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저녁예배설교] 대속하러 오신 메시아 (Wednesday Evening Sermon)
대속하러 오신 메시아
이사야 53장 1∼12절
이사야 53장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천한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메시아의 고난과 영광’을 주제로 그의 징계와 고난이 우리를 위하심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징계를 당함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사 53:5).
그런데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아의 모습은 초라합니다(1∼3절). 이사야는 앞으로 오실 메시아가 사람들이 기대하던 슈퍼영웅이 아니라 메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같이 애처롭고 초라한 모습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풍채나 사회적 지위, 가문, 경제적 부유함, 학문적인 어떤 매력도 없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는 연약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언은 700년 후 복음서에서 그려진 예수님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고 한 것처럼 멸시받는 지역 나사렛 사람으로 나셨습니다. 그가 친구로 삼고 제자로 부르신 사람들도 갈릴리 어부였습니다. 또한 비난 받던 세리와 장애인, 병든 자,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는 죄인의 친구”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는 실제로 허물 많고 초라한 인생들의 친구가 되시고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또한 그 메시아는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셨습니다(4∼6절). 하나님께서 그에게 죄를 담당하도록 한 것입니다. 바로 대속주로 오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허물과 죄가 드러나지 않게 감추고 숨기고 의로운 척하며 살아갑니다. 같은 죄인들끼리 서로 정죄하며 판단하고 외면하고 멸시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 메시아는 죄가 없었으나 대신 죗값을 받으셨고 형벌을 받고 죽으셨습니다(7∼12절). 바로 대속 제물로, 제물 된 어린양으로 끌려가 죽임을 당하십니다. 완전한 의인이시면서도 죄인 취급을 받으시며 곤욕 당하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묵묵히 침묵하시며 재판을 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시며 십자가를 짊어지고 갈보리산으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곧 나와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신 대속의 제물이십니다.
그러면 하필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방법을 사용해 죄인들을 구원하셔야 했을까요.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원의 계획이라면 훨씬 더 강력하고, 훨씬 더 수월하며, 훨씬 더 설득력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친히 죄인의 몸으로 오셔서 몸소 고난을 받아야 하는 이러한 방식을 피할 수는 없었을까요. 하나님께서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을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창조자이신 하나님, 세상을 만드시고 세상의 질서를 세우신 하나님께서 죄의 책임을 메시아에게 전가하시고, 대속하셔서 모든 인간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방식을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한 구속이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고전 1:18).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 십자가의 대속을 능력으로 힘입는 성도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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