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글  / 작은 자의 가치   


판단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옳고 그름, 좋고 나쁨, 아름답고 추함 등을 헤아려 가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판단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실판단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가치판단입니다. 사실판단이란 객관적 상황에 대한 인식이요, 가치판단이란 이 인식된 사실에 대한 각자의 주관적인 평가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살아계실 때 말씀하신 종말에 대한 비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5장 31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의 재림 때 있을 최후의 종말에 관한 심판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셔서 전 민족을 모아놓고 심판을 진행합니다. 먼저 두 종류로 나눕니다.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고” 그리고 오른편에 있는 양무리에게 먼저 “복 받을 자들이여” 하시면서,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 즉 영생의 나라로 들어갈 것이라고 하셨고, 왼편에 있는 염소의 무리들에게는 “저주를 받을 자들”이라고 하시면서,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오른편에 있는 양의 무리는 축복의 나라, 영생의 나라로 들어가고, 염소의 무리는 저주의 나라 영벌의 나라로 들어갑니까. 이유는 단 한 가지, 이 땅에서 소외된 자에게 사랑을 베풀었느냐 그렇지 않느냐 입니다. 소외된 자를 주님께서는 ‘작은 자’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작은 자는 누구입니까. 주린 사람, 목마른 사람, 나그네, 벗은 사람, 병든 사람, 옥에 갇힌 사람입니다. 이들에게 사랑을 베푼 자가 양의 무리에 속해 영생의 나라로 들어가고,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은 자가 염소의 무리로서 영벌의 나라로 들어갑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주님은 소외된 여섯 부류의 사람들을 자신과 동등한 인격자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인간 편에서는 구원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백성은 인생의 가치관이 달라져야 합니다. 떡이 먼저가 아니라 말씀이 먼저여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이 왜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처럼 말씀이 먼저가 아니라 떡이 먼저라고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오디게아교회는 부요함이 가득하다고 자랑했지만, 실상은 곤고하며 가련하며 눈이 멀었으며 벌거벗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서머나교회처럼 환난과 궁핍함이 있어도, 고난이 있어 힘들고 어렵다 해도 좋은 지도자 밑에서 충성된 일꾼으로서 사랑으로 봉사하는 곳이라면, 비록 작은 교회라도 좋은 교회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주변에 작은 자를 살펴보길 원하고 계십니다. 과부와 고아, 나그네 된 자를 찾고 계십니다. 낮은 자로 오셔서 작은 자였던 우리를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시고 이 땅에서 거룩한 가치와 의미를 찾는 인생으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믿음 안에서 작은 자의 승리를 경험하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위정식 목사(서울 반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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