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시기에 대한 한 가지 미스터리 (언제 세상을 창조하셨는지에 대한 질문)

 

 

 

창조의 시기에 대한 한 가지 미스터리

 

 

하나님께서 언제 세상을 창조하셨는지에 대한 질문은 모든 사람의 궁금증이다.

 

기원전 4천년 전후였다는 주장으로부터 150억년 전에 우주는 빅뱅(Big Bang)으로 시작되었다는 견해에까지 우주의 시작 연대에 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지구의 연대만 해도 크리스천 과학자였던 로드 캘빈(Kelvin, 1862)은 2천5백만 년이라는 주장을 폈고

 

그 후(1897) 캘빈은 지구의 나이가 4천만년쯤 되었다고 수정하여 왔다.

 

레이레히(Rayleigh, 1921)는 10억 년이라고 발표했고

 

그 뒤 홀름즈(A, Holmes, 1956)가 45억 년이란 주장을 펴면서 지구의 나이가 45억년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처럼 굳어져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물론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지구와 우주의 연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근본주의적 주장도 만만치 않다.

 

사람들은 지구와 우주가 오래되었다,

 

또는 젊다는 다양한 증거들을 제시하여 왔다.

 

하지만 서로 견해가 다른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한 상태로 젊은 지구 젊은 우주와 오래된 지구 오래된 우주에 대한 주장이 평행선을 달려왔다는 것은 이 문제가 쉽사리 답을 제공할 만한 문제가 아님을 직감할 수 있게 한다.

 

빛의 속도가 과거와 현재가 다르다는 한 과학자의 주장이 있었다.

빛의 속도는 과연 변해온 것일까?

 

이 흥미있는 주장을 살펴보자.

 

상수라고 믿었던 빛의 속도가 오래 전에는 달랐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사람은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즈대의 존 웹 교수이다.

 

그가 이끄는 국제연구팀은 하와이 마우나케아산의 망원경을 이용해 1백20억 광년 떨어진 퀘이사 17개를 관측해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주장한다.

 

퀘이사란 우주 초기에 출발했던 빛이 지금 관측될 정도로 멀리 있는 천체이다.

 

퀘이사의 빛이 긴 여행을 하는 동안 중간에 가스구름을 통과하면 일부는 흡수된다.

 

이런 빛의 흡수현상이 과학자들에게 가스와 빛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

 

 

연구팀은 퀘이사의 빛이 가스를 이루는 원자에 의해 흡수되는 양상을 연구해 원자의 구조를 지배하는 󰡐상수󰡑인 미세구조상수를 결정했다.

 

그 결과 미세구조상수가 지금의 값과 10만분의 1만큼 달랐다는 점을 알아냈다.

 

매우 작은 차이지만 이번 연구결과가 사실이라면,

미세구조상수는 빛의 속도와 관련있기 때문에 빛의 속도가 과거에는 지금과 달랐다는 말이다.

 

존 웹 교수는 󰡒우주의 기본법칙이 시간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번 연구의 의미를 설명했다.

 

현재 우주를 설명하는 이론은 빛의 속도가 상수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만일 이것이 무너진다면 가히 물리학의 혁명적인 일이 된다.

현대 물리학의 대부분의 이론은 관속이 일정하다는 내용을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빛의 속도는 18세기 브래들리(Bradley, 1740)가 300,650Km/s로 추정한 이후 관측자와 관측 방법에 따라 제각각 다르게 측정되어 왔다.

 

마이켈슨(Michelson, 1926)은 299,798 ±15로 발표하였고, 최근 레이저를 통한 측정 결과는 빛의 속도(1983)가 299,792.4586±0.0003Km/s로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빛의 속도 측정을 살펴보건데 미세하나마 시간이 흐르면서 감속되어 온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의 연구 결과가 보태진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를 발표한 호주 시드니 남부웨일즈대학은 광속의 변화 문제에 대한 늘 진원지 역할을 해왔던 곳이다.

 

과연 이 문제를 기독교적으로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첫째, 현대 물리학이 말하듯 광속이 일정하다고 전제해 보자.

 

광속이 일정하다면 이런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광속이 일정하든 일정하지 않든 광속은 누가 우주에 넣어준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빅뱅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현대 우주 기원론에 있어 광속은 태초부터 그저 우연히 일정한 속도를 가진 것인가 아무런 답을 할 수 없다.

 

설령 광속이 일정하다 해도 그렇다면 광속은 우주의 시작 이전(6천년이든 150억년이든)에는 어디 있었단 말인가 라는 의문은 계속 남게 된다.

 

우주의 인과율에 있어 광속이 시작된 기원의 시작에 대한 답을 해야 한다. 우주에 에너지를 공급한 근원자는 누구인가라는 답은 여전히 자연과학 밖의 일이 된다.

 

즉 창조주에 대한 고백이 없는 기원의 문제는 늘 해답을 공백의 상태로 둘 수밖에 없게 된다.

 

둘째, 광속이 정말로 과거에 변해왔다면 기독교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하는 문제이다.

 

만일 광속이 정말 변해왔다면 현대 물리학에는 혹 치명타를 가할지 모른다. 하지만 성경적으로는 아무런 모순이나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1987년 러시아의 천문학자 트로이츠키(Troitskii)는 현재 가능한 천문학 자료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우주 모델은 우주의 초기에는 광속이 무한대이었다가 현재의 수준으로 감소하였다는 확신으로부터 나온다는 혁신적인 주장을 폈다.

 

마치 배드민턴에서 스매싱한 순간에는 셔틀콕이 엄청난 속도를 가지나 떨어지는 순간에는 급격히 그 속도가 감속하는 것처럼 우주의 팽창이 수십억 년 이상을 두고 점진적으로 팽창을 한 것이 아니라 순간적인 팽창을 하였다는 쪽의 주장인 것이다.

그는 창조론자가 아닌 진화론자이다.

 

 

비록 트로이츠키가 진화론자이기는 하나 그의 주장의 골격은 창조론적으로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우주와 지구의 생성이 오래지 않고 극히 짧다는 견해가 성경이 지지하는 사실이 분명하다면 그 동안 수억 수천만 광년 떨어진 곳에서 오는 별빛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의 자연과학적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매우 먼 곳의 별들로부터 오는 별빛이 지구에 도달하는데 수십억 년 걸린다는 어떤 가정도 필요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법에 의해 수십억년으로 측정되는 천체와 물질에 대한 측정값조차도 큰 광속의 결과로 인한 빠른 붕괴 현상 때문으로 정리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주 대폭발에 의한 우주 팽창론을 지지하는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결과로 치부되고 있는 별들의 적색변이나 우주배경복사 등도 팽창이 아니라 광속의 감소로 인한 결과로 보는 반대의 해석이 가능해진다.

 

참으로 물리학 전체의 혁명적인 내용이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비전문가가 더 깊이 뛰어들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관측된 차이가 매우 작은 값이기 때문에 통계적인 우연이 아니냐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앞으로 또다른 관측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떠한 경우에도 섣불리 단정하지 말고 과학의 결과를 차분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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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  화석 생물들은 언제 죽었는가?

 

 


화석 생물들은 언제 죽었는가?
: 아담 이전의 죽음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다.
(When did the fossils ‘die’?) 
 
 John D. Morris
지질학자
ICR(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회장
 
   1800 년대 초부터 시작하여, 기독교 지도자들은 화석(fossils)으로 인해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로부터 유래하였다. (1)화석은 한때 살았던 동물과 식물의 잔존물인 것처럼 보인다. (2)제임스 허튼(James Hutton)과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과 같은 일부 과학자들은 화석들은 오랜 기간 동안 느리고 점진적인 과정에 의해서 쌓여졌음이 입증되었다고 주장했다. (3)성경을 직설적(straightforward)으로 읽을 때, 창조(creation)는 단지 수천 년 전에 일어났으며, 사망(death)은 하나님의 원래의 계획 중의 하나가 아니라 아담과 이브의 범죄 때문에 들어오게 된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 이전까지 대부분의 과학자들과 신학자들은 화석은 노아 홍수에 의한 전 지구적인 파괴로 생겨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구의 나이에 대한 매우 오래된 연대 개념이 지지를 얻기 시작하면서, 어떤 무엇인가가 화석을 해석하는 데에 사용되어야만 했다. 신학자들은 그들이 두려워했던 반대 증거들에 직면하여 성경을 구하는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제시하였고, 이러한 오래된 연대 개념을 받아들이도록 인도하였다.

성경을 손상시키고 왜곡하고 있는 이러한 타협적인 개념들 중 하나는 ‘다중격변론(multiple catastrophism)’으로서, 지구 상에는 여러 번의 격변이 있었는데, 노아의 홍수가 여러 번의 격변들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일어난 격변이었다는 것이다. (노아의 홍수는 신생대 제4기 홍적세 지층을 만들었던 홍수라고 주장함). 그래서 대부분의 화석들은 노아의 홍수와는 다른 수억 수천만년 전에 일어났었던 여러 번의 홍수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타협적 개념으로, 노아의 홍수는 어떠한 화석이나 지질학적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산들을 덮었던 ‘평온한 홍수(tranquil flood)’ 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가설로는 노아의 홍수는 단지 메소포타미아 계곡에 일어났었던 ‘지역적 홍수(local flood)’였고, 그래서 지층 깊이 들어있는 전 지구적인 화석들은 노아 홍수와는 관계가 없는 노아 홍수 이전에 장구한 세월동안 형성된 것들이라는 것이다.

스코필드(C. I. Scofield)는 ‘간격이론(gap theory)’이라고 불리는 견해를 대중화시켰다. 이 이론은 창세기 1장의 1절과 2절 사이에 광대한 시간의 간격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의 주석성경에서 기록했던 것처럼, “화석들을 태고의 창조 시기로 내쫒아 버리고, 창세기의 우주론과 과학이 충돌하지 않기 위해서”(page 4) 였다. 오늘날 더 인기가 있는 타협책은 ‘날-시대 이론(day-age theory)’이다. 이것은 창세기의 날(days)들은 화석들이 쌓여졌던 매우 오랜 기간이었다고 제안하는 것이다. 그리고 창세기를 아예 무시해버리는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이 있다. 오늘날 복음주의 신학교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타협은 ‘골격가설(framework hypothesis)’이다. 이것은 창세기는 단지 영적인 진실만을 담고 있는 것이지, 과학적인 또는 역사적인 진실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견해이다. 이러한 주장들 각각은 화석 문제는 제거해버릴 수 있었지만, 그러나 사실 성경을 왜곡하는 것으로서 끝을 맺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과거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사람들의 추정(speculations)을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들이 받아들이도록 이끌고 있는가? 그들은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모든 것을 알 수 없지 않은가? 그들은 과거에 화석들이 만들어질 당시에 그곳에 없지 않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시작부터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왜 크리스천들은 그러한 추정과 적합시키기 위해서 성경을 왜곡하는가? 성경(Bible)은 과거와 현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의 기록이 아닌가. 성경에서 저자는 분명하고 명백하게 사망(death)은 사람의 범죄함으로 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7)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세기 3:19)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로마서 6:23).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로마서 5:1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로마서 8:22)


성경은 또한 우리들에게 사망이 들어온 이후에 전 지구적인 엄청난 홍수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물에 의해서 생성되는 엄청난 양의 퇴적지층들을 쌓아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수많은 생물체들을 파묻어버렸을 것이다. 퇴적물은 이제 퇴적암이 되었다. 그리고 죽은 생물들은 화석이 되었다. 우리는 엄밀한 과학적 조망으로 노아의 홍수를 입증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화석기록의 본질은 성경 기록에서 기대되어지는 것과 정확히 같은 것이다.  우리는 화석이 쌓여질 당시에 그곳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의 추정보다, 그곳에 계셨던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보고 계셨던 분의 증언을 더 신뢰해야할 것이다!

 
 
출처 : Creation 14(2):12?13, March 1992
URL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14/i2/fossil.asp
번역자 : IT 사역위원회
 

관련 자료 링크:
 
1. 오래된 지구의 신 : 점진적 창조론, 간격이론, 날시대이론, 다중격변설... (The god of an old Earth) 
2. 점진론적 창조론 (Progressive Creationism) 
3. 창세기에 간격이 있는가? : 간격이론(Gap Theory)이란 무엇인가?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4. 위증인(僞證人) 타파하기 : 오래된 지구 창조론자인 휴 로스의 주장에 대한 반론 (Demolishing 'straw men') 
5. 오래된 지구 지질학에 대한 성경적 지질학자들의 반대 
6. 어느 믿음이 최근의 탈선인가? : 오래된 지구 또는 젊은 지구? (Which is the recent aberration? Old-Earth or Young-Earth Belief?) 
7. 오래된 지구 연대는 진화론의 심장이다 (1) (An Old Age for the Earth Is the Heart of Evolution) 
8. 오래된 연대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 (The long story of long ages) 
9. 젊은 세계에 대한 증거들 (Evidence for a Young World) 
10. 조상들과의 만남 : 창세기 연대기의 정확성과 족장들의 긴 수명 (Meeting the ancestors) 
11. 젊은 지구(The Young Earth) 3장. 대조되는 2가지 견해 
12. 화석들은 점점 복잡해졌는가? (Fossils : they get more complex?) 
13. 화석기록 : 항상 더 무작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1) (The Fossil Record : Becoming More Random All the Time) 
14. 진핵생물의 진화는 10억 년이나 더 뒤로 내려갔다. (Supposed eukaryote evolution pushed back one billion years) 
15. 절지동물은 아마도 4천만년 더 일찍 육지를 점령했다. (Arthropods supposedly invaded land 40 million years earlier) 
16. 화석과 암석들 : 순환논법 (Fossils And Rocks : Circular Reasoning) 
17. 화석 판단의 돌변 : 화석의 연대 결정은 순환논법이다 (Fossil flip-flop) 
18. 화석과 지층 1 (Fossils and Strata) 
19. 화석과 지층 3 (Fossils and Strata) 
20. 과학자들이 화석에 대해 말한다 (Scientists Speak About Fossils) 
21. 화분의 순서 : 화분들의 분급작용은 홍수 시에 일어날 수 있다 (Pollen Order) 
22. 유공충 (Foraminifers) : 생태학적 서식 깊이와 화석 분포와의 관련성 
23. 화석과 지층 2 (Fossils and Str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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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 생로병사의 지으심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나이다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이야기할 때 받은 질문이다.

“눈썹은 왜 있습니까?”
" 그것은 비올 때 빗방울이 눈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우산이란다."'라고 말했다.
요사이는 멋을 내기 위하여 눈썹을 밀고 검게 칠하는 여자도 있다. 눈썹이 길고 진하면 강한 엑센트를 주는 것 같아서 그런지 몰라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눈썹이 없으면 문둥병 환자라고 놀렸는데 그러한 생각도 바꿔진 것 같다. 다른 어린이가 또 물었다.
“눈알은 어떻게 움직일 수 있어요?”
양 눈알이 상하 좌우로 움직인다는 것이 애들에게는 신기한가 보다. 그것이 잘 되지 않는 사람을 사팔뜨기라고 한다.
“그것은 눈알의 상하 좌우에 작은 근육이 붙어 있어 움직이고자 하는 방향의 근육이 신경 자극을 받아 수축하기 때문이란다.”

안과 의사는 의과대학과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평생을 자그마한 눈에 매달려 치료하고 있다. 사진기가 우리의 눈을 모방하여 만들어졌지만 아무리 잘 만들어도 양족 눈으로 볼 수 있는 입체감각, 넓은 시야, 빠른 속도 감각을 가는 우리의 눈을 따를 수는 없다. 눈을 생각하면 눈과 연결된 코가 생각나는데. 눈에는 눈물샘이 있어 계속적으로 눈물이 나와 눈의 자막 표면을 씻어 주면서 눈물 속에 들어있는 효소나 항체들에 의해서 눈 속으로 들어오는 각종 미생물을 죽인다. 이러한 눈물의 코와 통하는 관 속을 통해서 코 속으로 들어가는데 나이가 들게 되면 이러한 관이 막혀 눈 밖으로 바로 배출되어 눈물이 눈 주의에 계속 있게 되는 것이다.

코 안에는 작은 방들이 있는데 여기에 염증이 생겨 농이 차면 축농증이라 한다. 코 속의 작은 방들이 귀찮은 것 같지만 축농증 환자를 보면 이 작은 방들은 우리가 숨을 들이 쉴 때 공기 속에 들어 있는 먼지를 여과하고 공기의 온도를 올려주는 역할을 한다. 추운 겨울에 찬 공기가 그대로 호흡기도와 폐 속으로 들어가면 호흡기도 주위의 근육과 폐 속의 근육 혈관들을 수축케 하여 호흡하는데 어려움을 줄 것이다. 만약 코 주위의 방들이 뼈로 되어 있다면 머리의 앞쪽이 무거워 사람들의 머리는 앞쪽으로 숙여져 땅만 보고 다녀야 될 것이다.

가끔 음식을 먹다가 기침을 하게 되면 밥알이 입 안쪽에서 코로 이어진 통로를 따라 코 속으로 들어가는데, 그럴 때는 머리 속까지도 멍해진다. 그것은 코 뒤와 입 뒤가 인두라는 공간으로 통해 있기 때문이다.
왜 통하게 만들어져 있을까? 만약 코 뒤쪽이 입 뒤쪽과 통해 있지 않고 기관지로 바로 연결되어 있다면 코감기라도 걸리게 되면 코가 막히게 되어 숨을 쉴 수가 없으므로 죽을 수밖에 없다. 병원에 가보면 먹지 못하는 의식불명의 환자에 있어서는 코를 통해 위까지 호스를 넣어 물이나 음식물을 공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만약 호스를 입으로 놓는다면 환자가 불편하여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데 숨쉬는 것과 먹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하여 코와 입 사이가 뚫려있어서 이중 안전장치가 만들어져 있는가 보다.

 

체내의 비병원성 세균의 역할

 

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치아다. 우리의 속담에서 치아가 있으면 잇몸으로 씹는다는 말이 있는데 잘못된 말이다. 잇몸으로는 씹을 수가 없다. 아무리 금강석으로 치아를 만들어도 단단하고 강한 우리의 치아를 따를 수 없다. 이러한 치아도 입안에 있는 세균들에 의해서 충치가 발생하고 나이가 들게 되면 치주염, 즉 풍치가 생기게 된다.

그러면 왜 구강 내에는 많은 세균이 있는 것일까? 우리가 양치질을 하면 큰 음식 찌꺼기는 없앨 수 있으나 여전히 작은 크기의 음식 찌꺼기는 남아 있다. 입안 점막의 작은 주름이나 치아 사이, 치아와 잇몸 사이는 칫솔만으로는 청소하기가 어렵다.

이런 것들은 침 속에 있는 효소에 의해서도 분해하지만 비병원성 세균들도 분해하는 역할을 하면서 음식물을 먹거나 공기와 같이 들어오는 병원성 세균을 막는 보호 역할을 한다. 즉 구강 내에는 많은 비병원성 세균이 자리 잡고 있으면서 새로운 세균이 자랄 수 있는 자리를 주지도 않고 그러한 세균을 죽일 수 있는 항생제 같은 물질을 분비하여 죽인다. 세균 하나는 조건을 잘 맞추어 주면 하루만에 140조의 균체로 증식하게 되므로 우리의 구강 항체들이 작용하여 세균의 증식을 막거나 죽게 한다.

어떤 사람이 긴장을 계속하게 되면 침이 마르게 되고 침의 양이 적어지면 세균의 증식하여 치주염이 생기면 냄새가 나게 된다. 물론 나이가 들게 되면 입에서 냄새가 나는데 충치나 치주염, 그 외 위장관이 나빠서도 냄새가 나게 되나 갓난애들이 입에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 이것도 아이들의 입에서만 자라는 세균의 냄새다. 만약 어른들의 입 안에서 많이 증식하는 세균이 갓난애들 입에서도 자라 고약한 냄새가 난다면 귀엽다고 껴안아 주고 싶은 생각이 없어질 것이다. 이렇게 세균은 사람에게 해롭게 작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부수적인 것으로 이롭게 작용하기도 한다.

세균이 이롭게 작용하는 장소가 또 여자의 질 속인데. 질에는 유산균이 있어 질 속의 글리코겐을 분해하여 유산을 만들어 산성 환경을 만들면 다른 병원성 세균들이 들어와 증식을 못하게 된다. 우리가 대변을 보면 냄새가 향기롭지 못한데, 주된 원인은 대변 양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는 많은 세균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항생제를 많이 먹어 장 속에 있는 세균을 전부 죽여 버릴까? 왜 그렇게 많은 세균이 있어야만 할까?

장 속에는 많은 비병원성 세균이 있는데 음식물과 같이 들어오는 병원성 세균을 죽이는 역할을 하고 그 외 비타민 등을 만드는 일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정화조 역할일 것이다.
우리 몸 속은 적당한 온도, 습도, 영양분이 있어서 세균이 자라는데 가장 알맞기 때문에 음식을 빠른 속도로 분해할 수 있다. 만약 대변에 세균이 없거나 숫자가 적다면 대변이 썩지 않고 분해되지 않아 우리 주위에 대변 덩어리가 계속 쌓일 것이다. 과학이 발달해도 이러한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순응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세균보다 작은 것으로 바이러스가 있다.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많은 병을 일으키는데, 감기, 소아마비, 더 나아가서 에이즈(AIDS) 등을 일으킨다. 에이즈에 걸리면 면역이 저하되어 백퍼센트 증상을 타나내어 감기 등 여러 감염증이 생기면서 암이 발생하고 결국은 죽기 때문에 모두들 무서워한다. 왜 이러한 무서운 질병이 발생되어야만 했을까?

에이즈와 같은 성병으로는 매독이나 이질과 같은 세균성 감염증도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다른 세균들과는 달리 영구적인 면역이 생기지 않아 여러 번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태평양 섬 중에 뉴기니아 섬이 있는데 얼마 전까지 원주민 사이에 쿠루(Kuru) 라는 질병이 있었다. 이 병에 걸리면 정신이상이 오고 운동장애가 생기고 사지를 떠는 증상이 오는데 남자보다 여자에게 많이 온다. 이 원주민들은 사람이 죽으면 슬퍼한 나머지 죽은 사람의 뇌를 꺼내 먹는 습관이 있는데 뇌를 먹을 때는 남자들이 점잖아서인지, 여자들이 더 슬퍼해서인지 고인의 뇌를 여자들이 먼저 먹고 다음에 남자들이 먹는다. 쿠루라는 질병은 뇌 속에서 바이러스 일종의 뇌에 변성을 일으켜 오게 되고 그 감염된 것을 사람이 먹게 되면 바이러스 일종이 전파되어 여러 해 뒤에 같은 증상이 오게 되는 것이다. 현재는 뇌를 먹는 것을 금지시켰기 때문에 그러한 질병이 발생치 않지만 이러한 질병이 다시금 의학계에서 연구 되어지는 것은 일부 노인들에게 생기는 노망기의 증상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축복받으면서 태어난 아이가 나이게 들게 되면서 왜 많은 병이 생기고 늙어가고 죽어가는 것인가?

 

만물에 보이신 창조주의 능력과 신성

무신론자로 자처하는 교수 한 분이 학생들에게 사람의 유전형질을 다루는 유전학을 강의하는 것을 옆에서 듣고 있노라면 창조주가 우리 몸을 아주 신기하게 만들었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의학이 발달하고 더욱 더 근본적인 것을 연구하다 보면 창조주의 신기한 솜씩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병 중에는 유전병이 있는데, 이는 사람의 유전자에 이상이 생겨 증상이 오는 것으로 현재 4000가지 이상이나 되고 있으며 대부분 치료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유전병을 고치기 위하여 병과 관계되는 유전자를 신체에 넣어주는 유전자 치료법이 시도되고 있으나 많은 난관에 봉착하여 아직까지 성공한 예는 없다. 이러한 유전병 환자를 보고 있노라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대부분 우리들은 이러한 이상이 없다는 데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든다.

여러 환자들을 지켜보는 의사나 간호사들 중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사람이 병들게 되거나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게 되면 그 자신만만하던 사람도 그제서야 창조주를 찾게 된다. 나와 가까웠던 분도 평소에는 전혀 성경과 접촉하지 못하고 살아오다가, 죽음의 파도가 밀려 올 때 성경 말씀을 듣고자 했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유전병, 암 등 여러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죽어갈까?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로마서 1: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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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 땅을 공간에 다신 하나님

 


 
이웅상
 
「종교와 과학」이란 과목을 강의하고 나오는데 한 학생이 따라와 이렇게 물었다. '목사님, 교황이 성서의 오류를 시인하면서 갈릴레오를 복권조치 했다는 기사를 읽어보셨습니까?' 이에 나는 '아직 못 봤습니다. 복권조치 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성서의 오류를 인정했다는 것은 이해가 가질 않는군요' 라고 대답하며 그 학생이 들고 있는 신문을 건네 받아 관련기사를 읽어보았다.

11월 3일자 동아일보의 '횡설수설' 난에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의 희곡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생애'를 간단히 소개하면서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파문 당한 갈릴레오를 천주교에서 성서의 오류까지 시인하면서 진실을 옹호한 데에는 커다란 역사적 의의가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또한 이에 대해 11월 7일자 기독신보에서는 갈릴레오뿐만 아니라, 1518년 이단으로 규정하고 1520년 파문시켰던 마틴 루터도 복권시켜야 할 것이 아닌가 논박하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러나 따지자면 중세 암흑시대에 종교재판에 의해 희생된 유명 무명의 진정한 신앙인들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지금에 와서 이들에게 교황이 절을 하며 사죄하고 복권조치를 한다고 해서 감사하며 카톨릭에 복귀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들이 그렇지 않아도 물질주의와 과학만능주의에 세뇌되어 성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현대인의 마음을 더욱 닫게 하며,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데 있다.

중세 로마 카톨릭의 타락과 갈릴레오가 주장한 지동설이 옳다는 것은 현대인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갈릴레오의 희생은 성서의 오류 때문이 아니다. 천동설은 이집트의 천문학자 프톨레미(Clandius Ptolemaeus)가 제안한 이론으로 16세기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져 왔다. 즉  이 당시까지만 해도 지구가 태양계의 고정된 중심으로 태양과 그 외의 혹성들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 후 1543년 폴란드의 천문학자인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에 의해 최초로 지동설이 제안되었으나 천동설의 견해가 당시 로마 카톨릭의 지도자들에게 깊이 뿌리 박혀 있었기 때문에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뒤를 이어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지지하며 나오자 교황이 그를 파문시킨 것이지 성서가 천동설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 것이다.

성경의 어느 곳에도 천동설을 주장하고 지동설을 부인하는 구절이 없다. 오히려 성경은 과학자들이 16세기까지 믿어오던, 지구가 무엇엔가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부정하고 있다. 욥기 26장 7절에 보면 욥은 지금으로부터 4천년 전에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라는 말씀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지구가 어떤 것에 고정되어 태양계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 떠있는 것임을 정확히 묘사하고있는 말씀인 것이다. 뉴톤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기까지 어찌 인간의 지혜로 이 놀라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뿐만 아니라 욥기 26장 10절에는 '수면에 경계(원)를 그으셨으되 빛과 어두움의 지경까지 한정을 세우셨느니라'고 기록함으로써 지구가 평평한 것이 아니라, 둥근 모양임을 기술하고 있다. 또한 잠언 8장 27절에도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원)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바다의 수평선이 원으로 되어 있다는 말씀은 지구가 둥근 모양으로 되어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은 지구의 모양뿐만 아니라 지구가 공중에 떠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으나, 당시의 천동설로 인해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당시 지구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또 하나의 오류는 지구의 기둥에 대한 성경의 언급에 관한 것이다. 욥기 9장 6절은 '그가 땅을 움직여 그 자리에서 미신즉 그 기둥을 흔들리며' 라고 말씀하고 있고, 사무엘상 2장 8절에는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을 인용하며 일부학자들은 성경이 지구가 기둥이나 지주 위에 놓여 있다는 히브리인들의 전설을 근거로 해서 쓰여졌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성경 본문의 '기둥' 이란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 '암무드(ammud)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 단어는 '기둥' 이란 뜻으로 쓰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기초' 란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욥기 9장 6절은 '기둥'이 흔들린다는 표현이 아니라, 땅속의 '기초'가 흔들린다는 말씀인 것이다. 이렇게 이해될 때 이 말씀은 이미 언급한 욥기 26장 7절의 '허공에 지구가 떠 있으며', 욥기 38장 7절의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는 말씀과 조화를 이룰 수 있지 않겠는가.

오히려 '지구의 기둥'에 관한 말씀들은 지구의 중심부에 대한 놀라운 정보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들이다. 현대 과학자들은 지표면 속에는 맨틀이 있고 그 속에는 외핵과 내핵이 있지만 정확히 어떤 물질로 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지구 자장으로 미루어보아 자장을 만드는 니켈과 철로 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예레미야 31장 37절에는 이에 대해 '위로 하늘을 측량할 수 있으며 아래로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행한 일을 인하여 그들을 다 버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고 말씀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모순들이 성서의 오류 때문이 아니라 과학의 영향을 받은 인간의 잘못된 해석 때문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결론적으로 과학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구절들을 대할 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첫째로, 과학의 모든 이론은 가정에서 출발한 것으로 끊임없이 변해왔으며, 또한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마태복음 5장 18절에 분명히 말씀하시길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말씀)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했다. 그런데 어찌 이처럼 자주 변해왔고 또 변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이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겸손히 과학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기다리는 태도를 가져한다.

둘째로, 성경 자체를 바르게 해석하고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올바른 성경관에 기초한 신앙서적 등을 참조하여 한 개인의 잘못된 경험과 편견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있는지 않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때로는 지나간, 수정된 과학적 이론과 자료들에 의존함으로 인해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가르침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 해석의 최종 권위를 가지고 계신 분은 성령이시며 성도들의 교사되신 분 역시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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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 사람화석은 없나요?

 

 

 

 

 

 사람화석은 없나요?

 

 

“그 많은 화석 중에 사람화석은 왜 없나나요?”. 이 질문은 노아홍수 세미나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입니다. 지구상에 수백억 이상의 화석들이 돌 속에 매장되어 있고 이들이 노아홍수의 결과라면 사람화석도 그 가운데 발견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에 있는 화석들의 빈도를 보면 전체 화석 가운데 95%가 조개와 같은 해양 무척추 동물입니다. 그리고 그 5% 중에서도 95%는 바다식물이나 나무입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의 대부분이 물고기 화석입니다. 실제로 육지동물 화석은 아주 적은 양만이 발견되고 있죠.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공룡화석이 2,100구 정도 되는데, 이는 전체 화석에 비하여 아주 적은 양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몸 전체가 아니라 한 두 조각의 뼈만이 발견되었습니다. 사람화석도 보고된 적은 있지만 모두 조각들이어서 분명한 것이 없죠.

 

중요한 것은 화석은 생물들이 물에 빠졌을 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다량의 흙에 갑자기 매몰될 때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노아홍수 때 화석이 만들어졌다고 본다면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형성된 많은 흙들은 수면보다는 훨씬 아래에서 많은 퇴적물들이 섞인 혼탁류 상태로 이동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이동하면서 물에서 살고 있던 해양생물을 매몰시켰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화석으로 볼 수 있게 되었죠.


반면, 육지동물들은 물에 떠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화석이 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아홍수 모델로는 화석에서 육지생물이 해양생물에 비해 아주 적게 발견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화석의 대부분은 살아있을 때 물에서 살던 것들이라는 점은 노아홍수의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죠.

 

 

 

석탄의 경우도 똑같은데요. 지난 1월호에 석탄은 홍수 동안 물에 떠있던 나무에서 껍질이 분리되고, 무거워져서 가라앉게 된 껍질들이 진흙에 매몰되어 탄화된 것이라고 했었죠? 그런데 지구상에 나무껍질인 석탄은 엄청나게 분포해 있지만 그에 비해 나무자체 화석은 거의 발견이 되지 않습니다. 즉, 나무들은 홍수 동안 대부분 물위에 떠있었기 때문에 석탄이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해양동물에 비해 육상동물 화석이 잘 발견되지 않는 것은 진화론자들에게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창조 이후 가장 큰 물리적 사건인 노아홍수의 과정을 통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글/ 이재만(창조과학회 미서지부장, 「창조과학콘서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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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 석탄의 베일을 벗기다

 

 

 

석탄의 베일을 벗기다!

 

지구상에 검고 가벼운 에너지원이 있습니다. 바로, 석탄입니다. 지구상에는 엄청난 양의 석탄이 매장되어 있습니다. 오랫동안 연료로 사용되어 왔는데도 아직 많은 양이 남아있습니다. 이 석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석탄은 탄화된 나무입니다. 마치 숯과 같죠. 공기가 차단된 상태에서 가열을 하면 숯이 됩니다. 그러므로 석탄이 만들어지려면 공기가 차단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석탄은 나뭇의 가지나 잎보다는 대부분 나무의 껍질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석탄이 만들어지려면 공기가 차단되고, 나무자체와 껍질이 분리되는 어떠한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석탄에 관한 기존의 이론들은 늪지대에서 오랫동안 나무가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그 이론이 사실이라면 발견되는 석탄에 나무자체나 나뭇잎의 성분이 많아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습지에서 나무들이 쌓여 석탄이 만들어진 경우는 없습니다. 
 

석탄의 형성을 설명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은 ‘떠다니는 매트이론’입니다. 바로 옆의 <그림 2>와 같은 모양입니다. 언젠가 나무들이 뽑히는 사건이 발생했고, 동시에 이들을 떠다니게 했던 홍수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떠다니던 나무의 껍질들이 물에 의해 느슨해지고 무거워져서 아래로 가라앉은 것입니다. 이들이 밀려오는 흙에 의해 덮이고 이어서 열을 받아 석탄이 되었다는 이론입니다. 

 

 

석탄은 현재 지구상에 엄청난 규모와 면적으로 분포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오늘날에 일어나는 어떤 사건도 이런 규모의 석탄을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무가 뽑히는 사건과 함께 나무와 껍질이 분리되는 전지구적인 홍수만이 이것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노아홍수는 ‘모든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라고 시작합니다. 이는 엄청난 양의 나무가 뿌리 채 뽑히는 조건입니다. 또한 엄청난 나무껍질들은 천하의 높은 산이 잠기는 홍수 동안 마치 매트처럼 떠다녔으며, 물에 의해 느슨해지고 무거워진 나무껍질들은 가라앉아 쌓이고, 그 후에 열을 받아 석탄이 된 것입니다. 노아홍수는 석탄 형성의 필요충분조건입니다.
 

글/ 이재만 선교사(한국창조과학회 미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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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 생태계의 창조섭리

 

 

 

생태계의 창조섭리 
 
 이웅상
전 한국창조과학회 회장
명지대 교목실장
명지대 생명과학부 교수

 
 

 1. 타락 이전의 생태계

 
하나님이 6일간의 창조를 마치시고 하신 결론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31) 라는 말씀이었다. 창세기 1장6절에 하나님이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라' 하심으로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뉘게 하신 것을 알 수 있다. 궁창은 하늘이란 말로 대기권 위에 물층이 있어 지구를 보호하고 있으니 오늘날의 지구와는 전혀 다른 환경이었을 것이다. 노아의 홍수 때 이 물층이 지구위에 쏟아졌으니, 시간당 1.3cm의 소나기로 계산해도 40일간 내린 강우량은 12m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창7:1~12). 여기에 지하수가 터져 나와 온 지면을 물로 덮은 것이다. 

이 엄청난 양의 물이 대기권 위를 둘러싸고 있었으니, 전 지구는 이상적인 환경을 유지했을 것이며, 대기압은 적어도 2.18기압은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이 궁창위의 물이 존재함으로써 지구환경에 미쳤던 환경에 대해 생각해 보자.
 

제일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궁창위의 물에 의한 온실효과다. 즉 대기권위에 둘러싸인 물층에 의해 지구는 적도나 극지방이 모두 온화한 이상적인 기온과 습도를 유지했을 것이다. 오늘날 기상학자들은 궁창 위의 물이 실제로 존재했었다면, 지구에는 비가 내릴 수 없고 오직 이슬에 의해 수분이 공급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창세기 2장5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6절에는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얼마나 정확한 과학적 기술(記述)인가!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한 것이 기상학적 지식이 전혀 없었던 B.C 1450년 경이라면 그는 어떻게 홍수 이전의 보지 못한 지구환경을 이토록 정확히 기술할 수 있었을까? 이는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모세에게 창조의 비밀과 역사를 계시하여 기록하게 하셨기 때문이며 (딤후 3:16, 벧후 1:21), 이것이 성령의 능력이요 신비인 것이다.
 

오늘날의 과학은 더욱더 풍성한 자료들로 궁창위의 물에 의한 온화한 지구환경을 증언하고 있다. 북극에서 화석으로 발견된 종려나무, 산호초, 맘모스 등은 과거에 이러한 생물들이 북극에도 살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생물체의 잔유물인 석탄과 석유도 극지방을 포함하여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악어의 화석은 미국 뉴저지주와 영국 뿐 아니라, 남극지방에서도 발견되었다. 최근 북극의 얼음 속에서 발견된 맘모스의 위(胃)에서 연꽃 같은 아열대 식물들의 화분 등이 발견되었다. 또한 상상할 수 없는 화석들이 남극의 세이모아라는 섬에서 발견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남극이 빽빽한 삼림으로 우거졌으며,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었음이 화석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이 모든 자료들은 궁창 위의 물과 이로 인한 온실효과 이외에는 어느 학설도 제대로 설명해 낼 수 없다.
 

다음으로 궁창 위의 물은 생물체에 해로운 단파장의 방사선을 차단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특히 자외선과 우주선은 DNA를 파괴해 생물에 해로운 돌연변이를 유발하는데, 이러한 방사선이 완전히 차단됨으로써 지구는 생물이 살기에 이상적인 환경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궁창 위의 물로 인해 대기압은 현재의 두 배 이상으로 높았을 것이며, 이 높은 대기압은 세포에 보다 더 많은 산소를 공급하게 했을 것이다. 결국 산소를 필요로 하는 생물들의 성장은 더욱 활발했을 것이며, 상처를 입었을 경우에도 훨씬 빨리 치료되었을 것이다.
 

노아의 홍수 이전의 인류가 대부분 900세 이상 살았다는 성경의 기록이 얼마나 놀라운가! 모세 자신은 120년 밖에 살지 못했으면서도 이 놀라운 진리를 기록했으니, 성령의 능력이 아닐까? 오늘날 과학은 지구초기의 이상적인 환경으로 인해 생물들의 수명이 길고, 그 결과로 거대한 크기로 성장한 생물들을 많이 발굴해 왔다. 길이가 30m 정도나 되는 거대한 공룡이 발견되었는가 하면, 길이 1m정도의 잠자리, 키가 4m나 되는 낙타, 키가 3m를 넘는 조류들, 오늘날에는 원숭이 만한 나무늘보가 5.5m되는 거대한 화석으로 발견되었다. 이들의 대부분이 현재의 생태계에서 볼 수 있는 생물들이지만, 오늘날 지구의 가뭄, 혹한 등 생장에 불리한 환경의 변화로 인해 궁창의 물로 보호를 받고 있었던 노아의 홍수 이전처럼 빨리 성장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예상할 수 있다.

 

 

2. 타락 이후의 생태계

 
죽음도 고통도 없던 완전한 에덴동산의 생태계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롬 5:12) 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후로 지구는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다(창 3:18). 종(種)간의 교잡과 돌연변이를 통해 다양한 변이가 생겨나게 되었고, 생태계는 생존을 위한 생물간의 치열한 투쟁터가 되고 말았다. 식물들은 생존을 위해 다양한 화학독성물질을 생산해 자신을 보호하기 시작했고(Allelopathy), 유익한 박테리아들도 병원균이 되어 생물을 죽이는 기능을 갖게 되었다. 상호이익을 추구하던 공생관계도 많은 것들이 기생관계로 변해 서로 해로운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또한 동물들도 부족한 단백질을 채우기 위해 육식을 시작함으로 오늘날의 생태계의 먹이 피라밋을 형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3. 홍수 이후의 생태계

 
궁창위의 물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파괴되었다. 인간에게 죄가 들어온 후 세상은 마침내 죄가 관영하게 되었고, 인간의 마음의 생각이 항상 악할 뿐임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근심하셨다(창 6:5,6). 결국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40주야 동안 비를 내리셨는데, 창세기 7장11절에 표현하시길 '하늘의 창들이 열려' 비가 쏟아졌다고 말씀하고 있다. 완전한 하나님의 창조가 인간의 죄로 파괴된 것이다. 그 결과로 인간의 수명이 갑자기 짧아지기 시작하였으니 노아는 950년을 살았으나, 그의 아들 셈은 602년을, 손자인 아르박삿은 438년을, 그의 11대 손인 아브라함은 175년을 살다 죽었다. 6백여년 만에 인간의 수명이 900세에서 175세로 줄어든 것이다. 수명의 단축은 현재까지 지속되어 마침내 100세 이하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궁창위의 물이 파괴됨으로써 인간의 수명만이 단축된 것이 아니다. 모든 생물의 수명이 줄어들고 성장률이 떨어졌다. 식물계에 의한 절대 생산량이 떨어져 채식만으로는 생물들이 생활할 수 없게 되자, 하나님께서 육식을 허락하셨으니(창9:3), 이 때부터 약육강식의 생태계가 시작되었으며, 인간 또한 육식을 하게 된 것이다.
 

궁창위의 물이 없어지자 지각은 일정한 습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물이 증발해 구름을 형성하여 무지개를 이루니 이것을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시지 않겠다는 언약으로 사용하셨다(창9:13-16). 그러나 지구는 궁창 위의 물이 파괴된 이후 계속 퇴락해 오늘날의 많은 생태학적인 지구 종말론을 가져오게 되었으니, 이산화탄소의(CO2) 위기설, 오존층의 파괴, 대기와 수질의 오염, 방사능 오염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위해 새 창조를 하고 계시니, 이사야와 베드르, 요한을 통해 예언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이 바로 그것이다(사 65:17,66:22; 벧후3:13; 계21:1). 거기에는 눈물도 애통하는 것도 없으니 사망도 아픈 것도 없을 것이다 (계21:4). 또한 그곳은 각종 환경오염으로 시달리지 않고 생수와 신선한 공기를 어디에서나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니라'(계 21:27)고 성경은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주의 백성들을 위한 새 세계가 마치 신부가 단장하듯이 예비되어 있으니(계2:12) 얼마나 놀라운 소망인가! 모든 환경과 생태계가 다시 새롭고 완전하게 창조되는 세상인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창조된 생태계를 바라보는 기독인의 바른 자세는 무엇인지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자. 

첫째로 성서적 자연관의 확립이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의 말씀으로 시작하여 곳곳에서 하나님이 창조자이심을 밝히고 있다.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원시대기에서 우연히 화학반응이 일어나 최초의 생명체가 생겨나고, 여기서부터 오늘의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생물들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무(無)에서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말씀 속에는 세계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진화론의 설명처럼 인간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진화한 가장 고등한 동물이므로 마치 자연의 주인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다른 생물과 같이 피조물중의 하나인 것이다. 시편 50:10-12에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인들은 철저히 세계의 소유주는 창조자 하나님이심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창조세계에서 맡은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가. 창세기 1:28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 주신 명령이 있다. '생육하고 번영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즉 하나님은 인간에게 창조세계를 관리하는 청지기의 직분을 맡겨 주신 것이다. 창조 세계의 주인은 분명히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잠시 이 세상에 있는 동안 관리하는 책임을 맡은 자들인 것이다.
 

청지기로서 인간의 첫 번째 책임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자손번식에는 충실했지만 땅에 충만 하라는 명령에는 거역했다. 창세기에서의 인류는 바벨탑을 쌓고 흩어져 땅에 충만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도전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동케 하심으로 강제로 흩으셨다. 그러나 인간은 편리주의와 산업발전을 핑계로 도시를 건설하고 엄청난 인구가 한 곳에 모여 살면서, 온 땅에 충만 하라는 명령을 어기며 살고 있다. 결국 자연은 훼손되고, 오염물질의 대량생산으로 지구의 생태계는 파멸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다. 해결책은 말씀에 순종하는 길 밖에 없다. 대도시라는 현대판 바벨탑 건설을 지양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청지기로서 인간의 두 번째 책임은 땅을 정복하라는 것이다. 그동안 인간은 '땅을 정복하라'는 말을 '땅을 소유하라'는 말 내지는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마음대로 개발하고 착취하라는 뜻으로 오해해 왔다. 그러므로 인류역사의 상당부분이 서로 땅을 점령하려는 전쟁으로 점철되어 왔으며, 개발이란 명목아래 자연은 말할 수 없이 파괴되어 왔다. 그러나 창세기1:28의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의 뜻은 하나님의 법대로 '경작하라'는 말로 해석되어야 한다. 땅을 인간이 소유하고 마음대로 훼손하고, 땅의 권리를 소유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잘 관리하며 경작하여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물들이 번성케 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레위기 25장에는 땅을 경작하되 7년마다 1년씩 땅을 쉬게 하고, 그동안 저절로 맺힌 열매조차도 거두지 말도록 안식년을 명하시고, 50년째 되는 해에도 동일하게 땅을 경작치 말고 쉬게 하도록 하는 희년 제도를 주셨다. 결국 땅을 경작하되 훼손되지 않고 자연을 보전하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청지기로서 세 번째의 책임은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는 것이다. '다스리다' 라는 말은 성경에서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하나는 '보호하다' 라는 의미와 다른 하나는 '섬기다' 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즉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고 인간의 이익을 위해 착취하고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창조자를 대신해서 잘 관찰하고, 관리하며 보호하는 책임이 있다는 말씀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창조자이시오, 하나님 자신이지만 피조물인 인간이 죄 가운데 멸망해 가고 있을 때 구원하시기 위해 섬기는 자로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인간은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바 된 존재로 자연을 섬김으로 보호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적 자연관은 창조신앙에 기초해야 하며, 이는 창조자이며 인류의 유일한 구원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바르게 형성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생태계의 특성을 바로 이해해야 한다. 생태계는 생물과 무생물과의 끊임없는 물질교환으로 되어 있으며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이러한 생태계의 가장 중요한 특징중의 하나는 모든 물질이 순환한다는 것이다. 생태계를 구성하는 무기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물이 순환함으로 물에 녹는 모든 물질이 역시 함께 순환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오염시킨 모든 물질이 물과 함께 순환하여 결국은 전 생태계를 오염시키게 되고, 그 중의 한 구성원인 인간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전도서 1:7에는 '모든 강물은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고 연하여 흐르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연하여 흐른다'는 말은 그것이 온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다. 잠시 편하게 살려고 무심코 버린 오염 물질이 나에게 되돌아오며,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야간 몰래 버린 공장폐수가 인간에게 되돌아온다는 경고인 것이다. 성경은 물뿐만이 아니라 대기도 순환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전도서 1:6에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무한히 넓은 하늘인데 하고 무심코 방류한 매연이 산성비가 되어 전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으며, 오존을 생성해 식물의 생산량을 감소시키며, 동물의 호홉기 질환을 유발시키고 있다. 또한 과다한 화석연료를 사용함으로 발생된 이산화탄소가 가져와 전 세계적인 온난기후로 빙하가 녹아 세계가 물에 잠길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이 오늘날 지구의 현실인 것이다. 전 기독인들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생태계를 바로 이해하고 우리의 우매함을 회개하며, 바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창조자께 지혜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 청지기로서 자연보전에 대한 헌신이 필요하다. 제일 먼저 기독인 한 사람 한 사람이 편리주의를 버리고, 좀더 단순하고 절제하는 생활로 돌아가 환경을 보호하는 일에 앞장서야겠다. 그리고 나아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창조자를 증거하여 창조 신앙을 갖고 청지기로 헌신하도록 해야겠다. 이것은 창조자이신 하나님 뿐 만 아니라, 모든 자연이 고대하는 바인 것이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로마서 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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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 위대한 과학자들의 고백

 

 

 

 

갈릴레오의 고백

  천문학자 갈릴레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권의 책을 주셨다. 하나는 성경이라는 책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이라는 책이다." 즉, 성경이라는 책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을 발견할 수 있고 자연이라는 책을 통하여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 자체를 알게 된다고 한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9절과 20절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성경과 과학은 자연스럽게 잘 조화되는 것입니다. 즉 성경 속에 과학은 포함되는 것입니다.


뉴톤의 과학관 

  뉴톤은 "과학은 피조세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세계를 만드신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고, 학문의 목적은 그의 하신 일들을 보고 기뻐하며, 사람들에게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의 고백 

  아인슈타인도 그렇습니다. 그도 유태인이었지만 무신론자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안 믿고 하다가 노년에 접어들어서 다시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평생에 발견한 자기의 수많은 지식을 통하여 하나님과 멀어진 것이 아니라 가까워지게 된 것이지요. 이것은 그의 말년에 한 말입니다. "나는 이러저러한 과학적 현상이나 스펙트럼에는 관심이 없다. 평생 해봤으니까. 나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싶을 뿐이다. 나는 하나님이 어떻게 세상을 창조하셨는지를 알고 싶다. 나머지는 사소한 일이다." 즉 "나는 창조과학의 강의를 듣고 싶다." 이런 뜻입니다.


콜린스 박사의 인생역정

  2000년 6월말, 인간의 과학사에 큰 획을 긋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인간의 유전자를 구성하고 있는 핵산의 배열상태를 전부 밝혀낸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매스컴은 이 업적의 가치에 대해서 약간 과장된 표현을 하기는 합니다만 분명히 위대한 업적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아래 글은 2000년 6월 27일 MBC TV의 "영생의 기로에 선 인간"이라는 논평의 일부입니다.

  인간의 유전자 게놈지도 초안이 공개됐습니다. 전세계 18개국 350개 연구소에서 지난 10년간 진행된 게놈프로젝트 1단계가 완료된 것입니다. 클린튼 미국 대통령은 "우리는 신이 인간의 생명을 창조하면서 사용한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선언했습니다.
 .............. (중략) ...............
이번 게놈 연구를 주도한 프랜시스 콜린스의 인생 역정은 그래서 주목할만 합니다. 그는 원래 무신론자였지만 게놈 연구중에 신앙인으로 변했습니다.

 

 

 

사도바울과 쉐퍼박사

 

사도 바울의 고백

  사도 바울이 고백했던 말씀, 고린도전서 1장 25절의 말씀이라든가 빌립보서의 말씀이라든가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사도바울은 당시에 대단한 신분이었습니다. 가말리엘의 문하였고, 날 때부터 로마 시민이었지요. 많은 왕들 앞에서 도 당당히 간증하여 그의 똑똑함을 보였는데, 그런 분이 뭘 모르고 그저 "믿습니다. 아멘" 만으로 이런 말 한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은 그 당시 모든 지식을 통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알고 하나님 알고 나니까 여태까지 알던 세상적 지식이 너무 시시한 거에요. 그래서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성경이 비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당시 과학적 지식에 비하여 월등히 앞서 가는 초과학적이라는 것이지요.


프렌시스 쉐퍼 박사의 선언 

  복음주의 신학자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프란시스 쉐퍼는 그의 유명한 저서 '위기에 처한 복음주의' 에서 성경을 보는 태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성경은 기록된 말씀 그대로 믿는 것이 중요하며, 실제 역사적 사건으로 받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을 기록된 말씀대로 해석하지 않고 의미로만 해석하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정통 기독교신앙을 벗어난 것이다." 성경의 기록은 순수한 마음으로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 론

 

 지금까지 보신 바와 같이 성경은 과학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증명된 책이며, 과학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책입니다. 성경의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지성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장 1절)" 이 말씀은 과학적으로 아무런 잘못이 없으며, 오히려 과학의 발달로 인해 점점 더 명확하게 증명되어가고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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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 인류의 기원

 

 

 

 

 

 

인류의 기원 

  성경은 인류의 기원, 유전학에 대해서도 놀라운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흔히 인류는 황하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등 여러 가지 운영으로 각각 시작하였고, 모든 것이 따로 따로 시작하였다고 알고들 있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미국 와싱턴 대학에 과학자들이 인류의 조상이 과연 각각 발생하고 문명이 각각 시작하였을까 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유전공학적인 조사를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세포의 구조와 마이토콘드리아

  그것이 가능하게 된 이유는 바로 마이토콘드리아 때문입니다. 이 그림은 사람의 세포입니다. 세포 속에는 핵이 있고 핵 안에는 세포가 사는데 필요한 유전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유전정보는 DNA 라는 형태로 들어 있는데, 반드시 핵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핵 바깥에, 그러니까 세포질 내의 에너지 만드는 공장인 마이토콘드리아(mitochondrion) 안에도 독자적인 DNA 가 따로 있습니다. 이것을 mitochondrial DNA 라고 하는데요, 그 마이토콘드리아 DNA를 이용해서 인류의 조상을 조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처음 만들어질 때 모든 것이 엄마 아빠가 반반씩 기여를 하는데 마이토콘드리아만은 엄마에게서만 받습니다. 이렇게 보면 사람 만드는 데는 엄마의 역할이 더 크다 할 수 있지요. 그렇게 해서 사람들의 이 마이토콘드리아의 특징을 조사해 올라가면 모계혈통을 따라 올라가 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어디서 왔을까? 하는 것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DNA 분석 연구 

  여기 보시면 여러 사람의 DNA를 받아 가지고 특수한 제한 효소들을 이용해 잘라 가지고 각 DNA의 특징들을 비교해 보고 있는 광경입니다. 염색된 DNA가 300nm 정도 되는 자외선을 받아서 분홍색의 형광을 발하게 되어 분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흑인이건, 동양인이건, 백인이건 관계없이 모든 인류의 여자 조상은 단 한 사람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하는 것을 마이토콘드리아 DNA 조사를 통해 증명하게 된 것입니다.

 

시상식 

  그 당시에 대단한 발견이라 하여 연구자들이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와싱턴 주립대학에 많은 학자들이 모인 가운데 시상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이 그림은 그곳에 모인 기독교인 과학자들이 농담 겸 칭찬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만 보았으면 될 걸..."


한 명의 이브 

  DNA를 뽑아 많은 고생 끝에 발견한 사실은 무엇입니까? "모든 여자의 조상은 한 사람이다." 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성경에 그대로 씌어 있습니다. 창세기 3장 20절에 보시면 "아담이 그 여자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으니 하와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되었음이더라." 모든 사람들은 하와의 자손입니다. 그러다가 인류는 노아의 홍수 때 다 죽고 노아의 아내와 그 세 며느리로부터 오게 된 것인데, 이들도 결국은 하와의 자손이지요, 이렇게 성경은 예전부터 하와는 한 명이었음을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토끼의 되새김질

 

토끼 되새김질의 증명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의 유명한 동물학자인 그리지맥 박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그림속의 인물은 아닙니다마는) 프랑크푸르트 동물원 원장도 하시고요, 유명한 동물학자인데, 이 분이 신앙이 좋은 분이었습니다. 토끼 때문에 큰 일 났네, 하다가 성경에서 말씀하셨으니까, 말씀을 신뢰하고, 내가 직접 연구해 보고, 결론을 내리자 한 것입니다.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아침부터 맘까지 열심히 연구하고 관찰을 해 보았더니, 놀랍게도 먹이 주고 옆에 앉았을 때는 절대 되새김질을 안 하던 토끼들이, 모든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 잠이 든 시간인 밤 12시에서 새벽 3시 사이에 캄캄한 토끼굴에서 혼자 몰래 되새김질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되새김질에는 특수한 물질이 필요한데, 그것이 토끼똥입니다. 토끼는 두 가지 똥을 누는데, 하나는 진짜 똥이고요, 다른 하나는 되새김질에 필요한 특수 약품입니다. 그래서 토끼 깨끗하게 키운다고 똥을 다 치워버리면 영양결핍으로 토끼 생명이 위태롭습니다. 소화불량으로 죽지요. 1998년이 토끼해였지요. 그래서 정초에 KBS에서 토끼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여주었는데, 거기에도 토끼가 되새김질하는 동물로 설명되었습니다. 만일 성경이 말하지 않았다면, 모두들 토끼가 되새김질을 한다는 사실에 대해 관심조차 갖지 않았을 것이고 토끼는 되새김질하지 않는 동물로 분류되었을 터이니 토끼가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 아래는 Henna 라는 닉을 쓰시는 분이 '소감' 게시판에 올려 주신 글입니다. 참고가 될 것 같아서 여기 삽입합니다.

왜 성서는 토끼를 되새김질하는 동물로 분류하는가?
성서가 토끼를 되새김질하는 동물로 언급하는 것에 대해 몇몇 성서비평가들은 종종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서에서 알려주는 것을 판단하기 위하여 현대 과학의 되새김질하는 동물에 관한 정의를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분류는 모세시대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18세기에도 장시간에 걸쳐 토끼를 관찰한 영국시인인 윌리엄 코퍼(William Cowper)는 토끼들이 낮부터 저녁까지 되새김질한다고 언급했다. 동시대의 유명한 자연학자였던 리네우스(Linaeus)는 토끼가 되새김질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입증하기 위해서는 더 과학적인 자료가 필요했다. 프랑스인 모로는 1882년에 토끼가 매일 섭취량의 최대 90퍼센트를 재섭취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최근의 한 출판물에서 이반 샌더슨(Ivan T. Sanderson)은 토끼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토끼와 관련하여 우리가 보기에 가장 이상한 것은 그들의 소화방식이다. 토끼에게는 이것이 독특한 것이 아니며, 이것은 이제 설치류에게서도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건조한 겨울 식량과는 반대로 선선한 녹색 야채를 먹게 되면 토끼는 게걸스럽게 덤벼들어 먹어치운 후, 반쯤 소화된 상태로 보금자리 근처에 배설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그 동물은 이것은 다시 먹으며 이 과정은 한 번 이상 반복된다. 일반적인 토끼를 관찰해 볼 때 다 자란 성숙한 토끼만이 이러한 방식으로 소화한다.-Living Mammals of the World, 1995, p.114 20세기에 몇몇 영국학자들이 철저한 통제하에 토끼의 습성을 관찰하여 Proceedings of the Zoological Society of London지(1940, Vol. 110, pp. 163)에 그 결과를 발표했다. : 토끼가 신선한 음식으로 아침을 먹으면 그 음식에 있던 40내지 50 그램의 뭉친 알맹이들을 위의 끝부분에 남겨두고 그 음식은 위를 거쳐서 소장으로 간다. 이 음식물은 소장에서 출발하여 맹장이나 대장의 끝이 막힌 부분(뚫리지 않은 부분)에 들어가서 거기서 잠깐 동안 머문다. 낮동안 위의 끝부분에 남겨진 알 모양의 덩어리들은 하강하는데, 장에 이르면 그 속에 있는 구균 단백질이 흡수된다. 대장에 이르면 그 덩어리들은 맹장에 있는 물질을 무시하고 지나가서, 결장에서 과도한 양의 수분을 빼앗기며, 우리에게 익숙한 나중에 배출될 마른 콩 모양의 배설물들이 생성된다. 이러한 과정이 끝나면 맹자의 막힌 부분에 저장되어 있던 물질들은 결장에 들어가며, 그 속에 있던 수분이 다 흡수되지 않고 훨씬 부드러운 상태로 항문에 도달한다. 이 물질들은 뭉친 알의 형태로 서로 달라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거친 점액층으로 입혀져 있다. 이제 이 뭉친 덩어리들이 항문에 도달하면 버려지는 대신, 토끼는 몸을 구부려서 입으로 그것들을 가져가고 그것을 다른 음식이 들어올 때까지 위의 막힌 부분에 저장해둔다. 이러한 방법으로 특별한 주기적 순환이 완성되며 대부분의 음식은 소화관을 2번 거치게 된다.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협회의 동물학 분야 수석관장인 슈미트 박사는 이러한 발견에 대해 논하면서 이렇게 썼다. "토끼가 습관적으로 반만 소화된 음식을 맹장에 저장하여 후에 재섭취하고, 이렇게 하여 음식물은 소화관을 2번 거친다는 연구원들의 보고의 신뢰성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 그는 또한 "토끼의 맹장이 다른 포유류의 것과 비교할 때 굉장히 큰 것"에 대한 설명도 토끼의 이러한 습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 Henna -

 

 

와싱턴 장군과 피

 

와싱톤 장군 

  여기 미국돈 1달라 짜리 사진이 있는데요, 그 안에 있는 인물을 보십시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고, 미국의 독립을 쟁취한 유명한 장군 조지 와싱턴입니다.


와싱톤 장군의 사망원인

  그 위대한 조지 와싱턴의 죽음은 어떠했을까요? 늙어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했거나, 암살을 당했거나 등등의 생각을 해 볼 수 있겠지요. 워낙 유명한 분이라 그의 사인에 대해서는 미국 버지니아 주의 의학논문집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기록문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1797년 12월 12일 눈비 내리는 추운 겨울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습관대로 말을 타고 와싱턴 D.C. 부근의 알렉산드리아 마을에 있는 '마운트 버논'의 자기 농장을 둘았습니다. 그래서 독감에 걸렸는데 다음날 장군은 목이 아픔을 호소하며, 집안에서 쉬었습니다. 그런데도 낫지를 않았지요. 다음날 14일 새벽 3시에 장군은 열이 심하게 났으며, 그 날 낮에 평소에 의학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던 농장 관리인이 와서, 그 당시 정통한 해결법대로, 나쁜 피가 않아서 그렇다며 장군의 피를 많이 뽑아 주었습니다. 그래도 낫지 않자 제임스 크래잌 박사와 다른 의사들이 와서 두 번에 걸쳐 많은 피를 뽑아 주었습니다. 그래도 낫지 않자 또 피를 뽑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피가 천천히 나오며, 피가 진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혈액응고작용으로 접어 든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너무 많은 피를 흘려서 죽게된 실혈사입니다. 늙은 사람인데다가 독감에 걸려 있는데, 피를 자꾸 뽑으니, 죽게 된 것이지요. 기가 찰 노릇입니다. 죽어가는 장군의 머리맡에는 그가 평생토록 읽던 성경책 한 권이 놓여 있었습니다.


피에 관한 성경기록 

  그 성경책 레위기 17장에 보시면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등등으로 피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피는 얼마나 인격적인가 하면 짐승을 잡아먹더라도 피는 그 주인 되신 하나님께 돌리기 위해서 다 땅에 쏟아라, 하나님께 바치라고 되어 있습니다. "피는 생명이다." "피 뽑으면 죽는다." 하는 것이 성경 여러 군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록 워싱턴 시대에 의학이 무지했다 하더라도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믿음이라도 옳게 있었더라면, 과학지식은 무식했더라도 믿음에 의지해서 "성경에 피 뽑으면 해롭다 하던데요, 피는 뽑지 맙시다. 다른 것으로 어떻게 해 봅시다. 뜸이든, 침이든..." 이랬던들 그 위대한 워싱턴 장군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무지와 불신앙이 낳은 결과로 독립의 영웅을 죽게 한 것이지요. 이런 사실을 볼 때 그 당시 의학수준에 비해 성경이 얼마나 의학적으로도 과학적이었는가를 알 수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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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 고대인의 우주관과 지구관

 

 

 

 

 고대의 사람들은 지구와 우주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가에 대한 자기 나름의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중국인들은 거대한 거북이가 지구를 받치고 있고 그 위에 코끼리들이 기둥을 세우고 그 코끼리 위에 땅이 있어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또 어떤 나라에서 는 여신의 허리가 땅이고 그 위로 태양이 돌아다니고 하는 식으로, 각 민족들이 나름대로의 우스꽝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있던 시대에, 성경은 지구와 우주에 대해 어떻게 기록하고 있었는가를 보겠습니다.


성경적 우주관 및 지구관

  성경은 지구를 이와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욥기 26장 7절에 보시면, 우리말 번역으로는 이와 같이 되어 있습니다. "땅을 공간에 다시며". 이것도 영어성경을 보시면 'Earth'를 'space' 혹은 'nothing' 에 다시며" 라고 되어 있습니다. 'Earth'는 땅이라는 뜻도 있지만 '지구'를 뜻합니다.  '지구'를 '공간', 즉 '우주'에 달아놓았다고 하는 놀라운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간에 달린 지구'라는 놀라운 기록을 지금부터 3000년 전에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의 우주관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우주공간에 달린 지구: 실제로 이것은 우주시대에 들어선 요즈음 완전히 증명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주인들이 우주선을 타고 무주에 가서 지구를 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공간에 이 땅덩어리가 달려 있습니다. 이것을 보시면 그야말로 성경의 묘사가 그대로 정확함을 알 수 있습니다.


만유인력의 본체

  현재 태양, 지구, 달이 우주공간에 왜 떠 있는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기전을 현대물리학으로도 설명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만유인력 등으로 떠 있겠지 하지만 만유인력의 실체가 무었인지는 현대과학으로도 모르고 있습니다. 진정으로는 지구가 우주공간에 왜 떠 있는지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과학적이라고 인식되어 온 성경에 오히려 그 대답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약 1900년전에 기록된 신약성경 히브리서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물은 태양도 달도 지구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만물을 우주공간에 붙들고 있는 힘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특별한 에너지, 이성을 갖춘 에너지 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을 인정하지 않는 과학에서 아무리 연구를 한들 알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정답을 빼놓고는 답을 쓸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무신론자이고 비기독교인인 세계적인 천문학자 로버트 제스트로 같은 과학자도 다음과 똑같은 고백을 하였습니다. "과학자들이 수많은 연구를 통해 어느 이론의 배경쯤 접근을 해 보면 이미 그 자리에는 예전부터 와서 앉아 있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누구냐고 물으면 그들은 신학자들이라고 대답한다" 과학자가 어마어마한 연구를 통해 지식의 정상에 올라와 보면 이미 그 자리에는 신학자들이 와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의 궁극이 신학과 만난다는 것을 그 분도 인정한 것이지요.

 

 

 

아인슈타인과 성경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20세기 물리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의 하나는 아인슈타인 박사의 상대성이론입니다. 이것을 간단히 표현하면 E=MC2 E는 에너지이고 M은 질량이고 C는 빛의 속도인데, 결국 에너지와 질량(보이는 세상)은 같은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에너지는 질량으로, 질량은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는 놀라운 발견을 한 것이지요 이는 20세기의 최고의 발견이지만, 그게 과연 20세기에 처음 발견된 이야기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과 상대성 이론

  아인슈타인이 그런 말을 하기 1800년 전에 이미 성경은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이 세상, 우주, 만물이라는 것은 공간과 시간과 질량의 연속체로서의 세상이라는 것을 말하면서, 보이는 것 즉 질량, 물질의 세계는 사실은 물질 자체가 근본적 모습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원자 에너지라고 하는 에너지의 특수한 표현중의 하나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현대 물리학도 그렇게 봅니다. 사실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세계의 특수한 표현중의 하나가 보이는 것이므로 보이는 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 진짜라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불교에서도 그 내용을 잘 깨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야심경에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라는 말로 에너지와 물질의 관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천 몇 백년이나 앞서 아인슈타인의 원리를 표현하고 있으니,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으며, 윤리. 도덕 교과서 정도로 밖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와 같이 성경에는 초과학적인 표현이 많습니다.


아인슈타인의 고백

  아인슈타인도 그렇습니다. 그도 유태인이었지만 무신론자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안 믿고 하다가 노년에 접어들어서 다시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평생에 발견한 자기의 수많은 지식을 통하여 하나님과 멀어진 것이 아니라 가까워지게 된 것이지요. 이것은 그의 말년에 한 말입니다. "나는 이러저러한 과학적 현상이나 스펙트럼에는 관심이 없다. 평생 해봤으니까. 나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싶을 뿐이다. 나는 하나님이 어떻게 세상을 창조하셨는지를 알고 싶다. 나머지는 사소한 일이다." 즉 "나는 창조과학의 강의를 듣고 싶다." 이런 뜻입니다.

 

 

 

태양과 태양계

 

 태양계

  다음은 태양계에 대해서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태양계는 납작한 원반처럼 생겼습니다. 가운데 볼록한 부분이 태양이 있는 곳입니다. 아랫쪽 그림은 혹성들을 나열한 것입니다. 맨 아래에서 시계바늘 방향으로 수성(mercury), 금성(venus), 지구(earth), 화성(Mars), 목성(Jupiter), 토성(Saturn), 천왕성(Uranus), 해왕성(Neptune), 그리고 조그마한 명왕성(Pluto)이 있습니다. 지구 옆에 보시면 작은 공이 하나 있지요, 그것이 달입니다. 목성과 토성은 좀 큽니다.


태양의 운행 

  성경이 비과학적이고 무지한 책이라고 심하게 비난을 받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대표적인 것이 이것입니다. 시편 19편 6절에 보시면 "태양은 하늘 이 끝에서 나와 하늘 저 저끝까지 운행함이여, 태양의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가 없도다" 이 말씀을 가지고 태양이 왔다 갔다 한다 하여 증세의 카토릭교회에서 는 천동설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가 보니까 그게 아니거든요. 지구가 왔다 갔다 하는데, 상대적 운동으로 태양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 하여, 지동설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재판에 들어갔고, 할 수 없이 천동설을 인정한 뒤에 재판정에서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지구가 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은 지성인이 믿을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도매금으로 다 넘어갔지요. 과연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최첨단 우주과학자들인 나사의 과학자들도 우주 비행을 할 때, 모든 계산을 (사실은 우주선이 날아 가고 있지만) 우주선은 정지해 있고 다른 모든 벌들이 우주선 주위를 다니고 있다는 상대적 운동으로 계산하여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있습니다.


태양계 운행의 발견

  그 뿐 아니라 최근에 와서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은하계 자체가 맹렬한 속도로 회전하면서 움직이고 있으며, 태양은 태양계 모든 벌들을 데리고 시속 약 백만 km의 속도로 (로케트 속도의 백 배나 되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하늘 이 끝에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천동설만 주장하다가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알고 지동설을 주장하였지만 이들은 한 부분만 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그대로 받아들여도 됩니다. 천동-지동설인 것입니다.

 

 

 

천체의 법칙과 케플러

 

천체의 법칙

  성경은 '우주에는 정밀한 법칙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400년전에 기록된 욥기 38장 32절에도 나오고 다른 곳에도 나옵니다. "열두궁성을 때를 따라 이끌어 내겠느냐? 북두성과 그 속한 별을 인도하겠느냐? 네가 하늘의 법도를 아느냐?" 3400년전 무지하던 시절에 욥과 다른 친구들이 서로 잘났다고 나설 때, 보고 계시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아느냐고 하면서 하나님의 지식을 열거하신 구절들이 38장, 39장, 40장에 걸쳐 나옵니다. 공룡이야기도 그렇고, 천지창조의 놀라운 이야기들을 하셨습니다.


천문학자 케플러

  이 말을 진실 그대로 믿고 받아들인 과학자가 바로 천문학의 아버지 요하네스 케플러입니다. 케플러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케플러뿐만 아니라 수많은 훌륭한 과학자들이 기독교인이었고, 그 중에서 도 아주 독실한 기독교도들이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케플러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주는 우연적인 폭발의 산물이 아니고, 창조주의 뛰어난 설계에 의해 만들어졌음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우주는 논리적인 방식에 의해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그 논리적인 방식을 내가 한 번 찾아 봐야겠다." 하고는 열심히 연구하였습니다. 케플러는 본래 수학자였습니다. 원래는 신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수학을 응용해서 천문학을 하고 천문학을 통해 많은 업적을 남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지요.


케플러의 법칙 

  케플러는 하나님이 우주를 만드시고 운행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우주를 면밀하게 조사한 결과 행성운동에 관한 법칙, 즉 '케플러의 제1법칙, 제2법칙, 및 제3법칙'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그 당시 이전의 천문학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지금도 이 케플러의 법칙은 그대로 쓰이고 있습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타원운동을 한다든지 움직이는 속도는 면적과 비례한다든지 하는 하늘의 법도를 정확히 밝혀 낸 것입니다.


위대한 기독교인 케플러

  신학자가 되지 못한 것을 섭섭해했지만, 케플러는 자신의 달란트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었음을 깨닫고, 노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신학자가 되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제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는 천문학을 통해서 도 영광 받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신앙과 과학이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로부터 자연을 창조하신 친절한 창조주이시다. 오직 예수님의 공로로서 그 안에 모든 피난처와 모든 위로가 있다." 이 말을 남기고 얼마 후 케플러는 죽었습니다. 죽음을 맞이할 때에도 기쁨과 평안가운데 죽었다고 합니다. 순수한 수학자요 천문학자의 길을 걸었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신실한 신앙의 삶을 산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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