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과 부활절 전 한 주에 간십자가의 길

 고난주간은 부활절 전 한 주간으로, 이 기간 동안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어떻게 신앙적으로 살 것인가를 생각하며 지냅니다. 
  

첫째날 ;

 
 예루살렘 입성 ;

 
"..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 마가복음 11 ; 1 -11


 예수께서는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의 성으로 공공연히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셨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지켜보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셔 모든 것을 둘러보셨습니다.

그리고 웅장하고 아름답게 장식된 성전 속에서 인간의 위선, 탐욕, 가증스러움, 이기주의 등의 

죄악이 가득 차 있음을 보셨습니다.

다음 날 예수께서는 이처럼 더럽혀진 성전을 깨끗케 하기 위해 채찍을 드셔야 했습니다.

 

묵상 ; 1.고난과 죽음을 미리 아시면서도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의 용기를 생각해 봅시다.

         2.오늘 내 마음 속을, 우리 교회를 예수님께서 오셔서 둘러 보신다면 무엇을 느끼실까요?

 
 

둘째날 ;

 
성전을 청결케 하심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 마가복음 11 ; 15 - 19

 

 

당시 성전 안에서는 명절 때 희생의 제물로 쓸 짐승과 향유, 그밖에 필요한 물품을 매매하였고, 성전안에서만 쓰는 유대 화폐를 교환하여 주곤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인들, 돈 바꾸는 자들과 결탁한 제사장들은 막대한 부당이득을 취하였으며, 이로 인해 성전은 완전히 시장과 같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때 예수께서는 그들을 내어 쫓으시며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17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참 제사장의 자격으로 더러워진 성전에 대해 벽분하시고 이를 깨끗케 하신 것입니다.이것은 성전 뿐아니라 온세계를 성결케 하시려는 하나의 표징이 됩니다.

 

묵상 ; 1. 나의 신앙은 혹시 이기주의, 상업주의에 젖어 있지 않나요?

         2. 하나님의 성전을 참으로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떤 신앙의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셋째날 ;

 
과부의 두 렙돈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 마가복음 12 ; 41 - 44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지켜보셨습니다.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었습니다.

이때 예수께서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평범한 것 같은 이야기에서 실로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강조되어 있는 점에 주의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양보다는 질을, 형식보다는 중심을 중요시 하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아 주실 만한 것입니까?

 
묵상 ; 1 ;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헌금은 어떤 것일까요?(고후9;7. 8;12)

         2. 다음의 말씀을 명상합시다.
 

"많은 사람들은 지갑으로만 바쳤지만 그녀는 마음으로부터 바쳤습니다.

이는 습관을 좇아 드리는 것과 사랑으로 드리는 것의 차이입니다.

 
 

넷째날 ;

 

한 여인의 헌신

 

"..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 마가복음 14 ; 3 - 9

예수께서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한 여인이 비싼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예수께 나아와 그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 향유는 300데나리온에 팔 수 있다고 하는데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보통 하루 품삯에 해당합니다.

이 향유는 무척 비싼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여인에게서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사랑의 충동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불평과 비난속에서도 예수께 향한 그녀의 사랑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이 일을 주님께서 칭찬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묵상 ; 1.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며, 주님을 위하는 데 따라야 할 자기 희생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2.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함"과 같이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의 말씀에서 '봉사의 기회'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기회를 놓치지 말고 봉사해야 할 일에 어떤 것이 있을까요?

  

다섯째날 ;

 
최후의 만찬 ;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가복음 14;22-25


예수께서는 배반당하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셨습니다.

이 때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드셨습니다.

이는 십자가 위에서 자기 몸을 희생해 제자들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실 것을 말씀으로만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있는 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찢기실 자신의 몸과 흘리실 피로 속죄를 이루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마지막 만찬 때 예수께서는 한 사람의 제자장으로서 그의 영원한 영혼을 흠 없이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묵상 ; 1. 최후의 만찬에 참여한 제자들의 심정을 생각해 봅시다.

         2.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먹음으로 속죄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여셧째날 ;
 

십자가에 달리시고 운명하시다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 마가복음 15;16-41

 

1.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하나님이 용서하시는 사랑은 한이 없으십니다.

2.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회개하는 죄인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희망을 주십니다.

3. "어머니 보소서. 아들입니다."  

                    인간 사이에 있어야 할 돌봄과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4.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대신 지신 죄 때문에 고통당하시고 버림 받으시는 예수의 거룩한 절규를 보게 됩니다.

5. "내가 목마르다." 

               인간들의 사랑과 헌신과 충성을 요청하시는 갈증입니다.

6.:다 이루었다." 

              거룩한 희생으로 모든 죄를 대속하셨다는 하나님 어린 양의 승리의 외침입니다.

7. "아버지, 내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깁니다." 

               하나님께로 부터 오신 예수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을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위대하신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묵상 ; 1. 용서함 받은 우리는 역시 남을 용서하며 사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2. 훗날 우리가 남길 유언을 생각해 봅니다.

 

일곱째날 ;

 
무덤 속의 예수 ;
 

"..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 마가복음 15;42-47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청하여 자기를 위하여 새로 만들어 둔 무덤에 장사지냈습니다.

그는 알려지지 않은 제자였지만 이제는 관헌의 박해와 친지들의 차가운 눈총을 무릎 쓰고 용기 있게 행동했습니다.

그는 당당히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 인도를 요구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자신이 무덤에 들어가심으로 죽음을 이기시고 악의 권세를 물리치게 되셨습니다.

그는 무덤의 어두움을 제거하셨으며 그 공포를 영원히 쫓아버리셨습니다.

죽음이 그 쏘는 살로 그리스도를 상하게 했지만 부활하심으로 이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그 위력을 끼치지 못하게 만드셨습니다.

 
묵상 ; 1.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2. 기독교인은 죽음을 어떻게 맞아야 할까요?
 
 

여덟째 날 ;
 

부활의 주를 만난 삶 ;
 

금요일에 장사지낸 바된 예수님께서는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본문은 에수 부활 사건이 전해진 그날 오후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셨고,

실의에 빠진 그들이 부활의 주를 만나 용기를 얻었다는 기록입니다.

글로바와 다른 한 제자는 그날 아침 예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하고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주께서 그들 사이에 동행하시면서 구약성서를 풀어주셨습니다.

메시아가 고난받으셔야 할 것과, 고난 후 영광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니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누가복음 24;25-35
 

그후 그들의 목적지까지 도달하여 떡을 떼실 때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게 되었고

, 용기를 얻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부활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과 동행하셨는데 왜 그들은 깨닫지 못했을까요?

마가복음 16장12절에는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고 했습니다.

또한 누가복음에는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24;16)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말씀을 풀어 주실 때 마음이 뜨거워졌고, 떡을 가지고 축사하사 저희에게 떼어주실 때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아라" 보게 되었습니다.

  

묵상 ; 1. 예수의 부활의 사실을 의심할 때가 있나요?

         2. 부활 신앙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생동감 있게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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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학교에서 가르치는부활절, 고난주간, 사순절, 사육제란
 

 

 


A. 부활절(復活節)(Easter) 
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독교 최대의 축일이다. 초창기에는 유월절을 따라 유대력 니산월(태양력 3-4월) 14일을 부활절로 기념하였다. 그러나 유대인의 유월절을 그리스도인의 부활절로 지킬 수 없다는 로마 교회의 판단에 따라 니케아공회(325년)부터는 춘분(3월21일) 이후 최초의 만월(彎月)이 지난 첫 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지키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결코 부활절이 유월절보다 먼저 오는 일은 피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부활절의 날자는 매년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대체로 3월22일과 4월26일 사이에 떨어지게 된다.
● 2017년= 4월 16일
● 2018년= 4월 1일
● 2019년= 4월 21일
● 2020년= 4월 12일

부활절 풍습으로는 ①흰옷(기쁨) ②백합(순결) ③양고기(예수님) ④달걀(새 생명) 등이 있다. 

 
B. 고난주간(苦難週間)(Passion Week)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던 종료주일 다음날(월)부터 부활하시기 전날(토)까지 일주일을 말한다. 수난주간이라고도 하는 이 일 주일은 예수님의 행적을 생각하며 경건하게 지내는 주간으로 특히 최후의 만찬이 열렸던 목요일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 계셨던 금요일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심정으로 금식하는 성도들이 많다.  

 
C. 사순절(四旬節)(Lent)
부활절 전까지 6번의 주일을 제외한 40일동안의 기간을 말한다. 40일의 시작일을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라 부른다. 교회는 이 기간 동안에 십자가를 생각하며 회개, 금식, 기도, 묵상 등의 경건생활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음식을 먹는 경우 고기를 제외한 채식 위주의 식단을 꾸리는 것이 원칙이다.
● 성경에서 40일은 고난과 인내의 기간을 상징한다. 노아의 홍수 때 밤낮으로 비가 40일간 내렸고(창 7:4), 이스라엘 백성은 40년간 광야에서 훈련을 받았으며(민 14:33), 예수님께서는 40일동안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다(마 4:1). 

 
D. 사육제(謝肉祭)(Carnival)
카니발의 어원은 ‘고기여 안녕’이라는 뜻이다. 즉 원래 사육제는 사순절 기간 동안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될 것을 대비하여 미리 실컷 고기를 먹어두는 3-7일 정도의 행사 기간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본질은 사라지고 자유와 방종이 과도하게 허용되는 축제로 변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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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과 부활절 전 한 주 동안  십자가의 길을 생각하며

 

 

 

 

 고난주간은 부활절 전 한 주간으로, 이 기간 동안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어떻게 신앙적으로 살 것인가를 생각하며 지냅니다.

 

첫째날 ;

 
 예루살렘 입성 ;

 
"..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 마가복음 11 ; 1 -11


 예수께서는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의 성으로 공공연히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셨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지켜보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셔 모든 것을 둘러보셨습니다.

그리고 웅장하고 아름답게 장식된 성전 속에서 인간의 위선, 탐욕, 가증스러움, 이기주의 등의

죄악이 가득 차 있음을 보셨습니다.

다음 날 예수께서는 이처럼 더럽혀진 성전을 깨끗케 하기 위해 채찍을 드셔야 했습니다.

 

묵상 ; 1.고난과 죽음을 미리 아시면서도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의 용기를 생각해 봅시다.

         2.오늘 내 마음 속을, 우리 교회를 예수님께서 오셔서 둘러 보신다면 무엇을 느끼실까요?

  

둘째날 ;

 
성전을 청결케 하심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 마가복음 11 ; 15 - 19

 

 

당시 성전 안에서는 명절 때 희생의 제물로 쓸 짐승과 향유, 그밖에 필요한 물품을 매매하였고, 성전안에서만 쓰는 유대 화폐를 교환하여 주곤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인들, 돈 바꾸는 자들과 결탁한 제사장들은 막대한 부당이득을 취하였으며, 이로 인해 성전은 완전히 시장과 같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때 예수께서는 그들을 내어 쫓으시며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17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참 제사장의 자격으로 더러워진 성전에 대해 벽분하시고 이를 깨끗케 하신 것입니다.이것은 성전 뿐아니라 온세계를 성결케 하시려는 하나의 표징이 됩니다.

 

묵상 ; 1. 나의 신앙은 혹시 이기주의, 상업주의에 젖어 있지 않나요?

         2. 하나님의 성전을 참으로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떤 신앙의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셋째날 ;

 
과부의 두 렙돈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 마가복음 12 ; 41 - 44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지켜보셨습니다.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었습니다.

이때 예수께서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평범한 것 같은 이야기에서 실로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강조되어 있는 점에 주의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양보다는 질을, 형식보다는 중심을 중요시 하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아 주실 만한 것입니까?

 
묵상 ; 1 ;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헌금은 어떤 것일까요?(고후9;7. 8;12)

         2. 다음의 말씀을 명상합시다.
 

"많은 사람들은 지갑으로만 바쳤지만 그녀는 마음으로부터 바쳤습니다.

이는 습관을 좇아 드리는 것과 사랑으로 드리는 것의 차이입니다.

 
 넷째날 ;

 

한 여인의 헌신

 

"..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 마가복음 14 ; 3 - 9

예수께서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한 여인이 비싼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예수께 나아와 그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 향유는 300데나리온에 팔 수 있다고 하는데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보통 하루 품삯에 해당합니다.

이 향유는 무척 비싼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여인에게서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사랑의 충동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불평과 비난속에서도 예수께 향한 그녀의 사랑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이 일을 주님께서 칭찬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묵상 ; 1.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며, 주님을 위하는 데 따라야 할 자기 희생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2.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함"과 같이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의 말씀에서 '봉사의 기회'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기회를 놓치지 말고 봉사해야 할 일에 어떤 것이 있을까요?

 

다섯째날 ;

 
최후의 만찬 ;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가복음 14;22-25


예수께서는 배반당하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셨습니다.

이 때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드셨습니다.

이는 십자가 위에서 자기 몸을 희생해 제자들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실 것을 말씀으로만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있는 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찢기실 자신의 몸과 흘리실 피로 속죄를 이루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마지막 만찬 때 예수께서는 한 사람의 제자장으로서 그의 영원한 영혼을 흠 없이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묵상 ; 1. 최후의 만찬에 참여한 제자들의 심정을 생각해 봅시다.

         2.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먹음으로 속죄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여셧째날 ;
 

십자가에 달리시고 운명하시다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 마가복음 15;16-41

 

1.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하나님이 용서하시는 사랑은 한이 없으십니다.

2.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회개하는 죄인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희망을 주십니다.

3. "어머니 보소서. 아들입니다." 

                    인간 사이에 있어야 할 돌봄과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4.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대신 지신 죄 때문에 고통당하시고 버림 받으시는 예수의 거룩한 절규를 보게 됩니다.

5. "내가 목마르다."

               인간들의 사랑과 헌신과 충성을 요청하시는 갈증입니다.

6.:다 이루었다."

              거룩한 희생으로 모든 죄를 대속하셨다는 하나님 어린 양의 승리의 외침입니다.

7. "아버지, 내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깁니다."

               하나님께로 부터 오신 예수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을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위대하신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묵상 ; 1. 용서함 받은 우리는 역시 남을 용서하며 사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2. 훗날 우리가 남길 유언을 생각해 봅니다.

 

일곱째날 ;

 
무덤 속의 예수 ;
 

"..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 마가복음 15;42-47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청하여 자기를 위하여 새로 만들어 둔 무덤에 장사지냈습니다.

그는 알려지지 않은 제자였지만 이제는 관헌의 박해와 친지들의 차가운 눈총을 무릎 쓰고 용기 있게 행동했습니다.

그는 당당히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 인도를 요구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자신이 무덤에 들어가심으로 죽음을 이기시고 악의 권세를 물리치게 되셨습니다.

그는 무덤의 어두움을 제거하셨으며 그 공포를 영원히 쫓아버리셨습니다.

죽음이 그 쏘는 살로 그리스도를 상하게 했지만 부활하심으로 이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그 위력을 끼치지 못하게 만드셨습니다.

 
묵상 ; 1.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2. 기독교인은 죽음을 어떻게 맞아야 할까요? 

 

 

 여덟째 날 ;
 

부활의 주를 만난 삶 ;
 

금요일에 장사지낸 바된 예수님께서는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본문은 에수 부활 사건이 전해진 그날 오후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셨고,

실의에 빠진 그들이 부활의 주를 만나 용기를 얻었다는 기록입니다.

글로바와 다른 한 제자는 그날 아침 예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하고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주께서 그들 사이에 동행하시면서 구약성서를 풀어주셨습니다.

메시아가 고난받으셔야 할 것과, 고난 후 영광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니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누가복음 24;25-35
 

그후 그들의 목적지까지 도달하여 떡을 떼실 때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게 되었고

, 용기를 얻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부활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과 동행하셨는데 왜 그들은 깨닫지 못했을까요?

마가복음 16장12절에는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고 했습니다.

또한 누가복음에는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24;16)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말씀을 풀어 주실 때 마음이 뜨거워졌고, 떡을 가지고 축사하사 저희에게 떼어주실 때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아라" 보게 되었습니다.

 

묵상 ; 1. 예수의 부활의 사실을 의심할 때가 있나요?

         2. 부활 신앙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생동감 있게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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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절기 기도 / 고난주간 기도문

 

 

 

고난주간은 종려주일 밤 12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렇기에 고난주간의 대표기도라고는 통상적으로 수요일 삼일 예배와 세족식이 있는 성금요일 밤에 해야겠지요. 또한, 아침마다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 하면서 예수님의 희생과 은혜와 사랑을 감사함으로 기도하면 더욱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 오늘 우리가 고난주간으로 모여 주께 예배하게 하신 은혜 감사합니다. 이번 주간이 주님을 깊게 생각하는 시간이 되게 하시며, 갈보리 십자가 앞으로 나오는 복된 시간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님, 갈보리의 십자가를 짊어지신 주님을 생각합니다. 그 은혜와 그 사랑에 날마다 감격합니다. 그 보혈의 피가 없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없었다면 우리는 영원히 멸망을 받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죄악 가운데 버리지 아니하시고,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고난주간을 보낼 때에 세상에 헛된 욕심을 버리게 하시고, 주의 말씀을 더욱더 굳건히 붙드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고난주간 기도회로 모여서 주께 기도합니다. 이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마음에 새기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의 흔적을 갖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저희들이 예수님의 순종을 기억합니다. 예수님도 인간이셨기에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십자가를 벗고 싶었지만 오직 주께 순종함으로 갈보리의 길을 걸으신 주님의 순종을 우리가 본받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 순종에 동참하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열방 가운데 전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아직도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조차도 들어보지 못하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땅이 복음의 황무지였을 때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시고, 복음이 들어오게 하시고, 놀라운 부흥의 국가로 만드신 하나님, 이제 우리가 보내는 복음을 보내는 나라가 되도록 인도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온 세계에 나가 생명을 걸고 주님을 전하게 하시어, 주의 말씀을 전혀 듣지 못하고 죽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없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를 위하여 헌신하는 자들이 일어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그 크신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주의 사랑을 전하는 길 뿐임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입에 성령으로 함께 하셔서 지혜로운 말씀을 증거 하게 하여 주옵소서. 죽은 영혼을 살리는 일들이 일어나도록 역사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예수님의 피와 같은 말씀으로 우리를 먹이실 목사님 위에 함께 하사, 이 고난주간을 더욱더 깊게 보낼 수 있는 말씀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몸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감당하는 은혜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오직 주의 십자가만 자랑하길 원합니다. 내 일생의 자랑이 십자가가 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하여 예루살렘에 오르시고, 갈보리 십자가를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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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부활절(Easter) 
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독교 최대의 축일이다. 초창기에는 유월절을 따라 유대력 니산월(태양력 3-4월) 14일을 부활절로 기념하였다. 그러나 유대인의 유월절을 그리스도인의 부활절로 지킬 수 없다는 로마 교회의 판단에 따라 니케아공회(325년)부터는 춘분(3월21일) 이후 최초의 만월(彎月)이 지난 첫 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지키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결코 부활절이 유월절보다 먼저 오는 일은 피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부활절의 날자는 매년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대체로 3월22일과 4월26일 사이에 떨어지게 된다.
● 2017년= 4월 16일
● 2018년= 4월 1일
● 2019년= 4월 21일
● 2020년= 4월 12일

부활절 풍습으로는 ①흰옷(기쁨) ②백합(순결) ③양고기(예수님) ④달걀(새 생명) 등이 있다.
 

B. 고난주간(Passion Week)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던 종료주일 다음날(월)부터 부활하시기 전날(토)까지 일주일을 말한다. 수난주간이라고도 하는 이 일 주일은 예수님의 행적을 생각하며 경건하게 지내는 주간으로 특히 최후의 만찬이 열렸던 목요일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 계셨던 금요일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심정으로 금식하는 성도들이 많다.
 
 
C. 사순절(Lent)
부활절 전까지 6번의 주일을 제외한 40일동안의 기간을 말한다. 40일의 시작일을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라 부른다. 교회는 이 기간 동안에 십자가를 생각하며 회개, 금식, 기도, 묵상 등의 경건생활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음식을 먹는 경우 고기를 제외한 채식 위주의 식단을 꾸리는 것이 원칙이다.
● 성경에서 40일은 고난과 인내의 기간을 상징한다. 노아의 홍수 때 밤낮으로 비가 40일간 내렸고(창 7:4), 이스라엘 백성은 40년간 광야에서 훈련을 받았으며(민 14:33), 예수님께서는 40일동안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다(마 4:1).
 
 
D. 사육제)(Carnival)
카니발의 어원은 ‘고기여 안녕’이라는 뜻이다. 즉 원래 사육제는 사순절 기간 동안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될 것을 대비하여 미리 실컷 고기를 먹어두는 3-7일 정도의 행사 기간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본질은 사라지고 자유와 방종이 과도하게 허용되는 축제로 변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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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주간 예배 설교     / Passion Week Worship preaching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마 26:69-75)  

 

 베드로는 주님의 제자 중 열심있는 수제자로, 예수께서 제자들의 배신을 예언하실 때도 자신만은 주님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 장담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도 예수님을 부인했을 뿐 아니라 저주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를 통해 우리 성도들이 알아야 할 교훈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① 우리는 약한 자입니다(롬 5:6) - 우리에게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능력과 열심히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는 인간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의 능력만을 의지하고 승리의 주님, 도우시는 성령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라도 또다시 넘어질 수밖에 없는 약한 자들인 것입니다.

  ② 소망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넘어집니다(롬 8:24,25) - 우리가 복음을 인하여 핍박과 환난을 받지만 기쁭으로 인내하여 견디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질 천국에 대한 소망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대한 소망과 확신이 없다면 이 세상을 살아 나가는 도안 겪게 될 수많은 고난에 우리는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③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고후 12:9,10) -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 가운데는 크고 작은 실패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은 우리 자신들보다도 이 사실을 더 절 아십니다. 베드로도 주님을 부인함으로 실패자가 되었지만, 다시 회개하고 일어나 사도직을 잘 감당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실패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는 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최후의 승리자가 됩니다.

 

  주님을 향해 가다 육신의 연약함을 인해 넘어졌습니까? 그렇다면 그 나약한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십시오.그러면 승리의 주님이 연약한 당신을 이끌어 승리하는 삶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영원한 실패자 가룟 유다(마 27:3-8)  

 

  가룟 유다는 영광스런 주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은 삼십에 팔아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게 했습니다. 결국 이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 목매달아 죽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유다의 죽음은 어떤 것이었는지 살펴봄으로 주의 제자로서의 우리의 자세를 바르게 합시다.

 

  ① 육신이 비참하게 주었습니다(5절) - 주님을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시게 한 가룟 유다는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 스스로 목매달아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팔아 얻은 은 삼십은 그가 죽은 후 그의 묘지를 사는데 쓰여졌습니다. 때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 잡는 세상적인 욕심의 결국은 이처럼 허무한 것입니다.

  ② 명예가 죽었습니다(6-8절) -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욕된 이름은 그의 명예를 죽일 뿐입니다. 기룟 유다의 이름은 그의 죄악된 행동으로 인해 2000년이 지난 지금은 물론 영원히 저주의 대명사로 불려질 것입니다.

  ③ 영혼이 죽었습니다(약 1:15) -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의 죄는 진정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주님은 그가 돌이켜 주님 앞에 회개했다면 그를 용서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돌이키지도,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죽음을 택했을 뿐입니다. 이에 그의 영혼은 영원한 지옥불에 던져지고 말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결국 잠시 세상의 달콤한 유혹을 따라가다 돌이키지도 못할 인생의 영원한 실패자로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님을 잘 따라 왔습니다. 앞으로도 주님만을 바라보며 따라갑시다. 혹 세상적인 유혹으로 인해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의 노선에서 잠시 빗나갔을지라도 즉시 회개하고 돌아옵시다. 승리의 삶을 주시는 주님께로.
 

   고난의 종으로 오신 예수님(사 53:4-6)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피조물의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서 고난을 받으시며,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도리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고난 주간을 맞이해 이땅에 오신 주님이 당하신 고난은 어떤 것이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① 고난 받은 예수님(4절) - 예수님은 아무 흠도 없는 거룩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그의 백성들의 더러운 죄로 인해 조롱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육체적인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② 버림 받은 예수님(5절) - 죄인인 인간들을 사랑하셨기에 고난을 받으시는 예수님을, 인간들은 오히려 욕하며 배척했습니다. 똫나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마저 주님을 버리고 도망감으로 처절한 배반을 경험하셨습니다.

  ③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6절) - 죽음은 범죄로 인한 심판입니다. 그런데 아무 흠도, 죄도 없는 깨끗한 주님께서 하나님께 버림받는 죽음의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이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생명을 얻었습니다.

 

  주님은 2000년전에 하나님의 종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대속의 사역을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 대속의 십자가 죽음의 사역을 믿기만 하면 모든 자들이 다 영생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주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한다면 주님을 또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바울이 경험한 전화 위복(행 9:4; 고후 12:7; 빌 1:13)  

 

  예수님은 외롭고 고통스러운 십자가 사역을 마치신 후에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때로 성도에게 고난을 허락하시고 고난의 과정을 통해 당신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자신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짐을 보고 감사했던 바울을 통해 고난을 주시는 깊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① 소경됨을 인해 영적 눈을 떳습니다(행 9:4) - 주님을 핍박하던 사울이 하나님의 섭리하심으로 잠시 소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암울함 속에서 그는 오히려 빛이신 그리스도를 발견했습니다. 육체의 한 지체를 잃음으로 그는 영혼을 얻었습니다.

  ② 육체의 가시로 겸손을 배웠습니다(고후 12:7) - 하나님은 바울에게 육체의 아픔과 고통을 허락하셨습니다. 바울은 육신의 연약함을 통해 자신의 무능함과 크신 하나님의 권능을 깨달았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한 삶의 자세를 배웠습니다.

  ③ 감옥에 갇힘이 전도의 기회가 되었습니다(빌 1:13) -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파하는 바울이 옥에 갇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잠시 잠깐 복음이 막히는 듯했으나, 이는 또다른 복음 증거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감옥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파하는 바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영혼의 해방을 얻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예기치 않은 고난이 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 가운데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감추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고난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살펴 고난 중에도 감사하며 인내함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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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설교 /고난주간] 인류구원을 위한 고난

[Season Preaching / passion week] Tribulation for the salvation of mankind

 

 

 


제목 : 인류 구원을 위한 고난

말씀 : 마27:45-54

오늘은 고난주간의 첫날입니다. 고난주간은 오늘부터 시작해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금요일을 지나 무덤에 계셨던 토요일까지를 말합니다. 물론 예수님의 전 생애가 다 그랬지만 특별히 이 기간은 특별히 더욱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온갖 멸시와 천대와 고통과 저주의 죽음을 당하기까지 낮아지셨던 기간입니다. 그래서 이 기간을 고난주간으로 정하여 주님의 낮아지심과 십자가의 의미를 되새기며 경건의 훈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고난주일을 맞아 예수님이 당하셨던 고난의 의미를 되새겨 보며 그것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에 대하여 상고하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나눌 때에 진정 주님의 고난을 여러분의 것으로 받아들여 주님께서 고난을 통하여 인류에게 주셨던 죄사함의 은총과 생명의 은총을 온전히 경험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1.예수님은 정신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정신적으로도 심한 모욕과 멸시를 당하십니다. 먼저 예수님은 흉악한 죄인이었던 바라바보다도 못한 존재로 취급당하심으로 멸시천대를 당하셨습니다. 빌라도가 바라바를 놓아주랴, 예수를 놓아주랴고 군중들에게 물었을 때 사람들은 예수를 놓아주느니 차라리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럴 수가 있습니까? 만약 사람들이 여러분을 세상에서 가장 흉악한 살인강도보다도 못한 사람으로 취급한다면 여러분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을 바라바와 비교되는 것 자체도 치욕이고 모욕을 진대 하물며 그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을 당하셨으니 얼마나 그 마음이 아프셨겠습니까?

물론 그뿐이 아닙니다. 막14:65에 보면 “혹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우고 주먹으로 치며 가로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속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얼마나 어이없는 일입니까?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뺨을 치며, 또 얼굴을 때리면서 누가 때렸는지 알아맞춰 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종들이 예수님의 얼굴을 때리면서 조롱하였으니 천하에 이렇게 무지하고 어리석고 패역부도한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무지막지한 로마병정들과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에게서도 극심한 모욕한 멸시천대를 당하십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예수님에게 홍포를 입히고 가시로 면류관을 만들어 입히고는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치면서 침을 뱉으며 꿇어 엎드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하면서 온갖 조롱을 해댑니다.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성전을 헐고 사흘만에 짓는 자여, 이제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며 정말 무지하고 어리석은 조롱을 퍼부어 댑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예수님은 심지어 사랑하는 제자들로 부터도 버림을 당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는 자신의 생명의 위협 앞에서 예수님을 저주하며 부인하고 맙니다.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막14:71)

여러분, 사랑하는 제자로부터 이런 소리를 들어야하는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바라바보다도 흉악한 죄인 취급을 당하시고, 가시면류관 씌움을 당하시고, 침뱉음을 당하시고, 뺨을 맞으시고, 선지자 노릇 한번 해봐라, 십자가에서 한번 뛰어보라며 조롱당하신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이런 멸시천대와 조롱을 당했더라면 어떻겠습니까? 물론 힘도 없고, 빽도 없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수모를 당했다면 도리없이 참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영광과 찬양을 받으셔야 했던 분이십니다. 당장이라도 열두 영도 더 되는 천사를 불러 그렇게 자신을 모욕하는 자들을 요절 낼 수 있는 권세도 가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묵묵히 참으셨던 것입니다.

2.예수님은 육체적으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디 그뿐입니까? 예수님의 당하신 그 육체적 고통은 또 어떤 것이었습니까? 예수님은 안토니아 요새에 있는 빌라도의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셔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십니다.

가시는 길도 고통과 아픔 그 자체였습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로 험한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로마병정들의 채찍소리는 쉬지 않고 들려왔습니다.

로마병정들이 휘두르는 채찍의 끝에는 쇠가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니 한번 휘두를때만 살쩜이 떨어나가고, 그 상처에서는 쉴새없이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옮기는 발자국 발자국마다 온통 피로 얼룩이 졌고, 넘어지고 쓰러질때 십자가는 예수님의 등뼈를 짓눌렸습니다.

그러한 처절한 고통속에서 드디어 주님은 골고다 언덕에 도착합니다. 잔인한 로마 병정은 십자가를 땅에 놓고 예수님을 십자가위에 쓰러뜨렸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시 시작합니다. 양팔을 벌려 십자가의 가로대에 대고는 커다란 대못을 주님의 팔목에 대고 박기 시작합니다. 골고다 언덕에 울려 퍼지는 망치소리와 함께 주님의 처절한 신음소리가 사람들의 폐부 속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병정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님의 두 발목을 포개어 십자가의 수직 대에 대고는 다시 망치질을 시작합니다.

(복음송 :그때 그 무리들이)

1절 : 그때 그 무리들이 예수님 못 박았네, 녹슨 세 개의 그 못으로, 망치소리 내 맘을 울리면서 들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망치소리는 산을 울리고, 멀리서 흐느끼는 여인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예수님의 신음소리도 처절하게 들려옵니다. 드디어 무지막지한 로마 병정들은 주님께서 못박히신 십자가를 일으켜 세우기 시작합니다.

십자가가 세워지면 질수록 못 박힌 주님의 손목, 못 박힌 주님의 발목에는 참을 수 없는 처절한 고통이 찾아옵니다. 살은 찢겨지고, 뼈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으스러져 갔습니다. 손목이 찢어지는 고통을 이기기 위하여 발목에 힘을 주면, 이번에는 발목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옵니다. 발목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하게 하기 위하여 발목에 힘을 뺄라치면 이번에는 손목이 찢어지는 처절한 고통이 온몸을 전율시켰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고통은 감당할 수 없이 온 몸과 영혼을 짓눌렀습니다. 주님의 숨소리는 자꾸만 거칠어져 갔습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이 주님의 영혼 깊숙한 곳까지 젖어 들어왔습니다.

(찬송가 144장 1절)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하셨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아멘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자신을 그 처절한 고통속에 내 맡기셨습니다. 멸시도, 저주도, 고통도, 죽음조차도 주님을 십자가에서 내려놓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지금이라도 십자가에서 뛰어 내릴 수가 있었습니다. 성난 파도를 향하여 명령하셨던 주님이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향하여, 죽음을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라」고 호령하셨던 주님이셨습니다. 지금이라도 열두영도 더 되는 천사들을 불러서 로마 병정들을,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던 완악한 무리들을 당장 해치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저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시간은 흘러 정오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어둠이 밀려 왔습니다. 가장 햇빛이 찬란히 빛나야 할 정오에 갑자기 해가 빛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두려움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멀리 멀리 도망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얼마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디선가 간간히 여인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한순간 주님의 절규가 들려왔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것은 인간 예수의 마지막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육신을 입은 인간으로서의 절규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잠시 다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평정을 찾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그리고 한참 후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는 마지막 말씀을 마치시고, 당신의 오셨던 그곳으로, 당신의 영광된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온갖 멸시천대와 조롱과 버림을 당하셨습니다. 가시면류관을 씌움과 침뱉음과 뺨맞음을 당하셨습니다. 살쩜이 떨어져 나가는 채찍질을 당하시며 험한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의 언덕길을 오르셨습니다. 그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손목이 찢어 졌습니다. 발목이 찢어지고, 뼈는 으스러졌습니다. 피는 흐르고 또 흘러 십자가를 빨갛게 물들이고, 골고다 언덕을 피로 물들였습니다. 그래서 태양은 빛을 잃어 버렸고, 땅은 진동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렇다면 그 처절하고도, 끔찍한 주님의 고통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왜? 누구를 위해서? 무엇 때문에? 그 저주의 죽음을, 그 처절한 고통을, 그 멸시받은 죽음을 당하셔야만 했습니까?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창조자시요, 주관자시요, 섭리자신데, 없는 것도 있으라 하시면 있고, 있는 것도 없으라 하시면 없게 하시는 분이신데, 지구를 태양을 향하여 돌라하면 돌고, 달더러 지구를 돌라고 하면 돌게 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산자를 죽으라하면 죽고, 죽은 자를 살라하면 살게 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왜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런 처절한 아픔과 죽음을 당하게 하셔야 했습니까?

그것은 인류를 구속할 수 있는 길은 그 방법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대표적인 속성은 사랑과 공의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절대적인 사랑을 가지신 분이며, 동시에 절대적으로 의로운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당신의 모든 피조물들을 절대적으로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불의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책임을 물으시는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심각하게 타락한 인간의 죄의 문제는 도저히 스스로가 해결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모든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을 멸망의 길로 가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자가의 희생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하시지만 인간 속에 있는 부패된 죄악성은 결코 사랑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죄악성을 심판하시자니 사랑하는 인간이 죽겠고, 인간을 살리자니 공의의 속성이 만족하지 못하고, 그리하여 하나님은 드디어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의미입니다. 십자가는 곧 하나님의 공의의 상징입니다. 동시에 사랑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죄에 대하여, 불의에 대하여 절대로 묵과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의로움을 나타내주는 것입니다. 동시에 죄의 문제는 인간의 힘으로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었기에 당신의 외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죄로부터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시간 날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험하고 가파른 골고다 언덕을 무거운 십자가를 걸머지고 오르시던 주님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채찍에 맞고 또 맞으며, 넘어지고 엎어지고 쓰러지며 오르시던 그 갈보리 언덕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망치소리 요란하게 주님의 손목과 두 발목에 사각형의 대못이 박히던 그 순간, 그 골고다 언덕에 울려퍼지던 처절하고도 끔찍한 주님의 신음소리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상기하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님을 온전히 여러분의 심령속에 모셔들이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통하여 여러분의 모든 정신적, 육체적, 영적 고통을 치유 받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사망의 영원한 권세아래 고통받게할 죄의 권세에서 해방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때에 진정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주님안에 있는 참된 자유와 평강과 생명의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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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예배설교] 십자가의 승리 (palm sunday 2018)

 

 

 

 


제목 : 십자가의 승리

말씀 : 갈3:13-14

오늘은 고난주일입니다. 고난주일이란 약2000여년 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십자가에 달려서 그 참혹한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온 인류에게 죄사함의 은총을 가져다주신 사건을 회상하면서 그 고난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절기입니다.

또 오늘은 종려주일이라고도 하는데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실때에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많은 군중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면서 주님을 환영한데서 유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종려주일이란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지만 그 십자가의 죽음은 승리를 위한 죽음이었음을 상기하는 주일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부활을 전제로 한 죽음이었으므로 주님의 고난가운데서 주님의 부활을 바라보며 희망과 소망을 갖는 그러한 절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고난과 승리, 절망과 희망, 죽음과 생명이라는 이 역설적인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좀더 구체적으로 주님의 십자가 속에는 어떻게 고난과 승리, 절망과 희망, 죽음과 생명이라는 이 역설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까?

 

1.죄의 참혹한 결과를 보여주는 십자가.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우선 죄가 우리에게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다 주는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십자가는 가장 참혹한 사형틀입니다. 요즈음에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목에 걸고, 차에 걸고 무슨 장식품이나 부적처럼 달고 다니지만 십자가는 본래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혐오스러운 물건입니다. 십자가는 사람을 가장 잔인하고, 가장 끔찍스럽고, 처절한 고통을 주는 가장 참혹한 사형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상에서의 고통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의 정도도 말로 할 수 없고, 고통의 시간 또한 많게는 40여일 동안 계속되는 너무나 잔인한 사형방법인 것입니다.

게다가 십자가의 사형은 먼저 채찍으로 때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채찍도 보통의 채찍이 아니라 끝에 쇠갈고리가 달려 있는 채찍입니다. 이것으로 사정없이 후려치니 그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매달릴 십자가를 지고 이렇게 살쩜이 떨어져 나가는 채찍질을 당하며 사형장소로 이동합니다.

사형 장소에 도착하면 십자가에 손과 발에 못을 박아서 세워놓습니다. 그러면 못박힌 손목과 발목이 찢어지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밤에는 추위가 엄습합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는 아픔을 당합니다. 심지어는 독수리가 와서 뜯어먹기도 합니다. 그것도 잠시잠깐이 아니라 목숨이 긴 사람은 40일 동안이나 그 끔찍한 고통을 당하며 서서히 죽어갑니다. 그러니 그 고통과 비참함과 참혹함을 어찌 말로 다 표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그 끔찍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왜 그랬습니까? 죄를 지은 인생은 그런 끔찍한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그래서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셔서 그 참혹한 고통을 당하시지 않으면 우리 모든 인생이 그런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계21:8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진다.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그런데 더 끔찍한 것은 그 고통은 영원히 지속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계9:6에서는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죄는 너무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 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속에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영영토록 받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죄는 나중에 지옥에서만 고통을 가져다주는 게 아닙니다. 지금도 여기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에게 아픔과 상처와 고통과 미움과 저주와 갈등과 시기와 질투와 두려움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영원한 천국의 은총은 물론 여기서도 빛과 같은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늘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을 통하여 빛과 같은 은혜를 마음껏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저주를 풀어준 십자가

여러분, 십자가는 바로 이렇게 처절한 고통의 장소였기 때문에 십지가가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바로 우리가 받을 그 저주, 그 참혹하고 처절한 고통을 대신한 대속의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13절 말씀 보세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죄없고 흠없고 티 없으신 예수님, 거룩하시고 순결하시고 영화로우신 예수님이 내가 받을 저주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순전히 내가 받을 고통을 위하여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내가 받을 지옥의 형벌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죄의 저주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사탄의 권세에서 구속함을 받아 죄에서 자유인이 되어 새생명가운데 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20:28절에서 예수님을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래서 요19: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그 처절한 고통을 당하시고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여러분, 인간적으로는 이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사형을 당하면서 그것도 그 저주받은 그 끔찍한 그 참혹한 십자가에서 죽으면서 다 이루었다니 이성적으로는 이게 어디 말이나 됩니까?

그러나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의 사건은 그야말로 다 이룬 사건입니다. 십자가의 저주받은 죽음을 통하여 우리가 받을 저주를 풀어버린 것입니다. 십자가의 그 처절한, 그 끔찍한 죽음을 통하여 우리가 지옥에서 당할 그 처절한, 그 참혹한 고통의 굴레를 벗겨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죄의 저주에서, 지옥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도를 닦아도 죄의 굴레를 벗어던질 수가 없습니다.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지식으로도 과학으로도 물론 안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대속의 죽음을 당하실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죄로 말미암아 그 끔찍하고 처절한 고통을 영원히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를 그 저주에 풀어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양하고 영광을 돌려야 할 일 입니까? 영원한 고통에서 해방시켜 영원한 복락으로 인도하셨으니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은혜와 축복과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아무것도 없어도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 영원한 저주에서 해방된 은총을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기뻐하며 영광 돌리며 찬양하며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3.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십자가

여러분, 그렇습니다.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사건은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다른 어떤 사랑과도 비교도 할 수 없이 너무나 큰 사랑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남의 자식을 살리기 위하여 여러분의 자식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 주실 용기가 있으십니까? 여러분, 내가 아픈 것은 참을 수 있어도 자식이 아픈 것은 차마 보지 못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닙니까? 차라리 내가 죽을지언정 자식이 죽는 것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이 천한 곳에 보내셨습니다. 보내셨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의 가장 처절한 죽음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분명히 보여 주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여기서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요3:16절에서는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입니다. 범죄한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열정적인 사랑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되었습니다.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저주와 고통에서 해방되어 영생복락을 누리는 너무나 크나큰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이런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더 감사하고 주님을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으니 우리는 얼마나 또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이러한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며 저와 여러분은 더욱 감사하여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사람을 사랑하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축복을 가져다준 십자가

여러분, 오늘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느냐, 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느냐?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복을 주시기 위해서 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복이 뭡니까? 한마디로 영생복락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천국에 가는 복입니다. 그래서 눅16장에 보면 거지 나사로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복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은 영원한 천국의 복을 주셨다는 말씀이고, 이 복이야말로 지고지선지은의 복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복복복하면서 복을 누리기를 원하지만 세상의 복은 온전치 못한 복입니다. 제 아무리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도 세상에는 걱정 근심이 있고, 질고가 있고, 불안과 외로움과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복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복은 완전한 복입니다. 100%입니다. 아니 200%, 1,000%입니다. 넘친다는 것이지요. 충만하다는 것이지요. 무엇으로 은혜와 기쁨과 평강과 행복이 넘쳐흐르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것들은 조금치도 깃들일 수가 없지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요. 주님의 보혈의 공로를 덧입은 우리는 바로 그 복을 누릴 사람들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덧입어야만 죄사함을 받고,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만 이런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고난주일이지만 동시에 종려주일인 것입니다. 종려주일은 승리의 주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을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부활하셔서 새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승리의 날인 것입니다. 주님의 처절한 죽음으로 우리를 살리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이 절기를 보내며 그 저주 받은 십자가, 그 끔찍한 십자가, 그 참혹한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지옥의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주신 주님을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동시에 주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새 생명의 역사를 이루신 것처럼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때만이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기억하며 어떤 형태로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먼저는 자신이 더욱 생명의 은총을 풍성히 누리며 주님의 역사를 아름답게 이루어 가는 복된 인생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하강교회 조학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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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스쿨의 2018년 교회력 안내

 

 

기독교인에게는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이

2월 14일이니 그다음 주일인 2월 18일 주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종려주일은 3월 25일

고난주간은 3월 26일부터 31일까지입니다.

부활주일은 4월 1일이고요

위의 표를 활용하시어 참고하시면 됩니다.

각, 교단의 공통 교회력을 기준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도입되는 어린이날 대체휴일로 인해

5월 5-7일까지 주일포함 3일이 휴일이 되었습니다.

토요일을 평소에도 쉬는 분이시라면

5월 7일 월요일 어린이날 대체휴일로

주일끼고 연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추석연휴가 9월 24, 25 월화요일입니다.

또 징검다리 휴일을 살펴보면

5월 22일 석탄일이 화요일

10월 9일 한글날이 화요일

12월 25일 성탄절이 화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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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수요예배대표기도문 Wednesday worship prayer


거룩하신 주님!

이 시간 주님의 험한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예수님의 고통과 절규가 얼룩진 십자가 위에 저희의 죄와 정욕의 덩어리들이 엉켜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고통은 저희의 허물 때문인 것을 이제 깨닫고 감격과 찬양으로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저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이 고난 주간에 주님을 철저히 배우기 원합니다.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주님의 겸손, 자기의 뜻보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시고,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며 사신 주님의 생애, 만민의 죄를 담당하고 희생의 제물이 되신 주님의 사랑을 상기하며, 저희 또한 그렇게 살기를 원하며 다짐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주님!

저희를 위해 종으로 이 세상에 오시어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가시고 생명까지 주신 주님을 생명 바쳐 사랑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겟세마네 기도의 시간에 깨어있지 못하던 제자들의 모습이 저희들의 모습이 되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십자가의 험한 자리를 지키지 못했던 제자들의 냉담한 외면이 오늘 저희들의 모습이 아니기를 원합니다.

오직 구속받은 은총에 힘입어 주님을 본받게 하시고, 이웃을 위하여 겸손한 사랑을 주며 주님의 피묻은 복음을 힘껏 전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저희에게 십자가의 찢기심과 피흘리심으로 말씀하고 계시는 주님을 발견합니다. 주님의 피묻은 십자가를 생각하며 더 쓰리고 아픔을 느끼는 이 밤이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이 저희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찢기신 그 상처를 어루만지며 메이는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길 원하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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