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장 소규모 가족들만을 함

연세가 95세 인지라 2남 5녀의 자녀를 둔 김창갑 집사님 장례식 

가족들만의 장례식이지만 큰 꽃들은 20개는 되는듯 했여 

고인과 사위들의 지인들이 보내온듯함

 

몇 일전 김수님집사에게서 전화가 와서 할아버지 병간호 좀해달라고 해서 

갔다가 할아버지를 알게 되었고 침상에 누어 계신 할아버지에게 교회다닌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중학교 때 세례를 받았다고 했다.

사실 간병을 간 목적은 그래도 운명전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해드리기 위해서였는데

성도라는 사실에 반가와서 3일간 있으면서 기도를 해드리니 좋아하셨다.

 

그리고  3일전 아침일찍 김수남 집사에게서 할아버지 소천할 것 같다는 따님의 전화가 왔다며

빨리 병원으로 와서 임종예배를 드려달고 했던 것이다.

 

2024년 5월29일  목동이대병원에서 소천직전 병상에서 임종예배

 

2024년 5월30일  발인예배

  

2024년 5월31일 새벽 발인예배  
3 기상
4 택시로 목동이대병원 장례식장으로
4시 30분 도착
5 시:40분 발인예배
6시 벽제 화장터로 출상
6시 벽제 화장터 30분도착
7:50 화로앞 운구
8: 20 2층 대기실에서 하관예배
8:00 아침식사 
9:00 수골실에서 유골을 인계 받음
9:40 버스승차
11:40분도착 (유토피아 수목장)
서류절차 수속 15분후
수목위치 이동

 수목장, 수목앞에서 목사 기도
12: 40분완료
12: 25분 출발

13:00 이대목동병원도착 인사하고 혀어짐 
13: 20분경 할머니집 토착 인사, 건강기도, 점심식사 

 

참고로 수목장위치는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화곡리 130 // 031-673-7904 유토피아 추모관 
버스가 도착했을 때 입구에서 직원들이 아주 진철했고

소나무 수목앞에서도 직원의 친절한 설명으로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코로나 2일장 있었고 
교인들의 장례는 일요일이 끼면 2일장,4일장도 할 수 있단다.
시립잔디장에 모신다고 함?

수목장 ,임종예배 ,입관예배 ,하관예배 과정,서울시립승화원, 벽제화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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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예배·입관예배가 우상숭배인가?  

 

 


[신앙상담] 장례예배·입관예배가 우상숭배인가?

어떤 행사도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어,‘장례예식’ ‘결혼예식’ 등으로 용어 바꾸면 돼


- 박종순 원로목사 (충신교회)

 

[Q]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교회의 위로와 보살핌이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목사님이 설교 중에 장례예배 입관예배 발인예배는 우상숭배라고 하셨습니다. 왜 우상숭배가 되는지 궁금하고 바른 모범을 알고 싶습니다.


[A] 먼저 예배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예배의 사전적 의미는 섬기다, 경배하다, 최상의 가치를 돌려 드리다 입니다. 그리고 예배의 대상은 창조주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타 종교에도 예배행위가 있습니다. 그들의 예배대상은 사람이 만든 신이거나 교주이거나 사물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예배대상은 경배와 찬양, 높임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도 사상도 조직도 건물도 예배대상일 수 없습니다.

구약시대의 예배는 제사였습니다. 정해진 제사법에 따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단 한 번도 사람을 제사 대상으로 정한 일이 없었습니다.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등 제물과 제사법은 다르지만 제사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한 후 세월이 지나면서 저들의 제사가 형식화되기 시작했고,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통해 이런 형식화된 제사를 책망하셨습니다.(사 1:11∼13, 미 6:7) 그리고 솔로몬 성전은 주전 587년 외침으로 무너졌습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에게 바른 예배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질문하신 내용의 요점은 용어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목회자나 교회들이 생각 없이 사용했던 예배용례를 살펴보면 결혼예배 장례예배 회갑예배 학위취득예배 개업예배 등입니다. 문법대로라면 결혼이나 장례 같은 행사가 예배의 대상이 됩니다. 말씀드린 대로 사람도 행사도 그 어떤 것도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용어와 표현을 바꾸면 됩니다. 결혼예식, 장례예식 그리고 개업이나 축하할 행사들은 감사예배로 용어를 바꾸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면 됩니다.

결혼예식의 경우는 결혼 당사자와 가족 하객 주례자 모두가 함께 기뻐하고 축복하는 예식입니다. 주례자의 예식진행과 주례사는 축하와 격려로 진행돼야 합니다.

그러나 장례식은 위로가 필요한 예식입니다. 집례자의 태도나 언어표현, 분위기가 장례식에 걸맞아야 합니다. 그리고 조문하는 사람들도 절도와 예절을 지켜야 합니다. 죽은 사람을 신격화한다든지 예배대상으로 설정한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죽은 사람을 신으로 떠받든다든지 숭배하는 것은 성경이 금하는 우상숭배입니다. 일본의 신사참배나 북한의 동상숭배 등은 분명한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나 용어 선택의 미흡 때문이라면 우상숭배라기보다는 개선해야 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일상용어도 바른 말을 사용해야 하지만 교회의 공적 용어들, 예배에 사용되는 용어들은 바로잡고 바로 쓰는 게 필요합니다.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쓰고 바로 살고가 중요합니다.


[출처] 국민일보
[원본링크]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55031&code=23111619&sid1=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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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와 유족들이 알아야할 장례준비및 진행

 

 

 

 

장례예식이란 임종때부터 입관, 발인, 하관식까지를 가르키는 것으로서 나라마다, 지방마다, 종교마다 다르며 시대의 변천에 영향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이 장례예식은 어느 가정에서나 당하는 일이지만 미리 준비가 되는 일이 아니고 막상 닥치고 나면 가장 경황이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어떤 예식보다도 준비가 복잡하고 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고인과 가족의 신앙에 맞도록 치루어야 합니다. 특히 기독교인은 교리에 위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또한 중요합니다.

그래서 슬픔을 당하여 경황이 없는 가족을 위하여 간단한 절차를 말씀드립니다.

 

1. 임종전 준비

죽임은 누구나 맞이 하는 것이지만 그 형태를 구분하면 갑작스러움 죽음과 어느 정도 예견되는 죽음을 구분됩니다. 여기서 예견된 죽음(의사의 진단)을 살펴보면 비록 슬픔중이지만 고인을 편안히 모시고 특히 고인과 유가족들의 문상객을 위하여 사전에 준비가 있는 것이 좋습니다.

 1) 마음에 준비 ==> 가족, 친지, 친구분들에게 연락하여 마지막 모습과

                     마음의 정리를 합니다.

 2) 유언에 관한 준비  ==> 가훈, 재산상의 처리(자필,녹음,공증), 후손을

                           위한 마지막 모습

 3) 장례절차에 의한 준비 ==> 장례절차 합의(어떤 종교식, 장례집례자,

                             호상및 장의위원 선정)

    호상(護喪) ; 전체상황을 아는 친척이나 교인중에 선정하여 상사 일체를

                총감독한다. 필요시에는 호상을 보좌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4) 부고에 관한 준비 ==> 부고장, 부고명단 정리, 부고자및 연락자 선정

 5) 기타준비 ==> 사진, 장례비용, 음식종류및 준비자 선정

 

2. 임종시

임종이 임박하거나, 임종 즉시 미리 정해진 장례예식 집례자에게 연락을 취하여 합니다.

 1) 의사의 진단

 2) 호상이 주관하여 장례집례자 연락및 장의사 연락

 3) 임종예배를 드립니다.

 4) 입관,발인,하관의 시간및 날짜 결정과 알림

 5) 부고(訃告) ==> 부고자및 연락자

 6) 염습(殮襲) ==> 목회자, 집안 어른, 장의전문가中에서 선정

    임종예배후 수세를 한다.

    24시간이 지난후 입관전에 염습을 한다.

 7) 빈소(고인 사진,녹음기,찬송가테이프)및 장의물품 준비(관,수의,상복,사진,

    향,꽃,각종 물품)

 8) 음식준비(병원영안실에서는 불사용이 금하는 것이 많고, 불편하여 외부

    에서 음식을 하여 나르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음식의 종류는 많은

    것보다는 간소하면서도 정결하게 준비되어야 합니다)

 9) 장지연락및 영구차 예약(필요시에는 친지중에 한분이 장지준비를

    위하여 다녀오시는 것이 좋습니다.)

 10) 사망진단서 발급하여 시체 매장신고서(주소지 동사무소)를 하고 매장

     사용 승락서를 받는다.(고인 주민등록증 반납)

3. 입관시

임종후 보통 24시간이 지난후 실시합니다.

 1) 집례자와 장의전문가에게 미리 준비하도록 알려줍니다.

 2) 유족은 상복을 입습니다.

 3) 입관물품은 장의전문가가 준비및 진행합니다.

 4) 입관예배를 드립니다.

 5) 안치를 합니다.


4. 발인시

장례식(葬禮式)을 발인식(發靷式)이라고도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지만 고별식,영결식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기독교의 장례의 촛점은 죽은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믿는 신앙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장례일은 보통 3일장,5일장,7일장으로 지냅니다.


 1) 장례식 전날

  ① 발인식전날에 장지상황을 다시 한번 점검합니다.(묘지,음식,영구차)

  ② 운구위원 선정및 운구물품(장갑, 우천시 우의및 새끼줄)

 

 2) 장례식날

  ①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발인예배를 드립니다.

  ② 운구위원은 정중하게 행동하며 인위적인 울음이나, 곡을 삼가하고

     찬송을 부르는 것이 좋습니다.

  ③ 주일은 피하고 시간은 장지의 거리를 생각하여 정합니다.


5. 하관시

 1) 장지에 도착하여 묘역(墓域) 평평한 자리에 관을 내려 놓고 유족들은

    관옆에서 하관식을 기다려야 합니다.

 2) 장의전문가의 지시에 의하여 하관식을 준비합니다.

 3) 하관예배를 드립니다.

    집례자 상부중앙, 상주와 유족은 오른편, 조객들은 왼편에 마주 둘러섭니다.

 4) 하산하여 음식을 조객에게 제공합니다. (하관예배시 몇분이 미리 준비합니다.

    선산시에는 미리 상의하여 마을에서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6. 장례식후

 1) 장지에서 귀가하여 유족을 위한 예배를 드립니다.

 2) 다음날 인사장보내기(장례위원,조객)

 3) 주상및 유족대표 그리고 호상이 모여서 장례비용을 결산한다.

 4) 첫성묘는 보통 3일만에 가는 것이 상례이고 이를 보통 삼우제(三虞祭)라고 부르는데 이는 혼백(魂魄)를 모신다는 민속신앙적 제사용어이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는 장지에서 수고하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5) 상기(喪期)는 옛풍습에는 상복을 2년을 입었지만 가정의례준칙에 의하면 부모,조부모,배우자의 상기는 사망후 100일로 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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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의식과 예배

 

1. 죽음의 신학적의미 (神學的 意味)

 

1) 자연적인 죽음

 

하나님은 시작과 끝이라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창조한 만물과 人類를 지으신 시작이 있으면 마감하는 떄가 있다. 성경 전도서 1장 9절에 “한 세대가 오고 다른 세대가 다시 온다 할지라도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다”라고 하셨다. 인간의 육체는 흙에서 취하여졌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출생하고 성장하다가 늙어지면 쇠퇴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수한이 이르면, 종국에는 흙으로 돌아가야 할 人生이다. 인간의 죽음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요, 섭리이다. 인간의 몸은 죽음을 피할 수 없고(롬6:12)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다 (계6:8)

  

구약성경에 의하면 히브리인들은 인간의 삶을 고귀하게 보았고, 장수하여 노년의 幸福한 때를 마치면, “그의 선조들 곁으로 ” 돌아가는 것으로 믿었다. (창15:15)

  

신약성경에는 인간의 죽음을 하나님의 본성인 생명의 반대, 죄와 상반된 것으로서 신앙의 측면에서 이해했다.

  

2) 성경적 죽음의 기원

 

성경에 인간의 죽음의 기원은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의 범죄의 결과에서 왔다고 믿는다(창3:1-9) 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한 인간의 타락이며, 죽음은 그 죄의 결과로서 하나님의 심판이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교훈은 하나님은 창조주이요, 인간은 그의 지으신 바 된 피조물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인간은 결코 신이 될 수 없고 인간으로서 인간일 뿐이다.

  

죽음의 기원은 인간의 타락과 이에 대한 율법이다.(고전15:56) 율법의 직분은 죽음을 가져다 주는데 있는 것이다. (고후3:7-9) 하나님에 대한 아담의 불순종이 죽음을 가져 왔으며(롬5:12), 이방인은 하나님이 요구하는 바를 알면서도 이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진노하는 바 되었다.(롬1:31)

  

그러므로 인간의 영혼은 그 죄의 결과인 죽음을 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죽음은 “최후의 원수(고전15:26)”이다. 죽음이 종국적으로 파멸이기에 인간에게 구원의 目的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사람은 죄와 죽음에서 구원함을 받을 수 있게 됨을 알 수 있다.

     

3) 죽음의 상태

 

성경에 죽음을 “잔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육체적 죽음은 생명의 종말이 아니고, 최후의 심판이 죽음후에 계속하여 오게 된다.(히9:27) 최후 심판에는 모든 죽은자의 부활(요5:28-29)과 믿는 자들의 부활하는것(고전15:22-24)으로 이해되는데, 이 죽음과 심판을 위한 부활 사이의 죽은 자들의 중간상태에 대해서는 신약 성경에는 낙원과 음부로 표현하고 있다.( 눅23:43, 16:23)

  

인간의 삶가운데 생명속에 죽음이 잠재되어 있고, 죽음 가운데 생명이 잉태되어 있다. 현재의 생명에 있어서의 죽음, 곧 죽음의 힘은 현재의 생명을 지배하고 그 본래의 상태에 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히2:15) 따라서 사람은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자(마8:22)”, 그의 몸은 “사망의 몸(롬7:25)”, 그의 행실은 “죽은 행실(히9:14)”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올 수 없는 것이다.(요5:24-25)

     

4)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죄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죽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의 본체시오, 영광의 광채시오, 하나님의 生命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가 人類의 죄와 저주를 담당하시고 十字架에 달려 피흘려 죽으셨으나 제 3일만에 사망권세를 폐하시고 부활하셨으니 하나님의 생명은 죽음에서 능히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주안에 있는 자는 그의 생명의 능력으로 영원히 죽지 않기 때문에 生의 종말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시작인 것이다.

  

2.죽음의 준비와 임종

 

1) 죽음의준비

 

돌발적인 사고나 급환으로 죽는 것은 할 수 없지만 환자가 죽음을 예상했거나 죽음을 알리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할 떄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하게 된다.

  

①신앙적 준비: 부활신앙과 내세관을 통해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게 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게 한다. 마지막 순간을 회개와 기도로써 보냄이 바람직하고 하나님의 소망된 약 속의 말씀을 읽어주거나, 소리내어 읽게한다. 그래서 그 영혼을 하나님 품에 위탁하도록 도와야 한다.

  

②가족의 준비:가사 정리, 최후의 유언과 교훈을 담아두기 위해 유서를 작성하거나 유언을 녹음해 둔다. 그리고 친족들에게 알려 장례 준비를 한다.

  

③장례를 위한 준비:장례의식과 절차에 대하여, 장례사 교섭, 장지 확보, 수의, 사진 등을 준비한다.

  

  

2) 임종

 

사람의 호흡이 정지되는 것을 운명이라 하고, 한 사람의 운명을 지켜보는 것을 임종이라 한다. 임종은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지켜보는 것이 좋고, 소속 교회 교역자가 함께하는 것이 더욱 좋다. 임종 전후 본인이 애창하던 찬송이나 원하는 성귀를 낭송한다.

  

3) 시신의 처리

 

교역자의 지도 아래 유족이나 교인이 함께 시신을 처리한다. 그러나 장의사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미리 예고한다.

  

①적당한 높이의 베게로 머리를 바로 잡는다

 

②눈꺼풀을 쓸어내려 곱게 감긴다.

  

③솜이나 백지로 턱밑을 고여 입이 열리지 않도록 하고, 머리를 빗으로 손질한다.

  

④귀, 코. 입 등을 솜이나 백지로 막는다.

  

⑤시신이 굳기전에 팔과 다리의 관절을 가볍게 주물러 펴고 오그라 들지 않게하여 전신을 곧 게 편다.

  

⑥백지나 붕대로 무릎과 두발을 함께 당겨 메고 팔과 두손을 모아 배 위에 자연스럽게 얹어 놓고 흘러내리지 않도록 백지나 붕대로 서로 얽어 맨다.

  

⑦시체를 나무 판자 위에 안치 한다.

  

⑧깨끗한 홀이불이나 흰천으로 시체를 덮고(머리까지) 병풍으로 가리운다.

  

⑨시체를 모신 방에 덮거나 습하지 않도록 시신 보전에 신경을 쓰고 소독을하여 위생에 유의 하도록

한다.

    

3. 장례식에 지켜야 할 예의

    

1) 유족들에게

 

기독교인들은 모든 절차를 간소화하고, 의미없는 세상 풍습을 쫓아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 아님을 납득시켜 장례 절차에 협조케 한다. 장례는 3일장을 원칙으로 하고 발인식이 주일이 되지 않도록 2일장, 4일장으로 조정한다. 고인의 유품에 정중히 헌화하고, 하나님께 유족 가정에 축복을 위해 기도하고, 상주와는 예의를 지켜 맞절을 한다. 그리고 뒷 걸음으로 2-3보 퇴장한다.

 

  

2) 용어에 대하여

 

삼가해야 할 용어:영면(永眠), 영결(永訣), 명복(冥福), 유족들에 위로와 소망이 넘치는 간결한 인사말을 나눈다.

  

예) 얼마나 망극하십니까? (부모상인 경우: 주안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약속을 갖고 새힘을 얻읍시다)

  

얼마나 마음 아프시겠습니까?(손아래 상인 경우)

  

  

3) 용모 복장(교역자)

  

소망에 차 생동감이 넘치는 용모와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곱게 빗어 이마를 훤출하게 보인다. 검정양말, 검정양복, 검정 넥타이, 흰 와이셔츠, 용모복장을 항상 점검한다. 큰 소리를 내거나 잡담을 금하고 웃어서는 안된다. 유족과 함께 슬픔을 나눌 수 있는 교역자의 심령이 되어야 한다.

  

4) 수시와 염습(殮襲)에 대하여

 

고인의 유품이 하나님의 창조섭리의 손길이 담겨져 있다는 생명에 대한 신성함과 존귀함에 대하여, 그리고 고인의 삶의 경륜과 발자취가 남겨진 일생의 희로애락과, 삶 전체를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엄숙한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4. 성도의 죽음에 대한 의미

 

  

1) 성도의 죽음은 출생하는 날보다 나은 죽음이다. (전7:1-4)

  

2) 성도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 죽음이다. (시116:12-16)

  

3) 성도의 죽음은 주안에서 죽는 죽음으로 복된 죽음이다. (계14:13)

  

4) 성도의 죽음은 수고를 그치고 편히 쉬는 죽음이다. (계14:13)

  

5) 성도의 죽음은 의인의 죽음으로 소망이 있는 죽음이다. (벧전1:3-4)

  

6) 성도의 죽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기 위한 죽음이다.(요11:25-26)

  

7) 성도의 죽음은 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죽음이다. (고전15:54-58)

  

8) 성도의 죽음은 새몸으로 덧입기 위한 죽음이다. (고후5:1-4)

  

9) 성도의 죽음은 주님이 깨우실 때까지 자는 죽음이다. (살전4:13-18)

  

10) 성도의 죽음은 저희 행한 모든 일이 따르는 죽음이다. (계14:13)

  

5. 장례의식과 절차

 

  

1) 장례식은 정중하고 엄숙하게 진행해야 한다.

  

2) 운구위원은 가급적 교인으로 하고 운구 행렬순서는 집례자, 영정, 영구, 상제, 친족, 문상객으로 한다.

3) 운상시에는 인위적인 울음이나 곡을 삼가고 찬송 부르며 행진한다.

  

4) 검은 리본을 준비해서 조문객에게 부착함이 좋다.

  

5) 상여를 사용할 때는 간결하게 꽃으로 장식한다.

  

*유의사항 : ①招魂行爲禁止 ②향대신 헌화

 

③절하지 않는다 ④퇴관시 준비사항

 

⑤장례 집행권(교회에서 주관하도록 협의)

  

6. 장례식 순서

 

1) 개식사:(예배전:지금으로부터 고ㅇㅇ씨의 ㅇㅇ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고ㅇㅇ씨의 장례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성도님과 조객 여러분은 정중한 조의와 엄숙한 마음으로 이 식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2) 찬송

 

3) 기도:애사인 만큼 여기서는 “기쁘다”는 말이나 “감사하다”는 말을 삼가고 예배와 유족과 식전과

집례자를 위하여 간단히 기도할 것

 

4) 약력소개:교인외 선후배 가운데서 정한다. (유명인사인 경우) 그렇지 못한 경우 생략한다.

생전 에 고인의 허물을 들추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5) 찬양(弔歌)

  

6) 성경봉독

 

7) 설교 : 설교는 위로와 내세의 소망이 넘치는 믿음의 말씀을 증거하되 간결하게 해야한다. (10분 정도)

  

8) 기도 : 유족들을 위로하며 남은 순서를 주께 의탁하는 뜻으로 기도한다.

  

9) 찬송 : 횡대를 덮고 집례자와 상주, 친지 순으로 흙을 조금씩 취하여 횡대위에 부분적으로 조심 스럽게 뿌리고 이때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육체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선포하고 취토를 하는 동안에 찬송을 성도와 함께 부른다.

  

10)축도

   

7. 장례설교 유형

    

1) 임종예배

 

찬송 : 290장, 289장, 474장

 

본문 : 시90, 히9:27, 사57:1~2, 창3:19, 요14:1~6

  

요약: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되 육체와 영혼을 지으셨다.

  

創造主 被造物과의 關係/生命과 死亡/목숨과 生命

 

①형벌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祝福이다.(계14:13) 주안에서 죽는자는 복되다.

  

육신/땅을 기업, 영혼/하늘에 신령한 복으로 기업을 누린다.

  

②생의 완성을 위한 한과정(관문)(하나님의 영원성과 인간의 유한성)/성도의 죽음은 더 완전하 고 영원한 존재로 변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삶의 한과정이고, 완성이다.

  

하나님의 뜻, 섭리로 계획하신 생의 완성이다.

  

③하늘나라로 영혼에 거처를 옮겨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란? / 사람의 형상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모형으로 창조된 것임.

  

인간의 실존적 존재가 육체가 아니라 영혼임을 다시금 각성케 한다. 육체란 질그릇 같아서 잘못 다루면 깨어지는 것과 같이 연약한 존재이다. 그리고 육체란 영원한 것이 아니요, 잠시잠간의 하나님께서 정하여 주신 수한이다. 그러므로 육체를 신뢰하면 육체와 함께 멸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육체가 있기에 은혜와 진리로 거듭나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만큼 육체가 있을 동안 영혼을 준비해야 한다. 내영혼이 하나님과 사귐을 갖고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사람이 되자. 이를위해서 예수께서 피흘려 화목케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내가 아버지께로 간다고 하셨으니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불신자의 가족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강조한다(히9:27)

  

예) 불신자는 한 번 태어나고 두 번 심판 받으나

 

믿는자는 두 번 태어나고 한 번 심판 받는다

    

  

2) 입관예배

 

찬송 : 203, 223, 291, 295, 544

  

본문 : 고후5:1-10, 계14:12-13, 시84:10~11, 계19:8

  

요약: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하여 황량한 광야에서 장막생활을 했다. 그들의 장막이 생존권을 보호하고 그들이 삶에 유익을 제공함같이, 육체를 장막으로 비유하고 있다. 인간이 흙에서 태어났기에 흙으로 돌아가 육신이 묻히는 것은 인생의 한 과정이다. 육신은 무거운 짐, 괴로운 짐을 벗어 버리고 흙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영혼은 주인되신 하나님을 찾아 영원한 처소인 하늘나라에 가 평안과 안식에 이르른 것이다. 땅에 있는 장막집은 육체를 가리킨 말로 괴로운 집이요, 탄식의 집이다. 영원한 집은 부활의 몸을 가리킨 말로 소망의 집이요, 기쁨의 집이다. 영원한 집은 하나님이 지으신 집이요, 하늘의 처소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집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갈 수 있는 집이다.

  

  

3) 발인예배

 

찬송 : 221, 224, 230, 231, 233, 290, 293, 534, 541, 542,

  

본문 : 히11:13-16, 벧전1:13-25, 벧전2:11~12, 계21:1~4, 요17:9~13, 요19~30.

  

요약 : 인생은 나그네의 길이다.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출생한 자라면 한 번은 세상을 떠나야 하는 나그네이다. 그래서 이세상에서 생활도 일정한 삶의 정착지가 없어 이고 저곳으로 거처를 옮겨 산다, 그리고 목숨이 다하면 자기가 출생한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는 육신이 흙에서 낳기 때문이다.(신토불이) 그런데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사랑하는 부모님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을 떠날 때 그 시신을 5일 이상 집안에 모실 수 없다. 다시 만날 수 없는 기약없이 그동안 정들었던 가정, 사랑하는 가족 곁을 떠나야만 하는 안타까움과 괴로움이 유족을 슬프게 한다. 그러므로 인간들의 만남이란 완전하지 못하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셨으니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하여 영원한 관계를 갖게 되며 주님과의 만남을 가진 자는 주 안에서 믿음을 가진 모든 성도들과 다시는 헤어짐이 없는 영원한 만남을 갖게 된다.

  

고인이 유품을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 비록 정든 집을 떠나지만 그 영혼은 다시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하늘나라의 본향을 향해 출발하는 복된 발걸음이다. 그러나 그러나 돌아갈 처소가 예비되어 있지 않아 갈곳 없는 영혼은 불행한 자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행인과 나그네와 같은 너희를 위하여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

  

4) 하관예배

 

찬송 : 188, 228, 226

  

본문 : 고전15:35-49, 15:50-58, 요 11:25-27, 불신자/눅16:29-31

  

요약 : 주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요11:25-26)고 말씀하심으로 사람이 육체의 죽음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몸의 부활이 있음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실존과 그들의 영혼이 있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부활이 있기에 영원한 삶이 있는 것이다.(자연의 섭리:계절,누에의 일생)

  

주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으니 그리스도안에 잠자는 자들 모두 주님 다시 오실 떄 홀연히 변화되어 신령한 몸을 힘입을 것이다. 주님의 부활의 사건은 신학적으로 역사성, 사실성, 미래성을 의미한다.

  

기독교의 구속사의 최고의 절정은 부활이다. 성도의 부활의 소망과 기대야말로 어떠한 환란과 역경에서도 능히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을 소유케 한다.

썩을 것을 심고(육체) 썩지 아니할 것을 거둔다(부활)

   

5) 위로예배

 

찬송 : 399, 460, 455, 539, 493

  

본문 : 딤후4:7~8, 고후1:3~7, 빌3:13-17, 요삼2-4, 고전10:14-22, 시23편, 시73:28, 시103:15-18,

  

사41:10, 호6:1~3

  

요약 :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이땅에서의 복을 주셨는데 자손의 번성함이다. 이는 자손을 통하여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함이다. 부모가 있으므로 자손이 있는 것처럼 영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계시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함으로 가정에 어려움과 고통이 있었으나 이후로 생명을 약속하신 주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예수 안에서 신령한 복으로 살자. 신앙생활은 복과 생명을 명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요, 교회는 하나님이 계시는 집이요, 하나님 아버지 품과 같다. 그리고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우애에 힘써 빛의 자녀다운 생활을 하도록 한다.

  

돌아가신 고인에게 효를 다하지 못한 회한이 있더라도 마음을 가다듬어 생업에 힘쓰도록 권한다. 제사를 하지 않도록... 고인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 공경은 살아계실때에 기회이다.

  

고인의 믿음과 훌륭한 정신을 자손들의 마음속에 담아 생활한다면 고인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8. 화장에 대한 예

  

성경에서의 나타난 입장은 매장과 화장의 예가 있다. 특히 화장의 예는 구약에서 찾아볼 수 있다(레21:9, 수7:25, 삼상31:12, 암6:10) 성경에서 화장을 금한 예는 찾아볼 수 없으며, 화장의 예식이 비 성서적이거나 기독교교리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볼수 없다. 왜냐하면 부활의 날이 이를때에 주 안에서 죽은 성도들은 하늘에 속한자의 형상을 따라 신령한 몸으로 부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매장의 경우에도 시간의 경과에 따라 시신이 부패, 원형을 상실한다(고전15:50) 성경말씀에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아니할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기록하고 있다. 부활의 영광은 고인의 생전의 영적상태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9. 기도예문

    

부활의 소망되신 하나님 아버지

 

인생과 만물에 생명을 부여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돌립니다. 이땅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앞서간 고ㅇㅇ성도의 ㅇㅇ예배를 하나님께 드리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말씀을 증거하는 목사님께 영감을 주셔서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풍족한 은혜를 채워 주시며,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그 크신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모두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발견하고, 말씀대로 살아갈 능력을 주셔서 썩어 없어질 소망없는 것들과 하나님의 약속없는 삶을 떠나, 영혼을 위하여 영생을 예비하는 복된 삶을 살기로 작정하게 하시고, 주님 다시 오실 때 고인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는 죽음이 없는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갖게 하옵소서. 잠시 헤어짐에 아쉬움과 슬픔을 갖는 유족들을 위로하시고, 고인의 생전에 믿던 믿음을 유업으로 삼게 하옵시고, 더 좋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 일생을 주안에서 형통된 삶으로 보장받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예수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임종: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입관: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발인:영원하신 하나님, 하관:부활의 소망되신 하나님, 위로:복의근원되시는 하나님

    

10. 추도예배

 

찬송:493, 444, 455, 460, 470

  

본문:유1:20-22, 계21:1-7, 고전10:14-22, 요삼2-4, 고전11:25, 시84:5~7, 시84:10~11

  

요약:신앙생활이란 계약적인 관계인데 하나님의 약속과 성도의 믿음의 조화이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는 약속을 믿음으로 영생을 보장받게 된 것이다. 믿음이란 처음과 끝이 동일한 것인데 중간에 믿음을 포기하는 것이 배도요, 영적인 타락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불신자들이 면치 못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육체가 있는 동안 오직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으로 죽을 소망을 가진 자들이다. 그래서 믿음이 있다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용기와 담력을 갖게한 다. 하나님의 응답의 약속을 영혼에 가득 채우고 인내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반드시 윤택함과 풍요가 모든 삶에 넘칠 것이다.

  

고인이 이 땅에 소망보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주님께 영혼을 부탁하여 낙원에 이른 것처럼, 조상이 자손들 영혼을 감당하지 못한다. 고인의 믿음을 지켜 더 귀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자손 천대에 이르는 축복을 받자.

     

11. 사례별 연구

 

1) 아동사/삼하12:18~23.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는 한계성이 있다. 우리의 목숨이 있을 때 부자관계이지 목숨이 떠나면 혈육의 관계는 모두 끊어지고 바로 靈, 우리 靈이 하늘나라 갔을 때는 성도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지 부모자식관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정에 가족관계는 육체가 있을 동안에 보장된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와의 관계는 영원한 관계로서 진정한 부자의 관계이다. 주 예수께서 “너희는 이 땅에 아비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아버지는 오직 하늘에 계신 한 분 뿐이시다”라고 말씀 하셨다. 혈육에 속한 부모는 하나님께 위탁받은 관리자요, 청지기일 뿐이다. 생사화복 만큼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그러기에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오, 취하신 자도 하나님이시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이루어진다. 부모로서 자녀를 잃은 아픔과 고통이 있듯이 하나님께서도 독생자를 보내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의 죽음에 아픔을 당하셨으나 부활의 영광으로 변화시킨 것처럼 모든 것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믿고 결과적으로 좋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인내하고 신앙을 지키자.

  

과거에 마음 아픈 일로 착념하지 말고 뒤에 것은 잊어 버리도록 힘쓰라. 심신이 연약하여 악한 영들의 훼방을 받지 않도록 하고 생업에 힘써 가정이 정상적으로 유지되도록 회복하자.

  

2) 自殺/요10:17~18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다가 시련과 역경, 좌절, 복잡한 삶의 혼란과 갈등속에 비관하여, 자살한 고인에 관하여 직접적이고 충격적인 언동으로(그 영혼이 지옥 갔다) 유족에게 부덕을 끼쳐서는 안된다. 가족과 친족들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심리적 갈등과 불안, 좌절감등 착잡한 심정을 헤아릴 수 없는 태임으로 고인의 허물을 들추는 것보다는 유족들에게 위로해 줄수 있는 믿음의 지혜가 필요하다.

  

인간은 하나님처럼 심판자가 아니다는 점을 명심하여 판단하는 태도를 취하지 말아야 한다. 판단하고 심판하시는 절대주권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 이시다. 본인의 믿음의 생활을 생각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자. 그리고 이후로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고로 유족 모두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임의로 살지 말도록 하고 더 이상의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믿음으로 살자고 당부한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삶을 스스로 포기하고 자신의 생명을 끊는다는 것은 선한 행위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자기 목숨을 끊는 것은 자신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방법이 아니고, 선하고 아름다운 방법도 되지 못하는 까닭이다.

  

성경에서는 인간의 모든 소욕중에 죄의 소원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죄의 소원이 마음속에 있지만 이를 다스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3) 무신론자, 타종교인/요14:1~6, 전12:1, 12:7~8, 시146:1~4.

  

세상사람들은 죽음을 진리라고 말합니다. 진리란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이다. 창세이후로 만물도 변하고 문화도 변하여 갔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이 진리가 아니라 부활을 진리라고 가리키고 있다. 성도란 죽음을 믿는자가 아니라 부활을 믿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것은 그리스도 앞에 왔을 때 바로 그것은 부활로서 대체되는 것이다.

  

사망의 쏘는 것은 죄인데, 죄가 해결되고, 사망은 생명의 이김의 삼킨바 되어 부활로 변하기 때문에 죽음도 변해 버려 진리가 될 수 없다. 진리란 하늘에서 계시된 참되고 영원한 것이다.

  

예수안에 거하는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망을 이기고 승리하여 영생케 될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나 철학, 그리고 인간의 사상은 죽음을 종점으로 삼고 있다. 죽음이 마지막이요, 그 마지막 종점은 죽음이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오열하고 통곡하는 것이다. 인간의 생로병사... 결국 인간은 죽게 마련이다.

  

인간은 죽음 앞에 속수무책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섭리를 거역할 수 조차도 없다.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운명이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 넘어 있는 다른 세계를 볼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허무주의요, 니힐리즘이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생명의 시작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비록 육체에 속한 목숨은 끝나지만 영혼에 속한 생명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4) 病死/사57:1~2, 시73:1~28.

  

하나님은 성도의 고난 중에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을 지속하여 영혼을 보존하는 자를 기뻐하신다. 신앙생활이란 영혼과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일로 축복과 생명을 명하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다. 주님이 자기 희생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하시고 생명을 주셨으니 투병 생활일지라도 중간에 주님의 생명을 포기할 권리는 인간에게는 없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계명으로 죽을 권리를 사용하신 것이다. 믿음을 포기하는 것이 죄요, 영적인 타락이다. 육체의 질고 가운데서 그 믿음을 지키신 고인의 믿음을 본받자.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열납하시고 영혼을 부르신 것은 더 이상 고통이 없는 쉼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자손들의 심정은 더욱 고인의 생존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있겠지만 그러나 질고와 고통중에 생명의 연장은 저주일 수도 있다. 하늘로부터 오는 평안과 위로로 힘을 얻자.

  

성도의 죽음은 죄와 사망의 몸에서 영원한 해방이다. 다시금 죽음이 없는 영원한 치료이다.

    

5) 중병 환자 관리

 

(병원에서도 치료 불가능한 절망적 상태의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이 사실에 대한 고지 여부와 적절한 시기, 신앙적인 면에서 도움을 주어야 할 구체적인 제언)

  

이 세상이 어떤 철학이나 종교도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하여 논할 수 없기 때문에 회의적이고 결국 인생을 허무라고 결론을 짓습니다. 죽음 자체로서 생의 단절이요, 종말이라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죽음이 진리가 아니라 부활이 진리인 것입니다. 사망의 쏘는 것은 죄인데

 

죄의 문제를 주님이 해결하셨고, 사망은 주님의 생명으로 이김의 삼킨바 되어 죽음은 부활로 대체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현실적인 죽음보다 장래 소망있는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이러한 인생관, 생사관이 분명하게 정리되어 영혼 구원 목적을 우선하여 믿음을 갖도록 힘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육체적 죽음은 생명의 종말이 아니라 사망과 정욕의 몸에서 해방되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기 위한 삶의 한 과정일 뿐입니다. 인간의 생과 사란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계획된 창조 질서입니다. 이 사실을 겸허하게 수용할 때 두려움은 사라지고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마음속에 주님이 주시는 평강 안에서 안위함을 누릴 것입니다.

  

중환자가 신앙이 전혀 없고 의지가 약하며 병명을 알게 되면 견뎌내지 못하고 공포심으로 좌절할 경우 병명을 알리는 것이 적절치 못한 때입니다. 반면에 구원의 확신과 믿음이 견고한 경우 병을 치료하는데 환자의 협조가 필요한 경우, 아직 젊고 정리해야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을 때 환자에게 알리는 편이 유익합니다. 주님께서 치료해 주시겠다는 말씀은 변하지 않는 말씀으로 우리와 맺은 언약은 영원한 약속이 되기 때문에 믿음의 증표가 되며, 환자에게 마음이 요동하지 않도록 믿음을 굳게 하고 지속한다면 치료함을 받을 것입니다.

  

* 장기적인 투병으로 심신이 지치지 않도록 간병하는 가족이 노력하고 성도들은 지속적인 심방과 예배로써 신앙이 성장케하고 연약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자포자기 하지 않도록 예방과 함께 믿음을 충족시켜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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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 장례 철차 (임종,입관, 출관,하관,마무리)

기독교 상.장례(喪.葬禮) 절차

기독교식 상례에서는 운명하기 전 임종에서부터 하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절차가 목사의 집례(執禮) 아래 이루어집니다. 임종과 더불어 찬송과 기도로 고인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는 뜻의 예배를 봅니다.
초종 중에는 매일 목사의 집례 아래 기도회를 갖고,유가족은 아침저녁으로 빈소에서 기도회를 가지며 찬송이 끊이지 않게 하며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가게 합니다.

일반 상례와 틀린 점은 곡을 하지 않으며, 음식을 차리지 않고, 절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조석으로 전을 올리거나 상식을 올리지 않으며, 염습시에 매장포로 묶지도 않습니다.

성도가 임종하면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불러 가셨다는 뜻으로 소천이라 합니다.
기독교 장례는 성도가 소천하시면 그 영혼은 이미 하나님 품으로 가셨으므로 남은 육신을 처리하는 일인데 미신적인 행위와 미신적은 일을 일체 삼가하고 모든 예식은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중심이 되며 드리는 이 예배는 이미 천국가신 고인을 위함이 아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유족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행사와 절차를 말합니다.
특히 기독교 장례예식시 근조화에 쓰는 글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고 쓰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반드시 소천이라고 써야 합니다.
사람의 호흡이 정지되는 것을 운명(殞命)이라 하고
일가 친척이 운명할 때까지 곁에서 지켜보는 것을 임종(臨終)이라 합니다.
인간의 죽음은 신학적 이론으로 개인적 종말론에 해당됩니다.
개인적 종말론은 인간 개인의 육체적 사망과 사후의 상태를 논하는 것입니다.
물론 죽음이 죄로 말미암아 있게 되었지만, 신자에게 죽음은 자신을 깊이 반성하게 되고
또 괴로운 세상을 떠나 다시 죽음도 없고 저주도 없는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영생을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캘빈은 만약 하늘나라가 우리의 조국이라고 한다면 이 땅이야말로 망명(亡命)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해방이요, 최고의 기쁨이요 복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잘 알아듣게 타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에 직면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주권과 죄의 고백,그리고 예수그리수도를 믿음으로 용서받음을 확신하게 하며 부활 신앙과 내세관을 분명히 보여주어 죽음을 두려움없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교역자가 죽음에 임박한 교우를 돌보려 한다면 의식이 분명할 때 심방하여 신앙의 확신을 갖게 하고, 혹 기력이 쇠하여 언어구사가 곤란할지라도 그 순간은 많은 말이 필요없고 한마디의 상징적인 언어나 몸동작으로라도 신앙의 확신을 그의 의식 속에 불어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 소망에 관한 성경 말씀을 찾아 들려주고, 조용하고 은혜로운 찬송,특히 본인이 즐겨 불렀던 찬송으로 마음의 평안과 소망을 주어야 합니다. 또 임종 직후에는 죽은 사람보다는 살아 있는 유족들과 친척들을 위해 위로의 말씀과 찬송으로 슬픔을 소망으로 이길 수 있도록 위로와 격려의 말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임종이 가까웠을 때에 목회자는 죽음의 공포와 육체적 고통 중에서도 약해지지 않고, 구원의 확신을 갖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도록 돕는 것을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한 생명의 마지막을 돌보는 것은 한 생명의 영원한 승리로 인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요 순간입니다. 돌봄의 실수로 본인과 가족에게 슬픔을 주지 않도록 어떤 일보다 먼저 시행해야 합니다.

환자가 숨을 거두어 운명하게 되면 시신을 정성껏 처리하고,시상 위에 안치하여 흰 천으로 덮어서 서늘한 곳에 모신 후 병풍으로 가리고, 그 앞에 깨끗한 탁자를 놓고 위에 고인의 영정과 유품 등을 놓습니다.

◐ 임종 식순

★ 개식사

♣ 주례자
우리는 지금 주께서 이 땅 위에 보내셨다가 때가 되어서 불러가신 (직분 이름)의 임종식을 거행하겠습니다.
♠ 신앙고백 = 다같이
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겠습니다.
♠ 찬송 <541장> 다같이
♠ 기도 - 생략할 수 있음 - 맡은이
♠ 성경봉독 -눅 16:19-31, 약 4:13-17 - 주례자
♠ 위로의 말씀 -아브라함의 품-주례자
♠ 찬송 <532장 539장> 다같이
♠ 축도 -주기도- 목 사

2)입관식(入棺式)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을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여 한몸이 된 유지체들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자기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하며 존경하고 도와주며 고통을 받는 형제와 함께 고통을 나누며, 영광과 기쁨도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한 인간의 죽음도 충격적이지만 그 모습(흔적)을 다시는 볼 수 없게 입관하는 일은 더욱 슬픈 일입니다.
이와 같이 감정을 억제하기 어려운 일들을 당했을 때에 교회와 목회자는 모든정성과 수고를 다해서 상가의 분위기와 신앙의 상태가 달라지도록 최선을 다해 상가를 보살펴 주며, 슬픈 마음을 안정시켜 줍니다.
입관 준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의와 관이다. 이는 교회의 경조부(상례) 내 간사(염사)가 처리해 줍니다.
교회가 적어서 상례부가 없다면 기독교인이 경영하는 장의사에 부탁하면 입관에 관한 모든 일을 처리해 줍니다.
입관이란 염습한 시신을 관 속에 넣고 뚜껑을 덮어 함봉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보통 운명한 지 24시간이 경과한 후에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입관식을 올릴 때는 다음 세가지와 같은 입관 상태에서 해야 합니다.
①시신에 수의를 입혀 입관한 다음 관 뚜껑을 덮어 나무 못을 박고 결관하여 십자가 있는 관보를 씌우고 합니다.
②관 뚜껑은 덮으나 나무 못은 박지 않고 결관하지 않습니다.(부활을 위하여)
③관 뚜껑을 덮지 않고 열어놓고 예배를 드린 후 나무 못을 박고 결관하여 십자가 있는 관보를 씌웁니다.
위의 세 가지 중에서 첫 번째가 가장 좋으리라 생각되지만 상주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도록 합니다.

★ 입관식 식순

♠ 개식사 - 주례자
지금부터 고 000씨의 입관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조문객 여러분의 조의와 위문에 감사하면서 엄숙한 마음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식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 신앙고백-사도신경-다같이
①다같이 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겠습니다.
②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겠습니다.

♠ 찬송 <290장> - 다같이
♠ 기도 - 맡은이
♠ 성경봉독-베드로전서 2:11 ∼ 12- 주례자
♠ 고인의 약력 맡은이
고인의 약력을 알고 예식에 참여하여 말씀을 듣게 되면 도움이 될 줄로 믿기 때문에 위로의 말씀 전에 할 것입니다.
♠ 조가(弔歌) - 맡은이
♠ 위로의 말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주례자
♣ 기도 주례자
♠ 조사 맡은이
♠ 찬송 <291장> 다같이
♣ 축도 - 목 사

입관식이 끝나면 병풍을 세우고 관을 놓고 관 앞에 작은 상을 놓아 사진과 유품을 올려놓거나, 관이 보이지 않게 병풍 뒤에 둘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분향은 하지 않고 헌화(獻花)를 합니다.
그러므로 일반 조문객들을 위해 헌화할 꽃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기독교 집안에서도 일반 조문객을 위해 분향 준비를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교가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며, 서로 협조하면서 더불어 살아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3) 출관식(出棺式)

출관식은 조문온 조문객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인정하게 하고, 인간의 무능함과 유한성을 깨닫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모든 예식이 그러하겠지만 출관식은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고인의 모든 흔적(모습)이 집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이기 때문에 예식에 있어서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로는 모든 순서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회가 되어야 하고, 둘째로는 유족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어야 하며, 셋째는 이 의식에 참석하신 분들게 신앙의 확신과 선교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예식이 진행되어져야 합니다. 출관식 식순

♣ 개식사 - 주례자
고 000씨를 안장하기 위하여 수의를 입혀 입관하였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는 분명한 사실을 깨달으면서 출관식을 거행하겠습니다.

♣ 신앙고백-사도신경-다같이
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겠습니다.
♣ 찬송 <534장> - 다같이
♠ 기도 -생략할수 있음-맡은이
♠ 성경봉독 -고후 5:1-9-맡은이
♠ 위로의 말씀 -영원한 집- 맡은이
♣ 기도 - 설교자
♠ 찬송 <539장> - 다같이
♣ 축도 - 주기도-목 사

① 장례일 : 재래의 전통상례에 있어서 장례일은 짝수 일을 피하고, 홀수 일은 3, 5, 7 일로 정했으나,근래에는 대개 3일장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이러한 일수에는 얽메일 필요가 없으며 주일이 겹칠 때에는 2일 혹은 4일장으로 해도 무방합니다.

② 장지 : 교회 묘지, 공원 묘지, 선산을 이용해도 무방하며, 화장을 해서 성서에 위배되는 일은 아닙니다.
합장할 경우에는 앞에서 보아 좌측에 남자, 우측에 여자로 합니다.
토질은 물이 나지 않고 방향은 어느 곳이나 상관 없으나 남쪽을 향한 곳이면 더 좋고, 이북에 고향을 둔 사람은 북쪽을 향하여 바라보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으므로 방향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합니다.
또 우리 나라 사람들은 장지의 위치를 높은 곳을 선호하는 편이나 중국 사람들은 오히려 낮은 곳을 선호합니다.
왜냐하면 뒷배경이 든든하니까 아래 낮은 곳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③ 약력 소개, 조사, 조가 : 고인의 선행이 조객들에게 교훈이 되는 것이나, 고인이 즐겨불렀던 찬송을 다시 부름으로 고인을 생각할 수 있다. 이 모든 순서를 가진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유족들에게는 위로가 되며, 주위 사람들에게는 전도와 신앙적 결단의 기회가 되도록 집례자가 유도해 의식을 진행시킨다.

④ 순서 ; 운명하는 장소는 사고로 인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가 집이나 병원이지만, 출관하는 장소는 다를 수가 있습니다.
자택이나 예배당, 병원, 구민회관, 출관하는 장소는 다를 수가 있습니다.
유족들은 관을 중심으로 앞 또는 좌우로 앉거나 서게 하고 집례자는 관 앞 적당한 장소를 선택하는데 모인 사람들이 잘 보이는 곳에 서서 예식을 집행해야 합니다.
고인의 호칭은 고 000직분명(목사, 장로, 권사, 집사) 을 부르고 직분이 없는 자에게는 고 000성도 로 통일하는 것이 좋습니다.
믿지 않고 돌아간 후 가족이 원할 때에는 연령에 따라 선생님, 어른, 여사, 할아버지, 할머니 등 고인에 따라서 적절한 호칭을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 의식 순서는 집례자 또는 때에 따라 다를 수가 있지만 대개는 개식사, 기원(신앙고백, 예배), 찬송, 말씀, 축도 후 장지와 그 외의 모든 것을 알리는 광고를 한 후 장지로 떠납니다.
조가나 조사가 있을 때에는 조가는 말씀 전에, 조사는 말씀 후에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의식의 분위기를 엄숙하게 할 수 있으며, 조사 전에 약력을 소개하면 조사를 듣는 사람들이 고인을 기리는 데 좋을 것입니다.

<기도문>

♥ 예1)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제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사셨던 우리 믿음의 형제였던 고 000씨를 000에 안장하기 위하여 출관식을 거행하고자 합니다.
성령께서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하시며 소망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기로 다짐하는 기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예2)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제 고 000씨를 000에 안장하기 위하여 출관식을 거행하고자 합니다.
성령께서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하시며 이 엄청난 사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기회가 되게 하시며 내세에 대한 확실한 신앙으로 소망 가운데 살 수 있도록 다짐하는 기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예3) 고인은 믿으나 믿지 않는 유족을 위하여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과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제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었던 고 000씨를 000에 안장
하기 위하여 출을 거행하고자 합니다.
성령께서 고인이 사랑했던 자녀들(유족들)에게 아버지(어머니)의 신앙 따라 살기로 다짐하는 기회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뿐만 아니라 천국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다짐하는 기회가 되게 하시며 선친의 교훈을 따라 살면서 실천하도록 다짐하는 기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⑤운구 행렬 : 출관식이 끝나면 장지에 가지 못하는 조객들은 상주와 인사를 나누고 운구가 떠날 때까지 이를 지켜봅니다.
운구 행렬의 순서는 고인의 영정, 집례자, 영구, 이어서 상제들과 조객들이 뒤따르게 된다. 영구는 머리에서부터 나오도록 모십니다.
이때 성도들은 대문 밖에서 찬송을 계속 부르며 뒤에 따르도록 한다. 골목이 좁을 때는 영구차가 있는 곳에서 차가 떠날 때까지 부릅니다.
영구차가 있는 곳에 영구가 도착하면 고인의 사진을 든 사람을 관이 들어갈 바로 앞에 서게 하고 관을 영구차에 실으면 사진은 영구차 맨 앞 좌석에 앉게 하며 유족들은 관을 중심으로 앉아서 떠납니다. 이때 집례자도 함께 타야 합니다.

⑥선두차 : 고급 승용차에 검은 띠를 두르고 헤드라이트를 켜고 영구차 앞에 간다. 이것을 선두차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이 선두차를 부나 권위의 상징으로 사용했으나 오늘날에는 꼭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영구차는 누구나 다 알라볼 수 있기 때문에 복잡한 거리를 지나도 영구차 운전기사에게 모든 것을 맡겨두면 편리하게 빨리 장지에 도착할 수 있으므로 굳이 선두차를 두지 않아도 됩니다.


4) 하관식(下棺式)

하관식은 죽은 사람을 흙으로 돌려보내고 산 사람끼리 돌아와야 하는 슬픔의 절정을 이루는 순간이기 때문에 격려와 용기를 주어 새로운 결심과 각오를 가지고 내려오도록 해야 합니다.
많은 철학자들이 영혼의 불멸을 믿고 있었으나 육신의 부활에 대하여 믿는 자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종말이 있듯이, 그리스도의 제림과 세상의 종말과 심판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무덤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주의 재림 때 성도는 부활의 소망이 있다는 사실과 고인의 영광과 평안의 세계로 옮겨갔다는 말씀을 통해 확신하게 하고 위로 받게 하며 안정시켜 주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이렇게 세상 종말이 이루어질 최후의 영광이 있음을 바라보면서 먼저간 사람을 만날 기대 속에 신앙 생활에 힘쓰도록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고인이 믿지 않고 돌아간 경우라면 우리의 가는 길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내일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해야 하며, 고인의 영혼이나 구원을 위한 기도나 말씀은 절대로 하지 않아야 된다. 왜냐하면 생사는 우리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으며, 구원의 역사도 우리의 권한 밖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 취토
하관식이 끝나면 취토(取土)를 하게 되는데, 취토는 열어놓았던 횡대를 다시 덮고 관 위에 흙을 덮는 것을 말합니다.
흙이 관 위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순간이 가장 슬프기 때문에 식순에 넣으면 취토를 할 때 유족들이 울음을 터뜨리기 때문에 식을 마치고 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취토 전에 꽃이 있으면 먼저 헌화한 후 할 수도 있으며, 그 순서는 주례자가 먼저한 후에 유족, 친척, 친지, 조문객순으로 합니다.

취토할 때의 기도문은 다음과 같습나다. 이제 우리는 고 000씨의 육신을 땅에 안장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늘에 속한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할 것을 믿으면서 소망 가운데 살기로 다짐하겠습니다.

♣ 하관식 식순 개식사 - 주례자

지금부터 고 000씨의 하관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 아버지시며 육신은 훍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려 보내는 순간으로 이제 그의 육신의 모습을 다시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신앙으로 위로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신앙고백 -사도신경-다같이
① 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겠습니다.
② 다같이 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겠습니다.

♠ 찬송 <188장>- 다같이
♠ 성경봉독 -고전 15:35-49-주례자
♠ 위로의 말씀-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주례자
♠ 기도 주례자
♠ 찬송 <293장> 다같이
♠ 축도 목 사 (나) 성분

하관식이 끝나면 일하는 분들이 작업을 시작할 때 계속 찬송을 부르며 그들을 격려한다. 전통 장례식에서는 봉분이 완성되면 성분제를 지내게 됩니다.
이때 종교가 같지 않은 사람은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하관 후 바로 떠나지 말고 흙이 어느 정도 채워질 때까지 지켜보는 것이 유가족에 대한 예의입니다. (다) 묘비

묘비는 묘 앞에 세워 누구의 묘인지를 나타내는 표시이므로 아담하고 간결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 표시 방법에 여러 종류가 있지만 앞에서 돌아가신 분의 직분과 이름, 그리고 부활에 관한 성구나 평소 고인이 은혜받은 성구를 기록하고, 뒤에 자손의 이름, 옆에는 생년월일과 죽은 연월일을 기록하게 됩니다.
부부 합장일 경우 묘의 전면에서 보아 왼쪽이 남편 오른쪽이 아내 의 생년월일과 돌아가신 연월일을 기록합니다. (라)


마무리

한 사람의 장례(매장) 절차는 임종에서부터 하관까지로 마치게 됩니다.
유가족 대표나 집례자가 모든 순서를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위로 가운데 마치게 하신 하나님께 그저 감사드리며,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협력해 주신 조문객들께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기도해 주시라 는 부탁의 말로 모든 의식을 마칩니다.
장지에 점심 식사가 준비되어 있으면 식사를 하면서 위로를 하기도 하며, 상주들은 조문객들을 찾아다니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합니다.
의식은 마쳤지만 유족들은 묘비, 묘테, 잔디, 그 외의 일이 남아 있지만, 첫 성묘 때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며 당일에는 모든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하산합니다.

★ 구약성서와 장례

구약성경에서는 장례식에 대해 의외로 언급을 피하고 있다.
초상이 나면 애곡으로써 장례는 시작된다.
애곡은 슬픔의 표현으로 죽은 자에 대한 예의이다.
그러므로 애곡은 친족의 의무이며 문상객들도 애곡한다.
애곡은 초상 때부터 시작해서 묘지에서 그리고 매장이 끝난 뒤에도 보통 7일간계속한다(창 50:10 이하, 삼상 31:31)
예외로 모세와 아론을 위해서는 30일간(민 20:29, 신 34:8)
야곱을 위해서는 70일 간(창 50:3) 애곡했다.

애가를 지어 부르기도 한다(삼하 1:19-27, 3:33-34, 겔 19:1-4) 이것은 오늘날 조사와 같다. 이는 주로 고인을 추모하는 뜻에서 고인의 선행과 용감성 등 여러 가지 업적 등을 이야기한다.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을 때 다윗이 슬피 부른 노래가 있다(삼하 1:19-27)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관(棺)을 사용하지 않는다. 관에 관한 유일한 언급은 애굽에서의 요셉에 관한 이야기 뿐이다(창 50:6)
시체는 상(床)에 눕히고 천으로 싼다.
야곱과 요셉, 아사왕의 시체에 향(香)을 넣었지만(창 50:2, 26, 대하 16:14)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에서는 행하지 않았다.

장례 행진을 위해 시체는 상여로 운반했다(삼하 3:31 이하, 대하 16:14) 여러 사람이 메고 다녔는데 우리나라의 옛날 상여와 흡사하다고 생각된다.

장례는 보통 1일장으로 지냈다. 하루 해를 넘기지 않으려고 애쓴 이유는 위생 상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하려고 했고, 또 다른 이유는 부정(不淨)을 면하기 위해서였다.

무덤은 대개 언덕에 구멍을 파서 만들었거나 땅을 파서 매장하였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장례하기 위해 헷 족족 에브론에게 은 4백 세겔을 주고 밭과 막벨라 굴을 사서 가족 묘지를 삼았다(창 23:16-17) 묘지는 고인이 생전 거주하던 곳에서 가까운 곳이나 연고지에 만들었다.
막벨라 굴에는 사라를 위시하여 아브라함, 이삭, 리브가, 야곱 등 가족들을 매장하였다.

다윗은 죽어 다윗성에 장사되었다(왕상 2:10) 그곳이 다윗의 묘지가 되어 역대 왕들이 묻혔다.
그러나 므낫세 왕과 여호람 왕 같이 인기가 없고 불경건한 왕들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지 않았다(왕하 21:18, 대하 21:20) 구약시대 장례를 중요시한 것을 전도서에서 엿볼 수 있다.
자식을 백 명이나 두고 아무리 오래 산다 할지라도 인생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고 죽어서도 평안히 묻히지 못할 신세라면 이것은 아예 낙태된 아이보다 못하지 않겠는가(전 6:3) 라고 했다.

구약성경은 생(生)과 사(死) 그리고 장례를 똑같이 하나의 중요한 일로 여겼다. 그러므로 독부 이세벨의 시체를 묻어주는 사람이 없어 땅에 버려져 개들이 뜯어 먹을 것이라고 저주하였고(왕하 9:10) 하나님의 말씀을 위반한 예언자들의 시체는 조상들의 무덤에 묻히지 못하리라(왕상 13:20-22) 하였고 불경건한 여로보암 왕(왕상 14:11)과그의 뒤를 계승한 바아사 왕(왕상 16:4)도 같은 선고를 받았다.
구약에서는 해마다 희생제물을 드리기 위해 고향을 방문했고(삼상 1:21, 9:12-13, 20:6, 28-30) 이 때 주로 높은 곳 (왕상 3:4, 11:7, 호 4:13, 10:8, 암 7:9)에서 제사를 드렸으며(창 35:20, 삼상 9:12-13, 욥 27:15, 사 53:9) 이곳에서 추도예식이 있었다고 드 보(De Vaux)는 주장한다. 특히 족장들이나 위대한 조상들의 무덤은 그 후손들에 의해서 일찍부터 일종의 성역화(聖域化)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중세교회

중세 교회의 장례 양식은 많이 변하지 않은 것 같으나 내용적으로는 연옥설의 영향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묘지에서만 아니라 제단에서 행하는 의식을 차차 존중히 여기면서 죽은자를 위한 진혼 미사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초기의 평화와 승리에 근거한 장례의식이 차차 행해지지 않고 슬픔이 가득한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을 실감하는 형식으로 변하게 되었다.

유족과 지도자들도 죽은 자가 직면한 연옥에서의 고통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검은 상복을 입게 되었다.

이와 같은 연옥 사상은 옛날부터 있었으나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590-604)에 이르러 본질적인 교리가 되었다.

★ 신약성서

신약성서의 몇가지 장례기사를 통해 신약시대의 장례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나인 성 과부의 외아들의 장례 행렬 기사에서 어느 정도 그 시대 장례를 짐작할 수 있다.
동네 사람들이 큰 때를 지어 상여를 따라 온 것은 이웃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으로 여기는 공동체 의식이었고, 장례 행렬이 있는 것은 매장하기 위한 행렬이다(눅 7:11-17)
야이로의 딸이 죽은 후에 사람들이 피리를 불며 곡하며 떠드는 무리가 있었다(막 6:37-39)는 것은 초상이 나면 애곡하는 것은 슬픔의 표현이며 죽은 자에 대한 예의이다.
그러므로 가족은 물론 문상객들도 애곡하였다.
애곡은 흔히 직업적인 곡꾼들을 고용하기도 했는데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반드시 애곡하는 여인과 둘 이상의 악사가 주로 피리를 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때 흔히 악기가 동원되기도 했는데 특히 피리를 사용했다고 한다(대하 35:25, 렘 48:36, 마 9:23)
나사로의 무덤은 동굴로 되어 있었고 입구는 돌로 막혀 있었다(요 11:38)
나사로의 시체의 손발은 베로 묶여 있었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겨 있었다(요 11:44)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 수의를 입힌 것과 같다. 우리 나라에서는 시체를 옷과 이불로 싸는 것을 소렴(小斂)이라 하고, 소렴을 치른 다음 날에 다시 시체를 옷을 거듭하고 이불로싸서 베로 묶는 것을 대렴(大斂)이라고 한다(큰 사전에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둔 예수의 시체를 유대인들의 장례 풍속대로 향료를 바르고 고운 베로 감았다.
그리고 아직 장사지낸 일이 없는 새 무덤에 예수의 시체를 모시고 큰 돌로 무덤 입구를 막았다(마 27:60, 요 19:38-42)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엄벌을 받아 그 자리에 고꾸라져 숨지니 젊은이들이 들어다 그 시체를 싸가지고 내어다 묻었다.

그 후 삽비라도 죽었으므로 떠메고 나가 그 남편 곁에 묻었으니(행 5:5-6, 10) 부부를 합장한 것이다. 욥바의 여제가 다비다가 죽은 사람들이 그 시체를 깨끗이 씻어서 이층 방에 눕혀 놓았다.
친구들이 몰려와서 그녀가 살았을 때에 만들어 두었던 속옷과 겉옷을 보여 주면서 애도했다(행 9:37-39)
신약성경에서 장례 기사를 보면 독특한 매장 형식이나 장례 의식을 엿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어떤 의식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신약성경은 복음과 그 전파 상황은 열심히 강조하면서도 그 주변의 사건들은 거의 생략하였다고 보여진다.
여기에 아무엇도 기록되지 않았다고 의식도 없었다고 주장할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 교회로서의 독특한 의식이 확립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신약성경의 장례 기사를 종합해 보면 사람이 죽으면 가족과 친족들이 애곡했고 나사로가 죽은 후에 예수도 울었다(요 11:35)
시체는 깨끗이 씻기고 방에 안치한 후 장례를 준비했다.
시체에 향료를 바르고 손발을 묶고 고운 베로 감았다.
가족과 주의의 인사들에 의해 장례가 진행되었고 시체는 상여로 운반되었으며 장례방법은 거의 매장이었고 부부는 곁에 묻었으며 장례는 보통 1일장이었다.

★ 초대 교회

장례는 원래 가족의 책임으로 진행되었으나 이웃 사람들이 무관심할 수 없는 일이므로 자신의 일과 같이 슬퍼하면서 적극적으로 장례일에 협력하였다.
장례는 그 가족만의 개인적인 아니라 공동 생활과 운명을 같이 하는 일로 여겨 실질적으로 공동체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상가가 있으면 장례가 끝날 때까지 온 마을이 협력하였다.

욥바의 다비다가 죽었을 때 친구들이 모두 울었고,시체를 씻어 다락방에 눕히고, 다비다가 생전에 만들었던 옷들을 내어 보이면서 고인을 추모한 것은 이웃들의 협력이 얼마나 열심이었던가를 엿볼 수 있다.

교회는 신앙 공동체이며 생활 공동체이므로 장례는 공동 생활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온 교회가 협력한 것을 볼 수 있다.
초대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장례를 맡아 집행하기도 하였다

그것은 장례식을 거행하지 않는다고 사후의 운명이 슬프게 되기 때문이 아니라 죽은 자에 대한 애도와 유족에 대한 위로와 앞으로 같이 죽음을 경험할 인간으로서 죽음 앞에 엄숙한 마음을 자각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초대 교회는 장례 의식과 매장에 기독교 신앙이 용납할 수 없는 죽은 자를 위한 제사와 미신적 습관이 뿌리 깊었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에 적합하게 지도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기독교에 적합한 장례를 위해서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훈련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이러한 지도 과정을 지나는 동안 교회의 장례 의식도 확립하게 되었다.
고대의 장례 의식을 전수하는 과정에서 이교적인 것을 배제하면서 어떤 것은 기독교 신앙의 의미를 부여하여 교회가 흡수하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예배는 장례 의식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예배는 예배드리는 자의 신앙의 구체적 표현으로 장례도 신앙을 기본으로 한 행위이므로 교회는 초기부터 장례 때 시편을 부르고 기도를 했다.

고대 교회의 장례는 준비와 장례 행렬과 매장 등 세 부분으로 진행하였다.

사람이 죽으면 사람들은 즉시 죽은 자의 눈을 쓸어내려 감기고 그 후에 시체를 깨끗이 씻고 기름을 바르고 흰 베로 시체를 싸고 관에 넣었다.
왕이나 감독이나 사제같은 이는 공식적인 복장을 입히기도 하였다.

죽은 자의 유해를 꽃으로 장식하는 것은 죽은 자에게 음식물을 드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고 초기에는 금지하다가 차차 일반화되었다.

초대 교회의 교인들이 부활신앙으로 죽음을 하나님 앞으로 가는 개선으로 믿고 생화로 장식하는 것을 면류관으로 여겼다.
세례를 받을 때 죄의 몸은 이미 죽고 예수의 신부로서 약속되었기 때문에 현실의 죽음은 그것을 위한 한 과정으로 알았다.

장례 준비 과정에서 애곡할 뿐만 아니라 부활 신앙으로 소망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고 시편을 노래하였다.
초기에는 자택에서 장례를 치르다가 후기에는 유해를 회당으로 옮겨 하루 밤을 보내면서 시편을 조용히 노래하였다.
이것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미하면서 유족을 위시하여 살아 남은 자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하기 위함이었다.

장례 행렬은 유해가 있던 장소에서 묘지까지 박해 받을 때를 제외하고는 낮에 행하였다.
밤에 장례 행렬이 진행된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교도와 사람의 눈을 피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범죄자의 장례 등이다.

장례 때 사람들은 흰 옷을 입고 낮에도 등불을 밝히고 촛대를 들었다. 이것은 부활의 희망을 상징한 것이다.
영구를 상여 위에 놓고 친척이나 친구들이 어깨에 메고 시편과 할렐루야를 노래하면서 행진했다. 장례 행렬의 행진은 옛날부터 있었으나 그 때는 곡하는 여자들이 앞장서서 큰 소리로 곡하고 다음에 상여가 따르고 그 뒤에 사람들이 자기 몸을 두드리며 곡하면서 애도의 뜻을 표했다.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이 이런 행위를 금하고 부활 신앙에 적합한 행위를 하도록 가르쳤다.
그 결과 절망적으로 슬퍼하는 행진에서 장엄한 희망이 가득한 행진으로 변하게 되었다.
검은 상복을 입게 된 것은 대략 8세기 경부터라도 생각된다.

매장은 유해와의 고별로부터 시작된다. 교인들이 유해 주위에 둘러서서 찬송과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성찬식도 거행했다.
성찬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 만날 수 있도록 허락된 유일의 기회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때 죽은 자에게도 떡과 포도주를 주는 일이 있었으나 곧 금지되었다.

이미 준비된 무덤에 천으로 싼 유해가 옮겨지고 기도와 찬미를 부르면서 흙을 덮었다. 매장할 때 고인을 추도하는 말을 한 것이 교부 시대의 문헌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매장 후 회식도 있었고, 3일째, 9일째 혹은 40일째, 친척과 친구들이 가정에 모여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죽음이 결코 산 자와 죽은 자의 간격을 막을 수 없다는 확신에서 때때로 모여 고인을 추모하면서 예배를 드렸다.

★ 종교개혁

종교개혁 시대의 장례의식은 세가지 면에서 진행되었다. 첫째는 죽은 자에 대한 교회의 보살핌이요, 둘째는 부활 신앙의 고백이요,
셋째는 구원에 참여할 육체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다.

종교개혁자 중에도 칼빈(Calvin John 1509-1564)은 1561년의 제네바 교회 규정에 매장에 관해 기술하였다.
거기에는 죽은 자는 일정한 질서 밑에서 소정의 장소에 장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다.

매장의 방법은 개인 자유에 맡기고 묘지까지 유해를 옮기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고 미신적 행위를 일체 금했다.
여기에는 신앙상의 규정보다는 시 당국의 정한 장례에 관한 규칙을 잘 지키도록 언급하고 있다.

장례가 교회의 일이라기 보다는 개인적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개혁교화가 장례를 교회의 일로 정한 것은 그 후 시대이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죽은 자를 매장하는 풍습을 신성 불가침한 것으로 인정한 것은 그것이 새로운 생명에 대한 보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무도 이런 풍습이 오류에서 생긴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신앙의 조상들은 매장의식을 엄수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같은 풍습이 이방인들 사이에도 존속되어 그들 앞에 놓인 부활의 형상으로 그들이 깨우쳐지기를 원하셨다.

매장의식은 유익하지 못했지만 만일 우리가 그 목적은 현명하게 통찰한다면 우리에게는 유익한 것이 된다.
아무도 믿지 않는 것을 모든 사람이 함께 고백한다는 것은 그 불신앙에 대한 중대한 반박이 되기 때문이다.

칼빈은 계속해서 이렇게 기술하였다.
매장 풍습은 미신에서 생긴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함이라(마 26:12-13)고하신 것은 장례는 모든 것을 썩히고 말살하는 무덤으로부터 우리의 눈을 들어 갱신의 광경을 그려보게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장례를 엄숙하게 지키는 것은 족장들도 시인하였거니와 그런 엄수는 그들이 장례를 믿음에 대한 가치있는 도움으로 생각했다는 증거가 된다.
만일 아브라함의 눈 앞에 이 세상보다 더 높은 가치와 종교가 보이지 않았다면 그는 그 아내의 무덤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세밀한 주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창 23:4, 19 기독교강요 3편 25장

루터(Luther Martin)는 장례를 교회의 일로 행하였으나 연옥 사상은 교황이 저지를 잘못이라고 배격하면서 부활 신앙을 강조하였다.

루터는 묘지에서 행하는 장례의식을 존중히 여겨 매장 전후에 예배는 드리면서 죽은 자를 위한 기도는 금했다.

개혁 시대의 장례 예식은 성례적인 의식보다는 말씀을 강조하는 예배였다.
교회의 역사적 발전과 그 교화가 처한 문화적 상황에 따라 어느 한 요소가 강조되거나 어떤 요소가 보태지기도 했다.
칼빈은 묘지에서 적절한 장례 설교를 인정했으나 장례의식보다는 신앙의 신비를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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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기도문] 입관예배 입관기도



입관예배 /입관기도 

입관예배는 고인의 시신을 씻은 후 옷을 입혀서 관에 모시고 예배를 드린다.

관에 뚜껑을 덮고 결관하여 관보를 씌우고 드리기도 하고 

관에 뚜껑을 덮지 않고 옆에 두고 드리기고 한다.

입관은 원칙적으로 임종 후 24시간이 지난 후에 한다 

건강한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다시 소생할까 해서 24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오래 앓던 분은 그럴 필요는 없다. 


예배시의 위치는, 관의 머리 부분에는 집례하실 목사님이 서고 발 부분에는 상주들이 선다.

그리고 조객이들도 보기 좋게 선다. 

입관예배를 마치고 나면 발인예배 시간과 장소를 자세히 알리고 폐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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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관예배 기도문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들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의 높으신 뜻을 다 이해하지도 못하고,

하나님 앞에 의롭지도 못한 죄인들이옵니다.

고인이 세상에 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도리도 다하지 못하였사옵

성도로서의 사랑도 그에게 다 베풀지 못하였음을 슬퍼하오며 하나님 앞에 참회하나이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저희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기 간절히 원하옵니다.

이제 고 ○○○ 성도님 (또는 기타 호칭)의 시신을 입관하여 장례를 준비하고자 하오니

성령께서 이자리에 임재하셔서 모든 슬퍼하는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고

믿음과 소망을 더욱 굳세게 하여 주시옵소서.

(고인이 신자인 경우 아래 부분을 첨부한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이 성도님(또는 기타 호칭)이 세상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원한 후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로 하여금 그의 귀한 신앙과 진실한 생활을 본받게 하시고

좋은 신앙의 후계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시간 성령께서 저희 어두운 마음을 밝히사

 하나님의 크신 경륜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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