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글 /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살렸소!   


오늘 본문에서 ‘상태 변화와 그에 동반되는 행동’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은 ‘앉은 사람이 일어남’ ‘눈이 보이지 않은 사람이 보게 됨’ ‘앉아 있다가 따름’ 순으로 진행됩니다. 눈먼 거지가 앉아 있다가 일어나 보게 됐고, 예수 일행을 따랐고, 운동에 동참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변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기력한 이가 용기를 냈고, 믿지 못하는 이가 믿었습니다. 즉 자비만을 구하며 무기력하게 앉아 있던 이의 마음속에 용기가 생기고 믿음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그 믿음이 그를 살렸다는 예수의 선포가 뒤따릅니다.

 

오늘 말씀은 당시 독자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을까요. 이 말씀은 남들보다 높아지고 먼저 되려고 다투는 바로 앞의 제자들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불쌍하고 더러운지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탐욕으로 가득한 모습, 더 높아지고 더 가지기 위해 애쓰는 추악한 모습을 성찰하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눈이 가려져 진실을 보지 못하는 무기력한 인민들에게 일어나 따르라고 웅변하는 듯합니다. 따름에 동반되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을까요.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먼저 눈먼 거지 바디매오는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거지 동냥을 하는 불결함’은 미추를 떠나 복잡하고 아리송한 삶을 사는, 스스로의 문제를 누군가에게 의존하거나 타인의 자비심에 의존하는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눈이 멀었다는 것’은 외면과 그 이면에 두려움을 안고 사는 우리 자신을 보여줍니다. ‘무기력함’은 바디매오처럼 무기력에 빠진 우리 인생을 의미합니다.

 

용기를 내 일어나려거든 겉옷을 벗어던지고 벌떡 일어나십시오. 자신의 무기력함을 칭칭 감고 있는 외피적 삶을 탈피하되 단숨에 하라는 것입니다. 겉옷을 벗어던진 바디매오처럼 겉모습을 벗어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라며 자신을 비하하는 그 삶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스스로를 살린다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자신이 자신을 살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변화의 당사자입니다. 내가 또 우리가 구원받을 자신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선포했지만 자신의 결단과 믿음의 응답이 구원을 완성합니다. ‘사는 것’과 ‘구원’은 결과가 아니라 상태입니다. 구원은 행위와 율법에 의해 얻어지는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예수 이야기를 복원하니 ‘믿음은 행동’ ‘구원은 살기 위한 간절한 자기 노력’이 전제된 것입니다.

믿음은 ‘그 무엇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이미 자신의 몫을 다한 것입니다. 결과를 바라는 신앙, 결과에 따라 거꾸로 믿음의 정도가 측정되는 것으로는 믿음의 본질에 다가설 수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자비만을 구하고 앉아 있겠습니까. 아니면 스스로를 살리기 위해 눈을 뜨고 일어나겠습니까. 무기력하여 비참한 과거로 돌아가겠습니까. 아니면 희망을 향해 난 길을 계속 따라가겠습니까. 눈을 떠 진실을 보십시오. 일어서서 주를 따르십시오. 2000년 전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살렸소’라는 해방의 선언이 오늘 우리에게 이뤄지길 기원합니다.

우성구 서울 새날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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