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가정 만드는30가지 방법
 

 

1. 기쁨으로 하루를 시작하라. 시작이 좋으면 끝도 좋다.
2. 웃는 얼굴을 하라. 웃는 얼굴은 소망성취의 열쇠다.
3. 한 시간 일찍 일어나라. 부지런함이 절반의 복을 끌어온다.
4. 작은 배려에도 고맙다는 말을 하라. 기쁨충만 행복충만이 보장된다.
5. 정감있는 목소리로 말하라. 거친 소리는 쓰지말라.

6. 좋은 말만 써라. 상처주는 말은 하지말라.
7. 희망만을 말하라. 희망의 나무에만 희망의 꽃이 핀다.
8. 유머를 사용하라. 즐거운 분위기가 기쁨을 증폭시킨다.
9. 조금만 잘해도 크게 칭찬하라. 칭찬을 주고 받는 가정에 사랑이 꽃 핀다.
10. 아파트관리비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기관리비도 책정하라.

 

 

11. 쉬지말고 기도하라. 기도는 신과의 직통전화다.
12. 즐겁게 식사하라. 음식은 생명을 기르는 신의 선물이다.
13. 보약보다 중요한 것은 소식이다. 소식에 앞장 서라.
14. 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라. 그래야 위함을 받는다.
15. 걱정하지 말라. 걱정할 일이 있으면 기뻐할 일도 있다.

16. 하루하루 향상하라. 그날이 그날이면 승산없는 삶이다.
17. 남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노력하라. 그 생각만으로도 행복이 샘솟는다.
18. 좋았던 일만 기록하라. 미래를 성공으로 이끄는 경전이 된다.
19. 잘못은 곧바로 사과하라. 사과를 잘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다.
20. 낭비되는 시간을 찾아내라. 그것만으로도 삶의 시간이 풍요해진다.

 

 

21. 돌다리만 두드리지 말라. 좋은 생각은 곧바로 행동으로 옮겨라.
22. 가족을 즐겁게 하도록 노력하라. 혈연적인 가족만 가족은 아니다.
23. 기념일은 잊지말라. 기념일은 소중한 날이다.
24. 장난으로 한 약속이라도 약속은 꼭 지켜라. 약속은 하늘의 명령이다.
25. 세상을 밝게 보라. 아름다운 내일이 꿈처럼 펼쳐진다.

26. 어떤 일이 있어도 화내지 말라. 화를 내면 화가 닥친다.
27. 좋은 글을 열심히 읽어라. 하늘이 특별히 사랑한다.
28. 보다 나은 방법은 하늘의 별만큼 많다. 그 방법을 찾아내라.
29. 흘러간 세월은 돌이킬 수 없다. 어제에 집착말고 내일을 설계하라.
30. 그냥 자지 말라. 소망이 성취되었음을 마음에 그리면서 잠을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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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단계
 

* 초기단계에서 하는 기도 

 

문제가 생겼을 때만 기도하는 사람이 여기에 속합니다. 

마귀에게 얻어맞고, 가정 문제, 자녀 문제, 경제 문제, 건강 문제 등

마귀의 대목장이 선 다음에야 주여! 주여! 부르짖으며 철야하고 금식하며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 습관처럼 하는 기도


항상 기도하는 단계로 문제가 생기지 않았어도, 철야 기도하고, 금식 기도하며 시간 따라 규칙적으로,

습관적으로 기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기도 시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서, 기도를 저축하여 두는 사람입니다.

 
* 자기와의 싸움을 하는 기도


자기와의 싸움이 시작되는 단계입니다.

항상 기도를 하면 영이 맑아져서 자기를 밝히 보게 되고, 자기의 연약함을 알고, 모든 문제가 누구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바로 나 때문에 생겼다는 것을 알고, 자기를 쳐서 주님께 복종시키는 단계입니다. 

로마서 7장 8-25절의 단계입니다.

 
* 쓰임받기 원하는 기도 


이제부터는 주님의 쓰임을 받는 기도를 하게 되고, 주님이 시키시는 기도를 하게 되고, 내가 계획한 기도가 아니라,

주님의 필요에 따라  내 생각과는 다른 일을 기도하는 주님이 시키시는 기도를 하는 단계입니다.

 
*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는 기도 


이제는 주님이 그 사람과 같이 일을 하는 단계입니다. 

일을 주님이 시키는 단계입니다.

병자를 위하여 안수 기도하면 병자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단계입니다.

많은 능력의 종들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깊은 기도를 한 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적어도 이 기도의 단계가 된 후에 안수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고난 중에 기뻐하는 기도 


고난 중에 기뻐하는 기도 단계입니다. 

나는 죽을 고생을 하나, 주님의 뜻이 이루어짐을 보면서 기뻐하며,

순교나 아니면 순직, 헌신을 하는 기도입니다.
 

* 하나님과 일체되는 기도 


사무엘 같이 기도를 하면, 기도한 그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모든 것이,

그 말 한대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 일체가 되는 단계입니다.

엘리야나 사무엘이나 엘리사 선지자들이 이 기도의 단계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단수를 높여 가면서 깊은 기도를 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서 생활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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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좋은글] 내가 먼저 꼭 해야 할 것 4가지
 

 


첫째, 칭찬을 먼저 하라.

칭찬하려면 상대방의 장점을 발견해야 한다. 
장점 중심으로 사람을 보려고 노력하다 보면 상대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폭은 커지기 마련이다.


둘째, ‘I’ m sorry’ 타이밍을 놓치지 말자. 

진정 잘못했다 느끼는 순간, 외쳐라! 
“I’m sorry”
사과의 말 한마디면 충분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표현을 아껴 
사태를 심각하게 만들지 말자. 


셋째, 마음을 열면 입도 절로 열린다. 

말은 입을 통해서 나오지만 입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마음이다. 
마음을 열면 칭찬 코멘트도 유감의 메시지도 부드럽게 표현할 수 있다. 


넷째, 작은 일을 먼저 도와줘라. 

사소한 관심도 때로는 더 진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기약할 수 없는 다음을 위해 아껴두지 말고 지금 이 순간~!!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주자. 
그만큼 든든한 보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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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영성] 사막의 우울증 치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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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수도사들도 우울해질 때가 있었다. 때로는 장기간에 걸쳐 치명적인 우울에 시달린 수도사들도 있었다. 그들은 우울에 빠지면 텅 빈 마음을 갖게 되고, 다른 사람의 허물에 대해 참아주지 못하고 자주 짜증을 내는 자신을 발견했다. 신앙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이 멀리 계시다고 느끼게 되고, 또 기도를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기도를 드릴 수가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우울을 그냥 두면 사막에서 시간 낭비만 할 뿐이었기에 반드시 처리하는 방법을 알아야 했다. 그들의 경험과 영적 치료법은 우울에 시달리는 이 시대 우리들에게 영감과 유익을 줄 수 있다.

 

시편 찬양으로 우울증을 치료하자

 

사막 원로들은 우울이 어디서 오는가를 관찰했다. 존 카시안에 따르면 우울은 무엇을 잃어버릴 때에 주로 온다고 한다. 예를 들면 마음의 평안을 잃어버리고 분노할 때 우울이 찾아온다. 분노는 우울의 가장 주된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또 사랑하는 사람, 돈이나 중요한 물건을 잃었을 때, 체면을 잃었을 때, 그리고 죄나 실수로 자아존중감을 잃었을 때, 소원이 좌절되고 희망을 잃었을 때, 그리고 이성적인 판단력을 잃었을 때도 슬픔이 찾아온다고 한다.

존 카시안은 모든 종류의 우울이 영성의 적(敵)은 아니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으로 인한 슬픔은 영적 생활에 장애물이 되지만, 자신의 죄에 대해 갖는 슬픔은 영적 발전의 촉매역할을 하여 후에 기쁨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잘못 행한 일을 슬퍼할 때 회개의 열매를 맺게 되고 다른 사람에 대해 인내심을 갖도록 돕는다. 원로들은 과거에 심각한 대죄를 짓고 회개할 경우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심을 믿고 확신을 갖더라도 내면의 슬픔은 계속 가지고 있으라고 조언했다. 그것이 영혼에 유익했기 때문이다.

 

4세기에 가장 존경받았던 수녀원장 신클레티카 또한 비슷한 우울 퇴치법을 가르쳐주었다. “슬픔에는 유익한 슬픔과 파괴적인 슬픔 두 가지가 있다. 우리의 죄로 인하여, 이웃들의 무지함으로 인하여, 참된 선을 얻겠다는 뜻이 약해짐으로 인하여 슬퍼할 때 그 슬픔은 유익하다. 그런데 우리의 원수는 이 슬픔에 한 가지를 추가한다. 까닭 없는 슬픔을 덧붙인다. 우리는 그것을 ‘권태’라고 한다. 그러므로 기도와 찬양으로 이런 슬픔을 몰아내야 한다.”

우울을 앓는 사막 수도사들에게 가장 유익한 치료약은 시편 찬송이었다. 함께 모여 드리는 새벽과 저녁기도회, 그리고 수실에서 여섯 차례나 갖는 개인 기도회에서 매일 100여 편의 시편을 찬양으로 부르면서 기도로 사용했다. 지금도 이집트 사막의 수도사들은 선조들의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시편 중에는 저자가 마음이 가장 심한 슬픔을 경험할 때에 씌어진 것들이 있다. 시편 42, 43편처럼 우울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에 의한 시편도 있고, 시편 88편처럼 슬픔에 푹 빠진 저자가 처음부터 끝 절에 이르기까지 절망과 비탄 속에 주저앉아 부르는 노래도 있다. 심지어 우울을 넘어 저주까지 쏟아놓는 노래들도 있다. 이 모든 시편들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께서 읽으라고 주신 것들이다.

원로 수도사 닐루스는 “기도는 슬픔과 낙심을 치료하는 약”이라고 말했다. 슬픔에 빠진 영혼은 기도를 하고 싶어도 우울이 그렇게 못하도록 작용을 한다. 그때 시편을 읽으면 격려를 받게 될 것이고 개인 기도까지 나아가게 된다. 이것이

사막이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방법이다.

 

소망은 우울의 가장 좋은 약

 

또 하나 사막이 처방한 대표적 우울 치료제로는 소망이 있다. 사막수도사들은 슬픔을 치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약인 이 소망을 훈련하라고 가르친다. 우리 내면의 행복을 잠시 지나가는 부와 지위에 두지 말고 변하지 않고 썩지 않을 것에 두라고 한다. 존 카시안은 죽음 이후 부활과 내세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자주 기억하며 묵상하라고 권했다. 사막의 원로들은 인생을 짧게 보지 않았다. 오늘의 필요만 보지 않았다. 영광스러운 종말과 그 종말에 있을 영원한 보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울을 벗어날 수 있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교회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골몰해 왔지만 그 가운데 천국이 주는 기쁨과 소망을 잃고 말았다. 그리스도인들이 장래에 대한 소망을 상실할수록 기쁨과 감사는 더 작아진다. 그래서 우울을 극복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마지막 사막의 우울증 치료법은 서로를 위로하는 풍성한 방문 교제였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으면 가서 고민을 털어 놓았다. 원로들의 대문과 귀는 언제나 열려 있었다. 우리는 가족 중 누가 침체에 빠져 있거나 낙심할 때에 가장 큰 치료약은 가족들이 모두 함께 있는 것임을 경험으로 안다. 부모들은 자녀들 얼굴만 보아도 기뻐한다. 슬픔 속에 있는 이웃이 있다면 그들 옆에서 중보하며 조용히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조금의 위로는 될 것이다.

김진하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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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이 세상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시작과 끝이 있음을 얘기합니다. 성경의 시작은 시간의 시작 즉 태초에 하나님이 이 세상 만물을 만드셨음을 선언하며 시작합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은 완벽했으며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는 어떠한 흠도 없었고, 어떠한 저주도 없었으며, 그 저주로 인한 죽음도 없었던 하나님 스스로 보시기에 아주 좋은 아름다운 세상이었습니다.

그 세상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만드시고 그들과 교제 하셨습니다. 그 사람에게 죄가 없었기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어떠한 거리낌도 없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교제가 가능했고, 하나님은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스리도록 허락 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서 지음을 받았고, 에덴 동산과 이 세상의 모든 별들, 강과 바다, 동물들, 식물과 그 열매들은 인간을 위해서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고, 그들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과 함께 하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하나님을 위해 지어졌습니다.

이는 그분에 의해 모든 것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라.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왕좌들이나 통치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노라. <골로새서 1:16>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며 또 자신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는 그분께서  <히브리서 2:10a>

오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4:10>

인간은 이 세상의 왕이었고,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을 수 있었지만, 오직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실과만은 먹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실과를 먹을 때, 반드시 죽게 될 것을 경고 하셨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되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6~17>

2 타락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살고 있을 때, 뱀 곧 사탄이 하와에게 접근합니다. 그리고 물어봅니다.

"하나님이 모든 나무의 열매를 다 못 먹게 하셨어?"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선악과를 제외한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어도 된다고 하셨지만, 모든 나무의 열매를 다 못먹게 하셨는지를 물어봅니다. 그리고는 거짓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못먹게 하는 이유는 너희의 눈이 열려서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하나님처럼 될까봐 그러는거야."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이 땅에 왕이 되게 하셨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셨지만, 하와의 마음에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과를 먹었고, 아담도 함께 먹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반란 이었습니다. 이 땅의 왕인 아담과 하와에게 필요한 유일한 것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 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삶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 창조주 되신 하나님의 것 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유일한 법을 어김으로 하나님의 소유였던 그들의 삶을 그들이 훔쳤습니다.


 

범죄의 결과는 끔찍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던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스스로의 수고로 살아남았어야 했으며, 생명되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죽음이 그들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처럼 그들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 같이 너희도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더 이상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15:2>
 

또한 이 세상 역시 인간의 죄로 인해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 땅에 저주로 인해 모든 피조물들은 고통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죄로 인해 일어난 일 이었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평생토록 고통 중에 땅의 소산을 먹으리라. <창세기 3:17>

또 전체 창조물이 지금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 중에 산고를 치르는 줄을 우리가 아나니 <로마서 8:22>

그 어떤 저주 보다도 끔찍한 저주는 인간이 하나님의 원수가 된 것 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속성상 죄가 있는 우리들과 함께 하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는 끊어졌고,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의 반역자가 되어 하나님과 완전히 등진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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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의 자녀들을 위해 울라" (23:28)

 

우리 주님께서 끌려 가면서 슬피 우는 여인들에게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들과 너희들의 자녀들을 위해서 울라!"고 절박하게 명하셨다. 이것은 소위 슬픔의 길(via dolorosa)에서 하신 유일하신 말씀이다. 주님의 명령과 달리 오늘날 수많은 예루살렘 순례자들이 주님의 죽음을 기억하면서 슬픔의 길을 걸으며 울고 있다.

 

주님은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말로만 설교하셨을 뿐 아니라 실제로 그런 삶을 사셨다. 예루살렘 가까이에 오셨을 때 그 성을 보시며 그곳에 임박한 심판을 보면서 마지막으로 슬피 우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을 때 (주님의) 울음이 있었고 그분이 그 성을 떠나실 때 (여인들의) 울음이 있었다.

 

주님은 묶여 있으면서도 할 말씀은 하신다. 그 말씀은 단지 "나는 괜찮으니까 너희들과 자녀들 걱정이나 해라"는 위로의 말씀이 아니다. 예수님의 나머지 말씀은 임박한 진노의 심판에 관한 예언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지 "울지마"라는 구절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문맥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 우리는 자녀들을 위해서 우는가?

- 무엇 때문에 우는가?

-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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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

성경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마가복음 16:15)입니다. 이는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 (사도행전4:12)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 가장 유명한 분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그의 생애와 교훈은 누구보다도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세계는 그의 탄생으로 년도를 기록합니다. 그의 교훈은 인종, 문화, 국가의 장벽을 넘어 호소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누구에게서도 발견할 수 없는 교훈을 구분에게서 발견했습니다.

아무도 예수처럼 사람을 가르친 일이 없습니다. 아무도 그와 같은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그와 같은 사랑을 한 일이 없습니다. 세계사에  예수와 비길 만한 인물은 없습니다. 그와 비교할 대상은 없습니다.

 

그는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한번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그들은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이 대답은 모두 틀린 것 입니다. 예수는 계속하여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태복음16:13-18을 보시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장하셨습니다. 그가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신문을 받을 때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예수는 “네가 말하였느니라(네가 말한대로니라)”고 대답하셨다. 주님은 신성모독의 죄목으로 죽음의 형벌을 받아 마땅했다. 마태복음 26:63-68

예수님은 자주 자신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비유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긴다고 송사했다. 예수 외에 누가 감히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요한복음 5:21-23)할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 

사도요한은 그이 복음서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한복음1:1) 고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요한복음1:14)한 분이셨다.

우리는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계시하신 정도 밖에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만이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한복음14:9)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계시하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것을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군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로새서1:15-17)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로새서2:9), 그는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십니다. 예수는 성육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무엇을 하셨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인간은 모두 공통된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3:22,23).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로마서3:10). 죄란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문제입니다.

죄를 지으면 결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로마서5:12). “죄의 삯은 사망이요”(로마서6:23.)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음을 맞게 되어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브리서9:27). 아무도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자신의 선행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분명히 합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갈라디아2:16)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구원하셨나니”(디도서3:5). 그대가 스스로의 선행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면, 왜 예수께서 십자가로 가셔야 했을까요? 바울은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라디아2:21)” 라고 답합니다.

그대는 구주가 필요합니다. 당신을 위하여, 당신 대신 죽으신 예수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5:6-8). 예수는 우리가 연약하고, 경건치 않고,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냥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만 하신 것이 아니라, 이를 행위로 보이셨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오한1서4:10). 이 사랑의 하나님이 인간의 죄와 구원에 자신을 던지셨다.

십자가의 도는 사도 바울에게 가장 중요한 제목이었습니다. 그는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고린도전서15:3)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십자가는 전도의 절반이고, 부활이 있어야 완성입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장사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고린도전서15:4).

예수는 요한복음10:17, 18에서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요한복음10:17,18). 아무도 이런 선언을 할 수 없다.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환전상과 동물을 쫓아 내실 때, 자신의 부활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했습니다. 그들은 이 말이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르켜 말씀하신 것”을 몰랐습니다(요한복음2:19, 21). 나중에 그는 표적을 구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 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땅 속에 있으리라”(마태복음12:39,40)라고 말씀하시며 이적을 언급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고, 사흘 후에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그리고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12제자에게와  그 후에 5백여 형제에게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린도전서15:5-8). 이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눈으로 본 증인들이다.

사도들은 이 도를 전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복음 전파가 금지되었지만, 그들은 사람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명을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전하고 부활을 선포하다가 매를 맞고, 감옥에 들어가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친히 보았고, 개인적인 관계를 가졌습니다. 그들은 구언하는 그리스도의 지식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만약 이들이 부활의 거짓 증인이라면, 죽음을 무릅쓰고 거짓을 전했을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전시할 수만 있다면, 부활을 전하는 입을 막을 수 있었겠지만, 예수의 시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무덤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나셨습니다. 그는 구주시고, “나는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으리라”(계시록1:18)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어찌하려는가

예수는 당신의 구주신가? 당신은 그를 아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메시지는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로마서1:16)는 것이다.

바울과 실라는 전도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때 지진이 나고, 간수는 죄수들이 탈옥할까봐 두려워했습니다. 처벌이 두려운 간수는 주의 종에게 나아와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는 성경의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고, 그들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답한다(사도행전16:31).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자에게 영생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3:16). 예수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라 말씀하신다(요한복음 6:47).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한복음1:10-13).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가족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단지 생각으로 동의한다는 것일 것입니다. 마치 죠지 와싱튼이나 어떤 역사적 인물을 믿는 것 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복음의 기본 진리를 알고, 그리스도인이라 시인합니다. 그들의 이론은 옳고, 교리적으로 맞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개인의 구주로 의지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구원받아야 합니다, 당신은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10:9,10)라고 말 합니다.

만일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적이 없다면, 오늘 그를 부르시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로마서10: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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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공부 9단 오기 10단’의 저자인 박원희 씨는
민족사관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하버드대를 우등 졸업하며 많은 언론의 조명을 받았습니다.
하버드에는 학사와 석사 학위를 동시에 취득하는 A.B.A.M.이라는 힘든 과정이 있는데
그것을 5년 만에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이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다는 민족사관학교에서 조기졸업을 한 박 씨에게도
세계 최고의 하버드 대학에서의 생활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당장 일상생활로는 어려움이 없을 정도의 영어 실력이었지만
하버드에선 강의를 듣는 것조차 어려웠고
사람들과 사귀기도 어려워 갖가지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에 꾹 참고 적응하기 위해서
계속 노력했고 그 와중에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을 만나며 아카펠라 동아리에도 가입해 활동하며
교회생활에 재미를 느꼈지만 어느새 성경말씀을 진리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포근한 사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과 지식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됐고
그 능력을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서 사용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거리의 노숙인들에게 아침을 지어주는
봉사활동을 하면서는 하버드 이후의 자신의 비전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노숙인들의 대부분은 일을 해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해 거리로 나와 산다는 것을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박 씨는 그런 사람들에게
일할 목표를 찾아주는 경제학자가 되겠다며 자신이 크게 성공하는 것보다는
남을 돕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나의 특별함을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다른 이들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십시오.

주님! 제게 주신 모든 능력을 겸손하게 남을 위해 쓰게 하소서.
나의 장점을 모두 써보고 그것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 드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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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는 두 얼굴을 가져야 한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15:15)


많은 신자들이 예수를 믿음으로써 현재 어떤 신분과 특권을 갖고 있는지에 관해 아주 무지한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일을 간절히 기도하여 해결 받고 불신자보다 조금 더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정도입니다. 그마저도 기도 응답이 안 되는 일이 잦고 죄에서 제대로 자유로워지지 않으니까 매주 윤리적, 종교적으로 반성하는 선에서 적당히 타협하며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자가 꽤 됩니다. 말하자면 예수를 믿어 지옥의 형벌만 겨우 면한 차원입니다.

이는 너무나 가난한 신앙입니다. 가난한 마음과 가난한 신앙은 다릅니다. 하나님 앞에 피조물로서 진정으로 겸비하게 서있고, 무엇보다 죽을 수밖에 없던 죄인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해 주신 은혜에 죽기까지 감사와 경배를 돌리며, 지금도 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심령을 깨끗케 하려고 오직 주님의 긍휼만 소원하는 것은 가난한 심령입니다. 이런 심령은 천국을 소유하는 복을 이미 받은 것으로.(마5:3) 아주 좋은 신앙입니다.

그러나 그 단계에서 머물러선 안 됩니다. 팔복강론으로 따지면 더 나아가야 할 단계가 일곱이나 남았지 않습니까? 계속 자신의 가난한 심령에만 너무 묶여서 "나는 천하의 죄인이야!", "나는 아무 쓸모가 없어!", "내 같은 자가 하나님의 일을 어찌 할 수 있겠어.?" 같은 말만 입에 달고 있는 자들도 꽤 됩니다. 천국은 소유했지만 겨우 그 문턱만 넘어선 셈입니다.

천국은 골고다 십자가 사건 이후로 이 땅에 도래해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침노하는 자는 더 풍성하고도 아름답게 그 천국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현실의 삶이 윤택해지고, 모든 질병이 낫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고 친밀해진다는 것입니다. 아니 이미 그런 사이가 되었기에 단지 유지만 잘해도 주님이 풍성히 확장시켜 줍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앞으로는 종이라 하지 아니하고 당신의 친구로 삼겠다고 합니다. 신자 쪽의 믿음과 헌신을 독려하기 위해 과장 내지 칭찬해주는 정도가 아닙니다. 모든 신자는 그분을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실제로 그분의 온전한 친구가 이미 된 것입니다. 그것도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운"(16절) 그런 친구 사이입니다.

비유컨대 이런 경우에 해당됩니다. 한국 L 대통령의 초등학교 동기가 “L 대통령은 내 친구야”라고 자랑할 수 있습니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반면에 대통령 스스로 “매주 사적으로 만나 시중의 여론을 듣는 막역한 친구가 둘 있습니다.”라고 실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엄밀히 두 경우를 비교하면 전자는 대통령을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꼴이며, 후자는 친구를 대통령 수준으로 높여주는 셈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말씀은 후자입니다.

알다시피 공사역 기간 중에 너무나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께 몰려들어 왕으로 삼으려 시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기 일주일 전에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종려주일에 큰 무리가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요12:13)라고 이미 왕으로 모신 것처럼 열렬히 환영했지 않습니까?

이때까지 제자들의 심경이 어떠했겠습니까? 만나는 사람마다 바로 그 분이 나의 스승이라고 떠벌리며 다녔거나, 최소한 우쭐해서 거들먹거렸을 것입니다. 앞의 비유로 따지면 전자에 해당됩니다. 이제 예수님이 제자들의 자랑을 그대로 승인해주었습니다. 비록 제자들과 예수님의 서로에게 바라는 친구로서의 기대치는 아주 달랐지만 말입니다.

어쩌면 제자들로선 예수님이 친구보다 왕이면 더 좋겠다는 입장이었을 것입니다. 또 그분의 친구가 된다는 뜻을 미처 모르고 당혹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신자가 주님의 친구가 이미 되어 있다는 의미는커녕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그저 빵을 주는 왕으로 모시고 싶어 하듯이 말입니다.

예수님이 규정하는 친구의 정의(定意)가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단순히 서로 알고서 가깝게 지내는 정도로 친구가 되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들은 것을 이미 다 가르쳐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앞 절에서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14절)고 말했듯이 이제 하나님이 알게 하신 일을 제자들이 직접 수행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앞에 든 비유로 하자면 대통령과 사적으로 친밀한 면담을 정기적으로 하여서 대통령이 갖고 있는 뜻과 계획을 다 전해들은 사이입니다. 또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특별한 임무를 부여 받아서 직접 행하는 관계입니다. 이조시대로 치면 암행어사, 지금은 대통령 특사입니다. 신자의 신분이 얼마나 엄청난지 조금은 실감할 수 있습니까?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5:20)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신(使臣, Ambassador)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외국에 가서 한 나라의 전권(全權)을 대표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사신의 말과 행동은 바로 왕이 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즉, 신자가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역을 수행할 때에 그분과 동일한 권세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더러 종이 아니라 이제 친구가 되었다는 뜻도 바로 그것입니다. 종의 원어는 노예(Slave)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종이니까 그분이 시키는 일만 행해야 합니다. 단 그 뜻을 알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무조건 행하는 것이 종입니다. 아직은 주님과의 친밀한 개인적 관계가 형성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구약시대의 율법의 언약 아래에 있던 상태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은 이제 곧 십자가 구원을 완성시킬 것입니다. 또 약속하신 대로 다른 보혜사 성령님이 강림하여 믿는 자에게 진리의 영으로 영원토록 내주케 될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신 인류 구속에 관한 절대적 계시가 성령으로 영감되어 정경으로 기록 보존될 것입니다. 모든 신자가 말 그대로 “주님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알게 되고 또 그 뜻대로 순종함으로써”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정말 영광스런 신분으로 바뀐 것입니다. 거기에다 엄청난 특권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을 대신하여 세상과 사람과 죄악과 사단 앞에 서야 합니다. 신자의 뒤에는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갖고 함께 서계십니다. 신자가 행하는 모든 일들이 주님을 대신하는 즉, 주님이 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단지 구원이 지옥 형벌 면할 정도면 십자가상의 오른 쪽의 강도처럼 죽기 직전에 회개만 하면 됩니다. 구원 받고도 바로 천국으로 입성시키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 땅에 그리스도의 사신이자 친구로 그분의 남은 일을 수행케 하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 신자라면 이런 말들은 입 밖에도 내어선, 아니 생각조차 하면 안 됩니다. “나는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존재야.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내 같은 더럽고 추한 죄인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언뜻 보면 신앙적으로 아주 옳은 듯합니다. 물론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여전히 죄의 본성이 살아있어서 더럽고 추하며 보잘 것 없는 존재인 것은 맞습니다. 또 그분 앞에서 그렇게 통회자복하며 엎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신이라는 정체성을 동시에 갖고 있음을 모르거나 잊고서 그러면 큰 잘못입니다. 위와 같은 인식은 하나님과 자신과 일대일로 대면했을 때에 가져야할 정체성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믿음이 좋고 선행에 열심이라 의인이라 칭찬을 받았어도 하나님 앞에선 더 이상 내려갈 데 없이 낮아지고 깨어져 오직 그분의 긍휼만 갈망해야 합니다.

반면에 사람과 죄악과 사단 앞에선 하늘과 땅의 권세를 다 지닌 정말 주님의 친구로서의 정체성을 발휘하고 실현해야 합니다. 단순히 기도하여 복 받은 일을 간증하고 다니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고백했던 동일한 바탕 위에 주님 안에서 바뀐 신분으로서 주님의 이름으로 세상을 향해 담대하게 선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는 너무 보잘 것 없지만 주님이 함께 하시는 주님의 친구다. 사람과 죄악과 사단이 나를 절대 넘어뜨릴 수 없다. 또 나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나 주님 안에선 어떤 큰 일도 할 수 있다. 나 같이 더럽고 추한 죄인도 주님의 시킨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단 주의 할 것은 주님 안에서 내가 소원하고 계획하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나에게 맡긴 일은 주님의 능력으로 주님이 이루시되 반드시 당신의 영광이 드러날 것을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궁극적이고 영원하며 거룩한 승리는 이미 보장되어 있습니다. 신자를 통해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 주님이 실패하실 리는 절대 없습니다. 비록 신자가 현실적으로 고난에 처해도 주님의 나라는 반드시 확장될 것이며 또 그것이 바로 신자의 승리이기도 하다는 기쁨과 소망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6:20)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신임에도 쇠사슬에 매인바 되었지만 오히려 복음을 더 증거할 수 있게 되었다고 자신에 차서 선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당신의 계획에 따라 당신만의 방법으로 당신께서 이루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심령이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팔복강론의 마지막도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0-12) 요컨대 신자가 이 세상에서 가진 특권은 즐거이 핍박을 당하는 것이며, 또 그 신분은 그리스도의 사신이자 친구라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을 향해선 한없이 가난한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과 죄악과 사단 앞에선 한없이 높은 권세를 갖고 대응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두 얼굴을 가진 셈입니다. 쉽게 말해 현실의 상황을 갖고 하나님을 판단하지 말고, 주님의 약속과 권능에 입각하여 현실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만이 영원한 진리이자 길이자 생명일 뿐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세상에서 따로 불러내어서 당신의 친구로 삼으신 내용이 얼마나 풍성하고 고귀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정말로 그 정체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에 걸맞게 주님과 관계를 풍성하고 아름답게 가꾼 바탕에서 세상을 대하면 주님의 나라가 누룩처럼, 염병처럼 자기 주위에 크게 번져 나갈 수 있습니다.

반면에 단지 지옥형벌 면한 정도의 신앙을 그것도 아주 힘겹게 끌고 간다면 솔직히 죽기 직전에 믿느니만 못합니다. 그런 신자는 천국 갈 때에 충만한 기쁨으로는 입성할 것 아닙니까? 솔직히 지금 상태의 믿음으로는 온갖 의심과 혼동과 불만을 안고 주님을 만날 수밖에 없는 것과 비교해선 말입니다. 또 교회 생활 수 십 년에 주님 앞에선 아주 잘 낮아지지만 세상에는 아직도 당당히 맞설 수 없다면 그와 그리 큰 차이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원본출처 : 바산 목사의 "왜 오직 예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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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가 할수 없는 7가지
 
1.마귀는 예수님의 보혈을 꿰뚫을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덮어져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을 충만하게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2.마귀는 만일 당신이 매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권세를 주장하면 당신을 해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의의 옷 또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3.마귀는 당신의 생각 모두를 알수는 없습니다.

계 12:11로 삼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마귀가 우리의 말을

엿듣고 있을때 그는 단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과 우리의 삶에 임재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만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증거 하는 말"을 개발하고 사용하여 마귀를 물리칠수 있습니다.
 
4.마귀는 자신을 쫒아내지 아니할것입니다.

쫒아내는 것은 우리의 일입니다.

5.마귀는 당신이 믿음의 씨앗을 심은뒤 문제의 산을향해 사라지라는 말을 할때

당신에게 기적이 다가오는 것을 막을수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심은 것을 거둘 것입니다.

오늘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믿음의 씨앗을 심는날 입니다.
 

6.마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것이나 예수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시라는 것을

시인할수 없습니다.

마귀는 온갖 형태의 병 곧 육체적인 명뿐만 아니라

마음의병. 정서적인병. 정신적인병. 그리고 영적인병을 야기 시키고 있습니다.

마귀는 예수의 보혈을 바르지 않은곳이면 그곳을 통해 당신 삶에 들어오려고 할것입니다.

7.마귀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이 실현되는 것을 막을수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기도와 순종으로 나아가며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면, 교회와 당신의 생애에 하나님의 목적이

확실히 이루어지게 되는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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