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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수요저녁설교 (September,Wednesday Worship Sermon)

제목/절대기쁨을 누리는 방법

성경/빌1:15-18

 

● 신앙생활 하다보면 늘 즐겁고, 늘 기쁘고, 늘 은혜 속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저런 일 때문에 교회 안에서 상처를 입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일을 하느냐 마느냐 고민하기도 하고, 심하면 교회를 떠나야 하느냐 마느냐 갈등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상처의 대부분이 사람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예배드리고 은혜를 받고 봉사하면 문제 될 것이 없는데, 그런 일에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그것도 같이 신앙생활하며 예배 하는 가까운 사람들 때문에 신앙에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신앙의 평정심을 잊지 않고 기쁨을 누리며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본문을 통해서 잠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 오늘 본문 속에서 바울이 어떤 상황 속에 놓인 것을 알게 됩니까? 15절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옥에 갇혔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바울을 시기하고 질투했던 사람들의 반응과 바울을 좋아하고 따르던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바울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좋아 했겠습니까?

 

▶ 바울을 좋아하고 따르던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16절에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한다.”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하나님께서 복음을 위하여 세우심을 입은 사람임을 기억하고 바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더욱더 애정을 갖고 바울이 하던 복음 사역에 더욱 열심을 냅니다.

 

▶ 반면에 바울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17절에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 옥에 갇힘으로 바울의 명성이 크게 손상되고 위축되었다고 생각하고 이 틈을 타서 자신들의 명성과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복음 사역에 열심을 내는 사람들입니다.

 

만일 우리가 바울과 같은 상황 속에 놓인다면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불쾌하게 생각하고, 이들로 인해서 마음이 많이 언짢을 겁니다. 왜냐하면 나의 어려운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나를 넘어서는 지지를 받기 위해 애를 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울과 같은 상황이 아니라도 그런 사람을 보게 된다면 그 열심히 순순하지 않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볼 것입니다.

 

▶ 선배 목사님들이 하시는 말씀 중에 부교역자를 선택할 때는 설교를 못하는 사람을 선택하라고 말씀합니다. 부교역자가 담임목사님보다 설교를 잘하면 성도들이 담임목사님 보다 부교역자를 더 좋아하고 따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혹여 교회에 문제라도 생기면 그 부교역자를 따라 교회를 나가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만일 그런 마음으로 부교역자를 선택했을 때 마음 불편 할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 쓰이고, 눈에 거슬릴 것입니다. 혹여 집사님들이랑 모여 웃으며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 부교역자는 미운털이 박히게 됩니다. 그 속에서 기쁨이 있겠습니까? 어렵습니다.

지금 바울이 그런 상황입니다. 자신의 입지는 좁아지고, 자신을 시기하고 질투하던 사람들이 이 일을 틈타 복음 전파 사역에 열심을 냅니다. 그 속에서 바울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18절 말씀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 바울은 자신을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하던, 혹은 자신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으로 하던 복음에 대해서 열심을 품고 전파하는 일에 대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핵심이 무엇입니까? 복음 사역은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1. 사역을 중단하지 말라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사람들 때문에 기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어떤 이유로든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은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성도들을 시험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중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배를 중단하게 만들고, 기도를 중단하게 만들고, 헌신을 중단하게 만들고, 주일성수를 중단하게 만들고, 십일조를 중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상황들과 핑계 거리를 만들어서 지금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역을 중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 이유들이 합당할 수 있습니다. 아파서 못한다, 바빠서 못한다, 멀어서 못한다. 없어서 못한다. 그러나 중단하게 되면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오는 은혜의 기쁨은 누릴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역을 중단하면 안됩니다.

 

▶ 느헤미야서를 보면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할 때에 반대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가 성벽 재건을 방해합니다. 회유를 하기도 하고, 조롱을 하기도 하고, 협박을 하기도 하고, 공격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벽 재건을 중단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성벽재건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 손에는 병기를 잡고, 한 손으로는 일을 하면서 끝까지 성벽을 재건하였습니다. “성을 건축하는 자와 담부하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느4:17)

 

▶ 고린도전서15:6을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목격한 오백여형제가 있었음을 말씀합니다. 누가복음24:49에서는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하시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정작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며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무리는 120명입니다. 나머지 380명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들은 기도하며 기다리면서 마귀의 숫한 공격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것, 기다리는 것을 중단했을 것입니다. 중단하므로 그들은 성령의 뜨거운 역사를 경험할 수가 없었습니다.

 

각자 모양은 다르지만 중단하게 하는 것이 마귀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고 말씀합니다. 중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역을 하다보면 반드시 열매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2. 복음에만 집중하라

 

더불어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사람들 때문에 기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복음에 집중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우리의 자존심도 있고, 우리의 체면도 있고, 우리의 이익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복음에만 집중하기 보다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내 자신의 체면을 생각하고, 우리의 어떤 유익들을 구하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에만 집중해야 하나님이 주시는 절대기쁨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오늘 본문 18절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 말씀을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놓치지 않고 누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한 사도 바울의 모습 속에서 먼저는 “복음을 전파 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정과 욕심을 내려놓고 “복음에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도 바울과 같이 “복음에만 집중하여 복음전파 사역을 끝까지 감당”하므로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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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수요저녁설교  가까이 감의 능력 (September,Wednesday Worship Sermon)

 

제목/가까이 감의 능력

성경/ 빌1:8-11  

 

●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 맹자의 어머님이 맹자를 위해 세 번 이사한 이야기/ 무덤가, 시장통, 서당옆 = 어디에 서 있느냐가 중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의 발이 어디에 서 있는가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8-11절 말씀을 중심으로 가까이 감의 능력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8절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는 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빌립보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하나님이 증인이라고 하는 바울의 사랑의 표현이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바울은 9절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내가 기도하노라” 가족을 사랑한다면, 자녀들을 사랑한다면, 교회를 사랑한다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필수적인 사랑의 표현은 “기도”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기도 없는 사랑은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쳐 버린 사랑의 표현입니다. (앙꼬 없는 찐빵)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감사할 것도 많고, 자랑할 것도 많지만 무엇보다 기도할 것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해야 하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9절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기도의 내용이 “빌립보 성도들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풍성”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여기서 “지식”이란 단순한 앎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아는 지식”입니다. 유대인들은 체험적으로 아는 지식을 “야다”라고 하는데 그것은 부부간의 경험, 체험을 뜻합니다. 아주 구체적인 경험입니다. 창세기에 아담과 하와가 동침하였다라고 할 때 “동침”이란 단어가 바로 “야다”입니다. “총명”이란 “지식을 통한 바른 판단력”을 뜻합니다.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라는 말씀은 한마디로 “지식이 있는 사랑이 풍부”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식이 있는 사랑”을 통하여 “더 많은 기쁨”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하는 지식이 어떤 체험적 지식이겠습니까? 당연“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풍부할 때 우리는 더 많은, 그리고 더 큰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 그럼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풍부하게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성경공부를 많이 하면 됩니까? 물론 성경공부를 통하여 하나님을 많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기본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너무 커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를 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확실하게 우주에 대해서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술이 그 만큼 발달하지 못하였기에 사용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망원경을 통해 보는 것입니다. 허블우주망원경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라도 가까이 하여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아주 멀리 떨어진 별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 또한 아주 작아 볼 수 없는 미생물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가까이 가면 됩니다. 전자 현미경을 통해서 봅니다. 가까이 갈 때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고, 가까이 갈 때 느낄 수 없는 것들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갈 때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체험적으로 알게 됩니다. 부지런한 발로, 기도 자리에 가고, 예배 자리에 가고, 전도 자리에 가고, 봉사 자리에 가고, 말씀이 있는 자리에 가면 하나님을 많이 경험 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더 풍부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가까이 갈수록 잘 보이고, 크게 보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이 크게 보입니다. 하나님만 보입니다. 그러면 다른 많은 문제들은 작게 보입니다.

 

시편 속에 다윗이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므로 하나님만 그에게 보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라.”라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가까이 갈 때 문제는 작아지고 해결됩니다. ▶ 예수님을 따랐던 수많은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무리들이 고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가서 옷자락을 만진 여인만이 혈루병의 고침을 받았습니다. ▶ 예수님을 가까이 하여 예수님 발 앞에 앉아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긴 마리아만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그녀를 기념하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 야고보서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 시편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 그렇게 하나님을 가까이 하므로“지식이 있는 사랑의 풍부함”으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무엇 하기를 기도합니까? 10-11절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첫째는 선한 것을 분별하라고 합니다.

둘째는 진실하여 허물이 없게 하라고 합니다.

셋째는 의의 열매를 가득히 맺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며 살아야 합니다. 더욱이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진실하게, 정직하게 살아야 함은 당연합니다. 언제까지 그러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해야 합니다. 그런 삶을 통해 “의의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이며, 오늘을 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부지런한 발이 필요합니다. 기도의 자리, 예배의 자리, 전도의 자리, 봉사의 자리, 선교의 자리에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므로 지식이 있는 사랑을 통해 선한 것을 분별하며, 진실하여 의의 열매를 많이 맺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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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수요저녁예배설교 예수님의 십자가 (September,Wednesday Worship Sermon)

예수님이 베푸신 사랑

마가복음 15장 11∼15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산헤드린은 예수님께 신성모독죄를 적용해 처형했지만 실상은 그보다 더 절박한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십자가 처형을 고집한 산헤드린의 속사정을 살펴봅시다.

마가복음 15장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위해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산헤드린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1절). 산헤드린의 주된 구성원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서기관들입니다. 산헤드린이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세운 주동자라면 가룟 유다는 결정적인 공모자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한통속이 된 것은 그들의 속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가룟 유다를 도적이라 했습니다(요12:6).

산헤드린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위선자라 할 수 있습니다(마23:13). 재판장인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죽일 만한 그 어떤 죄, 더구나 십자가에 처형할 만한 죄를 찾지 못하고 놓아주려 했습니다. 하지만 산헤드린의 사주를 받은 군중들의 요구를 따라야 했습니다. 산헤드린의 목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 했을까요. 종교 지도자들의 ‘외식’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23:27) 대접 받고 문안 받는 것을 좋아했고, 부자들과는 억지로라도 친구가 되려 했어도 가난한 자들과는 눈도 마주치기 싫어했습니다.

누가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말뿐인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눅10장).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얼마나 위선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약한 자의 편이 되어야 할 저들은 오히려 그들을 외면했습니다.

주님은 어디를 가든 병자의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한센병 환자도, 이방인도, 죄인이라고 비난받는 이들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유대인도 사마리안도 심지어 로마인도 찾아가 만나주시고 함께하셨습니다.

예수님 곁은 언제나 인산인해였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에 감사하고 감탄하며 찬송하고 영광을 노래했습니다. 주님께서 감싸주시는 따스함은 저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하며 그들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산헤드린이 주님을 따를 수 없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점점 커가는 데 자신들은 작아져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대책이 무엇이었습니까. 산헤드린은 군중을 충동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예수님이 베푸신 사랑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의 완결판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말씀은 “다 이루었다”(요19:30)입니다. 그 증거가 예수님 부활입니다. 2017년 부활의 주님을 경험하는 한국교회가 되길 소망하면서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한 주 되길 바랍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22: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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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러운 삶의 비결

요한복음 12장 23~30절

 

사순절 기간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깊이 되새기며 그리스도인으로의 삶을 되돌아볼 때입니다. 어떤 자세로 신앙생활을 해야 주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큰 사랑을 깨달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11장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을 앞두고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시는 기적을 통해 부활의 예고를 하십니다. 이어 12장에서는 헬라인 몇 명이 예수님을 뵙고자 제자들에게 요청을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의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면서 밀알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면서 주님을 따르는 길은 영광의 삶이지만 희생의 길이라고 강조하십니다. 이 말씀은 믿는 자들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니라 헬라 사람들, 즉 이방인들도 들어야 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물론이거니와 오늘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깊이 생각해봐야 할 대목입니다. ‘영광스러운 삶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성경을 통해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희생을 통해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을 이루어 드렸습니다. 훗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역시 순교의 제물로 영광의 삶을 살았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7∼28절에는 앞으로 지고 가실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예수님의 괴로운 마음이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때를 면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으나 “내가 이때를 위해서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며 결국 십자가를 지시겠다고 결심하십니다. 그때 하늘에서는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곁에 있던 사람들은 천둥소리가 들렸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라며 진정한 영광의 삶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삶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초점을 두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밀알의 썩어짐을 통한 희생보다는 세상의 영광과 권위와 자부심과 명예욕으로 군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의 명예와 권위를 위해 기대와 가치, 목표에 집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요한복음 12장 23절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는 그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앞에 놓고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믿음으로 사는 길에 고난이 닥치고 어려운 시련이 밀려와도 결코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말라는 메시지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희생과 헌신으로 온전히 영광을 돌려드릴 때가 왔구나’라고 여기며 십자가의 희생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게 담대하게 주님의 길을 따를 때 하나님께서는 귀히 여기시고 부활의 영광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요 12:26) 주님을 따라가는 그 길이 영광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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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 인생에서

요나서 2장1∼10절

 

인생을 살다 보면 밑바닥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심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합니다. 기독교인들도 예외 없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지만 밑바닥 인생을 살 때가 있습니다. 그 원인이 죄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죄와 상관없이 고난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첫째, 우리는 인생의 밑바닥에서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1·4절).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내 고집 내려놓고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내 환경과 내 운명에 매여 있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밑바닥 인생에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2절에서 요나의 고백을 보십시오.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요나는 고통이 자신의 죄로 인해 생겼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고통이 하나님의 징계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요나는 그 고통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의지합니다. 모든 고통이 죄로 인해 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밑바닥 인생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점검해 볼 수 있는 영성을 지녀야 합니다.

둘째로, 인생의 밑바닥에서 감사로 예배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9절). 하나님의 백성은 가장 크게 실패했을 때 가장 크게 감사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실패 속에서도 나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의 손길을 보기 때문입니다. 본문 9절에 보면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라고 했습니다.

지금 고난을 겪고 계십니까?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오셨습니까? 이제 환경을 보지 마시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회복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오른손을 붙들고 계시다는 것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 구원의 하나님을 예배하십시오. 이 순간의 예배는 나의 눈물과 회개와 헌신이 담긴 최상의 예배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인생의 밑바닥에서 서원에 대한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9절). 요나는 자신이 지금 왜 배 밖으로 던져졌고, 물고기 뱃속에 처해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고요하던 바다가 왜 풍랑이 심하게 이는지, 선원들이 제비를 뽑았는데 왜 요나 자신이 뽑혔는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는데 왜 큰 물고기가 자신을 집어삼켰는지, 다 이해합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전도자로 쓰시려고 집요하게 붙들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사랑입니까.

이제 요나가 하나님의 그 명령에 순종할 때가 왔습니다. 9절에서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라고 합니다.

요나서 3장을 보면 요나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니느웨 백성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선포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며 회개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 땅을 용서하셨습니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새 인생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여러분 한 사람을 통하여 수많은 영혼이 구원받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감사하고 헌신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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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와 종자의식


마태복음 13장 31∼32절

 

열매와 씨앗은 본질상 같은 것이지만 기능은 분명히 다릅니다. 씨앗이나 열매는 모두 우리의 식단을 채울 수 있으나, 종자로 구분되는 씨앗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남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대를 이어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씨앗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사는 동안 분명한 ‘종자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전 인류의 종자가 되고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받은 모든 백성의 종자가 되었듯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종자들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보면 항상 택한 한 사람 혹은 택한 민족을 통해 큰일을 이루셨습니다. 마치 누룩 비유나 겨자씨 비유처럼 작은 것에서 시작해서 전체에게 확산되는 방법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백성을 택하시고 부르셔서 그리스도의 태반이 되게 했으며, 신약의 선교 역사를 보면 로마와 영국, 미국 등과 같은 나라들을 통하여 선교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그렇게 쓰임 받은 나라들은 처음부터 복음의 도구가 된 것이 아니었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국력과 경제력, 문화적 힘에 복음을 실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로마 제국의 경우에는 칼과 병거로 유럽과 아프리카를 지배했으나 그 지배력은 결국 복음 전파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대영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칭을 얻었던 영국은 제국의 힘에 복음을 실어 전 세계에 전파했습니다. 현재의 미국도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데 쓰임 받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대한민국은 전 세계 175개국 중 726만명이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세계 8대 경제대국이 되었으며, 문화적으로는 한류라 불리는 드라마와 K팝이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확산되고 있습니다. 역사상 대한민국의 영향력이 이렇게 커진 때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우리 민족을 쓰시려고 만드신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는 선교 초기부터 해외선교를 위해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실제로 많은 성과도 보았습니다. 초기 선교의 경우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입장이었다면 이제 경제력과 문화적 힘을 바탕으로 보다 공격적인 선교 역량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 한국 교회는 선교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더욱 순전한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도록 하는 데 진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동족이면서도 하나가 되지 못한 북한 동포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갑니다. 북녘 땅은 우리에게 아직도 미전도 지역으로 남아 있는 ‘땅끝’입니다.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했지만 북한 상황은 결코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상황이 아무리 비관적이라고 해도 우리는 동토의 땅 북한에도 복음이 전파될 것을 기대하며 파종해야 합니다. 그 종자는 탈북 동포들일 수 있고, 중국 국경에 살아가는 조선족일 수도 있으며, 북한 땅에 드나드는 경제인일 수도 있습니다. 대량의 종자가 아니라 단 한 알의 종자라도 좋은 땅에 뿌려지기만 하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음을 믿음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종자의식을 갖고 북한 땅에 뿌려질 종자를 찾아 파종하는 데 우리의 역량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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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영광스러운 삶의 비결

요한복음 12장 23~30절

 

사순절 기간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깊이 되새기며 그리스도인으로의 삶을 되돌아볼 때입니다. 어떤 자세로 신앙생활을 해야 주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큰 사랑을 깨달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11장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을 앞두고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시는 기적을 통해 부활의 예고를 하십니다. 이어 12장에서는 헬라인 몇 명이 예수님을 뵙고자 제자들에게 요청을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의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면서 밀알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면서 주님을 따르는 길은 영광의 삶이지만 희생의 길이라고 강조하십니다. 이 말씀은 믿는 자들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니라 헬라 사람들, 즉 이방인들도 들어야 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물론이거니와 오늘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깊이 생각해봐야 할 대목입니다. ‘영광스러운 삶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성경을 통해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희생을 통해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을 이루어 드렸습니다. 훗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역시 순교의 제물로 영광의 삶을 살았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7∼28절에는 앞으로 지고 가실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예수님의 괴로운 마음이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때를 면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으나 “내가 이때를 위해서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며 결국 십자가를 지시겠다고 결심하십니다. 그때 하늘에서는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곁에 있던 사람들은 천둥소리가 들렸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라며 진정한 영광의 삶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삶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초점을 두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밀알의 썩어짐을 통한 희생보다는 세상의 영광과 권위와 자부심과 명예욕으로 군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의 명예와 권위를 위해 기대와 가치, 목표에 집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요한복음 12장 23절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는 그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앞에 놓고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믿음으로 사는 길에 고난이 닥치고 어려운 시련이 밀려와도 결코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말라는 메시지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희생과 헌신으로 온전히 영광을 돌려드릴 때가 왔구나’라고 여기며 십자가의 희생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게 담대하게 주님의 길을 따를 때 하나님께서는 귀히 여기시고 부활의 영광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요 12:26) 주님을 따라가는 그 길이 영광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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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수요저녁예배설교] 억지로 진 십자가의 신비 (Auguest, Wednesday Evening Sermon)

억지로 진 십자가의 신비

마태복음 27장 27~32절

 

살다보면 하고 싶어서, 좋아서 하는 일도 있지만, 싫어도 억지로 해야 하는 일들도 많습니다. 밥, 억지로라도 먹어야 합니다. 공부, 억지로라도 해야 합니다. 효도, 억지로라도 해야 합니다. 직장생활, 억지로라도 해야 합니다. 운동도 억지로라도 해야 합니다. 누가 도와 달라고 하면 억지로라도 도와야 합니다. 사순절 고난주간입니다. 억지로 십자가 지다 축복받은 시몬을 통해 은혜 받으시는 고난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도 억지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자원해서 십자가 지신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자원해서 십자가 지셨지만, 억지로도 지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지려 세상에 오셨지만, 막상 지려니 끔찍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저주와 지옥의 형벌을 너무 잘 아시는 분 아닙니까.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십자가 지려 하니 고민되어 죽겠다. 나를 위해 기도 좀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시를 “하나님 아버지,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세요”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곧이어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십니다. 결국 주님은 자원해서, 그리고 억지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억지로 주님 지신 십자가로 우리가 구원 받고, 천국을 얻었고, 성령 받았고, 죄용서 받았고, 병고침 받았고, 평강을 누리며, 지혜를 얻었고, 만 가지 은혜를 입었습니다. 억지로 십자가 지다보면 거기에 만 가지 축복이 임합니다.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집니다. 구레네 시몬은 아프리카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 근처 ‘구레네’에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고 가시다 너무 힘들어 쓰러졌다 일어났다를 반복하시더니, 쓰러져 일어날 줄을 모릅니다. 로마 군인이 구경하던 사람들 중에 힘 꽤나 써 보이는 시몬에게 “너 이리 와!” 해서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워줍니다. 시몬은 주님의 십자가 억지로 졌습니다. 억지로 진 십자가 덕분에 시몬의 가문이 대대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늘 기쁨으로 살고 언제나 순종하면서 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힘이 들 때가 있습니다. 교회에 나가기 싫을 때, 예배드리기 싫을 때야말로 억지로라도 교회에 나오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억지로 진 십자가가 가장 큰 축복입니다.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지고 골고다까지 갔습니다. 시몬은 그 덕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온 가족이 다 믿고, 두루 존경을 받았습니다. 시몬과 그 기족이 얼마나 존경을 받았는가하면, 마가복음 15장 21절에 보면 시몬을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소개합니다. 사도 바울은 시몬과 그 부인을 자기 부모로 모셨습니다(롬 16:13). 시몬이 억지로 진 십자가는 시몬의 온 가족이 구원받고 존경 받게 된 은총의 십자가였습니다. 이런 십자가는 억지로라도 져야 합니다. 성도들은 날마다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가야 합니다. 자원해서 기쁨으로 하면 좋겠지만 억지로라도 하시기 바랍니다.

억지로 진 십자가가 내게 주시는 최고의 복입니다. 억지로 시작한 일이 우리 인생을 바꾸어 놓습니다. 조금만 힘들어도, 마음 상해도 중단해버리는 시대에, 억지로 교회 다니고, 억지로라도 봉사하다보면 그게 최고의 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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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나귀 타신 예수님(Wednesday Evening Sermon)

나귀 타신 예수님  
마태복음 21장 1∼11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성과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주여, 나를 지금 구원하소서, 호산나!”라고 외치며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개선장군처럼 정복자의 위엄과 힘을 상징하는 전차와 말을 타지 않으시고 보잘 것 없는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사람이 왕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을 구원할 왕이 보잘 것 없는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럽습니까. 누가 봐도 이 세상을 구원할 왕의 모습은 아닙니다.

스가랴 9장 9절 말씀은 예수님이 겸손한 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자신의 힘을 스스로 제한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지위를 스스로 낮추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겸손한 왕으로 이 세상의 구원자가 되시겠다는 것은 자신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포기하는 겸손과 섬김으로 세상을 구원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따라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겸손과 섬김의 무기력은 이제 곧 일어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희생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팬터마임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예수님을 기대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결정됩니다.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그 힘의 숭배,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하고, 더 많은 성공을 이루어야만 한다는 세속적 욕망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힘 있고 권세 있는 예수님을 기대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것은 열광적으로 예수님을 환영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했던 모습입니다. 이들은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겸손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신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 패권을 가진 힘 있는 권력자의 모습을 기대하며 예수님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마가복음에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라고 외쳤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융성했던 다윗의 시기를 회복할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들은 예수님이 무기력하게 로마 군인들에게 붙잡혀 끌려 다니고 채찍 맞는 모습을 보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며 폭력적으로 돌변합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돌변’이 아닙니다. 그들 안에 잠재됐던 힘의 숭배가 드러난 것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환영하고 받아들이는 예수님은 나귀를 타신 겸손한 예수님입니다. 나귀 타신 예수님을 우리 자신의 욕망의 투사로 변형시키면 안 됩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해서 찬양하거나 예배하면 안 됩니다. 그건 예배가 아니라 우상숭배입니다. 적지 않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이 욕망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예배합니다. 나귀 타신 겸손한 예수님의 모습보다 능력과 이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의 모습만 보려 합니다.

여러분, 나귀 타신 겸손한 예수님을 진심으로 영접하고 호산나 찬양할 때, 우리가 어떤 삶을 살게 됩니까. 힘으로 자기를 축적하는 인생이 아니라 겸손과 섬김으로 끊임없이 자기를 비우고 낮추는 십자가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받아들이고 환영하고 영접하는 예수님은 권력과 힘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예수님이 아니라 겸손과 섬김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입니다. 자신을 제로로 낮추는 십자가 죽음을 향해 기꺼이 나귀 타고 가시는 예수님의 겸손을 깊이 묵상하고 받아들이는 사순절 기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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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예배설교] 좋은 마음과 복음의 열매(Wednesday Evening Sermon)

좋은 마음과 복음의 열매 

누가복음 8장 4-15절

 

본문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입니다. 비유의 마지막인 15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주님께서 무엇 때문에 본문의 씨앗과 밭 비유를 하셨을까요. 어느 사람은 복음을 듣고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잘 맺었는데, 어느 사람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이것을 잘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문의 교훈은 씨앗과도 같은 하나님 말씀이 좋은 밭에 뿌려지면 열매를 맺지만 길가와 돌밭과 가시밭과 같은 곳에서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몇 십 년 믿어도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지 못했다면 그것은 말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 마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같은 상황에서 어느 무엇을 탓하기보다 자신의 마음이 문제인 것을 직시해야 합니다. 본문 15절에서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을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기 위해 우리 마음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좋은 마음과 성숙한 인격으로 옥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더욱 기도하고 힘써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개인주의와 물질주의가 어느 때보다 팽배한 속에서 살아가기에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마음은 세상의 것으로 황폐화되기 쉽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복음의 열매를 맺는 데 본이 되시는 예수님 마음을 항상 바라보고 닮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때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고 물질과 명예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사셨습니다. 또한 온유하고 겸손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셨습니다. 우리도 세속적 영향 아래 있는 우리 자신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말씀이라면 죽기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온유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리 언어와 행실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성적과 결과는 말씀을 지성적으로 아는 것보다, 세상의 좋은 지위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우리 마음자세에 달려 있습니다. 공부를 많이 한 목사님들이 교회를 성장시키지 못한 원인을 후에 깨닫고 말씀하시기를 “나의 지식에 너무 의존했기 때문이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웃을 자신보다 더 사랑하고 그들을 위하는 삶을 살 때 교회가 성장했다고 증언합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도 영국 옥스퍼드 대학 출신이었지만 지성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세련되게 설교할 때는 영혼 구원에 실패했습니다. 비논리적이더라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설교할 때는 많은 영혼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 선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삶에서 하나님 나라의 승리가 실현되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의 마음은 다양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어떤 사람에게 풍성하게 임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들었을 때,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복음의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좋은 마음과 인격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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