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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글 / 하나님의 기준과 사람의 기준 

기업에서 채용을 담당하고 있는 분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항상 자기 회사의 장래를 책임질 좋은 인재를 얻고 싶어 합니다. 왜냐하면 좋은 인재가 곧 기업의 미래이자 성장동력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은이를 ‘딱’ 보면 알아야 하는데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경험해보지 않고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제 고민입니다.”

그래서 기업마다 채용 시즌인 요즘, 할 수만 있으면 채용시험의 방법을 다양하게 바꾸면서까지 인성 좋고 능력 있는 사람을 찾고 싶은 것입니다. 어떤 회사는 인턴으로 뽑아 일단 일을 시켜보고 나서 결정하기도 하고, 경력자 중심으로 뽑기도 합니다. 미래를 이끌어갈 사람을 뽑기란 그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통치하고 있을 때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울은 용모가 준수하여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외모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통치자의 능력도 있었을 뿐 아니라 왕으로서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스스로 교만해지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버리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베들레헴성에 있는 이새의 집에 가서 그 아들들 가운데 왕으로 삼을 자를 찾아 기름을 붓고 축복하도록 했습니다.

 

이새에게는 아들이 많았는데, 사무엘의 방문을 받은 이새의 집안은 기대와 긴장 속에서 조심스럽게 아들들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먼저 장남 엘리압을 본 사무엘 선지자는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라고 말하며 기름을 부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기를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않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엘리압이 떨어지자 아미나답 삼마 등 7명의 아들들을 다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택함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말합니다.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그러자 이새는 “막내가 아직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아버지가 부르지도 않고 있는 아들이 있는 것입니다. 형들이 중요한 일을 할 때 들에서 양을 지키는 일이나 맡고 있는 아들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의 요청으로 이새가 사람을 시켜 막내를 데려왔습니다. 사무엘은 그 아들을 보니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무엘에게 이르기를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그 아들에게 기름을 부었고, 후에 그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 다윗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쓰시는 선택의 조건이 꼭 인간의 생각과 같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그 사람의 외모나 학벌, 경제력, 가족의 배경 등을 보고 당연히 ‘저 사람이면 괜찮아’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그의 중심을 보시고 ‘내 일에 합한 사람인가’를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해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전 1:27)고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들로 살아갑시다.

김상현 목사(서울 목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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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글 / 두려움의 반대말은 사랑입니다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의 절반은 한국 사람일 정도입니다.

이곳의 매력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미소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환한 미소 뒤에는 깊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가 궁금하면 불교사원에 가서 점을 봅니다. 대나무 젓가락 12개가 담긴 통을 흔들어 하나를 떨어뜨립니다. 젓가락에는 1번부터 12번까지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바로 옆에는 1번부터 12번까지 운세가 인쇄된 종이가 있습니다. 불길한 내용이 나오면 이들은 매우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두려움을 종교행위를 통해 극복하려 합니다. 큰 나무를 비롯한 주변의 사물들을 숭배하고, 조상신 등 귀신을 달래려고 합니다. 귀신을 잘 달래서 자신의 집에 불행이 오지 않도록 바라는 것입니다. 길일과 흉일이 따로 있어서 이사 가는 날, 결혼하는 날, 결혼하면 안 되는 날 등 미신에 얽매여 살아가기 때문에 두려움은 더욱 깊어집니다. 하지만 두려움은 미신이나 윤회사상에 따라 귀신을 달래거나 공덕을 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두려움은 죄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한 죄 때문에 인간은 두려워합니다.

두려움의 근본적 해결이 없는 헛된 종교적인 행위는 더욱 두려움을 쌓게 합니다. 귀신을 달래려고 하는 사람들은 귀신을 달래면 달랠수록 더욱 많은 두려움이 쌓이게 됩니다. 있지도 않은 다음 생애를 위해 공덕을 쌓을 수 없을 뿐더러 공덕을 쌓아 다음 생애를 바꾼다 해도 미래를 바꿀 만한 큰 공덕을 어떻게 쌓을 수 있겠습니까. 죄로부터 오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자기 아들을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는 깊고 무거워 하나님 아들의 목숨이 아니면 해결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전 재산을 들여 공덕을 쌓아도 죄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예수님의 공덕에 의해 우리의 모든 두려움은 사라졌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통해 주신 그 사랑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실현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먼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나눠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면 기쁨이 넘칩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됩니다. 교회 공동체가 나눠야 할 사랑은 아들까지 내어주신 그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랑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교회 공동체 안에 어찌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 사랑을 교회에서 실천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김영진 목사(GMS 동남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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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글 /교회생활에 목숨 걸지 맙시다 


많은 교회가 주일 저녁예배를 오후 시간으로 앞당긴 것은 이미 오래된 일입니다. 심지어 그것이 사라진 교회도 있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도 주일 오후 예배를 3시에 드립니다. 다른 교회는 어떤 의도에서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오후 3시에 오후 예배를 드리고 4시쯤 주일의 모든 예배를 마친 뒤 집에 돌아가도록 하는 이유를 분명히 밝혀주곤 합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이 주일에는 너무 바빠서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일 저녁은 온 식구가 함께 대화하고 식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취지를 말해 주고 식구들만의 좋은 시간을 갖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모두 함께할 수 있는 행사 외에는 가능한 한 주일 오후 시간에는 어떤 일도 만들지 않습니다. 한 주간 내내 매우 바쁜 일정들로 인해 가족들이 한 상에 둘러앉을 시간조차 없는 경우가 많은데 주일만이라도 가족들에게 돌려주고 싶은 것입니다.

 

또 한 가지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특징은 모든 성도가 가능한 한 한 가지 사역만 하도록 권하고 있으며 제도도 그렇게 바꾸었습니다. 남녀 전도회나 구역 등의 조직을 한 가지로 통합했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는 그 한 가지만 하고, 찬양대원 역시 찬양대 한 가지만 하도록 했습니다. 그것을 통해 전도회나 구역 활동이 모두 이루어지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여타의 성도들도 한 가지 원하는 ‘뜰’이라는 조직에서 활동하도록 합니다. 구역, 전도회, 그리고 주일학교나 성가대 등 여러 분야를 모두 섬기느라 바쁜 교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의 멀티 플레이어들은 주일이면 매우 바쁘고 피곤하게 하루를 보낼 뿐 아니라 주중에도 이런 저런 모임을 섬기느라 가정을 돌보지 못하는 경향들이 많음을 보아왔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가장 강조하는 점은 교회에 목숨 걸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정성을 다해 예배하고 한 가지 교회 공동체에서 섬기며 여타 시간은 예배드린 사람들답게 일터와 가정 등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누구보다 정직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 가족을 돌보는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것 역시 주님의 일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목회자만큼 중요한 소명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나가서 모든 일을 주님 섬기듯 하고 정직한 그리스도인의 양심과 정의를 지켜간다면 세상은 놀랍게 변할 것이라 믿습니다.

교회생활이 너무 바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봉사가 너무 벅찬 나머지 월요일 출근길이 무겁거나 일터에서 꾸벅꾸벅 조는 일을 주님께서 결코 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무대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김관선 목사<산정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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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글 / 복의 근원  


헤르만 헤세의 단편 중에 ‘어거스터스’라는 작품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오랫동안 아기를 낳지 못하는 부부가 아이를 가졌는데 신비한 노인이 나타나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고 말합니다. 산모는 고민하다가 “이 아이가 앞으로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으며 살게 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소원대로 그들의 아이 어거스터스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받기만 좋아할 뿐 사랑을 나눌 줄 몰랐던 그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고 결국에는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습니다. 어느 날 신비한 노인이 다시 나타나 또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고 어거스터스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말합니다. 인생의 황혼기에서 어거스터스는 어떤 것이 행복인지 바로 알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무언가 받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크리스천들도 복을 받기를 희망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참된 복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복에 대해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니라.” 아브라함은 욕심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아들을 바라긴 했지만 그것은 자신의 신앙의 계보가 끊어지는 것에 대한 염려였지 자신의 유산을 물려줄 후계자가 없어 걱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종인 엘리에셀에게 기꺼이 전 재산을 물려줄 생각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나누고 베풀며 살기를 원했습니다. 곁에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날마다 호의호식하는 것은 결코 복이 아닙니다.

한때 우리나라는 선교 강국이라 불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작은 개척교회라도 선교하기를 기도하고 꿈꾸며 실천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큰 교회마저도 선교를 줄여나가는 형국입니다. 나누고 베풀기보다는 나부터 먹고살자는 개교회주의가 확산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습니다.

자신의 지위를 박차고 나와 캐나다 토론토의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서 정신박약아들을 돌본 헨리 나우웬에게 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같이 훌륭한 학자가 어째서 발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정신 지체아들을 돌보고 있습니까.” 그러자 나우웬은 대답 대신 자신의 책 ‘예수의 이름으로’를 건넸습니다. 나우웬은 그전까지 올라가는 것에만 집착했습니다. 하버드대 교수가 되기까지 그가 얼마나 노력하고 힘써왔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나는 그동안 작은 인기와 작은 권력의 꼭대기를 향하여 오르막길만을 추구해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지체자인 아담 곁에 앉았을 때, 이런 사람들의 고통에 동참하는 내리막길을 통해서만 예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사랑을 나누고 용서하고 이해하는 삶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리대로 나누고 베풀며 삽시다. 우리가 나누는 사랑이 모일 때 온 세상은 환하게 빛날 것입니다.

배경락 서울 서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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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길 /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이집트)의 노예에서 해방됐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요. 다시는 힘든 노동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태어난 남자 아기를 죽여야만 하는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기쁨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처음 예수님 믿었을 때의 감격을 잊지 못합니다. 온 종일 주님만 생각하면서 그 전에는 알지 못하던 기쁨과 행복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죄의 노예에서 해방된 기쁨은 그렇게 큰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은혜로 자유를 얻은 우리들입니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살다보면 욕망의 노예가 돼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마치 애굽의 고기 가마를 그리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입니다. 어느 새 과거의 나쁜 습관으로 돌아가 근심하고 불안에 떨며 두려움 속에서 방황합니다. 또 미움과 증오에 우리의 영혼을 내어주고 그 죄책감으로 인해 방황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의 남편 우리야를 죽였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와서 죄를 책망할 때 다윗은 바로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용서하되 “그와 밧세바 사이에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자 밧세바가 낳은 다윗의 자녀가 심하게 앓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이 7일간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매달렸지만 결국 아이는 죽고 말았습니다. 식음을 전폐하던 다윗은 어린 자녀가 죽자 즉시 식사를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이 모습을 보며 신하들은 의아해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살아있을 때 최선을 다해 금식하며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 생명을 거두어 가신 것이니 내가 더 이상 할 일이 있느냐. 나는 그에게 갈 수 있으나 아이는 내게 돌아오지 못하리라.”(삼하 12:22∼23)

어찌 보면 자녀가 죽은 건 자신의 죄 때문인데, 더 애통해 하지 않고 훌훌 털고 일어나는 모습이 조금은 냉정해 보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자유입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과거의 죄를 짊어지고 죄의식에 빠져 사는 것은 죄의 노예로 남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두어 간 것을 받아들이고 지난 죄에 매여 있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의 한 집사가 거짓말로 전 재산을 가로챈 사기꾼을 찾아 10년을 헤맸습니다. 사기꾼을 향한 증오 때문에 약 없이는 하루도 못 살 정도였습니다. 겨우 행방을 찾아 돈을 받으러 갔지만 시골집에서 홀로 병마와 싸우고 있는 사기꾼을 보는 순간 불쌍한 생각이 들었답니다. 오히려 생활비를 주고 돌아오는데 그에 대한 미움이 눈 녹듯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미움에서 해방돼 자유를 누린 겁니다.

우리가 욕망과 죄에 매여 있으면 진리 안의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도 심령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주님을 온전히 주인으로 모시면 모든 속박에서 해결됩니다. 이런 은혜가 모두에게 있길 바랍니다.

서영희 서울 한중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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