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어머니 모시기--양로원에서?
현대 사회에 들어오면서 노인들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귀찮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효를 강조해 온 한국인들도 이제는 노부모를 서로 안 모시려고 한다. 더구나 이제는 양로원이 아주 잘 발달되어 있어서, 어느 정도 여유만 있으면 노무보를 집에서 모시기 보다는 양로원으로 보내려고 한다. 이러한 생각은 이미 보편화 되어 있어서 기독교인들에게 조차 좋은 해결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제는 그러한 생각들이 과연 얼마나 성경의 가르침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이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받으실만한 것이니라" (디모데전서 5: 4). 사실 이 본문은 헬라어 원문 자체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번역될 수 있다(자세한 것은 칼빈주석을 참조하라. 내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 본문에 대한 칼빈 자신의 독특한 해석을 볼 수 있다). 특히 "집에서"라는 말은 원문상 "집을"이라는 말이기 때문에 현대어 역본들은 "집에서"라고 번역하지 않는다. 더구나 한국어 성경에 나온 "효를 행하여"라는 말은 치명적인 번역의 실수이다. 왜냐하면 "효"에 해당하는 헬라어 말은 "경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부모를 섬기는 것은 결코 약화되지 않는다. 킹제임스 성경의 경우 문법적인 애매성에도 불구하고 "집에서"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홀어머니를 모시는 것을 성경은 "효"가 아니라 "경건"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 경건은 원래 "하나님 같은"이라는 뜻인데, 어떻게 홀어머니를 모시는 것이 경건이 될 수 있을까? 사실 우리는 너무 경건을 추상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경건이라고 하면, 기도생활과 연결시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참된 경건이 무언인지를 정확하게 보여 준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야고보서 2장 27절). 여기서 우리는 세속적인 생각과 경건의 뚜렷한 차이를 본다. 경건은 홀어머니를 돌아보는 것이고 세속적인 생각은 홀어머니를 홀대하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경건)한다고 하면, 결코 홀어머니를 양로원으로 보내는 것을 쉽게 결정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경건을 실천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경건은 홀어머니를 모시는 것으로 구체적을 나타나야만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홀어머니를 집에서 모셔야 하는 것은 부모에게 받은 것을 보답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부모로부터 특히 어머니로부터 어렸을 때, 거의 무한대의 은혜를 받고 자란다. 그 어머니가 힘이 없어서 우리들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그것을 회피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 보다 더 악한자"라고 정죄받기 때문이다(딤전 5: 8).
유교 사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우리나라는 아들이, 그것도 첫째 아들이 부모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지게 된다. 이것 때문에 서로 아들을 가지려고 하고, 아들을 갖지 못하면 실망하거나 더 나아가 아직 나지도 않은 딸 아이를 살해하는 파렴치한 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부모를 보답한다는 측면에서, 아들이 부모를 모시는 것 보다 딸이 부모를 모시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본다. 왜냐하면, 실제 생활에서 부모를 모신다는 것은 남자 보다는 여자가 훨씬 많은 부담을 지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어머니를 모시는 것 보다 친정 어머니를 모시는 것이 며느리(딸)에게는 훨씬 부담이 덜 될 것이다. 이점에서 기독교의 가르침은 유교보다 훨씬 더 뛰어난 가르침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더구나 성경에 따르면, 홀어머니를 집에서 모시는 것은 자녀 뿐만 아니라 손자(원문 따르면 조카)에게도 요구되기 때문이다.
부모를 집에서 모시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인들의 크나 큰 변증이 될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제사를 지내지 않기 때문에 효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모두가 양로원을 선호하는 세속적인 흐름에 맞서 기독인들이 노부모를 집에서 섬긴다면 우리는 그러한 비난이 근거가 없다는 것을 우리의 올바를 행위로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집에서 홀어머니를 모시는 것은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가 집에서 홀어머니를 모시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받으실 만한 것이다." 야고보서 역시 홀어머니를 모시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코람데오의 정신을 보게 된다. 이 코람데오는 고려신학대학원의 모토이고 고신정신을 대변하는 말 중의 하나이다. 코람데오는 거창한 구호도 아니고 우리 생활과 멀리 떨어져 고귀한 이상도 아니다. 우리가 집에서 홀어머니를 모시는 것은 코람데오의 정신을 가장 잘 우리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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