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철야예배설교] 어린양의 피를 좌우 설주에 뿌리라 Friday Night Sermon

어린양의 피를 좌우 설주에 뿌리라

(출12:1-22절)


 
성경학적으로 사람에게는 표가 있습니다. 하나는 멸망의 표입니다. 그것은 가인의 표요(창 4:15절), 둘째의 표는 영생 곧 구원의 표징입니다. 셋째는 아벨의 표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의 표입니다. 그것이 구원 얻는 자들의 이마에 새겨져 있습니다.(계7:13; 14:1절).

저 애굽에서 구원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구원의 표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린양의 피입니다. 출12:13절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피는 오늘 우리에게도 구원의 표적입니다. 어떤 피일까요? 본문에 나오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바로 이러한 효력을 지니는 그리스도의 고귀한 희생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 효력의 피에 대해 살펴보면서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대속의 상징으로서의 피입니다. 피는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구원의 표적이나 어린양의 입장에서는 표징입니다. 즉 이는 이스라엘을 대신한 대속적 죽음을 나타냅니다. 히9:22절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두 가지 뜻을 찾아 설명을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구약 시대에는 피는 정결케 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9:13절에 "염소와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피는 죄 사함을 얻게 한다는 뜻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도 짐승의 피가 죄를 속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레7: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음으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 흘린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피만이 죄를 속하고 사해 주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다른 것으로는 죄가 사해지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죄는 생명을 죽이는 병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 없는 예수님의,

희생의 피로만이 죄를 씻어 낼 수 있고, 죄의 병균을 죽일 수 있고, 죄의 권세를 정복할 수 있기 때문에 피 흘림이 없이는 무죄하고 고귀한 생명의 희생의 피가 아니면 죄 사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죄를 사해 줌으로 죄에서 구원해내기 위하여 예수님이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만이 인간의 양심을 정결케 하며 인간의 주홍 같은 붉은 죄, 먹 같은 검은 죄를 씻어내며 정결케 하며 깨끗이 사함을 주어 구원과 영생을 얻게 하십니다.(엡1:7; 요일 1:7; 벧전1:19절). 오직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의 언약만을 믿을 것입니다.

본문7절에 그 양의 피로 그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왜 피를 바르라고 했습니까? 13절에 장자를 죽이는 재앙이 나오는데 사람과 생축의 첫 태생을 다 죽이게 되는데 이때 양의 피가 발라진 집은 재앙이 그냥 넘어가고 발라지지 않은 집은 재앙이 임하여 첫 태생이 다 죽게 됩니다.

이 때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은 구원을 받았지만 양의 피를 바르지 않은 애굽에는 재앙이 임하여 첫 태생이 다 죽는 재앙이 임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자는 다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된다는 예표입니다.

자기의 힘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고 양의 피를 발라 놓으면 구원받는 것처럼, 오늘 우리도 마음의, 문설주에 예수님의 피가 발라져 있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마음에 바른 자는 다 구원을 받습니다. 피를 안벽 부분 즉 보이지 않는 곳에 바르면 안 되고 반드시 밖에서,

제일 잘 보이는 데 문설주에 바르라고 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나타내야 한다는 것을, 즉 자랑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생활을 숨기면 안 됩니다.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살아야 합니다. 롬10:9-12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2.하나님의 약속에 의거한 피입니다. 어린양의 피는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한 약 속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13절). 실상 어린양이 흘린 피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린양의 "피를 볼 때에……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그 피는 이스라엘의 죄를 대속하고 생명을 보존케 하는 피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역시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합니다. 사53: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그리스도는 오셨고 피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피를 믿는 사람은 죽지 않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오늘 우리가 구원받은 것입니다.(요6:53-56절).

따라서 우리는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 어린양이 구원의 대속 물임과 또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임을 믿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또한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피로서 우리에게 구원의 피가 됨을 믿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유월절 어린양은 우리의 영원한,

대속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사53:7; 요1:29절). 이사야는 모든 선지자 가운데 가장 많이 고난의 진의를 발표하였는데 그가 찔리고 상한 죄의 대가라고 보았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롬6:23절에 "죄 값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죄의 값이 있는 이상 갚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갚지 않으면 그 값이 저절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 값으로 내어준 바 되었습니다. 그의 고난이 우리의 죄로 인함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고개 숙여 감사함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고난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3.흠 없고 순전한 피입니다. 유월절 희생으로 제정된 짐승은 어린 양 중에서도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5절)이어야만 했습니다 문학적으로 양은 순결과 온유를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따라서 양은 그리스도의 품성을 나타내는 데 매우 적절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무 흠이 없고 순결한 어린양의 흘린 피는 인간을 대속하고 구원하는 재료로 사용되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어린양의 피가 의미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역시 완전하고 순전한 피입니다.(벧전1:19절). 아무리 큰배라도 작은 구멍 하나로 가라앉는 것처럼 구원의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께 만일 흠이 있다면 전 인류를 구속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깨끗한 피입니다. 히7:26절에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신분을 재설명을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예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깨끗하다 해도 거룩하지 못합니다. 거룩하지도 못하면서 거룩한 것 같이 모양을 내는 외식하는 자도 많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꽤 많이 거룩한 척 했습니다. 오늘날도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들, 자기만이 잘 믿는다 하는 자들이 거룩한 척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거룩하지 못합니다. 예수님만이 거룩합니다. 시16:10절에 "주의 거룩한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속한 그리스도인들도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성도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이름과 같이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2)예수님은 악이 없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도덕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성품으로나, 법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온전히 선하신 분입니다. "선하다"는 말 가운데는 "나쁜 것이란 추호도 없고 구부러진 것이 없고 참 좋으신 분,

진실하시고 정직하신 분, 사랑으로 충만하신 사랑의 화신"이란 말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된 사람들도 예수님을 닮아 악이 없어야 합니다. 온전히 선해야 합니다. 진실과 정직과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3)예수님은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죄 많은 세상에 오지만 죄는 없으신 분입니다. 출 생시부터 성령으로 잉태되어 출생되었으리만큼 원죄가 없고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았지만 죄는 없으신 분입니다.(히 4:15절). 죄가 없기 때문에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속죄 제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옛날 구약 시대에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물은 양이건 염소이건 송아지이건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 흠과 허물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제물로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은 죄와 허물이 없는 분이셨기 때문에 인간의,

죄를 담당하는 속죄 제물의 자격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다 죄인이지만 무죄하신 예수님 앞에 나와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에 씻음 받은 횐 옷을 입고 의의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4.사망의 위험을 모면하는 피였습니다. 출12:29절에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 든 처음 난 것 곧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생축의 처음 난 것을 다치시매"라고 했습니다. 애굽에게 행해진 하나님이 마지막 심판은 장자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애굽에 속한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두 그 첫 소생이 죽음을 당하는 무서운 재앙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은혜로 그 재앙을 모면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들은 어린 수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그 재앙을 피한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유월절이라 부릅니다.

유월절은 그리스도에 의한 인류 구원의 모형이며 가장 선명한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유월절의 희생인 어린양과 그 피에 나타난 교훈이 그러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만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상징이며 구속의 예표인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갈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절)라고 하였는데 그는 이사야의 성격에 대한 분명히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상징적인 모형이 구약에 많이 나타나 있지만 유월절 사건만큼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을 잘 예표한 것은 없습니다.

이것을 히9:11-12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피의 종교입니다. 피는 생명이므로 피에는 구속의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9:22절에서는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벧전1:18-19절에서는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케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합니다(히9:14절).

피는 희생을 의미합니다. 구원에는 이 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문설주에 피를 발랐듯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는 우리 심령에 그리스도의 피를 발라야 합니다. 우리가 일제의 압박에서 해방한 것도 많은 성도들과 우국지사들의 피가 이 땅 위에 뿌려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 역사를 보아도 얼마나 많은 성도들과 성직자들이 희생을 당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들의 피가 이 땅에 뿌려 줌으로 신앙의 자유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5.유월절 양의 피입니다. 1)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피입니다. (1)어린양의 피입니다.(3절).
(2)일년 된 수양이었습니다.(5절). (3)흠 없는 어린양이었습니다.(5절). (4)4일 동안이나 구별시킨 양이었습니다(6절). (5)해질 무렵에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었습니다.(6절).

(6)이스라엘 회중에게 잡혀 죽은 양입니다.(6절). (7)뼈 하나라도 꺾임을 당하지 아니한 양이었습니다.(46절). 2)뿌림을 당한 어린양의 피입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양은 그 피를 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1)그릇에 담아서 우슬초 묶음으로 뿌려지는 피입니다(22절).

(2)문설주 좌우와 인방에 뿌려지는 피입니다.(7절). (3)반드시 뿌려져야 할 피입니다.(7:
22-23). 이유는 그것이 구원의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그 문설주와 인방의 피를 보고 하나님의 사자가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피를 뿌린다" 함은 정결과 보호와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먹임을 당할 어린양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은 죽어서 피 뿌림을 당할 뿐 아니라 먹히움이 되었습니다. "먹는다" 함은 "삶"을 뜻합니다. 그것은 바로 "출애굽 운동"을 뜻합니다. (1)가족 수대로 먹어야 했습니다.(3절). 그것은 개인 개인의 출애굽입니다. 구원은 개인 개인의 고유한 구원입니다.

누구든지의 구원입니다.(요3:16절). 그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냅니다. (2)불에 구워 먹어야만 했습니다.(8, 10절). 이는 예수의 구원은 극에 달한 하나님의 사랑의 고통에서 주어진 것임을 의미합니다.(마27:46-47절). 예수는 불을 붙이러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는 이 불이 붙기를 원합니다.

이는 십자가 수난의 고통을 불에 비유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구속론적(십자가)인 신앙을 가져야 함을 뜻합니다. 결코 날 것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9절). 삶아서도 안 됩니다.(출2:9절). 십자가의 피(불)와 성령의 불을 통과한 신앙이어야 합니다. (3)완전히 먹어야만 했습니다.(10절).

남는 것이 없이 완전히 다 먹어야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완전히 신앙함을 뜻합니다. (4)즉시 먹어야만 했습니다.(10절). 아침까지 미루거나 두어서는 안 됩니다. 이유는 그 방에 출애굽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29절).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오늘의 구원이요, 지금의 구원입니다.

(5)무교병을 쓴 나물과 함께 먹어야만 했습니다.(8절). 고난의 의의를 되새기면서 먹으라는 뜻입니다. 애굽에서의 고난, 그 고난에서의 해방을 위한 어린양의 죽으신 고난을 씹으면서 먹어야 합니다. (6)출애굽 자세로 먹어야만 했습니다(11절).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어야만 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십자가의 멍에를 메고 예수 따라 행군할 준비를 뜻합니다.

6.유월절 양의 피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바로 왕을 굴복시키시기 위하여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 마지막 재앙은 죽음의 사자를 보내사 애굽의 가정에서 장자와 처음 낳은 새끼들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재앙을 받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서,

유대인의 집에서는 양을 잡아 피를 문설주에 바르도록 지시하셨습니다. 죽음의 사자가 유대인의 집 앞에 이르러서는 문설주에 피가 있는 것을 보고 그 집을 건너갔다고 해서 유월절이라고 부릅니다. 만일에 문설주에 피가 없었다면 유대인의 집에도 장자가 죽임을 당하는 재앙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곧 유월절 어린양의 피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하실 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절)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사망의 세력에서 해방된 믿음을 가지고 삽니다. 사단의 지배 아래 있지 않고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는 것을 믿습니다. 롬5:21절에 보면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사망의 세력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광복절을 맞이하게 되면 우리 한국 민족에게는 잊어버릴 수 없는 또 하나의 피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독립과 우리 민족의 자유와 주권을 찾기 위하여

흘린 순국 선열들의 피가 있음을 되새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 땅에 공산주의자들의 세력을 몰아내기 위하여 흘린 6·25동란에서 희생된 수많은 젊은이들의 피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피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참된 유대인이라면 유월절 양의 피를 잊어서는 안 되고,

참된 기독교인은 예수님의 피를 잊어서 안 되듯, 이 참된 한국인이라면 순국 선열들이 흘린 피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영원히 기념해야 할 것입니다.

7.인간을 구원하는 능력의 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죽음의 재앙을 고지(告知)하 시면서 곁들여 "어린양의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13절)라는 구원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근거는 히브리인이냐 아니면 애굽인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린양의 피가 문설주에 묻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판가름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어린 양의 피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피 역시 인간을 구원하는 능력의 피입니다. 곧 예수께서는 친히 나무에 달려 피 흘리심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에(히 9:28) 그 피는 인류를 구원하는 능력의 피가 된 것입니다.

이제 인간에게는 어떤 환경이나 신분이나 인종이 문제가 아니라 죄에 대하여 죽고 이에 대하여 살게 하는(벧전2:24절) 그 능력의 피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구원의 여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장자 죽음의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오직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구원의 표적을 믿고 받아들인 집만이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구원의 표적인 어린양의 피를 발라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거룩한 희생의 피를 믿음으로써 그 피를 마음의 중심에 발라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피를 믿을 때에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덮어 주셔서 심판과 멸망의 칼날이 넘어가게 됩니다. 광야의 놋 뱀은 물뱀의 독을 치료하는 구원의 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이것을 믿고 바라본 사람들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보혈은

온 세상이 죄를 이기고도 남지만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보혈을 받아야 합니다. 13절에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는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그 피가 집에 있고 그 피가 표적이 되고 그 피가 하나님의 심판의 사자를 넘어가게 하고 그 피가 재앙에 멸하지 않도록 한다고 했습니다. 그 피가 이렇게 구원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 피가 해방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 피는 하나님 자신의 계획에서 나온 것입니다.(히12:1절). 그 피는 대속에 의한 구원의 요건이 된 것입니다. 그 피는 뿌리는 방법을 통하여 속죄의 효과를 나타내도록 하였습니다. 그 피는 반드시 믿음으로 구원되어지도록 한 것입니다. 그 피는 이스라엘 역사의 신기원이 되었습니다.

그 피는 해방 운동의 출력이 되었습니다. 유월절 양은 선민을 위하여 죽임을 당했습니다. 선민을 위하여 피 뿌림을 당했습니다. 그 고기는 선민을 위하여 양식이 되었습니다. 그 피는 사망에서 구원되는 생명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피는 우리의 유월절 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예표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월절 양이 되셨습니다.(고전5:7절). 여기에 구원 종교의 특색이 있습니다. 여기에 생명 종교의 자랑이 있습니다. 여기에 생명 종교의 본질이 있습니다. 예수의 그 피가 곧 내 생명, 내 구원, 내 영생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없는 찬송이나 기도는 기독교의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가 없는 예배나 설교는 기독교의 예배나 설교는 아닙니다. 십자가 없는 전도나 사랑의 구제는 예수의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피 흘림이 없은즉 사유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도는 말하기를 "너희가 알거니와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벧전1:18-19절).

8.말씀을 정리합니다. 장자 사망 사건은 과거 애굽에서 있었던 일회적 사건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이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여 해마다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성도들은 이를 한 해에 한 번만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 희생의 피를 체험해야 합니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피 값으로 영생을 얻었으므로 그 영생의 삶을 오늘과 연결시켜 성숙한 크리스천으로서의 열매맺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피의 기적을 체험한 구원받은 성도의 바람직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였다면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삶 속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붉은 피를 흘려주신 그 피를 바라보면서 험악한 이 세상에서 넉넉한 승리를 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성도의 자랑스러운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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