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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를 위한 기도문 (성령의 능력으로 건강한 믿음생활을)  

 

 

 

한 사람의 생애를 통하여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

아이가 하나님의 복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길 소망합니다.

샘 곁에 심긴 나무처럼 푸르게 자라고 아름답게 꽃을 피워 가지가 담을 넘고 가지마다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자신의 생애와 가족을 복되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큰 유익을 끼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 아이에게 내려서

하나님께 사랑받고 사람들에게 존중받으며, 대대로 믿음의 명문 가문을 이룰 수 있게 하옵소서.


이 아이가 아브라함처럼 새로운 역사를 열고 많은 사람에게 복 받는 길을 여는 축복의 통로가 되길 소망합니다.

많은 사람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복된가문을 이루며 나날이 번성하고 잘되는 복을 받게 하옵소서.

아이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복이 임하게 하시고, 아이를 대적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상대하여 주옵소서.


성경에 기록된 노아,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 솔로몬에게 하신 좋은 약속들을

아이에게도 상속해 주셔서 평강을 이루어 주옵소서.


아이에 대한 특별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아이의 산성이시며 방패이시며 목자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힘이시고 소망이시며 회복자 되심을 믿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치유자되시고 공급자이시며 구원자 되심을 믿습니다.

아이에게 주신 귀한 약속들이 이루어 질 것을 믿습니다.


아이 내면 세계를 충실하고 강건하게 하사,

내면의 영적 질서가 잘 잡혀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안에서 밖으로 삶을 경영하는 믿음의 자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의 말씀으로 날마다 새롭게 하시고 은혜와 진리로 마음을 붙들어 주옵소서.

성령의 능력으로 건강한 믿음생활을 하게 하시고, 믿음의 뿌리를 깊게 내리게 하옵소서.


주여 아이가 자신이 하는 일에 복을 달라고 기도하기 보다 복 받을 일을 많이 하게 하시고

자신을 위해 복을 쌓기 보다 받은 복을 나누는 축복의 통로 되게 하소서.


아이가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길이를 알고, 항상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아이가 자라면서 우리 가정이 형통하고 화목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하실 것을 믿으며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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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찬송 : ‘나의 영원하신 기업’ 435장(통 492)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창세기 41장 37∼41절 
 
 말씀 : 바로가 꿈을 꿨습니다.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있는데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가에 서 있더니 그 흉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1∼4절) 

바로가 깨었다가 다시 꿈을 꿨는데 이번에는 이삭에 관한 꿈이었습니다.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5∼6절) 이 꿈에 대한 요셉의 해석은 일곱 해 풍년 뒤에 일곱 해 흉년이 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요셉의 행동을 통해 깨닫는 게 있습니다. 첫째, 아무거나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고 밀고 나가는 게 아닌, 주신 응답 속에 확신을 갖고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꿈 해석에 이어 이렇게 전합니다.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32절) 즉 꿈 해석의 능력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러한 확신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전했습니다.

둘째, 겸손에 대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일을 잘 감당하고 나면 어느새 하나님은 사라지고 자신의 모습만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겸손을 가르치셨나 봅니다. ‘예전에도 하나님이 하셨고 지금도 하나님이 하시고 앞으로도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는 말은 우리를 사탄에 내어 주지 않을 최고의 방패와도 같은 믿음의 고백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꿈 해석의 능력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겸손히 고백합니다.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라.’(16절)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25절)

셋째, 이렇게 하나님을 높이는 자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지혜를 주셔서 꿈 해석뿐 아니라 어떻게 꿈 내용을 해결할지에 대해서도 알게 하셨습니다.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나라 안에 감독관들을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그들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읍에 쌓아 두게 하소서.’(34∼35절)

바로는 요셉에게 애굽의 총리 자리를 줍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맡깁니다. 일개 히브리 종을 애굽의 총리로 삼고 이 모든 일을 맡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39절)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복 가운데 누리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분별의 영을 주시고, 하나님을 높이며, 주신 복을 받아 잘 간직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방일섭 목사(서울 두모갓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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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용기

 

 

본문 [다니엘 1:8]

오늘은 '용기' 에 대해 말씀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용기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알렉산더나 히틀러와 같은 세계적인 지도자에게 있는 세속적인 용기가 있습니다. 이런 세속적인 용기의 기초에는 '신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념이 없으면 용기도 없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도 세상적인 용기입니다.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은 극복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말하고자 하는 용기는 성경적인 진정한 용기입니다. 이 용기의 절정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것에 있습니다.

 
성경적인 용기를 가진 사람 가운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바로 '요셉' 과 '다니엘' 입니다.


용기의 사람 요셉


요셉은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입니다. 그는 최악의 상황을 최선의 축복으로 바꾼 사람입니다.

그는 열두명의 형제가 있었지만 4명의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배다른 형제였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비극적으로 태어났고 자라면서도 배다른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타국으로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잘하면 잘할수록 결과는 더욱 나쁘기만 했습니다. 순결을 지키고 최선을 다할수록 얻어지는 대가는 최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원망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서 원망이라는 것이 거세되기를 축원합니다. 원망이나 불평이라는 개념이 없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요셉의 신앙특징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놓치지 않은 것입니다.

요셉은 그의 나이 30세에 총리대신이 됩니다. 용기와 믿음의 결과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바보같기만 했던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은 총리대신이 된 이후 7년의 풍요로운 시대에도 자기 백성이 사치하고 방자하게 살도록 그냥 두지 않고 절약하여 곡식을 창고에 저장하게 합니다.

요셉의 지혜로움을 봅니다. 7년의 흉년이 왔을 때 그는 자기 백성을 결코 굶주리게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용기있는 한 총리를 보게 됩니다.


두 번째 다니엘이라는 사람을 통하여 우리가 배우고 따라야 할 용기의 원형을 배우기 원합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왕 때에 포로로 잡혀온 젊은이였습니다. 미래가 없는 다니엘이 포로생활에서 자신을 포로로 삼은 왕을 섬겨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돌린 용기를 살펴봅시다.

 

요셉은 총리가 되었지만 다니엘은 삼대째 왕을 섬기며 신분상 세 번째 서열까지 올라간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예수믿기 때문에 신임받고 덕을 베풀고 희망을 주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 바랍니다.


다니엘의 참된 용기를 표현해주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다니엘서 1:8을 보십시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진정한 용기는 뜻을 정할 때 시작됩니다. 상황을 보고 마음을 결정하면 늦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뜻을 정합니다. 뜻을 정한다는 것은 용기의 사람으로 살기를 시작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살기로 결정하십시오. 그러면 새로운 용기가 생겨날 것입니다.


히브리서 6:19을 보면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닻을 하나님께 내릴 때 아무리 파도가 칠지라도 도리어 안연하게 될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닻을 내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위해 살겠다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에게 닥친 고난
 

다니엘에게는 세가지 시련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왕을 섬기기 위해 3년간 훈련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벨론의 문화와 역사를 배웠습니다.

두 번째, 다니엘과 세친구에게는 이름을 바꾸어야 하는 수치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세 번째, 왕이 먹는 진미를 먹어야 했습니다.

 
다니엘은 이방문화를 배우고 이름을 바꾸는 것은 별문제가 아니었지만 음식을 먹는 일은 율법을 범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단호히 거절합니다.

뜻을 정하면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어려움이 왔을 때 타협하고 변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손해를 보는 용기도 생깁니다. 이 세상을 이기고도 남을 만한 진정한 믿음과 용기가 생기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십니다. 1:9을 보면 환관장이 그를 도와주고, 1:17을 보면 그와 친구들에게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십니다.

다니엘에게는 특별히 꿈을 해석하는 능력을 주십니다. 20절을 보면 그들에게 일을 묻는 중에
 온나라의 박수와 술객들보다 십배나 총명을 더하십니다.
 

뜻을 정하면 하나님께서 돕는 사람들을 주시고 지혜를 주십니다. 용기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닻을 내리고 말씀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때 생겨납니다.

 
두 번째 다니엘이 용기를 가지고 승리하게 된 까닭은, 그의 기도생활이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시간을 정해놓고 모든 사람이 알도록 기도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의 기도생활을 알도록 했습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왕이 2년 되던 해에 위기를 맞습니다. 하루는 왕이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이 얼마나 이상하던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왕은 온 나라의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를 다 불러 모아 놓고 왕이 꾼 꿈을 알아 맞추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이 꿈으로 인해 왕이 번민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도 이것을 알아내어야만 했습니다. 위기의 탈출방법은 기도였습니다.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기도하면 용기가 생깁니다. 기도하면 지혜가 생깁니다. 기도는 모든 문제의 해결방법입니다. 이상하게도 기도하고나면 긍정적인 마음과 용기가 생깁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기도하면 십자가를 집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적과 응답을 베풀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고난이 있는 만큼 기도하십니까? 우리의 기도는 너무나 사치스럽고 낭만적이고 계산적입니다. 깨어 기도하십시오.


승리의 비결은 기도

 

기도는 다니엘로 하여금 상상할 수 없는 위협속에서 개선가를 부르고 승리의 잔을 들게 했습니다. 포로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기적을 보이며 사자의 입을 막고 뜨거운 풀무불속에서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지금도 믿음을 가지고 불가능의 벽을 뚫고 나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오십니다.

 
3:18을 보십시오.

"그리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다니엘이 왕의 총애를 받게되자 모함하는 세력이 생겨났습니다. 그 사람들은 왕에게 왕을 위하여 금신상을 만들고 모든 사람이 그 곳에 절하도록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왕은 그 말을 기뻐하며 승낙했습니다.

왕이 명령을 내려 금신상의 낙성식에 참여하고 그것에 절하라고 했습니다. 만일 이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풀무불에 던져 죽이겠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절을 했지만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절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왕의 손에서도 하나님이 건져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곱배의 뜨거운 불속에 던져진 다니엘과 친구들을 천사가 함께하여 다시 살아난 기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타협하고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세상사람들이 모두 하는 방법으로 믿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죽고 다리오가 왕이 되었습니다. 다리오왕에게 신임을 받는 다니엘을 모함하는 사람들은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는 습관을 이용해 함정을 만들었습니다.

왕에게 가서 30일동안 왕 이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절하는 사람은 사자굴속에 집어넣자고 제안합니다. 왕은 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사람들이 보거나 보지 않거나 하루에 세 번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도합니다. 조서가 내린줄 알면서도 다니엘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6:10을 보십시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결국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갔지만 천사가 사자의 입을 막아 살 수 있었습니다.

 
 

오늘 위기를 극복해내는 유일한 비결은 다니엘의 믿음과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진짜 용기를 가진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위하여 죽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을 수 있는 것은 용기입니다.

 

자기를 포기할 수 있는 것은 용기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과 제게 남은 것은 믿음의 싸움입니다. 금년 한해 믿음의 사람으로 살고 뜻을 정하여 용기를 가지십시오. 이것이 축복의 비결입니다.

오늘 우리시대만큼 용기가 필요한 시대는 없습니다. 이제 정직하게 삽시다.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하게 산 사람이 승리했다는 간증을 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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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헌신예배

 

사랑으로 우리를 길러주시는 하나님

 

우리들에게 귀한 배움의 시간을 주신 것을 감사드며

 

좋은 교회와 귀한 믿음의 선배들과 우리를 위해서 늘 기도해 주시는 모든 성도님들을 허락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의 기도에 힘입어 하루하루 자라나고 있으며,

 

키와 몸이 자랄 뿐만 아니라 믿음도 자라고 생각하는 마음도 자라서 하나님 원하시는 인물들이 다 될 줄 믿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또한 우리들을 디모데처럼 기르시기 위해서 힘쓰시는 바울 사도와 같은 선생님들을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분들을 통하여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 몸에 녹아서 뼈에 양약이 되게 하옵소서.

 

그 말씀에 순종하며 우리가 새사람으로 변화되게 하시고, 말씀의 전파에 힘쓰며 어릴 때부터 주님이 원하시는

 

삶의 도리가 무엇인지 잘 알고 사는 참 지혜로운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창세기의 요셉은 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우리에게도 밝고 아름다운 꿈을 허락하시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하고 인내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질 때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교회는 부흥하며,

 

우리 모두에게는 진실된 기쁨이 넘치는 귀한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우리 모두에게는 진실된 기쁨이 넘치는 귀한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다니엘처럼 신앙의 정조를 지키는 굳센 믿음의 인물들이 다 되게 하옵소서.

 

아무리 어려운 시험이 올지라도 주님 의지하여 결코 넘어지지 아니하고 바로 서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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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예배/십자가


어떤 십자가를 지고 가십니까?

(막15:16-32)

 

  “아무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마 16:24).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예배의 주제입니다. 모든 정상적인 목회자들은 모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릅니다. 그러나 목회자마다 십자가를 지는 느낌은 다릅니다. 십자가에 대한 나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1. 억지로 지는 십자가(막15:16-25).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에 이르러”(막15:21-22).

 

  구레네 사람 시몬은 예수를 대신하여 얼마동안 십자가를 "억지로" 짊어져야 했습니다. 군인들의 창과 칼 앞에 자존심을 다 구기고 마지못해 십자가를 졌습니다.   이날은 시몬에게 "개 같은 날의 오후"며 재수 없는 날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시몬에게 원치 않았던 굴욕이요,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며, 빨리 던져버려야 속이 시원한 불편한 짐이었으며 그가 비방하고 조롱한 형벌에 불과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의 위협에 시달리다 더 버티면 어쩐지 뒤끝이 좋을 것 같지 않다는 느낌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은 아닐까요? “이보게나, 내가 피 흘려 산 교회를 위해 그렇게 불평과 원망의 느낌을 가지고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면 이제 그만 내려놓게나. 내 마음이 편치 않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마16:24). 십자가의 감격을 회복하도록 주님, 도우소서! 십자가를 하나 더 얹어주실지라도 기꺼이 지고 갈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십자가의 은혜로 채워주소서!


  2. 마취제를 거절한 십자가(막15:22-25).


  “내가 목마르다!” 예수의 외침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십자가를 지는 삶에는 목마름과 고통이 있습니다. 갈증이 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고통과 갈증을 면하기 위해 마취제 같은 쓸개 탄 즙은 거절하셨습니다. 우리들이 목회자가 되어 한 없이 양보하고,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려 할 때 고통과 목마름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피곤해지는 순간이 있으며, 좌절을 겪기도 합니다. 하나님, 십자가의 목마름을 성스러운 목마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우소서! 이런 저런 목마름을 환영하는 모습으로 살 수 있도록 도우소서!  

  예수님께는 십자가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있으나 쓸개 탄 마취제를 거절하심으로 온 몸 그대로 고통을 느꼈습니다. 비통한 희롱과 조롱, 외면이 주는 정신적 고통도 감수했고 무서운 저주도 온 몸과 영으로 받았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로 향하는 가파르게 보이는 해골의 언덕을 오를 때 사람들이 제공할 고마운 마취제를 고대하며 십자가를 등에 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위로인 마취제가 필요 없었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눅23:34). 하나님, 사람들의 비난과 비평에 몸서리치고 있는 저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는 자들이나 죽을 준비가 되었다고 큰소리치고는 잽싸게 달아나 버린 제자들을 향한 원망의 느낌, 버림받았다는 서러움의 느낌을 못 박아 버렸기에 마취제를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자기 연민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기 때문에 마취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길 원했습니다. 십자가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여, 우리들을 축복하소서! 십자가를 하나님의 위로며 영광으로 들어가는 감격으로 받을 수 있도록 도우소서! 


3. 죽어야 사는 십자가(막15:30-32).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믿겠다”고 했으나 주님은 십자가에서 내려 올 수 없었습니다. 우리들의 구원을 “다 이루었다”고 선언할 때까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도록 막고 있던 휘장을 하나님께서 친히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버리심으로 구원의 새롭고 산 길 을 열어 놓으시기까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 올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죽어서야 십자가에서 내려 왔습니다. 저주를 받은 뒤에야 내려 왔습니다. 우리들의 구원을 완성한 뒤에 내려 오셨습니다!

“주님 오늘도 제 몸은 당신께 드리는 희생제물입니다. 명령을 기다립니다.”

  서 아프리카 선교사로 사역했던 테일러 스미스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죽을 각오가 되어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은 교회 사임을 생각하고 있을 지 모릅니다. 우리들은 교회사역을 그만 둘 적절한 타이밍을 찾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린 애써 기도하며 개척했던 사역지를 떠나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왜 우리들은 사명을 중단하려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더 이상 헌신을 하지 않으려는 것일까요? 죽기살기로 헌신하더니 10년도 못 채우고 사역지를 떠나려는 것일까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5:24).

  성령님께서 나에게 물으십니다. "육신적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가? 세상에 대해 죽었는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고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길 원하는가?"(고후 4:10)  "아닙니다. 성령님, 내 자존심 때문에 더 이상 목회 못하겠습니다." 성령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죽어야 그리스도가 나타난다네. 네 자존심이 죽고, 네 욕심이 죽어야 교회가 살지 않겠나!"

   

  지금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있다면?  ‘사람들의 칭찬, 명예, 자존심, 대우’에 대해서 전보다는 더 적게 관심을 기울일 것입니다. 우리는 욕심에 대해 죽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좋게 말하느냐 아니냐가 우리들의 헌신의 질을 결정할 만큼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죽는 순간에 이르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열심히 추구하던 것이 별 의미가 없게 됩니다. 죽음의 자리에선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다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혹독한 비판에 대해 죽은 자입니까? 사람들의 불친절에 대해 죽은 자입니까? 오늘도 나 자신을 향해 죽고 하나님의 영광과 목적을 위해 살려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인준하지 않으신 욕심에 대해 죽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죽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열매 맺기 위함입니다.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십자가에서 자아를 단호히 처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진가(眞價)를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게 함이니”(빌3:8-9). 오늘도 십자가를 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4:10).  하나님,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내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실망해도 분노가 치밀고, 조금만 나의 지도력이 손상 당해도 견딜 수 없어하는 나를 철저히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 주십시오! 내 눈물은 주님을 위한 눈물이 아니라 서러워서, 속상해서, 억울해서 흘리는 눈물 뿐이니, 주여 이 상한 마음마저도 십자가를 못 박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4. 당돌한 십자가(막 15:42-47; 요 19:38-42)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taking courage)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이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막15:42-47)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제자들은 모두 달아났습니다. 예수님은 실패자처럼 보입니다. 아무도 예수님 편에 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십자가 주변에는 그 당시에 아무런 사회적 권리나 힘이 없는 여성들만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요, 실패자의 자리에 나서서 자신이 예수의 제자라며 밝히며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해 가겠다고 한 사람이 아리마대 요셉입니다. 그는 주변에 믿는 사람처럼 보이는 이들이 없고, 믿는 사람들이 다 넘어진 것 같을 때 실망하지 않고 나서서 당돌히 십자가를 졌습니다. 억지로가 아닙니다. 마지못하여 십자가를 찾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용기있는 태도로 십자가를 졌습니다.

 

  요셉을 당돌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가 한 행동은 홀로 죄악에 맞서는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반역자의 신분으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반역자의 시신은 가족들도 가져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구한 것은 스스로 반역자의 제자라고 공개하는 일이므로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예수의 제자임을 밝힌 신앙이 바로 빌라도와 세상이 볼 때 당돌한 신앙이고, 하나님이 보실 때 용기 있는 신앙입니다.  “반역자로 몰아가도 좋다. 아니 예수는 반역자가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죄 없는 아들이심을 내가 믿는다. 빌라도 당신도 예수가 무죄라는 것을 알지 않는가!”라는 담대함이 이 시신을 달라는 요구에 담겨있었습니다.

 

  요셉이 용기있게 십자가를 지는 태도는 다른 사람에게 거룩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요 19:39). 자신의 신분 노출을 두려워해서 밤중에 찾아왔던 니고데모, 예수님이 비난당할 때 드러내 놓고 변호하지 못했던 니고데모, 드디어 그도 요셉을 보고 힘을 얻었습니다. 당당히 자신이 예수의 제자임을, 예수를 사랑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동료를 보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장례를 치르기 위해 100근이나 되는 값비싼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지고 왔는데 이 양은 왕족의 장례를 치를 때에 사용하는 만큼의 많은 분량입니다. 내가 용기있게 십자가를 지고가는 삶이 어둠 속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감추고 살아가는 수많은 니고데모들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와 당당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게 되도록 도와주소서! 

 

  5. 자랑의 십자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갈6:14).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아무 것도 자랑하지 않고 사신 분 중에 최초의 미국 침레교 선교사 아도니람 저드슨이 있습니다. 그는 미얀마에서 7년 동안 열심히 사역했지만 7년이 지나도록 예수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주변의 냉대 속에서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마저 병으로 잃었습니다. 자기 아내를 묻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친한 친구가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여보게 저드슨 형제, 너무 낙심치 말게나.”

그러자 저드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낙심이라고? 예수 안에서 소망은 태양처럼 빛나고 있다네!”  

  25년의 세월이 흘러 저드슨은 미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선교하면 영국이 대표였습니다. 미국이 아직 선교에 미약할 때였는데 위대한 사역을 마친 저드슨이 돌아오자 전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환영하고 그의 보고하는 자리에 몰려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선교사의 입에서 나올 흥미진진한 선교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저드슨 선교사는 첫째 날 우리 죄인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설교했습니다. “역시 하나님의 사람이구나”하고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둘째 날은 저드슨이 번역한 미얀마-영어 사전과 미얀마 번역성경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어했습니다. 또 7년 동안 열매가 없다가 그 후 20여 년 동안 3,000명이 넘는 미얀마 원주민들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고 침례를 베푼 영웅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습니다. 또 감옥에 끌려가서 죽을 뻔한 고비를 수없이 넘긴 일화도 자세히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저드슨은 둘째 날도 예수 그리스도만 이야기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사 53:5). 사람들은 셋째 날엔 틀림없이 선교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셋째 날에는 죄의 권세를 깨치시고 부활의 능력으로 오늘도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그러자 사회를 보던 목사님이 기다리다 못해 안타까워서 말했습니다.

“저드슨 선교사님, 성도들은 오늘 다른 설교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야기 말고 선교사님이 겪으신 재미있고 극적인 이야기를 좀 해주십시오. 또 선교사님이 회중교회 선교사의 신분으로 출발했다가 배를 타고 가면서 성경공부를 하는 중에 왜 침례교회 선교사로 바뀌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길 들려주십쇼”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러나 저드슨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에게는 저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나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우리 주님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고 더 감격스러운 이야기는 없습니다.”  

 

  저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세상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우리 주님을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감격스럽습니까? 자랑의 십자가가 우리 마음을 꽉 채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십시다. 하늘에서 드리는 예배의 중심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 5:12). 아멘!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합시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니라”(고전2:2). 아멘.

 

  어떤 십자가를 지고 부활의 주님에게 나아가겠습니까?   (김택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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