적어도 서로 반가워서 손을 잡고 아이고 오래간만이다. 잘 계세요? 건강하지요? 저번 주일에 봤는데 뭘 건강하기는 건강해? 그러나 서로 만나면 긍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손잡고 흔들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안부를 묻고 그렇게 하면 그 교회는 됩니다.


긍정적인 것은 하나님이 그 배후에 있고 부정적인 것은 마귀가 배후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도적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요 인자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풍성히 얻게 하려고 왔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말을 하면 그 배후에 주님께서 꼭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못 한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죽는다. 나는 패한다. 그런 말을 하면 그 말 뒤에 마귀는 웃으면서 잘한다고 칭찬해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가정이든 기업이든 긍정적인 말을 사용할 때 잘되고 번창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 종교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삶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이 돼요. 예수 믿기 전의 사람하고는 세상이 다 달라지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라는 유대인의 학자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과 대화한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냥 종교적인 사람이 되어서 하늘나라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야 된다. 거듭난다는 말은 아노덴라는 헬라어를 사용했는데 아노덴이라는 것은 위에서 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래에서 난 사람은 어머니 몸을 통해서 나지 않습니까? 똑같이 아노덴인데 하늘나라 백성이 되려면 위에서부터 나야 된다. 하나님이 어린아기 낳듯 낳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종교적인 훈련을 받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머니가 자기가 낳은 자식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여러분을 낳았으니 하나님이 여러분을 뜨겁게 사랑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그 말을 듣자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거듭나라는 말 자체를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는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니고데모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것처럼 또 어떻게 태어나느냐.


그때 예수님께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된다. 물은 회개를 말하고 성령은 하나님의 창조적인 영 아니십니까? 우리가 회개하면 성령이 오셔서 태어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드리고 입술로 시인하면 태어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아무리 믿는다고 해도 입으로 긍정적으로 시인하지 아니하면 중생하지 못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다. 입으로 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믿으면 의로운 사람이라고 지적을 해 주지만 구원받았다고 하는 사람의 말은 해주지 않습니다. 구원은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았다. 나 구원 받았네. 너 구원 받았네. 우리 구원 받았네. 노래처럼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구원받았어요.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입 딱 다물고 나는 몰라~ 그러면 모르는 지옥에 들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4장 17절로 18절에 보면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해야 생겨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아브라함이 별들을 바라보고 자기 후손이 그처럼 많겠다고 믿으니까 하나님이 의롭게 여겼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별들처럼 자식이 많다는 것을 마음속에는 믿고 있었으나 자식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언제 자식이 생겼느냐. 입술의 말을 바꿨을 때... 네 이름이 아브람인데 많은 자식의 조상으로 아브라함으로 그리고 네 아내는 사래였는데 여주로 사라, 많은 자식의 여주로 이름을 바꿔라.


제가 해외선교를 하는데 교회는 서울에 와서 돌봐야 되겠고 선교는 해외 나가서 해야 되는데 하도 바쁘고 토요일날 서울에 와서 주일날 예배하고 주일날 저녁이나 월요일날 아침에 출발하고 그것이 가까운데 같으면 몰라도 아프리카에서 비행기 타고 와서 여기 주일에 와서 예배 보고 주일 저녁에 또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그러한 생활을 하다가 제가 내 팔자가 이럴 수는 없는데 너무 괴로워서 못 견디니 나도 이름을 바꿔야 되겠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그 아내 사래를 사라로 바꾼 것처럼 나는 만성천자 다윗의 이름을 빌려 가지고서 David, yonggi cho! 그렇게 불렀습니다.


다윗이 편안한 생활을 했다고 생각하고 보니까 사울에게 쫓겨다니기를 말로 다할 수 없이 고생을 하면서 쫓겨 다녔어요. 그처럼 제가 쫓기는 인생생활을 사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요. 권세와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가보다. 에라 이름 하나 보태자 바울을 보탰습니다. 그 다음 보니까 바울은 다윗보다 더 많은 고생을 했어요.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David, paul yonggi cho! 이름이 왜 이렇게 긴지 나도 잊어버리고 내 이름을 잘 모릅니다.


요사이도 세계 여러곳에 가면 세계 사람들이 내 이름을 몰라서 혼돈할 때가 많습니다. 날 소개할 때 David, Cho! Yes! Paul, Cho! Yes! Yonggi-Cho! Okay. 그래서 나를 두고서 한국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가 David, Cho라는 목사를 잘 안다. 다른 사람이 Paul, Cho 말이지? 아니 Paul, Cho 말고 Yonggi-Cho 말이지? 아주 혼돈이 되게 된 것입니다. 입술의 고백을 올바르게 하면 입술의 고백을 따라서 하나님의 성령이 창조적인 역사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 가운데 늘 운행하는데 여러분이 기도하고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 있으면 성령이 곧장 역사하는 것입니다. 입의 말로 묶이고 입의 말로 사로잡히기 때문에 입술에 말을 하도록 성령이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고 찬송하고 성령이 충만하고 있을 때 하나님 말씀을 입으로 고백하면 성령이 대번에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십니다. 그때 하나님께 빛이 있으라. 순식간에 빛이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도 우리가 찬송하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면 성령이 와서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그 운행하시는 성령님 앞에서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입술의 고백이 그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말했는데 우리의 자화상은 갈보리 십자가를 통해서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것을 여러분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갈보리 산 언덕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그분이 예수님이 매달리신 것입니까? 여러분이 매달리신 것입니까? 여러분 예수님은 자신 때문에 매달린 것이 아니라 누구 때문에 매달리신 것입니까? 나 때문에 여러분 때문에 예수님이 매달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그 십자가에 달려있는 여러분 자신을 봐야 됩니다. 십자가에 매달려서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을 바라보고 내가 예수님을 통해서 죄값을 지불하고 허물을 청산하기 위해서 저렇게 매달렸구나. 내가 병에서 고침받기 위해서 예수님 등이 갈기갈기 찢어지듯이 채찍에 맞은 것은 내가 예수님 통해서 채찍에 맞았구나. 저렇게 못 박혀 매달려 있는 예수님은 나를 대신해서 나를 위해서 매달렸기 때문에 내가 저주에서 벗어나고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저렇게 매달렸구나. 예수님이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고 죽은 것은 내가 죽은 것이요 그가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은 내가 부활한 것이다. 이것은 진실로 이대로 된 것이고 여러분이 바라보고 믿고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을 통해서 깨닫고 바라보고 그리고 믿고 말하면 그것이 실제로 여러분 생활 속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용서와 의의 자화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저분이 바로 나에게 용서와 의를 주신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저기에 못 박혔다고 여러분이 봐야 되는 것입니다. 용서와 의의 자화상을 보아야 되겠고 거룩함과 성령충만의 자화상을 보아야 되겠고 심신을 치료받는 건강한 자화상,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자화상, 부활과 영생과 천국의 자화상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옛사람은 청산되어 버리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 산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내가 이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제 마귀가 여러분을 보더라도 예수 사람으로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보통 사람이 아니라 예수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한 것을 저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 것도 하리니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예수님과 하나같이 살며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도 할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것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 삼위일체 하나님이 한결 같이 소원하는 바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은 잘된다.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내가 잘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범사에 잘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저주가 사라지고 아브라함의 복이 임하였으니 내가 잘된다. 내가 강건하기를 원하는데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질병을 다 청산하고 건강하게 되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걸머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예수 믿는 신앙이라는 것은 나를 예수님과 분리시켜 놓고 생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리 내 승리, 예수 천국 내 천국. 그리스도와 여러분을 완전히 한 묶음으로 묶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면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몸 찢고 피 흘려 이룩한 모든 것은 다 여러분 위한 것이므로 여러분이 그 모습을 옷 입고 여러분 스스로를 보게 될 때 그렇게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화상을 올바르게 보아야 승리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우리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 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들은 다 이와 같으니라. 바람같이 성령은 임하여서 우리 가운데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에 가자 아버지께 구해서 성령이 오순절날 임하셔서 여러분 속에 들어와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여러분이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하며 보혜사 성령님 이끌어 달라고 하면 성령은 여러분의 생각을 통해서 여러분의 꿈을 통해서 여러분의 믿음을 통해서 여러분의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여러분 가운데 역사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성령님은 하나가 되어서 역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로 18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영원은 무한한 과거와 무한한 미래를 합쳤을 때 영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하나님이 같이 계신 여러분이 고아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3절에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이 된 것을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게 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이 내주한 사람이라고 또 성경에 말씀한 것입니다. 성령충만은 예수 충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첫째 보혜사요, 성령은 다른 보혜사. 예수님 똑같은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질그릇 같은 우리 몸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7~9).


질그릇은 여러분, 이 세상에서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흙으로 버무려서 만든 그릇인데 이 질그릇인 우리가 왜 귀중하냐! 그릇 자체가 값이 나가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릇 속에 담아 놓은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알면 깜짝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무엇이 들어있기에 중요한지 들어 보십시오.


「관계 DNA」의 저자, 게리 스몰리 박사가 미국의 애리조나주에서 세미나를 주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수백 명의 청중들 앞에서 열심히 강연을 하다가 갑자기 테이블 위의 낡은 바이올린 하나를 집어 들고 “이 바이올린의 가치가 얼마나 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청중들은 기껏해야 몇 십 달러 갈 것입니다. 다 낡은 바이올린입니다. 몇 십 달러밖에 안될 것입니다. 그런데 스몰리 박사가 바이올린에 새겨진 문구를 읽어주자 모두의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이 바이올린은요~ 1723년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유명한 악기 제조인이 만든 바이올린으로써 그가 만든 것은 오늘날 굉장히 값이 나가는 것인데 스몰리 박사가 바이올린을 청중석에 만져 보라면서 첫 번째 줄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넘겨주자, 그는 마치 귀한 보배를 받은 것처럼... 사람들이 다 낡아서 상처투성이인 바이올린을 왜 저렇게 모시고 다니느냐? 그 바이올린을 만든 사람이 하도 유명한 사람이니까 몇십억 가치가 있는 바이올린이거든요. 아무리 낡았어도 내용이 그렇게 하니까 호가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값은 얼마나 될까요? 천정 모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너무 얕잡아 보면 안 돼요. 여러분은 예수님이 만드신 분인데 값이 얼마나 고급입니까? 그러면 여러분 너무 낮게 자기를 취급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써 고상한 분으로 스스로를 고상하게 여기고 말도 고상하게 하고 생활도 고상하게 하고 꿈도 고상하게 꾸면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장인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작품이며,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신 사람들인 것입니다. 게다가 ‘너는 내 것이라’고 하나님의 소유임을 표시하기 위해 성령의 인, 즉 성령의 도장까지 찍으신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중 삼중으로 하나님 소유물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보통 귀한 분이 아닙니다.


아주 오래 전 저를 찾아와 편지 한 통을 내놓던 부형님이 생각납니다. 제가 서대문에서 목회를 할 때 한 부형님이 내 보기에는 잘 생겼습니다. 옷도 깨끗하게 입고... 그런데 편지 한통을 주면서 설명할 필요 없이 읽어 보고 답장을 해 주십시오. 그리고 가 버렸어요. 그분이 주신 편지를 호기심이 나서 빨리 펴서 봤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교회를 왔다 갔다 하면서 소외된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교회는 형식적으로 왔다 갔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하나님이 돌볼 수 없다. 나는 세상을 따라 타락한 사람이고 변화되지 못한 사람이다. 의로운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나 같은 사람은 사랑을 받을 수 없다.’ 그러한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는 이판저판 사판이다. 교회와도 지옥 갈 것이고 교회 안 와도 지옥 갈 것이니까 교회를 나오지 않는다고... 그런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편지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뭐라고 답장을 쓸까요? 기도하고 난 다음 답장을 이렇게 썼습니다. “당신이 잘못 안 것이 있습니다. 의로운 사람 위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왔다면 십자가 걸머질 필요가 없습니다. 왜, 세상 사람들이 의로운데 죄인이 없는데 왜 십자가를 걸머져야 되는 것입니까? 부모가 잘 사는 자식이 아니라 실패하고 헐벗고 굶주리는 자식의 빚을 갚아주는 것처럼, 예수님이 오신 것은 의로운 사람을 도와주려고 온 것이 아니라 당신 같은 죄인을 도와주려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를 걸머졌지 의로운 사람은 십자가 걸머질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날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 다음 편지가 왔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어요. “나같이 못난 놈은 하나님이 버린 줄 알았는데 이렇게 못난 놈을 찾아오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다. 목사님 편지를 받고 난 다음 내 인생이 완전히 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구만리장천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시고 매일 나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맞았습니다. 하나님은 구만리장천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은 죄인인 것을 깨닫자 구원받은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내가 무슨 죄가 있어요? 나는 죄인 아닙니다. 자기가 죄인이 아니니까 용서해 줄 의인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스스로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것을 알면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이 여러분들에게 필요하고 여러분을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쓰고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렸을 때 영원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한두 가지 지은 죄만 담당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다음에 여러분이 지을 제사가 없어요. 주님은 한번 제사로 여러분을 온전케 하사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결론>


그러므로 우리의 자화상은 빛과 희망과 기쁨과 감사가 가득한 여러분의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예수 십자가를 통해서 죄가 용서함 받고 허물이 씻음을 받고 성령께서 영원히 와서 같이 계시며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시므로 여러분을 질병에서 건져 주시고 오늘 내 설교를 들은 여러분 다 백살을 사십시오. 아멘! 그 다음에 우리는 십자가를 쳐다볼 때 나는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저주와 가난을 다 십자가에 대신 짊어지고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자화상을 바라보고 나는 저 사람이라고 확실히 인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저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매일 자화상을 바라보고 사는데 자기 자화상이 뚜렷하고 보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고 살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저는 고생은 많이 했지만 David, Paul, Yonggi-Cho로 이름 짓고 그것을 바라보고 온 결과에 다윗과 같이 축복도 받고 바울과 같이 축복도 받고 조용기와 같이 축복도 받고 이름 세 이름을 가졌더니만 세 운명이 다 내게 찾아온 것 같아요. 우리가 마음에 생각하는 것이 입술로 고백을 하면 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에 여러분 생각과 꿈을 여러분이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 속에 생각을 다스리고 그 생각이 이루어진 꿈을 꾸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많은 변화가 여러분에게 다가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은 그냥 신앙이 아닙니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는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는 항상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여러분 생각이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못났다. 나는 안된다. 나는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자화상을 절대로 가지지 마시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긍정적인 자화상이 주어졌다는 것을 알고 용서와 의, 거룩함과 성결함, 치료와 건강,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 영생복락의 천국이 여러분 것이라는 것을 마음속에 생각하고 보고 믿고 말하는 여러분 되십시오. 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영광을 체험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빛과 희망과 기쁨과 감사의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새로운 피조물이 됨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말하고 노래하십시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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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피조물  (0) 2017.04.01
고난을 극복하는 길  (0) 2017.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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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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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기도문 ♡ 건강한생활 ♡offering parayer

 

 

능력의 하나님 아버지!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는 튼튼한 신체적 기능을 주시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허락해 주시며,

항상 주님과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지켜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시간에 저회의 영혼과 육신, 시간과 소유물 전체를 주님께 드립니다.

저희들의 정성을 기쁘게 받으시고, 저희들로 하여금 생활 속에서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지속할 수 있도록 은총을 내려 주옵소서.

이로 인하여 저희들의 삶이 풍족하게 영글어서 어찌할 수 없어 기쁨을 토하는 석류알과 같이

풍성한 기쁨의 삶이 되도록 인도하옵소서.

 

주님 앞에 드려진 모든 것은, 벳새다 들녘에서 어린 소년에 의하여 드려진 오병이어와 같이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그 기적이 주님의 사업에 긴요하게 사용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저희들이 항상 기쁜 생활, 쉬지 않는 성찰,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로 인하여 풍성한 삶을 영위하도록 인도하옵소서.

그리하여 다만 내 뒤에 있는 것을 잊고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면서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뿐이라고 말하는 바울의 고백이 되길 원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에 예민하고 온순하게 응답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이와 같은 소망을 지니고 정성껏 준비한 예물을 바칩니다.

기뻐 받아 주옵소서,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일평생 충성할 수 있도록 은총을 내려주옵소서.

우리에게 회개와 결단을 촉구하시며 하나님께로 향하여 서기를 기다리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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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기도문 ♡ 헌신생활 ♡offering parayer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생사화복을 주간하시며 지금도 살아게신 하나님 아버지!

온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잘 다스리고 지키라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귀한 말씀을 먹이시어 우리의 영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고 윤택케 하시오니 감사드립니다.

생명의 말씀을 흔자만 받아 먹을 것이 아니라

이웃들에게도 나눌 줄 아는 마음을 주옵소서.

한 주간의 삶을 통해 구원받은 자의 기쁨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구별하여 준비한 예물을 드립니다.

작은 것을 작다 아니하시고, 큰 것을 크다 아니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살피시는 줄 믿습니다.

구원받은 은총에 감사하여 정성과 신앙의 헌신생활을 결단하며 드리오니

하늘 문을 열으시어 받아 주옵소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이 주님 것이오나,

그 중에 작은 것을 바칩니다.

십의 구 까지라도 주님 사업 위하여 바칠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모여진 예물들이 주의 사업을 위해 쓰여지는 곳곳마다 영광이 나타나길 원하옵니다.

바쳐진 손길들을 기억하시어 그 손길과 그 가정들이 생명력 있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물질에 대한 청지기 사명을 잘 감당케하시어 힘있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물질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몸을 함께 얹어 봉헌합니다.

이 모든 것 감사드리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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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기도문 ♡ 생명의양식 ♡offering parayer

 

 

오늘도 주님의 은총을 입은 저희들이 주님앞에 나와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올만한 공로도 없고 자격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이처럼 불러주셔서 나아왔사오니 그저

감격스러운 것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오늘 하나님의 귀한 종 김애남목사님을 통해서 귀한 말씀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모두가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이요 생명의 양식으로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 만물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아름다운 산천초목을 주셨습니다. 오곡백과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쓰는 것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더구나 세상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선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우리 인간에게 육신을 입으시고 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위해 일하시고 복음전하시고

나중에는 십자가까지 지시므로 우리에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주님은 죄인된 우리를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 은혜 이 사랑을 무엇으로 다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우리는 이 놀랍고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무엇으로 보답할까 하는 마음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물질 증에 얼마를 드립니다.

아버지의 것을 아버지께 드리는 것 뿐입니다.

우리 마음을 보시는 주님, 우리의 정성을 받으시고

 

 이 헌금이 사용되는 곳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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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기도문 ♡ 축복의손길 ♡offering parayer

 

 

자비롭고 인자하시고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 귀한 남전도 헌신예배를 허락하시고 김애남목사님 말씀을 통해 큰 은혜 받게하시니 감사드립 

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시절을 쫓아 적당한 물질을 허락하셔서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오늘 이 시간 저희들의 부족한 손을 통해 귀한 물질을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담겨져 있는 이 예물을 기뻐받아 주옵시고 늘 축복의 물줄기가 마르지 않게 하옵소서 

바치는 손길을 축복하셔서 저들의 가정과 사업장이 날로 더욱 번창하게 하옵소서 

야베스의 축복을 허락하사 저들의 지경이 나날이 넓어지게 하옵소서! 

 

마음은 있으나 물질이 없어서 바치지 못한 자에게는 물질의 축복을 허락하여 주옵시고, 믿음이 약하여 바치지 

못한 자에게는 바칠 수 있는 믿음을 허락 하옵소서!

이 예물이 쓰여지는 곳곳마다 하나님나라의 확장이 일어나게 하옵시고 주님의 영광만 온전히 드러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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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기도문 ♡주님의 영광♡offering parayer

 

 

우리의 힘이 되시고 방패가 되시며, 믿는 자들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오후 찬양예배를 남선교회 회원들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헌신을 다짐하는 헌신예배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저희 남선교회 회원 모두 하나님의 일들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건강을 지켜주시고 기쁜 마음으로 믿음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많은 복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인생의 후반부가 더욱 뜻있고 값있게 장식되는 복을 주시고 후배들에게도 모범과 덕을 보일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갈렙이 노익장하여 가나안땅 헤브론 산지 정복에 앞장섰듯이 저희가 건강하게 하나님의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은총을 내려주시옵소서.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게 하시고 기도에 힘씀으로 말씀과 더욱 가까워지며 에녹처럼 하나님과 항상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날들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심정을 가지고 정성껏 예물을 드린 손길마다 30, 60, 100배의 결실이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고 이 예물이 쓰여 지는 곳곳마다 주님의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고 주님의 영광만이 온전히 드러나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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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찬양대 대표기도 ♡  paryers for church choirs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하신 주님,

 

먹보다 더 검은 저희의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하는 성가대로 헌신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찬양이 레바논의 영광과 샤론의 아름다움을 실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찬양이 되게 하옵소서.

 

지휘자와 반주자, 성가대원이 하나 되어 가사 한 절 한 절 신앙 고백이 되게 하시고 마음 깊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성가대원 각자의 생활 가운데서도 늘 감사와 찬양이 넘치게 하시고, 말씀과 기도에도 힘쓰는 성가대원들이 되게 하옵소서.

 

성가대를 이끌어가는 지휘자와 반주자에게 더욱 큰 믿음과 능력을 주시고 모든 대원들이 한 마음으로 찬양하게 하시고 늘 찬양의 기쁨이 넘치게 하옵소서.

 

 

돌아가는 발걸음도 지켜주시고 다음 주도 더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목소리 높여 찬양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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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기도문 ♡기쁨과평안♡offering parayer

 

 

 

 

우리가 약할 때 강함을 주시고 낙심될 때 용기를 주시며 두려워할 때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저희 구역식구들이 오늘은 주님이 사랑하시는 이 가정에서 2월 마지막주 구역예배를 드리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가정에 필요한 은총을 내려 주시고 이 가정의 모든 일들을 주께서 인도하시며 살펴주셔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항상 지켜 주시오며 우리 구역과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시는 권사님을 더욱 큰 은혜로 위로하여주시고

모든 기도의 제목에 속히 응답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권사님의 남은 생애가 오직 하나님만을 위한 삶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더욱 건강하시고 경건하게 하셔서 독수리 날개치며 올라감 같이 권사님의 믿음과 건강과 용기가 용솟음치게 하여주시옵소서.

 

가족을 위해, 교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기도드릴 때 피곤치 않게 하여주시고 매일매일이 기쁨과 평안이 넘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정석학원이 나날이 발전해 가도록 이끌어주시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귀하게 쓰임받은 큰 학원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김용한집사님도 선한길로 인도하여주시고 성민이의 앞날도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주시옵소서.

 

믿음과 정성으로 예물을 올리오니 이 예물이 쓰여지는 곳곳마다 주님의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고 주님의 영광만이 온전히 드러나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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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대 대표기도 ♡  paryers for church choirs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찬양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고, 부끄러운 저희들이지만 먹보다 더 검은 저희의 죄를 사하시어 주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그 입술을 정케 하사 주님을 찬양하는 새 노래, 구원의 노래를 부르는 성가대로 헌신하도록 허락하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호흡이 있을 때까지 찬양하라고하신 주님! 우리의 찬양이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아름다운 신앙고백이 되게 하시고 샤론의 아름다움을 실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찬양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또한 듣는 이들의 영혼을 감동하며 큰 은혜 받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반주와 지휘로 성가대를 이끄는 성가대장님을 기억하시어 축복하여주시고 더 뛰어난 재능과 지혜와 건강을 주시어 귀한 직분 감당하는데 어려움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대원들에게도 크신 은총 내려주셔서 찬양의 일로 주님께 봉사하며 헌신하는데 부족함 없는 조건들을 허락하시고 각자의 생활 가운데서도 늘 감사와 찬양이 넘치게 하시고, 말씀과 기도에도 힘쓰는 성가대원들이 되게 하옵소서.

 

돌아가는 발걸음도 지켜주시고 다음 주도 더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하나님이 주신 크신 은혜를 목소리 높여 찬양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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