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철야예배설교]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예수님 Friday Night Sermon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예수님,

(요5:1-18절)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9:35)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기록한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 하신 일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신 일을 기록하신 목적은 예수님이 과연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우리들도 상대를 이해하고, 자신을 소개할 때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를 통해서 자신을 소개하기도 하고 상대를 소개받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통하여 자신이 어떤 분이신가를 소개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 중에 병을 고쳐 주신 일을 통하여 어떤 예수님을 우리들에게 소개해 주고 있는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1.하나님의 아들로 증거 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하셨던 일을 세 가지로 요약한 다면 첫째, "가르치시는 일"이요, 둘째,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는 일"이요, 셋째, "모든 병과 약한 것들을 고치시는 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모든 병을 고쳐 주신 일"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의도하셨는지를 살펴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8:16-17절에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이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 주신 이유을 설명합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아에 대한 예언(사53:4)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셔야 합니까? 예수님 자신이 메시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본인들의 믿음과 상관없이 자신에게 가지고 온 “모든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 병을 고쳐 주시므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심을 증명하고 증거 하셨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모든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여기에 병을 고쳐 주신 예수님의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이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모든 사건은 이런 계시를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렇다면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 주신 사건을 읽고 예수님이 과연 어떤 분이신지를 소개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예수님을 바르게 알도록 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바로 곧 영생이기 때문입니다(요17:3). 그런데 예수님께서 병을 고친 사건을 읽고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이 성경의 의도인데 그 의도에 충실하기 보다 병을 고치는 내가 주체적으로 등장할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2.예수님께서 38 년된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동안 약 세 번 정도 예루살 렘을 방문한 것으로 요한복음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명절 때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것은 구약에서 제시한 명절에 동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 베데스다라는 연못을 방문하였습니다.

그 베데스다에는 많은 병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있는 38년 된 병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이 바닥날 때 제일 먼저 들어간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렸을지라도 낫는다는 말을 듣고 많은 병자들은 연못에 물이 마를 때 첫 번째로 들어가 자신의 병을 고침 받기 위한 소망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38년된 병자는 그 첫 번째로 들어갈 가능성이 전혀 없는 말 그대로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런 병자에게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셨습니다. 모두가 관심을 보이지 않을 법한 사람에게 예수님은 다가가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8년 된 병자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런 약한 병자를 어루만져 주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입니다. 혹 우리 가운데 "나는 나 혼자"라고 생각되신 분은 안 계십니까? 모두가 나를 외면하는 것 같습니다. 한 평생, 나의 청춘을 바쳐 회사를 위해 일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제 당신은 우리 회사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합니다. 억장이 무너질 것 같습니다. 모두가 나를 버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들에게 주님이 계십니다. 나와 함께 하십니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우리들에게 다가 오셔서 우리들의 눈물을 닦아주십니다. 그러시면서 두려워 말라고 합니다. 이런 위로가 여러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3."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십니다.(17절).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38년된 병자 를 안식일에 고쳐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범했다고 트집을 잡았습니다. 16절을 다같이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이때 예수님께서 반박합니다. 그 내용이 17절에 기록됩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 한다 하시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말을 듣고 유대인들은 더욱 들고 일어났습니다. 18절입니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안식일을 범했다는 것입니다. ②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했다는 것입니다. ③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고 쉬었습니다. 그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안식일에 일을 했습니다.

예수님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일을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안식일에 하나님도 일을 하시기에 예수님도 안식일에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일을 하시기 위해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맞습니까? 아니면 유대인들의 말이 맞습니까? 물론 예수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물어 보면 누구의 말이 맞다고 합니까?

자신들이 맞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직도 안식일인 토요일에 일을 하지 않고 쉽니다. 우리 나라에 안식일 교회가 토요일이 안식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안식일에 예배를 드립니다. 구약의 전통을 지키겠다고 하는 자들 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구약의 안식일이 어떻게 신약의 예수님에게로 성취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를 한 번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구약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6일동안 세상을 너무나 완벽하게 지으셨습니다. 너무나 완벽하게 지으셨기에 더 이상 하실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7일째 되는 날에 쉬셨습니다. 즉 안식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안식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안식이라는 말은 '쉰다'는 개념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쉬셨습니까? 6일동안 너무나 완벽하게 지으셨기에 다른할 일이 없음으로 쉬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쉬셨다는 것은 "창조의 완벽성"을 지칭한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 범죄한 그 인간을 고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쉬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지금 일을 하고 계신다는 말씀으로 의미를 확대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일을 하셔야 합니다. 죄를 범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고쳐 주어야 합니다. 죄와 병으로 인하여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대로 예수님은 일을 하십니다.

즉 그 죄로부터 구원하시고 병을 고쳐 주시므로 진정한 안식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지금 안식을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안식이 있도록 하기 위하여 일을 하고 계십니다. 유대인들은 단순히 날짜 지키는 것이 안식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주님의 안식을 범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더욱 억압하게 합니다. 쉴 수 없도록 많은 법 조항을 만들어서 법에 가두고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와 해방과 안식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11:28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안식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들의 진정한 안식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제공됨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희년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편히 쉬게 하셨습니다. 사망의 무서운 멍에 속에서 우리들을 구출하셨습니다.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같은 자유와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로뎀나무 밑에서 죽기를 구하는 엘리사에게 하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에게도 위로와 안식을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자리에 우리 주님은 찾아오신 줄로 믿습니다. 찾아오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위로와 평강을 주신줄 믿습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을 주신 줄 믿습니다.

4."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십니다.(14절)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후에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하신 말씀이 14절에 기록됩니다. 다같이 1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 속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병을 고침 받았다고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38년 된 병자가 고침을 받았지만 자신의 행동 여하에 따라 "더 심한 것"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로 하여금 어떤 경우에서라고 교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병고침 좀 받았다고 마치 자신은 이제 완벽한 사람이 된 줄로 착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복을 받아 잘 풀렸다면 그것이 다인줄 알고 교만하면 안됩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둘째, 죄가 심한 병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더 심한 병에 걸리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합니다. 여기 "다시는" 이라는 말은 이미 죄 때문에 병이 왔는데 그 병을 고쳐 주신 예수님께서 또 다시 죄를 범하므로 더 심한 병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어떤 병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신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씀한 38년 된 병자는 자신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셋째, 안식과 자유를 주셨으니 다시는 죄의 종이 되지 말라고 합니다. 38년 동안 병마의 고통과 싸웠을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의 가정이 온전했겠습니까? 평화와 기쁨이 있었겠습니까?

그런 병자에게 우리 예수님은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자유와 쉼을 주셨습니다. 그러시고 난 다음에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합니다. 죄의 종이 되지 말라고 합니다. 죄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울께서는 갈5:13절에서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참 자유와 행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유와 행복을 죄 짓는데 사용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교회를 봉사해야 합니다. 이웃을 섬기고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삶을 통하여 예수의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이런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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