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의 자녀들을 성인으로 훈련시키기

 

한국 사회에서 성인으로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되는 것은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19세 전후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성인으로 간주된다. 대표적으로 그들은 선거권을 갖게 되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게 된다. 한국 교회는 어떨까? 놀라웁게도 한국 교회는 교회법상 15세부터 성인으로 간주한다. 입교식은 유아세례를 받은 이가 정식으로 교회의 정식 멤버로 등록되는 예식이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법상으로는 한국 사회보다 훨씬 진보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실제 교회 생활 속에서 그들은 전혀 성인으로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아니 훈련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개혁교회에서 입교식은 "신앙 고백"(confession of faith)라고 불리운다. 원래 이 예식의 기원은 견신례(confirmation)에 있다. 동방교회는 이것을 "기름부음" (Chrismation)이라고 불렀고 대개의 경우 유아 세례 직후에 시행한 반면, 서방교회는 일정한 성인이 된 후에 교리문답의 과정을 거쳐 이 예식을 시행하였다. 서방교회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개혁교회는 이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카톨릭에서 이 예식을 7가지 성례 중 하나로 보는 반면, 개혁 교회에서는 이 견해를 부정하였다.

 

개혁교회가 입교를 성례로 거부하였다고 해서 이 예식을 소홀이 생각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개혁교회의 부모들은 아이가 성년이 되면(보통 고등학교 2학년) 입교를 위한 목사가 인도하는 교리문답 교육에 1주일에 한 번씩 참여시킨다. 교육이 끝나면 당회에서 심사하여 교인으로 받을 것을 결정하고 오는 주일날 예배 시간에 입교식을 한다. 여기까지는 우리 한국교회와 매우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한국 교회는 이것이 매우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반면, 개혁교회에서는 철저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좀 독특한 것은 입교식을 하는 시간에 목사는 당회에 제출된 개인의 신앙고백서를 읽는다는 것이었다. 그 속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그 학생의 진실한 고백이 담겨져 있다. 그 학생들은 좌석 제일 앞에 앉는데 이어지는 성찬식에서 가장 먼저 포도주와 잔을 분배 받는다. 예배가 끝나고 나면 목사와 장로들이 가장 먼저 와서 온교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축하의 악수를 나눈다. 그들이 교회의 정식 회원이 되는 순간이다.

 

개혁교회에서 이렇게 입교식이 끝나면 정말로 교인이 된다. 그것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그 학생들이 공동의회에 참석하는 것이다. 공동회의는 보통 주중 저녁에 실시되는데, 아버지(내가 다녔던 교회에서는 여성에게는 투표권이 없으며 공동의회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자기 자녀들을 데리고 그 자리에 참석하게 한다. 보통 자녀들은 아버지 옆에 앉는다. 공동의회는 물론 매우 질서정연하게(decently) 이루어진다. 예를 하나들면, 공동의회는 회의실에서 실시되었는데, 1인용 의자가 8개씩(중간에 통로를 남기고) 배열되어 있었고,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착석을 하였다. 따라서 몇명이 참석해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갓 입교한 학생들은 개혁교회의 정치를 자연스럽게 배운다.

 

한 번은 노회에 참석한 일이 있는데, 놀란 것 중의 하나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수업시간 중 시간을 내어 방청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학생들은 이 교단에서 운영하는 기독교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다. 학생들은 자기 노트에 다음 시간에 발표할 내용을 메모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보고 배움으로써 책임있는 성년이 되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런 훈련들을 어려서부터 받아서 인지는 모르지만, 개혁교회의 고등학생들은 대부분의 경우 (덩치도 크지만)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정말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나는 한국교회의 정서와 큰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공동의회에 잘 참석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의 경우에는 겉으로는 참석하라고 광고는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참가하는 것을 막는 분위기이다. 솔직히 회의문화가 천박한 경우가 많아서 아이들의 참석을 가급적 막는 분위기이고 이것은 아이들에게 교회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겨주게 된다.

 

우리가 이런 좋은 개혁교회의 전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어른들의 뼈를 깎는 자성의 모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보범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어른들은 (나의 세대도 마찬가지) 제대로 된 교회 정치의 모습을 본적이 없다. 인간들은 원래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모르면, 겸손히 성경과 교회의 전통 속에서 참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보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가 이 땅에서 개혁교회를 참된 모습을 이루기 위해서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겸손하게 자신들의 무식을 인정하고 성경에서 참된 개혁교회의 원리를 연구하고 때로는 협력하고 연구하여 온 성도들이 함께 훈련을 받는 길 외에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에게 최선을 다하여 책임있는 성인으로 훈련시키는 것이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고 여기에 개혁교회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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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독교 초등학교 세우기

 

 

내가 아는 한, 한국에서 기독교 교육에 대한 논의는 첫 출발부터 잘못되었다. 특히 기독교 대학 설립 동역회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 학문 연구회는 그 논의를 대부분 기독교 대학에 집중시켰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생각해 보자. , , 고에 대한 교육 없이 대학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마찬가지로 기독교 초, , 고에 대한 기독교 교육은 기초조차 놓여지지 않았는데, 기독대학의 설립을 논의하는 것이 타당할까? 설사 그 학교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그 학교가 기독교 대학으로써 오래 견딜 수 있을까? 단적으로 말한다면, 미국에서 기독교 대학이 그나마 성공할 수 있었던 가능성은 바로 전국에 무수히 산재해 있는 기독교 초, , 고등학교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신대학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현재의 상황을 보고 판단해 보았을 때, 지금의 어려움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고 난 이후라고 본다. 우리는 이제 보다 미래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고신대학이 급변하는 교육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생각하기에 앞으로 우리가 고신대를 진정으로 기독교학교로 남기기 위해서는 전교단적으로 기독교 초등학교 설립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랐다. 그 시골에는 피아노가 있는 곳이 학교와 교회 단 두곳이었다. 교회는 학교 보다 훨씬 재미있고 즐거운 곳이었다. 대학 1학년 때 농활 시절만해도 시골에서 여름성경학교를 개최하면 많은 아이들이 자동적으로 몰려 들었다. 하지만 4학년 쯤 되었을 때는 시골에서조차 학원이나 학교의 보충수업 때문에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지금은 더 하리라 생각한다. 더구나 현대의 컴퓨터, 비디오, 그리고 텔레비젼은 아이들을 마음을 전적으로 사로잡고 있고 그들의 삶의 방식이 되어버렸다.

 

결국 그 어린이들을 다시 "재미없는" 교회당으로 되돌리는 것은 교회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효과적인 대안은 기독교학교를 세워서 교회와 학교를 연결시키는 것이다. , 학교에서도 이들이 지속적으로 성경을 배우고 기독교적인 가치관과 도덕을 배움으로 세속적인 사회와 문화에 물들지 않도록 키우는 것이다. 그러면 현실적으로 얼마나 실현가능한가라는 질문이 던져진다. 이곳에서의 실제적 경험과 교육 전문가와의 토론 속에서 내린 결론은 부모들의 조금의 관심 그리고 믿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조금의 관심이라고 말한 것은 한국의 평균 부모들이 아이들에 대한 관심보다 조금 높은 것을 말한다. , 지금도 여전히 아이들에게 많은 사 교육비를 지출하는 데 그 정도의 관심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교육의 문제는 믿음의 문제라고 말한 것은 적어도 기독교 교육을 위해서는 세속적 관심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믿음의 결단을 요청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 자녀만 잘 키우면 된다는 생각에서 우리 모두 아이들 잘키우자는 생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일류 대학을 들어가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들을 키우실 것이다는 믿음도 필요하다(하나님께서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키우신다는 확실한 믿음이 필요하다).

 

기독교 학교에 대한 편견

 

1.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교육법 때문에 기독교 초등학교가 어렵다고 한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틀린 말이기도 하다. 교육법은 많이 고쳐져야 하지만, 그때 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우리들의 결단만 있다면, 한국의 교육법은 기독교 교육을 위해서 아주 좋은 법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한국에는 검정고시라는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를 잘 활용하면,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을 굳이 학교에 보내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기독교 교육을 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학벌과 지연으로 이루어진 한국의 "패거리" 문화에서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인데, 앞에서 말했듯이 이것은 정말 믿음의 문제이다. 결국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기독교 교육을 시킬 수 있는 것이다.

 

2. 학교가 클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학교라고 하면, 보통 1000명은 넘는 학교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학교는 작을 수록 좋은 것이다. 나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는 유치원에서 중학교까지 있는 데 총원이 60명 미만이다. 1-3학년이 같이 수업을 하기도 하지만, 교육에 큰 지장은 없다. 아마 이정도의 규모이면, 한국에서 왠만한 교회 (200-300)는 얼마든지 기독교 학교를 운영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재정문제

 

재정문제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확실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재정문제는 학교의 규모와 직결된다. 학교가 100명 미만이라면 그렇게 많은 예산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예산의 상당부분은 교사들의 인건비가 될 것이다. 이것은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1) 은퇴하신 선생님을 교장선생님으로 초빙: 신실하신 교사들 중에 은퇴하고 나서도 교사로 섬기고 싶은 분들이 많은 것이다. 더구나 한국 교육에서 정말 기독교 교육을 꿈꾸었지만 현실에 적용시키지 못한 분들이라면 이런 초빙에 기꺼이 응하리라 생각한다. 이 분들은 연금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굳이 많은 월급을 주지 않아도 부담이 없을 것이다.

 

2) 교육 선교사 초빙. 이곳 미국의 개혁교회에 요청하면, 기독교 교사들을 선교사로 파송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기독 초등학교 운영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에 이들의 조언은 매우 유용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어린이들에게 최고 수준의 영어 교육까지 시킬 수 있다.

 

3) 보조 교사들의 활용. 요즘 대분분의 어머니들은 적어도 대학 교육을 다 받았을 것이다. 그들 중에 교육에 관심이 있고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면, 보조 교사로 봉사시켜서 교사들의 수업 부담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4) 위탁교육: 요즘 교회라면 성도 중에 피아노와 같은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1명 정도는 될 것이다. 악기 교육은 그들에게 저렴하게 위탁 교육을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정기적으로 공원이나 체육관, 수영장에 가서 아이들에게 체육 교육을 시킬 수도 있고 컴퓨터는 학원에서 위탁 교육을 시킬 수도 있다.

 

5) 유산 남기지 않기: 기독교 학교의 재정은 수업료와 교회의 지원이 될 것이다. 교회에 교육관이 있다면, 장소만 지원하는 것으로 기독교 교육에 큰 지원이 될 것이다. 가장 큰 금액을 조달할 수 있는 방법은 기부금과 유산의 기증이 될 것이다. 이것은 결국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어떻게 믿는가에 따라 달려 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특히 성도가 세상을 떠날 때 적용되는 말씀일 것이다. 이곳 개혁교회에는 적지않은 재정이 유산을 통해서 조달되고 있다. 기독교 교육은 특히 물질에 대해서 성도들이 어떤 태도를 가지는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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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학교 / 교회를 섬기는 교인들이 가져야 할 자세.

 

 

교회라는 조직은 부족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 교회를 통해서 일하시고 계신다. 그러므로 청지기들은 하나님이 주신 일터가 교회인 줄 믿고 그 맡겨 주신 교회에서 충성하여야 한다.

 

 충성을 하기 전에 먼저 교회가 어떠한 곳이며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무엇을 교회라고 합니까? 하나님을 믿는 무리, 회중, 교인들의 공동체를 말합니다.그러므로 A라는 교회가 교회당도 없이 어느 가정에서 예배를 드린다 할지라도 교회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청지기들은 교회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무리, 즉 공동체라는 생각을 확실히 가져야 한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데 있다. 교회가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은 예배입이다. 예배가 거룩하고 은혜가 충만하기 위해서 온 교회는 힘써야 한다. 예배를 통해서 교회의 생명력이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충성하는 청지기

 

고전 4:1-2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다.

주인이 관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직 충성이다. 충성하지 않는 청지기, 놀고먹는 청지기는 얼마나 보기 싫은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일꾼으로 세운 청지기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충성이다.

 

 

우리는 충성을 하되 충성의 원칙을 몇 가지로 생각해 봐야 한다.

 

 

(1).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

눅 19:17 "주인이 이르데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 하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큰 달란트, 큰 직분을 맡기신다. 왜냐하면 작은 일에 충성하지 못하는 사람은 큰일을 맡겨도 충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젊은 청년이 위대한 선교사 로버트 모리손(R. Morrison) 박사를 돕기 위하여 중국에 가기를 원했다. 그 때 선교회에서는 청년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선교사로서는 적합지 않다. 모리손 박사의 일꾼으로 갈 생각이 있다면 우리는 당신을 보낼 수 있다.’ 라고 했다. 보통 청년 같으면 ‘선교사로 지원한 사람을 잡부 취급을 하다니, 선교회가 사람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가?’ 라고 하면서 화를 내고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 청년은 ‘예, 좋습니다. 선교사의 자격이 못 된다면 심부름꾼으로 가겠습니다. 저는 나무를 팰 수도 있고, 물도 기를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한 후 중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그는 후에 중국 선교사 중 가장 뛰어난 이가 되었는데 그 분이 바로 `밀른(milne)박사인 것이다. 남이 칭찬하고 목사님이나 당회가 알아주면 열심히 충성하고 알아주지 않으면 충성을 멈추는 자세는 사람을 위한 충성이다.

 

 

(2). 은혜라는 심정으로 충성해야 한다.

우리가 충성을 할 때에 가장 금해야 할 일은 무슨 대가를 바라고 충성하는 것이다. 충성이나 헌금을 하는 것이 더 큰 복을 받기 위함이라면 그 목적이 순수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께 받은바 은혜를 갚으려는 사랑의 빚진 자세로 해야 한다. 그 때에 감격이 있고 새 힘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로 충성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와 상급을 아끼지 않으실 것이다.

 

 

「채필근 목사의 예화집」이런 예화가 소개되고 있다.

어느 일꾼들이 이웃 동네에 있는 부잣집에 가서 며칠 품을 팔았다. 그리고 품삯을 다 받고 내일이면 떠나는 날 밤이 되었다. 모두들 들뜬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부자 영감이 난데없이 모두를 깨우더니 한다는 소리가 ‘여보게들, 급히 쓸 일이 있으니 노끈 좀 꼬아 주게’ 라는 것이었다. 모두가 불평하기를 ‘아니, 인색한 영감 같으니, 모두에게 품삯을 다 준 다음에 이러 잡일을 시키다니’ 하면서 하는 둥 마는 둥 마지못해 노끈을 꼬았으나, 어느 일꾼은 정성껏 꼬았다. 다른 일꾼들은 ‘자네 이 집 사위가 되려고 그렇게 충성하는가?’ 라고 비웃었다. 이튿날 아침에 부자 영감이 큰 그릇에 엽전을 가득 담아 가지고 오더니 그 동안 너무나 수고했다고 하면서 각자 꼰 노끈에 엽전을 꾀어 가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게을렀던 일꾼들은 가슴에 치며 후회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자기 일처럼 정성껏 노끈을 꼬았던 일꾼은 품삯보다 더 많은 액수의 돈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3). 성령의 은사를 따라 충성해야 한다.

롬 12:4-5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라 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교회라는 몸을 주시고 각각 지체에게 성령을 따라 은사를 주셨다. 어느 분은 가르치는 은사를 어느 분은 예언의 은사를, 어느 분은 섬기는 은사를, 어느 분은 권위의 은사를, 어느 분은 다스리는 은사를, 어느 분은 긍휼의 은사를 주셨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 직분자들은 자기의 능력이나 자기의 지혜로 하지 말고 성령이 주시는 능력을 다라 충성하여야 한다. 배드로와 제자들은 오순절날 성령을 받기 전에 열심히 충성한다고 했지만, 예수님이 십자가 에 돌아가실 때는 모든 제자들이 도망갔고 예수님의 수제자이던 베드로마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비겁쟁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오순절날 성령을 받은 후에는 어떤 반대나 어떠한 박해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담대히 충성하는 자가 되었다.

 

행 4:18-21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관원들이 백성을 인하여 저희를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러라” 했다.

 

 

성령을 따라 일하지 않고 인간의 열심으로나 인간의 주관대로 일하다 보면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열매를 교회 앞에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갈 5:I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아무리 인품이 좋고 지식이 뛰어난 직분자 라도 예외일 수는 없다.

 

 

『 무디가 주일학교 교사로 일하고 싶었으나 그가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 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는 주님을 위해서 너무나 일하고 싶은 나머지 성령의 능력을 달라고 열심히 기도하던 중, 어느 날 거리를 걷다가 기도하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해서 친구 집에 들어가 기도를 시작했는데, 기도의 문이 터지더니 마침내 그에게 성령의 불이 임하는 것을 체험했다. 나중에는 그 불이 너무나 뜨거워서 그만 달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나님은 그러한 무식한 무디를 세계적인 부흥사로 사용하사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도록 역사 하셨던 것이다.

 

(4). 섬기는 자세로 충성해야 한다.

예수님은 마 20:28에서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은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고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서로 섬기려고 하는 자세를 가질 때 교회다운 교회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직분자들에게 권고하기를.

벧전 5: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

롬 12:1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고 했다.

 

또한 예수님은 큰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권고하시기를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 20:26)라 했다.

 

(5).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

청지기들은 교회를 관리하고 여러 가지로 봉사할 일들이 주어진다. 주차장 관리, 안내와 헌금위원, 식당 봉사, 자모실 관리, 교회학교, 성가대, 청소와 정돈 등등의 일들이 제직들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맡은 일에 봉사할 때 월권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어느 분은 손, 어느 분은 발, 어느 분은 눈, 어느 분은 입이라는 지체의 역할을 다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손의 역할을 받은 사람은 손의 일만 잘하면 되지, 자기 일을 제대로 안하면서 발을 보고 이러쿵저러쿵 간섭이나 비판하는 자세는 올바르지 못하다. 특히 성경에서는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그러한 강조를 많이 하고 있다.

 

고전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 했다.

롬 12:6 에서도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라 했다.

성령을 주신 분은 성령이시지, 교회도 당회도 아닙니다.

 

(6). 전도로 충성해야 한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영혼구원이었다.

요 3:17-18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는 것이니라”고 했다.

 

또한 승천하시기 전에도 제자들에게 유언으로,

마 28:10-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고 말씀하셨고,

성령의 구원을 받는 목적도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고 하면서 전도의 사명을 주셨다.

그래서 초대교인들은 전도하는 일에 힘썼다.

행 5: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예수님의 지체인 우리도 전도하여 영혼 구원하는 것을 최대의 과업으로 알아야 마땅하다. 특히 우리 청지기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먼저 전도하는 일로 충성하여야 한다. 전도하지 않는 청지기들은 열매가 없는 포도나무처럼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7). 기도로 충성해야 한다.

청지기들의 충성직 중에는 기도도 포함되어 있다. 깨어서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 할 의무가 있다. 교회의 일이라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기도의 뒷받침이 안 될 때에는 사탄의 역사가 틈을 탈 수가 있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은 많은 곳에서 중보기도를 요청하고 있다.

롬 I5: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라 했고,

엡 6: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라 했다.

 

 

나이가 연로하신 청지지들 중에는 나는 힘도 없고 돈도 없고 지혜도 없으므로 충성하기가 힘들다고 낙심을 하곤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연로하신 청지기들일수록 기도의 충성자가 되어야 한다. 기도의 거룩한 손을 높이 들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출 i7장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지나갈 때 아말렉 족속을 만나서 르비딤이라는 지역에서 전쟁을 하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진기한 장면이 나온다. 모세는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지팡이를 높이 들고 있고 여호수아의 군대는 전쟁터에서 싸우게 되는데 모세가 손을 들면 여호수아의 군대가 이기고 모세가 팔에 힘이 없어 손을 내리면 여호수아 군대가 아무리 고군분투해도 지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연로하신 청지기들은 모든 충성직을 젊은이들에게 맡기고 저들을 위해 거룩한 손을 들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때 젊은 충성자들의 모든 사역들이 사탄들이 사탄과의 전투에서 승리의 전투를 거두게 될 것이 분명하다.

 

청지기들이여, 맡은 자들의 구할 것은 충성이니, 예배와 맡은 일에 충성하라. 헌금과 전도로 충성하라. 무엇보다도 기도로 충성함으로 온 교회가 모든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8) 청지기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의 청지기는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성경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도 청지기 사상입니다.

마24: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 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종들 가운데 주인의 집과 재산을 관리하도록 세운 자가 바로 청지기인 것이다.

 

청지기는 결코 주인이 아니다. 주인의 가정 업무와 사업과 재산을 위탁받아 주인의 뜻을 따라서 감독하고 주인의 대리자로서 관리하는 종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로 하나님의 집인 교회, 또는 하나님의 사업과 재산을 맡아서 일하는 사람인 것이다. 우리들이 모든 것은 전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 성경의 사상이다. (시 95:5) “바다가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고 했다. 이러한 하나님의 것들을 지금 우리에게 위탁하시고 관리하라고 명하신 것이다. 잘 관리한다는 것은 맡아서 간직한다는 아주 소극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것을 잘 활용하여 이득을 남긴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마 25:14-30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달란트 비유가 나온다. 주인은 먼 타국으로 떠나면서 세 종에게 각각 그 능력에 따라 한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다른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그리고 도 다른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다. 그런데 다섯 달란트나 두달란트를 맡은 자는 그 받은 것으로 바로 가서 장사하여 이득을 남기므로 주인으로부터 후에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받는 자가 되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그냥 땅에 묻어 둔 채 보관만 하였다가 후에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라는 책망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것들, 특히 받은 직분을 잘 관리해야 하겠다. 이것은 다만 하나님께로 받은 모든 것을 간직한다는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라, 장사꾼이 장사하여 이익을 남기는 것처럼 받은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더 많은 열매 더 많은 달란트를 남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막스 베버의 저서 [기독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의하면 서구 문명이 오늘날처럼 우뚝 서게 된 원동력이 기독교의 소명감에 따른 직업정신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청지기 사명』을 다하기 위해 맡은 바 자기 직분을 다할 때, 기술과 자본이 축적되고 서구 자본주의의 발달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서구 기독교인들은 모든 직업을 하나님이 주신 줄 믿었다. 그래서 천직이라고 했다. 자기가 구두직공이든, 청소원이든, 상인이든, 학자나 의사이든 그 직업을 귀하게 여겼다. 결코 직업의 빈부격차를 따지지 않았다.

 

 

18세기 초 영국의 유명한 건축가 크리스토퍼 우렌경이 성바울의 대성전을 건립하게 되었다. 한번은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에 크리스토퍼 우렌경은 평복을 입고 공사 현장을 혼자서 시찰하게 되었다. 여기저기를 돌아보는 중에 석수들이 일하는 곳으로 가서 한 석수에게 묻기를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라고 하자, 그 석수는 아무런 표정 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6자 길이 3자 폭의 돌기둥을 깎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우렌경은 다른 석수에게 똑같이 질문하자, 그 석수는 아니꼽다는 눈초리로 힐끗 쳐다보더니 하는 말이 “입에 풀칠하기 위해 하루종일 이 짓을 합니다.” 라고 투덜대었다. 우렌경은 또 다른 곳에 가서 어느 석수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자, 그 석수는 웃는 낯으로 낮 모르는 신사를 바라보면서 “선생님, 보시는 대로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우렌경의 지휘 밑에서 성바울의 성전을 짓는데 동참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아마, 이 석수는 우렌경은 할 수 있는 한까지 많은 일을 맡겼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무슨 직업을 가졌든지 천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기독교 정신에 어긋난다.또한 청지기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대해서 반드시 결산하는 날이 온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마 25:14-30 달란트 비유에 보면 "오래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 새” 라고 했다. 그 결과 다섯 달란트나 받은 자는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하면서 칭찬과 아울러 배나 더 큰 직책을 받았으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말하기를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라고 하면서 받은 그대로 내어 놓았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자를 책망하기를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고 한 뒤에 옆에 있는 자들에게 명하기를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고 했다.

 

 

그렇다. 하나님은 아주 공정하신 분으로 청지기에게 맡기신 대로 반드시 결산하시는 분이다. 맡겨 주신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어리석은 부자처럼 자기의 사역을 위해서 먹고 마시면서 책임을 게을리 한 자에게는 책망과 형벌을 반드시 주시는 분이시다.

 

 

히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 했다. 지금은 죄를 지어도 회개만 하면 용서받을 길이 잇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백보좌 심판대에 앉으시는 날은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직분자들은 다음 성경구절을 언제나 명심하여야 한다.

 

계 20:11-15 “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지금은 자다가 깰 때요.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할 때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해서 말씀하신 후 결론적으로 말씀하시기를 마 24:44-51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다.

이 구절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직분자가 등장한다. 지혜로운 청지기와 어리석은 청지기이다. 여러분은 어떤 청지기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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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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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학교 /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박일민 교수(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장·조직신학)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그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기 어려울 때를 많이 경험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어느 것이 옳은 해석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울 때도 경험한다. 그런가 하면 모든 성경을 지나치게 상징이나 영적인 비유로 해석하는 사람을 보면서 의아스러움을 갖기도 하고,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라”(벧후 1:20)고 하신 사도 베드로의 경고 말씀을 대하면서 긴장된 마음을 갖기도 한다.
이제 성경은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만일 그렇다면 성경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1. 성경 해석의 필요성
성경은 모국어로 성경을 듣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안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도 구원의 진리를 발견해내기에 충분한 책이다. 그러나 성경은 반드시 해석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다음 몇 가지 사실들을 통해 설명되어질 수 있다.
1) 성경 자체가 성경이 해석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음을 여러 곳에서 교훈하고 있다.
사도들께서는 성경의 의미가 바르게 해석되어야 할 것을 여러 차례 교훈하셨다. 사도 바울께서 디모데에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할 것, 즉 성경의 의미를 잘 해석할 것을 교훈하신 것이나(딤후 2:15), 사도 베드로께서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 3:16)고 하시면서 성경에는 알기 어려운 것들이 있으므로 잘못된 해석을 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할 것을 당부하신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사도들의 교훈이 있기에 앞서, 친히 성경(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을 해석하여 가르치심으로서, 성경은 해석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우리에게 몸소 본으로 보여주셨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6, 27)고 한 말씀이 이를 증거해준다. 빌립 집사께서도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행 8:31)라고 말하던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이사야서의 말씀을 해석하여 예수를 가르치신 일이 있었다(행 8:35).
2) 사람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한계점이나 차이점들이 성경의 해석을 필요하게 만든다.
우리는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의 역사, 문화, 세계관 등에서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는 환경 속에 살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도 시대나 문화적인 배경이나 세계를 보는 눈(세계관 또는 철학)이 다른 시대에 기록된 성경말씀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기에 예를 들어, 신부되는 성도들이 졸지 않고 깨어서 등불의 기름을 준비하고 다시 오실 신랑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를 정확히 알려면,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결혼식 문화를 알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이 미혼인 사람에게 ‘언제 국수를 먹여 줄 것인갗하고 묻는 말을 할 때, 역사나 문화가 다른 외국 사람들은 그 말의 단어는 혹 이해를 한다고 해도 그 말 속에 담긴 정확한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같은 것을 보아서도 쉽게 실감할 수 있다.
우리는 성경의 언어나 그 언어를 사용하는 표현방법에서도,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많은 차이점들이 있음을 발견한다. 같은 말의 반복이나(예: 진실로 진실로), 비슷한 말의 반복(예: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대구적(對句的) 표현(예: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등 여러 가지 언어적 유희 등은 적절한 해석이 없이는 그 정확한 의미를 알기가 어렵다.
3) 성경에는 그 뜻이 서로 상충되는 듯하여 보이는 구절들이 있어, 성경 전체의 조화로운 이해를 위한 해석을 필요하게 한다.
창세기 1장과 2장의 창조 내용과 순서상의 차이, 예수님께서 ‘천국(하늘나라)’ 교훈을 하셨다는 마태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다는 누가복음 기록의 차이, 예수님께서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며”(요 5:31)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면서도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여도 내 증거가 참되니”(요 8:14)라고 하셨다는 요한복음 내용의 차이, 사도행전에서 세 차례 반복되고 있는 사도 바울의 회심 사건에서 발견되는 차이(행 9:3~18, 22:6~16, 26:12~18),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갈 3:24)는 말씀과 ‘믿음으로만 아니라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약 2:24)는 말씀의 차이 등이 그 좋은 예이다. 이러한 구절들은 얼핏 보아 서로 상충되는 듯해 보이기 때문에, 그 문맥이나 배경을 고려하여 성경 전체와 조화 되도록 해석되어야 할 필요를 생기게 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떤 방법과 기준에 의해서 해석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자.

2. 성경 해석의 원리들
성경은 사도 베드로께서 경고하신 것처럼, 자기 좋을 대로 아무렇게나(사사로이) 해석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할 때는 모든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결론에 이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원리들이 사용되어진다.
1) 문법적 해석
글은 사람의 생각을 드러내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할 때는 저자가 성경을 처음 기록할 때 단어와 구절을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저자가 선택한 단어나 그 단어의 배열순서, 문법, 문맥, 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나 목적 등을 찾아내는 것은 성경 해석에 있어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일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저자의 성격, 경험, 교육수준 등을 아는 것이나 단어의 어원적 의미를 찾아내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한 본문은 오직 한가지의 의미만을 가진다는 사실에 유의하고, 한 본문에서 여러 가지 뜻을 찾아내려고 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2) 역사적 해석
대부분의 성경은 일정한 역사적 환경 속에 살던 저자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역시 일정한 역사적 환경 속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상대로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저자나 그것을 받는 수신자(受信者)가 살고 있던 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고, 그 상황에 맞추어 해석되어야 한다. 구약 예언서들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예언서들이 기록되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을 고려해야 하고, 복음서나 신약 서신서들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유대인들의 역사나 전통 또는 초대교회 각 지역의 형편들을 고려해야 그 말씀들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3) 신학적 해석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를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기록한 것이다(딤후 3:16).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는 한꺼번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뜻이 점점 더 확실해지도록 점진적으로 주어졌다. 이 때문에 성경 66권은 각기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개의 여러 책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의 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성경의 모든 부분들은 성경의 다른 부분들과 조화가 되도록 해석해야 한다. 한 구절 한 단어를 해석할 때도 성경 전체의 배경을 가지고 해석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여인의 후손, 아브라함의 씨, 다윗의 혈통 등에 관한 말씀들은 성경 전체의 신학적 배경 속에서 해석해야 그 의미가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
4) 문학적 해석
성경에는 앞에서 말한 언어적 유희 이외에도 과장법, 반어법, 의인법, 직유법, 은유법, 완곡어법 등 매우 다양한 문학적 기교들이 사용되었다. 따라서 성경은 각각 그 문학적 기교를 고려하여 그에 적절한 해석을 해야 한다. 또 성경에는 영적인 진리를 실제적이나 비실제적인 경험들을 들어 설명하는 비유들이 많이 등장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적 표현을 즐겨 사용하셨다. 비유를 해석할 때는 반드시 그 문맥이 가르치는 기본적인 요소를 찾아내서, 전체 의도나 목적에 합당한 한 가지의 교훈만을 찾아내는 해석을 해야 한다.
5) 상징적 해석
성경에는 예표나 상징이 자주 등장한다. 역사적인 실제 인물, 사실, 사건, 제도, 행위 등으로 미래에 있을 것을 미리 보여주는 것을 예표라고 한다. 그리고 미래에 있을 것과는 관계없이 저자가 물건, 숫자, 형태, 행위, 환상, 색깔 등을 통해서 자기가 의도한 뜻을 나타내려 하는 것을 상징이라고 한다. 예표나 상징의 해석은 성경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해석을 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의도에 따라서 해석할 위험이 많다. 그러므로 상징적 해석을 할 때는 매우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 저자의 본 의도와는 달리, 편의에 따라 자의적으로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인 해석을 하기 쉽다.
성경은 해석을 필요로 하는 책이다. 그러나 성경을 사사로이 풀다가 그 뜻을 오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성경을 한 가지 방식으로만 해석하여, 지나친 상징이나 영적인 해석을 늘어놓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하려 할 때는, 먼저 성경의 원저자이신 성령의 감동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해석을 시도하기 전에,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살펴서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문법적, 역사적, 신학적, 문학적, 상징적 해석의 원리들이 적극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성경의 정확한 의미를 찾아내서, 그것으로 신앙의 표준을 삼고 영혼의 풍성한 양식을 삼아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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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박일민 교수(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장·조직신학)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그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기 어려울 때를 많이 경험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어느 것이 옳은 해석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울 때도 경험한다. 그런가 하면 모든 성경을 지나치게 상징이나 영적인 비유로 해석하는 사람을 보면서 의아스러움을 갖기도 하고,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라”(벧후 1:20)고 하신 사도 베드로의 경고 말씀을 대하면서 긴장된 마음을 갖기도 한다.

이제 성경은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만일 그렇다면 성경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1. 성경 해석의 필요성

성경은 모국어로 성경을 듣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안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도 구원의 진리를 발견해내기에 충분한 책이다. 그러나 성경은 반드시 해석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다음 몇 가지 사실들을 통해 설명되어질 수 있다.

1) 성경 자체가 성경이 해석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음을 여러 곳에서 교훈하고 있다.
사도들께서는 성경의 의미가 바르게 해석되어야 할 것을 여러 차례 교훈하셨다. 사도 바울께서 디모데에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할 것, 즉 성경의 의미를 잘 해석할 것을 교훈하신 것이나(딤후 2:15), 사도 베드로께서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 3:16)고 하시면서 성경에는 알기 어려운 것들이 있으므로 잘못된 해석을 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할 것을 당부하신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사도들의 교훈이 있기에 앞서, 친히 성경(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을 해석하여 가르치심으로서, 성경은 해석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우리에게 몸소 본으로 보여주셨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6, 27)고 한 말씀이 이를 증거해준다. 빌립 집사께서도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행 8:31)라고 말하던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이사야서의 말씀을 해석하여 예수를 가르치신 일이 있었다(행 8:35).

2) 사람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한계점이나 차이점들이 성경의 해석을 필요하게 만든다.
우리는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의 역사, 문화, 세계관 등에서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는 환경 속에 살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도 시대나 문화적인 배경이나 세계를 보는 눈(세계관 또는 철학)이 다른 시대에 기록된 성경말씀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기에 예를 들어, 신부되는 성도들이 졸지 않고 깨어서 등불의 기름을 준비하고 다시 오실 신랑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를 정확히 알려면,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결혼식 문화를 알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이 미혼인 사람에게 ‘언제 국수를 먹여 줄 것인갗하고 묻는 말을 할 때, 역사나 문화가 다른 외국 사람들은 그 말의 단어는 혹 이해를 한다고 해도 그 말 속에 담긴 정확한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같은 것을 보아서도 쉽게 실감할 수 있다.

우리는 성경의 언어나 그 언어를 사용하는 표현방법에서도,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많은 차이점들이 있음을 발견한다. 같은 말의 반복이나(예: 진실로 진실로), 비슷한 말의 반복(예: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대구적(對句的) 표현(예: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등 여러 가지 언어적 유희 등은 적절한 해석이 없이는 그 정확한 의미를 알기가 어렵다.

3) 성경에는 그 뜻이 서로 상충되는 듯하여 보이는 구절들이 있어, 성경 전체의 조화로운 이해를 위한 해석을 필요하게 한다.
창세기 1장과 2장의 창조 내용과 순서상의 차이, 예수님께서 ‘천국(하늘나라)’ 교훈을 하셨다는 마태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다는 누가복음 기록의 차이, 예수님께서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며”(요 5:31)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면서도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여도 내 증거가 참되니”(요 8:14)라고 하셨다는 요한복음 내용의 차이, 사도행전에서 세 차례 반복되고 있는 사도 바울의 회심 사건에서 발견되는 차이(행 9:3~18, 22:6~16, 26:12~18),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갈 3:24)는 말씀과 ‘믿음으로만 아니라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약 2:24)는 말씀의 차이 등이 그 좋은 예이다. 이러한 구절들은 얼핏 보아 서로 상충되는 듯해 보이기 때문에, 그 문맥이나 배경을 고려하여 성경 전체와 조화 되도록 해석되어야 할 필요를 생기게 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떤 방법과 기준에 의해서 해석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자.

2. 성경 해석의 원리들

성경은 사도 베드로께서 경고하신 것처럼, 자기 좋을 대로 아무렇게나(사사로이) 해석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할 때는 모든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결론에 이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원리들이 사용되어진다.

1) 문법적 해석
글은 사람의 생각을 드러내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할 때는 저자가 성경을 처음 기록할 때 단어와 구절을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저자가 선택한 단어나 그 단어의 배열순서, 문법, 문맥, 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나 목적 등을 찾아내는 것은 성경 해석에 있어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일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저자의 성격, 경험, 교육수준 등을 아는 것이나 단어의 어원적 의미를 찾아내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한 본문은 오직 한가지의 의미만을 가진다는 사실에 유의하고, 한 본문에서 여러 가지 뜻을 찾아내려고 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2) 역사적 해석
대부분의 성경은 일정한 역사적 환경 속에 살던 저자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역시 일정한 역사적 환경 속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상대로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저자나 그것을 받는 수신자(受信者)가 살고 있던 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고, 그 상황에 맞추어 해석되어야 한다. 구약 예언서들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예언서들이 기록되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을 고려해야 하고, 복음서나 신약 서신서들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유대인들의 역사나 전통 또는 초대교회 각 지역의 형편들을 고려해야 그 말씀들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3) 신학적 해석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를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기록한 것이다(딤후 3:16).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는 한꺼번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뜻이 점점 더 확실해지도록 점진적으로 주어졌다. 이 때문에 성경 66권은 각기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개의 여러 책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의 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성경의 모든 부분들은 성경의 다른 부분들과 조화가 되도록 해석해야 한다. 한 구절 한 단어를 해석할 때도 성경 전체의 배경을 가지고 해석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여인의 후손, 아브라함의 씨, 다윗의 혈통 등에 관한 말씀들은 성경 전체의 신학적 배경 속에서 해석해야 그 의미가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

4) 문학적 해석
성경에는 앞에서 말한 언어적 유희 이외에도 과장법, 반어법, 의인법, 직유법, 은유법, 완곡어법 등 매우 다양한 문학적 기교들이 사용되었다. 따라서 성경은 각각 그 문학적 기교를 고려하여 그에 적절한 해석을 해야 한다. 또 성경에는 영적인 진리를 실제적이나 비실제적인 경험들을 들어 설명하는 비유들이 많이 등장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적 표현을 즐겨 사용하셨다. 비유를 해석할 때는 반드시 그 문맥이 가르치는 기본적인 요소를 찾아내서, 전체 의도나 목적에 합당한 한 가지의 교훈만을 찾아내는 해석을 해야 한다.

5) 상징적 해석
성경에는 예표나 상징이 자주 등장한다. 역사적인 실제 인물, 사실, 사건, 제도, 행위 등으로 미래에 있을 것을 미리 보여주는 것을 예표라고 한다. 그리고 미래에 있을 것과는 관계없이 저자가 물건, 숫자, 형태, 행위, 환상, 색깔 등을 통해서 자기가 의도한 뜻을 나타내려 하는 것을 상징이라고 한다. 예표나 상징의 해석은 성경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해석을 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의도에 따라서 해석할 위험이 많다. 그러므로 상징적 해석을 할 때는 매우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 저자의 본 의도와는 달리, 편의에 따라 자의적으로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인 해석을 하기 쉽다.

성경은 해석을 필요로 하는 책이다. 그러나 성경을 사사로이 풀다가 그 뜻을 오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성경을 한 가지 방식으로만 해석하여, 지나친 상징이나 영적인 해석을 늘어놓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하려 할 때는, 먼저 성경의 원저자이신 성령의 감동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해석을 시도하기 전에,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살펴서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문법적, 역사적, 신학적, 문학적, 상징적 해석의 원리들이 적극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성경의 정확한 의미를 찾아내서, 그것으로 신앙의 표준을 삼고 영혼의 풍성한 양식을 삼아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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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학교 특강] 교회 중등부 학생을 위한 기독교 역사특강용

 

기독교의 창시자;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구약을 이루신 분 )

시대적 배경; 지금부터 약 이천여년 전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서기 2012년 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삼는 거에요. 이 때에 예수님이 태어난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의 속국[식민지]이었어요.

발생한 지역; 지금의 이스라엘 즉 팔레스타인 지역이 예수님이 태어나고 활동하시다가 죽으시고 부활하신 지역입니다.

 

발생한시대; 약 이천여년 전

역사적 배경; 기독교는 유대교의 역사적 배경 위에 기원 1세기 예수의 가르침과 종교적 실천을 근간으로 하여 형성된 종교이다.

가르침;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류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를 짓게 되었어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어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되엇는 데, 하나님이 인간을 불쌍히 여기셔서 자신의 외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인간의 모양으로 보내셔서, 인류의 죄 값으로 죽게 하셧어요.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사람들은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살아요.  

 

여기서부터 위키사전의 편집입니다. http://ko.wikipedia.org/wiki 

 

기독교

 

기독교(基督敎, Christianity) 또는 그리스도교는 성서를 경전으로 삼고 유일신인 여호와와 그의 아들 예수를 믿는 종교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주장하는 모든 종교들을 총칭하여 일컫는 보편적 단어이다.

기독교는 이렇게 형성된 유대교의 역사적 배경 위에 기원 1세기 예수의 가르침과 종교적 실천을 근간으로 하여 형성된 종교이다. 기독교는 초기 발생기에는 로마 제국의 탄압을 받았지만, 313년에 밀라노 칙령을 통해 로마 제국의 공식적인 승인을 받았다. 4세기 무렵부터는 로마를 포함한 여러 나라의 국교가 되기도 하였고, 이후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세계적인 종교로 성장하게 되었다.


기독교 교회들의 명칭

 

'기독교'(Christianity)라는 개념은 한국과 중국에서는 개신교(Protestant)와 같은 뜻으로 잘못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기독교의 주요 분파인 로마가톨릭교회, 성공회, 동방정교회, 개신교회 등과 아프리카 교회를 포함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하나님을 믿는 모든 기독교 교회들을 뜻한다. 이들 교회들은 교단 분열로 인한 갈등과 대립으로 인한 소모전으로 전교에 지장을 받기도 했지만, 교의가 아닌 복음과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삶을 강조하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실천으로 극복하려 하고 있다. 개신교, 성공회, 정교회가 회원교단이고 로마 가톨릭 교회는 참관인으로 활동하는 세계교회협의회가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의 첫 총회로 시작된 것이 에큐메니컬 운동의 결실이라 말한다.

 

기독교역사


초기 기독교는 예수가 팔레스타인지역에서 활동하였다는 때와 그의 죽음 이후 사도들이 교회를 이끌던 1세기 무렵부터 제1차 니케아 공의회가 열린 325년까지의 기독교를 말한다. 초기 기독교는 베드로, 바울과 같은 사도와 선지자들이 회중을 순회하고 다녔지만 특정한 조직이나, 교리, 건물 등이 없었고 따라서 일치된 신학도 없었으며 매우 다양한 견해를 갖는 집단들로 나뉘어 있었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지역마다 많은 회중이 형성되었고, 사도들이 신자들에게 성경의 가르침과 예수의 새로운 가르침을 따를 것을 교훈하였으며 배교자 혹은 부도덕한 신자에 대해서는 경고하거나 제명해야 됨을 각 회중들에 권고하고 편지한 내용 그리고 교리에 대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교회 연로자들의 회의가 소집된 일, 또한 요한에 의해 기록된 계시록에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교리 일치 여부와 역사, 행위들에 대해 상세히 언급하고 있는 사실을 보면, 이미 기원 1세기에 매우 체계화된 조직과 교리가 형성되었으며 완성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초기 기독교는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 곳곳으로 전파되었다.


종교 개혁

 

95개조 반박문16세기에 들어 로마 가톨릭이 신봉되던 서유럽과 북유럽에서 여러 개신교들이 세워지는 종교 개혁이 있었다.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여 새로운 기독교를 세운 이유는 각 지역과 교회마다 달랐지만, 로마 가톨릭이 부정 부패에 대한지식인들의 비판을 탄압하여 자정 능력을 상실하였고, 로마 교황청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각 국 군주의 불만이 쌓여 있었다는 것을 공통점으로 들 수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결과 로마 카톨릭은 현대적인 모습으로 개혁되었다. 19세기 동안 미국의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개신교 부흥운동이 있었다. 대각성운동이라고도 불리는 부흥운동은 D.L. 무디, R.A. 토레이, J.W. 체프만 등의 부흥운동가들에 의해 일어나 개신교의 여러 교파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들은 초교파적 부흥운동을 바탕으로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선교사를 파견하였다.

 

한반도 전파


조선 시대 천주교 박해로 많은 신자들이 처형되었다.한국에 전래된 기독교는 초기에 '야소교'(耶蘇敎), 곧 예수교라고 불리는 경우가 있었다. 이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당시 청 제국에 와 있던 로마 가톨릭의 가장 큰 국제수도회 조직 가운데 하나인 예수회(the Society of Jesus)를 '야소교'로 표기한 것을 그 시초로 보고 있다.

 


기독교의 교리


기독교는 세계에 분파를 거듭함에 따라 2만 개 정도의 교파가 있으며 한국의 대표적 교단으로 천주교(가톨릭)와 함께 장로교회, 감리교회 등의 여러 개신교회가 있다. 이중 개신교는 1950년대 장로교회의 분열 등의 교파분열로 약 250여 개의 교파가 있다. 교파마다 교리도 다양하지만 기독교의 공통된 가장 큰 특징은 메시아 및 속죄 사상이다.

 

교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신관(神觀): 기독교는 그 유일신의 이름을 야훼로 구별해 왔다. ('주님' 또는 '여호와'로도 불린다.) 이름을 직접 부르는 대신, 개신교의 대부분에서는 '하나님', 로마 가톨릭 교회, 성공회, 정교회에서는 '하느님'이 사용되고 있다. 신론(神論)에 있어서 다른 아브라함계 종교와 다른 점은 기독교는 하나님 아버지(성부)와 예수 그리스도(성자)와 성령을 믿는 점이다. 또한 초대 교회나 성경에는 거의 언급이 없지만 성전(Sacrament)을 따라 대부분의 기독교 종파에서는 삼위일체론을 믿는데, 삼위일체론은 하나님은 세 개의 구별될 수 있는 격으로 나타나지만 본질상 한 하나님이라는 교리이다. 특히 나자렛 예수는 삼위 가운데 제2위의 육체적 현현(顯現,Epiphany)으로 믿는다.


인간관: 기독교에서는 모든 인간은 야훼신이 처음 창조한 인간인 아담과 하와의 자손이므로 그들의 원죄를 물려받아 모두 죄인이며 그렇기에 모두 죽으면 영원히 불타는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야훼신의 아들인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므로 그를 믿은 사람은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람의 인격의 기본이 되는 '영혼'이 있다고 믿으며, 이는 육체의 죽음과는 상관 없이 불멸한다고 믿는다. 또한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나 여호와의 증인과 같이 영혼 불멸과 천국, 지옥을 믿지 않는 개신교 교파도 종종 존재한다.


구원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구원'이라고 표현하며, 대부분의 개신교 교파에서 이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 즉 믿어 구원을 받음으로 가능하다고 믿는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참된 신앙이 있어야 구원에 이른다고 믿는 기독 교단도 있다. 구원 받은 사람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처럼 다시 영혼과 육신이 온전하게 합쳐져서 부활할 것을 믿는다.


역사관: 성경의 예언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다스리러 다시 올 것을 믿으며, 이때 예수가 주권자로 세상을 다스리는 천년왕국이 이 지상에 이루어짐(전천년왕국설. 계시록에 대한 다른 해석으로 예수가 재림하여 심판 후 새로운 천년왕국을 세워 다스릴 것이라고 믿는 후천년왕국설, 영적으로 이미 예수가 세상의 주권자라고 믿는 무천년왕국설도 있다.)을 믿으며, 그 후 심판에 의해 지금의 세계가 새롭게 될 것이라고 믿는 종말론적 역사관을 갖고 있다.


기독교에서의 믿음

 

기독교에서 신앙 또는 믿음(faith)이란 단에대한 정의에 관해서는 논란이 되곤한다. 계통적 서술에 의하면 히브리서에 있는 "희망하는것에 대한 확신, 보지 않은것에 대한 확신"으로 본다. 대부분의 기독교 이론들이 역사적으로 이 성경적 서술을 따라왔다.
정확한 “믿음”이란 단어에 대한 이해는 다양한 기독교 교파의 전통에 따라 다르다.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은 보편적으로 예수가 기독교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고,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 이러한 믿음이 필요하다는 믿음에는 공통점을 보인다. 기독교의 전통은 예수에 대한 믿음이 매우 중심이 되기 때문에 “믿음”이라 불리기도 한다. faith(신앙/믿음)와 belief(믿음)이란 개념은 기독교인들이 ‘믿는 사람’으로 간주되듯 빈번히 동의어로 여겨진다.


신앙에 있어서 예수에대한 믿음과 신뢰 그리고 의지

 

개신교의 전통에서 신앙이란 대개 믿음, 신뢰 그리고 의지와 연관된 개념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러한 이해는 개혁가들의 교리적 성명에 기초한것이다. 그들의 성명에 설명되는 것들 중에: “구원의 믿음에 대한 원칙은 정의, 구원,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위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받아들이고, 쉬며 안식하는 것이다" 개혁가들은 인간의 정의를 의미하는 선한 노력과 신앙을 구분했다. 이 구원의 믿음에 대한 신앙의 이해는 개신교의 전통으로 남게 되었다. 구원의 믿음은 보통 예수를 믿고, 신뢰하고 의지하며, 그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 속죄에 관한 이해였다.

 

각 교파별 인구 비율

 

The World Christian Encyclopedia에 따르면, 세계의 기독교 신자의 교파별 비율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아래의 설문 작성시 응답자들이 여러 항목을 선택할 수 있었기에 총 합이100 %를 넘는다.

가톨릭 : 53%
개신교 : 40%
주류 교단 : 17%
독립교회(초교파) : 19%
성공회: 4%
정교회: 11%
기타 기독교적 종파(몰몬교, 유니테리언, 크리스찬 사이언스 등): 1.3%
대한민국에서 기독교는 크게 보면 가장 큰 두 집단으로 나뉘는데 860만 명의 개신교와 510만 명의 로마 가톨릭으로 나뉜다.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A%B8%B0%EB%8F%85%EA%B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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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등부 설교 (성경에 꿈이 있다)

1. 말씀: 성경에 꿈이 있다


“Boys,Be ambitious!”(젊은이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널리 알려진 이 말은 19세기 세계적으로 유명한 식물학자이며 농학자였던 미국 윌리엄 클라크 박사가 한 말이다.

매사추세츠 주립농과대학 학장이었던 그는 1876년 7월 일본 삿포로 농림학교 초대 교장에 취임했다. 그의 일행이 처음 일본에 도착했을 때 유난히 ‘큰 짐’을 본 장학관이

“무슨 짐입니까?”하고 물었다. “성경이지요.”

“성경은 가르칠 수 없는데요.” “그러면 돌아가겠습니다.” 돌아가겠다는 말에 크게 당황한 장학관은 “강의 시간 이후에 가르치시지요”라고 허락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농업기술을 전수하는 한편 ‘성경에 인생의 꿈이 있다’고 가르쳤다. 임기를 마친 후 그는 고별사에서 ‘젊은이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란 이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일본 삿포로농과대학 교정에 세워진 그의 동상에 이 세계적인 명언이 새겨져 있다. 성경엔 인생을 살리는 ‘꿈’이 있다.


2. 묵상 및 토의

 

0 나는 요셉과 같은 큰 스케일의 꿈을 꾸고 있는가?

0 나는 극악한 형편에서도 꿈과 비전을 잃지 않을 수 있겠는가?

0 내 가슴에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충만한가?

0 나는 금빛 찬란한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는가?

0 내 가슴은 약속의 땅에 대한 소망으로 불타고 있는가?

0 나는 세상을 보지 않고 주를 보며 살아가는가?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꿈꾸는 사람이 되라


미국의 ‘삼중고(三重苦) 성녀'라고 불리는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 1880~1968)는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의 세 가지 장애를 가지고 가난한 집안에서 불행하게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해서 맹농아자로서는 세계 최초로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하였고 박사학위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맹농아자복지사업 등 사회사업에도 크게 공헌하여 인류 역사에 빛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헬렌 켈러의 삶과 그가 남긴 말들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그는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꿈이 없는 사람이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이 불쌍해 보이지만, 인생에 꿈과 비전이 없는 사람이 더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만화영화 제작자이자 기업가인 월트 디즈니는 젊은 시절에 만화나 삽화 그린 것을 들고 신문사를 찾아다니며 일자리를 구했으나 매번 거절당하여 먹고 사는 것도 힘들어 졌습니다. 그는 거주할 곳도 없어 목사님께 부탁하여 어느 허술한 교회의 차고에서 살았습니다. 워낙 낡은 차고라 여기저기 구멍도 뚫려있고 생쥐들도 제 집처럼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생쥐를 보고 영감을 얻어 ‘미키마우스'라는 이름의 동물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그 캐릭터는 크게 성공하여 그를 전설적인 만화영화 제작자로 만들어 주었으며, 디즈니랜드도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만약 당신이 꿈을 꿀 수 있다면 당신은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꿈을 통해 그가 번창하게 된 것입니다.

 

* 예화(2): 꿈이 길을 만든다


미국의 제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는 16세에 학교를 중퇴하고 운하를 왕래하는 배에서 일하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좀더 훌륭한 일을 하라고 살려주셨다고 굳게 믿고 즉시 집으로 돌아왔으나 말라리아에 걸려 6개월을 병석에 누워 있었다. 그러나 그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기술학교에서 목수조수 일을 하며 학비를 벌었고 방학 기간에 개척교회에서 봉사하다가 성령 세례를 받아 더욱더 하나님의 꿈을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28세 때에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에 당선되었으며 남북전쟁 때 육군소장으로 헌신했고 전쟁이 끝난 후 연방 상원의원이 됐다. 그리고 마침내 1879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꿈이 가난한 소년을 대통령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이다. 가나안의 꿈을 가진 자에게는 홍해나 여리고 성은 장애가 아니라 길일뿐이다. 꿈이 길을 만든다. 꿈이 있는 백성,꿈이 있는 개인은 망하는 법이 없다.

/이철재 목사(서울성서교회)

 

 

* 예화(3): 누구에게든지 가능성은 있다


미국 미사간 주의 성 요셉고아원에 문제소년 한 명이 들어왔다. 소년은 원생들과 싸움을 일삼았다. 베라다 선생은 인내심을 갖고 끊임없이 소년을 격려했다.

"하나님은 너를 매우 사랑하신다. 큰 꿈을 가져라."

그러나 소년의 행동에는 변화가 없었다. 결국 그 문제소년은 퇴학을 당하고 말았다. 소년은 퇴학당한 후에 비로소 베라다 선생의 소중한 가르침을 깨달았다. 그리고 피자가게에 취직해 열심히 일했다. 소년에겐 피자 한 개를 11초에 반죽하는 탁월한 솜씨가 있었다. 그의 머리 속은 베라다 선생이 심어준 '큰 꿈'으로 가득 찼다. 소년은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피자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가 바로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미노피자'다. 이 고아 소년의 이름은 토머스 모나한이다. 현재 토머스는 피자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미국 프로야구 명문구단인 디트로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베라다 선생의 가르침 때문이라고 말한다. 토머스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 꿈을 크게 가져라."

4. 찬송: (542장)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주여 지난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 이루어주옵소서

밤과 아침에 계시로 보여주사 항상 은혜를 주옵소서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5. 꿈과 비전에 관한 말씀:

0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나는도다(시62:5)

0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46:5)

0 나는 너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채우리~(시81:10)

0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잠24:14)

0 내가 내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욜2:28)

0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

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렘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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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 설교 / 위대한 꿈과 소망을 갖자

 

(시146:5)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꿈꾸는 것입니다. 꿈이 있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것이요, 이상을 갖는 다는 것이고, 비전을 지닌 다는 것이며, 목표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꿈이 있을 때 활력소가 생기고 의욕이 솟구쳐 오릅니다.

가난한 사람이란 돈이 없는 자가 아니라 꿈이 없는 자입니다.

사람이 꿈을 잃으면 활기가 없습니다.

꿈이 있어야 높은 이상을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려고 분투노력하면서 사는 보람과 의미를 발견합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꿈꾸는 자와 함께 일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루살이의 꿈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함께 놀다 저녁에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오늘은 그만 놀고 내일 만나자"고 말했습니다. "내일이 뭔데" "캄캄한 밤이 지나고 밝은 날이 오는데 그게 내일이야"

또 메뚜기와 개구리가 함께 놀다가 개구리가 말했습니다. "내년에 만나자" "내년이 뭔데"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는 거야" 메뚜기는 개구리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하루살이의 꿈이란 오직 이 세상의 것만을 바라보는 꿈입니다. 즉 예쁜 여자와 결혼하고, 넓고 좋은 집에서 살고, 높은 지위를 얻고, 명예를 얻는 꿈 등입니다.

우리는 큰 꿈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믿음을 크게 가져야 하겠습니다. 생각을 크게 가져야 하겠습니다. 큰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라이트 형제는 하늘을 나르는 꿈을 가졌고 그 꿈을 현실로 이루어냈습니다.

나폴레옹은 유럽의 통일을 꿈꾸었습니다.

징기스칸도 세계를 정복하려고 했습니다.

이들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생각을 가졌을 때 세계가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징기스칸이나 나폴레옹보다 더 큰 꿈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70, 80년 이 세상에서 평안하게 살다가 죽는 꿈이 아니라 영생의 꿈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크리스천은 한 남자나 한 여자만을 죽도록 사랑하는 꿈보다 더 큰 꿈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늙고, 죽습니다. 그러한 인간을 죽도록 사랑해 보아야 결국은 변하고 허무한 것으로 끝납니다. 그렇다고 아내나 남편을 사랑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로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사랑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랑은 참 사랑이요, 영원한 사랑이요 변하지 않는 영구불변의 사랑입니다.

저 유명한 성 어거스틴이 어느 날 밤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는 꿈결에 사랑하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께서 어거스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아들아, 너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어거스틴은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만을 원합니다. 주님 사랑만을 원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저버리고 세상이 썩어질 것, 사람이 만든 것, 허탄한 것들을 사랑하면 그것이 우상숭배요, 주님이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은 보이는 소망을 쫓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세적, 물질적, 육체적 소망들입니다. 그것들은 모든 다 풀의 꽃과 같이 쉽게 쇠잔해 지고 안개같이 사라져 버리고 바람과 같이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습니다.

요한 일서 3장 2절- 3절까지 읽어봅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임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세상에서 대통령의 아들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대통령은 기껏 5년 밖에 못합니다. 그 후에 감옥소에도 가고 욕도 먹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그리고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의 짧고 허탄한 것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망을 가진 자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주님께서 거룩하시고 깨끗한 것 같이 자기를 깨끗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는 더러운 돈의 노예가 되거나 음행의 더러운 것에서 우리를 지켜 깨끗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거지 옷을 입고 돼지를 치고 있는 그 아들에게 "당신은 누구의 아들이요?"라고 물었다면 탕자는 훌륭한 아버지의 이름을 댈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하고 깨끗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계 재패의 꿈을 가져야 합니다. 스탈린이나 히틀러, 나폴레옹은 무력으로 이 세계를 재패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하고 멸망의 어두움 속으로 물러갔습니다. 우리는 무력이 아니라 복음으로 전세계를 재패할 꿈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과 생명의 복음 들고 지구 땅끝까지 전파할 사명과 꿈을 가져야 합니다. 위대한 꿈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시련을 통과하고 장애물을 극복해야 합니다. 꿈꾸는 자는 시련이라는 물을 먹고 자랍니다. 꿈꾸는 자였던 요셉은 이복형제들에 의해 종으로 팔려가고, 거짓 모함으로 옥에 갇히는 등 13년 동안 시련을 통과했습니다. 민족을 구원하는 꿈을 꾸었던 모세는 40년을 광야에서 보냈습니다. 꿈꾸는 것은 쉬워도 꿈을 성취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값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이러한 꿈들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은 꿈을 꾸게 하십니다.

꿈을 키워주시고 실현하게 하십니다. 상상력을 복돋워 주시고 미래를 향해 나가도록 이끄십니다. 요엘 2장 28절과 사도행전 2장 17절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꿈꾸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꿈이 없는 사람에게는 절망만 기다릴 뿐입니다. 꿈을 가지고 기도하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이루어 주십니다. 그런데 꿈을 가지되 막연한 꿈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옛날에 제가 여학생들에게 비전을 발표하라고 했더니 많은 여학생들이 현모양처를 이야기하더군요. 여러분은 막연한 현모양처되겠다고 하지말고 내가 어머니가 되면 구체적으로 자녀교육은 어떻게 할 것이고 남편에게는 어떻게 할 것이라는 계획을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내가 목사부인이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면 지금부터 목사님에게 가장 중요한 설교자료 들을 스크렙하고 모으고 정리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꿈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또 내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면 내가 대통령이 되면 어떤 어떤 일을 추진하고 어떤 방법으로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는 꿈을 키워나가자는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 꿈을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첫째, 믿음으로 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에 포도나무 비유에서 아버지는 농부요, 아들 예수님은 원둥치요, 우리는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가지가 원둥치에 붙어 있지 않고서는 과실을 맺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원둥치에서 보내주는 양분 없이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며 풍부한 자원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생활은 예수님에게 속한 것이요, 주 안에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계획할 지라도 이루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떠난 꿈과 계획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고, 이루어진다 해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허탄한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꿈을 키우기 위해서는 진리 안에 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은 세상의 지식과는 다릅니다. 일점 일획이라도 거짓이 없으며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고, 또 이루어지는 확실한 진리입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 하나님이 말씀이 있으면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말씀이 계시면 복된 사람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며 그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 질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로 꿈을 키우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다 어려운 처지에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담대히 나와 큰 소망을 이루었습니다. 우리도 낙심, 좌절하지 말고 예수님께 나와 겸손히 구합시다. 여리고성 길거리에 앉아서 구걸하던 소경 바디메오도 지나가는 예수님을 붙잡고 간절히 부르짖어 눈이 떠지는 기적을 얻게 되었습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소원을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집 진자들을 오늘도 찾고 부르시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짐을 모두 주님께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37편 5-6절을 봉독합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주님 재림의 꿈과 천국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다시 오십니다. 성령으로 오시는 것말고 실제로 오십니다. 여호와의 증인, 제 7일 안식일교 등 여러 이단 들이 몇 년 몇 월에 예수님이 오신다고 예언했다가 모두 실망했지만 예수님은 언젠가는 도적같이 오신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3절에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는 영원한 죽음이 없습니다. 예수 재림하실 때 죽은 성도들이 먼저 부활하고 살아 남아있던 성도들은 홀 연히 변화되어 공증에서 주를 영접하게 됩니다. 그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의 음성 듣기를 사모해야 됩니다. 마치 아이들이 아빠가 직장에서 돌아올 때가 되면 아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우리를 영광스러운 천국으로 데려가십니다. 그 곳에는 눈물도 없고, 슬픔도 없고 질병도, 죽음도 없는 곳입니다. 우리 성도의 진정한 위로와 소망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골치 아픈 일이 많고, 괴로움이 많고 세상을 바라보면 암담한 일 뿐일지라도 우리는 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소망, 전세계 복음화의 소망, 주님 재림과 천국의 소망, 이러한 소망을 가진 우리는 날마다 깨끗하게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고 한 것처럼 우리도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음행과 거짓과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죄와 정욕에 대하여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꿈을 키워나가야 하겠습니다. 가수가 되더라도 복음가수가 되는 꿈을 가지고, 의사가 되는 꿈을 갖되 의료 선교사가 될 소망을 가지고, 선생님이 되는 꿈을 가지되 복음을 전하는 선생님이 되어야 하겠고 사업가가 되더라도 사업을 통해 번 돈을 하나님 사업 즉 세계 선교와 구제활동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이 없는 민족은 망합니다. 비전이 없는 교회는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촛대를 옮기십니다. 꿈과 비전이 없는 개인은 내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거를 한탄하지말고 큰 이상을 가지고 그 성취를 바라보며 열심히 기도합시다. 믿음과 기도로 꿈과 비전을 키워나갑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꿈과 비전을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소망의 주님, 깨끗한 마음과 맑은 눈으로 세상을 옳고 곧게 바라보게 하여주시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명령에 순종하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주신 비전을 향해 전진하는 주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꿈을 잃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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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수련회 프로그램 -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1. 우리는 하나
① 서로 어깨를 붙이고 원을 만들어 선다.
② 한 사람씩 손을 건너 양쪽으로 잡는다.
③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를 다 같이 외치며 뒤로 넘어간다.
④ 이 때 서로 손을 놓지 않으면 꽃처럼 활짝 펼쳐진 모습으로 되지만 한 사람이라도 서로 믿지 못하거나 동시에 실시하지 않으면 다 넘어지게 되어있다. 단 바닥이 돌로 되어있을 경우에는 다칠 위험이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앉아서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진행해도 아주 재미있게 할 수 있다.

2. 소경 받아주기
① 원으로 서로 손을 잡고 원을 만든다.
② 한 사람을 선발하여 눈을 가리고 자리에서 5바퀴를 돌게 한 후 차렷 자세에서 그대로 뒤로 넘어가게 한다. 이 때 눈을 가린 사람은 절대 다리나 허리를 굽히지 말아야 하며 다른 조원들은 그 사람이 반정도 넘어갔을 때 그의 허리를 받쳐 주면 된다.
③ 한 사람씩 돌아가며 모든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게 한다.

3. 소경 던지기(눈 가리고 위로 던지기)
① 한 사람을 선발하여 눈을 가린 후 바닥에 눕게 한다. 조원들은 그를 높이 들고 공중으로 던진다.
② 이때 눈을 가린 사람은 두렵더라도 역시 차렷 자세로 있어야 한다.
③ 돌아가며 실시하되 느낌을 발표하게 한다.

4. 예수사랑
① 눈을 가린 채 앞으로 손을 내밀어 손바닥이 앞을 향하게 한다. 사회자의 허락 없이는 말하거나 작은 신음소리도 웃음소리도 절대 내어서는 안 된다.
② 사회자의 인도에 따라 앞으로(예), 뒤로 돌아서(수), 오른쪽으로(사), 왼쪽으로(랑) 진행한다.
③ 가다가 사람을 만나면 비켜 간다. 시간이 되어서 멈추라고 하면 다 제자리에 선다. ④ 가장 먼저 손을 잡은 사람과 손을 잡고 자리에 앉는다. 이때도 아직 눈을 뜨거나 말을 해서도 안 된다.
⑤ 서로에 대해 느끼는 시간을 갖는다. 예를 들어 손등 어루만지기, 얼굴 만지기, 머리카락 만지기, 그리고 난 후 눈을 뜨게 한다.
상대방 알아 맞추기를 실시할 수도 있다. 만일 안다고 손을 들면 그 사람만 남기고 모두 눈을 뜬다. 그리고 손든 사람에게 상대방의 이름을 말해보게 한다.
⑥ 여러 번을 반복하되 매번 만나는 사람을 기억해야 하며 그 사람과 5분간 대화를 하게 한다.
⑦ 대화내용은 상대방에 대한 모든 정보이며 사회자는 잠시 후 몇 팀을 불러내어 상대방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질문한다. 50% 이상 정답을 말하면 상점 10점을 주지만 틀리면 벌점 5점을 받게 된다.
⑧ 파트너에게 물을 수 있는 질문들: 가장 좋아하는 T.V프로, 배우자 상, 별명과 그 별명을 갖게 된 배경, 몸무게, 가족사항, 애인의 유무, 취미, 버릇 등등

5. 그 외 할 수 있는 것들
① 시나 시조로 자신이나 조별로 피알(장점)하기
② 이상향 만들기 : 남녀로 구별하여 수련회에 참가한 지체들 중에서 제일 닮고 싶거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찾아서 그림을 완성한 후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③ 나만의 비밀 : 전체 원을 만들어 자신에 대한 남이 모르는 사건이나 실수, 비밀 등을 2가지 말하게 한다. 이때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경우에는 거기에 따른 벌칙을 받는다.

발취: 주안교회 홍종철목사 수련회 계획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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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 잔치 준비


본문: 마10: 5-23

(마10: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마10:6)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10: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마10: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10: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마10:10)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마10:11)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마10: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마10: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마10: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마10: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마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마10:17)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마10:18)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마10: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마10: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마10:21)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마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10: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1. 전도 대상자의 선정
전도를 하기 전에 먼저 누구를 전도할 것인지를 기도중에 선정하여야 한다.
노방전도나 축호전도라면 어느 지역에 가서 어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보다 효과적인 전도를 위해 전도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짙은 전도대상자를 찿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전도를 나선 초보자가 처음부터 까다로운 상대를 만나 거부를 당하거나 승강이를 하게 되면 크게 실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전도대상자가 복음을 받아들일 수용성이 높다는 사실을 참고하면 전도에 도움이 된다.
1). 교회의 성도들과 사회적인 관계망을 가진 사람 (특히 친구, 친척, 이웃, 동료 등)
2). 교회에서 도와 줄 수 있는 어떤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 (영적인, 육체적인 환자, 무의탁 노인, 정신 박약자, 농아자, 미혼모, 맞벌이 부부의 아이, 장애자, 죽어가는 사람과 그 가족 등)
3). 어떤 종류이든 신앙을 경험했던 사람 (근래에 종교, 철학, 애인, 약물, 공상적인 계획, 유토피아적 약속, 또는 자기 자신 등 어느 것에든지 믿음을 상실한 개개인은 자기의 생활을 정상화하고 의욕을 불어넣어 줄 어떤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4). 대규모 문화 변동을 경험하는 주민 (예를 들면 전통적 가치관의 퇴조, 결혼한 가족의 형태나 그 가치관의 변화, 또는 친척의 구조나 형태의 변화, 주요한 경제적 변동, 즉 실업, 낮은 고용 수준,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 기업 합병, 흉작, 공장폐쇄 등.)
5). 일반 대중 (상류층보다)
6). 중요한 인생의 변화를 겪은 사람(인생의 안정기에 있는 사람보다)들이 복음수용에 개방적이 된다.
※. 이제 개인 전도의 경우 다음의 순으로 그 대상자를 기록하자.
1. 백지를 놓고 기도 중 나의 가족, 친척, 직장동료, 학교급우, 이웃, 지인(知人) 중 불신자의 이름을 기록하라.
2. 교회와 관계있던 분들 중 구역카드, 교회학교 각반 학생카드의 가족 중 불신자 혹은 전에 신앙 생활을 하다 쉬는 사람, 그리고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으로 교회에 왔던 사람혹은 다른 장소에서 예배를 같이 드렸던 사람들을 기록하라.
3. 축호전도, 노방전도를 받은 분들 중에 관심을 보인 사람, 더 접근해 보고 싶은 사람 등을 적어본다. 이들 중 이번에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떠오른 사람은 성령님께서 허락하시는 대상으로 믿고 카드에 이름을 기록하라.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다음의 대상들을 참고하여 보라.
(1) 가족 및 친척 (2) 이웃
1) 조부모 1) 주인
2) 부모 2) 세든 사람
3) 아내 3) 앞집, 옆집, 뒷집
4) 자녀 4) 같은 동
5) 친정부모, 장인, 장모 5) 같은 번지
6) 형님, 오빠 6) 반상회 회원
7) 누나, 언니 7) 세탁소
8) 동생 8) 복덕방
9) 외가 9) 관리사무소 직원
10) 삼촌, 외삼촌 10) 이사온 분
11) 사돈댁 11) 자녀들의 친구 부모
12) 고모댁 12) 미장원
13) 처가 13) 주변가게
14) 이모댁 14) 통장집
15) 기타 친척 15) 기타 이웃
(3) 지역 (4) 친분관계
1) 동사무소 직원 1) 친구 중의 불신자
2) 파출소 직원 2) 동창생
3) 경로당 노인 3) 선배
4) 청소부 아저씨 4) 후배
5) 우유, 요구르트 판매원 5) 고향사람
6) 화장품 판매원 6) 종씨
7) 신문 배달원 7) 친목회
8) 학교 선생 8) 믿다가 낙심한 사람
9) 자모회, 학부모회 9) 교회출석 도중 포기자
10) 병원, 은행 10) 구역원 가족
11) 미장원 11) 계모임
12) 야채 판매원 12) 구역원 친척
13) 피출부 13) 구역원 친구
14) 지역유지 14) 구역원 이웃
15) 기타 전지역 주민 15) 기타 친분이 있는 자
(5) 직장 및 생업 (1) 기타
1) 직장동료 1) 거리에서 만난 사람
2) 회장 2) 사거리
3) 사장 3) 정류장
4) 직속상관 4) 역전
5) 부하직원 5) 지하철
6) 기사 6) 개인택시
7) 수위 7) 취미그룹
8) 단골 손님 8) 버스 안
9) 종업원 9) 축호방문 가정
10) 거래처 10) 목욕탕
11) 직장 및 생업에 관련된 사람 가족 11) 현역 군인
12) 그들의 친구 12) 놀이터
13) 직장 주변 사람들 13) 약수터
14) 다방 14) 우연히 인사 나눈 사람

2. 가족, 친척전도
영혼 구원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고넬료 가정은 복음을 받을 때에 고넬료뿐 아니라 온 집안과 친척이 함께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게 되었다. 복음을 받아 들이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약속은 가정을 포함하고 있다. 성경은 부모 형제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말한다.
내 가족, 내 친척, 내 이웃은 가장 시급한 전도의 대상이다.
총력전도를 전후하여 가정에 특별한 행사(결혼식, 회갑, 추도식, 자녀들의 백일, 돌 등)가 있을 때, 불신친척들을 모으고 목사님의 전도를 듣게 하는 기회를 마련한다면 역시 좋은 전도가 될 것이다. 여기에는 전도자 자신의 삶과 행실이 가족, 친척들에게 갖는 영향력이 전도의 많은 부분을 좌우하게 된다.

빌 브라이트는 가장 가까운 가족, 친척, 이웃들의 전도를 위한 전도 전략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1) 당신이 접촉하는 사람들 즉 가족, 친구, 동료, 이웃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하라.
2) 명단에 올라 있는 각 사람들을 위하여 성령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를 갈구하는 마음으로 준비시켜 주시도록 오늘부터 규칙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하라.
3) 다음 한 달 동안에 명단에 올라 있는 각 사람들에게 특별한 사랑의 행동을 먼저 취하도록 하라. 다정하게 집으로 전화를 걸거나, 그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거나 집에서 구운 빵 한 접시를 갖다 주거나 그의 일손을 도와 주거나, 점심이나 저녁 식사에 초대하라.
4) 명단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교회나 그리스도인의 특별한 행사에 초대하도록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사람이 없는지 살펴보라.
5)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초대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도록 하라.
특히 이 친족 전도 문제는 가장 가깝고도 어려운 것 중의 하나이다. 너무 나를 잘 알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족과 친족 전도가 가장 힘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도는 내가 하지만 구원의 역사는 성령의 감동으로 하는 것이 전도 후의 결과이다. 때문에 비관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내가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보여 줄 수 있다면 그만큼 쉬울 수도 있다.

3. 문서전도
1). 기독교 문서의 필요성
오스왈드 제이 스미스는 복음을 가지고 모든 인간에게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인쇄물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그의 신념을 피력한바 있다.
벤자민 플랭크린은 한때 말하기를 “나에게 26개의 납으로 된 군인(Lead Soldiers)을 주면 세계를 정복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물론 26개의 알파벹 주형 타이프를 말하고 있었다. 그는 인쇄물의 위력을 알고 있었다. 한국전체인구의 25%가 기독교 인구라고 하지만 우리의 모든 노력, 우리들의 모든 회의, 우리들의 모든 조직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다수는 복음전도 책자를 알아보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문서전도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하나님께서는 복음전도를 위해서 자신의 세계에 많은 매개체를 쓸 수 있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2). 기독교 문서 전달의 기회
(1)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을 이용할 것. 여러가지 좋은 팜프렛과 소책자를 휴대할 것(당신은 이 소책자를 구경해본 적이 있나요? 이것은 내가 지금까지 읽은 이야기 중에서 가장 흥미있는 이야기 입니다. 당신도 흥미있으리라 생각합니다.)
(2) 개인적인 접촉을 강조할 것
(3) 하나님의 말씀을 직장 동료나 가까운 친지, 친구들에게 전하라.
(4) 가능하다면 언제나 책을 읽어라. 그러면 옆 동료도 호기심이 생겨 읽고 싶어할 것이다.
(5) 물건을 사는 곳에서: 전도 소책자를 전달하는 가장 좋은 장소는 당신이 물건을 사는 상점이다. 상점주인치고 충실한 단골을 빼앗기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때 교회 신문이나 잡지, 기독교 문서 등을 전달한다.)
(6) 거리에서: 주차한 자동차나, 심부름 온 사람에게.
(7) 공공장소에서: 버스나 기차나 비행기에서 옆좌석의 손님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한다.
(8) 당신 집에서: 집에 드나드는 전기 검침원, 수도 검침원, 우편 배달부, 아동서적 판매원, 신문배달 소년, 음식점 종업원 등 주부는 수없이 많은 사람을 접한다. 그들에게 전도책자를 나누어 줄 수 있다.
(9) 우편을 이용해서: 모든 기독교인의 좌우명을 “편지마다 전도지를 동봉한다”가 되어야 한다.

3). 기독교 문서 분배시 주의사항
(1) 깨끗한 옷을 입고 깨끗한 외모를 갖추도록 하라.
(2) 친절하고 유쾌하라.
(3) 대담하고 침착하라.
(4) 소책자를 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다고 느끼게 하라.
(5) 문서를 당신이 손수 전하라.
(6) 팜프렛은 강요하지 말라.
(7) 좋은 팜프렛을 쓰도록 하라.

4). 기독교 문서 분배의 좋은 장소.
(1) 역이나 버스 정류소
(2) 집으로
(3) 시장
(4) 거리 골목에서
(5) 버스, 기차 등
(6) 병원, 교도소, 기타 기관
(7) 우편을 통해서

5). 가정분배
(1) 기도
최초의 가장 중요한 준비는 기도이다. 당신의 일이 기도로써 충만해 있지 않으면 기껏해야 판매 전략과 다를바 없다. 성령이 책 속의 진실을 강력히 느끼게 해야 한다.
(2) 문서
문서는 당신이 분배하려고 하는 지역의 경제적 수준이나 전하는 사람의 지식 수준을 따라 선택되어야 한다.
(3) 가정방문
집문에 접근시: 마음을 가다듬고 문이 열리자 마자 즉시 그리고 부드럽게 제시할 수 있도록 몇 권의 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문간에 있거나 집에 들어갈 때
당신이 예고없이 문간에 나타난 것은 특히 당신이 방문하는 지방이 낯선 곳이라면 놀랄수 있슴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부드럽게 접근해야 한다. 만일 거부반응이 있으면 전도지만 주고 정중히 인사하고 나오라.
구내에 있을 때
당신이 가정 방문을 할 때엔 개인 소유지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신중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문을 닫고 들어간다거나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닦고 들어가는 등의 외견상 사소한 일로 당신의 좋은 인상을 남겨 둔다. 접촉이 짧기에 당신이 떠난 후에 오래 기억되는 것이 중요하다.

4. 전도의 실제 (1)
1). 전도를 위한 영적 준비
(1) 변화된 생활 (고후 5:17)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2) 깨끗한 생활 (딤후 2:21)
(딤후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3) 헌신의 생활 (롬 12:1; 빌 1:21)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빌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4) 동정어린 생활 (마 9:36)
(마9: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5) 인내의 생활 (고전 2:2)
(고전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6) 기도의 생활 (렘 33:3)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7) 성령충만한 생활 (행 1:8)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2). 전도를 위한 인격 준비
(1) 친절하고 명랑하라.
(2) 미소를 지어라.
(3) 활발하라.
(4) 정중하라.
(5) 재치있어라.
(6) 용감하라.
(7) 공감하라.

3). 전도시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
(1) 그리스도인임을 확신하라.
(2) 당신에게 고백하지 않은 죄가 없음을 확신하라.
(3) 당신은 성령 충만을 받았음을 확신하라.
(4)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전하기 위하여 준비하라.
(5) 기도하라.
(6) 사람들을 찾아가라.
(7) 예수님만 전하라.
(8) 결과를 기대하라.

4). 전도자가 가져야 할 여섯 가지 목표
(1) 당신을 좋아하게 만들도록 노력하라.
(2) 상대의 영적 상태를 파악하라.
(3) 그를 복음의 멧세지 앞에 세우라.
(4) 할 수 있으면 그 자리에서 결심을 시켜라.
(5) 다음 주일 교회에 참석케 하라.
(6) 또 방문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고 나오라.

5). 전도의 일곱가지 원리 (요한 4:1-42)
(1) 다른 사람과 사회적인 접촉을 하라 (1-7)
(2) 공동의 관심사를 조성하라 (7-8)
(3)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라 (9-12)
(4) 사람의 관심을 만족시킬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제시하라 (13-15)
(5) 자신을 보게 하는 기회를 만들어야 (:16-19)
(6) 예수님은 주된 논점에서 이탈하지 않으셨다
(7) 그리스도에게 직접 대면시켜라 (19-26)

6). 전도시의 요령
(1) 개인전도의 요령
친절한 태도로 접촉을 시작해야 한다.
전도자가 먼저 자신의 신분을 밝힐 것.
그 사람이 신자인 아닌지를 분명히 물어보라.
‘복음의 핵심’을 말하라.
기회를 잘 포착하라.
담화를 구원 문제의 핵심으로 끌고 가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결신을 촉구할 것.
에수님의 심정을 품으라.

(2) 호별 전도시의 요령
기도의 준비.
둘씩 짝지어 나간다.
미소와 친절한 접촉.
복장은 단정하고 정결하게.
인내심을 가질 것.
팀을 바꾸어 그 집 반응을 놓고 기도한 다음 간격을 두고 방문하라.
방문시간을 잘 맞추어라.
그리스도를 말하라.
칭찬해 줄 일을 말하라.
기도하고 돌아오라.

5. 전도의 실제 (2)
1). 문 안으로 들어가는 요령
(1) 조용히 재빠르게 접근한다.
(2) 그 가족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뜰을 관찰한다.
(3) 크게 5-6회 노크를 하고 한 걸음 물러선다.
(4) 미소로 인사한다.
(5) 자신을 소개한다.
(6) 온 목적을 밝힌다.

2). 집에 들어가면서 하는 일
(1) 친절해야 하고 그 방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한다.
(2) 상대방 옆에 앉는다.
(3) 라디오나 TV.를 끄게 한다.
(4) 무엇인가 칭찬할 것을 찾는다.
(5) 5분 정도 일반적인 대화를 나눈다.
(6) 교회나 교회회원이 되는 문제를 처음부터 말하지 말라.
(7) 자연스럽게 영적인 대화로 전환시킨다.

3). 들어가지 않아야 할 경우
(1) 식사하려고 가족이 식탁에 앉아 있을 경우.
(2) 친구들이 하나 가득 있을 경우.
(3) 남자나 여자 혼자만 있을 경우.
(4) 가족이 외출하려는 경우.
(5) 라디오나 TV의 특별한 프로나 중계를 보고 있을 경우.

4). 복음을 전하는 요령
(1) 천천히 부드럽게 시작한다.
(2) 사랑의 미소로 전한다.
(3) 복음의 내용을 전한다.
(4) 성경 예화나 간증을 몇가지 준비하라.
(5)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라.
(6) 전도지의 내용을 외우도록 노력하라.
(7) 확신을 주도록 노력하라.
(8) 마음에 예수를 모시고 싶은지 아닌지를 묻는다.
(9) 기도를 하겠다고 또는 기도하도록 청하라.
(10) 기도를 마친 후 그의 결정에 마무리 짓도록 하라.
(11) 주일예배에 초대하라.
(12) 예배시 함께 앉는다.

5). 동반자가 할 일
(1) 일반적인 예비 대화에 참여한다.
(2) 전도자와 대상자가 자리를 같이 하도록 돕는다.
(3) 전도자가 영적 대화를 시작하면 자신은 침묵을 지킨다.
(4) 필요한 경우 아이를 본다.
(5) 방해자가 접근시 그와 더불어 이야기를 따로 하거나 어떤 심부름을 시켜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6) 자신도 기도하며 관심을 가지고 본다.

6). 전도자의 수칙
(1) 접근
성령 안에서 행하라.
사람을 두려워 말라.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마치라.

(2) 몸가짐
옷차림은 검소하고 깨끗하게 하라.
입에서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하라.
친구와 같이 대하라.

(3) 휴대품
작은성경
전도지나 소책자
교회안내
결심카드

(4) 인사
웃으면서 인사한다.
얼굴과 눈을 마주보면서 인사한다.
정중하고 친절하게 한다.

(5) 대화
우선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 상대방으로 자유롭게 이야기하게 하라.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한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느끼게 하라.
이름을 자주 부르고 정확하게 발음하라.
이야기 중 그를 곤란하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 하라.
상대방에게 아랫 사람에게 쓰는 말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설교투의 말을 하지 말라.
토론이나 논쟁을 피하라.
의미 없는 상투어를 피하라.
불신자가 이해할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하라.
정치나 잡담을 삼가라.
복음의 적극적인 면을 강조하라.
공포를 주거나 위협적인 말을 하지 말라.

(6) 간증사용
짧은 간증이나 성경예화를 사용함이 효과적이다.
간증할 때
① 예수 믿기 전의 상태
② 예수를 믿게 된 동기
③ 믿은 후 변화된 생활을 말한다
간증이나 예화를 실감있게 한다.

(7) 성경이나 전도지를 사용할 때
성경을 인용할 때 지나치게 장절을 강조하지 말라.
긴 설명을 피하라.
대화식으로 읽어 주어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라.
질문에 지혜롭게 대처하라.
전도지 사용시엔 그대로 읽어 주어라.
중간중간 이해도를 알아보라.
잘 볼 수 있게 함께 잡고 읽어 주어라.
연필이나 볼펜 등으로 읽는 곳을 표시하면서 읽어 주어라.
필요시 그림을 그려 가면서 설명하라.
여러사람이 있을 시엔 개개인에게 전도지를 나누어 주어라.
전도지를 여러번 받고 들었다고 해도 권유하여 받도록 하여라.
다시 만날 날을 약속하지만 거절하면 강요하지 말라.
열매를 상하게 하지 말고 다 익은 열매를 거두라.
전도지에 표현된 복음은 설득이나 판매기술이 아니라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가서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우선 순종하라.
성령의 능력으로 전해진 복음은 틀림없이 그 목적을 성취할 것이다.

(8) 결신
억지로 결신시키지 않는다.
결신했으면 자신이 결신카드를 기록하게 한다.
결신 후엔 확신을 주는 기도를 함께 드린다.
다음 주일 교회로 초청하라.
시간을 약속하고 친히 모시고 온다.
결신 후엔 육성에 최선을 다한다.
결신시키지 못했더라도 낙심하거나 불평하지 말라.
성령안에서 열매를 기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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