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 장례 철차 (임종,입관, 출관,하관,마무리)

기독교 상.장례(喪.葬禮) 절차

기독교식 상례에서는 운명하기 전 임종에서부터 하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절차가 목사의 집례(執禮) 아래 이루어집니다. 임종과 더불어 찬송과 기도로 고인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는 뜻의 예배를 봅니다.
초종 중에는 매일 목사의 집례 아래 기도회를 갖고,유가족은 아침저녁으로 빈소에서 기도회를 가지며 찬송이 끊이지 않게 하며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가게 합니다.

일반 상례와 틀린 점은 곡을 하지 않으며, 음식을 차리지 않고, 절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조석으로 전을 올리거나 상식을 올리지 않으며, 염습시에 매장포로 묶지도 않습니다.

성도가 임종하면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불러 가셨다는 뜻으로 소천이라 합니다.
기독교 장례는 성도가 소천하시면 그 영혼은 이미 하나님 품으로 가셨으므로 남은 육신을 처리하는 일인데 미신적인 행위와 미신적은 일을 일체 삼가하고 모든 예식은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중심이 되며 드리는 이 예배는 이미 천국가신 고인을 위함이 아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유족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행사와 절차를 말합니다.
특히 기독교 장례예식시 근조화에 쓰는 글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고 쓰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반드시 소천이라고 써야 합니다.
사람의 호흡이 정지되는 것을 운명(殞命)이라 하고
일가 친척이 운명할 때까지 곁에서 지켜보는 것을 임종(臨終)이라 합니다.
인간의 죽음은 신학적 이론으로 개인적 종말론에 해당됩니다.
개인적 종말론은 인간 개인의 육체적 사망과 사후의 상태를 논하는 것입니다.
물론 죽음이 죄로 말미암아 있게 되었지만, 신자에게 죽음은 자신을 깊이 반성하게 되고
또 괴로운 세상을 떠나 다시 죽음도 없고 저주도 없는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영생을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캘빈은 만약 하늘나라가 우리의 조국이라고 한다면 이 땅이야말로 망명(亡命)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해방이요, 최고의 기쁨이요 복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잘 알아듣게 타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에 직면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주권과 죄의 고백,그리고 예수그리수도를 믿음으로 용서받음을 확신하게 하며 부활 신앙과 내세관을 분명히 보여주어 죽음을 두려움없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교역자가 죽음에 임박한 교우를 돌보려 한다면 의식이 분명할 때 심방하여 신앙의 확신을 갖게 하고, 혹 기력이 쇠하여 언어구사가 곤란할지라도 그 순간은 많은 말이 필요없고 한마디의 상징적인 언어나 몸동작으로라도 신앙의 확신을 그의 의식 속에 불어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 소망에 관한 성경 말씀을 찾아 들려주고, 조용하고 은혜로운 찬송,특히 본인이 즐겨 불렀던 찬송으로 마음의 평안과 소망을 주어야 합니다. 또 임종 직후에는 죽은 사람보다는 살아 있는 유족들과 친척들을 위해 위로의 말씀과 찬송으로 슬픔을 소망으로 이길 수 있도록 위로와 격려의 말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임종이 가까웠을 때에 목회자는 죽음의 공포와 육체적 고통 중에서도 약해지지 않고, 구원의 확신을 갖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도록 돕는 것을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한 생명의 마지막을 돌보는 것은 한 생명의 영원한 승리로 인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요 순간입니다. 돌봄의 실수로 본인과 가족에게 슬픔을 주지 않도록 어떤 일보다 먼저 시행해야 합니다.

환자가 숨을 거두어 운명하게 되면 시신을 정성껏 처리하고,시상 위에 안치하여 흰 천으로 덮어서 서늘한 곳에 모신 후 병풍으로 가리고, 그 앞에 깨끗한 탁자를 놓고 위에 고인의 영정과 유품 등을 놓습니다.

◐ 임종 식순

★ 개식사

♣ 주례자
우리는 지금 주께서 이 땅 위에 보내셨다가 때가 되어서 불러가신 (직분 이름)의 임종식을 거행하겠습니다.
♠ 신앙고백 = 다같이
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겠습니다.
♠ 찬송 <541장> 다같이
♠ 기도 - 생략할 수 있음 - 맡은이
♠ 성경봉독 -눅 16:19-31, 약 4:13-17 - 주례자
♠ 위로의 말씀 -아브라함의 품-주례자
♠ 찬송 <532장 539장> 다같이
♠ 축도 -주기도- 목 사

2)입관식(入棺式)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을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여 한몸이 된 유지체들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자기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하며 존경하고 도와주며 고통을 받는 형제와 함께 고통을 나누며, 영광과 기쁨도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한 인간의 죽음도 충격적이지만 그 모습(흔적)을 다시는 볼 수 없게 입관하는 일은 더욱 슬픈 일입니다.
이와 같이 감정을 억제하기 어려운 일들을 당했을 때에 교회와 목회자는 모든정성과 수고를 다해서 상가의 분위기와 신앙의 상태가 달라지도록 최선을 다해 상가를 보살펴 주며, 슬픈 마음을 안정시켜 줍니다.
입관 준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의와 관이다. 이는 교회의 경조부(상례) 내 간사(염사)가 처리해 줍니다.
교회가 적어서 상례부가 없다면 기독교인이 경영하는 장의사에 부탁하면 입관에 관한 모든 일을 처리해 줍니다.
입관이란 염습한 시신을 관 속에 넣고 뚜껑을 덮어 함봉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보통 운명한 지 24시간이 경과한 후에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입관식을 올릴 때는 다음 세가지와 같은 입관 상태에서 해야 합니다.
①시신에 수의를 입혀 입관한 다음 관 뚜껑을 덮어 나무 못을 박고 결관하여 십자가 있는 관보를 씌우고 합니다.
②관 뚜껑은 덮으나 나무 못은 박지 않고 결관하지 않습니다.(부활을 위하여)
③관 뚜껑을 덮지 않고 열어놓고 예배를 드린 후 나무 못을 박고 결관하여 십자가 있는 관보를 씌웁니다.
위의 세 가지 중에서 첫 번째가 가장 좋으리라 생각되지만 상주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도록 합니다.

★ 입관식 식순

♠ 개식사 - 주례자
지금부터 고 000씨의 입관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조문객 여러분의 조의와 위문에 감사하면서 엄숙한 마음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식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 신앙고백-사도신경-다같이
①다같이 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겠습니다.
②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겠습니다.

♠ 찬송 <290장> - 다같이
♠ 기도 - 맡은이
♠ 성경봉독-베드로전서 2:11 ∼ 12- 주례자
♠ 고인의 약력 맡은이
고인의 약력을 알고 예식에 참여하여 말씀을 듣게 되면 도움이 될 줄로 믿기 때문에 위로의 말씀 전에 할 것입니다.
♠ 조가(弔歌) - 맡은이
♠ 위로의 말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주례자
♣ 기도 주례자
♠ 조사 맡은이
♠ 찬송 <291장> 다같이
♣ 축도 - 목 사

입관식이 끝나면 병풍을 세우고 관을 놓고 관 앞에 작은 상을 놓아 사진과 유품을 올려놓거나, 관이 보이지 않게 병풍 뒤에 둘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분향은 하지 않고 헌화(獻花)를 합니다.
그러므로 일반 조문객들을 위해 헌화할 꽃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기독교 집안에서도 일반 조문객을 위해 분향 준비를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교가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며, 서로 협조하면서 더불어 살아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3) 출관식(出棺式)

출관식은 조문온 조문객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인정하게 하고, 인간의 무능함과 유한성을 깨닫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모든 예식이 그러하겠지만 출관식은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고인의 모든 흔적(모습)이 집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이기 때문에 예식에 있어서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로는 모든 순서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회가 되어야 하고, 둘째로는 유족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어야 하며, 셋째는 이 의식에 참석하신 분들게 신앙의 확신과 선교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예식이 진행되어져야 합니다. 출관식 식순

♣ 개식사 - 주례자
고 000씨를 안장하기 위하여 수의를 입혀 입관하였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는 분명한 사실을 깨달으면서 출관식을 거행하겠습니다.

♣ 신앙고백-사도신경-다같이
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겠습니다.
♣ 찬송 <534장> - 다같이
♠ 기도 -생략할수 있음-맡은이
♠ 성경봉독 -고후 5:1-9-맡은이
♠ 위로의 말씀 -영원한 집- 맡은이
♣ 기도 - 설교자
♠ 찬송 <539장> - 다같이
♣ 축도 - 주기도-목 사

① 장례일 : 재래의 전통상례에 있어서 장례일은 짝수 일을 피하고, 홀수 일은 3, 5, 7 일로 정했으나,근래에는 대개 3일장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이러한 일수에는 얽메일 필요가 없으며 주일이 겹칠 때에는 2일 혹은 4일장으로 해도 무방합니다.

② 장지 : 교회 묘지, 공원 묘지, 선산을 이용해도 무방하며, 화장을 해서 성서에 위배되는 일은 아닙니다.
합장할 경우에는 앞에서 보아 좌측에 남자, 우측에 여자로 합니다.
토질은 물이 나지 않고 방향은 어느 곳이나 상관 없으나 남쪽을 향한 곳이면 더 좋고, 이북에 고향을 둔 사람은 북쪽을 향하여 바라보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으므로 방향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합니다.
또 우리 나라 사람들은 장지의 위치를 높은 곳을 선호하는 편이나 중국 사람들은 오히려 낮은 곳을 선호합니다.
왜냐하면 뒷배경이 든든하니까 아래 낮은 곳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③ 약력 소개, 조사, 조가 : 고인의 선행이 조객들에게 교훈이 되는 것이나, 고인이 즐겨불렀던 찬송을 다시 부름으로 고인을 생각할 수 있다. 이 모든 순서를 가진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유족들에게는 위로가 되며, 주위 사람들에게는 전도와 신앙적 결단의 기회가 되도록 집례자가 유도해 의식을 진행시킨다.

④ 순서 ; 운명하는 장소는 사고로 인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가 집이나 병원이지만, 출관하는 장소는 다를 수가 있습니다.
자택이나 예배당, 병원, 구민회관, 출관하는 장소는 다를 수가 있습니다.
유족들은 관을 중심으로 앞 또는 좌우로 앉거나 서게 하고 집례자는 관 앞 적당한 장소를 선택하는데 모인 사람들이 잘 보이는 곳에 서서 예식을 집행해야 합니다.
고인의 호칭은 고 000직분명(목사, 장로, 권사, 집사) 을 부르고 직분이 없는 자에게는 고 000성도 로 통일하는 것이 좋습니다.
믿지 않고 돌아간 후 가족이 원할 때에는 연령에 따라 선생님, 어른, 여사, 할아버지, 할머니 등 고인에 따라서 적절한 호칭을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 의식 순서는 집례자 또는 때에 따라 다를 수가 있지만 대개는 개식사, 기원(신앙고백, 예배), 찬송, 말씀, 축도 후 장지와 그 외의 모든 것을 알리는 광고를 한 후 장지로 떠납니다.
조가나 조사가 있을 때에는 조가는 말씀 전에, 조사는 말씀 후에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의식의 분위기를 엄숙하게 할 수 있으며, 조사 전에 약력을 소개하면 조사를 듣는 사람들이 고인을 기리는 데 좋을 것입니다.

<기도문>

♥ 예1)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제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사셨던 우리 믿음의 형제였던 고 000씨를 000에 안장하기 위하여 출관식을 거행하고자 합니다.
성령께서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하시며 소망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기로 다짐하는 기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예2)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제 고 000씨를 000에 안장하기 위하여 출관식을 거행하고자 합니다.
성령께서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하시며 이 엄청난 사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기회가 되게 하시며 내세에 대한 확실한 신앙으로 소망 가운데 살 수 있도록 다짐하는 기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예3) 고인은 믿으나 믿지 않는 유족을 위하여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과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제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었던 고 000씨를 000에 안장
하기 위하여 출을 거행하고자 합니다.
성령께서 고인이 사랑했던 자녀들(유족들)에게 아버지(어머니)의 신앙 따라 살기로 다짐하는 기회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뿐만 아니라 천국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다짐하는 기회가 되게 하시며 선친의 교훈을 따라 살면서 실천하도록 다짐하는 기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⑤운구 행렬 : 출관식이 끝나면 장지에 가지 못하는 조객들은 상주와 인사를 나누고 운구가 떠날 때까지 이를 지켜봅니다.
운구 행렬의 순서는 고인의 영정, 집례자, 영구, 이어서 상제들과 조객들이 뒤따르게 된다. 영구는 머리에서부터 나오도록 모십니다.
이때 성도들은 대문 밖에서 찬송을 계속 부르며 뒤에 따르도록 한다. 골목이 좁을 때는 영구차가 있는 곳에서 차가 떠날 때까지 부릅니다.
영구차가 있는 곳에 영구가 도착하면 고인의 사진을 든 사람을 관이 들어갈 바로 앞에 서게 하고 관을 영구차에 실으면 사진은 영구차 맨 앞 좌석에 앉게 하며 유족들은 관을 중심으로 앉아서 떠납니다. 이때 집례자도 함께 타야 합니다.

⑥선두차 : 고급 승용차에 검은 띠를 두르고 헤드라이트를 켜고 영구차 앞에 간다. 이것을 선두차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이 선두차를 부나 권위의 상징으로 사용했으나 오늘날에는 꼭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영구차는 누구나 다 알라볼 수 있기 때문에 복잡한 거리를 지나도 영구차 운전기사에게 모든 것을 맡겨두면 편리하게 빨리 장지에 도착할 수 있으므로 굳이 선두차를 두지 않아도 됩니다.


4) 하관식(下棺式)

하관식은 죽은 사람을 흙으로 돌려보내고 산 사람끼리 돌아와야 하는 슬픔의 절정을 이루는 순간이기 때문에 격려와 용기를 주어 새로운 결심과 각오를 가지고 내려오도록 해야 합니다.
많은 철학자들이 영혼의 불멸을 믿고 있었으나 육신의 부활에 대하여 믿는 자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종말이 있듯이, 그리스도의 제림과 세상의 종말과 심판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무덤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주의 재림 때 성도는 부활의 소망이 있다는 사실과 고인의 영광과 평안의 세계로 옮겨갔다는 말씀을 통해 확신하게 하고 위로 받게 하며 안정시켜 주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이렇게 세상 종말이 이루어질 최후의 영광이 있음을 바라보면서 먼저간 사람을 만날 기대 속에 신앙 생활에 힘쓰도록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고인이 믿지 않고 돌아간 경우라면 우리의 가는 길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내일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해야 하며, 고인의 영혼이나 구원을 위한 기도나 말씀은 절대로 하지 않아야 된다. 왜냐하면 생사는 우리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으며, 구원의 역사도 우리의 권한 밖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 취토
하관식이 끝나면 취토(取土)를 하게 되는데, 취토는 열어놓았던 횡대를 다시 덮고 관 위에 흙을 덮는 것을 말합니다.
흙이 관 위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순간이 가장 슬프기 때문에 식순에 넣으면 취토를 할 때 유족들이 울음을 터뜨리기 때문에 식을 마치고 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취토 전에 꽃이 있으면 먼저 헌화한 후 할 수도 있으며, 그 순서는 주례자가 먼저한 후에 유족, 친척, 친지, 조문객순으로 합니다.

취토할 때의 기도문은 다음과 같습나다. 이제 우리는 고 000씨의 육신을 땅에 안장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늘에 속한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할 것을 믿으면서 소망 가운데 살기로 다짐하겠습니다.

♣ 하관식 식순 개식사 - 주례자

지금부터 고 000씨의 하관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 아버지시며 육신은 훍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려 보내는 순간으로 이제 그의 육신의 모습을 다시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신앙으로 위로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신앙고백 -사도신경-다같이
① 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겠습니다.
② 다같이 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겠습니다.

♠ 찬송 <188장>- 다같이
♠ 성경봉독 -고전 15:35-49-주례자
♠ 위로의 말씀-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주례자
♠ 기도 주례자
♠ 찬송 <293장> 다같이
♠ 축도 목 사 (나) 성분

하관식이 끝나면 일하는 분들이 작업을 시작할 때 계속 찬송을 부르며 그들을 격려한다. 전통 장례식에서는 봉분이 완성되면 성분제를 지내게 됩니다.
이때 종교가 같지 않은 사람은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하관 후 바로 떠나지 말고 흙이 어느 정도 채워질 때까지 지켜보는 것이 유가족에 대한 예의입니다. (다) 묘비

묘비는 묘 앞에 세워 누구의 묘인지를 나타내는 표시이므로 아담하고 간결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 표시 방법에 여러 종류가 있지만 앞에서 돌아가신 분의 직분과 이름, 그리고 부활에 관한 성구나 평소 고인이 은혜받은 성구를 기록하고, 뒤에 자손의 이름, 옆에는 생년월일과 죽은 연월일을 기록하게 됩니다.
부부 합장일 경우 묘의 전면에서 보아 왼쪽이 남편 오른쪽이 아내 의 생년월일과 돌아가신 연월일을 기록합니다. (라)


마무리

한 사람의 장례(매장) 절차는 임종에서부터 하관까지로 마치게 됩니다.
유가족 대표나 집례자가 모든 순서를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위로 가운데 마치게 하신 하나님께 그저 감사드리며,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협력해 주신 조문객들께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기도해 주시라 는 부탁의 말로 모든 의식을 마칩니다.
장지에 점심 식사가 준비되어 있으면 식사를 하면서 위로를 하기도 하며, 상주들은 조문객들을 찾아다니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합니다.
의식은 마쳤지만 유족들은 묘비, 묘테, 잔디, 그 외의 일이 남아 있지만, 첫 성묘 때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며 당일에는 모든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하산합니다.

★ 구약성서와 장례

구약성경에서는 장례식에 대해 의외로 언급을 피하고 있다.
초상이 나면 애곡으로써 장례는 시작된다.
애곡은 슬픔의 표현으로 죽은 자에 대한 예의이다.
그러므로 애곡은 친족의 의무이며 문상객들도 애곡한다.
애곡은 초상 때부터 시작해서 묘지에서 그리고 매장이 끝난 뒤에도 보통 7일간계속한다(창 50:10 이하, 삼상 31:31)
예외로 모세와 아론을 위해서는 30일간(민 20:29, 신 34:8)
야곱을 위해서는 70일 간(창 50:3) 애곡했다.

애가를 지어 부르기도 한다(삼하 1:19-27, 3:33-34, 겔 19:1-4) 이것은 오늘날 조사와 같다. 이는 주로 고인을 추모하는 뜻에서 고인의 선행과 용감성 등 여러 가지 업적 등을 이야기한다.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을 때 다윗이 슬피 부른 노래가 있다(삼하 1:19-27)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관(棺)을 사용하지 않는다. 관에 관한 유일한 언급은 애굽에서의 요셉에 관한 이야기 뿐이다(창 50:6)
시체는 상(床)에 눕히고 천으로 싼다.
야곱과 요셉, 아사왕의 시체에 향(香)을 넣었지만(창 50:2, 26, 대하 16:14)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에서는 행하지 않았다.

장례 행진을 위해 시체는 상여로 운반했다(삼하 3:31 이하, 대하 16:14) 여러 사람이 메고 다녔는데 우리나라의 옛날 상여와 흡사하다고 생각된다.

장례는 보통 1일장으로 지냈다. 하루 해를 넘기지 않으려고 애쓴 이유는 위생 상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하려고 했고, 또 다른 이유는 부정(不淨)을 면하기 위해서였다.

무덤은 대개 언덕에 구멍을 파서 만들었거나 땅을 파서 매장하였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장례하기 위해 헷 족족 에브론에게 은 4백 세겔을 주고 밭과 막벨라 굴을 사서 가족 묘지를 삼았다(창 23:16-17) 묘지는 고인이 생전 거주하던 곳에서 가까운 곳이나 연고지에 만들었다.
막벨라 굴에는 사라를 위시하여 아브라함, 이삭, 리브가, 야곱 등 가족들을 매장하였다.

다윗은 죽어 다윗성에 장사되었다(왕상 2:10) 그곳이 다윗의 묘지가 되어 역대 왕들이 묻혔다.
그러나 므낫세 왕과 여호람 왕 같이 인기가 없고 불경건한 왕들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지 않았다(왕하 21:18, 대하 21:20) 구약시대 장례를 중요시한 것을 전도서에서 엿볼 수 있다.
자식을 백 명이나 두고 아무리 오래 산다 할지라도 인생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고 죽어서도 평안히 묻히지 못할 신세라면 이것은 아예 낙태된 아이보다 못하지 않겠는가(전 6:3) 라고 했다.

구약성경은 생(生)과 사(死) 그리고 장례를 똑같이 하나의 중요한 일로 여겼다. 그러므로 독부 이세벨의 시체를 묻어주는 사람이 없어 땅에 버려져 개들이 뜯어 먹을 것이라고 저주하였고(왕하 9:10) 하나님의 말씀을 위반한 예언자들의 시체는 조상들의 무덤에 묻히지 못하리라(왕상 13:20-22) 하였고 불경건한 여로보암 왕(왕상 14:11)과그의 뒤를 계승한 바아사 왕(왕상 16:4)도 같은 선고를 받았다.
구약에서는 해마다 희생제물을 드리기 위해 고향을 방문했고(삼상 1:21, 9:12-13, 20:6, 28-30) 이 때 주로 높은 곳 (왕상 3:4, 11:7, 호 4:13, 10:8, 암 7:9)에서 제사를 드렸으며(창 35:20, 삼상 9:12-13, 욥 27:15, 사 53:9) 이곳에서 추도예식이 있었다고 드 보(De Vaux)는 주장한다. 특히 족장들이나 위대한 조상들의 무덤은 그 후손들에 의해서 일찍부터 일종의 성역화(聖域化)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중세교회

중세 교회의 장례 양식은 많이 변하지 않은 것 같으나 내용적으로는 연옥설의 영향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묘지에서만 아니라 제단에서 행하는 의식을 차차 존중히 여기면서 죽은자를 위한 진혼 미사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초기의 평화와 승리에 근거한 장례의식이 차차 행해지지 않고 슬픔이 가득한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을 실감하는 형식으로 변하게 되었다.

유족과 지도자들도 죽은 자가 직면한 연옥에서의 고통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검은 상복을 입게 되었다.

이와 같은 연옥 사상은 옛날부터 있었으나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590-604)에 이르러 본질적인 교리가 되었다.

★ 신약성서

신약성서의 몇가지 장례기사를 통해 신약시대의 장례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나인 성 과부의 외아들의 장례 행렬 기사에서 어느 정도 그 시대 장례를 짐작할 수 있다.
동네 사람들이 큰 때를 지어 상여를 따라 온 것은 이웃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으로 여기는 공동체 의식이었고, 장례 행렬이 있는 것은 매장하기 위한 행렬이다(눅 7:11-17)
야이로의 딸이 죽은 후에 사람들이 피리를 불며 곡하며 떠드는 무리가 있었다(막 6:37-39)는 것은 초상이 나면 애곡하는 것은 슬픔의 표현이며 죽은 자에 대한 예의이다.
그러므로 가족은 물론 문상객들도 애곡하였다.
애곡은 흔히 직업적인 곡꾼들을 고용하기도 했는데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반드시 애곡하는 여인과 둘 이상의 악사가 주로 피리를 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때 흔히 악기가 동원되기도 했는데 특히 피리를 사용했다고 한다(대하 35:25, 렘 48:36, 마 9:23)
나사로의 무덤은 동굴로 되어 있었고 입구는 돌로 막혀 있었다(요 11:38)
나사로의 시체의 손발은 베로 묶여 있었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겨 있었다(요 11:44)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 수의를 입힌 것과 같다. 우리 나라에서는 시체를 옷과 이불로 싸는 것을 소렴(小斂)이라 하고, 소렴을 치른 다음 날에 다시 시체를 옷을 거듭하고 이불로싸서 베로 묶는 것을 대렴(大斂)이라고 한다(큰 사전에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둔 예수의 시체를 유대인들의 장례 풍속대로 향료를 바르고 고운 베로 감았다.
그리고 아직 장사지낸 일이 없는 새 무덤에 예수의 시체를 모시고 큰 돌로 무덤 입구를 막았다(마 27:60, 요 19:38-42)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엄벌을 받아 그 자리에 고꾸라져 숨지니 젊은이들이 들어다 그 시체를 싸가지고 내어다 묻었다.

그 후 삽비라도 죽었으므로 떠메고 나가 그 남편 곁에 묻었으니(행 5:5-6, 10) 부부를 합장한 것이다. 욥바의 여제가 다비다가 죽은 사람들이 그 시체를 깨끗이 씻어서 이층 방에 눕혀 놓았다.
친구들이 몰려와서 그녀가 살았을 때에 만들어 두었던 속옷과 겉옷을 보여 주면서 애도했다(행 9:37-39)
신약성경에서 장례 기사를 보면 독특한 매장 형식이나 장례 의식을 엿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어떤 의식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신약성경은 복음과 그 전파 상황은 열심히 강조하면서도 그 주변의 사건들은 거의 생략하였다고 보여진다.
여기에 아무엇도 기록되지 않았다고 의식도 없었다고 주장할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 교회로서의 독특한 의식이 확립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신약성경의 장례 기사를 종합해 보면 사람이 죽으면 가족과 친족들이 애곡했고 나사로가 죽은 후에 예수도 울었다(요 11:35)
시체는 깨끗이 씻기고 방에 안치한 후 장례를 준비했다.
시체에 향료를 바르고 손발을 묶고 고운 베로 감았다.
가족과 주의의 인사들에 의해 장례가 진행되었고 시체는 상여로 운반되었으며 장례방법은 거의 매장이었고 부부는 곁에 묻었으며 장례는 보통 1일장이었다.

★ 초대 교회

장례는 원래 가족의 책임으로 진행되었으나 이웃 사람들이 무관심할 수 없는 일이므로 자신의 일과 같이 슬퍼하면서 적극적으로 장례일에 협력하였다.
장례는 그 가족만의 개인적인 아니라 공동 생활과 운명을 같이 하는 일로 여겨 실질적으로 공동체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상가가 있으면 장례가 끝날 때까지 온 마을이 협력하였다.

욥바의 다비다가 죽었을 때 친구들이 모두 울었고,시체를 씻어 다락방에 눕히고, 다비다가 생전에 만들었던 옷들을 내어 보이면서 고인을 추모한 것은 이웃들의 협력이 얼마나 열심이었던가를 엿볼 수 있다.

교회는 신앙 공동체이며 생활 공동체이므로 장례는 공동 생활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온 교회가 협력한 것을 볼 수 있다.
초대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장례를 맡아 집행하기도 하였다

그것은 장례식을 거행하지 않는다고 사후의 운명이 슬프게 되기 때문이 아니라 죽은 자에 대한 애도와 유족에 대한 위로와 앞으로 같이 죽음을 경험할 인간으로서 죽음 앞에 엄숙한 마음을 자각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초대 교회는 장례 의식과 매장에 기독교 신앙이 용납할 수 없는 죽은 자를 위한 제사와 미신적 습관이 뿌리 깊었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에 적합하게 지도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기독교에 적합한 장례를 위해서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훈련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이러한 지도 과정을 지나는 동안 교회의 장례 의식도 확립하게 되었다.
고대의 장례 의식을 전수하는 과정에서 이교적인 것을 배제하면서 어떤 것은 기독교 신앙의 의미를 부여하여 교회가 흡수하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예배는 장례 의식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예배는 예배드리는 자의 신앙의 구체적 표현으로 장례도 신앙을 기본으로 한 행위이므로 교회는 초기부터 장례 때 시편을 부르고 기도를 했다.

고대 교회의 장례는 준비와 장례 행렬과 매장 등 세 부분으로 진행하였다.

사람이 죽으면 사람들은 즉시 죽은 자의 눈을 쓸어내려 감기고 그 후에 시체를 깨끗이 씻고 기름을 바르고 흰 베로 시체를 싸고 관에 넣었다.
왕이나 감독이나 사제같은 이는 공식적인 복장을 입히기도 하였다.

죽은 자의 유해를 꽃으로 장식하는 것은 죽은 자에게 음식물을 드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고 초기에는 금지하다가 차차 일반화되었다.

초대 교회의 교인들이 부활신앙으로 죽음을 하나님 앞으로 가는 개선으로 믿고 생화로 장식하는 것을 면류관으로 여겼다.
세례를 받을 때 죄의 몸은 이미 죽고 예수의 신부로서 약속되었기 때문에 현실의 죽음은 그것을 위한 한 과정으로 알았다.

장례 준비 과정에서 애곡할 뿐만 아니라 부활 신앙으로 소망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고 시편을 노래하였다.
초기에는 자택에서 장례를 치르다가 후기에는 유해를 회당으로 옮겨 하루 밤을 보내면서 시편을 조용히 노래하였다.
이것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미하면서 유족을 위시하여 살아 남은 자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하기 위함이었다.

장례 행렬은 유해가 있던 장소에서 묘지까지 박해 받을 때를 제외하고는 낮에 행하였다.
밤에 장례 행렬이 진행된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교도와 사람의 눈을 피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범죄자의 장례 등이다.

장례 때 사람들은 흰 옷을 입고 낮에도 등불을 밝히고 촛대를 들었다. 이것은 부활의 희망을 상징한 것이다.
영구를 상여 위에 놓고 친척이나 친구들이 어깨에 메고 시편과 할렐루야를 노래하면서 행진했다. 장례 행렬의 행진은 옛날부터 있었으나 그 때는 곡하는 여자들이 앞장서서 큰 소리로 곡하고 다음에 상여가 따르고 그 뒤에 사람들이 자기 몸을 두드리며 곡하면서 애도의 뜻을 표했다.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이 이런 행위를 금하고 부활 신앙에 적합한 행위를 하도록 가르쳤다.
그 결과 절망적으로 슬퍼하는 행진에서 장엄한 희망이 가득한 행진으로 변하게 되었다.
검은 상복을 입게 된 것은 대략 8세기 경부터라도 생각된다.

매장은 유해와의 고별로부터 시작된다. 교인들이 유해 주위에 둘러서서 찬송과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성찬식도 거행했다.
성찬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 만날 수 있도록 허락된 유일의 기회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때 죽은 자에게도 떡과 포도주를 주는 일이 있었으나 곧 금지되었다.

이미 준비된 무덤에 천으로 싼 유해가 옮겨지고 기도와 찬미를 부르면서 흙을 덮었다. 매장할 때 고인을 추도하는 말을 한 것이 교부 시대의 문헌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매장 후 회식도 있었고, 3일째, 9일째 혹은 40일째, 친척과 친구들이 가정에 모여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죽음이 결코 산 자와 죽은 자의 간격을 막을 수 없다는 확신에서 때때로 모여 고인을 추모하면서 예배를 드렸다.

★ 종교개혁

종교개혁 시대의 장례의식은 세가지 면에서 진행되었다. 첫째는 죽은 자에 대한 교회의 보살핌이요, 둘째는 부활 신앙의 고백이요,
셋째는 구원에 참여할 육체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다.

종교개혁자 중에도 칼빈(Calvin John 1509-1564)은 1561년의 제네바 교회 규정에 매장에 관해 기술하였다.
거기에는 죽은 자는 일정한 질서 밑에서 소정의 장소에 장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다.

매장의 방법은 개인 자유에 맡기고 묘지까지 유해를 옮기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고 미신적 행위를 일체 금했다.
여기에는 신앙상의 규정보다는 시 당국의 정한 장례에 관한 규칙을 잘 지키도록 언급하고 있다.

장례가 교회의 일이라기 보다는 개인적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개혁교화가 장례를 교회의 일로 정한 것은 그 후 시대이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죽은 자를 매장하는 풍습을 신성 불가침한 것으로 인정한 것은 그것이 새로운 생명에 대한 보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무도 이런 풍습이 오류에서 생긴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신앙의 조상들은 매장의식을 엄수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같은 풍습이 이방인들 사이에도 존속되어 그들 앞에 놓인 부활의 형상으로 그들이 깨우쳐지기를 원하셨다.

매장의식은 유익하지 못했지만 만일 우리가 그 목적은 현명하게 통찰한다면 우리에게는 유익한 것이 된다.
아무도 믿지 않는 것을 모든 사람이 함께 고백한다는 것은 그 불신앙에 대한 중대한 반박이 되기 때문이다.

칼빈은 계속해서 이렇게 기술하였다.
매장 풍습은 미신에서 생긴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함이라(마 26:12-13)고하신 것은 장례는 모든 것을 썩히고 말살하는 무덤으로부터 우리의 눈을 들어 갱신의 광경을 그려보게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장례를 엄숙하게 지키는 것은 족장들도 시인하였거니와 그런 엄수는 그들이 장례를 믿음에 대한 가치있는 도움으로 생각했다는 증거가 된다.
만일 아브라함의 눈 앞에 이 세상보다 더 높은 가치와 종교가 보이지 않았다면 그는 그 아내의 무덤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세밀한 주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창 23:4, 19 기독교강요 3편 25장

루터(Luther Martin)는 장례를 교회의 일로 행하였으나 연옥 사상은 교황이 저지를 잘못이라고 배격하면서 부활 신앙을 강조하였다.

루터는 묘지에서 행하는 장례의식을 존중히 여겨 매장 전후에 예배는 드리면서 죽은 자를 위한 기도는 금했다.

개혁 시대의 장례 예식은 성례적인 의식보다는 말씀을 강조하는 예배였다.
교회의 역사적 발전과 그 교화가 처한 문화적 상황에 따라 어느 한 요소가 강조되거나 어떤 요소가 보태지기도 했다.
칼빈은 묘지에서 적절한 장례 설교를 인정했으나 장례의식보다는 신앙의 신비를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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