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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그리스도인의 가정  

                                                         

        혼인 주례식에서 목사들은 주로 다음의 성경 구절로 예식을 마친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지니라" (마19:7). 오늘날 이 구절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기 보다는 혼인식 마지막에 첨부되는 한 구절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혼인이 얼마나 많이 사람들에 의해서 나뉘어 지고 있는가?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다"는 주의 말씀과 "사람이 나누고" 있는 이 모순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말하는 것에서 만족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우리의 삶은 우리의 삶이다." 이것이 "말씀 따로, 생활 따로"라는 한국교회의 고질병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현상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은 이러한 말씀과 생활의 분리를 극복하고자 하는 하나의 노력이다.

천생연분?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다"는 구절이 한국 교회에서 그 강조점이 본문의 의도와는 달리 이해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상이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 구절을 세상 사람들의 "천생연분"과 비슷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다"가 "하나님이 미리 짝지어 주셨다"로 이해되고 있다. 그래서 혼인을 앞둔 청년들과 그들의 부모들은 이 구절에 근거하여 "하나님이 미리 짝지어 준" 배우자를 위해 엄청난 열심을 가지고 기도한다. 물론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지적하고 싶은 것은 본문의 강조점은 "천생연분"이 아니라 "혼인의 엄숙성"이라는 것이다.  비록 형식상 목사의 주례로 짝이 지어지지만 실제로 그들의 주례자는 목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이 본문의 강조점이다.

        세상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를 묶는 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이 식어지게 되면 더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다. 그들에게는 사랑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 모든 것을 정당화시킨다.  영화 '타이타닉'이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 감독은 하나님께서 지극히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혼외 정사를 지극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어(롬 1:23)" 버리려고 하는 것이 바로 세상이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아니오"라고 말한다.  남편과 아내를 하나로 묶는 것은 바로 하나님 "만"이라고 우리는 말한다. 부부의 사랑이나 기타 다른 것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기는 하지만 하나님 그분을 대신할 수는 없다. 따라서 성도들은 남편이 실직을 해서 경제적인 회생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여도, 아내가 정신병이나 불치병을 앓고 있어도, 심지어 사랑이 없어지게 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킨다.  왜냐하면 혼인을 유지시키는 것은 우리의 인간적인 지식이나 노력, 사랑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고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 19:7은 혼인을 앞둔 청년이나 혼인식의 주인공들에게도 적합한 말씀이지만  보다 구체적인 대상은 "불가피한 경우"로 인해 이혼 서류를 앞에 놓고 있는 부부이다.  혼인식을 막 치룬 부부들은 "사람이 나누지 못할 지니라"라는 말씀에 이구동성으로 '아멘, 아멘'하고 진리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아마 불신자들도 여기에 대해서는 참 좋은 말씀이라고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이혼 서류를 앞에 둔 부부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들이 정말 하나님 앞에서 (교회당 안에서) 혼인했다고 생각한다면, 왜 이혼은 사람 앞에서 (법정에서) 하려고 하는 것일까?

이혼의 거의 불가능성

        오늘날 미국에서는 이혼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혼한 가정들이 "정상"적인 가정(숫자적으로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혼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것들 중에는 정말 "불가피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이혼하는 것이 낫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분명히 있다. 어떤 남편이 교통사고로 하반신 불수가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 남편은 경제적인 지원을 거의 할 수 없을 것이고 자녀 교육에도 상당한 제약이 있을 것이다. 이 같은 경우에 남편은 생을 자포자기하고 아내에게 오히려 거친 행동을 하게 된다 그의 아내는 앞으로 평생동안 성의 즐거움 없이 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아내에게 엄청난 짐이다. 남편이 자기 스스로가 이혼을 요청할 때, 아내는 더 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판단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그 대답 중의 하나는 "그들이 어떻게 혼인을 했는가?"이다. 그들은 혼인식에서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건강하거나 아플 때나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부부로서의 대의를 지키겠다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자들이다.  "배우자가 건강하고 부유할 때"라는 조건이 혼인에 붙는다면, 우리는 혼인을 "언약"이 아니라 "계약"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만약 혼인의 본질을 계약으로 본다면 더 이상 우리는 할 말이 없다. 100번을 혼인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경우 혼인은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인간은 개나 돼지와 다를 바가 없게 된다. 하나님의 영광이 금수와 버러지의 형상으로 바뀌는 또 하나의 순간이다.

        예수님께서 이혼 가능성을 열어 두고 계신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음행"에서만 나온다. 요즘 많은 기독교 학자들이 이 음행을 확대 해석하려고 시도하지만 성경 본문을 보라. 아무리 살펴보더라도 그렇게 확대 해석할 근거가 없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음행 보다 가정 폭력이 더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폭력이 이혼에 대한 더 중요한 근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같은 경우에도 어느 기간 동안 별거를 하든가 아니면 그 남편을 법에 호소하여 격리시키는 것은 가능할 지 모르지만, 이혼이 허락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상대방이 다른 남자나 여자와 성관계를 가지는 것만큼 견디기 힘든 일은 부부생활에 없을 것이다  이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셨기에 우리 주님은 이혼의 문을 열어 놓으셨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것이 "어쩔 수 없는 허락"이지 "장려"나 "권면"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떤 목사님들 중에는 이 말씀을 근거로 배우자 중 한 명이 음행을 하면 반드시 이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지만, 이것은 본문에 대한 철저한 오해이다. 어떤 교인은 이 구절을 근거로 이혼하기 위해 의도적인 음행(비록 자신이 그것이 나쁜 줄 알면서도)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의도와 전혀 상반된 것이다.  예수님은 "음행"의 경우라 할지라도 상대편이 돌아 올 때까지 기다릴 것을 더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금방 드러난다. 하나님은 자신의 신부인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신들과 영적 간음을 수없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언약을 버리지 않으시고 인내하셨다.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 올 때마다 하나님은 자신의 신부로 다시 받아들이셨다. 이것이야말로 부부관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는 이혼의 불가능성에 대해서 강조해야 한다.

비록 이혼하더라도 . . .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이혼은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허용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음행의 연고(불신자의 핍박)로 이혼을 하려는 사람에게 주시는 주님이 명령은 무엇인가? 우리는 여기서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고전 7: 10, 11)

        여기서 몇 가지 사실을 주목해 보다.  1) 이 말씀은 단순한 권면이 아니라 엄격한 명령이다. 이 명령을 강조하기 위해 바울 사도는 주님의 권위를 사용하고 있다.  2) 이 말씀은 혼인을 앞에 둔 사람이나 이혼을 이미 한 사람들이 아니라 혼인을 이미 한 사람들에게 일차적으로 적용되는 말씀이다.  3) 강조점은 역시 이혼의 가능성이 아니라 불가능성이다.  사도 바울에게 만일 이혼해도 됩니까라고 묻는다면 그의 첫 번째 명령은 "안 된다"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하려는 사람들은 두 가지 중 하나를 결심하여야 한다: 독신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전 남편과 화합하려고 노력할 것인가? 이러한 결단 없는 이혼은 교회 안에서 허락되지 않는다.  결국 혼인은 우리 임의로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혼만큼은 우리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볼 때, 교회 안에서의 이혼은 재 결합을 전제로 한 이혼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온다. 왜 사도 바울은 "갈릴 경우에는 좋은 사람 만나서 재혼할 수 있느니라"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이혼한 사람들에게 다시 전 배우자와 화합하라고 명하시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 본문에서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이혼이라는 법적 절차가 상대방 배우자로 하여금 완전히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보통 우리는 이혼은 혼인의 끝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는다.  비록 그들이 이혼을 했더라도 그들의 하나됨은 어떤 유효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나뉨은 사람에 의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여전히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관점은 "버린 여자에게 장가가는 자마다 간음하는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도 일치한다. 왜 "이혼한 사람"과 혼인하는 것이 간음이 될 수 있는가?  하나의 대답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혼하였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부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이 나눈 것"과 "하나님이 나눈 것"을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혼을 허락했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이 나누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나누고 계시는가? 이혼과 나눔의 동일시 할 때의 필연적 결과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있느니라"이다.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하나님만이 나눌 수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나누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 두 배우자가 합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허락(혼인식)이 필요로 하듯이, 두 사람이 나누어지기 위해서도 하나님의 허락이 필요하다. 그 허락은 바로 죽음(장례식)이다.  한 배우자가 죽으면 진정으로 자유로운 몸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혼인해도 간음이 되지 않는다 (고전 7:39). 그렇다면 상대편이 죽으면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홀가분하게 다른 사람과 혼인해도 되는가?  사도 바울은 배우자를 사별한 성도들에게조차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고전 7:40, 이것은 단순히 사도 바울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 다음에 바로 사도는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성령님의 말씀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이 말씀은 혼인 적령기를 앞두고 있는 청년에게 권하는 독신(7:32-34)과는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목사들이 상처한 사람들에게 던져야 할 일차적인 권면은 재혼이 아니라 독신이며, 따라서 독신의 복됨을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이다. 이 얼마나 세상 상담학과는 구별되는 말인가?

        이혼한 사람들에게 주님은 두 가지를 권면하신다. 하나는 전 배우자와 화합하기를 노력하는 것, 다른 하나는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혼은 혼인의 끝이 아니다. 혼인의 끝이 될 수도 없다. 혼인의 끝은 하나님만이 결정하신다. 사람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다른 사람과 재혼하기 위한 시작도 아니다. 오히려 상대방을 용서하기 위한 훈련과정의 시작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이혼 기간 동안 원수사랑의 훈련을 하시기를 원하신다.  이 기간은 원수인 "나"를 위해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기간이다. 또한 자신을 버린 그(녀)를 위해 기도하는 기간이다. 그리고 할 수 있으면 비록 힘이 들더라도 다시 화합하기를 노력하는 기간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그들은 원수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뼈저리게 느낄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이 얼마나 큰 사랑인가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혼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비록 그 사람에게 뼈아픈 시간이 된다 할 지라도 영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들은 복 있는 자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화평케 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죄인 취급을 받는 이혼자들이 교회에서도 동일한 취급을 받지 않도록 교회는 그들을 돌보아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혼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이혼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것이다. "혼인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듯이 이혼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 "네 원수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혼한 사람들만큼 이 말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또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무시하고 이혼하더라도 무조건 다시 합하라고 명하지 않으셨다.  만약 그렇게 명하셨다면 그 말씀은 이혼한 사람들에게 견딜 수 없는 짐이 되었을 것이다. 이혼한 사람들은 전 배우자와 다시 화합하기를 소망하는 가운데, 즉, 전 배우자가 회개하거나 자신이 그를 진정으로 용서할 마음을 준비하면서, 얼마든지 독신으로 지낼 수 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그러한 노력을 해야 하는가? 하나님으로 나뉨을 허락 받을 때까지, 즉 상대방이나 자신의 죽음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정말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 6:15).  결국 이혼 기간 동안 그들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상대방에 대한 용서와 화합이다.

        많은 성도들이 이와 같은 혼인의 엄숙함에 고개를 저을지 모르겠다. 심지어 제자들도 예수님의 이같은 말씀을 들었을 때, "차라리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삽나이다 (마 19:10)"라고 불신의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이 말을 받을만한 자는 받을 지어다." 다른 말씀도 마찬가지지만 혼인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도 아무나 받을 수 없다. 오직 귀 있는 자만이 그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받을만한 사람만이 받을 수 있다. 

목회자의 사명

        이번 이산가족 상봉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장기려 박사님을 한 번 보자.  그 분은 사랑하는 아내를 이북에 홀로 두고 이남으로 내려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분은 끝가지 재혼을 하지 않았다.  그는 통일이 되면 다시 한 부부로 살 것이라는 기대를 늘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갔다. 결국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분은 독신으로 돌아가셨지만 그분은 부부가 무엇인가를 보여주셨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 교회는 (배우자가 살아 있을 동안의) 재혼에 대해서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재혼은 이혼한 부부가 다시 합할 가능성을 현저하게 막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재혼은 혼인이 아니라 간음이다.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재혼을 허락하는 것은 공식적으로 간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재혼을 옹호하는 입장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 근거하고 있다. 어떤 남편이 폭행이 심하다고 하자. 그 남편이 평생동안 그렇게 폭행이 심할지 아니면 때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그 남편을 돌이키셔서 정말 훌룡한 남편으로 바꾸실지 누가 알겠는가?

        재혼이 더 나은 혼인 생활을 보장할 것인가라는 말에도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통계적으로도 재혼한 가정의 85%가 이전 보다 더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재혼은 부모들의 죄의 결과가 자손들에까지도 미친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어린 자녀들이 부모들의 이혼과 재혼으로 고통당하고 있는가? 우리는 인간이기에 장래의 일을 알 수 없다. 좋은 혼인 생활이 사람의 기준으로 판단되어서도 곤란하다.  혼인의 일차적이 목적은 두 사람의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다.  따라서 "좋은 사람만 있다면"이란 말을 교회는 삼가야 한다.  "좋은 사람"은 바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전 배우자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혼한 사람들이 늘어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교회는 이혼과 재혼의 문을 쉽게 열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이 문을 쉽게 열어 버린 미국 교회들은 이혼과 재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에 거의 침묵하고 있다. 

        평신도는 고사하고 교회의 저명한 목사나 신학교수들이 자기 아내를 버리고 재혼하는 것은 통탄할 일이다. 물론 이유는 있으리라. 어떤 분은 아내가 정신병이 들었기 때문에, 어떤 분은 사모님이 너무 목회가 힘들어서 가정을 떠났기 때문에 재혼을 했다고 한다. 본인은 이러한 경우에도 그들이 목회나 신학 교수를 포기해서라도 가정을 지켜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왜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는가?  병든 아내와 도망간 아내, 그리고 목회와 신학 활동, 둘 중에 어느 것이 중요한가? 그들은 특히 교회의 지도자들이기 때문에 더욱 혼인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목회자는 어떠한 경우라도 "아내와 동거하라"는 사도 베드로의 가르침에 순종하여야 한다. 목회자는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한다"; "목회자는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여야 한다." 어떻게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고 목회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한국 목회자들이여, 어떠한 경우에라도 아내를 버리는 것을 정당화하지 말라.  목회나 성도는 포기해도 된다. 당신들이 없어도, 하나님은 돌들을 일으켜서라도 얼마든지 자신의 백성을 인도하실 것이다.  그러나 아내를 포기한다면 누가 그녀를 보호해 주겠는가?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간음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면 저로 간음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주님이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아내를 버리는 자는 "간음하게 하는 죄"를 짓는다. 간음하는 죄보다 더 큰 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은 목회자들에게 더 이상 "간음하게 하는 죄", 즉 아내를 버리는 죄를 짓지 말라고 호소한다.

        이혼과 재혼,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다. 그러기에 목사들은 말씀과 씨름해야 한다. "전 남편(아내)과 다시 화합하라"는 주님의 명령과 "도저히 서로 같이 살 수 없어 보이는" 인간적 상황! 이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넓은 길은 존재한다.  이혼한 사람들이 상담하러 왔을 때, 목사들은 "좋은 사람 만나서 혼인하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대답은 불신자들도 얼마든지 말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의 답이다. 오늘날 한국교회 목사들은  그 상처받은 영혼들을 말씀으로 치료할, 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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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대통령 주례사

 

보통 결혼이라고 하면 신랑 신부가 가슴이 설렙니다만, 오늘은 저도 약간 가슴이 설렙니다. 오정해양과의 관계로 해서 마치 친딸을 시집보내는 것 같고, 이렇게 많은 하객들 앞에서 25년만에 주례를 하게 되니 새삼 떨리는 마음입니다.

 

지난 19937,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연구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 저는 단성사에서 영화 "서편제"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영화에 관계하신 분들과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오정해양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후로 지금까지 교분이 계속되었고, 저는 오정해 양에게 항상 한눈 팔지 말고 국악 한 길에서 성공하라고 말해 왔습니다.

 

이제 오정해 양이 결혼하는 이 자리에서 축하하는 심정으로 주례를 보게 되었습니다. 긴긴 결혼 생활의 행복은 두 사람의 노력으로 찾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결혼생활의 선배로서 몇 가지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말하겠습니다.

 

부부는 첫째로, 상대방의 기를 살려줘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좋지 않은 아내는 남편 기를 꺾는 아내입니다. 남편을 생각하는 의미에서라고 해도 남편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잘 발전할 수 있는 남편의 기를 꺾어버리게 됩니다.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한테는 이 세상의 어떤 금은보화보다도 남편의 사랑과 남편이 자기를 인정해 주는 것 이상의 행복은 없습니다. 그럴 때는 아내는 무슨 고생이든지 감내를 합니다. 그래서 남편도 아내의 기를 살려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상대방의 장점을 봐야 합니다. 대개 결혼하기 전에는 서로 상대방의 장점을 봐야 합니다. 대개 결혼하기 전에는 서로의 좋은 점만 보다가 그 다음에는 결점만을 보기 시작해요. 그러나 사실 살다 보면 자기 남편, 자기 아내의 장점을 새롭게 발견하는 수가 많습니다. 서로 상대방의 장점을 인정하면서, 기를 살려주면 그 장점이 자꾸 커져서 두 사람 다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 가운데서 서로 상대방에게 감사하고 상대방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 두 사람은 정신적으로만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 성장과 일에서도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일생을 같이 발전해 나가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가 하는 일이나 정신적인 면에 관심을 가지고 아내도 남편이 하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서로 돕고 상대방에게 도움을 줄 때 사랑도 더욱 깊어집니다. 이 세상에서 아내만큼 남편 생각하는 사람이 없고, 남편만큼 아내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항상 서로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인간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일 문제나 일상 활동의 문제도 같이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는 부부가 되는 것이 좋습니다.

 

세 번째는 인내심입니다. 부부 생활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참는 것입니다. 부부가 같이 살다 보면 화나는 일도 있고 마땅치 않은 일도 생겨납니다. 그때 화를 내고 싸우고 시비하지 말고 참아야 합니다. 저희 집은 결혼 생활 수십년 동안에 작은 말다툼은 있었지만 큰 싸움은 해본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제가 화를 내면 제 아내가 말을 안한다는 것입니다. 말을 안하고 조용히 차아요. 참는 사람하고 싸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내가 잘못했다, 그때 참아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고, 더욱 아내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부 사이에 참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부부가 살아가면서 법률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옳지 않는 일을 하려고 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아내나 남편이 단호하게 반대해야 합니다. 제가 옥중에 있을 때 며느리한테 편지를 보낸 적이 있는데, 거기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남편이 옳지 못한 일을 하려고 할 경우에는 정말로 이혼을 각오하고 반대해야 한다고, 그런 아내를 남편은 존경하게 되고 감사하게 된다는 글입니다. 부부가 도덕적으로 떳떳하게 삶을 살고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그 두사람의 사랑은 물론 가정이 행복해지고, 자식들도 부모를 존경하며, 이를 통해서 가정 전체가 단합된 모습을 보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볼 때 두 사람은 우리나라 장래에 크게 이바지할 인물들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신랑 ㅇㅇㅇ군은 경제계에서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책임지는 훌륭한 경영인이 되기를 바라고, 신부 오정해 양은 우리나라 국악계를 이끌고나갈 훌륭한 국악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 사람이 협력하고 일체를 이루어 서로 그 두 가지 일에서 성공하기를 바라고, 두 사람의 행복을 빌면서 주례사를 마치겠습니다. 하객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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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결혼식 주례사

 

오늘 우리는 삼라만상이 약동하는 서기에 충만한 신록의 5월과 함께 선남 선녀 17쌍이 꿈에도 그리던 성스러운 화촉을 밝히는 자리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이 영광스러운 성전은 하느님도 축복을 해주시는 듯 창밖은 화창한 날씨로 신의 은총이 가득히 내리고, 평소 여러분을 애호하는 가족과 친지와그리고 아껴주시고 격려해 주시던 만장의 내빈 여러분께서 이 자리를 마음껏 축복해 드리고 있습니다.

 

그 동안 오늘의 신랑 신부 여러분께서는 누구보다도 남부럽지 않는 사실상이 금슬 좋기로 소문난 부부들로서, 일찍이 이웃 사람의 모범이 되고 자랑이 되어온 분들이십니다. 그러나 애당초 여러분께서는 정으로 맺어진 선남선녀들로서, 좀더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 보겠다고 결혼식마저 뒤로 미룬 채 천생연번 짝을 삼고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면서 마음 든든하게 살아오신 분들입니다. 참으로 이러한 점에서 오늘의 결혼식을 다른 어떤 결혼식보다도 하객 여러분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드려 마지 않습니다.

 

옛말에도 부부는 천생의 연분이라고 하였는데, 여러분이야말로 실제 천생에 연분을 먼저 맺고 오늘 결혼식을 올리는 훌륭한 진짜 부부이십니다. 아무쪼록 처음 맺었던 그 뜨거운 연애시절의 애정과 변함없는 믿음으로 오늘의 화촉을 더욱 빛나게 밝히시고, 알뜰한 살림 깔끔한 생활로 하늘이 더욱 축복을 내려주시는 훌륭한 가정을 이루어 주시기 바랍니다.

 

흔히 부부란 일생의 고락을 함께 하고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백년을 해로하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다운 부부가 사랑하는 아들 딸을 데리고 행복하게 사는 가정을 우리는 지상의 천국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정이란 이와 같이 지상의 낙원을 축소한 작은 천국으로 지아비는 근엄한 황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자애스러운 왕비마마와 씩씩한 왕자, 그리고 착하고 아름다운 공주가 사는 곳입니다. 누구도 이 성스러운 왕국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뜻에서 여러분께서는 영광스러운 촛불을 일생일대에 밝힘으로써 이제 왕국의 문패를 달게 되었습니다.

 

부디 앞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서, 기왕에 자녀를 두신 분들은 국가에 유용한 훌륭한 영재를 양성해 주시고, 앞으로 자녀를 두실 분이 아들을 낳으신다면 충효의 일생을 나라에 바치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같으신 아들을 낳으시고, 딸을 낳으시려면 동방의 현숙하신 어머님이신 신사임당과 같은 딸을 낳으시되, 욕심대로 둘은 낳지 말으시고 하나만 낳아서 잘 길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신랑신부 여러분께서는 오늘의 이 축전을 베풀어주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고마움을 평생토록 잊지 말고 앞으로 보다 잘사는 복된 가정을 이루어 주시기 바라면서, 오늘의 성전을 빛내 주시기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협조를 베풀어 주신 하객 여러분의 은총에 다시한번 감사하면서 주례사에 갈음합니다.

 

합동결혼식 주례사/ 이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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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사

신식 결혼, 요즘 예식장 등에서 흔히 하는 결혼식 주례사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참고) 결혼식 진행 순서

. 예식이 시작되기 전에 [주례 대기석]에서 대기

. 사회자 개식 선언

. 사회자가 "주례선생님 입장이 있겠습니다"라는 멘트를 내보냄

. 주례가 등단하면 사회자가 주례의 약력 소개

. 점촉 : 사회자가 안내(양가의 어머니가 양초에 불을 켠다)

. 신랑 입장

. 신부 입장

. 신랑신부 맞절

. 신랑신부 서약

. 성혼 선언

. 주례사

. 신랑신부 내빈께 인사

. 신랑신부 행진

. 폐식

  

 

1. 주례의 자격

 

주례사를 하려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 내가 과연 주례를 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 적어도 신랑 신부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고, 하객들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인지 점검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2. 주례의 준비 사항

 

1)신랑 신부에 대한 사전 지식, 신랑신부의 교육수준 등

2)양가의 형편이나 결혼 동기

3)자신이 할 이야기, 청중인 하객들의 교육 수준

4)시간을 적절히 안배(서론, 본론, 결론으로 메모식으로 작성)

5)사전 연습 : 혼자서 시간을 재면서 연습을 해보는 것도 무방

 

3. 결혼식에 임하는 태도

 

1)도 착 : 최소한 30분 전까지 도착하여 신랑 신부와 예식 순서 확인(사회자와의 만남을 통하여)

2)입 장 : 말하기의 기본을 참고

3)신랑 신부 맞절(사회)

4)혼인 서약과 성혼 선언문 낭독

- 신랑측에게: 신랑 ㅇㅇㅇ군은 신부 ㅇㅇㅇ양을 어떠한 경우라도 항상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진실한 남편으로서 도리를 다할 것을 (하나님 앞에-기독교인의 경우) 맹세합니까?

- 신부측에게 : 신부 ㅇㅇㅇ양은 어떠한 경우라도 신랑 ㅇㅇㅇ군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착하고 현숙한 아내로서 도리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까?

 

이렇게 주례는 묻고 나서, 신랑 신부의 답변이 끝나면 성혼선언문을 낭독한다.

- 여러분께서도 방금 들으신 바와 같이 신랑 ㅇㅇㅇ군과 신부 ㅇㅇㅇ양은 일가친척과 친지를 모신 자리에서 일생동안 고락을 함께 할 부부가 되겠다는 것을 굳게 맹세하였습니다. 이에 주례는 이 혼인이 원만하게 이루어졌음을 여러분 앞에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0000000일 주례 ㅇㅇㅇ

 

4. 주례사

1)자세 : 말하기의 기본 자세 참고

2)음성 : 낮은 음성으로 시작하여, 중요한 부분은 강한 포인트를 주면서 자연스럽게 이어나갈 것

**주의 사항

ㅇ 너무 길지 않도록(10분 정도)

ㅇ 흥분하거나 우울한 목소리 절대 엄금

ㅇ 아---, ---, 설라무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집 누구는 등의 길게 빼는 소리

ㅇ 반복적인 말투

ㅇ 지나치게 개인적인 화제 사용

ㅇ 실언을 하지 않았는가 검토

ㅇ 서론, 본론, 결론이 매끄럽게 되었는가

ㅇ 자신감 있게 하였는가 등

 

5. 예문

 

 

1. 기본 예문

 

만물이 소생하는 새봄을 맞이하여 인생의 새출발을 약속하는 ㅇㅇㅇ군과 신부 ㅇㅇㅇ양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공사다망한 가운데도 오늘 결혼식을 축복해 주시기 위하여 참석해 주신 하객 여러분께 신랑신부 양가의 혼주를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이렇게 신랑신부를 훌륭히 키워주신 양가 부모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결혼이란 청춘 남녀가 만나 부부의 연을 맺고 서로 사랑하며 한 마음 한 몸으로 한 인격체를 만들어 백년해로하는 거룩한 만남입니다. 이제 세상에 새롭게 태어난 이 부부는 앞으로 즐거운 날도 많고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 두 사람의 부부애를 더욱 돈독하게 하고, 서로 항상 감싸면서 슬기롭게 대처해나갈 수 있도록 주례사라기보다는 인생의 선배로서, 앞으로 살아가는데 참고가 될 몇 가지를 당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신랑신부께서는 항상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면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항상 감사드리고, 부모님께 보답하는 길은 부모님의 심려를 끼쳐드리지 않고 편안하게 모시는 것임을 깊이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각자의 생활이 있고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형제자매간에도 소홀해 질 수가 있습니다만, 그럴 때일수록 형제간에 서로 우애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둘째, 두 분은 항상 서로 믿고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는 부부애가 있어야만 진실된 가정으로 이끌어갈 수가 있고,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일심동체가 되어 서로 믿고 의지할 때 부부애가 완성되어 행복의 샘터를 영원히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서로 존경하여야 합니다. 남편도 아내도 독립된 인격체입니다. 두 인격체가 만나 하나의 인격체를 형성하는 것이 결혼의 숭고한 의미인만큼, 두 분은 항상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존경심이 깃든 사랑이야말로 진실되며, 그 생명력이 영원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두 분은 이제 사회의 중요한 일원으로서, 일가를 이루면서 사회인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여야하겠습니. 남편은 직장에서, 아내는 가정에서 맡은 바 의무를 다할 때 사회와 국가의 일원으로서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분이 항상 공동의 노력으로 최대의 행복을 창조하고,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때 금슬이라는 악기는 끊어지지 않고 아름답게 음악을 연주할 것이며, 그 음악은 두 분의 가정과 부모형제와 이웃에게도 아름답게 울려퍼져나갈 것입니다.

 

아무쪼록 두 분이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한 가정을 영원토록 이어가기를 빌면서 주례사에 갈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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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랑군의 부모님께선 무교 이시고 저희집은 집안전체가 기독교이십니다.

여자집쪽에서의 기독교 예식요구가

쉽지 않은 부분이었지만, 랑군 부모님께서 배려해주셔서

기독교식 예식을 진행합니다.

 

결혼 예식 순서

 

잠시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0시0분부터 신랑00군과 신부00양의 결혼식을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하객 여러분께서는 장내로 입장하시어 자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1. 개식 선언

이제 신랑 00군과 신부00양의결혼식을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내빈께서는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저는 이번 축복된 결혼식의 사회를 맡게된 신랑의 친구00입니다.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자리를 빚내주시기 위해 참석해 주신 하객 여러분께 신랑,신부를 대신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부터 신랑00군과 신부00양의 결혼식을 거행하겠습니다.오늘결혼식은 기독교 의식으로 진행이

되겠습니다.하객 여러분들 중에서 다른신앙을 가지신 분이 계신다 할지라도 신랑 신부의 앞날을 위해 이 예식을 기쁨으로 동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화촉 점화

먼저 두사람의 앞날과 양가의 행복한 맺음을 상징하는 화촉을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신랑과 신부의 어머님께서는 앞으로 나오셔서 화촉에 점화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랑 어머니 : 청색 초, 신부 어머니 : 홍색 초)

 

3. 주례자 소개

오늘의 혼인 예식은 000목사님을 주례로 모시고 거행되겠습니다. 주례를 맡아주실 000목사님께서는~  - 주례선생님 소개 -

 

이때 모사님이 나와서 하객분들께 인사하고 하객은 박수로 답례

 

4. 신랑입장

신랑입장이 있겠습니다.하객여러분께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랑 입장-

1. 성경(반지) 소년 입장한다

2. 신랑 들러리 입장

3. 신랑입장

사회자의 말에 따라 신랑 입장이라고 하면 신랑이 주례 앞으로 걸어 나와주례를 향해 인사를 한 후 내빈을 바라보며 신부를 맞이 할 준비를 한다.

 

5. 신부입장

이어서 오늘의 주인공 신부 입장이 있겠습니다.하객 여러분께서는 모두 일어나셔서 격려와 사랑의 박수로 신부의 앞날을 함께 열어 주시기 바랍니다.  -신부입장-

1. 꽃소녀 입장

2. 신부 들러리 입장

3. 신부 입장

신부 입장하는 사회자의 말이 끝나면 신부는 집안의 어른 남성(대부분 아버지) 와 함께 천천이 걸오 나온다.

신랑있는 곳까지 가면 신랑은 단 아래로 내려가 신부 아버지께 인사를 하고 신부를 부축하여 함께 주례 앞에 올라선다.주례를 향해 신랑은 왼쪽, 신부는 오른쪽

 

6. 신랑 신부 맞절

이제 두사람이 주례선생님과 하객 여러분들 앞에 나란히 섰습니다. 두사람의 맞절이 있겠습니다.

주례앞을 보고 있던 신랑 신부가 서로 마주보며 일정 거리를 두고 허리를 굽혀 맞절을 한다.

 

7. 찬송

이제 모든 하객들은 일어나셔서 신랑 신부를 위한 축복의 찬송을 함께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입구에서 나누어드린 순서지 뒷면을 찹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8. 기도

주례자가 사회자의 멘트 없이 바로 기도드린다.

 

9. 주례사

사회자의 멘트 없이 주례자가 주례사를 시작한다.

 

10. 혼인서약

이제 두 사람의 혼인 서약이 있겠습니다.

먼저 신랑에게 묻겠습니다. 신랑 000군은 신부000양을 어떠한 경우라도 항상 사랑하고 존중하며 양가 집안 어른들을 공경하고 진실한 남편으로서의 도리를 다 할것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맹세 합니까?-예-

신랑이 "예"라고 힘차게 대답했습니다.

이제 신부에게 묻겠습니다. 신부000양은 신랑000군을 어떠한 경우라도 항상 사랑하고 존중하며 양가 집안 어른들을 공경하고 진실한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 할것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맹세합니까? -예-

신부가 "예"라고 아름답게 대답했습니다.

 

11. 성혼선언

하나님의 위임을 받은 이 주례자는 이제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함으로 혼인을 서약함을 보았으므로

성혼을 선언합니다.

 

성혼 선언문 낭독

신랑000군과 신부000양은 하나님과 일가친척과 친지를 모신 자리에서 일생동안 고락을 함께 할 부부가 되기를 굳게 맹세하였습니다. 이에 주례는 이 혼인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것을 여러분 앞에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12. 반지교환

이제 신랑과 신부는 서로에게 생과과 마음과 몸 모든 소중한 것들을 주겠다는 귀중한 증표를 준비했습니다. 신랑 신부는 반지를 서로 교환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신랑이 신부에게 반지를 끼워주시고 그 가음 신부가 신랑에게 반지를 끼워주도록 하겠습니다.

 

신랑 신부의 반지 교환이 끝나면 들러리들과,주례자,신랑,신부는 목사님과 함께 sign을 위해 지정된 테이블로 자리를 이동한다.sign 이후 주례자는 원래 위치로 신랑 신부는 전 위치에서 하객을 향하여 서고,들러리들은 원래 위치에서 하객쪽으로 돌아선다.

 

13. 신랑 신부 인사

- 양가 부모님께 인사

이로서 두사람이 한몸이 되었습니다,이제 신랑신부는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오늘의 결혼에 이르기까지 보살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인사와 ,아울러 잘 살겠다는 인사를 드리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주례자는 신랑 신부가 먼저 1.신부측 부모님께,2.신랑측 부모님께 인사하도록 인도한다.

- 신랑 신부 하객들께 인사

다음은 신랑 신부가 오늘 두사람의 결혼을 축하해 주시기 위해 이곳까지 와주신 하객들께 감사의 인사와 아울러,앞으로 잘 살 수 있도록 격려와 가르침을 주십사하는 마음을 담아 인사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랑 신부 하객들에게 인사!!

 

 

여기서부터 사회자가 다시 진행

 

14. 축가

다음은 오늘 결혼식을 축복해 줄 아름다운 축가가 있겠습니다.축가는 000께서 해주시겠습니다.

 

15. 축도

축가가 끝나면 사회자 멘트 없이 목사님께서 나오셔서 축도한다

 

16. 신랑 신부 행진

이상으로 신랑000군과 신부000양의 결혼식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신랑 신부의 밝은 앞날을 기원하며 양가를 대신하여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감사합니다.( 다른 필요한 광고)

이제 한쌍의 원앙으로 탄생한 아름다운 부부가 아름다운 미래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겠습니다. 하객 여러분께서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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