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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유대교 (탈무드, 카발라)

성경의 유대인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하나님의 백성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유대인이나 이스라엘을 좋게 여기고, 우리와 친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유대인에 대한 예언을 낙관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하지만,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유대인의 타락을 보여줄 뿐, 회개했다는 기록이 없다.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버리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왕하 23:2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택한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한 이 성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말 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만나 복음을 전한 바울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것을 보고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졌다!'고 선언했습니다. 

행 28: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유대교는 구약성경대로 믿는 신앙이 아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유대교는 주후85년 바리새파의 얌니아 회의 이후에 노선이 결정된 바리새파 전통을 따르는 랍비종교를 말한다. 
‘유대교의 경전은 율법, 지도자는 랍비, 모이는 곳은 회당’으로 알려졌지만, 유대교는 혼합종교이고, 율법보다는 탈무드와 카발라를 더 중시한다. 랍비는 율법전문가가 아니라 탈무드전문가이고, 유대회당의 건축양식이나 사용하는 문양에 사탄숭배적인 것들이 많다. 

태양 마차를 타고 있는 헬리오스(태양신)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된 12별자리의 상징(점성술)은 이스라엘에 남아있는 7개의 고대 회당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유대교의 종교혼합을 보여준다. 

 


 
두 기둥, 태양창, 아치 등 프리메이슨 양식으로 지어진 유대교 회당

자력구원을 가르치는 생명나무 문양의 파로켓(성경두루마리 보관함 가리개)

두 기둥 양식으로 지은 회당 ? 육각성 창문, 원과 두 돌판과 아치 디자인 창문  ?

Magen David Synagogue, Kolkata ? 체크무늬 바닥, 중앙의 제단은 사탄을 숭배하는 프리메이슨 로지와 같다.


유대교 심벌 - 육각성(사탄)은 정삼각형(남신, 태양, 하늘)과 역삼각형(여신, 달, 땅)이 합해진 것이다. 이는 카발라가 가르치는 자력구원을 설명하는 '생명나무 세피로드'를 기호로 나타낸 것이다. 

탈무드는 바벨론에서 본 종교들과 사상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율법을 해석한다. 그래서 혼합종교문서이고, 하나님의 뜻과 다른 결론을 내리고, 성경과 반대되게 가르치기도 한다. 
'유대인이 유대교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최종목표'라고 가르친다. 여기서 단일종교와 NWO(신세계질서)가 나왔다.

카발라는 여러 종교들과 사상들의 영적인 가르침을 종합한 혼합종교 문서이다. 여호와 대신에 ‘아인 소프(무한자)’를 최고존재로 가르친다. 
인간이 스스로 구원을 얻는 방법을 가르친 도표가 생명나무 세피로드다. 

생명나무 세피로드

세 기둥이 되는 생명나무

육각성이 되는 세 기둥

생명나무 세피로드를 건축물로 표현한 것이 두 기둥, 첨탑, 탑이다. 두 기둥이 건물에 합해진 형태가 고딕 양식이다. 

힌두교 심벌 - 육각성 속에 십자가 있다. 십자가 교회의 기호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유대교 심벌이 힌두교처럼 육각성인 것은 내용이 같다는 뜻이다. 생명나무 세피로드를 기호로 나타낸 것이 육각성이다. 생명나무 세피로드가 힌두교의 구원관과 같다는 뜻이다. 

카발라는 종교다원주의체제다. 카발라의 가르침이 헤겔철학에 반영되었다. ‘정반합, 절대정신, 제일원인’은 모두 카발라의 가르침이다. 

카발라는 현재 사탄숭배자들이 지침서로 쓰고 있다. 

종교다원주의, 종교통합(단일종교)운동, 단일정부운동이 모두 유대교(유대인)에서 나왔다. 
신약성경은 유대인들의 타락을 말할 뿐,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해놓지 않았다. 이를 이해해야, 유대인들이 왜 주님을 죽이고, 복음전파를 그렇게 방해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성경의 이스라엘과 지금의 이스라엘은 다르다.
성경의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룬 나라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징벌로, 나라가 망하고 지도자들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기도 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징벌로 파괴된 후, 재건되었고, 개축한 후, 다시 파괴되었다. 성전파괴는 하나님께서 '그런 타락한 제사를 받지 않겠다!'고 하신 뜻임을 보여준다. 

 



주후70년에 로마에 의해 유다가 망하자, 많은 유대인들이 유대땅을 떠나 디아스포라가 되어 2,000여 년을 이방에서 떠돌며 살았다. 이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탈무드의 가르침을 따라 유대인우선주의를 추구하며 비윤리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당했다. 신앙과 윤리에서는 용납할 수 없었다. 

유대인들은 이를 ‘핍박당했다.’고 주장한다. 정치나 경제적인 면에서는 불이익을 당하고 재산을 뺏겼으므로, 그런 면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성경이 금하는 고리대금업이나 정착농업인들이 하지 않던 상거래로 재산을 축적했다. 

혈통적으로 가장 정통성이 있는 유대인들은 프리메이슨 국가인 미국에서 살면서 미국과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 
시오니즘운동으로 재건된 현재의 이스라엘은 순혈 유대인이 아니라 혼혈 또는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 유대교인들로 구성되었다. 출신배경에 따라 신분차별이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건국초기에 형성된 집단농장(기부츠)은 사회주의방식부터 자본주의방식까지 다양하다는 것은 잘 알려졌다. 하지만, 시오니즘운동의 주축세력이 러시아에서 볼세비키혁명을 일으킨 공산사회주의자들이었고, 그로 인해, 재건된 이스라엘은 공산사회주의 체제라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의 이스라엘은 노골적으로 사탄을 숭배한다. 

두 개의 삼각형을 겹쳐서 만든 사탄을 상징하는 6각성을 국기로 쓴다. - 사탄숭배국이란 공식표시다.

로스 차일드 가문의 재정지원으로 건축한 안팎으로 사탄적 상징이 가득한 이스라엘의 대법원 청사

이스라엘 에일라트에 있는 프리메이슨 피라미드와 두 기둥, 전시안

이스라엘 제1도시 텔아비브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세계최대의 동성애축제로 유명하다. - 동성애자들의 육각성과 이스라엘국기의 육각성이 같다. 

현재,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를 장악하고 사탄숭배체제로 만드는 일에 힘쓰는 프리메이슨의 핵심지배세력이 유대인 자본가들이며, 프리메이슨의 모든 행동원리를 탈무드와 카발라가 제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나 유대인을 미화하고,‘탈무드를 가르치자!’ ‘유대인의 교육법인 하브루타(토론학습법)를 도입하자!’ ‘유대문화가 부럽다!’는 사람들이 있다. 

?성경은 ‘이스라엘이나 유대인을 사랑하라!’거나 ‘본받아라!’고 하시지 않는다. 
성경은 구약에서 신약까지 '유대인들이 타락했고, 하나님을 떠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바울이 안타까워한 이유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다는 것만 말씀하신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회복’은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만 섬길 때 베푸실 은혜이지, 지금처럼 사탄숭배에 빠진 유대교를 붙잡고 있는 한은 안 될 것이다.

이스라엘에 ‘성지순례(聖地巡禮)’를 가는 사람들도 있다. 
성경의 정황을 이해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답사(踏査)'하는 것은 성경을 바로 이해하는데 유익한 일이지만, 현재의 이스라엘은 결코 성지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위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아야 하거나, 성경에 나오는 역사적인 장소를 찾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성지’라 부르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미화하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순례(巡禮)’는 ‘종교상의 특정장소를 찾아가 참배(參拜)하는 것’을 말한다. 즉, 우상종교의 예배행위이다. 
‘성지순례(하즈)’는 이슬람교도의 기본의무로, 모든 이슬람교도는 평생에 한 번은 반드시 그들의 성지인 메카를 찾아가 참배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왜 그들의 용어를 쓰면서, 그들의 행위를 따르고 있는가? 

심지어, 스페인에 있는 카톨릭의 '산띠아고 길' 순례를 미화하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그 길을 찾아가 걸으면, 천국에 다다르는가? 카톨릭이 가르치는 구원에 유익한 '공덕'을 쌓는 일일 뿐이다. 

중세 카톨릭은 '구원에 이르는 공덕'을 내걸어 사람들을 십자군에 동원했다. 


산띠아고(=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 길 870km 약도

가리비는 비너스(아세라의 그리스식 이름)를 상징한다.  가리비 위의 빨간 십자는 '산티아고(=야고보) 십자가'라고 하는데, 뜨레스 디아스에서도 쓴다. 예수회가 만든 프로그램이라는 증거다. 


'꾸르시요'는 '짧은 코스(단기강습회)'란 뜻으로, '뜨레스 다아스(3일)' 프로그램의 원래 이름이다. 


산띠아고 길 순례완료 증명서

인장은 빛을 발하는 태양이다. 예수회의 심볼도 태양상이다. 

 


선교사 언어 교육원 (선교사들 외국어 교육하는 곳)

30개 언어 동영상의 문법과 회화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폴리아카데미 [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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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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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유대교(탈무드, 카발라), 이스라엘 이해하기

 

 

 

성경의 유대인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하나님의 백성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유대인이나 이스라엘을 좋게 여기고, 우리와 친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유대인에 대한 예언을 낙관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하지만,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유대인의 타락을 보여줄 뿐, 회개했다는 기록이 없다.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버리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왕하 23:2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택한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한 이 성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말 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만나 복음을 전한 바울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것을 보고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졌다!'고 선언했습니다.

행 28: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유대교는 구약성경대로 믿는 신앙이 아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유대교는 주후85년 바리새파의 얌니아 회의 이후에 노선이 결정된 바리새파 전통을 따르는 랍비종교를 말한다.
‘유대교의 경전은 율법, 지도자는 랍비, 모이는 곳은 회당’으로 알려졌지만, 유대교는 혼합종교이고, 율법보다는 탈무드와 카발라를 더 중시한다. 랍비는 율법전문가가 아니라 탈무드전문가이고, 유대회당의 건축양식이나 사용하는 문양에 사탄숭배적인 것들이 많다.

태양 마차를 타고 있는 헬리오스(태양신)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된 12별자리의 상징(점성술)은 이스라엘에 남아있는 7개의 고대 회당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유대교의 종교혼합을 보여준다.
 
두 기둥, 태양창, 아치 등 프리메이슨 양식으로 지어진 유대교 회당

자력구원을 가르치는 생명나무 문양의 파로켓(성경두루마리 보관함 가리개)

두 기둥 양식으로 지은 회당 – 육각성 창문, 원과 두 돌판과 아치 디자인 창문  ​

Magen David Synagogue, Kolkata – 체크무늬 바닥, 중앙의 제단은 사탄을 숭배하는 프리메이슨 로지와 같다.


유대교 심벌 - 육각성(사탄)은 정삼각형(남신, 태양, 하늘)과 역삼각형(여신, 달, 땅)이 합해진 것이다. 이는 카발라가 가르치는 자력구원을 설명하는 '생명나무 세피로드'를 기호로 나타낸 것이다.

탈무드는 바벨론에서 본 종교들과 사상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율법을 해석한다. 그래서 혼합종교문서이고, 하나님의 뜻과 다른 결론을 내리고, 성경과 반대되게 가르치기도 한다.
'유대인이 유대교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최종목표'라고 가르친다. 여기서 단일종교와 NWO(신세계질서)가 나왔다.

카발라는 여러 종교들과 사상들의 영적인 가르침을 종합한 혼합종교 문서이다. 여호와 대신에 ‘아인 소프(무한자)’를 최고존재로 가르친다.
인간이 스스로 구원을 얻는 방법을 가르친 도표가 생명나무 세피로드다.

생명나무 세피로드

세 기둥이 되는 생명나무

육각성이 되는 세 기둥

생명나무 세피로드를 건축물로 표현한 것이 두 기둥, 첨탑, 탑이다. 두 기둥이 건물에 합해진 형태가 고딕 양식이다.

힌두교 심벌 - 육각성 속에 십자가 있다. 십자가 교회의 기호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유대교 심벌이 힌두교처럼 육각성인 것은 내용이 같다는 뜻이다. 생명나무 세피로드를 기호로 나타낸 것이 육각성이다. 생명나무 세피로드가 힌두교의 구원관과 같다는 뜻이다.

카발라는 종교다원주의체제다. 카발라의 가르침이 헤겔철학에 반영되었다. ‘정반합, 절대정신, 제일원인’은 모두 카발라의 가르침이다.

카발라는 현재 사탄숭배자들이 지침서로 쓰고 있다.

종교다원주의, 종교통합(단일종교)운동, 단일정부운동이 모두 유대교(유대인)에서 나왔다.
신약성경은 유대인들의 타락을 말할 뿐,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해놓지 않았다. 이를 이해해야, 유대인들이 왜 주님을 죽이고, 복음전파를 그렇게 방해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성경의 이스라엘과 지금의 이스라엘은 다르다.
성경의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룬 나라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징벌로, 나라가 망하고 지도자들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기도 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징벌로 파괴된 후, 재건되었고, 개축한 후, 다시 파괴되었다. 성전파괴는 하나님께서 '그런 타락한 제사를 받지 않겠다!'고 하신 뜻임을 보여준다.

주후70년에 로마에 의해 유다가 망하자, 많은 유대인들이 유대땅을 떠나 디아스포라가 되어 2,000여 년을 이방에서 떠돌며 살았다. 이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탈무드의 가르침을 따라 유대인우선주의를 추구하며 비윤리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당했다. 신앙과 윤리에서는 용납할 수 없었다.

유대인들은 이를 ‘핍박당했다.’고 주장한다. 정치나 경제적인 면에서는 불이익을 당하고 재산을 뺏겼으므로, 그런 면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성경이 금하는 고리대금업이나 정착농업인들이 하지 않던 상거래로 재산을 축적했다.

혈통적으로 가장 정통성이 있는 유대인들은 프리메이슨 국가인 미국에서 살면서 미국과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
시오니즘운동으로 재건된 현재의 이스라엘은 순혈 유대인이 아니라 혼혈 또는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 유대교인들로 구성되었다. 출신배경에 따라 신분차별이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건국초기에 형성된 집단농장(기부츠)은 사회주의방식부터 자본주의방식까지 다양하다는 것은 잘 알려졌다. 하지만, 시오니즘운동의 주축세력이 러시아에서 볼세비키혁명을 일으킨 공산사회주의자들이었고, 그로 인해, 재건된 이스라엘은 공산사회주의 체제라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의 이스라엘은 노골적으로 사탄을 숭배한다.

두 개의 삼각형을 겹쳐서 만든 사탄을 상징하는 6각성을 국기로 쓴다. - 사탄숭배국이란 공식표시다.

로스 차일드 가문의 재정지원으로 건축한 안팎으로 사탄적 상징이 가득한 이스라엘의 대법원 청사

이스라엘 에일라트에 있는 프리메이슨 피라미드와 두 기둥, 전시안

이스라엘 제1도시 텔아비브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세계최대의 동성애축제로 유명하다. - 동성애자들의 육각성과 이스라엘국기의 육각성이 같다.

현재,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를 장악하고 사탄숭배체제로 만드는 일에 힘쓰는 프리메이슨의 핵심지배세력이 유대인 자본가들이며, 프리메이슨의 모든 행동원리를 탈무드와 카발라가 제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나 유대인을 미화하고,‘탈무드를 가르치자!’ ‘유대인의 교육법인 하브루타(토론학습법)를 도입하자!’ ‘유대문화가 부럽다!’는 사람들이 있다.

​성경은 ‘이스라엘이나 유대인을 사랑하라!’거나 ‘본받아라!’고 하시지 않는다.
성경은 구약에서 신약까지 '유대인들이 타락했고, 하나님을 떠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바울이 안타까워한 이유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다는 것만 말씀하신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회복’은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만 섬길 때 베푸실 은혜이지, 지금처럼 사탄숭배에 빠진 유대교를 붙잡고 있는 한은 안 될 것이다.

이스라엘에 ‘성지순례(聖地巡禮)’를 가는 사람들도 있다.
성경의 정황을 이해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답사(踏査)'하는 것은 성경을 바로 이해하는데 유익한 일이지만, 현재의 이스라엘은 결코 성지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위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아야 하거나, 성경에 나오는 역사적인 장소를 찾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성지’라 부르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미화하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순례(巡禮)’는 ‘종교상의 특정장소를 찾아가 참배(參拜)하는 것’을 말한다. 즉, 우상종교의 예배행위이다.
‘성지순례(하즈)’는 이슬람교도의 기본의무로, 모든 이슬람교도는 평생에 한 번은 반드시 그들의 성지인 메카를 찾아가 참배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왜 그들의 용어를 쓰면서, 그들의 행위를 따르고 있는가?

심지어, 스페인에 있는 카톨릭의 '산띠아고 길' 순례를 미화하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그 길을 찾아가 걸으면, 천국에 다다르는가? 카톨릭이 가르치는 구원에 유익한 '공덕'을 쌓는 일일 뿐이다.

중세 카톨릭은 '구원에 이르는 공덕'을 내걸어 사람들을 십자군에 동원했다.


산띠아고(=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 길 870km 약도

가리비는 비너스(아세라의 그리스식 이름)를 상징한다.  가리비 위의 빨간 십자는 '산티아고(=야고보) 십자가'라고 하는데, 뜨레스 디아스에서도 쓴다. 예수회가 만든 프로그램이라는 증거다.


'꾸르시요'는 '짧은 코스(단기강습회)'란 뜻으로, '뜨레스 다아스(3일)' 프로그램의 원래 이름이다.

 

인장은 빛을 발하는 태양이다. 예수회의 심볼도 태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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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의 율법(Shari'a of fslam)

  

이슬람교의 율법인 "샤리아(Shari'a)"는 모든 이슬람의 문화에 있 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율법의 구조는 일반적인 법(common law)이라기 보다는 시민법 (civil law)으로써, 이는 영국이나 미국에 서 실행되고 있는 것과 같은 것들이다.

 

이슬람교의 중심적인 교리가 강조되고 있는 샤리아(Shari'a)를 살 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슬람교의 중심적이고 근본적인 개념이 포함돼 있는 "샤리아"의 문자적인 뜻은 "물의 장소에로의 길"(path to the watering place)이다. 그러나 그것이 종교적으로 적응되는 뜻은 신 에 의해서 명령된 명백한 것이나 혹은 암시적인 것으로서 생활의 모든 방법을 뜻한다. 이 단어 "샤리아(Shari'a)"는 코란(Koran)에 사용 된 용어인데 , 코란은 다른 종교에도 다른 샤리아를 가지고 있지만 모 든 종교는 근본적으로 하나의 "샤리아(Shari'a)"를 가지고 있다고 주 장한다. 샤리아는 모슬림 교사들에 의하여 형식화된 것으로써, 그 개 념은 신앙의 교리로 실행적인 것과 법에 대한 것이다 (Encyclopaedia Britannica, 5.v. "Islam" p. 664). 그러나 이러 한 법과신학을 위시한 논쟁과 샤리아(Shari'a)의 네 겹에 대한구분 은 이슬람교의 수니(Sunni)와 쉬이테(Shi'ice)파로 나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대하여 알프레드 구일라움(Guillaume, Alfred, p. 103)이 설명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수니 파와 쉬이테 파의 다른점들은 이론적 견지에서. 그들의 법 안에 서 최고의 권위에 대한 쉬이테의 개념은 수니파의 개념과는 전연 다르지 만 그들이 실행하는 것들은 그렇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Shi'its) 네 개 의 학파(school)와 이즈마(iima)리를 부인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히든임암(Hedden Imam, 저자주: 수니파에 의해서 이슬람법과신학 혹은 기도를 인도하는 권위를 가진 한 모슬림으로 인정된 자)" 만이 오 직 신자가 무엇을 행하고 믿을 것인가를 결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 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신뢰하는 학자들은 "이즈티하드(ijtihad)"의 능력을 아직 연습하거나 혹은 그들 개인의 의견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을 수니파는 이 미 수 천년 전이나

 

 

이슬람교의 경전 코란(Qur'an)

   

이슬람교의 기본적인 교리는 코란(Qur'an)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케네쓰 보아(Boa. Kenneth, p, 52)는 코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코란(Koran)은 이슬람교일 권위 있는 경전이다 신약 성경의 5분의 4정도의 분량으로서, 114(surahs)으로 되어 있다 상당 부분은 모 하메드에 의해서 기록이 되었으며 . 나머지 부분은 모하메드가 죽은 후 에 그가 살아 생전에 한 말들을 중심으로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기록이 된 것이다(Boa. p 52)

   

코란은 수년에 걸쳐 이슬람교의 창시자 모하메드가 한 말들을 모아 편집한 것과 그의 초기 제자들에 의해서 다시 편집된 것이다. 이것들 의 의미를 "하디쓰(Hadith)", '전통(tradition) '이라고 하며. 이 전통의 말들을 "수나(Sunna)", '풍습(custom)'이라고 한다. "하 디쓰(Haddith)"는 코란을 보충하는데, 이것은 마치 유대교 (Judaism)에서의 율법을 "탈무드(Talmud)"가 보충해 주는 것과 같 은 것이다.

   

이슬람교에 있어서 코란(Qur'an)은 모슬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이다. 코란은 그들에게 가장 권위 있는 경전으로서, 신앙에 잔한 모든 일과 그들이 실행해야 하는 일을 안내한다. 코란은 인간을 위한 하나 님의 말씀으로서 모하메드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그들은 이에 더하여 모세의 "토라트"(Torat), 선지자들의 책들인 "슈후프"(Suhuf), 다 원의 시편인 "자부르"(Zabur), 그리고 예수의 복음인 "인질"(Injil) 이 포함되었다고 주장한다. 코란은 어떤 계시된 책들보다 탁월한 것으 로서 오직 코란만이 정통성을 가진 책이라고 주장하며 모든 다른 책들 은 오염되었기 때문에 거의 인정할 수 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 교는 기독교의 신약 성경을 예수의 복음, "인질"(injil)로 간주하지 않으며, 그것은 예수의 말이 아니라 예수에 관한 다른 사람의 말이라 고 주장한다 이슬람은 예수의 본래 말들은 오염되었으며 또한 많은 부분은 잃어 버렸다고 믿는다. 오직 코란만이 오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은 모하메드와 코란만을 믿고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코란은 114 수라하(surahs), 114 (chapters)으로 되어 있는데, 장의 길이에 따라 긴 장으로부터 짧은 장의 순서로 편집이 되어 있다. 이슬람은 코란이 아랍어로 계시되고 쓰여졌다고 믿는다. '하나님에 의해서 계시되었기 때문에, 모슬림들은 코란이 다른 언어로 번역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코란을 다른 언 어로 번역할 권위가 연다는 것이다. 만약 누구든지 다른 언어로 번역 된 코란을 읽는데 친숙한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사람에게 동정적이어 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아랍어가 풍부한 언어인 만큼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원본에 가깝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것은 단순히 믿을 만한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유효하다는 것으로 평가되어 야 한다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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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 / 탈무드와 논리

 

끊임없이 탈무드를 놓고 토론하는 유대인, 그들 중에 위대한 법률가와 학자가 많이 배출되어 온 것은 탈무드를 통한 논리 공부와 무관하지 않다. 뛰어난 감성을 지닌 한국인에게 탈무드적 논리력이 추가된다면 어떤 놀라운 결과가 나올지 상상해 보라.

어느 젊은이가 탈무드를 공부하려고 랍비를 찾아왔습니다. 랍비가 물었습니다. “자네, 아람어(BC 4-5세기 경 유대 지역에서 쓰였던 공용어)를 아는가?” 젊은이가 대답하였습니다. “모릅니다.” “그래? 그렇다면 히브리어는 아는가?” 랍비가 물었습니다. “모릅니다.” 젊은이가 대답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토라(모세 오경)는 공부한 적이 있는가?” 랍비가 물었습니다. “없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저는 콜롬비아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였고 하버드 대학에서 소크라테스 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제 박사 후 과정으로 탈무드를 공부하러 왔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랍비가 말했습니다. “젊은이, 그렇게 간청하니 내가 자네의 논리 능력을 한번 시험해 보겠네. 내가 내는 문제에 답하면 기회를 주겠네. 어떤가?” 젊은이는 자신 있게 문제를 내 달라고 하였습니다.

 

랍비가 문제를 냈습니다. “두 사람의 도둑이 굴뚝을 통하여 어느 집에 침입하였다네. 들어가 보니 한 도둑의 얼굴은 깨끗한데 다른 도둑의 얼굴은 검댕으로 더러웠다네.

그렇다면 둘 중 누가 얼굴을 씻었겠나?”

 젊은이가 대답했습니다. “그야 얼굴이 더러운 도둑이지요.” 랍비가 말했습니다. “틀렸네, 얼굴이 깨끗한 도둑이 씻었다네.” 젊은이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지요?” 랍비가 말했습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게. 얼굴이 더러운 도둑은 친구의 깨끗한 얼굴을 보고 자기의 얼굴도 깨끗한 줄 알고 닦지 않았다네. 그러나 얼굴이 깨끗한 도둑은 친구의 더러운 얼굴을 보고 자기의 얼굴도 더러운 줄 알고 닦았다네.” 젊은이가 대답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한 문제 더 내 주세요.”

 

랍비가 똑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두 사람 중 누가 얼굴을 씻었겠나?” 젊은이는 확신에 차서 답했습니다. “아 그거야 얼굴이 깨끗한 사람이지요. 좀 전에 냈던 문제 아닙니까?”

랍비가 대답하였습니다. “틀렸네,

두 사람 다 닦았다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게.

얼굴이 더러운 도둑은 친구의 얼굴을 보고 자기가 깨끗한 줄 알았다네.

얼굴이 깨끗한 도둑은 친구의 얼굴을 보고 자기 얼굴이 더러운 줄 알았다네.

그래서 얼굴을 닦았다네. 그것을 본 친구는 '저 친구도 얼굴을 닦는데.' 하고는 따라서 얼굴을 닦았다네.” 젊은이가 답했습니다. “아 그럴 수도 있군요. 한 문제만 더 내 주세요.”

 

랍비가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래, 둘 중 누가 얼굴을 닦았겠나?”

젊은이는 답했습니다. “둘 다 닦았습니다.”

 랍비가 말했습니다. “틀렸네. 둘 다 닦지 않았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게. 얼굴이 더러운 도둑은 얼굴이 깨끗한 도둑을 보고 자기 얼굴도 깨끗하다고 생각하였다네. 얼굴이 깨끗한 도둑은 얼굴이 더러운 도둑을 보고 자기 얼굴이 더러운 줄 알았다네. 얼굴이 더러운 도둑은 자기 얼굴이 깨끗한 줄 알고 안 닦았다네. 그것을 본 얼굴이 깨끗한 도둑은 저 친구도 안 닦는데 나만 닦을 필요 없지 하고 역시 안 닦았다네. 결국은 아무도 안 닦았지.”

젊은이는 사색이 되어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꼭 탈무드를 공부해야 합니다.

저는 탈무드를 공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문제만 더 내 주시기 바랍니다.”

랍비는 또 다시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둘 중 누가 얼굴을 닦았겠는가?”

젊은이가 답했습니다, “둘 다 닦지 않았습니다.” 랍비가 답했습니다. “틀렸네.

소크라테스의 논리학을 공부하였다고 하였는데

왜 자네에게 탈무드 공부가 불가능한지 이제 알겠나? 설명해 보게.

두 사람이 똑같은 굴뚝을 통해 들어갔는데 어떻게 한 사람은 더럽고 한 사람은 깨끗할 수 있단 말인가?

소크라테스 논리학을 공부했다는 사람이 그것도 모른단 말인가?”

젊은이는 포기하는 심정으로 마지막 회심의 일격을 랍비에게 날리기로 하였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한 가지 질문에 세 가지 모순되는 답을 주셨습니다.

그건 철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요!”

“그래? 그게 바로 탈무드라네.”라고 랍비가 답했습니다.(Aaron Parry, The Complete Idiot's Guide to the Talmud, Marie Butler-Knight, 2004. pp. 7-8에서 최명덕 번역·수정)

 

이 이야기를 잘 관찰해 보면 논리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한 랍비의 스토리텔링 구성이 논리적으로 얼마나 치밀한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탈무드는 법(할라하)과 이야기(아가다)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할라하라 불리는 법 부분이 탈무드의 요체다. 탈무드를 공부한다고 하면 법률을 연구한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법률에 대한 공부는 상당 수준의 논리력이 요구된다. 현재 건대에서 탈무드 과목을 가르치고 있지만 학생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흥미로워 하는 부분이 법률에 대한 논리적 논쟁이다. 복잡한 논리에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을 호소하다가도 논리적 연결고리를 찾게 되면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찾게 되고 탈무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유대인의 탈무드 학교인 예쉬바에 가보면 논리적 논쟁으로 얼마나 시끄러운지 모른다.

세계에서 가장 시끄러운 학교나 도서관을 예로 들라고 하면 단연 예쉬바다.

토론과 논쟁이 없는 교실 그래서 조용한 한국의 교실, 우리 학생들의 논리력이 실종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최명덕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이스라엘학회장, 한국이스라엘연구소장, 한국이스라엘친선협회 이사, 한국이스라엘문화원 이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역서로 《유대인 이야기》《지도로 보는 이스라엘 역사》《유대교의 기본진리》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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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 / 탈무드와 이야기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이자 ≪유대인 이야기≫의 저자인 최명덕 교수와 함께 탈무드 속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재미난 이야기 속에 값진 진리를 담은 탈무드를 통해 오늘을 사는 명쾌한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와 이야기가 누가 더 인기 있나 내기를 하였습니다. 진리와 이야기는 어느 유대인 마을로 갔습니다. 진리는 자신 있었습니다. 누구도 진리를 외면하지 못하리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먼저 진리가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은 진리를 보더니 외면하였습니다. 그를 피했습니다. 열렸던 창문이 닫혔습니다. 마을 중앙에 도착할 즈음 주위를 둘러보니 길에는 아무도 없고 진리 혼자만 서 있었습니다. 진리는 혼자 쓸쓸히 마을을 통과했습니다. 이야기가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이 기웃거렸습니다. 창문이 열리고, 사람들은 무슨 말인가 들어보려고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마을 중앙에 도착해 뒤를 돌아보니 많은 사람이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마을을 통과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습니다. 마을을 통과한 후 이야기는 진리를 만났습니다. 진리가 이야기에게 말했습니다. “이야기야 네가 이겼다, 내가 졌다.” 이야기가 말했습니다. “진리야 그렇다면 네가 나를 옷으로 입으면 어떻겠니?” 진리는 이야기를 옷으로 입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마을로 갔습니다. 그랬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진리에게 몰려들었습니다. 유대인 마을은 진리를 환영하였습니다. (고대 유대인 이야기 중에서, 최명덕 번역·수정본)

 

이 이야기만큼 탈무드의 성격을 잘 설명한 것이 있을까? 탈무드는 유대인이 그들의 진리를 후대에 전하기 위하여 오랜 세월 기술한 책이다. 그러나 진리를 대면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바람이겠지만 또한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불편한 일일 수도 있다. 진리는 분석을 요구하고 통찰을 요구하지만 이러한 작업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를 일찍이 간파한 유대인들은 그들의 진리를 이야기와 함께 담았다. 탈무드의 진리는 이야기를 옷 입고 있으며 탈무드의 이야기는 그 안에 진리를 담고 있다. 다음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어떤 사람이 헌 옷을 샀습니다. 집에 와 보니 옷에 다이아몬드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 다이아몬드가 누구의 것이지? 내가 가져도 될까? 그는 고민하다 랍비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이 다이아몬드는 누구의 소유입니까?” 랍비는 대답했습니다. “자네 아이를 데리고 헌 옷을 판 사람에게 가서 다이아몬드를 돌려주게, 그러면 자네는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한 교육을 자네 아이에게 선물로 주는 것이네.” (최명덕 번역·수정본)

이 이야기를 법률적으로 따지자면 여러 복잡한 논의가 있을 수 있겠으나 결론은 헌 옷 주인이 판 것은 헌 옷일 뿐 다이아몬드는 아니며 따라서 헌 옷을 산 사람에게는 다이아몬드에 대한 소유권이 없고 헌옷을 판 사람에게 그 소유권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리이다. 진리는 칼과 같이 엄정하여야 하고 감정에 치우셔서는 안 된다. 때문에 진리를 세우기 위해서는 분석과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은 때로 싸움을 불러오기도 한다. 진리를 세우는 일은 딱딱하고 재미없는 일이다. 그러나 싸움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랍비가 들려준 이야기는 소유권 문제에 대한 해결은 물론 숭고한 교육적 효과까지 성취하고 있다. 법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감동까지 가져온다. 탈무드 이야기는 이야기 안에 진리를 담고 있다. 탈무드에서 진리는 이야기를 옷 입고 있고 이야기는 진리를 담고 있다.

 

최근 회자되는 중요 이슈 중의 하나가 소통이다. 정부와 국민 간의 소통, 회사 사장과 직원간의 소통, 경영자와 노동자 사이의 소통,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소통 등등, 소통은 이 시대 최고의 덕목으로 등장하였다. 하지만 최근 MIT에서는 소통을 넘어선 공감에 대한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다. MIT에서는 이를 인지과학과 연결하였는데, 각광받는 연구 분야 중 하나이다. 소통은 이해를 증진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공감은 행동을 불러온다. 그렇다면 공감을 불러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MIT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스토리텔링'이다. 사람이 어떻게 인지하고 행동에 옮기는가에 대한 뇌과학을 연구한 결과 인간이 경험하는 인지 과정 유형 중에 스토리텔링이야말로 공감을 불러오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에 힘입어 최근 미국에서는 마케팅에서도 소통보다는 공감을 중시하여 공감 스토리텔링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탈무드 안에 이야기 콘텐츠를 넣었다. 이를 통하여 아버지나 선생은 자녀나 제자를 위한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었다. 탈무드의 삼분의 일이 법률에 대한 논의라면 삼분의 이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콘텐츠가 법률 콘텐츠보다 두 배나 많은 것이다. 탈무드의 법률 콘텐츠는 전문적인 학자가 아니라면 다루기 어려운 난제들이 수두룩하여 접근이 쉽지 않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이야기 콘텐츠는 누구라도 듣고 싶어 할 만큼 흥미롭다. 수많은 출판사에서 이 이야기들만 따로 편집하여 탈무드라는 이름으로 출판하였고 이 이야기들은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들의 구루(Guru)로 불리는 로버트 맥기(Robert Mckee)는 이야기의 본질을, '갈등을 극복하고 그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성취하는 것에 대한 기술이나 구술'이라고 정의하였다. 탈무드에는 수많은 종류의 갈등이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그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탈무드는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하기 위한 매뉴얼이다. 나를 돌보는 것과 남을 돌보는 것 사이의 갈등에 대하여 어느 랍비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나를 위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위할까? 내가 나만 위하면 나는 무엇이 될까?” 갈등은 인간을 성장하게 하는 명약이다.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인데 탈무드는 수많은 종류의 갈등을 소개하고 갈등 극복의 지혜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탈무드의 이야기는 갈등 극복의 이야기이다. 앞에 소개한 두 이야기는 진리가 겪게 되는 갈등과 소유권에 대한 갈등이 어떻게 해결되었는가를 보여 준다. 두 이야기를 더 깊이 분석해 보라. 많은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탈무드 이야기를 경청하라. 갈등 해결의 비책을 얻게 될 것이다.

 

최명덕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이스라엘학회장, 한국이스라엘연구소장, 한국이스라엘친선협회 이사, 한국이스라엘문화원 이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역서로 《유대인 이야기》《지도로 보는 이스라엘 역사》《유대교의 기본진리》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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