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셋째 주일 예배 대표기도문 ((Prayer for the third Sunday service in April)) 

거룩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지난 이래 동안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은혜가운데 살도록 지켜주시고 오늘 거륵하고 복된 주님의날 주님의 전에 나아와 성삼위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경배로 예배하게 하시오니 진실로 감사를 드립니다. 

독생성자 예수님을 대속의 제물로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 이시간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생각하며 우리 모두 겸손히 머리숙여 지난날의 우리의 삶을 돌아봅니다. 

순종보다는 우리의 뜻과 생각데로 살았습니다, 기도 하지않은 죄를 범하였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도리어 주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성령의 깨우쳐 주시는 양심의 소리 마져도 모른체하고 살았든 우리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지켜주신 이 나라와 민족 위하여 기도 드립니다. 대통령과 위정자들에게 은혜를 배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국가의 정체성이 확고히 서게하여 주시고 불순 좌파세력이 뿌리 내리지 못하도록 막아  주시옵소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 주님의 피로사신 몸된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가 일만명 모이는 교회되게 하시고 새벽예배가 부흥되어 날마다 차고넘쳐 성령과 기도의 불이 붙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의 목사님을 이 시대를 이끌고갈 영적 지도자로 세워 주시고 세계선교와 민족 복음화에 힘쓰게 하시며 주님의 큰 역사를 감당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간구 하옵기는 우리 목사님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지혜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시사 주님의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강하신 팔로 늘 붇잡아 주시옵소서. 

이 시간 선포되는 생명의 말씀을 인하여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이 큰 은혜받고 성령의 충만을 입는 역사가 있게하여 주시옵소서. 할렐루야 찬양대의 영혼을 담아 드리는 거륵한 찬양을 성 삼위 하나님 기쁘시게 받으시오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드리는 우리 모두의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만 홀로 영광을 받으시 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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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후스 - 세계선교 잉태한 종교개혁 선구자

 

 

 

 

 

블타바(몰다우)강의 정경이 아름다운 선율로 수놓아진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MA VLAST)’은 체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고 있는 얀 후스(Jan Hus)와 그의 사상,그를 따르는 후스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교회사를 세밀하게 검토하노라면 16세기 종교개혁이 이루어지기 전에도 타락한 교회를 개혁하고자 했던 개혁운동들이 끊임없이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근래의 교회사 연구가들은 이 교회개혁운동들을 ‘첫번째(과격한) 종교개혁운동’ 이라고 부른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개혁운동은 13세기 발덴저와 15세기 보헤미아의 종교개혁운동이다. 이같은 개혁운동들은 교회사 가운데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오늘 소개할 후스도 1415년 7월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이단자로 낙인찍혀 화형당한 체코인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얀 후스는 1370년 남보헤미안 후시네크 지방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사제의 길에 들어서서 프라하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연구하였다.


그가 사제가 되고자 했던 동기는 그 당시 농부의 아들들이 그랬듯이 안정된 생활기반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는 신학수업 과정에서 철저한 변화를 경험하고 열정적인 진리의 탐구자요 신학자로 거듭났다. 체코 종교개혁의 아버지로 일컬어지고 있는 얀 밀리치 크로메리즈와 마티아스 본 야노프가 후스의 신학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결정적으로 후스에게 영향을 미친 사상가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였던 존 위클리프(1330∼1384)였다. 위클리프는 성경에 입각해 기존 교회질서에 준열한 비판을 가하고 철저한 교회개혁을 부르짖었던 종교개혁의 선구자였다. 영국유학에서 돌아온 후스는 1398년부터 프라하대학 철학부에서 강의했다.


1402년부터는 3000명가량이 모였던 프라하 베들레헴성당에서 설교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체코 선현들의 개혁 전통에 굳건히 선 민족 설교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당시 유럽 문화의 중심지였던 프라하에는 황제 카를4세가 자신의 이름을 따 독일어로 교육하는 대학을 세워 독일어와 독일문화가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주체적인 신앙고백과 모국어를 중심한 신학운동을 전개한 후스의 개혁운동은 체코 민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후스는 1409년 프라하대학 총장에 취임한다.
그는 체코어 라틴어로 수많은 글을 남겼는데 설교만 해도 무려 3000편이 넘는다.
그의 설교는 평민들로부터 왕족과 귀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청종했다.
그의 교회개혁과 사회윤리적 내용을 지닌 설교는 청중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후스의 비판이 중세교회의 치부였던 면죄부 판매에까지 이르자 교황,왕,귀족,교회지도자들 등 기득권층이 강력하게 견제했다.


후스는 프라하에서 모든 교회활동을 금지당하는 처분을 받았다.
후스는 부패한 교회의 기득권 세력과 타협하지 않고 남뵈멘지역으로 가 들판과 광장에서 민중을 향해 진리를 설교했다. 이 무렵 후스가 로마교회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하여 라틴어로 쓴 대작이 ‘교회론(De ecclesia)’이다.

 
후스를 제거하기 위한 음모는 교황권 분열에 직면하여 ‘교회의 개혁과 일치’를 명분으로 콘스탄츠에서 열렸던 공의회를 기점으로 구체화된다.


공의회는 이단자로 처형된 위클리프와 후스 사상과의 관련성을 조사한다는 명분으로 후스를 불렀다.

 

후스의 친구들은 공의회가 명분으로 내세우는 교회일치와 개혁의 이면에는 커다란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간파하고 후스가 콘스탄츠에 가는 것을 한사코 만류하였다.

 

그러나 후스는 교회 지도자들과 맞붙게 될 논쟁에 대비해 그의 입장을 철저히 준비한 후 콘스탄츠로 향한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보헤미아왕을 겸하고 있던 지그문트 황제도 그의 신변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편지를 써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후스는 도착하자마자 감옥에 갇히고 만다.


공의회를 주관한 교황청측에서는 후스의 교회비판을 무조건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후스의 신변안전을 보장했던 황제 지그문트는 기회주의적으로 추기경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마침내는 후스를 처벌하라는 입장에 서게 된다.

 

후스에게는 주장을 내세우거나 대화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도리어 후스가 쓰지도 않았던 글들을 빌미로 법정에 고소당하고 이단자로 판결받았다.
후스는 끈질기게 그가 주장했던 입장을 철회하도록 강요받았지만 사람보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대한 순종의 길을 선택했다.

 

마침내 그는 1415년 7월6일 콘스탄츠의 화형대에서 이단자의 누명을 쓴 채 죽어갔다.
후스와 같은 신학적 입장에서 후스의 입장을 대변했던 히로니무스 폰 프라하도 같은 이유로 같은 방법에 의해 같은 장소에서 화형대의 연기로 사라졌다.


지금도 독일 콘스탄츠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새겨진 큰 바위가 그 날의 비정한 사건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후스의 생애와 사상은 한마디로 진리에 대한 탐구와 열정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가 화형되기 전 남긴 글은 그가 전 생애를 통해 추구했던 진리가 무엇인지를 증언하고 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여, 진리를 찾으라! 진리를 들으라! 진리를 배우라! 진리를 사랑하라! 진리를 말하라! 진리를 지키라! 죽기까지 진리를 수호하라! 그것은 진리가 너를 죄와 악마와 영혼의 죽음과 마침내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후스의 처형 뒤 후스의 사상과 뜻을 이어받은 강력한 신앙공동체인 보헤미안 동포단이 형성돼 이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의 복음이 체코 민중의 가슴에 심어졌다.


보헤미안 동포단은 경건주의의 모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선교의 아방가르드 역할을 했다.

1432년 후스파 교도들은 공의회가 열리는 바젤에 와서 후스가 지향했던 종교개혁의 정당성을 변호하고 그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후스는 단순히 교회개혁의 선구자로서 뿐 아니라 주체적인 민족정신을 고양시킨 애국자로 지금까지 체코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1915년 후스 사후 500년을 맞아 프라하 구시가 중심부에 후스의 기념비가 세워져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민족 주체성과 독립정신을 증언하고 있다.

 
◇ 필자약력

△한국신학대학 신학과 졸업

△연세대 연합신대원 석사

△스위스 바젤대학 신학박사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교육원장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상임총무
 
김원배 (기독교장로회 총회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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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기도] 헌금기도(봉헌기도) Offering prayer


 긍휼과 인자가 풍성하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영광을 받으소서.
우리 죄인들을 남달리 사랑하사 주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이 날에도
 주님의 말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의 말씀을 들은 심령 위에 큰 감화와 큰 변화를 일으키시며, 저들의 생활 속에서
 열매를 맺게 하시고, 이 어두운 지역에 빛이 되게 하옵소서,

 

이 시간 새로 등록한 형제들에게 믿음이 자라나게 하시며, 금년에 등록한 많은
 형제들을 주님께서 다 찾아 주옵소서, 또한 주님의 백성들이 감사하며 드린
 십일조와 감사헌금, 주일헌금을 받으소서.

저희 가정의 자녀들과 사업 위에,
농토와 가축과 상업과 기타 저희가 하는 모든 일에 축복하여 풍성하게 하시며,
평강이 넘치게 하옵소서.


주님의 축복하신대로 더 풍성하게 받아 주의 집에 마음을 바치게 하옵소서.
이곳에 주의 교회가 확장되어 복음화가 이룩되게 하옵소서.

나아가서 우리 한국과
 온 세계에 복음 전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와 함게 각처에서 예배하는
 우리 한국 교회를 축복하여 세계의 선교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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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신년예배 대표기도문(New Year's service prayer)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지난 일년 동안도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환란중에는 돕는 은혜로

 함께 하여 주심을 찬양합니다.

한해를 결산하며 새해를

 결단하는 심령으로 나왔사오니,
우리의 능력이 되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지난해의 부족한 결실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고,
신년에는 맡겨진 사명에 갑절을 남기며

 충성으로 영광을 돌리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신년에는

예배의 승리자가 되게 하여 주시고,

기도함으로 축복자가 되게 하시며,
헌신의 풍성한 열매가

맺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한해는

 이나라 이 민족이 회복하고,

가정과 윤리가 회복하게 하옵소서.


이 나라가 하나님의

다스리심의 주권을 인정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정의사회가 구현되게 하여주시며,


복지국가가 건설되고
한국교회에 부흥의 불길이

 다시 타오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교회도 일치함을 주셔서

복음으로 하나되게 하시고,
세계선교와 이웃을 돌아보는 일에

앞장서서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옵소서.

저희 교회에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게 하셔서

승리의 간증이 날마다

고백되게 하여 주세요.


아직도 어려운 중에 있는

성도들을 일일이 기억 하시고,

주님의 손길이 함께 하셔서

날마다 크신 은혜와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말씀 선포하실 목사님께도

성령님 함께 하셔서 능력과

은혜의 말씀으로 인도 하시며

말씀을 깨달아서 새롭게 결단하는

귀한 시간이 되게 하시옵소서.

한해의 모든 행사를

주님께 맡기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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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 / 한국교회 부흥운동(1900 - 1910)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엽까지 주변의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미국,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서양열국이 한국을 가운데 두고 벌인 각축전은 정치, 사회분야 뿐만 아니라 한국기독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되었다. 라토렛이 한국교회의 놀라운 성장에 있어서 번성과 쇠퇴는 부분적으로 내외적인 정치적 상황을 반영한다고 말한 것은 결코 빗나간 평가가 아니었다.

 

1903년 원산부흥운도,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 그리고 1909년의 백만인 구령운동을 통하여 한국교회는 전에 없는 놀라운 성장을 경험하게 되었다. 평양을 중심으로 청일전쟁 이후 일기 시작한 영적 각성의 움직임이 ·1903년에는 하디를 통해 원산부흥운동으로 촉발되었고, 이것이 다시 원산부흥운동의 저변확대와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의 발흥으로 이어져 한국교회에는 조나단에드워즈로 대변되는 미국의 제 1차 대각성운동, 웨일즈부흥운동, 인도의 부흥운동과 견줄 수 있는 놀라운 영적대가성운동이 발흥했다.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나고 2년후 1909년 일종의 전도운동인 백만인구령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이 영적 대각성 운동은 세 가지 면에서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첫째는 이 대각성운동이 당시 세계기독교계에서 일고 있는 부흥운동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포스터가 적절히 표현한 것처럼 강대국들이 노리고 있는 “나봇의 포도원”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 러시아, 일본의 패권주의로 인한 정치적 위기가 한국인들로 하여금 복음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한 토양을 제공해 주었다는 사리이고, 셋째는 한국의 부흥운동은 일차적으로 네비우스 선교 정책의 일환으로 채택된 사경회 운동과 밀접한 연계성을 지니며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1907년 한국교회에는 복음이 전래된 이후 알렌이 “놀라운 부흥 운동”이라고 말했던 가장 강력한 영적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1903년부터 간단없이 줄기차게 이어져 온 영적 각성의 움직임이 “한국의 오순절”이라 불렀던 놀라운 성령의 임재와 함께 전국적인 운동으로 발흥했다. 평양대부흥운동으로 널리 알려진 이 놀라운 영적대각성운동은 1907년 1월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열린 평안남도 겨울 남자 사경회 기간 동안에 발흥하기 시작했다.

 

1907년 북장로교 보고서가 밝힌 대로 과거 죄악의 공포를 깊숙이 깨닫지 못했던 한국인들은 이번 평양대부흥운동을 통해 자신들의 죄악의 무서운 결과, 죽기까지 죄인을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깨닫고 철저하게 자신들의 죄악을 통회했다. 그러나 단순히 통회로만 끝나지 않았다. 스왈른이 증언한 대로 사람들은 그 다음날 관련자들을 찾아다니며 용서를 구했다. “그 다음날 사람들이 거리에서 서로 죄를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도둑맞은 물건들이 되돌아왔다. 도둑맞은 돈도 되돌아왔고, 오랫동안 갚지 않았던 빚이 청산되었으며, 부정한 방법들이 전반적으로 바로잡혀졌다.” 옛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된 것이다. 제임스 게일이 표현한바 “외국인들뿐만 아니라 전 한국인 공동체를 움직인”이 같은 영적 변화는 그 후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선교사들이나 한국교회 지도자들이나 그곳에 참석한 모든 이들은 이와 같은 성령의 역사가 장대현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평양 시내 전역, 더 나아가 한국교회 어느 곳에서나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평양에서 열렸던 열흘 동안의 북장로교 선교부의 사경회가 끝난 다음이 사경회에 참석하여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직접 체험한 이들은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 이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자신들이 다니는 교회의 다른 교우들에게도 전해 주었다. “이 소문이 각처에 전파됨에 따라 신령한 체험을 맛보고자 하는 열망과 기대는 지방 신자들의 마음속에 간절하여졌다.” 어떤 부흥도 회개의 역사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오늘날도 그 원리는 동일할 것이다. 이 땅 가운데 다시 한번 평양대부흥과 같은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길 기대해 본다.

 

 

원산 부흥운동과 평양대부흥운동에 이어 “부흥운동의 두 번째 기간”으로 알려진 백만 인구령 운동은 한국 민족 100만 명에게 복음을 전해 민족 복음화라는 거대한 공동의 목표를 이룩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장로교와 감리교 6개 선교회가 힘을 결집하여 전국적으로 추진한 민족복음화 운동이었다. 로이 스위러가 백만인 구령운동을 가리켜 “전도운동”이라고 불렀던 것도 그 때문이다.

백만인구령운동은 기울어 가는 국운 앞에서도 기독교 신앙을 통해 흩어진 민족의 힘을 결집시키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백만인 구령운동은 지위와 연령, 교파와 교단, 그리고 지역을 초월하여 전국의 기독교인들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원동력이었다는 점에서 결코 실패한 운동이 아니었다. 한국교회는 원산부흥운동, 평양대부흥운동, 그리고 이어 진행된 백만인구령운동을 통해 일제의 무력적 탄압과 강요에 흔들리지 않고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거족적 집단으로 발돋음 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운동 이후 한국교회는 제도적인 틀을 다질 수 있었다. 1911년 제 5회 장로교 독노회는 1912년을 기해 총회를 조직할 것을 결의 하였고, 그 해 가을에 열린 장감 연합공회 총회도 1912년에 장감 6개 선교회와 각 성서공회, 그리고 성공회가 참여하는 연합공회로 확대 개편할 것을 결정했다. 그 동안 한국교회를 대변하는 장로교와 감리교가 전국적인 규모의 총회와 연회 조직을 통해 민족교회로서의 틀을 다지는 전기를 마련했고, 양 교파를 대변하는 평양신학교와 감리교의 협성신학교도 신학교로서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민족복음화의 열정이 전국적으로 발화되면서 만주와 소련과 일본과 하와이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 한인들을 대상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려는 노력들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이러났다. 이처럼 백만인 구령운동과 그 앞서 일어난 평양대부흥운동은 민족 복음화라는 거대한 비전과 꿈을 한국인들에게 깊숙이 심어 주어 민족교회로서의 틀을 다지는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제임스 부스컬크가 지적한 것처럼 대부흥운동은 무엇보다도 을사조약과 고종 퇴위 한일 합방으로 대변되는 당시의 정치적인 암흑기를 극복하고 민족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다지게 만들어 준 중요한 종교적인 사건이었다. 이 시대만큼 우리 민족이 암흑의 시대를 걸었던 적도 드물었지만 가장 암울했던 이 시대, 일련의 놀라운 부흥운동이 전국을 휩쓸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차원에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한국의 역사 속에서 개입하시고 섭리하셨던 것이다. 돌이켜 볼 때 그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죄로 무든 이 백성을 영적인 깊은 잠에서 깨우시려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였다. 그 결과는 참으로 놀라웠다. 한국교회는 대부흥운동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영적 각성운동, 사회개혁운동, 전도열과 놀라운 교회 성장, 그리고 복음주의 연합운동은 이 시대 부흥운동이 한국교회에 가져다 준 두드러진 결실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부흥이 이렇게 집중적으로 일어난 시기는 없었다고 한다. 19세기 말과 20세기에 그렇게 부흥이 일어난 이유는 세계 선교를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나님의 크심, 그 광대하심을 느끼고 그 위엄에 굴복하는 은혜가 본서를 요약하면서 임한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역사 가운데 역동적으로 임하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로 축복이다. 특히 원산 대부흥 운동을 시발로 평양 대부흥 운동과 100만인 구령 운동으로 이어지는 놀라운 은혜의 증거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광대하심과 세밀함을 경험케 한다. 본인이 바로 그 자리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한편, 그 때가 아니고 21세기 한국에 보내신 이유는 그 역사의 부흥이 단지 경험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계획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날도 동일하게 부흥 운동이 요구된다. 아니 부흥이 필요하다. 물론 그 어느 시대가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가 불필요하겠는가마는 온갖 이단의 사상이 넘실거리고, 윤리적 도덕적 판단의 준거를 잃어버린 이 시대에 너무나 절실히 요구된다.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부흥 운동은 철저한 회개를 그 바탕으로 한다. 원산 대부흥도, 평양 대부흥도, 100만인 구령 운동도 찢어지는 심령을 하나님께 토설하며 자신의 환부를 도려내는 아픔 가운데 일어난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서 있는 것. 바로 이것이 필요하다. 역사가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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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도집회 /교회부흥을 위한 은혜의 시간 )

 

전도 방법 / 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가? 
 

1. 꿈꾸는 자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바버라 케디(Barbara Cady)가 쓴  「차이를 만들어낸 200인의 얼굴」(Icons of the 20th Century)이 지난 해 여름 두 권으로 나왔습니다. 20세기에 분명한 차이(differences)를 만들어낸 그들의 공통점(共通點)이 무엇일까요? 그들은 모두 꿈꾸는 자들입니다. 꿈을 위해 대가(代價)를 치른 사람들입니다. 이뤄지지 않은 꿈 때문에 우울해지기도 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꿈 때문에 실망하기도 하며, 너무 큰 꿈 때문에 고통을 겪기도 하지만 꿈이 없다면 변화는 없습니다. 꿈이 없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불신자 전도로 유명한 미국 오렌지카운티의 새들백 교회를 방문했을 때 비전에 대한 릭 워렌 목사의 이야기는 감동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비전을 갖기 전 까지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교회는 목회자의 비전 이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대신 꿈을 꾸어 줄 수 도 없습니다.

저는 꽤 큰 꿈을 가진 자 입니다”(Nothing happens until someone has the vision. A church never outgrows over the leaders. You cannot delegate. I'm a pretty big dreamer.”) 릭 워렌 목사의 꿈은 하나님의 인준을 받았고, 하나님은 축복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꿈을 위해 꽤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21세기에 하나님께 더욱 크게 쓰임받으려는 우리 친교회의 꿈이 너무 큰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꿈을 이루기엔 너무나 어려운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무자비한 마귀가 들끓는 곳에서 일했고,

장애물이 많은 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지하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변화(變化)시켰습니다. 1

세기에 가장 강력한 변화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누가  세상을 변화시킬까요?

꿈꾸는 자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은 능히 우리들의 꿈인 복음전도와 제자훈련, 세계선교, 민족치유의 꿈을 이루도록 도우십니다. 

 

2.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열정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바울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과는 뭔가 다른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물론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물론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고린도 전서 9장은 바울의 전도 전략(戰略), 열정(熱情), 정신(情神)에 대해서 말해 줍니다. 고전 9:24-27을 보십시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9:24-27).

  바울은 운동선수들의 헌신에 감탄했습니다. 선수들은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 모든 장애(障碍)가 되는 것을 버리고 포기합니다. 상을 타기 위해서 많은 것을 희생합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김연아 선수는 하루 8시간을 연습했고, 개그맨들은 5분짜리 프로그램을 위해 일주일에 50시간씩 연습합니다.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은 매일 15시간씩 연습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합니다!”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포기하고픈 유혹은 언제나 우리 모두의 생각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는 '중도포기 유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경주(競走)에서 돋보이는 사람들은 근성(根性)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영무’라는 악바리 축구선수가 늘 기억에 남고, 박지성 선수는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습니다. 그는 자신의 약점을  '기관차’처럼 지칠 줄 모르고 뛰어다니면서 기회를 만들어줌으로써 중요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나이 든 선수들처럼 목회자들도 후반에 빨리 지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많이 뛴 선수일수록 빨리 지치는 경험을 합니다. 그러나 인생경주에서 이기려면 끝까지 잘 뛰어야 합니다. 피로가 누적되고, 지치는 일들 속에서 끝까지 잘 뛴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 됩니다. 운동선수들은 전반전에서와 마찬가지로 후반전에 강해야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끈기와 근성을 가졌습니까? 히브리서 12:1-3은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근성 있는 믿음의 선수들의 특징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히 12:1).

 바울은 이 운동선수들의 근성(根性)을 자신의 영혼구원사역에 접목(椄木)시켰습니다. 바울의 정신은 챔피언이 되기 위해 권투선수가 링 안에서 펀치를 주고받으며 상대를 녹아웃을 시키려는 것과 같습니다. 허공을 치는 복싱은 안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장훈 선수는 이승엽에게 홈런에 욕심을 내라고 격려했습니다. 40개가 아닌 50개 이상을 쳐내라고 도전했습니다. 3관왕이 되라고 격려했습니다. 당당하게 꿈을 펼치라고 격려했습니다. 이승엽 선수는 자신의 슬럼프를 이기기 위해 매일 저녁 1천 번씩 방망이를 휘둘렀습니다. 그는 2007년 봄 시즌을 맞기 위해 지난 해 보다 더 많은 훈련량을 소화해내고 있습니다. 바울의 어떤 점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까?

영혼구원과 제자훈련, 세계선교에 대한 지칠줄 모르는 열정과 죽기 살기로 뛰어든 헌신입니다.

하나님,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하는 거룩한 열정을 가슴에 불질러 주십시오!

  열정과 헌신을 불어넣은 것은 구령의 열정 때문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키며 이루려고 한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위해서 죽도록 싸웠습니까? 무엇에 자신을 온전히 바쳤습니까? 고린도 전서 9:16-18을 보십시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헌신했습니다. 우리들이 설교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기도회를 인도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목회를 하며 정신적 혹은 육체적 고통을 겪었다고 해서 우리들의 의무를 다 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는 무슨 상(償)을 바랄 것도 없습니다. 복음증거를 위해서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목회적인 의무를 넘어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복음전도의 거룩한 동기를 불어 넣어야만 합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직무태만(職務怠慢)입니다.

수해지역에서 골프를 친 정치인들이 당에서 제명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해가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권리와 자유를 희생했습니다. 바울은 먹고 마시는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바울은 결혼할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고린도에서는 사례비 받는 것도 포기했습니다. 스스로 돈을 벌어가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자유(自由)마저 반납했습니다. 종의 심정, 종의 대우를 받을지라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기꺼이 종의 모습을 택했습니다. 고전 9:19을 보십시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 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하나님이 주신 영혼구원의 꿈을 이루려면 그 꿈에 다시 헌신(獻身)해야 합니다.

꿈이 이뤄지는 것은 자기희생(自己犧牲)에 달려있습니다.

얼마나 자신을 바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발작적인 희생이나 충동적인 헌신 가지곤 안 됩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내 줄 수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복음을 위해 자신들의 목이라도 내놓았습니다. 게으르고 무관심한 자들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교회의 디딤돌이 되려고 마음먹어야 합니다.

희생이라는 씨앗을 많이 뿌려놓고 피를 많이 흘려야 우리들의 다음 세대가 거둘 열매가 많아집니다.

복음전도의 벽을 만드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0교회의 강점을 세상에 알리고, 후배들이 자랑스럽게 복음을 전하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리는 아직도 더 많은 희생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3. 영혼구원을 위해서 죄짓는 것 빼고는 무엇이든지 합시다!

  바울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죄 짓는 것 빼고는 무엇이든지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같이 되었습니다. 이방인에게는 이방인 같이 되었습니다. 그는 초문화사역자(cross cultural missionary)였습니다. 이것이 구령의 열정(熱情)입니다. 바울은 파선을 두 차례 경험했으나 다시 세번째 배를 타고 선교지로 나갔습니다. 바울은 파선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러 번 매를 맞아 고통을 겪었으나 매맞는 일이 두려워 복음전도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 양심의 채찍으로 맞는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 속에 들어가 전도하기 위해 디모데에게 할례도 받게 했습니다. 영혼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첫번째 관심사입니다(마 28:18-20). 성령님이 오신 목적도 영혼구원입니다(행 1:8).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암 부스가 사역의 원리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제 전부를 소유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내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의 전 영역을 주장하시게 하지 않는 한 우리들은 지난 해와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자기본위, 자기중심, 자기고집, 자아만족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우주의 중심, 만유의 중심, 교회의 중심, 사역의 중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오순절 이후에 베드로의 삶에 변화가 왔습니다. 그는 항상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조차 베드로가 나섰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2장에서는 이렇게 달랍니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그렇습니다. 주어가 성령님입니다. 이전에는 베드로가 주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수동태입니다. 사도행전 15:28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과 우리는." 베드로는 성령님의 동의하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과연 우리들을 몇 퍼센트나 소유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제 전부를 소유했습니다"라는 철저한 Lordship이 우리에게 일어나길 바랍니다.

  영국 국교의 억압과 핍박아래서도 요한 웨슬레의 열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오늘 노팅햄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가는 도중에 노상강도를 만났습니다. 나는 그에게 전도했습니다.” 

  리차드 백스터는 이렇게 그의 구령의 열정을 표현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죽어가는 사람에게 설교하듯이 나는 다시는 전도할 수 없는 심정으로 설교합니다.”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죄짓는 것 말고는 무엇이든지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열정, 이런 정신,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꿈을 꿉시다! 교회들마다 부흥하는 꿈을! 교회들마다 성령님과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꿈을! 죄인들을 지옥에서 구원하는 꿈을, 구원받은 사람들이 성도로 세워지고 구령자로 변하는 꿈을 꿉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세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죄짓는 것 말고는 무엇이든지 합시다.

 

/함께 그리스도의 일꾼 된 김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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