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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을 맞이하여 생각해 보아야 할 것들

 

 

 

주님의 은총과 평강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대림절 셋째 주일입니다. 어둠이 점점 깊어가는 계절입니다. 바람이 코끝을 매섭게 스치던 어느 날 저녁, 공원을 산책하다가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기대하며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별은 그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별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별을 바라보는 우리 시선을 인공의 불빛과 오염물질들이 차단하고 있을 뿐입니다. 문득 동방박사들이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살았다면 성탄의 별을 발견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별빛의 인도에 따라 주님 앞에 이르렀던 사람들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문명화된 시대에 살면서도 길을 찾지 못하고 가리산지리산 헤매고 있으니 말입니다. 조롱과 냉소와 악다구니가 넘치는 세상에서 근근이 버티며 살다보니 마음이 헛헛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우리 마음은 나날이 옹색해져 주님을 모실 여백이 없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고요한 시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타고르의 <기탄잘리>를 읽다가 이 대목에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절에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람 가운데 하나가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는 척박한 유대 광야에 머물면서 자기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제 욕심에 이끌려 다른 이들의 아픔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을 준엄하게 꾸짖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욕망에 휘둘리며 사느라 나른해진 영혼들을 후려치는 죽비였고, 주님 오실 길을 닦으라고 외치는 들소리였습니다. 그의 말은 거칠었습니다. 힘 있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모호하고 애매하게 말할 줄 몰랐습니다. 그렇기에 그 말은 살아 움직였습니다. 사람들 속에서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사람들이 척박한 광야로 나갔던 것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기 위해서도 아니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을 보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마11:7-9). 예언자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성령은 온갖 죄의 비늘에 가려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우리들을 들어 올려 보아야 할 것을 보게 하십니다. 그 성령이 예수님을 거처로 삼으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바로 그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머리 위에 머물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요? 허망한 열정, 절망감, 두려움, 냉소, 경멸 같은 것은 아닌지요? 성령이 우리 머리 위에 임하시기를 빌 뿐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거처로 삼아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소원하게 하시고, 그 일을 실천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빕니다. 나른한 평안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주님이 오시는 곳으로 달려나야 할 때입니다. 춥고 낮은 곳에서 신음하는 이들의 마음 자리, 삶의 자리로 나아갈 때 우리 영혼의 어둠도 조금씩 물러갈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세상의 아픔과 더러움을 닦아내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이 거룩한 소명에 기쁘게 응답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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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탐구 - 오직 예수만 드러내고 사라진 인물, 세례 요한

 

복음서는 의당 예수님께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초점은 예수께서 어떤 분이신지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복음서들은 이 목표에 이르기 위해 각각 차별화된 특징이나 강조점을 띠고 있지만, 모든 복음서는 초반에 세례 요한을 다루면서 예수님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 가운데 마가복음은 세례 요한을 가장 빠르게 등장시킨다.

복음서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해 세례 요한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만, 그중 마가복음은 사실상 세례 요한을 언급하는 것을 시작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루고 있어 이번 달에는 세례 요한을 탐구해 보고자 한다.

 

경건한 부모·불임 가정에서의 출생

먼저, 세례 요한의 출생부터 살펴보자. 그는 제사장 가문의 경건한 부모 곧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서 태어났다. 이들 부부는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었다(눅 1:6). 대단한 믿음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불임의 절망스럽고 아픈 문제를 안고 있었고, 그러한 상황은 나이 들어 늙기까지 지속됐다.

임신이 불가능한 부부에게서 세례 요한이 태어났다. 요한은 육신적으로는 경건한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며, 불임의 절망을 넘어 하나님께서 초월적 능력을 행하심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의 출생에서 우리는 ‘출생은 하나님의 역사’라는 진리도 꼭 배워야 하지만, 믿음의 성장에는 절망적인 현실이 함께할 수 있다는 진리도 분명히 배워야 한다. 그것도 나이 들어 점점 늙어 가는 상황에서도 예외가 없음을 말이다.

 

메시아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자

우리는 세례 요한의 등장을 구속사의 맥락으로도 봐야 한다. 그의 등장은 오래전 구약 선지자들의 메시아 비전과 믿음의 기대가 이뤄지는 것이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성취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다.

특히 세례 요한은 메시아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것을 자신의 사역으로 삼았다. 특히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거침없이 선포함으로써 그렇게 했다. 그는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다’라는 섬뜩한 표현을 쓰면서 “독사의 자식들아…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선포했고,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고 경고했다(눅 3:7~9).

요한은 또 헤롯 왕의 악행에 대해 책망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이 일로 결국 순교에 이른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소명을 물어야 할 뿐 아니라, 그 소명을 따라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의 방향이라는 진리를 붙잡게 된다.

 

예수를 드러내고 사라진 인물

한편, 복음서들은 세례 요한에 대해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 이해했는데, 이것은 무엇보다 그의 요단 강 근처에서의 회개와 세례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곧 요한은 하나님의 통치 앞에서 회개의 필연성을 간과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자신은 ‘뒤에 오시는 이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는 고백은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자로서의 요한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물론 그가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일을 기다리오리이까”(마 11:3)라고 예수님께 질문한 것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흔들리는 모습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 오직 한 분만을 드러내고 사라진 인물로서 우리에게 각인되기에 충분하다.

마가복음 묵상을 통해 우리 모두 세례 요한처럼 예수만을 드러내는 제자의 길, 섬김의 삶을 향해 한 걸음 더 기쁘게 옮겨가기를 기대한다. 노예가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던 시대 속에 스스로 종으로 오셔서 마침내 구속을 완성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만이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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