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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 / 탈무드와 논리

 

끊임없이 탈무드를 놓고 토론하는 유대인, 그들 중에 위대한 법률가와 학자가 많이 배출되어 온 것은 탈무드를 통한 논리 공부와 무관하지 않다. 뛰어난 감성을 지닌 한국인에게 탈무드적 논리력이 추가된다면 어떤 놀라운 결과가 나올지 상상해 보라.

어느 젊은이가 탈무드를 공부하려고 랍비를 찾아왔습니다. 랍비가 물었습니다. “자네, 아람어(BC 4-5세기 경 유대 지역에서 쓰였던 공용어)를 아는가?” 젊은이가 대답하였습니다. “모릅니다.” “그래? 그렇다면 히브리어는 아는가?” 랍비가 물었습니다. “모릅니다.” 젊은이가 대답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토라(모세 오경)는 공부한 적이 있는가?” 랍비가 물었습니다. “없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저는 콜롬비아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였고 하버드 대학에서 소크라테스 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제 박사 후 과정으로 탈무드를 공부하러 왔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랍비가 말했습니다. “젊은이, 그렇게 간청하니 내가 자네의 논리 능력을 한번 시험해 보겠네. 내가 내는 문제에 답하면 기회를 주겠네. 어떤가?” 젊은이는 자신 있게 문제를 내 달라고 하였습니다.

 

랍비가 문제를 냈습니다. “두 사람의 도둑이 굴뚝을 통하여 어느 집에 침입하였다네. 들어가 보니 한 도둑의 얼굴은 깨끗한데 다른 도둑의 얼굴은 검댕으로 더러웠다네.

그렇다면 둘 중 누가 얼굴을 씻었겠나?”

 젊은이가 대답했습니다. “그야 얼굴이 더러운 도둑이지요.” 랍비가 말했습니다. “틀렸네, 얼굴이 깨끗한 도둑이 씻었다네.” 젊은이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지요?” 랍비가 말했습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게. 얼굴이 더러운 도둑은 친구의 깨끗한 얼굴을 보고 자기의 얼굴도 깨끗한 줄 알고 닦지 않았다네. 그러나 얼굴이 깨끗한 도둑은 친구의 더러운 얼굴을 보고 자기의 얼굴도 더러운 줄 알고 닦았다네.” 젊은이가 대답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한 문제 더 내 주세요.”

 

랍비가 똑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두 사람 중 누가 얼굴을 씻었겠나?” 젊은이는 확신에 차서 답했습니다. “아 그거야 얼굴이 깨끗한 사람이지요. 좀 전에 냈던 문제 아닙니까?”

랍비가 대답하였습니다. “틀렸네,

두 사람 다 닦았다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게.

얼굴이 더러운 도둑은 친구의 얼굴을 보고 자기가 깨끗한 줄 알았다네.

얼굴이 깨끗한 도둑은 친구의 얼굴을 보고 자기 얼굴이 더러운 줄 알았다네.

그래서 얼굴을 닦았다네. 그것을 본 친구는 '저 친구도 얼굴을 닦는데.' 하고는 따라서 얼굴을 닦았다네.” 젊은이가 답했습니다. “아 그럴 수도 있군요. 한 문제만 더 내 주세요.”

 

랍비가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래, 둘 중 누가 얼굴을 닦았겠나?”

젊은이는 답했습니다. “둘 다 닦았습니다.”

 랍비가 말했습니다. “틀렸네. 둘 다 닦지 않았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게. 얼굴이 더러운 도둑은 얼굴이 깨끗한 도둑을 보고 자기 얼굴도 깨끗하다고 생각하였다네. 얼굴이 깨끗한 도둑은 얼굴이 더러운 도둑을 보고 자기 얼굴이 더러운 줄 알았다네. 얼굴이 더러운 도둑은 자기 얼굴이 깨끗한 줄 알고 안 닦았다네. 그것을 본 얼굴이 깨끗한 도둑은 저 친구도 안 닦는데 나만 닦을 필요 없지 하고 역시 안 닦았다네. 결국은 아무도 안 닦았지.”

젊은이는 사색이 되어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꼭 탈무드를 공부해야 합니다.

저는 탈무드를 공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문제만 더 내 주시기 바랍니다.”

랍비는 또 다시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둘 중 누가 얼굴을 닦았겠는가?”

젊은이가 답했습니다, “둘 다 닦지 않았습니다.” 랍비가 답했습니다. “틀렸네.

소크라테스의 논리학을 공부하였다고 하였는데

왜 자네에게 탈무드 공부가 불가능한지 이제 알겠나? 설명해 보게.

두 사람이 똑같은 굴뚝을 통해 들어갔는데 어떻게 한 사람은 더럽고 한 사람은 깨끗할 수 있단 말인가?

소크라테스 논리학을 공부했다는 사람이 그것도 모른단 말인가?”

젊은이는 포기하는 심정으로 마지막 회심의 일격을 랍비에게 날리기로 하였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한 가지 질문에 세 가지 모순되는 답을 주셨습니다.

그건 철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요!”

“그래? 그게 바로 탈무드라네.”라고 랍비가 답했습니다.(Aaron Parry, The Complete Idiot's Guide to the Talmud, Marie Butler-Knight, 2004. pp. 7-8에서 최명덕 번역·수정)

 

이 이야기를 잘 관찰해 보면 논리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한 랍비의 스토리텔링 구성이 논리적으로 얼마나 치밀한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탈무드는 법(할라하)과 이야기(아가다)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할라하라 불리는 법 부분이 탈무드의 요체다. 탈무드를 공부한다고 하면 법률을 연구한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법률에 대한 공부는 상당 수준의 논리력이 요구된다. 현재 건대에서 탈무드 과목을 가르치고 있지만 학생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흥미로워 하는 부분이 법률에 대한 논리적 논쟁이다. 복잡한 논리에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을 호소하다가도 논리적 연결고리를 찾게 되면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찾게 되고 탈무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유대인의 탈무드 학교인 예쉬바에 가보면 논리적 논쟁으로 얼마나 시끄러운지 모른다.

세계에서 가장 시끄러운 학교나 도서관을 예로 들라고 하면 단연 예쉬바다.

토론과 논쟁이 없는 교실 그래서 조용한 한국의 교실, 우리 학생들의 논리력이 실종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최명덕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이스라엘학회장, 한국이스라엘연구소장, 한국이스라엘친선협회 이사, 한국이스라엘문화원 이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역서로 《유대인 이야기》《지도로 보는 이스라엘 역사》《유대교의 기본진리》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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