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철야예배설교
제목 / 멈추어 서있지 말라
본문 / 여호수아 18:1~7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에 회막을 세웠으며 그 땅은 그들 앞에서 돌아와 정복되었더라
2.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 기업의 분배를 받지 못한 자가 아직도 일곱 지파라
3.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4. 너희는 각 지파에 세 사람씩 선정하라 내가 그들을 보내리니 그들은 일어나서 그 땅에 두루 다니며 그들의 기업에 따라 그 땅을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올 것이라
5. 그들이 그 땅을 일곱 부분으로 나누되 유다는 남쪽 자기 지역에 있고 요셉의 족속은 북쪽에 있는 그들의 지역에 있으니
6. 그 땅을 일곱 부분으로 그려서 이 곳 내게로 가져오라 그러면 내가 여기서 너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으리라
7. 레위 사람은 너희 중에 분깃이 없나니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이 그들의 기업이 됨이며 갓과 르우벤과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저편 동쪽에서 이미 기업을 받았나니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들에게 준 것이니라 하더라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2005년 스탠포드대학 졸업식에서 연설하면서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끊임없이 갈망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삶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젊은이들에게 도전을 주는 메시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경기에서 우리나라가 4강 신화를 이루었을 때, 히딩크(Guus Hiddink) 감독은 “나는 여전히 배고프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통해 그는 강한 투지와 열정을 드러내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요즘은 다른 어떤 시대보다 모든 것이 풍족한 시대입니다. 모든 것이 풍족하고 여유가 있다 보니 이전에 가졌던 헝그리(hungry) 정신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먹고살만해지니 사람들이 유약해졌습니다. 사람들은 편안한 것을 좋아합니다. 좋은 환경 속에 묻혀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서 열정으로 가득 찬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대충대충 살아갑니다. 쉽게 살려 합니다.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공동체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은 그토록 동경하고 바라던 가나안 땅에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대하고 고대하던 꿈의 현장이었습니다. 바라고 바라던 가나안 땅에 진입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과정은 하나뿐입니다. 그들이 그 땅에 들어가 취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들은 그 땅을 정복했습니다. 그 땅을 자기의 것으로 취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 땅을 이미 정복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그들에게 주어져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일곱 지파에 속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신 땅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땅을 주셨으니, 당장이라도 뛰어 들어갈 것 같은데, 말뚝이라도 박을 것 같은데, 그들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치 가나안 땅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들은 일을 끝내지 않고, 갑자기 주저앉아버렸습니다. 마라톤으로 설명하자면, 마지막까지 완주(完走)해야 하는데, 그들은 주저앉아버렸습니다. 가야 할 길이 아직 남아있는데, 그들은 멈추어서버렸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라고 책망했습니다.
일곱 지파는 가나안 전쟁에서 매우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왜 취하려고 하지 않고, 지체하고 있느냐고 책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왜 취하려고 하지 않고, 지체하고 있느냐, 왜 여기 머물러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 여기에 주저앉아있느냐는 것입니다. 꿈에 그리던 새로운 땅이 눈앞에 있는데, 머물러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여호수아는 책망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너무 쉽게 만족해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광야를 벗어난 것만으로도 만족스럽습니다. 먹을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이 건조한 광야를 벗어난 것 것만으로도 참 좋습니다.
그들은 요단 강을 건넌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전쟁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노예생활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그친다면 미완성입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유혹이 있습니다. 현실에 안주(安住)하게 하는 것입니다. 현실에 안주하게 하는 유혹이 의외로 강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느 순간, 어느 지점에서 머물러있습니다. 적당한 선에서 자기 스스로 합리화하고, 자신을 설득합니다. 그리고 ‘이 정도면 괜찮아.’라고 생각하며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적당한 선에 머물러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벗어난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노예생활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각자 삶에서 안주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주위에서 아무리 도전해도 ‘나는 여기가 좋아. 이 정도면 괜찮잖아. 더 이상 뭐가 필요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계속 도약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머물러있습니다. 현실에 적응하려 합니다. 사람들은 먹고살기에 바쁘다 보니 ‘이 정도 신앙생활 하는 것도 괜찮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교회에 다니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주일 출석 잘하고, 그런대로 직분도 감당하고 있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받고, 어떤 위치에 도달한 것으로 만족하고 안주하려 합니다.
바울은 그의 신앙 여정 가운데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라고 말했습니다(빌 3:12).
그는 머물러있지 않았습니다. 영적 도약을 위한 그의 목표는 결코 얄팍하지 않았습니다. 성숙을 위한 그의 목표는 굉장히 높았습니다. 그는 결코 쉽게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달렸습니다. 바울의 서신서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달리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우리는 현실에 안주하며 적당하게 살려하는 유혹과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적으로 부요한 세계를 향해 가지 않고, 적당한 선에 머물러 있으려 하는 유혹과 싸워야 합니다. 마치 그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유혹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현실에 안주해버릴 때에 나타나는 증상이 무엇입니까? 영적 무감각입니다. 영적 기대감과 사모함이 없어져버립니다. 영적 일에 관심이 없어집니다. 영적 헝그리 정신이 사라져버립니다. 사모함, 갈급함, 기대감, 갈망이 없어집니다.
욕심이 없는 것은 좋지만, 의욕조차 없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과욕(過慾)은 금물(禁物)입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갈망은 있어야 합니다.
기회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쉽게 포기해버려서는 안 됩니다. 잘못된 욕망은 갖지 않아야 하지만, 영적 축복에 대한 갈망이 없는 것은 문제입니다.
목표를 놓쳐버릴 때, 스스로 세운 기준에 만족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일종의 도피(逃避)입니다.
더 나아갈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을 향해 나아가지 않고, 적당한 지점에서 만족해버립니다.
베드로가 그러했습니다. 변화산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말했습니다(마 17:4). 갈 길이 먼데, 여기가 좋다며 만족해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것을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마 16:22). 베드로는 주님의 구속 사건을 가로막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더 깊은 은혜의 세계가 있는데, 적당한 곳에 자리를 깔고 싶은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우선의 편안함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잠깐의 행복을 위해 영원한 즐거움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일곱 지파에 대한 여호수아의 처방은 무엇이었습니까? 각 지파마다 세 사람씩 뽑아 그들이 차지할 기업의 땅들을 돌아보고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남은 부분을 일곱 부분으로 나누어서 지도를 그려오게 했습니다.
여호수아의 명령은 그 땅에 가서 지도를 그려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현장체험을 하고 오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지도가 필요해서 지도를 그려오라고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안일함에 빠져있는 그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함입니다. 현장체험을 통해, 무관심으로 일관되었던 그들의 마음에 열망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이 여호수아의 명령에 따라 땅을 밟으며 이곳저곳으로 다니는 동안, 그들의 마음에 소원이 일어나기를 원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기업들이 얼마나 크고 풍성한가를 그들로 하여금 보게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답답해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축복의 땅을 목전(目前)에 두고도 가만히 있는 모습 때문입니다. 그들이 눈앞에 있는 땅을 취해야 하는데, 그들이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 모습 때문입니다.
왜 그들은 가만히 있었을까요? 그들은 본 것이 없었습니다. 본 것이 없으니까 그들 속에 아무 그림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 땅이 얼마나 좋은지 몰랐습니다. 그 땅이 얼마나 크고 광대하고 풍성한가를 몰랐습니다.
본 것이 없으면, 무엇이 좋은 것인지 설명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눈앞에 있는 것만 보는 근시안(近視眼)이 됩니다.
현실에 만족하게 되는 원인이 무엇일까요? 미래에 대한 그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눈앞에 주어진 것을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설명해도 이대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해결방법은 무엇일까요? 백 마디의 설명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직접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그림을 그려오게 한 것입니다. 그 땅의 지도를 그려오게 했습니다.
본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본 것이 있으면, 쉽게 안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많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가야 할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기 때문에 본 사람은 주저앉아있을 수 없습니다. 본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왜 중요합니까?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남들은 보아야 아는데, 믿음을 가진 사람은 보지 않고도 이미 본 것처럼 믿음을 갖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은 기대감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육안(肉眼)으로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림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은 미리 보는 눈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리더(leader)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어야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이 리더가 되면 안 됩니다.
왜 믿음의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합니까? 믿음의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것을 미리 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미리 보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이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이끌어가는 리더로 여호수아를 세우신 이유는 그는 이미 가나안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열두 명의 정탐꾼 중 한 사람으로 가나안에 갔을 때,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눈으로 가나안 땅을 살피고 왔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업이 무엇인지 샅샅이 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그 땅을 밟았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여러분이 본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림을 먼저 보여주시고,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림을 이루어가십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림이 정확하게 그려지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냥 돌아보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림을 그려오게 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세히 보아야 합니다. 대충 보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보아야 합니다. 대충 봐서는 그림을 그릴 수 없습니다. 구석구석 들여다보며, 꼼꼼하게 챙겨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 얼마나 기름지고 아름답고 풍성하고 크고 놀라운가를 보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땅을 그려오라고 한 것은
첫째, 구체적인 비전이 생기게 하기 위함입니다.
보고 그림을 그리는 가운데, 비전이 생깁니다. 비전을 일으키는 데 보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습니다.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비전이 생기지 않습니다.
보는 것이 비전이 됩니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비전입니다. 믿음으로 보고 있다면, 그것이 비전이고, 그것이 우리를 이끌어갑니다.
보는 것이 없으면, 비전이 없습니다. 비전이 없으면,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보는 것의 싸움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우리의 믿음의 눈을 열어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봅니까? 우리가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게 하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보는 것이 축복입니다. 보게 되는 것이 은혜입니다. 보는 것은 자극을 일으킵니다. 보는 가운데 자극이 일어납니다. 자극이 일어나면 가만히 있을 수 없고,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흥분이 일어나고, 열정이 일어납니다.
비전은 열정을 일으킵니다. 비전은 우리로 하여금 쉽게 만족하지 않게 하고, 주저앉지 않게 하는 힘을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비전은 위험을 선택하는 용기를 갖게 합니다.
OM국제선교회는 둘로스와 로고스라는 선교 선(船)을 움직이며, 세계 86개국에서 3천 6백 명의 사역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국제적인 선교단체입니다.
OM국제선교회의 설립자는 조지 버워(George Verwer)입니다. 조지 버워는 어렸을 때에 온 세상이 물로 덮여있다는 것을 알고, 바다를 왕래하며 선교하는 것에 대한 꿈을 키웠습니다. 조지 버워는 바다를 보며 요트 탈 것을 생각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데 바다를 이용하면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둘로스와 로고스 배를 통해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OM국제선교회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바다를 보며 그 꿈을 가졌습니다. 그 꿈이 커지고, 비전이 이루어져서 마침내 세계 선교사역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세계지도가 그려진 옷을 항상 입고 다닙니다. 그리고 그는 날마다 세계지도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조지 버워는 커다란 지구본 풍선을 들고 설교합니다.
그는 세계지도를 보고, 바다를 보며 꿈을 키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입니다. 바다를 통해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꿈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꿈에 사로잡힌 한 사람에 의해 설립된 선교단체를 통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선교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의 자녀들이 여행도 많이 다니고, 선교지도 많이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름에 단기선교를 많이 갑니다만,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보는 것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보는 것은 내가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많은 것을 보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합니다. 많은 것을 보는 기회를 많이 가지면,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여름에 단기선교에 많이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나라든지 작정하시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먼저 목표를 정하시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목표를 정하시고 기도하며 도전해보세요.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자꾸 보면, 우리 안에 그림이 생깁니다.
여호수아는 사람들에게 “그 땅을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올 것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땅을 보고 그림을 그리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여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이 전부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영역 속에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얼마나 광대한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제가 호주에 살 때, 아무리 달려도 한 주(州)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한 주가 그렇게 큽니다. 끝도 없이 달렸습니다. 미국은 또 얼마나 큽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땅 가운데서 우리에게 여러 영역을 보게 하시면서 비전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을 갖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다양한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공간적 개념을 계속 넓히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때로는 높은 곳에 가보세요. 등산하다가 길을 잃으면, 아래에서 헤매다 보면, 점점 더 길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위로 올라가면, 길이 보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높은 곳에 올라가 보세요. 그렇게 하면,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일해야 하는 땅이 얼마나 넓은가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비전이 우리 안에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보여주시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것이 나를 끌고 갑니다. 내가 보았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본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본 것을 내가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다르게 살아갑니까? 본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보는 것의 전쟁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볼 것인가. 세상이 보여주는 것을 볼 것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도 세상의 문화를 가지고 우리에게 무엇인가 보여주려 합니다. 우리를 엉뚱한 곳으로 끌고 가려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을 여셔서 장래의 기업의 풍성한 것을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비전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비전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정복해야 할 땅이 아직 많은 것을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여기에 앉아있지만,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눈을 여셔서 우리로 하여금 보게 하시고, 구체적으로 보게 하시고, 우리가 본 것을 비전으로 일으키시고, 우리를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둘째, 사명을 확인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땅을 다니며 이스라엘 민족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확인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지도만 그리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도를 그리므로 그 땅에 대한 애착, 관심, 비전이 생기게 하고, 그 비전을 통해 우리를 사명으로 이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복해야 할 영역이 있고, 버려진 땅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발견하게 하시고, 그것을 어떻게 가꾸고 세워야 할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사명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도를 그려오게 한 것은 사명과 연관되어있습니다. 본 것이 비전입니다.
그런데 비전이 비전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비전은 사명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비전을 구체적으로 성취해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땅을 계속 살펴보는 가운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점검하게 했습니다.
계속해서 바라보면, 그곳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목하게 하시는 것을 보면, 우리의 할 일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바라볼 때, 우리 안에 사명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다 보면, 우리 안에 사명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계속해서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꿈꾸게 하시는 것들 속에 우리를 향한 부르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명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밥 먹고 사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게 됩니다.
현실에 안주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사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도시와 나라에 대한 영적 도해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내가 어디쯤 있는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민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전을 일으키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비전에 집중하며 사명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을 바라볼 때에도 우리 안에 사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황폐한 교회의 모습을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여셔서, 방황하고 상처 입은 영혼들, 깨어진 가정들, 고통하는 청소년들을 보게 하시면,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취하게 하시는 땅, 다가가게 하시는 사명의 영역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유업(遺業)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신자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기업이 얼마나 풍성한지 모릅니다.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라고 말했습니다(엡 1:18~19).
바울은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기 원했습니다. 그것을 알려면, 마음의 눈이 밝아져야 합니다. 마음의 눈이 열릴 때, 하나님의 풍성한 약속들을 보게 됩니다.
은혜 중의 은혜는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풍성하신 기업의 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중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눈을 열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기업들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영역이 얼마나 풍성하고 많은가를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졌을 때, 바울은 이전에 붙들었던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이전에 붙들고 미련을 가졌던 것들을 과감히 버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새로운 세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못하면, 신앙생활이 교회놀이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먹고 놀고 어울려 다니는 친목모임과 비슷해질 수 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축복을 놓쳐버렸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약속하는 부요함과 복된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 주저앉아있게 됩니다. 우리도 모르게 무관심이 찾아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도 모르게 무관심해지고 영적으로 나태해집니다.
왜 영적으로 나태해집니까? 영적으로 계속해서 상승해야 하는데,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적당한 수준에서 멈추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깊고 풍성한 곳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세계로 우리를 데려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을 하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것을 향해 나아가기를 주저하고, 적당한 수준에서 멈추어서 만족합니다.
은혜 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더 깊고 풍성한 세계로 나아가려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계속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은혜 충만한 가운데 산다는 것, 영적으로 계속해서 도약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은혜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은혜 충만한 상태에 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기본 상태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서 은혜를 빼앗아가고, 기본적인 것도 유지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조금이라도 방심하거나 나태해지면, 본전도 찾지 못합니다. 기본적인 것도 잃어버립니다. 나중에는 기도도 하지 않게 됩니다. 성경이 어디에 있는지도 잊어버립니다.
계속해서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업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시고,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어주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본문에서 찾아야 하는,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입니다. 본문에서 지금 이 시간 나에게 약속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약속으로 가득합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믿음으로 붙잡고, 약속이 성취되는 그 날까지 멈추지 않고 달음질쳐야 합니다.
영적으로 계속해서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내 삶 속에 이루어질 것을 믿고,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이 내 삶에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용기가 필요합니다. 환경을 탓하지 마세요.
요즘 ‘트라우마(trauma)’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과거에 아픈 기억과 상처로 인한 트라우마에 갇혀서 꼼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삶이 자신을 붙들어서는 안 됩니다. 과거는 우리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과거의 삶이 어떠하든지, 어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든지, 과거에 좋지 않은 경험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지금 능력이 부족하다 해도 우리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선택하면, 믿음으로 용기를 가지고 내디디면, 우리에게 능력이 부족하다 해도, 과거에 상처와 아픔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시는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불안하여 갇혀있기만 하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것입니다. 과거가 어떠하든지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면, 삶은 바뀔 수 있습니다.
이전의 좋지 않았던 환경이나 경험에 묶여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과거일 뿐입니다. 미래를 위해 도전하면, 과거는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 도전하세요. 용기를 가지세요. 제자리걸음하지 마세요. 현상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해하지 마세요.
결단하고 내디뎌야 합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용기를 가지고, 믿음으로 내디뎌야 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야 합니다.
과거가 어떠하든 상관없습니다. 한 걸음 내딛는 것은 믿음의 행위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합니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서부터 모든 역사(役事)가 시작됩니다. 과거에 문제가 있어도, 나를 붙잡는 요소가 수없이 많아도, 믿음으로 한 걸음 내디디면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편이 되어주십니다. 거기에서 역사가 일어납니다.
한 걸음 내딛는 믿음의 행위가 바로 용기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현실을 합리화하고, 변명을 늘어놓는 것을 무기로 삼는 삶은 믿음이 후퇴하는 삶입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한 발 내디뎌야 합니다. 선택해야 합니다. 용기를 가지고 한 걸음 내디뎌야 합니다.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영적 세계에 대한 기대감이 있습니까? 영적 기업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허락하신 것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믿으십니까?
눈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그림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운데 보여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부요하신 아버지께서는 자녀가 그냥 살다가 죽도록 내버려두실 리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풍성한 기업의 영광을 누리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 원하시는 영역이 있습니다. 무한한 세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도를 그리게 했습니다. 멈추어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확인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도를 그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영역 속에 보여주실 것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 속에 파묻혀 먹고사는 것으로 인해 발버둥 치다가 인생을 끝내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현실 가운데 주저앉아있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현실의 편안함에 젖어 하나님의 풍성한 약속과 축복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 있는 곳을 확인하셔야 합니다. 혹시 머물러있지는 않습니까? 작년, 재작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선을 그어놓고, 선 밖으로 벗어나지 않고 살지 않습니까? 과거의 승리에 젖어 멈추어 있지는 않습니까?
조금만 더 파고 들어가면, 어마어마한 광맥(鑛脈)이 있는데, 멈추어버린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조금만 더 파고 들어가면, 어마어마한 광맥이 있습니다. 금광이 있습니다.
언제부터 멈추어있는지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적당하게 만족하며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 깊은 은혜와 축복을 갈망하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일평생 달려도 끝에 도달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의 약속은 광대(廣大)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실 일은 매우 광대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한 분도 예외가 없습니다. 나이와 조건은 상관없습니다. 지금까지 은혜를 많이 받고, 지금까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았다 할지라도 여전히 배고픈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산과 같아서 우리는 도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대한 산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일평생 다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우리는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지점에 멈추어 서서 마치 하나님을 다 아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다 경험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의 삶과 예수님을 믿는 신자가 된 후의 삶이 크게 다를 바 없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풀려나 가나안에 들어가 사는 삶은 이전의 삶과 전혀 다릅니다. 확연히 구별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때와 예수님을 믿는 지금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생각해보세요.
신자의 삶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삶과 차이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궁색하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노예생활에서 겨우 벗어난 정도의 삶이 아니라, 승리를 통해 하나님의 풍성함을 경험하는 새로운 삶이 열려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삶입니다.
영적으로 적극성을 가지고 계속해서 정복해가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누려야 할 영역들을 사탄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우리의 영토를 사탄에게 빼앗겨버립니다. 우리가 취해야 할 땅을 적극적으로 취하지 않으면, 사탄이 그것을 빼앗아갑니다.
혹시 사탄에게 빼앗긴 것이 없습니까? 탈환(奪還)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탈환하셔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고,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머물러있지 말고 계속해서 도전해야 합니다. 계속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멋진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들에 대해 적극성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도 치고 나아가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다릅니다.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까지 영적으로 배고픈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더 풍성한 세계로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적당한 수준에 머물러있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언제나 배고파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안전지대에 머물러있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비록 위험한 곳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곳이라면, 우리가 거침없이 나아가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믿음을 가지고 한 걸음 내디디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우물쭈물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의 풍성함의 베일을 계속해서 벗겨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세계는 광대하고 놀라워서 우리가 다 알 수 없습니다.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합니다. 베일을 벗기면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그 베일을 벗기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립니다. 그러나 베일을 벗겨야 합니다.
본문에서 바로 가서 취하기만 하면 되는데, 가서 취하지 않고 머물러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여호수아는 가서 지도를 그려오게 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한 것입니다. 자극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도전하게 했습니다. 사명을 확인하게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다시 세워가는 것을 다시 꿈꾸게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자신도 모르게 한계를 그어놓고 더 이상 넘어가지 않으려고 머물러있고, 자신의 삶을 제한하고, 믿음과 반대되는 행위로 안주한 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이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한계선을 뛰어넘고, 앞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세계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내딛으시기 바랍니다.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머물러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만히 서있지 않고, 쟁취하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꿈꾸시기 바랍니다. 그림을 그리시기 바랍니다. 사명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세계에는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저앉아서 맴돌고 있고, 제자리걸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와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가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궁색한 노예적 삶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업의 풍성함을 누리며, 영적 세계에서도 더욱 깊이 더 풍성하게 다가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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