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생의 계절


인생에도 계절이 있습니다. 때를 따라서 성장하는 봄의 계절이 있고,
성장하여 가정을 이루고 직장을 가지며 사회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여름의 계절이 있습니다.

인생의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가을이 오면 인생의 열매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나 추수할 것이 없는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고 허송세월한 것을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런 인생의 가을이 꼭 나이가 50세, 60세가 되어서만
오는 것은 아닙니다. 젊어서도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뒤만 돌아보는 사람은 가을에 사는 인간입니다.

미래를 향하여 의욕을 가지고 추구할 것이 없다면, 나이가 20 이든 80 이든 그 나이와는 상관이 없이 가을에 사는 인생인 것입니다.
젊은이에게도 인생의 겨울이 옵니다. 하는 일마다 좌절감을 느끼고
인생을 살 가치가 없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이 곧 인생의 겨울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생의 계절을 어떻게 하면 가을이나 겨울에서
봄이나 여름으로 돌이킬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
비로소 인생의 계절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가을이나 겨울인 인생의 계절을 봄, 여름으로 바꾸어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라
(이사야 55:6~7)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도서 12:1)


2. 어떤 병사의 희생
지금부터 십 몇년 전, 병원에 해산하러 간 한 산모가 복부수술을 하여
애기를 꺼내려 했으나 너무 허약해서 수술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의사가 수혈을 하려고 검사해보니까 그녀의 혈액형이 10만 명에 한 명 있을까 말까한 RH네거티브형이었습니다.

그래서 신문에 이런 혈액형을 가진 사람을 구하는 기사를 냈는데, 이 신문을 본 한 병사가 병원을 찾아왔습니다. 곧 같은 혈액형을 가진 그 병사의 피를 뽑아 그 여인에게 수혈하였고 그 여인은 옥동자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병사는 피를 너무 많이 뽑아 결국에는 죽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기 생명을 내어놓기까지 희생한 이 병사의 죽음을 보고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바로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그 귀한 피(생명)를 주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그 분의 피 때문에 새로운 힘을 얻어 소생하게 된 것입니다.
죄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는 날 사랑하시고 생명을 주신 예수님,
그 분을 믿고 영접하면, 그 약한 여인이 옥동자를 얻고 새로운 삶을 얻은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과 큰 은혜를 내리실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한일서 3:16)


3. 희망이 주는 가능성

1864년 1마일을 4분 50초에 뛴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단축해보려고 애를 썼지만, 1945년에 4분 1초까지를 기록하고 그 이상의 좋은 기록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근 100여년 동안 4분의 벽을 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인간은 절대로 1마일을 4분 이내에 뛸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1945년 어느 외과 의사가 사람도 4분 이내에 1마일을 뛸 수 있다는
의학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근 100년 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번도 4분 이내에 뛴 사람이 없었는데 그 발표 후 만 2년 동안에
127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1마일을 4분 이내로 뛰고 말았습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희망이 있는 사람은 위대한 가능성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을 주십니다.
새로운 삶에의 희망은 누구도 깰 수 없다고 믿었던 죽음의 벽을 깨고
영생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3)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2)

4. 네게 있는 것

미국에 햄크스라는 광부가 광산에서 일하다가 부상하여 두 눈이 멀게되고, 두 손이 다 떨어져 불구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는 매우 절망하여 금식 자살을 계획하였습니다. 그러던 때에 예일대학의 유명한 교수가 설교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방청하러 갔습니다. 그 때 설교자의 사람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이 있다ꡓ라는 말을 듣고 설교가 끝난 후 그 교수를 만나 나같이 눈도 없고 손도 없는 사람에게 무슨 사명이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교수는 당신에게는 아직 입과 귀와 발이 있지 않습니까?
눈과 손은 없을지라도 있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햄크스는 이 말에 희망을 가지게되고 하나님을 믿고 자기에게 입과 귀와 발을 남겨 준 것에 감사하며 스텐퍼드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미국의 유명한 강연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타고난 능력이 없다, 가진 것이 없다,
배운 것이 없다는 등등의 이유를 대며 절망하거나 포기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우리에게는 너무나 주어진 것이 많습니다.
정상적인 육체와 정상적인 가정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친구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현재 닥치고 있는 어려운 일들을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께 감사하는데서 나오는 줄 아시기 바랍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기 23:10)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10)

5. 무얼 위해 일하세요.

우리의 인생을 24시간으로 볼 때 당신은 지금 몇 시쯤에 이르셨는지요?
잠시,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세요 과연 무엇을 위해 일해오셨습니까?
그래서 만족함을 얻으셨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ꡓ (시편 90:10)

당신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이만큼 살아왔듯이 그렇게 삶은 지나가버릴 것입니다.
이렇게 날아가는 듯한 삶의 시간 속에서 정말 가치있고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재물이나 명예나 성공 쾌락은 죽음과 동시에 소멸될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당신과 함께 하실 분이십니다.

바쁜 일상에 쫓겨서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는 것을 미루어 오셨습니까?
지금,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들이세요. 내일이면 너무 늦을지 모르니까요.

6. 자신 있습니까?

어이구... 정말 자신 있으세요. 옷 가를 살포시 적시는 가랑비라면
가뿐한 마음으로 맞을 수도 있겠지요. 좀 세차게 내리는 소나기라도
그 정도쯤이야 충분히 피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예사로운 비 정도가 아니라 거대하게 쏟아져 내리는 폭풍우라면
그래도 자신있으신지요? 질풍노도와 같이 뇌성폭우와 같이 무섭게 달려들며 당신의 삶에 요구하는 수많은 어려움들, 고뇌, 죽음의 문제들을 당신의 힘과 노력으로, 지식과 재물로 해결해 보려고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지혜와 지식과 재주로 얻은 소득을 지키기 위해 쉬지 못함과 근심함이 누구를 위함이 됩니까. 애씀과 수고로 얻은 돈도 명예도 건강도 사람들까지.
덧없이 흘러가 버리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요.

이제 당신이 그렇게 의지하던 우산을 접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받아들이십시오.
그분과 함께 하는 인생이라면 밤낮없는 수고가 헛되지 아니하며, 미움없는
평안이 사는 날 동안 함께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7.주저앉아 있을 겁니까?

병원을 눈앞에 두고도 힘이 들다고 불친절 하다고 이런 저런 이유로 고칠 수 있는 병을 그냥 포기하고 말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많은 상처 무거운
짐을 그대로 안고 그저 주저앉아 계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오십시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누가복음 5:31, 32)

너무 죄가 많아서 교회에 갈수 없다구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불러 구원시키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그리스도앞에 나와 당신의 모든 상처와 질병, 삶의 고통을 내어 맡기십시오. 정말, 깨끗하게 회복되는 기쁨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8. 구경만 하실 겁니까?

올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왜 바라만 보고 계세요.
무언가 하고 싶지 않았던 일 또는 용기가 나지 않던 일을
힘을 내어 실행하고 마무리 짓게 될 때 이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크게
후회할 뻔했어라고 말할 정도로 만족감과 보람을 느껴 보신 일 있으십니까?

어둡고 음침한 골짜기를 벗어나기 위해 혹, 내키지 않는 걸음이라도
사다리를 오르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푸른 초장,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듯이
어둡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당신이 빛되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참된 기쁨과 자유를 얻는 보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이 긴 사다리를 오르는 것과 같이
내키지 않는 일 일수도 있겠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는
그것과는 비할 수 없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진리되신 예수그리스도 앞에 나오십시요.
그분은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소망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2

9.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

인생은 나그네길?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가는 목적지도 모르면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어디론가 가고 있지 않습니까?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 이니라ꡓ (잠언27:1)

인생은 급속히 무정히 왔다가 가버립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찬란한 기회들도 가버립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당신의 친한 친구가, 당신의 사랑하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당신 곁을 떠나
어디론가 가버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몸은 무덤에 묻혔지만
그는 어디로 갔습니까?

당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당신은 어디로 갈까요? 영원히 말입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ꡓ (전도서12:1)

늦기 전에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영생의 길이 있습니다.

10. 행복을 찾고 계십니까 ?

많은 사람들은 돈, 쾌락, 건강, 명예, 권력들을 도구로
삼아 행복을 누리려 합니다.

그러나 행복의 길은 ......
돈이 행복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막상 돈을 가지고 보면, 돈으로 인한 문제들이 더 많이 발생하게 됩니다.

돈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재산상속으로 형제가 싸우며 친구를
버리는 것을 보십시오. 그럼 쾌락에 있을까요?

쾌락 속에는 언제나 허전함이 뒤따르고 더 큰 쾌락을 추구하다가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권력과 명예도 아닙니다.

권력자들은 자기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불안과 초조 속에 지냅니다.
세상의 명예를 얻어도 마음의 공허를 메울 수는 없습니다.

예수 안에는 평화와 만족과 기쁨, 그리고 생명이 있습니다.
지금 예수 안에서 행복을 발견하십시오.

그분은 말씀하십니다.너의 행복과 기쁨을 너로부터 앗아갈 자는 없느니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사도행전 16:31)

11. 착각 속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

지금 당신은 이러한 착각 속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없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내세는 없다. 나는 죄인이 아니다.
양심껏 착하게 살면 구원받을 것이다.라는 착각 속에 계실런지 모릅니다.

당신의 그 착각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 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선행과 철학, 미신등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노력하지만 이 모두가 헛된 것이며
어리석은 행동인 것입니다.

당신은 이제 착각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이미 예수께서 당신의 죄 값을
다 치르시고 영생을 주셨는데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다면
그 책임은 당신 자신에게 있습니다.

지금 이순간 예수님을 향해 마음의 문을 활짝 여십시요!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사도행전 4:12 )

12. 당신의 인생버스는?

사람들은 어디론가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타고 있는 인생버스는 어디를 향해가고 있을까요?
죄악과 절망,그리고 분노와 고통으로 점철된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든 사람은 죄의 결과인 심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를 죄의 심판으로 부터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망설이지 마십시오. 지금껏 타고온 버스가 잘못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면
영생으로 달려가는 인생버스로 즉시 갈아타십시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13.되돌아 오는 것

어느날 저녁 아빠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엄마에게 핀잔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옆에 있는 형에게 1달 전에 깬 유리창 값을 용돈에서 빼겠다고
하십니다. 엄마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나는 형으로부터 꿀밤 한대를 맞았습니다.

어휴, 신경질 나!나는 밖으로 나가, 잠자고 있는 바둑이를
발로 한대 차 주었습니다. 나에게는 동생이 없거든요.

다음날 아침,어? 이 구두가 왜 이 모양이야?"
바둑이가 마구 물어 뜯은 구두 한 짝을 들고 아빠는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서 계셨습니다. 당신이 인생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을 때
당신은 과연 무엇이 되돌아오길 바랍니까?

당신이 선택하고, 실천했던 것. 바로 그것이 돌아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선택해 보십시오. 영생이 우리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누가복음 12:20)

14.병아리를 살리고 죽은 암탉

옛날 어떤 농가에서 닭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마침 닭들이 마당에서 한가롭게 모이를 쪼아 먹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늘을 날고 있던 독수리가 닭을 채가려고 쏜살같이 내려와 닭을
움켜 쥐었습니다. 이것을 본 농부가 놀라서 막대기를 들고 달려왔습니다.
독수리는 암탉을 채어가려다 그냥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암탉은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농부가 암탉을 들어보니
그 날개 아래에 병아리가 살아 있었습니다. 병아리의 머리에는 어미닭의
피가 묻어 있었지만 병아리는 한 마리도 죽지 않고 살아 있었습니다.

암탉이 죽음으로 보호하여 병아리를 살린 것입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우리를 모으시고 품으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보혈을 흘리심으로 우리가 죄에서 사함을 받고 살게 된 것입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십시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시편 116: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 심이니라. (요한 복음 3:16)

15 . 오해

키씽이라는 이름의 물고기를 본적이 있으십니까?
그 물고기는 이름 그대로 자주 뽀뽀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ꡒ저 물고기 두 마리는 사이가 좋은 모양이야." 라고 생각한답니다.

그러나 사실 그 두마리의 물고기는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얼마나 재미있는 사실입니까? 사람들의 세계에선 애정표현의 한가지인 뽀뽀가
물고기의 세계에선 공격과, 위협의 표현이 될 수 있다니 말입니다.

사람들의 오해는 물고기에 관해서 뿐만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만물,모든 사람들을 오해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듯합니다.
특히 성경에 대해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알지 못하므로 오해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오해를 인정하고 진실을 알고자 노력할 때에
진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자 원하십니까? 가까운 교회를 찾으십시오!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것을 시인하
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요한일서 4: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1서 4:7-8)

16. 영혼의 오아시스를 찾으십시오 .

사막지역의 오아시스는 生의 귀한 도구입니다. 오아시스는 사막의 모래와 뜻하지 않게 일어나는 광풍과 태양열에 둘러싸여 있으나 그 곳은 안전한 안식처입니다.

당신은 영혼의 사막지대에서 헤매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여러 염려와 근심, 불안 때문에 평온한 내적 평화를 잃어버린 적은 없으십니까?

영혼의 오아시스를 찾으십시요.
참 평안과 기쁨 그리고 참된 안식을 제공하는 영혼의 오아시스 예수 그리스도의
품안에 안기십시요. 당신이 오아시스를 찾아 다니기 보다 당신을 찾고 부르는
오아시스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십시요.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4:14)

17. 행복만들기

에덴 동산에 신혼 살림을 차린 아담과 하와. 낮이든 밤이든 함께 하는 금슬 좋은 그들의 모습은 모든 동물들에게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어느날 밤, 아담은 하와의 출생 비밀에 대해 입을 열었습니다.
여보, 하와, 당신은 하나님이 내 갈비뼈로 만드셨어.
뭐, 뭐예요. 그럼 나는 당신의 갈비뼈? 그래요. 내가 잠든 사이에
갈비뼈 하나를 꺼내 당신을 빚어 주셨다오.

예?......
이 말을 들은 하와는 다음날부터 안절부절 했습니다.
아담의 일거수 일투족에 깊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산책만 다녀와도 항상 아담의 갈비뼈 수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혹시나 다른 하와가 또 만들어졌을까봐서 라나요.

신뢰감은 관계형성의 제1조건입니다. 서로 믿고 신뢰하며 인정해주는 것은
큰 행복과 큰 기쁨의 원천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사람은
행복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행복을 찾고 싶으십니까? 예수께로 오십시오.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주는 선하사 사유하기를 즐기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시편 86:4-5)


18. 소년과 강아지

한 소년이 엄마와 함께 애완용 개를 파는 가게에 갔습니다.
주인은 귀엽고 털이 보송보송 한 예쁜 강아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년은 주인이 보여준 강아지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가게 구석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는 강아지만을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소년이 사랑스런 손짓을 하자 강아지는 주인을 만난 듯 뛰어왔습니다.
그런데 강아지는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며 오고 있었습니다.

엄마, 나 이 강아지 사주세요.그래, 이 강아지가 그렇게도
갖고 싶니? 그러자 주인이 말했습니다.

이 강아지는 다리가 아파서 너와 같이 뛰어 놀 수 없을 거야.
전 그래도 이 강아지가 사랑스럽고 좋아요, 아저씨.
소년은 강아지를 품에 안고서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절름발이 강아지를 안고 가는 그 소년의 뒷모습을 보는 주인은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소년 역시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며 걷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셔서 고통과 아픔을 경험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당하는 여러가지 고통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가 이해하지 못하는 아픔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고통과 아픔을 가지고 예수께 나오십시오.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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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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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지의 손 예화

믿음은 어떤 왕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 내어민 한 거지의 손과도 같아요. 이 거지는(저도) 수년 전에 깨끗하지 못하고 무가치한 손을 내밀어 영생의 선물을 받았어요. 그 때 저는 이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었어요. 지금도 자격이 없어요. 그러나 저는 영생을 갖고 있어요! 은혜로 얻었어요! (가능하면 그 집안의 장식품 중 가까이 있는 것 하나를 예화 중의 선물로 사용한다. 미리 그것을 오른손에 들고 있다가 믿음은 어떤 왕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 내어민...하는 대목에서 왼손을 내어민 다음 예화를 마칠 때 내밀고 있던 왼손으로 그 선물을 받는다.)


♣ 인간의 능력 한계 - 넒이 뛰기

여기 이 의자와 탁자를 엄청나게 깊은 협곡 양편에 깍아지른듯이 마주 보고 서 있는 두 절벽이라고 생각해 보자. 이 두 절벽 사이의 넓이는 100m라고 해두자. 이제 협곡 이편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아온 모든 사람들과 또 앞으로 태어날 모든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고 하자. 임박한 위험으로부터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다 협곡 저편으로 건너가야만 한다고 생각해 보자. 만일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할 경우에는 다 죽고 말 것이다. 그들은 넓이 뛰기를 해서 이쪽 절벽에서 저쪽 절벽으로 건너가야만 하게 되어 있다. 현재까지 수립된 넓이 뛰기 세계 기록은 과연 얼마인지 아는가? 고작해야 8.4m에서 9m 사이일 뿐이다! 전체 인류 가운데서 100m 넓이의 협곡을 건너뛸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말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무도 이처럼 넓은 협곡을 건너뛸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6m 이상 뛸 수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불과 몇 미터밖에는 못뛸 것이다. 불구자들은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절벽 끝에서 굴러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저편까지 건너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저편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중간에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 것이다.

인간의 영적인 상황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인간과 하나님의 나라 사이에는 깊은 협곡 혹은 구렁이 끼어 있다. 사람들은 그 협곡을 건너뛰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사람들은 교회에 나가기도 하고 십계명도 지키고 고의로 남을 해치지 않고 가능한 한 협곡 이편에서 저편으로 멀리 뛰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저자 자신의 과거 생활이었다. 그것은 저자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멀리 뛰려고 애를 쓴 생활이었다! 저자는 다른 여러 사람들보다도 더 멀리 뛸 수 있다는 데에서 위로를 얻고 있었다. 저자는 하나님이 가장 멀리 뛰는 사람을 받아주실 것으로 생각했었다. 저자는 아무도 완전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최선을 다한 사람을 받아주실 것으로 생각했었다. 저자는 하나님이 그의 표준을 낮추어 주실 것으로 생각했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비례식 채점을 하실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전체 인간의 능력에 비례해서 채점을 하지는 않으신다! 저자는 과거의 생각이 잘못임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오직 한 가지 표준, 곧 완전의 표준을 갖고 계실 뿐이다.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의 온전(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완전)하라"고 하셨다. 나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순간적으로 저자는 저자만큼 선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여 내가 무시했던 사람들도 결코 저자보다 못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동일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얼마나 선하든지 간에 우리 앞에 가로놓인 협곡을 건너뛸 수 있을 만큼 선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모두 다 동일한 영원의 죽음을 맞아야 할 운명에 놓여있다. 우리가 천국에 갈 만큼 선하게 되지 않는다면 모두 다 지옥에 갈 것이다. 우리가 다른 길을 통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그 협곡을 건너갈 수가 없다.


♣ 하나님의 거룩하심 - 음이 맞지 않는 악기

어떤 음악회에서 관현악단이 연주를 하는데 악기 하나가 음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자. 여기서 지휘자가 관현악단 전체를 밖으로 내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음이 맞지 않는 악기는 내보내야 할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영적인 관계를 생각할 때 우리는 마치 음이 맞지 않는 악기와도 같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나 우리는 불의하다. 하나님은 완전하시나 우리는 불완전하다. 하나님은 죄가 없으시나 우리는 죄로 가득 차 있다. 관현악단이 온전한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음이 맞지 않는 악기를 내보내야 하듯이 자기 자신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고 계시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도 죄 때문에 그와 함께 있을 수 없는 인간을 내어 보내셔야만 한다. 하나님은 죄와 공존하실 수가 없다. 하나님은 죄인과도 교제하실 수가 없는 분이다. 그는 절대 완전하시고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분이다.


♣ 의자 예화(변형된)

(선생님), 이 의자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지요? 그럼 이 의자가 저를 편히 쉬게 해줄 수 있다는 사실도 믿으시지요? 그러나 저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 때문에 편안하지 않아요. 그것은 제가 이 의자 위에 앉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한동안 저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이와 마찬가지였어요.

송구스럽지만 이 의자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저는 한동안 이 의자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믿은 것과 마찬가지로 그 분이 실제로 계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또 이 의자가 저를 편히 쉬게 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은 것과 같이 그분이 저를 도와주실 수 있다는 것도 믿었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에게 일어나는 재정문제, 가족문제, 결정을 내리는 문제, 여행의 안전문제 등(성경책,열쇠,함께 성장해요,볼펜을 하나씩 의자에 내려놓는다) 일시적인 문제들이 생길 때마다 문제들만 예수님께 맡겼습니다. 그러나 제 자신은 여전히 예수님께 맡기지 않았습니다. 힘들고 피곤했습니다. 그것은 제 자신의 선행이 천국에 들어가게 해 줄 것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생을 얻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제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이 모든 문제를 안은 채 (의자 위에 있는 물건을 한꺼번에 든다) 저를 예수님께 맡겼습니다 (의자 위에 앉는다). 비로소 저는 영생을 얻었습니다. 얼마나 평안하고 기뻤는지 모릅니다(벅찬 감격과 기쁜 모습으로).
(선생님) 조금 전에 하나님이 (선생님)을 천국에 들여보내야 하는 이유를 물으실 때 (선생님)이 어떻게 대답하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보지요. (선생님)은 "최선을 다 해서... 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셨는데 (선생님)의 대답에서는 누구만 강조되고 있습니까?
"나"이지요?
그 대답을 하실 때 누가 (선생님)을 천국에 들어가게 해 줄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까?
"(선생님) 자신"이었지요?
이제 영생을 얻으려면 (선생님)의 신뢰의 대상을 (선생님) 자신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옮겨야만 합니다.


♣ 하나님의 의로우심 - 아레오바고의 재판관

그리이스(희랍)의 아테네에있는 아레오바고의 재판관은 얼마나 공정한 재판을 베풀었던지 그의 불의한 처사를 지적할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그의 판결은 항상 공명정대한 것으로 입증이 되었다. 하물며 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은 얼마나 더 공명정대하겠는가!


♣ 하나님의 거룩하심 - 유산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는 만삭이 거의 다 되어 유산을 한 어머니와 태아 사이의 관계와도 같다. 복중에서 아이가 자라는 동안 어머니는 그 아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그 아이가 태어나서 함께 지낼 날을 기대하였다. 그런데 그 아이의 생리 구조에 이상이 생겨서 어머니의 생리 구조에 실제로 역행하는 현상이 일어나 유산을 하고 말았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영적인 관계를 설명해 준다. 인간은 실제로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하여 불화를 초래하였다. 이제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인 인간을 내어 쫓으셔야만 한다. 하나님은 아직도 인간을 사랑하신다. 그러나 만일 인간이 계속해서 하나님과 함께 남아 있으면 하나님의 완전성이 파괴되어 하나님은 더 이상 하나님이 되실 수가 없을 것이다.


♣ 그리스도의 사역-인간이 처한 궁지의 해결책

우리에게는 인간이 처한 궁지를 해결할 공식이 있다. 인간의 죄에 하나님의 공의를 더하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라는 답밖에는 안나온다. 우리는 마땅히 그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여기에 더해야 할 요소가 또 하나 있다. 우리가 만일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공의에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더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답이 나온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죄 값을 대신하여 갚으셔야 했던 것이다.


♣ 인간의 능력한계 - 탱자나무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킬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본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데에 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킬 내적인 능력이 없다. 어떤 사람의 집 마당가에 탱자나무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탱자나무는 고작해야 시디신 탱자를 맺는다. 그런데 만일 그 집 주인이 귤을 키우고 싶은 나머지 마당가의 탱자나무에서 신탱자를 다 따내고 그 자리에 달콤하고 즙이 많은 귤들을 가져다가 매달아 두었다고 하자. 잠시 동안은 그 탱자나무에 동네에서 가장 맛이 좋은 귤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눈에는 그것이 "귤"나무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실상 그것은 어디까지나 귤들을 매달아 놓은 탱자나무일 뿐이다. 우리가 나무의 본성을 바꿀 수는 없다.

우리 인간의 본성은 시디신 탱자와도 같다. 우리는 자주 그 본성을 싫어하여 그것을 개선할 결심을 한다. 우리는 그 시디신 인간 본성의 열매들을 다 내버리려고 온갖 애를 쓴다. 어떤 사람은 술을 끊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말조심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가족관계와 사업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한다. 이 모든 일들은 탱자를 따내고 그 자리에 귤을 매달아 두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나쁜 습관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기른다. 그러나 이것이 삶의 원천을 바꾸어 놓지는 못한다. 우리의 본성은 우리의 결심과 개선의 노력으로 바꾸어 놓을 수가 없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선하게 바꾸어 놓을 수 없는 것은 탱자나무를 귤나무로 바꾸어 놓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성품이 필요하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다.


♣ 인간의 능력 한계 - 민족의 혈통

우리가 만일 다른 나라에 이민을 간다면 우선 그 나라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을 배우고 또 그 나라 사람들의 관습을 익히게 될 것이다. 그 나라에 정착하여 불편 없이 살아가려면 그 나라 사람들의 말과 관습뿐만 아니라 사고방식과 생활방식까지도 철저히 익혀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얼굴 표정도, 몸짓도, 옷 입은 것도 그 나라 사람들과 같아진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혈통마저 같아질 수 있겠는가? 그럴 수는 없다. 우리가 무슨 수를 쓴다 해도 우리 자신이 지닌 민족의 혈통을 바꾸어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그것은 영적인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과 똑같은 말을 하고 그리스도인과 똑같은 옷을 입을 수 있다. 그가 그리스도인의 단체에 가입을 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부르는 찬송을 부르고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인과 똑같은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중에 어느 것도 그를 그리스도인으로 바꾸어 놓을 수는 없다. 그는 죄에 빠진 인류의 혈통을 이어받고 태어난 죄인일 뿐이다. 그가 아무리 외적인 노력을 한다고 해도 이 사실을 바꾸어 놓을 수는 없다.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야 한국인이 되듯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나야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다른 민족의 혈통을 받고 또 다시 태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능치 못하실 일이 없으신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는 있다. 거듭난 사람들은 자기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의지한다.


♣ 하나님의 자비 - 토마스 후커의 임종

토마스 후커(Thomas Hooker, 1586? - 1647, 영국 케임브리지 출신의 목사로서 1633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 보스톤에 이민 온 후 1636년에는 현재 예일 대학이 있는 커넥티커트 주의 뉴 헤이븐에 재정착하였고 초기 미국의 교계와 정계의 지도자로서 큰 몫을 담당하였다: 역자 주)의 임종시에 그의 친구 하나가 말하기를 "자네는 이제 수고의 대가를 받으러 가는구만" 하였다. 토마스 후커는 겸손히 대답하기를 "아닐세, 하나님의 자비를 받으러 간다네"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가 필요할 뿐이다. 자비를 얻지 못하면 잃어버린 자가 된다. 하나님의 공의는 우리에게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안겨준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은혜는 우리에게 천국을 안겨준다.

1860년 어느날 미국의 나이애가라 폭포에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하여 줄타기의 명수 블론딘(Blondin)이 폭포 위로 매어 놓은 줄을 타고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너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블론딘은 무섭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 위로 50m 정도의 높이에 300m 정도의 밧줄을 매어 놓고 수도 없이 건너다닌 경력이 있었다. 이날은 블론딘이 군중을 향해서 자기가 사람 하나를 데리고 건너갈 수 있다는 것을 믿느냐고 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사람들은 모두 불론딘의 말에 동의하였다. 이에 그는 어떤 사람 앞에 다가가서 그를 등에 업고 폭포를 건너겠다고 제의했다. 그 사람은 불론딘의 제의를 거절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지식적인 동의나 설사 그것을 말로써 표현한다 하더라도 그 자체만을 가지고는 충분치 못하다. 거기에는 힘이 아닌 신뢰가 따라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믿고 의지하는 신뢰가 따라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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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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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행 - 친구의 선물

영생은 순수한 선물처럼 값없이 받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돈을 많이 내고 공로를 쌓고 종교적인 행위로 어떤 자격을 얻는다 해도 그것으로 천국의 영생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의 소중한 친구가 귀한 선물을 준비해 가지고 와서 (선생님)을 깜짝 놀래주려고 하는데 (선생님)이 즉시 지갑을 꺼내들고 선물 값 얼마를 갚기 위해 돈을 만지작거린다면 얼마나 모욕적인 행동이겠습니까! 선물은 값없이 거저 받아야만 선물입니다. 한푼이라도 지불을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선물이 아닙니다. 천국의 영생을 얻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 죄의 정의

죄를 생각할 때 우리는 단지 강도나 살인이나 간음 등을 염두에 둘 때가 많아요.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모든 것이 다 죄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성미를 부리거나 도둑질을 하는 등,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한 것도 죄예요. 또 기도를 하지 않거나 성경을 읽지 않거나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지 않는 등,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도 역시 죄예요. 죄는 행동으로만 짓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 욕설, 정욕, 교만, 미움 등 생각과 말로도 짓게 돼요. 성경은 이 모든 것이 죄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 하루 세번의 죄 예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하루에 열 번이나 다섯 번 혹은 단지 세 번의 죄만 짓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니, 그런 사람은 걸어다니는 천사나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하루에 세 번 이상을 불친절한 생각을 하거나 화를 내거나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본분을 어기는 일이 없다면 그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이처럼 선하다 할지라도 일년이면 그가 줄잡아 1천번의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70평생을 산다면 그가 하나님의 법을 7만번이나 어긴 범죄 기록을 갖게 될 것입니다. 형사법원에서 7만번의 범죄기록을 가진 상습범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 보십시오! 틀림없이 중형을 받겠지요. 그렇다면 이와 같은 죄인인 우리가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 썩은 계란이 들어간 요리 예화

우리가 싱싱한 계란 다섯개에 썩은 계란 하나를 섞어서 요리하여 손님에게 대접하고 그것을 기꺼이 받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사람들은 선하다고 생각할 것들이 많이 들어 있을지 모르나 실상은 부패한 생각과 행위로 가득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이 그것을 기쁘게 받으시리라고 기대할 수는 더욱 없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선행으로 천국에 가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완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표준은 언제든지 그에게 완전히 순종해야 된다는 것이고 결국 우리는 모두 다 이 표준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선생님)이나 저나 또 어느 누구라도 왜 행위를 가지고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가를 이해하시겠지요?


♣ 은행강도 예화

어떤 무장강도가 은행에서 5백 만원을 털었다고 생각해봅시다. 비밀 카메라가 그 현장을 포착했고 은행 직원들과 그 밖의 목격자들이 피의자를 확인했습니다. 판사 앞에 선 피의자는 범행을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가 죄를 졌습니다." 하고 자백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강도가 "판사님, 제가 강도 짓을 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돈도 그대로 돌려드렸고 또 아무도 해치지 않았으니 저를 이대로 풀어주신다면 다시는 은행을 털지 않겠습니다."하고 말했다고 합시다. 판사가 만일 그를 풀어준다면 그가 과연 공정한 판사이겠습니까?
판사가 지켜야 할 공정한 표준이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강도를 풀어준다면 세상에 온전히 남을 은행이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판사도 정의 때문에 범법자를 벌해야만 한다면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더 죄를 벌하셔야만 하겠습니까!
성경이 형벌 받을 자를 결단코 면죄하지 않으리라고 말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 죄를 기록한 책 예화

제 오른손에 있는 이 책이 제 삶을 아주 상세히 기록해 둔 책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여기에는 제가 지은 모든 죄와, 제가 한 모든 말과, 제 마음에 스쳐간 모든 생각과, 제가 한 모든 행위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책을 들어 올린다) 문제가 있습니다. 이 책에 기록된 제 죄가 (책을 왼손 손바닥에 올려 놓는다)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왼손 손등을 가리킨다) 사랑하지만 제 죄는 (왼손 손바닥 위의 책을 가리킨다) 미워하셔서 반드시 벌하셔야만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이 세상에 (오른손을 위로 들었다가 책을 든 왼손의 위치와 나란히 내려 놓는다.) 보내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 대목에서 단번에 분명한 동작으로 왼손의 책을 오른손에 옮겨 놓는다.) 라고 했습니다.(사 53 : 6)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제 모든 죄가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에게로 옮겨졌습니다. 예수께서는 친히 나무에 달려 자기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벧전 2 : 24) 그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되어 계시다가 (책을 무릎에 내려 놓는다)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선생님)과 저를 위한 처소를 마련하시기 위해 승천하셨습니다. 이제 그는 천국의 영생을 (선생님)과 저에게 선물로 제시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 테텔레스타이 예화

그런데 저는 부모된 입장에서 깜짝 놀랄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에게 맞고 고난을 당하셨으며 하나님이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진노 곧 하나님의 무한한 진노를 당하셨습니다. 드디어 최후의 죄값이 치러졌을 때 예수께서는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문에는 이 말이 흥미 있는 낱말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테텔레스타이라는 상업 용어로서 "완불되었다, 빚이 다 갚아졌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 천국문을 여는 열쇠 예화

믿음은 천국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선생님)도 이와 같은 열쇠꾸러미를 갖고 있을 것입니다. 이 열쇠들은 다소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열쇠들을 가지고 우리 집 현관문에 가서 다 시험을 해보면 제 열쇠를 찾아야만 문을 열 수가 있습니다. 다른 열쇠로도 문이 열릴것이라고 아무리 믿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바른 열쇠라야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천국문을 여는 바른 열쇠는 구원 얻는 참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천국문을 열어 줍니다. 그 참 믿음이 아닌 다른 믿음이 천국문을 열어 주리라고 아무리 진실하게 믿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얻는 참 믿음은 무엇일까요?


♣ 역사상의 어떤 사실들에 대한 지식적 동의

어떤 사람들은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을 믿는 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들은 그가 실제로 이 땅 위에 살았던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그가 역사상의 실제 인물이었으나 지금 그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지는 않습니다.


♣ 귀신예화

성경은 말하기를 귀신들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성경은 말씀하기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2:19)고 했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 얻는 참 믿음이 아닙니다. 가다라 지방의 귀신들린 사람 속에 들어있던 귀신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마 8:29)했습니다. 귀신들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은 구원을 얻지 못했습니다.


♣ 일시적/ 현세적 믿음

사람들이 구원 얻는 믿음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선생님)이 재정적인 문제로 주님을 의지할 때 그것은 재정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가족을 돌아보아 주시도록 주님을 의지할 때는 그것은 가족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무슨 결정을 내리는 일을 도와주시도록 주님을 의지할 때는 그것을 결정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행할 때 (선생님)은 여행믿음을 갖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다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믿음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다 일시적인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문제들이 일단 해결되거나 지나가고 나면 (선생님)은 더 이상 그 일로 주님을 의지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다 이생의 것들, 곧 잠시 있다 지나갈 이 세상의 것들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 모든 일시적인 문제들을 위해서 주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 얻는 참 믿음은 (선생님)을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만을 영원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 경건생활의 동기 예화

프린스턴 대학교의 이전 총장은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젊어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 나머지의 모든 생애는 단순히 그 날에 덧붙여진 하나의 덤으로서 ' 주님 그 때 내게 주신 것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경건생활 동기는 영생에 대한 감사에 있어요.
*고후 5 :14 -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 그리스도의 사역-인간이 처한 궁지의 해결책

우리에게는 인간이 처한 궁지를 해결할 공식이 있다. 인간의 죄에 하나님의 공의를 더하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라는 답밖에는 안나온다. 우리는 마땅히 그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여기에 더해야 할 요소가 또 하나 있다. 우리가 만일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공의에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더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답이 나온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죄 값을 대신하여 갚으셔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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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 직전의 몸부림치는 회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빌1장20절)

사랑하는 성도님들과 회원님 여러분!
제가 엠마오교회를 담임하던 2004년 여름날 저녁에 충주에
내려가서 우리교회 집사님 아버님이 누워계시는 의료원으
로 찾아간 시간이 밤 11시였고, 중환자실로 들어가서 환자
를 살펴보니 의학적으로는 이해가 안될만큼 버티고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담당 의사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합니다.

제가 늦은 시간에 그 할아버지에게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권사님(감리교성도임)! 저 알아보시겠습니까?
눈은 이미 가려져 있는 상태였고, 입에도 산소기가 꽃여있
어서 말은 못하시지만 행동은 할 수 있었기에 말을 건네며
그 분의 오른 손을 살며시 쥐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교회 성도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백성이니 저의 성도라
고도 생각하고 또한 서울에 올라와 계실 때에 우리교회에서
며칠을 함께 하실 때 제 생명을 걸고 기도했던 분입니다.
이제 와서보니 이 세상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시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면서 무엇인
가 갈망하는 모습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이제 이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이 세상에서 있었
던 모든 일들을 다 잊게 하시고 회개할 수 있도록 잠시나마
정신을 돌이켜 주옵소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입성할 수
있도록 하여주옵소서! 하실 수만 있으시면 지금이라도 이
어르신을 살려주시어서 믿지 않는 그의 많은 식구들이 믿음
을 가질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병실에서 잠깐 말씀을 읽어드리고는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하시고 평안히 눈을 감으세요, 이 세상은 더러운 죄악의
옷이 가득하지만 이제 새로운 세상의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
으시면 그곳은 너무도 아름답고 기쁨이 넘치는 곳이랍니다.
시간이 있을 때에 하지못한 회개가 있으시면 하세요,
제 말을 알아들으시면 제 손을 꼭 잡으세요, 그랬드니 힘없
는 왼손까지 저의 손을 꼭 잡고 두 손으로 힘을 주는 것입니
다.
눈물을 흘리며 병실을 나와서 여관에 몸을 의탁하고 그 다음
날 점심시간에 운명하시는 마지막 모습을 제가 지켜보고 요
단강을 잘 건너시게 기도를 하고 오후에 소천예배를 드리고
올라왔습니다.

제가 그 분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참으로 사람이 삶에 대한
애착이 그렇게도 강할 수가 있을까? 라는 것입니다. 아마 그
분도 마지막 몸부림으로 회개를 하시고 평안하게 가셨으리
라고 봅니다. 아니 믿습니다.
사람이란 언제인가는 죽습니다.
죽기 전에 보통 사람들은 유언을 하지요, 그런데 그 유언이
회개가 섞인 유언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선 가장 기뻐하신답
니다.

어느 교회의 장로님이 임종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그는 찾아오신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처음에 몸져 누울 때는 온통 내 몸의 고통에만 마
음이 쓰였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내가 죽고 난 뒤에 내 아내
와 아이들이 어떻게 살지 그것이 걱정이 되더군요"

장로님은 숨을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에 대한 걱정도 조금 지나니까 그리 걱정이
되지 않더군요 어떻게든 살아가겠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쪽은 마음이 놓입니다.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두니까 제 생각
은 온통 주님의 얼굴을 어떻게 뵈올런지 그것이 걱정될 뿐
입니다."

그러면서 그 장로님은 회개하는 심정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목사님, 일전에 예배당을 신축할 때 제가 나서서 자꾸 연
기할 것을 주장했던일이 무척이나 마음에 걸립니다.
겉으로 내세우는 이유와는 달리 사실은 제가 헌금을 하고
싶지 않는 마음에서 그렇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 때 일을 생
각하면 제가 주님 앞에 서서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부끄
럽습니다."

그 장로님은 돈이 많은 분으로서 교인들은 은근히 그분이
예배당을 짓는데에 헌금을 많이 하기를 기대하였을 것입니
다. 장로라는 체면이 있으니까 겉으로 내놓고 헌금을 하기
싫다고는 못하고 다른 이유들을 내세워서 교회의 신축을
반대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임종을 앞둔 시각에 그때의 일이 새삼스레
떠오르면서 주님께 죄송스런 마음으로 안타까워했던 것입니
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께서 조금만 더 생명을 연장해 주
신다면 지금이라도 전심 전력을 다 해서 예배당 짓는일에 힘
쓰고 그런 다음에 하나님을 뵈었으면 좋겠다고 눈물을 흘리
면서 말을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입니다.
자신은 남보기에 잘 믿는 성도같지만 자신의 내면에 감추인
것은 남이 보지를 못하니까, 자기 생각대로 일을 이끌고 나
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시기에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둘 때는 하나님이 무서워서 자신이 물질을 하나님보
다 더 사랑하였던 일들을 후회하게 된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반드시 이러한 일에서 승리를 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갔을 때 하나님 만나보기에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이 만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어르신이 분명 하늘나라에 입성하셨으
리라 믿으면서 말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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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남편 전도 7계명

벧전 3: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 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제일교회에는 남편들을 전도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내들을 위한 ‘아 내의 프로포즈’라는 집회가 있습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 중의 70%정도가 여성인데 그들 중 30%정도는 남 편이 교회를 다니지 않거나 교회에 부정적입니다. 그런데 남편을 이 집 회에 참석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아내가 다음과 같은 ‘7가지 약속을 남 편에게’ 해야 합니다.


1. 나는 남편을 진심으로 섬기겠습니다.
2. 나의 자아와 고정관념도 버리겠습니다.
3. 신앙문제로 남편과 다투지 않겠습니다.
4. 어떤 순간에도 남편을 남편으로 인정하겠습니다.
5. 출퇴근 하는 남편에게 사랑으로 힘을 불어넣어 주겠습니다.
6. 하루에 2번씩 남편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7.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기다리겠습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배우자의 전도는 더더욱 깊은 사랑과 섬김으로 해 야 합니다. 그만큼 가족을 전도하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 만, 사랑과 섬김으로 이루어진 전도는 내 가족을 나보다 더 훌륭한 그 리스도의 일꾼으로 세울 수 있는 통로가 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 던 예수님의 심정으로 배우자를 더욱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십시오. 반 드시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주님!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더 친절하고 정중하게 하소서.
이와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아내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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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의 열정 / 마음이 상하고 불행한 사람

 


  1973년 존 맥스웰 목사는 회심자가 없는 메마른 강단을 가진 그의 교회로 인해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는 토마스 로드 침례교회에서 열린 "말씀의 검 사경회"(Conference of the Sword of the Lord)에 참석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하나님과 씨름했습니다.

“주님,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않는 주일이 결코 없는 교회가 되도록 해주십시오.”

맥스웰은 평균 418명이 출석하는 자기 교회의 모든 성도를 격려하여 한 해 동안 418명을 더 전도해서 836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만들어 보겠다며, 제리 포웰 목사와 사경회에 참석한 모든 회중들 앞에서 전도헌신카드를 작성하고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먼저 한 해 동안 200명 이상을 주님께 인도할 것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그의 회중들 역시 맥스웰 목사의 도전을 받아들여 강한 부흥이 일어나길 갈망하며 전도에 동참했습니다.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맥스웰 자신이 인도한 사람만 186명이 되었습니다. 그의 한 가지 꿈인 “주님,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않는 주일이 결코 없는 교회가 되도록 해주십시오”라는 꿈이 실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침내 418명이 모이던 교회는 5천 명 이상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꿈은 이제 불가능해진 것일까요? 아직도 하나님께서는 영혼구령의 꿈을 꾸는 자들을 축복하실 수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우리들의 헌신을 축복하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십니다.


  지난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저를 “김구령(救靈)”이라고 불러주셨던 청소년시절이 있었습니다. 전도를 많이 해서 마이크 페퍼 선교사님이 붙여준 이름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나를 김구령으로 불러주지 않습니다. 그 이름이 그립습니다. 아니 그 이름에 걸 맞는 삶이 그립습니다.


  저 뿐 아니라 많은 목사님들이 수많은 영혼을 주님 앞에 인도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낮과 밤을 따지지 않고, 보상을 생각하지 않고 전도하여 많은 사람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시키던 감격의 날들이 있었습니다. 텅 빈 교회당을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습니까!  “나는 마음이 상한 사람입니다. 나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누구의 고백일까요?  「Passion for Souls」에서 오스왈드 스미스(Oswald Smith)가 했던 탄식입니다. 그의 아픔이 담긴 기도를 끝까지 들어봅시다.


“나는 마음이 상한 사람입니다. 참으로 나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생각할 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영혼의 고귀함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영혼들이 구원받지 않는다면 나는 살 수 없습니다. 오, 주님 제게 영혼을 주옵소서. 아니면 죽음을 주옵소서(I am a broken-hearted man; yes, indeed, I am an unhappy man; not for myself, but on account of others. God has given me such a sight of the value of precious souls that I cannot live if souls are not saved. Oh give me souls, or else I die!”(Passion for Souls, 32).


이 고백은 영혼이 구원받지 않는 교회들을 향한 성령님의 고백이자, 전도와 부흥에 목말라하는  우리 성서침례교회 목회자들의 고백임에 틀림없습니다.

  저는 아주 오래 된 일기장을 꺼내들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한국교회가 100년 전 평양 대 부흥을 돌아보고, 회개와 전도의 부흥이 한국전역을 휩쓸었던 그런 부흥을 사모하듯이, 저에겐 제가 다시 경험해야할 저만의 부흥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33년 전의 전도일기 몇 토막을 옮겨봅니다.

 

00년 5월 12일  주일.  오후 1시 반. 맑음

5천원을 들여 「영혼구령」이라는 대형전도지를 만들었다. 예배를 마치고 빨리 점심을 먹고 우리는 모였다. 목사님, 장선생님, 서집사님, 어린이들, 나, 이렇게 모여서 서동시장으로 가서 양하흥 목사님께서 20분 정도 말씀을 전했다. 장소가 좁아 시장 골목으로 들어가서 또 찬송을 부르며 어른들과 어린이들을 모았다. 뜨거운 햇빛아래 목사님의 말씀을 많은 영혼이 관심을 두고 듣고 있었다. 전도를 마치고 모든 어린이들과 함께 교회로 와서 3시 30분에 예배드렸다. 주님을 믿겠다는 어린이들 중 내가 이름을 기록한 것은 다음과 같다. (이하생략)  총 14명 전도.

 

00년 5월 13일 월. 맑음

교회에 6시에 모였다. 목사님, 서집사님, 만길 형제, 어린이들과 함께 어제 전도했던 그 다음 골목으로 나갔다. 더 많은 어른들이 관심을 쏟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목사님의 메시지를 많이 듣지는 않았다. 얼마의 어린이들이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마치고 어린이들을 데리고 교회 와서 주님을 믿고자하는 어린이들을 상담하고 이름을 적었다. 22명이 교회에 왔다. 집에 오니 저녁 8시 15분이 되었다.

나는 노방전도를 통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주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먼저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겠다. 전도할 것을 생각하면 먼저 두려운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했다. 그가 자만하며 태만했기 때문이라 한다. 전도를 위해 기도하지 않고 준비하지 못했다. 절대적(으로)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어린이들을 통해 나는 너무나 놀라웠고 힘을 얻는다. 부끄럽고, 두려운 것도 없는 어린이들은 모든 사람에게 담대하다. 그들을 바라 볼 때 나는 새로운 힘을 얻을 수가 있었다.


00년 6월 24일, 월. 맑음.

목사님 댁에서 식사를 한 후 6시 15분 교회를 출발했다. 장소는 금사동, (전도)요원은 목사님, 사모님, 서집사님, 최자매님등이다. 나는 나 자신을 잊은 채 모든 사람에게 간절히 예수님을 믿도록 권면했다. 성백선이란 학생(중 1)을 구령했다. 장소를 옮겨 금사동 깊숙한 데서 찬송을 부르며 복음을 전했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였다. 결신자수는 어린이 56명, 장년 9명, 합계 65명이었다.

 

 

00. 6. 25 화 맑음.

반송교회 이봉윤 목사님도 (전도에 동참하러) 오셨다. 금사동 학교 뒤서 시작했다. 은혜스런 가운데 결신자는 어린이와 중학생 합쳐서 30명되었다. 그곳에서 떠나 금사동 사거리로 가서 내가 시작했다. 나의 부족한 탓으로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못했으나 나는 최선을 다했다. 주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어린이 결신자 25명, 학생 2명 이날 총 57명이 결신하였다. “감히 나 같은 것이, 배우지 못했으며, 악하고, 못난, 나 같은 것이 주를 증거하다니, 주를 위해서 사용 받다니 감사합니다.”


결산: 00년 5월 12일에 시작해서 그 해 여름방학까지 전도한 숫자 661명.


  하나님은 전도의 도구로 어린이들과 집사님들과 소위 신학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던 어린 청소년이었던 저까지 사용하셨던 것을 봅니다. 하지만 과거(過去)를 돌아보기만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 전도자의 삶이 다시 회복되길 소원합니다. 오늘 현재(現在)와 미래가 전도와 부흥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주안교회 안강자 전도왕이 우리 00교회에서 전도 간증을 한 적이 있는데 이 분은 그 동안 총 10,844명을 전도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영혼이 그냥 주님께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며 <포기하지 않는 전도>를 강조했습니다. 안강자 전도왕의 경험을 들어봅시다. 

  “포기하지 마세요.”

  “저는 또 전도하러 갔습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다시 갔습니다.”

  “죽길 각오하고 가면 됩니다.”

  “은행이건, 시장이건, 어디서든지 간에 전도했습니다.”

  “추운 겨울에 물바가지를 두 번이나 맞았습니다.”

  “몸을 사리지 마세요!”

  “찾아가고 또 찾아가세요. 인내하고 희생을 참아야 합니다. 전도를 하다보면 불필요한 오해와 냉대를 당할 수 있으나 이것도 극복해야 합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우선 눈물의 미끼가 필요합니다. 눈물처럼 위대한 전도를 이루는 것은 없습니다. 깡패였던 청년을 주안역에서 전도를 하다가 많이 맞았는데 그 아픔을 참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그를 위해 기도하며 전도하여 변화시켜 필리핀 선교사로 파송하였습니다.”


   이런 열정이 장로교도들에게 더 많이 있다는 것이 질투가 나지 않습니까? 감리교의 설립자 요한 웨슬레 역시 구령의 열정으로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오늘 노팅햄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가는 도중에 노상강도를 만났습니다. 나는 그에게 전도했습니다.”   리차드 백스터는 이렇게 그의 열정을 표현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죽어가는 사람에게 설교하듯이 나는 다시는 전도할 수 없는 심정으로 설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전서 9장에서 말합니다. “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죄짓는 것 말고는 무엇이든지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전도의 열정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우리  수백, 수천 명을 주님께 인도한 전도왕들이 나오길 사모합니다. 우리들이 먼저 회복해야 할 한 가지 일은 매주 한 영혼 이상을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전도자(Soul Winner)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일주일 중에 단 하루 만이라도 온전히 전도에 헌신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전도에 헌신할 준비가 됐습니까? 하나님은 누군가의 헌신을 축복하실 준비를 이미 끝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전도현장에서 구원의 능력을 입증해 보일 준비가 다 되어있습니다.

 

 “나는 마음이 상한 사람입니다. 참으로 나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생각할 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영혼의 고귀함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영혼들이 구원받지 않는다면 나는 살 수 없습니다. 오, 주님 제게 영혼을 주옵소서. 아니면 죽음을 주옵소서”(오스왈드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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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비 전도편지 사역 세미나 1

성공적인 전도를 하려면


질문) 여러분 중에 교회 나오시게 될 때 스스로 처음부터 나오게 되신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우리는 대부분 누군가의 전도에 의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전도해본 경험이 얼마나 되십니까?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삶을 4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기도, 말씀, 교제, 전도이다.


기도, 말씀, 교제는 우리가 잘합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통하는 데가 있다. 그러나 전도는 전혀 다른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한다. 저들과 전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전해야 한다.

전도가 중요하고 꼭 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하여서는 인정하면서도 막상 잘 안되는 것이 전도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찍 포기를 한다. 전도는 은사가 아니고 명령이다.


오늘은 전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까지의 전도방법을 분석해보고,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1) 전도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우리를 전도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전도에 대한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쉬운 표현으로 말한다면 "불신자를 회개시켜 예수 믿게 하는 것"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신자란 "육은 살아 있으나 영혼이 죽은 사람이다" (요일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일단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는 전도의 대상은 "불신자"들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끼리끼리 잘 모입니다. 이유는 서로 잘 통하기 때문입니다. 노름하는 사람은 그들끼리 통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업가는 사업가끼리 잘 통합니다. 농사짓는 사람은 농사짓는 사람끼리 잘 통합니다. 생각하는 것이 비슷하고 추구하는 것이 비슷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들과 잘 통합니다. 말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 그리고 추구하는 것이 같습니다.

기도, 말씀, 교제는 모두다 그리스도인들과 잘 통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도 잘 통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이런 일들을 하는데는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이 이런 것은 우리에게 솔직히 재미도 있습니다. 그리고 할수록 은혜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삶에서 유독 전도만은 독립적인 것입니다.

기도 말씀 교제는 대상자가 하나님이고 성도입니다. 그런데 전도는 대상자가 불신자입니다. 우리와 생각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릅니다. 삶의 목적도 다릅니다. 그러므로 상대를 하면 잘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답답합니다. 그래서 전도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분들 중에도 보면 기도 말씀 교제는 잘하는데 전도는 잘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일단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의 전도 대상자는 불신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결국 우리가 전도를 잘 하려면 우리는 불신자에 대하여서 잘 알아야 합니다.

 

2) 우리가 알고 있는 전도의 방법

대부분 전도하면 아는 사람이든지 아니면 모르는 사람에게 접근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교회로 초청을 하든지 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대표적인 방법들을 보면, 노방 전도(서울역 지하철역에서 전도하는 모습), 축호 전도(가정집을 찾아가는 전도), 그리고 전도지를 사용한 배포 등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도지의 내용들을 보면 대부분 죄, 천국, 지옥, 심판, 죽음 등의 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글은 너무나 중요하고 귀한 진리들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단어들입니다. 금방 이해가 되고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들입니다. 그러나 불신자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너무나도 생소한 내용들입니다. 이해되지 않는 단어들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전혀 생소한 말들입니다.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전도지를 받아들면 당연히 거부적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되고 또 중요한 단어들이지만 불신자들에게는 어려운 말들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대부분 우리의 입장에서 전도를 하였다. 즉 전도하는 사람의 수준과 입장에서 불신자에게 접근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 한지가 오래되어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들끼리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말이지만 불신자의 입장에서는 어려운 말들이고 이해되지 않는 말들을 가지고 전도하려고 하였던 것이 지금까지의 전도방법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불신자들의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우리 입장에서 전도를 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선포하든지 강요하든지 하여 전달하였다. 전도에 있어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성경은 마10:16절이다. "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우리는 이 말씀을 너무 소홀히 하였다고 생각한다.

딤후4:2의 말씀과 마10:16절의 말씀을 서로 보완하여 "항상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게 전도" 하는 것이 성경적인 전도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3) 전도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전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어렵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해야 하는 일이지만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란 생각을 먼저 한다. 이것은 특별히 훈련받은 사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성경을 많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이 할 수 있다는 생각, 기도를 잘하는 사람이 할 수 있다는 생각, 말을 잘 하는 사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십자가, 천국, 믿음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관심사이다. 그러나 불신자들에게는 이것이 너무나 생소한 이야기이며, 저들에게는 무관심의 대상이다. 저들에게 무관심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한다는 것은 저들의 관심을 가져오기보다는 거부감을 가져오게 한다. 지금까지의 전도를 통해서는 오히려 거부감을 가져온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4) 성공적인 전도를 하기 위한 전략

전쟁에서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수적이다. 우리가 전도를 한다는 것은 영적인 전쟁과 같은 것이다. 사단의 편에 있는 불신자를 하나님의 편으로 만드는 일이다. 사단은 필사적으로 자기의 수하에 있는 불신자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최악의 발악을 할 것인데 우리가 승리하여서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전략으로 공격해야 한다.

이슬비 전도 편지는 바로 이러한 전도 전략 중에 하나이다. 이슬비 전도 편지 전략은 가장 한국적인 전도 방법이라고 확신을 한다. 이것은 확실히 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 전략이다. 이슬비 전도 편지 전략의 성경적인 근거는 마13:1-23 에 두고 있다. 성경적인 이슬비 전도편지의 전략을 우리는 옥토화 작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옥토화 작전이란 : " 모든 전도 대상자의 마음 밭을 먼저 좋은 땅으로 만들고 그 후에 말씀의 씨를 뿌리는 것이다." 마13장에서 말씀의 씨앗이 ? 가지의 땅에 떨어졌는가? 4 가지의 밭이다. 떨어진 씨앗이 결실을 한 땅은 바로 옥토 밭이다. 다른 밭에는 아무리 많이 뿌려도 결실을 하지 못한다. 길가와 같은 마음 밭, 돌밭과 같은 마음 밭, 가시덤불과 같은 마음을 가진 불신자의 마음 밭을 기경 하고 비료를 주고 가꾸어서 말씀의 씨앗이 저들의 마음 밭에 떨어질 때 100배로 결실하게 한다는 작전이다. 옥토 밭을 만들기 위한 작전은 5단계로 시작된다.


제 1단계 작전 - 태신자 잉태하기


태 신자란? "전도자의 마음속에 믿음으로 잉태한 전도대상자"이다. 이렇게 잉태하면 어떻게 됩니까? 나중에 때가 되면 해산을 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한 생명이 탄생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예수님을 믿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태신자를 많이 잉태하는 사람이 많은 생명을 해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 태신자를 잉태하는 방법을 다시 설명 드리겠습니다. 일단은 태신자를 많이 잉태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말씀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밭이 있어야 합니다. 태신자는 바로 이 밭을 말합니다. 문제는 이 밭입니다. 대부분 우리가 잉태한 전도 대상자들의 마음 밭이 옥토가 아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로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길가와 같고, 돌밭과 같고, 가시밭과 같습니다. 지금까지 전도는 이 일을 잘 못했습니다. 그래서 뿌리기는 수도 없이 많이 뿌리고 수고는 많이 하였는데 거두어 들이는 열매는 너무 적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전에 먼저 태신자의 마음 밭을 옥토로 만드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 다음에 복음의 씨를 뿌리면 쉽게 열매를 거두어 들일 수 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두 번째 작전입니다.

 

제 2단계 작전 - 좋은 땅 만들기


우리가 믿음으로 잉태한 태신자들의 마음 밭이 대부분 돌밭, 길가밭, 가시덤불입니다. 좋은 땅을 만나기란 극히 드문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밭을 기경 해서 옥토로 만들어야 합니다. 렘4:3의 말씀을 우리는 적용해야 한다. 어떻게 옥토를 만들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우리가 농사를 짓기 때문에 밭을 옥토로 만드는 일에 대하여서는 잘 아실 것입니다. 일단은 깊이 갈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필요 없는 것들을 골라내고 유기질 비료를 주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유기질 비료가 무엇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장 좋은 비료가 이슬비 전도편지입니다. 우리가 이슬비 전도 편지를 매주 한 통씩 보내는 것이 바로 유기질 비료입니다. 이슬비 전도편지 속에는 다음과 같은 성분의 비료가 들어있습니다.


① 관심의 비료

돌같이 굳어져 있고 딱딱한 마음 밭을 어떻게 기경 할 수 있겠습니까? 저들의 마음 밭을 부드럽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첫 번째는 저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의 특징 중 하나가 고독하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바쁘고 이기적입니다. 그러니 자기와 이해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는 도무지 관심을 주지 않습니다.

이렇게 외로운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전도자만의 특권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관심을 갖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사람은 마음의 문을 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이슬비 전도 편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좋은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고 친필로 ? 자 적어서 마음을 보내면 저들의 마음이 이슬비에 옷이 젖듯이 마음밭이 촉촉하게 젖어 옥토가 될 것입니다.


② 기도의 비료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대화요 교제이다. 성도가 간절히 기도하는 내용을 하나님은 듣고 응답해 주십니다. 기도는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앞으로 우리교회에서 이제 이슬비 전도편지 사역을 위한 기도 카드를 만들어서 교회 입구에 놓게 될 것입니다. 대상자를 위해서 교회 들어오며 나가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한 영혼을 얻는 것은 마귀의 손에서 우리가 빼앗아 오는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영적인 전쟁입니다. 이것은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마귀는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의 손에서 빼앗아 오려면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③ 봉사의 비료

우리는 누구로부터 도움을 받거나 은혜를 입게 되면 잊지 못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지를 잘 못합니다. 태신자의 마음밭을 옥토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봉사가 필요합니다.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봉사가 바로 사랑의 편지를 성실하게 보내는 것입니다. 잉태하고 있는 대상자를 위해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도와 줄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④ 인내의 비료

우리가 한 영혼을 인도하려고 할 때, 몇 번 하다 안되면 마귀는 빨리 그 일을 그만 두게 하고 포기하도록 유혹합니다. 이슬비 전도 편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인내이다. 어렵지 않는 것에는 빨리 포기하지 않는다. 어렵기 때문에 포기하려고 한다. 갈5:6에서 인내하라고 했다. -인내해야 할 이유를 설명- 인내는 자기 자신에게 필요한 비료이다.


제 3단계 작전 - 씨 뿌리기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성급하게 돌밭에다가 길밭에다가 씨앗을 뿌렸다 그러니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슬비 전도 편지의 특징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태신자의 마음을 먼저 옥토로 만든 후에 씨앗을 뿌린다는 것이다. 2단계 좋은 땅 만들기를 계속하는 동안 태신자의 마음이 어느 정도 옥토로 되어있을 때 다음단계에서 이제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① 복음 편지 보내기

옥토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이슬비 사랑의 편지나 이슬비 전도편지를 보내었다. 이것은 사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한 정지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그래서 사랑의 편지나 전도편지를 마치 우유나 스프에 비유한다면 복음 편지는 밥이라고 할 수 있다.

태신자에게 처음에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아름다운 내용의 사랑의 편지나 전도편지를 보내다가 어느 정도 마음의 문이 열렸다는 판단이 설 때 즉 마음 밭이 옥토로 바뀌었다고 생각될 때 복음의 편지를 보내는 것이다. 사실상 사랑의 편지나 전도편지를 1년이고 2년이고 보내는 것은 마음의 밭을 옥토로 만들어서 복음을 전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② 전도자의 간증나누기

예수님 믿어서 축복 받은 경험을 나누는 것입니다. 여기서 축복이라고 할 때는 꼭 물질과 연관시키지 않기를 바랍니다. 물질만이 축복은 절대로 아닙니다. 믿기 전의 내 생활이나 형편과 환경에서 지금 누리고 있는 기쁨과 감사의 생활을 자연스럽게 나누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러분이 이 단계에서 할 일은 자랑을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 자랑에는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 자랑입니다. 두 번째는 교회 자랑입니다. 세 번째는 목사 자랑입니다. 이것은 순서가 바뀌어도 됩니다. 예수님은 좋은 분입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분입니다. 자기 교회를 자랑할 수 없는 성도는 절대로 전도하지 못합니다. 목사 자랑하지 못하는 성도 역시도 전도 못합니다.


③ 만남과 교제

이것은 태신자와 일대일로 만남을 의미한다. 편지를 계속적으로 보내면서 어느 시기에는 만남이 필요하다. 만나서는 부담스럽지 않게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눈다. 만나서 교제하는데는 뭐니뭐니 해도 식사교제가 최고이다. 아니면 간단하게 커피나 차를 마실 수도 있을 것이다. 만나서 일단은 사귐을 통해서 친밀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은혜로운 간증 테잎이나 책들을 선택해서 선물로 보내주기도 한다면 좋을 것입니다.


④ 가족 초청하기

이제는 일대일이 아니라 가족을 전체로 초청을 한다. 간단한 음식이나 아니면 잘 준비해서 대접을 한다. 특별히 화목하고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제 5단계 작전 - 열매 거두기


이슬비 전도 편지 사역의 최종적인 목적은 태신자로 하여금 즐거운 마음으로 자진하여 교회에 나오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조건 기도하고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동기를 부여하는 일을 해야 한다.


① 초청잔치에 인도하기

전도편지나 사랑의 편지를 보내면서 마음문이 열린 상태에 따라서 복음을 전하든지 아니면 권면 해서 아무 때라도 교회로 인도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교회에서 태신자 초청잔치를 할 때에 꼭 참여할 수 있도록 권면하여서 나올 수 있게 한다. (초청잔치는 3개월 혹은 수시로 교회에서 시행한다)


② 복음을 듣게하여 구원으로 인도한다.

주간 중에든지 교회로 인도해서든지 기회가 주어지는 데로 우리는 복음을 전한다.


③ 양육편지 보내기 - 새 신자 통신교육 엽서를 보내면서 양육에 들어간다.

 

④ 상담과 돌보기 - 계속적으로 당분간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돌보아 주어야 한다.

3:7 사역 3개월 동안에 개인적으로 7명을 친하게 알아야 한다


⑤ 이슬비 전도사역에 동참시킨다.

본인의 경험을 살려서 다른 태신자를 위해서 사역에 참여하게 한다. 아직 자신도 어린이지만 말하자면 소년 소녀 가장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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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비 전도편지 사역 세미나 2


복습

 

① 그리스도인의 4 가지 기본적인 삶 : 말씀, 기도, 교제, 전도

② 이슬비 전도하교에서의 전도란 : 불신자를 회개시켜 예수 믿게 하는것

③ 불신자란 어떤 사람인 : 육은 살아있으나 영혼이 죽은 사람이다.

④ 태신자란 : 전도자의 마음속에 믿음으로 잉태한 전도대상자

⑤ 옥토화 작전이란 : 좋은 땅 만들기 작전이다. 방법은 4단계이다.

 

- 태신자 잉태하기, 좋은 땅 만들기(관심. 기도. 봉사. 인내), 씨뿌리기(복음 편지, 간증, 만남과 교제),

열매 거두기(초청잔치에 인도, 구령, 양육, 사역동참)

 

1. 이슬비 전도편지란 무엇인가?


여러분 개인적으로 편지를 받아본 경험이 있습니까? 고지서가 아닌 편지를 받았을 때의 기분이 어떠했습니까? 가장 편지가 그리워지는 곳이 아마도 군대일 것입니다.(경험상)


여러분 편지의 위력이란 대단합니다. 사람은 들어갈 수 없는 집이라도 편지는 그 집에 들어갑니다. 아무리 꼭 닫힌 대문이라도 편지는 대문을 열 수가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신약성서의 대부분이 편지로 되어있습니다. 편지를 통해서 교회와 개인의 영적인 부분이 다루어 졌습니다.

이슬비 전도편지 교육을 받으면서 고민을 한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무엇이냐 하면 이슬비 전도란 무엇인가를 어떻게 한 마디로 설명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되고 무엇이다라는 것이 감이 잡혔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여러분에게 한 마디로 요약해서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도무지 요약이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한마디로 설명하기를 포기하였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설명해서는 안될 문제이다. 최소한 ? 마디는 해야 설명이 되겠다고 결론을 내리고 고민을 끝냈습니다. 그 만큼 이슬비 전도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중요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그 ? 마디를 시작하겠습니다.


1) 이슬비 전도라는 말은 "이슬비"와"전도"라는 두 단어가 합해진 말입니다.

전도라는 말에 대하여서는 설명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슬비라는 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왜 하필이면 "이슬비"인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소낙비" 라고 하든지 아니면 "장대비"도 있는데 말입니다. 이슬비라고 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슬비하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비 같지도 않는 비, 좀 맞아도 괜찮은 비, 금방 옷이 젓지 않는 비, 이슬비에 대하여서는 대부분 무시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소낙비가 내리면 우산을 서든지 우비를 입습니다. 비를 맞지 않습니다. 폭우가 쏟아지면 아에 바깥에 나가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이슬비가 내릴 때는 그냥 비를 맞고도 일을 하든지 길을 걷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다는 생각을 하면서 비를 맞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이슬비에도 옷이 젖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말이 있지요 "이슬비에 속옷이 젖는다" 이 말을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해보면 사람들이 금방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교회를 거부하고 예수님 소리만 들어도 거부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슬비 전도편지란 바로 이런 분들에게 처음에는 예수님, 믿음, 천국, 지옥, 구원, 같은 말을 전혀 하지 않고 그냥 저들이 좋아하는 시, 수필, 칼럼으로 된 엽서로 된 편지를 계속적으로 보내어서 저들의 마음을 즐겁고 편안하게 합니다. 말하자면 그냥 편지를 받아보는 즐거움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태 신자들이 편지를 보내는 사람에 대하여서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여리고 성같이 굳게 닫혀있던 저들의 마음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합니다. 길바닥 같고 돌밭 같은 저들의 마음을 한 통, 두 통 편지가 들어가면서 본인도 모르게 마음 밭을 옥토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슬비에 옷이 젖게 하는 일입니다.

즉 복음을 전하기 전에 복음을 들을 수 있는 마음 밭을 만드는 작업과정이 바로 이슬비 전도 편지 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2) 이슬비 전도란 여리고 작전 전도이다.

수6:1절의 말씀을 보시면"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 없더?quot; 고 되어있습니다. 이 상황은 수2:1에서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명의 정탐꾼을 여리고 성에 보내어서 기생 라합의 집에서 숨어 정탐을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라합의 도움으로 정탐꾼들은 무사히 여리고 성을 빠져나 왔습니다. 이때 여리고 성안에서는 완전히 비상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간첩이 나타났다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여리고 성에는 비상 계엄령이 내려졌고, 성문을 완전히 닫아버린 것입니다. 공격을 대비하였을 것이며 또 다른 침입을 막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여리고 성문이 굳게 닫힌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보면 많은 경우에 불신자들이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복음을 거부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거부합니다.

여러 가지 핑계가 있지만 우리가 가슴 아픈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분들 때문에 오히려 복음이 가리워 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 정도라면 나는 차라리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본이 되고 존경할 분들이 있지만 저들은 핑계거리를 찾습니다. 그래서 불신자의 마음 문이 굳게 닫혀있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습니까? 6:7절을 보면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앞에 서고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돌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칼과 창으로 무장하는 대신에 사랑의 수고와 봉사인 이슬비 전도편지로 무장하여 매주 1통씩 보내면서 태신자의 마음의 성을 계속 도는 것입니다. 그리고 태 신자를 위해서 이름을 불러가면서 열심히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지막 날 나팔을 불었을 때 성이 무너진 것처럼 우리들도 계속해서 편지를 보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저들을 교회로 초청해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 전략입니다.


3) 이슬비 전도란 불신자(태신자)의 눈 높?전도이다.

이슬비 전도는 불신자(태 신자)의 입장에서 출발하는 전도방법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전도를 할 때는 무조건 복음을 전하였다. 전도자의 입장에서 너무나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가지고 불신자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불신자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용어들과 단어들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천국, 지옥, 믿음, 구원 이 모두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태 신자에게는 중요하지도 않고 전혀 새로운 용어들입니다.

전도지에 나오는 내용들이 불신자들에게는 이해도 되지 않았고, 그리고 저들의 관심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해되지 않고, 관심도 없는 내용을 가지고 자꾸 다가가면 불신자들은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오히려 거부하고 귀찮게 여깁니다. 그래서 전도지의 대부분이 쓰레기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슬비 전도 편지는 먼저 이들이 공감하고 이해하고 좋아하는 내용들의 편지를 저들에게 보내어서 저들의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마음 문이 조금씩 열릴 때 복음을 전달해 줌으로 저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전도 전략입니다.


4) 이슬비 전도란 옥토화 전도전략이다.

이것은 지난번 우리가 충분히 들었습니다. 하지만 교육은 반복이니까 다시 한번 요약해 보겠습니다. 돌밭, 길가 밭, 가시밭과 같은 불신자의 마음을 좋은 밭으로 만들어서 복음의 씨앗을 뿌린다는 전도 전략입니다.


5) 이슬비 전도란 불신자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전도이다.

과거 대기업의 판매전략은 고객 만족이 구호였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구호는 고객 감동입니다. 21세기에는 고객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슬비 전도 편지란 태신자 혹은 불신자가 전도자의 사랑과 헌신에 감동을 받아서 교회 한번 나가주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여서 교회로 인도하는 전도 방법입니다.

정해진 날에 지속적으로 서두르지 않고 끊임없이 이슬비 편지를 보내다 보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태신자의 영혼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흥부의 마음으로 거북이 정신을 가지고 한 영혼을 향하여 사랑을 전하는 전도이다. * 흥부의 마음 = 내 이익과 유익에 상관없이 상대방이 잘되기를 원하는 마음, 거북이 정신 =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목표까지 도달하겠다는 정신이다.

이슬비 전도편지는 바로 태 신자의 관심사에서부터 출발하여 우리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세상이야기에서 시작하여 복음을 전해서 교회로 인도하는 전도이다. 이슬비 전도는 가장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전도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적이라는 말은 감성적이다는 이야기다. 정에 약한 한국정서에 꼭 맞는 전도 방법이다.


2. 이슬비 전도편지가 좋은 점


1)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전도하면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이든지 아니면 전도에 특별한 은사가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전도는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슬비 전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당장 복음을 전한 다든지 아니면 예수님에 대하여서 성경을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무조건 접촉점을 찾아서 정성스럽게 엽서만 매주 잘 보내어 주면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교회이야기나 구원이야기나 믿음,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랑을 전하는 엽서만 우편으로 보내면 되는 것이다.


2) 이것은 전도하면서 받는 어려움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전도지를 들고 나가서 전하다 보면 때로는 욕을 얻어먹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맞을 수도 있고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은 자존심을 구기는 일도 생긴다. 얼굴을 붉히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슬비 전도는 엽서만 보내는 것이다. 전혀 이런 문제가 일어날수가 없다


3) 이것은 대상자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태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든지 이웃이든지 친척이든지 친구이든지 아니면 동네 아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가는 약국 식당 세탁소 등등 그리고 나가서 접촉점을 만들기가 너무나 쉽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가서 교회 나오라고 아니면 예수 믿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편지를 받아 보겠느냐고 물어서 주소 성명을 알아서 보내면 되는 것이다.


4) 이것은 누구라도(새신자) 할 수 있는 것이다.


신앙적인 지식이 없어도 교회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성경을 잘 몰라도 얼마든지 이것은 할 수 있는 일이다. 태신자에게 이슬비 전도 편지만 보내주면 되는 것이다. 할아버지에서 유치부에 이르기까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전도이다.


이것은 너무나 쉽다는 것이다. 요즘 전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모두다 바쁘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것은 편지로 보내지는 것이기에 어떤 집에도 들어 갈 수가 있다. 그리고 따뜻하고 포근한 내용과 예쁜 그림 엽서이기에 사람들에게 쉽게 친근할 수 있고 호감을 갖게 할 수 있다.


3. 어떻게 시작 할 것인가?

 

가) 전도대상자 정하기

1) 접촉점용 편지를 가지고 대상자를 만난다. (접촉점 사용법은 다음에)

2) 평소에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분들을 선택한다.

3) 사랑의 편지를 받기 원하는 사람의 이름 주소 전화 인적사항을 구체적으로 기록한다.

 


나) 엽서 보내기

1) 태신자(전도대상자) 카드를 만든다.(이미 교회에서 만들어 놓았음)

2) 태신자에게 맞는 엽서 고르기 (엽서 목록 바인다를 참조한다.)

3) 친필로 인사말을 쓴다. (예문들이 있음)

4) 담당자에게 발송 표와 함께 엽서를 교회에다가 낸다.

5) 매 주 한 통씩 사랑의 엽서를 써서 발송할 것

 


다) 관리하기

1) 3주정도 보낸 후에 전화로 확인을 할 것 (편지가 잘 들어오는지)

2) 4-5주정도 보낸 후에는 직접 찾아가서 일상적인 교제의 시간을 나누면서 사귐을 갖는다.

3) 상황을 보면서 마음이 열리는 것 같으면 교회 참석을 권면해 본다.

4) 교회에서 하는 태신자 초청잔치에 초대를 한다.

5) 서두르지 말고 계속해서 엽서를 보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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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비 전도편지 사역 세미나 3


복습 


①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4가지 삶 - 말씀 기도 교제 전도

② 이슬비 전도학교에서의 전도란 - 불신자 회개시켜 예수믿게 하는 것

③ 불신자란 누구인가 - 육은 살아있으나 영이 죽은 사람

④ 태신자란 누구인가 - 전도자의 마음속에 믿음으로 잉태한 전도대상자

⑤ 이슬비 전도편지란 - . 이슬비와 전도의 합성어다.

. 여리고 작전 전도이다.

. 불신자 눈 높이 전도이다.

. 옥토화 작전 전도이다.

. 불신자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전도이다.

. 흥부의 마음으로 거북이 정신으로 하는 전도이다.

 

이슬비 전도 편지의 우리교회 적용


1) 태신자(전도대상자)를 정해야 한다. 3명 이상 * 원칙은 우리교회로 인도가능한 자

① 연고자 중심으로 태신자 정하기

. 자기와 연관된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써 보라

. 가능성 있는 사람의 이름에 표를 하라


② 접촉점 카드로 태신자 정하기

. 태신자 명단 카드 뒷면에 있는 내용을 참고 한다.

. 기도한 후에 대상에 맞는 접촉점 카드를 가지고 나간다. (어린이, 십대, 청년, 장년)

. 사랑의 편지 내용과 보내는 취지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

(돈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사랑의 편지 나눔회에서 나왔다.)

. 관심을 보이면 이름과 주소 전화 인적사항을 최대한으로 적어온다.


2) 이슬비 전도 편지 쓰기 - 교회당에서 직접 시범을 보임

. 교회에서 준비한 개인용 발송카드(바인더)에 태신자 명단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교회에도 명단을 제출한다.

(전도대상자 명단 인쇄물 사용)

. 개인용 편지 발송카드를 가지고 이슬비 편지함이 있는 곳에 가라 (교회당 뒤쪽)

. 단순하게 선택하되 상대방의 나이 환경상황을 고려해서 골라 써라-(바인다. 편지목록 책)

. 카드에 있는 대로 발송할 이슬비 전도편지의 엽서와 봉투를 꺼내라

. 엽서 뒷면 아래 부분에 친필 메시지를 적어라.(친필 내용 예문을 참고 할 것-사용한 것 표시)

<친필 내용 : 인사, 칭찬, 관심, 사랑, 긍정, 용기, 요약 등>


* 친필 내용을 위해서 개인정보를 최대한 수집하라.

소원목록을 만들라. (태 신자의 입장에서 소원이 될만한 것을 적어 보라)

-학생은 점수, 직장인은 승진, 사업가는 발전, 주부는 자녀, 남편 건강 등등

* 엽서를 적는 일은 집에서 하든지 단체로 교회에서 하든지 상관없음

* 개인용 발송카드에다 편지 보내는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을 할

(친필의 내용 요약, 편지 종류, ? 신인지를 확인)


3) 이슬비 전도 편지 보내기

. 엽서를 봉한 후에 교회 입구에 있는 "발송 확인서" 에다가 기록을 한다.

. 엽서와 발송 확인서를 우체통(화일 박스)에 넣을 것.(수요일 전까지)

. 수납장은 모든 엽서를 수집해서 우표를 붙이고 강단에 갖다 놓는다. (수요예배)

. 교회에서 함께 기도한 후에 목요일 발송을 한다.


4) 열매 거두기

. 2-3주 편지를 보낸 후에 전화로 편지가 잘 들어가는지를 확인할 것

. 4-5주 보낸 후에는 직접 방문을 해서 일상적인 교제를 나누고 사귐을 갖는다.

. 상황을 보면서 마음이 열릴 것 같으면 조심스럽게 교회 출석해볼 것을 권해본다.

. 태신자 초청잔치에 정식으로 초대를 한다.

. 서두르지 않고 계속해서 편지를 보낸다.


5) 계속적인 관리

. 모든 성도는 본인이 직접 3명 이상에게 엽서를 써서 보낸다. - 개인관리 목표 정하기

. 모든 성도는 개인이 보내는 태신자 외에 별도의 태신자를 교회에 제출한다.

- 전도 대상자를 수시로 교회에 제출하여서 엽서를 발송하게 한다. (사역팀 운영)

. 전도팀을 운영하여 접촉점을 계속적으로 맺어서 발송할 수 있게 한다.

 

6) 교회 준비 사항

. 전도대상자 명단 카드(교회, 개인보관용), 사랑의 편지 발송카드, 발송통계표, 이웃초청대상자 명단카드,

태신자 기도막대기 만들기(코팅할 것), 개인 상황판 만들기(사무실벽), 엽서발송대장, 우표구입대장, 엽서구입대장,

. 이슬비 전도 사역팀 구성

팀장, 우체국장, 행정재정국장, 중보기도국장, 대필팀


7) 각 기관별 전도팀 운영

. 여선교회 목요일 심방과 접촉점 맺기

. 청년부 월1회 혹은 분기별로 일산 금촌 지역등지에서 접촉점 맺기

. 학생부 청년부와 같은 방법으로 한 학교씩 접촉점 맺기

. 주일학교 교사별로 학생들을 통한 태신자 잉태하기


8) 접촉점 맺기 실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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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 개인 전도 하는 법   
 
기독교인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이 있다면 단연 전도라 할 수 있다. 전도에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여기서는 개인 전도와 방문 전도를 중심으로 그 방법을 논의하고자 한다.
모든 구원받은 신자는 복음의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 그가 목사이건 집사이건, 성가대원이건 교사이건, 새신자이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사랑과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구원받은 성별된 사람으로서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향기로운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통해 복음의 가치와 구원의 능력을 간접적으로 증거할 수도 있지만 입을 벌려 복음을 구체적으로 증거해야 한다. 개개인 모든 신자가 전도하는 신자가 되기 위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1. 기도해야 한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날 수 없느니라.'
모든 가능성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말씀이다.

내가 개인 전도에 성공하기 위한 중요한 계기가 하나님과 만나 교제하는 동안에 주어진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 6:44)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고삐를 하나님께서 쥐고 계신다.

내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지속적으로 간절하게, 온 마음을 다한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얻는 비결이다. 전도하기 전에 기도하고, 전도하면서 기도하고, 그리고 전도한 후에 기도해야 한다. 기도 외에 다른 방법으로 성공할 수 없다.

올바른 마음 자세를 가지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동기를 가지고 전도하도록, 지혜로운 말씀을 주시도록, 강한 열망을 가지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만날 만한 좋은 사람을 만나고 올바른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나보다 앞서 가시사 그의 마음을 녹여 준비시켜 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사 45:2)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심령의 핵심 되는 문제가 무엇인지 잘 발견하기 위해 기도하고 그에게 적합한 성경구절들을 사용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실마리를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인간의 생명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 사명을 위해 우리에게 성령을 약속하셨다.(눅 11:13, 행 1:8)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나와 함께 계시도록(사 58:8), 그래서 나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승리할 수 있도록, 나의 실수를 메워 주시기를, 내가 뿌린 씨앗이 모두 싹이 나기를, 우리가 수고한 모든 수고의 결실이 맺어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2. 성공은 성령님이 주관하신다.

이 성경구절을 마음에 간직하자.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하나님께서 말할 수 없는 은혜와 능력으로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전도를 위해 성령의 충만을 구하자. 전도라는 우리의 영적인 사역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3. 믿음으로 승리함을 믿자.

믿음은 죽은 자를 살리며 장벽을 제거하고, 잠긴 문을 열고 불가능한 것을 이루며, 개인 전도에 승리를 가져다준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나.'(막 9:23),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사 45:11),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원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4. 성경 말씀을 사용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병기와 같다. 성경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생명의 매체이다. 성경은 통찰력이 있고 예리한 '성령의 검'이다. 말씀이 은밀한 생각들과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찌르고 쪼개고 부수고 태우며 구분한다. 이 성경 말씀을 우리 마음에 먼저 간직하고,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도 나누어주고, 성령 안에서 능력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사용하자.

죄에 대하여­죄인들의 마음과 생활 속에 나타나는 죄의 현상, 죄의식, 악함,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한 성품, 죄의 능력, 죄의 형벌, 그리고 죄에 대한 영원한 파멸에 대해 말하고 있는 성경 말씀들을 들려주자.

생명에 대하여­회개, 죄의 자백, 믿음, 그리스도께 대한 지식 등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성경 말씀들을 사용하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말씀을 사용하라.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5. 우리의 삶과 행동이 깨끗해야 한다.

세상적인 욕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면 안 된다. 마귀의 방법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려고 시도하지 말라.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사 52:11)
우리 속에 죄가 있으면 결코 전도는 안 된다.

6. 내 마음 자세가 중요하다.

내가 만일 형식적으로, 지식적으로, 아무런 감동도 없이, 그리고 영적인 동정심도 없이 전도한다면 실패하고 말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5)
전도는 곧 눈물과 피를 뿌리는 순교의 심정으로 하는 것이다.

7. 지혜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복음을 제시하기 위해 실마리를 지혜롭게 풀어 나가야 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또는 은연중에 기다리다가 눈에 띄지 않게, 경우에 따라 직접적인 방법이 좋을 때도 있다. '그리스도인이십니까?', '거듭나셨습니까?', '구원 받으셨습니까? 아니면 구원받지 못하셨습니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계십니까?' 이런 질문들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계속 거절하고 반대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들이 화를 내거나 불쾌한 표정을 짓고 강력히 거절할 때는 멈추었다가 다른 시간에 다시 접근하도록 하라. 이런 때는 짧은 시간에 복음의 내용을 담은 간략한 메시지가 다른 어떤 방법들보다도 효과적일 경우도 있다.

8. 논쟁하지 말고 주제를 지키며 조용한 곳에서 개인적으로 만나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조용한 곳, 예를 들면 다른 사람들로 인한 방해가 없고 지나치게 시선을 끄는 것이 없는 조용한 방이나 사무실에서 전도하는 것이 좋다. 사람이 많으면 방해꾼이 있다. 다툼은 항상 복음에 대한 그의 주의집중을 흐리게 하며 구원으로부터 멀리 떠나게 한다. 항상 주제에서 벗어나지 말고 예의를 지켜야 한다.

9. 실망하지 말고 구원의 경험을 간증하자.

영혼 구원 사역을 위해서는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실패는 승리를 위해 가치가 있다. 그리스도의 인도를 거절한 사람도 있었다. 죠지 뮬러는 한 사람에게 전도하기 위해 6년 동안을 계속 했다.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사 28:5~6)

이것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영혼을 구원 사역에 헌신한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구원에 대한 간증으로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이 종종 잃어버린 자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지나치게 극적인 간증은 반대의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사용하기 전에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모든 사람의 개심이 바울과 같을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빌립이나 레위의 경우와 비슷하다. '그들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좇으리라.'

민홍기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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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왕 전도법 / 고구마 전도방법

 
고구마 전도법을 들어보셨나요? 전도왕인 과천교회 김기동 안수집사님의 독특한 전도방법입니다. 저는 강의도 들어봤고, 책도 읽어 봤습니다. 아주 쉬운 전도방법이기에 소개드리고 싶습니다. 고구마를 삶을 때 솥뚜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찔러봅니다. 그러면 익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전도할 때도 고구마 찌르듯이 한 마디 던져보면 그 사람이 교회 나올 만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기발한 생각입니다.


솥안의 고구마는 젓가락으로 많이 찌를수록 구멍이 많이 생겨, 빨리 익는다고 합니다. 이것처럼 사람도 한 번 두 번 말씀의 젓가락으로 자꾸 찌르면 교회에 나올 만큼 빨리 익게 된다는 생각이 재미있습니다. 젓가락으로 찌르기 전에 항상 먼저 하는 말이 있답니다. 그것은 사람을 칭찬하는 것입니다. 누구든 좋은 말로 칭찬을 들으면 마음이 많이 열려서 대화가 훨씬 잘 된다고 합니다. 그럼 칭찬을 한 후에 어떤 말씀의 젓가락으로 찔러야 할까요?


먼저 “예수 믿으십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핑계를 댑니다. “우리 집은 불교입니다” “우리 시댁은 제사 지냅니다” “어릴 때나 다녔습니다” “안정되면 믿을 겁니다” 대부분 이런 이유를 댑니다. 여기서 성도는 물러나면 평생 전도 못합니다. 꼭 이렇게 말하세요.

 

“그래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너무 좋습니다”라고 말하세요. 여기서 말을 멈춰야 합니다. 생고구마같은 사람과 논쟁하거나 설득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다음에 다시 기회가 옵니다. 그 때부터는 계속 이렇게 말하세요.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하고 있다는 말에 능력이 있습니다. 물론 정말 그를 위해 기도해야죠. 그러면 그 말에 찔림을 받는 생고구마 같은 사람이 점점 익어가게 될 겁니다.

 

 이 고구마 전도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지식이나 직분과 관계없습니다. 예수 믿으십니까? 그래도 믿어야 합니다! 너무 좋습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네 마디의 말로 전도의 열매를 맺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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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왕 전도법 / 아파트 전도 


아파트 전도

 

전도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 오늘은 아파트 전도 중 아파트 경비실 통과하는 지혜를 생각해 봅시다.

아파트 전도를 할 때 첫 번째 통과해야 할 관문은 아파트 경비실입니다. 삼엄한 경비실! 이것이야말로 전도인들에게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이다. 큰 교회는 각 동마다 성도들이 살고 있어 언제든지 들어 갈 수 있지만 개척 교회 성도들일 경우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은 있습니다.

 

첫째, 연고 작전입니다.

 

 먼저 아파트 상가나 공원에서 사람을 만납니다. 어른이든 어린 이건 전도 대상자를 삼아 연고를 일단 만듭니다. 특히 교회 다니는 분이면 더욱 좋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함께 들어가든지 나중에 그 집 핑계를 대고 들어가면 됩니다.

 

둘째, 설득 작전입니다.

 

 경비원들에게 조그마한 선물이라도 주면 원만하면 통과됩니다. 선물로도 안되면 직접 설득을 하십시오 “내가 선생님께 절대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경비실에 항의가 없도록 하겠으니 한번 믿어 보십시오. 한 번만 들어갔다 오겠습니다” 하는 식으로 설득하면 처음엔 완강하다가 나중엔 거의 통과됩니다. 이런 설득은 남자 보다는 여자가 부드럽게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 때는 들어가서 전도지, 혹은 주보만 돌리고 오십이오. 반드시 경비실에 항의가 없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혹 거칠게 대하는 사람들에게 “죄송합니다 저희 성도 집에 심방 왔다가 가는 길에 한 번 들러 봤습니다” 하고 지혜롭게 응수하면 경비실에는 항의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신용이 생겨 언제든지 들어 갈 수 있게 됩니다.

 

 

셋째, 두더지 작전입니다.

 

이렇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힘들 경우가 있습니다. 지독한 경비원이 버티고 있는 경우는, 최근에 건축된 아파트는 지하 주차장과 아파트 출구가 연결되는 곳이 많습니다. 이 출구는 경비실을 직접 통과하지 않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지하에 주차를 해 놓고 자연스럽게 출입하면 됩니다. 이 때에 한 사람이 경비원과 대화를 하고 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두더지처럼 들어가는 길도 있습니다.

 

또 경비실이 비어 있는 때도 있을 뿐 아니라, 정장 차림으로 성경 찬송을 들고 자연스럽게 “수고하십니다” 하고 가면 내 집 다니듯이 다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경비실을 통과했지만 큰 장벽이 또 있습니다. 집 문을 어떻게 열고 들어가는지 다음주에 말씀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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