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타하지 아니하며--가정폭력에 대한 성경적 교훈 
 

개그 우먼 이경실씨로 인하여 요즘 가정 폭력이 아주 중요한 사회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사실 남편이 아내에 대한 폭력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명에 한 명꼴로 혹은 적어도 3명에 한 명 꼴로 남편이 아내를 때린다고 한다. 아마 신자의 경우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특히 목사의 경우에는 그 비율이 훨씬 높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따라서 남편들의 폭력은 성도라고 예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목사직이 다른 직업과 다른 독특한 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대부분의 경우, 가정과 직장이 분리되어 있는 반면, 목사의 경우에는 가정과 일터가 뚜렷이 구분되어 있지 못하다. 사모는 가정에만 충실하고 싶어도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보면, 아무리 나이가 어린 사모라 하더라도 사모는 교회에서 영적 어머니로 간주된다. 특히 교회의 여성들의 목소리가 목사에게 직접 가기 보다는 사모에게 전달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 목소리 중에, 상당수는 그냥 단순한 불만이지만 어떤 것은 목사가 꼭 알아야 할 정보를 담는 경우도 있다. 사모는 그런 것들을 어떻게 하든지 남편 목사에게 알리려고 할 것이고, 남편은 그러한 것을 목회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따라서 목사의 가정에 있어서 이러한 문제는 서로가 정말로 지혜롭게 대처하지 않는다면, 가정 자체가 매우 불행해 질 수 있다.

주위의 경험상, 목사가 아내로부터 참기 가장 참기 힘든 경우는 설교에 대한 비판이다. 아마도 사모만큼 설교에 대한 스트레스가 강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목사의 모든 삶을 다 아는 자로서 목사의 설교에 은혜를 받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내가 설교를 잘 했는지 못했는지의 기준을 나의 아내에 기준을 맞추고 있다. 만일 나의 아내가 잘했다라고 평가하면, 진짜로 잘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한국 교회의 형편에서 목사에게 설교 비평을 하는 사람은 사모외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목사는 사모의 설교비평을 무조건 폄하하기 보다는 자기 발전의 계기로 삼는 것이 좋다고 본다.

부부가 서로 이렇게 이해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인격적인 미성숙으로 인하여 그러한 충고들이 서로를 세우기보다는 논쟁과 다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그것이 심해지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구타로 발전하게 된다. 구타가 일어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구타는 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때리는 사람의 경우에는 아내가 맞을 짖을 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구타를 정당화시킨다. 구타의 원인이 상대방에게 있다는 생각은 구타를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게 하고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킨다. "나도 잘못했지만 당신은 더 잘못했어"라는 생각은 다음에도 부부간의 분쟁을 폭력으로 해결하도록 만든다.

목회서신인 디모데서와 디도서(딤전 3:3, 디 1:7)는 감독의 자격 중 하나가 구타하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교회에서 목사나 장로로 선출될 정도라면 구타라고 했을 때 무엇을 가리키겠는가? 아마 그가 평소에 다른 사람들과 맨날 주먹질이나 하였다면 아예 직분에 선출될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구타는 가정폭력일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는 목사와 장로를 세우기 전에, 그들이 가정 내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지 그렇지 않은 지 세밀히 살펴야 할 것이다. 가정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이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다스리는 하는 일을 그 아내나 자녀들이 보는 것은 남편이나 아버지에게 맞는 것, 그 자체만큼 고통이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경우에 아내에게는 그렇게 대하면서도 교회의 여성도들에게는 정말 잘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그 아내가 "당신은 좋은 남편 두어서 참 행복하겠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심정이 어떻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직분자가 구타를 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있겠는가?  아마 대부분의 경우에 가정 폭력이 교회에 쉽게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디도서는 어떤 사람이 구타할 위험성이 많은 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디도서는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을 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면 구타하지 아니하며"라고 되어 있다. 나는 이것들을 따로 보기보다는 같이 보았으면 한다. 구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고집대로 하기를 원한다." 즉 왜 다툼을 폭력으로 해결하려고 하는가? 그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의 뜻을 관철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구타하는 사람들은 또한 대개 급히 분을 내는 사람들이다. 즉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쉽게 큰 소리치고 쉽게 열을 내고 쉽게 손이나 발이 나간다. 디모데서는 감독은 "관용하는 자"여야 한다고 하는데, 오래 참는 것을 말한다. 또한 가정 폭력의 경우 상당수가 술과 연관된 경우가 많다. 주위에 술만 먹으면 아내를 때리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교회에서 가정 폭력이 설교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목사가 가정 폭력이 얼마나 가정에 위험한 것인지를 모르는지, 아니면 교인들은 가정 폭력 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든지 아니면, 목사 자신이 폭력을 행사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 점에서 나는 디도서나 디모데서에서 말하는 구타를 "가정 폭력"이라고 한정시키고 싶다. 그리고 그러한 구타를 상습적으로 행사하는 사람은 반드시 교회 직분에서 면직시켜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가정 폭력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가정 폭력은 교회 내에서 반드시 제거하여야 할 악이라는 생각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아내는 "연약한 그릇"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는 정말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아내를 때리면, 그 그릇은 약하기 때문에 깨어지게 되어 있다. 깨어진 다음 후회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 맞은 아내는 깨어진 심령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남편에게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렇게 맞고 사느니, 차라리 이혼하라." 하지만, 아내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정말로 믿는다면,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맞기기를 권한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 12: 19-21) 이 말씀은 누구 보다 매맞고 살아가는 믿음의 여성들을 향한 말씀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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