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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종교이다.

 

1930년 전 세계 이슬람 인구는 23백만 명이었다. 오늘 날 16억의 인구가 되었다. 1970년에 이슬람 인구는 세계인구의 15%를 차지하였지만, 2000년에 20%5%가 늘어났다. 반면에 기독교는 1970년에 34%에서 2000년에 33%1%가 감소하였다. 이러한 통계는 비록 이슬람이 기독교에 비하여 600년 후인 7세기 초에 시작되었지만, 문화와 인종을 넘어서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으며, 많은 국가, 지역에서 기독교인 수를 압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럽의 경우에는 이슬람 인구가 1970년에 720만 명에서 20075300만 명으로 성장했다.5)

 

이슬람 인구

아시아에서 197042,600만에서 199075,600만 명으로 늘어났다.6) 그 동안 아시아 지역 기독교인 수는 11,900만 명에서 21,100만 명으로 증가하는 것에 그쳤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이슬람 인구는 아프리카 전체 인구의 41.32% 로서 32410만 명이다.7)

 

이슬람을 양적인 면에서 기독교와 비교해 보면 기독교인구가 두 배로 되는데 47년이 걸렸지만, 이슬람 인구는 2배로 되는데 24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슬람은 문화와 인종을 넘어서 세계적으로 널리 퍼지고 있으며 많은 땅에서 기독교인의 수를 압도하고 있는 사실을 정확히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이슬람이 성장하고 있다.

 

한국내 외국인 체류자는 200812월말 1,158,866명에 달하고, 이 가운데 인도네시아 28,696, 우즈베키스탄 21,588, 방글라데시 12,154, 파키스탄 10,044명의 순으로 이슬람 국가들 가운데 한국의 근접 국가인 극동 아시아 국가들 다음으로 많은 수의 체류자들이 있다.

 

또한 이들 가운데, 불법 체류자는 200,489명에 달하고 이 가운데 우즈베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이란 등의 불법체류자는 29,959여 명에 달하고 있다. 전체 외국인 불법 체류율은 17.2%이며, 이슬람 국가국민 불법 체류율은 34.5%, 이슬람국가국민 불법 체류율 15.7%보다 크게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전국에 9곳의 모스크와 수많은 무쌀라(기도처)에 모이고 있다. 특히 이들의 무쌀라는 크고 작은 국가별, 지역별 모임들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불법체류자들의 피난처이며, 정보교환과 만남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국적취득자 : 법무부 통계(2008. 12. 31.)

무슬림 남성들이 한국여성들과 결혼하여 국적을 취득하는 사람들이 두드러지게 늘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옆의 도표(2008. 12. 31. 현재 법무부 통계)와 같이 대표적인 이슬람 국가들 중에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의 경우는 한국 남성들과 결혼비율이 월등히 높게 나오는 반면 한국 여성과 결혼하는 비율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남자 배우자의 국적 중에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이란, 나이지리아가 드러나고 있다.

 

한국 내 이슬람은 1989년부터 국내 노동력 부족을 충당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 이주가 1990년대 이르러 본격화되었고, 체류 외국인의 10% 정도가 무슬림으로서 국내에 거주하고 있다. 최소한 15만 이상의 이슬람권 출신의 외국인이 국내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한국과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맺고 서울에 공관을 설치하고 있는 이슬람국가만도 21개국에 이르고 있다.8) 한국인 무슬림은 2001년도 5월 신동아에 게재한 무함마드 깐수(정수일, 전단국대교수)“... 4만 명의 신도를 구성원으로 갖게 되었으며, 범세계적 이슬람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라고 밝히고 있다.9)

 

수능 제2외국어 응시자 추이

한국이슬람 전교 50주년에서 밝혀진 이슬람의 선교전략은 1) 마스지드(회교사원) 건립 2) 국제 이슬람 학교 설립 3) 이슬람 문화센터 설립 4) 꾸란의 새로운 번역 추진 5) 이슬람대학 건립 6) 이슬람 관련서적 출판 등이다.10)

 

수능에서 아랍어 지원자가 증가하고 있다. 수능에서 0.1점은 상당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학생들의 치열한 경쟁 속에 고득점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과목인 아랍어를 선택하고 있다. 2004. 6. 수능 모의평가에서 아랍어 1명 응시, 04. 9. 모의평가에서는 397명 응시하였던 상황에서 2008. 11. 12.에 실시한 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제2외국어 응시자 99,693명 중 29,278(29.3%)이 아랍어 선택하였다. 아직 아랍어를 가르치는 학교는 없다.11) 하지만 매년 학생들은 다음과 같이 증가하였다.

 

아랍어 응시자는 05학년도 531(0.43%), 06학년도 2,184(2.25%), 07학년도 5,072(5.58%), 08학년도 13,588(15.2%), 09학년도 29,278(29.3%)으로, 매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무엇이 학생들에게 아랍어를 선택하도록 하였는가? 아랍어 선택이 급증하는 이유는, 아랍어 시험이 쉽게 출제되어 조금만 공부해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과목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아랍어는 학생들의 평균점이 매우 낮고 표준편차가 커 몇 문제를 더 맞추면 표준점수가 높게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로 나갈 때 이슬람권에서는 일반 고교에 아랍어가 정규과목으로 채택되면, 학생들이 이슬람에 대해 친밀감을 가지게 되어 내국인의 무슬림화가 가속될 수 있다. 또한 아랍어 교사 필요를 이유로 무슬림인 아랍어교사를 초빙하게 될 수 있다.

 

 이슬람은 잘못된 기독교를 고치기 위한 종교라고 주장한다.

 

서구에서 이슬람은 그 자체가 유대교와 기독교와 같은 종류의 신성한 근원에서 나왔으며 무슬림들은 알라를 구약과 신약에 나오는 하나님과 같은 신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들은 모세를 통하여 유대교가 세워지고 예수를 통하여 기독교가 세워졌듯이 무함마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보여주고 계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프리카나 비서구 지역에서는 이슬람을 유대교와 기독교의 잘못을 고치기 위해서 온 종교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이슬람의 양면성을 아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비서구 지역, 특별히 아프리카에서 그들은 기독교는 백인의 종교이며, 아프리카의 종교는 이슬람이었는데 백인들이 노예제도를 통하여 자신들을 기독교로 바꾸어 놓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무함마드 이전에는 아프리카가 기독교 지역이 아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슬람이 세상에 나타나기 전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가장 큰 기독교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는데도 말이다.

 

 이슬람은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는 종교이다.

 

이슬람 학자들은 성경이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부패되었기에 알라가 무슬림에게 꾸란을 주었다고 가르친다. 본래 하나님이 예언자들을 통해서 준 구약과 신약의 메시지는 옳은 것이었으나, 후에 유대인에 의해서 구약이 변질되었고, 기독교인에 의해서 신약이 그들의 욕심에 따라 변질되고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비난은 꾸란에서도 그 근거를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꾸란은 성경의 권위를 강하게 인정하고 있는데 그 증거로 무함마드 자신이 계시에 의심이 생겼을 때 성경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였다. “우리(알라)가 그대에게 계시한 것에 그대가 의심한다면 그대 이전에 성서를 읽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실로 그대의 주님으로부터 진리가 그대에게 이르렀나니 의심하는 자가 되지 말라.”(수라 1094)) 실제로 무슬림 학자들은 꾸란이 지닌 이러한 모순 때문에 꾸란을 가르치는 것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부패하였기에 무슬림에게 성경 읽는 것을 금지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슬람은 기독교와 대비하여 자신을 정의하고 있다.

 

무함마드는 기독교에 대하여 그때그때마다 다른 태도를 취하였다. 그의 기독교에 대한 태도는 우호와 적대라는 양 극단 사이에서 흔들렸다. 메디나에서 유대인을 대항하여 싸울 때 기독교에 대하여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무함마드가 아라비아 반도에서 지배력을 확보했을 때, 기독교인들을 신앙의 공동체에서 배제하였다.

 

이런 배제는 서구 쪽을 장악하려고 하는 그의 의지와 관련되어 있었다. 시리아에 있는 비잔틴 전초기지에 군대를 보내겠다는 그의 군사적 결단은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 불행한 대결의 시작이었다. 그 신학적 정당성을 계시로 결정지었다. “알라와 내세를 믿지 아니하며 알라와 선지자가 금기한 것을 지키지 아니하고 진리의 종교를 따르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비록 그들이 성서의 백성이라 하더라도 항복하여 지지야를 지불할 때 까지 투쟁하라 그들이 스스로 저주스러움을 느끼리라” (꾸란 9:29) 이로서 무함마드는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결단을 영구히 신학적으로 정당화했던 것이다.12)

 

이슬람은 언제나 기독교와 유대교를 대비하여 자신들을 정의하고 있기에 꾸란에 명백하게 정의되어 있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내용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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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 이슬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무슬림은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

 

현재 전 세계 인구는 약 70억 명이다. 이 가운데 무슬림 인구는 약 16억으로 전 세계 인구의 22% 정도이다. 이슬람을 아랍 지역의 종교로만 여겨왔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 어느 곳에서나 대도시에서는 모스크와 무슬림들을 만나는 상황이 되었다. 이미 지역과 국경을 넘어 만날 수 있는 이슬람, 이런 이슬람을 향한 기독교의 선교적인 접근은 아주 미미하였다. 현재까지도 기독교 선교는 미완성 사역이다.

 

전 세계 미전도 종족은 약 8,000~6,000개 이고, 그중 성경이 번역되지 않은 종족은 4천 개나 된다. 영국의 데이빗 바렛(David Barrett)이 미전도 종족에 대한 선교지도를 A, B, C로 구분하였다. A가 미복음화 된 지역이다. 30개 국가로 인구는 13억 정도이며 23.7%이다. B지역은 전도된 국가이면서도 기독교 신자가 적은 나라이다.

 

이들 나라가 76개국으로서 23억 정도이다. C국가는 기독교 국가로서 145개국이며 인구는 18억이다. 기독교인이 60% 이상인 나라들이다. 전 세계교회의 모든 수입 중에 99.8%가 이미 복음화 된 곳에서 사용되고 0.09% 만이 비기독교지역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0.01% 만이 A지역, 즉 미 복음화된 지역을 위해서 사용되어진다. 전 세계 기독교 선교사 가운데 3천 명만이 이곳에서 사역하고 있다. 전 세계선교사는 약 17만 명이다. 전체의 2% 만이 미전도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는데 그곳의 대부분은 무슬림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기독교에서 이슬람권을 향해 최초로 선교적 접근을 한 사람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1181-1226)였다. 그는 5차 십자군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에 이집트의 술탄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함으로 선교사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물론 가시적인 열매는 없었으나, 중요한 것은 이슬람 선교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수도사들은 순교를 각오하고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1219년 다섯 명의 수도사가 모로코로 갔다. 그러나 1년 후에 그들은 순교하였다.

 

실제로 최초로 무슬림을 위하여 조직적으로 사역한 선교사는 레이몬드 룰 Raymond Lull,(1235-1316)이다. 그는 이슬람권에 보낼 선교사의 훈련을 위하여 1290년 아랍어과와 신학부가 있는 몽펠리에 대학을 설립하였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유럽에 이슬람과 아랍에 관한 학문을 고취시켰다. 그는 82세의 노구로 튀니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베자야 해변에서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핸리마틴 Henry Martyn(1781-1812)은 캠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성공회 목사로서 인도로 가서 동인도회사의 전임 사목으로 있다가 힌두교성경을 번역했고, 이란으로 가서 이란성경을 번역했지만, 결핵으로 인해 겨우 31세의 나이에 터키 토카트에서 죽었다.

 

그 후에 이슬람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무엘 쯔머 Samuel Zwemer(1867-1952)이다. 학생신앙운동에 자극을 받고 헌신하여 아랍선교회를 세우고 그의 친구들과 아랍어를 배우기 위하여 레바논에 들어갔으며, 1900년대 초반에 이집트에서 사역을 하였고 40년 동안 20여명의 개종자를 얻었다. 이슬람권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미국에 알렸다. 그는 21년간 아라비아 반도에서 사역을 하였다.

 

이것이 19세기까지 이슬람권에 들어가서 사역한 사람들이다. 이슬람권을 향한 몇몇 선교사들의 복음에 대한 열정과는 달리 서구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이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반목과 갈등의 관계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항상 걸림돌이 되어왔다.

 

더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의 많은 기독교인들조차도 이슬람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않으며

무슬림에 대해 배우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복음을 전해야 할 기독교인들이 무슬림에 대해 무관심함에 따라

결국 무슬림들은 복음을 듣고 진리를 알 수 있는 기회조차 없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무슬림들은 자연스럽게 서구교회로부터 냉대를 받았으며,

무슬림은 그들의 관심 밖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에도 이러한 서구의 자세가 지속되어 왔는데 이는 이슬람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장벽과 함께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무관심으로 인하여 성경이 아랍어로 번역된 것은 무함마드에 의하여 이슬람이 시작된 지 227년이 지난 837년이었다. 아랍어로 성경이 번역되었다고 해도 정작 아랍어 성경이 출판된 것은 1516년이다.

기독교의 중심이었던 서구의 이슬람에 대한 심리적 원수관계로 인하여

전 세계 무슬림들의 80%는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게 되었다.

 

무슬림들은 구교회로부터 무시당했다.

 

기독교회사에서 무슬림이 구교회로부터 학대를 받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1099년부터 8차에 걸쳐 일어났던 십자군 전쟁은 성지탈환이라는 구호아래 약 200년간 예루살렘을 다스렸는데, 무슬림 역사가들에 의하여 군인들은 말을 타고 모스크 안을 휘젓고 다닐 때 모스크 바닥에 피가 얼마나 흥건했던지 말의 굽이 잠길 정도였다고 한다.2) 그때 많은 무슬림들이 학살당함으로서 이슬람과 기독교사이에 큰 상처가 생겨난 것이다.

 

데이빗 바렛(David Barrett)<세계 그리스도인 백과사전>(The World Christian Encyclopedia)에서 AD 33년부터 AD 2000년까지 약 69,420,000명의 남녀 및 아이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고 밝혔다.

그 전체 인원 중에 9,101,000 명의 기독교인들이 무슬림들에 의해 순교를 당했다.3)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는 너무나 상반되는 이기적이고 잔인한 인종주의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의 복음의 진보와 역사 앞에 이 같은 엄청난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독교를 가장한 인종주의와 차별주의에 대해 분명한 분별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인류를 편애하지 아니하시고

 전 세계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무슬림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이슬람은 과거 기독교 지역에서 성장하고 있다.

 

무함마드가 살던 시절에 중동은 기독교의 중심이었다. 북부아프리카는 가장 큰 교구를 자랑했었다.

초대교회 기독교는 5곳에 거점을 두고 있었다.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 로마였다.

그런데 이 5곳 중에 지역적으로 4개는 모두 이슬람 국가가 되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넘어갈 수가 있었을까?

 

첫째, 당시 비잔틴 제국은 페르시아와 100년 넘게 지속된 전쟁으로 인해 많은 세금을 백성들에게 부과하였다.

특히 비잔틴 제국 아래에서 살아가는 기독교 이단들에게 더욱 가중되었다. 이집트의 경우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이단으로 판명된 이후에 가중한 세금을 견디기 힘들어 하던 중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이슬람을 해방자로 여기고 이에 협력하였다.

 

수백 년 동안 쌓아왔던 신학적인 공로와 업적들이 단지 몇 십 년의 역사밖에 없던 이슬람에게 넘어간 것이다.

기독교 안에 수세기에 걸친 이단 논쟁과 끊임없는 영토전쟁 등으로 인해서

기독교인들의 복음전파에 대한 열정은 식어갔고,

믿음 또한 한계에 이르렀다.

그로 인해 이슬람의 협박에 맞서 싸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둘째, 기독교인들이 종교적 신념보다 정치적, 경제적 실리를 택했기 때문이다.

이슬람 정치가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지지야(Jizya)라는 약간의 종교세(인두세)만 내면 각자의 종교에 대하여 자유를 보장해 주었다. 이는 아주 관대한 정책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종교적 자유를 주기는 하였지만, 완전한 자유는 아니었다.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딤미가 되는 것이었다.

딤미는 2등 국민으로서 정치적, 사회적인 불평등을 받았다.

그러나 이슬람으로 개종 할 경우, 고위관리, 군 장성 등 사회 지도층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4)

 

셋째, 무슬림 남자들이 샤리아 법에 따라서 기독교여성들과 결혼을 하게 됨으로서 자연스럽게 기독교인은 감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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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okyo Camii Mosque( 도교에 있는 자미 마스짇)

 

일본에 테러 없는 이유?
무슬림이 없기 때문 ?

미국가족협회(American Family Association)의 전 디렉터였던 브라이언 피셔(Bryan Fishcer)는 지난 7일 "왜 일본에서는 어떤 테러 공격도 일어나지 않는지 궁금하지 않은가?(Have You Ever Wondered Why There Aren't Any Islamist Attacks in Japan?)"라는 글을 통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피셔는 "일본에서 일어난 이슬람 지하디스트들의 테러 공격에 대한 기사를 결코 본 적이 없는 아주 간단하고 쉬운 이유가 있다"면서 "일본에는 무슬림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슬림이 없으면 테러리스트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은 무슬림 이민을 둘러싼 공개 토론에서 중요한 측정점(기준점, data point)"이라면서 "도널드 트럼프는 자히디스트를 색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 이슬람 이민·난민 수용 정지를 제안한 것으로 유명하고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는 이러한 제안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셔는 "정부의 일차적 역할과 책임은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라면서 "이것은 하나님이 부여한 것으로, 로마서 13장에 따르면, 정의를 집행하고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해 필요할 경우 치명적인 힘을 사용하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 미국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슬림 테러 공격"이라면서 "공포를 줄이고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을 취하는 것은 정부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피셔는 "일본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면서 "일본은 가시적으로 이슬람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자유롭다. 인구 통계만 봐도 다 설명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데차이 케다르(Mordechai Kedar) 박사가 미국 주간지 더 쥬이시 프레스(The Jewish Press)에 기고한 글에 대해서 인용했다. 이 글에는 케다르 박사의 글이 많이 인용되어 있다.
"이 나라는 무슬림 문제와 관련해 모든 면에서 아주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외교 차원에서 이슬람 국가의 고위 정치인이 거의 일본을 방문한 적이 없고, 일본 정치 지도자들도 이슬람 굴가를 거의 방문하지 않는다. 이슬람 국가와 그나마 관계하는 것은 일부 이슬람 국가로부터 수입해야 하는 석유나 천연가스 문제 때문일 뿐이다. 일본의 공식적인 정책은 일본에 오는 무슬림들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는 것이며, 심지어 영주권도 무슬림에게는 거의 주지 않는다."
피셔는 "일본은 인구가 거의 1억2천600만명에 달하지만, 케다르 박사에 따르면, 일본 내에 있는 무슬림은 다 합쳐도 1만명 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이는 0.000079% 밖에 되지 않는다.
그는 "다른 이들은 이보다 무슬림들이 더 많을 것으로 보는데 그래도 10만명 이상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덧붙였다.
피셔는 "무슬림 이민은 공식적으로 문화적으로 거의 막혀 있으며, 무슬림 남성과 결혼하는 일본 여성은 사회적으로 고립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에 반해 많은 유럽 국가들은 '서구에게 죽음을'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가진 무슬림을 허용해 인구의 5~10% 수준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프랑스에서는 무슬림 10대들이 신년 전야에 804대의 차에만 불을 지른 것으로 인해 당국이 위안을 받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전년에는 피해 차량 대수가 900대를 넘었다고 덧붙였다. 또 "평화의 종교의 열렬한 신봉자인 이들 청년들은 공공장소의 성탄 트리를 날려버렸다"고도 했다. 무슬림 테러 공격의 위협으로 벨기에 브뤼셀의 신년 불꽃놀이는 취소됐다고도 지적했다.
이에 반해 일본에서 이슬람 개종은 금지되어 있고, 코란을 수입하는 것은 매우 어렵게 되어 있고, 모스크(이슬람 사원)도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이슬람 조직은 허용되지 않고, 이로 인해 미국이슬람관계위원회(CAIR)와 같은 지하드 옹호 단체들로부터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선전물들을 처리할 필요가 없으며, 인구가 1천300만명이 넘는 도쿄에는 단 한 명의 이맘(이슬람 성직자)가 있다고 했다.
피셔는 "일본에서 무슬림들은 프랑스에서처럼 길거리 한복판에서나 모스크에서 기도할 수 없고 집에 가서 조용히 혼자서 해야 한다"고도 했다.
피셔는 "사실상 일본에 온 무슬림들은 외국 기업의 직원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이것도 예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당국의 공식적인 정책은 무슬림들이 들어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라면서 "그들이 외국 회사에서 보낸 의사나 엔지니어, 관리자라 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피셔는 "일본인들은 일본 예외주의, 일본 문화, 일본 전통에 대해 애국적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이슬람 문화화는 이 모든 것에 위협이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면서
"이슬람의 가치 체계가 일본을 일본으로 만드는 것과 정반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슬람 침투에 대한 저항은 일본 국민들에 의해서도 보편적으로 공유된다"면서 "일본은 무슬림이 거의 없는 국가로 남는 데 성공하고 있는데, 일본의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거리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조직, 기업, 고위 관료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모든 사람들에게 퍼져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 "더 나아가 일본은 자신들에게 대해, 일본을 일본되게 하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문화 가치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의 이슬람에 대한 저항에 대해 전혀 사과하지 않는다"면서 "이슬람에 대한 일본의 접근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들이 이슬람과 관계하는 부정적인 방식에 대해 무슬림들에게 사과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슬람에 대한 진실을 말하기 위한 전 세계적인 노력을 주도했던 네덜란드의 국회의원인 헤르트 발데르스(Geert Wilders)는 서구 국가들은 이슬람 문명에 대한 기독교 문명의 비교할 수 없는 우수성을 재발견해야만 하며, 무슬림 쓰나미의 파도에 유럽과 미국이 휩쓸려버리기 전에 서구 국가들이 소유하고 있는 기독교 유산에 대한 정당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고 강조했다.
피셔는 "케다르 박사는 일본은 전 세계를 상대로
1) 국가 유산과 이민 허용 사이에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다.
2) 견고하고 분명한 국가 유산과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은 세계의 실업자들을 그들의 나라로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3) 문화 유산과 국가 정체성이 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사람들은 외국 문화가 그들의 국가와 땅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어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흥미로운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고 전했다.
피셔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예외적인 국가인
미국을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서 해오신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겸손함과
감사함으로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올바를 뿐만 아니라
가장 안전한 것"이라며 글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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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의복

아랍어와 파키스탄의 디자인에서 사용되는 일반적인 전문 용어들과 다양한 이슬람 문화로 디자인에 사용되는 용어들이다.

이슬람의 의상은 사막의 모래바람과 열기를 막기 위해 쓰기 시작한 아랍권의 모자는 챙이 없는 것이 특징. 이것은 엎드려 얼굴을 땅이나 마루 바닥에 대는 기도 자세로 인해 모자에 챙이 있으면 되기 때문. 지금도 이슬람 군인들의 모자에는 챙이 없다.

머리에 베일을 쓰는 이유는 이슬람은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성적 존재로 인정해 왔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본래의 해석이 곡해됐다. 여성은 성욕이 강하고 조절능력이 떨어진 것으로 인식됐고, 여성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남성을 성적으로 탈선하도록 유혹하는 것으로 간주됐다. 보수적 이슬람 시각에서 여성은 유혹이며 사회 혼란의 원인으로 인식됐다.

탈레반 정권은 이러한 보수적 시각을 더욱 극단으로 밀고 나아갔으며, 이로 인해 모든 여성은 외부로 스스로를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8 이상 소녀들의 교육 금지, 여자대학 폐쇄, 취업 금지, 부르카 착용 극단적 탈레반의 여성정책들은 이러한 탈레반의 주장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들의 베일은 나라나 종교적 성향, 계층, 연령, 취향에 따라 다양하다. 튀니지 상대적으로 개방된 북아프리카와 일부 페르시아 지역 이슬람 여성들은 흰색이나 다양한 색의 두건 모양 히잡(hijab)’을 선호하거나 아예 쓰지 않기도 한다. 이란에서는 얼굴을 가리는 검은색 ‘차도르(chador) 착용하며, 보수적인 사우디아라비아와 탈레반 정권 하의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몸을 뒤덮는 부르카(burka) 입는다.

 

이슬람 의복에 대한 설명

 

 

 

 

 

 hijab(히잡)

burqah(부르카)

niqab(니캅)

chaddor(차도르)

두건모양으로 알라가 명령한 것으로 코란에 언급된 의상이다. 얼굴만 내놓은 것으로 상체만 가리는 것이 특징. 입고 벗기가 쉽고 시리아 아랍권 여성들이 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것으로 눈을 포함해 신체의 모든 부분을 가린다. 눈에는 보통 면사포와 같은 천을 사용하며 손에는 장갑을 끼기도 한다. 아프가니스탄과 아라비아반도 일부 이집트의 베두인족 여성들이 주로 착용한다.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가리는 면사포 같은 것으로 khimar 혹은 머리를 가리는 다른 덮게를 사용했을 때는 아래를 가린다(가슴까지 가리거나 혹은 목까지 가리기도 한다). 주로 파키스탄과 모로코의 여성들이 쓰는 베일. 색이 다양한 특징.

'burqah' 비슷한 헐렁한 외투의 일종이며, 혹은 'duaptta' 비슷한 것이다. 망토 정도의 길이로 이란 여성들이 주로 쓴다. 검은색이 많다. 속에는 양장을 입는 경우가 많다

 

남성의 의복

 

 

 

 

 

 

 

 케피야

 페즈

 터번

 

 목을 덮을 정도로 쓰는 남성의 모자. 아라파트 팔레스타인자치정부수반의검은 점박이나, 사우디 왕가의 빨간 점박이, 쿠웨이트의 흰색 무늬의 모자가 여기에 속한다. 라덴의 한쪽 끝을 길게 늘어뜨린 형태는 케피야의 변형으로 아프가니스탄 남성들이 주로 쓴다. 탈레반들은 종교적 엄숙함을 강조하기 위해 검은색을 주로 쓴다.

 

  없는 남자 모자. 모자만 써도 되고 위에 터번을 두를 수도 있다. 터키 모로코에서 주로 사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남성모자도 페즈의 변형.

 

 

 

 

 

 

 

 

 

천을 둘둘 말아 쓰며 주로 이란 남성들이 애용한다. 터번이라는 용어도 이란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시크 터번〓인도의 시크교도들이 각이 지게 쓰는 터번. 종교적인 이유로 자르지 않은 머리를 가리기 위한 것으로 무슬림의 터번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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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세계전략과 한국 침투를 막는 길

 

이슬람은 아랍뿐 아니라 전 세계에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신장성을 넘어서 서안까지 이슬람 사원이 세워져 있고

이슬람의 동진(東進)은 계속되어 이제 한국에도 다양한 형태로 침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최근 뉴스가 된 이슬람 신봉자들이 한국의 여성들과 결혼하고 이슬람을 강요하여 어렵게

된 경우와 서울대에 장학금지원, 큰 사회 문제가 된 모 방송의 '신의 길 인간의 길'지원등

다양한 형태로 이슬람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이슬람의 세계 전략과 한국 침투를 막고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할 것인지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걱정과 우려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1. 이슬람을 알자

 

우선 적을 알아야 대적을 분별하고 막을 수 있습니다.

이슬람이 신봉하는 교리와 그들이 믿는 신과 그들의 경전인 '꾸란', 마호멧과

무슬림(이슬람을 믿는 무리들)의 생활과 삶등을 면밀히 연구하고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라크 파슈툰 족에 대해서 면밀히 알고 단기선교를 준비하고 실행했다면 2007년 두 희생자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2. 이슬람의 전략을 알아야 한다

 

이슬람은 단지 종교 이상의 세력이 되었습니다.

특히 미국의 쌍동이 빌딩을 비행기로 무너뜨린 오사마 빈 라덴은 이슬람을 정치적인 힘으로

이용하여 미국과 미국을 지원하고 협력하는 모든 사람을 '''사탄'으로 규정, 성전(聖戰,지하드)에 나설 것을 이슬람과 아랍권에 촉구하며 세계를 이슬람대 기독교의 대결구도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탈레반은 그 하부 조직의 하나일 뿐이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자행되는 테러기술자 훈련과 전 세계에서 자행되는 자살폭탄 테러의 배후에 빈라덴과 그의 투사(전사)들이 수천명 대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그들을 평화적으로 이해하고 위험지역에 들어가 선한 활동을 한다는 것은 지극히 모험적인 일입니다.

 

이란과 미국은 오랜 동안 숙적으로 남아 있고 주요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과 인도네시아,그외 전세계의 무슬림국가들은 내심 미국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미국의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어린시절 무슬림 국가에서 자랐기에 다소 무슬림에 대한 경계심이 소홀할 수도 있고 자칫 평화공존의 무드로 흘러서 기독교 선교가 위축될 우려도 있습니다.

 

천주교와 이슬람의 화해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음녀와 같은 바벨론인 천주교 바티칸과 은밀히 진행되는 종교간 협상은 영적인 이스라엘인 교회와 교회의 선교를 위협하는 요인이 됩니다.

 

아울러 최근 한국의 김수환 추기경의 사망으로 착한 일을 하면 천국에 간다는 생각-공적신앙-이 개신교의 신앙과 교리에 위협을 주거나 교회의 잘못된 현상-교회 비대,돈 많은 목사,교회 아들에게 물려주기등-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져 개신교 선교의 위축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영적인 흐름 가운데 우리는 이슬람이 우리의 빈 마음과 방황을 엿보아 사탄처럼 치고 들어와 은혜를 잊고 하나님을 버리게 할 위험도 적지 않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울 힘써 자신을 지키고 십자가의 은혜를 묵상하며 시험을 이기고 목회자들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슬람의 선지자 마지막 선지자이고 마호멧이 받은 계시가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라 해도 우리가 전한 복음외에 다른 것을 전하면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1,6~8)는 바울의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그러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우선 개인이 신앙으로 더욱 무장해야 한다. 주님이 언제 오시든지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마음으로 항상 깨어있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유럽의 교회가 이미 박물관이 되어 버렸고 기독교를 반대하는 무신론을 선전하고 있는 영국, 예배당 건물이 술집과 스탠드바로 바뀌고 있는 스코틀랜드, 수많은 선진 서구에서 기독교 신앙은 화석화되었다. 미국에서도 동성애 안수등 예민한 문제에서 기독교 신앙은 퇴조하고 부시 대통령 8년 동안 복음주의 진영에 대한 날카로운 평가로 자유주의 진영에 정권이 넘어갔으므로 향후 미국은 상당히 진보적인 생각-낙태 찬성,동성애 허용등-들이 충돌할 가능성이 높으며 타 종교에 대한 관용을 내세워 다원주의와 종교간의 통합, 연합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때에 우리는 더욱 힘써 우리가 받은 기독교 신앙의 가치들을 지켜야 한다.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잊지 않고, 교회 생활에 더욱 힘쓰며,

새벽기도와 금식등을 통해서 날마다 거룩함에 이르고 전도와 사회 봉사를 통해서

불신자들과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교회적으로는 이슬람에 대한 연구와 세미나, 선교사를 초청한다든지 하여

이슬람의 내부와 세계 전력등에 대해서 강연을 듣고 경각심을 주는 방향으로 목회를 진행한다.

이 일에 대해서 교단이나 선교단체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중동선교회같은 단체들에서 발행하는 이슬람의 신앙 내용이나 현실들을 알아서 알리고 홍보하여

그 지역들에 선교사를 보내거나 단기선교등 활동을 하기 전에 충분한 숙고와 연구, 기도가 필요하다.

샘물교회가 당한 사건은 일차적으로 교회의 판단에 따라서 행동한 것이기에 개인적으로 대처할 문제만이 아니며 개인의 신앙과 순교는 때때로 공동체(가정,교회,국가)에 크나큰 영향을 주므로 영웅주의적 선교 접근은 지양해야 한다. 정확한 정보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기술을 가진 극악무도한 단체에 잡히면 협상도 불가능하며 오직 희생양이 될 뿐이다. 이 점에서 교회의 지도자(담임목사와 장로,선교담당목사)들은 청년들이 순수한 믿음을 이용해서 그들을 희생시켜서는 안된다.

 

교단과 선교단체는 이런 점들을 미리 알고 대처할 수 있는 국제적인 넷트웍을 가져야 한다. 전문적인 선교단체라도 현지 상황이나 사정을 현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나 의사, 국제적인 활동가들보다는 모를 수 있으므로 국내에서 계획했던 대형집회나 운동(movement)등도 현지의 사역자와 긴밀히 협의하고 실행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장기적인 대책은 역시 하나님의 이슬람에 대한 계획을 알고

계속해서 어떻게 선교를 효과적으로 할 것인가를 기도하면서 고민해야 할 것이다.

현대는 정보전쟁의 시대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퇴라는 말은 항상 맞는 말이다. 파슈툰 지역의 문화와 사람들의 생각, 극단적인 테러단체들의 동향과 계획을 미리 알았다면 우리는 그들이 쳐 놓은 그물에 걸리지 않도록 대처할 수 있었으며, 온 세계가 온 나라가 떠들썩한 일을 목도하지 않고도 은밀한 가운데 이슬람 지역을 선교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김바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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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스크(Naskh): 나중에 받은 계시에 의하여 먼저 받은 계시는 취소되었다

 

꾸란은 무함마드가 A.D. 610년부터 죽기까지 23년 동안 받았다는 내용이다. 꾸란 안에 같은 주제에 대하여 서로 다른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면 꾸란 2240절에 의하면 과부는 1년 이후에 재혼이 가능하다. 그런데 같은 꾸란에 남편이 죽으면 4개월 10일 이후에 재혼이 가능하다는 내용도 있다. “너희 중에 누가 죽어서 과부를 남기면 과부들은 재혼하기 전에 4개월 10일을 기다려야 한다. 그들이 이 정해진 기간을 지키면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을 너희는 비난하지 말 것이다(꾸란 2:234).” 그렇다면 남편이 죽고 언제 재혼이 가능하가? 이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나스크 교리가 생겼다. 꾸란에 기록된 계시는 바뀔 수 있으며, 계시가 바뀔 때는 나중에 받은 계시가 먼저 받은 계시를 취소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먼저 받은 계시는 이슬람 신학에 의하면 취소된 구절이 된다. 이에 대하여 꾸란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만일 우리(알라)가 원하였다면 우리가 너에게 계시한 것을 없앨 수 있다(꾸란 17:86).”, “우리가 어느 한 구절을 다른 구절로 대체할 때 알라는 그가 보내는 것을 더 잘 알고 있다(꾸란 16:101).”

 

그래서 꾸란은 메카에서 12년 동안 받은 메카 계시,

그 이후에 메디나에서 10년 동안 받은 메디나 계시로 나뉜다.

메카에서는 무함마드가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서 종교에는 강요가 없나니(꾸란 2:256)”

종교는 강요되어서는 안 되고 자유가 보장되었다.

그런데 이 내용이 메디나로 오면서 바뀌게 된다.

메디나로 온 무함마드는 27개월이 지난 후부터는 칼을 들게 된다.

그리고 메카로 가는 대상들을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종교에 강요가 없다던 평화의 계시칼의 계시로 바뀌었다.

 

이교도를 발견하는 대로 살해하라(꾸란 9:5)”,

불신자를 만나거든 목을 쳐라(꾸란 8:12)”

따라서 평화에 관한 계시는 나중에 받은 칼의 계시에 의하여 취소되는 것이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메카에서는 종교의 다름을 인정하였고, 평화를 이루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무슬림은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주장했다(꾸란 29:46).

그러나 메디나에 오면서 다음과 같은 구절로 바뀐다.

 

알라와 내세를 믿지 아니하며 알라와 메신저가 금기한 것을 지키지 아니하고

진리의 종교를 따르지 아니한 자들에게

비록 그들이 성서의 백성이라고 하더라도 항복하여

지즈야를 지불할 때까지 지하드를 하라

그들이 스스로 저주스러움을 느끼리라(꾸란 9:29)”

 

소동이 없어질 때까지 그리고 종교가 알라에게로 귀의할 때까지

그들과 싸움을 계속하라(꾸란 8:39)”

이 구절들에 의하여 기독교인과 유대인에 대한 태도가 바뀐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바뀌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바뀌지 않기 때문에 진리인 것이다.

그런데 이슬람의 진리인 꾸란의 계시는 상황에 따라 계속 바뀌어 갔다.

 

이슬람 초기에 무함마드가 사탄의 계시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것은 메카의 쿠라이시 부족과 타협하기 위하여,

메카의 부족신이였던 알라에게 세 명의 딸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계시였다.

그러나 그 계시가 돌연 취소되었다.

무함마드 자신이 사탄의 계시를 받았기에

알라에게 혼이 나고 그 계시가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가지고 인도계 영국 작가였던 살만 루시디(Salman Rushidy)

악마의 시(Satanic Verses)’라는 책을 썼는데,

인하여 무슬림들에게 20년 이상 살해의 위협 속에 지내게 되었다.

또 그 책을 번역한 사람들이 일본과 이탈리아에서 암살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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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끼야(Taqiyya): 위장 혹은 기만전략

 

이슬람에는 많은 교파가 존재한다. 그러나 크게 두 교파가 있는데 수니파와 시아파이다. 본래 이 교리는 시아파에서 기만을 의미하는 이함(Iham)이라는 교리인데, 수니파에서도 타끼야라는 교리로 받아들였다. 타끼야라는 아랍어에는 거짓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슬람의 도덕적 딜레마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거짓말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너희의 맹세 속에 비의도적인 것에 대하여는 책망하시지 아니하나 너희 심중에 있는 의도적 맹세는 책망하시느니라 알라는 관용과 은혜로 충만하심이라(꾸란 2:225)” 이 내용은 이슬람 초창기에 이슬람을 반대하는 메카의 쿠라시쉬(Quraish) 부족에게 잡힌 무슬림이, 이슬람을 믿지 않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풀려나서 무함마드에게 와서 고백했을 때 받은 계시이다.

무함마드의 언행록(Hadith)에 의하면 세 가지의 경우에는 거짓말이 허용된다. \첫째,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하는 거짓말,

둘째, 평화 또는 화해에 영향을 끼치기 위하여 하는 거짓말,

셋째, 여성을 설득하기 위하여 하는 거짓말이다.

윌리엄 와그너가 지은 이슬람 세계 변화 전략은 이슬람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두 가지 거짓말을 추가한다.

여행 중에 하는 거짓말, 즉 무함마드 당시 모든 여행은 상업적인 여행이었다.

따라서 아랍 상인들이 상업을 위하여 하는 거짓말,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이슬람으로 개종시키기 위하여 하는 거짓말이 포함되어 있다.

 

2. 타하리프(Tahrif): 성경은 변질되었다

 

이슬람에는 성경이 변질되었다는 교리가 있다. 구약은 유대인들에 의하여, 신약은 기독교인들로 인하여 변질되었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변질된 성경을 읽어서는 안 되고, 변질된 내용 가운데 꼭 필요한 부분은 꾸란에 올바르게 정리되어 기록되어 있다고 가르친다.

   

성경이 변질되었다고 주장하는 핵심을 세 가지로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꾸란에는 무함마드라는 예언자가 올 것이라고 예수님이 예언했는데, 지금 성경에는 그 내용이 없다. 둘째, 꾸란에는 예수님에게 신성이 없다고 가르치는데, 성경에는 예수님의 신성이 기록되어 있다. 셋째, 꾸란에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내용이 없는데, 성경에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사건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성경은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성경의 원본에는 꾸란과 일치되는 내용들이 있었지만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타락하여 그 내용을 변질시켰기 때문에, 알라께서 하늘에 있는 원본인 꾸란을 무함마드를 통하여 직접 계시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슬람에서 주장하듯이 정말 성경은 변질되었을까? 만일 성경이 변질되었다면 성경이 변질되었다는 내용이 꾸란에 있어야 한다. 꾸란에는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이 타락했다는 기록은 있어도, 성경이 변질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꾸란에는 계시에 의심이 생기면 성서의 백성들에게 물어 보라고 말하고 있다(꾸란 10:94). 꾸란에는 꾸란 이전에 계시된 모세와 예언자들에게 내린 율법을 믿으라고 기록되어 있다. 무함마드 이전에 성경이 변질되었다는 내용이 꾸란에 없는데, 언제 변질되었다는 것일까?

 

성경은 변질되지 않았다. 구약성경은 A.D. 90년에 팔레스타인의 얌니아 종교회의를 통하여 확정되었다고 하지만, 이미 B.C. 400년경 말라기서가 기록된 이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되었으며 수백 년 동안 유대인들에 의하여 사용되었다. 무엇보다도 구약의 권위를 예수님께서 인정하셨다(4:4; 14:27). 기독교에서도 구약 39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여 사용했다. 신약성경은 최종적으로 A.D. 397년 기독교 3차 카르타고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 무함마드가 태어나기 200여 년 전까지, 성경은 이미 오늘날 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경전으로 확정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1947년 이스라엘의 사해 근처에 있는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본은 늦어도 A.D. 1세기에 만들어진 것임에도, 오늘날과 동일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꾸란은 무슬림들이 성경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믿는 자들이여 알라와 선지자 그리고 선지자에게 계시된 성서와 너희 이전에 계시된 성서를 믿으라 했거늘 알라와 천사들과 성서들과 선지자들과 내세를 부정하는 자 있다면 그는 크게 방황하리라(꾸란 4: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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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이슬람교,

                                         한국이슬람교중앙회

슬람은 한국 역사에서 생소한 종교였다.

그러나 역사적 흔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통일신라 시대의 원성왕(8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괘릉 옆에 무인석상이 서 있다.

무인석상은 곱슬머리와 곱슬 수염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머리에는 무슬림의 전통 복장인 터번을 쓰고 있다.

그 모습은 중동이나 중앙아시아인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신라의 스님 혜초가 727년에 쓴 왕오천축국전에 의하면,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를 방문한 기록을 볼 수 있다.

 

이를 토대로 볼 때 통일신라 시대에 이미 중동 사람이나 중앙아시아인들과 교류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고려 시대에도 수도인 개경(오늘날의 개성)에 이슬람 사원 격인 예궁(禮宮)이 있었으며,

정기적으로 이슬람 예배가 진행되었다.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역법에는 이슬람력(Islamic calendar)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또한 조선 세조 때에는 투르크-페르시아계 무슬림 거주 지역에서 수출하는 도자기 안료인 회청이 수입되었다.

그러나 이슬람은 한국 사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일부는 한국 문화 속에 동화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당시 터키 출신 이맘 두 명이 병사들과 함께 건너와 청진학교를 세우고, 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에 교육으로 이슬람을 소개했다. 이들의 노력 덕에 2년 후 한국인 두 명이 무슬림이 되었다. 1955년 이 개종자를 필두로 현재 한국인 무슬림은 5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인 무슬림은 무슬림 국가의 재정 원조를 힘입어, 첫 모스크 서울중앙성원(Seoul Central Masjid)을 이태원에 세웠다. 현재 한국 전역에 모스크 10개와 기도처 40개가 있다.


한국인 무슬림이 점차 늘어나자 사회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전체 통계는 분명하지 않지만, 최근 들어 계속 늘고 있다. 게다가 외국인 출신의 무슬림이 한국에 더 들어오고 있다. 2007년까지 한국으로 들어온 외국인 무슬림은 110,000명이었다.
이슬람과 이슬람 문화에 대한 한국인의 이해가 부족하여, 공장이나 학교에서 무슬림이 차별을 당하기도 한다. 한국에 살면서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거의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한 예로 한국 정부의 아시아 프로그램 연수생으로 한국에 온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무슬림 노동자는 불행히도 연수 훈련지를 돼지 사육 농장으로 배정받았다. 한국 측에서 사육용 돼지를 키우는 일이 무슬림에게는 금지돼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계속적으로 이슬람이 다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약 2만 명의 산업연수생이 한국에 들어오면서부터다.

그 때부터 무슬림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현재 한국에는 무슬림이 약 25만 명, 비공식적으로는 약 40만 명에 달한다.

이제 이슬람은 한국에서도 중요한 종교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미래학자 최윤식 박사는 2050년에는 한국의 이슬람 인구가 300-400만 명이 될 것이며,

이슬람은 불교, 천주교에 이어서 3번째 큰 종교가 되고 기독교는 그 뒤를 이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따라서 이제는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과거 중동이 비잔틴 기독교 제국이었지만 지금은 이슬람 국가들로 바뀌었고,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유럽이 이슬람화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이제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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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두 얼굴

 

그런데, 그들의 말처럼 정말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이며, 폭력을 일삼는 극렬 원리주의자들은 정말 소수의 테러분자들일 뿐인가? 그들의 주장처럼 이슬람이 정말 그 정도이기만 하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하지만 이슬람은 두 얼굴을 가지고 둘 중의 어느 한 쪽을 편의에 따라 선택하여 사용하는 변신에 능한 이들임을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다. 심지어 많은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이슬람은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이며, 테러를 자행하는 극렬 원리주의자들은 소수일 뿐이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온건한 이들이며 우리와 같은 선한 이웃일 뿐이다는 주장들을 당연하듯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바로 이 점이야 말로 이슬람 전략가들이 가장 노리는 전략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이슬람은 평화를 의미하며 따러서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이다라고 말하길 좋아한다. 하지만 이슬람'평화의 뜻이라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거짓이다. ‘평회를 의미하는 아랍어 단어는 쌀람’(히브리어의 샬롬)이며, ‘이슬람은 단순히 복종’(submission)을 의미할 뿐이다. 이슬람은 알라의 뜻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사람들(무슬림)로 구성된 종교요, 그 종교의 경전인 꾸란(Quran)은 최소한 다음과 같이 무슬림들에게 명령한다.

 

박해가 없어질 때까지, 종교가 알라의 것이 될 때까지 그들과 싸워라”(꾸란 2:193)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이슬람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이 세계를 평화의 집(Dar Es-Esalam. 다르에 쌀람)’ 전쟁의 집(Dar Al - Harb. 다르 알 하릅)’ 으로 이분한다는 사실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여타의 종교들을 물리치고 그들이 꿈꾸는 이상적 이슬람 공동체(움마)를 이루어 이슬람의 율법(샤리아)으로 다스림 받는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전쟁은 불가피하다는 세계관인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땅에 이슬람이 아닌 다른 종교들이 공존하는 현실을 가장 견디지 못하는 종교가 바로 이슬람인 것이다.

 

흔히 꾸란이냐 칼이냐?” 라는 문구로 이슬람을 이해하던 과거의 표현을 두고 무슬림들은 이슬람은 그렇지 않다. 평화의 종교인 이슬람에 대한 서구 기독교인들의 극단적인 편견이 담긴 표현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표현이야 말로 이슬람의 실체에 대해 가장 짧은 표현으로 그 이중성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말이다.

 

이슬람의 실체는 과거나 지금이나 그 근본에 있어서 변함이 없으며, 그 전략에 있어서도 옛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가 있다면 대신 총과 폭탄과 같은 현대식 무기로의 무장이라 하겠다.

 

이슬람은 처음부터 로 세계를 정복해왔고 여전히 을 휘두르며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이슬람에선 아무리 아니라하지만 이슬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만 봐도 알 수 있다.

녹색바탕 위에 선명하게 보이는 아랍어 글씨와 그 아래에 놓인 긴 칼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알라 외에는 다른 신이 없고,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이다!’ 하는 그들의 신앙고백이요,

그 신앙고백의 기초에는 엄연히 긴 이 놓여 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거기에는 그 고백과 함께 다른 상징은 아닌가?

 

하지만 그것이 굳이 평화를 위한 이라고 우긴다면,

평화모든 이교도와의 전쟁을 그치고 난 후의 평화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슬람은 알라의 이름으로’ (비스밀라) 이 땅에 이교도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성전(聖戰. 지하드)해야 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온 세계가 이슬람 율법이 다스리는 이슬람 세계가 오기 전까지

 전쟁은 쉼이 없다는 의미인 것이다.

오늘날 세계 속에서 테러소식이 가장 많은 나라들을 꼽아보라.

모두 이슬람이 국교이거나 절대 다수인 국가들이다.

왜 그럴까?

 

 경전을 통한 판단과 분별

 

아무리 무슬림들이 이슬람을 평화로 포장하여 소개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절대적이고 규범적인 권위의 원천인 꾸란)코란)의 진술을 부정할 수는 없다. 꾸란에는 수많은 구절들이 무슬림들을 독려하면서 알라를 위해 투쟁(지하드)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여기에 몇 구절만 소개해 본다.

 

알라를 위하여 당신을 적대시 하는 자와 싸워라”(꾸란 2:190, 이하 김용선 번역본)

 

박해가 없어질 때까지, 종교가 알라의 것이 될 때까지 그들과 싸워라”(2:193)

 

알라와 그 사도에 싸움을 걸고 지상에 해악을 뿌리려 하는 자가 받는 벌은 살해되든가 십자가서 박히든가 손발을 반대쪽부터 절단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국외로 추방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현세에서 받는 그들의 굴욕이며 내세에서도 그들에게는 무서운 벌이기다리고 있다 “ ( 5:33)

 

그런데 신성월이 지났으면, 다신교도를 발견하는 즉시 죽여라. 잡아라 억류하라, 모든 길에 복병을 두고 기다리라. 그러나 만일 그들이 회개하여 예배를 지키고 희사를 한다면 방면해 주라, 알라께서는 관용하시고 자비로운 분이시다“ (9:5)

 

어떤 이들의 반박과 같이 기독교 역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살상과 전쟁들을 일으켜 온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그것을 경전을 통해 신의 이름으로 명시적으로 명령하는 것과, 원수마저 사랑하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칼을 든 것은 현실적으로 큰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어쨌든 이 명령들이 실제로 오늘날 무슬림들에 의해 수행된다고 가정해 보라. 세계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 구절들에만 의거해 보더라도 오늘날 테러행위를 서슴지 않는 극렬 무슬림들을 가리켜 어찌 소수의 극렬 윈리주의자라고 비난하겠는가? 오히려 무슬림들은 이러한 꾸란의 명령을 문자 그대로 수행하는 전사들에게 환호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땅에 사는 모든 무슬림들이 이러한 꾸란의 명령들을 문자적으로 실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정말 다행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마치 수 많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땅 끝까지 이르러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는 복음서의 지상명령을 끊임없이 읽고 또 듣고 살아가고 있음에도, 그렇게 심각하게 문자적으로 그 명령따라 살아가지 않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 그 명령을 발하신지 2천년이 되도록 그 명령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과업으로 남아 있는 것처럼,

꾸란을 읽는 수많은 무슬림들 역시 위에 명시한 구절들을 무자적으로 수행하지 않은 결과 그나마 세계는 이만큼이나 유지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아무리 주위에는 온건한 무슬림들이 많이 있다고 하지만,

이같은 알라의 절대적 명령들이 무슬림들의 가슴에 끊임없이 각인되는 한,

어느 날 예기치 않는 때에 그들은 오늘날의 테러분자들로 돌변하여 나타날 가능성들을 안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마치 수많은 기독청년들이 자아실현을 꿈꾸며 자기만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예수님의 제자 삼으라는 지상명령에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슬람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는, 그것이 단순한 도를 전하고 생명을 전하는선교가 아니라, 알라의 이름을 위해서는 테러와 피흘림도 불사한다는데 있다. 기독교의 선교 명령이 준행되는 곳이면 어디든지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자연스런 열매인 반면, 이슬람의 지하드가 수행되는 곳이면 어디든지 생명을 멸하고 파괴와 죽음이 열매로 맺어 나오는 현실이라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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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권의 결혼관과 여성관

 

"이슬람권의 가치관을 보려면 코란과 무함마드의 언행록을 살펴야 한다"고 했다. "무함마드가 다른 무슬림들에게는 4명까지 허용된 아내를 16명씩 거느렸던 이유를 이슬람학자들은 서로간의 사랑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혹은 다른 목적 때문에 결혼을 했다고 설명한다""이를 통해 이슬람의 결혼은 일부다처이며 그 결혼 동기는 서로간의 인격적 사랑이 아니라 어떤 다른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무함마드의 경우를 모델로 하여 무슬림들이 따라 배우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한국에 온 무슬림들이 한국의 국적 취득을 위해 한국 여성들의 일생을 망쳐가면서 그들의 육체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이슬람의 문화에서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자연스러운 것이라""한국 여성들이 이것을 몰랐기에 이용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또한  "여인은 그 남편에게 절대 복종을 해야 한다. 만일 복종하지 않을 경우에는 세 가지 조치가 취해지는데, 먼저 타이르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동침하는 권리를 박탈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매질을 하라고 되어 있다"며 이슬람 법을 설명했다.

 

이슬람에서 아내를 매질할 수 있는 경우를 다음과 같이 4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반항할 우려가 있는 아내에게는 먼저 말로 타이르고 그래도 안 들으면(여러 부인들 중에서 그녀만) 잠자리에서 제외시키고 그래도 안들으면 가볍게 때려라"(꾸란 434)

 

한국어 꾸란에는 "가볍게 때려라"라고 미화를 시켰는데 영문 번역에는 "beat"로 돼 있습니다. "때리라는 것 입니다.

"잘못을 인정할 때까지 뼈가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죽도록 때리라는 것입니다.

 

1) 남편이 원치 않는 복장을 했을 때

2) 합법적인 이유 없이 남편의 동침 요구를 거절했을 때

3) 기도하기 위해서 부정한 몸을 씻으라고 하는데 거절했을 때

4) 남편의 허락 없이 외출했을 때

 

출처 : 이만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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