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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너공해] 현장과 목회

 

교회는 건물이 아니지만 예배당은 신자들이 예배드리는 귀한 장소이다. 예배드리는 장소로서의 건물은 그 교회의 신앙을 반영한다. 모든 교회당은 그 교회의 신학을 표현한다. 이 점에서 교회당은 신학이다.

 

로마교회는 교회당을 성당이라고 부른다. 정교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성당들은 수많은 그림과 성상으로 가득 차 있다. 교회당이 그런 모습이 된 이유는 그런 모습이 신자들의 신앙에 도움이 된다는 신학을 가졌기 때문이다.

...

 

로마교회와 달리 한국 개신교 안에는 어느샌가 모르게 배너와 스크린으로 가득 차 있다. 작은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그림이나 조각이 항구적인 반면, 배너와 스크린은 일시적이다. 수시로 바뀐다. 신학의 차이가 건물의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목사는 배너의 문구, 색깔, 크기, 위치 등에 관심을 가진다. 그 일을 실제로 해야 하는 사람들은 부교역자들이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성도들의 신앙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도움은 어느 정도 될 것이다. 교회 안에 도움이 안 되는 일이 들어 오는 일은 없다. 문제는 그런 작업들이 교회의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내가 보기에 이제는 배너가 교회 안에서 공해 수준에 이른 것 같다. (간판 공해처럼 보인다) 한국교회의 이와 같은 현재의 모습은 부실한 신학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교회가 건물이 아니다라고만 외칠 것이 아니라 교회당 건물에 대한 올바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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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영접기도 /순복음교회 영접기도 /사영리 영접기도

 

순복음교회 영접기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지금까지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지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저를 씻어주시옵소서!

이시간 저를 위하여 죽으시고 저를 위하여 부활하신 주님을 내 구주로 모셔드립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되었습니다. 저를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목사 예수님 영접기도문

 

살아계시는 하나님 아버지. 저는 죄인입니다.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회개하고 돌아섰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저를 씻어주시옵소서.

저를 위하여 죽으시고 저를 위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 구주로 모셔드립니다.

지금부터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살겠습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저를 구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생명책은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의 호적장부입니다.

 

*영접기도 - 빌리 그레함

하나님 아버지.

저는 죄인입니다.

진정으로 저의 죄를 애통해합니다.

저는 저의 죄로부터 돌아설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구원자로서 받아들이겠습니다.

이 순간부터 그를 저의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저는 그분의 공동체인 교회안에서 그분을 따르며 봉사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빌리 그레함 목사님 집회중.. : 정철선생님 강의중에서 발취)

 

*학생들 영접기도문 - 수련회 및 일일 캠프시 영접 기도문

 

영접 기도문은 키보드의 은은한 연주에 맞추어 조용하면서도 음성이 또렷이 전달 되도록 진지하게 기도를 이끌어야 합니다.

 

영접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고맙습니다. 죄 때문에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저희들을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선물로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수없이 많이 행했습니다.

욕도 잘하고 내 맘대로 내 고집대로 살았습니다.

지금 이 시간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 주심을 믿습니다.

저의 더러운 죄를 모두 다 용서해 주세요.

고마워요 예수님!

이젠 예수님의 말씀대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제 맘을 활짝 열고 예수님을 모셔들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을 선물로 잘 받았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절 살리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니 이젠 제가

예수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고마워요!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영리 영접기도

 

우리는 개인적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게 되며, 또 그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싱의 중심에 들어오시도록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주 예수님, 주님을 믿고 싶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 죄값을 담당하시니 감사합니다.

지금 나는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합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를 다스려 주시고, 나를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타 영접기도

 

사랑의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어디에서 와서 왜 살고 어디로 가는지 몰라 방황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믿음으로 살기로 결신합니다

예수님 십자가 보혈로 저를 씻어 주소서

저 때문에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십니다

하나님은 저의 아버지가 되시고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저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새 사람으로 거룩하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누군가 이 영접기도문을 읽고 예수님을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를 대접하기도 하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을 영접하시라고 이 글을 올립니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God bless you !!

 

*기타 영접기도

 

"주 예수님" 나는 주님을 믿고 싶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 ''값을 담당하시니 감사합니다.

지금 나는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합니다.

나의 ''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나를 다스려 주시고 나를 주님의 거록한자녀로 만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지금! 이 기도를 드리세요.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약속하신 대로 당신 안에 들어오실 것입니다.

[1]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당신 안에 들어와 계십니다. [:320-----:127]

[2]당신의 모든 죄는 지금 사함을 받았습니다. [:117]

[3]당신은 지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124]

[4]당신은 지금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524]

*지금부터 날마다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십시오.

*지금부터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으십시오.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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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교회와 부목사

 

한국 개신교회에서 직분을 바라보는 관점이 계서적(Hierarchy)인 관점으로 굳어진 것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목사, 장로, 집사는 평등한 관계가 아닌 수직적인 관계로 바뀌었다. 더구나 목사, 장로, 집사의 수는 피라미드 구조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구조는 자연히 성도들에게 목사는 가장 높고, 그 다음은 장로이고, 그 다음은 집사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심어준다. 하지만 개혁교회는 일반적으로 장로의 수와 집사의 수를 비슷하게 함으로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여 왔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같은 직분 안에서도 서열화가 진행되어 왔다는 것이다. 목사 안에는 원로목사, 공로 목사, 담임목사, 수석 부목사, 부목사, 교육목사로 분화 되고, 장로 안에서도 선임장로를 정점으로한 서열이 매겨지며, 집사에도 안수집사와 서리집사로 구분되었다. , 단순하게 목사, 교사(신학교수), 장로, 집사라는 단순한 개혁주의적 직분이 보다 복잡한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이것을 그냥, 현대 교회에서 나오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로마 카톨릭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그대로 안게 될 수 있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종교개혁 당시, 로카 카톨릭 교회 안에는 수많은 직분들이 있었다. 교황을 정점으로 하여, 추기경, 대주교, 주교, 사제, 부사제, 등등. 개혁가들은 이러한 것이 성경에 전혀 맞지 않다고 공격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누리게 된 단순한 직분제를 확립하게 되었다. 특히 직분과 관련하여 그들은 적어도 2가지 가장 근본적인 주장을 참된 교회에 확립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직분의 평등"이다. , 목사와 장로 집사는 하는 일만 다를 뿐이지 다 동등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적용시킨다면, 집사는 장로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집사가 장로가 될 수도, 나중에 목사가 될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집사는 집사의 일을 잘하는 사람을, 장로는 장로의 일을 잘하는 사람을, 목사는 목사의 일을 잘하는 사람을 교회에 세워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또한 목사직 자체에도 적용이 된다. 목사직 역시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목사직 안에 대주교, 주교, 사제, 부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목사들은 다 동등하다는 것이 개혁주의 신학의 핵심이다. 이것을 오늘날 한국교회에 엄격하게 적용시킨다면, 목사 안에 담임목사, 부목사, 협동 목사가 계서적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는 목사직을 복잡하게 함으로 종교개혁 이전시대로 돌아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목사에 대한 개혁교회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목사는 반드시 교인들의 선출에 의해서 임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하나님의 개인적 소명은 교회의 소명에 의해 확인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로마 카톨릭에서는 주교가 성직 임명에 있어서 모든 권한을 행사하고, 주교의 임직은 교황이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였다. 목사의 임직을 교인들에게 돌려 준 것은, 직분론에 있어서 개혁신학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부목사를 보도록 하자. 부목사를 교회에서 청빙함에 있어서 대부분의 교회에 있어서 담임목사가 거의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물론 당회의 허락과 제직회를 통과해야 하지만, 거의 형식적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목사는 그냥 담임 목사가 알아서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을 한다.

 

더구나 담임 목사는 부목사를 해임시키는 거의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런 장치들이 만들어지게 된 상황을 이해는 할 수 있다. 부목사가 자기 편을 만들어 언제든지 교회를 분열하게 만들 위험이 있으니 그 위험의 싹을 처음부터 자르는 것이 지혜롭다고 판단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부목사로 하여금 교인들을 위한 목사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담임 목사를 위한 목사가 되게 한다. , 부목사에게 중요한 것은 담임 목사의 의중이지, 교인들의 생각이 아닌 것이다. , 이것이 로마 카톨릭교의 주교제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인가? 개혁가들은 바로 일반 성도들을 위한 목사직의 확립을 위해 그토록 싸웠는데, 오늘날은 그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담임 목사든, 부목사든, 목사는 교인들의 부르심을 받아 청빙되어야 함이 개혁신학의 근본원리이다. , 부목사는 담임목사가 부르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부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혁신학을 지향하는 우리교회는 이 원리를 가능한 한 살리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운영상 담임 목사의 의중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을 교인들이 청빙하는 것도 교회의 덕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우리는 교회의 헌법도 존중해야 한다.

 

따라서 가장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마 부목사는 교회의 전부 보다는 어떤 한 기관을 맞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당회에서 부목사를 철저하게 심사하여, 섬기게 될 기관에 속한 성도들에게 물어보게 하는 것은 어떨까? 예를 들면, 중고등부 담당 부목사를 청빙한다면, 부목사의 지원자 중에서 당회가 잘 심사한 다음, 담임 목사와도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을 2명 정도 선정한다음, 최종적인 선택은 중고등부 담당 교사들과 학부형들에게 주는 것이다. 이것은 담임 목사가 마음만 먹는다면, 현 교단 헌법 안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한다면, 우리는 개혁교회의 근본 원리를 거스리지 않으면서 또한 담임 목사와 부목사의 긴장관계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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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과 성도의 교제

 

성찬에 대한 피상적이해는 교회의 쇠퇴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성찬에 대한 몇가지 단상을 쓰고자 한다. 이 글을 통해서 성찬에 대한 보다 분명한 이해가 있기를 바란다.

 

1. 사도신경에서 말하는 성도의 사귐[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은 원문으로는 communio sanctorum이라고 표기되는데 이것은 성도의 사귐이라고 번역될 수 있고 "거룩한 것에 참여"라고도 번역될 수 있다. 초대 교회에는 거룩한 것에 참여라는 것이 보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참고:여기에 대한 최고의 권위서는 Werner Elert, Eucharist and Church Fellowship in the First Four Centuries] 따라서 성도의 사귐은 단지, 친교의 의미를 넘어서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하며, 이것은 그 자체가 구원이다. 그렇다면, 성찬을 지금보다 현저하게 자주 시행하는 것은 한국 개혁교회의 과제라고 볼 수 있다.

 

2. 세례와 성찬. 우리는 이 2가지 성례만을 인정하는데, 세례는 한 번만 시행하고 성찬은 계속적으로 시행한다. 왜 그럴까? 세례는 칭의에 성찬은 성화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세례가 그리스도 안에서 단번에 주어진 언약에 참여하는 것이라면, 성찬은 이 언약에 참여한 성도가 계속적으로 누리는 복이라고 할 수 있다.

 

3. 왜 목사만 성례를 집행할 수 있는가? 목사를 말씀의 종이라고 한다. 말씀은 들리는 말씀인 설교와 보이는 말씀인 성찬과 세례로 구별할 수 있다. 따라서 보다 구체적으로 목사는 말씀과 성례의 종이다. 이 점에서 한국의 목사들은 명백하게 직무 유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성도들이 1년에 2-3번 정도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영적으로 부요한 삶을 누릴 수 있겠는가? 이제 말씀의 사역자들은 보이는 말씀에 보다 관심을 많이 기울여야 한다. 세례 교육을 강화하여야 하고 성찬식을 자주 시행하여야 한다. 성찬식을 자주 시행하기 위해서는 성도들을 돌아보는 것, 즉 심방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생각해보라. 예식 만을 따진다면, 일반 성도들도 세례나 성찬을 베풀지 못할 이유가 없다. 몇번만 연습하면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세례나 성찬이 목사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성찬과 세례가 단지 그 예식 자체 뿐만 아니라 그 예식을 위한 목양, 즉 세례문답교육과 심방(권징)까지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3. 떡과 포도주가 각각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유월절에는 떡(무교병)만 사용된 반면 신약의 유월절인 성만찬은 포도주를 첨가시키고 있다. 주로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와 연결이 되고 따라서 포도주는 생명과 쉽게 연결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물이 아니라 포도주를 사용했을까? 또한 포도주가 생명을 지칭한다면 생명을 지칭하는 빵과 포도주의 궁극적인 차이점은 무엇일까?

 

최근에 Bread of Life, Cup of Joy라는 책이 나왔는데, 말 그대로 떡은 우리의 생명을 지칭하고 포도주는 기쁨을 지칭한다. 즉 빵과 포도주는 각자 독특성을 가지고 있다. 성찬 설교 때, 우리는 단지 성찬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본문만을 다룰 것이 아니라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건, 오병이어의 사건, 시편에 나오는 "구원의 잔을 들고"라는 구절,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축사하시는 장면, 등등을 통해서 얼마든지 성찬을 설교할 수 있을 것이다.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면서, 예수님은 자신을 기쁨을 회복시키는 메시야로 나타내셨다. 그리고 이것은 이사야 55장에 나오는 "너희는 와서 돈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는 말씀의 성취로 볼 수 있다.

 

4. 기쁨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오늘날 장례식과 비슷한 성찬식은 또한 극복되어야 한다. 주로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 성찬식이 제정된 사실때문에 한국교회는 너무 그리스도의 죽음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이것은 구속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의 성찬식은 십자가 전이지만, 우리는 부활 이후를 살아가는 성도이다. 제자들 역시 주님께서 잡히시기 전날에 성찬식을 하지 않고, 부활하신 날 성찬식을 베풀었다. 그렇다면 성찬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동시에 고려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신약 교회에서, 성찬식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누릴 식탁 교제를 지금 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 영적 임재설에 대한 오해. 많은 사람들이 개혁파 성찬론은 영적 임재설이라는 것은 알면서도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이해가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기념설과 비슷하게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영적 임재설은 예수님께서 영적으로 떡과 포도주에 임한다는 말이 아니다. 영적 임재설을 풀이한다면, 예수님의 참된 몸과 피가 성령에 의하여 떡과 피에 임한다는 뜻이다. 다시말하면, 영적 임재설은, 성령적 임재설, 혹은 성령에 의한 그리스도의 참된 임재를 뜻한다.

 

여기서 다른 견해들과 비교를 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카톨릭: 떡과 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완전하게 변함. 이것은 사제(신부)의 중보적 역할의해 가능함. 보라! 사제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 떡을 예수님의 살로 변화시킨다.

 

루터란: 예수님의 진짜 살이 떡 "위에, 아래에, 그리고 떡과 함께" 임한다고 본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것은 루터란의 독특한 기독론에 근거한다. communicatio idiomata라고 부르는데 그리스도의 양성, 즉 신성과 인성이 교류한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실제 몸이,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 때문에 어느 곳에나 편재(ubiquity)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 루터교의 성찬론의 핵심은 기독론에 있다.

 

쯔빙글리 및 복음주의: 성찬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시키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실천적인 면에서 이 견해를 따르고 있다.

 

6. 다른 교리들과 비교해 볼 때, 개혁주의 성찬론은 성령론이 핵심인 것을 그대로 알 수 있다. 개혁주의 성찬론의 최고의 이론가는 버미글리(Peter Martyr Vermigli)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예수님의 참된 살과 피가 성령님의 능력으로 성찬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인간이 그것을 먹을 수 있도록 하시면, 우리 육신의 입은 떡을 먹지만 우리의 영혼은 그 양식을 영혼의 입인 믿음을 통해서 먹는다고 말하였다. 그야말로 성찬은 spiritual meal인 것이다. , 성찬식에서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참되게 혹은 정말로 참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다.

 

7. 카톨릭의 화체설[transubstantiation]과 루터란의 공재설[consubstantiation]은 서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늘에 계신 예수님의 몸을 지상으로 끌어내린다는 것이다. 반면, 개혁파 이론은 우리의 영혼을 예수님이 계신 하늘로 올리는 이론이다. 그래서 개혁파는 오랫동안 교회의 성찬에서 사용된 성찬용어 Sursum Corda [내 마음을 들어 올립니다]를 핵심적인 위치에 놓았다. 엄밀히 말해서 떡과 포도주에 주의 살과 피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들어 올려져서 하늘에 계신 주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다.

 

8. 참고로 루터란과 카톨릭은 Altar[제단]라는 말을, 개혁파는 table[식탁]이라는 말을 쓴다. 이 점에서 한국교회의 성찬은 카톨릭을 더 닮았다. 이것 또한 극복되어야 한다. 성찬은 카톨릭의 미사가 아니라 식사(Lord's Supper)이다. 식사의 시간은 즐거운 교제의 시간이다.

 

카톨릭이 성찬을 주로 sacrifice [희생제]로 보는 반면에 개혁파는 eucharist [감사제]로 본다. 성찬에 있어서, 카톨릭은 우리가 주님께 무엇을 드리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개혁파는 주님으로부터 우리가 받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카톨릭에 있어서 성찬은 공로 [무엇을 드리는 것]이라면, 개혁파에 있어서 성찬은 은혜 [우리가 받는 것]로 이해된다.

 

9. 우리는 정말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가? 아니면 주일날 앵무새 처럼 외우기만 하는가? 더 나아가 우리의 삶과 예배 속에서 이 고백이 어떻게 실천되고 경험되고 있는가? 성찬론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우리의 교회를 다시 회복시키고 부흥시킬 수 있는 실천적인 이론이다. 우리의 고백이 실천으로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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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료 / 주일 아침 예배 인도  기도

1. 시작 하는 기도
(성경구절 읽고..)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찌니라

 헛어 졌던 사랑하는 성도들이 멀리서 가까이서 주님의 전으로 달려 나오게 하셔서 예배드리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예배가 복된 예배로 드려지게 하옵소서,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 영광받아 주시옵시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소원을 응답받게 하시고, 말씀을 통해서는 주님을 모르시는 분은 예수님을 만나는 결단의 시간과 성도들에게는 새 힘과 용기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또한 드림을 통해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왔음을 인식하게 하옵시고,  성도들의 교제를 통해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밝은 마음 친밀한 교제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의 예배가 아벨의 산제사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모습과  솔로몬의 일천번제와 같이 하나님께 응답받는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며  존귀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 설교 말씀전 기도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하여 운준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했는데 오늘 그런 은혜가 있게 하옵소서.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이 잘 막힌 못과 같이 우리 심령에 심겨져서 잎나고 꽂이 피어서 60배 100배의 결심이 맺게 하옵소서.  오늘 이곳에 구원받지 못 한자가 있으면 구원해 주시고  연약함과 방황함하는 분이 있다면  치유해 주셔서  믿음에 생활에 새로운 출발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옵나이다.  아멘

3. 헌금 기도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주님  오늘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는데 우리가 드림으로 복 된자가  된 것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뿐만아니라 오늘도 시간을 드려 예배하며  몸을 드려 헌신하고, 재능을 드려 봉사하고, 물질를 드려 헌금할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헌금을 드림은 우선순위가 확정되었으며 땀과 감사의 표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드린 한분한분 위에 하나님의 손길이 넘치도록 채워 주시옵소서
 특별히 감사의 예물을 드린  00분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시고 기도응답과 평강과 가정의 행복이 가득하게 하옵소서  그리지 못한 분까지 기억하시고 같은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4. 끝기도(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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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예식 순서

  

세례자호명

이 시간에는 세례문답을 마치신 분을 호명합니다. 앞으로 나와서 서 주시길 바랍니다.

000씨, 000씨

 

서 약

여러분은 하나님앞과 여러 성도들앞에서 서약을 하겠는데, 오른손을 드시

1. 나는 하나님앞에 죄인인줄 알고 그 죄를 회개하고 죄를 버리기로 결심합니까?

2.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되심과 죄인을 구원할 이는 예수밖에 없는 것을 믿습니까?

3. 나는 교회의 관할과 치리를 복종하며 교인의 의무를 힘써 봉사하겠습니까?

4.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배우고 전파하고 가르치겠습니까?

 

기 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거행하오니 하늘의 문을 열어 놓으시고 주의 자녀를 받으시며 축복하사 이제는 세상과 짝하여 살던 지난날의 모습에서 하나님만을 영화롭게 하는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이제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을 증거하며 세상과 악마를 이기는 승리자가 되는 복을 주옵소서, 저들의 몸에 건강을, 마음에는 지혜를, 저들의 가정에는 평안을 주시면서 영육의 풍성한 북을 누리게 하옵소서, 저들이 복을 받으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가정과 교회와 나라에 유익을 끼치는 복된 사람이 되기를 원하오니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 멘

 

공 포

여러분은 그대로 서서 계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사자인 가나교회 담임목사의 위치에 엄숙히 서서 오늘 서약한 000씨, 000씨, 000씨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가나교회의 세례교인이 된 것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공포하노라.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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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은사에 대한 정의

 

아래에 열거된 27가지 은사는 C.Peter Wagner교수가 분류한 성령의 은사에 대한 정의이다.

1.예언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하나님의 즉각적인 메세지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성별된 말로 전달하는 역량이다.

2.섬기는 일
섬기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하나님의 일과 연관된 과업 가운데 충족되지 못한 요청 사항을 확인하고,
그 요청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자원을 사용하여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돕는 역량이다.

3. 가르치는 일
가르치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배울 수 있도록,몸과 그 지체들의 건강 및 직임에 관계되는 지식을 전달하는 역량이다.

4.권면
권면하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몸의 다른 지체들에게 위로의 말과 조언의 말을 해주어 그들이 실제로 도움이나 치유를 받았다고
느끼게 해주는 역량이다.

5.헌금
헌금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그들이 물질적인 자원을 관대함과 기쁨으로 주님의 일을 위해 바치는 것이다.

6.지도력
지도력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미래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 하는 목표들을 설정하고, 이 목표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되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발적으로 협동하여 이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는 역량이다.

7.긍휼
긍휼을 베푸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 육체적 정신적 문제를 가지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순수한 자비를 느끼고, 그 순수한 자비를 행동으로 옮겨서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반영하는 역량이다.

8.지혜
지혜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성력님의 마음을 알아서, 주어진 지식을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발생하는 요구 사항에
가장 잘 적용할 수 있는지를 아는 역량이다.

9.지식
지식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몸의 성장과 번영에 관한 정보와 사상을 발견하고 쌓고 분석하고 명료하게 하는 역량이다.

10.믿음
믿음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놀라운 확신을 가지고 미래의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분간하는 역량이다.

11.신유
신유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자연적인 방법이 아닌, 하나님께서 병을 고치시고 건강을 회복케 하시는 일 중개자로서
봉사하는 역량이다.

12.기적
기적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관측자들에게는 자연의 방향을 변화시키는 일로, 지각되는 하나님의 능력 있는 행동의 중개자로
봉사는 역량이다.

13.영 분별
영 분별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그 지체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인지 혹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인지 혹은 사단에게서
나온 것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14.방언
방언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자신들이 배우지 않은 언어로 하나님께 말하는 역량이고,하나님의 즉각적인 메세지를 받아서
배우지 않은 언어인데도 하나님의 성별된 말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역량이다.

15.방언 통역
방언 통역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방언을 말하는 사람의 메세지를 일상어로 알려 주는 것이다.

16.사도
사도적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특히 영적인 일애 놀라운 권위를 가지고 여러 교회들을 다스리는 지도자를 맡아 실행할 수 있는 역량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영적인 일의 놀라운 권위란 그 여러 교회들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인정되고 평가되는
영적 권위를 말한다.

17.서로 돕는 일
서로 돕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몸의 다른 지체들의 활동에 주어, 그 다른 지체들로 하여금 그들의 은사의
효율을 증대시키도록 돕는 것이다.

18.행정
행정직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이 역량을 가진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한 구성 단위의 장기적, 단기적 목표를 명백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하여 효과적인 계획을 기안하여 실행할 줄 안다.

19.복음 전하는 일
복음을 전하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여량으로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도록, 또 그리스도의 몸의 책임 있는 지체가 되도록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역량이다.

20.목사
목사직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신자들의 영적 번영에 대한 책임을 장기간에 걸쳐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이다.

21.독신
독신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독신 생활을 아무런 지장 없이 할 수 있고, 성적 유혹도 받지 않는 것이다.

22.자원하여 궁핍하게 되는 일
자원하여 궁핍하게 되는 일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하나님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섬기기 위하여 물질적인 즐거움을 포기하고, 그 특정 사회에서 궁핍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동등한 생활양식을 택하여 사는 것이다.

23.순교
순교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믿음을 위해서는 죽기까지 고난을 당하면서 기쁨과 승리의 자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24.대접하는 일
대접하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숙식의 요구되는 사람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환대하는 것이다.

25.선교사
선교사직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 밖의 다른 은사들이 어떠한 것이든, 제2의 문화권에서 전도 활동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역량이다.

26.남을 위한 기도
남을 위한 기도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이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규칙적으로 오랜 기간동안 기도하고, 보통 그리스도인에게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특별한 응답을 많이 받는다.

27.귀신을 쫓아내는 일
귀신을 쫓아내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마귀와 악령을 쫓아내는 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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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이것은 고쳐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백성들이 받은 은총에 대한 응답으로 드리는 그리스도인들의 행위이다. 그러므로 예배예전의 행위는 인간위주로 진행할 수 없고 반드시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 위주로 드려야 한다. 찬양예배, 새벽기도회, 가정예배 등과는 달리 예전의 절차와 행위를 요구하는 공적인 예배(formal service)인 주일예배는 깊이 있는 형식을 통해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하는 것이다. 

1. 예배의 자세 
개신교는 예배 시 말씀만을 강조하며 자세에 대한 것을 외면해 왔다. 예배의 자세는 초대교회부터 갖추어야 할 자세들을 철저히 강조해 왔다. 

1) 예배 시 예배자는 내 육신의 편안함보다 하나님 앞에 경건한 자세로 공경하고 경배하는 몸가짐이어야 한다. 이것은 예배하는 대상(하나님)에 대한 기초적 상식이다. 초대교회와 몇 세기 전까지의 교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서서 예배를 드렸다. 한국 개신교는 유난히도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다. 봉헌도 앉아서 하고, 성찬도 앉아서 받고, 영광송(송영)마저도 앉아서 하는 교회도 있다. 일어선 자세는 존경의 표시이며, 무릎 꿇는 자세는 경배, 기원, 애달픈 심정표현의 표시다. 앉아만 있는 자세는 예배자의 예배 참여가 결여되고 때론 졸음까지 유발해 예배의 존엄성을 상실하게 된다. 앉아만 드리는 예배는 인간편의만을 위한 너무 고급스런 발상으로 예배자들의 합당한 자세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송영-교독-신앙고백-주기도문 송을 서서 드림은 물론, 봉헌은 나아가서 드리고, 성찬도 나아가서 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예배형식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고에서 나오는 자세와 함께 회중들의 보다 능동적인 참여형식의 예배 형식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2) 성단은 교회 내에서도 어느 곳보다 성스럽고 존엄한 곳이다. 예배순서를 맡아 성단에 앉아 있는 예배인도자, 설교자, 대표기도자는 성단의 존엄함이 실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발과 손을 벌리고 거만한 자세로 앉아있거나 심지어는 다리를 꼬고 앉아서는 안 된다. 발과 손을 모으고 겸손한 자세로 앉아야 함이 옳을 것이다. 성경에는 "높아지려 하는 자는 낮아질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2. 드림의 예배 
현재의 주일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인간이 받기 위한 예배에 치중되어 있다. 내용으로 볼 때나 시간으로 볼 때나 '하나님께 드리기 위한 내용'은 거의 없고, '인간이 받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을 위한 드림의 예배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받음의 예배인 것이다. 이것은 예배의 목적과 본질을 뒤집는 중대사다.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은 우선 하나님께 경배와 감사와 찬양과 봉헌과 참회를 드리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리고 나서 내려주시는 말씀과 성례와 축도를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일예배는 드림중심으로 속히 바뀌어야 한다. 


3. 성만찬 
우리 개신교의 예배형식은 한국선교초기의 시대환경 때문에 간략화 된 온전치 못한 예배형태가 계속 이어져 고착화된 것이다. 한국선교초기 목사의 수가 매우 적고, 평신도가 예배를 인도했던 시대의 불합당한 예배의 방법이 고착, 전래된 것이다. 얼마 전 또는 지금까지도 많은 신학대학에 예배학을 전공한 교수가 없어 기 배출된 목회자들도 위와 같은 사실을 모르고 선교사들이 임시적으로 행했던 예배방법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예배는 속히 온전한 예배로 회복해야 한다. 관행으로 생각 없이 지속하는 것은 사고가 어리거나 미개할 때 있는 일인 것이다. 예수님께선 예배에 관해 두 가지를 말씀하셨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 "이(성만찬)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초대교회는 예배 시 매번 성만찬을 행했으며, 서구의 구교와 신교 모두가 옛적부터 지금까지 주일예배 시 성만찬을 이행하고 있다.(단, 북미의 개척시대 때만 제대로 행치 못함) 종교개혁가인 루터, 칼빈, 요한 웨슬레도 성만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칼빈은 성만찬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1년에 한두 번 성만찬에 참여하도록 한 관례는 분명히 악마의 농간이다. 주님이 제정하신 성만찬은 적어도 크리스천들이 매주 한 번은 참여할 수 있도록 거행해야 한다." 우리 한국의 개신교는 하루 빨리 매주 성만찬을 회복해야 하며 형식적인 성만찬이 아니라 예수님(성령님)을 만나는 감격스럽고 은혜스런 성만찬으로 바뀌어야 한다. 

4. 대표기도 
1) 주일예배 시 회중을 대신해 장로, 안수집사 또는 권사가 기도를 한다. 대표기도의 내용은 영광과 감사와 공의로운 기도가 주된 목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표기도 내용은 기도의 목적과는 달리 "주시옵소서"로 일관하고 있다. "주시옵소서"로 가득 찬 기도는 이 땅에 일찍이 뿌리내린 토속종교와 불교의 기도내용과도 같은 것으로 하나님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기도자를 위한 기도인 것이다. 대표기도 시 "주시옵소서"는 절제해야 한다. 

2) 하나님께 기도할 때 목사, 장로를 "'목사님, 장로님"으로 칭해선 안 된다. '주의 종, 목사, 장로'로 칭해야 한다. 우리의 언어에서, 더 높으신 분 앞에서 높으신 분을 칭할 땐 '님'자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어법인 것이다. 

3) 성령도 성령님으로 칭해야 한다. 하나님-예수님-성령님은 삼위일체 동격이심으로 '성령께서'가 아니라 '성령님께서'로 칭해야 한다. 

4) 대표기도자는 말씀의 대언자가 아니므로 기도가 끝나면 순수한 평신도로서 회중석으로 내려와 설교를 경청하고 예배를 드려야 한다. 

5. 찬 양 
1) "찬송 드리겠습니다."와 "찬송 부르겠습니다."는 구분해야 한다. 찬송가의 내용분류에서 "송영, 예수 그리스도" 부분은 하나님,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사로 되어 있고, 그 외의 다른 찬송은 거의 모두가 우리가 은혜받기 위한 가사로 되어 있다. 우리가 은혜받기 위한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께 "찬송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넌센스인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은 "찬송 드리겠습니다."로, 우리가 은혜받기 위한 찬송은 "찬송 부르겠습니다."로 구분해야 한다. 

2) 찬양대의 노래나 특송자의 노래는 주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한 것이지 예배하는 인간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한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찬양대의 노래와 특송자의 노래가 끝났을 때 우리에게 은혜로웠다할지라도 박수를 치는 것은 노래하는 사람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하는 박수가 됨으로 삼가야 한다. 

3) 특송을 하는 사람이 회중들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는 관습은 독창발표회에서 유래된 것이다. 특송은 하나님께 아름다운 찬송을 드리는 또 다른 봉헌과 같은 것이므로 특송자는 회중에게 인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4) 찬양대가 찬양을 하고 있는 동안 찬양대 정면에서 목사가 마주 바라보고 서 있는 자세는 목사가 찬양대의 찬양을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찬양대원들도 목사와 눈이 마주칠 때 어색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는 찬양대를 마주보고 서 있기 보다는 찬양대의 찬양을 받아달라는 기도와 설교를 위한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 값진 시간이 될 것이다. 

5) 찬양대 찬양은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사내용으로 된 곡으로 선곡해야 한다. 우리의 귀에 듣기 좋은 곡이라도 하나님께 영광돌림이 아닌 곡은 선곡되어선 안 된다. 

6) 주일예배의 준비찬송은 예배 시 정성이 모아지고 은혜로운 예배가 되도록 예배자의 마음에 와 닿는 은혜로운 찬송(복음성가 등)을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며, 예배 시의 찬송은 하나님 찬양을 위한 찬송을 중심으로 불러 무분별한 찬송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7) '성가대'는 '찬양대'로 불러야 한다. 성경에는 "하나님은 찬양받기를 원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가대는 본래 찬양대로 불리웠던 것인데 한 출판사가 흑인영가와 복음송을 합하여 출판하면서 표제를 성가곡집으로 하면서부터 성가대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가대가 아니라 찬양대로 부르는 것이 합당한 것이다. 

6.목사의 가운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중요한 예식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주요 예식엔 예식에 맞는 특별한 복식을 갖추었는데 이것은 특별한 예를 갖추기 위한 것이었다. 출28:3에는 예배를 집례하는 성직자가 일상의 복장을 입은 그대로 성단에 오르는 것을 금한 적이 있다. 한국 개신교의 많은 목회자는 성의로서 '박사가운'이나 이와 유사한 가운을 사용하고 있는데 권위를 표시하는 박사가운과 성의인 목사가운은 구분되어 사용해야 한다. 주일예배 시 목사의 가운은 박사의 가운이 아닌 성직자가운을 입어야 하며, 교회력에 따른 색깔의 성직자가운을 입는 것이 보다 합당할 것이다. 

7. 헌 금 
헌금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대한 응답의 행위이며, 성도들의 의무행위다. 성경말씀에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있고, 구약에는 희생제물을 드리며 사람의 이름을 밝힌 곳이 없다. 봉헌자의 이름, 명목, 사연을 기록하는 것은 우리주변의 불교, 무속신앙의 시주행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국교회에서 헌금봉투에 헌금자의 이름과 기록된 사연을 예배 시 공표하는 것을 본 외국의 예배신학자들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영수증의 성격으로 주보에 헌금자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무방하나 예배 시 공표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또한 헌금을 드릴 때는 앉아서 헌금바구니에 헌금을 넣는 것보다는 나아가서 드리고, 봉투에 넣어서 드리는 것이 높으신 분(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예의일 것이다. 

8.예배의 시작 
개신교의 예배는 유독 "다같이 묵도함으로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로 시작하는데 이 묵상기도 순서는 기독교예배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순서이다. 이 땅의 많은 종교행위에선 묵념을 일상화했는데 여기서 유래했다고 생각되며, 한편으론 예배 시작 전의 소란스런 분위기를 정리하기 위해 이 땅에 온 선교사들이 만든 순서라고 생각된다. 선교사들이 선교시 이 땅의 옛 시대 환경에 맞도록 만든 것을 진리인양 고수하려는 보수성은 때론 비성서적인 경향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다같이 묵도함…"는 "이제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모두어 하나님께 예배드리겠습니다."로 예배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출처: 정장복 교수의 저서 「그것은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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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가 능력 있게 쓰임받은 20가지 이유

 

1. 가망성이 없었지만 은혜가 예비되어 있었다.
현재의 모습보다 내일의 변화된 모습을 예감하는 눈을 길러야 한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19:26)
무디가 능력의 도구로 쓰임받은 첫 번째 요인은  하나님의 은혜가 예비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6:1)
하나님께서는 회개를 잘 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회심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2. 영적 비전을 발견한 사람이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미래에 희망이 없다.
무엇보다 영적 비전을 발견하는 사람은  위대한 뜻을 이루는 축복의 도구가 된다.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쓰신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3. 물질을 포기했던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물질보다 영적인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수입 자체보다 선한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사용할 때 풍성한 은혜가 예비된다.
무디는 자신에 대해서는 매우 검소하였으나, 나눔의 삶을 풍성하게 살았다.


4. 성경 연구와 경건에 실질적인 투자를 했다.
성경을 깊이 연구하며 묵상과 기도로 경건의 연습에 몰두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받을 가능성이 많다. 무디는 아침에 제일 먼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고개를 숙이고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5.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았다.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높고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깊고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넓고 하나님의
사람보다 더 놀라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디의 메시지의 중심은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6. 하나님의 은총으로 좋은 인물들을 많이 만났다.
좋은 사람은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은총이다.
복된 사람을 많이 만나도록 주님께 기도하라 또한 그런 사람을 원하기 전에 스스로가 복된
사람이 되어 주라.


7. 협력 가운데 충분한 신용과 능력을 쌓았다.
독불장군은 결국 실패하게 된다. 반드시 협력자를 얻으라.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라.
그 위에 신용과 덕을 쌓으라. 무디는 인간 관계에서 상당한 신뢰를 쌓은 인물이었다.
무디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신임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날마다 그분 앞에 나아가 엎드려야 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순수 복음에
입각한 연합을 위하여 진정 헌신하는 일꾼들을 찾으신다. 무디가 사역 가운데 절감한 부분은  
평신도 사역자가 매우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8. 겸손한 자세로 항상 배우려고 힘썼다.
겸손은 인간이 지녀야 할 첫 번째 덕목이다. 모든 사람에게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라.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시인할 줄도 알라. 무디는 자신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서 독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작은 은사, 작은 재능, 작은 지혜,  작은 수고일지라도 주님께서 함께 하실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작은 재능을 가졌을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배우며 개발하라.
하나님은 과거나 지금이나 겸손한 자를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기를 기뻐하신다.
무디는 가족 앞에서든 동료 앞에서든 자신이 잘못을 했을 때는 즉시 용서를 구하였다.
비록 아버지지만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다 오히려 자녀들의 방으로 들어가 그들이 잠들기 전에 사과를 하였다.

그는 자신을 매일 성찰하며(자기대면)자신의 모습을 자주 성경앞에 비추어 점검해 나갔다.


9. 은사와 재능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무디는 은사와 재능을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숨겨두지 아니하고 다섯 달란트 받은 종처럼
최선의 노력과 헌신을 다해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가진 은사와 지식과 재능이 얼마나 되느냐
보다 그것을 얼마나 선하게 적극적으로 사용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10. 그리스도의 심장, 즉 사랑을 소유했다.
하나님께 쓰임받은 인물들은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자이다.
그는 분명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소유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1:8)


11. 복음 전도에 뜨거운 열정이 있었다.
무디는 설교 중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강권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결정을 짓도록 하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목사도 이와 같이 설교 후 이와같이 하고 있다. 무디의 열정은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열정이었으며 사람들의 영혼을 깨우치는 열정이었다.
복음을 위해 가슴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무디의 열정을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사용하신 것이다.
충동 가운데 가장  희망이 있는 충동은 복음의 충동일 것이다. 복음에 충동을 받은 사람은 결국   
복음을 위해 살게 된다.


12. 기도의 사람이었다.
기도의 사람은 또 다른 기도의 사람을 낳는다. 기도의 사람은 맡겨진 사역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기도의 사람은 결국 하나님의 능력 있는 도구로 쓰임받는다. 그의 기도는 삶의
현장에서 살아 있었다는 것이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13. 환난과 장벽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무디는 어떤 분야든 진정한 영적 가치를 느끼고 열심, 열정,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여

자신의 목표를 성취해 나갔다. 그는 환난을 또 다른 기회로 삼았다.


14. 전폭적인 헌신이 있었다.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하려고 하지 말라 한 가지 일에 전폭적으로 뛰어들라 전폭적인 헌신만이
자신의 일을 성공시킬 수 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완전히 포기한 사람이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그는 마치 고전 음악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면서도 또한 강력하게 이끌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15. 성령의 권능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무디가 전도 사역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 바로 성령의 임재 이다.
그는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을 성령의 임재 가운데 전해야한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님의 권능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더 큰 일, 더 큰 능력을 구하는 자, 더 큰 능력을 지닌 자를 통해서 더 큰 일,

더 큰 뜻을 이루신다. 성령의  능력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충분히 열어 놓고 하나님의 능력을

전심으로 구하는 자에게 임한다.


16. 집회와 각 선교 활동을 철저히 준비했다.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의 준비를 무시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준비 위에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기도로 준비하는
자에게 더 놀라운 은혜를 예비하신다. 하나님은 준비된 도구를 사용하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도구인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대해 철저히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무디는 준비하는 일에 있어서도 무엇보다도 기도를 제일 중시했다.


17. 청중을 움직이는 설교를 했다.
누가 회중을 가장 잘 움직일 수 있는가 메시지의 능력을 소유한 사람일 것이다.     
누가 회중을 가장 잘 변화시킬 수 있는가 성경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주는 사람일 것이다.
하나님은 갑작스런 준비에 익숙한 설교자보다 평소에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묵상하며 준비해
둔 사람을 사용하신다.

 

사람들은 흔히 유창한  말이 사람들을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진정한 능력은 말씀 자체에서 온다. 무디는 다른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할지라도 말씀
자체를 준비해 놓지 않으면 설교자로서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무디는 설교할 때 흥미로운 세상 이야기가 아닌 오직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10:19) 


18. 최선을 다하는 달음박질이 있었다.
마라톤 경주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사람은 인내하며 전심 전력으로 달린 사람이다.
인생의 경주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사람은 거룩한 비전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달리는 사람이다. (딤후4:7,8)


19.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풍부한 인간성을 지녔다.
사람은 누구나 단점이 있다. 마찬가지로 누구나 장점도 있기 마련이다.
그 장점을 개발하면서 그 위에 바다 같은 포용력을 갖춘다면 뛰어난 존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
무디의 인간성은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무디의 장점 

① 영적인 지혜와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②육체적인 건강을 받았다.
③자신의 마음을 잘 관리했다.
④탁월한 지도력과 특출한 지혜를 소유했다.  
⑤참신하고 독창적인 방법을 사용할 줄 아는 자였다.
⑥선교에 대한 열정이 강한 것도 하나의 장점이다.
⑦그의 효심을 빼놓을 수 없다.


20. 신실한 믿음으로 복음 전도의 결심을 맺었다.
결실은 수고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에 속한다.
진정한 평가는 하나님이 하신다. 단지 우리는 능력 있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무디의 비석에는 이런 성경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사느니라”
출처 : 행복한 예수님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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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교회의 10가지 특징 

 

최근 영국의 한 단체는 건강한 교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몇 가지 가치관과 특징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다음 10가지의 특징들 가운데 당신의 교회에서 찾아 볼 수 있는 특징들은 과연 몇가지가 있는지

점검해보십시오.

1. 하나님을 높이는 예배(God-exalting worship)
건강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로서 정기적으로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온 마음과 힘을 다한다.

2. 하나님의 능력주시는 임재하심(God's empowering presence)
건강한 교회는 성령님의 인도와 매일의 사역 속에서 성령님의 능력주심을 적극적으로 구한다.

3. 밖으로 향한 초점(An outward focus)
건강한 교회는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는 데에 높은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4. 섬기는 리더쉽의 개발(Servant leadership development)
건강한 교회는 교회 속에서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리더쉽의 재능을 주신 사람들을 발견하고 그 재능을 개발시킨다. 그리고 이들이 섬기는 지도자들이 되도록 도전하며 기둥이 되도록 세워준다.

5. 사랑과 관심이 가득한 관계를 위한 헌신(A commitment to loving, caning relationship)
건강한 교회는 가족 간에, 교회 교인들 간에 그리고 각 교인들이 봉사하는 지역 사회 내에서 사랑과 관심이 가득한 관계를 쌓아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6. 공동체 속에서 배우고 성장한다(Learning and growing community)
건강한 교회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속에서 그들이 성장하도록 격려해 준다.

또 동시에 성도들이 안정되고 발전적인 분위기를 가진 공동체 속에서 서로간의 관계를 통해 성장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7. 개인적 훈련 (Personal disciplines)
건강한 교회는 연령에 관계없이 모든 성도들이 자신들의 매일의 삶 속에서 영적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모델이 될 수 있는 지도자를 세워주고, 그리고 도움이 되는 각종 자료들을 공급한다.

8. 청지기 의식과 후히 베푸는 삶(Stewardship and generosity)
건강한 교회는 성도들에게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 자원들을 관리하고 있는 청지기라는 자아상을 갖도록 가르치며 또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데에 있어서 자신의 것을 희생하는 너그러움을 가지도록 돕는다.

9. 지혜로운 행정과 책무 (Wise administration and accountability)
건강한 교회는 적절한 시설, 장비, 그리고 시스템을 적절히 활용하여 교회 사역이 성장하며 발전하도록 한다.

10. 다른 교회들과 네트워크(Networking with other churches)
건강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에 속해 있는 다른 지체들과 연합하며, 자원을 공유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들을 나누며 연합 예배 등을 통하여 관심의 폭을 넓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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