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글 /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우리 사회는 물질적으로 풍요한 가운데 영적 빈곤을 겪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역시 영적 빈곤을 외면한 채 물질적 풍요에 함몰돼 영혼을 살리는 방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교회가 영적 갱신과 재림신앙을 말하고 있지 않는 사이 환경단체, 지구기후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지구 종말을 걱정하고 있고, 이단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종말론을 확산시키며 믿는 자들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 사도가 세상의 성도들에게 ‘종말신앙’ ‘재림신앙’을 갖고 살아갈 것을 당부하는 말씀입니다.
종말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이 망하는 것도 종말이지만 우리 개인의 생명이 끝나는 것도 개인적 종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인류가 이룩하고 있는 성과 때문에 종말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크고 높은 집을 짓고, 아무리 견고한 제도를 만든다고 해도 마지막 날에는 모두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베드로 사도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의 사명이 무엇이라고 권면하고 있을까요.
첫째, 선한 청지기 같은 삶입니다(10절). 물질의 풍요는 청지기 정신을 훼손시키고 있습니다. 칼 힐터는 ‘우리의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라고 했습니다. 주님도 ‘행복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하십니다. 주신 이도 주님이시요, 쓰신 이도 주님이십니다.
둘째는 기도의 삶입니다. 마지막 때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해 기도해야 합니다. 한국사회의 정신적 혼란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근신하여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악이 너무나 창궐하니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끊임없이 교통하고 영적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셋째는 서로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8절). 사랑의 필수요소는 대접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사랑이 식다 보니 대접도 식었습니다. 성경은 대접을 요구하지만(롬 12:13, 히 13:2, 요삼 1:5∼8, 갈4:14) 성도들은 대접하기를 싫어하고 대접받기를 좋아합니다. 성경은 ‘대접할 때 원망 없이 하라’고 하십니다(9절). 힘겹다고, 부담된다고, 어렵다고 불평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넷째는 봉사의 삶입니다. 종말시대는 역시 봉사를 싫어합니다. 감사도 없고, 헌신도 없어지지 않습니까. 봉사는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11절)고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말세를 사는 종말신앙의 모습입니다.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일어난 성령운동은 제2의 오순절운동이었습니다. 당시 김익두 목사님을 비롯한 기독교 지도자들은 종말신앙으로 무장해 재림신앙이 확고했습니다. 그것이 사람을 변화시켰고, 생명운동을 일으켰으며, 민족과 교회를 살리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도 그 신앙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나에게 생명(生命)이 있음은 나에게 사명(使命)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곧 살아 있는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사명이 곧 생명인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이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말세를 살면서 사명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입니다(11절).
김종택 목사(발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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