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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대면예배기간 9월 주일예배대표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림 모두를 생명이 시작되기 전부터 택함 받은 자녀로 삼아 주시고, 인생의 거칠고 험한 고비 고비마다 언제나 함께 하시고 인도해 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세상의 혼탁한 것으로 향하려는 마음을 성령으로 붙잡으시어 가장 고귀한 하늘의 은혜를 사모하게 하심 또한 감사드립니다. 
   
저희의 생명 다하기까지 선한 길로 이끄셔서 주님의 나라에 합당한 백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비하신 하나님!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가 없나이다. 겉모양으로서만이 아니라 영혼의 뉘우침으로 주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저희의 탄식도 헛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나이다.
   
주여! 
   
저희 심령으로 간곡하게 부르짖나이다. 저희의 죄와 허물을 사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을 멀리하고 혼자의 지식과 행위로 해결하려 했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주님을 의지합니다. 용서를 베푸시옵소서.
   
능력의 하나님!
   
시련의 밤이 깊고 환난의 모진 바람이 멈추지 않는 때일수록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시옵소서. 
   
악한 마귀는 때를 만난 듯 저희를 넘어뜨리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미혹하고 있나이다. 사탄 마귀의 궤계에 넘어지지 않도록 주님의 능력의 오른팔로 저희를 붙들어 주시고, 주님의 언약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믿음의 길에서 승리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구원을 선물로 주신 주님의 은혜를 값 없이 취급해 버리는 죄를 범치 않게 하시고, 주님의 권고하심을 받들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경계적인 압박으로 인하여 안타깝게도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삶이 어렵다고 해서 주님을 등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고, 쉽게 세상과 타협하는 태도를 갖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더욱더 삶의 목표를 주님께 둘 수 있도록 하시고, 믿음의 길에서 승리한 사람이 저희 주변에 구름처럼 많음을 깨달아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멈추지 않는 성도들 되게 하시옵소서.
   
오늘도 생명의 말씀을 붙잡기 위하여 비대면예배로 참석한 모든 성도들에게 주님의 신령한 은혜를 맛보게 하시고, 기쁨이 샘솟듯 하는 시간이 되게 하시옵소서.
   
이 어려운 때에 주님의 몸된 교회를 든든히 세우려고 몸부림치는 일꾼들을 기억하시고, 저들의 헌신을 통해서 진리의 빛을 더욱 드러낼 수 있는 교회가 되게 하시옵소서.
   
안식이 필요한 때입니다. 삶에 지친 영혼들이 그 어느 때보다 거리를 방황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저희에게 주신 구원만을 위하여 몸부림치는 저희의 모습이 없게 하시고, 길 잃고 방황하는 자들이 주님 주시는 평안과 안식을 맛볼 수 있도록, 주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예배를 돕는 손길들을 기억하시고, 특별히 말씀을 들고 단 위에 서신 목사님을 붙들어 주셔서, 생명의 말씀, 능력의 말씀을 전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 주시옵소서.
   
예배의 시종을 주님께 의탁하오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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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교리 기독론  /  그리스도의 이름

 

 

 

1. 그리스도의 이름
 
 
하나님의 이름이 그분의 속성을 잘 나타내 주듯이, 그리스도의 여러 이름들도 그분의 속성과 사역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준다.
 

1. 예수(Jesus)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이름 ‘여호수아’( [ v h y )의 헬라어 표기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탄생 전에 주어진 이름이며(눅 1:30,31), 그분의 사역 목적이 인간의 구원임을 분명히 보여준다(마 1:21). 따라서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인솔 하여 가나안 원주민을 무찌르고 약속의 땅에 정착시킨 여호수아의 사역은 예수께서 택한 자들을 사단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만드는 일을 예표했었던 것이다.
 

2. 그리스도(Christ)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 있는 구약의 ‘메시야’( h y c m )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핼라어 표현이다(요 4:25,26). 구약 시대에 기름 부음을 받았던 세 가지 직분 곧 선지자(왕상 19:16)와 왕(삼상 10:1), 그리고 제사장(출 29:7-9)은 완전한 메시야 곧 그리스도의 사역적 예표였다. 결국 이러한 사실은 신약의 그리스도가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어떠한 사역의 담당자이신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한편 여기에서 기름은 성령을 상징한다(삼상 16:13).
 

3. 인자(Son of Man)
 

그리스도의 비하(卑下)와 승귀(昇貴) 신분에 대하여 동시에 강조한다. 즉 재림주로서의 세상을 심판하실 분의 위엄을 강조한다고 할 수 있다(단 7:13,14; 마 16:27,28; 24:30; 26:64).
 
 

4.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모양은 가지셨으나, 성령으로 말미암으신 특수한 존재임을 암시한다(눅 1:35), 그러나 여기서 ‘아들’은 성부에 대한 성자의 열등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들’은 아버지와 동등하기 때문이다(요 5:18).
 

5. 주(Load)
 

당시 황제에게 적용되었던 명칭이었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을 ‘주’(主)로 고백하는 한 개인과 이 세상에 대한 주권자 혹은 통치자이심을 분명히 보여준다(고전 12:3; 빌 2:11).
 

6. 말씀(Word)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기 이전에도 이미 존재하셨으며 천지 창조와 계시의 주체이셨음을 보여준다(요 1:1-5; 14:9; 히 1:2).
 

7. 그밖의 이름
 

‘임마누엘’(마 1:23), ‘독생자’(요 3:16), ‘만왕의 왕’(딤전 6:15), ‘다윗의 자손’(마 1:1), 목자장’(벧전 5:4), ‘알파와 오메가’(계 1:17,18) 등의 명칭은 그분의 하나님되심과 성육신하심 및 역사의 주체이심과 구원자이심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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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와 예수 그리스도

 

 

 

기독교의 예배는 기독론적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로 서 계시며, 하나님을 인간에게 계시하시고, 인간은 또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응답한다.

 

즉, 예배란 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인격적인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성도의 인격적이며 순종적인 믿음의 반응이다. 더욱이, 본질적으로 예배는 ②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교제이다. 물론, 이런 교제와 인격적 관계는 예배자의 영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이루시는 일이다.

 

예배의 중심 행위라 할 수 있는 '말씀'과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지난날 행하셨던 공생애 사역 및 십자가와 부활을 지금 여기에서 재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예배는 그리스도의 신비(고난과 부활의 신비)에 참여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참여는 단순히 지적인 수긍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예배에 참여함으로써 경험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예배와 관련하여 외적이고 형식적인 요소보다는 내적인 요소를 강조하셨고(요4:24), 특히 십자가 희생을 통해 자신이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시어 영원한 제사를 드리심으로써 모든 희생제사를 마감, 완성하셨다(히10:12-18).

따라서 신약의 성도는 희생제물을 드리는 대신 대속 제물로 죽으신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총을 감사, 찬송하며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높이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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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에 대해서 
 

 

 

 

예배

'예배'를 의미하는 대표적인 히브리어 '아바드'는 '봉사', '섬김'이란 뜻으로, 영어의 service와 유사한 개념이다. 또 '솨하'는 '엎드리다, 굴복하다'는 뜻으로, '숭배', '순종', '섬김'의 뜻을 지닌다. 그리고 헬라어로 '프로스퀴네오'는 '프로스'(~에게)와 '퀴네오'(입맞추다)의 합성어로, 원래는 종이 주인에게 문안할 때 존경의 표시로 머리를 조아리며 발에 입맞추는 것을 가리켰다. 또 '라트레이아'는 '(종으로서) 섬기다'(마4:10)는 뜻을, '레이투르기아'는 예전으로서의 의식(ritual)을 뜻하는 단어이다(행13:2).

한편, 영어로 예배를 나타내는 'worship'은 원래 앵글로색슨어인 'weothscipe'에서 유래한 것으로 'weprth'(worth, '가치')와 'scipe'(ship, '신분')의 합성어인데, '존경과 존귀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뜻이며, 그런 맥락에서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인정하며 그에 합당한 존경과 영광을 돌리는 것이 예배임을 알 수 있다. 즉,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존경과 경외심이 수반된 엄숙한 행위임을 보여 준다(요4:20).

결국 예배란,
① 유일한 예배 대상인 하나님을 의식하며
② 전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경외심을 가지고 경배하고,
③ 하나님의 높으심과 그 은총을 찬양하며,
④ 섬기는 거룩한 행위라 할 수 있다.
또한, ⑤ 예배는 '구속의 은혜를 받은 자가 그 은총에 대한 응답으로 감사하고 경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임재를 경험하며, 그를 찬양하고 기쁘시게 하는 행위'이며,
⑥ '중생한 신자가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 신앙고백, 뜻과 정성이 담긴 헌신과 감사의 예물을 통해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행위'이며,
⑦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경배하고 섬기며 봉사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요4:20; 행16:14; 빌3:13).
또, ⑧ 성경은 '전 인격과 온 삶을 통한 산 예배'를 강조하고 있다(롬12:1).

이상에서 보듯이, 예배의 대상은 거룩하시고 영존하시며 오직 한 분이시고 인격적이시며 영이신 하나님만이 유일한 대상이시다(출20:3; 신4:35, 39; 사44:6-23; 고전8:4).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무소부재하신 분이므로 신자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예배할 수 있으나 특별히 성별된 장소에서 주님이 부활하신 주의 날에 함께 모여 공동으로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한편, 개혁신학에서는 이 '예배'를 '찬송', '기도', '말씀', '헌상', '성례전'과 더불어 여섯 가지 은혜의 방도 중에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가르치는 교회와 듣는 교회를 구분하는 로마 가톨릭과는 달리 개혁교회(개신교)에서 예배는, 신자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매우 중요한 의식 중에 하나로 간주한다.

예배는, 정기적으로 혹은 비정기적으로 행해지며, 가정 예배 또는 기도 모임과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목사나 전도사와 같은 성직자들의 인도 아래 교회에서 시행된다. 평신도들이 예배를 이끄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는 않지만, 교회의 질서유지를 위해 설교, 축도 등은 목사 등 공식적으로 설교와 축도의 권한이 주어진 성직자가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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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ith life /  The Way to Victory in Spiritual Warfare

사단의 최대 작전!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은 ?

 

 

 

당신은 거룩한 습관을 가지도록 자신의 몸을 훈련합니까?

 

운동은 몸을 강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는

 

영적인 습관이 필요합니다.

 

아침마다 성경을 읽습니까?

 

매일 성경만 읽어도 영적으로 병들지 않습니다.

 

아침마다 기도합니까?

 

아침마다 기도할 때 얻는 영적 기쁨과 만족이 있습니다.

 

마귀의 최대 작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되 나쁜 습관에 계속 빠져있게 하는 것입니다.

 

C. S. 루이스의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보면

 

마귀가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기로 결단했다는 조카의 보고를 받습니다.

 

그때 이렇게 말합니다.

 

네 환자가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불쾌했다.

 

하지만 아직 절망할 필요는 없다.

 

성인이 되어 회심한 사람 중에는 잠시 원수의 진영에 머물다가

 

다시 돌아와 우리와 함께 지내는 사람이 수백 명도 넘으니까.

 

네가 할 일은 그로 하여금 원수 앞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아직 몸에 배어 있는 나쁜 습관들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그는 아직도 우리 편이다.

 

이 사실을 한시라도 잊지 말라.”

 

육체를 훈련하는 것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나쁜 습관을 버리고

 

말씀과 성령으로 좋은 습관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습관은 많은 행동의 반복과 훈련의 결과로 옵니다.

 

습관은 옳다고 믿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마치 자전거 타기와 같습니다.

 

처음에는 넘어져도 계속 타다보면 앞으로 나아갑니다.

 

내가 진리의 길을 택하고

 

주의 법을 내 앞에 두었습니다(119:30).

 

습관은 성경에 기초하여 옳은 것을 택하고

 

그것을 내 앞에 두는 것입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자기 자신을 연단하는(딤전 4:7) 것입니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딤전 4:6)

 

우리를 좋은 습관으로 훈련시키는 방법은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입니다.

 

자유를 얻으려면 거룩한 습관이 필요합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기도하는 습관으로

 

우리 육체가 하나님 안에서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해야 합니다.

 

헨리 트루먼 대통령은

 

독수리처럼 날개 쳐 높이 올라가고 싶다면

 

칠면조와 같이 다녀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육체 안에서 주님을 모시고 살려면

 

우리의 육체를 훈련시켜야 합니다.

 

아침마다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의 교훈으로 양육을 받는다면

 

우리가 얼마나 달라질수 있을까요?

 

거룩한 영적 습관으로 우리 안에 있는

 

육체의 죄악성을 극복하고 우리 육체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기를 바랍니다.

 

 

-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 이윤재

 

 

말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 디모데전서 47,8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거니와

 

경계를 받는 자는 존영을 받느니라 - 잠언 1318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 고린도전서 316,17

 

기도

 

우리의 허물과 죄로 인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날마다 그 십자가에 저를 못 박고

 

오직 주 예수님이 주신 은혜와 능력으로 살길 원합니다.

 

나의 주인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생각하며 행하는 하루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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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인 전도란?

 


전도의 정의:


21세기를 사는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갖고있는 가장 잘못된 개념중 하나가 전도일 것이다.
내가 이 자리에서 "전도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본다면 열명중 아홉명은 "사람들을 교회로 데려오는 것입니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성경이 증거하는 전도의 개념이 아니다.
성경은 "전도"라는 단어를 '사람을 교회로 데려오는 것'이라 정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도의 성서적 뜻은 무엇인가?
"전도"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선포하다'는 뜻이다.
전도란 사람을 교회로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선포하는 것이란 말이다.


선포의 내용:


그렇다면 무엇을 선포하는게 전도인가?
"전도"라는 단어는 헬라어 성경 60구절 속에서 28개의 다른 형태로 61번 등장한다.
이러한 단어의 쓰임새를 분석하여 선포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총체적으로 살펴보면 놀라운 사실이 발견된다.
"선포"라는 단어는 예수님의 복음 사역과 연결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역은 12가지의 내용으로 구체화된다:


(1) 회개의 침례,
(2) 예수님의 심판,
(3) 예수님의 성육신,
(4) 예수님의 이름,
(5) 예수님의 그리스도되심,
(6) 예수님의 성자되심,
(7) 예수님의 복음,
(8) 예수님의 나라,
(9) 예수님의 기적,
(10) 예수님의 은혜,
(11) 예수님의 부활,
(12) 예수님의 말씀.
이 열두가지를 선포하는 것이 전도인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께 범죄한 죄인이기에 영원한 지옥형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당신을 심판하기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당신의 죄를 담당케 하셨고, 당신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으며, 당신을 대신하여 지옥의 고통을 맛보게 하셨다.
그리고 이 예수님을 삼일만에 부활시키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게하심으로써 당신의 부활을 예비하셨다.
당신은 이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구원받는다.
그러니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과, 주되심과, 성자되심을 믿으라!
은혜의 예수님께서 당신을 하나님의 나라로 초대하실 것이다!

이것이 선포의 내용인 것이다.


현재의 문제: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만난 21세기의 많은 전도자들은 이렇게 전도하지 않는다.
그대신 교회나가세요!
교회나가면 자녀가 잘될 것입니다!
교회나가면 만사가 형통하고 병이 낫고 문제가 풀릴 것입니다!
교회가면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고, 공짜 점심도 먹을 수 있으며, 외로움을 달랠 수도 있습니다!
저도 교회에 나갔더니 건강해 졌고, 사업이 번성해졌으며, 자녀도 좋은 대학 갔습니다.
그러니 교회에 나가십시오!


말하며 전도한다.

마치 낚시꾼이 냄새가 구수한 깻묵을 바늘에 걸고 물속의 물고기를 낚듯이, 스파게티 소스를 파는 장사꾼이 소스를 팔기위해 통에 각종 장식을 달아놓고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하듯이, 그렇게 사람들을 꼬시려고만 한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그저 사람들을 구수한 말들로 꼬셔 무작정 교회로 데려오려고만 한다.
이것은 성경이 증거하는 전도가 아니다.
전도란 사람을 교회로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탕발림말로 사람을 꼬셔 교회로 나오게 하는것이 전도가 아니다.
전도란 진리를 가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선포함으로써 죄인을 예수님의 몸인 교회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역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케리그마적 사역인 죄, 심판, 지옥, 회개, 구원, 천국등을 선포함으로써만 이루어지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사역이다.

질문 1: 이쯤에서 나에게 이렇게 묻고 싶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초면에 만나는 사람에게 죄, 죄인, 심판, 지옥이야기를 하라는 것입니까?
그것은 상식적으로 좋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좋은이야기만 하다가 성장한 후에 다른 이야기를 하는게 효과적입니다.

그렇지 않다.
이러한 발상은 세상의 마케팅 전략에 물들어버린 인본주의적 전도방식이다. 고린도후서 4:1~2는 이러한 발상을 이렇게 공격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전도의 직분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혼잡"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과일 장수들이 보기 좋은 과일을 맨 위에 놓고 아래에다가는 작은 과일들을 숨겨넣는 행위를 말한다.
이렇게 하는 행위는 하나니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것인지라, 그렇게 전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전도할 적에 남들이 듣기 좋아하는 복이나, 상급이나, 천국이야기만 위에다 죽~ 늘어놓고, 죄나 지옥이나 심판에 대한 이야기는 살짝 가리며 전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대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다 들려 주라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혼잡"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포도주에 물을 탐으로 원래의 농도를 줄이는 행위를 말하기도 한다.
포도주에 물을 타서는 안된다.
포도주는 포도주 자체로 있어야지 물을 타면 본래의 맛을 잃고 싱겁고 맛없게 된다.
전도도 마찬가지이다.
불신자들의 비유를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심판과 지옥을 이야기 하지 않고 축복에 대한 말을 하는 것은 복음을 희석시키는 행위라는 것이다.
절대로 이렇게 전도해서는 안된다.
말씀이 있는 그대로 전해질 수 있도록 있는 그대로 전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진리를 잊어버렸다.
그들은 인본주의에 찌들어 있는지라 불신자들의 심기를 건들지 않기 위하여 될 수 있으면 지옥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심판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며 회개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오직 복이나 천국, 축복이나 형통등의 말로만 사람들을 꼬시려 한다.
이것은 전도가 아니다!
죄를 이야기 하지 않고 어떻게 십자가의 예수님을 설명할 수 있나?
심판을 이야기 하지 않고 어떻게 공의의 예수님을 설명할 수 있나?
지옥을 이야기 하지 않고 어떻게 천국의 예수님을 설명할 수 있나?
죄와 심판과 지옥이 없으면 예수님도, 십자가도, 부활도 필요없다!
죄와 심판과 지옥이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필요한 것이다.
고로 이 모든 것을 하나도 가감하지 않고 다 전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인 것이다.


질문 2: 이렇게 질문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가 준비도 안된 사람들이 그러한 말을 듣다가 거부반응을 일으키면 어떡합니까?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이는 미련한 일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다.
이 세상에 준비된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 어디에 있던가?
여러분들은 준비된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구원에 이르렀나?
아니지 않나?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분의 말씀이 순식간에 바람처럼 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구원에 이른것이 아닌가?
그리고 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때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당연지사가 아니던가?
죄인이 죄성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때 어찌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진리앞에서 귀를 틀어막고 도망가고자 하는 것이 지극히도 당연하다.
게다가 죄인을 찔러 반응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 어찌 하나님의 말씀이란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보다도 예리하여 듣는 사람들의 심령속으로 들어가 죄성을 비수처럼 찌른다고 했는데, 말씀의 칼날이 내 심령속에 사정없이 와서 꽃히는데 어찌 꿈틀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예레미아가 전도할때 왜 사람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저넣었나?
에스겔이 전도할때 왜 사람들이 그를 핍박했던가?
사도 바울이 전도할때 왜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고 했던가?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께서 전도하실때 왜 사람들이 그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나?
복음을 들은 불신자들이 거부반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어두움 속에 살고 있는 벌레에게 빛을 비추어봐라.
꿈틀대며 그 빛으로부터 도망가기위해 발버둥을 친다.
이처럼 어둠가운데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케리그마적 사역을 전했더니, 그들로부터 거부반응이 일어났던 것이다.
명심하라.
불신자들로 하여금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전하는 복음은 희석된 복음이요, 가감된 복음이라는 것을!


질문 3: 또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도 있다.

만약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너무 직설적이라서 불신자들의 심기를 건드려 마음의 문을 닫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면 어떡합니까?

이 역시도 인본주의적인 발상이다.
위의 질문은 우리가 걱정할 부분이 아니라는 말이다.
왜?
우리의 사명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명이다.
우리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우리가 내 자신도 살리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을 살린단 말인가?
사람을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우리의 사명은 그러한 하나님이 역사할 수 있도록 말씀을 정확하게 전하는 것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는 말씀을 혼잡하지 않게 충실히 전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사 예정된 자를 부르신다.
고로 우리가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이상, 듣는 자들이 구원으로 예정받은 자라면 그들은 반드시 돌아오고, 예정받지 못했다면 복음을 거절할 것이다.
고후 2:15-17를 들어보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우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보라.
우리가 복음을 정확하게 전할 때 두 가지의 일이 일어난다.
구원을 받기로 예정된 사람들은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고, 망하는 자들은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른다.
이것이 참된 전도의 목적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전도란 예정된 자로 하여금 복음을 받아 들여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게 하는 것이고, 예정받지 못한 자로 하여금 복음을 거절하여 죽음에서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작업이다.
사도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며 하나님은 자라게 하셨다"고 말했다.
우리의 사명을 말씀을 심고 물을 주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명은 그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처럼 행동하려고 하기 때문에 복음을 희석시키는 것이다.

고후 4:3도 보라.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이 얼마나 명확한 계시인가?
우리가 복음을 열심히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신자들이 그 복음을 받지 않는다면 그들은 망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남을 구원시킬 수 있다고 착각하니까 복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더 말하지만 성경은 우리더러 죄인을 구원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일은 딤후 4:2의 말씀처럼 오로지 하나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여기에 "전파하라"고 번역된 헬라어도 케루쏘이다.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선포하는 것이다.


질문 4: 이렇게 묻고 싶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불신자들이 일단은 교회에 와야 말씀을 듣고 구원받을 것 아닙니까?
불신자들을 교회로 데려오는 것이 뭐 그리 문제가 됩니까?

그럴듯해 보이는 말이다.
그러나 이도 옳지 않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도는 교회 안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 밖에서 하는 것이다.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며 머리되신 예수님을 찬양하는 공동체이지, 불신자를 초대하여 전도하는 곳이 아니다.
초대교회의 역사를 보면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지 않는 자를 절대로 교회당 안으로 데려오지 않았다.
함께 예배드리지도 않았다.
교회란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산자를 위한 공동체이지 죽은자를 살리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교회당 안에서 예배드렸고, 교회당 밖에서는 전도했다.
그래서 밖에서 구원을 얻은 성도들을 교회당으로 데려와 함께 예배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전도의 방법이다.

그러나 21세기의 많은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방법을 무시한다.
'일단은 교회로 불러놓고서 교제를 통하여 친목을 다진후 마음이 열려있는 상태에서 복음을 전하자'고 말한다.
그래서 "열린 예배"따위나 "알파코스"등을 통하여 교회와 세상이 별 차이가 없다는 식의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나서 복음을 전하려 한다. 교회에서 가요를 부르고, 세상의 프로그램을 도입하며, 세상과 교회는 별로 다를 것이 없으니 너무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말라는 식으로 어필을 한다.
그리고 교회로 불러모은 불신자들의 비유를 맞추며 굽실댄다.
이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이 아니다.
도대체 성경 어디에 하나님의 말씀 하나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기에 부족하기에 "열린 예배"나 "알파 코스"와 같은 것을 사용하라고 되어있는가?
성경 어디에 불신자들을 끌어모아 그들의 비유를 맞추며 기독교는 그렇게 폐쇠적인 곳이 아니라고 거짓말하라고 되어있는가?
사람의 마음은 우리가 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케리그마적 사역을 선포함으로써만 열린다.
그리고 그 일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가장 확실하게 계시하는 구절이 있다.
행 2:14이하를 보면 교회 밖에서 이루어지는 베드로의 선포가 나와있다.
베드로의 선포를 보면 인간은 죄인이라는 사실과 죄로부터 자유하게 위해서는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그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구원이 시작된다는 사실이 계시되어 있다.
예수님의 케리그마적 사역을 선포한 것이다!
그는 사교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
인간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
운동이나 어떠한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교회로 모으지 않았다.
그는 밖에 나가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했다.
그랬더니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가?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여기에 "마음"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심령의 '중심'이라는 뜻이고 "찔리다"고 번역된 헬라어는 '뚫리다,' '꿰찔리다'는 뜻이다. 베드로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중심에 쉬지않고 뚫리고, 꿰찔렸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게 역사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들의 심령에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죄를 짓던 사람들이 갑자기 마음이 찔리기 시작한 것이다.
좌우에 날선 양날검보다도 더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이 베드로의 설교를 통하여 죄인들의 중심에 사정없이 꽃히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는가?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리라 하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들의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순서가 보이는가?
말씀이 먼저왔고, 그 다음에 구원이며, 그 후에 성도의 교제다.
이것이 성경적인 순서이다.
교제가 먼저 오지 않는다.
구원이 먼저 오지도 않는다.
말씀이 먼저요, 구원은 그 다음이며, 교제는 가장 나중이다!
그러나 현재 대다수의 교회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한다.
일단 불신자들을 교회로 불러 교제하게 한 후, 그 후에 구원을 선포하고, 그 다음에 말씀을 전한다.
이것은 인간이 고안해낸 인본주의적 순서이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순서가 아니다.
이렇게 인본주의적인 순서를 따르니까 교회에는 죽은자들로만 꽉 차서 바른 예배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질문 5: 마지막으로 이렇게 질문하고 싶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에이~ 너무 원론적으로만 하지 맙시다.
그렇게 원론적으로만 하면 교회가 성장하지 않습니다.

아니다.
교회는 원론적으로만 해야 한다.
원론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교회가 망가지는 것이다.
교회는 사업터가 아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위에만 세워지며,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운행되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완성된다.
아무리 교회가 양적으로만 부흥하면 뭐하나?
그 안에는 죽은 시체들이 득실대는데?
참된 전도가 아닌 다른 것으로 그들을 모은 결과이다.
명심하자.
교회에서는 성경이 열려야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설교되어져야 하며, 그 분의 가르침이 가르쳐져야 한다.
바로 그럴 때 교회는 성장하는 것이다.

ㅡ이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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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예배 대표기도문 ( Prayer for New Year )

 


지난 한 해도 은혜 가운데 지켜주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은혜와 사랑으로 시작하는 해가 되게 하시고 열매 맺고
응답받는 한해가 되게하여 주옵소서.

지난 1년간의 삶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더욱 자라게
하시며 삶의 터전을 넓히시며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가게 하신 크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우리의 이런 감사가 날마다 되어 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는 교회를 이 곳에 세워주시고 주의 복음과
말씀을 증거 하는 터전을 삼아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교회가 올 해에는 더욱더 주의 역사를 감당해 내는
능력있는 교회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각 기관마다 주의 큰 사랑으로 덧입혀 주셔서 모든
기관들이 부흥을 경험하게 하시며 주의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세운 기관장들마다 축복 하시며 각 기관들을 이끌 때에
주께서 주신 지혜로 아름답게 이끌 수 있도록
함께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우리 교회가 주위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소문이 나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는 봉사하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많은 선교사들을 보내며 고아와 과부를 먹이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교회도 성장,부흥 하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성도들의 모든 가정도 도우셔서 이제 새로운 계획을
가지고 출발하는 가정도 있습니다.

계속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가정도 있습니다.
온 교회에 모든 가정을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옵소서.

올 해에는 웃음과 사랑이 넘처나는 복된 가정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가정에서 천국을 맛보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많이 어려웠던 지난 한해의 경제가 되살아나는 한 해가
되길 원합니다.
힘들고 지쳐 고단한 심령들을 없게 하시고 새로운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나라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정직과 봉사가 넘처나는 정치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 북한 땅에도 복음이 들어가게 하시며 남과 북이
하나되게 하시여 온 맘으로 주를 섬길 수 있는 복된
땅으로 변화 시켜 주옵소서.

함께 손을 잡고 주를 찬양하며 경배하는 날을 속히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새해 우리에게 좋은 말씀을 들려주실 목사님께도
함께하사 올 한 해에도 인도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준비하실 때마다 큰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며 그 말씀을 통하여 모든 영혼들이 살아나는
역사를 경험케 하옵소서.

교회의 모든 계획들을 운영해 나가실 때에 주의
섭리로 도와주옵소서.

성가대의 아름다운 찬양이 올 한해에도 이 성전에
가득하길 원합니다.

우리의 삶을 영원토록 인도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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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밤예배 대표기도 (Sunday night worship service)

 

 

 

 

저희들이 아직 죄 가운데에 있을 때에,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시고, 빛과 생명의 나라로 옮기신  하나님 ! 그 크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를 드리며, 찬양으로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지난 한 주간도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살게 하시다가 이 시간 주일 저녁에도 저희들의 발걸음이 세상으로 향하지 아니하고, 주님의 제단에 나와서 예배드릴 수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험한 세상에 살면서 육신에 얽매인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왔사오니 저희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 온전한 산 제물이 될 수 있도록 십자가의 보혈로서 깨끗이 씻어 주시옵시고, 이 시간 저희들이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며, 주님과 신령한 교제를 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오늘 이 예배의 기도와 말씀과 찬양을 통하여 은혜의 귀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도 교회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주님 ! 저희 교회가 그리는 비전을 온전히 이루어 가게 하시며,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려 드리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여러가지 행사를 계획하여 진행하고 있는데, 열심히 동참하는 성도들마다 말씀의 은혜가 충만케 하시고, 역할과 사명에 따라 세우신 각 기관을 성령 하나님께서 늘 지켜 주시며, 날마다 새로운 믿음과 능력을 부어 주셔서 기관에 속한 일꾼들이 맡은 바 직분을 잘 감당케 하여 주시옵소서.

 

새해에 새롭게 세운 계획들을 통하여 믿음이 더욱 성숙해지는 은혜의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금년 한 해에도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며,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성도들이 다 되게 하시고, 날마다 성장하고 부흥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주에는 특별히 새벽기도회를 준비하고 있는데, 많은 성도들이 새벽을 깨우며 기도하는데에 동참케 인도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는 기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고, 부르짖으며 간구하는 성도들의 기도를 주님께서 들어 주시고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각양의 은사와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며, 병마로 인하여 고통받는 자들을 치료하여 주시며, 상한 심령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세상에서 실패하고 넘어져서 낙심 할 때에 저희들에게 힘이 되어 주시며, 영의 눈을 뜨게 해 주시고, 영의 귀를 열어 주시며, 죄악과 육신에 얽매인 저희들을 일깨워 주셔서,  날마다 새 힘을 얻고  승리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의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 이 나라 이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세계곳곳에 가난과 위기로 어려움을 당하는 자들을 도와 주시며, 여러가지 사고로 인하여 고통중에 있는 자들을 기억 하셔서 고통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그보다 먼저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진정으로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대통령과 이 나라의 모든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고,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들고 단 위에 서신 목사님을 성령님께서 늘 지켜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목사님 가정도 지켜 주시며.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선포 하실때에 성령님 함께 하여 주시고,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이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준비하여 주님께 올려 드리는 찬양도 기뻐게 받아 주시며, 이 예배를 주님께서 온전히 주장하여 주셔서 축복과 응답의 귀한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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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네째주일낮설교/천국백성의 가정 (October,Sunday Sermon)

말씀 : 시128:1~6

제목 : 천국백성의 가정

1.천국은 내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 천국이 어디에 있습니까? 물론 완전한 천국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완전한 천국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정말 모든 슬픔 근심 걱정 염려 두려움 미움 시기 질투 상처 아픔 질병 어둠 죽음 없는 세상은 여기에는 이루어 질 수 없고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면 그런 천국의 은총은 저 하늘나라에 가서나 비로소 누릴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도 누릴 수 있습니다. 비록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 누릴 완전한 천국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이 땅에서도 얼마든지 천국의 기쁨을 맛보며 천국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눅17:20,21절을 보십시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그렇다고 눈으로 보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분명히 우리 눈으로 볼수 있고, 손으로 만져지고 지금 여기서와 같이 실제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살아갈 실제적 천국이 있습니다. 주님이 부활승천하시면서 그 천국이 예비되면 내가 다시 와서 우리를 주님이 계신 그 실제적인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마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가 볼수 있게 임하지 않는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저 영원한 천국에는 분명히 눈으로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고 실제로 우리가 살아갈 천국이 있지만 지금 여기서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완전한 파라다이스가 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그런 외적인 것에서의 천국을 바라보지 말고 내적인 천국 즉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그 진정한 평안과 위로와 자유와 기쁨과 소망을 누리는 그런 천국을 맛보며 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천국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권세나 명예나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에게 있는 게 아닙니다.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심령속에 모시고 그 말씀과 가치관과 삶의 양식을 따라 살아가는 그 심령속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시며 모든 기쁨과 평강과 위로와 소망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할 때에 주님이 주시는 생명과 기쁨과 평강과 위로와 소망가운데 천국의 은총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분들이 현실 현실 그러면서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그래서 기쁨과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죽자사자 일만 하면 행복줄 압니다. 어떤 분든 죽어라고 공부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행복할 줄 압니다. 그래서 결국은 현실의 노예로 살아갈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현실의 노예로 끌려다니지 말고 주님의 말씀과 은혜와 능력으로 현실을 지배하고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상황이나 다른 사람 때문에 천국을 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천국을 스스로 만들어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날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거룩한 존전에 모여서 열심히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모여서 성도간의 교제도 나누어야 합니다. 또한 예배를 마치고는 좀 쉬면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가져야 합니다. 또한 가끔은 짬을 내어 가족과 함께 하며 사랑을 나누며 친밀하게 교제하는 시간도 가져야 합니다. 물론 우리 삶이 그렇게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그런 시간도 내가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시간도 가정천국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시간 이상으로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천국은 결국 우리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심령속에 온전히 모셔들이고 그 말씀과 가치와 삶의 양식과 인도하심과 그 방법대로 또한 그 은혜와 능력으로 모든 환경과 상황과 시간을 지배하고 다스리며 스스로가 천국을 만들어 누리는 지혜롭고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예수님을 온전히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정말로 우리가 천국의 은총을 온전히 누리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심령과 가정속에 온전히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뭐 너무나 당연한 말씀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천지만물의 창조주로써 모든 생명과 기쁨과 자유와 평강과 위로의 근원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과 평강과 기쁨과 위로의 근원이신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면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반면에 죄와 무지와 어둠과 욕심과 질투와 근심과 염려와 이런 어둔 것들로 채워져 있는 우리 심령속에 주님의 생명과 사랑과 은혜로 채움으로 그런 어둔 것들을 몰아내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 아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요15:11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른다고 하였는데 무엇을 이른다는 말씀입니까? 그것은 이 말씀 바로 앞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는다는 것입니다.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 기쁨이 충만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이니까 기쁨이니까 평강이니까 그 예수님 안에 있으면, 그 사랑안에 살아가면, 그 말씀을 지키면 당연히 기쁨이 충만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혹자는 하나님 없이도 행복하게만 잘만 살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그것은 마약에 취하고, 술에 취한 자나 혹은 미친사람이 누리는 즐거움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마약이나 술에 취하면 어떻게 됩니까? 감각이 무디어집니다. 감각이 무디어 지면 어떻습니까? 슬픔이나 고통이나 죄나 고통에 대한 의식도 희미해집니다. 그래서 근심걱정도 잠시 잊게 되고, 죄의식도 사라집니다. 그래서 술에 취하면 추하고 악한 행동을 서슴없이 하게 됩니다. 미친 사람은 어떻습니까? 머리는 제멋대로 흐트러지고, 때가 꼬지지하고, 옷은 더럽고 너덜거리고 하면서도 히죽거리며 좋아합니다. 하나님 없는 기쁨이 바로 그와같은 것입니다. 죄에 취해서 악을 행하면서도 좋다고 그럽니다. 무지속에 갇혀서 멸망의 길로 가면서 알지 못한채 희희낙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을 모시고 그 말씀과 가치와 방법대로 살아갈때에 거기에 이 땅에서의 천국이 있고 영원한 천국이 있습니다. 하나님없는 인생,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는 인생에게는 결단코 행복이 없습니다. 본인들은 행복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단지 무지한 자아에 속고, 사탄에 속고 있는 것 뿐인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형통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고,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같고,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심령과 가정 위에 분명히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평강과 사랑과 위로와 소망이 넘칩니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기쁨이 충만합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와 기쁨으로 살게 됩니다. 그래서 심령이 평안하고 가정이 평안하고 범사에 잘 되는 가운데 천국의 은총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정말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의 중심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온전히 모셔 들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통치권이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속에 온전하게 이루어지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 방법대로 살아갈때에 모든 생명과 복과 평안과 위로와 기쁨과 행복의 근원이신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에 가득하여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의 기쁨을 풍성하게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부부가 서로 섬겨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진정한 천국의 삶을 살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가정이 평안해야 합니다. 가정에 천국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하고 돈많이 벌고 공부많이 해도 가정이 평안하고 행복하지 않으면 절대로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지상 천국의 삶을 살려면 가정이 평안하고 행복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선은 가정의 핵심 주체인 부부가 서로 존중하고 섬기며 사랑해야 합니다. 부부관계가 아름답게 성결하게 이루어지면 그 가정 전체가 평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부부관계가 아름답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물론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창2:18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지으실 때 돕는 배필로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돕는 배필이 뭡니까? 말 그대로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물론 도와준다는 것은 상대방으로 봐서는 도움을 받는 것이지만 여기서의 강조점은 도와주는 것입니다. 즉 배우자를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존재로 여기지 말고 내가 배우자의 필요를 채워주는 존재로 살라는 것입니다. 서로를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수단으로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끊임없이 서로 요구하게 되고 그러면 그 가정의 평안은 깨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를 채워주려고 하다보면 결국 너의 필요도 채워지고 나의 필요도 채워지고 그러면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실상은 너무 당연한 일 아닙니까? 부부가 가정의 출발점입니다. 부부가 인류공동체의 핵심입니다. 인류공동체의 모든 출발점은 부부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부부만큼 중요한 관계는 없습니다. 실제로 부부만큼 가깝고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가 어디에 있습니까? 부부만큼 늘 가까이서 함께하며 좋은 친구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심지어는 자녀라 할지라도 부부만큼 항상 함께 하면서 서로에게 위로와 기쁨과 힘과 도움이 될 수는 없습니다. 부부는 그야말로 죽을 때까지 함께하며 인생의 모든 희노애락을 함께하는 가장 가깝고 가장 소중하고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닙니까? 그러니 이 너무나 가깝고 너무나 소중한 인생의 동반자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고 존중히 여기며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정말 부부간에 정말로 소중히 여기고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부부는 서로에게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나 귀한 사람입니다. 너무나 고마운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진실로 사랑하며 서로가 내가 당신의 필요를 채워주겠노라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정말 부부관계가 아름답게 이루지고 그럴 때 결국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고 나라가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부부간에 정말 서로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고 아끼고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를 채워주는 존재로 살아갈때에 사랑과 기쁨과 감사와 은혜가 넘치는 천국가정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자녀를 말씀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천국의 은총을 누리며 살려면 먼저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또한 자녀를 말씀과 사랑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잘 양육하여 우리 모든 자녀들이 예수님을 심령속에 온전히 모셔들이고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삶의 양식을 따라 살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자녀가 천국의 은총을 누리게 되고, 그 가정이 행복해지고 나아가서는 다음 세대의 가정이 바로 서고, 결국 사회전체가 아름답고 복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부모들 혹은 기성세대가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저 자녀들이 잘 먹고 잘 살게 하는데만 몰두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물론 잘 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하여 힘쓰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잘먹고 잘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도외시 한 채 그저 외적인 풍요로움만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영성과 인성과 지성을 가지고 위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교육을 해야 하는데 그저 남보다 편하게 대접받으며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영성과 인성에 문제가 생기고 자녀도 행복하지 못하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문제가 생기고, 더 나아가서는 많은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엡6:4절의 말씀을 보세요.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그저 맨날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면서 세상 공부만 시키지 말고, 그저 세상 공부만 시키는데 온갖 것을 다 쏟아붓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랑하는 자녀가 영적, 인격적, 지적으로 올바르게 성장하여 영성과 인성과 지성을 고루 갖춘 올바른 지성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물론 자녀 자신이 행복하고 가정에 평안과 기쁨과 소망이 있고 나아가 이 사회가 아름답고 복된 사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물론 자녀들에게 공부도 열심히 시켜야 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잘되라고 죽어라고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먼저 정말 아름답고 복되고 진실하고 거룩하고 의로운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하도록 더욱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든 자녀들이 영성과 인성과 지성과 감성을 고루 갖춘 올바른 인격체가 되어 주님도 기쁘시게 해드리고 남에게도 기쁨을 주며 자시니도 진정한 인생의 가치와 기쁨과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는 모든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5.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천국의 은총을 누리기 위하여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자녀는 부모님을 공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 공경과 더불어 인간이 지켜야 할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규범이기 때문에 이것이 안되면 인류는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엡6:2,3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약속있는 첫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약속있는 첫 계명이란 십계명 중 인간에 대한 계명중 첫 번째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인데 그 계명을 따라 부모님을 바르게 공경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님 공경이 첫계명이라는 것은 결국 부모님 공경이 인간 윤리의 기본이며 근간이며 뼈대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런지는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아실 것입니다. 부모님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내게 생명을 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 한가지만으로도 공경받고 섬김받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게다가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헌신적으로 양육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이 없이는 나 자신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런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근본을 부정하는 것으로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와같이 부모님 공경은 인륜의 근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한 계명 중에 첫째로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을 때는 하나님께서 징계하신다고 하셨고, 반대로 부모님을 공경할 때에는 하나님으 놀라운 축복으로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뭐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부모님을 공경하는 인륜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명령중 제일 첫째되는 명령입니다. 그렇게 인륜의 근본을 바르게 지키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부모님을 공경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그 삶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얼마나 성실하겠습니까? 그러면 세상에서도 얼마나 인정을 받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향기나는 삶을 보면서 어찌 복을 부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말씀을 기억하고 먼저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속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모셔들이시기 바랍니다. 또한 부부가 정말 사랑하고 아끼고 귀히 여기며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과 말씀과 기도로 양육하고 자녀는 몸과 마음과 물질로 부모님을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속에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천국의 은총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 복된 가정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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