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2019년 고난주간 설교 by 폴리목사은혜의 설교 ( 선교사 언어 교육원 )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하신 모든분들을 사랑합니다.

오늘은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인류구원을 위한 고난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함께하실 성경말씀은 마태복음 27 45-54절입니다.

 

오늘은 고난주간의 첫날입니다. 고난주간은 오늘부터 시작해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금요일을 지나 무덤에 계셨던 토요일까지를 말합니다. 물론 예수님의 전 생애가 다 그랬지만 특별히 이 기간은  더욱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온갖 멸시와 천대와 고통과 저주의 죽음을 당하기까지 낮아지셨던 기간입니다. 그래서 이 기간을 고난주간으로 정하여 주님의 낮아지심과 십자가의 의미를 되새기며 경건의 훈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고난주일을 맞아 예수님이 당하셨던 고난의 의미를 되새겨 보며 그것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에 대하여 상고하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나눌 때에 진정 주님의 고난을 여러분의 것으로 받아들여 주님께서 고난을 통하여 인류에게 주셨던 죄사함의 은총과 생명의 은총을 온전히 경험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1.첫째로 예수님은 정신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정신적으로도 심한 모욕과 멸시를 당하십니다. 먼저 예수님은 흉악한 죄인이었던 바라바보다도 못한 존재로 취급당하심으로 멸시천대를 당하셨습니다. 빌라도가 바라바를 놓아주랴, 예수를 놓아주랴고 군중들에게 물었을 때 사람들은 예수를 놓아주느니 차라리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럴 수가 있습니까? 만약 사람들이 여러분을 세상에서 가장 흉악한 살인강도보다도 못한 사람으로 취급한다면 여러분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바라바와 비교되는 것 자체도 치욕이고 모욕일 진대 하물며 그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을 당하셨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물론 그뿐이 아닙니다. 14:65에 보면혹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우고 주먹으로 치며 가로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속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얼마나 어이없는 일입니까?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뺨을 치며, 또 얼굴을 때리면서 누가 때렸는지 알아맞춰 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종들이 예수님의 얼굴을 때리면서 조롱하였으니 천하에 이렇게 무지하고 어리석고 패역부도한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무지막지한 로마병정들과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에게서도 극심한 모욕과 멸시천대를 당하십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예수님에게 홍포를 입히고 가시로 면류관을 만들어 입히고는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치면서 침을 뱉으며 꿇어 엎드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하면서 온갖 조롱을 해댑니다.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성전을 헐고 사흘만에 짓는 자여, 이제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며 정말 무지하고 어리석은 조롱을 퍼부어 댑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예수님은 심지어 사랑하는 제자들로 부터도 버림을 당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는 자신의 생명의 위협 앞에서 예수님을 저주하며 부인하고 맙니다.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14:71) 

여러분, 사랑하는 제자로부터 이런 소리를 들어야하는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바라바보다도 흉악한 죄인 취급을 당하시고, 가시면류관 씌움을 당하시고, 침뱉음을 당하시고, 뺨을 맞으시고, 선지자 노릇 한번 해봐라, 십자가에서 한번 뛰어보라며 조롱당하신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이런 멸시천대와 조롱을 당했더라면 어떻겠습니까? 물론 힘도 없고, 빽도 없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수모를 당했다면 도리없이 참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영광과 찬양을 받으셔야 했던 분이십니다. 당장이라도 열두 영도 더 되는 천사를 불러 그렇게 자신을 모욕하는 자들을 요절 낼 수 있는 권세도 가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묵묵히 참으셨던 것입니다.

2.두번째로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디 그뿐입니까? 예수님의 당하신 그 육체적 고통은 또 어떤 것이었습니까? 예수님은 안토니아 요새에 있는 빌라도의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셔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십니다.

가시는 길도 고통과 아픔 그 자체였습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로 험한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로마병정들의 채찍소리는 쉬지 않고 들려왔습니다.

로마병정들이 휘두르는 채찍의 끝에는 쇠가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니 한번 휘두를때마다 살쩜이 떨어나가고, 그 상처에서는 쉴새없이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옮기는 발자국 발자국마다 온통 피로 얼룩이 졌고, 넘어지고 쓰러질때 십자가는 예수님의 등뼈를 짓눌렸습니다.

그러한 처절한 고통속에서 드디어 주님은 골고다 언덕에 도착합니다. 잔인한 로마 병정은 십자가를 땅에 놓고 예수님을 십자가위에 쓰러뜨렸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 시작합니다. 양팔을 벌려 십자가의 가로대에 대고는 커다란 대못을 주님의 팔목에 대고 박기 시작합니다. 골고다 언덕에 울려 퍼지는 망치소리와 함께 주님의 처절한 신음소리가 사람들의 폐부 속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병정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님의 두 발목을 포개어 십자가의 수직 대에 대고는 다시 망치질을 시작합니다.

망치소리는 산을 울리고, 멀리서 흐느끼는 여인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예수님의 신음소리도 처절하게 들려옵니다. 드디어 무지막지한 로마 병정들은 주님께서 못박히신 십자가를 일으켜 세우기 시작합니다.

십자가가 세워지면 질수록 못 박힌 주님의 손목, 못 박힌 주님의 발목에는 참을 수 없는 처절한 고통이 찾아옵니다. 살은 찢겨지고, 뼈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으스러져 갔습니다.

손목이 찢어지는 고통을 이기기 위하여 발목에 힘을 주면,

이번에는 발목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옵니다.

발목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하게 하기 위하여 발목에 힘을 뺄라치면

이번에는 손목이 찢어지는 처절한 고통이 온몸을 전율시켰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고통은 감당할 수 없이 온 몸과 영혼을 짓눌렀습니다. 주님의 숨소리는 자꾸만 거칠어져 갔습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이 주님의 영혼 깊숙한 곳까지 젖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자신을 그 처절한 고통속에 내 맡기셨습니다. 멸시도, 저주도, 고통도, 죽음조차도 주님을 십자가에서 내려놓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지금이라도 십자가에서 뛰어 내릴 수가 있었습니다. 성난 파도를 향하여 명령하셨던 주님이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향하여, 죽음을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라 호령하셨던 주님이셨습니다. 지금이라도 열두영도 더 되는 천사들을 불러서 로마 병정들을,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던 완악한 무리들을 당장 해치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저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23:34)

시간은 흘러 정오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어둠이 밀려 왔습니다. 가장 햇빛이 찬란히 빛나야 할 정오에 갑자기 해가 빛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두려움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멀리 멀리 도망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얼마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디선가 간간히 여인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한순간 주님의 절규가 들려왔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것은 인간 예수의 마지막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육신을 입은 인간으로서의 절규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다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평정을 찾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루었다 그리고 한참 후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는 마지막 말씀을 마치시고, 당신의 오셨던 그곳으로, 당신의 영광된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온갖 멸시천대와 조롱과 버림을 당하셨습니다. 가시면류관을 씌움과 침뱉음과 뺨맞음을 당하셨습니다. 살쩜이 떨어져 나가는 채찍질을 당하시며 험한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의 언덕길을 오르셨습니다. 그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손목이 찢어 졌습니다. 발목이 찢어지고, 뼈는 으스러졌습니다.

피는 흐르고 또 흘러 십자가를 빨갛게 물들이고, 골고다 언덕을 피로 물들였습니다.

그래서 태양은 빛을 잃어 버렸고, 땅은 진동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렇다면 그 처절하고도, 끔찍한 주님의 고통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 누구를 위해서? 무엇 때문에? 그 저주의 죽음을, 그 처절한 고통을, 그 멸시받은 죽음을 당하셔야만 했습니까?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창조자시요, 주관자시요, 섭리자신데, 없는 것도 있으라 하시면 있고, 있는 것도 없으라 하시면 없게 하시는 분이신데, 지구를 향하여 태양을 돌라하면 돌고, 달더러 지구를 돌라고 하면 돌게 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산자를 죽으라하면 죽고, 죽은 자를 살라하면 살게 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왜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런 처절한 아픔과 죽음을 당하게 하셔야 했습니까?

그것은 인류를 구속할 수 있는 길은 그 방법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대표적인 속성은 사랑과 공의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절대적인 사랑을 가지신 분이며, 동시에 절대적으로 의로운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당신의 모든 피조물들을 절대적으로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불의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책임을 물으시는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심각하게 타락한 인간의 죄의 문제는 도저히 스스로가 해결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모든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을 멸망의 길로 가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자가의 희생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하시지만 인간 속에 있는 부패된 죄악성은 결코 사랑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죄악성을 심판하시자니 사랑하는 인간이 죽겠고, 인간을 살리자니 공의의 속성이 만족하지 못하고, 그리하여 하나님은 드디어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의미입니다. 십자가는 곧 하나님의 공의의 상징입니다. 동시에 사랑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죄에 대하여, 불의에 대하여 절대로 묵과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의로움을 나타내주는 것입니다. 동시에 죄의 문제는 인간의 힘으로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었기에 당신의 외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죄로부터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시간 날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험하고 가파른 골고다 언덕을 무거운 십자가를 걸머지고 오르시던 주님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채찍에 맞고 또 맞으며, 넘어지고 엎어지고 쓰러지며 오르시던 그 갈보리 언덕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망치소리 요란하게 주님의 손목과 두 발목에 사각형의 대못이 박히던 그 순간, 그 골고다 언덕에 울려퍼지던 처절하고도 끔찍한 주님의 신음소리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상기하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님을 온전히 여러분의 심령속에 모셔들이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통하여 여러분의 모든 정신적, 육체적, 영적 고통을 치유 받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사망의 영원한 권세아래 고통받게할 죄의 권세에서 해방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때에

 진정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주님안에 있는 참된 자유와 평강과 생명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은혜의 설교] 성경대로 살자

 

 


사도행전 17장 10~15절

극단적인 상황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극단적 말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이라는 무늬만으로 살려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세상엔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복음, 예수님의 진리가 삶의 결론이 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많습니다. 여전히 가치관과 세계관의 변화 없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득실거립니다.

 

그러나 이대로는 안 됩니다. 복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예수님만으로 충분한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실제가 되어야 하고, 우리가 갖는 믿음이 부도 맞은 믿음이 아니라 살아있는 믿음이 되어야 하며, 천국과 지옥이 반드시 실제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 앞에서 내 이름표 달고 나대신 죽으신 예수님처럼 살아가려는 것이 우리의 핵심가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로만이 아니라, 내 생각과 지식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현장으로 내놔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 스타일의 삶입니다. 성경 스타일의 삶이란 신자이든 비신자이든 우리를 보고 “어! 저 사람 성경대로 사네? 스타일이 완전 성경스타일이네?”라고 말하는 삶입니다. 말씀을 항상 적용하는 삶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과 실라가 2차 전도여행 중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로 쫓겨 가서 말씀을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다 유대인이며 상당히 영향력도 있고 품위도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그들이 말씀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였고, 이것이 진리라는 결론에 이르자 날마다 성경을 연구했다고 말합니다. 나름 배운 사람들이었고 귀족 출신들이며, 고상하고 품위를 갖춘 사람들이었는데 말씀 앞에서 진지하게 반응하더라는 말입니다.

많은 분들이 말씀을 듣지만 믿음도 생기지 않고 자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성경의 단편적 지식들이 머리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뭘 좀 깨닫는가 싶다가도 말씀을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고 듣기 때문에 제자리걸음만 계속합니다. 그러나 베뢰아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변화됩니다. 말씀을 절대 결론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요. 알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고, 말씀이 결론이 되지 못하니까 그렇습니다. 진리가 결론이 되게 하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말입니다. 결론 났으면 결론으로 삼아야지 토를 달고, 내 상황에 꿰맞추려 하거나 이리 저리 빠져나갈 궁리를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말씀은 영원합니다. 내 형편이 어떠한가를 상관하지 않고 말씀을 결론으로 받아 순종했던 사도바울처럼 사는 삶이 성경스타일의 삶입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너희는 이때까지 우리가 자기 변명을 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고후 12:19)

 

 

우리의 신앙이 가짜이거나, 말씀이 머리에만 돌고 있거나, 천국과 지옥이 실제가 되지 않으면 망합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겔 16:4∼6)처럼 예수 생명 붙잡고 성경스타일로 승리하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신앙과 생활에서 모두 승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용비 목사(전주 온누리교회)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은혜의 설교

본문 : 마태복음 1 : 18~25

제목 : "임마누엘"

 

오늘날 남아선호사상이 많이 퇴색했습니다만,

예전에는 유난히 아들을 많이 낳기를 소원하는 가정들이 흔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많이 있게 마련입니다.


어떤 가정에서 아들을 낳기 위해 계속 임신을 하다보니

어느덧 딸이 많은 가정이 되었습니다.

연이어 세 딸을 낳고 네 번째 임신을 했을 때에 틀림없이 아들이라고 믿었지만,

낳고 보니 또 딸이었습니다.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산모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지 않고 죽든지 말든지

방 한 구석에 밀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죽지 않고 울기만 했습니다.

이 어머니는  “그래도 죽지 않고 빽빽거리는 것을 보니 명줄이 긴가보다” 생각하고

아기에게 젖을 물렸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춘기에 들어선 딸아이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았다는 것과 아무도 기뻐해 주는 사람도 없었으며

죽기만을 바랐던 아이였다는 사실이 당사자에게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때부터 마음에 병이 생겼습니다.

엄마를 극도로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엄마가 아무리 사랑해주고 잘해주려고 해도 그 사랑이 사랑으로 느껴지지 않는 

마음이 삐뚤어진 불행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보면 상처를 많이 받게 됩니다.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처를 받은 사람은 많아도

상처 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가장 큰 상처는 버림받은 결과 얻은 상처로,

특별히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았을 때 크게 상처를 입습니다.

요사이 이혼률이 높아지면서 내버려지는 아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 아이들 중에는 6~7세의 아이들도 있지만 갓 태어난 아이들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평생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음으로 해서 범죄한 인간은 노아 때에 와서 극도로 타락하여

심판을 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렀습니다.


창세기 6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후 노아의 여덟 식구를 제외한 모든 인류를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사람으로부터 버림받는 것도 불행한 일이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불행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버림받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3:10~12을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인간들이 다 타락하여 악해졌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악을 행하지 않고 선을 행하는 사람을 한 명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다 죄인입니다.

그 죄로 말미암아 멸망할 수밖에 없고 버림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따라 우리를 멸하지 않으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21절의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라고 하신 말씀에서 보듯이

하나님이 지어주신 그 이름에는 ‘구세주’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이름 자체가 예수님의 사명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사실을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전하면서,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엡 2:1~5).


그렇습니다!
우리는 본래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2:8~9에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13~14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가장 저주스럽게 죽으신 것입니다.

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저주스럽게 죽으셨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법을 어기므로 해서

저주를 받게 된 저와 여러분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은 물론 이방인들까지도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대신 저주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가 받은 복 가운데 가장 큰복은 “언제나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하여 주시는 복”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절대주권을 가지신 그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복을 다 받습니다.

범사에 형통하는 복과 전화위복의 복을 받습니다.

고난이 오고 손해를 보고 누명을 쓰고 노예가 되고 감옥에 가고

어려운 일이 생겨도 지나고 보면 더 잘되고 더 큰 축복을 받으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전화위복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창세기 21:22을 보면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라고 했고,

창세기 26:28에서 이삭에게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조차도 아브라함이나 이삭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고 고백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뿐만 아니라 야곱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가 있었으며,

요셉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범사에 형통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요셉이 형제들에 의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고

그곳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지만,

그 일 때문에 오히려 총리가 되고 축복을 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8:28을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아무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범사에 형통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이후로부터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갈 3:14,29).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면 구원을 얻은 그 사람 안에 성령이 계십니다.

보혜사 성령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6~18을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保惠師)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령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은 성령을 알뿐만 아니라

그 성령이 그 사람 안에 계시며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 3:16).

옛날 러시아에 지혜롭고 선한 황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매우 사랑해서,

과연 이 나라 백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 종종 노동자나 거지

차림으로 변장을 하고 가난한 백성들의 집을 찾아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가 방문한 사람들 중에 아무도

그가 황제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중에 어떤 사람은 황제를 잘 대접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문전박대하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황제가 오두막에 사는 가난한 사람을 찾아가게 되었는데

얼마나 극진히 대접을 잘하는지  음식만 먹고 가려고 했으나

주인이 간곡히 붙잡는 통에 하루 밤을 함께 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궁으로 돌아온 황제는 왕복을 입고 다시 그 사람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깜짝 놀랐겠습니까.

"아니, 어제 밤에 나와 함께 잔 분이 이 나라의 황제였다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황제는 "그대는 지난밤에 나를 정성껏 대접했노라.

이제 내가 그대의 소원을 들어주겠다.

그대의 소원이 무엇인가 말해보라."

그러자 이 사람은 허리를 굽히고 "황제께서는 궁궐과 그 영광을 떠나

이 어둡고 비천한 장소에 저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제가 먹는 초라한 음식을 함께 드셨고,

저와 거처도 함께 하셨습니다.

황제께서 저와 함께 거하셨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만족합니다.

달리 아무런 소원이 없습니다." 라고 겸손히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은 이 땅의 황제가 아니라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십니다.

우리 주님은 하루 밤만 주무시고 가시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떠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해주시는 축복이야말로 축복 중의 가장 큰 축복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지 사흘만에 부활하셨을 때,

이 사실을 모르고 낙심이 되어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과 함께 주거니 받거니 얘기를 나누며 걸어가셨으나

이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지 그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부활하신 주님이

저와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여주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중에 외로움을 느끼시는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홀로 있을 때에도 혼자가 아닙니다.

언제나 주님이 함께 계십니다.

요한복음 5:24의 말씀대로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 순간 영생을 얻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다시는 정죄함을 받지 않게 되었고, 결단코 심판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하나님이 함께 하여주심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습니다.

임마누엘의 복을 받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 아직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아니하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지금 예수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기독교 외에 유교, 불교, 이슬람교 등등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 나름대로 진리를 전파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를 믿게 된 어떤 분이 자신이 왜 기독교인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실수로 우물에 빠졌는데,

그 우물의 깊이가 너무 깊어서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살아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사람 살려! 사람 살려!”라고 외쳐댔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지나가면서 이것을 보고 “아이고, 이 일을 어찌할꼬.

아무래도 당신은 전생에 죄가 많아서 이렇게 된 모양이니

참회하고 저승으로 가시오.”라고 말하고 안타까워하며 지나갔습니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그 곁을 지나가다가 우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사람은 누구나 아차하면 실수하는 법이지.

이번 일을 거울 삼아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조심하게나, 쯧쯧." 하며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이 사람은 깊은 절망감에 빠졌습니다.

더구나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점점 굳어오고 온 몸에 힘이 빠져

물 속으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또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사람이 우물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고 급히 어디론가 달려가 사다리를 구해가지고 와서

우물 밑으로 내려가 거의 다 죽게 된 이 사람을 살려냈습니다.


이 이야기는 비유로, 첫 번째 사람은 석가모니를 말하고,

두 번째 사람은 공자를 말하며,

세 번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왜 범죄했느냐?”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느냐,

“어떤 죄를 범했느냐”라고 절대로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책망하시지도 않으시며 조목조목 따지지도 않으십니다.

대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말씀하십니다(마 11:28).

그리고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고 말씀하십니다(계 3:20).


예수님은 죄가 많은 사람이든 적은 사람이든 묻지 않으시고

누구든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이 열리기만을 애타게 기다리십니다. 

마음의 문은 결코 바깥에서 열 수 없기 때문에 본인이 문을 열어줄 때까지

주님은 문 밖에 서서 두드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보면,

비록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허랑방탕하게 다 쓰고 돌아온 

이 아들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무조건 받아주셨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아들이라고 기뻐하며 큰 잔치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나오기만 하면, 예수님께 나오기만 하면 됩니다.

회개는 예수님께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참 회개는 예수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오기만 하면 죄사함을 받습니다.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죄를 이길 힘을 주시고,

변하여 새 사람되게 하시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나오시라고 권하면 “술 끊고 가겠다.”

​혹은 “담배를 끊고 가겠다.” 혹은

“지금의 죄된 생활을 좀 정리하고 교회에 가겠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앞서 비유에서 말씀하셨듯이,

우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 사람은 도저히 자기 힘으로 살아나올 길이 없습니다.

내 힘으로 죄를 버리고, 내 힘으로 바르게 살고,

그 다음에 교회 가겠다는 사람은 영원히 교회에 나오지 못합니다.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죄가 있는 대로, 허물이 있는 그대로,

부족하지만 무조건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 회개입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한 성도가 됩니다.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기만 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고

임마누엘의 복을 받게 하실 줄 믿습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자.(Series 1) - 박 한 응(朴 漢 應)

본  문 : 로마서 12 : 1 - 3
제  목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자

찬  송 : 213, 214, 321, 325, 327, 539

 

할렐루야!!
오늘도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충만한 은혜를 내려주시려고 오늘 거룩한 날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은사를 충만하게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예> 서울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하루는 그 교회의 권사님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저, 목사님 긴히 말씀 드릴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아, 예, 어려워 마시고 말씀하십시오’ 라고 대답을 하자 그 권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저 목사님, 저 아무래도 권사를 못하겠습니다.’
‘아니 권사님,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까지 잘 해오셨잖습니까?’
‘일도 많고 너무 바쁘고 해서 집사하고 바꿔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권사는 못하고 집사는 할 수 있습니까?’
‘네 가만히 보니까 집사는 심방도 하지 않고, 또 하는 일도 별로 없고, 이름만 가지고 있어도 되잖습니까?’ 라고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하기야 우리 교인들 중에는 권사라고 해도 심방 한 번 하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속장이라고 해도 속회 심방 한번 하지 않는 속장도 있습니다.
집사, 권사라고 해도 새벽기도 한 번도 나오지 않고, 십일조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달에 감사헌금

한 번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남이 안 한다고 내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죽으면 따라서 죽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길고 짧은 것은 주님 심판대 앞에 가 보아야 합니다. 주님 심판대 앞에서는 모든 것이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4: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갈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나의 불신앙적인 행동이 나 하나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따라 행하여 함께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이와 같은 불신앙적인 신앙생활이 남에게 믿음의 상처를 준다거나 실족케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와 책망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8:6-7)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 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잘못하는 사람을 본받으려고 하십니까? 기왕이면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을 본받아야 합니다. 도둑놈 따라가면 결국 도둑놈 됩니다. 노름꾼 따라다니면 결국 노름꾼 됩니다. 게으름뱅이를 따라가면 결국 게으름뱅이가 됩니다.
민수기 16:3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가데스바네아에서 고라가 다단과 아비람과 온과 더불어 당을 조직하고 모세를 반역하였습니다. 이때 고라를 추종하는 사람이 250명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고라와 그의 가족들을 땅을 갈라서 생매장을 시켰고 추종하던 250명은 제단에서 불이 나와 모두 타죽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은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공존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함께 자라지 않습니다. 추수 때가 되면 반드시 가라지를 먼저 묶어 지옥 불에 던져 태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13:29-30)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또한 마지막 때가 되면 악한 사람은 더 악해지고 선한 사람은 더 선해진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세가 가까울수록 믿음 있는 사람은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믿음 없는 사람은 자꾸만 하나님과 멀어지고 교회와 멀어지고 세상과 가까워집니다.
(계22:10-12)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 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 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그뿐만이 아니라 말세에는 사람들이 완악 하여져서 바른 교훈이나 바른 말 듣기를 싫어한다고 하였습니다.
(딤후4: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래서 신앙으로 말씀으로 권면을 하여도 듣지 않습니다.
주일성수를 하여야 하늘의 신령한 영적 축복을 받는다고 하여도,
새벽기도를 하여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동행하여 주시며 만사를 형통케 하시는 축복을 받는다고 하여도,
또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물질의 축복을 받고 황충을 금하며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는다고 아무리 설교를 하여도 마이동풍이고 권면을 하여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완악하고 강퍅해졌기 때문입니다.

 

집사, 권사, 속장은 이름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부르기 좋으라고 붙여준 이름이 절대로 아닙니다. 교회에서 받은 직분은 그 직분이 어떤 것이든 간에 죽도록 충성하라고 주신 직분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멘>
 (계 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그런데도 그 직분에 충성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을 때에 반드시 책망을 받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겔16:59)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맹세를 멸시하여 언약을 배반 하였은즉 내가 네 행한 대로 네게 행하리라”
(마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지금까지 쌓여만 가던 모든 죄악은 모두 아침 안개의 사라짐같이 빽빽한 구름이 물러감같이 사함을 받고 예수님의 흘리신 보혈로 씻음 받아 거듭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아 멘!>

 

그래서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여러 가지 방법론이 제기되겠습니다만 저는 오직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예배』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에게 주신 사랑이요 은혜이며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할렐루야!! <아 멘!>
만약에 우리에게 예배가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생각만 해도 앞이 캄캄합니다. 하나님은 죄악으로 타락한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허락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렇게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선교도 중요하고 기도도 중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입다. 그래서 오늘과 다음 주일까지 예배에 대한 말씀으로
오늘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자”
오늘 저녁예배에는 “예배를 바로 드려야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인다”
다음 주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방해하지 말자”
그리고 다음 주일 저녁예배에는 “예배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
이렇게 시리즈로 말씀을 드리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다 같이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자”<아멘!>
우리 ○○교회 성도들은 기왕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1.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에서 인도하시고 모세를 통하여 성막을 건축케 하신 후에 성소에서 만나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25: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하나님이 우리와 만나 주시는 곳은 성전입니다.
출30:6절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곳에서 너를 만날 것이라” 고 하셨고 왕상 9:3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라고 하셨습니다.
 (시11:4)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장소는 광야가 아닙니다. 세상이 아닙니다. 골방도 아닙니다. 여러분의 안방도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 교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1) 하나님과 만날 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①삭개오는 예수님을 한 번 보기만 하여도 평생소원이 없으리라고 생각하였지만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오시고 그로 인하여 그의 온 가정이 구원받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②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는 죽어가면서도 메시아로 오셔서 인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는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영혼이 구원을 얻었습니다.
(눅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③요한복음 4장 5절 이하의 기록된 사마리아 수가성의 한 여인은 남편을 다섯씩이나 거느린 한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이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남으로 구원을 받고 그의 인생이 변화되었으며 그리스도를 온 성에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④막달라 마리아는 창녀였습니다. 일곱 귀신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만나고 그의 인생이 변화되어 일평생 주님을 섬기는 생활로 변화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후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의 무덤에 장사지낸 지 삼일 째 되는 날 아침 일찍이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갔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2) 하나님과 만나고 예수님과 만날 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를 치료하는 여호와니라”(출15:26) 고 말씀 하셨고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①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을 고치셨습니다.
       ② 여리고성의 소경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③ 열 명의 문둥이를 고치셨습니다.
       ④ 거라사 지방의 군대 마귀 들린 자를 고치셨습니다.
       ⑤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주님을 만난 모든 사람들이 모두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주님은 지금도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와 만나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질병을 고쳐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 멘>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는 자는 곧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병 고침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는 줄로 믿습니다.<아 멘!>

(3) 하나님을 만날 때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① 창21:14절 이하에는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쫓겨난 하갈이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가지고 온 물과 떡이 모두 떨어지고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죽어 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방성대곡하여 울 때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저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샘물을 주시고 그의 아들 이스마엘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② 요한복음 6장의 말씀에는 갈릴리 바닷가에서 일어난 한 가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좇아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예수께서 5병2어를 가지시고 저들을 배불리 먹이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5병2어를 가지고 남자 장정만 5천명을 먹였다는 것은 초자연적인 기적의 역사입니다. 바로 한 소년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③ 왕상 17:8절 이하의 말씀에는 사르밧의 한 과부가 선지자 엘리야를 만났습니다. 그 과부는 엘리야 선지자의 요구를 듣고 순종하였을 때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기름병에 기름이 끊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자연적인 기적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2. 예배는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받는 시간입니다.

(사55:6-7)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분배받아 집을 나간 아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허랑 방탕하여 허비한 후에 설상가상으로 흉년까지 들어서 아사 상태에까지 되었습니다. 이때 그 아들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들이 집을 떠난 후로 아버지는 그 아들이 언젠가는 돌아올 것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는 거지가 되어서 돌아오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달려가서 그 아들을 얼싸 안았습니다.
아들이 생각하기엔 아버지가 도무지 용서해 줄 것 같지 않아서 아들은 고사하고 그저 품꾼으로라도 받아만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라는 생각으로 돌아왔을 때 그 아버지는 아들의 지난 모든 일을 묻지도 않으시고 용서해 주시고 아들로서의 모든 권한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라고 말씀하셨고,
또 기억치도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
(렘31:34)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할렐루야!!

 

3. 예배는 하나님과 화목 하는 시간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거역하였기 때문에 죄를 범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원수 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우리가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롬5:8-10)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복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고 하셨고
        (욥22: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 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우리의 예배를 통해서만이 할 수 있습니다.

 

4. 예배는 우리의 영의 양식을 공급받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영적 생명을 공급받는 귀한 시간입니다.
        모든 생명체들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아니면 식물들까지도 성장할 수 있는 양식을 공급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영적 생명의 양식을 공급받을 수 있는 오직 귀한 시간이 바로 예배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배 시간이야 말로 얼마나 귀한 시간인 것을 새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예배를 소홀히 하는 성도가 있어서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2:30) 고 말씀하셨고 예수님은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에게 분을 내시며 저들을 책망하여 내쫓으셨습니다.

         우리의 심령이 영적으로 기갈이 들으면 안 됩니다. 영적으로 갈급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영혼은 항상 은혜가 충만하고 성령이 충만하고 하나님이 시간마다 순간마다 주시는 은혜로 충만해야 합니다.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하나님은 항상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채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시107:9)
         (사25: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라”
         그런데 문제는 기름진 것이 눈앞에 있는데 먹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의심과 두려움과 세상의 재리와 염려로 인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영의 양식을 먹지 못하여 영양실조가 되었는데도 이 핑계 저 핑계로 하나님의 주시는 신령한 영의 양식을 먹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22;1-14절 말씀에 예수님은 혼인 잔치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혼인 잔치를 베푼 왕이 종들을 불러 청한 사람을 모셔오라고 하였지만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거절하고 사양을 하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청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무슨 이유를 대면서 거절하고 사양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심령 상태는 지금 아사(餓死) 상태인데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 말세가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암8:11-13)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 하여 피곤하리라”
        이와 같은 마지막 말세가 가까이 다가오는 이때에 오늘 예배드리는 ○○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은혜를 사모하고 간구하여 항상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5.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1) 신령한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요4:23-24)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십니다.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면 오히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처럼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습니다.

(2) 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산 예배는 피 흘림이 있는 예배입니다.
        피 흘림이 있는 예배는 희생과 헌신과 감사가 있는 예배를 말합니다.
        희생이 없고 감사가 없고 제물이 없는 예배는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없고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제단 쌓는 곳에 강림하셨고, 제물 있는 곳에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또 제물 있는 곳에서 만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29:42)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 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3) 새롭게 변화된 몸과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말씀에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변화를 받는 것” 은 성령의 역사로 되어지는 것으로써 내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는 세상 것을 다 끊어버리고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성령이 역사 하시고 거듭남의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며 그런 다음에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옷도 아무렇게나 입던 옷 그대로 입고, 또 지각이나 하고, 와서는 졸기나 한다면 이런 예배를 진실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는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여 부르짖고 찾아서 만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신4:29)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잠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렘29:12-14)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막혔던 모든 문제들이 열려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구원의 문이 열려지고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모든 질병도 깨끗하게 고침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아 멘!>
         아무쪼록 이 시간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구주가 되심을 고백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은총과 축복을 충만히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오사카 통역 변화 - 하용조 목사 -





(요한복음19장 28절-42절)


28.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31.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2.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35.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니라


36.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함이라


37.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38.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39.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40.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41.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42.이 날은 유대인의 예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오늘의 설교


오사카 통역 변화 - 하용조 목사 -



오늘의 추천찬양(미션스쿨)


은혜의찬양 / 포근한 주님이 사랑 -찬양전도사 이래미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열정의 리더쉽 - 하용조 목사 -





(요한복음 19장 1절-15절)


1.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2.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3.앞에 와서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 하며 손바닥으로 때리더라


4.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5.이에 예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저희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6.대제사장들과 하속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


7.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8.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9.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서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10.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줄 알지 못하느냐


11.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


12.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3.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와서 박석(히브리 말로 가바다)이란 곳에서 재판석에 앉았더라


14.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저희가 소리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가로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오늘의 설교

열정의 리더쉽 - 하용조 목사 -



오늘의 추천찬양(미션스쿨)

은혜의 찬양 / 성령 하나님 나를 만지소서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기도에 관한 설교 - 하용조 목사 - 





(요한복음 18장 1절-11절)


1.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


2.거기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가끔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곳을 알더라


3.유다가 군대와 및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을 데리고 등과 홰와 병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4.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5.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가라사대 내로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저희와 함께 섰더라


6.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하실 때에 저희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7.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저희가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8.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로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 하시니


9.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10.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1.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오늘의 설교


기도에 관한 설교 - 하용조 목사 - 




오늘의 추천찬양(미션스쿨)


은혜의 찬양/ 용서하소서 -전용대 목사-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교회의 10가지 특징 - 하용조 목사 -




(요한복음 17장 16절-26절)


16.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17.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19.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20.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줄 알았삽나이다


26.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오늘의 설교

교회의 10가지 특징 - 하용조 목사 -




오늘의 추천찬양 (미션스쿨)


은혜의찬양 / 심령일 가난한 자는 -전용대 목사-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목사가 목사에게 - 하용조 목사 -




(요한복음 17장 1절-10절)


1.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6.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줄 알았나이다


8.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9.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오늘의 설교


 목사가 목사에게 - 하용조 목사 -




오늘의 추천찬양(미션스쿨)


은혜찬양/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배우자 선택 - 하용조 목사 -




(요한복음 16장 23절 -33절)


23.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25.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26.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27.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줄 믿은 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


28.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29.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사도 하지 아니하시니


30.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서 나오심을 우리가 믿삽나이다


31.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33.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오늘의 설교 

배우자 선택 - 하용조 목사 -


오늘의 추천찬양 (미션스쿨)


은혜의 찬양 / 사명 - 찬양전도사 이래미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