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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로이드 존슨(D.Martyn Lloyed - Jones) 목사 , 그 생애,사상, 목회사역과 영향

 

이제는 우리 한국교회에서 뿐 아니라 그의 책이 읽혀지는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로이드 존슨 목사는 특별히 주목하고 그의 영향력에 대해 말하는 것이 이제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한국교회 강단에서 고집스럽게 강해설교로

섬기고 있는 설교자들 중에 로이드 존슨 목사에게 감화를 받은 적이 없는 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로이드 존슨 목사에 대한 것을 알아보는 것을 알아보는 목적이 그에게 궁극적인 시선을 두려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평을 더 넓히고 더 공고히 하여 하나님의 소명에 더욱 충실하고 진정한 개혁주의자로서 주님을 섬기기 위함이다. 여기에 그를 섬기는 진정한 가치가 있다.

그의 소명과 정체성 모색

칼빈주의 (Calvinism)칼빈의 주의‘, ’칼빈 숭배주의가 아리듯이, 로이드 존슨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도

로이드 존슨 주이자가 되기 위함이 아니다. 로이드 존슨 목사 본인이 가장 큰 영향을 받았던 조나단 에드워드의

글들을 읽을 것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무엇보다도 설교자는 청중 모두 이 사람을 읽다. 그 이사람이

강조하는 것. 곧 하나님의 영광을 붙잡도록 하자.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어떤 이익 에만 머물거나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높은 체험에만 머물지 만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더 알도록 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 하나님의 주권을

알아야 하고 경외와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

1) 당시 설교자들의 정체성 모색

교회의 강단에서 성경강해나, 개혁주의적 전통에 입각해서 설교하거나 목회 사역을 하는 것이 무시당하고 있다 -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는 구시대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있었다.교회가 사람들에게 매력을 끌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목회에 대해 갈망하였다. 설교자들은 현대에 맞는 정체성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인생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성경 밖으로 나가 일반 학문 영역으로 진입하며,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이나 문학이나 사회과학적인 이론들이 성경의

교리의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하였다. 설교자는 성경을 뒤로 던지고 그러한 학문적인 열매들을 강단으로 가지고 나오기

시작했다. 현대적인 설교자라는 평을 받고 싶어하는 설교자들의 형태는 오늘의 교회 상황과 흡사하였다.

2) 그의 확신

인간의 모든 난제의 근거에 대한 성경의 진술의 진정성을 확신하였다. 창조주 하나님과의 어그러짐이라고 확신한다.

-1세기에 처음 전해진 사도의 복음이 여전히 현대에도 인간의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오직 불변하는 방식이라는 확신이

그를 사로 잡았다. 하나님도 인간도 변하지 않았다고, 복음도 변하지 않았다- 성경은 항상 최신의 하나님의 책

-‘최신의 복음’ - 런던에서 오늘 일어나고 있는 일을 성경이 말하고 있다. -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정확무오한

성경의 권위에 대한 확신 그런 확신을 자기 목회와 설교 사역에 과감히 적용 정말 당시의 상황엣어는 돈키호테식의

몸짓으로 보였을 것이다.

3) 그의 소망

성경에 제시된 대로 사도의 복음의 능력과 그로 인한 회개와 믿음과 구원이 현대에도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워을 위해 영적 부흥에 대한 열망 충만 부흥신학자라는 평을 들음- 그의 성령론도

그러한 줄기에서 이해해야 할 것임 칼빈 이후 모든 하나님의 진실한 자들의 바람을 충만하게 가짐 청교도들과

각성자들을 자기의 선생으로 삼아서.

4) 그는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와 오늘도 성경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었다

그가 소명을 받고 설교자로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가 1927년으로 28세였다. 당시 교회는 자유주의 신학으로 타격을 받아 강단에 선 설교자들이 성경을 뒤로 던져 버리고 있었다. 기존 성경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경외감도 사라지고

시대에 맞는 새로운 처방을 찾기 위해서 분주했다. 교회가 휴매니즘에 입각한 일반 인문학이나 정신의학 등에 영역에서 새로운 권위의 척도를 찾으려고 기웃거리고 있었다는 것이 아주 자연스런 일이 되었다. 그래서 설교자들은 성경말씀 보다는 각계의 전문가들,학계의 교수들의 논지를 가지고 강단에 올라가 회중에서 전하는 것이 시대를 아는 설교자의 임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속에서 그는 정 반대의 입장에서 확고하게 서서 아직도 성경은 예나

지금이나, 성경이 처음 쓰여질 때나 교회사의 어느 시대 속에서, 지금 이 20세기의 복잡한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동일한 권위를 가진 정확하고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을 결코 시대에 뒤떨어진 것도 아니고 항상 최신의 진리이다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그는 웨스트민스트 채플에서 설교할 때 성경은 오늘 이 밤 런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결론 개혁주의만이 진정한 기독교이다.

교회사를 통해 보듯이 모든 시대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탄식하고 마음 상하고 신음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개혁주의적인 신앙을 견지하고 그것만이 하나님의 정하신 선한 길임을 알고 마지막 웃는 길은 이길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나갔다. 이제는 아직 땅에 있어 복음을 믿고 복음을 위하여 사역하는 소명받은 우리들에게 공이 주어졌다. 그가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삼고, 교회사 이전의 신앙의 선진들,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맛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확신하고 단호하게 자신을 거기에 던진 그 용기를 우리의 것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출처 : 총회 목회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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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론 강의 ( doctrine of God)

 

1강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과 예정

 

모든 정통교회가 하나님의 예정에 관하여 논의하고자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칼빈주의에서 말하는 예정론인데, 바로 이 부분들이 칼빈주의의 체계를 형성하게 한 기본적인 요소들이 되었다.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은 이 칼빈주의 정신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요소들이 한편으로 알미니얀주의를 막아내었을 뿐 아니라, 또 한편으로 로마 카톨록 교회의 신학사상에 맞서는 데 있어서 큰 공헌을 해 준 요소들이 되어 왔다.

 

1)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

장차 일어날 일들을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의 도모에 의해 영원부터 자유롭게, 변할 수 없게 정하신 사실을 하나님의 작정(Divine Decree)라고 부른다. 한편 이 작정에는 모든 피조물들에 대한 온 우주적인 하나님의 뜻과 섭리뿐만 아니라 인류와 천사들에 대한 선택과 유기의 작정도 포함되는데, 특별히 인류와 천사들에 대한 선택과 유기의 작정을 우리는 흔히 예정이라고 부른다.

 

2강 삼위일체의 하나님

개혁주의 신학의의 대표적인 신조로서 가장 성경적이면서 강장 칼빈주의저ᅟᅥᆨ인 신조로 평가되는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Westminster Confession of Taith)의 제23절에서는 성 삼위일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 신격의 단일성 안엘 삼위께서 계시니, 곧 한 실체요, 한 권능이요, 한 영원성이신 성부 하나님, 성자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부께서는 누구에게서도 기원하시지 않고, 아무게게서도 나시자 않았으며, 또 나오시지도 않는다; 성자께서는

영원히 성부에게서 나셨다; 성령께서는 영원히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신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15: 26)

'한 실체-세위격' 바로 이것이 기독교 역상 A.D.4 세기에 확립되어 그동안 1,600년 이상을 변함없이

지켜져 온 신앙고백이다. 이 신앙고백과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기독교회들이

함께 공통으로 긍정하는 신앙고백이자 교리이다. 즉 로마카톨릭과 동방정교회, 러시아정교회를 포함하여

모든 정통적인 개신교들이 이 교리를 부정하지 않고 잘 붙잡아 지켜온 교리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 교리는 세계의 모든 종교들 중에서 유독 기독교교회만의 독특한 신앙고백이면서 또 기독교 내의

이단을 분별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되는 교리가 되는 셈이다. 이 교리는 어떤 철학적인 논리나 또는 어떤 형이상학적인

사색에서 나온 교리가 아니다. 이 교리는 오직 성경에서 나온 교리이다. 그러므로 이 교리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교리가 아니다. 오직 믿음으로 믿고 아멘으로 받아들여 더욱 더 확고하게 맏아들일 수 있는 교리가 바로 이 교리이다.

 

2.필리오께(Filioque)

성령께서는 성부에게서 나오실 (proceed) 뿐만 아니라 성자에게서도 (filioque) 나오신다.” 삼위일체 교리에 관해

역사적으로 유명한 A.D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의 결의에서는 성부와 성령의 관계에 관해서는 명시적인 진술을 했으나 성자와 성령에 과계에 관해서는 침묵을 지켰다. 성부와 성령의 관계에 관한 질술이란 성령께서는 성부에게서 나오신다라는 고백이었다. 이 고백에 대해서는 동방과 서방의 모든 교회들이 동의하고 아멘으로 그 신앙을 고백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5세기를 거쳐 6세기에 이르자,성자와 성령의 관계에 관한 논란이 있게 되면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입장에 큰 차이가 있음이 드러나게 되었고, 그것이 주요 원인이 되어서 양 교회는 결국 나중에 (1054)분리까지

하게 되었다. 즉 서방교회는 성령께서는 성자에게서도(filioque) 나오신다라는 입장을 고백하였고, 동방교회는 그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결국 서방교회는 A.D. 589년 톨레도 공의회에서 이 명제를 받아들이고, 비록 A.D.381년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보다 200 여년이나 더 늦게 이 부분을 추가하기는 하였지만, 이 진리를 200년 여년 전으로

소급하여 적용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A.D.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선언된 신조를 오늘날 우리가 살펴볼 때,

‘filioque’라는 한 단어가 추가되어 소급 적용된 신조를 우리는 현재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1,000 여년이 지나 17세기에 작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는 이 고백을 받아들인 서방교회의 입장에서 필리오께 교리를 그대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하여 동방교회에서는 아직도 이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3. 아타나시우스 (동방교회사람)신조 (420-450년사이, 또는 8세기 말 작성 추정) 중에서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한 분 하나님을 믿는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그 자체로 존재하신다.성부께서도, 성자께서도, 성령께서도 결코 만들어지지 않으셨다. 그러나 세 영원이 아니며, 다만 한 영원한 이가 계신다. 만들어지지 않으셨고 우리의 이해를 초원하시는 오직 한 분만이 계신다. 성자께서는 성부에게서 나셨으나 지음받거나 출생하지 않으신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시나 지음을 받거나 출생하지 않으셨다. 따라서 세 성부들이 아닌 오직 한 성부,

세 성자들이 아닌 오직 한 성자, 세 성령들이 아닌 오직 한 성령만이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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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와 구원서정의 관계

 

성경이란 하나님이 다른 목적이 아닌 인간의 구원을 위해 주신 계시, 즉 구속계시라는 점이 가장 우선적으로

인식되어야 하며, 그 계시의 특성인 역사성-즉 그리스도에 초점을 두고 점진적으로 드러나는 구속의 역사-

반영하는 되어야 하며, 성경이 바로 그런 역사적 방법론으로 구원서정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원서정이

성경속에 어떻게 나타나는 살펴본다

 

1) 누가복음 2444-49

본문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이다. 이 본문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으리라 본다

44절을 보면 예수님은 당신이 제자들과 함께 공생애 사역을 하면서 늘 당부하셨던 말씀을 상기시키시고 계신다.

다시말해 모든 것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루어져야 할 것, 성경이 당신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음을 자주 말씀하셨다.

46절의 기록내용은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으로써 성경이 무엇을 기록하고 있느냐는 관점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내용이며

충분이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47절을 통해 우리가 놀랍게 받아들이게 되는 사실은 계속해서 구원의 일이 이루어질 것에 대해서도 기록할 뿐만 아니라, 그 일 또한 그리스도에 관한 기록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리하면, 구약성경이 그리스도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고, 그것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 내용은 두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을 완성하셨다는 구속사이고, 다른 하나는 이제 그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구원의 적용사역이 계속된다는 내용이다. 신구약 성경의 통일성이 전제될 때, 성경은 구속사(구원의완성)의 일과 구원서정(구원의 적용)의 일을 서로 뗄 수 없는 유기적 관계속에서 하나의 일로써 성경관에 근거한 우리의 방법론이 설정되는 것이다.

 

2) 사도행전 21-21

누가복음에서는 대체로 복음서 전부가 그런 면을 보이는 것이 사실인데 - “성령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다소 자제된 듯한 느낌을 주는 반면 사도행전에서는 서두에서부터 성령이라는 단어가 거침없이 등장한다.

2장 본문이 성령이 강림한 결과에 대해 제일 먼저 지적하는 것이 4절에서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는 거이다. 그리고 성령충만한 결과로 그들이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지작했다고 적고 있다.

구약성경을 읽다 보면 가끔 여호와의 신(성령)이 어떤 사람들에게 임했다는 기록을 보게된다. 구약은 특정한 사람에게

특정한 때에 특정한 목적을 위해 여호와의 신(성령)이 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요엘 선지자는 욜2:28절에서

만민에게 여호와의 신이 부어지는 때가 온다는 것이다.이 때 만민에는 일반이도 포함되고,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도

포함되고, 자유자가 아닌 종도 포함됨을 뜻한다. 요엘의 선지자는 당시의 정형을 넘어서는 시대적 패러다임을 깨는,

선언이 아닐 수 없다. 구약의 정서에서 요엘의 예언은 어쩌면 신성모독으로 몰려 돌에 맞아 죽을 수도(24:16)있는

깜짝 놀랄만한 선언이 아닐 수 없다. 요엘은 시대적 종교적 정서에 맞서 앞으로 그런 때가 올 것이라는 예언의 사명을

다한 것이다. 그러면 베드로가 요엘을 인용함으로써 입증한 것이 무엇인가? 베드로는 14절에서 말한 이 일그리고 11절의 ”“하나님의 큰 일이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부터는 누구든지, 즉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육체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일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선포한 것이다. 구속사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완성을 근거로 이제

성령이 강림하시는 일까지 진행됐고, 그 결과 뭇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는 일이 가능해 진 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루신 큰 일인 것이다.

 

3)요한 복음 737-39

요한 복음 7:37-39의 내용은 사복음서 중 요한 복음에만 등장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 본문은

구속사와 구원서정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는 이유에서 중요하다. 본문에서 예수님의 표현이 직설적이기 보다는 매우 은유적인 화법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난해하다. 구원서정의 일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성취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이 있어야 하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일이 먼저 진행되어야 구원서정의 일(성령이 그들에게 임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4) 요한복음 2019-23

이 보문은 우리가 관심을 갖는 구속사와 구원서정의 관계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는 본문으로서 중요하다. 이 본문을 이해하는 있어 우리는 본문의 사건이 부활 이후의 시점에 일어난 사건임을 기억한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한 마디로 평화를 완성하신 사역이었던 것이다. 이제 부활 후 제자들에게 처음 나타나신 자리에서 어느 말씀에 앞서 평강이 있을 지어다샬롬하신 것은 실로 그리스도의 사역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한다. 그가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의 모든 고난과 굴욕을 감당하신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와 원수 되었던 우리에게 평화를 주기 위해서 !

 

5) 결어

구원서정은 신약에서만 나타는 현상이 아니라 이미 구약이 말하고 있었고, 고대하던 일임을 확인하였다. 구속사가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끝이 아니라 성령강림까지 나아가야 하는 일이었으며 그리고 나서야 구원서정이 가능해지는 관계인 것을 보았다.

  구원론 / doctrine of salvation / salvation in christ

출처 :총회 목회대학원 / 총회 목회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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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와 지도력

 

목회의 근원적 주체는 성령이다. 그러나 성령은 목회자를 통하여 일하신다. 목회 현장은 목회자와 성도라는

두 주체가 있고 이들은 성호작용을 한다. 목회현장의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성경지식을 가르치고,

기독교적 가치관과 삶을 전수하여 성도를 지성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목회자가 주어진 사역을 효과적으로 그리고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도력이 필요하다.이러한 지도력의 필요성에 기초하여 아래셔는 목회자가 필요로 하는 지도력은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려한다.

 

지도력

지도력이란 무엇인가 지도자가 특히 정당의 직무와 위치,주어진 범위 안에서 다른사람을 지도하거나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지위,이끌어가는 능력 : 다른사람에게 영향을 끼쳐서 자신이 의도하는 것을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행동하도록 하는 힘이다. 이러한 지도력에 대한 세속적 관점과 성경적 관점을 살펴본다.

1) 세속적관점

성도로 하여금 성숙하고자 하는 의욕과 동기유발을 일으킨다. 이러한 의욕과 동기를 유발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목회자가 보여주는 진지한 자세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말의 전달 곧 의사 소통을 명료하게 하여 자신의 생각을

문명하게 전한다. 그리고 표현방법의 변화를 사용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교할 때 말의 억양에 변화를 준다거나 질문법을 사용하기도한다

2) 성경적관점

에베소서 411절은 교회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는 직분자로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자,그리고 목사인 목회자를 세웠다. 그들은 지도력을 발휘하여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4:12)한다.

목회자는 지도력을 발휘함으로 설정한 목표를 성취한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지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목회사역내용을 체계적으로 논리적으로 전개해야한다. 세속적 지도력을 따르도록 하기 위하여 다양한 다양한 강제적인 수단을 사용하지만 섬기의 지도력은ㄹ 행동을 강요하는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다.이러한 섬김의 지도력은 두가지 근거 곧 성경적 근거와 신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1) 성경적 근거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11:1)고 하였다.목회자는 성도들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믿고,섬기고,따르도록 인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올바른 지도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근거해야 한다.

(2) 신학적 근거

초대 고린도 교회는 연합하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분열이 계속 일어났다. 특히 특정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파벌을 이루는 분열이 일어났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 3:3) 라고 꾸짖었다. 한국교회 특히 예수교장로교회는 300개의 교단으로 나눠져 있는데 특별히 이단적 교리를 강조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의식과 교리상의 차이가 있어도 믿음으로 하나가 되려는생각을 해야한다.

2.목회와 영적 지도력

영적 지도력은 강조점에 따라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영적지도력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 지도력이다.

앞의것은 여러 지도력 중에서 영적인 것에 관한 것이고, 뒤의 것은 여러 영적인ㄹ 것 중에서 지도력에 관한 것이다.

목회자는 이러한 두가지의 영적 지도력 모두를 필요로 한다.

영적지도력은 지책이 아니라 능력이요 역할이다. 목회자는 영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질 수도 있고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영적지도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군림하는 지도력이 아니라 섬기는 지도력이다.

영적 지도력은 영적 사역에서 필요한 지도력을 말한다. 목회자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 적극적인 자세를 지녀야 한다.

 

결어 :

다윗는 역대상 225절에서 하나님은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분이시므로 그가 거하실 성전은 극히 웅장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영적 지도자인 목회자는 뛰어난 목회자가 되어 자신의 일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야한다.

 

출처 : 총회 목회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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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과 신앙의 요체

오직 성경의 신학만이 성경적 신학

1.연원

개혁주의란 무엇인가 ? 자주 이 말은 칼빈주의와 동의어로 사용된다.

개혁주의는 오직 서역으로 라는 모토로 집약된다.오직 성경안에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모토가 들어 있다. 성경의 가르침에 가장 충실할 때, 그것이 가장 신학적이라고 여겼다. 그의 신학은 성경에서 시작되고 성경에서 머문다. 개혁주의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른 참 신학과 참 경건함을 추구한다. 개혁주의가 보수주의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것이 고유한 기원과 근원에 충실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혁주의가 근본주의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것이 추호도 타협하지 않고 참 근본을 교회의 서고 넘어지는 조항으로서 견지해 왔기 때문이다.

2.개혁주의와 개혁신학

개혁주의에 대한 정의가 다체롭다, 최광의로 이를 이해하는 입장은 그것이 성경적 진리와 정통 신학 그리고 삶을

망라하는 개념이라고 본다. 우리가 개혁주의를 칼빈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칼빈의 사상이 이러한 하나님의 자기 세계관을 창조, 계시, 구원의 관점에서 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칼빈은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자기부인에 기독교 철학이 가장 분면하게 새겨져 있다고 보았다.

3. 개혁주의 근본원리 하나님의 근본원리

기독교 강요에서 언약신약에 대한 칼빈의 입장이 전개되는 신구약에 관한 장들은 기독론 안에서 다루어 지고 있다.

칼빈은 구약이 그 실체에 있어서는 동일하나 경륜에 있어서 다양하다는 원리를 분명히 제시한다. 신구약 실체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가 말씀의 실체라는 측면에서 칼빈은 율법과 복음을 이해한다. 율법은 언약의 법으로 약속을 담고있고 복음은 그 약속을 성취한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소식을 정의한다. 밀러는 이 부분에 착안하여

칼빈과 칼빈주의의 연속성을 예정에 대한 칼빈의 기독론적 이해에서 찾았다. 존 녹스는 예정에 대한 언약신학적 입장을 전개함에 있어서 장로교의 신학적 기초를 놓았다.

4.개혁신학의 원리와 중심교리

칼빈의 신학이 그의 후예들에 의해서 칼빈주의로 수립되어 가는 과정에서 신학의 원리혹은계시의 원리라는 개념이

신학의 서론으로서 논의 되었다. 칼빈은 이러한 계시의 원리가 삼위일체론적이며 기독론적으로 이해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성부하나님은 계시의 시작 혹은 뜻이며, 성자는 계시물 즉 말씀이며, 성령은 계시의 작용이다.

5.개혁교리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참 교회에 대하여 논의하면서 종교[기독교]의 합당한 가르침을 삼위일체의 교리,기독론 교리,

전적은혜의 구원 교리를 제시하고 있다. 이 세 가지 교리에 성경의 모든 진리가 합의된다. 또한 개혁주의 전통은 몇몇교리를 중심으로 성경의 전체의 가름침을 배변하기도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도르트 신경으로부터 수립된 칼빈의 5대교리를 들을 수 있다: 전적 타락, 무조건적 선택, 제한 속죄, 불가항력의 은혜, 성도의 견인, 그리고 1910년 미국의 북장료교회가 성경과 웨스트 민스트 신앙고백서의 가르침으로 선포한 다섯 가지를 들을 수 있다: ”성경의 무오,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그스도의 대속,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 그리스도의 기적들.” 대체로 개혁신학은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에서 특징적으로 잘 나타나듯이 죄, 은혜, 감사,을 담고 있다.

6. 결론 : 우리가 서 있는 자리

한국교회는 칼빈과 칼빈주의자들에 의해서 수립된 개혁주의를 여러 경로를 통하여 받아들였다. 이에 대한 영향을 미친

초기 선교사들은 개혁신ᄒᆞᆨ에 대한 식견이 깊었으며 신앙 또한 그에 걸맞게 경건했다. 특히 보수적인 장로교 합동 교단은 12신조를 받으며 그 선언에서 웨스트민스트 신도게요서와, 성경 대소요리문답은 성경을 밝히 해석한 책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공표함으로 신학과 신앙의 자리를 분명히 했댜.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서는 개혁주의 신학의ㅣ 윈리를 성경이라고 명명한 제 일장에서 분명히 천명한다.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완전하고 무오한 신앙과 생활의 법칙이다.성경은 살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분은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와 경륜을 역동적으로 파악하는 개혁주의 입장을 반영한다. 하나님의 주권은 신비한 예정의 교리에서 현저하게 나타나는데 예지예정론을 반대하고, 선택과 유기가 만세 전에 미리 정해졌다는 이중예정을 뚜렸이 공표한다. 이것이 전적타락 교리와 함께 천명된다.

타락한 인류는 전적으로 무능하고 부패해서 은혜가 아니면 언약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 교회는 끝까지 붙드시는 하나님의 견인을 확신하는 성도들이 유일하신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 한 몸으로 모인 언약 공동체이다.

정통신학은 신구약 성경의 천계와 영감으로 말미암아 온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리고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법칙으로 인정하는 초자연적인 성경관을 가진다고 피력하여 그 자리매김을 분명히 하였다. 그것이 개혁보수주의

신학과 신앙의 원리에 정확하게 잇대어 있다.

출처 : 총회 목회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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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고고학

 

고고학과 함께하는 구약여행(1) : 창세기

 

1.성경고고학의 정의

성경고고학의 아버지 올 브라이트: 성경 고고학은 고고학으로 조명된 성서학이다.

맥시밀리스트( 초소주의자)와 미니멀리스트주의자 (최대주의자)의 정의가 매우 다름

2.고고학의 범위

지리적: 성경과 연관된 고대 근동(메소포타미아,레반트),이집트,남부유럽지역

시간적: 족장시대부터 초대교회까지

3.성경고고학의 발달사

1)19세기: 초창기 탐험가들-고고학 성립기

2)1차세계대전 이전(19세기 후반)

3)1~2차세계대전 시기-성경고고학의 황금기

4) 1948(이스라엘 독립)이후 성경고고학의 전환기

5) 6일전쟁 이후

6)1970년대-2의 성경 고고학 전환기

7) 1990년대와 그 이후

(1) 텔 단 비문 가장 유명한 논쟁중의 하나

8) 성경고고학의 최근 동향

4. 천지창조와 고고학

수메르 신화,애굽신화,

5.홍수이전의 족장들과 고고학

1) 데비비드 롤의 견해 : 그는 바벨론 제1왕조와 앗시리아왕들이 같은 혈통이며 도한 이들은 창세기4,5장의

홍수 이전의 족장들과 동일인으로 본다.

2)에블라 문서 : 에블라는 고대 에블라 왕국의 수도이다. 가장 최근에 발견된 지역으로써 앞으로도 발굴 가능성과

연구의 가능성이 큰 도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에블라의 지정학적 위치이다.에볼라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그리고 히타이트제국을 삼각형으로 연결시켰을 때 그 삼각형 안쪽에 속하는 광범위한 지역이다.

6.노아의 홍수와 고고학

고대 중동 역사상 제일 잘 기억되는 사건이 노아의 홍수이며 수메르 왕족 시절 홍수전 8와의 행적을 기록한 후,

그 후대의 기록을 중단하고 홍수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주전 3세기 바벨론 제사장 베로수스는 홍수 전

10왕을 창5장의 아담-노아까지의 조상으로 언급함

7. 홍수 이후의 고고학

1) 우르크기(기원전 4000~3100)는 선사시대, 금석병용시대에서 초기 청동기시대에 걸친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역사의 한 부분으로, 도시의 이름인 우르크(10:10의 에렉)에서 따왔으며,이 시기에 기초적인 도시생활이 시작되었고

그 뒤를 이어 수메르 문명이 발달하게 된다.

2) 이집트라는 국가명의기원 : 이집트의 대제사장 마네토는 노아의 홍수후에, 노아의 아들 함은 아이깁투스(이집트)

또는 메스라임(미스라임)을 낳았다고 하였다. 미스라임은 바벨탑 분산 후에 오늘날 이빕트로 알려진 지역에 최초로

나라를 건설한 인물이다. 성경은 미스라임은 함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10:6)

3)노아의 자존 16명에 대한 기록 : 수많은 고대의 지명들과 민족들의 이름 속에 노아의 후손들의 이름이 남아 있다. 역사적 기록은 노아의 홍수가 사실이었으며, 살아남은 자들의 존재를 증거하고 있다.

4) 야벳의 일곱 아들 : 고멜, 마곡, 마대, 야완,두발, 메섹,디라스

5) 함에 네아들: 구스,미스라임,,가나안,

6) 셈의 다섯아들: 엘람,앗수르,아르박삿,,아람

7) 마리문서 : 마리문서란 아모리 족속이 남긴 최대의 문서로서 마리라는 도시에서 발견된 토판들을 일컫는 말이다.

마리문서에 나오는 아모리 사람들의 이름과 족장 이야기의 히브리 사람들의 이름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소결론 :

노아의 16명의 자손에 대하여 알아 보았다.그들이 역사적으로 실제했던 인물이었다는 증거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성경에는 그들의 조상들에 대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성경은 신화나 전설을 모아놓은 책이 아니며, 고대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열쇠가 되는 것이다.

 

출처 : 총회 목회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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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개념과 의의

 

1.종교개혁의 의의

 

종교 개혁’ (Religious Reformation)16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시작되어 이후 유럽 전역에 걸쳐 종교뿐아니라

문화, 사회의 변화를 가져온 새로운 운동을 일컫는 말이다. 종교라는 말은 오늘날 원초적 존재나 가능성에 대한

영적인 이해와 추구를 일컫는 보편적인 개념어이다. 그러나 16세기 유럽에서 종교는 기독교 제한적으로 사용된

용어였다. 이 용어는 무엇보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바람직한 믿음과 삶의 태도를 의미했다.

개혁이란 우선적으로 표면적인 부분이 아닌 근본적인 부분의 변화를 의했다. 개혁이란 새로운 창조나 과거에 대한

무조건적인 폐기가 아닌 회복’(Recovery)을 의미했다. 결론적으로 종교개혁자들의 의견을 존중한다면, 16세기 유럽의

종교 개혁은 일차적으로 성경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에 충실했던 초대 교회의 모습을 기준으로 하여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신앙생활 전반을 바른 모습으로 회복하려 했던 운동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2.루터의 이신칭의 사상

 

15171031일 독일의 작은 대학 도시 비텐베르크 근방에 면죄부를 판매하기위해 찾아온 테첼을 향해 대학의 한교수가 면죄부 판매가 과연 장당한지 신학적 쟁점들을 놓고 공개적으로 토론하자고 제안했다 이것이 유명한 95개조의

반박문이였다 당시 로마교황청의 새로운 교황궁전을 짓기 위해 면죄부를 파는 교황청의 조치는 독일 제후들에게 큰 부담이었다. 그러나 누구 한사람 먼저 나서서 이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을 때 획기적인 사건이였으며 그로인해 제후들과

지식인들은 이 내용을 근거로 면죄부 판매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루터는 그들과 타협하지 않고 성경본분 연구와 강의를 통해 정립한 자신의 구원론을 정립했다. 루터는 이 성경본분에서 구원은 카톨릭이 가르치는 것처럼 면죄부 구입이나 고해성사와 같은 성사에 참여하는 등의 행위의 공로로 획득해 완성해 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믿는 것으로 의롭게 여김을 받는 것임을 주장하게 되었다. 이것이 곧 오직 믿음을 강조하는 이신칭의교리이다.

 

3.칼빈의 예배 개혁 사상

 

루터에 비해 자신의 개인사를 잘 말하지 않았던 칼빈은 1509년 프랑스에서 출생했다. 그는 젊은 시절 파리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해 유능한 법학자이며 인문학자로 성공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를 종교개혁자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자신의 학문적 재능을 활용해 1538년 종교개혁의 개요을 일목요연하게 서술한 기독교강요를 출판함으로써 유능한 종교개혁의 사상가로 주목을 받았다. 칼빈은 그해 가을 우연히 방문한 스위스 제네바에서 선배 목회자

파렐의 강권으로 이 도시의 목회자가 되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종교개혁의 목적은 특히 칼빈의 예배와 교회 개혁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당시 로마 카톨릭은

미사에서 사제가 떡을 예수님의 몸으로 바꾸어 주고 신도들에게 먹게하는 행위를 통해 예수님의 몸이 가진 신비한 능력이 누적된 죄를 처리한다고 가르쳤다. 종교개혁자들이 볼 때 이와 같은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매주 성찬대 위에서 희생제사로 죽이는 모독적인 행위였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든 인류의 죄와 그 책임을 십자가에서 다 담당하셨고 부활하심으로 이를 확증하셧다. 그러므로 매주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지 않으면

죄가 남아 연옥까지만 갈 수 있다는 주장은 성도들의 양심을 속박하기 위한 허위였다. 칼빈은 미사를 부인하고

예배를 개혁하기 위해 말씀이 중심이 되는 예배를 실천하려 했다. 그는 복음과 교회를 위해 교회와 직분들이 있는 것이 교회와 직분자들 위해 예배와 복음이 이용당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4. 종교개혁의 의의와 한국교회의 적용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와 구호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제대로 그 역사적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채로 종교개혁을 말해서는 안될 것이다. 종교개혁의 다섯가지’sola’를 언급하면서 난해한 교리를 나열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오직 성경으로,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오직 하나님의 영광은 16세기 종교개혁의 맥락

속에서 정확하게 이해되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 현장에서 종교개혁의 세 가지 과제들과 그 개혁과 회복 과정에서 강조된 원리들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첫째, 바른 가르침의 회복이 필요하다. 둘째,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 셋째, 교회 제도가 회복되어야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통치하실 수 있도록 모든 구성원들은 지체로서 낮아져야 한다.

 

5. 결어

 

16세기 서유럽의 종교개혁은 몇 사람들이 특정 지역에서 교회의 몇 가지 문제들에 불만을 가지고 변화를 시도한

운동이 아니였다. 또 다른 교회 성장과 영향력 확대를 위한 프로그램이나 단회적 이벤트도 아니였다.

그들은 가르침과 예배외 제도의문제를 개혁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삼아 성경의 가름침대로 회복함으로써

당시 기독교의 신앙 전반을 새롭게 하려 했다. 그러나 자신의 성취나 업적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말씀하시고 드러나기를 소원했다.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과 부르심에 신실하게 응답하여 담대하게 순송하며

복음을 증거하고 다음 세대에 전할 때에만 한국교회의 회복을 소망할 수 있다.

  출처 : 총회 목회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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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음악 (찬송가학)

 

교회음악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그의 지체가 된 유형 무형의 교회가 그 교회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음악적 활동 일체를 지칭하게 된다

교회의 사명은 예배, 전도, 교육, 친교로 구분되며 예배 요소는 찬송,기도, 성경말씀, 헌금, 성찬등이다.

이 예배의 각 요소 중 어느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으나, 특히 찬송은 예배의 요소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음악의 분류

 

.예배용 음악 : 공적 예배에 사용되는 음악을 예배용 음악이라고 한다

1) 주악 : 전주곡, 간주곡, 후주곡

2) 찬양대의 찬양( 송영 또는 입례송, 기도송, 찬양, 봉헌송 또는 헌금송, 축도송, 특송 또는 특별순서)

3) 회중찬송

 

2. 찬송의 목적

 

피조물인 인간은 무조건 하나님께 찬송하여야 하며, 이는 하나님의 뜻이요 절대적 목적인 것이다.

또한 우리 죄인들에게는 제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찬송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가 없으며

찬송은 오로지 하나님만을 찬송하여야 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이어야 한다.

3. 찬송의 대상

신구약 성경에 약 400회 이상 나오는 찬양,찬송,송축 찬미, 노래등의 단어 전후에 하나님을”, “하나님께

여호와께”, “여호와를등의 말이 꼭 붙어 있다. 이것이 찬송의 대상이 절대로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다.

찬송의 대상, 찬송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라는 사실이다.

 

4. CCM찬송에 대하여

 

흔히 교회에서 부르는 노래을 찬양이라고 하고, ‘CCM’ 가요풍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고 현대 기독교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음악 즉, Chritian Music은 크게 수직적 노래와 수평적 노래로 나뉜다.

주식적 노래는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는 노래 (찬양,찬송,경배)등의 내용을 갖고 있으며, 수평적 노래는

사람을 향해 부르는 노래로, 가스펠과 축복송등을 포함한다. ‘CCM’은 위 두 가지 모두 해당되나,

가사에 의해서 구분된다. ‘찬양하세등은 전자에 속할 것이고 너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 난 예수가 좋다오등은

후자에 속한다.

 

5.CCM에 대한 올바른 견해

 

우리 개혁주의 신앙인들은 항상 마음과 생활의 중심이 하나님께 Focus가 맞춰져야한다. 어린 주일학교 시절부터

올바른 예배관, 성경관,찬양관을 심어주어야 한다.

예배시의 찬양과 CCM 가스펠등은 분명히 구분하여 사용하여 사용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가한다.

 

6 결론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43:21)

인간은 하나님께 찬송하여야 하며 찬송은 다름 목적으로 사용할 수없으며 오로지 하나님만을 위한 찬송의

제사가되어햐 한다. CCM 가수들이 세상의 음악과 똑같은 세속적인 음악을 하는 가수들과 똑같은 자세로

인간의, 인간에 의한,인간에게 감동을 주기위한 음악을 한다면 주님께서는 그런 음악을 받으시지 않을것다.

왜냐하면 주님 자신이 영광을 받으시려고, 우리를 지으시고, 찬송드리기 위해 지음 받은 우리 피조물들은

그저 구속의 은혜에 감사 감격하여 주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찬양을 드려야 마땅하다.

출처 : 총회 목회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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