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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둘째주일 수요예배설교  (September,Wednesday Worship Sermon)

제목/누구에게나 배울 점은 있습니다. 

행8:9-25   

 

 

●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스데반 집사의 순교와 교회의 큰 핍박, 그리고 사울이 교회를 잔멸하는 일들로 인해서 교회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래서 그 수많았던 성도들이 사도를 빼고는 모두 도망쳐 버립니다. 이러한 교회의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되어서 성도들을 담대하게 하고, 복음의 가치와 예배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하고, 무엇보다 사도행전 1:8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됩니다. 그 중에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성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그 성에 큰 기쁨이 일어나게됩니다.


그렇게 사마리아 성에 복음이 전파되면서 구체적인 한 사건이 등장하는데 바로 마술사 시몬의 이야기입니다. 보통 우리가 마술사 시몬하면 부정적인 생각을 먼저 떠올립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의 마술사 시몬은 돈으로 성령을 사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어의 “성직 매매자”란 단어가 시몬(simon)이란 이름에 "iac"를 붙여서 "simoniac"이라고 합니다.

이런 일 때문에 본문에 등장하는 마술사 시몬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을 통해서도 우리가 배워야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은 시몬이란 사람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먼저 그의 장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 첫 번째 그의 장점은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시몬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9-11절 “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 오래 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저희가 청종하더니.”
 
마술사라는 것 때문에 시몬에 대해서 선입견을 갖습니다. 성경 속에서 마술사 하면 오늘날 무당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는 종교적 사회입니다. 모든 것들을 종교적으로 풀려고 했던 사회입니다. 그런 사회에서 종교인이란 당시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입니다. 때론 법을 집행하기도 하고, 때론 병을 고치기도 합니다.
 
그런 사회 속에서 마술사 시몬의 위치가 어느 정도였겠습니까? 9절에서는 “사마리아 백성들을 놀라게 한다.”고 기록합니다. 그래서 10절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시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시몬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10절c “이 사람이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자이다.” 이런 일들이 언제부터 있었습니까? 11절 “오랜 전부터 있었습니다.”(“오래 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저희가 청종하더니”)

한마디로 시몬은 사마리아의 영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마술사 시몬의 말을 하나님 말씀처럼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빌립집사님이 사마리아에 와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가 예수를 믿게 됩니다. 12절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그런데 13절을 보니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를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닙니다. 빌립을 따라 다니면서 빌립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랍니다.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 마술사 시몬은 비록 자신이 행하는 것이 거짓인줄은 알았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명예도 얻고, 권력도 얻고, 돈도 얻었습니다. 또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빌립이 사마리아에 와서 복음을 전하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떠나서 빌립에게로 가는 것을 보고 자신의 힘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방해를 놓고, 겁을 주어 빌립을 사마리아를 떠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거짓을 감추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겸손하게 진리를 받아 들였습니다. 빌립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전하는 것은 거짓이고, 빌립이 전하는 것이 참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믿고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닙니다.

▶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이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겸손한 모습, 열린 마음으로 가지고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하고 나름대로 교회에서 위치가 올라가면 이런 마음들을 잃어버립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한경직 목사님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기도원에서 세미나가 있었는데, 강사가 젊은 목사님이셨습니다. 강의 시간이 되어서 강의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한경직목사님이 맨 앞줄에 앉아계셨습니다. 그런데 강의 시간에 안 늦으시려고 일찍 나오시는 바람에 양말을 신지 못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젊은 목사님이 한경직목사님께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목사님 제가 젊은 목사라서 무시 하시는 겁니까? 왜? 양말도 안 신고 오셨습니까?” 아마 다른 목사님 같으셨으면 그 정도 위치에 계신 분이라면 얼굴을 붉히고 일어나서 강의실을 나갔을 겁니다. 그런데 한경직 목사님이 일어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강의에 안 늦으려고 빨리 오는 바람에 양말 신는 것을 잊었습니다. 지금 가서 신고 오겠습니다.” 그리고는 나가셔서 양말을 신고 다시 돌아와서 맨 앞자리에서 강의를 들으셨다고 합니다.

아마도 한경직 목사님의 이러한 겸손의 모습 때문에 한국 교회뿐 만 아니라 그분을 아는 모든 분들께 존경을 받으시는 것 같습니다.
 
● 둘째로 시몬의 장점은 실망스런 상황을 잘 극복한다는 겁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복음을 받아 들였다는 소식이예루살렘 교회에 전해지자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옵니다. 그리고 세례 받은 자들에게 안수를 합니다. 그때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17.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이런 장면을 보고 시몬이 그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게 됩니다. 18-19절 “19.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찌어다.”

시몬은 성령을 돈을 주고 사려고 합니다. 이런 시몬의 모습에 베드로가 화를 내면서 그를 책망합니다. 20-23 “20.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찌어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

베드로는 성령을 돈으로 사려고 하는 시몬에게 돈과 함께 망하라고 합니다. 복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구원받지 못할 사람이라는 저주입니다. 베드로는 시몬에게“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였으니 회개하라”고 소리칩니다.

▶ 이런 상황 가운데 빠지면 사람은 욱할 수 있습니다. 싫으면 관둬라하고 소리치며, 화를 내면서 나갈 수 있습니다. 물론 성령을 돈으로 산다고 하는 것 생각과 행위 자체는 잘못된 것이지만 그 잘못으로 사마리아에서는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 자신이 그런 욕을 먹는 다는 것, 자존심이 상한다는 것은 참기 힘든 일 일겁니다.

그런데 시몬은 어떻게 반응합니다. 24절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베드로의 영적 권위를 인정하며 바로 잘못을 인정합니다.

▶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 중에 하나가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다보면 원하든 원하지 않던 실수하고 잘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때때로 질책을 받습니다. 질책을 받는 것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지만, 사람이 자존심이 상하게 되면 그 상황이 어떠하든 사람은 욱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 말로 들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상황 실망스런 상황 속에서도 참고 인내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마가복음 7장에 수로보니게 여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신의 귀신들린 딸을 고쳐 달라고 예수님 앞에 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찌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막7:27) 예수님은 그 여인을 개 취급합니다. 자존심이 몹시 상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막7:28)

그런 인정에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그 여인의 딸에게 귀신이 떠나갑니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막7:29-30) 이런 모습을 보면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그렇게 표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 때론 조롱당하는 일들을 믿음으로 잘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 마지막으로 시몬의 약점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잊지 않고 조심해야 할 부분인데 그것은 시몬은 은혜가 무엇인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시몬은 은혜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돈으로 사려고 했습니다. 이런 시몬의 모습은 예수를 믿는데 사는 방법은 세상적 방법을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데 세상적인 방법을 취한다면 마술사 시몬과 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몬과 같다는 것은 자기 힘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목표와 방법은 세상적일 수밖에 없고, 자기 욕망을 이루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직 회심이 덜 된 사람의 모습입니다. 로마서에서는 욕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회심이란 목표와 방법이 바뀌는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는 것에서하나님의 은혜로 그 일들이 이루어짐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아직 변화되지 않은 사람이 연륜으로 인해 리더가 된다면 교회를 세상으로 끌고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한게 무엇입니까?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날마다 우리가 간구해야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말씀을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마리아에서 일어난 시몬이란 마술사와 연관된 사건입니다. 마술사 시몬이란 인물은 우리에게 좋은 인상의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서 배울 것이 있는데, 첫째는 그의 열린 마음입니다.

그는 비록 사마리아의 영권을 지배하던 사람이었으나,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을 정도로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습니다.

둘째로 그는 실망적인 상황을 잘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 삶 가운데 여러 실망스런일들, 특히 자존심이 상하거나, 조롱의 일들을 당한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잘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그의 단점은 은혜가 무엇인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돈으로 살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방법은 세상적인 것으로 취한다면 우리역시 시몬과 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은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언제나 우리 심령 가운데 충만하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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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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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Apostolus)와 장로(Presbyter)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초대교회는 유대인 중심의 소규모로 이루어 졌습니다  그 후 고넬료 가정을 비롯하여 이방인 교회가 설립되는 등 교회의 규모가 점차 증대되고 확장되면서 조직적인 운영의 필요성이 제기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로 인하여 하루에 3,000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등 교회의 성장은 일시에 5,000명을 초과하는 수직적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많은 인원이 교회라는 공동체속으로 합류되었고, 또한 그 조직 안팍으로 로마라는 거대한 제국을 둘러싼 각종 사회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구조안에서 무엇인가 정형화된 조직이 필요해 졌습니다  조직적이고 합리적인 운영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필요성이 불가피해진 상황에서 그것을 구성하는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는 교회 직분자에 대한 정의와 목적이 제기되었던 것입니다

 

 1) 사도(Apostolus)

 

사도(使徒, Apostolus)라는 말은 '파견된 자', '사자'라는 뜻의 히브리어 샬리아(shaliach)에서 유래하엿으며, 그리스어의 아포스톨로스(apostolos)의 동의어 입니다  또한 사도(Apostle)란 헬라어로"보냄을 받는다" 라는 뜻으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복음 전하는 권세를 위임받은 직계 제자를 통칭하는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28:19~20, 누가복음6:13)   사도의 자격은 성육신하여 역사적인 인물로 살아간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만났고, 그 분의 가르침을 배운 사람이기 때문에, 4대 복음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직제자 12명을 사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마가복음3:16~19) 

 

그러나 그 가운데 예수님을 팔아 넘긴 가룟 유다가 자살하여 사도직을 버리자, 사도들은 '예수께서 활동하실때 우리와 같이 있던 사람' 중 하나인 "맛디아" 에게 사도직을 맡겼습니다 (사도행전1:21~26) 이후 성령강림주일에 탄생한 교회(사도행전 2:1~47)를 탄압하던 사울(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말하여 자신을 사도로서의 권위를 주장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15:10)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바울을 사도로 인정할 뿐만 아니라 이방인 전도의 핵심 인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 사건의 중심에 서 있던 바울의 회심은 다메섹 도상에서 일어난 신비한 체험에서 비롯된 역사적 전환기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그의 일생의 전후가 완전히 뒤바뀐 것으로 바울이 사도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자격 문제는 오래동안 신학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그의 삶을 통해서 바울은 충분히 사도의 직분을 감당하였다고 보는 견해에 이의를 제기할 기독교인은 없을 것입니다  바울은 맛디아와 같이 선출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사도적 정통성은 그의 삶을 통하여 충분히 인정되고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를 시작으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바돌로매, 도마,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 시몬, 그리고 가룟유다를 우리는 예수님의 12제자이며 사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스승이신 예수님을 은 30세겔에 대적관계에 있던 유대인들에게 팔아 넘기고 자살을 선택한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맛디아를 사도로 인정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사도 바울에 이르기 까지 사도라는 칭호를 받은 사람은 모두 14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아니지만  사도 바울과 함께하며 그의 가장 아름다운 동역자였던 "바나바" 와 유다의 기록자인 "유다" 등은 기독교사의 역사에 그 기록과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을 인물들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과 직접적으로 관계하며 그 분의 말씀과 생활을 가장 인접한 곳에서 가장 객관적인 입장에서 전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 중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맛디아는 예수님의 직접적인 제자는 아니었지만 예수님을 가장 근접한 거리에서 항상 함께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으며, 그러한 삶의 모양과 흔적들을 관찰한 열 한명의 제자들이 만장일치로 선택한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도들이라 할지라도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교훈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오용한다면 그것은 가장 치명적인 오류가 될 것입니다  사도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교훈의 순수성을 투명한 통로를 통하여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온 세상에 전달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또한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세번씩이나 부인한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있으며, 나머지 제자들도 부활한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도피하여 세상의 생활로 돌아갔던 배신의 흔적들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그렇게 세상 가운데 흔적없이 사라져가는 무의미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내 버려 두지 아니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그들을 다시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용서하여 주셨으며 뜨거운 성령의 불길로 회생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의 직분적 사역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교훈과 삶을 여과없이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며 이것이 세대와 후대에 이르기 까지 본질이 훼손되지 않고 연결되는 일들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사도의 사역은 복음전파(마태복음10:5~7)와 성경 말씀을 증거(누가복음24:45~48)하며, 그리스도의 부활과 사역을 증거하는 것입니다(사도행전1:8, 10:39~41요한일서1:1~3)   또한 교회를 설립하고(로마서15:17~20), 환자를 치유하며(마태복음10:1, 누가복음9:1~2),  귀신을 내쫓음과 동시에(마가복음6:9) 기사와 표적을 행하는 것입니다(사도행전2:43, 5:1)

 

사도의 첫번째 사역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교회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각지로 흩어져 버린 그리스도인들을 다시금 모여 들게 하는 구심점과 같은 역할을 감당할 터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전파되게 하였으며, 생활과 구제와 복음의 전파기능을 담당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세월이 흘러 오늘날 우리 세대에 이르기까지 전파되어온 본질적인 것이었습니다 (로마서15:17~20)

 

초대교회의 풍습과 관습은 오늘날 끝없는 진화와 도전을 거쳐왔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의 정신과 생활과 예배는 결코 무너질 수 없는 기초가 되었으며 그것이 오늘을 지탱하는 본질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의 직분은 예배를 세우는 것으로 끝난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복음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순교가 동반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고난과 역경도 받아들이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굶주림과 억울한 누명, 이유없는 감옥생활도 그들을 지체하게 하거나 중단하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사도의 두번째 가치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복음에 대한 확신과 용기였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스승은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원히 생존하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결코 그들을 막을 수 없는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 그들과 그들의 삶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10:5~7)

 

사도의 세번째 역할은 그들이 가는 곳에 또 다른 예수님의 흔적,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방인의 사회, 그들이 지켜온 토테미즘과 범신론적인 사상을 무너뜨리고 하나님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코 낙망하지 아니하였고, 지인 한명없이,  일푼의 물질도 없이 그러한 교회들을 세워 나갔던 것입니다 (사도행전1:8, 10:39~41요한일서1:1~3)

 

사도들이 일으킨 네번째 역할은 환자를 치유하고 귀신들린 사람들에게 있어서 귀신을 내쫓는 것이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수십년 동안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들, 귀신들려서 평생을 고통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빈곤의 악순환,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가는 곳 마다 만날 수 있었고 사도들은 그들을 지나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사도들에겐 돈도 권력도, 물질도 부요함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평생을 걸쳐 어부로 살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에게 어부라는 직업이 돈이 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또한 가진 돈이 없지만 가지고 있는 돈을 나누어 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권력이 있어서 로마의 힘을 빌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씀을 전파하고 기도하였으며, 예수님의 이름이 전파되는 곳에서 치유와 회복과 삶의 전환점이 일어나는 역사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과 동행하였으며 예수님의 통로 역할을 한 사도의 힘이었습니다 (마태복음10:1, 누가복음9:1~2, 마가복음6:9, 사도행전2:43, 5:1)

 

2) 장로(Presbyter)

 

장로(長老)는 어원상 "턱수염이 있는 자"라는 뜻으로 이스라엘에서 지파와 가족의 어른들을 부르는 칭호였습니다 (출애굽기3:16)   구약성경에서는  부족의 지도자·촌로(村老), 회당의 장로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이들이 주로 지파나 대가족을 대표하여 정치기구에 참여하였습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원로라는 의미로 계속 사용되었으며, 초대교회에서는 직분상 두가지로 분류하여 장로를 호칭하였습니다  그것은 신자의 영적 생활을 지도하며 설교와 예전을 집행하는 목사장로(디모데전서3:1~5)와 교회의 존경받는 연장자로 교회의 조직과 예산과 운영을 책임지는 평신도 장로(사도행전11:30)로 구별하는 것의 기초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에 의해 교회가 설립되면서 그 개체 교회를 위하여 장로가 세워졌습니다  장로를 최초로 세운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설립한 교회에 장로들을 택하여 세웠습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목회를 권면하며 각 성에 교회를 설립하고 장로를 세울 것을 권장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성령이 저들 교회 회중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다" 라는 말씀으로 장로의 직분의 범위를 설명하였습니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장로 피택은 구약시대의 제도를 계승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지방 회당은 장로들에 의해 치리되었고 유대의 국가적인 문제는 산헤드린 공회에서 다루어 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장로와 신약의 장로가 동일한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구약시대의 장로는 문자 그대로 연장자로서의 원로를 대우하며 그의 경험과 경륜을 존중한 반면에 초대교회의 장로는 연령보다 신령한 면을 강조하여 교우들에 의해 선출된 지도자였으므로 영적인 자격이 선행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장로들이 말씀을 가르치는 일과 치리하는 직무를 맡아 양떼를 잘 보살피는 일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직무(Overseeing office)로 인하여 장로들을 감독(Bishop=Overseer)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일례로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밀레도" 로 불러 고별사를 전할때에 그들을 감독으로 칭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디도" 에게 "그레데 교회" 에 장로를 세울 것을 권면하면서 감독이라는 칭호를 쓰고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신약성경에는 감독이라는 단어가 5회 기록되었는데 모두 장로와 동의어로 쓰여진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예는 "속사도" (Post-Apostolic, 사도들의 제자),  "교부" (敎父, Patristic,속사도들의 제자)들의 글에서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장로의 구분이 분명하지는 않으나 바울은 다스리는 장로와 말씀을 가르치는 장로를 구분한 것으로 보아 동일한 교회내에서 여러 장로가 있었을 경우에는 분담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교회를 가르치고 다스리는 일을 겸한 장소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지교회에서 장로들을 세울때 모든 장로들이 가르치는 장로로 세움을 받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장로들을 세우는 방법에 있어서도 명확한 해석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세울때 예루살렘 교회가 선택한 방법이나 일곱 집사의 선택으로 추정할 때 장로들도 임명보다는 선거에 의해 선출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14장 23절에 바울이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였다" 고 했는데 이 때의 택함의 동사의 원어적 의미가 "손을 들어 선택한다" 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이러한 모든 직분들은 낮은자로 섬김을 위함이요 군림을 위한 권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히 목사장로와 치리장로들간에 일어나는 권력적 선점을 위한 분쟁과 갈등은 바로 이러한 힘의 논리의 축에 대한  욕망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이미 순수성을 잃어버린 태도라 할 것입니다

  

3) 목사장로와 치리장로의 직분과 직무

 

목사장로는 그리스도의 양무리를 감시 감독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감독" 이라는 칭호를 쓰기도 합니다(사도행전20:28)  또한 신령한 양식으로 교인들에게 말씀을 전하므로 "목자"  또는 "목사" 라고 하기도 하며(에베소서4:11, 예레미야3:15, 베드로전서5:2~4), 또한 교인들의 모범이 되고 교회와 그 지역을 치리하는 자 이므로 "장로" 라고 합니다(베드로전서5:1~3)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함으로서 "그리스도의 종", 흔히 전임 "사역자" 라고도 하며(고린도후서3:6),  하나님의 보내신 자라는 의미에서 "교회의 사자" (요한계시록2:1)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파하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권하는 자의 역할도 하므로 "그리스도의 사신" 이라고 합니다(고린도후서5:20, 에베소서6:20)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며 거역하는 자를 책망하여 깨닫게 하는 직무도 있어서 "교사" 라고도 하며(디모데전서2:7, 디모데후서1:11, 디도서1:9)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전도자" 라하여(디모데후서4:5),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오이코노모스)라고도 합니다(누가복음12:42, 고린도전서4:1~2)

 

목사장로에 관한 직무는 교인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과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고 설교하는 일, 그리고 찬송을 지도하며 성례를 거행하는 것, 하나님의 사자로서 축복권을 행사하는 것, 교인을 교육하고 심방하며 평신도장로와 협력하여 치리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평신도 장로는 설교와 교훈은 그의 전무책임이 아니지만 각 치리회에서는 목사장로와 같은 권한으로 제반 사무를 처리하는 것입니다(디모데전서5:17, 로마서12:7~8)  평신도 장로는 목사장로와 협력하여 행정과 권징을 관리하며, 교회의 영적관계를 확인하고 점검해야 합니다  교인을 심방, 위로, 권면, 교훈하며, 또한 교인들의 신앙생활을 보다 근접한 상태에서 점검하고 언약의 자녀들을 양육하며, 교인을 위해 항상 기도하고, 목회에 필요한 제반적인 사항들을 목사에게 알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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