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과 긍지를 구별할 수 있는가? (1)

 

‘프라이드’(pride)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겸손과 반대되는 교만이고, 다른 하나는 수치와 반대되는 긍지이다.

교만은 우리의 성공에서 하나님과 다른 환경들을 배제시켜 버린다.
교만은 우리가 무엇을 성취했던 간에 자신의 힘으로 성취했다고 주장한다.
교만의 본질은 자기중심적인 태도와 이기심이며, 성경은 이것을 정죄한다.

그렇다고 성경이 자아를 적대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자아는 하나님의 선한 피조물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이기심은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섬기는 것이다. 교만은 항상 무대 중앙에 서고 싶어하며,
모든 공로를 혼자 차지하며, 하나님을 빼버리며,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하지 않으며,
독불장군식의 이기심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과 반대된다. 

요한일서 1장 3절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경건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교제와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이다.
경건한 사람은 자신의 모든 활동에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이 참여하기를 원한다.
그는 인간은 그 누구도 고립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긍지는 일을 잘 처리하며,
탁월하며, 최고를 위해 노력하며, 평범함을 초월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이러한 긍지는 자신의 가장 좋은 것을 주인께 드리려 한다. 
교만과 긍지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대해서도 잘못된 인상을 갖고 있을 수 있다.

기독교는 탁월함을 반대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탁월하며 성취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기독교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탁월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반대할 뿐이다. 
이기적인 교만은 감사와 반대된다.
교만은 건강한 몸, 건강한 마음, 좋은 부모, 좋은 나라, 좋은 식사, 그 외 사람들의 통제 밖에 있는 수많은
축복에 대해 하나님께 전혀 감사하지 않는다.
이기적인 교만으로 가득한 사람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신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교만은 근시안적이다. 교만은 하나님의 축복이 떠나가면 인간은 전혀 아무것도 아니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잠 16:18).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교만을 벗겨내신 후에야 자신이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서 그분의 힘을 구하게 된다.
긍지는 감사할 대상에게 감사하다고 표현하며 공로를 합당한 데 돌릴 수 있다.
긍지는 하나님의 선물에 감사할 수 있으며, 동시에 잘한 일을 인정할 수 있다.
칭찬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오만하지 않다. 그는 자신의 능란한 손가락이 어디서 왔으며
누가 자신의 마음과 리듬감을 주었는지 알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독립적이며 자기중심적이지 말라고 독려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탁월함과 성취를 추구하라고 독려해야 한다.
큰일을 이룰 수 있는 재능 있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성공이 얼마나 허물어지기 쉬운 것인지를
항상 인식해야 한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놀랍고도 과분한 은혜로 인해 항상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
그는 자신의 탁월한 일을 통해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해야 한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틴 성당에서 걸어나오면서 자신이 정말 아름다운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을 알고
긍지를 느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당의 천장을 바라보면서 언제나 하나님께로 이끌린다.
사람들은 미켈란젤로가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은 마음을 느낀다.
예술은 위대하다.
그러나 예술의 목적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관람객은 예배하고 싶은 감동을 느낀다.
우리의 일에 긍지를 느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자신이 대단하다는 생각에 한껏 부풀어 오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훌륭한 일을 하게 하셨으나 그 목적은 우리의 자랑이 아니라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마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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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과 긍지를 구별할 수 있는가? (2)

 

죄책감과 은혜

 

나는 확고한 율법주의자였다. 나는 죄를 몇 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강단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8∼10가지 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천국을 슈퍼마켓처럼 보았다.
나는 내가 천국에 가면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로 가득한 카트와 함께 줄을 서서 계산을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하지만 나는 “많아야 일곱 개”만 찍고 계산대를 쉽게 통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숙하면서, 나는 내가 죄와 인간의 상태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던 이유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를 해왔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실제로 죄를 지었다는 것을, 단지 다른 사람들과 하나 되려고 기도회에서 고백하는 의식적인
죄를 지은 게 아니라 심각하게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죄인이었으며 심판받아 마땅했다. 
나는 내 죄의 깊이를 내가 거의 맛볼 수 있는 수준까지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의 죄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좋은 일이다.
죄는 하나님이 우리가 누리기를 원하시는 기쁨을 우리에게서 빼앗아버린다.
죄는 행복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행복을 찾으려 한다.
죄는 사람들, 특히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해친다.
일단 우리 죄의 심각성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우리의 관심을 죄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놀라운 일로 옮길 수 있다. 
나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찬송가 405장)과 같은 찬송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어떤 죄인인지 알았으며, 하나님의 용서가 얼마나 놀라운지 알았다.
“주의 귀한 은혜 받고 일생 빚진 자 되네”(찬송가 28장)라는 가사도 마찬가지였다.
죄책감과 은혜의 관계를 이해하기 시작할 때 그리스도인의 성장이 시작된다.

다시 말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롬 5:20).
죄를 깨닫고 그 죄에 대해 정직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은 그 죄에서 돌이킬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파멸에 이르렀다는 것을 안다.
그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안다.
그는 오직 은혜, 과분한 은혜를 통해서만, 그가 행한 의로운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통해서만 자신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죄는 단지 하나님의 규범을 위반하는 것에 불과한 게 아니다. 죄는 인간의 마음 상태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마음 상태가 어떻든 간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리라는 것을 알기에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돌아서서 더 많은 죄를 지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를 받아들이시고
구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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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과 긍지를 구별할 수 있는가? (3)

 

자책과 회개

 

바울은 고린도후서 7장 8-11절에서 죄책감에 대해 생생하게 말한다.
그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세상 근심”(worldly sorrow)과 회개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Godly sorrow, 경건한 근심)을 대비시킨다.

세상 근심은 자의적인 죄책감으로 이어지는데, 이것은 자신에게 가하는 지속적인 형벌이며,
자신의 죄에 대해 인간적인 수준에서 대가를 지불하려는 시도이다.
자의적인 죄책감은 마침내 부정(否定)과 심지어 자멸로 이어진다.
가룟 유다는 이러한 죄책감을 느꼈을 때 자살을 선택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로 이어진다.
이것은 유다가 깨달았듯이 죄의 무서움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회개하는 죄인은 자신을 자멸로 몰고 가는 대신에 하나님은 은혜로운 용서의 제안으로 눈을 돌린다.
그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마 11:28).
그는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사 1:18). 
시몬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으나 유다처럼 동산으로 가서 스스로 목을 매지는 않았다.
대신에 그는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갔고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자책과 회개의 본질적인 차이는 인간 중심적인 죄책감이냐 하나님 중심적인 죄책감이냐는 것이다.
때로 우리는 우리의 죄 가운데 하나가 낙타를 쓰러뜨리는 지푸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한도를 넘으면 지푸라기 하나 더 얹어도 낙타의 등골이 부러진다”는 속담을 이용한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감당하지 못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인간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극단적인 죄를 용서한다는게 불가능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가장 악한 죄,
곧 우리를 너무나 당혹스럽게 하며 너무나 큰 죄책감을 안겨주는 특별한 죄까지도 충분히 용서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는 우리가 그 죄를 하나님께 내어놓고
그분의 용서를 구하며 그 죄에서 돌이키기를 원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와 성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구원 받는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믿음까지도 행위로 바꾸려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이 이 구절을 우리에게 주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구절은 믿음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구원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그분의 공로로 우리의 죄책감을 제거하신다.
우리의 근심과 믿음 모두 우리의 구원에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우리는 오직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사하신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서만 구원 받는다.

 

왜 예수님이 죽으셨는가? 
수년 전이었다. 나는 남아프리카에 있는 선교사 친구를 찾아가 내가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할 뿐 아니라
완전한 헌신으로 그분을 섬기기를 원하지만 여전히 죄책감을 느낀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때 친구는 나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죄 없이 살 수 있다면 하나님이 자네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을 걸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바로 자네가 죄 없이 살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지. 자네의 죄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에 흠집을 내는 게 아니야.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은 바로
자네의 죄 때문이니까.”
그때 나는 비로소 예수님이 나를 위해 하신 일을 깨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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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메마름에 대한 처방전은? (1)

 

 

기쁨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삶의 가장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시편 84편 2절에서, 시인은 기쁨으로 노래한다.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그러나 우리가 시편기자처럼 노래할 수 없는 날과 주와 달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우리의 육체는 고사하고 마음마저 기뻐 노래하지 못한다.

사실, 모든 즐거운 느낌이 멀어 보이며,
즐거운 느낌을 가지려는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죽은 것처럼 보인다.

성경을 읽지만, 성경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신앙생활은 공허한 습관이 되어버린다.
기도에 대한 열정이 없다. 성례에도 무관심해진다.
그리스도인의 덕목들이 따분하고 마음에 끌리지도 않는다.

양심은 무감각해지고 무디어진다. 
이처럼 영적으로 메마른 순간이 찾아올 때,
그리스도인은 엄청난 고통을 느낀다. 그는 이런 시기에 침묵할 수 있다.

그러나 주변 세계는 그의 사랑이 필요하며 그의 사랑을 기대한다.
병든 자들과 죽어가는 자들은 위로받기를 원한다.
상처 입은 자들과 외로운 자들은 이해받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도움을 간절히 바라지만
정작 내 안에는 철저한 공허와
메마름만 느껴질 때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상태를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전에 영적 메마름을 느끼는 원인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는 이런 메마음의 상태를 오래 지속시켜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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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메마름에 대한 처방전은? (2)


영적 메마름의 원인

 

첫째, 죄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분명히 어기고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태도가 영적 메마름을 초래할 때가 있다.

그러나 나의 상담 경험에 비춰볼 때,
영적 메마름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은 주님을 가까이하기를 갈망하며
그분의 뜻을 따르려고 온 신경을 집중하는 매우 양심적이고
진지한 그리스도인일 때가 많다.

이들의 문제는 이런 태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멀리 계시며 자신들을 도우실 수 없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둘째, 영적 영양 결핍과 활동 부족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특별한 목적만을 위해, 예를 들면 설교를 준비하거나 성경공부를 준비하거나
특별한 행사의 메시지를 준비하기 위해 성경을 공부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실 수 있도록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은 육신의 건강을 위해 매일 식사를 하는 것만큼이나
그의 영적 건강에 중요하다.
받는 게 없이 계속 주기만 한다면 결국은 메마르고 말 것이다.
영적 메마름은 다른 사람들을 먹이지 않는 데서도 올 수 있다.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영적으로 메마른 게 아니라
영적으로 메마르기 때문에 활동을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셋째, 과식과 과로 때문이다.
우리는 최고의 종교적 체험을 한 후에 영적 메마름으로 고통당할 때가 많다.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한 말씀으로 축복을 받는 수련회나 성경캠프가 끝난 후,
성탄절이나 부활절이나 오순절이 지난 후 갑자기 극한 가난에 빠질 수 있다.
또 영적 과로 때문에 고통당할 수 있다.
크리스천 지도자들이 기독교에 관한 여러 과정을 가르치고,
몇 번의 성경공부를 인도하며, 몇 번의 설교를 하면서
힘겹게 한 주를 보냈다면 주말이면 마음이 무감각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러한 영적 과로는 한 사람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형식적이고 틀에 박힌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예배 자체에 감동이 없어지는 것처럼,
어린 시절에 강요된 종교교육을 받을 경우, 어른이 된 후 영적인 문제들에 무관심해질 수 있다. 

 

넷째,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기 때문이다.
몸과 영은 단일체이다.
따라서 마음의 병이 몸의 병의 원인일 수 있다.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몸을 돌보지 않으면 심리적 건강이 영향을 받고 영적 ‘가뭄’이 일어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반면에
인체화학, 기압, 날씨, 물과 대기오염 같은 생물학적 사실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훌륭한 피아니스트는 낡은 피아노로도 연주할 수 있다.
그러나 피아노의 음이 맞지 않는다면,
최고의 피아니스트라도 자신이 연주하고 싶은 음악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다섯째, 균형 상실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해서 우리가 한 부분을
이루는 창조의 질서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일과 휴식 사이의 균형 위에 세워져 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 2:3). 

이런 면에서, 절망적이게도 우리의 삶은 균형을 잃을 때가 많다.
우리는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하며 이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분이 창조하신 세계에 두신 이러한 리듬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창의적인 영적 능력을 잃을 것이다. 그 결과로 영적 메마름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메마름의 상태를 오래 지속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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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메마름에 대한 처방전은? (3)

 

영적 메마름의 극복

 

첫째, 용서가 필요하다.


분명한 죄를 범했으며 죄가 그 원인으로 밝혀졌다면
고백과 용서에 대한 새로운 확신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그러나 상담자는, 욥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은 죄에 있는 게
틀림없다고 주장했던 친구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훈련과 책임이 필요하다.

영양 부족이 원인이라면,
개인의 경건 생활에 대한 새로운 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는 간접적인 설교와 경건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것도 좋으며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직접 경험을 통해 사는 법,
다시 말해, 개인적인 성경공부를 통해 영적 양식을 스스로
파내는 법을 더 많이 배울 필요가 있다.

하루 중 경건의 시간에 가장 적합한 때를 결정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에게는 성경읽기를 위한 지침과 기도에 관한 가르침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나라에서 특정한 임무를 맡을 필요가 있다.
작은 것이라도 하나의 과제를 성취하는 것은 무기력증에서
비롯된 영적 메마름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금식이 필요하다.
영적 메마름이 과식 때문이라면, 기도를 더 많이 하고,
성경을 더 오래 연구하며, 교회 모임에 더 많이 참석하라고 말하는 것은
당뇨병 환자에게 설탕을 더 많이 먹으라고 충고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일정 기간의 영적 금식을 처방하는 게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사람은 한동안 자신의 경건 생활을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짧게 기도하고, 경건서적을 읽는 것을 삼가고,
교회 활동에서 한 걸음 물러서야 한다.
영적 양식에 대한 식욕이 다시 살아날 때까지….

 

넷째, 식사 조절과 운동이 필요하다.
신체적인 면을 소홀히 한 경우, 수면과 휴식이 첫 번째 해답이다.
식사도 중요하다. 식사는 비타민을 충분히 포함하고 있는가?
과일과 채소를 더 많이 먹고 하이킹과 수영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소화를 잘 시키며,
햇볕을 쬐는 게 우리의 영적 건강에 설교보다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섯째, 즐거운 여유가 필요하다.
생활의 새로운 균형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자신의 일뿐 아니라 스케줄까지 완전히 다시 짜야 할 것이며
생활방식도 바꿔야 할 것이다.

나는 피로를 풀고, 여가를 즐기며, 게임을 할 시간을 내고 있는가?
나는 때로 목적 없이 무엇인가를 하면서 취미에 흠뻑 빠지기도 하는가?
이러한 즐거운 여유가 우리 주님에게는 경건한 심각함보다 더 큰 증거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우리 안에서 새로운 창의력이 되살아나게 하며,
새로운 영적 깊이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줄 것이다. 

루터나 파스칼이나 키에르케고르처럼 철저한 종교 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누구나 영적 메마름의 시기를 헤쳐나가야 했으며,
때로는 절망에 이르기도 했다. 산이 높아야 골짜기가 깊듯이,
이러한 고통의 강도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의 강도와 직접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메마름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실제로는 즐겁지 않은데 즐거운 척하면서 영적 메마름을 숨기려 할 필요가 없다. 
나는 하나님이 멀리 계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고통을 경험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이유는
다른 때에 그분이 가까이 계심을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늘 큰 위로를 받는다.

우리가 이것을 이렇게 본다면,
영적 메마름 때문에 겪는 고통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표시일 것이다.
여기에는 새로운 영적 건강에 대한 약속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모든 사막에는 새로운 모험에 대한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 

“또 광야를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으로 샘물이 되게 하시고 주린 자로
거기 거하게 하사 저희로 거할 성을 예비케 하시고
밭에 파종하며 포도원을 재배하여 소산을 취케 하시며”(시 107:3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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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그리스도인의 감격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로 나뉘어질 수 있습니다.

주님에게 사랑을 구하는 연애하는 그리스도인

하나는 주님과 결혼해서 또 주님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는 그리스도인.

 

연애하는 사람은 주님에게 어떻게든지 잘 보여보고 주님에게로부터 사랑을 좀 얻어내 보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이렇게 하면 주님에게 잘 보일까 저렇게 하면 잘 보이지 못할까 이렇게 하면 주님 날 사랑하시고 저렇게 하면 혹시 기분 나빠할까? 그런데 짓눌러 가지고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에게 작은 사랑이라도 더 얻어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많이 있습니다. 얼마나 피곤한 그리스도인의 삶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미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불러주시고 구원해주신 그 놀라운 사랑을 믿고 주님과 더불어 함께 사랑하고 살아가는 결혼하고 한 가정을 이루고 그와 더불어 향락하고 살아가는 그런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도 있습니다.

 

바로 거기서 도덕적인 그리스도인과 복음적인 그리스도인으로 나뉘어집니다.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그 무거운 죄의 짐을 다 주님의 십자가 밑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유를 묻지 않으십니다. 용서해 주십니다. 이제 내려놓고 편안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만일 그 음성을 들었다면 그것이 복음이 되지 않겠습니까? 기쁘지 않겠습니까? ‘아! 그랬구나’ 세상에서 피곤하게 살다가 마음이 답답해지면 생각나는 곳이 어디겠습니까? 빨리 주일이 와야겠는데 위로의 말씀을 들어야겠는데, 이 마음을 괴롭히는 무거운 짐을 좀 내려놓아야겠는데, 기다려지는게 주일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감격,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기쁨, 주님을 사모하는 간절한 소망이 되지 않겠습니까?


사도행전 16장에서 빌립보 간수는 위대한 질문을 합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으리이까“

바울의 대답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 외치셨습니다.

내가 일평생 땀 흘리고 노력하고 애를 써도 이룰 수 없는 그 모든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버렸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할 것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습니다. 오직 십자가만 바라볼 뿐 그 놀라운 구원이 여러분과 나에게 공짜로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랑할 수 없다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감격은 ’아 그랬구나‘ 내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데서 출발합니다.

 

이 복음의 감격을 가지고 성경을 읽으면 달라집니다. 과거에는 성경을 읽으면 이것도 못 지키고 또 이것도 못하고 그래서 마음이 죄로 인해 무겁기만 하고 괴로워지고 피곤해집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집니다.성경 읽어가는 방법이 달라집니다. 이것도 내가 했는데 주님께서 해 주셨구나. 이것도 해야 하는데 주님께서 해 주셨구나. 읽으면 읽을수록 주님께서 해 주신 일이 너무나 많아 감격스러워집니다. 성경 읽는 일이 가장 기쁨이 됩니다. 그 보혈의 피가 육적인 죄도 영적인 죄도 다 씻어 버렸습니다.

 

요한1서 1장 10절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실 것입니다. 그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새 생명이 씻음 받은 우리 가슴 속에 선물처럼 쏟아져 들어왔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생을 얻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과 화해하는 생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감격의 성도가 되었습니다.이 생명의 감격이 없이는 가장 귀한 영혼이 구원을 얻는 생명의 사역이 절대로 이룰 수 없습니다.

 

두 번째 매일의 특권 가운데 하나인 고백의 특권.

 

하나님은 약하여 넘어질 수밖에 없는 인간임을 미리 아시고 우리에게 날마다의 상처를 치료받으며 새로운 감격과 기쁨으로 주를 위해 살아가도록 놀라운 특권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고백입니다.

마 7장 7-11절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로마서 8장 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회개는 일생 한번밖에 못합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예수 믿게 되는 것이 회개입니다. 지옥을 향해 가는 사람이 천국을 향해 돌아서는게 회개입니다. 천국을 향해 가는 동안 넘어지고 쓰러지고 할 때 매일 용서를 받아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고백입니다.

요한1서 1장 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실 때 베드로가 “주님 내 온몸을 씻겨 주십시오.”

주님은 “한번 목욕한 사람은 발만 씻으면 된다.”

 

”아 그랬구나“ 십자가만 바라봄으로 보혈의 피로 죄 용서받고 구원 얻은 사람은 그 다음부터는 매일 발을 씻어야 합니다. 구원얻은 성도가 가지는 특권입니다. 이미 천국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 넘어지고 쓰러지는 만큼 천국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의 겨드랑이를 붙잡아 일으켜주시고 무릎의 흙먼지를 털어 주시고 상처를 치료해 주시고 새 힘 주시며 걸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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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그리스도인의 결단

 

모든 그리스도인이 기본적으로 받아야 할 질문 세 가지

 

첫째 거듭났습니까?

 

생명이 생명을 낳습니다. 죽은 것이 산 것을 낳을 수가 없습니다. 불이 불을 당깁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슴 속에 거듭나는 생명이 있어야 그 생명을 가지고 다른 사람 가슴 속에 성령의 불길을 옮겨 놓을 수가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나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으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지만, 부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처럼, 거듭난 사람은 자기가 거듭난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생명은 결론이지 이론이 아닙니다. 생명은 태어나는 것이지 논리가 아닙니다.

 

두 번째 성령의 충만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성령이 충만하지 않는 삶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복종입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명령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사람이 하는 것 아닙니다. 특별히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아니면 한 영혼도 구원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가슴이 뜨거워진 제자들을 향하여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 받고 능력이 생기거든 그 다음에 나가서 일하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생기거든 그 다음에 나가서 일하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영혼이 구원되고 자랍니다.

새가 보잘 것 없는 새라도 그 새가 자력을 가지면 새가 가는 곳마다 쇠붙이는 끌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소유하면 구태여 입을 벌려 뛰어다니지 아니하여도 여러분을 향해 몰려오는 영혼들로 기쁨을 얻게 됩니다,

 

세 번째 누가 주인입니까?

 

주인이 분명해야 그 주인을 위해 일하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베드로전서 3장 15절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가장 결단기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구원은 분명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이미 구원 얻은 생명이 믿음이 자라면서 클 때 내게 베풀어주신 주님의 사랑이 너무 크고 놀랍고 감격스러워서 그 예수님을 차마 경배나 구두가 아니라 내 모든 것을 기대하시는 주님으로 모시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결단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하나님의 선언이 내려졌을 때 사실 여러분과 나는 다 죽었던 인간입니다.

마태복음 18장 8-9절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주님 말씀은 분명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 말을 상징과 비유로 해석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회개하는 고통이 없습니다. 비유이고 상징이기 때문에 잘라도 잘라도 아프지가 앖습니다. 나는 오른 눈이 범죄할 때 율법은 오른 눈을 외눈이 범죄 할 때 왼눈을 두 팔이 범죄할 때 왼발을 잘랐습니다. 그래도 몸둥이만 가지고도 뒹굴어서 천국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내 심장이 범죄한 순간에 율법은 예리한 면도칼 같은 법으로 심장마저 도려내 버렸습니다. 심장이 도려지는 순간 피가 폭포수 같이 쏟아지며 나는 죽었습니다. 죄의 값은 죽음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까지 여러분과 저를 사랑하시어 따라오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자기 눈과 코와 입을 다 잘라내고 뽑아내어서 죄로 인하여 없어진 눈 코 입을 대신해서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분은 자기 심장을 도려내어서 여러분과 나의 심장에 대신 넣어주셨고 그분의 심장이 내 심장에 들어오는 순간에 뜨거운 피가 한 방울 한 방울 내 몸 속에 퍼져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의식을 되찾고 살아났습니다. 다시 살아난 놀라운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눈을 비비고 내 앞을 보았더니 누군가가 두 눈과 입 두 팔과 두 다리와 심장이 드러내지고 잘라버린 채 처량하게 죽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분이 가시 면류관을 쓰셔야 했고 양손과 양팔에 못이 박혀야만 했고 옆구리에 창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죽었습니다. 우리는 살아났습니다. 지금 내게 있는 두 눈은 두 팔은 두 다리는 내 심장 내 생명은 내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주님의 것입니다. 육의 정욕에 사용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세상에 갈 때 안갈 때 뛰어다니는 것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는 약한 청지기들입니다. 이제는 주인 되시는 주님게 소유권을 양도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2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가 살았다고 생각하니까 화도 내고 신경질도 내고 고집대로도 합니다. 죽은 인간이 무슨 고집이 있습니까? 무슨 의지가 있습니까?

 

만일 예수님이 참말 주님이고 우리가 그의 종이라고 하면 그분을 내 삶에 최상의 위치에 모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섬겨야 마땅합니다.

 

그것이 성도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복음적인 입장에서 참말 나는 죽었고 내가 산 것이 바로 그분의 죽으심으로 살았다는 고백 속에서 삽니까? 아니면 세상의 위치에서 세상 것으로 섬기며 살아갑니까? 세상에서는 그런데로 넘어 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절대로 넘어가지 못합니다. 천국의 문간에는 이 땅위에서 주를 위해 수고하는 수고를 시험하는 사나운 불길이 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 같은 믿음으로 은 같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보석과 같이 가장 귀한 정성과 사랑으로 드린 것만이 주님 앞에 남게 될 것입니다. 말라빠진 나무와 같은 인간의 고집으로 풀과 같이 무성하게 소문만 떠벌이면서 빛과 같이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주를 위해 일한 수고는 천국 불에서 다 타서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불 가운데서 얻은 구원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마음 마음마다 주님이 새롭게 되어지는 아름답고 복된 결단이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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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신앙생활의 표준                  

 

[1] 예배에 대하여
 

1.예배의 뜻

(1) 성소 (교회)에서 하나님을 창양합니다. (시150)

(2) 창조주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경배하는것 (요424)

 (3)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산제물로 드리는것 (롬12:1)

 

2.예배의 목적

(1) 예배자의 신앙을 성장키 위하여 (엡4:11-15)

 (2) 타인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고전 14:23-25)

(3)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시29:2, 고전10:31)

 

3.예배의 태도

(1) 무릎을 꿇고 경배드려야(참회와 용서)(시95:6)

(2) 땅에 엎드려 경배드려야(비하와 겸손)(욥1:20)

(3) 얼굴을 땅에 대고 경배드려야(존경과 감사)(마26:39)

  

[2] 기도에 대하여

 

1. 기도의 뜻(기도란 무엇인가?)

(1) 하나님과의 대화요 영교(시91:14, 사1:18)

(2) 영혼의 호흡(롬12:12, 살전5:17)

(3)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것(마7:7,렘29:2-13)

 

2. 기도할 이유(왜 기도하는가?)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요14:13)

(2) 하나님이 가까이 하시기 때문(시145)

(3) 어려울때 하나님의 도움을 위하여 (시50:15,120:)

(4) 무엇보다 하나님으로 부터 죄 사함 받기 위하여 (역대하7:14)

  

3.기도의 방법 (어떻게 기도를 하는가?)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시22:19 -24)

(2) 받는 은혜 생각하며 감사하라(시100:,행16:25-)

(3) 모든 죄를 고백하며 회개 자복하라(요일1:9,시94:9)

(4) 하나님 영광을 목적으로 소원을 간구하라 (빌4:6)

(5) 나라, 교회,이웃형제를 위해 기도하라(행8:15, 삼상7:5)

(6) 기도는 반드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하고

"아멘" (진실로 그렇게 되기 바랍니다) 으로 마쳐라 (요14:13)

 

4. 기도의 효과

 

(1) 사죄의 은총을 받게된다(기쁨 , 평안)(롬8:1-39)

(2)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원수위해 기도)(마5:44)

(3) 성령의 은사를 체험케 된다(오순절 역사) (행2:1-13)

(4) 하나님의 능력을 얻게 된다(겟세마네 기도)(마26:36)

(5) 병자 고치는 기적을 체험케 된다(병자 고침)(약5:15)

(6)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다(히스기야 기도)(사38:1-8)

  

[3] 찬송에 대하여

 

1.찬송의 뜻

(1) 하나님께 감사와 헌신을 곡조로 표현한 기도 (시47: )

(2) 우리의 신앙고백을 노래로 간증하는것(시23: )

(3) 우리를 불러 하나님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께 찬양하는 노래(시150:)

  

2. 찬송의 효과

 

(1) 기쁨과 은혜를 체험케 함(약5:13, 즐거울 때 찬송)

(2) 능력을 얻게 함(마26:30 예수님의 제자들 찬미)

(3) 신앙을 성장케 함(사38:18-20 히스기야의 찬송 생활)

  

3. 찬송의 결과(축복)

(1) 모든 대적을 물리쳐 주심(사42:10-13)

(2) 이혜화 총명을 주심 (단2:20-23)

(3) 놀라은 기적을 베풀어 주심 (행16:25-34)

(4) 기쁨과 평강을 충만케 하여 주심(롬15:11-13)

(5) 찬미의 제사 하나님이 기뻐하심(히13:15-16)

 

[4] 헌금에 대하여

 

1.헌금의 뜻

(1)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마6:20)

(2)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림(마22:21)

(3) 하나님께 받은 은혜 감사 표시(신16:15-17)

(4)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 척도 (고후9:7)

(5) 주님 사업에 참여 함이다(고후8:4)

(6) 스스로를 주님께 드리는 표시(고후 9:5)

 

2. 헌금을 해야 할 이유

(1)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레27:30, 사66:20)

(2) 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마23:23)

(3) 성령께서 권상하셨기 때문(행 :44)

(4) 교회가 요구하기 때문(행 4:32)

(5) 그리수도인의 본분이기 때문(성도를 돌봄)(눅8:3)

 

3. 헌금의 방법

 

(1) 많이 심는 자가 많이 거둠(고후 9:6)

(2) 인색한 마음이나 억지로 하지 말것(고후 9:7)

(3) 감사함으로 즐겨드릴 것(고후9:8,스1:4)

(4) 빈손을 하나님께 보이지 말 것(출23:15,34:20)

 

4.헌금과 축복

 

(1) 하나님께 바치는 자는 범사에 복을 받음(신14:28)

 (2) 하늘문을 열고 창고를 넘치게 채워주심(말3:10)

(3) 하나님이 다 갚아주심 (잠19:7)

(4) 하나님께 바치는 자 하나님이 사랑하심(고후9:7)

(5) 후히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게 안겨주심(눅6:38)
 

[5] 성경에 대하여

 

1. 성경을 주신 근본 목적

(1) 영혼의 양식으로 인생을 바르게 살도록 하기 위해 (딤후3:17)

(2)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주심(갈3:22)

(3)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게 하기위해 주심(요20:31)

(4)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 주심(요5:13)

 

2. 성경을 읽어야 할 이유

(1) 마음이 평안케 되므로 (시85:5 -8)

 (2) 행실이 깨끗하게 되므로 (시119:9)

(3) 죄짓지 않게 되므로 (렘15:16)

(4) 기쁨이 충만케 되므로 (렘15:16)

 (5) 남보다 지혜롭게 되므로(시119:98,100,130)

(6) 기도의 능력을 얻으므로(요15:7)

(7) 거짓교훈에 속지 않게 되므로 (딤후3:13-15)

 (8) 모든 선행이 완전케 되므로 (딤후3:16-17)

(9) 악을 이기게 되므로 (요일2:14)

(10) 근면하게 되므로 (행17:11)

 

3. 성경이 우리에게 유익되는 것

(1) 새 사람 됨(벧전1:23)

(2) 강건하여 짐 (엡6:10)

(3) 시험을 이김 (마4:1-11)

(4) 좋은 인도자가 됨(딤후2:15, 3:15-17)

(5) 자기를 발견케 함(히4:12)

(6) 기도의 능력을 얻음(요15:7)

(7) 보호하고 완전케 함(행20:29-31)

(8) 굳센 믿음을 얻음(롬10:10-17)

(9) 죄를 피할 수 있음(벧후 1:4,시119:9)

(10) 영생이 있음을 알게함(요5:39,요일5:13)

[출처] 신앙생활의 표준 |작성자 하나님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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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있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면

  

1.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는 피상적인 신앙생활은 영적생기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는지 안 만난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2. 삶의 모든 상황 속에서 예수님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수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을까?

물론 예수님의 관점을 생각해보려면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3.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자를 사랑하신다.

삶속에서 하나님을 자랑스럽게 여겨 그 분을 전하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말로, 물질로  전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까 ?

 

4.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감사와 회개를 생활화 해야 한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은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의 죄를 회개하는 자.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하루하루 감사와 회개를 생활화하여야 한다.

 

5. 하나님이 이전에 내게 주신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며,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그래서 나는 택함 받은 백성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스스로를 사랑하고 존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6.하나님은 사랑이 있는 곳에  함께 하시므로 삶속에서 사랑을 생활화해야 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라는 성경말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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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지금은 성령시대라고 한다.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수님의 희생에 대해 깨닫게 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바로 나아가게 도우시는 보혜사이시므로 우리는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해야 하며, 우리 의지만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그 분에게 힘과 용기, 깨달음을 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8. 기도의 50%는 자기 자신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고, 그분을 높이며, 그분이 나를 온전히 주관하시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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