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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대통령 주례사

 

보통 결혼이라고 하면 신랑 신부가 가슴이 설렙니다만, 오늘은 저도 약간 가슴이 설렙니다. 오정해양과의 관계로 해서 마치 친딸을 시집보내는 것 같고, 이렇게 많은 하객들 앞에서 25년만에 주례를 하게 되니 새삼 떨리는 마음입니다.

 

지난 19937,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연구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 저는 단성사에서 영화 "서편제"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영화에 관계하신 분들과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오정해양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후로 지금까지 교분이 계속되었고, 저는 오정해 양에게 항상 한눈 팔지 말고 국악 한 길에서 성공하라고 말해 왔습니다.

 

이제 오정해 양이 결혼하는 이 자리에서 축하하는 심정으로 주례를 보게 되었습니다. 긴긴 결혼 생활의 행복은 두 사람의 노력으로 찾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결혼생활의 선배로서 몇 가지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말하겠습니다.

 

부부는 첫째로, 상대방의 기를 살려줘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좋지 않은 아내는 남편 기를 꺾는 아내입니다. 남편을 생각하는 의미에서라고 해도 남편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잘 발전할 수 있는 남편의 기를 꺾어버리게 됩니다.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한테는 이 세상의 어떤 금은보화보다도 남편의 사랑과 남편이 자기를 인정해 주는 것 이상의 행복은 없습니다. 그럴 때는 아내는 무슨 고생이든지 감내를 합니다. 그래서 남편도 아내의 기를 살려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상대방의 장점을 봐야 합니다. 대개 결혼하기 전에는 서로 상대방의 장점을 봐야 합니다. 대개 결혼하기 전에는 서로의 좋은 점만 보다가 그 다음에는 결점만을 보기 시작해요. 그러나 사실 살다 보면 자기 남편, 자기 아내의 장점을 새롭게 발견하는 수가 많습니다. 서로 상대방의 장점을 인정하면서, 기를 살려주면 그 장점이 자꾸 커져서 두 사람 다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 가운데서 서로 상대방에게 감사하고 상대방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 두 사람은 정신적으로만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 성장과 일에서도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일생을 같이 발전해 나가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가 하는 일이나 정신적인 면에 관심을 가지고 아내도 남편이 하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서로 돕고 상대방에게 도움을 줄 때 사랑도 더욱 깊어집니다. 이 세상에서 아내만큼 남편 생각하는 사람이 없고, 남편만큼 아내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항상 서로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인간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일 문제나 일상 활동의 문제도 같이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는 부부가 되는 것이 좋습니다.

 

세 번째는 인내심입니다. 부부 생활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참는 것입니다. 부부가 같이 살다 보면 화나는 일도 있고 마땅치 않은 일도 생겨납니다. 그때 화를 내고 싸우고 시비하지 말고 참아야 합니다. 저희 집은 결혼 생활 수십년 동안에 작은 말다툼은 있었지만 큰 싸움은 해본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제가 화를 내면 제 아내가 말을 안한다는 것입니다. 말을 안하고 조용히 차아요. 참는 사람하고 싸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내가 잘못했다, 그때 참아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고, 더욱 아내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부 사이에 참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부부가 살아가면서 법률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옳지 않는 일을 하려고 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아내나 남편이 단호하게 반대해야 합니다. 제가 옥중에 있을 때 며느리한테 편지를 보낸 적이 있는데, 거기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남편이 옳지 못한 일을 하려고 할 경우에는 정말로 이혼을 각오하고 반대해야 한다고, 그런 아내를 남편은 존경하게 되고 감사하게 된다는 글입니다. 부부가 도덕적으로 떳떳하게 삶을 살고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그 두사람의 사랑은 물론 가정이 행복해지고, 자식들도 부모를 존경하며, 이를 통해서 가정 전체가 단합된 모습을 보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볼 때 두 사람은 우리나라 장래에 크게 이바지할 인물들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신랑 ㅇㅇㅇ군은 경제계에서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책임지는 훌륭한 경영인이 되기를 바라고, 신부 오정해 양은 우리나라 국악계를 이끌고나갈 훌륭한 국악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 사람이 협력하고 일체를 이루어 서로 그 두 가지 일에서 성공하기를 바라고, 두 사람의 행복을 빌면서 주례사를 마치겠습니다. 하객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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