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글 / 낫고 싶으냐?  


현대는 타인을 짓밟고, 올라서는 것을 능력으로 여기는 치열한 경쟁사회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5장에도 이런 모습이 나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양문 옆에는 베데스다 연못이 있었습니다. 가끔씩 천사가 내려와 이 연못을 휘저어 놓는데 그때 그곳에 처음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든 낫는다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연못 주변에는 늘 수많은 병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가난해서 의사에게 갈 수 없거나 당시 의학으로 치료받을 수 없는 병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베데스다 연못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잔인한 곳이기도 합니다. 천사가 내려와 물이 움직였을 때 치료받을 수 있는 사람은 맨 처음 들어간 단 한 명뿐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천사가 내려와 물이 동하는 순간 그들은 서로 밟고 잡아당기며 먼저 들어가려 할 것입니다.

 

여기서 오늘 우리 사회를 바라봅니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짓밟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주님은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함께 더불어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는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주님은 경쟁으로 지치고 힘들어하는 영혼을 찾아가십니다. 가장 힘없고 소외된 자들을 찾아가십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분은 바로 주님입니다. 주님은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만납니다. 지칠 대로 지쳐 있고 낙심할 대로 낙심한 영혼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38년 된 이 환자처럼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기도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주님이 그에게 물으십니다. “낫고 싶으냐.” 단순히 병을 고치고자 하는 열망을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나를 통하여 낫고 싶으냐”고 물으신 겁니다. 세상 방식으로 고침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방법대로 주님을 의지해 치유 받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신 겁니다.

 

그러나 이 환자는 본문 7절에서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라며 “내가 가는 동안에 남들이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아직도 베데스다 연못을 통해서만 치유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모든 병을 고치시고 생명까지도 살리시는 능력의 주님을 자신의 한계 안에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어리석음은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치열하고, 잔인한 경쟁 속에서 상처받은 우리에게 찾아와 “낫고 싶으냐”고 물으시지만 우리는 “주님, 우리들이 이 경쟁사회 속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와세요”라고만 답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38년 된 환자를 향해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데스다의 경쟁사회에서 벗어나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힘으로 걸어가라고 하십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베데스다 연못에 언제까지 멈추어 서 있으렵니까. 경쟁에 구원이 없음을 기억하고 주님이 허락하신 사명을 따라가십시오. 그 길이 좁은 길일지는 몰라도 나와 이웃을 살리는 생명의 길입니다.

안해용 고양 너머서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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