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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받지 못하는 기도

 


 

1. 회개가 없는 기도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요9:31) 
 

2. 말씀을 떠난 기도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느니라 (잠28:9)
 

3. 외식적인 기도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6:5)
 

4. 중언 부언하는 기도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 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아시느니라 (마6:7)


5. 의심하는 기도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약1:6~7)
 

6. 정욕으로 구한 기도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 (약4:3)
 

7. 겸손치 않은 기도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대하7:14)
 

8. 악인의 기도 
 

저희가 부르짖으나 구원할 자가 없었고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대답지 아니하셨나이다 (시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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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 창조의 증거 노아의 홍수
 

창조의 증거 노아의 홍수

 

 


① 노아홍수사건의 중요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노아의 홍수사건은 어릴 때는 그저 재미있고 신나는 성경이야기로만 여겨왔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과학을 배운 학생이나 어른이 되었을 때는 현대과학으로 이해하기 힘든 노아의 홍수사건으로 오히려 신앙을 잃어버리거나 신앙이 변질되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지구를 다 덮었다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나 노아가족과 방주에 탄 동물들만 살아 남았다는 기록이나 950세까지 살았다는 노아의 장수 기록은 과학을 배운 현대인들에게는 충분히 신앙의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이 노아의 홍수 사건은 정말 역사적 사실일까요?


먼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리는 왜 이 질문이 중요한 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첫째는 성경적 중요성입니다. 인간의 잘못된 이성주의에 밀려 노아의 홍수가 부정되거나 우리 이해범위 내에서 수정되고 왜곡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전체가 부정되거나 수정되고 왜곡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예언적 중요성입니다. 노아의 홍수는 장차 임할 마지막 심판에 대한 예언적 경고가 됩니다. 노아시대 때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무시하고 먹고 마시다가 다 멸망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노아 홍수사건을 받아들일 때 장차 올 마지막 심판과 주님의 다시 오심을 믿고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는 과학적 중요성입니다. 현대 모든 과학의 바탕이 되고 있는 진화론은 창조론을 부인하며 노아홍수와 같은 과거의 대격변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창조론을 거부하게 될 때 풀 수 없는 수많은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굴레에서 벗어나올 때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를 훨씬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많은 과학적 자료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안에 내용들이 과학적이라는 점이 인정되어야 성경은 역사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또는 그 외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도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란 점이 설득력을 얻을 것입니다.

노아홍수 사건은 성경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홍수사건 자체를 증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홍수사건 이전과 이후의 지구를 설명하는 것도 무척 중요합니다. 지구의 진정한 역사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제 노아홍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② 노아의 홍수는 역사적 사실인가?

a. 노아홍수사건의 연대

먼저 노아 홍수 사건의 연대기를 살펴보겠습니다. 노아 홍수가 일어나기 120년 전에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날이 120년이 되리라(창6:3)'고 하시며 노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혈육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다(창6:13)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창 6:17)'

 

하나님이 경고하신 대로 노아는 120년 동안 날씨가 쨍쨍함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갖고 높은 산 위에 하나님께서 설계해주신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장장 120년 동안이나 수많은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방주를 지은 노아의 믿음은 얼마나 큰 믿음입니까?

노아 600세 되던 해에 정결한 짐승 암 수 일곱씩과 부정한 짐승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에 들어갔으며 노아는 먹을 음식을 방주에 실었습니다.


노아 600세 되던 해 2월 17일. 드디어 40일 밤낮으로 비가 쏟아짐으로써 홍수가 시작되었습니다. 홍수 후 150일간 물이 불어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혔고 땅위에서 호흡하는 동물들은 다 죽었습니다.


홍수가 시작된 지 150일 후 방주는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그후 166일간 물이 감하여져서 노아가 601세 되던 해 1월1일에 땅에서 물이 완전히 걷혔고 그후 57일 동안 땅이 급격히 말랐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대개의 신화집과는 달리 성경말씀은 시간과 장소를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성경이 참으로 역사적이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창세기에서 단지 1년 동안에 일어났던 노아의 홍수 사건에 대하여 매우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홍수 전후의 어떠한 역사적 사건도 이 홍수 이야기만큼 자세하게 기록되지는 않았습니다. 홍수가 일어났던 그 1년간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 중에서 가장 세밀히 기록된 한해일 것입니다. 이것은 노아의 홍수가 인류와 지구에게 미친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그 심각성을 증거해 줍니다.


b. 방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중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창 6:14-16)"     ※ 1규빗 = 46~56cm


노아의 가족 8명과 많은 동물들을 태운 방주는 3층으로서 길이가 135미터, 폭 23미터, 높이 14미터의 거대하고 길다란 직사각형 상자와 유사합니다.

길이로는 축구장 길이보다 더 길며 면적으로는 20개의 농구장보다 더 큽니다. 과연 이 용적으로 모든 동물들을 쌍쌍이 싣기에 충분했을까요?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 중 덩치가 커다란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는 종으로 따지면 약 17,600종이 있습니다. 이 종류대로 각각 쌍쌍으로 실렸다면 35,200마리가 방주에 실려야 합니다. 이들은 모두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평균하여 어른 양으로 환산해 볼 때, 방주는 125,280마리의 양을 실을 수가 있습니다. 서너배나 더 실을 수 있는 용량입니다.


현대 과학자들이 성경을 기초로 모형방주를 만들어 실험한 적이 있는데 이 방주는 큰 파도에도 빨리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높은 안정도를 지니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조선 건축가 디키씨는 미국 전함 U.S.S오레곤호를 설계할 때 노아가 방주를 건조할 당시 이용했던 것과 동일한 설계비율을 사용했었습니다. 미 해군에서는 U.S.S오레곤 호를 지금까지 건조된 것 중 가장 견고한 군함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노아의 방주와 같은 의미로 아기 모세가 나일강에서 탔던 바구니를 지칭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방주는 내부에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노나 키가 없었습니다. 단지 뜨기만 하고 조정이 불가능하여 물결이 흘러가는 대로 움직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기 모세를 광주리에 담아 공주의 양자로 보내시듯 노아의 방주도 인도하신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에는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수많은 크고 작은 동물들이 탔는데 어떤 과학자들은 배설물을 수거하고 음식물을 먹이는 일은 방주 안의 8명의 사람이 하기는 너무 벅찬 일이다라고 주장하며 노아의 홍수 사건을 부인하려 합니다.


창세기 8:1에 보면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라고 되어 있는 것을 미루어 볼 때 하나님의 특별하신 돌보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물들에게 주신 신기한 능력중의 하나는 공기가 탁하거나 기온이 떨어지고 빛이 줄면 이에 적응하기 위해 동물들이 '동면'을 하는 것입니다.

새들은 동면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최근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푸우월'같은 새는 동면하는 것으로 알려져 새들도 동면의 잠재적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면의 신비는 과학자들에게는 아직도 비밀에 싸여 있습니다. 동물들의 이런 능력은 노아의 대홍수 기간 중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아, 노아의 홍수 중 내내 잠을 자 8명의 노아 식구들이 그 많은 동물들을 돌보는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c. 홍수의 시작


창세기 7:11에 의하면 노아의 홍수는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림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노아의 홍수라하면 비만 많이 왔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에는 분명히 이 두가지 사건으로 홍수가 시작되었다고 기록합니다.

먼저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는 사실부터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의 하늘과 연결이 됩니다. 창세기 1:6에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위의 물로 나누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창 1:6~7)'


그래서 하늘의 창들이 열림으로 궁창 위의 물들이 땅에 떨어져 40주야의 비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현존하는 대기권에서는 이와 같은 궁창 위의 물은 없이 오존층 만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태초에 대기권과 현재의 대기권과는 달랐다는 이야기입니다.

궁창위의 물은 거대한 담요처럼 보이지 않는 수증기 형태로 지상을 뒤덮었을 것입니다.

현존하는 대기권에는 존재하지 않는 궁창위의 물은 그 당시의 기후계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먼저 궁창위의 물은 지표로 날아오고 있는 고 에너지를 지닌 고주파 방사선을 완전히 제거해주는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고주파 방사선은 인간의 세포를 파괴하고 급격한 노쇠현상을 일으킵니다. 예를 들어 고주파의 하나인 X선과 같은 것은 인간에게 극히 해로워서 임산부가 X선 촬영을 두 번이상 하게 되면 태아에게 해롭습니다. 또한 이 고주파는 지상에 있는 공기 중 산소와 충돌하여 인간에게 아주 해로운 물질인 오존을 형성 시키기도 합니다. 궁창위의 물은 이런 고주파 방사선을 완전히 제거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한편 궁창위의 물은 태양으로부터 오는 저주파 중 열선을 흡수하고 산란시키며 재반사시켜 전 지구 상에 열선을 골고루 분산시키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 수증기층(궁창위의 물)는 별들로부터 오는 빛에 대하여 반투명했지만, 놀랍게도 지구상에 온실역할을 하여 극에서부터 극까지 지구 전체를 항상 온화한 기온으로 유지시켜 주었을 것입니다.

 

궁창위의 물이 없는 현재는 열선이 골고루 분산되지 못하기 때문에 열선을 많이 받는 적도 지방은 따뜻하고 적게 받는 극지방은 춥지만 궁창위의 물이 있을 경우에는 지구상의 온실 효과를 일으켜 전 지구상에 걸쳐 27°정도의 일정한 온도를 지닌 아열대 기후가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노아홍수 이전에는 고온다습한 기온이 계속되었다는 증거를 지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질학적 발견을 통하여 사하라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막은 이전에 물이 풍부한 습지대였음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후커는 북극의 높은 지대에 단단한 활엽수의 숲이 무성하게 성장하여 존재했다고 말합니다. 패튼은 남극에서 발견된 나무줄기 자국과 석탄 및 목판으로 보아 남극의 기후가 한때 온대 또는 아열대였다고 말합니다.

기후가 세계적으로 온화하며 일정불변했다는 더욱 명확한 증거는, 시베리아 북부 한대지방의 얼어붙은 땅에서 아직도 익은 열매와 초록색 잎이 달린 과일나무가 쓰러져 발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극지방의 빙하에서는 아열대와 온대지방에서 자라는 식물을 먹고사는 맘모스와 코뿔소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d. 궁창위의 물


궁창위의 물은 존재했는가


그렇다면 과연 궁창위의 물이 존재하였다는 증거가 있을까요?

먼저 성경에서의 증거를 찾아봅시다.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 2:6)'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개만 형성되었다는 이야기는 지구가 극지방이나 적도지방이나 온도차가 별로 없어 바람이 불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궁창위의 물에 의해 지구 전체가 일정하고 따뜻한 기후였다는 말입니다.

또한 성경에 보면 노아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대부분 900세 이상 장수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대기의 조건으로는 과거 인간이 900살 이상 살았다는 사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온도의 급격한 변화가 없는 사시사철 따뜻한 기후에다 사람에게 해로운 고주파를 완전히 제거해주는 창세의 생태계를 미루어 본다면 이해될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서 보면 노아 홍수 이후 믿음의 조상들의 수명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벨렉은 239세, 아브라함은 175세, 모세는 120세, 그리고 다윗은 오늘날의 사람의 수명과 비슷한 70세까지 살아서 인간의 수명이 급격히 감소해 온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노아 홍수 이후 궁창위의 물이 사라짐으로써 기후계와 생태계에 급격한 변화가 생겨 사람의 수명이 급격히 감소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창조하신 세계는 참으로 아름답고 살기 좋은 환경이었지만 인간의 죄에 의하여 최초의 창조의 세계는 파괴되어 살기 좋은 환경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홍수 이전의 환경에서는 사람의 수명이 길었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동물이 살 수 있었습니다. 대홍수 이전의 인간으로 추정되는 네안데르탈인이나 크로마뇽인의 머리용적은 현대인보다 크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며 성경에도 창세기 6:4에 보면 당시에 네피림이라 불리는 거인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미국 텍사스 주에 있는 파록시 강하 상에서는 공룡의 발자국과 인간의 발자국이 동시에 발견되었습니다. 이중 사람의 발자국은 길이가 38cm나 되었습니다. 인간의 발자국이 공룡의 발자국과 함께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과학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진화론에 의하면 공룡은 약 1억3천만년 전에 멸종되었으며 인류는 3백만년전에야 출현하였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들의 발자국이 동시에 동시대에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말씀대로 인간이나 공룡이나 한 번에 창조되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공룡은 거대한 동물의 대표입니다. 현재 공룡화석은 상당한 수가 발견되고 있어 과거 한때는 엄청난 크기의 공룡이 지구상에 살았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공룡이 지구상에서 사라졌습니다. 이러한 거대한 동물들이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로는 거대한 동물들은 온도 변화에 약하기 때문에 기후의 변화가 심하지 않아야 하며, 둘째는 거대한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풍부한 식물이 있어야 하는데 노아 홍수 이전의 환경은 이런 조건을 만족시켜 줍니다. 현대과학은 아직도 어떻게 그렇게 덩치 큰 공룡들이 지구상에 살 수 있었으며 왜 공룡이 갑자기 사라졌는지를 분명히 설명해 주지 못하나 성경은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현재 공룡의 멸망에 대해 가장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운석충돌설]입니다. 오랜 옛날 우주로부터 지름이 몇km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의 운석이 떨어져 그 영향으로 공룡이 멸망했다는 것입니다. 그 운석이 지구와 충돌할 때 생긴 열과 먼지 등으로 인해 지구 전체가 뒤덮히고 그에 따라 온도도 낮아졌을 거라고 합니다. 수년간 그런 현상이 지속됨에 따라 덩치가 컸던 공룡들은 멸망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운석충돌설]의 가장 큰 근거는 공룡화석이 발견되고 있는 지방 근처에 이리듐이라는 특수물질이 많이 발견되는데 이 물질은 운석에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에 뒤덮힌 운석가루가 공룡이 화석이 될 때 같이 묻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리듐은 땅에서는 별로 발견되지 않고 우주에서 날아온 운석이나 지구의 땅 속 깊은 곳에 있는 것입니다.

[운석충돌설]은 몇 가지 이해되지 않는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그렇게 큰 운석이 지구에 떨어졌다면 지름 수십 내지는 수백 km에 이르는 구덩이가 발견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구상에 그렇게 큰 구덩이는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학설을 발표한 과학자가 몰랐던 것은 화산이 폭발할 때 나오는 화산재에도 이와같은 이리듐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노아 홍수 때 비가 오기 전에 '큰 깊음의 샘' 즉 화산이 터졌다고 성경말씀은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공룡주위에 이리듐이 많이 발견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태초에 공룡이 있었다는 것은 성경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욥기 40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제 소같이 풀을 먹는 하마를 볼지어다. 내가 너를 지은 것 같이 그것도 지었느니라. 그 힘은 허리에 있고 그 세력은 배의 힘줄에 있고 그 꼬리치는 것은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 같고 그 넓적다리 힘줄은 서로 연락되었으며 그 뼈는 놋관 같고 그 가릿대는 철장같으니 (욥 40:14~18)'


라고 태초의 동물 하나를 소개했습니다. 하마는 별로 대단치 않은 꼬리를 가졌는데 성경말씀에는 꼬리치는 것이 백향목 흔드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는 강하고 굵은 꼬리를 가진 공룡을 의미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전 지구에 걸쳐 아열대권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보여 궁창위의 물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삼을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을 놀라게 한 사실 중의 하나는 남극과 북극에서 아열대 지방에서만 자라는 활엽수 숲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현재 시베리아에서 자라고 있는 가장 큰 나무는 2.5m정도인 버드나무인데 초록색 잎을 지닌 2.7m크기의 과일나무가 발견되었습니다. 더욱이 시베리아에서는 전신에 살점과 털이 남아있는 여러 마리의 맘모스 화석이 발견되었습니다.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일대에 500만구 이상의 맘모스 화석이 있을 것이라 추정합니다. 거대한 동물인 맘모스가 시베리아에서 살았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이 맘모스 해부해 보니 맘모스가 먹는 음식이 나왔는데 이것은 화산재가 섞여 있는 아열대 식물임이 밝혀졌습니다. 이것은 맘모스가 살 당시의 시베리아는 지금과 같은 추운 지방이 아니라 따뜻한 지방이었음을 이야기해 줍니다.


이와같은 증거들은 궁창위의 물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잘 설명될 수가 없습니다. 하늘의 창이 열려 궁창위의 물이 사라짐으로써 이제 우리가 볼 수 있는 대기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극지와 적도 사이에 큰 온도차가 생기기 시작했으며 극지의 물은 얼어붙어 빙하가 형성되었습니다. 이 온도차가 기압차를 일으켜 창세기 8:1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큰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사람의 수명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하였으며 이제 거대한 공룡은 멸종하였습니다.

홍수가 끝나고 노아가 단을 쌓고 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8:22에서 사계절과 추위와 더위가 쉬지 않고 계속되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창 8:22)'


사라진 궁창위의 물

앞에서 하늘 위에 엄청난 양의 수증기층이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늘의 창들이 열렸을까요?  창세기 7장 11절의 기록에 보면 하늘의 창들이 열리기 전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졌습니다.

'노아 600세 되던 해 2월, 곧 그 달 17일이라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창7:11~12)'

 

이는 지하수가 터지고 화산이 폭발하는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났음을 의미합니다. 화산이 폭발할 때 하늘로 분출된 엄청난 양의 사진(沙塵)으로 인하여 화산진 주위에 궁창위의 물이 응축되어 강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과정은 오늘날 인공강우를 위하여 구름에 약품을 뿌리는 것과 유사합니다.

1883년 인도네시아의 쟈바섬과 스마트라섬 사이에 위치해 있는 크로카토아에서 화산폭발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이 때 화산재는 27km이상 치솟았고 이 화산재로 말미암아 그 근처 주민들은 대낮에도 등불을 켜야 했으며 수 천만톤의 화산진이 3년에 걸쳐 지상에 떨어져 마을과 숲을 덮쳤습니다. 화산으로 생긴 해일은 높이가 15m나 달했으며, 화산폭발 후 6주일 동안이나 전세계적으로 초우가 계속되었고 3년간 사진(沙塵)으로 인해 기온이 뚜렷하게 내려갔습니다. 화산의 폭발이 비와 날씨에 큰 영향을 준 예입니다.

e. 홍수의 끝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150일 후에 감하고 칠월 곧, 그 달 17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며 물이 점점 감하여 10월 곧 그 달 1일에 산들이 봉우리가 보였더라 (창8:2~5)'

노아의 홍수 때에 비만 내린 것이 아니고 엄청난 지각변동도 같이 일어난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40일 동안 비만 내렸다면 방주는 지리적으로 볼 때 유프라테스강을 흘러 페르시아만으로 빠져야 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에는 방주가 북쪽 지방에 있는 아라랏산에 도착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의 해결점은 깊음의 샘들이 터졌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바다속에 있는 화산이 폭발함으로써 엄청난 해일이 일어났으며 육지는 가라앉고 바다는 솟아오르는 지각 변동이 일어나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육지에 침범해 들어왔습니다. 현재 수많은 활화산을 지니고 있는 환태평양 화산대는 그 당시의 화산폭발에 대한 흔적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흔히 지구를 덮었던 그 많은 물들이 지금은 어디에 가 있느냐고 말합니다. 과연 노아 홍수 때에 지구를 다 덮었던 물은 어디에 있을까요?

지구의 70%는 바다로 덮혀 있습니다. 나머지 30%만이 바다위에 육지가 올라와 있습니다. 요즘 신문에 자주 나는 이야기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있다. 그에따라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녹고 있으며 얼음이 모두 녹을 경우 지구는 바다로 덮힐 것입니다.

남극과 북극에는 엄청난 양의 물이 얼음으로 덮혀 있습니다. 만약 지구를 평평하다고 가정한다면 바닷물의 거의 2.4km의 깊이로 전 지구의 표면을 덮을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 기후가 변하여 많은 양의 물이 북극과 남극으로 가서 얼었을 것입니다.

예전에 국내의 각 신문들이 아프리카 북부 리비아에서 대수로 공사를 마친 한 건설회사의 활약상을 크게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것은 리비아 남부 사막지대의 저수지에서 리비아 북부 해안의 주거지역으로 큰 수도관을 통하여 물을 끌어올리는 거대한 사업이었습니다. 1차 공사의 총연장 길이만 하더라도 1,872km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는 것은 아프리카 사막지대에 무슨 물이 그렇게 많기에 그토록 큰 수로공사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의 보고에 의하면 사하라 사막 밑에는 나일강이 2-3백년 흘러 고일 만한 수량과 맞먹는 담수가 저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여 훨씬 더 많은 물을 다양한 방법으로 저장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f. 노아홍수의 간접적인 증거

염호

염호란 짠물을 지닌 호수를 이야기합니다.  과거에 과학자들은 육지상에 있는 호수들 중에 왜 짠 호수가 있을까하고 의심을 가졌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과학자들은 호수는 오래되면 짜게 변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연구결과는 호수는 아무리 오래되어도 짜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스라엘에 있는 사해는 염호로 유명합니다. 터어키 동부 지방에 위치한 만호는 해발 1700m에 있는데 다량의 염분을 함유하고 있으며 바다에 사는 청어가 이 호수에 서식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란에 있는 우르미아 호는 해발 1470m에 위치하며 염분의 함유량은 23%나 됩니다.  그 외에도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몽고 지방의 고비사막에는 사라져가는 수많은 염호가 있으며 해발 3800m의 안데스 산맥에 있는 티티카카호는 그 넓이가 480㎢나 됩니다. 현대과학은 어떻게 해서 바닷물이 이렇게 깊숙하게 높은 데까지 침범하였는지 이야기 해주지 못하지만 성경은 이러한 염호들이 노아의 홍수 때 생겼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승되어오는 이야기

적어도 전세계 200여 국가와 종족의 고대 전설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물론 성경은 창세기 뿐 아니라 성경 전체를 통해서 이 전지구적인 대격변의 역사적 실재에 대하여 명백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전 627년에 죽은 앗수르왕의 왕실서고에서 길가메쉬평판이라 불리는 점토평판이 발견되었는데 창세기의 대홍수사건과 많은 유사성을 가진 홍수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동일한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동일한 사건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에도 대홍수를 극복함으로써 이름을 떨친 옛 선조 '누와'의 자손이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미국 인디언들에게는 58개의 대홍수 이야기와 오래된 석판들이 전해 내려옵니다.

대홍수 이야기가 이렇게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것은 부분적인 사건이 아니고 전 세계적인 사건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방주가 도착한 아라랏 산

아라랏 산은 터어키와 러시아, 이란의 국경선 부근에 위치한 산들입니다. 최고 높은 곳은 5160m로 방주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1856년 이래로 23회 이상 200여명의 사람들이 빙하에 파묻혀 있는 방주를 아라랏 산에서 목격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방주를 발견하기 힘든 이유는 평상시에는 방주가 빙하와 눈으로 덮혀있어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근처에서 눈사태가 나거나 날씨가 풀려서 눈이 녹으면 빙하에서 드러난 검은 목조 건물로 된 방주의 일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1883년 시카고 트리뷴지에는 그 해 8월 터어키 정부가 노아방주를 발견하였다고 정식 발표하였다는 기사가 게재되었습니다. 1955년에는 나바라라는 소년이 방주를 발견하고 그 일부라고 믿어지는 목재를 가지고 하산하였습니다. 그 나무는 유프라테스 평원에서만 나는 나무임이 밝혀졌습니다.(유프라테스강 유역은 노아가 방주를 건축한 장소로 추정되는 지역)


현재 아라랏 산은 여러나라의 국경선에 위치하여 군사지역으로 되어 있어 이 산의 탐험이 통제되고 있습니다. 방주의 발견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경종이 되고 복음을 증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적절한 시기에 우리들에게 방주의 발견을 허락하시고 역사상 최고의 유물인 그 웅장한 모습을 우리들에게 공개하실 것입니다.


화석

우리가 알고 있는 화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층의 맨 아래에 하등동물의 화석이 발견되고 점점 위로 올라갈수록 고등동물의 화석이 발견됩니다. 진화론에서는 이를 생물의 진화를 나타낸다고 하고 '지층기둥'이라 부릅니다. 여기서 문제점은 지층기둥과 지층기둥사이에 중간형태의 화석이 단 한점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모순은 대홍수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150일 동안 물이 지구를 덮고 있을 때, 민첩하지 못한 하등동물이 가장 먼저 밑부분에 가라앉게 되고 더 민첩한 동물일수록 나중에 가라앉게 됩니다. 따라서 중간단계의 화석은 나올 수 없고 지금의 지층기둥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홍수의 마지막, 57일만에 땅이 굳었습니다. 지구의 대부분을 덮고 있는 암석은 퇴적암입니다. 퇴적암은 침전물이 암석화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것으로 지구의 대부분에 걸쳐 퇴적암이 있다는 사실은 전 세계적 홍수의 한 증거가 됩니다. 과거에는 퇴적암이 동일과정설에 따라 장구한 세월에 걸쳐 형성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최근 수력학적 분석에 의해 한 달 내외의 짧은 시간 내에 형성되었음이 밝혀졌습니다.

현재의 에너지원인 석탄과 석유도 그 당시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석탄은 대량의 식물유기체가 탄화되어 형성된 것입니다. 석탄층 속에 나무줄기가 발견되는 것은 석탄층이 틀림없이 급격하게 형성되었음을 말해줍니다. 석유는 수억의 동물들이 함께 매장되어 변화된 잔존물이라 여겨집니다. 노아홍수 당시 동물들이 물결에 휩쓸려 뭉쳐다니다가 엄청난 양의 동물들이 함께 매장되어 형성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현대과학이 잘 설명하지 못하는 엄청난 석탄과 석유의 매장을 성경은 노아홍수사건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③ 노아홍수 사건의 이전과 이후


노아홍수 사건 이전과 이후의 변화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궁창위의 물이 없어짐에 따라 기후가 변하게 되었습니다. 아열대 기후가 바뀌어 여름과 겨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창 8:22)

전체적으로 온난한 기후로 비가 내리지 않다가(창 2:5)

홍수 이후 현재와 같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창 7:12)

무지개가 나타났습니다.(창 9:13) 홍수 이후 궁창위의 물이 사라지므로 최초로 나타났습니다.

19세기 인디언들이 살았던 지방에서 발견된 석판에서 사람의 눈 모양의 찌그러진 태양의 모습이 발견되었습니다. 궁창위의 물에 의해 납작해 보였으나 오늘날의 태양은 둥근 모습이 되었습니다.

수백년을 살았던 인간의 수명이 궁창위의 물이 없어짐으로 인한 여러가지 영향으로 짧아졌습니다. 점차 줄어 다윗에 이르러는 70정도로 짧아졌습니다.

수억의 동물과 식물이 매몰되어 석탄과 석유층이 생겼습니다. 석탄과 석유는 생물체의 잔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기름을 만드는 데는 실험실에서 20분 이내면 가능합니다. 또한 석탄은 아주 순식간에 온도와 압력의 조절에 의하여 목재로부터 형성될 수 있음이 실험적으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산들은 비교적 낮았을 것입니다. 홍수는 지구상에 큰 지각변동을 가져다 준 계기가 되었습니다.(시 104:8) 바다는 비교적 얕았을 것입니다. 홍수 이후 산들과 마찬가지고 해구 등이 생겨나는 등 깊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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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문제 :: 가정의 갈등

 

 


 
갈등이란 어원은 칙과 등나무는

꼬여 감고 올라가는데 감는 방향이 상반되므로

일이 꼬이는 것을 갈등이라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갈등없는 가정은 없다.

겉으로 단란해 보이지만

찬찬히 속을 들여다보면 가족끼리 서로 갈등하며

속 끓이고 사는 집안이 의외로 많다.

 

사람은

누구나 가정 속에서 살다가 죽음과 더불어

가정을 떠난다.

태어날 때부터 무 선택으로

주어진 본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미우나 고우나

거기에 뿌리를 내릴 수 밖에 없다.

한 인간으로 볼 때

사랑과 미움이 최초로 싹튼 것도 바로 가정이다.

사회 공동체의 기초 단위로써

가정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자식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다

험악한 사회에 나가

경쟁을 이겨내고 뭇 사람으로 부터 존경받는 자식을

갖고자 하는 부모 마음은 한결같다.

그러나 부모들의

자식 키우는 방식의 문제로 삐뚤어진 인간형으로

왜곡시키는 일이 많다.

자식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소유물 다루듯이 하는 과보호,

부모욕심 앞세운 과잉 기대 등이 문제가 된다.

 

둘 이상이 모이면

갈등관계가 성립되는 것이 인간사회로

부모와 자식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다.

종래의 동양적

대가족이 현대적 핵 가족으로 바뀌면서

갈등의 양상은 복잡해 졌다.

 

아버지는

애비의 속마음을 몰라주고 대들기만 하는 자식이 괘씸하고

아들은 아들대로 젊은 자식세대를 이해 못하는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가까운 피붙이 일수록

애증이 더 미묘하게 충돌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 진다.

부자간의 갈등은 기본적으로 세대차이라는 원인 분석이 있다.

그렇다면 세대 차이를 줄이면 될 일이다.

서로 흉금을 털어놓는 대화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통상 30년을 한 세대로 잡던 옛날과 달리

지금은 쌍둥이 형제간에도

세대 차이를 느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태는

급변하고 있다.

대화로 세대차를 좁히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서로 노력하고 찾아보면 방법은 있을 것이다.

또 있어야 한다.

 

우선 세대차이가

크다는 것만은 가치관의 공유가 없거나 있어도

희박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바로 여기에도 문제 해결의 한 실마리가 있다.

앞뒤세대가 각기 신봉하는 가치관의 외형은 서로 다르다 해도

분명히 공통분모가 있을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기본이치와 지혜는 세대가 바뀐다고 기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그런 공통분모를 열심히 찾아

공감대를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마다 다른 삶의 영역, 다른 인생관의 뿌리를 둔

인격체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이해 도록

노력해야 한다.

 

너무 큰 것을서로 무리하게 요구해서도 안 된다.

부모하고 자식 간에

가로 놓인 세대의 벽이 아무리 높다 한들

나무라고 원망하기 보담 서로 이끌어 주고 공경하는

선후배 관계에 설 때

일상의 사소한 갈등 쯤이야 무슨

문제꺼리가 되겠는가

노력해야할 삶의 기초공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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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효과적으로 읽는 방법

 

 기독교 칼럼니스트 제리드 윌슨은 자신의 블로그에 "성경을 읽을 때 반드시 해야 할 9가지(9 Things Everyone Should Do When Reading the Bible)"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성경을 읽는 능력을 향상하며, 효과적으로 읽을 수 있게 도와주는 방법들을 제시했다.

윌슨은 "성경에 대한 순수한 관심과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펴서 읽기 시작한지 8년이 지났다. 대부분 성경을 가까이 하고자 해왔지만, 사실 대부분은 내 방 선반 한구석에 먼지만 성경책 위에 쌓여가고 있다. 먼지를 털고 크리스마스 이브 때나 부활절 예배 때만 그 성경책을 꺼내 보게 된다"고 말했다.

 

윌슨은 "내 삶에서, 성경책은 단순한 책 이상의 책이다. 내 인생의 모든 물음에 해답을 주는 책은 성경책 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 현재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의 필요를 더 많이 느끼게 된다"면서 성경을 읽을 때 도움이 되는 9가지 습관을 제시했다.

 

1. 메모하라

윌슨은 "세 차례 이상 그것을 반복해야 어떤 것을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 적거나 메모하거나 모바일 메모장에 기록하는 것은 단순히 통독한 부분을 기억하게 도와줄 뿐 아니라 영적인 여정 가운데 무엇을 읽고 묵상했는지 알려 주며, 다시 말씀을 묵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조언했다.

 

2. 질문을 많이 던져라

윌슨은 "질문을 많이 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마음속에 떠오르는 질문들을 많이 하라고 권면하고 싶다. 많이 물어볼수록 지금 읽고 있는 성경 내용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왜 이 성경구절이 나오게 되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라며 "성경을 공부할 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을 때 대충 추측하고 넘어가지 말고 그 부분에 대해 질문을 해보라. 그리고 질문의 요지가 무엇인지 분명히 해보라.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물음에 답해주실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3. 학습자의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라

윌슨은 "성경을 읽을 때마다 늘 처음 성경 구절을 읽는 다는 마음으로 읽으려고 노력한다. 내 생각과 영혼의 문을 열어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화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런 겸손의 마음으로 읽을 때, 수천 번 넘게 읽었던 성경 구절

들이 전혀 새로운 각도로 다가오고 새로운 영감들을 줄 것이다"라며 "이미 아는 내용이고, 충분히 이 본문을 통해 배울 것은 다 배웠다는 생각을 버려라. 늘 배우고자 하는 학습자의 마음으로 성경을 본다면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4.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을 버려라

윌슨은 "성경을 읽기 전에 이미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을 버리라고 조언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진정 나에게 가르쳐 주시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간절히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해보라. 그러면 성령께서 말씀의 깊은 세계로 당신을 인도할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5. 삽화와 시적 방식으로 성경 본문을 시각화 해보라

윌슨은 "학교 교과서를 읽는 기분으로 성경을 읽는 것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을 시 한편이나 삽화처럼 읽어 볼 것을 추천한다. 나에게 이 방식은 창조적이고 성경을 공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면서 "세속적 학습교과서를 읽는 것 같은 지루함에서 벗어나, 영혼에 자극을 주고 상상력을 자극하여 말씀을 더욱 생동감 있게 이해하게 도와주었다. 성경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며 각각의 말씀들은 이 세상을 밝히는 빛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시각화를 통한 자극은 성경을 더욱 읽고 싶도록 할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6. 시간을 갖고 잠시 멈춰 읽은 부분에 묵상하라

윌슨은 "말씀에 대한 적절한 묵상과 명상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고자 하시는 많은 부분을 놓치게 된다. 성경을 읽을 때의 건강한 습관은 잠시 성경 읽는 것을 멈추고 읽은 부분에 대해 소화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온전히 이해했는지, 내가 읽은 부분은 어떤 것인지 묵상하고 나에게 적용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성경은 절대 급하게 읽어 내리는 책이 아니라 인내심을 가지고 묵상하고 온전히 나의 것으로 소화시켜야 하는 책이다"리고 강조했다.

 

7. 한 개 이상의 주석(해석본)과 비교 대조해 보라

윌슨은 "다양한 종류의 주석(해석본)의 장점은 한 성경 구절에 대한 다양한 각도의 시각이 있음을 알게 디고, 다른 사람의 관점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을 때 한 개 이상의 주석(해석)을 두고 읽고 하나하나 비교 대조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서로 다른 대조적 주석을 통해 성경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더 넓고 깊어지게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8. 이해가 되지 않는 단어나 예화가 있다면 시간을 들여 깊이 연구해보라

윌슨은 "모든 성경 구절들은 목적이 있고 그 어떤 한 구절도 우연히 있게 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시간을 들여 이 한 구절 한 구절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찾아보라.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공부해보라. 이를 통해 왜 이것을 기록했으며 그 배경은 무엇인지 알게 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이어 "적용은 진리인 성경의 소프트웨어와 같다. 또한 키워드 중심의 성경 공부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성경 단어나 구절을 공부하도록 도와 다음 단계로 나가도록 실력을 향상시켜 줄 것이다"라고 말햇다.

 

9. 당신의 생각이나 질문을 가지고 주위 사람들과 토론해보라

윌슨은 "주위 사람들과 토론하고 묵상을 같이 하는 것은 성경 통독을 한층 더 흥미 있게 할 것이다. 공동체는 기독교인의 삶의 핵심이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깨닫게 하셨는지에 대해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나누는 것이 기독교인의 굳건하고 흔들림 없는 믿음의 기초를 세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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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올바른 신분 (Correct identity of Saints)

고린도전서 7:18-2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어 자녀를 삼아주신 참뜻을 알게하는 내용입니다. 본문은 즉 유대인이 기독교인으로, 그리고 이방인이 기독교인으로 개종하게 되었을 때 야기된 신분의 문제에 대한 교훈의 말씀입니다. 곧 비기독교인이 기독굥ㄴ으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자신에게 일어난 신분적 변화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는 우리들에게 부르심의 참뜻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의 길로 불러 주셨을 때,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갖고 있던 세상의 신분을 과감하게 던져버리고 전혀 다른 새로운 가야하는지 아니면 어떤 자세로 기독교인이 된 새로운 변화를 수용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여 오늘의 제목은 "성도의 올바른 신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한 시간 저와 여러분들이 큰 깨달음으로 은혜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사도는 이때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할례를 받은 유대인도 있었고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도 많이 들어왔으며 자유인도 복음을 받고 교회에 들어왔으며, 종들도 복음을 받고 교회에 많이 들어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가지 신분이 다른 분들이 신자가되어 교회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아마도 서로 무엇인가 어색한 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분명히 해두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다같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예수를 믿고 구원 얻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 신분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1. 할례를 받았던지 안받았던지 동일하다는 것(18-19)

즉, 유대인으로 할례를 받았던 사람이나 이방인으로 할례를 안받은 사람이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할례는 옛날 아브라함때부터 시작한 것인데 아브라함의 자손이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의 표로써 할례를 행했습니다.

유대인은 남자로서 출행후 8일만에 행하였으며 이방인 중에서 돈을 주고 사온 사람이나 또 개종한 사람도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할례를 받은 분들은 자기들은 선민이라고 우월감을 가지고 뽐내며 살아왔고, 반면에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은 천시되어 온 경향이 있는데 이 관습이 그대로 영향을 끼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자는 할례 받았다고 우월할 것도 없고, 할례를 못받았다고 비굴할 것도 없고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2. 종이든지 자유자든지 그리스도 안에서는 동일하다는 것입니다(20-24)

그 당시 헬라의 정부나 로마의 정부는 종의 제도를 정해왔기 때문에 종이 많았습니다. 종들이 종으로 있으면서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고, 또 자유자로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 이들은 다 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값을 지불하고 죄에서 저들의 영혼을 꼭 같이 해방시켜 받았기 때문에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육의 종도 그리스도 안에서 심령의 자유자가 되었고 육의 자유자도 물론 심령상 자유자임과 아울러 그리스도의 종이니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육의 종도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할 그리스도의 종이요, 자유자도 역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그리스도의 종이니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 물론 육의 종된 사람이 남에게 매인바 되어 육신의 불편이 있을 수 있으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람을 섬기는 것 뿐이라는 직업의식을 가질 때 그 삶의 그대로 가치가 있는 것이요 자유자도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 자유를 옳게 사용해 나갈때 그분은 그분대로의 삶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안에 들어와 사는 사람에게는 차별이 없습니다. 오늘날도 아무리 직업이 천차만별이라 하더라도 그 삶의 목적이 즉 직업을 지키는 목적은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삶기위한 것이라 할 때 각기의 삶은 다같은 의의를 가집니다. T.V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하루 만개의 부속품을 끼우고 주부들은 셀수도 없는 자질구레한 집안 일로 하루 수 십리를 종종걸음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될 때 그 삶은 다 의의가 있고 가치가 있습니다.

사람이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며 사는 일이라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는 차별이 없습니다. 할례 받은자나, 무할례자나, 종이나, 자유자나, 양반이나, 상놈이나, 귀족이나, 천민이나, 부자나, 가난뱅이나, 유식한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막론하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동일합니다.

여기에서 기독교는 인류에게 세가지 귀중한 진리(교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모든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이 없다는 교훈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그 사람의 신분의 고하, 직업의 귀천, 계급의 차별이 각각 있지만 그리스도안에 들어온 사람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다 같으며 인간적으로 차별이 없으며 다 같은 형제요, 자매요, 부모요 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자들은 계급을 타파하고 계급없는 사회를 만든다고 야단하지만 그들은 입으로만 동무로서 통일했을 뿐 그것도 김일성일가에게는 동지라 부르고 사실상 그 당 조직 중에는 계급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안에 들어오면 물론 목사, 장로, 집사가 있지만 이것은 봉사직의 직분으로 구별하였을 뿐이요 인간적인 면에서나 주를 섬기는 면에서 조금도 차별이 없습니다.

목사라고, 장로라고 어느 교인 한분을 상대할 때 다 존중히 여깁니다. 조금도 하대하지 않습니다. 교회야 말로다 같은 형제입니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진분도 교회에 와서는 다 같아 집니다. 오늘 민주의 국가의 법 앞에는 만민 평등이라는 기독교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평등주의의 정신을 기독교는 인류에게 제시했습니다.

2) 기독교는 보잘것없는 인간을 고귀한 인간으로, 인간 가치를 높이는데 크게 공헌했습니다.

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가치를 높였고

② 인간의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심으로 인간의 가치를 높였고

③ 옛 인간이 새로워짐으로 인간 가치가 높아졌습니다.

④ 그뿐아니라 정신과, 인격과 생활의 품위를 높여서 인간 가치를 높였습니다.

예를 들면, 노예같은 신분을 가진 사람도 그리스도 앞에서 나오면 자유인과 동등하게 취급하고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교회에 나오면 형제, 자매님, 선생님, 권찰님, 집사님이라고 불리우니 님자 벼슬을 다 하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사람을 고귀하게 만듭니다.

3) 기독교는 인간의 도리를 보여줍니다.

19절,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라"

23절, "너희는 값으로 산것이니 사람들의 종이되지 말라"

24절,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이 말은 다 하나님 중심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여 살라고 하는 공통적인 뜻이 있습니다.

인간의 도리는 인간 중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오늘날의 무신론적 인본주의 자들은 인간을 위한 인간의 우대를 부르짖는데 그렇게 되는 인간 속에서 나오는 본능의 작용이나 욕망을 억제할 수 없어서 마음대로의 향락적 죄와 기타 결과적으로 인도주의에서 짐승주의로 전락될 것입니다. 오직 인간은 먼저 하나님 중심, 하나님의 영광을 전제로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데서 인간의 도리가 바로 수행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에는 인간의 도리가 전부 명시되어 있습니다.

첫 부분에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우상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만 높이고 안식일을 잘 지켜 하나님께 예배 드리라는 계명들로써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도리입니다.
 

다음은 인간을 향한 인간의 도리입니다.

① 부모를 공경하고

②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③ 형제를 조금도 해하지 말고

④ 살인, 간음, 도적, 거짓증거, 탐내지 말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듯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인간들의 자기 도리가 무엇인가를 바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교훈을 잘 지키고 살때 개인이나 국가나 온 세상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아름답게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진리의 교훈대로 만족하게 살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모두가 다 성도입니다. 성도란 하늘나라 즉 천국의 백성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대로 행해야 하고,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이기에 고난도 함께 받고 그분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과 같이 우리 성도들은 부르심을 받은 위치에서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을 다하는 하나님의 올바른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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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난 여성지도자 상

 

 


잉태와 해산의 고통으로 담금질된 여성 지도자

 

성경의 역사에서 여성들은 위기의 순간마다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에덴동산에서 "산 자의 어머니"로 칭송된 하와에서부터 남자를 알지 못한 숫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잉태하는 위태로운 사명을 감당한 마리아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구속사(救贖史)는 여성들의 순종, 고난, 믿음으로 결정적인 반전(反轉)을 이루며 진행되었다. 여성의 지도력은 한 마디로 잉태와 해산의 지도력이다. 잉태는 창조를 위한 고통의 감수를 의미한다. 해산은 그 고통을 통하여 완전히 새로운 인간형을 창조한다. 성경의 여성 지도자들은 현대적인 페니미스트(여권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고 과격하였는데 그들의 급진성과 과격성은 자신들의 의지를 하나님 나라의 대의아래 쳐서 복종시키는 급진성이며 과격성이었다. 오늘 우리는 유대인 역사의 가장 위태로운 순간에 가장 아름다운 지도력을 선보인 여성 지도자 에스더의 신앙적 지도력을 공부하고자 한다. 에스더를 통하여 우리는 성경 전체에 나타난 여성 지도력의 한 전범(典範)을 연구하고자 한다. 여성 지도력은 투쟁적이고 호전적이며 권력지향적인 남성위주의 문화를 능히 초극하는 포용과 오래 참음과 견고한 연대성으로 특징지워지는 "살림"(하와)의 지도력이다. 21세기 남성 중심의 호전적이고 경쟁적인 문화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 지도력이다. 여성은 오래 그리고 질긴 슬픔과 흐느낌을 가지고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칼날에 저미어진 가슴을 안고 참담하게 처형된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을 배회하는 오열과 해소되지 않은 슬픔의 여인들이 가장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는 은혜를 덧입는다. 여성들의 지도력은 직관적이고 충동적일 정도로 행동적이며 위태로운 환난의 시기에 힘을 발하는 지도력이다. "죽음"을 조롱하는 지도력이다.

                      성서의 여성지도자들:
구약성경의 여성 지도자들-여러가지 유형들의 지도력
1. 하와: 모든 산 자의 어머니. 죽음의 형벌을 선언하고도 하나님의 은혜로 남자아이를 낳고 산 자의 어머니가 되는 지도력. 사망 한 복판에서도 생명을 잉태하는 여성 지도자(심판/사망 중에서 생명을 잉태하는 지도자).

2. 드보라: 이스라엘 지파들이 갈릴리-므깃도-에브라임 산지를 가나안 족속들로부터 빼앗아 이스라엘의 영토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위대한 전사이자 지도자. 뿔뿔히 흩어진 지파들을 하나의 목표 아래 결집시키고 스스로 위험한 전장으로 내달렸던 살신성인의 지도자(두려움과 분열주의를 극2복하는 여걸형 지도자).
3. 한나: 자신의 개인적인 불행인 불임의 세월 속에서 몰락해 가던 사사시대를 넘어 이상왕이 다스릴 하나님 나라를 희망하고 선취(先取)하는 여성지도자(개인적 슬픔과 원한을 공적인 지도력의 에너지로 승화시킨 지도자).

4. 엘리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사무엘상 3-4장): 이가봇이라고 외치며 장렬하게 죽어간 여인. 행주산성 정신의 여성 지도자(비운의 역사가 겪은 상처와 절망을 앓다가 외치며 사라지는 지도자).

5. 나오미와 룻: 절망과 극한 가난 속엣 인애와 진실로 하나님과 사람을 감동시킨 지도자. 쓰라린 일상생활 자체가 여성 지도력이 발휘되는 가장 전형적인 공간임을 알려준 지도자(일상생활의 쓰라림 속에서 담금질되는 지도력의 소유자. 몰락하는 가문을 세우는 희망의 지도자).

6. 라마에 울부짖는 라헬(렘 31장):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 젊은이들의 포로 유배행렬(전쟁에서의 패배)을 바라보면 위로받기를 거절하며 오열하던 지도자들(국가의 몰락을 자신의 아들의 죽음으로 받아들이는 어머니형 지도자) .

7. 에스더: 남성의 성적 노리개감이 되기를 거절하여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간 신여성형 왕후 와스디 대신에 왕후가 된 에스더는 페르샤 궁궐 안에서 누리는 안정성과 행복을 포기하고 학살위기에 내몰린 민족의 굴욕적 자리까지 자신을 낮추고 고난받는 민족과 동일시한다. 지도자는 동일시의 능력이 예민하게 탁월한 사람이다(목숨과 지위를 위태롭게 하는 결단의 지도자).

8. 엘리자베스와 마리아: 개인적인 명예와 관련된 하나님의 명령과 계획을 믿음과 순종으로 받아들인 지도자들이다. 엘리자베스의 신령한 믿음과 통찰력은 세례요한을 잉태하고 해산하였고 마리아의 절대순종은 개인적인 불명예(?)와 수치감을 초극하는 지도력을 발휘하는 데 결정적으로 사용된다(자신의 불명예를 감수하는 지도자).


                    여성지도자로서의 에스더

 에스더는 페르샤의 황제 아하수에로 치하에서 유대인들을 학살하려는 하만의 음모로부터 모르드개와 동족 유대인을 구출한 여성지도자다. 자신의 왕후의 위치는 물론 목숨까지도 위태롭게 한 요청받지 않은 왕 알현을 감행한 에스더는 지도자의 이상적인 덕목을 발휘하고 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든지 야웨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은 섭리하시는 주로 역사의 장막 저 편에 숨어 계신다. 에스더서는 유대인들이 아주 의미깊게 송축하는 부림절(Purim, 제비뽑기, 운명의 대역전 축일)의 기원을 말해준다.     

I.   아하수에로 황제의 왕후로 간택되는 절세의 정결 미인 에스더
 남성들의 노리개감이 되기 싫다고 신하들에게 아름답게 치장하고 나가는 것을 싫어한 와스디 대신에 에스더는 왕후로 선택된다(1:1-2:23). 삼촌 모르드개의 양녀(피후견자) 에스더는 역사적 공인이 되면서 동족의 고난 한 가운데로 이끌려간다.
A. 폐위되는 와스디: 와스디는 왕의 즉흥적 결정에 반발함으로써 왕후의 지위를 상실한다(1:1-22).  
 1. 왕의 위대한 향연. 권력자의 자기과시와 오만(1:1-9).
 2. 와스디의 몰락(1:10-22): 왕후 와스디는 감연히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왕의 측근 자문관들은 와스디의 폐위를 건의한다. 
B. 에스더의 왕후 등극: 고조되는 위기 가운데 왕후 에스더의 존재(2:1-23). 
 1. 에스더의 왕후 등극(2:1-18).
- 새 왕후 물색과 간택(2:1-4) 
-에스더의 피택과 왕후 선발 과정(2:5-11; 2:12-14; 2:15-18).
 2. 에스더의 신실한 인품. 모르드개와 여전히 신실한 관계 유지(2:19-23).
에스더는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왕을 모살하려는 음모로부터 왕을 구하는 데 공을 세운 모르드개의 공적이 역사서에 기록되게 한다.  

II. 모르드개와 유대인을 학살하려는 하만의 음모(3:1-15).
 A. 모르드개의 절개어린 태도가 하만의 적개심을 자아낸다(3:1-6). 하만은 으스대는 권력자로서 모르드개의 기개로 인하여 상처를 입는다.
B.  제비뽑기에 의하여 선택되고 왕에 의하여 승인된 복수의 날(3:7-15).

 III. 에스더를 통하여 유대인들을 구출하려는 모르드개의 계획(4:1-17).
왕의 대궐 밖에서 재를 뒤집어쓰고 베옷을 입은 채 유대인 학살 명령에 대한 응답하는 모르드개의 에스더의 권세를 이용하려고 한다. 왕에게 이 기막한 음모를 고하여 유대인들을 학살될 위기에서 건져달라고 절규한다. 에스더는 처음에는 거절한다. 
A.  모르드개의 개인적 응답(4:1-3)
 B. 에스더의 첫 반응(4:4-12).     
 C. 에스더의 첫 반응(4:13-17).      

 IV. 운명의 대역전-모르드개는 존귀케 되고 하만은 몰락하다(5:1-8:2).
 A.  에스더의 향연 초청들과 첫 향연(5:1-8). 
 B. 모르드개에 대한 하만의 음모는 계속되다(5:9-14).  
 C. 굴욕당하는 하만(6:1-14) 
 1. 모르드개의 공적에 대한 우연한 발견(6:1-5). 
 2. 영예롭게 된 모르드개(6:6-11)
 3. 하만의 아내가 그의 몰락을 확증하다(6:12-13).  
 4. 두 번째 잔치에 소환된 하만(6:14)
 D. 두 번째 향연(7:1-10): 탄로나는 하만의 음모 
E. 모르드개의 승진과 영화(8:1-2) 

 V.  두 번째 위대한 운명의 대역전-원수를 압도하는 유대인들의 대역전승(8:3-9:19)

 VI. 결어: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결단은 잉태와 해산의 지도력이다((9:2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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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용기

 

 

본문 [다니엘 1:8]

오늘은 '용기' 에 대해 말씀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용기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알렉산더나 히틀러와 같은 세계적인 지도자에게 있는 세속적인 용기가 있습니다. 이런 세속적인 용기의 기초에는 '신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념이 없으면 용기도 없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도 세상적인 용기입니다.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은 극복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말하고자 하는 용기는 성경적인 진정한 용기입니다. 이 용기의 절정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것에 있습니다.

 
성경적인 용기를 가진 사람 가운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바로 '요셉' 과 '다니엘' 입니다.


용기의 사람 요셉


요셉은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입니다. 그는 최악의 상황을 최선의 축복으로 바꾼 사람입니다.

그는 열두명의 형제가 있었지만 4명의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배다른 형제였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비극적으로 태어났고 자라면서도 배다른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타국으로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잘하면 잘할수록 결과는 더욱 나쁘기만 했습니다. 순결을 지키고 최선을 다할수록 얻어지는 대가는 최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원망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서 원망이라는 것이 거세되기를 축원합니다. 원망이나 불평이라는 개념이 없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요셉의 신앙특징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놓치지 않은 것입니다.

요셉은 그의 나이 30세에 총리대신이 됩니다. 용기와 믿음의 결과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바보같기만 했던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은 총리대신이 된 이후 7년의 풍요로운 시대에도 자기 백성이 사치하고 방자하게 살도록 그냥 두지 않고 절약하여 곡식을 창고에 저장하게 합니다.

요셉의 지혜로움을 봅니다. 7년의 흉년이 왔을 때 그는 자기 백성을 결코 굶주리게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용기있는 한 총리를 보게 됩니다.


두 번째 다니엘이라는 사람을 통하여 우리가 배우고 따라야 할 용기의 원형을 배우기 원합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왕 때에 포로로 잡혀온 젊은이였습니다. 미래가 없는 다니엘이 포로생활에서 자신을 포로로 삼은 왕을 섬겨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돌린 용기를 살펴봅시다.

 

요셉은 총리가 되었지만 다니엘은 삼대째 왕을 섬기며 신분상 세 번째 서열까지 올라간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예수믿기 때문에 신임받고 덕을 베풀고 희망을 주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 바랍니다.


다니엘의 참된 용기를 표현해주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다니엘서 1:8을 보십시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진정한 용기는 뜻을 정할 때 시작됩니다. 상황을 보고 마음을 결정하면 늦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뜻을 정합니다. 뜻을 정한다는 것은 용기의 사람으로 살기를 시작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살기로 결정하십시오. 그러면 새로운 용기가 생겨날 것입니다.


히브리서 6:19을 보면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닻을 하나님께 내릴 때 아무리 파도가 칠지라도 도리어 안연하게 될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닻을 내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위해 살겠다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에게 닥친 고난
 

다니엘에게는 세가지 시련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왕을 섬기기 위해 3년간 훈련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벨론의 문화와 역사를 배웠습니다.

두 번째, 다니엘과 세친구에게는 이름을 바꾸어야 하는 수치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세 번째, 왕이 먹는 진미를 먹어야 했습니다.

 
다니엘은 이방문화를 배우고 이름을 바꾸는 것은 별문제가 아니었지만 음식을 먹는 일은 율법을 범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단호히 거절합니다.

뜻을 정하면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어려움이 왔을 때 타협하고 변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손해를 보는 용기도 생깁니다. 이 세상을 이기고도 남을 만한 진정한 믿음과 용기가 생기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십니다. 1:9을 보면 환관장이 그를 도와주고, 1:17을 보면 그와 친구들에게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십니다.

다니엘에게는 특별히 꿈을 해석하는 능력을 주십니다. 20절을 보면 그들에게 일을 묻는 중에
 온나라의 박수와 술객들보다 십배나 총명을 더하십니다.
 

뜻을 정하면 하나님께서 돕는 사람들을 주시고 지혜를 주십니다. 용기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닻을 내리고 말씀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때 생겨납니다.

 
두 번째 다니엘이 용기를 가지고 승리하게 된 까닭은, 그의 기도생활이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시간을 정해놓고 모든 사람이 알도록 기도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의 기도생활을 알도록 했습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왕이 2년 되던 해에 위기를 맞습니다. 하루는 왕이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이 얼마나 이상하던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왕은 온 나라의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를 다 불러 모아 놓고 왕이 꾼 꿈을 알아 맞추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이 꿈으로 인해 왕이 번민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도 이것을 알아내어야만 했습니다. 위기의 탈출방법은 기도였습니다.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기도하면 용기가 생깁니다. 기도하면 지혜가 생깁니다. 기도는 모든 문제의 해결방법입니다. 이상하게도 기도하고나면 긍정적인 마음과 용기가 생깁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기도하면 십자가를 집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적과 응답을 베풀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고난이 있는 만큼 기도하십니까? 우리의 기도는 너무나 사치스럽고 낭만적이고 계산적입니다. 깨어 기도하십시오.


승리의 비결은 기도

 

기도는 다니엘로 하여금 상상할 수 없는 위협속에서 개선가를 부르고 승리의 잔을 들게 했습니다. 포로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기적을 보이며 사자의 입을 막고 뜨거운 풀무불속에서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지금도 믿음을 가지고 불가능의 벽을 뚫고 나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오십니다.

 
3:18을 보십시오.

"그리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다니엘이 왕의 총애를 받게되자 모함하는 세력이 생겨났습니다. 그 사람들은 왕에게 왕을 위하여 금신상을 만들고 모든 사람이 그 곳에 절하도록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왕은 그 말을 기뻐하며 승낙했습니다.

왕이 명령을 내려 금신상의 낙성식에 참여하고 그것에 절하라고 했습니다. 만일 이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풀무불에 던져 죽이겠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절을 했지만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절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왕의 손에서도 하나님이 건져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곱배의 뜨거운 불속에 던져진 다니엘과 친구들을 천사가 함께하여 다시 살아난 기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타협하고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세상사람들이 모두 하는 방법으로 믿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죽고 다리오가 왕이 되었습니다. 다리오왕에게 신임을 받는 다니엘을 모함하는 사람들은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는 습관을 이용해 함정을 만들었습니다.

왕에게 가서 30일동안 왕 이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절하는 사람은 사자굴속에 집어넣자고 제안합니다. 왕은 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사람들이 보거나 보지 않거나 하루에 세 번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도합니다. 조서가 내린줄 알면서도 다니엘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6:10을 보십시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결국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갔지만 천사가 사자의 입을 막아 살 수 있었습니다.

 
 

오늘 위기를 극복해내는 유일한 비결은 다니엘의 믿음과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진짜 용기를 가진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위하여 죽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을 수 있는 것은 용기입니다.

 

자기를 포기할 수 있는 것은 용기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과 제게 남은 것은 믿음의 싸움입니다. 금년 한해 믿음의 사람으로 살고 뜻을 정하여 용기를 가지십시오. 이것이 축복의 비결입니다.

오늘 우리시대만큼 용기가 필요한 시대는 없습니다. 이제 정직하게 삽시다.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하게 산 사람이 승리했다는 간증을 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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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유산, 행복한 가정 

 

 

 

모든 인류 역사가 만남을 통해 이어져가듯이, 한 사람의 역사도 만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자신이 가진 상처도 만남의 산물이요, 자신이 어떤 능력을 수행할 수 있다면 그 역시 만남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다양한 만남의 그물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러한 많은 만남 중에서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만남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족과의 만남입니다.

가족은 오늘의 자신을 형성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가정 안에서 자라며 겪은 좋은 경험이나 아픈 경험은 자신을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입니다.

 

나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토양을 알아야 하고, 또한 그 나무가 성장하면서 겪은 기후를 알아야 합니다.

‘나’라는 한 그루의 나무가 지금까지 성장해오는데 내 가정의 토양과 기후는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주의 깊게 성찰해보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따라서 내가 누구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해하려면 그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계에 내려오는 만남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일은 나 자신을 바로 알고 이해하는데 무척 중요한 작업입니다.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러저러한 분으로 어떻게 살아오셨고, 성품은 어떤 분이셨다. 그래서 그 분들은 나의 아버지에게 이러저러한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신 것 같다. 또 외조부모님은 이러저러한 성품을 갖고 계셨고, 나의 어머니에게 이런 성품과 정신적인 유산을 물려주신 것 같다.

그런 배경을 가진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러저러하게 만나서 결혼을 하고 나와 우리 형제들을 낳으셨는데, 그 분들의 삶의 자세가 나에게 이러저러한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러저러한 성격과 상처를 가지고 있다.”

 

 

결혼 이후 받은 상처는 중간에 떠 있는 상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적당한 계기를 만나면 깨끗이 치유됩니다.

 

하지만 성장과정에서 가정에서 부모에게 상처를 입게 되는 경우, 그 뿌리는 대단히 깊기 때문에 뽑아내는 일도 무척 어렵습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여러 단계의 치유 과정도 필요합니다.

 

이처럼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어떤 유산을 물려받았는지는 한 사람의 인생의 행로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자녀된 입장으로서는 부모와의 만남을 통해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 부모된 입장으로서는 자녀와의 만남을 통해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서로 물려받고 물려주는 유산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실감하게 됩니다.

 

또한 부부가 되어 만난 남녀 또한 서로의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의 정도에 따라 부부 사이의 갈등과 화합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가정을 통해 물려받은 유산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좋은 유산은 계속해서 물려주고, 그렇지 못한 유산은 되물림 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

 

 

가령,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서 자란 남성은 대개 폭력 가장이 됩니다. 부모로부터 주먹을 유산으로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생각할 여지도 없이 즉각적이고 반사적으로 주먹부터 휘두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로부터 똑같은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이라도 폭력을 쓰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훈련과 자기 노력으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게 된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도 폭력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자신의 폭력성과 대결합니다. 내적 갈등을 겪습니다. 폭력을 쓰지 않는 부모 아래서 성장한 사람이 갈등 없이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과는 다릅니다. 폭력을 상속한 사람이 아무 갈등 없이 폭력성을 잠재울 길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결혼생활을 하면서 틀이 다른 두 사람, 즉 부모로부터 전혀 다른 유산을 물려받은 두 사람이 결합했을 경우, 당연히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남녀가 만나 행복하게 잘 사는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봅니다. 이 경우 부부는 서로 피눈물나는 노력을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함께 잘 살아보려고, 그야말로 젖 먹던 힘을 다해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그들의 자녀들은 좋은 유산을 물려받아서 자연스럽게 아름답고 건강한 가정을 이루어 나가게 될 것입니다.

부모 대에서 노력하게 잘못된 유산을 끊고 좋은 전통을 세운다면 그 부모를 보면서 자란 자식들은 자연스레 건강하고 큰그릇을 갖게 되어 물 흐르듯 평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는 자라면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다정하게 대하시는 것을 보았으나 깊은 정을 주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부모의 행위는 곧 교과서입니다. 아내를 깊이 사랑하는 과목을 배우지 못한 내가 아내를 깊이 사랑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어떻게 해야 깊이 사랑하는 것인지조차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의 결혼생활은 불협화음의 연속이었던 것입니다.

위기의 순간들이 찾아왔지만 우리 부부는 자식들에게 좋은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발버둥을 쳤습니다.

배우지 않은 것을 개발하여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폭력성과 무감각증과 같은 자연스런 본성을 억제하고 평화를 지향하려고 할 때마다 분노의 감정이 몰아쳤습니다.

때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본성의 욕구를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자식들에게는 더 이상 우리가 겪은 고통과 갈등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각오로 이를 악물었습니다.

굳은 인상을 펴고, 아내와 아이들을 안아 주는 일, 손을 잡고 걷는 일은 내게 어색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딴 살림을 차리고도 위세가 당당하던 아버지라는 교과서를 제쳐두고라도, 가정 내에서 이루어야 할 평등과 사랑과 화목이라는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한다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 부담스러웠습니다.

특히 자기 중심적인 욕구와 폭력을 발휘하고 싶은 욕구, 상대를 미워하고 싶은 욕구 앞에서 나를 추스르고 통제하는 일은 너무나 버거웠습니다.

 

그러나 나의 그런 노력이 위선이 되지 않기 위해 진심을 다해야 했습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딸아이들이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부인 줄로 생각합니다.

 

 

부부애가 각별한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은 결혼생활에서도 자연스럽게 사랑을 표현할 줄 압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손을 잡거나 안아주거나 살을 비비는 스킨십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서로 돕는다고 해서 자존심이 다치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성장하면서 익숙하게 보아온 사랑의 행위가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다가 결혼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응용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대에서 좋은 전통을 만들어가는 사람과 좋은 유산을 물려받은 차이는 엄청납니다.

전자는 아주 작은 사랑의 행위도 생각을 모으고, 용기를 내어 실천에 옮기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후자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전자는 분노의 감정이나 폭력적인 성향을 억눌러야 하는 데 반해, 후자는 노력하지 않아도 분노의 감정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자는 외로운 투사와 같습니다. 이런 한 사람의 외로운 투쟁으로 후손에게 대대로 좋은 유산을 물려주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이혼률이 급증하고 있어 OECD 가입 국가 중 2위를 기록할 정도입니다. 빠른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온 나라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는 달리 국민 개개인의 가정은 갈수록 병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이 흔들리고 위기에 처한 원인은 다른 데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가정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아픔을 가지고 치유를 받기 원하는 사람들의 상처가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살펴보면 대부분 가정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장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아이는 어른이 되어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이혼을 선택하게 됩니다.

또한 흔들리는 가정에서 상처 입은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면 청소년 세계는 문제로 가득한 세계가 되고, 문제 청소년이 자라 어른이 되어 머무는 곳이면 그곳이 가정이든, 직장이든, 사회단체든 거기에는 분노와 분쟁과 분열이 싹트기 마련입니다.

 

 

가정에서 시작된 문제가 사회문제, 정치문제, 교육문제 더 나아가서 종교문제에까지 파고드는 것입니다.

실제로 현재 미국교회의 쇠퇴의 원인은 가정의 파괴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흔들리는 부모의 슬하에서 부모의 냉담 가운데 성장한 아이는 상처를 입게 되고, 청소년이 되어 탈선하여 마약을 하거나 범죄를 저지르기 마련이며, 어른이 되어서는 각종 사회 문제의 주범이 됩니다.

 

이러한 악순환의 영향은 교회에까지 미치게 되어 자연히 교회를 찾는 사람이 적어지게 되고 교회는 텅비게 됩니다.

이렇게 한 사람이 가정을 통해 어떠한 유산을 물려받느냐가 한 개인의 전체적 삶뿐만 아니라, 우리가 머물러 있는 모든 삶의 자리에까지 대단한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을 모두 합한다 해도 고작 2천만 밖에 안 되는 소수민족이 전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등 각종 분야에서 핵심적 역할을 합니다. 이것은 이 민족의 정신과 영이 그 만큼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건강한 정신과 영을 지닐 수 있는 이유를 이들 가정에서 찾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건강한 가정생활과 가정교육이 그 배후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정의 역할을 무척 중요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가정은 건강하십니까?

부모로부터 어떠한 유산을 받으셨습니까?

또한 자녀에게 어떠한 유산을 물려주셨습니까?

건강한 가정 유산을 물려주는 일, 이것은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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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안수: 문화적 해석에 대한 반론 성경의 여인

 

여성에 대한 바울의 차별을 문화적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 몇가지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

 

1. 서론적으로, 만약 바울이 성경에서 "여자들이 군대에 가는 것을 금하는 것은 옳다. 왜냐하면, 여자는 전쟁을 할 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고 해 보자. 이것은 당연히 그 당시 문화를 반영한 것으로 오늘날 적용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여군이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옛날과 달리,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첨단 장비의 역할이 커지기 때문에 일정 부분에서는 보다 섬세한 여성들이 전쟁을 더 잘할 수도 있다.

 

2. 만약 바울이 성경에서 "여자들이 가르치는 것을 금하는 것은 옳다. 왜냐하면, 여자는 가르칠 만큼 교육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고 해 보자. 이 역시 그 당시 문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오늘날 적용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옛날과 달리 오늘날 여성들 중 상당수가 남자들 보다 월등한 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자들이 남자들 보다 가르침에 있어서 더 나을 수도 있다.

 

1. A. 미국 기독교 중 어떤 교단은 여성의 군대에 가는 것을 총회적인 차원에서 반대를 결의하기도 하였다. 그 이유는 여성은, 특히 젊은 여성은 생명을 잉태할 가능성을 항상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리 보호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바울이 성경에서 이렇게 썼다면, 그의 논증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것은 문화적 상황에 관계 없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아야 한다.

 

2. A. 여자들이 가르치는 것을 금한 이유를 사도 바울은 창조 질서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서 찾고 있다. 따라서 그의 논증 자체는 문화적 상황과 관계가 없고 따라서 그의 주장은 오늘날 교회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물론 바울도 인간이고, 그 당시 문화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여성에 대한 바울의 논증은 하나님의 구속사에 대한 계시에 훨씬 더 분명하게 근거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는 그 당시 문화가 바울에게 얼마만큼 영향을 주었는지 규명하기가 심히 어렵다.

 

3. 문화적 해석을 강조하는 입장은 성경을 폭넓게 이해하게 하는 장점을 가짐과 동시에 성경을 전문가의 성경으로 고착시킬 위험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당시 문화를 전혀 무시해서는 안되지만, 문화 보다는 텍스트 자체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문화는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보조 수단일 뿐이다. 우리는 그 당시 문화를 정확하게 알아내는데 너무나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성경은 그 자체로 신자들에게 권위를 가지지만, 문화에 대한 연구는 시대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성이 머리에 쓰는 것조차도 쉽게 그 당시 문화였다고 단정하기 쉽지만, 내가 읽은 한 박사 논문은 머리에 쓰는 두건은 그 당시 문화와 별 상관이 없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논증하였다. , 문화에 근거한 해석은 문화에 대한 연구 결과가 달라지면, 그 설득을 잃어버릴 위험을 갖고 있기에 불안정하다.

 

4. 여성 사사와 선지에 근거한 여성 안수 옹호에 대하여. 이것은 역사적 본문을 규범적 본문으로 해석하는 대표적인 오류이다. 바울 사도가 여성 사사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여자 선지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바울 사도는 그 누구 보다 성경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여자에게 가르치는 것을 금하였을까? 그 이유는 그가 역사적 사실이 교회의 영구적인 규범으로 받아 들일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만약 여성이 사사가 된 역사적 사실 하나를 근거로 해서 그것을 오늘날 지켜야 할 규범으로 본다면, 성경의 수많은 다른 역사적 사실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5. 문화적인 해석으로 본다면, 오늘날 수많은 나라에서 여성 차별을 받아들이고 있는 나라에서는 여성 안수에 옹호에 대한 설득력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교회 문화는 과연 여성 목사를 받아들일 정도의 성숙한 문화인가? 심지어 미국에서 조차 여성 목회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여성 안수에 대한 문화적 옹호는 오히려 문화적 옹호에 갖히는 위험을 동시에 안고 있는 것이다. 문화는 앞으로 어떻게 바뀔 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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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안수 반대자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 성경의 여인

 

최근 여성안수에 대해서 보수적인 입장에서 쓴 글을 몇개 읽어 보았다. 여성안수에 반대하는 나로서는 그 결론에는 찬성하였지만, 그 결론에 도달하는 논의 과정이 여성안수를 찬성하는 사람에 비해서 훨씬 엉성하다는 것을 보고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1. 성경은 여성안수를 금하는가? 금한다면 어떻게 금하는가?

성경에 명시적으로 여성안수를 금한다는 말은 없다. 이 말은 성경에 "여자에게는 안수를 금하느니라"는 구절이나 그에 준하는 구절이 없다는 말이다. 또한 머리에 손을 얹는 안수라는 말의 의미도 상당히 부정확하다. 실제로 영어권에서는 여성안수라는 말 보다는 여성 임직 (Women in Office)라는 말을 쓴다. 따라서 논란이 되는 부분은 안수가 아니라 직분에 관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안수가 논쟁의 핵심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이 여성 안수를 금한다는 말을 신중하게 사용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여성안수 금지는 성경에 대한 해석이며, 그 해석이 올바르게 제대로 적용되었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성경에서 여자에게 명시적으로 금하는 것은 "가르치는 것""다스리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보수적인 성경 해석가라면 그렇게 믿을 것이다.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가르치는 것"을 안수와 거의 동의어로 보고 있는데, 안수가 가르치는 것과 관련이 전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전혀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적으로 안수와 "가르치는 것""다스리는 것"이 무슨 연관이 있나를 살펴야 한다. 이 점에서 두 질문을 할 수 있다. 첫째, 교회의 직분자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안수를 해야 하는가? 둘째, 안수는 가르치는 것과 다스리는 것에 국한하는가?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여성안수를 반대하면서, 거의 대부분 이 본질적인 문제들을 건너뛰고 있는데, 만약 이 부분에 대해서 명확한 설명이 없다면, 여성안수 반대의 논리는 사상누각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

 

첫째 질문에 대하여는 교회 안에서 여러 전통이 있다. 직분을 위해서 안수가 필수적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또한 이 부분에 있어서 성경은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지 않다. 물론 성경에 안수를 통하여 직분을 세운 예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교회 안에서 보편적으로 필수적으로 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안수가 임직과 필수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교회 안에서 집사보다 훨씬 큰 역할을 하는 권사나 전도사에게는 안수를 하지 않는다. 왜 어떤 직분에는 안수를 하고 어떤 직분에는 안수를 하지 않는가? 그 근거는 무엇인가? 따라서 "여자가 목사와 장로가 될 수 없다"는 것과 "여성에게 안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조심하게 구별을 하여야 할 것이다. 여성안수를 반대하기 위해서는 목사가 장로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안수가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과제가 있는 것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선교사와 전도사 직분이다. 아직은 논란이 되고 있지 않지만 신학교 교수도 여기에 포함된다. 여자 선교사와 전도사들은 실제적으로 남자 선교사나 목회자가 없는 곳에서, 가르치는 역활을 하고 있다. 또한 출교까지는 아니더라도 교회의 영적인 대부분의 일을 관장하고 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성경이 명시적으로 금하는 것은 가르치는 것과 다스리는 것이었다. 여성에게 안수가 금지되는 것은 안수가 가르치는 것과 다스리는 것에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지, 여성 안수 그 자체의 이유 때문은 아니다. 성경 어디에도 안수 자체의 이유 때문에 여성에게 안수를 금지하는 곳은 없다. 그렇다면, 선교사나 전도사에게 가르치는 것과 다스리는 것을 허용하면서 안수는 주지 않는 것은 일관성이 없다. 성경이 명시적으로 금하는 것은 허용하면서, 성경이 비명시적으로 말한 것은 금하는 불일치는 어떻게 하든지 설명이 되어야 할 부분이다.

 

둘째 질문은 집사직과 특별히 관련이 있다. 집사직을 어떻게 볼 것인가? 만약 집사직을 순전히 봉사직으로만 보지 않고 다스림이나 가르침의 권한도 일부분 가지고 있다면, 여자는 집사가 될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른 명백한 성경적인 이유가 없는 한, 여자도 집사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적어도 부분적으로 집사에게는 여성에게 안수가 허용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교회 안에서, 심지어 개혁주의를 표방한 적지 않은 신학자들도 집사직은 여성에게도 개방을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점에서 여성안수에 대한 논의가 지나치게 장로와 목사, 특히 목사에 집중되는 것은 바람직하기 못하다. 여성안수를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부분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보수주의자들이 성경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만 하면서, 실제 교회 현실에 있어서 일관성을 지니지 못하고 교회의 현실이나 편의에 따라 실천한다면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여성안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용어에 대한 의미부터 명확히 정리를 하여야 한다. 내가 보기에 보수적인 글은 대부분 두리뭉실하고 정리가 되어 있지 못하다. 앞에서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 성실하게 답변을 할 준비를 해야 하고, 교회 현실이란 핑계로 자신들의 비일관성을 변명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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