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역사, 은총의 빛   믿음의 글  

 

이사야 49장 1~6절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 평강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201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로운 역사의 문이 열렸습니다. 새 역사는 신앙인에게 주님이 이끄시는 역사, 주님이 계획하시는 역사입니다. 바울 사도는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었다”(엡1:11)고 했습니다. 주님이 이끄시는 역사 속에서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만나고 삽니다. ‘주님의 역사’는 ‘은혜의 역사’입니다. 세상의 역사는 ‘은혜 없는 역사’의 반복입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5)는 말씀이 있습니다. 은혜의 빛을 깨닫지 못하는 세상은 은혜 없는 역사의 반복입니다. 말씀에 의지하지 않는 시대, 믿음이 없는 시대, 죄의 본성을 따르는 악순환의 반복입니다. 이것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주님의 은혜입니다. 1800년대 인물인 조지 뮐러는 ‘고아의 아버지’로 불렸습니다. 60년이 넘도록 1만명의 고아들을 보살피는 위대한 사역을 했습니다. 이 위대한 사역을 감당하는 단 한 가지 방법은 기도였습니다. 은혜가 메마른 이 세상에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오늘도 살아계십니다. 은혜 없는 악순환의 시대에도 우리에게 은혜의 빛을 비추고 계십니다. 주님의 역사에는 ‘은혜의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사49:5)

주님의 역사 안에서는 나의 능력, 나의 생각, 나의 힘, 나의 명예, 나의 지혜로 살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만으로 사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연약할지라도 주님의 은혜 안에 있고자 한다면 은혜의 능력과 힘이 믿음의 자녀들에게 역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했을 때 역사를 봅시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광야의 메마른 사막이었습니다. 그들은 40년을 그곳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역사와 능력이 일어났습니다. 하늘의 만나를 먹이시고, 메추라기를 먹이시고, 반석에 생수를 내시고, 입히시고 돌보셨습니다. 광야같이 메마른 곳이라 할지라도 주님의 은혜가 부어지고 주님의 은혜의 능력으로 사는 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우리가 광야에 놓인 것 같은 인생을 살면서도 불안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거센 폭풍처럼 세상의 방해가 일어나는데도 왜 마음은 평안할까요. 주님 은혜의 능력 덕분입니다. 주님은 은총의 빛으로 역사를 이끄십니다.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49:6) 주님은 은총의 빛을 지금도 비추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의 선진들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바라고, 믿음으로 증거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봤고, 증거로 얻었을까요. 주님의 은총의 빛입니다. 세상을 향한 주님의 은혜입니다. 은혜의 능력이 믿음의 선진들을 증거 받은 사람들이 되게 했습니다.

주님의 역사 가운데서 주님은 우리를 은혜의 빛의 증거자로 부르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은총의 빛, 생명의 빛을 우리에게 비춰주시고 승리하게 하심으로 주님의 역사를 이끄십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멘.

김장헌 새길루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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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글 /  지금은 울어야 할 때입니다!  

 
스위스의 내과의사 폴 투르니에(1899∼1986)는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아버지를 잃었고

6개월 만에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외삼촌 집에 맡겨졌으나

외삼촌은 알코올 중독, 외숙모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투르니에는 기독교 신앙 안에서 성장해 옥스퍼드대에 입학했습니다.

다행히 거기서 폴란드 경제학자를 만나 두 사람은 서로 자신들의 과거 이야기를 털어놓고 실컷 울었습니다.

이후 그들의 마음의 병이 치유됐습니다. 마음의 병이 치유되자 육체의 질병도 치유됐습니다.

이때부터 투르니에는 “질병을 치유하지 말고 인격을 치유하라.

모든 질병은 비뚤어진 인격에서 온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엘은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선포합니다.

왜냐하면 눈물에는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돌아오면

여호와께서 마음과 뜻을 돌이키셔서 재앙을 내리시지 않고 복을 내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보고 계시며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눈물이 얼마나 간절한가를 보시고 우리에게 내리실 재앙이나 형벌을 멈추시고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움직이게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하게 합니다. 다윗 역시 사람 앞에서는 용맹한 장수였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늘 어린아이처럼 울었습니다.

시편 56편 8절에서 다윗은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눈에 눈물이 메마르지 않기를 원합니다.

 

눈물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은 방탕한 아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거듭나게 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매를 통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눈물을 통해 변화됩니다.

우리의 눈물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어머니의 눈물이 자식을 변화시킵니다.

아내의 눈물이 남편을 변화시킵니다.

성도의 눈물이 교회를 변화시킵니다.

지도자들의 눈물이 공동체를 변화시킵니다.

그러므로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눈물에는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진실하고 간절한 눈물에는 육체의 병과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눈물을 보시고 응답하십니다.

우리의 눈물을 보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울지 못하는 것은 정서와 감정이 메말라 버렸기 때문입니다.

눈물의 사람은 온유한 사람입니다.

잃어버린 눈물을 회복해서 눈물의 능력과 기적을 경험해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과 교회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눈물이 메말라 모든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기며, 상대를 죽이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울어야 합니다.

거짓의 눈물이 아닌 진실한 눈물과 통곡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흘리는 진실하고 간절한 눈물은 능력이며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심령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은철 목사(강화 임마누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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