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를 풍성하게 하신다!  (감사한 마음)

 

제목 : 하나님은 우리를 풍성하게 하신다!

 

8:7-18, 17:11-19, 고후9:6-15

 

우리가 행복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그 마음에 기쁨

 

이나 감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감사한 마음이 없는 행

 

복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일이나 사람에 대해서 감사

 

한 마음을 갖게 될 때, 그 순간 행복하다는 느낌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마음은, 그 마음에서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가질 수 없는 마음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욕심을 버

 

려야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럴 때에 우리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복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편집 디자이너 일을 하고 있는 노미숙이라는 분이 어느

 

잡지에 올린 글을 읽어 봤습니다.

 

이분은, 남편의 실직으로 인해서, 네 살 된 아이를 어린이

 

집에 맡기고 생활전선에 직접 뛰어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부럽지 않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서 멋지게 살아보겠다는 꿈

 

을 안고 결혼했는데, 이제는 그 꿈이 올라갈 수 없는 높은 나

 

뭇가지에 걸려버린 것처럼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피곤하게 살다보니, 이런 일 저런 일로 남편과 자

 

주 말다툼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남모르게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남들에게는 자신의 암담한 처지를 들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애써 씩씩한 척하면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일하고 일터에서 만난 40대 여성

 

을 통해서, 그녀는 가슴 뭉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

 

. 이분이 일하던 곳은 보건소였는데, 이분이 보건소에서 만

 

난 그 40대 여성은 혼자 힘만으로는 도저히 밖에 나갈 수 없

 

기 때문에 항상 침대에 누워서 지내야 했습니다.

 

그 여성은 1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온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혼자 앉아 있을 수 없어서,

 

간병인이 24시간 돌봐주어야 했습니다. 노미숙 씨는 그 여성

 

에게 지금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

 

, 그 여성이 말하기를 걷고 싶어요. 아주 조금씩이라도 걸

 

어서 집 앞을 왔다 갔다 할 정도만 되면 정말 소원이 없겠어

 

.”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순간, 노미숙 씨의 코끝이 찡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상태로 봐서는, 그녀의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그 여성이 바라는 그 소망은

 

지극히 소박한 꿈이었습니다. 사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꿈이 거의 이루어질 수 없는 소

 

망이기에,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노미숙 씨는, 걷는 것, 보는 것, 먹는 것, 숨 쉬는

 

, 이런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에,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고 합니

 

. 그런데, 40대 여성이 간절한 눈빛으로 걷고 싶어요.”

 

라고 말하자, 그 말이 그녀의 가슴을 파고들었던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니, 40대 여성에 비해서, 노미숙 씨는 너

 

무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녀

 

는 그가 누리고 있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 채, 누리지 못하는

 

것만을 생각하면서 불평하고 원망했던 것입니다.

 

그 여성의 처지에 비하면, 노미숙 씨가 현재 괴로워하고 있

 

는 문제들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야말로 너무나

 

하찮은 문제라서, 그런 문제로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스

 

러운 일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힘들거나

 

괴로운 일이 생길 때마다, ‘걷고 싶어요.’라고 말하던 그 40

 

여성의 간절한 외침을 떠올리곤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에베소서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5:20)’

 

했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범사에 감사하라

 

(5:18)’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 바라시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려운 처지에 있든

 

, 아니면 여유롭고 넉넉한 형편에 있던지, 어떤 형편에 있

 

든지 간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려

 

, 우선 감사의 씨를 열심히 뿌려야 합니다. 그래야, 그 씨가

 

싹이 트고 자라서 1020배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

 

. 다시 말해서, 우리가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에, 감사할 일이 계속해서 발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감사한 마음을 잊어버리고 불평과

 

원망을 많이 하게 된다면, 그 불평과 원망이 불행의 씨가 되

 

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다시 불평하고 원망할 일이 더 많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마음에 불평

 

과 원망의 가시덩굴과 엉겅퀴가 무성할 경우, 가뜩이나 연약

 

한 감사의 씨가 어떻게 싹이 터서 자랄 수가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말하기

 

씨앗을 적게 뿌린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뿌린 자는 많

 

이 거둔다.’고 하면서 진정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는 무엇이든지 베풀어주시고 풍성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즐거운 마음으로 바치는 사람을 사랑하

 

신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나 주시

 

고 또 풍성하게 주신다. 그래서 그가 필요한 것을 다 채울 수

 

가 있고, 풍성하게 되며, 그 남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줄 수 있는 것이다(고후9:7-8)’

 

요컨대,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그 자신이 풍족하

 

게 살아갈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남는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면서 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

 

님께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곡간에 곡식이 넘쳐나도 늘

 

가난한 생활을 면할 수 없습니다. , 다른 사람과 나눠 먹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통장에

 

잔고에 쌓여 있어도 아직은 부족하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합

 

니다. 다시 말해서, 그런 사람은 재산이 아무리 넉넉해도,

 

제로는 늘 가난을 면치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이

 

주신 덕분에,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줄 수 있는 것이

 

.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때, 그들은 감사하여 하

 

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그

 

들의 감사가 넘쳐흐르게 하는 좋은 결과를 낳게 해준다(고후

 

9:11-12)’고 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한 사람의 감사가 또 다

 

른 많은 사람의 마음에서 감사를 품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1.말할 것도 없이,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

 

사를 잊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말하기를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고 했습

 

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뜻이라는 것입

 

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형편과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간

 

, 그 형편과 처지에 따라서 이리저리 흔들리지 말고, 언제

 

나 항상 감사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

 

. 그런데, 우리가 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참으로 부족하고 허물

 

이 많으나,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너무나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처럼,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게 되면, 혹시 일이 뜻대

 

로 잘 풀리지 않더라도 그다지 불쾌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 경우, 사탄의 세

 

력이 아무리 우리를 불행에 빠뜨리고 싶어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이 잘 안 된다고 해

 

서 불평을 하거나 원망할 때에는, 마귀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감사보다 불평이 더 많은 사람은, 어김없이 사탄의

 

밥이 되어, 그 심부름꾼 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신명기 8장의 말씀은, 이스라엘 민

 

족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모세가 그의 백성에게 일러준 교

 

훈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장차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에, 그들이 그 땅에서 어떤 자세로 하나님

 

을 섬겨야 할지에 대해서 가르쳐준 말씀인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는 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서 살면, 그곳에서 그들은 부족하거나 아쉬운 것 없이 풍족하

 

게 먹고 살면서 행복한 인생을 지내게 될 텐데, 그때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찬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활이 넉넉하게 되더라도 하나님의 계명과 명령을

 

정확하게 잘 지켜야 한다고, 모세는 엄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세가 그렇게 말한 것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여유가 있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교만하게 될 가능성이 많

 

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죄에 빠지는 경우는, 그 형편이 어

 

렵거나 마음이 괴로울 때가 아닙니다. 오히려, 생활에 아무

 

문제가 없거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을 때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일신상 아무 문제가 없고,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면,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

 

며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일반적으

 

로 사람들은, 그 형편이 여유롭게 되면, 자신이 잘나서 그렇

 

게 된 줄 착각하고 교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들의 백성이 그렇게 될까봐 염려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배불리 먹고, 아름다운 집을 지어 행복하게 살면

 

, 소 떼와 양 떼도 불어나고, 은과 금도 많아지고, 여러분의

 

모든 재산이 많아졌을 때, 여러분은 절대로 교만해지지 마십

 

시오. 그리고 그럴 때, 여러분의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으

 

, 그렇게 되지 않도록 명심해야 합니다(8:12-14)”

 

모세는 17절에서 다시 한 번 거듭 말하기를 여러분은 아

 

무 탈 없이 잘 살게 되더라도 이 모든 재산은 내 손으로 일

 

해서 모았고, 내가 잘나서 부유하게 되었다.’하고 착각하지 말

 

.”고 경고했습니다. 모세가 이렇게 경고한 것도 결국은,

 

람이 그처럼 착각하거나 교만해지게 될 경우, 반드시 사탄이

 

찾아와서 그런 사람을 넘어지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금까지 내가 살아온 것은, 내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베풀어주신 은혜라 생각하고, 진심으로 감사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면, 우리의 감사가 넘쳐서

 

이웃과 나눌 수 있는 여유까지 갖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교만에 빠지

 

게 될 경우, 거의 100%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사탄의 시험에 빠지면, 우리 자신이 누렸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되고, 아울러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와 고통

 

을 안겨주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2.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어려운 이

 

웃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느 소설가가 가장 좋은 것은 다 공짜다.’라는 제목으로

 

월간 좋은생각’ 12월호에 기고한 글을 읽어봤습니다.

 

이분이 지난봄에 하와이에서 두 달 정도 지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와이에서의 생활을 한 문장으로 압축해서 말한다

 

, ‘하와이의 가장 좋은 것은 다 공짜다.’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호텔에서의 생활을 비롯하여, 맛있는 음식이나 쇼

 

핑 등은, 하와이 관광의 극히 일부분이라는 것입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 달콤한 공기, 화려한 꽃과 나무

 

, 맑은 바다와 수많은 물고기 등. 이처럼 좋은 모든 것은

 

다 공짜였다는 것이죠. 이런 것은, 그 누가 그만 보라고 간섭

 

을 하거나, 봐서는 안 된다고 금지시키는 일도 없습니다.

 

래도록 감상한다고 해서 돈을 많이 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야말로 공짜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댓가 없이 모든 사

 

람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인 것입니다. 하와이에만 그런 공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글쓴이가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보니,

 

리나라에도 그런 공짜가 너무나 많더라는 것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도 아침에

 

조금만 일찍 일어나면 붉은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는 아주 멋

 

진 광경을 구경할 수가 있습니다. 아주 조금만 더 일찍 일어

 

난다면, 동녘에 붉은 노을이 지면서 동트는 광경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광경이 얼마나 멋있고 황홀한지 모릅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가 공짜로 얻어서 살고 있는 것이 얼

 

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요즘 임플란트를 하시는 분들이 많은

 

, 임플란트 하나에 23백은 주어야 하는 줄 알고 있습니

 

. 그런데, 우리는 오래 전부터 돈 한 푼 안 주고서도 많은

 

치아를 제공받아 살고 있습니다. 모두 28개이니까, 적어도

 

5600만원치를 공짜로 얻은 셈입니다. 사랑니까지 따진다면,

 

모두 6400만원 치입니다. 이런 식으로 따진다면, 우리가 하나

 

님께로부터 공짜로 얻은 것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우리가 어쩌다가 먹는 물까지도 사먹게 되는 세상이 되었

 

지만, 아직 공기만큼은 돈 한 푼 내지 않고서도 무한정 호흡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공기만큼 귀한 것은 이 세상에 따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공기는 공짜입니다. 저는 그래서

 

아직도 가장 귀한 것은 공짜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공기보다 더 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감

 

사하는 마음입니다. 아무리 공기가 귀하다고 해도, 그 공기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른다면, 그 공기가 귀한 줄을 모르고 지

 

낼 것입니다. 사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믿음만큼 더 귀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

 

이지 못한다면, 믿음이 귀하다는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누가복음 17장의 말씀을 보면, 아주 놀라운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감사할 줄 알게 될 경우, 주님의 구

 

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는 도중에, 나병환

 

자 열 사람이 다가와서 자신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호소했습니

 

. 이에,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여주어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제사장

 

한테 가는 도중, 그들의 몸이 깨끗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만이 주님께로 다시 돌아와 큰소리로 하

 

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주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하다

 

인사를 올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열 사람이 다 깨끗하게

 

되지 않았느냐? 그런데,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사람

 

밖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려고 돌아온 사람이 없단 말이냐?”

 

시고, 주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한 그 사람에게 일어나 가거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구원했다.’는 말을, 어떤 번역본에서는 낫게 했다.’라고 번

 

역했습니다. 분명히, 나병환자들은 그 이전에 다 깨끗이 되었

 

는데, 다시 돌아와서 감사하다는 말을 한 그 사람에게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은 전인적(全人的)인 치유를 말씀하신 것으로 여겨

 

집니다. 그러니까, 나병환자의 그 몸만 깨끗하게 된 것이 아

 

니라, 그의 영혼까지도 깨끗하게 되어서 진정한 구원을 받았

 

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전인격적(全人格的)인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전인격적으로 구원을 받

 

도록 노력합시다. 그렇게 되려면, 언제나 항상 감사한 마음으

 

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어떤 처지와 형편에 있게 되든지,

 

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은혜에 진심으로 항상 감사

 

함으로써, 지금보다 더욱 풍성한 인생이 되어 살아갈 수 있기

 

,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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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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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 절기] 모세의 마지막 설교 ( 축복과 저주 )

 

모세의 마지막 설교 ( 축복과 저주 )

11:26-32

이제까지 읽은 신명기 11장의 결론으로 모세는 순종에 대한 권고의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모세의 권고는 대단히 감격적이고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께 영원히 따르게 하며 결코 낡아 없어지지 아니할 인상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을 애굽에서 광야까지 인도하셨던 사실과 복의 땅에 대한 약속과 경고,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복에 대해 말한 모세는 이제 결론으로 단호한 자세로 복과 저주는 너희 앞에 있으니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너희 자신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바로 26-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라고 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과 저주의 열쇠는 이스라엘백성들 자신이 선택하기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느냐 않느냐는 여부가 복과 화를 좌우한다는 의미에서 대조적으로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한 도를 지키고 행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을 것이지만 만일 하나님의 명령에서 돌이켜 듣지 않고 다른 신들을 섬기면 저주도 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모세는 다시 분명하게 복이 얼마나 바랄만한 것이며 저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게 하기 위하여 복과 저주가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사실들을 일일이 말했습니다.

 

27-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면 복이 될 것이고 28-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됩니다.

여기서 복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경우 받게 될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키며, 저주는 불순종할 경우 받게 될 징벌을 말합니다. 따라서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에 이스라엘백성들이 계속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생활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계속 누리게 될 것이고 아니면 반대로 불순종하고 거역하며 자기 멋대로 살게 되면 저주를 받게 될 것인데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를 백성들의 결정하기에 달렸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마치 기계처럼 이미 만들어진 계획에 따라 조정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또 강제로 훈련시켜서 사람의 용도에 따라 부려 먹는 동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또 생령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또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시되 창2:16-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시기를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17-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그러니 아담 자신에게 결정할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사람은 독재나 자유를 구속하는 강제명령은 개인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으로 싫어합니다. 사람에게 자유를 주셨는데 내 멋대로라는 방종과 혼돈한 삶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선택할 여유를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백성을 사랑하시고 순종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억지로나 강제가 아니라 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순종을 원하시므로 복과 저주에 대한 선택권을 전적으로 사람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 못됩니다. 선택은 자유이지만 선택한 결과는 본인이 책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갈 때 굳이 철학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하루에도 크고 작은 수도 없는 이것이냐 저것이냐는 갈림길에서 이것이다. 라고 선택하는 일을 실감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자신에게 선택의 문제가 제기될 경우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맞게 선택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가장 유익한 것으로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 될 것입니다.

삼상15:22-사무엘이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번제나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겠습니까? 잘 들으십시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23-거역하는 것은 점을 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죄와 같습니다. 임금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임금님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더구나 28-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사람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게 된다. 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알지 못하던 다른 신이란 이스라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또한 섬겨서도 안 되는 가나안 사람들의 우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바알, 아스다롯, , 하늘 황후 등이 있는데(왕상11:7;

 

16:31;7:18) 모두 사악하며 음란한 제전(祭典)에 의해 숭배되던 특징이 있습니다<6:14>.

28-저주를 받으리라는 말도, 모세 설교의 독특한 특징은 먼저 순종하므로 누리게 될 풍성한 복을 말한 후, 이어 불순종함으로 당하게 될 무서운 저주를 밝히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리하여 백성들을 항상 순종과 불순종의 선택 앞에 세워놓고 그들의 자발적인 순종을 하도록 권고하는 말입니다.

여기서도 모세는 지금까지(8-25) 말한 복과는 달리, 만일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다른 신들을 좇아 섬길 경우 가나안 땅의 모든 풍요로움도 한낱 물거품에 지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고합니다.

 

29절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그리심산에서는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하라는 말씀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복의 땅을 약속의 선물로 받은 후 그 복이 영원하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하나님께서 이르시는 모든 말씀을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온 정열을 다하여 가르쳤습니다. 복과 저주는 이미 수십 차례에 걸쳐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임을 가르쳤는데 29-그 복과 저주를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땅에서 스스로 선포하라고 했습니다. 선포하는 그리심산의 축복과 에발산의 저주,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들이 있습니다.

 

모세는 27:11-13에 다시 강조합니다. 이 모세의 지시는 하나님말씀에 순종하거나 불순종할 때 따르는 복과 저주에 대하여 보다 생생히 교훈하기 위함인데, 훗날 여호수아는 그대로 실행했습니다(8:30-35).

 

헷세드강해 29-그리심산에서 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위의 두 산에서 복과 저주를 선포하라고 명령하셨는데 왜 그리심산이 복의 산으로 에발산이 저주의 산으로 지정되었을까? 이에 대하여 여러 가지 주장이 있는데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두 산의 자연적 양상이 복과 저주를 구별하게 되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두 산의 위치가 복과 저주의 산으로 지정된 이유라는 설이다. '스트라우스'(Strauss) 같은 학자는 그리심산의 비옥함과 에발산의 황폐함을 주장하는가 하면 '로빈슨'(Robinson)은 두 산이 모두 벌거숭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이 두 산의 사이에 있는 세겜에서 볼 때 그리심산이 해뜨는 동쪽에 위치해 있어서 별이 드는 반면 에발산은 동쪽을 등지고 있어서 그늘이 지기 때문에 각기 축복과 저주의 산으로 지정되었다는 설이 더 적절하다. 왜냐하면 성경은 어디에서나 ''은 복으로 '어두움'은 저주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참고

 

1. 환경적 조건의 복과 저주

 

그리심산과 에발산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산이며 골짜기에는 모레 상수리나무가 있는 세겜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1) 두 산의 골짜기 세겜

 

아브라함의 제사: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하나님의 부름에 받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최초로 이 두 산의 골짜기인 모레 상수리나무가 있는 세겜 땅에서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야곱의 청결: 야곱은 하란에서의 나그네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이곳에서 자기 가족들이 지니고 있는 이방 신상을 땅속에 묻어 자기와 그 가족을 청결케 하였던 곳입니다(35:4).

즉 믿음의 조상이 드린 제사와 청결은 그곳을 중심으로 양편으로 보이는 그리심산과 에발산과 복과 저주를 상징하는 의미로 나뉘었습니다.

 

2) 두 산의 비교적 요건들

 

두 산은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서로 상대적인 극과 극을 보여 주는 비교적인 요건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심산: 골짜기를 중심으로 보았을 때 해가 뜨는 동편에 위치한 양지 바른 곳이며 또한 수목이 울창하여 아름답고 풍요로움을 보여 주는 산입니다.

 

에발산: 그리심산 맞은편 해가 지는 서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산은 수목이 자라지 못하는 황폐한 산입니다. 동편은 밝아옴의 복을 상징하며 서편은 어두워짐의 저주를 상징합니다.

  

또한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은 복의 상징이며 황폐함은 저주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지리적 조건의 축복과 저주

 

그리심산과 에발산의 지리적 조건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약속의 선물로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복의 땅인 가나안 지역의 중앙에 위치해 있습니다.

 

1) 에덴동산과의 비교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위하여 동방에 에덴동산을 만드셔서 그곳에 살게 하셨습니다(2). 그러므로 에덴동산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최초로 만드신 복의 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은 범죄로 인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을 선택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곳에 들게 하시고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에 순종하게 하시므로 에덴동산의 회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복의 땅입니다.

 

2) 위치적 비교

 

에덴동산의 중앙에는 영생할 수 있는 생명나무와 그 실과가 있었고 죽음의 저주가 담겨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그 실과가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의 중앙에는 복의 그리심산과 저주의 에발산이 위치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과 저주를 언제나 인간 생활의 중앙에 두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하여야 합니다. 이는 곧 우리의 중심에 복과 저주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3. 복과 저주를 선포하라고 하신 뜻

복과 저주는 언제나 우리의 삶의 중심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 공존하는 복과 저주를 하나님은 우리들 스스로가 선포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1) 제한된 선택의 자유 의지

인간은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의 결과는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복과 저주입니다. 이 복과 저주가 선포된 후 선택은 인간의 의지에 따라 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입으로 시인한 것들을 복과 저주로 확정하신다는 사실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 행한 대로의 결과

하나님은 인간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누구나가 입술의 열매와 행위의 열매를 먹고 그 영혼과 육체의 삶을 유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에 합당한 선택에는 복으로 갚아 주시고 저주에 합당한 선택에는 저주로 갚아 주실 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12:36, 37)는 말씀을 명심해야겠습니다.

 

31-당신들은 이제 요단 강을 건너가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당신들이 그 땅을 차지하고 자리를 잡거든, 가나안에 반드시 들어가 그 곳에서 살 것을 말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그들의 신앙을 격려하기 위하여 너희가 요단을 건널 것이 확실하니(31) 요단 저편에서 그 일을 행하라(30. 모세가 말한다). 이 일을 가나안에서 행해지도록 제정함은 그들이 그 땅을 소유하게 될 것을 그들에게 확실케 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것과 같은 증거인 것이다(3:12).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라."

 

또 그것은 그들이 저주를 피하고 복을 얻기 위하여서는 복종해야 된다는 책임을 일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그 명령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명령을 공중 앞에 선포한 엄숙한 사실에 대한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32-당신들은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준 모든 규례와 법규를 성심껏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그래야 너희가 이 엄숙한 사실에 대하여 스스로 배신하지 않을 수 있느니라.

이 구절 들은 위의 모든 말씀의 결론으로 모세는 백성들에게 다시 한 번 가나안에 들어가는 확신과 아울러 들어간 후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계명을 부디 잘 지키라는 권면을 한 것입니다.

우리의 행복과 불행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불순종하고 내 멋대로 사느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순종과 불순종을 선택에 따라서 생명과 죽음 번성과 멸망 축복과 저주가 확실히 갈라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꼭 받고 살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의 일에 저를 사용하여 주소서. 저는 부족하고 준비된 것이 적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쓰임받기 원하오며 더욱 순종하기 원합니다. 제게 주의 복을 허락하시고 함께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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