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글 / 두려움의 반대말은 사랑입니다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의 절반은 한국 사람일 정도입니다.
이곳의 매력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미소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환한 미소 뒤에는 깊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가 궁금하면 불교사원에 가서 점을 봅니다. 대나무 젓가락 12개가 담긴 통을 흔들어 하나를 떨어뜨립니다. 젓가락에는 1번부터 12번까지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바로 옆에는 1번부터 12번까지 운세가 인쇄된 종이가 있습니다. 불길한 내용이 나오면 이들은 매우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두려움을 종교행위를 통해 극복하려 합니다. 큰 나무를 비롯한 주변의 사물들을 숭배하고, 조상신 등 귀신을 달래려고 합니다. 귀신을 잘 달래서 자신의 집에 불행이 오지 않도록 바라는 것입니다. 길일과 흉일이 따로 있어서 이사 가는 날, 결혼하는 날, 결혼하면 안 되는 날 등 미신에 얽매여 살아가기 때문에 두려움은 더욱 깊어집니다. 하지만 두려움은 미신이나 윤회사상에 따라 귀신을 달래거나 공덕을 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두려움은 죄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한 죄 때문에 인간은 두려워합니다.
두려움의 근본적 해결이 없는 헛된 종교적인 행위는 더욱 두려움을 쌓게 합니다. 귀신을 달래려고 하는 사람들은 귀신을 달래면 달랠수록 더욱 많은 두려움이 쌓이게 됩니다. 있지도 않은 다음 생애를 위해 공덕을 쌓을 수 없을 뿐더러 공덕을 쌓아 다음 생애를 바꾼다 해도 미래를 바꿀 만한 큰 공덕을 어떻게 쌓을 수 있겠습니까. 죄로부터 오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자기 아들을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는 깊고 무거워 하나님 아들의 목숨이 아니면 해결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전 재산을 들여 공덕을 쌓아도 죄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예수님의 공덕에 의해 우리의 모든 두려움은 사라졌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통해 주신 그 사랑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실현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먼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나눠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면 기쁨이 넘칩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됩니다. 교회 공동체가 나눠야 할 사랑은 아들까지 내어주신 그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랑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교회 공동체 안에 어찌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 사랑을 교회에서 실천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김영진 목사(GMS 동남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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