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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Apostolus)와 장로(Presbyter)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초대교회는 유대인 중심의 소규모로 이루어 졌습니다  그 후 고넬료 가정을 비롯하여 이방인 교회가 설립되는 등 교회의 규모가 점차 증대되고 확장되면서 조직적인 운영의 필요성이 제기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로 인하여 하루에 3,000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등 교회의 성장은 일시에 5,000명을 초과하는 수직적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많은 인원이 교회라는 공동체속으로 합류되었고, 또한 그 조직 안팍으로 로마라는 거대한 제국을 둘러싼 각종 사회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구조안에서 무엇인가 정형화된 조직이 필요해 졌습니다  조직적이고 합리적인 운영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필요성이 불가피해진 상황에서 그것을 구성하는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는 교회 직분자에 대한 정의와 목적이 제기되었던 것입니다

 

 1) 사도(Apostolus)

 

사도(使徒, Apostolus)라는 말은 '파견된 자', '사자'라는 뜻의 히브리어 샬리아(shaliach)에서 유래하엿으며, 그리스어의 아포스톨로스(apostolos)의 동의어 입니다  또한 사도(Apostle)란 헬라어로"보냄을 받는다" 라는 뜻으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복음 전하는 권세를 위임받은 직계 제자를 통칭하는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28:19~20, 누가복음6:13)   사도의 자격은 성육신하여 역사적인 인물로 살아간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만났고, 그 분의 가르침을 배운 사람이기 때문에, 4대 복음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직제자 12명을 사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마가복음3:16~19) 

 

그러나 그 가운데 예수님을 팔아 넘긴 가룟 유다가 자살하여 사도직을 버리자, 사도들은 '예수께서 활동하실때 우리와 같이 있던 사람' 중 하나인 "맛디아" 에게 사도직을 맡겼습니다 (사도행전1:21~26) 이후 성령강림주일에 탄생한 교회(사도행전 2:1~47)를 탄압하던 사울(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말하여 자신을 사도로서의 권위를 주장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15:10)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바울을 사도로 인정할 뿐만 아니라 이방인 전도의 핵심 인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 사건의 중심에 서 있던 바울의 회심은 다메섹 도상에서 일어난 신비한 체험에서 비롯된 역사적 전환기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그의 일생의 전후가 완전히 뒤바뀐 것으로 바울이 사도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자격 문제는 오래동안 신학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그의 삶을 통해서 바울은 충분히 사도의 직분을 감당하였다고 보는 견해에 이의를 제기할 기독교인은 없을 것입니다  바울은 맛디아와 같이 선출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사도적 정통성은 그의 삶을 통하여 충분히 인정되고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를 시작으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바돌로매, 도마,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 시몬, 그리고 가룟유다를 우리는 예수님의 12제자이며 사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스승이신 예수님을 은 30세겔에 대적관계에 있던 유대인들에게 팔아 넘기고 자살을 선택한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맛디아를 사도로 인정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사도 바울에 이르기 까지 사도라는 칭호를 받은 사람은 모두 14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아니지만  사도 바울과 함께하며 그의 가장 아름다운 동역자였던 "바나바" 와 유다의 기록자인 "유다" 등은 기독교사의 역사에 그 기록과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을 인물들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과 직접적으로 관계하며 그 분의 말씀과 생활을 가장 인접한 곳에서 가장 객관적인 입장에서 전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 중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맛디아는 예수님의 직접적인 제자는 아니었지만 예수님을 가장 근접한 거리에서 항상 함께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으며, 그러한 삶의 모양과 흔적들을 관찰한 열 한명의 제자들이 만장일치로 선택한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도들이라 할지라도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교훈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오용한다면 그것은 가장 치명적인 오류가 될 것입니다  사도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교훈의 순수성을 투명한 통로를 통하여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온 세상에 전달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또한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세번씩이나 부인한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있으며, 나머지 제자들도 부활한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도피하여 세상의 생활로 돌아갔던 배신의 흔적들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그렇게 세상 가운데 흔적없이 사라져가는 무의미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내 버려 두지 아니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그들을 다시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용서하여 주셨으며 뜨거운 성령의 불길로 회생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의 직분적 사역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교훈과 삶을 여과없이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며 이것이 세대와 후대에 이르기 까지 본질이 훼손되지 않고 연결되는 일들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사도의 사역은 복음전파(마태복음10:5~7)와 성경 말씀을 증거(누가복음24:45~48)하며, 그리스도의 부활과 사역을 증거하는 것입니다(사도행전1:8, 10:39~41요한일서1:1~3)   또한 교회를 설립하고(로마서15:17~20), 환자를 치유하며(마태복음10:1, 누가복음9:1~2),  귀신을 내쫓음과 동시에(마가복음6:9) 기사와 표적을 행하는 것입니다(사도행전2:43, 5:1)

 

사도의 첫번째 사역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교회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각지로 흩어져 버린 그리스도인들을 다시금 모여 들게 하는 구심점과 같은 역할을 감당할 터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전파되게 하였으며, 생활과 구제와 복음의 전파기능을 담당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세월이 흘러 오늘날 우리 세대에 이르기까지 전파되어온 본질적인 것이었습니다 (로마서15:17~20)

 

초대교회의 풍습과 관습은 오늘날 끝없는 진화와 도전을 거쳐왔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의 정신과 생활과 예배는 결코 무너질 수 없는 기초가 되었으며 그것이 오늘을 지탱하는 본질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의 직분은 예배를 세우는 것으로 끝난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복음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순교가 동반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고난과 역경도 받아들이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굶주림과 억울한 누명, 이유없는 감옥생활도 그들을 지체하게 하거나 중단하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사도의 두번째 가치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복음에 대한 확신과 용기였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스승은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원히 생존하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결코 그들을 막을 수 없는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 그들과 그들의 삶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10:5~7)

 

사도의 세번째 역할은 그들이 가는 곳에 또 다른 예수님의 흔적,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방인의 사회, 그들이 지켜온 토테미즘과 범신론적인 사상을 무너뜨리고 하나님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코 낙망하지 아니하였고, 지인 한명없이,  일푼의 물질도 없이 그러한 교회들을 세워 나갔던 것입니다 (사도행전1:8, 10:39~41요한일서1:1~3)

 

사도들이 일으킨 네번째 역할은 환자를 치유하고 귀신들린 사람들에게 있어서 귀신을 내쫓는 것이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수십년 동안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들, 귀신들려서 평생을 고통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빈곤의 악순환,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가는 곳 마다 만날 수 있었고 사도들은 그들을 지나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사도들에겐 돈도 권력도, 물질도 부요함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평생을 걸쳐 어부로 살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에게 어부라는 직업이 돈이 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또한 가진 돈이 없지만 가지고 있는 돈을 나누어 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권력이 있어서 로마의 힘을 빌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씀을 전파하고 기도하였으며, 예수님의 이름이 전파되는 곳에서 치유와 회복과 삶의 전환점이 일어나는 역사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과 동행하였으며 예수님의 통로 역할을 한 사도의 힘이었습니다 (마태복음10:1, 누가복음9:1~2, 마가복음6:9, 사도행전2:43, 5:1)

 

2) 장로(Presbyter)

 

장로(長老)는 어원상 "턱수염이 있는 자"라는 뜻으로 이스라엘에서 지파와 가족의 어른들을 부르는 칭호였습니다 (출애굽기3:16)   구약성경에서는  부족의 지도자·촌로(村老), 회당의 장로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이들이 주로 지파나 대가족을 대표하여 정치기구에 참여하였습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원로라는 의미로 계속 사용되었으며, 초대교회에서는 직분상 두가지로 분류하여 장로를 호칭하였습니다  그것은 신자의 영적 생활을 지도하며 설교와 예전을 집행하는 목사장로(디모데전서3:1~5)와 교회의 존경받는 연장자로 교회의 조직과 예산과 운영을 책임지는 평신도 장로(사도행전11:30)로 구별하는 것의 기초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에 의해 교회가 설립되면서 그 개체 교회를 위하여 장로가 세워졌습니다  장로를 최초로 세운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설립한 교회에 장로들을 택하여 세웠습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목회를 권면하며 각 성에 교회를 설립하고 장로를 세울 것을 권장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성령이 저들 교회 회중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다" 라는 말씀으로 장로의 직분의 범위를 설명하였습니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장로 피택은 구약시대의 제도를 계승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지방 회당은 장로들에 의해 치리되었고 유대의 국가적인 문제는 산헤드린 공회에서 다루어 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장로와 신약의 장로가 동일한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구약시대의 장로는 문자 그대로 연장자로서의 원로를 대우하며 그의 경험과 경륜을 존중한 반면에 초대교회의 장로는 연령보다 신령한 면을 강조하여 교우들에 의해 선출된 지도자였으므로 영적인 자격이 선행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장로들이 말씀을 가르치는 일과 치리하는 직무를 맡아 양떼를 잘 보살피는 일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직무(Overseeing office)로 인하여 장로들을 감독(Bishop=Overseer)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일례로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밀레도" 로 불러 고별사를 전할때에 그들을 감독으로 칭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디도" 에게 "그레데 교회" 에 장로를 세울 것을 권면하면서 감독이라는 칭호를 쓰고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신약성경에는 감독이라는 단어가 5회 기록되었는데 모두 장로와 동의어로 쓰여진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예는 "속사도" (Post-Apostolic, 사도들의 제자),  "교부" (敎父, Patristic,속사도들의 제자)들의 글에서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장로의 구분이 분명하지는 않으나 바울은 다스리는 장로와 말씀을 가르치는 장로를 구분한 것으로 보아 동일한 교회내에서 여러 장로가 있었을 경우에는 분담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교회를 가르치고 다스리는 일을 겸한 장소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지교회에서 장로들을 세울때 모든 장로들이 가르치는 장로로 세움을 받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장로들을 세우는 방법에 있어서도 명확한 해석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세울때 예루살렘 교회가 선택한 방법이나 일곱 집사의 선택으로 추정할 때 장로들도 임명보다는 선거에 의해 선출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14장 23절에 바울이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였다" 고 했는데 이 때의 택함의 동사의 원어적 의미가 "손을 들어 선택한다" 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이러한 모든 직분들은 낮은자로 섬김을 위함이요 군림을 위한 권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히 목사장로와 치리장로들간에 일어나는 권력적 선점을 위한 분쟁과 갈등은 바로 이러한 힘의 논리의 축에 대한  욕망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이미 순수성을 잃어버린 태도라 할 것입니다

  

3) 목사장로와 치리장로의 직분과 직무

 

목사장로는 그리스도의 양무리를 감시 감독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감독" 이라는 칭호를 쓰기도 합니다(사도행전20:28)  또한 신령한 양식으로 교인들에게 말씀을 전하므로 "목자"  또는 "목사" 라고 하기도 하며(에베소서4:11, 예레미야3:15, 베드로전서5:2~4), 또한 교인들의 모범이 되고 교회와 그 지역을 치리하는 자 이므로 "장로" 라고 합니다(베드로전서5:1~3)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함으로서 "그리스도의 종", 흔히 전임 "사역자" 라고도 하며(고린도후서3:6),  하나님의 보내신 자라는 의미에서 "교회의 사자" (요한계시록2:1)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파하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권하는 자의 역할도 하므로 "그리스도의 사신" 이라고 합니다(고린도후서5:20, 에베소서6:20)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며 거역하는 자를 책망하여 깨닫게 하는 직무도 있어서 "교사" 라고도 하며(디모데전서2:7, 디모데후서1:11, 디도서1:9)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전도자" 라하여(디모데후서4:5),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오이코노모스)라고도 합니다(누가복음12:42, 고린도전서4:1~2)

 

목사장로에 관한 직무는 교인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과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고 설교하는 일, 그리고 찬송을 지도하며 성례를 거행하는 것, 하나님의 사자로서 축복권을 행사하는 것, 교인을 교육하고 심방하며 평신도장로와 협력하여 치리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평신도 장로는 설교와 교훈은 그의 전무책임이 아니지만 각 치리회에서는 목사장로와 같은 권한으로 제반 사무를 처리하는 것입니다(디모데전서5:17, 로마서12:7~8)  평신도 장로는 목사장로와 협력하여 행정과 권징을 관리하며, 교회의 영적관계를 확인하고 점검해야 합니다  교인을 심방, 위로, 권면, 교훈하며, 또한 교인들의 신앙생활을 보다 근접한 상태에서 점검하고 언약의 자녀들을 양육하며, 교인을 위해 항상 기도하고, 목회에 필요한 제반적인 사항들을 목사에게 알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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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폭스의 순교사

 


책소개

 

그리스도인의 역사는 피뿌린 역사이다. 그 피는 먼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피요, 그 다음으로는 그분을 따르는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흘린 피이다. 이 피는 아벨의 피부터 시작하여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피를 거쳐, 로마카톨릭의 시퍼런 칼날 끝으로 흘러내려, 오늘날 우리 가슴속까지 깊이 간직되어 있다.


이 책은 우리 주께서 고난받아 죽으신 이래로, 그분을 고백한 성도들이 있었던 모든 시대에 가해진 박해를 기록해 놓은 책이다. 로마 제국과 중세 시대 로마카톨릭에 의해 행해진 박해가 주로 다루어져 있으며, 특별히 로마카톨릭이 성도들에게 자행한 박해는 너무나 끔찍하고 잔인해서, 누구라도 그 집단을 지옥의 교회요 사탄의 교회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 박해와 순교의 모습들이 가장 처참하고 가장 극적이며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바로 그 순교의 현장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저자소개

존 폭스(1517-1587)는 영국 링컨셔 주 보스톤 출신으로 옥스포드대학에서 문학과 신학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수학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면서 그의 사상은 종교 개혁 쪽으로 진행되었고 결국 로마카톨릭의 오류를 깨닫고 그 교회사를 파헤치기로 마음먹었으며 학교에서는 퇴학당하게 된다.

폭스는 그의 생애에서 오랫동안 숨어 피해 다니는 삶을 살았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분리한 헨리 8세와 그의 아들 에드워드 6세 때에는 평안한 날을 보냈지만 곧 이어 등극한 메리 여왕은 철저한 로마카톨릭이었고 따라서 폭스는 다시 박해를 피해 다녀야 했다.

스위스에서 그는 〈행적과 유적들을 통해서 본 교회사,1554년〉를 집필했으며 엘리자베스 여왕이 등극하면서(1558년) 폭스는 고국으로 돌아가 이 책을 영어판으로 냈는데(1563년) 이때부터 이 책은 〈순교자들의 책〉으로 알려졌으며, 1570년에는 개정 증보판으로 완성되었고 그의 생애 중 두 번의 재판을 내게 된다(1576,1583).

그러는 과정에 그는 건강을 잃었지만 그의 숭고한 신앙과 당시 페스트가 창궐한 가운데서도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그의 희생적 모습으로 인해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해 ˝우리의 아버지 폭스˝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서문

성경 이외에 가장 뛰어난 기독교 고전이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을 두 권 말하라 한다면, 누구라도 존 번연의 <천로역정>과 더불어 바로 이 책, <폭스의 순교사>라고 말할 것이다.


이 책은 우리 주께서 고난받아 죽으신 이래로, 그분을 고백하는 성도들이 있었던 모든 시대에 주어진 박해를 기록해 놓은 책이다. 박해와 순교에 대해서 기록한 많은 책들이 있지만, 이 책에는 그러한 박해의 모습들이 가장 처참하고 가장 극적이며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이 책을 읽는 누구라도 바로 그 순교의 현장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특별히 로마 제국과 중세 시대라는 대 박해의 기간을 중점으로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대부분의 교회사가들이 간과하는 내용들이 너무나도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들의 교회사들이 로마카톨릭을 중심으로 기록되고 있는 동안, 그 지옥같은 거짓 교회가 자행해 온 거대한 죄악은 결코 발견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참된 교회와 성도들의 피뿌린 역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끔찍하리만치 잔인하게 묘사된 서술 속에서 슬픔과 고통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짓기도 하겠지만, 그러한 고통 가운데서도 웃음 지으며 죽어가는 성도들의 의연한 모습 속에서 또한 진한 감동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미래의 영광에 대한 소망에 젖은 그들의 눈동자는 우리 모두에게 그리스도를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그들은 그들을 위해 죽으신 구주께 최상의 신실함을 보여 드렸던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존 폭스 자신도 메리 여왕의 통치라는 큰 박해의 기간을 살았던 성도로서, 성도들의 순교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거니와, 그가 지은 원래의 저서인 <순교자들의 책, The Book of Martyrs>은 메리 여왕 때까지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아, 후대의 여러 사람들이 박해에 대한 그 뒷이야기들을 나름대로 묶어 편집하곤 했다. 본서는 그러한 내용들이 윌리엄 B. 폴부쉬의 편수로 이루어진 것인데, 원 저서의 충실도와 그 뒷 기사들에 대한 편집에 있어 윌리엄 폴부쉬의 것을 따라갈 책들은 없다.


말씀보존학회는 지금까지 진리의 서적들을 출간함에 있어서, 특별히 교회사와 연관된 책들로서 <신약교회사>, <피흘린 발자취>, <성경적 성별>을 펴냈었다. 이제 우리는 <폭스의 순교사>를 펴냄으로 인해 이 땅에 올바른 교회사와 참된 기독교 신앙의 모습을 한층 더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그리스도인의 역사는 피뿌린 역사이다. 그 피는 먼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피요, 그 다음으로는 그분을 따르는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흘린 피이다. 이 피는 아벨의 피부터 시작하여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피를 거쳐, 로마카톨릭의 시퍼런 칼날 끝으로 흘러 내려, 오늘날 우리 가슴 속에까지 깊이 간직되어 있는 것이다.

 

책 속으로

제 1 장 네로에 의해 자행된 첫 번째 총체적 박해

 

마태복음에서 다른 어떤 제자들보다도 먼저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한 시몬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그리스도 우리 구주께서는, 지옥의 문들이 이기지 못할 정도로 견고한 교회를 반석 위에 세우시겠다고 하셨다. 이 말씀에는 세 가지 주목할 만한 사항들이 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실 것이다. 둘째, 그 교회는 세상뿐 아니라 극도로 강력한 지옥의 모든 힘과 권세들로부터 거센 비난과 공격을 받을 것이다. 셋째, 그러나 그 교회는 마귀와 그의 모든 악의가 극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속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 예언이 입증되는 것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오늘에 이르는 교회의 모든 역사가 다음에서 보는 것처럼 오로지 본 예언만을 입증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셨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둘째, 군소 왕들과 제왕들, 군주들, 지배자들 그리고 이 세상의 통치자들이 자신들의 부하들과 함께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교활하게 온 힘을 기울여 이 교회를 대적했던 그 세력이 얼마나 강력했던가! 그리고 셋째, 말씀하셨던 그 교회는 이 모든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지금껏 어찌나 잘 버텨오고 있는지! 그것이 뚫고 지나 온 폭풍과 격동을 바라보자니 한마디로 기가 찰 지경이다. 그것에 관해 더 분명히 천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나는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이 현 역사를 다루어 놓았다. 즉 우선은 자신의 교회에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이 그분께 영광으로 돌려지게 하기 위함이요, 또한 교회의 존속과 진행 과정을 심심찮게 제시함으로써 더 풍부한 지식과 경험으로 읽는 이에게 유익을 주고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일깨우는 데에도 기여케 하려는 것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시기 전이 됐든 후가 됐든 우리 구주의 역사를 조목조목 설명하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아니기에, 우리는 이후에 일어난 주님의 부활로 인해 유대인들이 진땀을 뺐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상기시켜 주기만 하면 된다. 한 제자는 주님을 배반하였고, 또 다른 이는 심각한 얼굴로 주님을 맹세코 부인했다. 그런가 하면 다른 모든 제자들은 주님을 버리고 내빼 버렸다. 하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우리가 만일 “대제사장과 안면이 있는 제자”(요한, 요한복음 18:15 참조)를 이들의 대열에서 제외시키지 않는다면, 주님의 부활 사건이야말로 그 모든 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었고, 또 성령이 임하신 이후로 그들의 마음에 새로운 확신을 심어 주었음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그들은 부여받은 권세로 주님의 이름을 담대하게 선포했으며, 이를 지켜보던 유대 지도자들은 혼란에 빠지고 이교 개종자들은 아연실색해 버렸던 것이다.

  1. 스테판(St. Stephen)
 : 스테판은 순서상 주님 다음으로 순교를 당했다.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죽인 자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그의 신실한 자세가 그의 죽음을 야기했다. 그들의 흥분은 광기에 가까웠는지라 그들은 그를 성읍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쳐 죽였다. 그의 순교 시점은 일반적으로 유월절, 그러니까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시고 승천하신 후 이듬해 봄에 있었던 유월절로 잡고 있다. 이 일을 발단으로 그리스도를 메시아나 선지자로 믿고 고백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극심한 박해가 일었으며, 이 사건을 기록한 누가는 지체치 않고 우리에게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가해졌고, 모든 사람이 유대와 사마리아 전 지역으로 흩어졌다”고 일러 준다(행 8:1). 일곱 집사 중 하나인 니카놀(Nicanor)을 포함한 약 2,00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스테판에게 일어난 박해 때 순교했다.

  2. 큰 야고보(James the Great)
 : 사도들의 행적을 짚어 가는 누가의 말에 따라 우리가 만나는 다음 순교자는 세베대의 아들로서,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이다. 그는 우리 주님의 친척이기도 한데, 이는 그의 모친 살로메가 주의 모친 마리아와 친사촌 지간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순교는 스테판이 죽은 지 10년째 되던 해에 일어났다. 이 사건은 당시 유대 통치자로 임명된 헤롯 아그립파(Herod Agrippa)가 부임 즉시 유대인들의 비위를 맞추고자 일으킨 맹렬한 박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지도자들을 강타해서 그들에게 효과적인 일격을 가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저명한 원저자 클레멘스 알렉산드리누스(Clemens Alexandrinus)가 제시한 기사를 우리는 빼놓지 말고 주목해야 한다. 즉 야고보가 자신이 순교당할 장소로 끌려갔을 때의 일이다. 그를 고소했던 자가 사도의 놀라운 용기와 담대함에 돌연 자신의 행위를 뉘우치더니 그의 발치에 풀석 주저앉아 용서를 구했다. 그는 자신도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면서 야고보와 함께 순교의 면류관을 쓰기로 결심했고, 그리하여 그 둘은 동시에 목이 베어졌다. 이와 같이 열두 사도 중 첫 번째 순교자는, 마실 준비가 돼 있노라고 우리 구주께 말씀드렸던 그 잔을 기꺼운 마음으로 의연하게 들이켰던 것이다. 티몬(Timon)과 파메나(Parmenas)도 동일한 시기에 각기 빌립보와 마케도니아에서 순교했다. 이 사건들은 A.D. 44년에 일어났다.

  3. 빌립(Philip)
 : 갈릴리의 벳새다 출신이며 최초로 “제자”라고 불린 사도이다. 그는 북부 아시아(Upper Asia)에서 힘써 일하다 프루기아(Phrygia)의 헬리오폴리스(Heliopolis)에서 순교했다. 그는 채찍질당하고 감옥에 던져진 후, A.D. 54년에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

  4. 마태(Matthew)
 : 세금 징수를 업으로 삼았던 그는 나사렛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의 복음서를 히브리어로 기록했고, 후에 그것을 작은 야고보(James the Less)가 헬라어로 번역했다고 한다. 그가 땀 흘렸던 무대는 파대(Parthia)와 에디오피아(Ethiopia)였는데, 그는 A.D. 60년 이 에디오피아의 나다바(Nadabah) 성읍에서 미늘창(창과 도끼를 겸한 무기)에 찔려 순교했다.

  5. 작은 야고보(James the Less)
 : 어떤 사람들은 이 야고보를 요셉의 전 아내의 소생, 즉 우리 주님의 이복 형제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며 어찌된 영문인지, 마리아는 우리 구주 외에 어떤 자녀도 낳은 적이 없다는 로마카톨릭의 미신을 쏙 빼닮았다. 이 작은 야고보는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들을 감독하는 자로 선출되었고, 94세의 고령에 유대인들에게 몰매 맞고 돌에 맞다가 결국 둥근 홈을 내는 반원형 망치로 두개골이 깨지고 뇌가 터져 나와 죽고 말았다.

  6. 맛디아(Matthias)
 : 다른 대부분의 제자들에 비해 알려진 바가 적으며, 유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사도로 선출되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돌에 맞은 후 참수당했다.

  7. 안드레(Andrew)
 : 베드로의 형제였다. 그는 아시아의 수많은 민족들에게 복음을 설교했는데, 에뎃사(Edessa)에 도착하자마자 붙잡혀 두 끝이 땅에 가로로 고정되어 있는 십자가(모양이 ‘X’자임)에 못박혔다. ‘안드레의 십자가’(St. Andrew’s Cross)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했다.

  8. 마가(St. Mark)
 : 레위 지파의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여겨지는 바로는 그가 베드로를 통해 회심하여 서기로서 그를 섬겼고, 그의 감독하에 자신의 복음서를 헬라어로 기록했다고 한다.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인들에 의해 그들의 우상 세라피스(Serapis)를 위한 대제전일에 질질 끌려 다니며 갈가리 찢겨졌고, 그들의 무자비한 손길에 생을 마감했다.

  9. 베드로(Peter)
 : 어떤 이들은 베드로가 다른 수많은 성도들과 함께 로마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십자가에 처형되었다고 말한다. 헤게시푸스(Hegesippus)의 말에 의하면, 네로가 베드로를 죽일 구실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사람들이 어지간한 법석을 떨며 베드로에게 시를 떠나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결국 그들의 끈덕진 간청에 손을 든 베드로는 피신할 채비를 갖추었는데, 그가 성문에 이르렀을 때 그를 만나려고 오시는 주님을 뵌 베드로가 경배드리며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여쭙자,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해 다시 왔노라.”고 대답하셨다는 것이다. 이에 베드로는 자신의 고난이 당연한 것임을 깨닫고 로마로 발길을 돌렸다는데, 제롬(Jerome)의 말에 따르면, 그는 머리와 발이 거꾸로 된 채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이는 자신은 주님과 같은 모양과 방법으로 못박힐 가치가 없다는 생각에 자청한 것이었다 한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확실치 못한 부분이 없지 않은데, 이는 베드로가 로마에 갔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반론이 제기되며, 그러한 반론은 타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10. 바울(Paul)
 : 이전엔 사울(Saul)이라 불리던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느라 겪은 극심한 고난과 이루 말할 수 없는 수고를 뒤로 한 채, 네로가 자행한 이 첫 번째 박해의 또 다른 희생양이 되었다. 압디아(Abdias)는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바울에게 사형을 언도한 네로는 자신의 근위병들 중 페레가(Ferega)와 파르데미우스(Parthemius)라는 이들을 보내 그에게 사형을 선고케 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 바울에게 다가간 그들은 자신들도 믿고 싶으니 위해서 기도해 주기를 그에게 요망했고, 그는 그들이 즉시 믿고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일러준 대로 이 일을 마친 군인들은 와서 그를 처형장으로 데려갔으며, 그는 그곳에서 기도를 끝내고 자신의 목을 칼날에 내어주었다.

  11. 유다(Jude)
 : 야고보의 형제이며, 보통 다대오(Thaddeus)라고 불렸다. A.D. 72년, 에뎃사(Edessa)에서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12. 바돌로매(Bartholomew)
 : 대여섯 나라들에서 말씀을 전파했고, 마태복음을 인도어로 번역하여 그것을 그 나라에 보급시켰다 한다. 결국 그를 못 죽여서 안달이 나 있던 우상 숭배자들에게 잔혹하게 두들겨 맞고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13. 도마(Thomas)
 : 디두모(Didymus)라고도 불리며, 파대(Parthia)와 인도에서 복음을 전파했다. 그곳에서 이교도 제사장들의 분노를 산 그는 창에 찔려 순교했다.

  14. 누가(Luke)
 : 복음 전도자이자 그의 이름을 사용한 복음서의 저자이기도 하다. 바울과 함께 다양한 나라들을 여행했으며, 우상을 숭배하는 그리스 제사장들에 의해 올리브 나무에 목매여 죽임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5. 시몬(Simon)
 : 다르게는 셀롯(Zelotes)이라고도 불리며, 아프리카의 모리타니아(Mauritania)뿐 아니라, 심지어 영국에서도 복음을 전했다. A.D. 74년에 영국에서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16. 요한(John)
 : 이 “사랑하는 제자”는 큰 야고보의 형제였다. 스머나, 퍼가모, 사데, 필라델피아, 라오디케아, 두아티라 교회들은 그가 세운 교회들이다. 에베소에 있을 때 그를 로마로 보내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그리하여 거기서 펄펄 끓는 기름 가마솥에 던져 넣어졌다고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털끝 하나 안 상하고 기적적으로 탈출했다. 이후 도미시안(Domitian)에 의해 팟모섬으로 유배당한 그는 그곳에서 요한계시록을 썼고, 도미시안의 뒤를 이은 네르바(Nerva)가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그는 잔혹한 죽음을 모면한 유일한 사도였다.

  17. 바나바(Barnabas)
 : 쿠프로(Cyprus) 태생이지만 유대인의 후손이며, A.D. 73년에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와 같이 온갖 끊이지 않는 박해와 등골을 오싹케 하는 처형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사도들과 그들로부터 배운 이들의 교리에 깊숙이 뿌리 내렸으며, 흘려진 성도들의 피를 자양분 삼아 나날이 강성해졌다(pp.17-23).

자료제공 : http://www.biblemast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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