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무슬림 ?

Muslim이란 '복종하는 자', '이슬람에 자신을 봉헌하는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한편 Islam'승인하다', '복종하다', '자신을 봉헌하다'는 동사의 부정형에서 파생한 명사로 순종, 복종을 의미한다. 무슬림들은 쿠란을 최종 계시로 인정하고 있으며, 이슬람 종교사의 자료는 Hadith(전승집), 예언자의 전기로 구성된다.

 

무함메드 이전의 아랍 종교

 

인종과 경제적 상황

아랍인은 셈어를 사용하는 족속이 다수이지만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무함메드 당시에 도망해온 유대인들이 아라비아 서부에 자유롭게 거주하고 있었으며, 대상들의 교역로가 발전하고 있었다.

 

종교적 상황

이슬람 이전의 아라비아 종교는 원시 셈족의 사막 신앙에서 발전했다. 남부 아라비아는 바빌로니아 종교와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아 月神을 중심으로 한 종교의식을 거행했다. 대부분의 아랍인들은 지방신을 숭배했고, 멕카에서는 거의 구분되지 않는 세 여신 숭배가 있었다. 그 신들은 母神 -라트 al-Lat, 운명의 여신 알-마나트 al-Manat, 비너스의 배우자이며 새벽별을 상징하는 알-우즈자 al-Uzza, 이들 모두는 알라의 딸들로 믿어졌다. Allah는 창조자, 지고신으로, 무함메드의 부족 Quraysh가 숭배한 신이다. 이들은 상위신 외에 천사와 여러종류의 靈魔 jinn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천사들은 도덕적으로 완전하고 유익한 존재로 여겨졌고, 영마는 아담보다 2천년 먼저 창조되어 대부분 악의 근원으로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아라비아 전역, 특히 베드윈족 사이에서는 자연 숭배가 보편적이었다.

 

멕카 Mecca

가장 성스러운 신전 중 하나인 Kaba가 있는 곳이었다. 이 안에 있는 거대한 운석이 숭배의 대상이다. 카바 근처의 성스러운 우물 Zamzam(하갈과 이스마엘에 이곳에 왔다는 전설)도 숭배의 대상으로 소순례 Lesser Pilgrimage가 행해졌다. 카바 안에는 일종의 판테온이 구성되어 있었다. 주요 순례지로 멕카가 자리잡고 있었고, 또한 부족간 갈등의 정점이기도 했다.

 

 

예언자 무함메드

 

대략 571년 쿠라이쉬 부족 하심가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출생 이전, 어머니는 6살 때 사망했다. 그후 조부 아브드--무타립 Abd-al-Muttalib과 삼촌 아부 타립 Abu Talib 밑에서 어려운 성장기를 거쳤다. 후발과 알-우즈자를 숭배했고, 영마, 사탄, 길조와 흉조 등을 믿는 아리비아 신앙에 회의를 가졌다. 그의 종교적 변화는 유대교, 기독교의 신관념, 심판, 종교적 삶의 영향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친지 WaraqaUmaiya는 유대교와 기독교에 심취했다. 기독교에 대한 정보는 주로 네스토리우스파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인이 되어서는 15세 연상의 하디자와 결혼 2,3명의 아들 낳았으나 모두 어려서 죽고, 네 딸 중 오직 파티마 Fatima만이 그보다 오래 살았다. 그는 정신적 시련을 거치면서 기독교의 신관과 심판 관념등에 동요했다. 40세깨 메카 주변을 방황하며 명상했다.

 

예언자의 소명

멕카 북쪽 수 마일 떨어진 히라 Hira 산의 동굴에서 명상을 하다가 "권능과 명증의 밤"이라고 부르는 날 신의 사자인 천사로부터 계시를 받았다. 환상이 끝난 후 계시의 전체를 재현했다. 그러나 반신반의하며 고민하여 수개월에 걸쳐 체험을 회의하다 스스로가 알라의 진정한 예언자 nabi 이며 사도 rasul 임을 자각했다.

 

초기활동

설교의 기본 내용은 육체의 부활과 지옥의 불에 대한 예언이었다. 초기계시에서는 신의 단일성보다는 신의 권능과 최후 심판에 대한 언급이 주종을 이루었다. 신이 복수로 나타나기도 했다. 쿠라이쉬 부족 사람들은 신의 단일성에 대해서는 반발하지 않았으나, 무함메드가 예언자라는 주장에는 반발했다. 예언자라면 부족 전체의 지도자를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회정의와 가난한 자에 대한 의무를 강조했다. 추종자들은 소수(초기 4년 동안 불과 40여명)였다. 첫 추종자는 하디자, 양자가 된 노예출신 소년 자이드, 아부 탈립의 아들 알리, 상인 아부 바크르 Abu Bakr얐다. 유일신 교리는 메카의 주된 수입원(순례객)을 위협하는 것이므로 반발을 초래했다. 무함메드의 활동에 대한 부족의 반대자들의 방해가 극심했다. 그는 아부 탈립 사망후 이주 계획를 세웠다. 이주 Hijra6226월에 야트립으로 이주하면서 이루어졌다.

 

메디나의 신정정치

 

야트립으로 이주 후 도시의 통치권 장악 후 마디나트 안-나비(줄여서 메디나, 예언자의 도시)로 개명했다. mosque를 건설했고, 단순하고 새로운 의식을 만들어냈다. 멕카의 대상 공격으로 멕카와 공방전 후 6301월 멕카를 정복했다. 그후 무함메드는 카바 신전의 개혁을 단행해 우상을 파괴하고, 아브라함과 천사들의 그림도 파괴했으며, Zamzam을 정화했다. 이를 통해 그는 아라비아에 대한 정치적, 종교적 지배권을 확보했다.

 

생의 후반기에는 계시의 운문 형식은 줄고 종말론적 경고는 의례나 제도적 문제에 대한 가르침으로 대체되었다. 무슬림들의 삶의 모든 분야를 종교에 의해 규정했다. 비스밀라 "하나님의 이름으로"라는 말로 모든 행위를 시작했고, 하느님 앞에 직접 서므로, 중재자 역할 하는 사제 계급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무함메드는 632년 갑자기 사망하게 된다. 그는 죽기 직전 설교에서 "모든 무슬림은 모든 무슬림과 형제"임을 천명했고, 죽기 전 아부 바크르를 칼리프 caliph(계승자)로 선출했다.

 

이슬람의 신앙과 의식

 

무함메드의 가르침은 그의 사후 이슬람의 신앙 iman 의식, 또는 의무 din의 토대가 되었다. 신앙보다는 의식의 많은 부분이 정형화되는 과정에서 후대의 변화와 영향이 많았다.

 

쿠란과 그 가르침

쿠란은 이슬람의 근본, 낭송, 복창이라는 뜻을 가진 것으로 하느님의 말씀 그 자체를 의미한다. 쿠란은 하늘나라에 보존되어 있는 서판에 담긴 쿠란의 원본이 드러난 것이다. 오직 정결한 자만이 만지거나 낭송할 수 있다. 무슬림들에게 쿠란은 하느님의 말씀 자체이므로 번역할 수 없는 일이다. 번역하는 경우도 단지 그 책의 의미에 대한 설명, 즉 여러 가지 의미의 해석 중 하나일 따름이다. 쿠란의 문체는 모방이 불가능하다고 믿었고, 이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한다고 여겨졌다. 또한 문장의 배열이나 문자 하나하나의 배치에 있어서조차 신성하고도 불가사의한 신비가 숨겨져 있다고 믿었다.

 

쿠란의 편집은 우스만 시절에 이루어졌는데, 시대순이 아니라 길이순으로 편집되었다. 심판을 강조하는 초기의 단편적 계시가 뒷부분에 수록되었다. 단지 하나의 짧은 기도문만이 일종의 서문으로 채택되어 맨 앞에 배치되었다. 그것은 파티하(開章)로 그리스도교의 주기도문처럼 사용되었다. 114개의 수라에는 소, , 질주자 등 각각 짧은 표제가 붙어 있다. 예를 들어 수라 112는 하느님의 유일성을 주제로 하고, 악으로부터의 보호를 구하는 두 개의 짧은 기도문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어떤 수라, 또는 단 한 개의 소절이라도 낭송하려면 먼저 저주받은 사탄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주문과 바스말라를 낭송했다. 바스말라는 "비스밀라힐-라흐마닐-라힘"(자비롭고 자애로운 하느님의 이름으로)으로, 수라 9를 제외한 모든 수라 앞에 놓여 있는 말이다. 우르드어로 비스밀라 카르나는 단순히 '시작하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터키어로 하디 비스밀라는 '시작하자' 라는 의미이다.

 

어떤 수라는 각별한 영험(바라카)가 있다고 여겨졌다. 예를 들면 수라 36(야신)은 죽어가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을 위해 낭송된 것이다. 각각의 쿠란 구절은 아야트(징표,기적)라고 불렸다. 쿠란에 나오는 인간 존재의 위상은 영들이나 천사보다도 우월한 존재였다. 하느님이 '당신의 숨결로부터' 생명의 입김을 아담에게 불어넣었고, 그릴 자신의 대리자(할리파)로 삼고자 했고, 천서들로 하여금 그에게 절을 올리도록 명했다고 한다. 한편 쿠란은 원죄를 부정한다. 인류 최초의 죄는 유전되지 않았고,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하나 환경의 영향으로 변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쿠란은 인간과 하느님의 절대적 유대관계를 강조했다. 하느님이 아담의 자녀들을 영예롭게 하고(수라 17/70), 아마나(신탁)를 맡겼다는 것이 그것이다. 한편 쿠란의 세상에 대한 이해는 하느님이 지평선 안(즉 이 세상)과 자신들 속에 놓아둔 징표를 보며 숙고해야 한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기 수라(메디나에서 계시된 수라)에는 세상사, 일상사, 정치적 문제에 대한 상당한 양의 가르침을 포함했다.

 

언어의 숭고함을 강조했기 때문에 아랍어 이외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에 대한 경시가 있었다. 이 쿠란은 영창조로 낭송되었다. 암송자 암송자 하피즈(모두 암기하고 있는 사람)는 존경받음

 

쿠란의 해석

무함마드 사후 몇 세대 동안은 무슬림들 대부분은 쿠란에 대해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완전히 일치하는 해석은 없었다. 다앙햔 해석의 사실 자체가 쿠란의 초자연적 성격을 증거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느님 자신과 마찬가지로 말씀도 무한한 것이었다.

 

주석 작업은 타바리(935 사망)30권 주석서가 최초의 역작이다. 쟈마흐샤리(1146 사망)는 유명한 주석서를 무타질라파 입장에서 저술했다. 13세기 바이다위 주석서, 15세기 말 잘랄루딘 앗-슈우티 주석서, 19세기 오스만 터키의 엘말리 주석서 널리 사용했다.

 

신비가들은 의미의 참된 핵심에 이르기 위해서는 문자의 장막을 뚫고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장했다. 이러한 노력은 단어의 어근을 캐고 각 표현을 관련지어 보고하는 것이 거의 무한하게 가능한 아랍어의 특성으로 대단히 용이했다.

 

쉬아파, 특히 바티니야 파는 쿠란의 비의적 의미를 강조했다. 쿠란을 읽거나 낭송하는 것은 하느님과의 직접 대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여겨졌다. 하느님은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쿠란 읽는 행위 자체가 성례였다.

 

중세에는 신비수리학적 해석술이 발달했다. 일련의 문자로부터 그 數理値나 조합을 구해 심오한 의미 찾으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그런 목적으로 사용하는 필사본이 다소 후기에 만들어진 것임을 간과했다.

 

현대적 해석으로는 무스타파 알-마자라기의 "어떤 명백한 진리가 계시된 문장과 양립할 경우, 그 문장을 비유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관점, 사이트 아흐마드 칸(1898 사망)의 자연에 드러난 하느님의 役事는 쿠란에 계시된 하느님의 말씀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관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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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선교전략4-코란의 주제(2)

 

종교는 무함맏과 꾸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며, 사실상 종교에 대한 주제는 꾸란의 알파이며 오메가라고 할 수 있다

 

(수라26-28)...단지 알라 자신이 원하고 동의한 사람들을 위해 의도한 후에만 (그 중보가 유익이 있다.) 실제로 종말에 믿지 않은 사람들은 천사들을 부인들 이름(여성)으로 말할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서는 이에 대한 어떤 지식도 없다. 그들은 단지 속임과 추측을 따르는 자들일 뿐이다. 분명히 속임은 결코 진실을 대신할 수 없다.”수라 37:149-162 “이제 (무함맏 메카의 불신자들에게) 물어보라, 딸들(즉 그들의 꾸며낸 것에 따르면 천사들이 알라의 딸들인 것 같다<꾸란에 쓰여진 것>.)이 너희 창조자의 것이고, 아들들이 그들의 것이란 말이냐? 아니면 우리가 천사들을그들죄가되는경우에도딸삼아만들었단말이냐? 조심하라! 그들은 거짓말쟁이들이기 때문에알라의 자녀(또는 딸들)이 있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의심없이 거짓말쟁이들이다. (알라가) 아들들을 두고, 딸들을 선택할 것 같으냐! 어떻게 판단하느냐? 결국 기억 못하지 않느냐? 또는 너희들을 위해 (알라가 자녀를 둔 것에 대해) 어떤 분명한 증서가 있느냐? 그렇다. 만일 참으로 있다면 너희 책들을 가져와 보라 (이방인들이 알라와)함께 진들 (또는 천사들) 사이에 족보 (또는 어머니-자녀:모자지간 있다고 꾸밈) 만들었다. 그러나 진들 즉 천사들은 이제 만들어진 자인 것들을 분명히 알고 있다. 알라는 그들의 속성보다 깨끗하다. 오직 알라의 단정한 사람들만 (변함없는 알라를 그 분에게 합당하지 않은 속성으로부터 깨끗하게 붙든다.) (오 메카족속들아!) 의심 없이 너희들도, 너희의 숭배하는 우상들도, (한 사람을 알라에게) 대항하여 음모를 꾸미는 자, 거짓말할 줄 아는 자 아니다……

 

위의 모든 구절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무함맏은 유일신을 주창하기 위하여 카바 신전의 모든 알라의 딸들과 아들들로 여겨졌던 우상들을 배격해야 했다. 그 천사들,즉 우상들이 알라의 중보자 역할을 했던 것도 분명하다. 꾸란에서 여러 번 언급된 알라의 아들들, 딸들이 부정되는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존재가 아랍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무함맏이 이슬람 이전의 아랍인들의 우상 숭배를 배격하고 알라를 유일신으로 추앙하는데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암시해 준다. 알라는 결코 혼자 존재하는 신이 아니었다.

 

이제 무함맏은 종교에 대한 체계들을 하나 하나 세워 나갔다. 무함맏이 만든 종교적인 체계는 철저하게 유대교와 기독교를 모방한 것이다.

 

당시의 기독교인들은 믿음을 중요시하고 정의했다. 그러나 무함맏은 믿음에 대한 정의를 복종이라고 정의하였다. 복종은 이슬람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다. 복종하는 종교가 이슬람이고, 복종하는 자들이 신자들이며, 복종하는 자들이 낙원에 들어간다. 반대로 복종하지 않는 자들은 불신자들이며, 지옥에 들어가는 자들이다. 수라 49:14 “아랍인들이믿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오 무함맏 그들에게) 말하라! ‘너희들은 믿은 것이 아니다. 너희들은 복종했습니다라고 말하라! (왜냐하면 아직도)너희가 믿음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만일 너희들이 알라와 그의 선지자에게 복종을 한다면, 그 분이 너희들에게 (행한 선한) 일들 중에서 하나도 적게 하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에 회개와 세례 의식이 있었던 것처럼, 알라에게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기 위해 몸을 정결하게 씻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심지어 이전의 아랍 우상 숭배자들에게도 정결하게 하는 의식이 있었는데, 더 완벽하다는 종교에 정결의식이 없으면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수라 5:6무슬림들이 기도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 얼굴과 손을 팔꿈치까지 씻고, 머리를 물로 문지르고, 다리를 무릎까지 씻고,몸이 의식에 깨끗하지 않다면 목욕하라. 만일 아프거나 여행 중에 있거나 여자를 접촉했거나 물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깨끗한 모래나 흙을 취해서 얼굴과 손에 문질러라 라고 지시한다.

 

당시의 유대인들이 할례를 행하는 것을 중요시 여겼는데, 무함맏은 이슬람 신앙의 기초가 없기 때문에 그 역사의 기초를 아브라함에게서 도용하고, 모세 오경에 예언된 그 선지자를 자신으로 적용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할례와 제사 의식을 중요하게 여겨 그 의미는 전혀 모르면서도 표면적인 의식만 도용하여 사용하였다.

 

유대인들은 과거 성전이 있었던 방향을 향해 기도하는 습관이 있고, 기독교인들은 기도하는 습관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무함맏은 그들보다도 더 많고 엄격한 다섯번의 나머즈 시간을 정해 놓고, 다른 종교보다 형식적인 우위를 보이려고 경쟁하였다. 수라 98:1-5에서 세상에서 가장 올바른 책은 꾸란이고, 이슬람 종교가 올바른 길인데, 그 이유는 그들은 단지 유일한 알라에게, 그 분을 위해 종교를 지키고,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예배하고, 나머즈를 완전히 준수할 뿐만 아니라 구제를 준수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알라를 위해 종교를 지키고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예배하고 나머즈를 준수한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슬람 종교는 알라 숭배, 성지순례, 금식, 나머즈 등과 같은 대부분의 아랍의 종교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우상숭배를 타파하고, 추가로 구제, 아랍 방식의 정결의식, 세금, 결혼 및 이혼 절차에 대한 의식, 지하드 등과 같은 종교 규범을 추가시켰다.

 

무함맏이 이슬람 종교를 만들고 아랍의 우상숭배자들에게 선포했을 때, 소수의 가난하고 소외받았던 사람들을 제외한 아랍인들은 당연히 무함맏을 믿지 않았다. 수라11:26-31절까지 무함맏이 자기 종족 아랍인들을 설득하는 장면이 나온다. “‘너희들은 유일한 알라에게 예배하라! (만일 유일한 알라 외에 다른 어떤 것을 숭배하면), 너희들의 위에 고통스러운 고난의 날이 (올 것을) 나는 두려워한다.’ 그 때 그의 종족 중에 있는 불신자 어떤 사람이 우리들은 너를 우리들과 똑 같은 사람이라고 알고 있고, 너에게는 단지 우리 안에 있는 낮은 사람 <천한 사람들만> 생각 없이 따르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오 나의 종족이여, 소식을 주라! 만일 내가 창조주 편에서 온 분명한 문서를 소유한다면, 그리고 그분이 나에게 자기왕궁에서 은사-선지자직을 주었다면, 그러나 이것이 너희들에게 은밀하게 되었다면, 우리가 너희들을 너희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믿게 하도록) 강요해야 하느냐?…… 오 나의 종족이여, 나는 너희들에게 이것을 위해 소유물을 요구하지 않는다. ……

 

무함맏은 선지자들에 대해 잘 모르는 아랍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성경의 여러 선지자들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하였다. 수라 26:40에서 모세와 마술사들 간의 대결도 종교적 대결이었다고 말한다. 모세가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만일 마술사들이 승리하게된다면, 우리가 그들을 따를 것이다라고말하고있다. 마술사가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전제하지만, 어쨌든 마술사를 따를 수도 있다는 전제를 하고 있다. 나중에 이들 마술사들은 모세에게 패배하여 알라를 믿고 무슬림들이 되었다. 따라서 모세도 이슬람을 전파하기 위해 이집트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수라40:26에서 이집트 왕 바로는 모세를 죽이려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가 우상숭배를 옹호하는 자들의 대표, 즉 왕이었고, 무함맏을 두렵게 하고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는 메카의 우상숭배자들을 예표하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모세는 무함맏의 예표가 되는 듯이 이집트인들의 종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집트의 폭군에 의해 반대를 당하였다고 말한다. 이처럼 무함맏은 이슬람 종교를 사람들에게 확증시키기 위해 모세의 종교가 곧 무함맏의 종교였으며, 마찬가지로 모든 선지자들의 종교가 무함맏의 종교 이슬람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무함맏이 과거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을 이용하자 아랍 우상 숭배자들은 선지자의 표적으로 기적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요구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것이다. 선지자는 자신의 말을 입증할 어떤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라 28:48-49 “이제 언젠가 그들에게 우리의 면전에서 진리의 (선지자가) 와서는 그들이 그에게도 (즉 무함맏에게도) 모세에게도 주어진 기적들이 주어진다면, (우리들이 그를 따랐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들은 전에 모세에게 주어진 기적들에게도 불신자가 되지 않았느냐? 그들은 ‘(타우?과 꾸란이) 서로 서로를 이용하여 힘 있게 하는 두 마법사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 두 책 중) 모두에게 불신자이다라고 말한다.”

 

무함맏이 아랍 우상숭배자들을 설득하려고 이용하였던 것은 주로 성경의 선지자들 이야기였지만, 그가 하는 여러 이야기들 중에는 아랍인들도 아는 여러 전설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수라 23:83 “이것은 단지 너희들의 이전에 있던전 설들이다.” 무함맏의 근거 없고 꿈을 꾸듯 횡설수설하는 소리들과 말도 되지 않는 전설들을 아랍인들이 믿을리가 없었다(수라 21:3-6).

 

무함맏이 과거의 선지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슬람을 확증하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랍 우상숭배자들이 무함맏의 말을 들을수록 반대는 커졌고, 무함맏을 거짓말쟁, 마술사, 귀신들린 자 등으로 취급하며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수라 52:29 “됐다. (오 무함맏), 너는 (사람들에게 꾸란 구절들을 가지고) 가르치라! 왜냐하면 너는 창조주의 호의로 점쟁이도, 미친 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우상숭배자들이 무함맏은) ‘한 시인이다. 우리들은 그에게 재앙이 미치기를 기다린다라고 한다.”) 수라 23:70 “또는그에게는 (무함맏에게는) 귀신들린 것이 있다.’ 라고들 하느냐?” 마법에 가까운 무함맏의 말들은 대단히 많지만, 한 예를 들겠다. 수라73:17 “그렇다. 만일 너희들이 불신자들이 되면, (스스로 공포로) 아이들(의 머리카락들을 희어지게 하여) 노인들로 바꾸어 놓을 날(의 고난)으로부터 어떻게 보호받을 것인가!” 심지어는 무함맏은 자신이 미친 자가 아니라는 것을 맹세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수라 68:2 “연필과 (그와 함께 천사들이)쓰는 기록들에 맹세하건데, (오 무함맏) 너는 창조주의 호의로 미친 것이 아니다.” 당시 아랍 사람들은 무함맏을 따르는 사람들까지 함께 비난하였다. “너희들은 단지 한마술에 걸린,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을 따르고 있다라고 하였다(수라25:8). 수라 81장은 무함맏이 메카에서 초기에 암송했던 수라로서 왜 메카인들이 그를 미친 시인이라고 했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많은 암시를 주고 있다. 수라 81:1-25 “해가 둘둘 말려졌을때, 별들도 (자기 하늘들에서) 흘러내릴 때, 산들도 (자기 자리들에서 옮겨져) 돌아다닐 때, (뱃 속의 새끼가) 열 달 된 임심한 낙타들도 자유롭게 보내졌을 때, 맹수들도 (한 곳에) 모였을 때, 바다들이 (화덕처럼) 불어졌을 때 (그리고 물 대신에 불로 채워졌을 때), 영혼들이 (다시 육체들에) 짝지워졌을 때, 산채로 매장된 (각각의) 소녀에게 어떤 죄 때문에 죽었는지를 물었을 때, (행위를 기록한 책) 페이지가 열려졌을 때, 하늘이 (땅 위에서) 벗겨졌을 때, 지옥이 (불신자들을 위해) 타올라 흐를 때, 천국이 (경건한 자들에게) 가까워졌을 때, (바로 그 날에 각각의) 영혼이 (바로 그 날을 위해) 준비하여 온 것을 (즉 모든 선악을 행한 것을) 아노라! 충분하다. 나는(밤들의 눈에서) 보이지 않는 자, (밤들도) 빨리 지나 (자기 둥지들’, 성벽들에) 숨어있는 자()들에게, 자기 어두움으로 오가는 저녁에게, 그리고 밝고 있는 새벽에 맹세를 하노라! 의심할 나위 없이 이 (꾸란은) 한 위대하고, 힘 있고, 아르쉬의 주인 (되는 알라)의 견해로서 적절한 시간과 장소가 있는, 그곳에서 (즉 하늘에서 천사들 쪽에서) 복종하는 자, 신실한 사도의 (즉 자브러일 천사의 알라 편에서 온) 말씀이다!그리고 너희들의 주인인 (무함맏은) 미치지 않았다. 참으로 그 (자브러일을) 열려진 지평선에서 보았다. (무함맏은) 출저를 모르는 계시를 탐내는 자도 아니다. (그는 알라 편에서 자기에게 온 계시들을 망치지 않고, 완전한 형태로 너희들에게 전해 주었다.) 그리고 이 (꾸란은) 쫓겨난 사탄의 말이 아니다.” 수라 37:6-10 “참으로 우리는 가장 가까운 하늘을 별들로 장식했다. 그리고 (그것을) 모든 종류의 불순종하는 사탄과 귀신들로부터 보호했다. (귀신)들은 가장 높이 존재하는 자들을 (즉 천사들의 말들을) 언제든지 들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그들에게 모든 방향에서 (별들이) 던져진다. 그들을 위해서 (종말에) 끝없는 고난이 있다. 단지 어떤 때 (어떤 말을) 엿들은 자가 (즉 귀신이) 있다면, 그것도 날으는 별이 쫓아가서 따라잡을 것이다. (그리고 멸망시킬 것이다).” 수라 75:7-10 “그렇다. (본 소름끼치는 것들로부터) 눈을 감고, (하늘에 있는) 달도 잡힌 상태에서 해와 달이 하나가 되었을 때에, 그 날에 그 사람이 ‘(이 재앙들로부터) 어디로 피난할 수 있느냐?’ 라고 할 것이다.” 본문에는 무함맏이 계시를 받을 때 얼마나 공포와 소름을 느끼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구절이다.

 

이슬람 선교전략 4-코란의 주제3

 

당시 아랍 사람들은 무함맏의 꾸란에 대해서도 노골적으로 비난 하였다. 수라 25:4-5 그 당시의 사람들이 꾸란에 대해 비난한 내용이다.

 

불신자들 중 어떤 사람들이, ‘(이 꾸란은) 단지 (무함맏) 자신이 스스로 꾸며낸 거짓말이다. 그에게 이 (거짓말을 지어낼 때) 다른 어떤 종족 (특별히 책들의 종족)이 도와 주었다라고 모독하고 중상한다. 또 그들은 ‘(이것은) 이전에 있던 전설인데, (무함맏이) 그것들을 다시 고쳐 쓴 것이다. 그렇다. (이 전설들은 어떤 자들 편에서) 그에게 아침과 저녁에 읽혀져 주어진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비난을 들으면서 무함맏을 따르던 자 중 일부도 무함맏을 거짓말쟁이라고 말하였다. 이럴 때 무함맏은 그들도 독한 말로 욕을 하였다. 수라 33”12-13 “그 때 외선자들과 마음에 상처 받은 (즉 확신이 약한) 어떤 자들이 알라와 그의 선지자가 우리들에게 오직 거짓 약속을 하고 있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많은 반대에 부딪히자 무함맏은 화가 났다. 무함맏은 자기를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는 자들의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며, 보복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였으며, 저주하기 시작하였다. 수라 43:22-26 “아니다. 그들은 말했다. ‘당연히 우리는 조상들을 한 종족-종교 위에 있었고, 당연히 우리들은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들입니다.’그러므로 우리<알라>는 당신<무함맏>보다 전에 어떤 마을과 도시에 어떤 증거자-선지자 보내지 않았다. 단지 그곳의 나타난 것들이 : ‘당연히 우리 조상들을 한 족속-종교 위에서 찾았고, 당연히 우리들은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들입니다라고 한다. (선지자가 그들에게) ‘만일 내가 너희들에게 너희 조상들을 찾은 종교에서 올바른 종교를 끌어낸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라고 말할때 , 그들은 : ‘당연히 우리들은 너희들이 사도로 만들어 보낸 종교에 불신자들이다라고 말했다. 됐다. 우리가 그들에게서 보복을 받았다. 이제 그를 (자기 선지자들을) 거짓말장이로 만드는 자들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보라! 기억하라. 아브라함이 아버지에게 그리고 종족에게 말했었다. ‘당연히 나는 당신들을 숭배하는 우상들보다 정결하다.” 무함맏은 자기 동족들과 종교적인 문제로 다투게 될 때에도 자기 조상들이 섬겼던 잘못된 우상 숭배보다 올바른 종교를 끌어낼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아브라함에게 두어, 아브라함이 그의 아버지와 동족들이 섬겼던 우상 숭배에서 참 종교를 이끌어 낸 것과 같은 행위을 무함맏 자신이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아랍 우상숭배자들의 비난 중에는 근거 없는 것들도 있었다. 아랍 우상숭배자들이 무함맏과 그를 추종하는 자들을 무지막지하게 대한 것들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랍인들의 우상 숭배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으며,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에게 항상 지적되는 사항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함맏은 단지 아랍인들에게서만 반대를 받았던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반대를 받았다. 무함맏이 당시의 사람들과 함께 했던 것처럼, 서로에 대한 신뢰와 축복 대신에, 서로에게 욕지거리와 비난과 저주를 퍼부었던 지독한 말다툼으로 구성되어 있는 종교의 경전은 세상에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꾸란은 사람들에게 축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 아니라 무함맏이 자기의 반대자들에게 무섭게 쏟아부은 저주로 가득찬 책이다. 꾸란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대한 진리를 기록한 책이 아니라, 진실을 왜곡한 거짓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 채운 책이다. 수라 32:13 “나는 지옥을(불신자) 귀신과 사람들의 모든 자로 채우는 자이다.” 이러한 소름끼치는 말을 마귀 이외에 누가 할 수 있겠는가? 과연 사랑의 하나님이 이러한 독한 저주를 퍼붓겠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런 무서운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있겠는가?

 

메카에서 무함맏의 종교는 거의 발전이 없었다. 도리어 많은 반대와 핍박을 받았고,심지어는 그를 따르는 소수의 사람들도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수라18:15,16“자우리 종족은 그 분 외에신들을’ ()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그 우상들이 신인 것에 대하여) 분명한 한 증서를 가져온다면. (결코 가져올 수 없다.) 그렇다. (어떠한 문서도 없이, 동료가 있다 라고 하여) 알라의 영광에 거짓말을 지어내는 사람보다도 난폭한 자가 누가 있느냐? (젊은이들이여!) 너희들은 그들과 알라 외에 그들이 숭배하는 것들로부터 떠나서 거절했기 때문에, 이제 (유일한 너희의 창조주, 알라 자신에게 예배하기 위하여) 동굴에 피난처를 찾아가라! 너희 주가 너희에게 자기 은택을 크고 풍성하게 할 것이고, 너희들의 일들을 번성시킬 것이다.”

 

아랍인들이 무함맏을 거절하고 반대하자 무함맏은 자기를 따르지 않는 모든 아랍인들을 정죄하였으며, 점점 더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대를 품게 되었다. 수라 6:114 “(오무함맏, 아랍 우상숭배자들에게 말하라!) ‘나는 알라 외의 다른 것을 맹세하겠는가? 그 자신이 너희들에게 이 책 (꾸란을) 상세한 (즉 너희들이 논쟁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에 충분히 답변을 주는) 상태로 내려준 자이지 않느냐?’ 우리가 책을 준 사람들(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은 그의(꾸란이) 너희들의 창조주보다 진리로 내려진 것을 알 것이다.” 수라 11:17 “자 이제 창조주 편에서 온 분명한 증서를(즉 꾸란을) 소유한 사람이 (단지 이 세상의 유익들만을 찾는 사람들과 똑같겠는가?) 오히려(알라) 편에서 온 증거 (즉 가브리엘 천사가) 그의(무함맏의) 동료이고, 그보다 이전(즉 분명한 문서인 꾸란보다 이전에) 모세의 책(타우랏이) 있었다. 그것은(이스라엘을 위해 온) 인도자와(알라의) 호의이었다. , 그 자들이 (즉 분명한 증서를 소유한 자들이) 그것을(꾸란을) 믿게 될 것이다. (선지자에게 대항하여서는) 집단들 중에서 누구든지 그 꾸란에 불신자가 되면, 그에게 약속된 장소는 지옥이다.” 수라 21:7 “(오무함맏) 우리는 너보다 전에도 (천사들을 보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지 사람들을 (즉 인간들을) 우리 자신이 그들에게 계시를 보낸 상태로 선지자로 삼았다. 그렇다. (오 메카 족속아) 만일 너희들이 모를지라도 (타우랏, 인질을 아는) 족속의 지식있는 자들에게 물어보라!”

 

수라 21:7은 알라도 무함맏처럼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무함맏을 거절할 것을 모르고 기대를 하였던 무지한 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알라가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일도 모르고 무함맏에게 말했던 것이다. 수라 29:46-47에서 볼 수 있듯이 무함맏은 그의 사역의 초기에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라고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가르쳤다. “(오 믿는 자들이여) 너희들은 친근한 책-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오직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토론하라! 단지 그들 중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들과만 (날카로운 관계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너희들은 말하라! ‘우리들은 자신들에게 내려진 것에도 (꾸란도), 너희들에게 내려진 (타우랏과 인질도) 믿는다. 우리들의 신도, 너희들의 신도 하나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에게만 복종을 한다.’ (오 무함맏, 우리는 너보다 전에 있었던 선지자들에게 책들을 내려 주었다.) 그러므로 너에게도 책, 즉 꾸란을 내려주었다. 그렇다. 우리는 책이 (즉 타우랏과 인질이) 주어진 자들은 그것을 (즉 꾸란을) 믿을 것이다.” 무함맏과 그의 신 알라와 오늘날의 무슬림들은 이 본문에 비추어 보았을 때, 끊임없이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외선을 행하고 있고, 또한 거짓말을 일삼아 왔다.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리 평화를 원하더라도 무슬림들은 결코 평화로운 방법으로 그들을 대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무함맏은 초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옹호할 뿐만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들과 책을 읽는 당시의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 모두를 인정하여 주었다. 수라 3:52-54 “이제 언젠가 예수가 그들 (유대인들) 편에서 불신(신성모독)을 보고서, ‘알라의 (종교에 초대할 때) 누가 나에게 협력자가 될 것인가?’ 라고 말했다. 사도들이 우리가 알라의 종교에 협력하는 자들입니다. 알라를 믿었습니다. 오 예수여, 증거하소서, 우리는 알라에게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창조주여, 증거한 것을 믿었습니다. 당신의 선지자를 따랐습니다. 충분합니다. 우리를 증거자들의 반열에 기록하소서!’ 라고 했다. (유대인들은) 교묘하게 했다. 알라도 교묘하게 했다. 알라는 더 교묘하게 하는 자이다.” 수라 10장은 무함맏이 초기에 이스라엘 민족과 기독교인들에 대해서 극도로 호의적이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수라 10:93-94 “의심없이 우리는 이스라엘을 빼어난 최종적인 곳에 장소를 정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정하고 깨끗한 것들에서 양식을 주었다. 후에 그들이 지식(즉 모세오경)이 주어질 때까지 불일치(모순) 하지 않았다.…… (오 무함맏), 만일 우리가 너에게 밝힌 것들에서(즉 전에 종족들에 대해 밝힌 우리 구절들에서) 의심하게 된다면, 그럴 경우에 너보다 전에 있었던 책(즉 모세오경과 신약성경) 읽는 사람들로부터 물어보라! 분명히 너에게 창조주 편에서 진리인 꾸란이 왔다.” 수라 44:29-32 “그렇다. 그들에게 하늘도, 땅도 울지 않았고, 그들에게 기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 참으로 우리는 그들을 아는 상태에서 모든 세상들, 즉 사람들 중에서 선택하였고, 선호하였다.” 비교적 초기의 메카 수라에 속하는 위의 44장에서 무함맏의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동경심과 감정은 거의 눈물을 쏟을 직전이었다. 수라 45:16도 비슷한 내용이다. “참으로 우리는 이스라엘 (종족)에게 책, 즉 타우랏, 지혜 그리고 선지자직을 수여했다. 그리고 그들을 정하고 깨끗한 것들에서 양식을 주었으며, 또한 그들을 모든 세상보다 높게 했다.”

 

그래서 무함맏은 유대-기독교인들에게 자기가 만든 새로운 신과 종교가 서로 비슷하니 함께 숭배하자고 제안한다. 수라 3:64-65 “ ‘(오무함맏) 말하라! ‘오 친근한 책’ (즉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에게도 너희에게도 동일한 한 말씀에 일치하여 유일한 알라에게만 예배를 드리자! 그에게 어떤 것도 동료로 만들지 말자! 그리고 알라를 두자! 어떤 것들을 신으로 삼지 말자!’ 만일 그들이 (즉 친근한 책들 그 초대를)거절하면, 그 때는 너희들이 (오 신자들이여) ‘너희들은 증인이 되라! 우리는 무슬림들이다. 유일한 알라에게 복종하는 자들이다라고 말하라! ”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먼저 무함맏은 자기가 유대-기독교 전통을 따르는, 즉 구약과 신약 성경에 예언된 대로 와서 그것을 확증하는 자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무함맏은 우선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슬람은 아브라함의 종교, 모세의 종교, 노아의 종교이고, 무함맏은 그들의 종교에 꾸준히 머물러 있는 자라고 주장한다. 수라12:38,39 “나는<무함맏은> 나의 조상들의 길,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종족과 종교를 따른다. 우리를 위해서 알라에게 어떤 것을 동료로 만드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 오 친구들이여, 흩어진 다양한 안개 신들이 더 좋은가 아니면 유일하고 승리자 알라가 더 좋으냐? 너희들은 그를 버려두고, 자기들과 조상들이 부른 이름들 -우상들에게만 예배하고 있다가장 올바른 종교는 바로 이것이다.” 라고 말한다. 무함맏 당시의 아랍인들과 조상들이 섬겼던 알라의 동료신들을 비난하고 있으며, 이슬람이 가장 좋은 종교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슬람 종교가 가장 올바른 이유는 알라에게 다른 동료가 없는 유일한 신이기 때문이며, 정통 아브라함의 종교를 따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함맏과 이슬람에게 있어서 자기의 아랍 조상들로부터 참된 이슬람 종교를 물려 받았다는 증거가 꾸란에는 전혀 없다. 무함맏에게 있어서 아랍인들은 조상 대대로 우상들을 섬긴 불신자들이었다. 무함맏이 자신의 선지자직의 정통성과 권위를 찾는 것은 자신의 조상들이 섬겼던 종교도 아니고, 결코 자신의 조상도 아닌 아브라함의 종교에 언제나 호소한다. 심지어 무함맏은 아브라함을 자기의 조상이라고 뻔뻔스럽게 주장한다. 무함맏은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이슬람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모세와 노아와 예수 등 모든 선지자들이 이슬람 종교를 위해 투쟁한 사람들이라고 선동한다. 수라 42:13 알라가 노아에게 명령한 것과 같은 동일한 종교를 너희를 위해 제정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종교를 아브라함, 모세, 예수에게 명령했다고 한다. 즉 무함맏은 알라의 종교에 있어서 꾸준히 머물러 있다. 거기에는 어떠한 분할도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한결같이 무함맏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자, 무함맏은 자신이 과거의 다른 선지자들과 전혀 다른 것이 없는 자라고 주장한다.수라 46:9 “(오무함맏) 말하라! ‘나는 선지자들 중에서 새롭운 자도, 첫번째도 아니다. (즉 나보다 이전에도 알라의 선지자들이 지나갔다. 왜 너희들은 나의 선지자들에게 놀라서 부정하려고 하느냐?) 나는(미래에) 자신에게도 너희들에게도 무엇이 이루어질지를 모른다. 나는 단지 자신에게 계시된 것을 따르는 자이다. 나는 단지 분명한 경고자이다.” 그러나 무함맏은 자기 자신이 다른 선지자들과 비교하여 전혀 새롭지 않다고 한 것, 즉 전혀 특별한 점이 없고, 첫번째도 아닐만큼 뛰어난 점도 없다고 소개한 것과는 달리, 신구약 성경의 모든 내용을 뒤엎어 놓을 만큼 역사상 가장 끔찍한 일을 저지를 존재가 되었다. 더군다나 자기를 추종하는 자들의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게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자가 선지자들 중의 가장 위대한 지위를 찬탈했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무함맏은 자신이 성경에 자신이 예언되어 있으며, 자신은 성경의 선지자들의 전통을 있는 자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무함맏은 선지자들과 예언이 중단되었던 역사를 이어주는 자라고 선포한다. 수라 5:19“오 친근한 책이여, 자 우리의 사도(무함맏)이 전에 선지자들보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 ‘우리에게 어떤(천국에 대해서) 복음을 전하는 자와 어떤(지옥의 고통을) 두렵게 하는 자가 오지 않았다.’ 라고 너희가 말하기 때문에 너희들에게(종교 법령들을) 선포하려고 왔다. 자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와(지옥을) 두렵게 하는 자인 자가 왔다.” 본문은 성경 계시의 종결성에 대한 무함맏의 무지를 드러낸다. 신구약 성경이 종결된 이후 상당한 세월이 지났는데도, 어떠한 선지자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무함맏은 바로 이러한 세월을 간격을 이어주는 최종적인 선지자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무함맏이 문맹이 아니었고, 계시록을 한 번만이라도 읽었다면, 이미 오래 전 성경에 선포된 무서운 저주를 자기에게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2:18-19“내가 이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하나님이 이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19:19-21“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탄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 도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그 나머지는 말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그러나 이러한 무함맏의 제안이 유대-기독교인들에게 처음부터 한결같이 거절되었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결과이다. 수라 3:65-71에서는 유대-기독교인들이 무함맏을 거절했을 때, 그가 상당히 실망했음을 보여준다. 수라 3:65 “오 친근한 책, 왜 아브라함에 대하여 (그는 우리의 종교에 있었다 라고 하여) 논쟁하느냐! 결국엔 타우랏도, 인질도 그 후에 주어진 것이 분명하지 않으냐? 도대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 !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이여) 너희들이 아는 것들 (모세와 예수 선지자들에)대하여 논쟁하고 있다. 이제 무엇 때문에 너희가 모르는 것 (아브라함이 어떤 종교에 있었는지)에 대하여 논쟁하려 하느냐? 알라는 알고 있고, 너희는 모른다. 아브라함은 유대인도, 그리스도인도 아니다. 오히려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은 경우에 (알라에게) 복종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우상숭배자들도 아니었다. 아브라함에게 더 가까이 있는 자는 그(의 길)을 따르는 자이다. 자 이 선지자 (무함맏)과 믿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알라는 겸손한 자들의 친구이다. 친근한 책 중 한 교파는 너희들을 (너희 참 종교로부터) 혼동시키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느끼지 못할 때에 단지 자기들만 혼동시킬 뿐이다. 오 친근한 책이여, 무엇 때문에 너희 자신들이 증거자 되어 알라의 (타우랏에 있는 무함맏이 참 선지자인 것에 대한) 구절들을 부정하느냐? 오 친근한 책이여, 무엇 때문에 너희 자신들이 알면서도 진리를 거짓과 혼합시키고 진리를 가두느냐?”

 

위의 본문은 대단히 우스꽝스러운 무함맏의 주장으로, 유대인들이 그의 말을 들었을 때, 충분히 미친 사람이 지껄이는 헛소리이다라고 말했을 법한 말이었다. 아브라함이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은 세상 모든 사람이 아는 사실인데, 아브라함이 유대인도 그리스도인도 아니었고, 알라에게 복종하는 자, 즉 무슬림이었다고 억지를 부린다.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장 가까이서 추종하는 자는 무함맏과 무슬림들이라고 주장한다. 도리어 무함맏은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의 역사에 대해 모른다고 비판하였다. 결국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그를 거짓 선지자로 판단하고 배척하였다.

 

이슬람 선교전략 4 - 코란의 주제(4)

 

무함맏이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좋아했다가 그들에게 실망하고 미워하게 되었던 것을 말해주는 또 다른 수라 구절이 있다. 수라 3:119 “(믿는 자들이여), 너희들은 그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은 너희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함맏에게 유대-기독교인들이 성경을 펴서 읽어주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무함맏에게 성경 자체를 펴서 읽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무함맏은 자기의 거짓을 그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성경의 진리를 거부했다. 도리어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읽어 주면 문맹이었던 무함맏은 그것을 자기식으로 교묘하게 바꾸어서 자기를 변호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수라 3:78 “그들중에는 (유대인들 중에는) 또 한 그룹이 있는데, 책에 (타우랏에) 있지 않은 것을 책에서라고 너희들이 생각하기 때문에, (타우랏) 책을 혀들을 감아서 (망치고 변질시켜서) 그들이 읽어준다. 그리고 알라의 앞에서 오지 않은(자기의 말들을) ‘알라의 앞에서 온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은 알고 있으면서도, 알라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 무함맏은 구약과 신약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데, 유대-기독교인들이 읽어주는 성경 구절들이 기록된 그대로인지 꾸며서 읽은 것인지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무함맏은 자기에게 굴복한 기독교인들로부터 여러 가지 정보를 얻기도 했으며, 다른 기독교인들로부터 성경에 대한 정보를 얻어서 그것들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무함맏을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거부했을 때, 무함맏은 종교에 대해 언급하면서 기독교인들에게 너의 종교의 한계로부터 벗어나지 말라라고 함으로써 기독교를 경고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소위 알라의 종교인 이슬람과 유대인들의 종교와 기독교를 동일한 올바른 종교의 범주에 놓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약의 선지자들과 극히 일부분의 이스라엘 종족을 제외한 대부분의 이스라엘 민족들은 모두 이슬람 종교를 반대한 우상숭배자들이었다고 한결같이 비난하고 있다. 이슬람은 유대교와 기독교를 모두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양면성을 드러내고 있다.

 

수라 4:171 “오책이여, (예수를 신이라고 말함으로써) 너의 종교에 있는 한계로부터 벗어나지 마라! 알라 영광에 오직 진리의 말만 하라! 당연히 그 예수 그리스도 마리얌의 아들은 단지 알라의 선지자이고, 그의 마리얌에게 던진 말씀이고, 또한 그의 편에서 온 영일 뿐이다. 됐다. 알라와 그의 선지자들을 믿어라! ‘(주가) (즉 알라, 마리얌 그리고 이사 셋 모두 주님들이다)’ 라고 말하지 말라! ”

 

꾸란에서 무함맏은 종종 유대교와 기독교를 세상에서 권위 있는 종교들에 포함시키고 있고, 심지어는 기독교에서 이단시하고 있는 분파까지 무함맏에게 복종하는 경우에는 올바른 종교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수라 2:62 “당연히 믿는자 들이다.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과 (알라에게 믿음을 둔, 그러나 어떤 샤리아법을 준수하지 않는 종교적인 분파인) 사비교도들 (그들로부터) 어떤 자들 (전에 어떤 종교에 있었던 강한 믿음을 가지고, 유일한) 알라에게, 종말의 날을 믿는다면, 그리고 잘 준수한다면,그들에게 창조주의 앞에서 상급이 있고, 그들을 위해서 위험과 염려가 없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의 종교는 최고의 권위가 있는, 가장 믿을 만한 종교이다라고 자주 말한다. 실제 역사적인 사실에 있어서 아랍 족속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아브라함이 그들의 민족의 조상이고, 종교의 조상이라고 말한다(수라 2:124). 알라가 아브라함을 모든 민족들을 위한 이맘으로 만들었고, 그의 자손들도 이맘들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아브라함의 종교가 이슬람이었고, 그의 자녀들이 모두 무슬림이었다(수라2:130-132)고 주장한다. 하지만 무함맏 당시의 책의 사람들, 즉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무함맏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수라 3:19).그래서 수라 4:171; 5:77 “오 책의 사람들이여, 너희 종교의 한계를 넘어가지 말라!” 라고말한다. 이 말은 각각의 종교에 한계가 있다는 말로, 이슬람 이외의 다른 종교들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꾸란에서 무함맏은 자주 이슬람이 가장 좋은 종교, 가장 올바른 종교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그는 항상 한 종교를 절대적으로 옳은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여러 종교들을 상대적으로 비교하고 있다. 이러한 꾸란의 종교적인 사상 때문에, 오늘날 수 많은 무슬림들은 우리는 당신들의 종교를 존중하고 있소, 그런데 왜 당신들은 우리의 종교를 존중하지 않소?’ 라고 질문한다. 또한 우리는 세상의 모든 종교들을 존중한다.’ 라는 표현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를 부인하는 것이며, 모든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들, 즉 불교와 힌두교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종교를 인정한다고 하는 말인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이슬람이 절대 진리를 소유한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모순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거짓된 종교들을 존중함으로써 자신들의 거짓들도 존중해 달라고 하는 간청을 하는 셈이다.

 

수라 5:19“오 책의 사람들이여! 자 우리의 사도가 너희 책들 중에서 감추어진 많은 것을 너희들에게 분명히 한 경우에, 많은 것들을 거절한 때에 왔다. 너희에게 알라로부터 빛과 분명한 책이 왔다. 알라는 모든 것들 위에 권세를 가지고 있다. 이 구절을 포함한 꾸란의 많은 구절에서 알라는 흔히 우리라는 1인칭 복수를 사용한다.그렇다고 이러한 인칭과 수가 꾸란 전권에서 일치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가끔은 1인칭 단수로, 아주 드물게는 3인칭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인칭과 수에 관한 문제는 다른 곳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유일한 신 알라에 관한 문제가 아랍 우상숭배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것처럼, 유대인들-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그럼 유일신에 관한 무함맏과 유대인들-기독교인들 사이에 있었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었나? 사실 겉보기에는 유대인들의 유일신에 대한 사상이나, 무함맏의 유일신에 대한 사상은 큰 차이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유대인들이 무함맏을 믿을 수 없도록 만드는 이유는 선지자들에 대한 무함맏의 꾸며낸 이야기들과 자기들이 익숙히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 사이에 존재했던 첨예한 차이점 때문이었다. 이에 첨가하여 기독교인들의 반대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구속사적인 중요성을 제거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무함맏은 당시의 아랍 사회를 구성하고 있었던 우상 숭배자들에게도, 유대인들에게도,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반대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수라 3:79에서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무함맏이 소위 선지자라고 불렀던 예수를 하나님으로써 예배하는 것에 대해 무함맏에게 말했고, 무함맏은 자기가 새롭게 시작한 종교의 사상과 맞지 않기 때문에 거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사람을 위해 알라가 그에게 책, 지혜 그리고 선지자직을 준 후에, 사람들에게알라에게가 아니라, 나에게 예배하라라고 말하는 것은 허용된 것이 아니다.”

 

결국 무함맏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부정하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정죄하고 저주하였으며, 결국에는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수라 29:46 “(오겸손한<신자>자들이여), 너희들은 책들을 가지고 단지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대화하라! 오직 그들 중에서 억압-폭력을 사용하는 자들과만 (예리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가능하다).그리고 우리들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꾸란도, 너희들에게 주어진 모세오경과 신약성경도 믿는다. 우리들의 신(일라), 너희들의 신(일라)도 하나이고, 우리들은 그에게만 순종한다.’라고 말하라.” 초기에 반대에 부딪혔을 당시의 이러한 조심스러운 태도는 차츰 노골적인 압력 행사로 악화되었다. 수라 9:29,30“알라와 말일을 믿지 않는, 알라와 그의 선지자가 부정하다고 한 것들을 부정하다고 알지 못하는, 진리 (즉 이슬람) 종교에 신뢰하지 않는 책들로 구성되는 어떤이들에게 반대하는 자들은 그들이 짓밟혀졌을 때 자기들 손으로 세금을 내기 전까지는 전쟁을 하라! 유대인들은 우자이르가 알라의 아들이다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알라의 아들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문서나 증거 없이) 그들의 입에 있는 말들이다.” 이 말은 분명히 논리적으로도 모순이 된다. 만일 유대-기독교의 하나님이 이슬람의 신과 동일하다면, 왜 이슬람은 억지로 유대-기독교인들을 무슬림으로 개종시키려고 그처럼 가혹한 정벌을 했는가 하는 점이다.

 

결국 수라 5:72-73에서 보는 것처럼, 무함맏과 꾸란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노골적으로 저주하고, 유대-기독교 역사를 송두리째 뒤엎고 왜곡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수라 5:72-73 “알라가 마리얌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들은 분명한 불신자들이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 이스라엘이여, 나의 창조주와 너희 창조주가 되는 알라에게 종노릇하라!’ 라고 말했다. 당연히 누구든지 알라에게 쉬르크를 초래하면, 알라가 그에게 낙원을 부정하게<하람> 할 것이고, 그의 있을 곳은 지옥이 될 것이다.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는 어떤 돕는 자도 있지 않을 것이다. ‘알라는 셋 (즉 알라, 마리얌, 이사) 중의 하나이다라고 하는 자들도 분명히 불신자들이다. 왜냐하면 유일한 알라 외에 어떤 신(일라)도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말하고 있는 말들을 멈추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들 중 불신자가 된 자들을 고통스러운 고난이 붙잡을 것이다.” 수라 3:67 “아브라함은 유대인도 기독교인도 아니었다. 그는 단지 알라에게 복종하는 자였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은 무슬림이었고, 그들의 종교는 이슬람이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무함맏은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과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모두 무슬림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종교는 알라의 참된 종교, 이슬람이었다고 우긴다. 이렇게 주장해야 되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무함맏은 자신이 구약에 예언된 선지자라고 꾸란에서 여러 번 주장한다. 그는 자기가 선지자들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끊임 없이 주장한다. 즉 무함맏 자신과 이슬람 종교의 역사성에 치명적인 결핍이 있는 것이다.인류의 역사가 수천년이 흐른 이후에, 7세기 초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슬람 종교에는 역사적인 기반과 배경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을 보완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인류의 역사 시작부터 변함없이 존재했던 종교를 자기의 종교로 삼고, 그 역사적 전통을 가로채는 방법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유대교도, 기독교도 모두 사실은 이슬람이었다라는 억지주장을 내세웠고, 아브라함의 생애를 팔레스타인 땅에서 아라비아 반도로 옮겼으며, 모든 선지자들을 무슬림으로 만들었고, 자기는 가장 신실하게 이슬람 종교를 확증하는 최후의 선지자의 자리를 확보하였다. 그리고 이것에 반대하는 자들은 역사적 사실이야 어찌 되었든지 간에 모두 불신자들이며, 우상숭배자들로 정죄되어야 하였다.

 

이러한 주장을 한 후에 무함맏은 자기를 따르는 무슬림들이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모든 길들을 막아놓았다. (알라에게 복종을 의미하는) 이슬람 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원하는 자는 누구나 알라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수라 3:105 (종교적) 토론에 빠지는 사람처럼 되지 말라. 그들에게는 무서운 형벌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무슬림들에게는 꾸란과 무함맏의 권위와 진실성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도 해서는 안된다. 무함맏은 이미 유대인들-그리스도인들과의 종교적 토론에서 자신의 거짓이 충분히 드러났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종교적인 토론을 할수록 자기에게 불리할 뿐만 아니라, 이후 자기를 따르던 무슬림들도 종교적 토론을 하게 되면 패배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과는 어떤 대화도 용납치 않았고, 철저히 전쟁과 세금과 같은 압제를 통해서만 그들을 굴복시켜야 한다고 명령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무수히 많은 무슬림들이 참된 진리를 알고 싶어도 무함맏의 협박과 주변 사람들의 위협 때문에 그 의심을 감추고, 진리를 알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많은 두려운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무함맏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일관되게 협박과 공갈로 자기 종교에 붙어있도록 강요하였다. 수라 41:13 “그렇다. 만일 그들이 (즉 메카의 우상숭배자들이 이 상세한 설명 뒤에도 유일한 알라를 믿지 않고) 거절하면, 그 경우에는 말하라! ‘나는 너희들을 정확히 옷-야벳-과 사묻-- (종족들을 내려친) 번개과 같은 한 번개, 즉 멸망이(임하는 것)을 경고한다.’”

무함맏의 모든 설교는 자비롭고 은혜로운 창조주, 유일한 알라만을 섬기고, 알라와 그가 보낸 사도 무함맏에게 복종하고, 알라와 무함맏의 종교인 이슬람을 따르라는 명령으로 함축된다. 꾸란의 다른 모든 내용은 이것을 확증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이것보다 더 중요한 내용은 꾸란에도, 하디스에도 있을 수 없고, 있지도 않다. 이것이 이슬람 종교의 전부이다. 모세오경, 시편, 신약성경, 그리고 그들의 모든 내용들과 선지자들은 단지 알라가 유일한 참 신이며, 알라가 그의 사도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수라 61:11). 즉 무함맏은알라의 이름도, 모든 선지자들도, 천사들과 영적 존재들도 모두 자신이 많든 새로운 종교를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위해서 이용하고 있다.

 

무함맏은 알라에게도 종교가 있고, 그것이 곧 이슬람이며, 따라서 이슬람은 창세전부터 있었다는 전설을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이슬람은 최후의 종교이며, 무함맏은 최후의 선지자이기 때문에 가장 위대하다는 논리적 모순을 과감하게 자행한다. 사람들에게는 올바른 종교가 필요한데, 그것은 곧 유일한 신 알라에게 복종하는 이슬람이라고 가르친다. 천국은 종교적인 교훈이 가득찬 곳이다. 그리고 복종하는 자들은 곧 믿는 자들이며, 그들은 곧 무슬림이라고 가르친다. 무함맏이 말하는 종교와 무함맏의 조상들이 섬겼던 종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함맏이 말하는 모든 종교 의식들은 아랍 우상 숭배자들로부터 온 것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무함맏은 자기 종교의 정통성을 성경의 선지자들의 종교에서 찾는다.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 아브라함, 모세, 예수는 어떤 종교를 고안해 내려고 노력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성경에서는 참되신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교제를 한 번도 종교라는 용어로 설명한 적이 없다. 더군다나 하나님께 어떤 종교가 종속되어 있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교리적 주제들 중에 유사한 것들이 대단히 많은 것은 무함맏과 유대-그리스도인들의 끊임 없는 논쟁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한 번도 의견의 일치를 얻지 못했다. 성경을 읽을 줄 몰랐던 무함맏은 궁지에 몰렸던 것이다.무함맏은 문맹으로서 한 번도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었고, 자기의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유대-그리스도이들은 단순히 성경을 읽을 뿐만 아니라 연구하는 자들이었다. 무함맏의 거짓말들은 모든 선지자들의 삶과 믿음과 그들에게 주어졌던 약속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유대인-그리스도인들 앞에서 벌거벗은 듯이 명백히 드러났다.그럴 때마다 무함맏은 억지로 꾸며낸 거짓말들로 그들을 공격하였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무슬림과 대화를 할 때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슬람 선교전략 4 - 코란의 주제(5)

 

꾸란의 전체적인 종교적 주제와 맥락은 다음과 같다. 즉 꾸란의 전체 114 수라장들은 흔히 이슬람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광범위한 삶의 모든 부분들을 다 다룬 것이 아니라 주로 이슬람 종교에 대해 다룬 것인데, 그것을 요약한다면 대단히 단순한 공식이 성립한다. 무함맏이 새롭게 고안해 낸 이슬람 종교와 그의 새로운 유일신 알라와 그의 새로운 움마 공동체인 무슬림들과 그들의 대표자로서 가장 중요한 선지자 역할을 하고 있는 자신은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와 같은 선지자들의 뒤를 따를 뿐만 아니라 그들을 확증하는 자이다. 꾸란에 나타나는 노아, , , 야벳,아브라함, , 요셉, 모세 등과 같은 선지자들은 많은 수라들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전했던 내용은 모두 이슬람 종교의 가르침을 전했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또한 귀신들도 이슬람의 교리를 믿었고 다른 귀신들에게도 가르쳤다. 그 내용은 무함맏이 당시의 사람들에게 가르쳤던 것들인데, ‘알라는 유일하고, 그에게는 어떠한 동료도 다른 신도 없다. 사람들은 선지자에게 복종하지 않고 그들을 거짓말쟁이라고 했기 때문에 멸망을 당하였다. 그들은 나마즈를 완전하게 수행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종말의 날과 부활과 천국과 지옥에 대해 경고하였다.’ 선지자들이 증거했던 이슬람 종교는 알라의 종교이며, 세상에서 가장 좋은 종교이고, 이 종교를 믿고 따르며, 이 종교를 위해 싸우는 자는 낙원에 들어가고 이 종교를 믿고 따르지 않거나 이 종교를 배반하는 자들, 즉 이슬람 이외의 모든 종교를 믿는 자들은 지옥에 들어가서 고통스러운 불속에서 고난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꾸란은 모두 114 수라로 구성되어 전체 부피가 적지 않지만, 대부분 동일한 주제와 사건과 이야기들이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것으로서, 실제 내용에 있어서는 대단히 단순한 책에 불과하다. 무함맏이 가르쳤던 종교적인 의무들은 실제에 있어서 그렇게 대단한 내용들도, 진리들도 아니다. 꾸란에서 무함맏과 그의 신 알라가 가르치는 선행이나 도덕, 법에 관한 내용들과 그 의미들은 동서양 고금에 존재했던 일반적인 철학자들의 가르침과 비교했을 때 훨씬 수준이 낮은 것들에 불과하고, 우상숭배 종교인 불교의 가르침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형편 없는 것들에 불과하다. 꾸란의 거의 모든 내용, 특히 선지자들을 이용해가며 했던 말들은 모두 그가 꾸며낸 거짓말들이며,그 나머지도 타락한 인간을 감화하여 변화시키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할 만한 특별한 점이 전혀 없기 때문에 무함맏 당시의 사람들이 그를 거짓말쟁이로 취급하였던 것은 타당한 판단이었다.

 

이렇게 조잡한 이야기들이 전지전능하시고, 지혜가 한이 없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우기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지만, 배후에 역사하는 어두움의 영, 진리를 보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는 영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사실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오늘날 이슬람의 신앙에서 대부분의 것들이 아랍의 종교 전통에서 온 것들이며, 또한 지어낸 전설들에 불과하지만 진리의 조명을 받지 못한 사람들로서는 그것이 진리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는 길이 없다. 무슬림들을 거짓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복음 뿐이다.

 

무함맏이 말한 것처럼, 과연 성경은 무함맏의 확증을 필요로 하는가? 오늘날 무슬림들이 전혀 읽지 않고 있는 성경의 내용은 꾸란이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질서정연함과 심오한 진리들과 하나님의 성품으로 충만하다. 우주와 인류 역사의 시작, 죄의 시작,하나님의 구원 계획, 언약, 예언, 인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획과 계시,인류 역사의 성격, 인간의 삶의 기준이 되는 공의로운 율법, 다양하고 구체적인 인간의 내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들, 하나님과의 동행, 하나님의 언약들과 예언들의 구체적인 성취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와 영원한 하나님 나라, 약속된 성령을 받고 실제적으로 죄인이 변화되어 새로운 생명과 의롭고 거룩하며 성화되어 가는 삶을 체험하는 것, 무함맏이 결코 제공해 줄 수 없는 수 많은 선지자들의 믿음의 발자취와 예수님의 거룩한 삶의 모범 등 그 어떤 것을 무함맏과 그의 책 꾸란이 흉내낼 수 있겠는가?

 

무함맏에 대한 동시대 사람들의 비난들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또한 탁월하게 신비한 과정을 통해 매듭(또는 옹이)에 숨결을 불어넣는 마법을 행하는 자들에 대한 언급이 있다. 수라 113 “(무함맏) 말하라! : ‘나는 아침 창조자로부터 (나에게) 자신이 창조한 것들의 악한 것들로부터, 어둠에 빠진 밤의 악한 것으로부터, 마디들에 호흡을 불어넣는 (마술사)들의 악한 것들로부터, 그리고 질투하는 질투자의 악한 것으로부터 피난처 주기를 구하며 기도합니다

 

이 구절을 보면 무함맏이 아랍 이방인들의 악한 영적인 세계를 얼마나 두려워 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113 수라와 114 수라는 무함맏은 Mu'awwidbatayn로 알려진 어떤 특정한 악한 존재들(악령들)로부터 피할 피난처를 구하고 있다. 이 두 수라 뿐만 아니라 수라 7:200; 16:98; 41:36에서 무함맏은 무슬림들에게 사탄으로부터 피하도록, 수라 40:56에서는 꾸란에 대한 논쟁을 할 때, 사람으로부터 피하기 위하여, 수라 72:6에서는 진으로부터 피하기 위하여 알라에게 피난처를 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심지어는 어떤 진들이 무슬림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수라 72:1-19에서 진들 중 어떤것이 꾸란을 듣고서 진리의 길로 들어섰고, 꾸란을 듣고 당장 믿었으며, 창조주에게 그 어떤 동료도 있지 않다고 말하여 무슬림이 되었다. 당연히 우리는 인스도, 진도 알라의 영광에 항상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수라 72는 진들이 직접 1인칭이 되어 말하고 있는 구절들이 많이 있다. 10-19절까지는 완전히 진들이 진들의 세계와 그들의 일들과 알라에게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한 교훈을 가르치고 있다. 무함맏은 그가 죽인 사람들의 영이 그의 꿈 속에 나타나 그를 괴롭혔다. 알라가 창조한 것이 그에게는 악하게 보였고, 이를 두려워했다. 무함맏 자신이 밤에 두려움으로 떨었다. 매듭을 써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려는 여인들과 마술사를 두려워했다. 무함맏의 알라에 대한 두려움은 극에 달하였다는 사실을 위의 구절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무함맏에 대한 당시 아랍인들의 평가가 꾸란에 나타난다.메카 사람들은 무함맏을 공포에 이끌려 부자연스럽게 행동했기 때문에 마주눈 (미친, 홀린)이라 했다(수라 37:36 - 미친자 시인; 44:14 - 미친 자). 수라 52:29 “됐다. (오 무함맏), 너는 (사람들에게 꾸란 구절들을 가지고) 가르치라! 왜냐하면 너는 창조주의 호의로 점쟁이도, 미친 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상숭배자들이 무함맏은) ‘한 시인이다. 우리들은 그에게 재앙이 미치기를 기다린다라고 한다.” 심지어는 무함맏은 자신이 미친 자가 아니라는 것을 맹세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수라 68:2 “연필과 (그와 함께 천사들이) 쓰는 기록들에 맹세하건데, (오 무함맏) 너는 창조주의 호의로 미친 것이 아니다.” 수라 81장은 무함맏이 메카에서 초기에 암송했던 수라로서 왜 메카인들이 그를 미친 시인이라고 했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많은 암시를 주고 있다. 수라 81:1-25 “해가 둘둘 말려졌을 때, 별들도 (자기 하늘들에서) 흘러내릴 때, 산들도 (자기 자리들에서 옮겨져) 돌아다닐 때, (뱃 속의 새끼가) 열 달 된 임신한 낙타들도 자유롭게 보내졌을 때, 맹수들도 (한 곳에) 모였을 때, 바다들이 (화덕처럼) 불어졌을 때 (그리고 물 대신에 불로 채워졌을 때), 영혼들이 (다시 육체들에) 짝지워졌을 때, 산채로 매장된 (각각의) 소녀에게 어떤 죄 때문에 죽었는지를 물었을 때, (행위를 기록한 책) 페이지가 열려졌을 때, 하늘이 (땅 위에서) 벗겨졌을 때, 지옥이 (불신자들을 위해) 타올라 흐를 때,천국이 (경건한 자들에게) 가까워졌을 때, (바로 그 날에 각각의) 영혼이 (바로 그 날을 위해) 준비하여 온 것을 (즉 모든 선악을 행한 것을) 아노라! 충분하다. 나는 (밤들의 눈에서) 보이지 않는 자, (밤들도) 빨리 지나 (자기 둥지들’ - 성벽들에) 숨어있는 자()들에게, 자기 어두움으로 오가는 저녁에게, 그리고 밝고 있는 새벽에 맹세를 하노라! 의심할 나위 없이 이 (꾸란은) 한 위대하고, 힘있고, 아르쉬의 주인 (되는 알라)의 견해로서 적절한 시간과 장소가 있는, 그곳에서 (즉 하늘에서 천사들 쪽에서)복종하는 자, 신실한 사도의 (즉 자브러일 천사의 알라 편에서 온) 말씀이다! 그리고 너희들의 주인인 (무함맏은) 미치지 않았다. 참으로 그 (자브러일을) 열려진 지평선에서 보았다. (무함맏은) 출처를 모르는 계시를 탐내는 자도 아니다. (그는 알라 편에서 자기에게 온 계시들을 망치지 않고, 완전한 형태로 너희들에게 전해 주었다.)그리고 이 (꾸란은) 쫓겨난 사탄의 말이 아니다.”

 

본문에서 사람들에게 진리의 길을 가르쳐 주고, 생명을 주는 어떤 하나님의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 대신 의미없이 중얼거렸던 시와 의미 없는 맹세와 무함맏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고 변명하는 말과, 그가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출처도 모르는 계시를 탐욕스럽게 갈망하는 자도 아니고, 꾸란이 사탄으로부터 오지 않았다고 변명하는 말들만 있을 뿐이다. 그의 이웃들은 그를 두려워하여 사히르(마술사)라고 했다(수라10:2) “불신자들은참으로, (즉 무함맏은) 대단한 마술사이다라고 한다”; 수라15:15“만일 우리-알라-가 그들에게 하늘에서 한 문을 열어 놓는다면, 그리고 거기에서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한다면, 그래도 당연히 그들-아랍인들-, ‘의심할 나위 없이, 우리들의 눈들을 묶어 놓았다. 우리들은 마법에 걸린 사람들이다라고 할 것이다.” ; 수라 38:4 “(메카우상숭배자들이) 그들에게 자기들로부터 (즉 인간 족속으로부터) 된 한 경고자? 선지자가 나온 것에 놀랐고, 그 불신자들이 말하기를, ‘이는 한 거짓 마법사이다. (그래서) 신들을 한 신으로 만들어 버렸느냐? 참으로 이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라고 했다.”). 수라 21:3-6“당연히 그것을조롱하여, 심령들이 전적으로 무지해진 상황에서 듣는다. 그리고 포악스러운 불신자들은 이 자 (즉 무함맏)은 너희와 비슷한 한 인간일 뿐이다. 너희가 보고 있는 상태에서 마술에 (속으려고) 하느냐?’ (라고 하여) 서로 속삭인다. (그 때 무함맏이) 말하기를 나의 창조주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말을 안다. 그는 듣는 자이며, 아는 자이다.’ ‘그러나 그들은(무함맏이 계시라고 주장하는 말들이) 조리없는 꿈들이다. (그 말들을) 아마도 그 자신이 지어내었다. 아마도 그는 한 시인이다. 그렇다. 그도 전에 보내진 선지자들이(초래시킨) 것과 같은 어떤 이적을 초래하게 하라!” 다른 사람들은 마슈르(마법에 걸린), 또는 미친자라고 했다(수라 17:47,48“우리는 그들이 너에게 (즉 너의 암송하는 것에) 귀를 기울였을 때 무엇 때문에 귀를 기울이는지를, 그리고 이 핍박자들이 서로 속삭이며, ‘분명히 너희들은 마술에 걸린 자들이다. 정신이 나간 사람들을 따르고 있다.’ 라고 말하는 것들을 아주 잘 알고 있노라. (오 무함맏) 그들은 네가 참으로 (마법에 걸린, 미친 자, 시인이라 하여) 어떤 예들을 드는 자들을, 됐다, 길을 잃고 () 길을 찾지 못하는 자들을 보라!” 다음 구절은 무함맏의 표현 자체에서 왜 아랍 우상숭배자들이 그를 마술사, 미친 자라고 했는지를 보여준다. 수라 17:50-51“말하라! ‘너희들은 돌이나 쇠붙이가 되라! 또는 너희 마음들에 (생명을 상상하는 것은) 아주 힘든 다른 어떤 존재가 되라! (모든 상태에서 알라가 너희들을 부활시킬 것이다)’ 아직 그들은 우리들을 누가 부활시킬 것이냐?’ 라고 말한다. ……수라 25:9; 44:13). 수라 18:40-41“분명히 나의 창조주가 나에게 너의 동산-또는 과수원보다 더 좋은 (한 동산을) 줄 것이다. (너의 동산에는) 하늘에서 벼락들을 보낼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매우 부드러운 땅으로 변화될 것이다. 또는 그것의 물이 (땅 밑으로) 흡수되어 너는 그것을 찾아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여러 사람들은 카힌(점쟁이)라고 불렀다(수라 52:29; 69:38-42 “충분하다. 나는 너희들이 보는 것들에도, 너희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에도 멩세를 한다. (꾸란은) 의심 없이 위대한 선지자의 (알라 왕궁에서 오게 된) 말들이다! 그는 어떤 시인의 말이 아니다! 너희들은 (그 꾸란이 알라의 말인 것을) 아주 적은 사람만 믿는다! 그리고 어떤 점쟁이의 말도 아니다. 너희들은 아주 적은 사람만 교훈을 받아들인다.!” ). 또한 진의 인도를 받아 영감있고 리듬있는 시를 반복적으로 암송했기 때문에 샤이르(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수라 37:36; 52:30; 69:42).

 

무함맏은 자기를 반대하는 자들을 극도로 미워하였으며, 결코 너그럽고 온유하게 용서해 주는 법이 없었다. 그를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그의 마음 속에 항상 얼마나 악하고 저주스러운 가득찬 생각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수라 구절들이 수 없이 많다.

 

위와 같은 무함맏의 많은 헛된 맹세와 변명들과 반대하는 자들에 대한 시기와 미움과 저주로 가득찬 꾸란이 어떻게 죄로 인해 생명을 잃고 방황하는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변화시켜 새로운 삶을 살도록 인도할 수 있겠는가?

 

추종자들이 무함맏에게 가브리엘과 만났던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자 그는 종 울리는 소리와 금속이 쿵쿵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가 계시를 받는 동안 추종자들은 그의 얼굴이 창백해지거나 붉어졌으며, 그의 입술이 조용히 움직이고, 가끔은 무의식 상태에 있었음을 보았다. 이처럼 무함맏은 계시를 받는 동안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고, 무엇에 홀린 듯한 사람과 같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를 두려워했다.

 

이 밖에도 무함맏에 대해 무함맏 당시의 아랍인들이 비난했던 단어들은 거짓말쟁이”, “전설을 말하는 자등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비난은 최근에 우리가 일부러 꾸며낸 것도, 우리가 이슬람을 비난하기 위해서 하는 말도 아니다. 꾸란 자체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꾸란 전체에 걸쳐 무함맏의 말들은 대체적으로 과장이 너무 심하고, 사소한 일에도 천국과 지옥을 운운할 정도로 언어에 경솔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이슬람 선교전략(4)-코란의 주제(6)

 

무함맏은 새로운 종교 이슬람의 고안자이다.

이슬람 종교는 무함맏 이전에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었다. AD 600년 이전에 󰡐알라󰡑, 󰡐이슬람󰡑, 󰡐무슬림󰡑 이러한 단어들은 세상 그 어디에도, 그 어떤 문서에도 없었던 것이다. 이슬람 종교는 하심 계통의 꾸라이쉬 부족의 아둡라의 아들 무함맏에 의해 아라비아의 메카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무함맏은 40세가 되었을 때, 가브리엘이라고 주장하는 천사에 의해 알라에 관한 계시가 아닌, 알라의 뜻에 관한 계시를 시리즈로 받았다.

 

무함맏은 아담과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모세와 심지어는 예수까지 참 무슬림이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무지한 자힐리야 사람들 뿐만 아니라, 성경의 선지자들을 믿고 따르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자기의 종교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에게 유일신 여호와가 있었다면, 무슬림들에게는 무함맏에 의해 유일신이 되어버린 알라가 있다. 무슬림이란 단어는 󰡐기독교와 그리스도인󰡑을 모방하여 󰡐이슬람과 무슬림󰡑, 󰡐복종과 복종하는 자󰡑의 구조를 만든 것이다.

 

기독교에는 그리스도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 무함맏은 자기가 스스로 고안해 낸 이슬람 종교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신앙의 대상이라면, 무슬림들의 신앙의 대상은 알라이고, 이 알라는 그 이전의 그 어떤 신보다도 위대한 위치를 찬탈해 버렸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 이삭, 다윗의 후손으로 왔다면, 자신은 아브라함과 이스마엘 혈통으로 왔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기 위한 아브라함 ? 이스마엘 ? 무함맏 신화를 만들어 냈다. 유대인들에게는 토우랏과 자부르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경이, 이제 무슬림들에게는 꾸란과 하디스가 경전으로 존재하게 되었으며, 그것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과 종교의 기준이 되었으며 세계관이 되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방하여 닮으려 한다면, 무슬림들은 무함맏을 모방하여 닮으려 한다. 사람들의 삶은 그들이 따르는 자를 닮게 마련이고, 실제로 그리스도인과 무슬림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교회라면, 무슬림들을 위한 공동체는 움마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 안에 있는 모든 영역을 무함맏과 그의 종교 이슬람은 모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꾸란에서도 충분히 간파할 수 있다.

 

수라 2:135 󰡒유대인이나 그리스도인이 되라! 올바른 교훈을 찾자!󰡑 라고 그들은 말한다. (즉 유대인들은 유대인이 되라! 말하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라! 라고 말한다. 너는 말하라! 오 무함맏이여!) 오직 우리는 참 길에서 떠나지 않은 자, 우상숭배자들이 되지 않은 아브라함의 종족에-그의 종교에 (따르고 있는 자들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라고 해서 무함맏이 천재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상 무함맏은 평범한 인간이었을 뿐이었으며 전해지는 바로는 문맹이었으며, 꾸란을 읽어서 알 수 있듯이 말에는 모순이 많으며 거짓말쟁이였다. 그가 기록한 꾸란의 거의 대부분의 내용들이 꾸며낸 거짓말들이다.

 

무함맏은 수라 2:256에서 종교에는 강요가 없다고 말한다. 󰡒종교에 강요하여 들어가게 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사탄과 무함맏은 무슬림들이 진리를 알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그 길을 막고 있다. 무슬림들은 이슬람과 꾸란에 대해 그 어떠한 질문도 의문도 가져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무함맏의 거짓말들에 속고 있는 무슬림들에게 진리의 빛으로 비추어 주고, 어두움 가운데서 어두움의 영이 이끄는대로 무력하게 이끌려 가는 불쌍한 무슬림들을 구원해 내야 한다.

 

사실상 무슬림들도 꾸란의 가장 중요하고 전체적인 주제가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무슬림들이 꾸란의 모든 내용을 알고 믿고 있는 것도 아니다. 거의 모든 무슬림들은 꾸란의 모든 수라들 중에서 개경장(첫번째 수라)와 이슬람 종교를 가르치고 기독교를 대적하기 위한 것과 같은 극히 일부분의 내용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사실상 이슬람의 교리나 개경장과 같은 것은 이슬람 종교를 잘 포장해서 이슬람이 진정한 종교라고 선전하여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것들에 불과하며, 그러한 것들은 꾸란의 전체의 내용과 잘 조화되지 않는다.

 

사역자들은 이슬람을 포장한 것들에 지나치게 주목해서는 안된다. 또한 그러한 것들에 현혹되어서도 안된다. 포장된 겉모습 내면에 있는 이슬람의 진정한 모습은 이슬람의 배경이 되고 있는 역사와 이슬람의 기초가 되고 있는 꾸란의 진정한 주제에 관한 것이다.

 

무슬림들은 꾸란의 진정한 주제가 종교 토론에 불과한 것을 모른 채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단순히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그리스도인 학자들이나 사역자들 조차도 이 점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이슬람을 다루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우리는 무슬림들에게 꾸란의 진정한 주제가 하나님 자신과 그의 계획에 대한 계시나 인간을 죄와 멸망에서 구원함으로써 하나님을 알며, 사랑하고, 찬양하게 하고,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맛보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꾸란의 허구성을 그들도 깨닫도록 빛을 비추어 주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어두움 속에 있는 사람들이나 맹목적인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두움에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에 꾸란의 내용은 지극히 무의미하다는 사실도 모르고 알라에게서부터 주어진 것으로 믿고 살아간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과 비교하면서 설명해 주면 전도하는데에도, 양육하는데에도 대단히 큰 도움이 된다.

출처 : 바울선교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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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상식

1) 이슬람의 의미

이슬람(Al-Islam)은 아랍어로 신(알라)에 대한 "복종","순종"을 의미하며,

이슬람을 믿는 신자가 남성일 경우 "무슬림" 이라고 하고 여성일 경우는 "무슬리마" 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이슬람을 회교(回敎)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중국을 통해 이슬람이 전해 지면서

회족들의 종교라는 의미에서 회교로 부르게 되었다.

 

 

2) 꾸란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40세 되던해부터 사망하기까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계시를 받은

(알라)의 말씀으로 이슬람의 경전이다.

꾸란은 암송형태로 전해지다가 무함마드 사후 후계자들에 의해 여러 곳에서 문자화 작업이

시작되었으나 3대 칼리프 시대에 현재의 꾸란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소각하였다.

(알라)의 말씀이 담긴 책이므로 무슬림들은 꾸란을 읽기 전에 몸을 청결히 해여 하며,

꾸란을 읽을 때에는 경건한 자세를 해야하며 음식을 먹거나 남과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꾸란을 읽지 않을 때는 경외의 의미에서 천으로 싸서 가장 높은 곳에 두어야 한다.

 

  

 

 

3) 모스크(Mosque)

에스파냐어 메스키타 및 프랑스어 모스케를 거쳐 영어로 변한 것임.

아랍어로 마스짇은 '이마에 땅에 대고 절하는 곳'을 뜻한다.

회랑(回廊)이 있고, 안뜰에는 청정(淸淨 :우드)의식을 행하는 샘물이나 수도가 있다.

건물 내부에는 메카의 방향(키브라)을 나타내는 벽감(壁龕 :마흐라브)과 설교자(키티브)

위한 단(:민바르)이 있다.

회랑 한쪽에는 1~6개의 탑(마나르)이 솟아 있고, 예배시각이 되면 예배당을 지키는 무아딘이

탑에 올라가 예배를 권유하는 '아잔'을 소리 높여 낭송하다.

 

 

 

 

4) 예배(쌀라)

메카(카바신전) 방향으로 하루 5번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새벽기도 2, 정오 및 오호, 밤은 4, 일몰은 3번의 절을 하며 기도한다.

- "파즈르(fajr)" : 동트기 전 기도

- "주흐르(dhuhr)" : 정오기도

- "아스르(asr)" : 오후 중반에서 해지기 사이 2-3시 경 드리는 기도

- "마그립(maghrib)" : 해진 직후 드리는 기도

- "이샤(isha)" : 잠자기 전에 드리는 기도

이슬람 기도의 주목적은 자기 정화에 있으며, 무슬림들은 기도를 통해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거치지 않고 직접 알라와 영적 교감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매주 금요일 정오에는 무슬림 신도들이 모두 모스크에 모여 단체 예배를 드린다.

 

5) 청정 의식(우두)

이슬람은 몸과 마음의 청결을 중요시 하며, 신체와 정신의 청결은 꾸란에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신자들은 기도나 예배 전 이슬람식 간단한 세정(우두)을 한다.

기도 전에 몸을 깨끗이 씻는 의식은 타하라(Taharah)라고 하며, 남여 구역이 분리되어 있다.

- 씻는 순서는 손, , , 얼굴, , 머리, , 발 등이다.

- 물이 없을 경우에는 깨끗한 모래, , 자갈, 돌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6) 이슬람 염주

이슬람인도 신앙심 유지를 위해 염주(Tasbih)를 돌린다.(천주교, 불교와 유사)

알라의 99가지 이름을 따 99개의 염주로 되어 있으나 보통은 33개의 염주3개로 나누어 사용한다.

7) 이슬람 축제

Eid Al-Fitr (금식 종료 기념 명절)

- 이슬람의 금식월인 라마단을 무사히 마친 것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명절

Eid Al-Adha (희생제) : Haji(순례 기간)종료 시점에 시작 이 기간중에 무슬림들은

  선물 및 카드를 교환한다.

 

8) 초생달과 별

이슬람권 많은 나라들이 초생달과 별이 포함된 국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모스크 첨탑 장식에도

활용하고 있어 이슬람의 별과 달은 알라의 권능을 상징하는 증표이기도 한다.

이슬람의 가름침은 초생달과 별처럼 인간은 안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음.

이슬람에서의 초승달과 별의 유래

- 그러나 초승달과 별이 언제부터 이슬람의 상징이 되기 시작했는지 유래가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역사적으로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지금은 이스탄불)을 점령한 1453

당시 비잔틴 제국에 존재하던 초승달 및 별 상징을 오스만제국이 수용하기 시작하면서

이슬람의 상징으로 정착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 고대 아람의 전통적으로 최고의 신인 달신에서 유래 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9) 이슬람 3대 성지

메카(선지자 무함마드의 출생지 - 카바신전 소재지)

메디나(최초의 이슬람 도시, 무함마드의 사망지)

알쿠드스(예루살렘, 무함마드의 승천한 장소)

 

10) 이슬람 복장

이슬람 여성의 hijab(머리를 덮는 베일)은 남성의 유혹을 예방하기 위한 것임.(쿠란 p352)

이슬람 여성들이 입는 검은 옷은 Abaya(아바야)라고 하며, 아프간에서는 부르카,

이란에서는 차도르라고 한다.

 

11) 이슬람과 예술

무함마드는 알라에 대한 믿음과 숭배가 유혹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사람이나 동물 그림을 못 그리게 한다. 대신에 기하하적인 다양한 서체 예술이 발달되었다.

음악도 인간은 타락시킨다는 이유로 금지시키고 있다.

 

12) 접대 예절

윗사람들을 매우 공경하고, 찾아오는 손님에 대해서는 극진하게 접대하는 것이 예의이며

미덕으로 간주하고 있다.

속담에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 집에는 천사도 찾아오지 않는다" 는 말이 있다.

이는 인적이 드믄 사막의 생활환경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반갑다는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종교 예의상 공덕을 많이 쌓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13) 인사

"앗쌀라무 알라이쿰"(평화가 당신에게 있기를)하면

"오 알라이쿰 앗 쌀람"(당신에게도 평화가...)이리고 답한다.

그렇게 답해주지 않으면 인사 받은 사람은 평화만 받고 상대방은 나쁜것과 해가 되는 것을

가져도 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무슬림들은 상대방보다 인사를 길게 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므로 다소 짜증나더라도

계속 인사를 받아서 해주는 것이 훨씬 친밀감을 높일 수 있다.

무슬림들은 알라(하나님)외에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지 않고 악수로 대신한다.

보통 무슬림들은 악수 후 친밀한 사이에는 서로 포응을 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는 인사를 하며 오른손 등을 이마에 가져다 댄다.

이슬람 여성에게 악수를 위해 손을 내미는 것은 금기시 되어 있다.

인사할 때 부인 또는 여성가족의 안부는 묻지 않는 것이 좋으며, 가족의 안부는 허용된다.

 

14) 좋은 행위 오른손 사용

무슬림들은 오른손을 악수를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 그리고 선물을 주고 받을 때 등

좋은 일을 할 때 사용하고, 왼손은 화장실에서 용변 후 씻을 때, 신발을 닦을 때,

그리고 코를 풀 때 사용한다.

물건을 주고 받을 때 악수를 할 때 왼손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큰 실례이다.

심지어 잘 때도 오른쪽으로 자야하며 왼쪽으로 자는 것도 가급적 피하고,

 

손톱을 자를 때 먼저 오른 손 , 왼 손, 오른 발, 왼 발, 순으로 깍으며, 칫솔질도 입안의 오른쪽부터

한다고 할 정도로 오른쪽 우선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다.

- 왼손은 사탄과 관련한 부정한 것으로 인식 된다.

 

15) 생리 현상과 관련된 예절

다른 사회와 달리 이슬람권에서는 식사 후에 트림을 하더라도 "비스밀라(알라의 이름으로)"라고만

하면 예의를 벗어난 행위는 아니다.

재채기는 아무데서나 해도 상관없고 재채기를 한 사람에게

"yarhamuk allah"(may Allah have mercy n yu)라고 한다.

하품은 최대한 하지 않도록 하는데 이슬람에서는 하품 할 때 나는 소리 '아아-'

사탄이 자극해서 나는 소리라고 한다.

기도 시간에 방귀를 뀌면 알라가 기도 소리를 듣지 않고 다른 대로 간다고 하여 아주 싫어하므로

무슬림들 앞에서는 삼가야 한다.

 

16) 화장실

화장실에서 중요한 부분을 무슬림에게 보이는 것은 큰 실례이다.

무슬림들은 목욕이나, 수영할 때에도 허리로부터 무릎까지는 가리는데 이는 무함마드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수나,Sunnah)

무슬림들은 대소변 시 메카 방향으로 해서는 안되면, 용변을 보고 씻을 때 오른손을 사용해서도

안 된다.

이슬람권의 공공화장실에는 화장지가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 대부분의 경우 용변 후 물을 사용한다.

17) 손으로 상대방을 가리키는 것

무슬림 사회에서도 좋지 않은 예절로 평가된다.

간혹 무슬림들이 기분 좋을 때나 의견이 똑같을 때, 오른손 바닥을 내미는데

이럴 경우는 손바닥을 쳐주면 된다.

18) 신의 뜻으로(인샤알라)/알라의 덕분에(알 함두릴라)

우리가 무슬림들과 대화할 때, 무슬림들은 승낙 또는 약속의 표시로 '인샤알라"라고 하는데,

그 일이 이루어질지는 알라만이 알고 있다는 뜻이다.

비무슬림들은 이러할 경우 불확실한 약속의 증표라고 간주하고 "인샤알라" 하지 말고 다른 식으로

확신의 말을 해 줄것을 요청하는 데, 진실한 무슬림들에게 이러한 요구는 종교의 대한 모욕감을

주는 매우 불쾌한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반 무슬림들은 대답이 애매하거나 불확실 할때 "인샬라"라고 답한다.

19) 식사 예절

식사전에 손을 씻고

먹거나 마시지 전에 Bismillah(알라의 이름으로)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사탄이 같이 음식을 먹게 된다고 한다)

초대를 받게 되어 식사할 경우 식사 전에 "비스밀라"

"알라 바라카트후"(알라의 이름으로, 알라의 축복이 당신에게)라고 말한다.

식사전에 음식이 반드시 식탁에 놓여 있어야 한다.

반드시 오른손으로 식사(사탄은 왼손으로 식사한다고 한다).

음식이 뜨겁다고 불어서는 안 된다.

손님이 떠날 경우 문까지 배웅하는 것이 좋다.

싫어하는 음식이 있더라도 표내지 않도록 한다.

선물을 줄 경우, 받는 것이 예의이며 주인의 요청이 없을 경우에는 나중에 뜯어 본다.

 

20) 메카(Mecca)의 중요성

무슬림들은 메카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 메카는 선지자 무함마드가 태어나서 알라로부터 계시를 받은 곳으로 매년 이슬람 순례객들이

순례하는 이슬람의 성지이다.

 

메카 방향을 향해 기도(쌀라)를 하고, 메카의 중심에는 카바 신전이 자리하고 있다.

- 종교 생활과 예절, 생활 방식도 메카와 많은 연관이 있다.

 

불결한 것(예를 들어 잠자는 방향, 용변 볼 때)의 자세는 메카로 향해서는 안 된다.

 

21) 기타 예절

여성을 똑바로 주시해서는 안되며, 남성의 과도한 장식은 여성스럽게 보인다고 해서 금한다.

남편 외의 다른 사람들에 보이기 위한 여성의 과도한 장식은 금지되며, 여성은 주로 금, 은을

선호한다.

무슬림 여성들이 때때로 과도한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는 것을 보는데 혹자는 이혼 후의 생활을

대비하기 위해 현금 대신 저장 해 둔 것이라고도 한다.

어른앞에서 꼰 자세로 앉거나 발바닥을 상대방에게 보이는 행위, 침을 뱉는 행위 등은

모두 좋지 않은 행동으로 받아들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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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이슬람 라마단 (رمضان)

 

이슬람력의 제9월 이슬람의 무함마드 사도가 쿠란을 계시받은 달로 금식을 해야하는 달이다

이슬람에서 무슬림이 지켜야 할 5대 의무 중 하나로 한 달 동안은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해야 한다.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것. 담배나 성관계도 해가 있는 동안은 금지된다.

금식의 시기는 매년 각 나라의 이슬람 중앙성원에서 공지하는 시간에 따라 지키게되는데,

이는 이슬람력이기 때문에 달의 움직임을 보고 결정하게 된다.

이슬람력에서 아홉 번째 달에 해당되는데 한국에서의 라마만 일정은

말레이시아나 달의 모양을 보고 시작일을 판단하게 된다합니다.

대체로 오전 6~오후 6시까지 금식의무가 요구되며

, 건강상 이유로 병자나 임산부, 모유수유나 생리 중에 있는 여성, 어린 아이들은 제외됩니다.

 

2017올해는 527일 전후로 약 한 달간 이어집니다. (사우디정부는 이미 발표)

이슬람력이 윤달이 없는 음력이라 보통 매년 11~12일 정도가 앞당겨집니다.

라마단 기간 모든 무슬림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금식을 거행합니다.

, 담배, 껌을 씹어서도 안되고 심지어 침도 삼켜서는 안 됩니다.

라마단에 금식을 하는 이유는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느껴보고 스스로 인내심을 키우면서 신앙심을 굳건히 하자는 데 있습니다.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가 신의 계시를 받아 라마단에 금식을 명했다고 합니다.

금식을 통해 빈자의 고통을 나눠보고 금식을 통해 비축한 식량과 돈으로 자선을 베풀라는 의미입니다.

라마단의 하루 일과를 보면, 기도는 하루 5+1 입니다. 다섯 번은 의무이고 저녁에 사원에서 매일 기도회를 여는 데 이건 자율입니다. 식사는 해가 뜨기 전 새벽이 한 번, 해가 진 뒤 한 번, 이렇게 두 번의 식사를 합니다.

 

라마단 기간 모든 것이 비정상이다.

무슬림이 라마단 동안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갈증입니다.

식사야 한 끼를 거드는 셈이니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지 몰라도 수분 섭취를 할 수 없습니다.

특히 더운 나라에서 그것도 올해처럼 라마단이 한 여름에 걸리면 그 고통은 더 큽니다.

건강한 사람도 참기 힘든 일인 만큼 임산부와 노약자, 여행자에게는 금식이 면제됩니다.

새벽에 일어나면서 생기는 수면 부족, 그리고 단식의 영향으로 라마단기간 무슬림의 활동력은 뚝 떨어집니다.

때문에 학교는 단축수업을 하고 관공서는 비롯한 모든 기업이 단축 근무에 들어갑니다.

학교는 보통 12시면 수업을 마치고, 시험도 되도록 라마단에는 치르지 않습니다.

관공서는 정오면 업무를 중단합니다. 근무시간에도 기력을 아끼기 위해 되도록 바깥 일을 삼가는 게 일반적입니다. 오전이면 몰라도 오후에 거래처와 약속을 잡은 건 포기해야 합니다.

무슬림들에게는 '인샤알라'(신의 뜻대로)라는 말처럼 일의 진행속도가 한국에 비해 많이 더딘 곳입니다.

 

라마단 기간에는 업무 단축에 집중력 저하까지 겹치면서 그나마 낮은 업무 효율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집니다.

공사현장이나 공장은 물론 일반 영업점도 일찍 문을 닫기 때문에 라마단 기간 오후에 일을 본다는 건 아예 포기해야 합니다. 현지인 식당은 어차피 손님이 없으니 아예 해질녘에나 문을 엽니다.

외국인을 상대로 한 식당은 정오부터 문을 열긴 하는데 주방장과 요리사가 간을 보지 못하고 음식을 만들기에 맛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금식과 폭식, 라마단의 역설

라마단 하면 '금식'을 하기에 소비도 줄어들 것 같은데 그 반대로 소비량이 평소보다 30~40% 이상 껑충 뜁니다.

이른바 '라마단 특수'라고 불립니다.

라마단 때 해가 지면 온 가족이 모여 '잎따르'라는 식사를 합니다. 금식을 푸는 가벼운 시가입니다.

잎따르 전에 집에 가기 위해 사람들은 버스를 서로 타려고 한다.

교통체증으로 악명 높은 다카 시내도 이시간은 도로에 개미새끼 한 마리 없습니다.

잎따르를 먹기 위해 다들 집에 모여서 음식을 앞에 두고 금식을 푸는 방송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개 친지나 친구를 초대해 함께 모여 먹는 게 관례다 보니 식사는 평소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풍성하고 정성스럽게 마련합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허기진 배를 채우다 보니 오래 먹고 많이 먹게 됩니다.

 

무슬림 여성들이 라마단기간 음식 장만으로 혹사당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형제가 많은 가정은 음식을 장만하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라마단 기간 서로의 집을 돌아가며 식사를 합니다.

 

온 가족이 외식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라마단 기간 조금이라도 유명한 식당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2~3시간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게 다반삽니다.

유명 호텔은 한달간 예약이 라마단이 시작 되기 전에 끝난다고 합니다.

 

이 기간 가족과 친지, 친구를 만나면 서로 선물을 주고 받는 게 관례입니다. '라마단 카드' 같은 현물카드는 아이들이나 부모에게 주는 선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또 부자들은 매일 저녁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료 식사를 제공합니다. 시내나 주택가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인데 '자선'의 실천하는 겁니다.

 

라마단을 앞두고는 장을 보러 가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쇼핑몰이나 대형마트엔 선물을 고르고 미리 음식물을 장만해 놓으려는 사람들로 성황을 이룹니다. 라마단 특수 때 매출이 1년 매출의 3분의 1에 달할 정돕니다. 자연스럽게 이 기간 물가상승도 동반하면서 라마단 때면 이슬람권의 정부는 너나 할 것 없이 생필품 물가 대책을 내놓고 있을 정도입니다.

 

처음 라마단의 목적은 다음의 다섯 가지 잘못 즉 거짓말 하는 것, 중상모략,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비난하는 것, 잘못된 맹세, 탐욕을 없앤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라마단은 특히 동료의식을 강조하며, 지역의 모스크에 함께 모이기를 즐기며, 친구나 친척, 이웃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대접합니다.

 

그러나 라마단 금식 기간 사람들은 실제는 오히려 많이 예민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슬람을 자극 시킬만한 대화를 피해야합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슬람국가에서는 1년 중 라마단 금식월에 가장 교통사고 등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고 음식도 가장 많이 소비를 합니다.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가 금식을 선포 할 당시의 의미는 사라진지 오랜 것이지요.

 

금식월은 가정마다 소비가 많기때문에 정부 관료들은 뇌물 받는데 어느때보다 적극적입니다.

하여튼 가능하면 이때를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금식을 시작한지 27일째 되는 밤은 '능력과 거룩한 밤'(Laylat al-Qadr)으로 코란을 처음 받았던 기간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무슬림들은 이날 밤을 새워 가며 기도하고 코란을 암송하기도 합니다.

'라마단'의 끝은 무슬림들의 이드(Eid-ul-Fitr) 축제로 입니다.

성공적으로 금식을 한 것을 자축하며 가족 친구들이 모여 기도하고 만찬을 함께 나누고 선물을 나누면서 금식을 끝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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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다양한 문화, 언어, 역사, 종족에 의해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어 왔으며 무슬림 안에는 매우 다양한 민족과 문화적 유산들이 존재하고 있다

 

각 종족마다 그들만의 고유한 특성이 있으나 무슬림들은 모두 공통의 신조와 믿음의 강령들을 따른다. 어떤 무슬림은 아주 헌신적이며 코란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반면에, 매일 드리는 기도와 전통의식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무슬림도 있다.

 

모든 이슬람 세계를 통틀어 무슬림들은 가족 중심으로 가깝게 결속된 사람들이다. 가족들과 함께 하기를 좋아하고 항상 있을 기회를 찾는다. 이러한 결속감은 자기 직계가족뿐 아니라 다른 무슬림들을 소풍이나 외출을 위해 정지적으로 함께 모이는 일이 자주 있다. 무슬림은 거의 예외 없이 개인의 필요보다 가족의 필요를 우선순위로 둔다. 무슬림 친구를 만날 때면 상대방 가족 사람의 건강과 안부를 묻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길면서도 열정적인 인사가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무슬림 문화는 아시아권 문화와 동일하여 대부분의 무슬림은 관대하고 대접을 잘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손님의 방문과 식사를 겸한 초대를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특히 식사에 손님을 초대하고 받아들이는 데 있어 그들의 독특한 관습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중동 지방의 무슬림은 여러 번 권유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초대에 응한다. 무슬림 문화에서는 너무 쉽게 초대에 응하는 것을 무례하고 탐욕스럽게 보기 때문이다. 손님을 초대한 무슬림 주인은 굉장한 비용과 희생을 치러서라도 손님에게 언제나 가장 좋은 것으로 접대한다. 그러나 무슬림에게 돼지고기 요리를 제공하는 것은 무슬림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무슬림은 관대한 사람들이며, 이들은 자신의 시간, , 음식 등 자신에게 속한 것들을 통해 관대함을 나타낸다. 따라서 무슬림이 무엇을 빌려갔다면, 되돌려 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피하고, 그들이 되돌려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왜냐하면 무슬림에게 무엇을 빌려 왔다면, 그들은 당신이 되돌려 줄 것을 기대하지 않고, 되돌려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되돌려 준다면 무슬림은 기뻐할 것이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교제하는 것은 매우 보편적인 것이며, 무슬림은 보통 세가지 혹은 그 이상의 요리 외에도 다른 반찬을 준비한다. 또한 무슬림은 자신들의 음식에 대하여 대단하 자긍심을 갖고 있으며, 다른 문화를 제시하는 사람들에게도 자신들과 같은 관대함을 기대한다.

 

무슬림은 한 번 서약한 맹세와 약속이나 위탁을 번복하는 일이 거의 없다. 이러한 '명예심'은 부족들과 가족들 사이에 지극한 충성심으로 나타나는 반면, 이것이 위협 받는 경우에는 공격적으로 만든다. 명예와 충성심에 대한 이러한 높은 가치 부여로 인해 용서의 개념을 넓게 적용하기가 어렵다.

 

대부분의 서구인들은 쉽게 친해지며, 계획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목록을 따라서만 일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무슬림에게도 친구는 어떤 목표나 어떤 활동 보다도 더 중요한 대상이다. 만약 무슬림이 어떤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면 그와 함께 무엇을 하기 전에 상대방의 필요를 따라서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무슬림은 절대로 누구에게도 떠날 것을 말하거나 내 비치지 않는다. 그리고 연락 없이 다른 사람이나 집을 방문하는 것은 일반적인 것이다. 따라서 현대 서양 문화를 따라서 무슬림과 교제할 수 없고, '사생활', '개인 시간'등은 이들에게 고독함으로 전해진다. 무슬림은 함께 만나 모든 것에 대하여 대화하며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가족, 종교 문화에 대하여 질문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친구들에 대하여 언제나 자신의 집, 가족들이 낮이나 밤이나 기꺼이 받아 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의 친구들도 자신에 대하여 언제나 맞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길 기대한다.

 

대다수 무슬림들이 종종 '하나님의 뜻이라면'이라든지 '하나님께 찬양을'등의 말로 문장을 맺는 식으로, 일상대화에서 하나님에 관해 많이 언급한다. 무슬림이라면 모스크에서든 집에서든, 하루에 적어도 다섯 번 기도하도록 되어있다. 길가에서, 비행기에서, 또는 시장에서 기도를 위하여 정해진 시간에 무슬림들은 언제 어디서 건 그들이 있는 자리에서 기도한다. 무슬림은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해 '자비롭고 인자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란 말과 함께 하나님께 감사와 존경을 돌린다. 이슬람과 신앙은 무슬림의 일상 생활의 모든 면을 포괄한다. 머리를 자르는 방식으로부터 한 남자가 취할 수 있는 아내의 수에 이르기까지 이슬람은 삶의 모든 분야에 걸쳐 기본 골격과 틀을 제공한다.

 

 

이슬람의 기본적인 문화는

남자는 여자가 혼자 있는 집을 방문할 수 없다.

남자는 여인들이 뒷방에 있는 것, 가족의 다른 남자들과 함께 앉지 않는 것,

손님을 안방으로 모시는 것에 대하여 이상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남자는 여자를 빤히 처다 보아서는 안 된다.

남자는 여자가 먼저 악수를 청해 손을 내밀기 전에는 여자와 악수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왼손은 부정한 손으로 무슬림은 왼손으로 선물 혹은 음식물을 주거나 받아서는 안 된다.

어른 앞에서는 다리를 꼬며 앉을 수 없다.

마루 바닥에 앉을 때는 발바닥이 다른 사람을 향하지 않아야 한다.

 

코란과 성경에 대하여 대해 항상 예를 표해야 하며 이것들을 바닥에 버려둔다든지, 다른 책의 밑에 두어서는 안 된다. 무슬림은 코란에 대하여 항상 경건한 마음을 갖고 대해야 하며, 옷감으로 감싸 보관해야 한다. 그리고 코란을 열기 전 반듯이 종교적인 예로 손을 씻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집, 그 물건들에 대하여 감탄하지 말며, 그 자녀들에 대해서도 감탄해서는 안 된다. 어떤 문화 속에서는 이러한 것을 악한 영의 욕심과 동일시 하고 있다.

 

만약 무슬림을 초대해 즐겁게 해 준다면, 그들에게 절대로 돼지고기 혹은 술을 권해서는 안 된다.

근본주의 무슬림들은 오직 알라(Allah)의 이름으로 거룩하게 잡은 고기 할랄(halal)만 먹기도 한다.

무슬림이 초대했다면, 당신이 그리스도인으로 그들의 음식을 거절할 아무런 근거는 없다.

그리스도인을 바울의 고린도전서 8장에서 언급한 우상에게 드린 제물과는 다른 것이다.

 

전세계 무슬림의 대부분이 공유하고 있는 이러한 문화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무슬림 이웃을 더 잘 이해하고 알 수 있도록 도와 준다. 이러한 무슬림의 덕목들은 문화적인 '장벽'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들의 겉 모습뒤에 감춰진 마음을 볼 수 있도록, 그리하여 무슬림과 오랜 친구가 되어 우리 자신의 믿음에 관하여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근래에 우리나라에 많은 무슬림들이 들어와  거주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할 줄 알 때 더 성숙한 국민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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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한국인 무슬림이다 

 

 

경멸의 시선 속에서도 한국인 무슬림들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파키스탄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무함마드 아심(왼쪽)씨와 지난 3월 그와 결혼한 신미선(오른쪽). 421일 인천 자택에서 인터뷰하던 중 신씨가 눈가를 만지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날, 하늘은 청명했다. 라틴계·아시아계가 많이 사는 미국 뉴욕 퀸스 거리에 초가을 햇볕이 내렸다. 오전 9시께 윤알리야(36)씨는 자취방에서 수업 준비에 바빴다. 오후엔 퀸스대학 미술학과 대학원 수업이 있었다. 얼핏 고무 타는 냄새를 맡았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오오, 나의 신이여. 또다른 비행기가 충돌했습니다.” 건성으로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누군가 외쳤다. ‘새 드라마를 시작했군.’ 윤씨는 생각했다. 지하철로 열 정거장 떨어진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윤씨는 알지 못했다. 유학 2년째를 맞은 2001911일 아침이었다.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진 뒤, 윤씨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거리를 걷는데, 어느 백인 아줌마가 윤씨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는 역겨워!” 지나던 사람들은 백인 여성과 아시아계 여성을 번갈아 쳐다봤다.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사진학 수업에서 윤씨는 C학점을 받았다. 과제물로 낸 뉴욕 무슬림(이슬람교도) 사진을 유대인 교수는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직업을 구하려 했으나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졌다. 어렵게 사립학교 상담교사 자리를 구했다. 윤씨를 채용한 미국인이 나중에 말했다. “우리 아버지도 무슬림이셨어.”

 

9·11 테러 직전인 2001년 여름, 윤씨는 무슬림이 되었다. 그것은 유일신 알라를 믿고, 무함마드가 하나님의 예언자임을 믿고, 하루 5살라’(기도)를 드리며 살아가는 일이었다. 대학생 시절 윤씨는 성당 성가대에서 성가를 불렀다. 뉴욕에서 만난 모로코 출신 무슬림 친구가 그의 믿음을 흔들었다. 윤씨는 새 믿음을 택했다. 미사포 대신 히잡’(이슬람식 두건)을 썼다. 어딜 가건 스카프로 머리와 어깨를 둘렀다. 인터넷 메신저로 한국의 아버지한테 고백했다. “, 무슬림이 됐어요.” 11000의 거리를 빛의 속도로 날아온 문자가 컴퓨터 화면에서 깜빡거렸다. “모든 종교에는 진리가 있지.” 아버지는 덧붙였다. “왜 하필이면 이슬람이니?”

  

매주 금요일 오후가 되면 주마’(금요예배)에 참석하는 무슬림들이 한국 이슬람 서울 중앙성원에 모여든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03년 여름 한국에 돌아온 윤씨는 금요일마다 서울 한남동 이슬람 서울중앙성원에 갔다. 그곳에서 주마’(금요예배)에 참석했다. 오가는 길에 히잡을 쓰고 긴팔 옷과 긴 치마를 입고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번갈아 탔다. 사람들은 윤씨를 쳐다보았다. “경멸의 눈빛이었죠.” 윤씨가 말했다. 뉴욕의 일은 서울에서 반복됐다. 동네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어느 한국인 남자가 윤씨에게 외쳤다. “어이, 모하메드.” 한국인 남자는 한국인 여자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윤씨는 손가락을 쳐다봤다. 남자는 엄지 손가락을 천천히 아래로 돌렸다. “나를 모욕하려고 작정한 거죠.”

 

이제 윤씨는 무슬림 친구들만 만난다. 대부분 한국인 무슬림이다. 13~14만명의 무슬림이 한국에 살고 있다. 이 가운데 적어도 45000여명은 한국인이다. 나머지는 결혼·취업·유학 등으로 체류중인 외국인이다. 일부는 장차 귀화할 것이다. 스스로 무슬림이 되는 한국인, 국제결혼을 거쳐 무슬림이 되는 한국인, 한국 국적을 얻은 외국 출신 무슬림,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까지 더해 한국인 무슬림은 조금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미국·유럽에서 무슬림은 집단적으로 발언한다. 때로 사회 쟁점의 한복판에 뛰어든다. 한국 무슬림들도 입을 열기 시작했다. 언제나 웃는 얼굴의 윤씨가 말했다. “같은 한국 사람인데경멸의 눈빛은 정말 견딜 수 없어요.” 그 말을 할 때 윤씨는 웃지 않았다.

 

히잡 두른 사랑 앗살라무 알라이쿰!

<*앗살라무 알라이쿰: 신의 가호가 있기를>

  

 

윤알리야(왼쪽), 장후세인(오른쪽) 부부는 5살 딸 젠나(아래), 5개월 아들 무빈()을 뒀다. 지난 426, 가족들이 서울 이태원 한국이슬람중앙성원을 찾았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성혼 선언과 함께 부부는 꽃처럼 웃었다. 지난해 10월 여자는 눈이 크고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를 만났다. 눈이 큰 남자는 술과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 때로 서북서쪽을 향해 조용히 절했다. 카펫 무역을 하는 남자는 2003년 한국으로 귀화했다. 여자는 성실하고 정직한 귀화 한국인과 사랑에 빠졌다. 무슬림은 오직 무슬림과 결혼한다. 여자는 교회 출입을 끊고 무슬림으로 개종했다.

 

무함마드 아심(36)씨와 신미선(29)씨는 지난 36일 서울 이태원 한국 이슬람중앙성원에서 알라의 이름으로결혼했다. 신씨의 아버지는 사위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파키스탄 새끼라고 불렀다. “파키스탄 새끼가 왜 한국에 와서 가만있는 사람을 건드리는 거야?” ‘히잡’(이슬람식 두건)을 쓴 딸도 타박했다. “다른 이슬람교도처럼 너도 테러로 빠질 거니?” 신씨의 부모는 결혼식장에 오지 않았다.

 

신씨는 무함마드씨의 두번째 부인이다. 1999년 한국에 온 무함마드씨는 한국인 여자와 결혼했다. 22녀의 자식을 낳았다. 아이들 모두 주민등록번호를 가진 한국인이다. 3년 전 아이들은 파키스탄으로 무슬림 유학을 떠났다. 첫 부인도 함께 갔다. 한국 학교에선 무슬림으로 키우기 어려웠다. 첫 부인과 4명의 자녀는 다시 한국에 돌아올 것이다.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신씨는 선택했다.

 

알라의 이름으로결혼한 여자에게 아버지는 사위를 파키스탄 새끼라 말했다. 남편의 첫 부인과 자녀는 나의 가족이다. 한국은 일부다처 금지라 혼인신고도 못했다.

 

가족이잖아요.” 신씨는 가만히 생각하다 말했다. “나도 사람인데, 질투심이 안 생기는 건 아니지만신씨가 남편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이들 생각하면 이혼하면 안 되겠죠.” 이슬람은 여성을 차별하는 게 아니라 보호한다고 신씨는 생각한다. 다른 부인이 아니라 새로운 가족이 생긴 거라고 신씨는 생각한다. “만약 나하고 이혼한대도신씨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계속 무슬림으로 지낼 거예요.” 신씨가 기도하며 마주하는 벽에는 종이가 잔뜩 붙어 있다. 꾸란의 아랍어 구절을 한글로 옮겨 적었다.

 

이슬람의 율법은 네 명의 부인까지 허락한다. 이슬람의 율법에서 두 사람은 부부다. 한국의 법률에서 두 사람은 아직 부부가 아니다. 중동 국가와 달리 한국은 일부다처를 허락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아직 혼인 신고를 못했다. 방법을 찾고 있다. 신씨 부부는 한국의 상식·관습·법률의 경계를 시험하고 있다.


 


충남 아산에 사는 장동현씨는 하루 5차례 살라’(기도)를 한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합동예배를 할 때는 참석자 모두 열을 맞춘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때론 스스로 시험에 빠진다. 지난 45일 경복궁을 거니는 사람들은 봄볕을 골고루 나눠 가졌다. 시비가 일기까지 부부의 봄나들이는 완벽했다. 상춘객 틈에서 어느 중년 남자가 외쳤다. “테러리스트가 어딜 나와?” 신씨는 히잡을 쓰고 있었다. 울컥하고 나서는 남편의 팔을 신씨는 단단히 붙잡았다. 부부는 말없이 집에 돌아왔다.

 

장동현(35)씨도 인내하는 일에 익숙해지고 있다. 올해로 결혼 4년차인데, 최근 2년 동안 라마단’(금식)을 했다. 매년 8~9월 무렵, 해가 떠 있는 동안 일체의 음식을 먹지 않았다. 한달에 걸친 라마단을 끝내면 체중이 5~6줄었다. “배고프고 가난한 사람의 처지가 되어보자는 뜻이거든요.” 그 처지가 되니 하루 종일 먹는 생각뿐이었다.

 

남들이 밥먹는 점심때가 되면 장씨는 공장 기숙사 좁은 방에서 메카가 있는 서북서 방향을 잡는다. 반절을 하고 무릎을 꿇고 오체투지를 두번 한다. 회식 자리가 생겨도 장씨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예전엔 목에 찰 때까지 마시던 그 술이다.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던 동료들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왜 안 먹어?” “그래야 마음이 편해.”

 

그것을 장씨는 사랑이라 부른다. “아내를 사랑하니까요.”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던 장씨는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던 산업연수생 아리아나 따리(31)씨가 좋았다. 두 사람은 호수 주변을 함께 걷고, 닭 요리를 함께 먹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여자는 한국말에 서툴렀다. 돼지고기를 안 먹기로 결심한 남자는 인도네시아말을 몰랐다. “‘애인이 되어 달라는 말을 영어로 외워 갔지요.” 장씨의 고백에 여자는 웃었다. “말은 안 통했지만 눈이 맞은 거죠.” 그날을 떠올리며 장씨는 웃었다.

 

두 노동자에게 국가·종교·사랑의 경계는 얇디얇다. 간혹 생채기처럼 튀어나오는 긴장은 있다. “이슬람에 대해 안 좋은 말이 많은 것 같아.” 무슬림 테러리스트에 대한 방송 뉴스가 나왔다. 아내가 정색을 했다. “그런 말, 기분 나빠요. 진짜 무슬림, 테러 안 해요.” 장씨 부부가 평소 알고 지내는 한국인-인도네시아인 부부는 7쌍이다. 그들 모두 비슷한 말다툼을 알콩달콩 나누다 잠든다. 이제 한국말을 곧잘 하는 장씨의 아내 따리씨는 아직 귀화하지 않았다. 친정에 다녀오려면 인도네시아 국적이 편리하다. 친정 갈 일이 줄어드는 미래의 어느 날 따리씨도 한국 국적을 얻을 것이다.

 

이것은 드문 사랑이 아니다. 2004년 이후 매년 결혼하는 한국인의 10~14% 정도가 외국인 배우자를 선택한다. 20113월 현재 한국인과 결혼해 국내에 머물고 있는 국제결혼 비자 체류자143000여명이다. 이 가운데 인도네시아·파키스탄·우즈베키스탄 등 주요 11개 이슬람 국가 출신 무슬림만 4150여명에 이른다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안정국 교수는 분석한다.

 인도네시아 여자와 결혼한 남자는 라마단을 지키고 돼지고기와 술을 끊었다. “아내를 사랑하니까요.” 무슬림에 대한 안좋은 말을 접할 때마다 맘에 생채기가 난다.

  


신미선씨의 남편 무함마드씨는 인천 집 근처에 무살라’(소규모 예배당)를 만들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장씨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을 어떤 이는 번식이라 부른다. “꼴통 이슬람 외국인들 범죄 많이 저지르고, 광우병 사태 때 앞장선 외국인들 전부 이슬람들입니다. 대한민국 땅에 번식력 강한 이슬람이 들어오면 2030년쯤에는 서울 거리가 외국인 이슬람 천지가 될 겁니다.” 네이버 카페 노노데모에 지난 2월 올라온 글이다.

 

무슬림과 사랑하면 민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2010년 한해 동안 국민권익위원회는 고용허가제 송출국가에서 이슬람 국가를 제외해 달라178건의 민원·제안을 접수했다. 지난해 10(69), 12(55)에 집중됐다. 올해는 이슬람 국가의 유학생을 받지 말라”, “이슬람 사원 첨탑 건설을 승인하지 말라등의 민원·제안이 늘었다. 무슬림이 발붙일 공간을 없애라는 이런 민원은 이슬람 노동자가 한국 여자를 집단 강간했다는 식의 글이 인터넷에 유포될 때마다 주기적으로 늘어난다.

 

대검찰청의 내·외국인 범죄자 통계(2010)를 보면, 국내 범죄의 99.1%는 한국인이 저지른다. 그다음이 중국인(0.5%), 베트남인(0.1%), 몽골인(0.1%) 순이다. 파키스탄인은 0.012%만 차지한다. 법무부 외국인 체류자 통계(20113월 현재)를 교차분석하면 인구 대비 범죄자 비율이 나온다. 한해 동안 전체 한국인 가운데 살인·절도·강간 등 형법상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2.2%. 체류 외국인은 몽골(2.9%), 러시아(2.3%), 대만(1.6%), 중국(1.3%), 파키스탄(1.3%) 순이다. 통계적으로 보아 불교(라마교기독교(러시아정교유교 국가 출신이 이슬람 국가 출신보다 더 폭력적이다.

 

그런 한국에서 더 머물 수 없었다. 크르테미르 후세인(40)씨는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벤치에 앉아 말했다. “이제 터키로 가야겠어.” 터키 앙카라대 한국어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문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에 유학한 무슬림은 고국에서 교수가 되고 싶었다. 윤알리야(36)씨는 명치 아래서 용기를 끄집어올렸다. “그럼, 오빠나랑 결혼할래?”

 

미국 유학 시절 무슬림이 된 윤씨는 터키 오빠를 인터넷 카페에서 만났다. 크르테미르씨는 한국인에게 이슬람을 소개하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했다. 윤씨는 카페지기에게 자주 질문을 보냈고, 터키 남자는 성실히 답변했다. 그리고 2006년 어느 여름밤, 터키 출신 카페지기는 일생일대의 질문에 답했다.

 

이 여자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거라 생각했죠.” 결혼 뒤 크르테미르씨는 한국에 귀화했다. 이름을 장후세인으로 바꿨다. 고려 중기, 원나라를 거쳐 한반도에 들어온 무슬림이 있었는데, 임금이 장씨 성을 내리고 덕수를 본관으로 하였다. 터키 남자는 자신의 두번째 성씨를 한국 역사책에서 따왔다.

매일 5번의 기도를 드리지만 한국 무슬림의 삶은 고되다.

 

장씨네 집에는 5살 딸과 5개월 아들이 있다. 부부는 딸을 터키계 국제유치원에 보냈다. 딸은 울면서 집에 왔다. 서양인 교사를 무서워했다. 한국 사람이 없다고 불안해했다. 눈이 크고 코가 오뚝한 덕수 장씨, 젠나는 천생 한국인이다. 엄마와 함께 마스지드’(이슬람 사원)를 찾는 무슬림이기도 하다

그리고 2년 뒤 젠나는 한국의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글 송경화 안수찬 기자 freehwa@hani.co.kr

사진 강재훈 류우종 신소영 기자 wjryu@hani.co.kr

출처: 한계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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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를 준비하는 "헌신된" 무슬림과 이슬람 테러

 

 

 

참으로 이상하게도 우리나라는 사건이 난 다음에 분주하게 수습하려는 습성이 강하다. 먼저 깨달은 사람들이 경고함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에 대해 콧방귀만 뀌다가 일이 벌어진 다음에야 왜 그랬느냐고 싸우기만 한다. 이번에 (참으로 안타깝게도) 벌어진 천안함 사건도 그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북한의 위협에 대해 아웅다웅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북한의 위협을 경고했었는가?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 사람들이 감지하지 못하는 중요한 위협이 있다. 바로 이슬람의 위협이다.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그 교세의 크기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테러 집단이라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 위협을 감지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감지하려는 의지조차 없다. 오히려 오늘날은 다문화사회를 존중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는 추세여서, 우리 사회에 있는 소수 민족, 소수 종교에 대해 보호하려는 입장이 강하다. 하지만 바로 그 틈새를 비집고 이슬람은 그 사악한 마수를 뻗치고 있다.

 

  지난 2007년 탈레반이 한국인들을 억류하고서, 아프간 파병 한국군을 철수하라고 위협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이라크에 파병중이기 때문에 이 위협은 아직도 유효하며, 그들은 지금도 우리나라에 테러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그 테러는 외부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충분히 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헌신된" 이슬람교도인 한 군인이 아프간이나 이라크로 파병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치자. 그가 어떻게 할 것 같은가? 단순히 파병에 참여하지 않는 소극적 자세만 취할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우리 군에 해를 가할 것이다.

 

  이러한 일은 실제로 미국에서 일어났었다. 지난 2009년 11월에는 아프간 파병을 위한 신체검사장에서 한 미국 장교가 무장 난사해서 12명의 미군이 사망하고 42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평범한 미군 소령이었으며 "헌신된" 무슬림이었다. 그는 평소에 "나는 미국인이기 이전에 무슬림인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늘 말했었다고 한다. 그러던 그에게 아프간 파병 명령이 떨어졌고, 그는 고민 끝에 신변을 정리하고 신체검사하는 부대로 무장한 채 들어가서 동료 장교와 사병들을 쏴죽인 것이다(크리스찬투데이, 2010.1.25). 이러한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최근 우리나라에는 탈레반 소속 의심자 한 명이 밀입국해 활동하다가 붙잡힌 사건이 있었다. 2월 22일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파키스탄인 A씨(31)는 2001년 입국해 불법체류하다가 2003년 6월에 추방되었으나, 그해 8월 친형의 여권에 자기 사진을 붙이고 재입국해 활동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단순히 외국인 근로자로 활동한 것이 아니라 이슬람 사원의 "이맘"(이슬람 성직자)으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그가 활동한 대구 성원(모스크)은 지역 파키스탄인들의 모금을 통해 세워진 조직이라 한다. 그렇다면 대구 성원에 소속된 모든 무슬림들은 이 파키스탄 밀입국자를 감싸주었다는 말이 된다. 대구 성원에는 파키스탄 사람들만 있지는 않았을 터, 그외 다수의 한국인 무슬림, 혹은 이슬람에 호의적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이 탈레반을 선전하고 다녔는지 알 수 없다.

 

  그는 2007년에 한 번 출입국관리소의 조사를 받았으나, 자신은 형일 뿐이고 조사대상인 동생(실제로는 자기 자신)은 이미 죽었다고, 파키스탄 지방 정부에서 발행한 사망증명서를 보여 주고 풀려 났었다. 그렇다면 이 일에 파키스탄 지방 정부까지 개입되었다는 말이 된다. 그가 이번에 경찰에 붙잡혀 모든 것이 밝혀진 것은, 1,000억 원 상당의 중장비를 해외로 빼돌리려는 혐의 때문이었다. 밀입국뿐 아니라 이러한 국가적 범죄 행위는 도저히 한 종교의 지도자가 행할 일이 아니다. 이슬람이 그래도 "종교"라면 선한 일을 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 코란에서도 선행을 하라고 말하고 있으며, 선행을 해야 천국 간다고 그들의 교리도 말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도 그는 종교지도자의 이름으로 이러한 일들을 행했다. 왜 그런가? 그것은 그가 바로 탈레반이었기 때문이다. 즉 "헌신된" 무슬림이었다는 것이다.

  헌신된 무슬림은 자기 종교의 전파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한다. 그들이 말하는 바 최고의 선행은 알라를 위해 싸우다 죽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전쟁이 그렇듯이 술수와 거짓말은 정당화되는 것이다. 그들은 항상 말하기를, 진정한 "지하드"는 물리적인 전쟁이 아니라 말과 행동(선행)으로 이슬람교를 전파하는 것이라 한다(마치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듯이). 하지만 그러한 전파에서마저도 그들은 거짓말을 밥먹듯 한다. 이것은 그들의 지하드가 물리적인 전쟁이든 종교의 전파든 거짓과 술수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들의 교리 가운데는 비무슬림들을 속여도 된다는 교리가 있다(이것을 "타끼야, Taqiyah"라고 한다). 심지어 코란에서는 이방인들과 맹세를 했어도 그것이 진심이 아니었다면 알라가 용서한다고 말한다(코란 2:225). 반면 성경은, 서원한 것은 손해를 입어도 바꾸지 말라고 말씀한다(시 15:4). 성경 전체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성품 중 하나는 "신실하심"(faithfulness)이다. 신실하시다는 것은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무슬림들은 지하드를 "악"과 싸우는 것이라 말하는데, 거짓으로 어떻게 악과 싸울 수 있는가? 그러나 성경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딤전 6:12)고 말씀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전쟁은 거짓과 술수로 행해지지 않는다. 더더욱 중장비들을 해외로 빼돌림으로 행해지지는 않는다.

 

  그 파키스탄 출신의 이맘이 1,000억 상당의 중장비를 빼돌리려 했을 때, 그는 무슨 목적으로 그 일을 하려 했을까? 아마도 개인적인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는 적어도 "이맘"이 아닌가? 그의 목적은 종교적인 것이며, 그가 탈레반임을 감안할 때 그것은 테러 자금이 아니었을까?

 

  자,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탈레반은 우리나라에 테러를 가하겠다고 벌써 수차례나 경고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일은 서서히 무르익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에 "헌신된" 무슬림은 외국인 근로자라는 신분으로 매우 많이 들어와 있다. 다문화가정으로 포장하여 우리 사회에 정착하고 있는 무슬림들은 또 얼마나 되는가? 그들에 의해서 헌신되어 가고 있는 한국 무슬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우리나라는 그들에 대해 너무 안일하고 관리가 너무 허술하다. 여권 사진 위조 하나 잡아내지 못한 것 아닌가? 이제 우리는 행정력을 철저히 동원해서 그들을 잘 관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반복해 말하지만 그들은 단순한 종교 집단이 아니다. 그들 종교의 경전 자체가 무력 확장을 주장하는 폭력의 종교, 전쟁의 종교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있기에 특정 종교를 박해하거나 제재할 수는 없지만, 그 종교가 국가 정체성을 위협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존재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평화의 종교, 관용의 종교로 포장해 오는 그들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우리의 믿음을 성경적 지식 안에 굳게 세워야 할 것이다.  BB

 

자료제공 : http://www.biblemaster.co.kr     출처 :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0년 5월  (통권 218 호)   page :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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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목사님의 무슬림 전도 이야기

 

우리는 무슬림들이 사는 한가운데서 사역하고있다. 1년에 네다섯번씩 학교앞공원에 대형 천막을 치고 집회를 한다. 성탄,부활절 행사와 문화공연 행사, 의료캠프 등이다. 이 모든 행사에는 적게는 700~800, 많게는 1300~1400명의 아이들과 동네 사람들이 모인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일때 복음을 전할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행사는 오래전부터 시작했고 지금까지 스무번 정도 넘게 집회를 했다. 집회때마다 항상 같은 성경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해왔다.

 

그것은 요한복음 316절과 사도행전 412, 그리고 코란 수라를 인용하면서 같은 설교를 반복했다.

 

두 성경 구절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세상의 구세주로 주셨으며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과 또한 이 세상에 는 어느 누구도 구원 얻을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는 말씀이다.

 

코란 구절은 예수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구절로 몇 년 전부터 코란을 통한 복음 전도의 일환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는 아주 유용해 많은 무슬림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코란 내용에는 첫째 예수는 거룩하다는 것과

둘째 예수는 죽음을 이기는 능력이 있다는 것,

셋째 예수는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나는 이구절을 가지고 설교를 하면서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자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늘나라로 갈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한다.

 

2007년의 일이다. 성탄행사 시작전 무슬림들 앞에서 설교를 했다. 일단 그때는 별 일이 없었다,

그런데 집회가 끝난 다음날 우리 센터에 정통무슬림복장을 한 k씨가 찾아왔다,

나는 처음에 약간 두려웠다. 그는 센터에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나를 만나 자고 했고 나는 그 형제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매년 4~5차례 학교앞 공원서 집회 다짜고짜 찾아온 무슬림에 긴장 예수설명하자 "복음을 받아들이겠다

 

그는 집회에 한번도 참석해 본적이 없는 사람이 었다. 그런데 우리가 스피커를 크게 틀어놓고 집회를 해서 공원 근처 자기 집까지 들렸던 모양이다.

그는 나의 설교를 계속 들어왔다고 말하면서 자신 역시 코란을 읽은 사람으로서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도대체 그런 내용이 어디에 나오는지 궁금했다고 찾아온 것이었다.

 

놀라웠다. 선교지에 와서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해 서 그랬는지 K씨의 등장에 순간 움찔했었다.

또 무슨 반대를 하려고 그러나 조마조마했었는데 그가 털어놓는 이야기는 신기할 정도였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이사람이 참 선지자와 하나님을 알게 하옵소서'

 

나는 본격적으로 K씨 앞에서 '인질'에 대해 그리고 예수가 누구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물론 성경말씀을 확인하면서 말이다.

 

그는 내말을 듣더니 몇가지 질문을 했다. '복음서는 변질된 책이 아니냐?' '하나님이 어떻게 아들이 있을수 있냐?'

 

는 질문 등이었다.

 

나는 성경의 여러 구절들을 찾아가면서 질문에 답했다. 그는 말씀을 확인하면서 차츰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마지막 설명을 하면서 그에게 복음에 반응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는 복음을 받아들이겠다고 고백햇고 예수를 믿겠다고 말했다.

 

나는 너무 감사해 그의 손을 잡고 기도햇다.

 

나는 이일로 하나님께서는 대중 집회를 통해서도 일하시고 집회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소리만 듣고도 구원하시는 분임을 경험하게 됬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고 / 앞으로 계속 잘 이끌어 주셔서 훌률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워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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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이슬람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2001년부터 매년 5만 명의 영국인이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이미 그 수가 40만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이슬람을 믿는 자들의 인구는 2백만 명에 이르며 기독교 다음으로 가장 큰 신도수를 가진 종교가 이슬람이라고 합니다.

 

서구에서 이슬람이 강한 세력으로 퍼지는 것에 대해 정책자들, 종교 학자들, 조사자들 및 언론은 곤혹스러워하고 있습니다. 특히 9.11사건 이후 개종은 상상할 수 없는 정도로 증가했는데 조사자들 대부분은 이에 대하여 서구사회에서 종교적, 문화적 가치관이 빠르게 침식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건강한 문화, 사회, 가정구조의 가치관이 준수되고 포괄적이며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혜택들이 제공되는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타임즈 매거진의 최근 보도에 의하면, 서구에는 수백 개의 이슬람성원이 세워질 예정이며 유럽의 많은 도시들에서는 하루에 다섯 번 아잔(예배 시간을 알리는 소리)을 들을 수 있게 될 것ㅇ라고 합니다.

 

유럽의 무슬림인구 증가로 인해 이슬람 사원과 센터의 수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음은 이에 대한 통계입니다.

-1963년 영국에는 고작 13개의 이슬람사원이 있었는데 지금은 600개의 이슬람사원과 1,400개의 이슬람단체들이 있습니다.

-프랑스에는 6백만여명의 무슬림이 거주하고 있으며 1,300개의 이슬람사원과 센터 및 600여개의 이슬람단체들이 있습니다. 또한 24시간 방송되는 무슬림라디오방송국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무슬림인구는 15년 후 8백만 명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탈리아에는 1백만 명의 무슬림이 거주하며 450개의 이슬람사원과 센터가 있습니다. 로마에서는 지방정부에 의해 기부된 3백만 달러의 땅에 대형 이슬람 성원이 세워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독일에는 4백만 명의 무슬림이 거주하고 있으며 1,400개의 이슬람 사원과 이슬람센터가 있습니다.

   독일의 무슬림인구는 전체인구의 4%정도입니다.

 

캐나다에서는 1991년과 2001년 사이에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자들이 130% 증가하였습니다.

 

스위스에서는 9.11사건 이후 6,000명의 기독교인이 이슬람으로 개종하였습니다.

 

샌디에이고 대학교에서 근무하는 연구자 잔 왁스에 의하면 2020년까지 4명 유럽인 중 1명이 무슬림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몇 년 후에는 유럽에서 무슬림들이 유럽 전체 근로자의 20%를 차지할 것인데 이는 유럽의 정치적 미래에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유럽에서 무슬림테러는 계속 될 것이며, 한국도 무슬림들이 계속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어서

사회 문화적인 측면에서 염려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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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의 증가는 이슬람테러와 관계가 있는가?

 


앞으로 미국의 이슬람 인구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에서 이슬람이 신도 수로 '세계 1' 종교가 될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발표가 나왔다

 

퓨리서치센터는 이슬람 심층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무슬림 인구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오는 2050년에는 전세계에서 기독교를 제치고 신도 수 1위 종교가 될 것"이라고 발표를 했으며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10~2050년 사이 무슬림 인구 증가율은 무려 73%로 이는 크리스천(35%) 증가율보다 두 배 이상 높다고 한다.

 

또한 2050년까지 힌두교(34%), 유대교(16%), 토속종교(11%) 등 대다수의 종교가 인구 증가에 따른 평균 종교인 증가율(35%)에도 못 미쳤지만 이슬람 인구는 급속도로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슬림이 가장 빠르게 늘고 있는 지역은 유럽이며,

 

보고서에는 "2050년까지 유럽 전체 인구의 10%가 무슬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유럽 사람 10명 중 1명이 무슬림이 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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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도 무슬림 인구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보고서에는 "현재 미국 내 무슬림은 전체 인구 중 약 0.9%를 차지하고 있지만, 2050년쯤에는 무려 2.1%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의 경우 난민 등 중동 지역 이민자에 대한 유입이 늘면서 무슬림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보고서에는 "미국 영주권을 받은 무슬림 이민자가 1992년에는 5%에서 2012년에는 10%로 늘었다"고 분석했다.

 

퓨리서치센터는 이슬람 인구 증가의 핵심 요인으로 젊은층의 무슬림화와 높은 출산 비율을 꼽았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이슬람권의 여성들은 평균 3.1명의 자녀를 낳고 있다. 반면 아시아. 북미. 유럽 등의 여성들은 평균 2.3명의 자녀를 둔다.

이처럼 급속히 무슬림 인국가 증가 한다면 장차 유럽, 미국, 아시아의 정치적 미래에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이슬람국가들에게는 무슬림인구의 증가는 이슬람 할랄과 무슬림할례와 같은 이슬람문화의 확장하는 것을 사당히 고무적으로 여기게 될 것으로 본다. 하지만 비무슬림들에게는 이슬람테러에 대한 문제를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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