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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단과 교파에 관한 이해
 

 

 기독교에는 많은 교단(denomination) 혹은 교파가 있습니다.
성결교, 감리교, 장로교, 구세군, 성공회, 루터교, 하나님의성회, 침례교 등이 그것입니다. 이들은 비록 서로 다른 교단들이지만 원칙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면에서 하나이며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며, 복음(신학에서는 케리그마 라고 합니다: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수난, 죽음, 부활, 재림)을 믿으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 등에서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교단들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예배의 형식이나, 성만찬에 대한 견해, 정치체제, 신조, 신학적 바탕 등에서 조금씩 다른 것이지요.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런 차이점은 마치 한 부모의 자식들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 생김새는 달라도 부모의 혈통을 이어 받은 자식임은 불변하듯이 말입니다.

  그럼 이제 이들의 차이점을 간략히 살펴 볼까요.

 

   1) 성결교회 :

 

성결교회는 성결교회 홈페이지인 본 싸이트의 외쪽 상단에 링크된 [헌법][역사]를 보시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편의상 몇가지만 언급하면 성결교회의 신학적 바탕은 요한 웨슬레이며, 정치제도는 초기에는 감리교처럼 감독제를 가지다가 후에 대의제도를 선택했습니다. 대의제도는 쉽게 말해 장로의회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결교회가 강조하는 것은 사중복음(중생(거듭남),성결,신유,재림)이며 성결교회의 시작은 일본 동경성서학원에서 공부한 정빈,김상준이란 분이 1907년에 한국으로 건너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데서 부터입니다. 일제시대에 재림사상 때문에 교단이 폐쇄되었다가 해방 후 재건 되었는데 이 폐쇄 기간 때문에 선교의 어려움이 있어 교회 성장에 어려움이 컸습니다. 다른 교단과는 달리 해방 후 다시 시작된 후발주자로서 오늘날 손꼽히는 유수의 교단이 된것 은 실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교단신학교는 부천에 있는 서울신학대학교입니다.  한국의 성결교회는 크게 본교단인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와 예수교대한성결교회가 있는데 이 둘은 한 뿌리이며 신학적 바탕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예성의 학교는 안양에 있는 성결대학교입니다. 기성과 예성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 대한 입장차이로 분열된 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기타 성결교회로는 나사렛성결회(아산,나사렛신학대학)가 있습니다.
  성결교회는 신학적으로 감리교와 같이 웨슬레안입니다.
  신학적인 입장을 정리하면 1)복음적 신-인 협동설을 따르는데 이는 하나님의 선행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을 중시한 것입니다. 2) 장로교의 예정론과 달리 모든 인류를 위한 구속의 은총 3) 구원의 순서(대략, 선행은총-의인-성화-영화)에 따른 강조  4)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기대하시는 하나님 이해 등이 특징입니다.

  웨슬레의 성만찬 이해 :  상징설(감리교와 성결교, 구세군 등이 이에 따릅니다.)


  (1)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표적과 인증
  웨슬레는 성례전을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의 표적(sign)과 인증(seal)으로 보았습니다. 이 점에서 웨슬레는 성례전을 주로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서 고백하는 믿음이나 행위의 표적으로 보려는 쯔빙글리의 "기념설"의 입장과 대조적입니다. 그래서 성만찬은 내적인 은혜의 외적인 표현인 동시에 은혜로 용서받은 인증으로서 성도에게 확신을 주고 그를 견고케 한다고 믿는 것입니다.(WorksⅦ, 148 ; SermonsⅠ, 242)
  이 성만찬은 주님의 십자가를 지시던 그 전날 밤,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이 찢겨지고 피를 흘려야 하는 대속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시며 주신 교훈에서 유래된 것으로 주님께서 당하신 대속의 죽음의 의미를 성만찬은 그의 표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2) 현재은혜(present grace)의 표적과 인증
  웨슬레는 성만찬은 주님의 대속의 죽음을 나타내는 표적이면서 또 우리는 주님의 성육신과 고난이 의미하는 모든 은혜를 이 성만찬에서 기대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Letters Ⅰ, 118)]
  웨슬레는 유월절과 성만찬은 깊은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애급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표적으로서의 어린 양의 살이 이제는 그리스도이신 어린양 예수의 피와 살을 통해서 구원의 표적과 인증이 된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성만찬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죽음과 희생의 표적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오늘 "여기에서 지금" 우리에게 은혜를 주며 이를 확증케 하는 인증으로 이해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웨슬레의 입장은 단순히 기념설을 말하는 쯔빙글리나, 한편 성만찬을 통하여 기계적으로 은혜를 받는다(ex opere operato)고 말하는 로마 카톨릭의 견해와 다릅니다.
  웨슬레에 의하면 성만찬은 현재은혜를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따라서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만찬은 "회심케 하는 은혜", "성결케 하는 은혜"를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다른 말로 바꿔서, 성만찬에서의 떡과 잔은 구원에 관한 전체적인 은혜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보느느 것입니다.

 

  (3) 천국의 보증과 인증
  웨슬레는 더 나아가 성만찬을 천국의 보증(a pledge of heaven)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웨슬레는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 잔치를 미리 맛보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즉 그것은 부활하신 주님과의 잔치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성만찬은 "마라나타" 곧 주님의 임재를 경험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웨슬레는 성만찬을 중요한 은혜의 수단으로 보았습니다.웨슬레에 의하면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표적이며, 그리스도의 구속적 죽음에 근거한 모든 은혜를 현재 여기에서 전달하는 은혜의 수단입니다. 이렇게 해서 웨슬레는 성만찬이 단순한 "기념"이라는 해석을 반대합니다. 따라서 합당한 수찬자가 믿음으로 받을 때 그는 자기의 필요한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4) 성도의 교제의 인증
- 설명 생략 -
  정치 제도: 총회-지역총회-지방회-개 교회

 

   2) 감리교회http://kmc.sbr.net/  :

 

감리교회는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요한 웨슬레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올더스게잇이란 곳에서 회심을 체험하고 옥스포드 대학에서 동생과 몇몇의 동지들과 함께 Holy Club을 결성하였습니다. 이들은 영국국교회(성공회) 내에서의 교회 혁신 운동을 해 나갔으나 국교회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 후 1740년 남26, 여48명이 론논 파운드리에서 모여 메도디스트 협회를 조직하였고 1784년 미국에 보낼 성직자 안수문제로 국교회와 결별하였습니다.
  감리교회는 1884년에 교육과 의료사업을 통해 한국에 선교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교리적, 신학적 특징은 위의 성결교회 부분(사중복음 강조를 제외)을 참고하십시오.
   감리교도 몇개의 교파가 있는데 기독교 대한 감리회(감리교신학대학), 예수교 대한 감리회, 기독교대한 자유감리교회 등이 있는데 이들의 신학적입장은 같습니다.
   감리교회는 감독제도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계급의식이 강한 측면이 있어 상명하복의 관계가 개신교 안에서는 짙은 편입니다.
    정치제도 : 감독회장-연회감독-감리사-목사

 

   3) 장로교회 :

 

현재 한국의 대표적인 장로교회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측 http://www.yejang.or.kr/, 개혁측 http://www.reformed.or.kr, 통합측 http://www.pck.or.kr/, 고신측 http://kpm.org/, 대신측, 고려 http://www.coramdeo.net, 재건 http://www.jaegun.or.kr/  등 이 대표적인 교파로 조사에 의하면 약 270여개의 파로 나눠져 있다합니다.)와 한국 기독교 장로회(기장 http://knp.or.kr/)가 있습니다.
    이들의 출발과 차이점 등은 99.11.19일자 국민일보 25면을 보시면 아주 상세히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글 후반부에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들의 신학적 바탕은 16세기 제네바의 개혁자 죤 칼빈에게서 시작됩니다. 이들은 또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이란 것을 교단의 신조로 받아들입니다. 장로교회는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예정론을 주장하며 정치적으로는 의회정치를 채택합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교회들에게 있는 장로제도는 여기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칼빈의 성만찬에 대한 견해는 : 영적임재설
   기념설을 주장한 쯔빙글리와 같이 그는 그리스도의 어떠한 육체적인 임재도 거부하면서도 믿음으로 실제적인 임재를, 비록 영적이긴 하지만 받는다고 분명하게 주장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의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으실 뿐 아니라 비록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몸은 우리들에게 들어오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퍼뜨리시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성찬은 실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하는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이 하늘에 계시고, 장소적으로 제한을 받으신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리스도의 몸이 성물 가운데 육신적이고 실제적인 방법으로 임재하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성찬에서 육신적 임재가 꼭 필요한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께서는 신실한 자들을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실 수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는 성령이 제한적 존재가 아니시므로,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들을 한데 결합시키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실한 자들은 성령의 중재를 통하여 주님의 살과 피에 참여하게 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생명은 소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We must beware of being led into a kindred error by the terms, somewhat too extravagant, which ancient Christian writers have employed in extolling the dignity of the sacraments. We must not suppose that there is some latent virtue inherent in the sacraments, by which they, in themselves confer the gifts of the Holy Spirit upon us, in the same way in which wine is drunk out of a cup, since the only office divinely assigned them is to attest and ratify the benevolence of the Lord towards us; and they avail no farther than accompanied by the Holy Spirit to open our minds and hearts, and make us capable of receiving this
testimony, in which various distinguished graces are clearly manifested. For the sacraments, as we lately observed, (chap. 13 sec. 6; and 14 sec. 6, 7,) are to us what messengers of good news are to men, or earnests in ratifying pactions. They do not of themselves bestow any grace, but they announce and manifest it, and, like earnests and badges, give a ratification of the gifts which the Divine liberality has bestowed upon us.]
   정치제도 : 총회-노회-교회
   이들의 학교는 총신대학교(합동), 총회신학교(개혁), 장로회신학대학(통합), 고려신학대학(고신) 안양대학교(대신) 고려신학교(고려) 한신대학교(기장)등이 있습니다. 이들 대다수 교단의 분열 또한 신학적 차이보다는 정치적인 면 때문입니다. 물론 합동측은 ncc에 가입하지 않고 통합측은 ncc에 가입했다든지, 기독교장로회는 다른 교파보다 진보적이라든지 하는 차이들이 있습니다.

 

    4) 침례교회http://kcm.co.kr/kbfmb/  :

 

침례교는 카톨릭 다음으로 미국에서 가장 큰 교파입니다.  침례교회가 하나의 교회로 설립된 것은 1608년입니다. 암스텔담으로 쫓겨온 영국 분리교도들이 본래 영국교회의 목사였던 죤 스미스의 지휘아래 설립하였습니다. 침례교의 특징은 침례(온 몸을 물에 잠그는 세례)를 유일한 세례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침례교회는 장로제도가 없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목사, 안수집사, 교사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침례교회는  독립적, 자율적인 면을 중요시 하여 총회나, 연회 등을 두지 않고 '친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침례교는 특별한 신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몇가지 특징은 1) 개교회의 독립성 인정 2) 교회와 국가의 오나전 분리 3) 유아세례 반대 등입니다.
   침례교는 한국에서 일제시대에 동아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선교되다가 일제에 의해 교단이 폐쇄되었다가 해방후 재건되었습니다.

   5) 루터교회http://www.lck.or.kr : 16세기 종교개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카톨릭에 반대하여 마틴 루터의 신앙적, 신학적 입장을 따르는 사람들이 루터의 대소교리 문담(1529), 아욱스부르크 신앙고백(1530), 슈말칼트 신앙개조(1580), 콘코드의 신조(1580)를 신조로 삼았습니다. 루터교는 이들 신조들 외에 사도신경, 니케아 신조, 아타나시안 신조를 고백합니다.
    교리적 특징은 1) 이신득의 강조 2) 성찬은 은혜의 방도가 된다(공재설(Consubstantiation):성찬 참여자는 떡과 포도주 안에서(in), 떡과 포도주와 함께(with), 떡과 포도주 아래서(under) 그리스도의 참된 몸과 피에 참여한다. 떡과 포도주의 물질요소 자체는 불변한 채 있지만, 성별의 기도를 마친 후에 여기에 참여하는 행위는 그리스도를 성찬 참여자에게 상징적으로 전한다.) 3) 세례에 의한 중생:세례는 성령께서 주시는 중생의 은사를 받게 하는 것 4)유아세례는 정당하며 합당하다 5) 그리스도의 신성은 인성에 부여된 것 6) 하나님의 은총에서 타락할 수 있지만 구원은 만민에게 보편적
    한국에서 루터 교회는 문서선교를 통해 확산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수학하고 들어온 지원상 목사를 중심으로 컨콜디아사를 통해 문서선교를 하고 방송(루터란 아워)을 통해 선교했습니다.  한국에서의 루터교회는 그리 큰 교단은 아니지만 베델성서교육을 통해 한국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학교는 용인에있는 루터신학대학입니다.
   오늘날 독일과 북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는 루터교를 국교로 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회중주의이며, 행정과 결의에 있어서는 대의정치를 추구합니다.

 

   6) 성공회http://anck.peacenet.or.kr/kindex.htm

   성공회는 아시다시피 영국에서 축발했습니다. 이 교회는 앵글리칸 처치, 성공회, 에피스코팔처치, 등으로도 불리웁니다.  1536년 로마감독의 교권을 폐지하고 1570년 교황 피오 5세가 영국왕 엘리자벳을 파문함으로써 로마교회와 완전히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신앙적 이유보다는 정치적 이유때문에 발생하였고 교회의 신학은 개혁파에 가깝지만 교회 및 예배의식 은 카톨릭에 가깝습니다. 조직은 주교, 신부, 부제라고 일컷는 종신직 신품이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영국 왕이 교회의 정점이고  국회가 교회법을 제정합니다. 그렇지만 켄터베리 대교구, 요크 대교구, 웨일스 대교구 로 나눠져 있으며 한국 성공회는 켄터베리 대교구에 속해 있습니다.
    영국교회의 교리의 표준은 39신앙개조와 기도문입니다.
    한국에 성공회가 전래 된 것은 1890년 코프감독에 의해서였습니다.
    학교는 역곡과 서울 사이에 있는 성공회대학입니다.
 

   7) 구세군http://soback.kornet21.net/~sally/


   구세군은 1858년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뿌드에 의해 창설되었습니다. 구세군(salvation army)이란 명칭은 1878.5에 정식으로 명명되었고 1880년 처음 사관학교를 세웠습니다. 구세군의 특징은 사회봉사에 있습니다. 구세군의 정치는 개인의 자유와 기회균등의 인정하에 군대 조직을 차용합니다. 세계의 모든 구세군은 한 대장 아래 통솔을 받습니다. 구세군에서는 목사는 사관 평신도는 병사라고 지칭합니다.
  구세군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08년 10.8 평동에서 영국인 호가드 정령에 의해 옥외집회를 한데서 출발합니다. 구세군의 사회사업은 선교의 가장 중요한 방법이며 남녀평등을 중요시 여겨 사관학교는 반드시 부부가 함께 입교토록하고 있습니다.

   8) 순복음, 하나님의교회(성회)http://www.ag.or.kr 등의 오순절 계열 : 이 계열의 교회들은 성령운동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이들을 오순절파 라고 부르기도합니다. 신학적 바탕은 뚜렷하게 어느 것이다 라고 할 수 없지만 대략 웨슬레안에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한국의 오순절 계통의 교회는 오중복음과 삼박자 축복이란 것을 중시합니다.  학교는 순신대학교(순복음), 한영신학대학 등이 있습니다.
 

   몇개의 참고서적을 소개합니다.

   세계 기독교회사 - 대한기독교서회
   한국 기독교회사 - 대한기독교출판사
   종파의 유래 - 대한기독교서회
   한국교회교단형성사 1,2 - (주) 임마누엘
   청교도신앙 - 생명의 말씀사
   청교도정신 - 기독교문서선교회
   한국성결교회사 - 기성출판부
   기독교대한 성결교회 헌법
   웨스트 민스터 소요리문답해설 - 한국복음문서연구회출판부. 1974
   한국감리교회사 - 기감 교육국
   감리교의 유래 - 생명의말씀사
   교리와 장정 - 기독교대한감리회
   죤 웨슬리의 신학 - 전망사
   요한 웨슬레의 신학 - 대한 기독교출판사  etc.

 


부록 : 99.11.19일자 국민일보 25면(믿음의 유산 - 분열과 극복, 이승한) :장로교회들의 배경과 분열원인 등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1885년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온지 1백14년,우리나라는 기독교 복음에 의해 엄청난 발전과 변화를 가져왔다.신교육으로 가치관과 인성이 변화됐으며 유교신분사회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설 수 있었다.유능한 인재들이 교회를 통해 배출되고,그들은 유학을 통해 대한민국의 수립과 발전에 공헌했다.

 교회는 또한 독재정권에 항거해 민주사회를 건설하는데 크게 기여했다.일부 교회 지도자들이 신사참배와 독재정권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나 교회는 그래도 사회의 소외계층과 억압된 자의 대변자 노릇을 했으며,정의의 칼날을 세워 공동체의 평화와 평등에 이바지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한몸인 교회가 분열됨으로써 교파주의와 이기주의,물신주의,성공주의,성장제일주의 등 세속화의 부정적인 길을 열어 놓은 것은 뼈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분열의 아픔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90년대 들어와 급속히 확산됐으나 아직은 결실이 미미하며 21세기 한국교회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남게됐다.
 ◆분열=해방이후 한국교회는 일제의 억압으로 무너진 교회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크게 네 갈래의 입장으로 갈라진다.하나는 교회의 정통이 일제의 강요에 따라 신사참배나 일본 기독교조선교단으로 편입됨으로써 패멸되었다고 보고 그 이전의 순수 정통성을 회복한다는 운동이다.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옥에 갇혔던 인사들이 해방후 출옥,교회재건에 나선다.바로 재건파교회이다.이들은 극우파로 기존교회를 거부하고 46년부터 별도의 교회를 설립하기 시작했으며 북한에서는 김린희전도사(선천),남한에서는 최덕지전도사가 중심인물이었다.재건교회는 곡간등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해 곡간교회라고도 불렸으며 평신도들이 많이 참여해 주상수 강상은 염애나 등이 평신도의 대표적인 인믈로 부상했다.
  다른 하나는 기성교회의 질서와 체제를 유지하면서 교회를 재건하려는 움직임이었다.당시 80%의 교회들이 바로 이 운동에 참여한다.또 다른 하나는 일제의 강요에 의해서지만 하나로 통합되었던 한국교회를 교파로 분열시키지 말고 그대로 지속하자는 운동이었다.그러나 일제하의 교회에 대한 윤리적 신앙적 자책과 회개의 심도가 있느냐는 비판이 일면서 감리교가 회의에서 퇴장하면서 무산됐다.

   마지막으로는 기성교회에 들어가 회개를 촉구하고 개혁을 해보자고 했던 중도우파의 운동이다.이 가운데 혁신복구파로는 이기선목사가 북한에서 활동했고 남한에서는 한상동 송양원 주남선목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남한 인사들은 고려신학교를 만들어 경남노회를 통해 회개를  촉구했다.

   이처럼 네 갈래로 대립되었던 한국교회의 입장은 결국 교단의 분열로 나타나기 시작했다.기성교회의 질서에 들어가 회개를 촉구했던 장로교의 혁신복구파들은 수에서 밀려 추방당하는 형태로 1948년 장로교단에서 분열됐다.이들이 현재 예장고신과 예장고려교단이다.

   1940년 조선사람들에 의한 신학교육을 표방하며 승동교회에서 시작된 조선신학교는 1948년 김재준의 성서해석학 등 신학논쟁으로 갈등을 겪다가 1954년 대한예수교  장로회 대구총회에서 김재준 송창근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정죄를 당함으로 교단에서 탈퇴했다.이들은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의 김재준을 중심으로 교단을 창립했다.이 교단이 현재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이다.
  신사참배의 회개를 촉구하던 인사들을 축출하고 자유주의 신학을 지지자들을 쫓아낸 장로교단은
 1959년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 등 에큐메니컬 노선의 차이로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 대전중앙교회에서 치러진 44회 총회에서 갈라선다.WCC가입을 지지했던 인사들은 연동교회에서 총회를 구성했다.이 총회가 장로회신학대 출신의 인사로 구성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이다.WCC가입을 반대하고 복음동지회(NAE)운동에 찬성하는 인사들은 승동교회에서 총회를 구성했다.이 총회가 총신대학교 출신으로 구성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이다.

 50년대 세계 냉전체제의 구도속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는 공산주의의 종주국 러시아정교회가 가입되어 있는 WCC의 가입을 둘러싼 의견차이로 분열되어 결국 한반도의 분단과 함께 냉전체제의 피해자로 전락했다.

 신학적 차이로,또한 이념적 차이에 따라 3개교단으로 분열됐던 장로교는 1979년 교권과 지역갈등으로 예장합동교단에서 정규오목사를 중심으로 한 호남권 인사들이 탈퇴,개혁교단을 설립하면서 핵분열을 일으켜 한국교회 분열의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만다.

 교단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은 80년대 후반에 들어와 활발해지면서 한국장로교협의회가 결성됐으며 이는 한국장로교총연합회로 개칭되어 장로교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또 13개교단의 목회자로 구성된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98년 결성됐으며,평신도들도 한국장로회총연합회를 만들어 교회 일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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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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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발흥과 기독교 사회개혁

 

동아시아의 패권국으로 부상한 일본은 “한국을 중국과 러시아의 지배로부터 분리시키고 영국과 미국의 양해 하에” 보호조약과 합병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우며 조선을 자신들의 속국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한일합방 이후 1945년 해방되기까지 “36년 간 무단정치에서 문화정치, 황국신민화정책으로 그 통치방법이 변화되어 왔지만 식민지 지배와 수탈이라고 하는 점”에서는 추호도 변함이 없었다.

 

어용사가 유세비우스가 콘스탄틴 대제의 통치에 아부했던 것처럼 일본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일본의 한국 합병을 예찬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양심의 소리는 있었다. “조선합병”이라는 글에서 우찌무라 간조는 이렇게 말했다. “불쌍한 한국 사람들은 그들의 나라를 잃었습니다. 아무도 그들의 손실을 위로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일본이 한국을 합병한 일은 곧 또 하나의 폴란드를 합병한 일이며, 결국 이 먹이를 완전히 소화할 수 있으리라고는 바랄 수 없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한일합방과 국권의 상실로 한국기독교는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어려움 가운데도 항일운동을 주도하고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 역할을 활발하게 전개해 나간다. 이런 기독교의 활동은 일본 정부로 하여금 한국 개신교인들과 개신교 선교사들에게 차가운 눈총을 보내기 시작하는 원인을 제공한다. 그러나 안, 밖으로 저항을 하면서 한국 기독교는 한국근대화와 민족계몽을 통한 민족주의 사상의 고취에 크게 기여한다.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일본 정부는 통감부를 통해 새로운 학교령을 공포하고 신민지 교육시책을 강요함은 물로 관공립 보통학교에 일본인 교사를 폐지시키고 사립학교 설립을 인가제로 전환시켜 일제의 관할 하에 두면서 학교 설립을 규제했다. 이에 대해서 한국에 파송 된 선교회는 내용적으로는 비정치화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으나 실제적으로는 적지 않은 선교사들이 일본의 한국 지배를 예찬하는 경우가 많았다. 외국 선교사들은 일본의 한국 통치를 정당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짙었다. 그러나 일제의 기독교 탄압의 가속화로 한국기독교와 선교사들의 입장은 저항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갑신정변,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청과 일본의 무력에 의해 수난 당하는 현장을 목도하던 국내의 외국 선교사들 중에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무단정치를 우려하며 그것을 노골적으로 폭로하는 이들도 있었다. 미 감리회 소속 케이블 선교사는 1908년에 일제의 무단정치를 폭로하는 한 보고서를 미국 선교본부에 보냈다. 일제가 한국기독교에 대해 가했던 폭행과 살해 사건은 일제가 교회를 어떻게 보았으며, 그들이 얼마나 반기독교적 탄압정책을 썼는지를 말해 준다. 일제는 선교사들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못하고 그들의 선교구에 있는 한인교회들에게 박해를 가함으로써 자신들의 의지를 전달했고 이와 같은 기독교 박해는 통감부가 설치된 후 더 구체적이고 노골적으로 진행되었다.

 

105인 사건은 대부흥 운동을 거치면서 거대한 규모로 성장한 한국기독교가 일본 식민 정권에 대항할 수 있는 잠재적 반정부 단체라는 일제의 인식에서 기인되었다. 한국 선교의 개척자 제임스 게일이 전환기의 한국에서 말한 것처럼 “한국은 정치적 존재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선교사들의 세계에서는 제일류의 세력”으로 인정받을 만큼 세계 기독교계로부터 주목 받는 대상이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1903년 원산부흥운동,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 그리고 1909년 백만인 구령 운동을 통해 세계 선교지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만큼 놀랍게 성장한 데다 신학교 설립, 노회와 총회의 설립 등으로 하나의 전국적인 조직을 갖춘 큰 세력으로 발전했기 때문이었다. 1884년 알렌에 의해 시작된 한국선교가 과거 “지배권 쟁탈을 다투는 강대국들의 포성이 두 번이나 진동”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선교 25주년이 지난 후 “1910년대의 기독교는 정립된 종교요, 기독교회는 큰 능력을 내포한 민족적 기관으로” 발돋음한 것이다.

 

3·1운동 당시 마침 극동을 방문, 현장을 확인한 블랜드가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지적한 것처럼 3·1운동은 일본의 무단정치에 대한 국민의 분노, 러시아 혁명으로 인한 민족국가의 출현,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의 선언에 자극 받아 일어난 한국 민족의 비폭력 독립운동이었다. 그리고 그 위대한 결집력은 “민족 종교와 같은 특징을 지닌, 민족의 자유, 독립의 원동력”이었던 기독교에서 나왔다.

 

3·1운동 이후, 제임스 부컬크가 말한 “반기독교 운동”이 거세게 일기 시작하여 1922년에 정점에 달했던 것이다. 특히 반 기독교적 성격을 지닌 휴머니즘,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발흥으로 젊은이들 사이에는 반기독교적 움직임이 강하게 일고 있었고,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젊은이들과 기성세대의 충돌, 자유결혼, 여권운동, 교회의 사회참여 문제가 중요한 시재적 현안으로 부사했다. 또한 경제 공항으로 젊은이들의 심리상태는 극도로 불안했고, 이로 인한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어 교회의 영적침체가 더욱 심화 되었다. 더구나 진화론과 고등비평의 유입으로 전통적인 창조론과 성경관이 일대 도전을 맞기 시작했다. 볼셰비키혁명 이후 조직된 조선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 운동, 춘원 이광수의 기독교 비판, 김장호의 자유주의 사건은 그 전형적인 예다. 3년간의 미국 연구를 마치고 1912년에 돌아온 연희전문학교의 벡커가 지적한 것처럼 한국 청년들 사이에는 “격세의 감”을 느낄 정도로 커다란 사상적 변화가 일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사조들의 유입과 새로운 차원으로 전개되는 일본의 한국 식민정책 속에서 교회는 이러한 대내외적인 문제들에 대처해야 했고, 동시에 변천하는 사회의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적응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중적인 사명을 부여받았다.

한일합방 이후 조국이 일제에 의해 강점되자 한국 기독교인들이 정치적인 소망 대신 종교적인 소망으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한국교회에는 사회적인 책임과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신앙을 내향화시키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 결과 한국교회에는 세대주의 종말론이 놀랍게 확산되기 시작했고, 성경 중심의 기독교가 더욱 강조되었다.

 

세대주의 종말론의 발흥은 한국의 개신교, 특히 선교를 주도했던 장로교, 성경교, 대한기독교, 동양선교회 등의 신앙을 타세적인 신앙으로 만들어 주었으며, 보의 아니게 하회적인 책임을 간과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3·1운동의 전후로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와 춘원 이광수의 기독교 비판처럼 교회 밖으로부터의 기독교 비판이 강하게 일어나던 그 즈음, 교회 내부에서도 전통적인 신앙에 대한 강한 도전이 일어났다. 그것은 자유주의 도전과 이단의 발흥이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의 사회 경제적 혼란, 3.1운동의 실패,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의 발흥, 일제의 통치에 편승하는 어용 교단의 출현 등 끊임없이 계속된 사회적 혼란을 틈타 자유주의와 반선교사의 기치를 내걸고 주류에서 벗어난 수많은 종파들이 태동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등장한 이단들은 해방이 될 때까지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마치 예일 대학의 교회사가 시드니 알스트롬이 그의 저서 미국의 종교사에서 미국 제 2차 대각성운동 이후 수많은 이단들이 등장하는 그 시대를 가리켜 “이단의 전성시대라고 명명했던 것과 같은 시대상이 출현한 것이다. ”

 

1919년, 브라운은 자신의 극동의 정복에서 한국교회가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성경을 사랑하고 구령의 열정에 불타고 있으며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는 교회라고 인정하면서도 한국기독교의 사회적 관심의 결여에 대해서는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국교회는 “복음의 사회적 적용에 비교적 무관심”하고, “교회의 사상이 내세에 고정”되어 있으며, “현 세상은 너무도 완전히 상실되어 이 세대에서는 구원받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브라운이 한국에서 활동하는 한 선교사에게 “사회 개혁의 방식에 대해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고 질문하자 그는 “전혀 못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에 너무 바쁩니다.” 라고 답변했다. 브라운은 한국의 사회적 관심의 결여가 선교사들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확실히 191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교회는 사회적 관심이 줄어들고 있었다. 원산부흥운동과 평양 대부흥 운동, 그리고 이어 진행된 백만인 구령 운동을 전후하여 한국 사회를 주도했던 교회의 모습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1917년 춘원이 한국교회의 사회적 관심을 촉구했고, 1922년 이후 동아일보가 사설을 통해 이 문제를 끊임없이 환기시켰으며, 1928년 예루살렘 국제 선교협의회에서는 교회의 사회적 관심을 중요한 주제로 다루었다. 이와 같은 노력에 힘입어 1918년 남감리교가 사회신경장정을 편입시켰고, 1920년 장감연합공의회는 사회봉사실현 프로그램을 확정했으며, 1912년에는 만주와 조선 주재 장로교 선교사 100명이 평양 장로회 신학교에서 5일 간 회합을 갖고 조선인 교역자의 미국 유학 프로그램을 논의했고, 1925년에는 조선야소교 연합공의회에 사회부를 상설했고, 1·932년에는 사회신경을 채택했다. 그 시대 속에서 이와 같은 교회의 대 사회적 책임의식은 교회의 기독교문화 사업과 사회복지사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전기가 되었다. 이것은 새로운 운동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간접선교와 직접선교의 균형의 필요성을 재인식한 것이다.

 

이렇듯 한국장로교회가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의 도전, 교회 밖으로부터의 비판, 교회내부로부터 이단의 도전을 받고 있는 동안 한국에 파송 된 선교사들 가운데 특히 평양 주재 선교사들과 서울 주재 선교사들 사이에 뚜렷한 대립과 갈등이 표출되고 있었다. 이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곳에 학교를 옮기는 문제와 교단의 색이 반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교회와 사회의 계몽운동, 절제운동, 농촌운동, 진흥운동에 많은 기여를 하게 된다.

 

그리고 1920년에 이르러 길선주 목사와 김익두 목사로부터 시작된 영적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이것으로 한국교회는 엄청난 양적인 성장을 가져왔다. 이와 함께 청소년운동과 주일학교운동에 관심을 갖기에 이른다. 이는 젊은이들을 깊은 영적 잠에서 깨워서 교회와 사회에 위대한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복음 본래의 성격들을 고취시키기 위해서이다. 이 운동은 YMCA, YWCA등이 주도해 나갔다. 한편 주일학교도 활성화 하여 아이들 신앙교육에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방학 중에 수련회를 통해서 이들을 교육하였다. 이밖에도 출판문화운동, 대 사회사업운동을 전개해 나갔을 뿐만 아니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고아들을 위한 고아원 운영을 하였고 나환자들과 폐결핵 한자들을 위한 수용소와 병원의 설립 운영과 같은 사회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는 한국교회가 사회 속에서 단순히 복음만 전한 단체가 아니라 복음을 통한 개인 구원의 영역을 넘어 사회적 책임의 실천을 통해 사회와 문화 속에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는 하나의 장이었던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대 대사회적인 책임을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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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하나님의 뜻-일본 제국주의와 식민통치에 대한 성경적 입장

  

뉴라이트 계열의 근본주의 개신교들 가운데서 일본식민사관을 가지고 일제 식민지 통치를 옹호하거나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일제 식민통치가 한국이 근대화하는데 일조했다고 하거나,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 통치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보는 시각은 성경을 보는 신학의 부재에서 오는 기회주의자적 유치한 발상이다.   문제는 이러한 잘못된 역사관은 반개신교, 반기독교 정서를 가속화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조선이 제사를 드리고 미신을 믿는 등 우상숭배를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벌을 받아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신도를 믿고 신사에서 귀신에게 제사하며, 천황을 숭배한 일본은 하나님의 크나큰 축복을 받아서 세계 강국이 되어 제국주의를 이루었단 말인가?   비록 미국에게 전쟁에서는 패배했지만 다시 복구되어 세계의 경제대국이 된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었단 말인가?


이런 식의 사고를 하는 목사들이 한국교회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그들의 수준이 얼마나 저급하고 그들이 목회하는 교회에는 비전이 없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의 목회철학은 <복을 받아 잘 먹고 잘 살자!  죽으면 내세천당이다>  일 수 밖에 없기에 교회는 더욱 세속화와 타락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자체가 비성경적이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1870년대 이후로 자본주의는 자본의 집적 ·집중에 따라 자유경쟁이 지배하는 산업자본주의의 단계에서 거대한 소수의 독점기업이 지배적인 힘을 가지는 독점자본주의 단계로 이행한다. 


이에 따라 세계 열강들은 앞다투어 팽창주의와 식민주의를 내걸고 약소국을 무력으로 침략하여 자본과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하고 자국의 시장을 확장하였다.

 

제국주의를 표방한 세계 열강들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약소국을 침략하여 자원을 약탈하고 그들의 상품을 팔아먹기 위해서 철도, 전기, 도로, 통신과 같은 사회 기간망을 확충하고 금융회사와 공장을 설립하였으며, 원주민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의사소통을 원할히 하고자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것은 식민지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오직 수탈과 침략을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런 점에서 일제의 조선 식민통치는 그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럼 이러한 제국주의가 하나님의 뜻인가?  피식민지를 무력으로 지배하면서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철도와 전기와 통신, 금융회사, 공장들을 만들고 피식민지인들에게 열강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치며 교육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피식민지 국가들이 근대화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는가?

 

제국주의와 식민통치가 휩쓸고 간 피식민지는 종교적으로, 이념적으로 국민과 국가가 분열되는 큰 상처를 지니고 말았다.  그리고 그러한 분열은 지금까지 전 세계의 곳곳에 남아있어서 전쟁과 내란으로 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당장 중동의 시리아 내전을 보라.   과거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 지역을 식민지 분할 통치하면서 종파간, 부족간 분열정책을 실시하였고, 사분오열된 그러한 후유증은 지금까지 중동의 불안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제국주의와 식민통치가 휩쓸고 간 아프리카, 베트남, 중국, 대한민국을 보라.  분열과 전쟁으로 수많은 국민들이 희생당하였다.   이렇게 국가가 분열되어 오랫동안 전쟁을 겪은 근본적인 원흉은 열강의 제국주의 때문이다.

 

제국주의는 힘과 권력, 정복과 착취, 탐욕과 강포, 전쟁과 살인을 특징으로 하며, 이러한 것은 성경에서 사탄의 근본적 속성과 동일한 특성을 갖는다.    사탄은 탐욕의 화신이며, 죄악이 가득해 불공정한 거래와 무역을 일삼으며 강포를 저질어 범죄하여, 탐욕의 주인이 되었다.


사탄의 화신 제국주의와 식민통치는 불공정한 거래를 일삼고,  사람에게 살인과 강포를 저지르며, 돈과 이익을 위해 인간을 하나의 도구로 취급하는 모든 자본주의 정신구조와 시스템이다.   불합리한 甲 乙관계, 착취와 비인간화, 돈으로 인간의 계급을 나누고,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온갖 강포를 저지르는 합법적인 도둑들과 탐욕의 정신에 함몰된 사회구조와 시스템은 사탄의 영을 받은 자들이다.  


이러한 제국주의의 사탄적 속성은 정죄와 심판의 대상이지 결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을 수 없다.

 

겔 28:16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 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겔 28:18 네가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하므로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네 가운데에서 불을 내어 너를 사르게 하고 너를 보고 있는 모든 자 앞에서 너를 땅 위에 재가 되게 하였도다

 

문제는 기독교가 제국주의의 사탄적 속성을 경고하지 못하고 오히려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국주의에 편승하여 개신교나 카톨릭을 신봉하는 국가들이 국가적 폭력을 사용하여 피식민지에 선교하였다. 


<오!  힘에 의한 선교가 하나님의 뜻이로다>   하지만 이러한 선교방법은 비성경적인 방법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방법이다.   하나님이 힘과 권력으로 피식민지를 정복하여 그들에게 강압적으로 선교하는 것을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러한 선교방법이 진정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대들은 성경과 하나님을 진정으로 아는 자들이 아니다.


정말 안타갑게도 제국주의에 편승하여 기독교가 전파된 지역은 순전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서구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전함으로서 물질문명과 맘몬숭배, 자연파괴와 경쟁, 착취와 비인간화를 유발하고 말았다.   선교사들은 순전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사탄의 통치를 전한 실수를 하고 말았다


또한 독일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면서 유태인을 대학살 할 때  독일 기독교가 그 정당성과 신학적 원리를 제공하고(악의 처단) 그에 부역하고 동조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것이 기독교가 해온 비참한 참상이다.

 

이렇게 기독교가 제국주의에 편승한 결과 기독교는 급속한 세속화 과정을 겪고 세력이 약화되었다.  기독교의 신앙과 가치관은 무력화되었고 그 대신에 물질문명과 과학지상주의가 그 공간을 채워 나갔다. 

 

제국주의를 지지하고 힘과 권력에 의지한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철저히 해체되어 참 생명을 잃어나갔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 이상 기독교에 희망을 걸지 않게 되었다.  지금 종교개혁의 뿌리였던 유럽을 보라.   누가 기독교를 참 생명의 종교로 생각하는가?  이것은 기독교가 제국주의에 편승한 참혹한 결과물이다.

 


신사참배를 결정한 조선예수교장로회 임원들. 앞줄 중앙이 홍택기, 그 오른쪽은 김길창 목사

출처-<한국교회 친일파 전통>


신사참배 강요에서 나타난 일본제국주의의 죄악성


조선을 지배한 일제는 조선에서 독립운동이 고조되고 세계대공황이 발생하여 위기가 닥쳐오자 그 위기를 벗어나고자 의회 민주주의를 해체하고 군국주의체제로 전환하여 중국과 필리핀, 동남아 지역으로 침략전쟁을 확산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일제는 한반도를 병참기지화하고, 황국신민화 정책을 강화하였으며, 국민정신총동원령을 내려 경제적 수탈과 인력수탈을 극대화하였다.

 

그 결과는 내선일체, 전시동원체제, 강제징집, 강제동원, 창씨개명, 전쟁 위안부 동원, 신사참배, 친일과 반일의 국민분열 등으로 나타났다.

 

일제는 민족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인을 천황의 신민으로 만들기 위해 학교와 교회에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신사참배의 신도는 성경적 입장에서 보면 다신교적인 정령신앙, 자연숭배, 조상숭배, 영웅숭배, 귀신숭배, 천황숭배를 포괄하는 사악한 우상종교이다. 


이러한 신사참배에 조선의 장로교, 카톨릭, 감리교, 성결교, 구세군, 성공회 등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굴복하여 동참하고 만다. 

 

하지만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순교한 이들이 있었으니, 주기철 목사 같은 분이다.  이런 고귀한 분들은 안으로는 분란을 조장하는 친일 기독교세력과 밖으로는 일제의 군국주의의 거대한 권력과 싸워야 했고, 많은 분들이 옥고를 치루며 순교하였다. 


이를 계기로 친일 기독교인들이 언론매체에 기고와 각종 시국 강연회를 만들어 강제부역과 전시동원, 내선일체를 옹호하는 행적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고, 결국 친일과 반일의 기독교로 양분된다.

 
신사참배에 굴복한 친일 기독교세력은 신사참배는


1)정치적인 문제이지 신앙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2)우상숭배였지만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며, 생존의 문제에 대해 각자의 양심과 믿음이 분량에 맡겨야 한다 라고 변명하였지만, 성경의 관점에서 보건데 신사참배는 분명한 우상숭배이고, 배도이며 배교인 것이다.

 

어짜피 모든 배도의 시작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시작되고 생존의 문제에 고통을 주며 신앙적인 문제로 귀결이 난다.   그러면 이러한 신사참배를 강요한 일제의 식민통치가 하나님의 뜻이란 말인가?

 

 

남산의 조선신궁(1918착공-1925완성)


불교의 친일행적도 비슷하다.  일제는 사찰에 임야 소유권을 양도하면서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활용했다.    조선의 총독부는 조선의 승려들을 식민지 정책에 적극 이용했다.  일제는 1911년 사찰령을 발동해 31본산 제도를 만들고 모두 사찰의 주지임명권과 재산의 처리, 사찰의 병합, 사찰의 신설등의 전권을 행사했다.    이에 따라 31본산 주지들에서 말사 주지들까지 불교 언론계와 학계 등이 전방위로 친일행위에 가담하였다.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나자 친일승려들은 탁발보국이란 명목으로 군수품과 국방헌금등을 헌납했다.   1940년의 창씨개명에도 앞잡이 노릇을 했다. 

 

일본 임제종과 조계종의 합병을 도모해 불교계의 이완용으로 불리는 이회광은 친일단체를 조직하는 등 조선불교의 매국을 선동했다.   일제시대에 조계종이라는 종명을 처음으로 확립한 권상로는 각종 시국강연을 다니면서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였다.

 

국가적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뜻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국가적 고난의 대표적인 예는 통일왕국을 이루던 이스라엘이 2개의 국가로 분단되어지고,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각각 패망한 사건이다. 


국가가 패망한다는 것은 일반론적 입장에서는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인 다양한 원인들로 해석할 수 있지만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멸망의 원인의 해석은 영적인 것으로,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숭배, 강포, 압제, 착취, 불의를 행하였기 때문이다.

 

신28장에는 언약적 복과 언약적 저주가 나타나는데,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한 언약적 저주의 결과물인 것이다.

 

신 28: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신 28:25 여호와께서 네 적군 앞에서 너를 패하게 하시리니 네가 그들을 치러 한 길로 나가서 그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며 네가 또 땅의 모든 나라 중에 흩어지고

신 28:26 네 시체가 공중의 모든 새와 땅의 짐승들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들을 쫓아줄 자가 없을 것이며

신 28:36 여호와께서 너와 네가 세울 네 임금을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나라로 끌어 가시리니 네가 거기서 목석으로 만든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며

신 28:37 여호와께서 너를 끌어 가시는 모든 민족 중에서 네가 놀람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이라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이 분단되거나 패망하는 것이 아니고, 회개하여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정국가, 왕같은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이었다.  구약의 예언서를 보라.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려 하셨는가?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을 죽이고 핍박하였으며 더욱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을 거역하고 말았다.

 

남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은 거대 제국이었다.  바벨론은 왕을 숭배하고 다신교를 믿는 우상숭배의 나라였지만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악의 도구로 사용되었고, 악의 도구로써의 사용기간이 다 끝난 후에는 용도폐기되어 또 다른 거대제국에 의해 멸망당하였다.

 

그럼 남유다의 입장에서 바벨론에게 멸망당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는가?  남유다가 생각하기를 <약소국인 우리나라를 강대국인 바벨론이 침략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너무나 감사하고 좋은 일이 아닌가?  이제 우리나라도 잘 살수 있을 것이야> 라고 했을까?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을 거역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한 신명기 28장의 언약적 저주였던 것이다.  


신 29:24 여러 나라 사람들도 묻기를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이 땅에 이같이 행하셨느냐 이같이 크고 맹렬하게 노하심은 무슨 뜻이냐 하면

신 29:25 그 때에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그 무리가 자기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버리고

신 29:26 가서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지도 아니한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고 절한 까닭이라

신 29:27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땅에 진노하사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재앙을 내리시고

신 29:28 여호와께서 또 진노와 격분과 크게 통한하심으로 그들을 이 땅에서 뽑아내사 다른 나라에 내던지심이 오늘과 같다 하리라

 

오히려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하게 회복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입장에서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가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과연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왜 조선은 일제의 침략을 받아야 했는가?

 

당시의 조선을 구약의 이스라엘과 비교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다.  구약의 이스라엘의 고난은 불신앙과 불의와 강포외 죄악으로 발생하였지만, 조선이 일제의 침략을 받은 이유를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숭배를 하였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어떤 사악한 가계저주론자들은 조상들이 저지른 제사나 미신등의 우상숭배 죄악 때문에 조선이 벌을 받아 일제의 식민통치를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선의 패망을 구약 이스라엘의 패망과 동일시하는 것은 결코 성경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당시 조선은 구약의 이스라엘처럼 선민도 아니었고, 하나님과 언약적 복과 언약적 저주를 맺는 관계도 아니었다. 


이런 식의 역사관을 가진 개신교인들이 많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것은 신앙과 믿음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서 세계를 보는 역사적 관점이 부족한 무지한 목사들의 책임이 크다.


그런식으로 가정한다면 신도를 믿는 귀신의 왕국 일본은 어떻게 제국주의화를 할 수 있었을까?   천황을 숭배하고 귀신을 믿는 일본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세계 강대국이 되어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귀신을 믿는 우상숭배의 왕국 일본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러시아와 청나라를 물리치고 필리핀과 베트남과 동남아의 수많은 섬들을 정복하였는가?   귀신의 나라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에게 원자폭탄 2개를 얻어 맞고 패망한 이후 지금까지 멸망당하지 않고 강대국으로써의 지위를 누리는 것은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일까?  아직까지 우상숭배의 나라 일본에게 왜 원천기술과 첨단 전자부품과 기계장비를 수입하여 쓰고 의존하고 있는가?

  

당시의 조선은 해외선교사들이 조금씩 들어와 조선 국왕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학교와 병원과 교회를 세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한 갖 유아기와 같은 시대였다.  이로 말미암아 각종 미신과 가난과 우매한 관습 등의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근대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을 쌓고 있었다.  


해외선교사들의 수고와 헌신으로 조선의 교회는 점차 성장하였고, 국제적인 기독교 네크워크망을 가질 수 있어서 외교적으로는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하지만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을 경험하지 못하여 기술과 자본의 축적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군사력이 약하여, 세계 열강들의 제국주의 암투에 약소국으로 희생을 당하여야만 했다. 


당시의 조선은 부패한 세도정치를 겪으면서 국력을 강화시킬 원동력을 상실하였다.   세도정치하에 과거제 비리와 매관매직은 비일비재하였다.  


부패한 지방관리들은 조세제도를 불법적으로 운영하였다. 세도가문은 조선 후기 새롭게 성장하였던 상공인과 부농층마저 수탈하려고 애를 썼고 경제적 이권을 독점하여 사회문제를 야기시켰다. 그리고 삼정(토지세,군포,환곡)을 제멋대로 이용하여 평민들의 골수와 피까지 빨아먹었다. 

 

그 결과 잉여생산물이 나올 수 없었고 상업발달이 되지 않아 경제발전을 할 수없었다.  때문에 민란이나 혁명이 일어났지만 결국 민주주의 의식이 싹틀 수 있는 기회를 놓쳤고 오히려 외세를 끌어들이는 실책을 하고 말았다.  이러한 타락한 위정자들로 인해서 국민들은 미신과 무기력증의 나락으로 더욱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 세도정치를 개혁하기 위한 여러가지 시도가 있었지만 지나친 쇄국정책으로 세계의 급변하는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여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였다.  세계는 과학혁명과 산업혁명, 제국주의와 식민지화, 침략과 전쟁으로 요동치고 있었지만, 조선은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처신했고, 홀로 독야청청하였던 것이다.


뒤늦게 고종은 강한 조선을 꿈꾸며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조선의 근대화를 시도하였다.   고종은 근대국가로 가는 길에 방해가 됐던 신분제도와 보수사상을 타파하고자 의제를 개혁하고 관립학교를 설립 하는 등 백성들의 의식계몽에 힘을 쏟았다. 


실제로 고종은 해외 의병활동에 군자금을 보태고 끊임없이 세계열강에 밀사를 보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는 등 국권 회복을 위해 많은 시도를 했다.   또한 서구식 제복과 총으로 무장한 근대식 군대를 양성하고, 전신선·전기 가설 및 철도 부설 등 근대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도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미 시기는 너무 늦었다.  


러,일,청의 군대가 들어와 주둔하면서 대한제국은 희생양이 되어 각국의 이익을 위한 각축장이 되었다. 일본이 청나라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한반도는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대한제국은 외교적으로 노력하였으나 서구 열강은 서로서로 약소국을 침략하여 식민지 건설을 경쟁하였기 때문에 대한제국이 내민 도움 요청을 묵살하였다.  .

<대한제국의 13년>

 

지금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미국을 기독교 국가요 하나님의 축복받는 세계 제일의 나라로 선망하고 있지만 그 미국이 과거에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하는데 동조하였다는 것(가쓰라-태프트밀약)은 알고 있는가?     

미국이 일제와 은밀한 거래를 하고 서로서로 제국주의를 용인해주면서 세계의 약소국을 침략하며 식민지화하 하는 것을 동조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만약 미국의 허락이 없었다면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 기독교 국가인 미국의 이러한 제국주의 행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일제침략과 식민지화에 대한 성경적 관점

 

구약의 이스라엘의 국가적 고난과 조선의 국가적 고난은 성격과 의미에서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구약의 이스라엘의 역사선상에서 조선의 고난을 해석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오늘날  조선에 대한 일제침략은 성경적인 관점으로 볼 때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제국주의와 식민통치, 침략과 정복, 약탈과 강포, 전쟁과 살인, 비인간화와 억압과는 전혀 뜻을 같이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일제의 지배를 통해 조선이 변화받기를 원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복음이 더욱 확산되고, 많은 수의 교회와 학교들이 지어져 위정자들과 국민들의 의식과 정신이 계몽되어 민주주의 의식이 싹을 틔우며, 온 국민이 힘을 합쳐 일제의 침략을 막아내도록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 모든 방법을 강구하는 데에 있었다. 


하나님의 뜻은 복음의 능력으로 조선의 모든 국민의 의식이 변화를 받아 모든 미신과 패배의식과 무기력증에서 해방되어 비전을 가지고 나라의 미래를 설계하고 계획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혀 일제의 침략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러한 국가적 고난속에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기도하며, 노력하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일제의 침략에 순응하고, 운명론적 자포자기에 빠져 신사참배와 친일행위를 하면서 교회와 국민이 친일과 반일로 분열되는 것은 전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러한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국민이 하나로 단결하여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을 찾으며 현실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약소국의 설움과 상처를 받았다 할지라도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숙명론과 패배의식과 무기력함을 극복하고 하나님 앞에 열려있는 새로운 미래를 향해 싸워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만약에 그랬더라면 일제로부터 해방을 앞당기고 남북 분단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 복음의 능력이 조선을 지배하고 끊임없이 저항하였다면 사회주의가 발을 붙여놓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음의 능력을 무력화시키고 해체시키고 어용 기독교를 만든 일제의 지배에 맥없이 굴복했기 때문에 러시아의 사회주의가 일본과의 전쟁에 승리하면서 이 땅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다.


많은 수의 독립 운동가들이 사회주의를 추종한 이유가 약소국에 대한 관심을 가진 유일한 강대국이 러시아 혁명정부였고 또한 반反일에 뜻을 같이 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러시아 사회주의와 교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서구 열강과 미국이 조선의 고통을 도와주고 독립운동에 협력적이었다면 과연 조선이 좌파 우파로 갈라졌을까?  이러한 일제침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조선의 근대화가 앞당겨 질 수 있지 않았을까?

 
결론

 

이제 한국의 개신교는 바람직한 역사관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일제침략을 하나님의 뜻으로 돌리거나,  일제 때문에 한국이 근대화하는데 유리했다고 보는 시각을 고쳐야 한다.   


운명론, 숙명론, 자포자기를 하나님의 뜻이라는 구실로 자기한계를 포장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자기한계를 극복하며 믿음을 가지고 돌파구를 찾아가는 가운데 주어지는 것이다. 

 

신사참배와 친일행위를 한 기독교는 철저한 회개와 반성위에 모든 친일사관을 뜯어고쳐야 한다.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믿음을 지키려고 싸우다가 옥고를 치루고 순교한 이들 앞에 신사참배를 용인하고 굴복한 자들은 지울 수 없는 영원한 배도자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날의 친일 사관을 갖는 개신교는 자신들의 신앙의 뿌리가 신사참배를 용인하고 굴복한 부끄러운 기초위에 있는가 철저히 살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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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세례Baptism

세례(洗禮) 또는 세례 성사(洗禮聖事)는 물을 이용하는 정화의식이다. 세례는 기독교, 만다야교, 시크교를 포함하여 여러 종교에서 행해진다. 기독교의 세례는 유대교의 의식인 "미크바"에 기원을 두고 있다. 또한 영세(領洗)라고 한다.

초기 기독교 예술에서의 침례.

 

기독교의 세례

파울로스는 로마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세례를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영적(靈的)으로 연합되어 그의 죽음에 동참한다고 설명한다.대부분의 기독교 종파에서는 물을 이용하는 세례 의식을 행하고, 이를 예수께서 성만찬과 더불어 친히 제정한 성사라고 믿는다. 하지만 세례의 의미나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자격, 세례의 형태 등에 대해서는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령운동을 강조하는 오순절 교회를 비롯한 몇몇 종파에서는 물에 의한 세례는 성령에 의한 세례로 대체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물에 의한 세례는 기독교 전통에 의해 불필요하게 계승되었다고 보고 있다.

 

세례의 형태

기독교 공동체의 전통에 따라 세례의 예식은 다음과 같다.

침수례 - 몸 전체를 물속에 담그는 방식 (침례라고도 한다.)

살수례 - 물을 머리에 뿌리는 방식

관수례 - 물을 머리에 붓는 방식

이 중 정교회나 침례교, 오순절교회에서는 침수례를, 로마 가톨릭교회는 관수례를 실시하며, 성공회, 감리교, 장로교 등의 개신교 종파는 관수례를 실시한다. 원래 고대에 채택되던 형태는 침수례이나, 살수례와 관수례는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약식으로 제정된 전통이다.

 

세례의 의미와 기능

기독교 내에서도 세례의 의미와 효력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루터교, 성공회, 감리교 등

세례는 구원을 받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며 성사의 요구조건으로 하고 있다. 한 예로서,마르틴 루터는 1529년에 "The Large Catechism"(대요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간단히 말해서, 세례의 능력과 효과와 유익과 열매는 구원이다. 왕자가 되기 위해 세례를 받는 사람은 없다. 단어 그대로 "구원받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구원받는다"는 것은 죄와 사망, 사탄으로부터 해방되어 그리스도의 왕국에 들어가 그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이다. ”

 

성공회(聖公會)에서는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6:3-4("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이미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과연 우리는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를 근거로 세례성사를 죄의 용서와 구원에 필요한 성사(Sacrament)로 보고 있다. 또한 어른과 어린이 모두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린이에게 사제가 세례성사를 집전하는 유아세례가 있다.

침례교

침례가 가치있는 관습이긴 하지만 아무런 성스러운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은 보이지 않고 내적인 것이며, 성례전 자체와는 독립적인 것으로서, 침례는 이 능력의 결과를 외적으로 증언하는 행위라는 견해이다. 침례 '의식'이 의미있고 필요한 것이라고 가르치나, 유아세례는 반대한다.

개혁주의 (개혁교회 및 장로교)

개혁주의는 예수를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보며, 세례를 성찬과 더불어 예수가 그의 백성들에게 시행하라고 제정한 성례전으로 본다. 이는 구약의 할례와 유월절 의식이 신약의 교회에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것은 언약 신학의 한 내용이다.) 그러므로 세례는 '예수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하나님의 언약이 자기 위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라고 본다. 그것을 물로 씻는 형태로 제정된 것은 다른 종파들과 같이 예수의 피흘림으로 죄 용서를 받는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해석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의 징표'라는 의미에서 구약 시대에는 아직 신앙이 확인 되지 않은 어린 아이에게도 할례를 시행했는데, 이것을 본받아 개혁주의 역시 유아 세례를 기독교 가정 내에서 시행하는 것을 동조한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회복된 기독교를 자처하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에서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의 계명을 지킨다는 성약의 표시이며, 죄를 회개하여 침수로서의 침례로 물로 장사 지내고 물에서 올라 옴으로서 과거의 옛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표징이며, 하나님의 교회의 백성이 된다는 선언이 되고, 교회 회원이 되는 관문이 된다.

 

침례를 받은 이에게는 성신의 안수례가 주어지며, 매주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기념하는 성찬 의식을 행함으로써 침례 성약을 새롭게 한다.

 

유아들(정신박약자 포함)은 죄가 없으며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의 상속자가 되므로 침례를 행하지 않는다.[1] 어린이에게 복음을 가르쳐서 만 8세 이후에 성약을 맺게하여 침례를 베푼다.

 

침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합당한 절차에 의해 교회에서 승인된 방식에 따라야 함을 믿으며, 신권의 권능을 가진 이로써 지명받은 자라야 하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줄 수 있다. 침례를 줄 수 있는 신권은 아론 신권이라고도 하는 소신권 중에서 제사 신권이 있고, 대신권으로서 장로나 대제사가 있다. 이들의 교리에 따르면, 세례자 요한(침례 요한) 또한 아론 신권을 가진 이었다.

 

1829515일 몰몬경을 번역하던 조셉 스미스와 이를 기록하던 올리버 카우드리가 서스케하나 강변에서 침례 성역에 관해 알고자 기도하던 중에 침례자 요한이 부활한 영광스러운 신분으로 이들에게 나타나 아론 신권을 안수성임하였는데, 이 교회에서는 매년 이날을 신권회복 기념일로 기린다.

 

합당한 신권소유자는 합당한 회원에게 회원들의 지지하에 안수함으로써 신권을 부여하고 성임하게 된다.

 

침례 받을 사람과 같이 물에 들어가 침례 주는 이가 침례 의식문을 선언하고 침수로서의 침례를 주는데 그 의식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위임을 받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의 이름으로 그대를 침례하노라. 아멘"

 

침례를 받은 개종자는 대신권 소유자로부터 성신의 안수례를 받게 된다.

 

Masaccio (14251426), Baptism of the Neophytes (it), Brancacci Chapel, Florence. This painting depicts baptism by affusion, which continues in the East except for infants, but in the West it had dropped almost completely out of use by the 15th century. The artist may have chosen an archaic form for this depiction of baptism by St. Peter.

성 베드로에 의해 침례 묘사

 

세례의 자격 /신자의 세례

 

세례(침례)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은 교파마다 다르나, 대개 자기 신앙을 고백하는 신자로서, 글로서 신앙을 고백하거나 공개적으로 신앙을 선언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유아 세례

로마 가톨릭교회, 성공회, 장로교 등에서 행하는 유아 세례의 경우에는 세례를 받고 신앙고백을 한 부모가 자녀를 대신하여 유아세례의 자격을 받을 수 있다. 유아 세례의 기록은 성서에는 없지만 4세기에 교부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에 의해 그 필요성이 기술되었다. 아우구스티노는 세례가 죄를 씻어주기 때문에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도 행해져야 하는데, 이는 갓난아기도 원죄에 의해 더렵혀졌으며 따라서 세례를 받기 전에 사망할 경우 죄의 저주를 받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보다 한 세기 전에 교부인 터툴리안은 믿음으로 받는 세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 있다.

 

“ "상황과 개인적인 성향, 또한 나이를 고려하여 세례를 늦추는 것이 좋다. 하지만 어린 아이의 경우에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알 수 있게 되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라." ”

 

성공회의 종교개혁 전통을 강조하는 저교회파 성공회를 포함한 많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세례가 "내적인 변화를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세례는 그리스도를 따라 행해지는 것이며, 그들의 삶을 그리스도께 맡기고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났을 때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편지 517) 그 내적인 변화를 다른 사람들에게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세례

기독교에서 침례가 교회 공동체로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일정한 의식이 된 것은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세례자 요한이 예언자라고 믿는 사람들은 그가 준 침례를 앞으로 올 메시아에 대해 준비하는 회개의 메시지로 받아들인다.(루가 복음서 33-6, 8) 요한은 죄사함이 있기 위해서는 회개가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죄의 얼룩은 지워질 수 있는 것이며, 타락한 행위로부터 돌이켜 주님의 길로 돌아갈 때에 지워질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은 세례 의식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세례 요한이 그의 세례가 충분한 것이 아니며, 회개만으로는 죄로부터의 분리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고 가르쳤을 것이며, 죄로부터의 해방을 위해서는 그가 줄 수 없는 더 큰 세례가 필요하다고 가르쳤을 것이라 믿고 있다. 루가 복음서에 따르면, 세례 요한은 자신이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안 되는 높은 분이 오셔서 성령과 불로써 침례를 주실 것이라 말하였다. (루가 복음서 316) 기독교에서는 세례가 보여주는 것은, 사람이 회개함으로써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려는 노력은, 죄의 대가를 대신 지시는 하느님의 어린양(라틴어: Agnus Dei)에 의해 대체되고 완전해진다는 것이라고 믿는다.

 

마태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는 열두 제자에게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임무를 맡긴다.(마태오 복음서 2819) 이 구절은 세례의 일반적인 방식이 되었는데, 실제로 민중신학자 안병무 선생은 갈릴래아의 예수에서 마태오 복음서 2819절을 교회사적으로 해석하였다. 안병무 선생에 의하면 기독교의 성격이 예수운동에서 보편교회로 바뀌면서 직제와 전례를 정하게 되었으므로 예수가 성부, 성자, 성령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들어간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로는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만으로 세례를 준 것으로 되어 있다. (사도행전 816, 1048, 195)

 

유대교의 정결 의식

세례는 유대교의 의식을 부르는 말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유대교 율법에서 정한 정결의식인 미크바(Mikvah)에서 세례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유대교의 경전과 다른 문서들에는 종교적인 정화를 위한 목욕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 제정되어 있는데, 이는 "종교적으로 정결한 상태"를 위한 것이다. 한 예로서, 시체를 만진 유대인은 모세의 율법에 의해 "오염된 상태"가 되어, 성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mikvah를 행하여 정결한상태가 되어야 한다. 유대교로 개종하기 위해서는 물에 잠기는 의식이 요구된다. 이러한 의식 전반에 걸쳐, mikvah에서 물에 잠기는 것은 정화와 회복을 의미하며, 유대교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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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개신교의 예배

 

개신교에서 예배(Service of worship)는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매우 중요한 기독교 의식 중 하나이다. 정기적으로 혹은 비정기적으로 행해지며, 가정 예배 또는 기도 모임과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목사나 전도사와 같은 성직자들의 인도 아래 교회에서 시행된다. 평신도들이 예배를 이끄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는 않지만, 교회의 질서유지를 위해 특히 축복기도는 목사, 강도사(말 그대로 설교의 권한이 있는 개신교 성직자. 한국 장로교회의 경우 일부 교단에서 강도사 고시로 선발한다.)가 한다. 설교의 경우는 교회에 따라 일반 신자도 예배에 설교를 할 수 있는 교회가 있으나, 보통은 전도사 이상의 경우만 설교를 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파별 예배

개혁주의(장로교)

개혁주의는 ‘마음으로 드리는 절’을 예배의 본질로 삼는다. 개혁신학에서는 예배를 찬송, 기도, 말씀, 헌상, 성례전과 더불어 여섯 가지 은혜의 방도 중 하나로 규정하는데, 다시 말해 예배는 찬송, 기도, 말씀, 헌상 또는 성례전을 모은 종교 의식이 아니라, 다른 은혜의 방도들과는 구별 되는 독특한 의미와 본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정성을 다해 찬송과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고 성찬에 참여하고 헌금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예배는 찬송, 기도, 말씀, 성찬 등의 모듬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가르치는 교회와 듣는 교회를 구분하는 로마 가톨릭과는 달리 개혁교회는 그러한 구분이 성경적 근거가 없다고 여기며[1] 개인도 혼자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럿이서 모여서 공적인 예배를 할 때엔 예배 식순을 따르기도 한다. 개혁신학의 예배론의 독특한 점은 예배에 허용되는 형식이나 내용이 성경에 계시되어 있다는 예배의 규정적 원리이다.

루터교

루터교에서는 종교 개혁의 전통에 따라 예전적 예배를 드리는데, 루터교 예전은 입당성가, 본기도(공적인 기도), 죄의 고백과 사죄 선언, 영광송, 성서독서(루터교의 성서독서는 제1독서/구약성서와 제2독서/서신서로 구분된다. 사용하는 성서정과는 RCL/개정성서정과에 근거하며 목사가 담당한다.), 층계성가(제1독서와 복음서 독서사이의 성가), 찬양의 화답, 복음서 독서, 신앙고백(사도신경), 설교, 감사의 예물, 성찬(루터교의 성찬전례는 루터교 목사에 의해 제단에서 집전되며, 로마 가톨릭교회와 성공회의 성찬전례처럼 면병과 포도주가 거룩해지도록 축성하고, 예수의 성찬제정을 재현하는 성찬기도, 쌍투스(Sanctus, 거룩하시다)성가, 하나님의 어린양(Agnus dei)성가, 시므온의 성가, 면병과 포도주를 받음,감사의 기도로 구성된다.)와 축복기도를 거친 뒤, 마지막으로 주님을 섬기라는 권고와 신도들의 감사 응답으로 구분된다. 말씀과 성례전을 은혜의 방도로 이해하는 루터교의 교리에 있어서 성만찬은 은혜의 방도로서 지닌다고 가르친다. 루터교에서는 교회력에 따른 성서정과를 사용한다.

감리교

감리교에서는 공식적으로 교회력에 따른 성서정과와 감리교 예배서에 나온 예배양식에 따라 예전적 예배를 집례한다. 이는 감리교가 존 웨슬리 신부의 복음주의 운동으로 성공회에서 갈라져 나온 교회이기 때문이다. 감리교 예전은 크게 말씀중심의 예전(‘하나님 앞에 나와 옴’, ‘말씀의 선언’, 감사와 응답, 세상으로 나아감)과 말씀과 성만찬이 함께 있는 예전(하나님 앞에 나와 옴’, ‘말씀의 선언’, 감사와 응답, 성만찬, 세상으로 나아감)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반적인 개신교회의 예식 순을 사용하는 교회가 적지 않은 편이기도 하며, 찬양 예배도 도입되어 있다.


예배 구분

형태에 따른 구분

현재 대한민국의 개신교회에서 드려지고 있는 예배는 크게 ‘일반 예배’와 전반부에 찬양을 중심으로 인도하는 ‘찬양 예배’로 나눌 수 있다. 다음은 두 종류의 예배를 대략적인 순서로 나타낸 것이다.

일반 예배
•묵상 기도 (묵도, 조용한 기도)
•사도신경
•찬송
•교독문
•송영 (맞이)
•기도
•성경 봉독
•찬양 (성가)
•말씀
•찬송
•헌금
•새신자 소개 및 광고
•찬송 (또는 송영)
•축도 / 주기도문

찬양 예배
•찬양 (20분 ~ 1시간)
•기도
•(특송)
•성경 봉독
•찬양 (성가)
•말씀
•헌금
•새신자 소개 및 광고
•찬송
•축도 / 주기도문

참고: 교파, 시간, 장소, 예배의 특성에 따라 순서가 바뀌거나 특정 순서를 생략하거나, 특별히 순서가 더해질 수 있다.

목적에 따른 구분

교회 안의 예배

형태적 구분 말고도, 예배가 어떠한 시간에, 어떠한 목적으로 드려지는가에 따라서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주일 본예배
•주일 학교 예배 : 유치부 (유아부), 유초등부 (초소년부), 중고등부 (청소년부), 청년부로 구성되며 각 계층의 수준대로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구성되는 예배를 말한다.
•주일 저녁예배
•영어 예배
•수요 예배 : 낮, 저녁 두 번 드리는 경우가 있다.
•청년찬양예배 : 토요일이나 주일 오후에, 청년이나 청소년들의 감성에 맞는 찬양을 중심으로 운영함으로써, 좀 더 새롭고 헌신적으로 청년들에게 도전할 목적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찬양 예배의 형태로 운영된다.
•금요 철야 : 과거에는 말 뜻 그대로 금요일 밤에 예배를 시작하여 다음날 새벽에 마쳤으나 현재는 금요일 밤에 시작하여 자정 전에는 모두 마친다. 기존 예배의 형태보다는 부흥회 형식으로 빠른 박자의 찬양과 약간의 설교, 그리고 개인 기도 형식으로 이루어지는데 보통 교회들은 개인 기도 중 인도하시는 목사님이 직접 한 사람씩 기도해 주시기도 한다.
•새벽 기도 : 거의 매일 새벽마다 드리는 기도 모임 형태의 예배이다. 기존 예배의 형태로 드려지며, 특별히 예배가 끝난 뒤에 기도가 많이 이루어진다.
•부흥회 ◦전도 부흥회
◦신유 부흥회
◦심령 부흥회 : 대부분의 부흥회가 취하는 형태이다.

•사경회 : 특정한 일자에 모여서 말씀을 공부하는 모임이다. 교파에 따라 교회들이 연합하여 하기도 한다.
•심방 예배
•특별 예배 ◦결혼식 : 교회에서 결혼할 때 드리는 특별 예배이다. 다만, 이 경우엔 보편적으로 신랑과 신부 두 명 모두 개신교 신자여야만 한다.
◦장례식
◦세례식 : 유아 세례와 일반 세례가 있으며 유아 세례는 아기의 부모님이 모두 교회를 다니거나 하여 부모의 믿음대로 목사님이 직접 세례를 집전한다. 일반 세례는 초신자가 교회에 등록하여 일정한 시기가 되면 받는 세례를 받는 것을 말한다.
◦임직식 : 교회의 장로, 권사, 집사 등의 직분과 교회 내 기관장 등을 임명하는 예식이다. 연회에서 교회들을 통솔하는 자 (감독)에게 주는 경우도 있다.
◦안수례 : 일정한 자격을 거쳐 목사로 적임하다고 판단된 사람들에게 기존 목사가 새 목사에게 안수하고 임명하는 예배이다.
◦은퇴식 : 일정한 시기를 넘은 목사 등의 교역자, 장로들이 적령한 연령을 넘어 은퇴하게 되었을 때 치르는 예식이다.
◦헌당 예배 : 교회 건축이 끝났을 때 드리는 예배이다.
◦파송 예배 : 교회 밖으로 선교사나 교역자를 어떠한 지역으로 파송할 때 드리는 예식이다.

•수련회 : 교회에서 교회에 소속된 사람들을 훈련하고 쉼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하여 교회를 벗어나 다른 곳에서 (주로 2박 3일 ~ 3박 4일간) 하는 집회. 새벽, 아침, 밤에 부흥회 스타일의 말씀과 집회가 이루어지며, 그 외의 시간에는 수련회의 성격에 따라 훈련 시간이나 휴식 시간을 가진다.

교회 밖의 예배

아래에서 뜻하는 ‘교회 밖의 예배’는 ‘장소’를 뜻하는 것이 아닌 교회 이외의 단체가 드리는 예배를 뜻한다.
•개강 예배 : 미션 스쿨에서 개강할 때마다 여는 예배.
•개강 부흥회 : 신학교에서 개강할 때마다 신학생들의 영성을 돕기 위해 여는 부흥회.
•채플 : 미션스쿨이나 신학교에서 학생들의 경건을 위해 강제적으로 드리게 하는 예배. 기존 형태와 찬양 예배의 형태가 섞여 있다.
•가정 예배 : 가정에서 날마다 경건한 생활을 위해 아침이나 밤에 드리는 예배이다.
•모임, 또는 집회 : 예수전도단 화요모임, 올네이션스 목요 모임, 마커스 목요 모임 등의 경우에 해당된다. 이 경우 예배 중에 찬양사역자들이 작곡한 새로운 찬양들이 잇달아 나오는 것이 특징이며, 따라서 경배와 찬양 운동을 이끄는 선교 단체 형태의 단체들이 주로 드리지만, 일반 지역교회(삼일교회나 제자교회의 경우)에서도 찬양 사역자들을 중심으로 드리는 경우가 있다. 예배 중 가장 파격적인 형태 (찬양-말씀-헌금-광고-기도)로 이루어지며, 서울 지역의 경우, 언제나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주된 예배 장소는 교회이지만 간혹 특별히 별도의 목적으로 이 예배를 대규모로 기획할 경우 대형 체육관을 빌려 모두 일어선 상태로 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이런 집회의 경우 말씀 선포와 찬양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모임에서 이루어진 찬양이 음반으로 출시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찬양 집회 : 예배 형태는 위의 ‘모임’과 같다. (찬양-말씀-헌금-광고-기도) 다른 점은 찬양집회는 각 교회 청소년부(중등부, 고등부 또는 중고등부)나 미션스쿨의 기독 동아리에서 한 해에 한 번(많으면 두 번) 정도 특정한 주제를 갖고 드리는 예배이다.
•연합 수련회 : 수련회의 형태와 비슷하나 여러 교회의 성도나 선교단체에 소속된 사람끼리 모여 말씀과 찬양을 통해 자신을 수련하는 모임이다. CCC의 경우는 연말에 금식 수련회를 개최하기도 하며, 선교한국과 같이 특정 목표를 위하여 선교단체들이 연합한 수련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성회 : 특정 주제를 가지고 교회나 공공시설을 빌려 사람들이 모이는 집회 형태의 예배. 부흥회와 비슷하지만 찬양예배와 비슷하게 말씀과 찬양의 비중이 높은 편이며, 은사주의 사역자들이 이용하는 형태이기도 하다.

각주
1. 자주 인용되는 구절들로 요한복음 4:23 및 9:37,3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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