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글 / '명목 신자'의 비극
오늘 말씀은 최후 심판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보여주시며 자기착각과 자기기만에 빠졌던 거짓 선지자와 명목 신자들의 최후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22절은 ‘그날’은 바로 최후 심판의 날로 인간의 최대 성공과 실패, 저주와 축복이 갈리는 날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최후 심판자로 등장하셔서 그 사람의 신앙과 삶을 평가하십니다. 여러분의 신앙 평가는 예수님이 하시므로 예수님께 인정받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21절에는 심판의 기준이 나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충격적인 말씀이 있습니다. 교회 구성원이 되고 신앙고백을 하고 기도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변화 받지 못한 명목 신자, 가짜 신자, 나그네 신자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자’여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는 죄를 회개하고 오직 예수를 구주로 믿고 그를 신뢰하여 순종하는 자를 말합니다.
명목 신자들은 이렇게 항변할지 모릅니다. “주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 쫓고 권능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조건은 봉사, 헌신, 직분의 의무수행, 종교적 특권 같은 자기 공로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엡 2:8∼9). 이들은 잘못된 구원관을 갖고 자기착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무엇을 했느냐를 묻지 않고 무엇을 받아들였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23절에서 재심 청구도 번복도 할 수 없는 예수님의 판결이 내려집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이렇게 최후의 판결을 받은 자는 가장 불행한 자요, 가장 실패한 자입니다. 100번 성공해도 마지막에 실패하면 패배자입니다. 세상만사는 끝이 중요합니다.
이들의 비극과 실패는 첫째 자기기만 때문입니다. 중생하지 않았는데 중생했다고, 은혜 받지 못했는데 은혜 받았다고 자기착각에 빠진 것입니다. 이는 사탄의 최대 전략입니다. 둘째는 자기유익을 위한 잘못된 신앙 동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고 자기 뜻과 기분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자기공로를 주장했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수고는 했으나 충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수고는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충성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불행한 자는 예수님을 모르는 자요 또한 쓰임 받지 못하는 자이며, 더 불행한 사람은 쓰임 받고 버림받는 자입니다. 여섯째는 주님과 교제가 없었고 주님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때는 신앙의 선택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습니다. 따라서 소수의 진실한 신앙인들을 통해 기독교는 역동적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결단 없이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는 ‘통계상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통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미국과 호주에서 문서선교활동을 했던 아더 핑크는 “오늘날처럼 명목상 기독교인이 많았던 시대도 참된 기독교인들이 적었던 시대도 없다”고 탄식했습니다.
그는 “역사상 오늘날처럼 사탄에게 속은 영혼들이 교회에 많았던 때가 있었는가.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고 있는데도 영혼이 잘 되어가고 있다고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오늘처럼 많았던 때가 있었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의 신앙이 주님 앞에 어떻게 평가될지 점검하고 더 새롭게 되기를 바랍니다.
조홍영 목사(인천 하늘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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