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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경전 꾸란은 어떻게 탄생했나?

 

 

이슬람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꾸란(Quran)1)은 천상(天上)에 원본(原本)이 있으며 무함마드(Muhammad, 571?-632, 이슬람교 시조)에게 계시된 완벽한 경전이라고 주장한다. 그뿐 아니라 이들은 또 꾸란으로 신구약성경의 진위(眞僞, 참과 거짓)를 구별하는 기준을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신구약성경은 여러 사람이 천 오백여 년 동안 쓴 것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오류가 많지만 꾸란은 알라(Allah, 이슬람의 하나님)가 무함마드2) 한 사람에게 계시한 것이기 때문에 혼돈과 오류가 없고, 무함마드가 처음 계시를 받은 때부터 지금까지 일점일획도 변치 않고 원본이 그대로 보존돼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만일 이점에 의심을 품으면 거룩한 꾸란을 모독하는 행위로 간주하며 꾸란이 변질되었다거나 한 구절이나 한 단어라도 추가되거나 삭제되었다고 말하는 자체가 알라(Allah)의 저주를 자초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믿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모순이 이슬람의 가르침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슬람 학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로 그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슬람의 확장을 위해 그리고 이슬람권에서의 자신의 영향력과 신분 유지를 위해 또 사실을 말했을 경우 직면하게 될 핍박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맘 부카리(Bukhari)3)나 이맘 무슬림(Muslim)3)이 수집한 하디스(Hadith, 무함마드의 언행 집)4)는 이슬람교에서 공식적인 경전은 아니지만 꾸란 경전에 버금가는 권위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꾸란 보다 더한 권위가 부여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이슬람교의 교리를 설명할 때 제일 먼저 무슬림들이 의무적으로 행해야 할 다섯 기둥에 대해서 가르친다. 그러나 꾸란에는 이 다섯 가지 의무를 모아 놓은 곳이 없다. 이는 이맘 부카리가 편집한 하디스에서만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슬람의 교리나 가르침에서 문제점을 제기할 때 어떤 학자들의 주장에 근거하여 말하기 보다는 꾸란과 이맘 부카리 혹은 이맘 무슬림의 하디스의 내용을 인용하여 반증한다면 아무도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슬람의 경전 꾸란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에 대해서는 하디스에 비교적 많은 자료가 있다. 그런데 그 자료들은 지금 우리가 주변에서 듣고 있는 내용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제일 먼저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무함마드는 신(神)으로부터 책을 받은 일도 없고, 그가 죽을 때까지 꾸란을 책으로 만든 일도 없고, 후대 무슬림들에게 자신이 받은 계시를 책으로 묶어 만들라고 명령한 일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꾸란에는 알라(Allah)가 무함마드에게 책(꾸란)을 내려 보냈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꾸란은 알라가 무함마드에게 성경의 모체가 되는 책을 내려주셨다고 말한다. “그대에게 그 책을 계시하신 분은 알라이시며 그 안에는 근본의 말씀이 있어 성경의 모체가 되고…”(꾸란 3:7) “그분의 종(무함마드)에게 그 책(꾸란)을 계시한 알라께 찬미를 드리나니 그 안에는 일점의 왜곡됨도 없노라.”(꾸란 18:1) 이 두 구절 외에도 꾸란에는 여러 곳에서 알라는 무함마드에게 책(al-kitab, the Book)을 내려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슬람의 꾸란이라는 경전은 주후 632년 무함마드가 죽을 때까지 없었다. 즉 이슬람의 역사와 하디스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죽을 때까지 꾸란을 책의 형태로 만든 일이 없었다. 다만 그가 간헐적으로 계시를 받았다고 암송하는 소리를 들었던 제자들이 그 내용을 나뭇잎이나 돌 등에 새겨놓고 암기하기도 했던 것들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꾸란의 내용을 암기하던 사람들이 전쟁에 나가서 죽게 되어 무함마드의 계시가 소멸될 위기에 놓이게 되자 우마르(Umar)의 제안에 이슬람의 첫 칼리프 아부 바크르(Abu Bakr, 573-634)가 그것들을 모으게 하였고, 1차 수집한 것을 우마르의 딸 하프사에게 맡겼다가 결국 3대 칼리프 우트만(Uthman, 577-656)의 명에 의해서 하프사가 가지고 있는 것과 흩어져 있던 꾸란의 구절들을 수집하여 종합 편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외에는 어떤 종류의 완본이든지 조각 본이든지 모두 불태우도록 명령했다.(Sahih al Bukhari: Volume 6, Book 61, Number 510)

 

 

초기 무슬림들은 꾸란을 책으로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부카리의 하디스에 의하면 무함마드가 죽은 후 전쟁터에서 꾸란을 암송하던 사람들이 죽고 전쟁이 더 심해져 꾸란 암송 자들이 다 죽어버리면 꾸란 자체가 없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그 구절들을 수집하여 책으로 묶자는 제안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주저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함마드가 살아있을 때 명하지 않았던 일을 그의 허락 없이 행한다는 것은 그것이 비록 자기들이 볼 때는 좋은 일이지만 알라가 나중에 그 일을 어떻게 심판하실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일이라는 확신이 들자 아부 바크르는 자이드 빈 타비트(Zaid bin Thabit, ?-665)에게 명하여 꾸란의 조각들을 모으라고 명했던 것이었다. 아부 바크르의 이 같은 명령을 받은 타비트는 산을 옮기라는 명령보다 더 어려운 명령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두려워했다고 한다.(Sahih al Bukhari: Volume 6, Book 61, Number 509)

무함마드는 자기가 계시 받았다고 말했던 꾸란 구절들을 잊어버리기도 했다. 무함마드는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낭송해 준 구절들을 나중에 망각하고 잊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낭송하는 것을 듣고 생각났다고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다음의 하디스 구절이 그 증거다. “메신저(무함마드)께서는 사원에서 낭송 자가 꾸란을 낭송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는 내가 잊었던 그것을 생각나게 했으니 나는 알라께서 그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원한다.’고 말했다.”(Sahih al Bukhari:Volume 6, Book 61, Number 562) 꾸란의 구절을 망각하는데 대한 계시는 꾸란 자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취소하거나 망각케 한 어떤 계시의 구절이 있다면 우리는 그보다 더 낫거나 비슷한 것을 가지고 온다. 알라(Allah)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너희는 모르느냐?”(꾸란 2:106, 힐럴리 역)

 


꾸란을 낭송하는 방법은 원래 여러 가지였다. “알라의 메신저(무함마드)께서 가브리엘 천사가 내게 꾸란을 어떤 식으로 낭송해 주기에 내가 다른 식으로 낭송해달라고 계속 부탁을 했더니 결국은 7가지 방법으로 낭송해 주셨다.”고 말했다.(Sahih al Bukhari-Volume 6, Book 61, Number 513) 꾸란은 원래 다양한 방법으로 낭송할 수 있도록 계시되었다고 이슬람의 제 2경전이라고 하는 부카리의 하디스에게 말하고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무함마드는 가브리엘 천사가 내려준 꾸란을 그대로 받은 것이 아니라 무함마드의 요청에 의해서 가브리엘 천사가 낭송하는 방법을 7가지로 다시 계시해 줬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무슬림들은 7세기에 무함마드가 낭송하던 한 가지 억양과 발음과 악센트로 낭송해야 한다고 고집하면서 의미도 모르는 아랍어로 꾸란을 낭송하게 하는 것일까?

우트만 꾸란의 편집이 완료되었을 때 꾸라이시 족들이 교정을 보았다. 우트만은 3명의 꾸라이시 사람들에게 “자이드 빈 타비트의 꾸란 중 어느 부분이라도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꾸라이시 방언으로 기록하라. 왜냐하면 꾸란은 그들의 방언으로 계시되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Sahih al Bukhari Volume 6, Book 61, Number 507)

꾸란을 수집할 때 실수로 빠뜨렸던 구절들이 있었다. 무함마드가 살아있을 때 꾸란을 가장 잘 외우고 있었던 4사람이 있었다. 무함마드는 사람들에게 압둘라 빈 마수드, 쌀림, 무아드, 우바이 빈 카압 이 네 사람에게 꾸란을 배우라고 명했다.(Sahih al Bukhari Volume 6, Book 61, Number 521)

그러나 무함마드 사후 초대 칼리프를 역임했던 아부 바크르는 자이드 빈 타비트에게 꾸란을 모으라고 명령했다.(Sahih al Bukhari Volume 6, Book 61, Number 509) 타비트는 실수로 꾸란의 한 구절을 빠뜨렸다고 고백하고는 나중에 무함마드가 낭송하던 것을 들었던 생각이 나서 그 구절을 찾아 나섰다가 결국은 쿠자이마 빈 타비트 알 안싸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 구절은 꾸란 쑤라 타우바(9:128~129)였다고 기록되어 있다.(Sahih al Bukhari Volume 6, Book 61, Number 510)

계시된 꾸란 구절이 즉시 수정된 경우도 있다. 꾸란 4:95에 “무슬림 중 알라를 위해서 전쟁에 나가 싸우는 자들과 집에 앉아 있는 자는 동등하지 않다.”는 구절이 무함마드에게 계시되었다고 하여 자이드가 기록하려는데 그 때 아므르 빈 움막툼(Amr bin Um Maktum)이라는 소경이 무함마드 뒤에 있다가 그 소리를 듣고 “오 알라의 메신저여 나 같은 소경에 대한 당신의 명령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다음과 같은 계시가 다시 내려왔다는 것이다. “무슬림 중 알라를 위해서 전쟁에 나가 싸우는 자들과 불구자도 아닌데 집에 앉아 있는 자는 동등하지 않다.”(꾸란4:95)(Sahih al Bukhari Volume 6, Book 61, Number 512)

 

 

꾸란에는 사탄에게 받은 계시도 있다. 무함마드가 소속되어 있던 메카의 꾸라이시 족이 섬기던 신 알라(Allah)에게는 세 딸 신(神)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라트, 우짜, 마나트였다. 그들에 대한 꾸란이 계시되었는데 “너희는 라트, 우짜, 마나트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느냐? 저들은 하늘 높이 나는 학과 같아서 그들의 중재는 알라께서 열납하시느니라”(꾸란53:19~23)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알라의 단일신론을 주장하면서 딸 신들을 인정하는 것은 교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계시를 취소하는 새로운 계시가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 새로운 계시는 지금 꾸란에 있는 것처럼 세 딸들의 권위를 부인한다.(꾸란 53:19~23) 그러자 사람들이 왜 알라의 계시가 바뀌었냐고 물었을 때 “그 구절은 사탄이 내 혀에 넣어준 것이었기 때문에 가브리엘 천사의 계시에 의해서 취소되었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Al Tabari Hadith Book6 No. 107)

그와 같은 것을 보편화시키면서 인정하는 구절도 있다. “그대 이전에 우리가 보낸 선지자나 예언자들이 계시를 낭송할 때 사탄이 거짓을 그 속에 섞어 넣지 않은 자는 없다. 그러나 알라께서는 사탄이 섞은 것을 취소하시고 자신의 계시를 세우셨다. 알라는 모든 것을 아시고 지혜로우시다.”(꾸란 22:52 힐럴리 역)

꾸란에서 사라진 구절도 있다. “알라의 말씀을 다른 것으로 대체할 때 그 계시함이 무엇인가는 알라만 아심이라. 이에 그들이 그대는 위조자라고 말하나 그들 대다수는 알지 못하더라.”(꾸란 16:101 최영길 역) 대체라는 말은 하나를 취소하고 다른 것으로 바꾼다는 말인데 하늘에 원본이 있다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

이 같은 꾸란에 대해 미화 된 홍보용 자료들이 순진한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꾸란은 사실 무함마드가 살아있을 때부터 수시로 취소 또는 첨가되기도 하며 대체되기도 하는 변화를 거듭해 왔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책으로 묶을 생각을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함마드가 죽은 후 꾸란의 구절들을 수집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문제가 있었다.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라는 계시가 분명히 꾸란에 있었고 무함마드도 투석(投石) 형(刑)을 집행했고 그의 후계자들인 칼리프들도 투석 형을 알라의 명령으로 알고 집행했는데 지금은 꾸란에 그 구절이 없다는 것을 보더라도 양심 있는 무슬림 학자들이라면 꾸란이 하늘에 원본이 있었던 것이 그대로 책으로 계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글쓴 이 / 이만석 목사(한국이란인교회)

출처 / 기독일보 2010.9.15.

1) The Quran is the central religious text of Islam, which Muslims believe to be a revelation from God. It is widely regarded by Muslims as the finest piece of literature in the Arabic language . Quranic chapters are called suras and verses, ayahs.
 2) Muhammad Prophet is considered in Islam to be the greatest messenger and prophet sent by God to guide humanity to the right way. Born: Mecca, Saudi Arabia, Died: June 8, 632 AD, Medina, Saudi Arabia, Full name: Abū al-Qāsim Muḥammad ibn ʿ Abd Allāh ibn ʿAbd al-Muṭṭalib ibn Hāshim, Buried: Green Dome, Medina, Saudi Arabia, Spouse: Maymunah bint al-Harith (m. 629 AD–632 AD)
 3) 이맘 부카리(Bukhari) : 하디스를 수집한 유명한 이슬람 학자로는 이맘 부카리, 이맘 무슬 림 등이 있다.
4) Hadith are collections of the reports claiming to quote what the prophet Muhammad said verbatim on any matter. The term comes from the Arabic meaning “report”, “account” or “narrative”. Wikipedia 하디스(아랍어: حديث نبوي)는 무함마드가 말하고(Qaul), 행동하고(Fi’ul), 다른 사람의 행위를 묵인한(Taqreer) 내용을 기록한 책이며 꾸란(코란), 이 즈마, 끼야쓰와 함께 샤리아(sharia law, 이슬람법)의 4대 원천이다. 무슬림은 알라의 말씀인 꾸란과 더불어 하디스에 기록된 무함마드의 언행(순나)에 따라 행동함을 삶의 기반으로 한다. 종교의 시조의 말을 담은 종교적인 어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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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란 “계시”에 나타난 “가브리엘 천사”의 실체 이해

 
I. 서론

꾸란에서 "계시“전달자로 “가브리엘 천사”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구절은 Sura 2:97-98과 Sura 66:4이다.

그 밖에 Sura 53:5-7에서는 “가브리엘 천사”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고 3인칭 대명사 “그(he)”에 대한 각주내용에서 “가브리엘 천사”를 다루고 있다. 또한 Sura 97에서는 “계시” 전달자로 ‘the Rū�ḥ€(the Spirit)’가 한국어 꾸란에 각각 “성령” 또는 “가브리엘 천사”라고 번역되어 나온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가브리엘 천사”가 직접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Sura 2:97-98, 53:5-7은 모두 메디나 “계시”이고,

 

 “가브리엘 천사”가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은 Sura 53:5-7과 97은 메카 “계시”라는 점이다. 이에 대하여 최영길은 “어느 날 밤 무함마드는 눈 앞에서 신의 모습을 대하고 신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다고 생각 하였으나 메디나 이주 후 신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는 유대교의 교리를 알고 천사 가브리엘의 강림이라고 해석하였다.”고 말한다.

 

이처럼 이슬람 학자조차도 무함마드가 “계시”를 받던 당시에 자신에게 “계시”를 전하여 준 “계시”전달자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최영길은 무함마드가 “계시”전달자를 “가브리엘 천사”라고 확신하게 된 동기를 유대교의 교리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 이전에 부인 카디자의 사촌, ‘와라카 이븐 나우팔 (Waraqa Ibn Nawfal)의 영향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와라카는 기독교인이었고 유대교와 기독교의 가르침을 듣고 성서내용의 일부를 읽어서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이븐 히샴’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카디자와 함께 와라카를 찾아가지 않았고 다만 카디자가 전해준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카디자로부터 무함마드가 보고 들었던 것들에 대하여 전해들은 와라카는 “It is the great Namus.”라고 하면서,

만약 무함마드에게 일어난 일이 사실이라면 무함마드는 선지자가 틀림없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Namus”라는 단어의 의미를 “가브리엘 천사”로 해석하게 되어 진 것이다.

아랍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Namus”5는 “비밀-secret” or “법-law”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무슬림들에게는 “가브리엘 천사”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는 현대 이슬람사회에서 . “Namus” “명예”나 “권위”를 상징하는 단어로 가족구성원들 사이에서, 특별히 부인들이나 딸들, 여자형제들에 대한 남성의 명예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모세에게 율법이 임했듯이 무함마드에게 임한 “율법”을 “Namus”라고도 하고,

무함마드에게 “계시”를 주었다는 “가브리엘 천사”를 “Namus”라고도 한다는 것이다.

 

와라카는 카바신전을 돌아보고 있는 무함마드를 찾아가서

모세에게 주어졌던 계시가 무함마드에게도 임했음을 축하하였다.

그러나 와라카는 메카의 기독교 지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체험한 사람도 아니었고

무함마드에게 임한 ‘영’을 정의해 줄만큼 영적으로 성숙한사람도 아니었다.

 

다음은 “가브리엘 천사”에 대한 언급이 있는 꾸란 구절들이다.

직접적인 언급이 있는 구절들과 간접적인 언급과 더불어 해설이 있는 꾸란 구절들을 고찰함으로 “가브리엘 천사”가 “계시”전달자로 소개된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필자는 꾸란 “계시”자로 알려진 “가브리엘 천사”에 대한 실체를 각각 무함마드의 이해, 카디자의 이해, 민속 신앙적 이해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이렇게 각기 다른 해석을 하는 이유는 꾸란 “가브리엘”의 “계시”에 관한 구절들8에서 볼 수 있듯이 “계시”자로 알려진 “가브리엘 천사”가 한 번도 자신을 가브리엘 천사라고 소개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꾸란은 “가브리엘 천사”를 “성령”이라고 정의하고 있어서, 꾸란 “계시”에 나타난 “가브리엘 천사”의 정체성 문제는 기독교 신관인 삼위일체에 대한 문제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필자는 꾸란의 “계시”자로 알려진 “가브리엘 천사”를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II. 가브리엘 천사”에 대한 언급이 있는 꾸란 구절들

A. Sura 2: 97-98

Sura 2는 메디나에서 계시된 286절로 전체 114장 중 가장 긴 장이다.

Sura 2의 장명은 “바까라(암소)”인데 내용 중 삼분의 일 이상이 성서의 백성들이라 일컬어지는 이스라엘의 자손 유대인들과 메디나에서 거주하고 있는 무슬림들과의 관계, 그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음모, 죄악 등의 일련의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10 이는 무함마드가 받은 “계시”의 신빙성에 대한 논란 들이며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세력들이 메디나에서 많은 핍박을 받았기 때문에, 그는 그러므로 Sura 2 : 97-98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한 “계시”의 권위를 피력하면서 자신들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음은 Sura 2 : 97-98의 내용이다. 일러 가로되 가브리엘 천사의 적은 하나님의 적이라 말하라 하나님은 천사를 통하여 그대에게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 꾸란을 계시하셨나니 그것은 이전에 확증되었노라 그것은 믿음이 진실한 자의 길이요 복음이니라 하나님과 그분 의 천사들과 가브리엘과 미카엘에게의 적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적이거늘 실로 하나님은 믿음이 없는 자들의 대적이시라

다음은 아랍어 꾸란의 음역으로 아랍어 원전에 “Jibriila (지브릴-가브리엘의 아랍어 격변화)”가 분명

히 언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Qul mań€-kaana 'aduw-walli-Jibriila fa-'innahuu nazzalahuu 'alaa qalbika bi-'iẓ�nillaahi muṣ€addiqal-limaa bayna ya-dayhi wa hudań�w-wa bushraa lil-Mu'-miniin,- (Sura 2:97) Mań€-kaana 'aduwwal-lil-laahi wa malaaa-'ikatihii warusulihii wa Jibriila wa Miikaala fa-'innallaaha 'aduwwullil-kaafiriin. (Sura 2:98)12

메디나 “계시”는 특성 면에서 메카 “계시”와 많은 차이가 있다. 꾸란 114개 장중에서 메디나 “계시”는 20개이고 나머지 94개의 장은 메카 “계시”이다. 그런데 장과 절의 길이를 보면 꾸란 전체의 3분의 1이 메디나 “계시”이고 3분의 2가 메카 “계시”이다. 그런데 초기에 “계시”된 메카 “계시”에 비하면 메디나 “계시”는 그 장과 절의 길이가 길다. 왜냐하면 메카 “계시”가 단지 우상숭배의 부정과 알라에 대한 유일신 신앙의 확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메디나 “계시”는 이슬람 공동체인 ‘움마’의 건설로 인하여 ‘움마’의 개념이 메디나 “계시”속에 나와 있으며 ‘움마’의 질서를 어떻게 이룩하여야 할 것인가가 메디나 “계시”에 기술되어 있다. 따라서 메디나 “계시”는 군사를 포함한 정치적, 사회적 요소가 포함되어있다. 특별히 사회성이 풍부한 것이 메디나 “계시”의 특색이라고 한다. 즉 메카 “계시”가 우상숭배의 부정과 알라에 대한 유일신 신앙의 확립이었다고 한다면, 메디나 “계시”는 정치적 시기를 맞아 대외적인 요소와 함께 대내적인 사회성을 풍부히 한 것이다. 무함마드가 “예언자”로서 메디나에서 살았던 시대는 10여년에 지나지 않지만 이때의 “계시”적 특성은 군사를 포함하는 정치성 때문에 “계시”의 구절이 산문조로 되고 내용도 훨씬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메카 “계시”처럼 암시적, 종교적, 상징적 이라기보다는 현실성이 많이 보인다.

메디나 “계시”는 기독교의 교리서와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Sura 2 : 97-98은 “계

시”로서의 꾸란의 권위를 설명하기 위하여 쓰여진 것이라고 보인다. 무엇보다도 Sura 2 : 97-98은 꾸란의 “계시”가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전해 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구절이다.14 이 구절은 메카에서 최초로 “계시”되었다는 Sura 97과는 다른 입장에서 서술되었음을 볼 수 있는데 Sura 97에서는 ‘the Rū�ḥ€(the Spirit)’를 한국어로 “성령”과 “가브리엘 천사”로 해석하여 혼용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메카“계시”에서는 확신이 없게 기술되었던 “계시”전달자가 메디나 이주 이후에 주위의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과 사회적 필요에 의하여 더욱 확고해 졌음을 보여준다. 메디나 이주 이후에 쓰여진 꾸란 구절들이 산문적이고 상징적 이기보다 구체적인 것은 이슬람공동체 ‘움마’를 견고히 하기위한 교리작업의 일환이며 이러한 맥락에서 Sura 2 : 97-98은 꾸란 “계시”전달자로서 “가브리엘 천사”를 확고히 주장하고 있는 구절이다.

B. Sura 66: 4

Sura 66은 메디나에서 “계시”된 12절로 선지자의 가정에 관계되는 규범을 소개하면서 무슬림여성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무함마드와 그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하여 순결을 지키고 믿음에 충실한 여성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과 믿는 사람으로서 실수하고 , 과오를 범했을 때는 즉시 참회하고 선행으로 속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언급되고 있는데, 무함마드에게 누를 끼쳤다는 부인 ‘하프사’와 ‘아이샤’가 회개하지 않고 이로 인하여 무함마드가 이혼하게 된다 하여도 “가브리엘 천사”가 무함마드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Sura 66:4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일 너희 둘이 하나님께 회개하면 너희에게 복이 될 것이라 또한 너희 마음도 이미 그렇게 기울었노라 너희 서로가 그분께 거역한다 하여도 하나님과 가브리엘천사와 믿음으로 의로운 자들이 그분을 도울 것이며 천사들도 더욱 그러하리라.

다음은 아랍어 꾸란의 음역으로 아랍어 원전에 “Jibriilu (가브리엘)”가 분명히 언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메디나에서 쓰여진 구절은 아랍어 원전에서 ‘the Rū�ḥ€(the Spirit)’가 아닌 “Jibriilu (지브릴-가브리엘의 아랍어 격변화)”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이는 Sura 2 : 97-98에 관한 설명과 같이 ‘움마’공동체의 확립과 사회적 필요에 의하여 이슬람의 교리를 설법하고 꾸란 “계시”의 권위를 세우고자 메디나 이주 이후 후대에 이르러 “가브리엘 천사”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있는 구절들이라고 볼 수 있다. 본 장은 메카에서 “계시”된 5절로 이루어져 있다. 메카에서 내려졌다는 꾸란 구절들은 이와 같이 메디나에서 “계시”되었다는 구절들에 비하여 짧은 특성이 있다. 그러므로 구절의 길이에 따라 구성된 꾸란의 특성상 꾸란의 뒤쪽에 있는 장들이 주로 메카에서 “계시”되었다는 구절들이다. 97장의 특징은 “계시”의 전달자인 “가브리엘 천사”가 주석에만 간접적으로 언급되어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구절들과 달리 메카에서 “계시”되었다는 Sura 97에는 “Jibrill(가브리엘)”이라는 단어가 아랍어 원전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Tanassalul-malaaa-'ikatu war-Ruuhu fiihaa bi-'iẓ�ni Rabbihim-min-kulli' ‘amr:”(Sura 97:4)17 여기서 ‘한 영(the Spirit by Allah's permission - Ruuhu)’ 이라는 표현만 있을 뿐 “가브리엘 천사”라는 말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한국어 꾸란에 “가브리엘 천사”, “성령”이라고 표현된 것은 메디나 “계시”의 영향을 받아 꾸란 주석가들의 해석에 의한 것일 뿐이다.

본장의 명칭은 제1절의 “실로 하나님은 거룩한 밤에 이 계시를 내리나니”에서 언급된 ‘까다르’란 어휘

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꾸란 97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1. 선실로 하나님은 거룩한 밤에 이 계시를 내리나니

2. 거룩한 밤이 무엇인지 무엇이 그대에게 설명하여 주리요

3. 거룩한 이 밤은 천개월보다 더 훌륭한 밤으로

4. 이 밤에 천사들과 가브리엘 천사가 주님의 명령을 받아 강림하여

5. 아침 동녘까지 머무르며 평안하소서 하고 인사하더라

Sura 97의 주제는 “경이로운 권능(능력)의 밤”이다. “계시”가 이 세상에 내려와 멋진 세상과 각 개인의 삶속에서 천사들을 통하여 알라의 영적 능력이 나타나면서 그릇된 행실들을 바로하고 평화와 화합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이다.19 한마디로 새로운 시대가 이 밤에 시작된 것을 의미한다. 이는 꾸란이 “계시”된 것은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의 탄생과 비교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새 시대가 도래 하였으나 이슬람에서는 그렇지 않다. 알라는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고 그의 말씀을 대신하여 보냈고 그 말씀이 꾸란(책)이 된 것이다. 그러나 복음서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a person)이 되었다. 여기서 무슬림들은 알라가 꾸란에서 현현되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임마누엘 하시면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여기서 가장 큰 차이점은 꾸란 이라는 생명이 없는 글들과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차이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이슬람교와 기독교 사이에서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손주영도 그의 책에서 “기독교에서는 신의 말씀이 ‘육신화 되었음’을 믿는데, 무슬림들은 신의 말씀이 ‘꾸란이 되어 내려왔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무슬림들이 ‘신의 말씀’인 꾸란을 일생동안 부단히 읽고 암송하면서 신에 대한 믿음과 복종을 표현한다.”22고 한다. 여기서 “계시”전달자에 관하여 해석상의 문제를 살펴 볼 때 같은 저자인 최영길이 각각 달리 “가브리엘 천사”라고 했다가 “성령”이라고 해석한 것은 독자들에게 적지 않은 혼란을 야기 시키고 있다. 물론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입장에서 “가브리엘 천사”를 “성령”으로 이해하고 기술 한 것으로 보이는데 오히려 원문의 ‘Ruuhu - the Rū�ḥ€(the Spirit)’를 생각 할 때에 “성령”이 아닌 ‘영’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른 표현일 것이다. 왜냐하면 ‘Ruuhu - the Rū€ḥ�(the Spirit)’를 ‘성령’으로 해석하고 표현한다면 ‘Ruuhu- the Rū€ḥ�(the Spirit)’가 하나님의 영이 되므로 삼위일체론을 받아드리는 것이 되고, 그들의 주장처럼 하나님은 아들도 없고 동반자도 없다고 할 때에 ‘Ruuhu - the Rū€ḥ�(the Spirit)’는 ‘창조된 영’으로서 성령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D. Sura 53:1-18

Sura 53은 메카에서 "계시"된 62절로 구성되어 있으며 꾸란의 메시지와 부활에 대한 믿음 그리고 다른 메카 "계시"와 유사한 내용과 목적을 다루고 있다.23 무함마드가 받은 "계시"는 한 점의 흠도 없고 무함마드의 이기적인 의도나 다른 사람들의 속이는 것으로부터 온 것이 절대 아니라 분명히 알라로부터 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Sura 53의 주제는 꾸란 “계시”는 환상이나 착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환상이나 착각은 알라를 의심하고 알라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라는 모든 것의 원천이요 목적으로 꾸란 “계시”는 착각이 아닌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 중 1절부터 18절까지는 무함마드에게 영에 대하여 두 가지 비젼(vision)을 주고 있다. 다음은 1절 부터 18절까지의 내용이다.

1. 지는 별을 두고 맹세하사

2. 너희의 동료는 방황하지도 않고 유혹 되지도 아니했으며

3. 그의 욕망을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

4. 그것은 그에게 내려진 계시라

5. 그는 능력의 있으신 분25으로부터 배웠노라

6. 그는 지혜를 가지고 나타났으니

7. 그는 지평선 가장 높은 곳에 있었노라

8. 그런 후 그는 가까이 다가왔으니

9. 그 거리는 활 양쪽 끝 사이의 길이 혹은 그보다 더 가까웠더라

10. 그렇게 하여 하나님은 그의 종에게 전하고자 한 계시를 내렸으매

11. 그의 마음은 그가 본 것에 대하여 거짓함이 없더라

12. 그래도 너희는 그가 본 것에 관하여 논쟁하고 있느뇨

13. 실로 그는 다시 한 번 그를26 보았으니

14. 마지막 시드라 나무 옆에 있었더라

15. 그곳 가까이에는 영주할 천국이 있으니

16. 보라 시드라 나무가 가리워지매

17. 그의 시선은 흩어지지 아니하고 한계를 넘지도 않더라

18. 실로 그는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예증들을 보았노라

우리는 메카에서 “계시”된 Sura 53:5에서 “계시” 전달자의 이름을 분명히 밝히지 않고 다만 주석가들이 “계시” 전달자를 “가브리엘 천사”라고 해설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무함마드는 대부분의 “계시”들을 말로 받았으나

Sura 53은 본 것을 기록하고 있다. 특별히 ‘순니’파 사람들이 “가브리엘 천사”가 무함마드를 찾아와서 영감으로 비젼을 주었다고 한다. 무함마드는 그가 들었던 음성과 그가 본 비젼을 알라로부터 온 “계시”라고 해석하였다. 그렇지만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이슬람교에서의 영감과 기독교의 영감은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무함마드는 그가 “계시”를 받은 경험에 대하여 여러 차례 그의 친구들에게 설명하였는데27 “계시”적 현상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볼 수 있다. Sura 53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가브리엘”을 약 30-50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보았다고 한다.

그는 그 영에 대하여 자세히 묘사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영을 힘세고 권능 있는 영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표현들이 ‘가브리엘’의 특성28을 설명하게 된 것이다. 본문에서 해석상 문제가 되는 구절은 5절과 13절인데, “능력이 있으신 분”과 “그를”은 영어 꾸란을 살 펴볼 때 “one mighty in power”와 “him”으로만 언급하고 있을 뿐이고 아랍어 꾸란에는 “'Allamahuu Shadiidul-Quwaa” (Sura 53: 5), “Wa laqad ra-'aahunazlatan 'ukhraa”(Sura 53: 13)29라고 나와 있을 뿐 “가브리엘 천사 - Jibrill”을 직접 언급한 구절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꾸란과 영어 꾸란 각주에서는 ‘“가브리엘 천사”라고 일컬어진다.’ 라는 해설을 덧붙이고 있는데 이것은 후에 메디나 “계시”에서의 확실한 언급에 영향을 받아 주석가에 의하여 재해석되고 있는 부분으로 보인다.

출처 :  소윤정 (서울기독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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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두 얼굴

 

그런데, 그들의 말처럼 정말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이며, 폭력을 일삼는 극렬 원리주의자들은 정말 소수의 테러분자들일 뿐인가? 그들의 주장처럼 이슬람이 정말 그 정도이기만 하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하지만 이슬람은 두 얼굴을 가지고 둘 중의 어느 한 쪽을 편의에 따라 선택하여 사용하는 변신에 능한 이들임을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다. 심지어 많은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이슬람은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이며, 테러를 자행하는 극렬 원리주의자들은 소수일 뿐이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온건한 이들이며 우리와 같은 선한 이웃일 뿐이다는 주장들을 당연하듯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바로 이 점이야 말로 이슬람 전략가들이 가장 노리는 전략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이슬람은 평화를 의미하며 따러서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이다라고 말하길 좋아한다. 하지만 이슬람'평화의 뜻이라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거짓이다. ‘평회를 의미하는 아랍어 단어는 쌀람’(히브리어의 샬롬)이며, ‘이슬람은 단순히 복종’(submission)을 의미할 뿐이다. 이슬람은 알라의 뜻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사람들(무슬림)로 구성된 종교요, 그 종교의 경전인 꾸란(Quran)은 최소한 다음과 같이 무슬림들에게 명령한다.

 

박해가 없어질 때까지, 종교가 알라의 것이 될 때까지 그들과 싸워라”(꾸란 2:193)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이슬람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이 세계를 평화의 집(Dar Es-Esalam. 다르에 쌀람)’ 전쟁의 집(Dar Al - Harb. 다르 알 하릅)’ 으로 이분한다는 사실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여타의 종교들을 물리치고 그들이 꿈꾸는 이상적 이슬람 공동체(움마)를 이루어 이슬람의 율법(샤리아)으로 다스림 받는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전쟁은 불가피하다는 세계관인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땅에 이슬람이 아닌 다른 종교들이 공존하는 현실을 가장 견디지 못하는 종교가 바로 이슬람인 것이다.

 

흔히 꾸란이냐 칼이냐?” 라는 문구로 이슬람을 이해하던 과거의 표현을 두고 무슬림들은 이슬람은 그렇지 않다. 평화의 종교인 이슬람에 대한 서구 기독교인들의 극단적인 편견이 담긴 표현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표현이야 말로 이슬람의 실체에 대해 가장 짧은 표현으로 그 이중성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말이다.

 

이슬람의 실체는 과거나 지금이나 그 근본에 있어서 변함이 없으며, 그 전략에 있어서도 옛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가 있다면 대신 총과 폭탄과 같은 현대식 무기로의 무장이라 하겠다.

 

이슬람은 처음부터 로 세계를 정복해왔고 여전히 을 휘두르며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이슬람에선 아무리 아니라하지만 이슬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만 봐도 알 수 있다.

녹색바탕 위에 선명하게 보이는 아랍어 글씨와 그 아래에 놓인 긴 칼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알라 외에는 다른 신이 없고,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이다!’ 하는 그들의 신앙고백이요,

그 신앙고백의 기초에는 엄연히 긴 이 놓여 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거기에는 그 고백과 함께 다른 상징은 아닌가?

 

하지만 그것이 굳이 평화를 위한 이라고 우긴다면,

평화모든 이교도와의 전쟁을 그치고 난 후의 평화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슬람은 알라의 이름으로’ (비스밀라) 이 땅에 이교도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성전(聖戰. 지하드)해야 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온 세계가 이슬람 율법이 다스리는 이슬람 세계가 오기 전까지

 전쟁은 쉼이 없다는 의미인 것이다.

오늘날 세계 속에서 테러소식이 가장 많은 나라들을 꼽아보라.

모두 이슬람이 국교이거나 절대 다수인 국가들이다.

왜 그럴까?

 

 경전을 통한 판단과 분별

 

아무리 무슬림들이 이슬람을 평화로 포장하여 소개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절대적이고 규범적인 권위의 원천인 꾸란)코란)의 진술을 부정할 수는 없다. 꾸란에는 수많은 구절들이 무슬림들을 독려하면서 알라를 위해 투쟁(지하드)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여기에 몇 구절만 소개해 본다.

 

알라를 위하여 당신을 적대시 하는 자와 싸워라”(꾸란 2:190, 이하 김용선 번역본)

 

박해가 없어질 때까지, 종교가 알라의 것이 될 때까지 그들과 싸워라”(2:193)

 

알라와 그 사도에 싸움을 걸고 지상에 해악을 뿌리려 하는 자가 받는 벌은 살해되든가 십자가서 박히든가 손발을 반대쪽부터 절단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국외로 추방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현세에서 받는 그들의 굴욕이며 내세에서도 그들에게는 무서운 벌이기다리고 있다 “ ( 5:33)

 

그런데 신성월이 지났으면, 다신교도를 발견하는 즉시 죽여라. 잡아라 억류하라, 모든 길에 복병을 두고 기다리라. 그러나 만일 그들이 회개하여 예배를 지키고 희사를 한다면 방면해 주라, 알라께서는 관용하시고 자비로운 분이시다“ (9:5)

 

어떤 이들의 반박과 같이 기독교 역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살상과 전쟁들을 일으켜 온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그것을 경전을 통해 신의 이름으로 명시적으로 명령하는 것과, 원수마저 사랑하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칼을 든 것은 현실적으로 큰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어쨌든 이 명령들이 실제로 오늘날 무슬림들에 의해 수행된다고 가정해 보라. 세계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 구절들에만 의거해 보더라도 오늘날 테러행위를 서슴지 않는 극렬 무슬림들을 가리켜 어찌 소수의 극렬 윈리주의자라고 비난하겠는가? 오히려 무슬림들은 이러한 꾸란의 명령을 문자 그대로 수행하는 전사들에게 환호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땅에 사는 모든 무슬림들이 이러한 꾸란의 명령들을 문자적으로 실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정말 다행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마치 수 많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땅 끝까지 이르러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는 복음서의 지상명령을 끊임없이 읽고 또 듣고 살아가고 있음에도, 그렇게 심각하게 문자적으로 그 명령따라 살아가지 않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 그 명령을 발하신지 2천년이 되도록 그 명령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과업으로 남아 있는 것처럼,

꾸란을 읽는 수많은 무슬림들 역시 위에 명시한 구절들을 무자적으로 수행하지 않은 결과 그나마 세계는 이만큼이나 유지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아무리 주위에는 온건한 무슬림들이 많이 있다고 하지만,

이같은 알라의 절대적 명령들이 무슬림들의 가슴에 끊임없이 각인되는 한,

어느 날 예기치 않는 때에 그들은 오늘날의 테러분자들로 돌변하여 나타날 가능성들을 안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마치 수많은 기독청년들이 자아실현을 꿈꾸며 자기만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예수님의 제자 삼으라는 지상명령에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슬람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는, 그것이 단순한 도를 전하고 생명을 전하는선교가 아니라, 알라의 이름을 위해서는 테러와 피흘림도 불사한다는데 있다. 기독교의 선교 명령이 준행되는 곳이면 어디든지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자연스런 열매인 반면, 이슬람의 지하드가 수행되는 곳이면 어디든지 생명을 멸하고 파괴와 죽음이 열매로 맺어 나오는 현실이라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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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무슬림, 꾸란이 원어 발음 

 

지난 4회의 글을 통해 국내외에서 빠르게 확장하고 있는 이슬람에 대한 경각심을 가졌다면, 이제부터는 이슬람교의 주요 교리와 무슬림의 믿음과 그 실천방식 등을 알아보고자 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일반적으로 혼동되게 사용하고 있는 몇 가지 용어를 확실히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 정리해 보았다. 

 

이슬람교와 회교

 

이슬람교를 흔히 마호메트교회교’(回敎), 또는 회회교’(回回敎)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뜻은 통하지만 틀린 표현이다 

 

대다수의 이슬람 신자들은 무함마드(마호메트)를 믿는 것이 아니라 알라’(Allah)를 믿기 때문에, 예수교나 기독교와는 달리 마호메트교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 그렇다고 알라교라고 하지도 않는다. 회교회회교라는 말은 중국 서부지역에 살고 있는 위구르족, 즉 회회족이 믿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타당하지 않다 

 

이슬람(Islam)이라고 할 때는 종교와 문화를 다 포함하지만, 이슬람교라고 할 때는 종교적인 의미로만 사용된다. 

 

알라와 알라신

 

알라’(Allah)는 이슬람 신자들이 ’(God)을 부를 때 쓰는 말이다. 기독교인이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호칭하는 것처럼, 이슬람 신자들은 자신의 신을 알라라고 부른다. 그래서 아랍어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알라로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알라신이라는 표현은 마치 역전(驛前) 이 틀린 표현이듯이 신과 신을 두 번 사용한 일종의 중복표현이다. 

 

꾸란(코란)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 알라를 하나님으로 번역하는 것도 논란거리다. 이슬람학 박사인 최영길 교수(명지대 아랍지역학)가 번역한 성 꾸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1997, 파하드 국왕 꾸란 출판청)에서는 알라를 전부 하나님으로 번역해 기독교인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이는 기독교의 하나님과 이슬람교의 알라가 동일한 유일신이라는 혼동을 주기 위함으로 보이는데 기독교인은 이슬람 세력의 이 같은 전략에 미혹돼서는 안 된다. 

 

무함마드와 마호메트

 

이슬람교 창시자의 아랍어 발음은 무함마드(Muhammad). 우리나라에서는 마호메트(Mahomet)도 통한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사전은 무함마드를 마호메트의 아랍어 이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마호메트는 중세 유럽인들이 무함마드를 잘못 부른데서 유래한 것으로 영어권에서는 더 이상 쓰이지 않는 표현이다. 무함마드라는 표현이 일반적이며, 한국이슬람교중앙회에서도 무함마드라는 발음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마호메트라는 발음에는 이슬람 세계를 으로 보는 서구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시각이 반영됐다는 설도 있다. 프랑스의 필립 4세가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한 템플 기사단을 탄압하기 위해 이들이 바포메트(Baphomet)라는 악마를 숭배했다는 혐의를 지우고 가혹하게 탄압했는데, 이 악마의 이름이 마호메트의 철자를 바꾼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악마를 뜻하는 스코틀랜드의 옛 말 마훈드(Mahound)도 마호메트에 어원을 뒀을 가능성이 있다. 

 

꾸란과 코란

 

이슬람의 경전을 아랍어로 꾸란(Qur’an)이라고 부른다. 코란(Koran)은 영어식 발음이다. 영어에서는 코란과 꾸란을 둘 다 사용한다. 우리말 사전에는 꾸란은 없고 코란 또는 쿠란이 등재되어 있지만, 한국이슬람교중앙회에서는 공식적으로 꾸란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무슬림과 모슬렘

 

무슬림(Muslim)은 이슬람교 신자를 의미하는 아랍어이며, 모슬렘(Moslem)은 이것의 영어식 발음이다. 영어에서는 이슬람교도를 말할 때 모슬렘과 무슬림을 함께 사용하며, 때로는 무슬렘(Muslem)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슬림이라는 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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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에게 꾸란은성경 이상의 경전

  

이슬람에 대한 이해는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의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그동안 여러 꾸란의 구절들을 인용하여 이슬람의 몇 가지 교리를 설명한 바 있는데 꾸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필요한 경우

성경과 비교하여 설명하도록 하겠다.

   

꾸란의 구성= 꾸란은 무함마드가 받은 계시들을 모두 모아 놓은 것으로 총 114장이며, 각 장은 수라(sura)라고 불린다. 이 수라들은 길이에 따라 다소 길이가 긴 것의 순으로 분류되었다. 꾸란에서는 연대기적으로는 먼저 계시되었을지라도 길이가 짧은 수라들은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1장인 개경장은 길이가 짧지만 예외적으로 맨 처음에 위치하고 있다.

꾸란 가운데 가장 위대한 수라라고 하디스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슬림들은 개경장이 꾸란 전체를 요약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종종 암송한다.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알라의 이름으로 온 우주의 주님이신 알라께 찬미를 드리나이다. 그분은 자애로우시고 자애로우시며 심판의 날을 주관하시도다. 우리는 당신만을 경배하오며 당신에게만 구원을 하나니 저희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 길은 당신께서 축복을 내리신 길이며 노여움을 받지 않는 자나 방황하는 자들이 걷지 않는 가장 올바른 길이옵니다”(꾸란 개경장 1:1-7)

 

무엇이 계시되었는가= 꾸란은 4가지의 경전을 인정하고 있다. 모세를 통해 계시된 것으로 인정하는 토라’(구약의 모세5), 다윗을 통해 계시된 것으로 여기는 시편’, 그리고 예수를 통해 계시된 것으로서 토라를 확증하고 있다고 인정하는 복음’, 마지막으로 무함마드에 의해 계시되었으며 이전의 경전들보다 그 권위가 크다고 믿는 꾸란이 그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무함마드는 이슬람의 뿌리를 성경에 두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토라와 시편, 복음서를 경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꾸란에서는 유대교인과 기독교인에 대해 경전의 백성들이라고 일컫고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꾸란을 최후의 계시이자 최고 권위의 경전으로 명명했다. 자연스럽게 기독교의 성경은 꾸란의 등장을 위한 중간과정의 경전으로 격하돼 버렸다.

 

  또한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은 무슬림에게 있어 무함마드는 신이 아닌 예언자에 불과하다는 것과 예수도 무함마드 이전의 예언자 중의 한 명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예수의 신성이 무시되고 있는 대목이다.

 

 

어떻게 계시되었는가=

예언자 무함마드의 삶과 가르침을 기록한 책인 하디스에 의하면

꾸란은 무함마드가 40세가량이었던 610년경에,

가브리엘 천사에 의해 계시된 것으로 수년에 걸쳐 기록되었다.

  

하지만 꾸란은 성경에 비해 역사적인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 성경의 계시는 1,000년 이상 동안 이루어진 것인 반면, 꾸란은 23년 간 계시된 것들이다. 따라서 꾸란의 예언 중에서는 계시의 기간 동안 성취된 것을 찾아볼 수 없다.

 

 계시 받은 자들의 수도 다르다. 꾸란은 무함마드 한 사람에게 계시된 반면, 성경의 계시는 여러 사람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한 이유로 꾸란이 성경보다 문학적 통일성은 뛰어나다. 그러나 성경이 다수의 저자에 의해 쓰였음에도 내용이 일치한다는 점은 훨씬 더 강한 설득력을 주고 있다.

 

어떻게 전승되었는가= 꾸란은 아랍어로 계시되었고 그 뛰어난 문학성이 신적 특성을 나타내는 주된 증거로 제시되기 때문에 꾸란의 아랍어는 알라의 계시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다. 따라서 꾸란이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번역본들은 알라의 말씀이 아니라 거룩한 책에 대한 의역이나 주석으로 받아들여진다.

 

 꾸란은 무함마드가 온 인류를 위한 예언자이고 이슬람은 모든 사람을 위한 종교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꾸란이 아랍어로 되어 있어야만 알라의 말씀이고,

아랍어를 하는 무슬림들만이 알라의 말씀을 직접 접할 수 있다는 사실과 맞지 않는다는 모순을 드러낸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꾸란의 계시는 본질적으로 알라의 뜻과 인간이 따를 길을 보여주는, 책으로 된 율법이다. 이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약하고 무지한 창조물이다. 그래서 신의 명령을 어겼을 때, 방황을 멈추게 하고 올바른 길로 돌려세워 줄 법이 필요하다.

 

 

꾸란의 교육은 무슬림들이 선행을 통해 심판의 날을 준비하도록 격려한다. 꾸란의 관점에서 계시의 마지막 목적은 사람들을 이슬람으로 이끌어서, 창조자에게 복종하고 그를 숭배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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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부정

 

이슬람은 예수를 중요한 인물로 여기긴 하지만 그의 신성(神性)에 대해서는 철저히 부인한다.

꾸란의 여러 구절에서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여러 선지자 중에 한 명으로 언급되고 있으며

특히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무슬림이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예수에 대해 왜곡하고 있는 또 한 가지 중대한 사실은, 그들이 예수의 십자가 죽음도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의 구절과 이에 대한 이슬람 학자들의 해석을 보면 알 수 있다.

 

 

마리아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선지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살해하였다라고 그들이 주장하더라. 그러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아니하였고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했으며 그와 같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이라. 이에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의심이며 그들이 알지 못하고 그렇게 추측을 할 뿐 그를 살해하지 아니했노라. 하나님께서 그를 오르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권능과 지혜로 충만하심이라”(꾸란 4:157-158).

 

 

꾸란의 한글 번역판인 성 꾸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에서는 위의 구절과 관련, 기독교가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예수의 죽음과 대속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해를 달고 있다.

 

 

먼저 서로 다른 세 가지 견해로, 첫째 예수가 하늘로 승천하였다는 견해,

둘째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살해되었다는 견해,

셋째 예수의 인성은 십자가를 졌고 신성은 하늘로 승천하였다는 견해 등 서로 다른 견해가 있다고 설명하긴 한다.

 

 

하지만 예수가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던 주요 3년을 제외하면 그의 생애는 물론 그가 탄생해서부터 성장에 이르기까지, 또한 성장 이후 그의 사생활은 너무나 신비에 싸여 있는 것들이 많다. 특히 예수의 마지막 생애에 관하여는 더욱 그렇다정통 기독교 학파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생을 마쳤으며, 장사 지낸지 3일 후에 상처 입은 그대로 일어나 주위를 걷다가 그의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먹은 후 그의 몸이 하늘로 승천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 학파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살해되었다고 믿지 않고 있다. ‘바실리단학파는 예수 대신 어떤 누가 십자가에 살해되었다고 믿고 있다. 한편 마르시오니트 복음에서는 예수가 태어난 것까지 부정하고 단지 그가 인간의 형태로 나타났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성 바르나바(바나바) 복음서는 예수 대신 다른 사람이 대신하여 살해 당한 이론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 꾸란에서도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살해되지도 아니했으며 또한 유대인에 의해서 살해된 것도 아니라고 제시하고 있다. 예수는 그대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하늘로 승천하였다고 말하고 있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근거로 들고 있는 바실리단학파는 일반적으로 영지주의자로 알려져 있는 바실리데스가 만든 이단종파로부터 비롯된 학파이며, 마르시오니트 복음 역시 영지주의 외경으로 알려진다.

 

 

또한 바나바 복음서는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한 한 배교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14세기 이탈리아의 위조문서로 알려진다(기독교대백과사전 제4, 1982). 이슬람이 이처럼 정통 기독교에서 배척당한 사상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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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수난설주장하는 이슬람 학자들

 

일부 이슬람 학자는 대체수난설을 주장한다. 이슬람 학자 알-바이다위(Al-Baidawi),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기 위해 몰려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예수에게 그가 예수를 하늘로 들어 올릴 것을 말씀하셨고, 그러자 예수는 제자들 중에 하나가 자원하여 예수 대신에 죽음을 당하였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무슬림 해석가들은 예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대신 죽이는 것은 정당하지 않은 행위이기 때문에, 예수를 대신해서 가룟 유다 또는 예수를 체포하기 위해 갔던 사람이 대신해서 죽임을 당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무슬림 역사학자 이븐 카디르(Ibn Kathir)안식일 저녁에 12명 혹은 17명의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던 예수는 그의 수난에 대하여 알고 있었으며, 그 제자들 중 지원하는 자로서 예수와 유사한 이가 예수를 대신하기로 계획하였고, 예수를 잡으러 온 유대인들은 이 제자를 데리고 가 그가 수난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를 데리고 간 시각이 안식일 저녁이라 유대인들은 그를 식별하지 못하였다고 표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교리적으로 무슬림들은 자기 자신의 죄를 누군가 대신해서 용서 받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이슬람의 속죄론은 기독교와는 달리 죄지은 자 자신이 회개와 참회를 통하여 알라에게 용서를 구하고, 유일신 알라에게 귀의함으로써 구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중간자가 그들의 죄를 대신해서 속죄를 한다는 것은 그들의 신앙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무슬림들에게 있어 예수의 죽음은 구원론적으로 일어날 필요가 없었으며, 신론이나 기독론의 입장에서 볼 때 일어나지 말아야 했으며, 따라서 역사적으로 일어나지 않은 사실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성령은 가브리엘 천사를 말한다?

 

꾸란에는 하나님, 예수, 성령이 모두 언급되어 있다. 하지만 무슬림에게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은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으로 오히려 삼신론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꾸란은 신의 유일성을 강조하기 위해 삼위일체론을 배격하고 있다. 이슬람의 설립당시 아라비아반도에 충만했던 다신교 사상을 철저히 배격했던 것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따라서 꾸란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부정하며, 하나님의 본령(本靈)으로서의 성령도 부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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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신이 아니다

 

예수는 꾸란에 나오는 예언자들 가운데 특출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여섯 명의 위대한 예언자 중의 한 명이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그리고 무함마드. 그중 마지막 세 명의 공통점은 책으로 기록된 율법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예언자로, 그리고 사도로, 복음을 받았는데, 이는 모세에게 주어진 율법을 확증하는 것이다. 신의 허락으로 예수는 기적을 행하여 자신의 사명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고 신뢰할 수 있도록 하였다.

 

 

실로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마리아에게 말씀이 있었으니 이는 주님의 영혼이었노라. 하나님과 선지자들을 믿되 삼위일체설을 말하지 말라. 너희에게 복이 되리라. 실로 하나님은 단 한분이시니 그분에게는 아들이 있을 수 없노라. 천지의 삼라만상이 그분의 것이니 보호자는 하나님만으로 충분하니라.”(꾸란 4:171)

 

 

예수는 마리아의 아들로서 선지자일 뿐 이는 이전에 지나간 선지자들과 같음이라”(꾸란 5:75)

 

 

이처럼 꾸란에서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단지 창조된 인간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가 신이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을 경고하고 있으며, 유대인들에게는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라 간음에서 탄생한 아들이라 말하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일러 가로되 성서의 백성들이여, 너희 종교의 사실 외에는 과장하지 말며, 이전에 과오를 범한 무리의 공허한 욕구에 따르지 말라. 이들은 많은 것을 방황케 하였고 또한 스스로가 옳은 길에서 벗어났노라”(꾸란 5:77)

 

 

가브리엘이 숨을 불어넣어 예수를 창조했다

 

마리아의 아들 예수에게 권능을 주어 성령으로 그를 보호케 하였노라”(꾸란 2:87), “하나님은 마리아의 아들 예수에게 예증을 주어 그를 성령으로 강하게 하였노라”(꾸란 2:253), “마리아의 아들 예수야, 내가 내린 나의 은총을 기억하라. 내가 너를 성령으로 보호하여 네가 요람에서 그리고 성숙하여 사람들에게 말을 하였노라. 내가 너에게 말씀과 지혜를 그리고 구약과 신약을 가르쳤노라”(꾸란 5:110)

 

 

꾸란은 예수의 삶이 성령이 함께 하는 삶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슬림 주석가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 누구와도 신성을 나누지 않는 신의 유일성을 해하지 않기 위해, 성령을 가브리엘 천사로 해석하고 있다.

 

 

꾸란에는 예수를 하나님의 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꾸란 4:171)이라고 부르는 구절이 있는데, 이에 대해 꾸란 해석에 있어 널리 인정받는 주석가, 라지(Razi, 1209)의 해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라지는 다섯 가지 해석을 제시한다.

 

 

첫째, 사람들은 보통 극도로 순결하고 깨끗한 것을 말할 때 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예수는 아버지가 없고,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숨을 불어넣어 창조되었으므로, 그는 순결하고 따라서 인 것이다. 예수가 가브리엘로부터 왔다는 것은 예수를 그만큼 존경하는 것이다. 둘째, 예수는 하나님의 계시의 도구였고, 때로 꾸란은 이를 으로 기술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계시의 대사였기 때문에, 그는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이다. 셋째,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자비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온 이다. 하나님의 자비는 하나님의 영으로 지칭된다. 넷째, 아랍어 에 대한 단어 루(ruh)’(breath)에 대한 단어 리(rih)는 매우 유사하다. 예수는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숨을 불어넣어 창조되었다는 의미에서 이다. 가브리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이라고 불린다. 다섯 째, 예수에게 의 자격을 준 것은 그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는 진실로 고귀하고, 거룩하며, 뛰어난 영들 가운데 한 분이기 때문이다.

 

 

라지의 해석 중, 첫째와 넷째를 보면 하나님이 보낸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숨을 불어넣어 예수를 창조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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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선교전략4-코란의 주제(2)

 

종교는 무함맏과 꾸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며, 사실상 종교에 대한 주제는 꾸란의 알파이며 오메가라고 할 수 있다

 

(수라26-28)...단지 알라 자신이 원하고 동의한 사람들을 위해 의도한 후에만 (그 중보가 유익이 있다.) 실제로 종말에 믿지 않은 사람들은 천사들을 부인들 이름(여성)으로 말할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서는 이에 대한 어떤 지식도 없다. 그들은 단지 속임과 추측을 따르는 자들일 뿐이다. 분명히 속임은 결코 진실을 대신할 수 없다.”수라 37:149-162 “이제 (무함맏 메카의 불신자들에게) 물어보라, 딸들(즉 그들의 꾸며낸 것에 따르면 천사들이 알라의 딸들인 것 같다<꾸란에 쓰여진 것>.)이 너희 창조자의 것이고, 아들들이 그들의 것이란 말이냐? 아니면 우리가 천사들을그들죄가되는경우에도딸삼아만들었단말이냐? 조심하라! 그들은 거짓말쟁이들이기 때문에알라의 자녀(또는 딸들)이 있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의심없이 거짓말쟁이들이다. (알라가) 아들들을 두고, 딸들을 선택할 것 같으냐! 어떻게 판단하느냐? 결국 기억 못하지 않느냐? 또는 너희들을 위해 (알라가 자녀를 둔 것에 대해) 어떤 분명한 증서가 있느냐? 그렇다. 만일 참으로 있다면 너희 책들을 가져와 보라 (이방인들이 알라와)함께 진들 (또는 천사들) 사이에 족보 (또는 어머니-자녀:모자지간 있다고 꾸밈) 만들었다. 그러나 진들 즉 천사들은 이제 만들어진 자인 것들을 분명히 알고 있다. 알라는 그들의 속성보다 깨끗하다. 오직 알라의 단정한 사람들만 (변함없는 알라를 그 분에게 합당하지 않은 속성으로부터 깨끗하게 붙든다.) (오 메카족속들아!) 의심 없이 너희들도, 너희의 숭배하는 우상들도, (한 사람을 알라에게) 대항하여 음모를 꾸미는 자, 거짓말할 줄 아는 자 아니다……

 

위의 모든 구절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무함맏은 유일신을 주창하기 위하여 카바 신전의 모든 알라의 딸들과 아들들로 여겨졌던 우상들을 배격해야 했다. 그 천사들,즉 우상들이 알라의 중보자 역할을 했던 것도 분명하다. 꾸란에서 여러 번 언급된 알라의 아들들, 딸들이 부정되는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존재가 아랍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무함맏이 이슬람 이전의 아랍인들의 우상 숭배를 배격하고 알라를 유일신으로 추앙하는데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암시해 준다. 알라는 결코 혼자 존재하는 신이 아니었다.

 

이제 무함맏은 종교에 대한 체계들을 하나 하나 세워 나갔다. 무함맏이 만든 종교적인 체계는 철저하게 유대교와 기독교를 모방한 것이다.

 

당시의 기독교인들은 믿음을 중요시하고 정의했다. 그러나 무함맏은 믿음에 대한 정의를 복종이라고 정의하였다. 복종은 이슬람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다. 복종하는 종교가 이슬람이고, 복종하는 자들이 신자들이며, 복종하는 자들이 낙원에 들어간다. 반대로 복종하지 않는 자들은 불신자들이며, 지옥에 들어가는 자들이다. 수라 49:14 “아랍인들이믿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오 무함맏 그들에게) 말하라! ‘너희들은 믿은 것이 아니다. 너희들은 복종했습니다라고 말하라! (왜냐하면 아직도)너희가 믿음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만일 너희들이 알라와 그의 선지자에게 복종을 한다면, 그 분이 너희들에게 (행한 선한) 일들 중에서 하나도 적게 하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에 회개와 세례 의식이 있었던 것처럼, 알라에게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기 위해 몸을 정결하게 씻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심지어 이전의 아랍 우상 숭배자들에게도 정결하게 하는 의식이 있었는데, 더 완벽하다는 종교에 정결의식이 없으면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수라 5:6무슬림들이 기도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 얼굴과 손을 팔꿈치까지 씻고, 머리를 물로 문지르고, 다리를 무릎까지 씻고,몸이 의식에 깨끗하지 않다면 목욕하라. 만일 아프거나 여행 중에 있거나 여자를 접촉했거나 물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깨끗한 모래나 흙을 취해서 얼굴과 손에 문질러라 라고 지시한다.

 

당시의 유대인들이 할례를 행하는 것을 중요시 여겼는데, 무함맏은 이슬람 신앙의 기초가 없기 때문에 그 역사의 기초를 아브라함에게서 도용하고, 모세 오경에 예언된 그 선지자를 자신으로 적용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할례와 제사 의식을 중요하게 여겨 그 의미는 전혀 모르면서도 표면적인 의식만 도용하여 사용하였다.

 

유대인들은 과거 성전이 있었던 방향을 향해 기도하는 습관이 있고, 기독교인들은 기도하는 습관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무함맏은 그들보다도 더 많고 엄격한 다섯번의 나머즈 시간을 정해 놓고, 다른 종교보다 형식적인 우위를 보이려고 경쟁하였다. 수라 98:1-5에서 세상에서 가장 올바른 책은 꾸란이고, 이슬람 종교가 올바른 길인데, 그 이유는 그들은 단지 유일한 알라에게, 그 분을 위해 종교를 지키고,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예배하고, 나머즈를 완전히 준수할 뿐만 아니라 구제를 준수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알라를 위해 종교를 지키고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예배하고 나머즈를 준수한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슬람 종교는 알라 숭배, 성지순례, 금식, 나머즈 등과 같은 대부분의 아랍의 종교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우상숭배를 타파하고, 추가로 구제, 아랍 방식의 정결의식, 세금, 결혼 및 이혼 절차에 대한 의식, 지하드 등과 같은 종교 규범을 추가시켰다.

 

무함맏이 이슬람 종교를 만들고 아랍의 우상숭배자들에게 선포했을 때, 소수의 가난하고 소외받았던 사람들을 제외한 아랍인들은 당연히 무함맏을 믿지 않았다. 수라11:26-31절까지 무함맏이 자기 종족 아랍인들을 설득하는 장면이 나온다. “‘너희들은 유일한 알라에게 예배하라! (만일 유일한 알라 외에 다른 어떤 것을 숭배하면), 너희들의 위에 고통스러운 고난의 날이 (올 것을) 나는 두려워한다.’ 그 때 그의 종족 중에 있는 불신자 어떤 사람이 우리들은 너를 우리들과 똑 같은 사람이라고 알고 있고, 너에게는 단지 우리 안에 있는 낮은 사람 <천한 사람들만> 생각 없이 따르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오 나의 종족이여, 소식을 주라! 만일 내가 창조주 편에서 온 분명한 문서를 소유한다면, 그리고 그분이 나에게 자기왕궁에서 은사-선지자직을 주었다면, 그러나 이것이 너희들에게 은밀하게 되었다면, 우리가 너희들을 너희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믿게 하도록) 강요해야 하느냐?…… 오 나의 종족이여, 나는 너희들에게 이것을 위해 소유물을 요구하지 않는다. ……

 

무함맏은 선지자들에 대해 잘 모르는 아랍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성경의 여러 선지자들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하였다. 수라 26:40에서 모세와 마술사들 간의 대결도 종교적 대결이었다고 말한다. 모세가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만일 마술사들이 승리하게된다면, 우리가 그들을 따를 것이다라고말하고있다. 마술사가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전제하지만, 어쨌든 마술사를 따를 수도 있다는 전제를 하고 있다. 나중에 이들 마술사들은 모세에게 패배하여 알라를 믿고 무슬림들이 되었다. 따라서 모세도 이슬람을 전파하기 위해 이집트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수라40:26에서 이집트 왕 바로는 모세를 죽이려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가 우상숭배를 옹호하는 자들의 대표, 즉 왕이었고, 무함맏을 두렵게 하고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는 메카의 우상숭배자들을 예표하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모세는 무함맏의 예표가 되는 듯이 이집트인들의 종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집트의 폭군에 의해 반대를 당하였다고 말한다. 이처럼 무함맏은 이슬람 종교를 사람들에게 확증시키기 위해 모세의 종교가 곧 무함맏의 종교였으며, 마찬가지로 모든 선지자들의 종교가 무함맏의 종교 이슬람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무함맏이 과거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을 이용하자 아랍 우상 숭배자들은 선지자의 표적으로 기적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요구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것이다. 선지자는 자신의 말을 입증할 어떤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라 28:48-49 “이제 언젠가 그들에게 우리의 면전에서 진리의 (선지자가) 와서는 그들이 그에게도 (즉 무함맏에게도) 모세에게도 주어진 기적들이 주어진다면, (우리들이 그를 따랐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들은 전에 모세에게 주어진 기적들에게도 불신자가 되지 않았느냐? 그들은 ‘(타우?과 꾸란이) 서로 서로를 이용하여 힘 있게 하는 두 마법사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 두 책 중) 모두에게 불신자이다라고 말한다.”

 

무함맏이 아랍 우상숭배자들을 설득하려고 이용하였던 것은 주로 성경의 선지자들 이야기였지만, 그가 하는 여러 이야기들 중에는 아랍인들도 아는 여러 전설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수라 23:83 “이것은 단지 너희들의 이전에 있던전 설들이다.” 무함맏의 근거 없고 꿈을 꾸듯 횡설수설하는 소리들과 말도 되지 않는 전설들을 아랍인들이 믿을리가 없었다(수라 21:3-6).

 

무함맏이 과거의 선지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슬람을 확증하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랍 우상숭배자들이 무함맏의 말을 들을수록 반대는 커졌고, 무함맏을 거짓말쟁, 마술사, 귀신들린 자 등으로 취급하며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수라 52:29 “됐다. (오 무함맏), 너는 (사람들에게 꾸란 구절들을 가지고) 가르치라! 왜냐하면 너는 창조주의 호의로 점쟁이도, 미친 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우상숭배자들이 무함맏은) ‘한 시인이다. 우리들은 그에게 재앙이 미치기를 기다린다라고 한다.”) 수라 23:70 “또는그에게는 (무함맏에게는) 귀신들린 것이 있다.’ 라고들 하느냐?” 마법에 가까운 무함맏의 말들은 대단히 많지만, 한 예를 들겠다. 수라73:17 “그렇다. 만일 너희들이 불신자들이 되면, (스스로 공포로) 아이들(의 머리카락들을 희어지게 하여) 노인들로 바꾸어 놓을 날(의 고난)으로부터 어떻게 보호받을 것인가!” 심지어는 무함맏은 자신이 미친 자가 아니라는 것을 맹세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수라 68:2 “연필과 (그와 함께 천사들이)쓰는 기록들에 맹세하건데, (오 무함맏) 너는 창조주의 호의로 미친 것이 아니다.” 당시 아랍 사람들은 무함맏을 따르는 사람들까지 함께 비난하였다. “너희들은 단지 한마술에 걸린,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을 따르고 있다라고 하였다(수라25:8). 수라 81장은 무함맏이 메카에서 초기에 암송했던 수라로서 왜 메카인들이 그를 미친 시인이라고 했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많은 암시를 주고 있다. 수라 81:1-25 “해가 둘둘 말려졌을때, 별들도 (자기 하늘들에서) 흘러내릴 때, 산들도 (자기 자리들에서 옮겨져) 돌아다닐 때, (뱃 속의 새끼가) 열 달 된 임심한 낙타들도 자유롭게 보내졌을 때, 맹수들도 (한 곳에) 모였을 때, 바다들이 (화덕처럼) 불어졌을 때 (그리고 물 대신에 불로 채워졌을 때), 영혼들이 (다시 육체들에) 짝지워졌을 때, 산채로 매장된 (각각의) 소녀에게 어떤 죄 때문에 죽었는지를 물었을 때, (행위를 기록한 책) 페이지가 열려졌을 때, 하늘이 (땅 위에서) 벗겨졌을 때, 지옥이 (불신자들을 위해) 타올라 흐를 때, 천국이 (경건한 자들에게) 가까워졌을 때, (바로 그 날에 각각의) 영혼이 (바로 그 날을 위해) 준비하여 온 것을 (즉 모든 선악을 행한 것을) 아노라! 충분하다. 나는(밤들의 눈에서) 보이지 않는 자, (밤들도) 빨리 지나 (자기 둥지들’, 성벽들에) 숨어있는 자()들에게, 자기 어두움으로 오가는 저녁에게, 그리고 밝고 있는 새벽에 맹세를 하노라! 의심할 나위 없이 이 (꾸란은) 한 위대하고, 힘 있고, 아르쉬의 주인 (되는 알라)의 견해로서 적절한 시간과 장소가 있는, 그곳에서 (즉 하늘에서 천사들 쪽에서) 복종하는 자, 신실한 사도의 (즉 자브러일 천사의 알라 편에서 온) 말씀이다!그리고 너희들의 주인인 (무함맏은) 미치지 않았다. 참으로 그 (자브러일을) 열려진 지평선에서 보았다. (무함맏은) 출저를 모르는 계시를 탐내는 자도 아니다. (그는 알라 편에서 자기에게 온 계시들을 망치지 않고, 완전한 형태로 너희들에게 전해 주었다.) 그리고 이 (꾸란은) 쫓겨난 사탄의 말이 아니다.” 수라 37:6-10 “참으로 우리는 가장 가까운 하늘을 별들로 장식했다. 그리고 (그것을) 모든 종류의 불순종하는 사탄과 귀신들로부터 보호했다. (귀신)들은 가장 높이 존재하는 자들을 (즉 천사들의 말들을) 언제든지 들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그들에게 모든 방향에서 (별들이) 던져진다. 그들을 위해서 (종말에) 끝없는 고난이 있다. 단지 어떤 때 (어떤 말을) 엿들은 자가 (즉 귀신이) 있다면, 그것도 날으는 별이 쫓아가서 따라잡을 것이다. (그리고 멸망시킬 것이다).” 수라 75:7-10 “그렇다. (본 소름끼치는 것들로부터) 눈을 감고, (하늘에 있는) 달도 잡힌 상태에서 해와 달이 하나가 되었을 때에, 그 날에 그 사람이 ‘(이 재앙들로부터) 어디로 피난할 수 있느냐?’ 라고 할 것이다.” 본문에는 무함맏이 계시를 받을 때 얼마나 공포와 소름을 느끼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구절이다.

 

이슬람 선교전략 4-코란의 주제3

 

당시 아랍 사람들은 무함맏의 꾸란에 대해서도 노골적으로 비난 하였다. 수라 25:4-5 그 당시의 사람들이 꾸란에 대해 비난한 내용이다.

 

불신자들 중 어떤 사람들이, ‘(이 꾸란은) 단지 (무함맏) 자신이 스스로 꾸며낸 거짓말이다. 그에게 이 (거짓말을 지어낼 때) 다른 어떤 종족 (특별히 책들의 종족)이 도와 주었다라고 모독하고 중상한다. 또 그들은 ‘(이것은) 이전에 있던 전설인데, (무함맏이) 그것들을 다시 고쳐 쓴 것이다. 그렇다. (이 전설들은 어떤 자들 편에서) 그에게 아침과 저녁에 읽혀져 주어진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비난을 들으면서 무함맏을 따르던 자 중 일부도 무함맏을 거짓말쟁이라고 말하였다. 이럴 때 무함맏은 그들도 독한 말로 욕을 하였다. 수라 33”12-13 “그 때 외선자들과 마음에 상처 받은 (즉 확신이 약한) 어떤 자들이 알라와 그의 선지자가 우리들에게 오직 거짓 약속을 하고 있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많은 반대에 부딪히자 무함맏은 화가 났다. 무함맏은 자기를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는 자들의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며, 보복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였으며, 저주하기 시작하였다. 수라 43:22-26 “아니다. 그들은 말했다. ‘당연히 우리는 조상들을 한 종족-종교 위에 있었고, 당연히 우리들은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들입니다.’그러므로 우리<알라>는 당신<무함맏>보다 전에 어떤 마을과 도시에 어떤 증거자-선지자 보내지 않았다. 단지 그곳의 나타난 것들이 : ‘당연히 우리 조상들을 한 족속-종교 위에서 찾았고, 당연히 우리들은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들입니다라고 한다. (선지자가 그들에게) ‘만일 내가 너희들에게 너희 조상들을 찾은 종교에서 올바른 종교를 끌어낸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라고 말할때 , 그들은 : ‘당연히 우리들은 너희들이 사도로 만들어 보낸 종교에 불신자들이다라고 말했다. 됐다. 우리가 그들에게서 보복을 받았다. 이제 그를 (자기 선지자들을) 거짓말장이로 만드는 자들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보라! 기억하라. 아브라함이 아버지에게 그리고 종족에게 말했었다. ‘당연히 나는 당신들을 숭배하는 우상들보다 정결하다.” 무함맏은 자기 동족들과 종교적인 문제로 다투게 될 때에도 자기 조상들이 섬겼던 잘못된 우상 숭배보다 올바른 종교를 끌어낼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아브라함에게 두어, 아브라함이 그의 아버지와 동족들이 섬겼던 우상 숭배에서 참 종교를 이끌어 낸 것과 같은 행위을 무함맏 자신이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아랍 우상숭배자들의 비난 중에는 근거 없는 것들도 있었다. 아랍 우상숭배자들이 무함맏과 그를 추종하는 자들을 무지막지하게 대한 것들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랍인들의 우상 숭배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으며,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에게 항상 지적되는 사항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함맏은 단지 아랍인들에게서만 반대를 받았던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반대를 받았다. 무함맏이 당시의 사람들과 함께 했던 것처럼, 서로에 대한 신뢰와 축복 대신에, 서로에게 욕지거리와 비난과 저주를 퍼부었던 지독한 말다툼으로 구성되어 있는 종교의 경전은 세상에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꾸란은 사람들에게 축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 아니라 무함맏이 자기의 반대자들에게 무섭게 쏟아부은 저주로 가득찬 책이다. 꾸란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대한 진리를 기록한 책이 아니라, 진실을 왜곡한 거짓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 채운 책이다. 수라 32:13 “나는 지옥을(불신자) 귀신과 사람들의 모든 자로 채우는 자이다.” 이러한 소름끼치는 말을 마귀 이외에 누가 할 수 있겠는가? 과연 사랑의 하나님이 이러한 독한 저주를 퍼붓겠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런 무서운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있겠는가?

 

메카에서 무함맏의 종교는 거의 발전이 없었다. 도리어 많은 반대와 핍박을 받았고,심지어는 그를 따르는 소수의 사람들도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수라18:15,16“자우리 종족은 그 분 외에신들을’ ()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그 우상들이 신인 것에 대하여) 분명한 한 증서를 가져온다면. (결코 가져올 수 없다.) 그렇다. (어떠한 문서도 없이, 동료가 있다 라고 하여) 알라의 영광에 거짓말을 지어내는 사람보다도 난폭한 자가 누가 있느냐? (젊은이들이여!) 너희들은 그들과 알라 외에 그들이 숭배하는 것들로부터 떠나서 거절했기 때문에, 이제 (유일한 너희의 창조주, 알라 자신에게 예배하기 위하여) 동굴에 피난처를 찾아가라! 너희 주가 너희에게 자기 은택을 크고 풍성하게 할 것이고, 너희들의 일들을 번성시킬 것이다.”

 

아랍인들이 무함맏을 거절하고 반대하자 무함맏은 자기를 따르지 않는 모든 아랍인들을 정죄하였으며, 점점 더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대를 품게 되었다. 수라 6:114 “(오무함맏, 아랍 우상숭배자들에게 말하라!) ‘나는 알라 외의 다른 것을 맹세하겠는가? 그 자신이 너희들에게 이 책 (꾸란을) 상세한 (즉 너희들이 논쟁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에 충분히 답변을 주는) 상태로 내려준 자이지 않느냐?’ 우리가 책을 준 사람들(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은 그의(꾸란이) 너희들의 창조주보다 진리로 내려진 것을 알 것이다.” 수라 11:17 “자 이제 창조주 편에서 온 분명한 증서를(즉 꾸란을) 소유한 사람이 (단지 이 세상의 유익들만을 찾는 사람들과 똑같겠는가?) 오히려(알라) 편에서 온 증거 (즉 가브리엘 천사가) 그의(무함맏의) 동료이고, 그보다 이전(즉 분명한 문서인 꾸란보다 이전에) 모세의 책(타우랏이) 있었다. 그것은(이스라엘을 위해 온) 인도자와(알라의) 호의이었다. , 그 자들이 (즉 분명한 증서를 소유한 자들이) 그것을(꾸란을) 믿게 될 것이다. (선지자에게 대항하여서는) 집단들 중에서 누구든지 그 꾸란에 불신자가 되면, 그에게 약속된 장소는 지옥이다.” 수라 21:7 “(오무함맏) 우리는 너보다 전에도 (천사들을 보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지 사람들을 (즉 인간들을) 우리 자신이 그들에게 계시를 보낸 상태로 선지자로 삼았다. 그렇다. (오 메카 족속아) 만일 너희들이 모를지라도 (타우랏, 인질을 아는) 족속의 지식있는 자들에게 물어보라!”

 

수라 21:7은 알라도 무함맏처럼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무함맏을 거절할 것을 모르고 기대를 하였던 무지한 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알라가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일도 모르고 무함맏에게 말했던 것이다. 수라 29:46-47에서 볼 수 있듯이 무함맏은 그의 사역의 초기에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라고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가르쳤다. “(오 믿는 자들이여) 너희들은 친근한 책-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오직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토론하라! 단지 그들 중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들과만 (날카로운 관계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너희들은 말하라! ‘우리들은 자신들에게 내려진 것에도 (꾸란도), 너희들에게 내려진 (타우랏과 인질도) 믿는다. 우리들의 신도, 너희들의 신도 하나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에게만 복종을 한다.’ (오 무함맏, 우리는 너보다 전에 있었던 선지자들에게 책들을 내려 주었다.) 그러므로 너에게도 책, 즉 꾸란을 내려주었다. 그렇다. 우리는 책이 (즉 타우랏과 인질이) 주어진 자들은 그것을 (즉 꾸란을) 믿을 것이다.” 무함맏과 그의 신 알라와 오늘날의 무슬림들은 이 본문에 비추어 보았을 때, 끊임없이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외선을 행하고 있고, 또한 거짓말을 일삼아 왔다.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리 평화를 원하더라도 무슬림들은 결코 평화로운 방법으로 그들을 대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무함맏은 초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옹호할 뿐만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들과 책을 읽는 당시의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 모두를 인정하여 주었다. 수라 3:52-54 “이제 언젠가 예수가 그들 (유대인들) 편에서 불신(신성모독)을 보고서, ‘알라의 (종교에 초대할 때) 누가 나에게 협력자가 될 것인가?’ 라고 말했다. 사도들이 우리가 알라의 종교에 협력하는 자들입니다. 알라를 믿었습니다. 오 예수여, 증거하소서, 우리는 알라에게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창조주여, 증거한 것을 믿었습니다. 당신의 선지자를 따랐습니다. 충분합니다. 우리를 증거자들의 반열에 기록하소서!’ 라고 했다. (유대인들은) 교묘하게 했다. 알라도 교묘하게 했다. 알라는 더 교묘하게 하는 자이다.” 수라 10장은 무함맏이 초기에 이스라엘 민족과 기독교인들에 대해서 극도로 호의적이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수라 10:93-94 “의심없이 우리는 이스라엘을 빼어난 최종적인 곳에 장소를 정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정하고 깨끗한 것들에서 양식을 주었다. 후에 그들이 지식(즉 모세오경)이 주어질 때까지 불일치(모순) 하지 않았다.…… (오 무함맏), 만일 우리가 너에게 밝힌 것들에서(즉 전에 종족들에 대해 밝힌 우리 구절들에서) 의심하게 된다면, 그럴 경우에 너보다 전에 있었던 책(즉 모세오경과 신약성경) 읽는 사람들로부터 물어보라! 분명히 너에게 창조주 편에서 진리인 꾸란이 왔다.” 수라 44:29-32 “그렇다. 그들에게 하늘도, 땅도 울지 않았고, 그들에게 기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 참으로 우리는 그들을 아는 상태에서 모든 세상들, 즉 사람들 중에서 선택하였고, 선호하였다.” 비교적 초기의 메카 수라에 속하는 위의 44장에서 무함맏의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동경심과 감정은 거의 눈물을 쏟을 직전이었다. 수라 45:16도 비슷한 내용이다. “참으로 우리는 이스라엘 (종족)에게 책, 즉 타우랏, 지혜 그리고 선지자직을 수여했다. 그리고 그들을 정하고 깨끗한 것들에서 양식을 주었으며, 또한 그들을 모든 세상보다 높게 했다.”

 

그래서 무함맏은 유대-기독교인들에게 자기가 만든 새로운 신과 종교가 서로 비슷하니 함께 숭배하자고 제안한다. 수라 3:64-65 “ ‘(오무함맏) 말하라! ‘오 친근한 책’ (즉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에게도 너희에게도 동일한 한 말씀에 일치하여 유일한 알라에게만 예배를 드리자! 그에게 어떤 것도 동료로 만들지 말자! 그리고 알라를 두자! 어떤 것들을 신으로 삼지 말자!’ 만일 그들이 (즉 친근한 책들 그 초대를)거절하면, 그 때는 너희들이 (오 신자들이여) ‘너희들은 증인이 되라! 우리는 무슬림들이다. 유일한 알라에게 복종하는 자들이다라고 말하라! ”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먼저 무함맏은 자기가 유대-기독교 전통을 따르는, 즉 구약과 신약 성경에 예언된 대로 와서 그것을 확증하는 자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무함맏은 우선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슬람은 아브라함의 종교, 모세의 종교, 노아의 종교이고, 무함맏은 그들의 종교에 꾸준히 머물러 있는 자라고 주장한다. 수라12:38,39 “나는<무함맏은> 나의 조상들의 길,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종족과 종교를 따른다. 우리를 위해서 알라에게 어떤 것을 동료로 만드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 오 친구들이여, 흩어진 다양한 안개 신들이 더 좋은가 아니면 유일하고 승리자 알라가 더 좋으냐? 너희들은 그를 버려두고, 자기들과 조상들이 부른 이름들 -우상들에게만 예배하고 있다가장 올바른 종교는 바로 이것이다.” 라고 말한다. 무함맏 당시의 아랍인들과 조상들이 섬겼던 알라의 동료신들을 비난하고 있으며, 이슬람이 가장 좋은 종교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슬람 종교가 가장 올바른 이유는 알라에게 다른 동료가 없는 유일한 신이기 때문이며, 정통 아브라함의 종교를 따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함맏과 이슬람에게 있어서 자기의 아랍 조상들로부터 참된 이슬람 종교를 물려 받았다는 증거가 꾸란에는 전혀 없다. 무함맏에게 있어서 아랍인들은 조상 대대로 우상들을 섬긴 불신자들이었다. 무함맏이 자신의 선지자직의 정통성과 권위를 찾는 것은 자신의 조상들이 섬겼던 종교도 아니고, 결코 자신의 조상도 아닌 아브라함의 종교에 언제나 호소한다. 심지어 무함맏은 아브라함을 자기의 조상이라고 뻔뻔스럽게 주장한다. 무함맏은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이슬람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모세와 노아와 예수 등 모든 선지자들이 이슬람 종교를 위해 투쟁한 사람들이라고 선동한다. 수라 42:13 알라가 노아에게 명령한 것과 같은 동일한 종교를 너희를 위해 제정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종교를 아브라함, 모세, 예수에게 명령했다고 한다. 즉 무함맏은 알라의 종교에 있어서 꾸준히 머물러 있다. 거기에는 어떠한 분할도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한결같이 무함맏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자, 무함맏은 자신이 과거의 다른 선지자들과 전혀 다른 것이 없는 자라고 주장한다.수라 46:9 “(오무함맏) 말하라! ‘나는 선지자들 중에서 새롭운 자도, 첫번째도 아니다. (즉 나보다 이전에도 알라의 선지자들이 지나갔다. 왜 너희들은 나의 선지자들에게 놀라서 부정하려고 하느냐?) 나는(미래에) 자신에게도 너희들에게도 무엇이 이루어질지를 모른다. 나는 단지 자신에게 계시된 것을 따르는 자이다. 나는 단지 분명한 경고자이다.” 그러나 무함맏은 자기 자신이 다른 선지자들과 비교하여 전혀 새롭지 않다고 한 것, 즉 전혀 특별한 점이 없고, 첫번째도 아닐만큼 뛰어난 점도 없다고 소개한 것과는 달리, 신구약 성경의 모든 내용을 뒤엎어 놓을 만큼 역사상 가장 끔찍한 일을 저지를 존재가 되었다. 더군다나 자기를 추종하는 자들의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게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자가 선지자들 중의 가장 위대한 지위를 찬탈했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무함맏은 자신이 성경에 자신이 예언되어 있으며, 자신은 성경의 선지자들의 전통을 있는 자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무함맏은 선지자들과 예언이 중단되었던 역사를 이어주는 자라고 선포한다. 수라 5:19“오 친근한 책이여, 자 우리의 사도(무함맏)이 전에 선지자들보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 ‘우리에게 어떤(천국에 대해서) 복음을 전하는 자와 어떤(지옥의 고통을) 두렵게 하는 자가 오지 않았다.’ 라고 너희가 말하기 때문에 너희들에게(종교 법령들을) 선포하려고 왔다. 자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와(지옥을) 두렵게 하는 자인 자가 왔다.” 본문은 성경 계시의 종결성에 대한 무함맏의 무지를 드러낸다. 신구약 성경이 종결된 이후 상당한 세월이 지났는데도, 어떠한 선지자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무함맏은 바로 이러한 세월을 간격을 이어주는 최종적인 선지자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무함맏이 문맹이 아니었고, 계시록을 한 번만이라도 읽었다면, 이미 오래 전 성경에 선포된 무서운 저주를 자기에게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2:18-19“내가 이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하나님이 이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19:19-21“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탄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 도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그 나머지는 말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그러나 이러한 무함맏의 제안이 유대-기독교인들에게 처음부터 한결같이 거절되었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결과이다. 수라 3:65-71에서는 유대-기독교인들이 무함맏을 거절했을 때, 그가 상당히 실망했음을 보여준다. 수라 3:65 “오 친근한 책, 왜 아브라함에 대하여 (그는 우리의 종교에 있었다 라고 하여) 논쟁하느냐! 결국엔 타우랏도, 인질도 그 후에 주어진 것이 분명하지 않으냐? 도대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 !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이여) 너희들이 아는 것들 (모세와 예수 선지자들에)대하여 논쟁하고 있다. 이제 무엇 때문에 너희가 모르는 것 (아브라함이 어떤 종교에 있었는지)에 대하여 논쟁하려 하느냐? 알라는 알고 있고, 너희는 모른다. 아브라함은 유대인도, 그리스도인도 아니다. 오히려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은 경우에 (알라에게) 복종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우상숭배자들도 아니었다. 아브라함에게 더 가까이 있는 자는 그(의 길)을 따르는 자이다. 자 이 선지자 (무함맏)과 믿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알라는 겸손한 자들의 친구이다. 친근한 책 중 한 교파는 너희들을 (너희 참 종교로부터) 혼동시키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느끼지 못할 때에 단지 자기들만 혼동시킬 뿐이다. 오 친근한 책이여, 무엇 때문에 너희 자신들이 증거자 되어 알라의 (타우랏에 있는 무함맏이 참 선지자인 것에 대한) 구절들을 부정하느냐? 오 친근한 책이여, 무엇 때문에 너희 자신들이 알면서도 진리를 거짓과 혼합시키고 진리를 가두느냐?”

 

위의 본문은 대단히 우스꽝스러운 무함맏의 주장으로, 유대인들이 그의 말을 들었을 때, 충분히 미친 사람이 지껄이는 헛소리이다라고 말했을 법한 말이었다. 아브라함이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은 세상 모든 사람이 아는 사실인데, 아브라함이 유대인도 그리스도인도 아니었고, 알라에게 복종하는 자, 즉 무슬림이었다고 억지를 부린다.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장 가까이서 추종하는 자는 무함맏과 무슬림들이라고 주장한다. 도리어 무함맏은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의 역사에 대해 모른다고 비판하였다. 결국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그를 거짓 선지자로 판단하고 배척하였다.

 

이슬람 선교전략 4 - 코란의 주제(4)

 

무함맏이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좋아했다가 그들에게 실망하고 미워하게 되었던 것을 말해주는 또 다른 수라 구절이 있다. 수라 3:119 “(믿는 자들이여), 너희들은 그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은 너희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함맏에게 유대-기독교인들이 성경을 펴서 읽어주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무함맏에게 성경 자체를 펴서 읽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무함맏은 자기의 거짓을 그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성경의 진리를 거부했다. 도리어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읽어 주면 문맹이었던 무함맏은 그것을 자기식으로 교묘하게 바꾸어서 자기를 변호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수라 3:78 “그들중에는 (유대인들 중에는) 또 한 그룹이 있는데, 책에 (타우랏에) 있지 않은 것을 책에서라고 너희들이 생각하기 때문에, (타우랏) 책을 혀들을 감아서 (망치고 변질시켜서) 그들이 읽어준다. 그리고 알라의 앞에서 오지 않은(자기의 말들을) ‘알라의 앞에서 온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은 알고 있으면서도, 알라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 무함맏은 구약과 신약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데, 유대-기독교인들이 읽어주는 성경 구절들이 기록된 그대로인지 꾸며서 읽은 것인지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무함맏은 자기에게 굴복한 기독교인들로부터 여러 가지 정보를 얻기도 했으며, 다른 기독교인들로부터 성경에 대한 정보를 얻어서 그것들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무함맏을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거부했을 때, 무함맏은 종교에 대해 언급하면서 기독교인들에게 너의 종교의 한계로부터 벗어나지 말라라고 함으로써 기독교를 경고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소위 알라의 종교인 이슬람과 유대인들의 종교와 기독교를 동일한 올바른 종교의 범주에 놓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약의 선지자들과 극히 일부분의 이스라엘 종족을 제외한 대부분의 이스라엘 민족들은 모두 이슬람 종교를 반대한 우상숭배자들이었다고 한결같이 비난하고 있다. 이슬람은 유대교와 기독교를 모두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양면성을 드러내고 있다.

 

수라 4:171 “오책이여, (예수를 신이라고 말함으로써) 너의 종교에 있는 한계로부터 벗어나지 마라! 알라 영광에 오직 진리의 말만 하라! 당연히 그 예수 그리스도 마리얌의 아들은 단지 알라의 선지자이고, 그의 마리얌에게 던진 말씀이고, 또한 그의 편에서 온 영일 뿐이다. 됐다. 알라와 그의 선지자들을 믿어라! ‘(주가) (즉 알라, 마리얌 그리고 이사 셋 모두 주님들이다)’ 라고 말하지 말라! ”

 

꾸란에서 무함맏은 종종 유대교와 기독교를 세상에서 권위 있는 종교들에 포함시키고 있고, 심지어는 기독교에서 이단시하고 있는 분파까지 무함맏에게 복종하는 경우에는 올바른 종교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수라 2:62 “당연히 믿는자 들이다.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과 (알라에게 믿음을 둔, 그러나 어떤 샤리아법을 준수하지 않는 종교적인 분파인) 사비교도들 (그들로부터) 어떤 자들 (전에 어떤 종교에 있었던 강한 믿음을 가지고, 유일한) 알라에게, 종말의 날을 믿는다면, 그리고 잘 준수한다면,그들에게 창조주의 앞에서 상급이 있고, 그들을 위해서 위험과 염려가 없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의 종교는 최고의 권위가 있는, 가장 믿을 만한 종교이다라고 자주 말한다. 실제 역사적인 사실에 있어서 아랍 족속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아브라함이 그들의 민족의 조상이고, 종교의 조상이라고 말한다(수라 2:124). 알라가 아브라함을 모든 민족들을 위한 이맘으로 만들었고, 그의 자손들도 이맘들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아브라함의 종교가 이슬람이었고, 그의 자녀들이 모두 무슬림이었다(수라2:130-132)고 주장한다. 하지만 무함맏 당시의 책의 사람들, 즉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무함맏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수라 3:19).그래서 수라 4:171; 5:77 “오 책의 사람들이여, 너희 종교의 한계를 넘어가지 말라!” 라고말한다. 이 말은 각각의 종교에 한계가 있다는 말로, 이슬람 이외의 다른 종교들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꾸란에서 무함맏은 자주 이슬람이 가장 좋은 종교, 가장 올바른 종교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그는 항상 한 종교를 절대적으로 옳은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여러 종교들을 상대적으로 비교하고 있다. 이러한 꾸란의 종교적인 사상 때문에, 오늘날 수 많은 무슬림들은 우리는 당신들의 종교를 존중하고 있소, 그런데 왜 당신들은 우리의 종교를 존중하지 않소?’ 라고 질문한다. 또한 우리는 세상의 모든 종교들을 존중한다.’ 라는 표현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를 부인하는 것이며, 모든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들, 즉 불교와 힌두교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종교를 인정한다고 하는 말인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이슬람이 절대 진리를 소유한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모순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거짓된 종교들을 존중함으로써 자신들의 거짓들도 존중해 달라고 하는 간청을 하는 셈이다.

 

수라 5:19“오 책의 사람들이여! 자 우리의 사도가 너희 책들 중에서 감추어진 많은 것을 너희들에게 분명히 한 경우에, 많은 것들을 거절한 때에 왔다. 너희에게 알라로부터 빛과 분명한 책이 왔다. 알라는 모든 것들 위에 권세를 가지고 있다. 이 구절을 포함한 꾸란의 많은 구절에서 알라는 흔히 우리라는 1인칭 복수를 사용한다.그렇다고 이러한 인칭과 수가 꾸란 전권에서 일치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가끔은 1인칭 단수로, 아주 드물게는 3인칭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인칭과 수에 관한 문제는 다른 곳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유일한 신 알라에 관한 문제가 아랍 우상숭배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것처럼, 유대인들-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그럼 유일신에 관한 무함맏과 유대인들-기독교인들 사이에 있었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었나? 사실 겉보기에는 유대인들의 유일신에 대한 사상이나, 무함맏의 유일신에 대한 사상은 큰 차이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유대인들이 무함맏을 믿을 수 없도록 만드는 이유는 선지자들에 대한 무함맏의 꾸며낸 이야기들과 자기들이 익숙히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 사이에 존재했던 첨예한 차이점 때문이었다. 이에 첨가하여 기독교인들의 반대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구속사적인 중요성을 제거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무함맏은 당시의 아랍 사회를 구성하고 있었던 우상 숭배자들에게도, 유대인들에게도,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반대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수라 3:79에서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무함맏이 소위 선지자라고 불렀던 예수를 하나님으로써 예배하는 것에 대해 무함맏에게 말했고, 무함맏은 자기가 새롭게 시작한 종교의 사상과 맞지 않기 때문에 거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사람을 위해 알라가 그에게 책, 지혜 그리고 선지자직을 준 후에, 사람들에게알라에게가 아니라, 나에게 예배하라라고 말하는 것은 허용된 것이 아니다.”

 

결국 무함맏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부정하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정죄하고 저주하였으며, 결국에는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수라 29:46 “(오겸손한<신자>자들이여), 너희들은 책들을 가지고 단지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대화하라! 오직 그들 중에서 억압-폭력을 사용하는 자들과만 (예리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가능하다).그리고 우리들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꾸란도, 너희들에게 주어진 모세오경과 신약성경도 믿는다. 우리들의 신(일라), 너희들의 신(일라)도 하나이고, 우리들은 그에게만 순종한다.’라고 말하라.” 초기에 반대에 부딪혔을 당시의 이러한 조심스러운 태도는 차츰 노골적인 압력 행사로 악화되었다. 수라 9:29,30“알라와 말일을 믿지 않는, 알라와 그의 선지자가 부정하다고 한 것들을 부정하다고 알지 못하는, 진리 (즉 이슬람) 종교에 신뢰하지 않는 책들로 구성되는 어떤이들에게 반대하는 자들은 그들이 짓밟혀졌을 때 자기들 손으로 세금을 내기 전까지는 전쟁을 하라! 유대인들은 우자이르가 알라의 아들이다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알라의 아들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문서나 증거 없이) 그들의 입에 있는 말들이다.” 이 말은 분명히 논리적으로도 모순이 된다. 만일 유대-기독교의 하나님이 이슬람의 신과 동일하다면, 왜 이슬람은 억지로 유대-기독교인들을 무슬림으로 개종시키려고 그처럼 가혹한 정벌을 했는가 하는 점이다.

 

결국 수라 5:72-73에서 보는 것처럼, 무함맏과 꾸란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노골적으로 저주하고, 유대-기독교 역사를 송두리째 뒤엎고 왜곡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수라 5:72-73 “알라가 마리얌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들은 분명한 불신자들이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 이스라엘이여, 나의 창조주와 너희 창조주가 되는 알라에게 종노릇하라!’ 라고 말했다. 당연히 누구든지 알라에게 쉬르크를 초래하면, 알라가 그에게 낙원을 부정하게<하람> 할 것이고, 그의 있을 곳은 지옥이 될 것이다.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는 어떤 돕는 자도 있지 않을 것이다. ‘알라는 셋 (즉 알라, 마리얌, 이사) 중의 하나이다라고 하는 자들도 분명히 불신자들이다. 왜냐하면 유일한 알라 외에 어떤 신(일라)도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말하고 있는 말들을 멈추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들 중 불신자가 된 자들을 고통스러운 고난이 붙잡을 것이다.” 수라 3:67 “아브라함은 유대인도 기독교인도 아니었다. 그는 단지 알라에게 복종하는 자였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은 무슬림이었고, 그들의 종교는 이슬람이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무함맏은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과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모두 무슬림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종교는 알라의 참된 종교, 이슬람이었다고 우긴다. 이렇게 주장해야 되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무함맏은 자신이 구약에 예언된 선지자라고 꾸란에서 여러 번 주장한다. 그는 자기가 선지자들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끊임 없이 주장한다. 즉 무함맏 자신과 이슬람 종교의 역사성에 치명적인 결핍이 있는 것이다.인류의 역사가 수천년이 흐른 이후에, 7세기 초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슬람 종교에는 역사적인 기반과 배경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을 보완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인류의 역사 시작부터 변함없이 존재했던 종교를 자기의 종교로 삼고, 그 역사적 전통을 가로채는 방법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유대교도, 기독교도 모두 사실은 이슬람이었다라는 억지주장을 내세웠고, 아브라함의 생애를 팔레스타인 땅에서 아라비아 반도로 옮겼으며, 모든 선지자들을 무슬림으로 만들었고, 자기는 가장 신실하게 이슬람 종교를 확증하는 최후의 선지자의 자리를 확보하였다. 그리고 이것에 반대하는 자들은 역사적 사실이야 어찌 되었든지 간에 모두 불신자들이며, 우상숭배자들로 정죄되어야 하였다.

 

이러한 주장을 한 후에 무함맏은 자기를 따르는 무슬림들이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모든 길들을 막아놓았다. (알라에게 복종을 의미하는) 이슬람 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원하는 자는 누구나 알라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수라 3:105 (종교적) 토론에 빠지는 사람처럼 되지 말라. 그들에게는 무서운 형벌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무슬림들에게는 꾸란과 무함맏의 권위와 진실성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도 해서는 안된다. 무함맏은 이미 유대인들-그리스도인들과의 종교적 토론에서 자신의 거짓이 충분히 드러났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종교적인 토론을 할수록 자기에게 불리할 뿐만 아니라, 이후 자기를 따르던 무슬림들도 종교적 토론을 하게 되면 패배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과는 어떤 대화도 용납치 않았고, 철저히 전쟁과 세금과 같은 압제를 통해서만 그들을 굴복시켜야 한다고 명령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무수히 많은 무슬림들이 참된 진리를 알고 싶어도 무함맏의 협박과 주변 사람들의 위협 때문에 그 의심을 감추고, 진리를 알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많은 두려운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무함맏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일관되게 협박과 공갈로 자기 종교에 붙어있도록 강요하였다. 수라 41:13 “그렇다. 만일 그들이 (즉 메카의 우상숭배자들이 이 상세한 설명 뒤에도 유일한 알라를 믿지 않고) 거절하면, 그 경우에는 말하라! ‘나는 너희들을 정확히 옷-야벳-과 사묻-- (종족들을 내려친) 번개과 같은 한 번개, 즉 멸망이(임하는 것)을 경고한다.’”

무함맏의 모든 설교는 자비롭고 은혜로운 창조주, 유일한 알라만을 섬기고, 알라와 그가 보낸 사도 무함맏에게 복종하고, 알라와 무함맏의 종교인 이슬람을 따르라는 명령으로 함축된다. 꾸란의 다른 모든 내용은 이것을 확증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이것보다 더 중요한 내용은 꾸란에도, 하디스에도 있을 수 없고, 있지도 않다. 이것이 이슬람 종교의 전부이다. 모세오경, 시편, 신약성경, 그리고 그들의 모든 내용들과 선지자들은 단지 알라가 유일한 참 신이며, 알라가 그의 사도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수라 61:11). 즉 무함맏은알라의 이름도, 모든 선지자들도, 천사들과 영적 존재들도 모두 자신이 많든 새로운 종교를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위해서 이용하고 있다.

 

무함맏은 알라에게도 종교가 있고, 그것이 곧 이슬람이며, 따라서 이슬람은 창세전부터 있었다는 전설을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이슬람은 최후의 종교이며, 무함맏은 최후의 선지자이기 때문에 가장 위대하다는 논리적 모순을 과감하게 자행한다. 사람들에게는 올바른 종교가 필요한데, 그것은 곧 유일한 신 알라에게 복종하는 이슬람이라고 가르친다. 천국은 종교적인 교훈이 가득찬 곳이다. 그리고 복종하는 자들은 곧 믿는 자들이며, 그들은 곧 무슬림이라고 가르친다. 무함맏이 말하는 종교와 무함맏의 조상들이 섬겼던 종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함맏이 말하는 모든 종교 의식들은 아랍 우상 숭배자들로부터 온 것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무함맏은 자기 종교의 정통성을 성경의 선지자들의 종교에서 찾는다.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 아브라함, 모세, 예수는 어떤 종교를 고안해 내려고 노력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성경에서는 참되신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교제를 한 번도 종교라는 용어로 설명한 적이 없다. 더군다나 하나님께 어떤 종교가 종속되어 있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교리적 주제들 중에 유사한 것들이 대단히 많은 것은 무함맏과 유대-그리스도인들의 끊임 없는 논쟁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한 번도 의견의 일치를 얻지 못했다. 성경을 읽을 줄 몰랐던 무함맏은 궁지에 몰렸던 것이다.무함맏은 문맹으로서 한 번도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었고, 자기의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유대-그리스도이들은 단순히 성경을 읽을 뿐만 아니라 연구하는 자들이었다. 무함맏의 거짓말들은 모든 선지자들의 삶과 믿음과 그들에게 주어졌던 약속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유대인-그리스도인들 앞에서 벌거벗은 듯이 명백히 드러났다.그럴 때마다 무함맏은 억지로 꾸며낸 거짓말들로 그들을 공격하였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무슬림과 대화를 할 때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슬람 선교전략 4 - 코란의 주제(5)

 

꾸란의 전체적인 종교적 주제와 맥락은 다음과 같다. 즉 꾸란의 전체 114 수라장들은 흔히 이슬람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광범위한 삶의 모든 부분들을 다 다룬 것이 아니라 주로 이슬람 종교에 대해 다룬 것인데, 그것을 요약한다면 대단히 단순한 공식이 성립한다. 무함맏이 새롭게 고안해 낸 이슬람 종교와 그의 새로운 유일신 알라와 그의 새로운 움마 공동체인 무슬림들과 그들의 대표자로서 가장 중요한 선지자 역할을 하고 있는 자신은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와 같은 선지자들의 뒤를 따를 뿐만 아니라 그들을 확증하는 자이다. 꾸란에 나타나는 노아, , , 야벳,아브라함, , 요셉, 모세 등과 같은 선지자들은 많은 수라들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전했던 내용은 모두 이슬람 종교의 가르침을 전했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또한 귀신들도 이슬람의 교리를 믿었고 다른 귀신들에게도 가르쳤다. 그 내용은 무함맏이 당시의 사람들에게 가르쳤던 것들인데, ‘알라는 유일하고, 그에게는 어떠한 동료도 다른 신도 없다. 사람들은 선지자에게 복종하지 않고 그들을 거짓말쟁이라고 했기 때문에 멸망을 당하였다. 그들은 나마즈를 완전하게 수행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종말의 날과 부활과 천국과 지옥에 대해 경고하였다.’ 선지자들이 증거했던 이슬람 종교는 알라의 종교이며, 세상에서 가장 좋은 종교이고, 이 종교를 믿고 따르며, 이 종교를 위해 싸우는 자는 낙원에 들어가고 이 종교를 믿고 따르지 않거나 이 종교를 배반하는 자들, 즉 이슬람 이외의 모든 종교를 믿는 자들은 지옥에 들어가서 고통스러운 불속에서 고난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꾸란은 모두 114 수라로 구성되어 전체 부피가 적지 않지만, 대부분 동일한 주제와 사건과 이야기들이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것으로서, 실제 내용에 있어서는 대단히 단순한 책에 불과하다. 무함맏이 가르쳤던 종교적인 의무들은 실제에 있어서 그렇게 대단한 내용들도, 진리들도 아니다. 꾸란에서 무함맏과 그의 신 알라가 가르치는 선행이나 도덕, 법에 관한 내용들과 그 의미들은 동서양 고금에 존재했던 일반적인 철학자들의 가르침과 비교했을 때 훨씬 수준이 낮은 것들에 불과하고, 우상숭배 종교인 불교의 가르침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형편 없는 것들에 불과하다. 꾸란의 거의 모든 내용, 특히 선지자들을 이용해가며 했던 말들은 모두 그가 꾸며낸 거짓말들이며,그 나머지도 타락한 인간을 감화하여 변화시키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할 만한 특별한 점이 전혀 없기 때문에 무함맏 당시의 사람들이 그를 거짓말쟁이로 취급하였던 것은 타당한 판단이었다.

 

이렇게 조잡한 이야기들이 전지전능하시고, 지혜가 한이 없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우기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지만, 배후에 역사하는 어두움의 영, 진리를 보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는 영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사실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오늘날 이슬람의 신앙에서 대부분의 것들이 아랍의 종교 전통에서 온 것들이며, 또한 지어낸 전설들에 불과하지만 진리의 조명을 받지 못한 사람들로서는 그것이 진리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는 길이 없다. 무슬림들을 거짓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복음 뿐이다.

 

무함맏이 말한 것처럼, 과연 성경은 무함맏의 확증을 필요로 하는가? 오늘날 무슬림들이 전혀 읽지 않고 있는 성경의 내용은 꾸란이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질서정연함과 심오한 진리들과 하나님의 성품으로 충만하다. 우주와 인류 역사의 시작, 죄의 시작,하나님의 구원 계획, 언약, 예언, 인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획과 계시,인류 역사의 성격, 인간의 삶의 기준이 되는 공의로운 율법, 다양하고 구체적인 인간의 내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들, 하나님과의 동행, 하나님의 언약들과 예언들의 구체적인 성취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와 영원한 하나님 나라, 약속된 성령을 받고 실제적으로 죄인이 변화되어 새로운 생명과 의롭고 거룩하며 성화되어 가는 삶을 체험하는 것, 무함맏이 결코 제공해 줄 수 없는 수 많은 선지자들의 믿음의 발자취와 예수님의 거룩한 삶의 모범 등 그 어떤 것을 무함맏과 그의 책 꾸란이 흉내낼 수 있겠는가?

 

무함맏에 대한 동시대 사람들의 비난들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또한 탁월하게 신비한 과정을 통해 매듭(또는 옹이)에 숨결을 불어넣는 마법을 행하는 자들에 대한 언급이 있다. 수라 113 “(무함맏) 말하라! : ‘나는 아침 창조자로부터 (나에게) 자신이 창조한 것들의 악한 것들로부터, 어둠에 빠진 밤의 악한 것으로부터, 마디들에 호흡을 불어넣는 (마술사)들의 악한 것들로부터, 그리고 질투하는 질투자의 악한 것으로부터 피난처 주기를 구하며 기도합니다

 

이 구절을 보면 무함맏이 아랍 이방인들의 악한 영적인 세계를 얼마나 두려워 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113 수라와 114 수라는 무함맏은 Mu'awwidbatayn로 알려진 어떤 특정한 악한 존재들(악령들)로부터 피할 피난처를 구하고 있다. 이 두 수라 뿐만 아니라 수라 7:200; 16:98; 41:36에서 무함맏은 무슬림들에게 사탄으로부터 피하도록, 수라 40:56에서는 꾸란에 대한 논쟁을 할 때, 사람으로부터 피하기 위하여, 수라 72:6에서는 진으로부터 피하기 위하여 알라에게 피난처를 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심지어는 어떤 진들이 무슬림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수라 72:1-19에서 진들 중 어떤것이 꾸란을 듣고서 진리의 길로 들어섰고, 꾸란을 듣고 당장 믿었으며, 창조주에게 그 어떤 동료도 있지 않다고 말하여 무슬림이 되었다. 당연히 우리는 인스도, 진도 알라의 영광에 항상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수라 72는 진들이 직접 1인칭이 되어 말하고 있는 구절들이 많이 있다. 10-19절까지는 완전히 진들이 진들의 세계와 그들의 일들과 알라에게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한 교훈을 가르치고 있다. 무함맏은 그가 죽인 사람들의 영이 그의 꿈 속에 나타나 그를 괴롭혔다. 알라가 창조한 것이 그에게는 악하게 보였고, 이를 두려워했다. 무함맏 자신이 밤에 두려움으로 떨었다. 매듭을 써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려는 여인들과 마술사를 두려워했다. 무함맏의 알라에 대한 두려움은 극에 달하였다는 사실을 위의 구절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무함맏에 대한 당시 아랍인들의 평가가 꾸란에 나타난다.메카 사람들은 무함맏을 공포에 이끌려 부자연스럽게 행동했기 때문에 마주눈 (미친, 홀린)이라 했다(수라 37:36 - 미친자 시인; 44:14 - 미친 자). 수라 52:29 “됐다. (오 무함맏), 너는 (사람들에게 꾸란 구절들을 가지고) 가르치라! 왜냐하면 너는 창조주의 호의로 점쟁이도, 미친 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상숭배자들이 무함맏은) ‘한 시인이다. 우리들은 그에게 재앙이 미치기를 기다린다라고 한다.” 심지어는 무함맏은 자신이 미친 자가 아니라는 것을 맹세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수라 68:2 “연필과 (그와 함께 천사들이) 쓰는 기록들에 맹세하건데, (오 무함맏) 너는 창조주의 호의로 미친 것이 아니다.” 수라 81장은 무함맏이 메카에서 초기에 암송했던 수라로서 왜 메카인들이 그를 미친 시인이라고 했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많은 암시를 주고 있다. 수라 81:1-25 “해가 둘둘 말려졌을 때, 별들도 (자기 하늘들에서) 흘러내릴 때, 산들도 (자기 자리들에서 옮겨져) 돌아다닐 때, (뱃 속의 새끼가) 열 달 된 임신한 낙타들도 자유롭게 보내졌을 때, 맹수들도 (한 곳에) 모였을 때, 바다들이 (화덕처럼) 불어졌을 때 (그리고 물 대신에 불로 채워졌을 때), 영혼들이 (다시 육체들에) 짝지워졌을 때, 산채로 매장된 (각각의) 소녀에게 어떤 죄 때문에 죽었는지를 물었을 때, (행위를 기록한 책) 페이지가 열려졌을 때, 하늘이 (땅 위에서) 벗겨졌을 때, 지옥이 (불신자들을 위해) 타올라 흐를 때,천국이 (경건한 자들에게) 가까워졌을 때, (바로 그 날에 각각의) 영혼이 (바로 그 날을 위해) 준비하여 온 것을 (즉 모든 선악을 행한 것을) 아노라! 충분하다. 나는 (밤들의 눈에서) 보이지 않는 자, (밤들도) 빨리 지나 (자기 둥지들’ - 성벽들에) 숨어있는 자()들에게, 자기 어두움으로 오가는 저녁에게, 그리고 밝고 있는 새벽에 맹세를 하노라! 의심할 나위 없이 이 (꾸란은) 한 위대하고, 힘있고, 아르쉬의 주인 (되는 알라)의 견해로서 적절한 시간과 장소가 있는, 그곳에서 (즉 하늘에서 천사들 쪽에서)복종하는 자, 신실한 사도의 (즉 자브러일 천사의 알라 편에서 온) 말씀이다! 그리고 너희들의 주인인 (무함맏은) 미치지 않았다. 참으로 그 (자브러일을) 열려진 지평선에서 보았다. (무함맏은) 출처를 모르는 계시를 탐내는 자도 아니다. (그는 알라 편에서 자기에게 온 계시들을 망치지 않고, 완전한 형태로 너희들에게 전해 주었다.)그리고 이 (꾸란은) 쫓겨난 사탄의 말이 아니다.”

 

본문에서 사람들에게 진리의 길을 가르쳐 주고, 생명을 주는 어떤 하나님의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 대신 의미없이 중얼거렸던 시와 의미 없는 맹세와 무함맏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고 변명하는 말과, 그가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출처도 모르는 계시를 탐욕스럽게 갈망하는 자도 아니고, 꾸란이 사탄으로부터 오지 않았다고 변명하는 말들만 있을 뿐이다. 그의 이웃들은 그를 두려워하여 사히르(마술사)라고 했다(수라10:2) “불신자들은참으로, (즉 무함맏은) 대단한 마술사이다라고 한다”; 수라15:15“만일 우리-알라-가 그들에게 하늘에서 한 문을 열어 놓는다면, 그리고 거기에서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한다면, 그래도 당연히 그들-아랍인들-, ‘의심할 나위 없이, 우리들의 눈들을 묶어 놓았다. 우리들은 마법에 걸린 사람들이다라고 할 것이다.” ; 수라 38:4 “(메카우상숭배자들이) 그들에게 자기들로부터 (즉 인간 족속으로부터) 된 한 경고자? 선지자가 나온 것에 놀랐고, 그 불신자들이 말하기를, ‘이는 한 거짓 마법사이다. (그래서) 신들을 한 신으로 만들어 버렸느냐? 참으로 이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라고 했다.”). 수라 21:3-6“당연히 그것을조롱하여, 심령들이 전적으로 무지해진 상황에서 듣는다. 그리고 포악스러운 불신자들은 이 자 (즉 무함맏)은 너희와 비슷한 한 인간일 뿐이다. 너희가 보고 있는 상태에서 마술에 (속으려고) 하느냐?’ (라고 하여) 서로 속삭인다. (그 때 무함맏이) 말하기를 나의 창조주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말을 안다. 그는 듣는 자이며, 아는 자이다.’ ‘그러나 그들은(무함맏이 계시라고 주장하는 말들이) 조리없는 꿈들이다. (그 말들을) 아마도 그 자신이 지어내었다. 아마도 그는 한 시인이다. 그렇다. 그도 전에 보내진 선지자들이(초래시킨) 것과 같은 어떤 이적을 초래하게 하라!” 다른 사람들은 마슈르(마법에 걸린), 또는 미친자라고 했다(수라 17:47,48“우리는 그들이 너에게 (즉 너의 암송하는 것에) 귀를 기울였을 때 무엇 때문에 귀를 기울이는지를, 그리고 이 핍박자들이 서로 속삭이며, ‘분명히 너희들은 마술에 걸린 자들이다. 정신이 나간 사람들을 따르고 있다.’ 라고 말하는 것들을 아주 잘 알고 있노라. (오 무함맏) 그들은 네가 참으로 (마법에 걸린, 미친 자, 시인이라 하여) 어떤 예들을 드는 자들을, 됐다, 길을 잃고 () 길을 찾지 못하는 자들을 보라!” 다음 구절은 무함맏의 표현 자체에서 왜 아랍 우상숭배자들이 그를 마술사, 미친 자라고 했는지를 보여준다. 수라 17:50-51“말하라! ‘너희들은 돌이나 쇠붙이가 되라! 또는 너희 마음들에 (생명을 상상하는 것은) 아주 힘든 다른 어떤 존재가 되라! (모든 상태에서 알라가 너희들을 부활시킬 것이다)’ 아직 그들은 우리들을 누가 부활시킬 것이냐?’ 라고 말한다. ……수라 25:9; 44:13). 수라 18:40-41“분명히 나의 창조주가 나에게 너의 동산-또는 과수원보다 더 좋은 (한 동산을) 줄 것이다. (너의 동산에는) 하늘에서 벼락들을 보낼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매우 부드러운 땅으로 변화될 것이다. 또는 그것의 물이 (땅 밑으로) 흡수되어 너는 그것을 찾아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여러 사람들은 카힌(점쟁이)라고 불렀다(수라 52:29; 69:38-42 “충분하다. 나는 너희들이 보는 것들에도, 너희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에도 멩세를 한다. (꾸란은) 의심 없이 위대한 선지자의 (알라 왕궁에서 오게 된) 말들이다! 그는 어떤 시인의 말이 아니다! 너희들은 (그 꾸란이 알라의 말인 것을) 아주 적은 사람만 믿는다! 그리고 어떤 점쟁이의 말도 아니다. 너희들은 아주 적은 사람만 교훈을 받아들인다.!” ). 또한 진의 인도를 받아 영감있고 리듬있는 시를 반복적으로 암송했기 때문에 샤이르(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수라 37:36; 52:30; 69:42).

 

무함맏은 자기를 반대하는 자들을 극도로 미워하였으며, 결코 너그럽고 온유하게 용서해 주는 법이 없었다. 그를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그의 마음 속에 항상 얼마나 악하고 저주스러운 가득찬 생각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수라 구절들이 수 없이 많다.

 

위와 같은 무함맏의 많은 헛된 맹세와 변명들과 반대하는 자들에 대한 시기와 미움과 저주로 가득찬 꾸란이 어떻게 죄로 인해 생명을 잃고 방황하는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변화시켜 새로운 삶을 살도록 인도할 수 있겠는가?

 

추종자들이 무함맏에게 가브리엘과 만났던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자 그는 종 울리는 소리와 금속이 쿵쿵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가 계시를 받는 동안 추종자들은 그의 얼굴이 창백해지거나 붉어졌으며, 그의 입술이 조용히 움직이고, 가끔은 무의식 상태에 있었음을 보았다. 이처럼 무함맏은 계시를 받는 동안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고, 무엇에 홀린 듯한 사람과 같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를 두려워했다.

 

이 밖에도 무함맏에 대해 무함맏 당시의 아랍인들이 비난했던 단어들은 거짓말쟁이”, “전설을 말하는 자등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비난은 최근에 우리가 일부러 꾸며낸 것도, 우리가 이슬람을 비난하기 위해서 하는 말도 아니다. 꾸란 자체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꾸란 전체에 걸쳐 무함맏의 말들은 대체적으로 과장이 너무 심하고, 사소한 일에도 천국과 지옥을 운운할 정도로 언어에 경솔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이슬람 선교전략(4)-코란의 주제(6)

 

무함맏은 새로운 종교 이슬람의 고안자이다.

이슬람 종교는 무함맏 이전에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었다. AD 600년 이전에 󰡐알라󰡑, 󰡐이슬람󰡑, 󰡐무슬림󰡑 이러한 단어들은 세상 그 어디에도, 그 어떤 문서에도 없었던 것이다. 이슬람 종교는 하심 계통의 꾸라이쉬 부족의 아둡라의 아들 무함맏에 의해 아라비아의 메카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무함맏은 40세가 되었을 때, 가브리엘이라고 주장하는 천사에 의해 알라에 관한 계시가 아닌, 알라의 뜻에 관한 계시를 시리즈로 받았다.

 

무함맏은 아담과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모세와 심지어는 예수까지 참 무슬림이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무지한 자힐리야 사람들 뿐만 아니라, 성경의 선지자들을 믿고 따르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자기의 종교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에게 유일신 여호와가 있었다면, 무슬림들에게는 무함맏에 의해 유일신이 되어버린 알라가 있다. 무슬림이란 단어는 󰡐기독교와 그리스도인󰡑을 모방하여 󰡐이슬람과 무슬림󰡑, 󰡐복종과 복종하는 자󰡑의 구조를 만든 것이다.

 

기독교에는 그리스도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 무함맏은 자기가 스스로 고안해 낸 이슬람 종교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신앙의 대상이라면, 무슬림들의 신앙의 대상은 알라이고, 이 알라는 그 이전의 그 어떤 신보다도 위대한 위치를 찬탈해 버렸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 이삭, 다윗의 후손으로 왔다면, 자신은 아브라함과 이스마엘 혈통으로 왔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기 위한 아브라함 ? 이스마엘 ? 무함맏 신화를 만들어 냈다. 유대인들에게는 토우랏과 자부르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경이, 이제 무슬림들에게는 꾸란과 하디스가 경전으로 존재하게 되었으며, 그것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과 종교의 기준이 되었으며 세계관이 되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방하여 닮으려 한다면, 무슬림들은 무함맏을 모방하여 닮으려 한다. 사람들의 삶은 그들이 따르는 자를 닮게 마련이고, 실제로 그리스도인과 무슬림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교회라면, 무슬림들을 위한 공동체는 움마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 안에 있는 모든 영역을 무함맏과 그의 종교 이슬람은 모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꾸란에서도 충분히 간파할 수 있다.

 

수라 2:135 󰡒유대인이나 그리스도인이 되라! 올바른 교훈을 찾자!󰡑 라고 그들은 말한다. (즉 유대인들은 유대인이 되라! 말하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라! 라고 말한다. 너는 말하라! 오 무함맏이여!) 오직 우리는 참 길에서 떠나지 않은 자, 우상숭배자들이 되지 않은 아브라함의 종족에-그의 종교에 (따르고 있는 자들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라고 해서 무함맏이 천재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상 무함맏은 평범한 인간이었을 뿐이었으며 전해지는 바로는 문맹이었으며, 꾸란을 읽어서 알 수 있듯이 말에는 모순이 많으며 거짓말쟁이였다. 그가 기록한 꾸란의 거의 대부분의 내용들이 꾸며낸 거짓말들이다.

 

무함맏은 수라 2:256에서 종교에는 강요가 없다고 말한다. 󰡒종교에 강요하여 들어가게 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사탄과 무함맏은 무슬림들이 진리를 알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그 길을 막고 있다. 무슬림들은 이슬람과 꾸란에 대해 그 어떠한 질문도 의문도 가져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무함맏의 거짓말들에 속고 있는 무슬림들에게 진리의 빛으로 비추어 주고, 어두움 가운데서 어두움의 영이 이끄는대로 무력하게 이끌려 가는 불쌍한 무슬림들을 구원해 내야 한다.

 

사실상 무슬림들도 꾸란의 가장 중요하고 전체적인 주제가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무슬림들이 꾸란의 모든 내용을 알고 믿고 있는 것도 아니다. 거의 모든 무슬림들은 꾸란의 모든 수라들 중에서 개경장(첫번째 수라)와 이슬람 종교를 가르치고 기독교를 대적하기 위한 것과 같은 극히 일부분의 내용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사실상 이슬람의 교리나 개경장과 같은 것은 이슬람 종교를 잘 포장해서 이슬람이 진정한 종교라고 선전하여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것들에 불과하며, 그러한 것들은 꾸란의 전체의 내용과 잘 조화되지 않는다.

 

사역자들은 이슬람을 포장한 것들에 지나치게 주목해서는 안된다. 또한 그러한 것들에 현혹되어서도 안된다. 포장된 겉모습 내면에 있는 이슬람의 진정한 모습은 이슬람의 배경이 되고 있는 역사와 이슬람의 기초가 되고 있는 꾸란의 진정한 주제에 관한 것이다.

 

무슬림들은 꾸란의 진정한 주제가 종교 토론에 불과한 것을 모른 채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단순히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그리스도인 학자들이나 사역자들 조차도 이 점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이슬람을 다루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우리는 무슬림들에게 꾸란의 진정한 주제가 하나님 자신과 그의 계획에 대한 계시나 인간을 죄와 멸망에서 구원함으로써 하나님을 알며, 사랑하고, 찬양하게 하고,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맛보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꾸란의 허구성을 그들도 깨닫도록 빛을 비추어 주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어두움 속에 있는 사람들이나 맹목적인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두움에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에 꾸란의 내용은 지극히 무의미하다는 사실도 모르고 알라에게서부터 주어진 것으로 믿고 살아간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과 비교하면서 설명해 주면 전도하는데에도, 양육하는데에도 대단히 큰 도움이 된다.

출처 : 바울선교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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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란 1장과 파티하를 중심으로

1. 서론

 

이슬람 국가에 처음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슬람 사원에서 들려오는 매일 5회의 아잔(adhan: 기도에의 부름) 소리에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경건한 무슬림들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기도시간마다 쉼 없이 사원을 찾는다. 그들과 더불어 오래 살아가면서 친구를 사귀고 교제를 나누면서 이들의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거짓말, 절도, 부도덕한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정작 이들은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살아간다.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나누며 대화를 하면 할수록 복음과 예수에 대한 이들의 무지와 맹목적인 불신, 거부감, 세뇌에 가깝게 되풀이되는 꾸란과 모하메드 찬양, 원죄 개념의 부재에 따른 무딘 죄의식을 경험하게 된다.

 

이슬람교는 기독교 불교 힌두교와 더불어 세계 4대 종교 중 하나이다. 전 세계 이슬람 국가 수는 약 58개국이며 인구는 약 13억이다. 이들 중 아랍어권은 23개 국 약 3억 정도이며, 비 아랍어권은 35개 국 약 10억 정도로 추산된다. 이슬람교는 610년 9월 무하마드가 첫 계시를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무슬림들은 예언자 모하메드가 약20년 동안 천사 가브리엘이 전해 준 계시를 받아 꾸란을 완성했다고 믿는다.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을 무슬림이라 부른다. 무슬림은 꾸란과 하디스를 경전으로 믿으며,하루 다섯 번씩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드린다. 무슬림들의 세계관, 사고 체계는 꾸란에 기초한다. 꾸란은 이들의 정치, 경제, 교육, 종교, 사회, 문화, 가정 등 모든 영역을 지배하며, 이슬람의 모든 사상을 담고 있다. 무슬림들은 알라, 천사, 예언자, 거룩한 경전(토라, 시편, 복음서, 꾸란), 최후 심판과 부활을 믿는다. 무슬림은 이슬람의 다섯 기둥을 신앙 근간으로 여긴다. 이슬람을 지탱하는 다섯 기둥들은 신앙 고백, 기도,구제, 금식, 순례이다. 이슬람의 첫째 기둥인 ‘알라 외에는 신이 없고, 무하마드는 알라의 예언자이다’ 라는 신조를 두세 증인과 더불어 아랍어로 암송하면 무슬림이 된다. 기도는 하루 5회 정해진 시간에 일련의 몸동작과 암송을 반복한다. 구제금으로 부자들은 수입의 2.5퍼센트(1/40)를 가난한 자들에게 기부한다. 매년 라마단 한 달 동안 전 세계 무슬림들은 해 뜨기 전부터 해질 때까지 금식한다. 메카 순례는 일생동안 한 번만 하면 효력을 발생한다.

 

무슬림들의 세계관, 정체성, 사고 체계는 크리스찬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 무슬림들이 매일 드리는 예배, 기도, 꾸란의 가르침은 크리스찬의 예배, 기도, 성경의 가르침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 이슬람에 대한 이러한 기본적인 질문들이 본고의 출발점이다. 본고에서는 먼저 무슬림 예배를 살펴보고, 꾸란 1장 파티하의 본문을 소개하고 주해를 한 후에 무슬림 신앙을 이해하기 위해서 파티하를 중심으로 무슬림들의 신론, 인간론, 구원론, 종말론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파티하를 어떻게 이슬람 선교에 적용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언급한 후, 본고의 결론을 맺을 것이다.

 

2. 무슬림 예배

 


무슬림 예배는 이슬람의 다섯기둥들로 구성된다. 신앙 고백, 기도, 구제, 라마단, 성지순례. 결국 이들의 예배는 온 생애 동안 이루어지는 자신의 모든 삶으로 확장된다.이들의 예배를 좁은 의미로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면 매일 드리는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일정한 형식과 순서에 따라서 몸동작을 취하며 구절을 암송하며 드리는 기도가 곧 이들의 예배다. 이들의 기도 형식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암송되는 기도문이 꾸란1장 즉 파티하이다. 이들은 기도를 통해서 매일 적어도 17회씩 파티하를 암송한다.파티하는 이슬람 신앙의 모든 원리들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파티하는 짧은 일곱 절로 구성되는데, 이것이 전체 꾸란의 1/3에 해당한다고 할 만큼 중요하다. 이바다 이븐 사미트는 ‘파티하를 암송하지 않는 예배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3. 무슬림과 파티하

 

성경이 총1,189장으로 구성된 반면, 꾸란은 총 114장 6,616절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114장 중에서86장이 메카에서, 28장은 메디나에서 계시된 것으로 믿는다. 무슬림들은 꾸란이 ‘책들의 어머니’이며, 꾸란의 축어적 계시를 믿는다. 무슬림들은 또한 꾸란을 알라의 마지막 계시라고 믿는다.

 

꾸란 1장은 꾸란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고 있으며 개경장으로 불린다. 꾸란 1장을 아랍어로 ‘파티하’라고 부르며 개경장, 즉 문자적으로 ‘책(꾸란)을 여는 장’이란 의미이다. 파티하는 일곱 절, 29단어의 아주 짧은 장이지만, 무슬림들은 이슬람 사상의 진수를 담고 있다고 믿는다. 무슬림들은 매일 5회 기도 시간을 통해 최소한 17회씩 암송하고 있다. 곧 새벽 기도에서 2회, 해질녘 기도에서 3회 그리고 정오기도, 오후기도, 저녁기도에서 각각 4회씩 반복한다. 따라서 파티하는 무슬림들에게 이슬람 신앙의 전부라고 할 만큼 중요하다. 파티하는 알라의 성품과 속성을 말하며, 인간의 의무로 알라를 예배하며 바른 길로의 인도를 요청하고 있다. 파티하는 종종 기독교의 주기도문에 비유되지만, 주기도문과는 달리 윤리적인 요구나 실천을 요구하진 않는다.

 

파티하는 메카에서 계시된 7절로 자주 낭송되는 코란의 진수다. 꾸란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을 일곱 절’이라고 언급한다. 파티하는 이슬람의 기본 원리를 비롯하여,우주 만물의 운행 질서를 주관하는 알라에 대한 인간의 태도, 내세관, 경배와 구원의 유일한 대상인 알라, 인류가 걸어야 할 바른 길, 무한한 사랑과 자비의 수여자인 알라의 속성, 알라의 노여움을 받았던 민족과 방황했던 민족에 대한 역사적 사건 등을 언급한다. 꾸란1장의 명칭은 ‘알 파티하’ 외에도 ‘책 중의 책’, ‘찬양’, ‘질병의 치료’, ‘무궁 무진한 지식의 창고’ 등 여러 이름을 갖고 있다.

 

모든 예배는 파티하가 제일 먼저 암송됨으로써 시작되고 예배의 효력이 발생한다.즉 파티하가 암송됨으로써 신앙의 문이 열린다는 의미에서 ‘개경 장’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본 장이 서두에 있지만 그것은 계시된 순서가 아니라 편집상의 순서일 뿐이다.

 

1) 파티하 본문과 구조

먼저 파티하의 본문을 우리말 번역, 영어 번역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⑴ 알라의 이름으로

In the Name of God,

자비롭고 긍휼하신 분

the Compassionate, the Merciful

⑵ 찬양은 알라에게 있도다.

Praise be to God,

온 세계의 주

Lord of the Universe.

⑶ 자비롭고 긍휼하신 분

The Compassionate, the Merciful,

⑷ 최후 심판 날의 주인

Sovereign of the Day of Judgement

⑸ 우리는 당신만을 예배하며

You alone we worship,

당신에게만 도움을 구합니다.

we turn for help.

⑹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소서

Guide us to the straight path,

⑺ 당신께서 축복하신 자들의 길로

The path of those whom You have favoured,

당신의 분노를 초래하는 자들의 길이 아닌

Not of those who have incurred Your wrath,

길 잃어버린 자들의 길도 아닌

Nor of those who have gone astray.

 


파티하는 아래와 같이 기원, 고백, 간구의 3중 구조로 되어 있다.

① 기원 (1a-4절)

ⓐ 호칭 (1b)

ⓑ 찬양 (2a)

˙ 신의 섭리 (2b)

˙ 신의 자비 (3절)

˙ 신의 정의 (4절)

② 고백 (5절)

ⓐ 예배 (5a)

ⓑ 신의 도움 (5b)

③ 간구 (6-7절)

ⓐ 신의 안내 (6절)

ⓑ 세 그룹 (7절)

 

2) 파티하 주해

1a절의 ‘비스밀라’(알라의 이름으로)는 무슬림들의 일상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해서 주문처럼 선언되는 공식들이다. 사업상 거래를 시작할 때, 방문해서 집에 들어갈 때, 음식을 먹기 시작할 때, 부부관계를 시작할 때, 책을 읽기 시작할 때 등 ‘비스밀라’ 는 반드시 선언해야 하는 무슬림들의 관행적인 공식 구절이다.

 

1절의 ‘비스밀라 알 라흐만 알 라힘’ (알라의 이름으로, 자비롭고 긍휼하신 분)은 코란 114장 중 9장을 제외한 모든 장들 첫 머리에 후렴처럼 등장하는 구절이다. 이슬람의 상표처럼 여겨지는 어구들이다.

 

1b와 3절에서 두 번 반복되고 있는 ‘알 라흐만 알 라힘’ 즉 ‘자비롭고 긍휼하신 분’에서 알라의 자비와 긍휼은 꾸란에서 자주 언급되는 알라의 핵심 성품들이다. 일반적으로 비 무슬림들에겐 이슬람의 알라는 무섭고 이신론적이며 초월적인 존재로 이 세상 역사엔 무관심하고 인간들에게도 비인격적인 존재로 알려진 반면, 무슬림들에겐 알라의 자비가 최고의 핵심 덕목으로 믿어지고 있다.

2절의 ‘함둘릴라’는 1a절의 ‘비스밀라’처럼 자주 사용되는 관행 구절로. 크리스찬의‘할렐루야’에 해당되는 뜻이지만, 일상 생활에선 ‘Thank God’의 의미로 사용된다.온 세상의 주(2b), 자비롭고 긍휼하신 분(3절), 최후 심판날의 주인(4절)이기 때문에 알라에게 찬양을 돌림이 마땅하다.

 

5절에서 유일신 알라에 대한 예배를 고백하고, 6절에서 이슬람의 길을 바른길로 규정하며, 7절에서 알라의 축복을 받은 자들을 길 잃어버린 자들, 알라의 분노를 초래한 자들과 대비하고 있는데, 각각 무슬림들, 크리스찬들,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4. 무슬림 신학

 

1) 신론

이슬람의 신론은 기독교의 삼위일체적 유일신론과 분명하게 구별되는, 단일(Unitarian) 유일신론(Oneness, Unity)이다. 꾸란 112장은 이슬람 신론의 핵심을 담고 있다.

알라의 이름으로, 자비롭고 긍휼하신분,

In the Name of god, the Compassionate, the Merciful

① 한 분 하나님이며,

God is on e,

② 영원한 하나님이다.

the Eternal God.

③ 그 분은 태어나지 않았고 낳지도 않았다.

He begot none, nor was He begotten.

④ 그 분과 같은 자가 없다.

None is equal to Him.

 

2) 인간론

이슬람의 인간 창조는 기독교의 창조론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지 않았다. 창세기에서 인간은 흙으로 창조되었지만, 꾸란에서 인간은 흙 정액 자궁의 체세포 등으로 창조되었다고 언급한다. 꾸란에서 인간은 불완전한 약한 존재로 지음받았고, 악에 빠지기 쉬운 존재이지만, 알라의 대리자로 묘사된다. 꾸란은 아담이 타락 후 회개했고, 알라는 그의 회개를 받아들였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무슬림들은 원죄를 부정한다.

 

 

3) 구원론

무슬림들은 원죄를 부정하고,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부정한다. 꾸란에도 예수님의 출생과 생애, 기적이 등장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꾸란엔 성령도 언급되지 않는다. 무슬림들도 꾸란에 기록된 최후 심판을 믿지만, 구원의 방법이 기독교와 다르고 구원의 확신도 없다. 선행을 통해서 마지막까지 알라의 뜻에 따라 낙원에 갈 수 있을 뿐이다.

 

4) 종말론

이슬람의 종말론은 기독교의 종말론과 유사하다. 꾸란은 성경처럼 종말의 징조들,트럼펫 소리, 예수의 재림을 언급한다. 그러나 마흐디(Mahdi)라는 또 한 인물이 종말에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최후 심판 때에, 책에 기록된대로 사람들의 선행과 악행이 저울에 달리게 된다. 천국과 지옥의 존재도 유사하다. 다만 꾸란은 기독교의 천국(Heaven) 보다는 낙원(Paradise, Gardens)을 선호하며, 낙원의 보상 중에 숫 처녀의 시중등 물질적인 차원의 보상이 강조된다.

 

5. 이슬람 선교전략

 


이슬람 선교는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뿌림을 전제로 한다. 성령의 사역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완악하고 강팍한 무슬림들의 영혼을 예수의 십자가 사랑과 성령의 기적 없이 그 누가 만질 수 있겠는가? 이슬람 선교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영역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이슬람 지역에서 여러 다양한 사역들이 펼쳐지고 있다. 예를 들면, 고아원, 장애인 센터 등 국가 시설들을 통한 긍휼과 구제 사역, 의료 사역, 개발 사역, 여행사, 섬유 직물, 학원, 태권도장 등의 비즈니스 사역, 교회개척 사역, 친구 삼기등 우정과 교제를 통한 개인전도, 제자 삼는 사역, 단기팀을 활용한 문서전도, 땅 밟기 사역, 중보기도 사역 등, 가능한 모든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다.

 

이 모든 사역들의 출발점은 무슬림들을 만나는 일에서 시작된다. 이들과의 접촉점을 만드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학원, 클럽 등에서 동일한 관심사, 취미 등을 나누며 친구를 만들 수 있다. 파티하는 이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관심을 단숨에 사로잡을 수 있는 아주 탁월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 무슬림은 아니지만, 무슬림들을 이해하는 사람 혹은 무슬림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여겨져서 그들에게 좋은 호감을 줄 수 있다. 파티하는 복음을 나눌 수 있는 우정의 친밀한 단계로 넘어가도록 돕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고, 이들과의 토론에서 이슬람 신앙의 오류를 잡아줄 수 있는 강력한 무기로 이용할 수 있다.


6. 결론


이슬람은 분명히 강한 사탄의 요새이며 진지임에 틀림없지만, 반드시 성령의 권세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모래성일 뿐이다. 이슬람 영의 특징은 거짓과 불신과 음란과 분리와 두려움의 영으로 알려져 있지만, 성령과 보혈의 역사로 정결케 될 수 있다. 무슬림들은 이슬람 영에 붙들린 불쌍한 영혼들로 우리의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구원받아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이다(마 9:35-38).

 
 출처 :바울선교회지//다니엘 선교사(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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