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나귀 타신 예수님(Wednesday Evening Sermon)

나귀 타신 예수님  
마태복음 21장 1∼11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성과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주여, 나를 지금 구원하소서, 호산나!”라고 외치며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개선장군처럼 정복자의 위엄과 힘을 상징하는 전차와 말을 타지 않으시고 보잘 것 없는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사람이 왕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을 구원할 왕이 보잘 것 없는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럽습니까. 누가 봐도 이 세상을 구원할 왕의 모습은 아닙니다.

스가랴 9장 9절 말씀은 예수님이 겸손한 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자신의 힘을 스스로 제한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지위를 스스로 낮추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겸손한 왕으로 이 세상의 구원자가 되시겠다는 것은 자신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포기하는 겸손과 섬김으로 세상을 구원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따라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겸손과 섬김의 무기력은 이제 곧 일어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희생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팬터마임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예수님을 기대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결정됩니다.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그 힘의 숭배,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하고, 더 많은 성공을 이루어야만 한다는 세속적 욕망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힘 있고 권세 있는 예수님을 기대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것은 열광적으로 예수님을 환영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했던 모습입니다. 이들은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겸손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신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 패권을 가진 힘 있는 권력자의 모습을 기대하며 예수님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마가복음에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라고 외쳤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융성했던 다윗의 시기를 회복할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들은 예수님이 무기력하게 로마 군인들에게 붙잡혀 끌려 다니고 채찍 맞는 모습을 보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며 폭력적으로 돌변합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돌변’이 아닙니다. 그들 안에 잠재됐던 힘의 숭배가 드러난 것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환영하고 받아들이는 예수님은 나귀를 타신 겸손한 예수님입니다. 나귀 타신 예수님을 우리 자신의 욕망의 투사로 변형시키면 안 됩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해서 찬양하거나 예배하면 안 됩니다. 그건 예배가 아니라 우상숭배입니다. 적지 않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이 욕망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예배합니다. 나귀 타신 겸손한 예수님의 모습보다 능력과 이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의 모습만 보려 합니다.

여러분, 나귀 타신 겸손한 예수님을 진심으로 영접하고 호산나 찬양할 때, 우리가 어떤 삶을 살게 됩니까. 힘으로 자기를 축적하는 인생이 아니라 겸손과 섬김으로 끊임없이 자기를 비우고 낮추는 십자가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받아들이고 환영하고 영접하는 예수님은 권력과 힘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예수님이 아니라 겸손과 섬김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입니다. 자신을 제로로 낮추는 십자가 죽음을 향해 기꺼이 나귀 타고 가시는 예수님의 겸손을 깊이 묵상하고 받아들이는 사순절 기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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