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철야예배설교

 

제목 / 입을 크게 열라
본문 / 시편 81:10~13

 

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11.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 대로 버려 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
13.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이스라엘아 내 도를 따르라

지난 주에는 ‘영적 전쟁에서 선제 공격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수비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되고, 공격하라, 수비형에서 공격형으로 전환하라는 내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수비해서 이기는 전쟁은 없습니다. 공격해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사탄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고, 떠밀려 다니고, 수세에 몰려있는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영적 삶에 있어서 우리는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적극적으로 변하게 되어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성격도 적극적으로 변합니다. 예전에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이었는데, 은혜를 받고 난 후에는 적극적으로 변합니다.

본문 시편 81편은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건져주신 구원을 노래한 시입니다. 시편 기자는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건져주신 구원의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본문 10~11절을 보면,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생활로부터 건져주신 구원의 하나님이시고, 오늘날에는 죄로부터 우리를 건져주신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시는 것으로 그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입을 크게 열면 채워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주시는 것으로 그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만족하는 삶을 살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종살이에서 건져주셨는데, 여전히 빈궁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종살이에서 건져주실 뿐 아니라, 완전한 만족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81편 16절에 보면, “내가 기름진 밀을 그들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하게 하리라 하셨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기름진 밀과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족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악에서 용서하시고 구원해주셨을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만족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의 삶에 있어서 적극적인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겨우 버텨내는 삶을 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요즘 우리는 신자 된 우리 자신에 대한 기준을 계속 떨어뜨립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렇게 초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실 뿐 아니라, 기름진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풍성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네 입을 크게 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순히 “네 입을 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는 약속이 붙어있습니다. “네 입을 크게 열라”라고 말씀하시고, 더 이상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면, 우리가 난감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네 입을 크게 열라”라고 말씀하시고, 약속을 덧붙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채우리라(I will fill it)”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채우리라’고 말씀하신 것에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구원 이후에 풍성한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입을 크게 열면,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편에서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입을 크게 열어. 그러면 내가 채워주겠어.”라고 말씀하시며 적극적으로 움직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만 적극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태도가 선제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네 입을 크게 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입을 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무리 주시려고 해도 우리 편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기 때문에 불신앙적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상 앞에서 눈치를 보며 굉장히 옹색하게 살았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나는 준비되어있어. 너는 입을 크게 열어. 그러면 내가 채워주겠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흥분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도를 우리에게 조금도 숨기지 않으시고 보여주셨습니다.

본문의 말씀 속에는 성경 전체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뜻이 숨어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입증할 만한 내용이 성경 전체에 가득합니다.
시편에서만 찾아봅시다. 시편 1편에 보면, 신자의 삶이 어떻게 묘사되어있습니까? 시편 1편 3절에 보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2편 8절에 보면,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생각해보세요. 마태복음에 보면,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4:16).
제자들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신 것입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의 사정을 전혀 모르시면서 사람들을 책임지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의 형편을 다 아십니다. 그들은 가진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불가능한 일을 왜 시키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능력이 없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주님을 주목하게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불가능한 상황 가운데서 유일하게 가능한 것은 주님이심을 발견하도록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제자들이 “주님 밖에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도록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실패했습니다. 제자들은 불가능한 상황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오병이어로 남자만 5천 명을 먹이시고도 열두 바구니를 남게 하신 하나님을 주목하지 못했습니다. 불가능한 현실을 주목했습니다.
하나님은 5천 명을 먹이시고도 남게 하셨습니다. 딱 맞게 기적을 행하지 않으시고, 열두 바구니를 남기셨습니다. 모자라지 않고, 항상 풍성하게 하셨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가 나에게 구하면, 내가 채우리라’는 의미입니다. ‘너희가 나에게 구하면, 내가 채워줄게. 2만 명이든, 5만 명이든 채워줄게. 너희는 나를 찾고 나를 구해라.’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은 “너희가 사람들을 책임져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무슨 재주로 사람들을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이 말씀은 “너는 내게 구하라”는 의미입니다. 입을 크게 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믿음으로 나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는 말씀은 믿음으로 반응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입을 크게 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채워주실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입을 크게 열 수 있는 힘은 믿음입니다. 믿는 만큼 입을 크게 열 수 있습니다.

본문 11~12절에 보면,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 대로 버려 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악하여 하나님을 원하지 않고,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완악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께서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입을 크게 열라”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크신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크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네 입을 크게 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종살이에서부터 이스라엘을 건져내시는 엄청난 일을 행하신, 크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십니다.

시편에 보면, 이런 내용이 많습니다. 시편에 보면, 하나님을 크신 분이시고, 광대하신 분이라고 표현한 구절이 많습니다.
시편 92편 5절에 보면,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95편 3절에 보면,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을 크신 분이시고, 광대하시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에 충만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이신지 잘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가 입을 크게 열면, 하나님이 곤란해 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걱정하지 마세요. 기도할 때에도 하나님이 곤란해 하실까봐 걱정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 걱정은 내려놓으세요.
아무리 큰 기도를 해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보다 훨씬 크신 분이시고, 우리의 생각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꿈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꿈을 꾼다 해도 하나님은 그 꿈보다 더 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의 스케일(scale)이 아무리 크다 해도 하나님의 생각과는 비교되지 않습니다.

신앙이 성장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성경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보세요.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세요. 우리가 가진 성경 안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의 현실에서 만나는 하나님보다 훨씬 크십니다.
여러분들 중 거의 대부분은 성경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기적을 체험하고, 간증거리가 많아도 성경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창세기에서부터 기록된,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바로를 무릎 꿇게 하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시는 기적,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날마다 먹게 하신 것 등은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까.

성경에서 만나는 하나님을 우리가 직접 만난다면, 아마 우리는 기절해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 깊이 들어가 보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실감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계속해서 강화시키며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성경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일어난 사건의 주인공이 됩니다. 바디매오에게 일어난 일을 마치 나에게 일어난 일처럼 경험하게 됩니다.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현장에 내가 있게 됩니다.

이런 일을 경험하게 되면, 성경 안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 같은 경험을 하면, 현실에서 모든 일을 경험할 수 없지만, 성경 속에서 기적을 일으키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가 은혜 충만한 상태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엄청난 분이신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지식수준으로 보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이성 세계에 갇혀 있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랜드캐니언(Grand Canyon)이나 나이아가라 폭포(Niagara Falls), 이구아수 폭포(Iguazu Falls) 등의 자연 세계를 보면서 우리는 감탄합니다. 그런데 그때 감탄하는 것은 하나님께 감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아가라 폭포는 지구 전체에서 보면, 한 모퉁이에 있는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지금도 지구 안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로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이 먹고삽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십니다. 본문에서 시편 기자는 성경의 기사(奇事)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건져내시고 출애굽시키신 일,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신 일 등을 통해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라고 기록했습니다. 자신의 이성(理性)이나 경험의 한계 속에 하나님을 가두어두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점점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확장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의 입이 점점 작아집니다. 우리는 입을 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크신 하나님을 날마다 대면(對面)하면,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요? 경이로움에 빠지게 됩니다. 입을 다물지 못하게 됩니다. 놀라워하게 됩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우리에게 “입을 크게 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정확하게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냥 입을 크게 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입을 크게 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크고도 크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크신 하나님을 향해 입을 크게 여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입을 크게 열라고 말씀하셔도 그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 불신앙입니다. 그것이 완악함입니다.
하나님은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애굽에서 너를 인도해낸 여호와가 말씀한다. 네 입을 크게 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크게 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는 동안 현상유지에 익숙해졌습니다. 그것이 몸에 굳었습니다. 하루하루 버텨내는 것이 종살이에서 굳어진 삶의 패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지 않고 사는 것만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합니다. “너희들이 종살이하고 우상을 섬기는 자로 살 것이 아니라, 너희를 애굽에서 건져낸 나 여호와가 말하는데, 이전의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의 생각과 모든 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을 향해 입을 크게 열라는 것입니다.
종살이 할 때에는 이것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의 바로 아래에 있을 때에는 바로가 먹을 것도 없고, 일을 시키며 압제했지만, 나는 너희를 건져낸 여호와다. 이제 종살이가 끝난 정도의 삶이 아니라, 너희의 삶을 만족하게 하겠다. 풍성하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동안 우상 앞에 무릎 꿇고, 두려워했던 삶을 청산하라는 것입니다.

기도가 모두 기도인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기도하고도 책망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기는 하지만, 적극적으로 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신앙입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도록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초점을 우리에게 맞추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수준에 맞추어야 합니다. 기도의 초점을 우리의 수준에 맞춘다면, 기도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기도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기도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축소해버리면, 기도할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작게 여기면, 기도가 작아집니다. 입을 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크신 분으로 믿으면, 기도의 내용도 커집니다. 이것은 매우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불신앙이 커질수록 기도는 작아집니다. 신앙이 커지면, 기도가 커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십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보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크고 비밀한 것, 상상을 초월하는 것을 보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르짖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태도를 갖는 것입니다.

기도의 내용에 따라 기도의 태도가 결정됩니다. 작은 기도를 하는 동안에는 기도의 태도가 불손(不遜)합니다. 기도해도 되고,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내용으로 기도합니다.
기도한 것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믿음을 갖지 않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데 졸음이 옵니다. 기도에 대한 열정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도가 커지면, 기도를 간단하게 끝낼 수 없습니다. 100원을 구하는 기도와 억대의 사업자금을 구하는 기도는 같을 수 없습니다.

“네 입을 크게 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께서 아무리 더 주시려고 해도 우리가 입을 열지 않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네 입을 크게 열라”는 말씀은 우리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태도입니다. 기도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기도의 내용이 태도를 결정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진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 안에 일어나는 변화가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의 생각이 커집니다.
기도를 통해 크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우리의 믿음의 분량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하는데 믿음의 분량이 점점 작아진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태도에 변화가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키에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는 “기도는 하나님을 바꾸지 않는다.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을 바꿀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옛날에는 능력 있는 분이셨는데, 요즘은 능력이 떨어지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태도에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태도에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능력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이 작아져간다면, 우리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신을 만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크신 분이십니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축소시킵니다. 우리의 기도도 점점 작아집니다.
“하나님, 저는 그런 것 필요 없습니다.”라고 아주 건방지고 교만한 태도로 기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그런 것은 구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의만 구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의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가운데 우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는, 가난한 마음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 구할 것을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지 않는 것을 본문에는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기도가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은 하나님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불신앙이라고 하고, 본문에서는 ‘완악함’이라고 했습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 우리의 생각이 점점 커져야 합니다. 크신 하나님을 만나다 보면, 우리의 생각이 커져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리기 시작하고, 사고(思考)가 열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적극적으로 변하고, 불가능한 것을 보기보다 가능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눈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믿음의 안경을 끼고,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못하면,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의 기도가 점점 작아집니다. 내 기도가 이전보다 작아지고 있는지, 커져가고 있는지, 기도 내용이 빈약해져 가는지, 기대감이 넘치는 기도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기도 내용이 점점 빈약해지고, 기도 내용이 점점 줄어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내용이 클 때에는 기도하러 교회에 나와서 열심히 기도했는데, 기도 내용이 점점 줄어드니 기도하러 교회에 나올 생각이 없어집니다.
기도 내용이 빈약해지니 간절히 구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이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사라져버립니다.

기도하면 가슴이 뜁니다. 기도할 때 가슴이 뛰어야 합니다. 흥분되어야 합니다. 기대감이 생겨야 합니다.
자신의 작은 생각 속에 하나님을 집어넣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네 입을 크게 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기보다는 하나님을 초라하게 만든다면, 그 기도는 불신앙적인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 내용 자체가 빈약하면, 하나님께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이 불신앙입니다. 완악함입니다. 입을 크게 열지 않는 것은 완악함이요, 불신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만일 네가 나를 원한다면, 입을 크게 열어. 내가 크신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기보다 하나님을 초라하게 만드는 기도를 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할 때마다 가슴이 뛰어야 합니다.
기도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할 만한 것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흡족해하실 만한 기도, 하나님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살펴보면, 기도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를 교정해야 합니다. 기도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바른 기도의 자세를 갖기 위해서는 기도의 내용을 점검해야 합니다.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 기도의 태도를 걸러내야 합니다. 기도가 소극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기도하는 것이나 기도하지 않는 것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기도를 해서는 안 됩니다.

갈증을 잠시 해결하는 기도가 아니라, 우물을 발견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입을 크게 열고 기도하는 것은 기도의 접근부터 다른 기도입니다.
단순히 한 가지 문제를 푸는 기도가 아닙니다. 근원을 해결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입을 크게 열라고 말씀하신 데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렇게나 많이 구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입을 크게 열라”라고 말씀하신 의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채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냥 채우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유 없이 채우시지 않습니다. 이유 없이 채우시는 것은 자원낭비입니다.

하나님은 풍성하신 분이시지만, 대책 없이, 아무에게나, 아무렇게 부어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필요하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없이 부어주시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한 방울도 주시지 않으십니다.

왜 우리가 입을 크게 열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네 입을 크게 열라”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목적이 중요합니다.
첫째, 우리가 입을 크게 열어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여호와 크신 하나님을 드러내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세상에 드러내시기 원하고, 선포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증명하고, 증거하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하십니다. 우리가 입을 크게 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세상이 알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상과 어떻게 다른 분이신가를 알게 하기 원하십니다.
크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입을 크게 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기도 응답의 초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드러나게 하는 것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 드러내기 원하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 우리 주변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과연 하나님이시로다’라고 알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우리가 크게 구해야 하는 이유는 크신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만족하실 만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네가 나의 영광에 합당한 기도를 하는구나.”라고 만족해하실 만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도록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면, 영광의 찬란함에 눈을 뜰 수 없게 됩니다. 경이로움 앞에 모든 사람들이 무릎 꿇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입을 크게 열라는 말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 속에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이신지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둘째, 우리가 입을 크게 열어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함입니다.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나누고 베푸는 삶을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배만 채우기 위해 입을 크게 연다면, 그것은 욕심입니다. 욕망입니다.

야고보서 4장 3절에 보면,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입을 크게 열라는 것은 무조건 큰 것을 요구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만을 위해 크게 구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나 혼자 밥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살면 됩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잘되어야 하고, 형통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입을 크게 열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요셉으로 하여금 형통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요셉이 형통하게 된 것은 요셉이 노력한 결과가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형통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7년의 풍년을 통해 이웃까지 풍성함을 누리고, 나중에는 아버지와 형제들까지 풍성함을 누렸습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70인을 고센 땅으로 오게 하시고, 히브리 민족을 크게 키우셔서 출애굽하게 하시는 거대한 구속(救贖) 드라마를 실현하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야곱 가족들에게 기근을 겪게 하시고, 요셉을 찾아오게 하셨습니다.

왜 입을 크게 열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겠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데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형통함이 흘러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형통함이 이웃에게 흘러가고, 주변으로 흘러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입을 크게 열라는 것은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축복들을 이웃과 함께 나누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이웃과 나누려는 목적을 정확하게 가지고 있으면, 마음껏 구해도 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욕심으로 보시지 않으십니다. 흘려보내기 위해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입을 아무리 크게 열어도 부족합니다. 흘려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먹이려면, 입을 크게 열어야 합니다. 더 많이 먹으려면, 더 크게 벌려야 합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끼리만 쓴다면, 쓰고도 넘칩니다. 흘려보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숫자를 자랑하기 위해서입니까? 그것은 의미없습니다.
흘려보내야 하기 때문에 부흥해야 합니다. 이 나라와 민족을 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통일 이후에는 북한도 살려야 합니다.

지금 한반도 안에는 오묘한 변수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미래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앞으로 3년 이후에 경제적 위기가 온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미국에 의존해있습니다. 통일은 임박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가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통일되면, 한국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북한을 품지 않으면, 길이 없습니다. 통일이 되면, 국가적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서독이 엄청나게 잘 살았지만, 지금까지도 동독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안고 갑니다.
우리나라는 독일보다 조건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입을 크게 열어야 합니다. 채우고 채워서 흘려보내야 합니다. 북한으로, 온 세계로, 선교사들에게로 흘려보내야 합니다.

주변에서 우리 교회에 대해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청하는 것이 많습니다. 예산이 없는데도 계속해서 요청합니다. 대한민국의 기독교 단체를 비롯하여 곳곳에서 우리 교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교회마다 돈이 없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입을 더 크게 열어야 합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를 살리고, 디아스포라 해외 교회까지 살리고, 다음세대를 살리고, 약자와 소외된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입을 더 크게 열어야 합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기도해야 하는 이유, 크게 입을 열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입을 열고 기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탄이 우리를 장악하게 됩니다.

물질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이 우리의 물질을 가져가버립니다. 돈이 악인의 손에 들어가면, 악한 일에 사용됩니다. 돈을 버는 데 악인이 얼마나 적극적입니까.
돈을 버는 데 있어서도 정당한 방법이라면, 적극적으로 입을 크게 열어 돈이 악인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하나님께 돌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를 갈망해야 합니다.
누가 가져가서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 것인가의 싸움입니다. 이것이 돈의 파워입니다. 누가 가져가서 무슨 목적으로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의 싸움입니다.

한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아이디어로 큰 아이템(item)을 성사시켰습니다. 그것을 통해 번 돈을 선교를 위해 사용하시겠다고 간증하셨습니다.
그 간증을 들으니 제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리고 역사가 일어나게 해달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데, 우리가 흘려보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독이 될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입을 크게 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흘려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행하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행하십니다. 입을 크게 여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곳간을 채우시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흘려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채우시는 이유는 우리 주변으로 흘러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이웃을 섬기는 일을 위해서는 우리가 입을 아무리 크게 열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나 한 사람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입을 크게 벌릴 이유가 없습니다. 한 숟가락만 먹으면 되는데, 입을 크게 벌려서 무엇 하겠습니까.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입을 크게 벌린다면, 그것은 욕심입니다. 하나님을 내 배를 채우는 욕망을 위한 도구로 끌어들여서는 안 됩니다.

이웃을 섬기려는 마음이 넘친다면, 우리의 입은 크게 열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저 혼자만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옆에 있는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이 땅을 살려야 합니다. 저로 인해 이 영역에 회복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 저를 사용하여 주세요.”라고 기도할 때, 우리의 입이 크게 열립니다.
우리가 크게 구해야 하는 동기는 섬김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생활 속에서 고통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셨습니다.
본문 시편 81편에 보면, 신음이 노래로 바뀌었습니다. 시편 81편 1절에 보면,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쁘게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이 소리칠지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6절에 보면, “내가 그의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의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16절에 보면, “내가 기름진 밀을 그들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하게 하리라 하셨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입을 얼마나 크게 열어야 할까요?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편에서는 제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계가 없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입을 아무리 크게 열어도 하나님은 곤란해 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편에서는 제한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충분합니다. 하나님의 자원이 모자랄까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보면,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이 말씀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시 23:5).
그러므로 우리는 입을 벌릴 수 있을 만큼 크게 열어야 합니다.

불행을 면하게 해달라는 정도로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행복이 넘쳐흘러 주변까지 행복하게 하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몸이 아파서 “더 이상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지 마세요.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겨우 버텨내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승리의 전리품을 사탄에게서 빼앗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입을 크게 여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그들의 입을 사용하셔서 주변 사람들까지 먹이시는 역사를 일으키실 줄 믿습니다.
우리의 심령 가운데 강력한 믿음을 주셔서,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이 떠나가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하나님의 크심을 찬양하며, 믿음으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안에 있는 염려와 근심 등이 사로잡아 나도 모르게 하나님을 제한하고, 기도가 쪼그라들어, 기도하지만 아무런 기대가 없고, 무미건조하게 기도하다가 나중에는 기도하는 것까지 포기해버리는 불신앙적이고 완악한 모습을 끝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안에 있는 부정적인 생각을 깨뜨려버리시기 바랍니다. 수세에 몰려 끌려 다니고 버티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것은 구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건져내신 백성들을 기름진 밀로 풍족하게 하십니다. 반석에서 난 꿀로 그들을 만족하게 하십니다.
크신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향해 입을 크게 여시기 바랍니다. 입을 크게 여세요. 하나님께서 어떤 역사를 일으키실는지는 하나님께 맡기세요.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입을 크게 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 우리 주변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책임지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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