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글 / 배려하는 삶이 아름답다
요한복음 21장 3∼7절
배려란 남을 이해하고, 말과 행동도 남을 위해서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서로 배려하며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죄는 인간 안에 배려의 마음 대신 자기를 위하는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오늘날 세상의 가르침들은 배려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것이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일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배려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려에는 온유 인내 겸손 용납(엡4:1∼3) 같은 성품이 포함됩니다. 죄로 무감각해지고 이기적이 된 세상에서 배려의 마음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배려하는 것은 힘없는 자의 모습 같고 손해 보는 것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배려하는 삶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갖춰야 할 참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은 절망에 빠진 베드로가 회복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만났습니다(20장). 이상하게도 베드로에게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붙잡히기 전 자신은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다가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가 이때 어떤 생각을 가지겠습니까? 침묵하던 베드로가 마침내 한마디 했습니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이것은 의논이 아닙니다. 권고도 아닙니다. 이것은 선언이었습니다. “너희는 여기서 예수님을 기다려라. 그러나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라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기다리고 만나는 것이 이제 베드로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의미였습니다. 그것은 마음 아픈 절망의 외침이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어떤 권면이나 설득도 하지 않았습니다. 비난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들은 “우리도 함께 가겠다”(3절)고 했습니다. 함께 배를 탔습니다.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했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제자들은 베드로의 아픔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을 먼저 알아보고 베드로에게 알려주자 그는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들어 예수님께 왔습니다.
베드로는 몇 년 전 갈릴리 호수에서 예수님을 만난 날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밤새 수고했지만 소득이 없었습니다. 지쳐있던 그에게 예수님은 그물을 깊은 곳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대로 했고,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그날 그 일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처음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와 지금은 매우 차이가 있습니다. 처음 그때는 순수했지만 지금 깊은 상처로 절망 가운데 있고, 주님을 향한 사랑조차 차마 고백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그에게 처음 예수님을 만났던 시간은 놀랍고 아름다운 추억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겉옷을 두르고 바다에 뛰어내려 달려온 그 행동은 바로 예수님께 처음 가졌던 그 순수한 마음의 모습입니다. 또 사도 요한을 생각해 보십시다.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을 갖고 있던 그는 예수님을 만난 뒤 사랑의 사도로 변했습니다. 그는 먼저 예수님을 알아보았지만, 베드로에게 “주시다”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먼저 뛰어갈 수 있었고, 다른 제자들에게 말할 수도 있었지만 베드로에게 말하고 그가 예수님께 먼저 달려가도록 했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배려가 필요한 이웃이 누가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다. 주님은 우리가 그에게 어떤 배려를 보이기를 원하시는지, 어떻게 배려하기를 원하시는지 생각해 보십시다.
전재국 천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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