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철야예배설교] 앉은뱅이를 일으킨 기적 Friday Night Sermon
앉은뱅이를 일으킨 기적,
(행3:1-10절)
사도행전 1장과 2장은 어떻게 해서 사도행전이 가능하게 되었고 사도행전이 무엇을 위해서 기록된 말씀인가를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1장에서 세가지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 첫째는 성령 세례를 약속해 주셨고, 둘째는 복음이 유대인의 울타리를 뛰어 넘어 이방인에게 증거될 것을 약속해 주셨고,
세번째는 예수님께서 재림,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2장에서는 1장에서의 약속대로 성령 강림을 통한, 성령세례의 역사가 오순절에 나타났고 방언을 통해서 복음이 땅끝까지 증거되게 하기 위한 발판이 마련되고 있습니다.
또한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 구약의 약속이 성취된 사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증거와 그 반응을 성령의 사역으로 이루어지게 하신 놀라운 사실들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1.본문의 전후 문맥입니다. 본문 3:1-10절 말씀은 사도인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는 사건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행전 1장과 2장의 말씀에 대한 결과로 나타난 사건이 라는데 일단 관심의 촛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 본문 사건만을 가지고 묵상한다면 본문을 통하여 말씀하신 말씀의 의도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 이미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여 임하시면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땅끝에 이르기 까지 예수의 복음이 증거될 것을 제자들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런 약속을 해 주시면서 그 복음의 성격을 오순절 성령강림과 베드로의 설교라는 형식을 통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제 3장에 와서 그 제자들에게 임한 성령께서 권능으로 예수의 복음이 증거되게 하시고 선포되게 합니다. 이같이 성령께서 하시는 이 일은 천상인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이 지상의 교회와 온 땅을 지배하시고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입니다. 사도행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천상사역이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은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성령께서는 이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해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영원히) 파송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하시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입니다. 그같은 성령께서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으로"(행1:22)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에게 1:8절에 약속하신 성령의 권능을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게 하십니다. 사도행전 3장은 어떤 형태로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일을 통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제자들을 사용하시되 제자들의 도움을 전혀 의지하지 않고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이 앉은뱅이를 일으킨 후 베드로는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행3:13)고 외칩니다.
2.기적의 사건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 사건은 그야말로 놀라운 기적의 사건입니다. 감히 우리 인간이 흉내낼 수 없는 놀랄만한 사건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이 기적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말씀입니까? 제자들이 믿음만 있으면 이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우리들도 그런 믿음만 있으면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입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도 복음이 증거되는 곳이라면 당연히 이런 기적이 일어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문의 사건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그 기적의 의미와 목적을 살펴보 아야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복음서에 보시면 많은 병자와 귀신을 고쳐 주시고 많은 권능과 이적들을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이런 기적들이 우리들에게 일어나고 병에 걸리지 않고 귀신이 꼭 쫓겨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이 이런 사건들을 그런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인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의미에서 그런 기적들을 도입하고 그런 기적들을 통하여 보여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계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또한 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개념을 바르게 깨닫는 것도 중요 하지만 그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날 우리들에게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도 매우 중요합니다. 바로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와 적용" 의 문제인 것입니다. 이런 기적은 권능을 베푸시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시겠습니다.
마 11:20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라고 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권능은 이적을 통한 권능입니다. 그같은 권능을 베푸신 목적은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렇지 않는자들에 대한 심판이 목적입니다.
본문은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권능과 이 기적은 11절 이후에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을 해석해 주고 있는 베드로의 설교에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회개를 촉구해서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3.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여전히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는 시간을 갖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주후 70년경에 함락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말씀대로(요2:19) 성전 역시 무너졌습니다. 3:1에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쌔"라고 합니다.
아직도 당시에는 아직 성전이 그들 가운데 있습니다. 그 성전에서 하루 두번씩 예배와 기도시간이 있었습니다. 오전 9시와 오후 3시입니다. 그때 예배란 제사를 의미합니다. 예배가 시작되면 예배하러 온 사람들은 제단 가까이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제사장은 그 제단위에 놓은 양을 잡아 이스라엘의 죄를 대속하게 됩니다.
제물을 잡는 예식을 마친 후 예식을 집전하는 제사장은 제단을 떠나 성소로 들어갑니다. 제사장이 제단을 떠나 성소로 들어가 있는 동안 사람들은 개인기도에 들어갑니다. 누가복음 18:9절 이하에 기록된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는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당시에 모든 역사와 구원은 성전안에서 제사를 드리므로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통상적인 이야기가 뒤집혀 지는 순간입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사건은 성전 안이 아니라 성전 마당 밖입니다.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로부터 구걸하는 앉은뱅이가 있었습니다.
그 앉은뱅이가 성전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걸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베풀 수 있는 "금과 은"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6절)고 할 때 그 앉은뱅이가 곧 일어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성전과 제사는 유대인들에게 독점물이었습니다.
이 말은 유대인들만이 구원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구원이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증거되게 하셨습니다. 이제 그 성전이 신앙의 중심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성전은 허물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전되신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이 일어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이제 그 구원이 유대인들에게만 임한 것이 아닙니다. 구원이 유대인에게만 임한다는 그들의 상식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 앞에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행2:21).
그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가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통일되었습니다.
4.여전히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다스리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도 만왕의 왕으로 이 세상을 지배하시고 병마와 귀신을 지배하시고 다스렸지만 십자가에 죽으신 후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도 계속 성령님을 통하여 병마와 귀신을 지배하시고 다스리시고 계십니다.
또한 당신의 택한 자녀들과 교회를 다스리십니다. 이런 예수님의 사역을 보여주시는 것이 바로 앉은뱅이를 일으키심으로 이제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그 성전 되신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을 지배하시고 이방인들의 구원이 가능하게 되어진 것 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원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도 하늘의 권세와 땅의 권세를 갖고 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고 꾸짖으면 사탄은 한길로 들어왔다가 일곱길로 도망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운 현실에 봉착하였을 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므로 축복의 통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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