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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설교:추수감사절 설교 (감사충만한 인생) Thanksgiving preaching

 

 

 
제목 : 감사충만한 인생

말씀 : 대상29:10~17

1.감사가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미국의 유명한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라는 여성이 있습니다. 이 분은 1954년에 미시시피 주의 어느 시골에서 사생아로 태어나서 외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손을 전전하며 상처투성이로 자랐습니다. 그녀는 심지어 9살 때 친척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역시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14세에 아이를 출산했는데 아이는 2주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그 충격으로 가출하여 마약을 복용하며 한동안 지옥같은 삶을 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고통 속에서도 끝내 주저앉지 않고 다시금 일어나 눈물을 흘리며 성경을 읽으며 위로를 받고 희망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학교에 들어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며 책을 많이 읽는지 선생님이 더 좋은 학교의 장학생으로 추천해 주어서 좀 더 좋은 학교에서 공부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편으로는 열심히 성경을 보고 다른 한편으로는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을 나오고 박사과정을 마치고 1983년에 시카고에서 시청률이 제일 낮은 에이엠 시카고(AM Chicago)라는 토크쇼의 진행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이 프로를 맡은 지 한 달 만에 이 프로그램이 시카고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고 그러자 이 토크쇼를 아예 ‘오프라 윈프리 쇼’로 바뀌어 전국적으로 방영되자 미국 전역에서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이 되어 전 세계 140여개 나라로 배급이 됨으로 세계적인 토크쇼가 되었습니다.

이 후로 그녀는 미국 뿐 아니라 세계적인 명사가 되어 1985년 미국 아카데미시상식 여우조연상, 2004년 유엔이 주는 올해의 세계지도자상, 2005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명사 100人 중 최고의 명사, 2010년 케네디센터 평생공로상, 2012년 아카데미 시상식 평생공로상, 2013년 포브스 지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명인사 100인 중의 한 사람이 되는 등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명사 중 한명이 되었고 그러 사이에 재산도 불어나 7억 달러가 넘는 억만장자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녀는 어떻게 이렇게 불우한 처지를 이기고 세계적인 명사가 되었습니까? 세가지 정도를 볼 수 있습니다. 우선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녀는 절망 중에서도 성경을 읽으며 위로를 받고 희망을 찾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공부입니다. 그는 그 서러운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를 악물고 공부했던 것입니다. 남보다 몇 배 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감사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몇 년동안 방황하긴 했지만 다시 시작하며 감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수치스럽게 하던 모든 기억들을 지워버리고 그래도 그런 가운데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미움과 원망과 절망이 점점 사라지고 열심히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녀가 계속해서 과거의 상처와 아픔과 미움 속에 빠져 있었더라면 그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점점 더 깊은 절망의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로 방황을 바꾸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세계적인 명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감사의 습관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그녀는 그 바쁜 일과 중에서도 매일 하루 일과를 마치고나면 감사한 일 다섯가지를 적으며 감사를 드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세계적인 명사가 되었음에도 그녀의 감사의 조건은 그렇게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적어 놓은 감사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①오늘도 거뜬하게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②오늘은 유난히 눈부시고 파란 하늘을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③오늘 점심때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④오늘 얄미운 짓을 한 동료가 있었는데 잘 참고 화내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⑤오늘 책을 한권 읽었는데 너무 좋은 책을 써준 작가에게 감사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생각할 것은 감사 거리는 그렇게 먼데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감사거리는 항상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모든 것들이 감사거리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런 느낌도 없이 그냥 당연히 그런 것처럼 생각하는 것들이 실상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안 그렇습니까? 오늘 하루 살아 숨 쉴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오늘 아무 걱정 없이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오늘 하루 일과를 마치고 편히 누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누군가 함께 앉아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잠을 자며 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길을 가다가 국수 한 그릇 사먹을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합니까? 목마를 때 물 한 모금 마실 수 있다는 게 정말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렇게 마음껏 숨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더군다나 오늘 이와 같이 우리가 마음껏 모여서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더 감사한 일입니까? 영원한 천국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더 감사한 일입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받은 바 은혜는 죽을 때까지 말해도 다 못할 만큼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살전 5:1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성도와 이웃과 교회와 국가와 회사와 동료와 공무원과 농사짓는 분과 장사하시는 분과 여하튼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고, 모든 환경에 감사하고, 밥 한 그릇에 감사하고, 냉수 한 모금에 감사하고, 숨한번 쉬면서 감사하고, 따뜻한 잠자리에 감사하고, 일어날 때 감사하고 그저 앉아도 감사 서서도 감사 집에서도 감사 나가서도 감사 우리 곁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이 감사거리를 생각하며 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감사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로서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고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런 감사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2.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료로 주셔서 마음껏 누리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지을 예물 드리기를 마친 다음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장면 중 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 앞 부분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예물들이 나타나 있는데 그 중 3,4절에 보면 다윗은 개인의 사유의 금 3천달란트와 순은 7천달란트를 드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금 3천달란트와 은 7천 달란트는 지금 돈으로 따지면 몇십조원 되는 천문학적인 액수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렇게 엄청난 예물을 드리면서 감사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금덩이를 주셔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금덩이를 드리고 너무 너무 감사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드리면서 감사할 수 있었습니까? 좀 길지만 1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비록 왕이 되어 많은 것을 누리게 되었어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고 하나님께서 주셨고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그 동안 누린 것이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드릴 수 있는 믿음과 마음을 주신 것이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이 고귀한 일에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하고 그저 모든 것이 감사해서 영광과 찬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 중에서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짜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내 생명과 몸과 마음과 시간과 재능과 지혜와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거저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모든 삶의 터전들을 공짜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내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무료로 공급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다윗은 그걸 알았던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누릴 수 있고,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하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정말 이 사실을 인정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지혜를 짜내고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뛰어 놀고 숨을 쉬고 밥을 먹고 놀고 하는 그 모든 것 중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도 공짜로 그냥 주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수백억조도 넘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잊지 말고 하나님께 정말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모든 것이 자기 것인 양, 자기 힘과 지혜로 된 것인양 여기며 살아가는 그래서 감사할 줄도 모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몸, 내 생명, 내 시간, 내 재능, 내 능력, 내 지혜, 우리가 밟고 살아가는 땅, 숨쉬는 공기, 마시는 물, 따뜻한 태양, 쉴 수 있는 집, 먹는 밥,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온전한 신앙고백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게 해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총과 능력과 기쁨을 더욱 충만하게 누리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주님께 드리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고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면 우리는 마땅히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진정 감사함이 있다면 드림도 늘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이 엄청난 것들을 주셨는데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고, 이렇게 받은 바 은혜가 큰 줄을 알고 감사드린다면 어떻게 드리지 않고 배길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오늘 14절을 보겠습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나와 백성 즉 우리들 모두는 너무나 부족한 존재인데 우리가 무엇이기에 이 많은 것들을 주셨습니까? 하면서 정말 감사와 기쁨으로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지금 엄청난 예물 들을 드리면서 이 모든 것이 주님께서 주신 것임을 고백하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어마어마한 예물을 드리면서 그저 주님의 손에서 받은 것을 바쳤을 뿐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코 내 것을, 내가 노력하고 힘써서 벌은 것을 바쳤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주님의 손에서 받은 것을 바쳤을 뿐이라고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것을 바쳤을 뿐이니 그 많은 것을 주셨으니 감사할 뿐이요, 그걸 그동안 내가 누릴 수 있었던 것이 감사할 뿐이요, 그걸 드릴 수 있는 믿음을 주셨으니 감사할 따름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기억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주님이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면 정말로 기쁨으로 드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 많은 것을 주셨는데 어찌 감사가 없겠으며, 그런 감사가 있을 때 어찌 기쁨으로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 우리가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어찌 기쁨으로 드리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기쁨으로 자녀에게 줍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감사와 기쁨으로 줍니까? 그렇다면 주님에게는 어떻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 분이십니다. 천지만물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을 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마저도 내어 주셨습니다. 그것도 십자가의 그 끔찍한 저주받은 죽음을 당하시기까지 하시면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주시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을 얼마나 더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고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그렇게 사랑한다면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이 주는 기쁨을 맛보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사랑한다며 줄 수 밖에 없고 주면서 너무너무 기쁘고 행복하게 됩니다. 안 그렇습니까?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얼마나 기쁨으로 줍니까? 주면서 얼마나 행복합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기쁨으로 줍니까? 주면서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얼마나 기쁨으로 드리겠으며, 드리면서 얼마나 행복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받는 게 행복합니까? 주는 게 행복합니까? 물론 받는 것도 행복합니다. 그러나 주는 것이 더 행복하고 몇 배 더 기쁩니다. 줄 수 있을 때 자신이 자랑스러워집니다. 뿌듯해집니다. 자부심과 긍지가 생깁니다. 자신이 자신을 보아도 웬지 흐뭇해집니다. 또한 다른 사람도 기쁘고 행복하게 합니다. 더구나 주님께 드리는 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립니다. 주님의 역사를 이룹니다.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는 너무나 귀한 도구가 됩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고 귀하고 영광스럽고 복된 일입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우리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더구나 우리 주님은 당신의 그 고귀한 생명까지 바쳐서 우리에게 영생복락을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정말로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감사와 기쁨으로 드리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여러분 자신도 정말 더욱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정말 감사하면 정직하게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면 감사와 기쁨으로 드려야 하는데 드릴 때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정직하게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17절을 보겠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다윗은 지금 엄청난 예물을 드리면서 정직한 마음으로 즐거이 드렸다고 했습니다. 정직하게 드린다는 것은 원문의 뜻은 충만하게, 완전하게, 마음의 중심을 다해... 이런 뜻입니다. 즉 조금치의 거짓이나 불성실이 없이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온전한 마음으로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정말 마음과 정성과 믿음을 담아서 드리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정말 순수하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내 생각이나 감정이나 환경이나 상황에 의하여 좌우되지 않고 진정 하나님께서 우리 내면에 들려주시는 그 음성을 따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즉 진정한 정직이란 내 생각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거짓이나 위선이나 변명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내 생각 처지 환경의 모든 주변적인 것들을 벗어던지고 다만 나와 하나님 사이에 일대일로 대면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성에 겸손히 귀를 기울이고 그 뜻대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 심령 속에 들려주시고 요구하시고 권면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내 생각이나 환경에 영향 받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내 생각을 첨부하거나 상황과 환경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첨부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왜곡시키게 되고 그러면 마음과 정성을 다해 드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잘 못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자꾸 하나님의 말씀에 세상의 다른 것들을 섞어서 혼잡하게 만듭니다. 특히 하나님께 드리는 문제에 있어서는 이런 왜곡과 혼잡이 심각합니다. 자기 편의대로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가치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받을 것은 크게 생각하고, 드릴 것은 적게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할 일은 내 믿음과 형편보다 더 많이 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할 일은 내 믿음과 형편보다 훨씬 작게 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반대로 해야 합니다. 부족한 것은 적게 생각하고 감사할 것은 크게 생각해야 합니다. 받아야 할 것은 적게 생각하고 드려야 할 것은 크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럴 때 마음이 넉넉해지고, 인생이 풍요로워 지고, 진정 자유하게 되고, 감사가 넘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정직한 자의 신앙의 고백이며, 그럴 때 그 인생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자랑스러운 인생이 되며 잘했다 칭찬받으며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정말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을 기억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이 주셔서 누리게 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기쁜 마음으로 드릴 줄 아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진정한 자유인이요 부요한 인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며 주님의 은총을 충만하게 받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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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예배설교 :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

 

 


제목 : 감사하는 자의 복

말씀 : 시107:1~7

1.감사는 현재를 행복하게 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누굽니까?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굽니까? 그것은 권세나 지식이나 재물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키가 크고, 인물이 훤칠하고, 능력이 많은 사람도 아닙니다. 정말로 행복하고 부유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요, 모든 것을 누리는 사람이요, 그래서 진정한 행복을 아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100여세대가 살고 있는 15평짜리 낡은 아파트 단지가 있다고 칩시다. 여기에 모여사는 사람들은 물론 특별한 경우도 있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은 기본 재산도 별로 많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월급도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재산도 월급도 많지 않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연속극에 나오는 넓고 호화스러운 집과 멋진 청춘남녀들과 그들이 다니는 멋진 직장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무슨 복이 많아서 저렇게 좋은 집에서 좋은 직장을 다니며 너무나 멋지게 생긴 사람들과 사는데 내 꼴은 이게 뭐냐고 탄식하며 원망하며 불만이 가득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집에 들어갈 때마다 감사할 것입니다. 비록 작지만 열심히 일하고 돌아와 안식할 수 있는 이 귀한 보금자리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를 기다리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음을 감사합니다. 비록 많은 월급은 아니지만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일터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비록 넉넉지는 않지만 우리 가족 먹을 것, 입을 것, 편히 누워 쉴 수 있는 보금자리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엿새동안 힘써 일하고 주일 하루 쉬면서 예배드리고 가족과 함께 하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어떻습니까? 똑같이 기본 재산이나 월급도 많지 않고 15평짜리 낡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전자의 사람은 그나마 그 작은 아파트도 진정으로 소유하지도 누리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가난뱅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후자의 사람은 비록 가진 것이 많지는 않지만 모든 것을 소유하고 모든 것을 누릴 줄 아는 부유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개를 가지고도 백가지를 누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백개를 가지고도 한가지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면 누가 부자입니까?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물론 한 개를 가졌어도 백가지 천가지를 누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백개 천개를 가졌어도 한가지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만가지를 주어도 한가지도 누리지 못하는 가난뱅이인 것입니다.

인터넷의 어떤 사이트에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내 손에 펜 한 자루 쥘 수 있다면 그것은 감사입니다. 그 펜으로 그림도 그릴 수 있고, 사랑의 편지도 쓸 수 있으니까요. 내 입으로 말 한마디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감사입니다. 그 입으로 사랑의 말을 할 수 있고, 주님을 찬양할 수 있으니까요. 내 발에 신발 한 켤레가 신을 수 있다면 그것은 감사입니다. 그 신을 신고 집으로도 일터로도 갈 수 있고, 산책도 할 수 있으니까요.

내 귀로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은 감사입니다. 아름다운 음악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위로의 말을 들을 수 있으니까요. 내 코로 향기를 맡을 수 있다면 그것은 감사입니다. 은은한 꽃향기와 맛있는 음식 냄새와 사랑하는 이의 체취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 내 곁에 부모형제와 친구가 있다면 그것은 감사입니다. 서로 의지하고 기대고 마음을 털어놓으며 따뜻한 위로의 말도 전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못해도 손에 펜만 한 자루 쥘 수 있어도, 말만 할 수 있어도, 들을 수만 있어도, 걸을 수만 있어도, 냄새만 맡을 수 있어도, 내 곁에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그것만으로 감사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뭔가 가치와 의미와 보람과 기쁨을 찾는데는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가진 것을 진정으로 누릴 줄 아는 사람의 것입니다. 지식이나 권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 하나라도 감사할 줄 아는 자의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 격언에는 천국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고, 지옥은 불평하는 자들로 가득한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특별히 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없는 거, 모자라 거, 약한 것, 부족한 것 생각하며 원망 불평 낙심 절망하지 말고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살전5:18절에서는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정말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이 풍성한 계절을 주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멀쩡한 사지를 주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 자유와 평화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더 많은 것을 달라고 하기전에 먼저 감사함으로 행복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정 저와 여러분은 감사와 은혜가 충만한 심령으로 기쁨이 충만한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감사는 행복한 미래를 보장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감사는 오늘을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내일의 복을 보장해 주는 가장 확실한 보증수표이기도 합니다. 감사할 때에 지금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지만 감사할 때에 힘도 생기고 지혜도 생기고 용기가 생깁니다. 긍정적 적극적 에너지 넘치게 됩니다.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여유가 생깁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앞에 인정받게 됩니다. 그래서 앞길이 열리고 그래서 더 많은 것들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체불만족의 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는 태어나면서부터 사지가 없이 머리와 몸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좌절과 원망이 아니라 이런 아들을 주신 것을 감사하며 긍정적으로 열심히 키웠습니다. 그에게 없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을 생각하며 그것을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을 특수학교에 보내지 않고 일반학교에 보내 정상적인 아이들과 함께 교육을 받게 하고 그들과 함께 농구도 하고 축구도 했습니다. 대학에 가서는 정상적인 학생들보다 더 많은 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당히 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선생으로, 잡지사 기자로, 방송사 캐스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만약에 이 오토다케의 부모나 오토다케 본인이 없는 것을 생각하며 원망과 불평 속에 있었다면 이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전생에 내가 무슨 죄가 많아서 이런 아들을 주셨습니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왜 이런 꼴로 나를 태어나게 했습니까? 이런 모습으로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왜 남들 다 가지고 있는 팔다리도 내게 주시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원망하고 불평하였다면 이 사람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보나마나 저 길거리 한 모퉁이에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얻어먹는 거지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토다케의 부모나 그 자신이나 그들에게 주어진 모든 불리한 여건보다는 그들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그것을 최대한 활용했을 때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보다도 오히려 더 감사하며 위대한 일을 감당하며 복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원입니다. 감사는 자신과 가족과 이웃과 하나님께 대하여 만족감을 느끼게 합니다. 자신과 가족과 이웃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만듭니다. 긍정의 에너지가 넘치게 만듭니다. 사랑과 기쁨과 용기와 자신감을 가져다줍니다. 갈등과 미움과 저주와 불평과 원망 등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없애버립니다. 또한 감사는 정신적, 육체적 긴장을 완화시켜 줍니다. 면역력을 높이고 활력을 주어 육체의 건강을 지켜줍니다. 질병에 잘 걸리지 않게 하고 설령 질병이 와도 감사와 긍정속에 사는 사람은 치료가 잘 됩니다. 마음이 편해지고, 혈압이 떨어지고, 소화를 잘되게 만듭니다.

여러분, 그래서 이런 사람은 잘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가 잘 되지요, 힘과 의욕이 생기지요, 마음이 편해지고, 육체의 신진대사도 잘 되지요, 옆에 있는 사람도 기쁘게 하지요, 어려움이 와도 낙심절망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헤쳐 나가지요, 모든 일에 긍정과 적극성과 성실성을 가지고 임하게 되지요, 그러니 어떻게 잘 안되겠습니까?

그래서 유명한 스펄전 목사님은 “별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 하는 사람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해와 달이 필요 없는 영원한 빛을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시50:23에서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을 통하여 자신과 이웃에게 힘과 의욕과 활력과 기쁨을 주고, 매사에 적극성과 긍정과 열심을 가지고, 그래서 하나님과 이웃을 감동시키고 그래서 오늘이 행복하게 하고 내일의 축복이 보장된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감사가 곧 믿음의 척도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감사는 곧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말씀 1-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 동서 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기억하며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동서남북 사방에서 모아서 구속하여 주신 은혜를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기억한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주심을 믿는다면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창조하심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는다면 감사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로, 이렇게 신비한 존재로 창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셔서 우리에게 맡겨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셔서 우리의 죄과를 죄대로 갚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걸 알고 믿는다면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창조, 인도, 거룩, 의, 선, 구원을 믿는데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감사 곧 믿음이요, 믿음이 곧 감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초대교회의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죄는 감사하지 않는 죄이다.”라고 했습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자식이 부모의 은혜를 모른다면 어찌 죄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먹고 입고 잠자고 게다가 천국의 은총까지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는다면 이 어찌 죄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감사가 곧 믿음이고, 믿음이 곧 감사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아는 자는 감사할 수 밖에 없고, 믿음이 있는 자도 감사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미 주신 것이 하나님의 은총임을 고백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주실 것에 대한 믿음으로 감사하며 사심으로 더욱 감사와 기쁨과 은혜로 주님과 동행할때에 더욱 은혜와 기쁨이 충만한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구원의 은총에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감사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감사할 수 밖에 없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요건들이 있지만 설령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감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을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죄와 사망을 비롯한 모든 어둠의 권세에서 해방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2절부터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 동서 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무슨 말씀입니까? 한마디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적들 즉 죄와 마귀와 어둠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속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을 때, 우리가 주리고 목마름으로 피곤할 때 우리를 부르셔서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 돌리고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진정 갈 바를 알지 못하던 인생이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가 생명의 길인지, 어디고 천국길인지 천지도 모르고 제멋대로 살던 인생이었습니다. 죄와 무지와 어둠의 세력에 붙잡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치닫던 인생이었습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는커녕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과 지옥의 권세에서 건져 주신 것입니다. 다만 건져주실 뿐 아니라 우리가 영원히 거할 저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는 더 이상 죄와 무지와 마귀와 죽음의 권세에 억눌려 있는 자가 아니라 영원한 영광의 나라의 시민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어찌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큰 은혜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전체가 하나님의 은혜요, 나아가 저 영원한 천국의 은총을 누리게 된 것은 더할 나위없이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이 은혜를 아는 자는 감사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감사가 곧 믿음입니다. 또한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이웃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됩니다. 그래서 감사는 오늘과 내일의 행복을 보장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님은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으로 채워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늘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더 많은 것이 있으면 감사하겠다하지 말고 지금 이미 주어진 것에서 감사거리를 찾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행복해지면 감사하겠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행복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혹시 조금 힘든 일이 있어도 거기에 함몰되지 말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놀라우신 은총가운데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충만한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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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설교]하나님의 은혜라 Thanksgiving Sunday sermon

 

 

 

제목: 하나님의 은혜라.

성경: 고전 15:9-10

1517년, 마틴 루터가 독일에서 종교개혁을 시작한 이후 그 영향은 곧바로 인근 유럽지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독일에서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난지 약 20년뒤인 1534년부터 종교개혁의 물결이 일어났습니다. 그리하여 신교와 구교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1558년에 즉위한 엘리자스(Ⅰ세)여왕에 의해 영국국교회제도가 기틀을 잡게 됩니다. 영국국교회는 제도적으로는 로마카톨릭교회를 따르고, 신앙의 내용에 있어서는 개신교를 따르는 신교와 구교의 절충형 형태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영국국교회의 모습에 반대하여 일어나 운동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청교도 운동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과거 로마 카톨릭 교회의 부패한 잔재를 완전히 버리고 루터와 칼빈의 정신을 따라 철저히 영국교회를 개혁하려고 일어났던 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개인의 중생과 성화를 중시하며, 가정에서의 기도생활, 사회에서의 엄격한 도덕생활과 절제의 생활로 참다운 신앙생활을 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들의 이러한 태도는 결국 영국국교회의 탄압을 받게 되어 일부는 국내에서 끝까지 싸우다가 죽기도 하고 다른 일부는 유럽대륙으로 이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그들이 꿈꾸는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참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상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102명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 미국을 향하여 출발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1620년 9월 16일의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몇 개월간의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1621년 1월 미국의 동부해안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천신마고 끝에 도착한 그땅에는 그들을 반겨줄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니 반겨주기는커녕 그들은 그해 겨울이 지나기 전에 그러니까 불과 2-3개월동안에 질병과 인디언의 습격을 받아 반수 이상이 죽고 마는 불행을 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그러한 악조건속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속에서 필사적인 개척자정신을 발휘하여 그 해 가을에는 어느 정도의 농산물을 수확하게 됩니다. 그들은 첫열매를 거두어 들이고 나서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울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감사제를 지냈습니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오늘날 교회에서는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은 온갖 어려움속에서도 수확을 할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던 청교도의 정신을 따라서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함께 기쁨을 나누는 절기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바울의 고백은 우리가 무엇 때문에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는지를 잘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는 바울의 감사의 내용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고백은 자신의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볼때, 걸어온 자취자취 돌아볼 때, 그리고 현재 자기의 위치를 생각해 볼 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것이라고하는 감사와 감격에 벅차 외친 영혼의 고백이었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이러한 바울의 감사가 우리 모두의 감사가 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바울은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감사했을까, 왜 우리는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같이 생각해보고자합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애창하는 찬송가 405장의 작시자는 죤.뉴턴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죄라는 죄는 안지어본 죄가 없을 정도로 많은 죄를 지었던 탕자였습니다. 노예상인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후 후에 목사가 되어 자신과 같은 엄청난 죄인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격에 벅차 읊은 시가 바로 저 유명한 “Amazing grace”입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은혜 고마와

나처음 믿은 그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찬양 하리라.”

우리의 지난 세월을 돌아봅시다. 지금 우리의 주위를 둘러 봅시다. 목석이 아니라면, 소나 말과 돼지같은 짐승이 아니라면 우리는 정말 감사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이 계시니 감사합니다. 형제자매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가 있습니다. 머리둘 보금자리가 있습니다. 자녀가 있으니 감사합니다. 땀흘려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있습니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계절이 있습니다. 저 눈부신 태양이 있습니다. 맑은 물, 신선한 공기. 그저 감사 감사할 뿐입니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의 이웃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웃이 있다는 것 정말 감사하십시오. 더더구나 사랑하는 주의성도들이 여러분 곁에 있다는 것 정말 감사하십시오. 감사함으로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이 만약 저 무인도에 혼자 살게 되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아마 며칠도 못 살고 미쳐서 죽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우리는 감사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감사의 조건들이 하나하나 모여 오늘의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이땅에 이렇게 서 있는것, 나혼자 가능했을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참으로 얼마나 많은 다른 사람들의 은혜를 입고 사는 존재인지 모릅니다. 설령 여러분곁에 별로 달갑지 않은 이웃이 있더라도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비 신앙인들과 다른 차원의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감사는 한단계 높은 차원의 감사입니다. 그저 우리가 복받고, 물질적으로 무언가 척척 풀려 나갈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남들처럼 지위가 높지 않다고 해도, 돈이 남들처럼 많지 않다고 해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리의 주위에는 감사해야 할 일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정도로도 우리의 감사의 조건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한단계 더 높은 수준의 감사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속에 나타난 바울의 감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고전 9:19-22에 고백했던 것처럼 때로는 자존심도 다팽개치고 살았습니다. 어리석다고 비웃음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미련하게 살았습니다. 주변도 없고 고집도 없고 속도 없는 무골충과 같이 살았습니다. 억울하게 핍박당하며 살았습니다.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기며 살았습니다. 왜그랬을까요? 무엇이 그 똑똑했던 바울을 그렇게도 바보로 만들었을까요? 그 이유는 오직 하나, 하나님의 사랑때문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은총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그는 “내까짓게 뭔데...”라는 고백을 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죽어라고 자기를 포기하고 살았지만 하나님의 고마우심에 비해본다면 억만분의 일도 보답되지 않습니다. 그 은혜와 사랑이 너무너무 고마와 “어떻게 하면 보답하고 살까?”그것만 생각하고 살다보니 “나”라는 존재는 다 죽어 없어지고 주님만 남게 되었습니다. 고후 11:22-27까지 자기의 좋은 조건을 다 열거하면서 그러나 “이까짓게 뭔데...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고마우심을 생각하면 이제는 자신이 박살이나고 가루가 된다해도 아무런 여한도 없었습니다. 억만분의 일이든 보답할 수만 있다면 자기 한 몸 불속에라도 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왜요? 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당신의 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우리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망극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 못박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를 살리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버리신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감사찬양하며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간사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아서 불평을 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아니 감사할일이 이렇게도 많은데, 감사할 것을 찾아도 다 찾지 못할판에 왜 불평거리를 찾아야 한단 말입니까?

지금 저 밖을 잠시 내다 보십시오. 하늘을 한 번 우러러 보십시오. 저 신비로운 산천을 한 번 둘러 보십시오.돌아보면 볼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것이 없습니다. 창조로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그 신비한 경륜가운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경이로움을 한 번 보십시오. 저 에머랄드빛 하늘을 창조하신 분은 누구십니까? 저 화창한 봄날을 주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꽁꽁 얼어붙은 땅에 묻혀 있던 그 작은 씨앗하나에 다시금 싹을 틔우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저 신비롭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이 가을의 풍요로운 결실을 주시는 분을 누구십니까? 누가 저 따사로운 태양빛을 주고 계십니까?

여러분께서는 저 대자연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들리십니까?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아니 들을려고 하지 않아도 들려야 합니다. 우리의 지성이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의 이성이 구원받은 이성이라면, 우리의 감성이 구원받은 감성이라면 우리는 한 마리 작은 새의 지저귐을 들으며 거기서 하나님의 찬미소리를 듣습니다. 들녁의 한 작은 들꽃을 보며 거기서 하니님의 신비로운 솜씨를 발견합니다.

탕자가 집을 떠나 허랑방탕할때는 어머니의 사랑을 잘 모릅니다. 고마움도 모릅니다. 밥 한그릇의 소중함도 모릅니다. 그러나 허랑방탕하다가 있는 것을 다 허비하고 돌아왔을 때 그를 맞이하는 따뜻한 어머니의 품에서 탕자는 어머니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허랑방탕할때는 밥은 그냥 밥일뿐이었습니다. 자신이 입고 있는 옷도 그냥 그저 입혀 있는 옷에 불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모든 것을 허비하고 돌아와서 어머니 품에 안겼을 때 그는 어머니의 밥 한 그릇에 눈물겨운 고마움을 알게 됩니다. 어머니가 깨끗하게 빨아 입히는 그 옷을 입으며, 그는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품에 안겼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살때는 저 대자연의 아름다움도 고마움도 제대로 알수 없습니다. 풀 한포기, 꽃 한송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저 태양이 저 물이 공기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품에 안긴 사람은 압니다. 구원받은 이성은 거기서 하나님의 찬양소리를 듣습니다. 감사하게 됩니다.

어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그뿐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나라는 존재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입니까? 나보다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보다 윤리적으로 깨끗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보다 점잖고 잘나고 지위 높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왜 하필이면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와 같은 나를 사랑하십니까? 내가 무엇이 그렇게 하나님께 소중한 존재이기 당신의 아들을 주십니까? 무엇이 내가 잘한 것이 있다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고귀한 생명을 주신단 말입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슨말을 하겠습니까? 그저 입이 있어 겨우 한마디 할수 있다면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뿐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한마디 뿐이 아니겠습니까?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세계 복음전도대회’가 세계 4,000여명의 대표가 모여서 “성경이 말씀되게 하자”라는 주제를 가지고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틀째 저녁 예배에 특별찬송을 위해 한 맹인 여가수가 안내원의 안내를 받으며 무대 중앙에 올라섰습니다. 그리고는 찬송하기 시작합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못하네

저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위에

죄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하셨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이 맹인 가수가 조용히 찬송을 부르는 동안 4,000여 청중들은 감사의 감동에 젖어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듯 한사람 한사람씩 감사의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거기 모인 모든 대표들은 감사로 성령의 충만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이 맹인 여가수는 6.25전쟁때 두눈을 잃고 선교사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음악공부를하여 가수가 된 한국인 킴 스윜양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 맹인가수가 가졌던 그런 감사가 있습니까? 우리는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왔다간 사람은 수천억이 된다고 합니다. 그 수천억중의 한 사람인 나,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 수천억중의 한 사람에 불과한 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그렇게 소중한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수천억원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여러분에게 있어서 1원이라는게 얼마나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하나님앞에서 우리는 수천억원중에 1원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나 하나쯤 이 세상에서 없어 진다 해도, 세상은 눈하나도 깜짝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로 그런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나를 사랑하셔서 이 아름다운 대 자연을 우리게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수천억중의 한 사람에 불과한 나를 당신의 자녀로 인치셨다는 말씀입니다. 지옥의 형벌에 나를 살리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수가 있단 말입니까?

한 사형수가 있다고 합시다. 사형날자가 잡혀 이제 철장안에서 죽을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이제는 땅도 하늘도 봄 여름도 부귀 영화 권세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이제 그 사형수에게 있어서는 전혀 무용지물들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특사로 무죄방면되었다고 합시다. 그가 감옥에서 나오는 순간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아마도 엎드려 땅에 입이라도 맞추지 않겠습니까? 하늘을 우러러 보며 환호성을 지르지 않겠습니까? 길가에 피어 있는 꽃은 얼마나 아름다워 보일까요? 그렇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나오는 순간 그에게 펼쳐지는 모든 것에는 이전에는 그가 미쳐 몰랐던 엄청난 의미가 부여 될것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실 모두가 한 사형수였습니다. 바로 그래서 예수께서 오셨고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있어서 세상의 의미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구원받기 전과 구원받은 후에는 모든 것이 다른 의미다 부여됩니다. 아니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전에는 구원받지 못한 이성 때문에 알지 못했던 것을 구원받은 이성의 활동으로 비로소 알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제는 구원받은 이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이제는 구받은 지성의 눈으로 생각하십시오. 이제는 구원받은 감성의 눈으로 기쁨을 누리십시오. 감사하십시오. 지금까지 여러분의 감사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돈벌었을 때만 감사하는 사람, 돈 잃으면 감사하지 못합니다. 건강하다고만 감사하는 사람, 건강 잃었을 때는 감사하지 못합니다. 성공했다고만 감사하는 사람, 실패하면 감사 못합니다. 내 소원들어주셨다고만 감사하는 사람, 내소원이 안이루질때는 감사하지 못합니다.

진정한 감사는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단순히 풀한포기를 바라보며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한끼의 밥을 먹으면서 진정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 그래서 그 희생을 통하여 나를 살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승화된 감사를 통하여, 진정한 감사를 통하여 기쁨의 삶을 살수 있습니다. 감격의 삶을 살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은혜를 정말이지 마음속에 깊이 되새기며 진정한 감사와 사랑과 기쁨을 누리는 여러분의 삶이 되어지시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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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설교 -  감사하는 삶    Thanksgiving preaching

 

 

 


제 목 : 감사하는 인생

말 씀 : 시100:1~5

1.자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현대를 ‘더(more)의 시대’라고 합니다. 더 많은 돈,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 더 많은 지식, 더 날씬한 몸매, 더 젊고 예쁜 얼굴 등등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더, 더, 더’ 타령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더 더 더’가 언제 나오는 소리인지 아십니까? 음주 측정할 때 하는 소리입니다. 술 먹은 사람은 어찌하든지 음주측정기를 안 불려고 하지요. 어쩔 수 없이 불때도 알콜 농도가 적게 나오게 하려고 살짝 불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경찰 아저씨가 더 불라고 더 더 더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더 더 더와 음주측정 할 때 더 더 더는 좀 다른 차원의 더더더이긴 합니다만 여하튼 ‘더, 더, 더’하는 소리는 결코 좋은 소리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건 뭔가 모자란다는 뜻이거든요. 뭔가 모자라니까 자꾸 ‘더 더 더’하게 되고 그렇게 자꾸 더더더하다보면 결국 감사도 기쁨도 은혜도 누리지 못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시기와 질투와 원망과 불평과 갈등과 싸움을 유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사람들이 자꾸 더 더 더 하며 살아가니까 많은 것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행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옛날에는 쌀밥만 먹을 수 있어도, 아니 때로는 죽이라도 한 그릇 먹을 수 있으면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멋지고 근사한 곳에서 진수성찬을 먹으면서도 감사 할 줄을 잘 모릅니다. 오히려 맛이 있네 없네 하면서 타박을 하기가 일쑤입니다. 또 옛날에는 자전거만 타고 다녀도 얼마나 근사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우리 집 앞 신작로로 한 멋쟁이 신사 아저씨가 삐까뻔쩍 빛나는 신사용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곤 했는데 저는 그게 얼마나 멋있어 보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은 좋은 자가용을 타고 다녀도 감사가 없고 더 좋은 것을 바라봅니다. 옛날에는 초가삼간에 살아도 먹을 것만 있으면 행복했었는데 지금은 30평 40평 50평 호화주택에 살면서 만족하지를 못합니다. 여러분, 얼마나 바보 같은 일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이런 바보같은 인생이 되면 안됩니다. 우리는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적은 것을 가지고도 주어진 것에 행복할 줄 아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자꾸만 더 더 더 하는 인생은 아무리 많은 것을 주어도 늘 불만 불평 속에서 자신도 불행하고 남도 불행하게 만들고 하나님 마음도 아프게 하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딤전6: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보십시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 알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받은 바 은혜가 얼마나 많은 지를 되새겨보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려고 하는데 오늘 말씀을 함께 되새겨보며 저와 여러분은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할 줄 아는 삶을 통하여 자신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만들고 하나님도 기쁘시게 해드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교회 안에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지만 뭐니뭐니해도 우리가 지금 교회 안에 앉아 있다는 것만큼 감사한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교회 안에 앉아 있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러분, 보십시오. 감사함으로 그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그 문이란 물론 성전 문입니다. 즉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성전으로 들어갈 때에 큰 감사와 기쁨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이 교회 문을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가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찬양하며 이 땅에 사는 동안에서 주님의 주시는 생명의 은총을 누리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되었다는 것, 이보다 더 감사하고 기쁘고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여기에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 교회가 세워졌어도 우리가 마음이 완고하고 강퍅해서 복음을 거부했다라면 어쩔 뻔 했습니까? 그러면 영원한 고통가운데 처할 수 밖에 없었던 비참한 인생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예수님을 알고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얻어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하고 영광돌리고 찬양해야 할 일입니까?

제가 제법 오래 전에 대구의 한 큰 마트 같은데 들어갔다가 물건을 좀 사 가지고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회원권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없다고 하니까 여기는 회원권이 있어야 물건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으로 ‘야, 이 놈들아 물건만 팔면 되지 무슨 얼어 죽을 회원권이냐? 회원권 없으면 내 돈 주고 물건도 못 사냐?’ 그러고 그냥 놔 둬 버리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좀 창피하기는 했습니다.

즉 세상에서도 뭔가 그럴듯한 곳에 들어가려면 출입증이나 회원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청와대나 안기부나 기타 중요한 공공 기관은 물론 말할 것도 없고 지금은 웬만한 큰 회사에도 들어가려면 출입증이 있어야 되고, 무슨 큰 아파트에도 들어가려면 무슨 카드 같은 게 있어야 들어가고, 골프장이나 기타 그럴듯한 곳에 다니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너무나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출입증이 있는 것입니다. 영광의 나라의 시민권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사실 따지고 보면 별 것도 아닌데 뭐 좀 잘난 곳에 들어가려면 돈을 내든지 무슨 시험을 치든지 뭐 이것 저것 따져 묻고 난린데 하나님께서는 그저 우리 믿음 하나 보시고 천국 출입증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의 시민권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세상의 무슨 출입증, 허가증, 회원권 그까짓 별거 아닙니다. 그런 것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뭐 대단한 특권이라고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길지 모르지만 그래서 뭐 얼마나 행복하고 기쁘고 영광스럽겠습니까? 까짓것 하루 아침에 다 다 날아갈 것들인데.. 그것만 믿고 까뿔다가는 영원한 진노가운데 처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러나 천국 시민권은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에게 완전하고 영원한 영광과 기쁨과 평안과 소망을 보장합니다. 그 어떤 어둠의 세력으로부터도 완전히 보호해 줍니다. 그야말로 완전하고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초특급 출입증, 허가증,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 들어와 앉아서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영광 돌리고 할 수 있는 이 일이 얼마나 굉장하고 대단하고 영광스러운 일인지를 늘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우리를 길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선 감사할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영광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이고, 다음에 감사할 것은 좋으신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께서 영원한 영광의 나라 뿐 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도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풍성하게 채워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이고 하나님은 신, 전능자라는 뜻입니다. 즉 여호와만이 유일하시고 전능하신 참 신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예비해 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고 기르시는 주인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베풀어 주시는 은총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일한 창조주이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분으로 하나님께 지으시지 않고는 우주만물을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때를 따라 채워주시는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단 한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셔서 존재하고 나아가 생명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심으로 존재가 가능한 것입니다. 먹고 입고 잠자고 쉬고 활동하고 하는 모든 행위가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좋은 옷에 좋은 집에 좋은 차에 좋은 것을 먹으며 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물론 우리도 힘써서 일 했지만 우리가 힘써 일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생명도 지혜도 능력도 없습니다. 숨조차 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뼈 빠지게 일해도 태양과 물을 주시지 않으면 도로 아미타불입니다. 땅이 없으면 헛일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까마귀가 어미가 늙으면 다 큰 새끼들이 먹이를 먹고 돌아와서는 도로 뱉어서 어미에게 먹여 준다는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까마귀는 어미새가 늙어 힘이 없어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 없게 되면 다 자란 어른이 된 새끼 새가 먹이를 잡어 먹고 와서 도로 뱉어서 어미의 입에 넣어 준다고 합니다. 이게 반포(돌이킬反, 먹일哺)입니다. 먹었던 것을 도로 뱉어서 먹여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새끼가 먹었던 것을 도로 뱉어 어미 새에게 먹여줄 만큼 지극 정성으로 부모님을 섬기는 반포지효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한갓 미물에 불과한 까마귀도 이렇듯 부모를 섬길 줄 아는데 인간이 부모님을 섬길 줄 모른다면 미물인 까마귀만도 못한 인간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우리에게 육신의 생명을 주시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성장해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온갖 사랑과 수고와 희생을 아끼지 않으신 부모님도 당연히 정성으로 섬겨야 하지만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우리를 직접 창조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고 생활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는 얼마나 더 그래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사실 육신의 부모는 어느 정도 성장하면 우리 곁에 계시지 않아도 우리가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육신의 부모는 우리가 다 성장할 때까지만 키워주시면 그것으로 의무를 다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장을 하고 백살 천살 만살이 되어도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은혜가 없이는 단 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육신의 부모에게 감사하며 섬기는 것이 인간의 마땅한 본분이라면 모든 인류와 우주만물의 아버지가 되시는, 우리가 살아 숨쉬는 모든 동안에 아니 지금 여기서 살아 있는 동안만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께는 얼마나 더 감사하며 극진히 섬겨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물론 육신의 부모님께도 감사드리며 잘 섬기시되 특별히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 우리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들어주시고 섭리하심으로 이와같이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하신 하나님께 진정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더욱 풍성한 은혜를 마음껏 누리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음을 감사하고, 동시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그러나 감사할 것이 그 뿐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사람에게도 감사하고, 동물에게도 고마워해야 하고, 식물에게도 고마워해야 하고 그밖에 땅, 태양, 물 등 우리 주변의 모든 것에 고마워해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모두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들입니까? 사랑하는 가족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존재입니까? 가족이 없으면 얼마나 삭막하겠습니까? 아니 가족이 없으면 내가 있지도 못하지요. 또 이웃도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존재입니까? 내 주변에 이웃이 하나도 없으면 얼마나 적막하겠으며, 무엇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비록 혹시 사람들 보기에 번듯하지 못하다해도 직장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입니까? 우리가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밥은 얼마나 고맙습니까? 마시는 물은 얼마나 고마운 존재입니까? 어디 가다가 음식 한 그릇 사먹을 때 그 식당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입니까? 좀 그렇긴 합니다만 심지어 화장실에 앉아 마음 놓고 볼일을 볼 수 있는 것도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이와같이 감사의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감사의 습관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감사의 습관은 자신도 기쁘게 하고 남도 기쁘게 합니다. 그래서 건강과 행복도 가져다 줍니다.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함으로 힘차게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불평의 습관은 자신도 남도 어둡게 만듭니다. 부정과 어둠의 에너지를 방출하여 자신도 힘들게 하고 남도 힘들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살전5:16~18절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보십시오. 항상 기뻐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유는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얼마나 놀라운 은총 속에 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기억하며 정말 감사의 영성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의 자녀가 되어 이와 같이 마음껏 주님의 몸된 교회를 출입하며 예배드리며 영광을 돌리며 주님의 은총을 누리고 있음에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총임을 되새기며 우리를 길러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의 가족과 이웃과 동료와 친구와 여러분 곁의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 주변의 모든 물건들에게까지도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심령이 그야말로 감사로 넘쳐날 때에 기쁨과 평안과 행복이 가득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고 세상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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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예배설교 (추수감사절예배설교) 하나님의 은혜라

 

 

 


제목: 하나님의 은혜라.

성경: 고전 15:9-10

1517년, 마틴 루터가 독일에서 종교개혁을 시작한 이후 그 영향은 곧바로 인근 유럽지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독일에서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난지 약 20년뒤인 1534년부터 종교개혁의 물결이 일어났습니다. 그리하여 신교와 구교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1558년에 즉위한 엘리자스(Ⅰ세)여왕에 의해 영국국교회제도가 기틀을 잡게 됩니다. 영국국교회는 제도적으로는 로마카톨릭교회를 따르고, 신앙의 내용에 있어서는 개신교를 따르는 신교와 구교의 절충형 형태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영국국교회의 모습에 반대하여 일어나 운동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청교도 운동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과거 로마 카톨릭 교회의 부패한 잔재를 완전히 버리고 루터와 칼빈의 정신을 따라 철저히 영국교회를 개혁하려고 일어났던 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개인의 중생과 성화를 중시하며, 가정에서의 기도생활, 사회에서의 엄격한 도덕생활과 절제의 생활로 참다운 신앙생활을 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들의 이러한 태도는 결국 영국국교회의 탄압을 받게 되어 일부는 국내에서 끝까지 싸우다가 죽기도 하고 다른 일부는 유럽대륙으로 이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그들이 꿈꾸는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참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상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102명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 미국을 향하여 출발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1620년 9월 16일의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몇 개월간의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1621년 1월 미국의 동부해안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천신마고 끝에 도착한 그땅에는 그들을 반겨줄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니 반겨주기는커녕 그들은 그해 겨울이 지나기 전에 그러니까 불과 2-3개월동안에 질병과 인디언의 습격을 받아 반수 이상이 죽고 마는 불행을 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그러한 악조건속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속에서 필사적인 개척자정신을 발휘하여 그 해 가을에는 어느 정도의 농산물을 수확하게 됩니다. 그들은 첫열매를 거두어 들이고 나서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울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감사제를 지냈습니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오늘날 교회에서는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은 온갖 어려움속에서도 수확을 할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던 청교도의 정신을 따라서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함께 기쁨을 나누는 절기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바울의 고백은 우리가 무엇 때문에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는지를 잘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는 바울의 감사의 내용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고백은 자신의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볼때, 걸어온 자취자취 돌아볼 때, 그리고 현재 자기의 위치를 생각해 볼 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것이라고하는 감사와 감격에 벅차 외친 영혼의 고백이었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이러한 바울의 감사가 우리 모두의 감사가 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바울은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감사했을까, 왜 우리는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같이 생각해보고자합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애창하는 찬송가 405장의 작시자는 죤.뉴턴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죄라는 죄는 안지어본 죄가 없을 정도로 많은 죄를 지었던 탕자였습니다. 노예상인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후 후에 목사가 되어 자신과 같은 엄청난 죄인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격에 벅차 읊은 시가 바로 저 유명한 “Amazing grace”입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은혜 고마와

나처음 믿은 그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찬양 하리라.”

우리의 지난 세월을 돌아봅시다. 지금 우리의 주위를 둘러 봅시다. 목석이 아니라면, 소나 말과 돼지같은 짐승이 아니라면 우리는 정말 감사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이 계시니 감사합니다. 형제자매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가 있습니다. 머리둘 보금자리가 있습니다. 자녀가 있으니 감사합니다. 땀흘려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있습니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계절이 있습니다. 저 눈부신 태양이 있습니다. 맑은 물, 신선한 공기. 그저 감사 감사할 뿐입니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의 이웃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웃이 있다는 것 정말 감사하십시오. 더더구나 사랑하는 주의성도들이 여러분 곁에 있다는 것 정말 감사하십시오. 감사함으로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이 만약 저 무인도에 혼자 살게 되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아마 며칠도 못 살고 미쳐서 죽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우리는 감사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감사의 조건들이 하나하나 모여 오늘의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이땅에 이렇게 서 있는것, 나혼자 가능했을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참으로 얼마나 많은 다른 사람들의 은혜를 입고 사는 존재인지 모릅니다. 설령 여러분곁에 별로 달갑지 않은 이웃이 있더라도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비 신앙인들과 다른 차원의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감사는 한단계 높은 차원의 감사입니다. 그저 우리가 복받고, 물질적으로 무언가 척척 풀려 나갈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남들처럼 지위가 높지 않다고 해도, 돈이 남들처럼 많지 않다고 해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리의 주위에는 감사해야 할 일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정도로도 우리의 감사의 조건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한단계 더 높은 수준의 감사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속에 나타난 바울의 감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고전 9:19-22에 고백했던 것처럼 때로는 자존심도 다팽개치고 살았습니다. 어리석다고 비웃음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미련하게 살았습니다. 주변도 없고 고집도 없고 속도 없는 무골충과 같이 살았습니다. 억울하게 핍박당하며 살았습니다.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기며 살았습니다. 왜그랬을까요? 무엇이 그 똑똑했던 바울을 그렇게도 바보로 만들었을까요? 그 이유는 오직 하나, 하나님의 사랑때문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은총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그는 “내까짓게 뭔데...”라는 고백을 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죽어라고 자기를 포기하고 살았지만 하나님의 고마우심에 비해본다면 억만분의 일도 보답되지 않습니다. 그 은혜와 사랑이 너무너무 고마와 “어떻게 하면 보답하고 살까?”그것만 생각하고 살다보니 “나”라는 존재는 다 죽어 없어지고 주님만 남게 되었습니다. 고후 11:22-27까지 자기의 좋은 조건을 다 열거하면서 그러나 “이까짓게 뭔데...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고마우심을 생각하면 이제는 자신이 박살이나고 가루가 된다해도 아무런 여한도 없었습니다. 억만분의 일이든 보답할 수만 있다면 자기 한 몸 불속에라도 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왜요? 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당신의 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우리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망극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 못박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를 살리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버리신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감사찬양하며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간사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아서 불평을 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아니 감사할일이 이렇게도 많은데, 감사할 것을 찾아도 다 찾지 못할판에 왜 불평거리를 찾아야 한단 말입니까?

지금 저 밖을 잠시 내다 보십시오. 하늘을 한 번 우러러 보십시오. 저 신비로운 산천을 한 번 둘러 보십시오.돌아보면 볼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것이 없습니다. 창조로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그 신비한 경륜가운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경이로움을 한 번 보십시오. 저 에머랄드빛 하늘을 창조하신 분은 누구십니까? 저 화창한 봄날을 주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꽁꽁 얼어붙은 땅에 묻혀 있던 그 작은 씨앗하나에 다시금 싹을 틔우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저 신비롭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이 가을의 풍요로운 결실을 주시는 분을 누구십니까? 누가 저 따사로운 태양빛을 주고 계십니까?

여러분께서는 저 대자연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들리십니까?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아니 들을려고 하지 않아도 들려야 합니다. 우리의 지성이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의 이성이 구원받은 이성이라면, 우리의 감성이 구원받은 감성이라면 우리는 한 마리 작은 새의 지저귐을 들으며 거기서 하나님의 찬미소리를 듣습니다. 들녁의 한 작은 들꽃을 보며 거기서 하니님의 신비로운 솜씨를 발견합니다.

탕자가 집을 떠나 허랑방탕할때는 어머니의 사랑을 잘 모릅니다. 고마움도 모릅니다. 밥 한그릇의 소중함도 모릅니다. 그러나 허랑방탕하다가 있는 것을 다 허비하고 돌아왔을 때 그를 맞이하는 따뜻한 어머니의 품에서 탕자는 어머니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허랑방탕할때는 밥은 그냥 밥일뿐이었습니다. 자신이 입고 있는 옷도 그냥 그저 입혀 있는 옷에 불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모든 것을 허비하고 돌아와서 어머니 품에 안겼을 때 그는 어머니의 밥 한 그릇에 눈물겨운 고마움을 알게 됩니다. 어머니가 깨끗하게 빨아 입히는 그 옷을 입으며, 그는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품에 안겼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살때는 저 대자연의 아름다움도 고마움도 제대로 알수 없습니다. 풀 한포기, 꽃 한송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저 태양이 저 물이 공기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품에 안긴 사람은 압니다. 구원받은 이성은 거기서 하나님의 찬양소리를 듣습니다. 감사하게 됩니다.

어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그뿐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나라는 존재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입니까? 나보다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보다 윤리적으로 깨끗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보다 점잖고 잘나고 지위 높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왜 하필이면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와 같은 나를 사랑하십니까? 내가 무엇이 그렇게 하나님께 소중한 존재이기 당신의 아들을 주십니까? 무엇이 내가 잘한 것이 있다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고귀한 생명을 주신단 말입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슨말을 하겠습니까? 그저 입이 있어 겨우 한마디 할수 있다면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뿐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한마디 뿐이 아니겠습니까?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세계 복음전도대회’가 세계 4,000여명의 대표가 모여서 “성경이 말씀되게 하자”라는 주제를 가지고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틀째 저녁 예배에 특별찬송을 위해 한 맹인 여가수가 안내원의 안내를 받으며 무대 중앙에 올라섰습니다. 그리고는 찬송하기 시작합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못하네

저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위에

죄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하셨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이 맹인 가수가 조용히 찬송을 부르는 동안 4,000여 청중들은 감사의 감동에 젖어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듯 한사람 한사람씩 감사의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거기 모인 모든 대표들은 감사로 성령의 충만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이 맹인 여가수는 6.25전쟁때 두눈을 잃고 선교사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음악공부를하여 가수가 된 한국인 킴 스윜양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 맹인가수가 가졌던 그런 감사가 있습니까? 우리는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왔다간 사람은 수천억이 된다고 합니다. 그 수천억중의 한 사람인 나,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 수천억중의 한 사람에 불과한 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그렇게 소중한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수천억원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여러분에게 있어서 1원이라는게 얼마나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하나님앞에서 우리는 수천억원중에 1원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나 하나쯤 이 세상에서 없어 진다 해도, 세상은 눈하나도 깜짝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로 그런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나를 사랑하셔서 이 아름다운 대 자연을 우리게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수천억중의 한 사람에 불과한 나를 당신의 자녀로 인치셨다는 말씀입니다. 지옥의 형벌에 나를 살리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수가 있단 말입니까?

한 사형수가 있다고 합시다. 사형날자가 잡혀 이제 철장안에서 죽을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이제는 땅도 하늘도 봄 여름도 부귀 영화 권세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이제 그 사형수에게 있어서는 전혀 무용지물들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특사로 무죄방면되었다고 합시다. 그가 감옥에서 나오는 순간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아마도 엎드려 땅에 입이라도 맞추지 않겠습니까? 하늘을 우러러 보며 환호성을 지르지 않겠습니까? 길가에 피어 있는 꽃은 얼마나 아름다워 보일까요? 그렇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나오는 순간 그에게 펼쳐지는 모든 것에는 이전에는 그가 미쳐 몰랐던 엄청난 의미가 부여 될것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실 모두가 한 사형수였습니다. 바로 그래서 예수께서 오셨고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있어서 세상의 의미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구원받기 전과 구원받은 후에는 모든 것이 다른 의미다 부여됩니다. 아니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전에는 구원받지 못한 이성 때문에 알지 못했던 것을 구원받은 이성의 활동으로 비로소 알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제는 구원받은 이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이제는 구받은 지성의 눈으로 생각하십시오. 이제는 구원받은 감성의 눈으로 기쁨을 누리십시오. 감사하십시오. 지금까지 여러분의 감사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돈벌었을 때만 감사하는 사람, 돈 잃으면 감사하지 못합니다. 건강하다고만 감사하는 사람, 건강 잃었을 때는 감사하지 못합니다. 성공했다고만 감사하는 사람, 실패하면 감사 못합니다. 내 소원들어주셨다고만 감사하는 사람, 내소원이 안이루질때는 감사하지 못합니다.

진정한 감사는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단순히 풀한포기를 바라보며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한끼의 밥을 먹으면서 진정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 그래서 그 희생을 통하여 나를 살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승화된 감사를 통하여, 진정한 감사를 통하여 기쁨의 삶을 살수 있습니다. 감격의 삶을 살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은혜를 정말이지 마음속에 깊이 되새기며 진정한 감사와 사랑과 기쁨을 누리는 여러분의 삶이 되어지시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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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주일  추수감사절설교  감사생활(합3:16-19)

 

 

 

말씀 : 합3:16-19

 

제목 : 전천후 감사생활

 

1.감사의 마음으로 채워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식도 없고, 꾀도 없이 힘만 믿고 살아가려면 육신이 고달프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물론 이 말도 맞는 말이긴 합니다만 그러나 저는 인생을 고달프게 하는 것은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그 말을 이렇게 고쳐보았습니다. 「마음이 나쁘면 평생을 고생한다」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사실 지식이나 꾀가 없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마음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여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습니까? 또 설령 지식이나 꾀가 좀 부족해도 마음만 바르게 먹으면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아담과 하와를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낙원을 창조하셔서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사실 머리를 쓸 필요도 없었고, 뼈빠지게 일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먹고 입고 잠자고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었으니까요.

 

입는 것은 처음부터 아예 걱정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요? 벌거벗고 살았으니까요. 물론 먹거리도 사방 천지에 쌓여 있었고, 잠자리도 염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아무데나 누우면 거기가 안방이었습니다. 지나다니다가 과일 몇 개 따서 먹으면 거기가 곧 주방이었습니다. 아무데나 앉아서 이야기하면 거기가 곧 응접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완전한 환경속에 살던 그들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됩니다. 그만 그 아름다운 낙원에서 쫓겨나고 만 것입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것은 머리가 나빠서도 아니고 지식이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문제였습니다. 마음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많은 은혜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누리지 못하고 감히 하나님같이 되려고 하다가 그만 낙원에서 쫓겨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고생하는 것은 지식이 없거나 문명과 과학의 혜택을 받지 못해서 일때도 있지만 그보다 더 인간을 고생시키는 것은 인간의 잘못된 마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잠4:23에 보면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바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옳게 하라는 것입니다. 네 마음이 항상 진리를 향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네가 비로소 생명의 은총을 온전하게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다른 무엇보다도 마음을 올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성실과 진실과 진리가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어야 합니다. 감사와 기쁨과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의 심령이 채워져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행복을 가름하는 중요한 관건인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진리와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채우는 것이 지식과 돈과 명예와 권력과 건강을 얻는 것보다도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온 성도여러분은 마음을 바르게 가지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진실과 성실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사랑과 은혜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정말 생명의 풍성한 은혜가 넘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인데 추수감사주일의 의미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무언가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아등바등 살던 삶을 잠시 멈추고 이미 받아 누리고 있는 은혜를 새삼스레 떠올리면서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와 기쁨과 은혜 가운데 주님과 동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저와 여러분의 심령에 더욱 감사와 기쁨으로 채우시길 바랍니다.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은혜가운데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때에 저와 여러분의 심령에 감사로 충만하게 채워지고 그리하여 저와 여러분의 삶이 진정 감사와 기쁨이 충만한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이미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합시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감사의 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쉬운 방법은 이것입니다. 없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있는 것을 헤아려 보는 것입니다. 사실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무엇이든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많든 적든 그것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여기 편안히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집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찬바람을 피하고 따뜻하게 누워서 잠잘 집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가족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교우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조국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기름진 땅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맑은 공기가 있습니다. 태양이 있습니다. 강물이 있습니다. 산이 있습니다. 나무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랑하는 자녀가 있습니다. 혹은 부모님이 계십니다. 형제자매가 있습니다. 입을 옷이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이 있습니다. 과일도 있고 야채도 있고 감자도 있고 고구마도 있고 우유도 마실 수 있습니다. 승용차가 있는 사람, 승합차가 있는 사람, 트럭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토바이 자전거도 있습니다. 텔레비젼도 있습니다. 냉장고도 있습니다. 컴퓨터도 있습니다.

 

아니 그 모든 것들은 차치하고라도 그 무엇보다도 우리 곁에는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피흘려 돌아가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있습니다. 저 천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있습니다. 있습니다. 있습니다. 있습니다.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있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에게는 누려야 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없고 없고 없고 안되고 안되고 안되고 하면서 원망하며 불평하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이렇게 어리석고 미련하고 억울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니 정말 가지고 있는 것이 이렇게 많은데 왜 하필 없는 것 때문에 속상해하고 기죽고 불평하며 살아야 한단 말입니까?

 

여러분, 없는 것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없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배우지도 못했을까? 나는 왜 이렇게 못 났을까? 나는 왜 이렇게 지질이도 남편 복도 없고, 자식 복도 없을까? 남의 집 자식들을 잘만 되던데 우리 자식들은 왜 잘 안될까?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안다녀도 잘먹고 잘 살던데 우리는 왜 이럴까? 어떤 이들은 못된 하면서도 건강하게 잘 살던데 나는 왜 이렇게 건강이 좋지 않을까, 나는 왜 촌에 자리를 잡아서 이 고생을 하면서 살까하면서 자신의 좋지 않은 환경을 탓하기 시작하면 자신은 정말 지질이도 복도 없고 불행한 사람처럼 여겨집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빈곤감을 느끼는 것이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지금 농촌이 아무리 어렵다해도 옛날 부자집 대감보다 오히려 더 잘먹고 잘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힘들어하고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보다 많이 가진 자들에 비해서 자기가 없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자기가 초라하고 비참해 보이고, 그래서 자신을 패배자처럼 여기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와같이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이 그렇게 많은데 왜 하필 가지지 못한 것 때문에 속상해하고 불평하다가 가지고 있는 것까지도 없는 것처럼 여기는 그런 바보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까?

여러분, 성경 딤전6:8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어도 감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만 있어도 만족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행복한 삶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여러분께서는 먼저 있는 것을 생각하며 감사하며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없는 것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한량없는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말 기쁨의 삶, 은혜의 삶, 감사의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장차 받을 것을 생각하며 감사합시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얼마든지 감사와 기쁨과 은혜의 삶을 살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미 받은 것 때문만이 아니라 앞으로 받을 은혜가 더 크고 영광스럽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우리는 바로 그런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와 찬양의 고백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참으로 놀라운 감사의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에게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감람열매도 없고, 채소와 곡식과 소와 양도 없었습니다. 현대식으로 말한다면 흉년이 들어 농산물을 하나도 수확하지 못하고, 사업이 부도나서 망하고, 직장을 잃어버려 실업자가 되었을지라도 그는 감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인도하심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힘들지라도 머지않아 하나님께서 이 어려운 상황을 이기게 할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의 어려움은 곧 사라지고 기쁨의 날이 올 것이기 때문에 그는 그런 상황속에서도 감사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 당시의 이스라엘의 상황은 너무나 절망적이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미 오래전에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하였습니다. 남왕국 유다도 바벨론의 위협 앞에서 풍전등화같은 상황입니다. 게다가 내적으로도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부패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백성들은 돌보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에만 급급해 있었습니다. 백성들 역시도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도 타락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국가의 운명이 내우외환으로 풍전등화와 같은 처지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참아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합1:13)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답변하십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3-4)고 말입니다.

 

다시말씀드리면 이 모든 것은 너희들의 범죄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므로 참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때가 되면 내가 너희를 건져주리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박국 선지자는 감사의 찬양을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하박국 선지자는 지금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래서 심지어는 먹을 것조차 구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그러나 종내는 구원해 주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하면서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민족의 앞날에 어두운 먹구름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절망하지 않고, 먹구름이 비가 되어 쏟아져 내리고 나면 화창하게 갤 그 날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비록 자신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러한 어려운 현실이 닥쳐오게 되었지만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을 구원해 주시겠다고 하는 말씀에 감사하며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어려운 일,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것이 나의 죄로 인한 경우도 있고, 직접적인 나의 죄와는 관계없이 세상속에 침투되어 있는 보편적인 죄로 인하여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나 상황속에서건 우리는 그러한 어려운 현실속에서 원망하거나 절망해서는 안됩니다.

원망과 불평과 절망은 어려운 상황 그 자체 보다도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의 모습도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 더욱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무언가 때로는 우리가 잘 알수 없지만 거기에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우리를 훈련시키고 연단시켜서 결국은 우리를 승리케 하십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주님을 바라보는 자는 결국 승리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요즘 새벽시간에 시편을 묵상하고 있는데 거기서 우리는 정말 위대한 신앙인의 모습을 봅니다. 시편은 절반 이상이 다윗의 시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다윗의 시편을 보면 다윗을 놀라운 신앙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사실 다윗만큼 많은 어려움을 당한 사람도 드뭅니다. 10여년간 사울에게 쫓겨다니며 엄청난 고난을 당합니다. 여러번 죽임을 당할 뻔하고, 블레셋으로 망명을 갔다가 죽을 위기에 처하니까 미치광이 행세를 하여 겨우 빠져 나오기도 하고 왕이 되기까지 참으로 많은 고난을 당합니다. 왕이 되고 나서도 심지어는 아들에게 쫓겨다니는 신세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의 시편의 절반 이상이 그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 앞에 호소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의 위대한 점은 그렇게 극난한 고통을 당하여 하나님앞에 호소하면서도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며 마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하나님은 의로운 하나님이시기에 반드시 의와 진리와 선과 믿음이 승리케 하실 것이라는 확신하면서 그 처절한 고통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돌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놀라운 칭호를 받게 되었고, 믿음으로 승리하고 위대한 성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이런 신앙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취적 신앙 즉 앞에 주실 것을 미리 앞당겨 누리는 신앙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실로 어떤 상황속에서도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시면서 감사하며 찬양하며 살아가심으로써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하나님의 역사하심 가운데 더더욱 큰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승리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며 감사합시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 어떤 것보다도 감사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고, 찬양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혹시 오늘 현실 속에서 좀 어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까짓 것은 사실 별거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닥치면 다 이겨 나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곧 지나가버리면 그만입니다. 저도 이래뵈도 웬만큼 많은 고난도 당해봤던 사람입니다. 안해 본 것 없이 거의 다해봤습니다. 어렵게 공부했던 사람입니다. 새벽에 신문도 돌려보고, 노가다도 해보고, 겨울에는 산에 나무도 하러 다녀보고, 농사도 좀 져 봤습니다. 그러나 그까짓 고생은 별거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 지옥의 고난은 별거 아닌게 아닙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지옥의 고통에 비한다면 새발의 피도 안됩니다. 그 고통의 강도에 있어서나 그 고통의 시간에 있어서나 세상의 것은 고통도 슬픔도 아닙니다.

세상의 고통은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의 고통은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세상에서는 고통속에서도 무언가 낙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에는 눈꼽만큼의 기쁨과 즐거움도 소망도 없습니다.

반대로 세상의 즐거움은 별거 아닙니다. 세상의 즐거움은 언제 사라질지 모릅니다. 세상의 즐거움은 한참 지나면 시들해 집니다. 세상의 즐거움의 한켠에는 고통도 함께 자리잡고 있습니다. 세상의 즐거움만 구하다가는 결국은 영원한 고통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천국의 즐거움은 영원합니다. 거기에는 고통과 슬픔과 절망은 그림자도 없습니다. 거기는 죽음의 그림자도 없습니다. 그곳의 기쁨은 100%의 기쁨입니다. 영원한 기쁨입니다. 100% 완전한 행복입니다. 그래서 성경 롬8:18에서는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영생복락의 세계를 약속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이 보증인이 되시기 때문에 믿는 자들은 100% 그곳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얼마든지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운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설령 세상에서 어떤 극한 상황이 온다고해도 우리는 얼마든지 감사와 영광을 돌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은 바로 그런 고백입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다 빼앗겼어도, 그래서 정말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워도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감사는 하나님의 축복을 담는 그릇입니다. 특별히 오늘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면서 지금까지 우리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진실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주실 은혜를 인하여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인하여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진실로 어떤 상황속에서도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승리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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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설교. <범사에 감사하는 은혜 >

 


범사에 감사하는 은혜  (데살로니가전서 5:18)

오늘은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한해 동안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인간다운 삶은 영위하게 하시며,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신 은혜를 돌이켜보면서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이런 주일을 맞이하여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과연 우리가 이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는지 돌이켜보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감사를 많이 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건강하고 행복하다고 합니다. 감사지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건강지수와  행복지수가 높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인간의 행복을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충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대의 마음 속에 감사하는 생각이 없으면 그대는 파멸의 노를 젓고 있는 사람이다. 부디 다른 공부보다도 먼저 감사하는 공부를 배우라." 그만큼 감사는 우리의 삶을 윤택하고 행복하게 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인 것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인간의 근성은 감사에 인색합니다. 심지어 러시아의 대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두발 달린 동물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자녀를 키우면서 쉽게 동감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요즘같이 풍요로운 사회에서 부모들은 자식이 원하는 것이라면 대부분 거절하지 아니하고 다 들어줍니다. 그러나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키운 자식일수록 나중에 부모님의 은혜를 망각한 채 살아갑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말세가 가까워 질수록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없어진다고 예언하신바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 이하에 보면, 말세에 나타나는 삭막한 인간성 중 하나가 감사를 모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역시 50년 전, 100년 전 그 혹독한 가난가운데 힘들게 살았던 우리 조상들에 비해 훨씬 감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처럼 세상은 점점 감사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를 향해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교훈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범사에 감사할 때, 영과 육이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범사에'라는 말은 헬라어로 '엔 판티'(en panti)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 영어 성경에서는 크게 3가지로 번역합니다. 곧 '어떤 형편에서든지', '모든 일에', 마지막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감사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다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범사에'라는 말을 다양한 각도로 살펴 보면 3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일에도 감사할 뿐 아니라 안 좋은 일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사소한 일에도 감사할 뿐 아니라 큰 일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인생의 양지에 있을 때도 감사할 뿐 아니라 음지에 있을 때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감사하지 않고 지나치는 것이 하나도 없게 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의 참뜻입니다.

실로 이 말씀은 우리에게 엄청난 부담감을 줍니다. 어떻게 이 말씀을 실천하라는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감사의 내용을 알면 그 고민은 한층 더 무거워집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감사는 막연히 느끼는 고마운 감정이 아닙니다. "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소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시116:2-14)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감사에는 적어도 3가지 요소가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첫째로 감사에는 마음이 담겨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나님께서는 이런 간절한 마음이 담긴 감사를 원하십니다. 어떻게 보답하는 것이 하나님께 감사 드릴 수 있을까? 이런 간절한 마음을 담는 것이 감사요.

 

둘째로 궁극적인 감사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물론 고마운 사람에게 감사할 수 도 있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이여 감사합니다" 하고 그 앞에 경배하는 것을 일컬어서 감사라고 합니다. 10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제사장을 찾아가는 도중 병이 낫게 되었습니다. 9명은 "우와! 내 병이 나았네. 아이고, 고마워라." 하며 고맙다는 느낌을 가졌지만 그 이상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1명, 바로 사마리아 사람은 병이 낫자, "하나님이여 감사합니다"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가던 길을 돌이켜 예수님에게로 다시 달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 앞에 넙죽 엎드려 주님을 경배하면서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셋째로 진정한 감사는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예물을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나의 소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소원이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약속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 제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시면 제가 이렇게 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정말 응답해주시면 너무나 감사해서 자기가 서원한 것을 그대로 시행하는 것입니다.

한나는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던 중 정말로 아들을 얻자 그 은혜에 감사하여 아들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평생 기도한 것을 다 받고 나니 너무나 감사해서 말년에는 자신이 쌓아 놓았던 모든 재산을 성전을 짓는데 드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할 때 그 감사에는 마음이 담겨야 하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자세가 있어야 하고, 경우에 따라 감사의 예물을 들고 나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굉장히 어려운 말씀입니다. 고맙다고 느끼는 것으로 머물면 안되고, 감사하다는 말로 끝나서도 안됩니다. 정말로 하나님 앞에 거룩한 제사로 드려지는 감사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범사에 감사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이처럼 범사에 감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가지를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첫째는 좋은 일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험하고 악해도 좋은 일이 종종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무더운 여름에 소낙비를 주시듯 가끔 우리에게 삶의 기쁨을 주십니다. 

자녀를 낳아 키우는 것이 엄청난 수고요, 희생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좋은 일을 자주 맛보곤 합니다. 평생 부부로서 사는 것이 굉장한 희생과 인내를 필요로 하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종종 좋은 일을 주십니다. 한 생을 살면서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나름대로 각자에게 좋은 일이 있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경험하게 된 좋은 일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지 못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감사헌금을 잘하시는 것에 늘 하나님 앞에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헌금을 보면 감사에 대한 성도들의 정성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습니다. 저희 교회는 몇 만 명이 모이는 대형교회입니다. 그런데 몇 백 명 모이는 교회에 비하면 감사헌금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감사할만한 좋은 일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좋은 일 하나하나마다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는 뜨거운 심정으로 손에 헌금을 들고 주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좋은 일이라고 자연스럽게 감사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긍정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마땅히 감사해야 될 좋은 일을 감사 없이 넘겨버릴 때가 많이 있음을 인정하고 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는 나쁜 일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해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현재 그들은 엄청난 핍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란을 너희에게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살전3:4) 바울은 전도하면서 이제 예수를 믿게 되면 핍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미리 예언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예수 믿고 나니 엄청난 환란과 핍박이 그들에게 덮친 것입니다. 여기에서 핍박이란 믿음을 지키기 위해 다른 것을 다 포기해야 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중국에 가보면 정부와 결탁하여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삼자 교회는 버젓하게 교회 문을 열어놓고 예배를 드리지만, 공산주의와 타협하지 않고 지난 수십 년 동안 복음을 들고 투쟁한 지하교회들은 지금도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공 셍리앙(Gong Shengliang) 목사님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종입니다. 그분을 따르는 신도만 해도 2, 3만 명에 이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통해 구원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면서 집회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자 중국 정부에서 핍박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핍박의 구실을 만들고자 그 교회에서 예수 잘 믿고 인물이 있는 여 집사 몇 명을 끌고 가, 공 목사가 성폭행한 사실을 인정하도록 고문을 해서 허위자백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근거로 공 목사를 잡아 들여 재판을 치루고는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이 사실을 안 세계인권위원회는 중국 정부에 압력을 가했고 결국 사형선고에서 종신형으로 감형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핍박이란 예수 한번 바로 믿기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상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형편에 있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핍박 받는 것도 감사하고, 매 맞는 것도 감사하고, 가족들이 끌려가서 죽는 것도 감사하고,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것도 감사하고, 굶는 것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얼마나 무서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아무리 나쁜 일을 많이 보고 마음에 원치 않는 일을 경험한다고 할지라도 핍박을 받는 사람에 비하면 가벼운 것입니다. 핍박 받는 데살로니가 교인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다면,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언짢은 일에도, 손해 보는 일에도, 내 몸이 망가지게 되더라도, 사랑하는 이가 일찍 죽는 것을 보고도 감사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셋째는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기 쉬운 일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 빚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숨쉬고 있는 공기로부터 시작해서 마시는 물,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내 몸의 모든 기능, 하나님이 주신 내 자녀, 일용할 양식, 어느 것 하나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날마다 풍성하게 주시니까 우리가 소중한 것을 받고도 당연한 것처럼 여기기가 쉽습니다. 당연하게 여길 때는 감사가 따라오지 않습니다.

오늘날 현대 문명은 무엇이든지 당연하게 여기도록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왔다는 빚진 감정을 갖지 못하도록 합니다. 1세기 전만 해도 사람들에겐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빚진 의식 또는 의존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고 모든 것이 풍족해지면서 서구사회로부터 영향을 받은 모든 나라들이 이제는 빚진 감정 대신 권리 의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의존 의식보다도 자율의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잘나고 내가 능력이 있어서 이 모든 것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인기 있는 만화 작가 바트 심슨(Bart Simpson)이 한번은 어느 레스토랑에서 식사 기도를 부탁 받았습니다. 그러자 그가 이런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시여, 우리가 이 모든 음식을 위해서 친히 값을 다 지불했습니다. 그래서 감사할 것이 하나도 없음을 감사합니다." 얼마나 방자하고, 거만하고, 교만한 태도입니까? 내가 누리는 것은 내가 노력해서 내 능력으로 얻었는데, 무슨 감사냐는 말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무서운 범죄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서 받았기 때문에 일일이 감사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거스틴이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인에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할렐루야이다." 입니다. 그 어느 것을 보아도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너무 풍족한 세상을 살아서 많이 오염되었습니다. 그래서 빚진 의식보다 권리 의식에 은근히 더 오염된 것 같습니다. 70년 전만해도 우리는 식민지에서 겨우 벗어난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설상 가상으로 6·25전쟁이라는 끔찍한 동족상잔을 겪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것입니다. 그런 나라가 불과 반세기도 되기 전에 OECD에 가입할 정도로 세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먹고 마시는 모든 것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보다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냉랭한 마음이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를 보면 60억 인구 가운데서 1/10에 해당하는 6억 인구의 하루 생활비가 1달러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전기가 없는 사람들의 수가 20억이 넘습니다. 식수 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아무데서나 퍼 마시는 사람들의 수는 10억이 넘습니다. 인간다운 삶은커녕 이렇게 끔찍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조그마한 한반도에서 우리가 이만큼 먹고 마시며 여유를 가지고 살수 있다는 것은 결코 당연히 여겨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한번 종합병원에 가서 진료과목들이 얼마나 많은지, 한 의사가 다루고 있는 병이 몇 가지나 되는지 살펴 보십시오. 병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병에 걸리지 않고 이렇게 당당하게 걸어 다니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보통 감사할 일이 아닙니다.

정범진이라는 사람은 교통사고로 평생을 전신마비로 살아야 되는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각고의 노력 끝에 미국 브루클린 검찰청의 부장검사까지 되었습니다. 그가 쓴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단 하루만 걸을 수 있다면,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 앞에서 시원하게 오줌을 누는 것이다." 그는 전신이 마비되었기 때문에 화장실에 들어가서 볼일을 보는데 2시간동안 사투를 벌일 때도 있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절대로 당연시 하고 넘길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체스터튼(G. K. Chesterton)이라는 사람의 말에 공감합니다. "나의 주된 인생관은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도록 연습하는 것이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려면 이와 같은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좋은 일에도 감사해야 하지만 나쁜 일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누리는 당연한 것들에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허황한 소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핍박을 당하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인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 것은 아무런 근거 없이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할 수도 없는 일인 줄 뻔히 아시면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실 때는 반드시 그 명령을 순종할 수 있는 은혜까지 준비하십니다. 따라서 범사에 감사하는 일은 은혜의 산물이지, 노력의 산물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은혜를 받아야 가능한 것이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처한 상황을 뛰어넘어 감사할 수 있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당하는 모든 일을 앞에 놓고 "할렐루야" 할 수 있는 은혜가 내 안에서 치밀어 오를 때 가능한 것이지, 내가 노력하고 결심하고 연습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읽어보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핍박 중에서도 범사에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나옵니다. 바로 구원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듣고 난후 이렇게 변했습니다.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 말하니."(살전1:9-10) 이 말씀을 다시 한번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예수를 믿고 나서 과거에 우상숭배하던 것을 다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섬기는 구원 받은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살 하나님나라의 영광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배후에는 이런 구원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은혜를 힘입으면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되자 자비로우시고 전능하시며 광대하신 하나님이 그들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러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세상에 있을 동안 너희들이 어디에 가든지 내가 동행해주마. 불 가운데로 지나갈 때도 내가 너희와 함께 하마. 물 가운데로 지나갈 때도 내가 너희와 함께 하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할 때도 내가 지팡이와 막대기로 너를 안위하리라. 원수들 앞에서 너희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높여주리라. 좋은 일이 생기든, 나쁜 일이 생기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마. 그리고 너희들이 어려울 때마다 나에게 기도하여라. 그러면 내가 언제든지 귀를 기울이고 들어주마. 환란 중에 내가 너희를 건져주리라. 악한 자가 와서 만지지도 못하도록 내가 너희를 보호해주리라." 이처럼 헤아릴 수 없는 약속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가 되셔서 나에게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면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날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기만을 간절히 고대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핍박을 받기에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셔서 그분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살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황홀한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영광을 눈 앞에 그려보면서 현재의 고난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장차 그 나라에서 누릴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결론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세상에서 당하는 이런 일 저런 일이 땅에서는 중요하게 보이는 일이지만, 하나님나라의 영광에 비추어 보면 잠깐 지나가는 꿈에 불과한 것입니다. 

 

지난 3월에 6가족을 포함한 25명의 탈북자들이 북경에 있는 스페인 대사관에 몰려들어가 한국행 망명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며칠 동안 그들은 엄청난 절망에 빠져있었고, 처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으니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대사관 안에서 기다리면서 북한으로 다시 끌려가서 죽을지, 아니면 한국으로 와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지 갈림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한국행이 결정되었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바로 그 때 그 사람들의 마음에 제일 먼저 찾아온 감정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이 '살았다. 이제는 한국으로 간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그 동안 마룻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추위에 떨면서 자던 것도 감사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대사관 직원들이 멸시하고 천대하던 과거의 모든 일도 다 감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비행기가 늦어져 며칠 더 기다려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도 오히려 감사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살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으로 가게 되니까 모든 것이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한국이 아닌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가고 있습니다. 이런 은혜를 받으며 살기에 세상에서 좋은 일에도 감사할 수 있고, 나쁜 일에도 감사할 수 있고, 하찮은 일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구원의 은혜가 우리에게서 샘 솟을 때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구원의 은혜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면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의 은혜가 있으면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에게 구원의 은혜를 충만하게 주시옵소서. 구원 받은 은혜에 취해서 살게 해주시옵소서. 내가 예수님 때문에 얼마나 큰 구원을 얻었는가를 알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 때문에 들어가게 될 하나님나라의 영광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날마다 바라보면서 흥분하며 살게 해주시옵소서." 이런 구원의 은혜가 있으면 세상에서 겪는 어려운 일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일로는 범사에 감사할 수 없습니다.  오직 구원의 은혜에 우리가 흠뻑 젖어 있을 때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은혜를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넘치도록 부어주시길 바랍니다.

다같이 기도합시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우리를 향해서 명령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명령하신 이유는 우리가 너무나 큰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는 하나님나라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이 큰 구원의 은혜를 우리가 값없이 얻었기 때문에 이 은혜 안에서는 좋은 일도 감사하고 나쁜 일도 감사하고, 큰 일도 감사하고 작은 일도 감사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우리 모두에게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구원 받은 자의 행복과 기쁨을 다시 한번 회복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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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오전예배 설교 - 추수감사절 예배 설교 <감사의 축복>

 

 

 

말씀 : 잠3:9,10

제목 : 감사의 축복

여러분,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아십니까?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세계적으로 공신력을 가지고 있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전 세계 나라를 대상으로 치안상태를 조사했는데 우리 대한민국이 100만점에 83.1을 기록하여 1등이고 그 다음에 싱가폴, 카타르, 일본 등이고 서유럽이나 미국은 6,70점대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나 남미 지역은 2,30점대가 수두룩하고 가장 치안이 불안한 나라는 베네수엘라인데 15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83점으로 당당히 1등입니다. 한마디로 가장 안전한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범죄율은 가장 낮고 범인 검거율은 1위라고 합니다. 그래서 밤 늦은 시간에도 밤거리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나라, 술에 취해 길바닥에 누워 있어도 안전한 나라, 식당이나 편의점이나 심지어 술집에서도 휴대폰이나 카메라를 두고 나와도 누가 가져가지 않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저도 제법 오래전에 제 스마트폰을 식당에 두고 왔는데 사모님에게 전화가 왔더라고요. 폰 두고 가지 않았느냐고.... 제 폰에 저장 되어 있는 아내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해 준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는 어림없다는 것입니다. 술에 취해 길거리에 누워 있으면 어떻게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뭐 좋은 현상은 아니지만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술에 취해 밤거리를 혼자 돌아다니거나 길거리에 누워있는 것을 보며 저 사람 저러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저라나 싶어서 깜짝 놀란다는 것입니다.

여하튼 여러분, 우리나라 좋은 나라입니다. 치안상태만 좋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얼마나 자유와 평화가 보장 되어 있습니까? 얼마나 풍요로습니까? 올해도 농사가 대풍이어서 올해 쌀생산량이 약434만톤으로 최근 6년간 최고의 풍작이라는 것입니다. 해마다 풍년이라 쌀이 남아돌아 정부 창고에 쌓여 있는 쌀이 140만톤이나 되어 처치 곤란이라는 것입니다. 또 요즘에는 우유가 남아돌아 난리입니다. 그래서 젖소 수를 줄이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젖소를 도축하고 그래도 안되어 분유를 만들어 처리하는데 분유 재고가 쌓여 난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행복한 고민입니까? 어느 나라를 먹을 게 없어 난린데 우리는 남아돌아서 난리인 것입니다.

뭐 그밖에 감사할 것을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60년대의 1인당 국민소득이 100불도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2만8천불 약300배나 부자가 되었습니다. GDP 그러니까 국민총생산량이 세계 11위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마음껏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적으로 완전히 안정되어 있고 풍요롭고 자유와 평화를 마음껏 누리는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감사하여 사시기 바랍니다. 혹시 남보다 많은 것을 가지지 못했다해도, 혹 힘든 일이 있다해도 그래도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고 있고 게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까지 주어져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인데 추수감사주일은 바로 그런 절기입니다. 비록 때때로 어렵고 힘든 일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 귀하고 복된 삶의 터전을 주신 하나님,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주신 하나님, 그래서 이렇게 자유와 평화와 풍요로움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려드리고 우리도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로 채워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1.구원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렇게 일부러 추수감사주일을 제정해 두시고 이를 지키며 살라고 하신 이유는 그렇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에 구원의 기쁨과 능력을 확실하게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시50:23절을 보겠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사람에게 구원의 은총을 마음껏 누리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당연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일단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과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까지 보내주시고, 예수님은 나 같은 것이 무엇이기에 나 같은 것을 위하여 십자가의 그 처절한 고통을 당하시고 돌아가셨습니까? 그 놀라운 사랑으로 저 흉악한 마귀사탄의 권세에서 해방되고, 사망과 지옥의 권세에서 해방된 것을 생각할 때에 어찌 기쁘지 아니하며 어찌 감사 찬양하지 않으며 어찌 영광을 돌리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고 찬양하고 영광 돌리며 살아가면 어떻게 됩니까? 물론 당연히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받은 은혜를 생각할 때 기쁨과 소망이 넘치게 됩니다. 그렇게 구원의 은총과 감격가운데 살다보면 당연히 세상의 별 것 아닌 것들에 대한 욕심과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게 됩니다. 또한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볼 때에 세상의 환경과 상황을 이기게 됩니다. 무슨 원망 불평 미움 질투 시기 따위를 하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참된 평안과 소망과 기쁨 속에 살게 됩니다.

이게 바로 구원의 은총을 누리는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은총을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릴 때 하나님께서 더욱 믿음과 은혜와 사랑과 기쁨과 능력으로 채워주심으로 그 삶에 더욱 생동감이 넘치고 힘이 넘치는 것입니다. 기쁨과 위로와 소망이 넘치는 것입니다. 돈과 상황과 환경과 조건에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욕심과 욕망과 시기에 빠지지 않습니다. 절망과 한탄 따위는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더욱 큰 은혜와 믿음과 능력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으로 넘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욱 감사가 넘쳐나고 얼굴에는 기쁨이 넘쳐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녕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소유한 자로서 이 땅에서의 천국을 마음껏 맛보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16:11절에서는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생명의 기쁨과 은혜가 있습니다. 감사하면 할수록 점점 은혜가 넘치고, 감사하지 않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고 절망하면 할수록 은혜는 점점 멀어집니다. 아니 원망하고 불평하면 있는 것까지 빼앗아 갑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자녀나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주었을 때 정말 감사하며 그것을 잘 사용해서 자신도 행복하고 남에게도 행복을 주며 산다면 준 사람이 얼마나 마음이 뿌듯하겠습니까? 그런 사람에게 얼마나 더 주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맨 날 받기는 받는데 감사할 줄도 모르고 자꾸만 더 달라고만 하고 도리어 적게 준다고 원망과 불평을 하고, 준 것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한다면 준 것이 얼마나 아깝겠습니까? 누가 그런 사람에게 더 주고 싶겠습니까? 아니 더 주기는커녕 주었던 것마저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이건 제 이야기가 아니고 주님의 말씀입니다.

눅19:24~26절 보십시오.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감사하며 그것을 잘 활용할 줄 알며 그래서 자신도 남도 기쁘게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도 너무 좋아서 더 많은 것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신 것에 감사하지도 않고 올바르게 활용할 줄도 모르면서 자꾸 불평이나 하고 더 달라기만 하는 사람은 준 것도 아까워 주었던 것도 도로 빼앗아 감사와 기쁨으로 올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에게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 이 자유와 평화와 안식을 주신 하나님, 게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까지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늘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갈때에 하나님께서 더욱 큰 은혜와 기쁨과 평강으로 채워주심으로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와 우리 사회가 더욱 은혜와 기쁨이 넘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능력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하는 자에는 하나님께서 큰 능력으로 채워주십니다. 감사하는 자는 세상을 이기고, 마귀사탄을 이기고 대적자들을 이기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감사가 뭡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아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과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어찌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찌 능력있는 삶이 되지 않겠습니까?

대하20:21절을 보겠습니다.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이 말씀은 여호사밧 왕때에 모압과 암몬과 에돔족속이 연합군을 이루어 침공했을 때의 일로 이때에 여호사밧은 성가대를 앞세워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적국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치고 받고 싸우며 자멸해 버리고 이스라엘은 가만히 앉아서 엄청난 전리품만 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했습니까? 찬송하며 감사할 때, 감사하며 찬송할 때...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상황이라도 오직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인도하심을 믿으며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기고 감사하며 찬양할 때 어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면 이기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해결하지 못할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감사가 곧 믿음입니다. 감사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고백입니다. 감사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섭리와 인도하심에 대한 믿음입니다. 또한 이후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할 때에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임재하십니다. 그러면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약하고 부족한 것들과 모든 도전과 유혹과 모든 어둠의 권세와 기타 여러 가지 상황과 환경과 조건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속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인도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은총을 고백하며 감사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역사하심으로 그 은혜와 능력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며 더욱 많은 은총을 받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물질적으로도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사람에게 영혼의 복도 주시고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주시고 그러면 육신도 더욱 건강해 지고, 더불어 물질의 복까지도 주십니다. 그래서 감사하면 할수록 자꾸만 감사한 일이 넘치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사람에게 감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일을 만들어 주십니다. 기뻐하는 하는 사람에게 기쁜 일을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불평 불만하는 사람에게는 자꾸만 불평 불만할 일이 생깁니다. 원망하면 자꾸 원망할 일이 생깁니다. 미워하면 미워할 일이 생기고, 투덜거리며 투덜거릴 일이 생깁니다.

여러분,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도 한번 두번 안오면 자꾸 교회에 못 올 일이 생깁니다. 마귀사탄이 자꾸만 이래서 못가고 저래서 못가고 하면서 가지 못할 일만 보이게 만듭니다. 교회에 오려고 하면 꼭 일이 생깁니다. 그런데 사실은 교회 못 올 일이 생긴 게 아니라 얼마든지 교회에 올수 있는 상황인데 내가 교회에 가지 못할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그렇게 보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교회에 열심히 오면 자꾸만 교회 갈 일이 생깁니다. 이래서 가야 되고, 저래서 가야 되고 그러면서 교회에 계속 가게 되는 것입니다.

헌금도 그렇습니다. 십일조헌금 감사헌금 한번 두번 안하다보면 자꾸만 헌금을 할 수 없는 상황처럼 보이게 됩니다. 이래서 할 수 없고, 저래서 할 수 없고... 그런데 실은 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 마귀에게 속아 내가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 점령을 앞두고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가서 똑같은 장소를 보고 왔는데 10명은 거기 들어갈 수 없는 상황만 보았습니다. 이래서 못 들어가고 저래서 못 들어가고...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들어갈 조건만 보았습니다. 이래서 들어가고 저래서 들어가고..... 그래서 그들의 생각대로 되었습니다. 열명의 정탐꾼과 그들에게 동조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동안 실컷 고생만하다가 다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래서 들어가고 저래서 들어간다며 들어갈 조건만 헤아렸던 갈렙과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자꾸 될 일을 찾아야 합니다. 자꾸 감사거리를 찾아야 합니다. 자꾸 사랑해야 할 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꾸 교회에 올 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꾸 헌금할 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양하고 사랑하고 주고 드리며 자꾸 복받을 일을 해야 합니다. 자꾸 은혜받을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 자들에게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더욱 풍성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왜요? 그게 믿음이니까요. 그게 하나님께 대한 신뢰니까요.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신뢰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자에게는 더 큰 은혜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9절,10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보십시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재물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며 그것을 주신 것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요? 본래 하나님의 것이니까. 하나님께서 주셨으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것이니까, 내가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니까,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으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 주신다고 하였습니까? 네 창고마다 곡식이 가득찰 것이다.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칠 것이다. 농사가 잘되고, 곡식이 풍성하고, 장사가 잘되고, 직장에서 인정받게 되고 그래서 물질적으로도 넉넉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면 하나님께 가장 중요한 것을 드릴 줄 아는 인생에게 어찌 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늘 감사하며 사는 인생에게 어찌 복이 찾아들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죠. 부모님께 감사하죠. 이웃에게 감사하죠.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모든 사람들에게 대하여 감사와 기쁨과 은혜로 대하겠습니까? 또 얼마나 성실하게 일하겠습니까? 그러니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복을 받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 아니 지금까지 살아 숨쉬는 동안 모든 은혜로 채워주신 하나님,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감사한다면 내게 있는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며 영광과 찬양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축복거리를 하늘 곳간에 차곡차곡 쌓아올림으로 여러분의 삶에 더욱 은혜가 쌓이고 기쁨이 쌓이고 축복이 쌓여 생명의 기쁨이 넘쳐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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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추감사주일설교] 감사할 줄 아는 인생

 


제목 : 감사할 줄 아는 인생

말씀 : 시103: 1-5

 


어느 목사님의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차를 운전하다가 그만 언덕 아래로 떨어지면서 몇바퀴를 굴렀습니다. 차는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심하게 찌그러졌고,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다 찌그러진 차로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가갔을때 정말 뜻밖에도 그 다 찌그러진 차안에서 어떤 사람이 스스로 걸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가벼운 타박상과 찰과상을 입기는 했지만 우려할 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물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정말 믿기 어려운 기적이라고 웅성거렸습니다. 목사님 아들 또한 정말 기적이라고, 하나님께서 나를 건져주셨다고 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외상을 치료하기 위하여 병원으로 갔을 때 아버지 목사님이 찾아왔습니다. 아들은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나서 정말 오늘 저는 큰 기적을 체험했다고 하며 다시 한번 능력의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오늘 여기까지 오면서 너보다 더 큰 기적을 체험했단다.?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아들은 깜짝 놀라서 말했습니다. ?아니, 아버지, 얼마나 더 큰 사고를 당하셨길래요? 저보다 더 큰 사고를 당하셨는데 이렇게 멀쩡하시다니 정말 기적중에 기적이네요.?라고. 그러자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무슨 소리냐, 나는 아무런 사고도 당하지 않았단다. 그러니 이렇게 아무런 사고없이 조그마한 타박상조차 없이 잘 왔으니 이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 있겠느냐, 이보다 더 감사할 일이 어디 있겠느냐??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별로 심감을 못 느끼시는 것 같네요.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우리의 일상 생활 전체가 얼마나 큰 기적입니까? 얼마나 큰 은혜가운데 살고 있느냐 말입니다. 여러분, 무엇보다도 정말 큰 기적이고, 정말 감사하고 영광돌려야 할 일은요 다른게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며, 먹고 입고 잠자고 일하고 오늘 여기 모여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가장 큰 기적이요, 가장 큰 은혜인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기적, 이보다 더 큰 은혜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전쟁이 난 후에야 평화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평화시에는 평화의 소중함과 은혜를 잘 느끼지를 못합니다. 사람들은 다리가 부러져 봐야 다리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비로소 확실히 압니다. 먹을 것이 없어져봐야 식량의 소중함을 압니다. 먹을 것이 지천으로 쌓여 있을때는 양식의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병이 난후에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고, 눈이 어두워져 봐야 눈을 소중함과 감사함을 실감하는 거예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부모님이 안계셔 봐야 부모님의 소중함과 은혜를 아는 거예요. 아내가 며칠 자리를 비워봐야 아내의 소중함을 압니다. 이웃이 없어져봐야 이웃이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 존재인지 비로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없어져봐야 교회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곳인지를 비로소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많은 핍박과 환난과 압제를 당해봐야 비로소 우리가 이렇게 마음껏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감사요, 은혜인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그러기 전에 먼저 알아야 돼요. 없어지고, 약해지고, 마음대로 하지 못할 때 그때 비로소 전에 것의 소중함을 안다는 것은 참 억울한 일이예요. 있을 때 누릴 때 그것의 소중함을 알고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야 되는 거예요. 그런즉 우리는 오늘 이 시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렇게 먹고 입고 잠자고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기적이요, 감사요, 은혜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들을 더욱 은혜롭게 누리며 더욱 더욱 감사하며 기뻐하며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은 이른 곡식을 수확하고 나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기쁨과 은혜를 나누는 절기입니다. 요즈음에는 보리나 밀 농사를 많이 짓지 않아서 아직은 수확한 곡식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지난 상반기를 돌아보면서 오늘까지 때를 따라 돕는 은총으로 함께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절기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왜 굳이 우리에게 이러한 절기들을 지킬 것을 말씀하셨을까요? 왜, 맥추절, 오순절, 수장절을 지키라고 하시면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규례를 주셨을까요? 그저 헌금이나 얼마 드리고, 감사에 대한 설교나 한편 듣게 하기 위해서 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그 이유는 조금전에 말씀드린바와 같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속에 젖어서 너무나 은혜를 잊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잊고 살다보니까 감사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니까 기쁨도 만족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생활속에서 정말 너무나 많은 은혜와 기적속에 살아가면서도 그것이 일상화되다 보니까 그것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거예요. 그것을 잊고 살다보니까 감사와 영광은커녕 도리어 원망과 불평을 하기도 하고, 실망과 좌절속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미워하고 다투며 살기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미 주어져 있는 복도 누리지 못하며 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메마르고 왜곡된 우리의 심령을 일깨워서 감사와 은혜의 삶을 살게 하려고 일부러 절기를 정해놓고 그것을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맥추감사주일을 보내면서 정말 감사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때로는 별다른 변화도 없고, 발전도 없고, 좀더 극단적으로는 별로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k일상들이 정말 큰 기적이요, 은혜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사람은 은혜로 사는 존재입니다. 은혜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삶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물론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큰 은혜는 말할것도 없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주신 은혜,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은혜,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신 은혜, 이 아름답고 축복된 삶의 터전을 허락하신 은혜,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변함없이 공급해 주신 은혜, 생각할 수 있고 일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신 은혜 등등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은혜들을 주셨고, 오늘도 변함없이 공급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의 은혜, 이웃의 은혜, 스승의 은혜, 국가의 은혜, 회사의 은혜, 종업원의 은혜, 농업인의 은혜, 상업인의 은혜, 공장의 은혜, 공무원의 은혜, 서비스인의 은혜, 고객의 은혜 등등 우리는 정말 은혜로 시작해서 은혜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은혜로 사는 존재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날 하나님과 사람 사이,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부족하고 아쉬운 것은 은혜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분이신지를 잊어버리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를 망각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고맙게 여기기는커녕 도리어 쓰러트리고 배격하고 이겨야하고 심지어는 저 사람이 죽어야 내가 산다고 하는 엄청난 과오 속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잘못된 인간관계 때문에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슬픔과 아픔을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얼마나 비극적인 일입니까? 우리 인생은 먼저는 하나님의 은혜요, 그 다음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까? 필연적으로 서로간에 은혜를 주고받는 관계속에서 살아가야 할 존재가 아닙니까? 나는 너의 은혜를 필요로하고, 너는 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존재가 아닙니까? 또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정말 행복하고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까? 그런데도 그걸 잊어버리고 서로의 소중함을 모르고 비난하고 헐뜯고 속이고 싸우고 아프게 하고 넘어뜨리고 상처를 주면서 살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말 서로를 필요로하는 존재들입니다. 서로 도우며 사랑하며 살아야 할 존재들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의 이웃이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좀더 구체적으로 정부 조직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야말로 무질서와 혼란의 극치를 이룰 것입니다. 경찰조직이 없으면 어떻겠습니까? 기업가가 없으면 어떻겠습니까? 상인이 없다면, 농업인이 없다면, 과학자가 없다면, 노동자가 없다면, 공장이 없다면, 교회가 없다면, 병원이 없다면, 우체부 아저씨가 없다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봅시다. 만약 나 혼자 살면서 빵 한 조각을 먹으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과 수고가 있어야 할까요? 먼저 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고, 김을 매고, 추수를 해야 겠지요. 그러자면 거기에 필요한 연장들을 만들어야 할테고, 그리고 나서 방아를 찧고, 또 거기에 필요한 도구도 있어야 하고, 그것을 가루로 만들고, 부풀게하는 약이나 설탕도 구해야 하고, 불을 지필 나무나 기타 연료를 장만 해야 하고 대략 20여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각각의 단계마다 많은 도구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자면 빵 한조각을 먹기 위하여 엄청난 노력과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겠지요. 그런데 마음만 먹으면 당장 나가서 빵을 사먹을 수 있다는 것 정말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만약 나 혼자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면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이 좋은 옷들을 입으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겠습니까?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까요? 비행기를 타려면 어떨까요? 이건 아예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병들고 외롭고 슬플때는 어떨까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일상생활속에서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우리가 그저 별 생각없이 먹고 입고 잠자고 예배를 드리고 하는 그 모든 과정과 그 모든 일상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은혜와 이웃의 은혜를 받고 있는지를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절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림과 동시에 언제나 그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하여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오늘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지 말고 감사와 영광과 존귀를 돌리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이하에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보십시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니다. 그래서 모든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영원한 승리자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모든 병을 고쳐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병이라함은 비단 육체적인 질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병이란 우리의 영혼의 병, 우리의 정신적인 병, 우리의 육체적인 병 등 인간의 전 영역에 걸쳐서 우리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질병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우리 인간에게 찾아온 모든 아픔과 고통과 슬픔을 치유해 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믿고 따르는 우리들에게는 그 모든 것들을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5절에서는 말씀합니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말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날마다 날마다 좋은 것들로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고 소망하는 기쁨과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수리가 힘있게 창공을 향해 날아오르듯이 우리가 기쁨과 은혜와 감사가운데 더욱 힘있게 저 높은 것올 향하여 달려가는 그러한 승리자로서의 삶을 살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주신 은혜를 말씀하심과 동시에 앞으로 주실 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과거에 이미 그런 은혜를 주셨으므로 그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더욱 우리를 어여삐 여겨 주시사 더욱 더 큰 은혜를 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더욱 큰 은혜와 능력과 기쁨속에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정말 너무나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인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로 채워 주셨습니다. 삶의 터전을 주셨습니다. 이 믿음과 자유와 평화와 일용할 양식을 주셨습니다. 일할 수 있는 터전을 주셨습니다. 가정을 주시고 이웃을 주시고 나라를 주시고 태양과 비와 공기와 ...... 정말 너무나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영광과 찬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주신바 은혜들을 헤아리며 감사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누리고 있는 것들을 헤아리며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가지고 있는 것들을 감사하며 그것을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농촌경제가 어렵습니다. 때로는 고달프기도 합니다. 때로는 별다른 고통이나 어려움없이 사치와 호화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은근히 시기심이 생겨나는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몇 달을 수고하고 나서 몇억씩 벌어들이는 사람들, 한편의 광고를 찍고 무슨 십억을 받느니 하는 것을 보면 좀 속이 상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촌에서 이렇게 고생해봐야 별로 남는 것도 없는데 우리 같은 처지에 무슨 감사할 것이 그렇게 많으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감사는 일부 부유층이나 지도층이나 권력층이나 유명인사들이게나 어울리는 일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감사는 어떤 특별한 계층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감사는 어떤 특권층에나 어울리는 사치품이 아닌 것입니다. 감사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누구나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또 누구에게나 감사해야할 것들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매튜헨리라는 사람은 도적을 맞고 나서 이렇게 감사하였습니다. ①지금까지는 도적을 맞지 않았으니 감사합니다. ②내 생명은 도적 맞지 않았으니 감사합니다. ③아직은 잠잘 수 있는 집이 있고 기타 여러 가지 것들을 남겨주셨으니 감사합니다. ④그 무엇보다도 내가 도적이 되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17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며 사상가였던 John Milton(1608~1674)은 셰익스피어와 함께 영국문학을 대표하는 2대 시인으로 꼽히는 사람이었으며 청교도 혁명에도 기여한 정치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44세 때에 완전히 소경이 되고 말았습니다(1652).

그러나 신실한 청교도적 신앙인이었던 밀턴은 이 불행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끝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기도했습니다. 그때 그는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보다 더 더 신령한 눈으로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 시선을 어둡게 하신 것은 오직 주님만 볼 수 있도록 내 심령의 눈을 더욱 크게 열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라고.... 그리하여 결국 그는 1667년 ?실락원?이라고 하는 전대미문의 대서사시를 완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어느 누구에게나 어떤 조건에서나 감사의 조건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감사할줄 아는 자만이 진정 복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감사할줄 아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것들로 채워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온 성도여러분께서는 오늘 맥추감사주일을 보내면서 정말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주신 은혜들을 다시한번 헤아려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이미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을 늘 기억하면서 정말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돌리며 거기에 보답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도 동시에 언제나 우리들 곁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많은 도움과 은혜를 주고 있는 우리의 모든 가깝고 먼 이웃들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또한 감사하며 보답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말 우리 모두가 함께 서로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운데 더욱 큰 은혜를 주고 받으며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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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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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설교]성령 세례를 받으라

 

 

 

제목 : 성령 세례를 받읍시다.

말씀 : 행1:4,5

1.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먹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많고 얻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재물도 얻고 싶고, 건강도 얻고 싶습니다. 기왕이면 권세도 얻고 싶습니다. 기왕이면 예쁜 부인이나 백마 탄 왕자같은 남편도 얻고 싶습니다. 평안도 자유도 즐거움도 기쁨도 사랑도 존중도 받고 싶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 좋은 것을 누리며 사랑과 축복과 기쁨 속에 살기를 원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입니다. 또 그렇게 뭔가 좋은 것들을 누리고 싶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게 됨으로 좀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동기가 됨으로 이러한 것들에 대한 건전한 추구는 도리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도 열심히 노력해서 얻고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정말로 이러한 것들보다 더 우선해서 받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도 우리 인생에게 보템과 유익과 기쁨이 되지만 그보다 더욱 보템과 유익과 은혜와 기쁨을 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을 받아야 우리는 인생의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연인으로서의 인간 영혼은 죄와 무지속에 있어서 진리의 길, 생명의 길, 축복의 길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 인간 영혼이 하나님의 고귀한 형상으로서 누릴 수 있는 그 엄청난 축복들을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리의 영, 생명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 심령속에 들어오셔서 우리 심령속의 굳어지고 무지한 것들을 깨트려 버리고, 죄된 것들을 씻어 버려야 비로소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알게 되면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게 되고 예수님 믿고 정말로 그 안에 있는 그 놀라운 생명 은혜 기쁨 자유 평안을 마음껏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세상에서 천만금을 얻을 것보다도, 천하제일의 권세를 얻은 것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생명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인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무엇을 기다리라? 아버지께서 약속한 것. 그게 뭡니까? 성령입니다. 요14:16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바로 이 약속하신 성령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성령을 받아야 너희들이 나를 바르게 알고 사명을 힘있게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약속하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진 심령이 깨끗해져서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이 보이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리고, 천국이 보이게 됩니다. 그래야 자신을 알고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알게 됩니다. 성령을 받아야 예수님을 믿게 되고 그래서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생명과 기쁨과 평강과 위로 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어떤 상황이나 환경이나 위협이나 유혹도 넉넉히 이기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던 제자들, 심지어 예수님을 모른다고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며 부인했던 베드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믿지를 못했던 제자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한곳에 모여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던 제자들도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다가 성령 충만함을 받은 다음에는 완전히 180도 달라겼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자 예수님의 부활이 믿어지고 하늘나라가 보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참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두려워서 걸어 잠갔던 문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뛰어나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 그러나 부활하셨다. 이 분이 그리스도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힘차게 외쳤습니다.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게 옳으냐 너희들 말 듣는 게 옳으냐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하루에 삼천명 오천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가 세워졌고, 계속해서 성령의 능력을 받은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의 헌신을 통하여 또 다른 교회가 세워지고 오늘날 저와 여러분에게 까지 이 복음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성령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요20:22절을 보겠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지식을 얻는 것도 좋지만 그러나 그보다 먼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 받아야 죄사함 받습니다. 그래야 심령이 깨끗해 집니다. 그래야 눈이 밝아집니다. 천국이 밝게 보입니다. 선과 악을 바르게 분별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똑똑하게 들립니다. 지혜와 능력과 분별력을 갖게 됩니다. 상황과 환경을 이깁니다. 죄와 유혹을 이깁니다. 능력있게 생명있게 담대하게 천성을 향하여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생명의 은혜가 풍성한 복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세상의 다른 어떤 것을 구하기 전에 먼저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생명의 영이요, 진리의 영이요, 지혜의 영이요, 능력의 영이신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따라 생명과 진리와 능력이 충만한 복된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됩니까?

2.교회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려면 교회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가 뭡니까? 누누이 말씀드렸지만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엡1:23절이지요.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에 만물을 충만케하시는 이 곧 예수 그리스도 곧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은혜,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의 지혜, 예수님의 능력으로 가득한 곳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지상교회는 온전치 못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교회 안에 만이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예배가 있습니다. 주님의 삶과 주님의 가르침과 주님의 뜻을 가르쳐 주는 곳은 오직 교회 뿐입니다. 그러니 이런 주님의 몸된 교회를 가까이해야 성령 충만 받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앞에서 보았던 4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예루살렘은 어떤 곳입니까?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모리아 산입니다.(창22:2) 다윗이 장막을 치고 언약궤를 모셔두었던 곳입니다.(대상15:1)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곳입니다.(대하3: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인류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곳입니다. 즉 예루살렘은 인류구원의 역사의 중심에 서 있는 거룩한 성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이 있는 곳, 말씀이 있는 곳, 하나님의 특별하신 임재가 있는 곳,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안에 머물며 더욱 말씀 위에 서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성령의 능력을 덧입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지금까지는 너희 연약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제자의 사명을 감당할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의 예루살렘은 어디 입니까? 교회밖에 더 있겠습니까. 주님의 피값으로 세우신 곳,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 예배와 기도와 말씀과 찬양과 전도와 섬김과 봉사가 있는 곳입니다. 이런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봉사와 섬김 등으로 주님과 교제하고 성도와 교제할 때 성령을 받지 못한 자는 성령을 받게 되고, 이미 받은 자는 더욱 충만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충만하게 받은 사람은 생명의 은총이 있고 기쁨이 있고 사랑과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 주님의 능력으로 승리하며 주의 사역 힘있게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몸된 교회,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섬김이 있는 교회, 그래서 이 땅에서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유일한 기관인 교회를 가까이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다른 어떤 곳을 가까이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보다도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섬기고 교제하는 일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말 말씀과 사랑과 은혜와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교제할 때에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어 정말로 생명과 기쁨과 자유와 평강과 위로와 소망이 넘쳐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를 가까이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제자들이 언제 참 제자가 되었습니까? 앞서 말씀드린대로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나서부터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었습니까? 기도에 힘쓸 때였습니다.

행1:14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제자들이 예수님의 분부를 따라 예수님을 따르는 다른 많은 분들과 더불어 마가의 다락방에서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열흘이 지났을 때 드디어 오순절 날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후 제자들은 능력있는 제자들이 되어 놀라운 복음의 역사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즉 기도할때에 그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았고, 기도로 성령의 능력을 받은 이후 능력있는 제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 막9:29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어느 날 예수님은 산에 기도하러 가시고 제자들만 남았는데 어떤 아버지가 귀신 들린 소년을 데리고 와서 제자들에게 고쳐달라고 하였지만 못고쳐 주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오셔서 귀신아 나가가 한마디 하니까 귀신이 줄행랑을 쳤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우리는 왜 못쫓았습니까, 그러니까 기도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너희 믿음의 기도를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할 때에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이런 모든 잡류들, 더러운 것들, 추한 것들, 유혹들, 마귀의 장난들 다 물리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기도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수요기도회, 새벽기도회에 열심히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입니다.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시간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성도들과 신령한 교제를 나눌 때 성령의 능력을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감히 더럽고 추하고 악한 것들이 대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깨어 기도하며 주님과 온전한 교제를 이룰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모든 더럽고 추하고 악한 것들을 물리쳐 버리고 더욱 큰 감사과 기쁨과 은혜와 능력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겸손히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를 가까이 한다는 것은 또한 말씀을 듣고 받기 위함입니다. 그럴 때 성령의 능력을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행10:44절을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이 말씀은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사실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넬료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온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까지 불러 모아놓고 베드로를 모셔옵니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밖으로 나가 발 앞에 절하고 모셔 들이고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자 그 말씀을 들을 때에 말씀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이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정말 사모하는 마음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고넬료는 베드로가 오자 그 발아래 엎드려서 절했습니다. 가족은 물론 친척, 친구들까지 모아놓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만큼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 앞에 엎드렸다는 것입니다. 그 때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내 생각과 가치관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기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말씀, 은혜의 말씀, 능력의 말씀 앞에 조용히 무릅꿇고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곳에 은혜가 있습니다. 능력이 나타납니다. 다윗은 얼마나 말씀을 사모했는지 말씀이 송이꿀보다도 더 달다고 하였습니다.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위대한 신앙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저와 여러분은 더욱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리고, 말씀에 귀를 기울여 말씀의 은혜로 내 심령이 밝아지고 희망과 은혜가 넘치고 능력이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성령의 지배 속에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할 이유는 기본적으로 그래야 믿음을 갖게 되고 나아가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운데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뿐이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온전히 성령의 지배속에서 살면서 능력있는 신앙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진정한 능력이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세상에서는 돈이 힘이고 권력이 힘이고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지만 그게 진짜 힘이 아닙니다. 진짜 힘은 죄를 이기는 힘입니다. 사탄의 권세를 이기는 힘입니다. 상황과 환경과 유혹과 핍박과 죽음을 이기는 힘입니다. 그런 힘이 어디서 나옵니까? 성령의 충만함에서 오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며 세상의 모든 것, 심지어는 죽음도 마귀사탄의 권세도 모두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하면 아무리 돈과 명예와 권세가 있어도 결국 지는 자가 됩니다. 심지어 아무리 고상하게 종교생활해도, 교회가 아무리 웅장해도 성령의 능력을 받지 못하면 힘이 없습니다. 환난풍파 몰아치면 무너집니다. 세상의 유혹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립니다.

그래서 엡5:18절에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술 취하지 말라. 술의 지배를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술은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무감각하게 만듭니다. 혼란스럽게 만들고 분별력을 희미하게 만듭니다. 영적 도덕적 윤리적 감각을 무디게 만듭니다. 술 뿐아니라 세상의 것들이 다 그렇습니다. 향락과 오락은 말할 것도 없고 물질과 명예와 지식과 권세와 이런 것들도 그렇습니다. 그런 것들에 취하면 마침내 감각이 무디어지고 영혼이 황폐해지고 그러다 마침내 죽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에 취하지 말고 성령으로 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성령은 살리는 영이니까. 지혜의 영이니까, 생명의 영이니까, 사랑의 영이니까, 은혜의 영이니까, 화평과 위로와 소망과 자비의 영이니까, 이런 영으로 충만해야 비로소 올바른 분별력이 생기고 기쁨과 은혜와 사랑과 능력이 충만해 지니까, 그러므로 성령 충만함을 받아서 성령의 역사하심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세상의 다른 것으로 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정말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물밀 듯 쏟아져 내려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완전한 생명의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세상의 돈이나 명예나 권세나 지식이나 그까짓 술이나 향락이나 오락이나 이런 것들이 주는 기쁨과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이 기쁨은 영원한 기쁨입니다. 모든 상황과 환경과 조건을 이기는 기쁨입니다. 모든 더러운 것과 추한 것들과 죄와 유혹과 핍박을 이기는 고상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기쁨입니다. 그러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누리게 되는 퍼펙트한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다른 어떤 것을 구하기에 앞서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위하여 교회를 가까이 하고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정말 한분도 빠짐없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세상의 모든 죄와 추한 것들과 환난과 환경과 상황과 조건을 이기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영원한 생명과 기쁨과 감사와 평강과 위로 소망이 충만한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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